현대문학사 9월 13일 발표≪1910년대 문학의 시대적 배경 및 일반적 특징과 시≫*목차Ⅰ. 들어가며Ⅱ. 내용1.1910년대 시대적 배경2.1910년대 문학적 배경과 일반적 특징(1) 소설(2) 신파극 시대의 희곡(3)비평(4) 시1910년대 시의 인식, 근대 4행시의 창작 배경,육당 최남선,춘원 이광수한국 근대시의 출발 - 자유시지향의 시에 대하여Ⅲ. 나오며Ⅰ. 들어가며1910년대 본격적으로 일제의 수탈이 시작되며, 일제는 모든 분야의 종속상태를 요구하면서 문화적 종속상태 역시 강요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어두움 속에서 우리 문학은 근대성이 시작되었고, 그것을 향한 여러 가지의 시도와 변화가 나타났다. 발표문에서 1910년대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고 각 문학 파트별의 특징을 알아봄으로써 1910년대를 개관하려 한다. 또한 구체적으로 1910년대 시에 대해서 알아보겠다.Ⅱ. 내용1. 1910년대 시대적 배경(1) 일제의 무단총치와 경제적 약탈① 조선총독부의 탄압통치일제는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한국을 완전 식민지로 강점하자 일본 정규군을 전국에 분산 배치하여 식민지 무단통치의 무력으로 편제하였다. 또한 일제는 구한말의 헌병사령부의 헌병대 병력(헌병보조원 포함)을 ‘헌병경찰’로 전환시켜 전국에 거미줄망 같이 배치시켰다.②조선총독부의 설치일제는 1910년 8월 29일 마침내 한국을 명실상부하게 식민지로 강점하자 식민지 통치기관으로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였다.다음은 조선총독부의 권한이다.첫째, 일제는 조선총독에게 입법?사법?행정의 3권과 조선 내의 군통수권 등 모든 권한을 주어 한국인의 저항운동이나 독립운동을 탄압할 수 있게 했다.둘째, 조선총독은 일본의 관제상 최고의 친임관으로서 소위 천황에 직속하게 하였다.셋째, 조선총독은 반드시 일본의 육해군 대장으로 임명하게 하였다.③ 일제의 식민지 탄압체제의 특징일제는 자기들을 철저히 무장하여 한국인을 오직 총칼로 무단통치하는 체제를 만들면서 한편으로 한국에는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어떠한 무기도 동에 의하여 한민족의 내부의 민족독립의 역량이 강화되고 원동력이 되었다.셋째, 3?1운동에 의해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넷째, 3?1운동은 한국민족 스스로의 실력에 의하여 국제적으로 한국민족의 독립을 보장받아내었다.세계사 적으로 본 한국민족의 3?1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강대한 승전 제국주의 열강에 대한 약소민족 독립운동의 첫 봉화와 광명으로서 분출의 둑을 열어준 것이다.2. 1910년대 문학적 배경과 일반적 특징(1) 소설 : 191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문화발전이란 다원적인 상호관계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정치?경제?교육?과학과 기술?문화 등은 모두가 나름대로의 개별적인 측면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상호보완적인 것이지 분리될 수 없다. 일제는 합방 후 통치수단으로 모든 분야의 종속상태를 요구하면서 문화적 종속상태 역시 강요하였다. 이를 각성하고 이에 대응한 민족세력이 약화되는 상황 속에서 소설은 무엇을 말하였는가, 소설은 어떻게 성장하였는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 시대 신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은 대부분 일본 유학중이거나 유학을 경험한 사람들이고, 이들은 대체로 부유층 자제들이다. 국권을 박탈한 나라에 가서 새로운 서구문명의 세례를 받은 이들은 점차로 자아각성을 인식하고 이에 따른 개성의 신장, 개인의 행복, 자유평등사상을 나름대로 자각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이러한 근대정신의 시각으로 근대화의 장애요소에 대하여 부정하였고, 그것은 우리 조상들의 가치관에 대한 도전으로 변하였다.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서구 이데올로기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것으로 보고 이들은 과거 조선시대 사회제도의 모순과 부당한 인권유린에 대한 항거를 호소하고 싶었다. 특히 삼종지도의 여권유린과, 조혼제도로 인한 개인의 행복박탈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유학생들은 그것을 논문이나 소설로 일깨우고 싶은 충동이 컸었다.그러나 유학생이라는 특수신분을 가진 이들 계층은 어느 곳에도 뿌리 내릴 수 없는 불안한 계층이기도 하였다. 당시 지배계층은 낡은 주자학기초이론의 모색이 있었던 시기가 바로 1910년대라고 할 수 있다.비평?시?소설?희곡에 대한 기초이론의 수립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기에 1920년대의 활발하고 다양한 형태의 비평적 활동이 전개될 수 있었다고 본다.(4) 시1) 1910년대 시의 인식우리 근대시를 변화의 측면에서 보느냐 지속의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시에 대한 인식의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 중, 변화의 측면에서 바라본 1910년대의 시의 인식을 검토해보자. 이 항목에서 우리가 갖는 과제는 시의 장르상의 특성에 대해서이다. 1900년대와 1910년대에 걸쳐 전개된 약 20년간의 우리 문학에서 서사적 양식인 소설 쪽보다 서정적 양식인 창가, 가사, 신시 등이 우세한 현상을 보였다는 사실, 다시 말해 서정적 양식 쪽이 일층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드러내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장르의 특징과 그것의 변형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서사적 양식은 설화적 장르여서 그 속엔 사람의 가는 길이 얘기되며, 그가 끼어든 여러 사건이나 한 짓이 묘사되고 사람 사이의 상호관계가 제시된다. 이에 비해 서정적 양식은 서사적 양식처럼 현실은 반영하되, 삶의 순간적 체험에 일층 중점을 둔 표현방식이다. 