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읽고200202534 백지현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는 19세기 역사가이자 예술사가인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대표적 저서이다. 이 책 이후로 '르네상스'라는 말이 역사상의 일반 용어로 쓰이게 되었을 만큼 르네상스사 연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명저이다. 1860년 초판이 발행된 후 140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이 책은 문화사 읽기의 최고 고전이자 문화사 쓰기의 본보기로 일컬어진다.이 책을 통해 부르크하르트는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의 이탈리아 문화 전체를 종횡으로 들여다보며 현대인의 기원과 '개인'이라는 의식의 생성과정에 대한 답변을 모색한다. 서양의 현대인은 바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서양의 역사에서 '르네상스' 만큼 많은 이들에게 자주 거론되어지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주제도 많지 않을 것이다.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된 주제인 만큼 '르네상스'의 개념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어 왔는데 오늘 읽은 글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라는 책의 저자인 부르크하르트 역시 르네상스의 개념을 나름대로 정립했다. 부르크하르트는 기독교라는 종교에만 전적으로 치중했던 중세를 암흑기라 칭하며 중세 신학에 대한 대안으로 인문학과 고전(고대 그리스 로마의 고전)의 연구가 행해진 르네상스 시대를 광명의 시기라고 했는데 이러한 의견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르네상스의 개념으로서 부르크하르트가 이러한 개념의 고착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하겠다.이 책의 1부의 제목은 예술품으로서의 국가이다. 국가를 예술품에 비유한 시각이 참으로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부르크하르트는 왜 이런 식으로 당시의 국가를 생각했을까?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로 알려져 있다. 비슷한 시기의 프랑스, 영국과 같은 국가들은 잦은 전쟁을 통해 군주제 통일국가로 결속되었다. 그러나 1300년 이전까지 정치적 분열이 지속되었던 이탈리아는 15세기에는 중간 규모의 국가들의 등장으로 전보다 안정을 찾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세습되기보다는 피로 얼룩진 찬탈 행위를 통해 획득했다. 타 가문의 사람뿐만이 아닌 자신의 친척들마저 군주에겐 적이 될 수 있었다. 이 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신의 조카, 삼촌 등에게 살해되는 계승자와 군주들은 흔히 볼 수 있다. '예술품으로서의 국가'라는 말을 처음 접하며 안정적이며 체계가 바로 잡혀 권력의 중심이 뚜렷한 국가를 떠올린 나로서는 폭정을 일삼는 군주가 등장하고 그에 반발하는 세력의 잔인한 보복이 난무하는 본문의 내용을 보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예술품으로서의 국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당시 이탈리아의 국가들은 다른 유럽의 도시들과는 달리 불법적이고 실제적인 힘을 가진 군주를 가졌다. 프랑스나 다른 국가들의 신성시되는 왕권에 맹목적인 따름이 아니라 실제적인 힘의 복종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또한 아무런 힘도 권력도 없는 의미뿐인 귀족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정확하게 통제하고 정비하고 발전시킬 줄 알았고 더욱 계산적인 통치 아래서 고도로 정비된 국가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러한 통치 아래서 눈에 보이는 기초에 근거한 의식을 지닌 예술품으로서의 국가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었고 그러한 목적 아래 통제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자는 국가를 예술품으로 바라보았다.이러한 예술품으로서의 국가들은 국가 상호간의 관계에서도 예술작품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국가 스스로를 확장하고 움직이려는 욕구는 보통 불법적인 권력에 공통했고 이러한 이유에서 이탈리아는 외교정책의 고향이 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국가들간의 지나친 확장 욕구는 프랑스의 개입을 불러들이고 결국은 프랑스와 뒤이은 에스파냐의 통치를 가져 오게된다. 그러나 베네찌아로 대표되는 외교술은 알프스 이북의 나라들이 배웠을 정도로 유명했고 실로 훌륭하였다.예술품적인 면모는 전쟁에서도 드러난다. 개별의 군사들의 능력과 전쟁의 전술과 화약과 대포의 조화를 이룬 모습은 거의 완전한 예술품이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경향을 나타냈고 이러한 경향으로 인하여 여러 명의 성직자들이 살해되었고 독살되었다. 아마도 종교 개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교황권은 완전히 세속화 되어버렸을 것이다.국가를 예술품으로 보는 시각은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저자는 국가를 아름다운 그림이나 조각들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다른 유럽의 나라들과는 다르게 이탈리아의 국가들만이 하나의 정교하고 조화된 아름다운 예술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중의 하나가 아마도 그들이 커다란 통일제국이 아니라 작은 도시국가들이라는 점일 것이다. 이미 비대하게 커져버린 거대한 국가에서는 비단 실제적인 힘의 권력보다는 명분으로써의 권력들이 산재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탈리아의 국가 군주들처럼 실제적인 힘이 없이는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의식을 갖기 힘들었건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커다란 통일제국들은 조화를 이루기 힘들었고 정교하고 투명한 국가의 상태를 만들 수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유는 정치적인 상황에 근거한다. 바로 다른 유럽의 국가들과는 달리 힘이 없는 왕은 존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명분으로써의 왕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힘이 없는 군주는 금새 다른 실제적인 힘을 가진 군주들로 교체되어버렸고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힘을 잘 계산하여야 했고 그런 계산적인 힘 아래서 고도로 정비된 국가의 통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2부에서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 시대의 개인의 발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개인의 발전이라는 것은 결국 의식의 변화에서 시작돼는 것이다. 역자의 서문을 보면 '부르크하르트는 이 책에서 유럽인으로서 자신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색한다. 즉 현대인의 기원과, 개인이라는 의식의 생성 과정에 대한 질문이다. 현대인, 적어도 서양의 현대인은 바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쓰여 있다. 2부 처음 도입부에 개인주의의 형성을 다루고 있는데 이를 이탈리아 사람들이 현대적 인간으로 빨리 형성된 가장 강력한 이유로 보고 있는 것이지적인 측면에서 완전한 수양을 쌓은 사람들이 증가하였고 이 책에서 표현한 '전인' 이라는 인간형이 등장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던 점은 이 당시의 여러 예술가나 작가 인문주의자들의 능력과 지적 소양이었다. 현대의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양의 지식과 역사를 배우고 문맹자도 훨씬 적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은 과거의 사람들이 발견하거나 창조한 산물인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여러 인문주의자들의 새로운 시도와 사고방식 등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또한 이 부분에서 부르크하르트는 개인의 발전과 어울리는 새로운 종류의 인정받는 방식으로 현대적인 명성을 들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의 목적이 명성을 얻는 것 즉 명예욕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지식과 철학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명성을 얻기 위해서 허영심의 악화된 형태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이 쓰여 있었다. 극단적인 수단이나 성공의 여부와는 상관이 없이 오로지 명성을 위하여 무모한 시도를 하거나 악의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였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타인에게 얼마나 회자 돼는가로 평가 받으려는 이들의 행동은 개성과 자신의 생각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의 발달에 아이러니하게 보여졌다. 2부의 내용중의 현대적인 조롱과 재치에서 풍자나 조롱 등으로 동시대의 유명인들을 깍아내리는 행위는 어쩌면 명성의 욕구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르네상스가 기본적으로 부활의 의미이듯이 3부 고대의 부활은 그 대표처럼 가장 양이 방대했다. 사실 우리가 르네상스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적인 개념인 부활이나 인문주의는 부르크하르트에게서 나온 것이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다루어진 고대의 부활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복고라는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다시 그 문화가 유행을 하고 현재에 그것을 모방하는 그런 형태가 아니라 과거를 그 시대에 복원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유적과 유물, 즉 잔존하는 문화 전반에 다. 무론 지금의 대학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유럽의 대학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됐는지는 놀랄만한 사실이었다. 사실 이런 대학의 발달이 고대의 부활과 엄밀하게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 이해는 잘 돼지 않지만 책에 쓰여있는 대학교의 수강 과목에서 라틴어의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면 고대어인 라틴어의 영향력이 상당했으며 그것을 능숙하게 구사하느냐 못하느냐가 교양의 척도였다는 것은 알 수가 있었다. 지금의 영어의 위치와는 조금 다르지만 결국 유럽 전역에 통하는 언어이자 지식인이라면 필수적으로 할 줄 알아야 하는 언어라는 점은 유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처럼 라틴어의 비중이 크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고대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동경이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고대에 대한 관심이 컸던 탓에 역사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부르크하르트는 '인문주의는 필연적으로 역사쓰기를 자기 몫으로 받아들였다' 고 쓰고 있다.