현실을 일관된 줄거리 없이 부분적, 집중적, 주관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현실에 퍽 날카롭게 육박할 수 있다는 뜻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을 수미일관된 전체로 파악하지 못하는 제약성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한국문학의 은 타설적 형식의 쇠퇴와 자설적 형식의 부상이라는 패러다임적 관점) 에서 가능하다. 근대 이전의 무학, 특히 개화기 시가는 감각보다는 이념이, 개성보다는 관념을 앞세운 타설적 구조 위에서 형성?전개 되었다고 하면, 근대 이후의 시는 반대로 자설적 구조변화를 일으켰다. 그만큼 이념보다는 감각, 관념보다는 개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시는 인간성 회복을 나타내고 있고, 이것은 『少年』,『靑春』,『學之光』등에 실린 六堂, 春園, 小星, 素月(최승구) 등의 1910년대 시에서 나타난. 육당, 소성, 춘원 등의 시가 보여준 반율문성이나 반산문성이 그렇고, 소월 안서, 流暗(유암) 등의 자유시(산문성) 지향이 바로 그렇다. 개화기 시가의 정형적 음수율이나 반복적인 리듬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라든가, 구어체의 사용과 같은 이러한 형식의 실험은 개화기에서 20년대 시에 이른 그 중간단계인 과도기의 시적 변모라고 할만하다.2)근대 4행시 창작의 배경)한국 근대시는 개화기를 전후하여 형태적 변모를 시도하기에 이르다. 정형의 형태적 제약에서 벗어나 음수와 음보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운 시형태의 개안을 하게 된다. 1890년대 찬송가의 이입에서 형태적 변화의 모태가 마련되고, 이러한 자유율의 모색은 육당의 신시 및 1910년대 시인들의 자유시 창작으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특히 1910년대 초 러시아 산문시의 이입은 비록 무비판적 수용으로 시형태상의 혼란을 야기하기는 했으나 정형태의 파괴에 충격소로 작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자유율의 모색 작업은 1918년 창간 이후 서구 상징주의의 수용과 함께 자유시의 장르개념 성립은 물론 본격적인 자유시 창작으로 본 궤도에 오르게 된다. 한국 근대시의 근대적 속성은 이와 같은 형태면에서의 해방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시의 올바른 방향은 이러한 외래적 요소와 전통적 요소의 상호갈등을 통한 변증법적 지양으로 귀결될 수 있다. 더구나 자유시의 개화가 자생적 성찰에서 비롯되었기 보다는 서구충격의 영향이 컸던 만큼 한국 근대시의 형태 정립에 긍정적 영향만을 준 것으로는 볼 수 없다. 1910년대 제기 됐던 자유시, 산문시, 시적산문 등 장르 상의 혼란이나, 무작정 시 형태를 확산시킴으로써 산문으로 전락된 육당의 ‘태백산 시집’의 실패 등이 그 좋은 예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유율의 모색과 이입, 시행착오의 과정을 통하여 근대시의 골격이 갖춰줬던 것이다. 그러나 자유시형의 모색과정 이면에 전통적 정형률의 지속과 변형을 추구하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 근대시의 올바른 방향 외래적 리듬을 변조하기도 한다. 전통적 리듬과 외래적 리듬, 그 어디에도 자신을 동일화 할 수 없는 구심점의 상실을 육당의 시가는 처음부터 경험하고 있었다. 그만큼 육당의 시가는 갈등과 거부 그리고 새로운 경향에의 충돌로 리듬의 무정부상태로 얼룩져 있었고, 그것은 주로 육당 자신의 사상적 방황 등으로까지 이르고 있다.육당의 신시가 새로운 주제와 소재로 나타났지만 그 형식은 이렇듯 타설적 구조인 한에서 그 이전의 개화기시가에서 다루어질 가능성 큰 것이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시상이나 시형은 개화기시가와는 분명 다른 세계다. 그것은 육당의 감정과 경험세계가 현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당의 감정과 경험은 제 1차적인 기능에 있어서 개화기 시가와 같이 밖에서 온 경험이며 자유?평등?애국 등 기성화된 감정이다.텨……ㄹ썩,텨……ㄹ썩,텩,쏴……아.따린다, 부슨다, 문허 바린다.태산(泰山) 갓흔 놉흔 뫼, 딥태 갓흔 바위ㅅ돌이나요것이 무어냐, 요게 무어야.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호통까디 하면서따린다, 부슨다, 문허 바린다.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콱.- 에서혼자 웃둑,모든산이 말큼 다 훗훗한 바람에 降服하야,녹일 것은 녹이고 풀닐 것은 풀니고,아지랑이 粉발은 것을 자랑하도다.그만 如前하도다.- 중 ‘봄’에서와 으로 의식되는 이상과 같은 상징과 시적 배경은 자설적 요소에 선행되는 타설적 요소로 말미암아 오늘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의 민족의식이나 역사의식이 관념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전술한 바와 같이 시상이 표현으로 나타나지 않고, 과 의 객관적 등가물은 조선주의의 고취와 문명개화의 예찬이라는 미리 정해진 선험에 압도당하고 있다. 민족과 국토에 바치는 찬가가 잠재적인 것보다 먼저 외부의 관념의 자극으로 촉발되었다는 것이 그것의 단적인 예증이다. 따라서 그의 시의 관심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나, 그 밑바닥을 밝히는 일이 아니다. 그의 시는 완결의 미학인 한, 그 내용과 방법은 기성적인 표현논리에 의하여 추상적인 개념이나 도식 내지 장르의식의