고대의 부활을 주도하던 인문주의자들은 16세기에 몰락의 길을 걷는다. 내 생각에는 큰 이유 중 몇가지는 그들의 자만심과 결속력의 부족인 것 같다. 그들은 스스로들이 지식인이라는 자만심과 그러한 자만심으로 서로를 경계하고 명성에 피해가 가도록 하기 위해 서로를 비방하고 서로의 이론을 논박하였다. 물론 그들이 몰락하게 된 데에는 시대적인 배경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지식을 수련하는 목적이 처음부터 잘못 잡혀있던 스스로의 탓이 제일 클 것이다.이탈리아는 지리적인 조건과 상업상 교류의 필요에 따라, 이슬람과 비잔틴문화와의 접촉 가능성이 가장 많았고, 또 실제로 그런 교류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러한 조건을 바탕으로 그들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게 되었다. 여기서 세계란 지리적인 의미 뿐 만이 아니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자연 과학과 풍경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에까지 눈을 돌리게 된 것일 것이다. 풍경의 아름다움을 발견함으로서 미술이 발달하
"로마 제국 쇠망사"를 읽고200101534 백지현로마 제국처럼 멸망하고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나라도 역사에 다시 없을 것이다. 라티움 지방의 작은 공동체였던 로마는 일찍 귀족과 평민간에 계급투쟁을 종결짓고, 그 힘으로 반도를 통일하고 카르타고를 역사속의 한 줌의 재로 날려버리고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뒤, 세계제국으로 성장하였다. 도시공동체의 단결된 힘에서 나온 이러한 놀라온 발전은 모든 유럽인들의 선망이 되었으며, 유럽의 정신사에 중요한 한 줄기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 문화도 로마가 아니었으면, 그 영향력(오늘날까지 누리고 있는 지위와 영향력)을 이렇게 누리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토록 고도로 번성했던 제국의 멸망은, 역사가 뿐 아니라 신학, 문학, 경제학, 철학, 지리학, 생리학 등 여러 분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으며, 다양한 측면에서 그 원인이 제기된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상층계급과 하층계급 사이의 갈등, 비효율적인 재정 제도, 토지 소유의 집중, 군부 세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취약한 행정력, 심지어 강우량의 변화나 말라리아의 창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였다.18세기 유럽에서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 제국의 멸망 후 수세기가 지난 그 시점에서 사람들의 끊임없는 관심을 충족시켜줄 "로마 제국 쇠망사"를 집필한다. 물론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는 단순히 그 방대한 스케일 때문에 지금까지 고전적 성가를 누려온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문학 작품이나 다름없는 유려한 문장과 인물의 성격 묘사 등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컨대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 접하는 그런 딱딱한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 에드워드 기번 덕분에 오늘날의 우리는 긴 세월에 걸친 로마 제국의 역사를 죽어버린 과거로서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 숨쉬는' 과거로 접할 수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로 로마의 역사를 먼저 접한 현재의 시각에는 오래된 역사서란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그녀의지금까지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의 하나이다. 그리고 기번은 역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일차 자료, 즉 다른 사람의 연구 성과가 아닌 역사 기록 그 자체를 바탕으로 뛰어난 문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또한, 기번은 과거 사실에서 어떤 교훈을 이끌어 내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 태도로는 진부한 교훈 몇 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몰다도, 현재의 필요에 따라 역사를 무리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점들은 당시로서는 드물게도 역사에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이 책은 단순히 로마의 멸망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가 광대한 영역을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라티움 지방의 작은 도시공동체로 출발하여 로마는 400여년의 장구한 세월끝에 전 지중해세계를 포괄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 과정은 험난의 연속이었다. 공화정 초기에는 귀족과 평민간의 계급투쟁으로 로마는 분열의 위기를 겪어야만 했다. 켈트족의 침입, 동맹시의 반란, 카르타고의 한 세기에 걸친 장기전, 공화정후기의 정치적 분열과 혼란, 이 모든 것을 겪어내고 로마는 대제국으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로마발전의 가장 큰 원인은 한 사람의 영웅보다는 우수한 제도에 의존해 움직였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정치체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의 정치체계는 왕정과 귀족정과 민주정을 적절히 짜맞춘 것이다. 