8조 멀티미디어교재 연구 및 지도법개발계획서1. 수집된 자료 목록 「명절 음식」한복선 대원사 1996 - 명절 음식과 설명, 사진「민속놀이와 명절(상, 하)」김윤호 대산출판사 2000 - 명절놀이 설명, 사진「한국세계대백과사전」동서문화 1997「밀레니엄세계대백과사전」최기옥 도서출판 범한 2000 - 명절 설명, 사진「원색세계대백과」김정규 태극출판사 1999「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영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http://zelkova.sshel.com/korea_day/http://ce.hankyong.ac.kr/%7Ewebid/page_4.html - 명절 설명, 사진http://lehee.hihome.com/selset.htm 음식 그림, 놀이 그림http://home.taegu.net/~leeel123/index3.htmhttp://myhome.naver.com/chosin00/root/flash/index.html -음식 그림http://www.uniedu.go.kr/school/calendar/calendar.htm - 북한의 명절2. 가르칠 내용, 방법 및 학습활동에 대한 선별된 아이디어▷가르칠 내용:우리나라의 4대 명절(설날, 대보름, 단오, 추석)의 유래와 풍습, 다양한 놀이와 음식▷방법 및 학습활동에 대한 선별된 아이디어:①귀엽고 학습자가 호감을 느낄만한 캐릭터를 만들어 그 캐릭터가 학습의 진행, 설명 등을 도와주고 소개해주는 식으로 제작한다.②텍스트 위주의 교수방법 보다는 음성과 다양한 동영상, 그래픽을 이용하여 한국의 명절을 소개 할 수 있도록 하며 불가피하게 텍스트를 사용할 경우에는 그 크기와 색, 글자체에 대해서 학습자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③애니메이션이나 그래픽을 이용해 이야기 형식으로 꾸며 마치 학생들이 동화책을 읽는 기분이 들게 한다.④4개의 명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만 학습자 주고, 일단 하나의 명절에 대한 학습이 시작되면 학습, 평가, 피드백의 과정이 끝날 때까지 종료할 수 없게 한다.3. 과제 분석설날추석대보름단오유래유래음식유래유래풍습음식놀이놀이음식풍습음식풍습풍습놀이놀이4대 명절4. 예비적 레슨 분석1) 도입부 구성방안우리 나라 명절을 학습하는 목표를 제시하고, 프로그램 사용에 관한 사용법을 간단히 소개한다. 그리고, 우리 나라 명절이 아닌 것을 찾아내는 객관식 문제를 통해 프로그램 시작에 앞서 선수학습을 제공한다.2) 학습통제 방안학습자 통제의 유형으로 본 프로그램은 학습자 통제와 프로그램 통제를 함께 사용한다. 메뉴화면에서 프로그램 시작 및 종료, 6개의 명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줌으로써 학습자 통제 유형에 따르고, 일단 하나의 명절에 대한 학습이 시작되면 학습, 평가, 피드백의 과정이 끝날 때까지 순차적으로 하고 학습단위 끝날 때에 임시종료와 종료를 둔다.학습자의 연령이 8세이므로 집중력이 오래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전체 명절에 대한 학습을 한 후 종료할 수 있게 하기보다는 명절 하나를 단위로 종료할 수 있도록 하였다.대상 학습내용은 우리 나라의 6개의 명절인데, 날짜별로 순차적인 순서에 따르도록 한다. 각 명절은 유래, 풍습, 놀이, 음식을 그 내용으로 한다.3) 동기부여 방안관심(attention): 학습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멀티미디어를 사용하여 학습자의 이해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도록 한다. 즉 학습자의 연령이 8살임을 감안할 때 텍스트 위주의 교수방법 보다는 음성과 다양한 동영상, 그래픽을 이용하여 한국의 명절을 소개 할 수 있도록 하며 불가피하게 텍스트를 사용할 경우에는 그 크기와 색, 글자체에 대해서 학습자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또한 단순한 암기식 수업방법에서 벗어나 이야기 형식으로 내용을 전개함으로써 수업을 흥미를 북돋으며 각 명절에 대한 다양한 자료제시를 통하여 학습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관련성(Relevance): 해마다 돌아오는 우리 고유의 명절을 학습자들로 하여금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하고 그 명절에 맞는 놀이를 실생활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놀이방법을 자세히 소개한다. 그리고 각 명절에 맞는 옷과 옷 입는 방법, 그리고 풍습과 관련된 예절을 소개함으로써 학습자들로 하여금 각각의 명절 때 알맞은 옷을 입을 줄 알고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게 한다. 또한 학습자들의 이해를 위해 가능한 어려운 용어를 지양하고 학습자 연령에 맞는 적절한 용어선택과 캐릭터를 통한 일방적 수업이 아닌 교수자와 학습자의 상호 관련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사용한다.자신감(confidence): 학습목표를 명확하게 명시하여 학습자가 피드백을 받고 나서 성취여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 학습자의 성취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내용을 학습자가 명절 때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과 장면을 위주로 예를 들어 설명하며 각 명절에 대한 선택권을 학습자에게 주어 성취의 결과가 학습자의 노력에 의한 것임을 알게 한다. 또한 적절한 피드백과 보상을 주어 학습자가 학습내용에 대한 자신감을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한다.만족감(Satisfaction): 학습자들이 프로그램 실시 후 각 명절에 해당하는 놀이를 할 수 있도록 게임의 규칙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이와 관련된 동영상을 보여주어 학습자들이 놀이를 하는데 동기를 부여하여 놀이를 통하여 프로그램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풍습과 음식, 유례에 관한 질문을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적절한 피드백을 주고 수업목표와 관련하여 성취여부를 알려줌으로써 학습자들이 성취감을 맛 볼 수 있게 한다.4) 정보제시 방안우리가 사용할 교육용 멀티미디어 프로그램 유형은 개인교수형이다. 초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교수형 프로그램인 만큼 어린 학생들에게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으며 오래 기억될 수 있게 정보제시를 해야한다. 이를 위한 정보제시 방법으로 텍스트, 그래픽, 음성, 동화상, 애니메이션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사용하게 될 텍스트는 주 학습대상이 초등학교 1학년 아동인 만큼 가독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텍스트의 길이는 되도록 짧게 하고, 주로 그래픽이나 동화상 같은 다른 시각적 방법으로 정보를 제시할 계획이다. 또한 레이아웃은 빽빽하지 않고 너무 현란하지 않게 하고 화면구성 역시 기본적인 방식으로 구성하려 한다. 어린 아동을 학습에 유도하고 흥미를 유발하며, 주의 집중을 시키기 위해 색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텍스트로 정보를 제시할 때 어렵지 않은 문장과 용어를 사용하고 글자크기는 14포인트 정도로 넉넉하게 한다. 강조할 부분은 색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아동에게 적절한 시각적 자극을 주도록 한다. 글자체는 신명조체 같은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 말고 읽기 쉬우며 아동에게 친숙한 글자체를 사용한다. 아동의 흥미 유발, 기억력 증진, 그리고 이해력 촉진을 위해 각 명절의 유래를 설명하는 부분은 지루한 텍스트를 사용하기보다는 애니메이션이나 그래픽을 이용해 이야기 형식으로 꾸며 마치 학생들이 동화책을 읽는 기분이 들게 한다. 이 부분은 우리 조원들 중 몇몇의 목소리를 이용해 역할극을 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아동들은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명절의 유래를 재미있게 학습 할 수 있다.그래픽을 제시할 때는 너무 복잡하고 화려하지 않으며, 적당히 단순화시킨 것을 사용해 학습대상이 받아들이는데 무리가 없도록 한다. 또한 되도록이면 귀엽고 색이 예쁜 그래픽을 넣어야겠다. 그러나 그 그래픽이 그 자체로 특별한 안내 기능을 지닌 경우에는 좀 더 상세히 만들 필요가 있다. 각종 아이콘이나 버튼 등은 그 기능을 한번에 잘 알 수 있도록 대표성을 지닌 그래픽을 사용하며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따로 만든 도움말 부분에서 제시한다. 학습대상이 아동인 만큼 음성을 많이 사용할 것인데 이때에는 또박또박하게, 천천히 녹음시켜 아동들의 이해를 돕는다. 각 명절에 행해지는 놀이를 소개, 제시할 때에는 그 움직임과 실제성을 중시해 그에 해당하는 동영상을 이용할 수도 있다. 움직임 묘사를 주제로 하는 자료제공이므로 메모리 크기를 조절해야겠다. 또한 이때에 학습자가 동영상의 제시속도, 앞뒤로 되돌려 보는 것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부가적으로 이러한 통제를 할 수 있는 아이콘이나 버튼 사용법을 잘 알 수 있도록 도움말을 주거나 그래픽으로 잘 표현한다.중요한 사항으로, 학습대상자를 고려해 학습통제권의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의 교육용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의 학습대상이 어린 아동이므로 학습 통제권은 학습자에게 많이 줄 수 없다. 그러나 아동의 개인성을 고려해 학습할 명절의 선택권은 학습자에게 주도록 한다. 즉 처음에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설날에 대해 배울 것인지, 아니면 추석에 대해서 배울 것인지 등을 학습자가 선택해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다. 학습자가 명절을 선택하면 동화형식으로 꾸며진 유래를 재미있게 학습하면서 학습의 흥미를 돋구고, 다음으로 풍습을 배우게 된다. 또한, 귀엽고 학습자가 호감을 느낄만한 캐릭터를 만들어 그 캐릭터가 학습의 진행, 설명 등을 도와주고 소개해주는 식으로 제작한다. 이로 인해 어린 아동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친근한 친구와 함께 놀이도 하며 학습하고 있는 느낌을 주도록 한다. 이 캐릭터는 학습자들의 개인차를 존중해 몇 가지 캐릭터 중에서 자신이 선택하게 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다.
1. 들어가며2. 1903년 도입설 3. 최소한 1900년 이전 -조희문, 안종화4. 1897-1898 도입설 ① 에스터 하우스의 기사 : 에스터 하우스② 심 훈과 손위빈③ 김정혁과 이구영5. 기타 시기 도입설6. 나가며7. 참고문헌1. 들어가며...19세기 말 서구의 신문명이 속속 한국에 들어왔다. 기차, 전기, 담배, 음악 등이 그것이다. 영화도 그중의 하나였다. 1895년 뤼미에르가 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하여 일반에게 공개한 후 세계각지로 퍼져나가는 데에는 불과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아마도 하나의 문명이 당시와 같이 정보교류가 더딘 세상에서 그처럼 빨리 전파된 것은 역시 영화가 가진 새로운 문명에 대한 가능성과 가치를 충분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영화가 도입된 시기를 보면, 황성신문에 나온 광고물에 의해 1903년 이라는 설에 지배적 이었다. 그러나 1903년이라는 시기는 영화의 확산 속도와 주변국의 도입시기와 비교하여 보아도 느린감이 있다.우리나라에 정확하게 언제 처음 영화가 상영이 되었는지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당시 개화기의 혼미한 상황 하에서 기록도 없고, 확실한 검증자료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영화를 증언하는 몇몇 사람에 의존하여 도입 시기를 추측하고 있는데, 그것도 직접 전해진 증언이 아니라 구전된 까닭에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국 영화가 전래된 시기와 경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확실한 객관적 자료의 부재로 어느 설이 정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증거들과 증언들을 종합해 보아 가장 신빙성 있는 설을 정설로 인정할 수 는 있을 것이다. 개인의 자료들에 의한 기록은 신빙성이 없어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이러한 자료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당시에 살고 있었다고 해서 꼭 그 시대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후대에 와서야 명확히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한국에 최초로 공개된 활동사진에 대한 다양한 여러 이견들과 찾아보고자 한다.2. 