다시 말해 집정관, 민회, 원로원의 상호 보완적인 체계를 유지해 나갔던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건국 초기에는 왕정으로 강력한 체계를 유지해 나갔으며, 성장의 시기에는 귀족과 평민의 끊임없는 긴장과 갈등 속에서 조화를 유지하면서 점차적으로 성숙한 정치체계를 구현해 나갔다. 또한 로마는 잘 정비된 관료제와 상비군, 교통망과 법망을 갖추고, 제국을 유지해나갔다. 동방과의 활발한 상업활동과 제국내에서 이루어진 상업활동, 그리고 생산활동은 제국을 유지해나가는 필수적인 요소였고, 그들의 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이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오랫동안 대국으로 존재하고 유지된 국가는 아직 없었다. 로마가 강성함을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이 인류 문명에 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한다.사실 이 책에 쓰여진 기번의 입장을 전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다. 그가 제시한 멸망의 요인은 여러 세기 동안 서서히 진행된 로마 제국 쇠퇴의 다양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라고 보면 족할 것이다. 추론하자면, 로마 쇠퇴의 원인은 바로 로마 발전 원인의 쇠퇴임을 우리는 추론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발전 요인들은 로마 성장의 핵심적 요소로서 작용하였으나 이들 요소가 약화되고 변질되기 시작하는 것이 곧 로마 쇠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수한 제도가 더 발전적인 제도로 바뀌지 못한 채 잘못된 제도로 변경되고 귀족들이 모범을 보이지 않을 때일 것이다. 그 시기는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얻으며 세습왕정을 이룩한 시기로 보여진다. 얼핏 보면 로마는 이후의 5현제 시대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것 같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포에니 전쟁승리의 수확물로 무임승차한 것이나 다름없고 귀족들이 보여준 예전의 희생정신은 전쟁의 종결과 함께 사라지고 단지 자신의 부와 안일만을 추구하였으며 그 현상은 국가의 쇠퇴와 몰락이라는 결과를 부르는 것이었다.서론에 쓰여진 로마 제국의 발전과 쇠망에 관한 내용은 내 의견이라기 보다는 사료의 종합에 가까우며, 독서 후의 느낌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서의 내용과 생각을 다루기에 앞서 로마 제국의 흥망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서력 제 2세기의 로마 제국은 그 판도로서 세계의 대략 절반을 차지하면서, 가장 개화된 인류세게를 그 통치하에 두고 있었다. 이 광대한 제국의 변경은 고래로 그 용맹성과 군기의 엄정성으로 알려진 로마군대에 의하여 지켜졌고, 게다가 부드럽지만 강력한 법과 습속의 힘이 점처 여러 식민지의 통합을 굳혀나갔다대 황제들에게 위임하고 있었다.'길지 않은 문장으로 제법 긴 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명확하고 박진감 있게 요약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과거 사실의 기록이고 보면, 그것은 더 이상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역사가의 붓끝을 통해서만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때문에 바람직한 역사가의 태도란 무척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바람직한 역사가의 태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이 책은 기원 후 96 년 네르바 황제에서 시작하여, 5 현제 시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시기의 로마는 강대하고 융성한 시기였다. 그러나 그 시기가 로마 멸망이 시작되는 시기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달이 차면 기우는 것처럼 정점에 도달한 로마는 절정기를 맞음과 동시에 쇠락의 길을 걷게 돼는 것이었다. 그것은 역사속의 다른 광대했던 제국들도 마찬가지였다. 제도가 바뀌고 사람들은 나태해지고 인구가 증가하고 이민족의 침입을 받는 등의 일들 또한 멸망해가는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로마의 멸망에 대한 이 책과 같은 글들을 보면 서양인들의 로마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다는 것이 너무나 확연해진다. 그것은 아마도 로마가 지금의 서양의 제도적 문화적 기초를 만들어내고 퍼뜨렸기 때문일 것이다.이 책을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한 개인이 구할 수 있는 사료의 양이 이처럼 어마어마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마치 직접 보고 관찰한 듯한 세세한 설명과 1권 한권의 분량에도 여지껏 읽어본 다른 역사서와 비교되는 방대한 정보였다. 사실 그 많은 이름과 사실 탓에 한 장이 지날 때마다 제대로 기억하고 잇는 것이 얼마 돼지 않기도 했고 무의미하게 읽어내려 가기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쓰여진 역사 속에는 소설과 같은 그러나 소설의 허구성이 없는 사건들이 즐비했고 단순한 시간의 흐름의 기술로 보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빈약하게나마 내용을 머리에 주입시키며 읽을 수 있게 되었다.이 책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모하 잔인한 네로 황제, 용렬하고 야비한 비텔리우스 황제, 그리고 소심하면서도 냉혹한 도미티우스 황제 라고 기번이 묘사한 황제들의 약 80년 가량의 통치 기간 중에, 책에 쓰여진 그들의 행동들은 자신의 잔인성을 정의라는 말로, 그 잦은 변덕을 인애 라는 말로 포장하면서 인간의 불완정성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로마인들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들보다는 더욱 실용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서구 사회의 근간이 되는 법과 제도들을 만들어낼 정도로 합리적이었고, 여성의 대외적인 활동에 별다른 지장이 없고 이혼이 빈번했던 것을 보면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이 즐겼던 콜레세움의 잔인한 검투 경기 등을 보면 그들 사고 속의 잔인성 또한 엿볼 수가 있다. 