1903년 도입설 1903년 6월 23일자 에 한 영화광고가 났다.“동대문 내 전기회사 기계창에서 시술하는 활동사진은 일요 및 음우를 제하는 외는 매일 하고 여덟시부터 열 시까지 설행되는데 대한 및 구미각국의 생명도시, 각종 극장의 절승한 광경이 구비하외다. 허 입장료금 동화 십전”이 광고가 우리나라에서 영화가 일반에게 상영된 영화시작의 확실한 검증자료이다. 이것이 현재 문헌상으로 남아있는 최초의 공식적인 활동사진 기록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많은 영화사가들은 이 설을 지지한다.시인이자 영화평론도 썼던 ‘임화’는 (1941)에서 1903년 영미연초회사가 담배선정을 겸하여 영화를 상영했으며 1904년에는 원각사에서 프랑스 파테 사의 작품을 상영했다고 썼다. (1943)를 쓴 조선영화문화연구소의 ‘이창용’도 이 설을 지지하며, 논문을 쓴 이청기, (1969)를 쓴 이영일, (1980)를 쓴 유현목도 1903년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영화 도입 시기에 관한 객관적 입증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1093년 동대문 전기회사 기계창의 활동사진 공개’는 정설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성전기 회사가 동대문 전차 차고 및 발전소 부지 안에 영화 상영 시설을 갖추고 외국인을 위한 특별관람석 까지 마련하여 은행에 들어간 동대문 전기 회사 활동사진 관람소가 부각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활동사진이 프랑스에서 1895년에 탄생한지 채 몇 년도 지나지 않아서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된 점과, 특히 당시 활발한 교류관계에 있었던 인접국 일본은 이미 6년 전에 영화를 상영하였다는 점에 유의해 본다면, 1903년에 우리 땅에 영화가 처음 상영되었다는 주장에는 의혹이 제기된다.3. 조희문, 안종화 최소한 1900년 이전한국영화사를 연구하고 있는 조희문은 (1992)라는 논문에서 한성전기회사가 1903년 6월 영화상영을 한 때와 비슷한 시기에 협률사가 영화를 상영한 기록을 제시하고 있다.“협률사에도 기게일좌를 배치하고 관람케 함으로써 관객유녀, 수천인이 모였다가 홀연년 이전에 영화가 도입되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1899년에 한국을 여행했던 미국인 버튼 홈스(E. Burton Holmes)의 여행기이다. 조희문은 최소한 1900년 이전, 즉 1899년 5월에서 같은 해 여름 사이에 한국에 영화가 소개되었으며, 황실이나 그 박의 특별한 인물들을 대상으로 하여 영화의 상업적 흥행이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버튼 홈스의 자신이 직접 경성의 거리 풍경을 촬영했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궁궐에 들어가 고종황제에게 영화를 보여줬으며, 고종황제는 연회를 베풀어주고, 선물까지 하사하였다고 한다. 어쩌면 한국에서 맨 처음으로 영화를 본 사람이 고종황제일지도 모른다. 조희문은 “여행기의 서문에서 1897녀부터 1898년 사이에 아시아 지역의 주요 도시를 여행했다는 내용이 있어 1899년 5월 이후로 추정된다.”고 서술하고 있다.를 슨 안종화의 말이나 또 다른 이들의 주장에도 나온 바 있지만, 정동에 있는 손탁호텔 에서도 고관이나 신사 등 특수 계층에게 가끔 영화를 시사했다고 한다. 영화가 일반에 공개되기에 앞서 황실을 비롯한 특수층에 먼저 공개되었으리라는 설은 타당성 있는 주장이다. 특정 계급들이 일반대중과 같이 거리의 아무 곳에서나 영화를 볼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 공개에 앞서 황실에서 황제가 영화를 보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무튼 영화는 1897년부터 1905년 사이에 걸쳐 수차례 한국 상륙을 시도했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뤼미에르가 영화를 공개한 것이 1895년이니, 비교적 빠른 속도로 아시아 지역과 한국에 영화가 전래되었고 할 수 있다.4. 1897-1898 도입설일본인 영화사가인 이치가와는 ‘한성 이동의 남대문 중국인 창고’에서 1987년 또는 1988년 영국인 이스트 하우스의 소개로 영화가 상영되었고, 빈 담뱃갑을 가지고 오면 무료로 입장시켰다고 말했다. (1946)를 쓴 김정혁은 1897년 한성의 남대문 중국인 창고에서 영화상영이 최초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영미연초년에 영화가 들여와 일반에게 공개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① 에스터 하우스의 기사 : 에스터 하우스 (런던 타임즈 객원 기자)“극동 조선에서 어느새 활동사진이 들어왔다. 1897년 10월 상순경 조선의 북촌 진고개의 어느 허름한 중국인 바라크 한 개를 3일간 빌려서 가스를 사용하여 영사하였는데 활동사진을 통해 비춰진 작품들은 모두 불란서 파테회사의 단편들과 실사 등이 전부였다. 에스터 하우스는 이전에도 한성 서대문에서 단 하루 동안 실사회를 가진 적이 있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다. 입장료를 받았으나 조선인들은 매우 가난하여 구경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바라크 밖에서 어정대곤 했는데 그 모습들은 측은해 보였다. 에스터 하우스는 자신과 직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조선연초주식회사의 비교적 저렴한 일본 담배를 헐값에 조선인들에게 팔면서 빈 값 몇 개를 가지고 오는 사람에겐 무료로 관람을 시켰다. 어울러 에스터 하우스는 컬러로 찍은 에쁜 기생 사진카드 7매씩을 모든 관객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 이후엔 에스터 하우스 외의 어느 사람도 조선 안에서 활동사진을 공개 상영하지는 않앗다. 일본은 이미 1년 전엔 1896년에 활동사진이 들어와 지금까지도 성황리에 관객들의 환호를 받고 있는바 조선에서 일본과 같은 활동사진이 널리 보급되리란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이 토막 사진은 에스터 하우스와 조선연초주식회사의 공동구매 방식으로 이우러진 것이다.”-기사작성 : 에스터 하우스 (객원기자)이 기사는 긴고개에 임시 활동사진 공개 장소로 제공된 가건물과 영화 관람시 제공했던 조선기생들의 모습을 찍은 컬러엽서의 사진을 함께 싣고 있다. 1897년 10월 10일을 전후한 3일 동안 에스터하우스라는 영국인이 조선연초주식회사와 공동구매 방식으로 프랑스 파테사의 단편 실사 필름을 들여다 충무로 진고개에 잇는 중국인 소유의 가건물에서 상영했는데 빈 담배갑 일정량을 가져오는 사람에게는 무료 입장시켰고 모든 관람객에게 기생 사진 카드 7장을 기념으로 나눠주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에스터심훈이 영화의 내용을 기록한 것을 볼 때 조르주 멜리에스가 만든 “환상적 마술”(1909년)로 추측된다.에스터 하우스는 우리나라에 영화의 도입기를 이야기 할 때 자주 거론되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기록에 따라 ‘미국인 아스터 하우스’ , ‘영국인 이스터 하우스’, 심지어는 서대문 밖에서 애스터 하우스라는 회사를 경영하던 불란서인‘ 등 국적과 이름에 혼선을 주며, 사람이 회사로 바뀌었던 당사자이다.그는 연초 회사와 손을 잡고 사업을 했고, 활동사진을 재빠르게 담배의 선전에 활용하는 상술을 가졌다. 에스터 하우스는 대한제국 초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일합방이후까지 국내에 머물며 영국 공사관의 법무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가 우리나라에 오게 된 것이 외교관의 임무 때문인지 아니면 사업을 목적으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런던타임즈의 객원기자로서 활동하였고, 위의 기록을 남김으로서 ‘1987년’ 활동사진의 공개설이 근거가 있는 사실임을 확실하게 입증해주고 있다.② ‘심 훈’ 과 ‘손위빈’심훈은 작가이자 감독으로 1897년 우리나라에 처음 활동사진이 들여와 일반에게 공개되었음을 언급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조선에 활동사진 이라는 것이 맨 처음 수입되기는 1897년(광무 1년), 즉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에 이현(남산정)에 있었던 ‘본정좌’라는 조그만 송판쪽 바라크 속에서 일본인 거류민을 위해서 실사 몇 권을 가져다가 놀린 것으로 효시를 삼는다고 한다. 그 수 , 1년이 지난 광무 2년 늦은 가을에, 옮겨가기 전의 남대문통 상업은행 자리에 있던 중국 사람의 창고를 빌려가지고 서대문 밖에서 애스터 하우스라는 회사를 경영하던 불란서 사람이, 파테회사에서 박힌 사진 몇 권을 가지고 와사등을 사용하여 영사를 하였는데...(중략) 입장료는 백동 한 푼이나 새로운 ‘북표’, ‘새표’같은 권련갑을 모아 주고 들어갔다고 한다.”심훈은 에스터 하우스에 의한 진고개의 활동사진 공개와 큰 차이가 없는 내용을 소개했다. 다만, 진고개의 허름한 어는 중국인 가건물을 ‘본정좌’로 쓰고, 상영시다.
REPORT컴퓨터와 인간소외-컴퓨터가 가져오는 인간소외와 그 극복-목 차Ⅰ. 서론Ⅱ. 본론1. 컴퓨터의 구조적 특징과 인간성과의 관계2. 정보화 사회의 낙관론과 비관론1) 낙관론2) 비관론3. 인간소외의 가능성과 문제점4. 정보화사회의 문제점과 인간소외1) 몰개성화2) 스트레스의 증가5. 인터넷의 등장과 인간소외Ⅲ. 결론Ⅰ. 서론1950년대 컴퓨터의 등장 이후 오늘날에는 정보혁명이나 커뮤니케이션 혁명의 전기가 마련되었고 이는 급진적인 정보기술 개발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정보기술의 발달이 인간에게 理想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었다. 컴퓨터의 효율적인 활용이 이루기 위해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고도의 표준화가 이루어져 왔으며, 이러한 일률적인 표준화와 규격화는 근본적인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쳐, 많은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컴퓨터식 방법에 길들여지고, 때문에 인간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Ⅱ. 본론1. 컴퓨터의 구조적 특징과 인간성과의 관계컴퓨터는 이전에 생명력이 없는 대상이나 심지어 생명 그 자체에도 부여되지 않았던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제 그 나름의 생명을 획득하고 있다.{ 애덤 드로즈덱 사람들은 컴퓨터가 일상적인 도구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지금까지는 오직 인간에게만 한정되었던 영역에까지 침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컴퓨터는 생명력과 함께 그 나름의 인성을 부여받고 있다. 컴퓨터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컴퓨터는 그 나름의 권리와 의무를 가진 채 사회의 일부분이 되고 있다. 컴퓨터는 우리 인간의 협력자 및 동료로서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컴퓨터는 인간의 합리적 차원, 특히 법칙을 입증하는 것과 같은 인지적 능력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인공지능 컴퓨터와 같이 인간성을 컴퓨터 안에서 볼 수 있도록, 즉 인간의 합리적 차원 만이 마치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사유하도록 만들고 있다. 