그러한 유희들은 전쟁이 점점 필요 없어지고 전쟁을 빈번히 해오던 그들에게 대리만족과 자극을 주는 유희였을 것이다. 폭정을 일삼던 황제들은 단순한 생각에 인기를 얻기 위해 이러한 잔인한 유희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불완정성과 잔인성 속에서도 그들은 규율속의 자유를 지킨다. 로마적 규율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구체적인 각각의 상황 속에서 여러가지 힘들을 조화시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로마인들은 형식논리상으로는 부도덕하게 여겨질지라도 당대의 역사적 상황에서는 최선이었던 그런 선택을 위해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끊임없는 권력싸움과 제위찬탈 또한 한가지의 원칙속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강한 자에게 제국을 주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제위 계승은 왕왕 양자제도(당시 로마의 혈연에 대한 개념은 지금의 우리의 사과와 많이 틀렸던 것 같다. 일전에 읽었던 사생활의 역사란 책에서 보면 유산이나 여러 이유로 아기를 버리고 양자로 들이는 일이 흔한 일이었다. 제위를 세습하지 않고 양자를 들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예외적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자신의 아들인 코모두스를 후계자로 지명했는데 이는 그의 큰 실책이라고 평가받고이다.
콘라드가 말하는 인간 사회와 개인 윤리Joseph Conrad는 해양소설가 혹은 20c 영국소설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자기가 아프리카 대륙에 대해서 각별한 꿈을 꾼 적이 잇다고 회고한다. 콘래드가 아프리카의 콩고로 가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선원으로서 일자리를 얻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가 1890년에 아프리카 콩고 강에서 기선의 선장이 된 것은 현실적인 필요와 오랜 꿈이 어우러져 성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아프리카 체험이 단순한 생업이나 꿈의 실현으로만 끝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그의 일생일대에 영향을 준 대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서 그는 식민주의의 잔학상을 목격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이질과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 런던으로 돌아왔다.콘라드의 작품은 주제적인 면에서 보면 작품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와 비관론적인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여러 요소가 복잡하게 교차되고 있어서 이른바 양면가치를 지향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Conrad에게 있어서 인간의 양면성은 기본적인 두가지 상반된 면을 의미한다.그 하나는 인간의 극기적 성실성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내재악이다.한편으로는 강인한 극기정신과 성실성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정의관에 비추어 볼 때 많은 등장인물들은 쉽게 이해되지않는 불운과 비극적 종말을 맞고 있으며 그러한 파멸로 이르면서도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각성과 더불어 선택의 자유를 분명히 하며 자아실현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일면을 보여준다.Kurtz는 개성적이고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이다.그는 꿈과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스스로의 인생행로를 선택했으나 그가 접한 부조리한 현실에 직면해 타락하고 죽음에 이르러 좌절과 고뇌, 소외와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Conrad는 Kurtz를 통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부조리속의 존재이기 때문에 현실과의 대결에서 그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나타내준다. 아울러 그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제시해 준다. 이러한 Conrad의 방법은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하나의 시도로서 인간의 고뇌와 절망을 다루는 실존주의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실존주의는 그 자체가 개인성과 경험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생(生)의 철학’이나 현상학의 계보를 잇는 이 철학 사상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문학이나 예술의 분야에까지 확대하여 오늘날에는 세계적인 한 유행사조가 되었다. 실존주의 철학을 초기에 수립한 야스퍼스의 말에 따르면 실존이란 ‘내가 그것에 바탕을 두고 사유(思惟)하고 행동하는 근원’이며, ‘자기 자신에 관계되면서 또한 그 가운데 초월자(超越者)와 관계되는 것’이지만, 한편 그러한 실존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실존과의 관련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궁극의 진리는 ‘좌절하는 실존이 초월자의 다의적(多義的)인 언어를 지극히 간결한 존재확신으로 번역할 수 있을 때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한다.