결국 인간에게 합리성 만이 최고의 가치라는 사고를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이기는 하지 모든 개인들이 코드나 숫자 표시에 의해 다루어지므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상실하고 차라리 컴퓨터의 입력을 위해 존재하는 숫자자료인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러한 컴퓨터의 발전으로 인한 생활양식의 변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들며, 이러한 인간성 상실은 인간과 인간의 상호관계로 이어져 인간관계의 상막함을 가중시키고, 이러한 관계 속에서 결국 인간 은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물론 컴퓨터의 발전은 사회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과정으로, 긍정적인 측면에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인간소외의 감정은 좀 더 본질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심각한 문제라 할 것이다.2. 정보화 사회의 낙관론과 비관론정보사회의 환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변화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소위 정보화 사회에 관한 논의가 낙관론과 비관론이라는 두 줄기로 형성되어 있다. 특히 비관론적 관점을 중심으로 컴퓨터와 정보를 핵심으로 하는 정보화 사회가 가져올 인간소외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1) 낙관론 :경제적인 차원에서 정보화 사회는 자본의 집중화와 팽창, 표준화, 획일화, 착취 등과 같은 내재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구조에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또, 정치적으로는 보다 참여적이고 분권화된 의사결정을 가져오게 하며, 그리고 정보접근에 대한 기회확대 등을 통해 권력분산이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민주화의 진전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문화적으로는 전자자동화를 통해 기술적인 노동의 대치가 확대됨으로써 늘어난 여가시간을 통해 개별적인 문화적 향유의 기회가 증가될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낙관론에 의하면 정보사회의 개인은 다른 사람과 관련을 맺으려는 욕구가 강한 인간이며, 다만 공급받는 수동적인 인간이 아니라 정보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적극적 인간으로 파악될 수 있다.{ 원우현 1994 p.254-255또한 정보와 미디어에 의한 범세계적인 문화교류가 이루어져 지구촌 서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가 빈번해질 우려가 높으며, 인간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기계의 중재에 의지하는 정도가 높아짐에 따라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다.{ 최광석 , 1988.7과거에는 인간과 인간이 직접 만나 교류하며 작용했던 관계가 컴퓨터시대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컴퓨터가 낌으로써 인간사이의 관계가 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또한 개인의 수용능력을 넘어서는 과대한 양의 정보가 공급되는 정보의 과잉현상 과 각 개인마다 다른 정보수용능력의 양적 질적인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정보 격차현상 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러한 정보격차는 곧바로 정보의 빈부격차로 이어진다. 이는 곧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밖에도 정보사회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각 개인이 자신의 취향에 적합한 특정 정보만을 계속 받아들이고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정보는 수용을 거부하게 됨으로써 정보의 편식현상이 심화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그러므로 앞으로 확대되는 과학 기술의 진보는 인간의 생활 속에 시스템과 기계류의 도입을 계속 증대시키게 될 것이며, 인간 서로간의 접촉과 대화의 기회는 점점 감소되어 갈 것이다.또한 사무자동화에 의해 숙련공의 직장이 기계에 의해 박탈당하게 될 뿐 아니라 일부 남아 있는 기능공이라도 고도의 경영분야나 인간 두뇌가 꼭 필요한 단순노동분야로 분화되어 빈익빈 부익부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며, 단순노동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직능에 대한 자부심이나 생의 보람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은 물질의 풍요와 기술의 고급화라는 물질 면과 정보 부족, 기게 예속에서 생기는 정신면의 부조화에 부딪혀 이의 해소를 위한 노력이 또한 큰 문제로 나타날 것이다.3. 인간소외의 가능성과 문제점정보의 장악을 통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을 통제하는 전체주의적 권력자의 모습은 정보사회가 가져올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모습으로 지적되어 왔다. 이 같은 폐단은 폐쇄사회에서 특히 심각하며 권위주의적 성격이 강할수록 정보사회로의 진행이 부정적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아니라 자기 상실의 자각증상으로부터 느끼는 고독이며 인간이 인간답게 되지 못했기에 느끼는 고독이다.4. 정보화 사회의 문제점과 인간소외1) 몰 개성화정보화에 따른 몰 개성화 현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는데, 컴퓨터 시스템에 의한 서비스의 획일화를 들 수 있고 또 하나는 일하는 사람의 측면에서 본 단순작업의 증대이다. 일반적으로 컴퓨터 시스템화 된 업무는 효율적이지만 획일적이고 인정미가 없다. 서비스를 행하는 기계는 컴퓨터 시스템화는 인간을 단순하고 부하가 높은 노동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것은 결국 데이터의 입력 작업과 같은 단순노동을 새로 만들어 내게 된 것도 사실이다.2) 스트레스의 증가스트레스는 물리적이고 생물적인 것뿐만 아니라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자극도 포함된다. 