인간은 삶의 본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죽을때까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자신을 초월하려는 의지와 독자적인 의식이 개입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생존하는한 자기자신과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와를 일치시킬 수 없게 된다. 인간은 자기가 가졌던 꿈과 이상의 허구를 깨닫게되고 결국에는 자기존재의 실체를 인식하면서 실존적 인간으로 형성되어간다.이런 맥락에서 Kurtz는 실존주의자들이 정의하는 실존적인물과 유사성을 지니고있다고 하겠다. Kurtz는 독자적으로 의식하고 행동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지향하지만 어쩔수 없이 자신이 가지는 부조리한 내적요소와 그 부조리한 면을 노출시키는 촉매제라고 할 수 있는 외적요소인 아프리카라는 고립된 환경과 추악한 정치상황속에서 인간의 나약성과 비열성을 보이게되며 좌절과 허무를 경험하게 되면서 자신의 실체를 깨달아가기 때문이다.Heart of Darkness는 인간의 이상과 그 좌절의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서 인간내면의 부조리와 인간의 고립문제가 그 주된 주제중의 하나인 것 같다. Conrad는 화자인 Marlow를 내세워 Kurtz의 삶의 실상을 통해 인간실존에 대한 인식을 느끼도록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자서전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작품의 형식은 콘래드라는 작가가 어느 날 저녁 몇몇 친구들과 함께 어느 유람선 위에서 말로라는 선원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옮겨쓴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말로의 이야기는 실은 콘래드의 체험담이나 다름없다.이 소설에서 서술자 말로가 들려주는 체험담의 줄거리는 이러하다.말로는 어릴 때부터 알지 못할 매력을 느껴왔던 오지에 가보고자 그곳에서 무역업을 하는 상사에 선장으로 취직을 하게 된다. 주재소에 도착한 그는 상류로 올라가면 빼어난 상아 수집 실적을 자랑하는 커츠라는 인물을 만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배가 상류의 주재소에 다가갈수록, 말로는 주재소나 상아와 같은 목적보다 커츠만이 자신의 항해의 목적임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주재소에서도 그는 커츠가 죽기 직전 며칠간만을 그와 함께 할 수 있을 뿐이다. 현지의 회사원들의 평을 들으며 몇 달에 걸쳐 콩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말로는 아직 본 적 없는 주재원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어느새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커츠는 회사를 위해서 가장 능률적인, 따라서 원주민에게는 가장 잔혹한 상아 수집상이었다. 처음 아프리카에 나왔을 때에 그는 모종의 도덕적 이념을 갖추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식민지에서 수탈에 몰두하는 동안 정신적 타락을 겪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자기의 탐욕을 충족시키는데 있어서 자제력을 상실한 나머지 인격적으로도 심각한 결함을 보이게 된다. 말로는 이러한 커츠에게서 도덕적 충격을 받지만 말로의 연대의식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커츠의 믿기 어려운 타락에도 불구하고 그를 미치광이라 생각하지는 않으며 그에게 미쳐버린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영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이처럼 말로는 콩고의 백인 사회에서 심각한 도덕접 고립을 자초하면서까지 커츠와 자기를 동일시하게 된다. 이는 그가 일종의 악몽을 선택햇음을 의미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자발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지옥을 체험해 본 사람이 현세에 돌아올 경우 현세를 보는 그의 눈에 필연져으로 변화가 잇을 수 잇듯이, 악몽의 과정을 겪어 본 후에 말로는 새사람이 되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말로는 커츠와 자기를 동일시함으로써 커츠의 영혼이 겪은 모험을 대리 체험하게 되고, 커츠에게서 찾아볼 수 잇는 도덕적 결함은 곧 자기 자신의 결함일지도 모른다는 인식에까지 이른다.두 사람 사이의 교감은 말로가 커츠의 죽음을 지켜보는 자리에서 완벽해진다. 커츠는 ,무서워라! 무서워라!>라고 속삭이며 숨을 거둔다. 말로는 이 속삭임을 커츠 자신의 영혼이 이 세상에서 겪은 체험에 내린 심판이라고 여기며, 그가 삶의 의미에 대해 자기 나름의 궁극적 깨우침에 도달했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한다.말로에게는 커츠와의 만남이 어떤 Heart of Darkness와 같은 존재와의 만남이엇음이 분명하지만, 그 만남을 통해서 말로는 자기의 삶을 조명하는 한 가닥의 빛과 거기 수반되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돌아온 말로는 아프리카를 향해 떠날 때의 말로가 아니다. 이는 커츠라는 인물과의 만남이라는 체험의 절정을 몸소 겪고 나자 마자 어둠 속에서 일종의 빛을 본 듯이 만물의 의미가 그의 눈에 환희 드러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의 백인 사회로 돌아온 그가 그곳에서 안전하게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멸의 눈초리를 돌리면서 그들의 자기 인식 수준을 얕볼 수 있는 것도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