또한 사회적 고립이나 사회의 급격한 변화 등도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자극이 된다. 정보화 사회에 따른 인간의 스트레스는 다음과 같이 개략할 수 있다.{ 원호택 19891첨단기기와 인간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스트레스인간공학적 측면에서 장시간의 작업동안 특정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컴퓨터 단말기에서 나오는 열과 소음 그리고 화면의 시각적 자극에 노출되는 등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은 타작업인들에 비해 근육통, 위궤양, 정서적 스트레스가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또한 컴퓨터 성능에 대한 지식의 결여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새로운 작업 패턴에 대한 장기적인 적응과정에서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러한 모든 현상들은 직무만족도를 낮게 하고 동료, 감독자, 상사와의 관계가 악화된다는 연구보고도 있다.2일과 활동에서 오는 스트레스첨단기기를 이용한 업무처리나 의사소통은 가사노동 등에 익숙해짐에 따라 첨단기기를 다루던 방식을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하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즉, 상대방 특유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첨단기기처럼 즉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반응을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증가할 것이다. 또한 의사소통에 있어 감정적인 요소가 배제되고 과업 지향적이고 합리적인 면이 강조되는 경향이 커질 것이 해가 될 정도로 착취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신용카드회사가 해외 고객들에 관한 데이터를 유용하는 사건들이 터지면서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사회의 정보화를 배경으로 개인정보의 컴퓨터 위한 처리가 확대되고 있고 그에 수반하여 개인의 권익침해와 정보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관한 새로운 인식과 교육,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차원의 의식과 책임이 필요할 것이다.사생활의 문제는 어떤 종류의 정보가 누구에 의해서 무슨 목적으로 수집되는가의 문제이다. 일단 정보가 어떤 목적을 위해 수집되는 겨우 다른 목적에는 어느 정도 전용될 수 있을 것인가도 고려되어야 하며 이에 관련된 통제문제도 깊이 연구되어야 한다. 즉 개인의 사적인 정보자료를 오용하는 것을 강력히 방지함으로써만 사생활의 침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은 자신과 관련된 일체의 사적 정보를 남에게 밝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개인의 정보들은 고의의건 사고이건 관계없이 공개, 수정 또는 파괴되는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포함되며 이를 위한 제도적 기술적 조치가 선행 되어야 한다.4 컴퓨터 범죄우리나라에 1960년대 컴퓨터가 최초로 도입된 이래 컴퓨터 범죄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컴퓨터 범죄는 이와 관련한 재산 피해액이 보통 억대단위 이상으로 크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업체에서 발생했을 경우 공신력을 유지하기 위해 은폐하는 경우가 많이 실제로 노출되는 범죄는 전체의 10%내외에 불과하다. 또한 앞으로 대량보급 될 것이 자명한 만큼 범죄도 더 보편화 지능화 될 것이다. 컴퓨터 범죄는 무엇보다도 정보화 사회의 전개와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중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동향 파악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정보화 사회에 있어서 인간소외와 그 존엄성을 위협하는 환경이 얼마든지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문제는 이러한 전환기에 처한 인간이 과연 어떤 모습인가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올바른 인간 진보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모색01년
The middle class in general did not render full support but only a limited affirmation to the students` movements. They did not give overwhelming support to the students` movements. Because one of the most compelling demands of the students was to improve the working condition of the workers in general. Although they are more doubtful, however they agree to the general proposition that the real goal of the student movement lies in achieving democracy. the fifth Republic was so thorough and firmly controlled through the press as well as broadcasting. It made the middle classes have a high level of critical view. The Korean middle class is generally progressive and affirmative of the students` or intellectuals` mov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