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민 규최근들어 북한에 관한 이야깃거리가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특히 "공동경비구역JSA"라는 영화에서도 그렇듯이 그 흥행이 북한에 대한 어떤 호기심이라는 이유도 배제하진 못할 것이다. 그런 사회적인 관심들의 이유로,단지 REPORT라는 개념을 떠나 최창준의 "북녘땅북녘사람들"이란 책은 새로운 북한의 이미지를 갖게 해 준 책이다. 생각하면 우습다.우리 나이또래의 친구들은 초등학교시절 유행했던 똘이장군등의 만화영화에선 북한사람들은 모두"늑대(?)"로 그려졌었기 때문이다.그런 고정관념이야 모두 잊혀진지 오래지만 책의 중간중간에 나오는 사진에찍힌 인물들의 표정에서 괜시리 죄를 지은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처음 평양에 도착했을때의 지은이는 평양거리를 둘러본뒤의 느낌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말이있다."청결, 단순, 소박, 고요, 정적, 질서"등의 수식어들이다.잘 짜여진 계획도시의 모습에서 느낀점일수 도 있지만, 도로의 반쯤되는 보행자를 위한 인도, 차들이 없어도 신호를 지키는 운전자들 "남조선사람들이 무섭지 않아요?"라고 묻더라는 북측안내원의(아내)등의 모습에서 찾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특히나 "자주""민족"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것 같은 그들에게서 우리나라의 또 다른 모습들을 볼수 있는 점이 있었다.김구, 김규식선생등이 함께 회의를 했었다는 장소.. 그리고 그 옛날 흥선대원군의 척화의 업적중 하나인 셔먼호사건등의 장소에서의 모습들은 많은곳에서 우리들(남한사람)의 눈에는 진기할 정도의 정성에 이상하였다하니 그네들의 민족적자존심이라고 해야하나?.자본주의 사회와 공동주의 사회의 차이점이겠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눈에는 그 자존심이 이상하리 무엇을 위했던 것인지 여하튼... 북한의 소위 인민들이란 사람들이 생활 때문이다.상위층을 제외한 시골에서의 삶이 그렇다.그 숨겨진 모습이란 것이 영양실조에 걸려 젓가락 같은 다리를 내놓고 눈을 뜨지도 못한 한 아이가 머리를 꼬고 손가락을 빨고 있다고 상상하는 그런 내용이란 것이다.최근 북한에 관한 자료...최근 3년동안 240만명이 굶어 죽었으며,10대들의 일부는 키가 평균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에서도 그렇듯이...평양거리의 청아한 모습과 비교할 때 단지 미지에 대한 북한동경론에만 그쳐선 안될것이란 생각이든다. 지은이의 여행이 극히 제한되고 보고들은 것이 북한에 대한 일부였겠지만 북한은 아직도 훔쳐본 잘린 필름같은 그네들의 모습에서 북한의 현재의 실정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북한은 달라지고 있다. 그 시점에 있는 북한을 다녀와서 적은 이책에서 내 나름대로의 정리를 해 본다.1.문화(예술,유적지..)2.사회(생활면,종교생활,맛거리등..3.내 생각1. 문화예술은 배고픈 것이다?글세 그런말들이 북한에도 통할지...그곳은 예술육성에 중점을 두고 처우가 파격적이라고 한다. 인민배우,공훈배우등도 그런 차원의 칭호라고 하니 예술이란 것에 문외한인 내게도 신기하기만 했다.우리나라는 음...렛슨을 하기위한 과외비,중요기술을 가진 인간문화재등의 우리대우는?약간의 외곡이 있는 우리의 예술에 대한 생각에 비해 그들의 예술에 대한 직찹같은 것은 대단한 듯 생각된다.얼마전 서울을 방문한 소년소녀예술단이나 교예단의 경우가 그렇구나 싶었다.아쉬운 것은 그에반해 그 통로가 너무 좁아보인다. 북한에서의 예술작품들은 대부분 미술대학이나 같은 거창한 곳에서 북한의 미술화등이 나오는게 모두라고 하니 생각해본 것이다. 아직까지 북한이 너무 힘들기 때문일까?란 단순한 생각도 해본다.유명한 작품이라곤 하지만 의 12x26m크기의 그리고 그곳 전시실에 있는 그림들도등의 색깔이 있음직한 그림들이라고 하니..글쎄....너무 미술이나 그외의 창작에 대한 자유가 없다는 느낌이다. 미술등이 작품엔 아는 바가 없지만 적어도 창작이라 함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외부의 간섭없이 표현할 때 그것이 창작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사회분위기인가? 대부분이 주체사상과 관련된 작품이다. 책을 읽는 거의 대부분에서 그런 모습이 있었다. 사진속에 건물엔 원래 그렇다는 듯이 찬양문구가 있다.(그리 이상하지도 않지만...)문학이란 언론등과 같이 일반대중들의 가치관을 잡아나가는 대중등의 생각이라 할 수 있지만, 북한이 자랑하는 전시관등에는 아직 주체예술(?)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이 즐비하다.점점더해가는 남북간의 교류에 문학작품등도 함꼐 무언가 바꿀수 있는 것이 있다면 생각해봤다.... 그렇지! 아마도 북한의 김정일에게간 "공동경비구역JSA"등이 좋은 예일수 있겠구나!!유적지나 평양의 건물배치에서 느낀점인데 북한엔 글쎄...예전부터 꽤 중요하게 생각해서 였을까? 풍수란 것에 꽤 신경을 쓰는 듯하다.평양의 건물배치는 주체사상탑을 중심으로 대동강을 따라 등의 광장,중요건물들이 일직선상에 놓여있다한다. 그것들이 모두 대동강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니... 그들이 성역화작업을 하고있는 왕건릉, 단군릉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그곳의 고유한 지리적이점를 살리기 위해 재반시설등의 작업등을 최대한 줄이고 원래의 멋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이야기한 것은 우리의 어떤면과 비교할 때 상대적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북한에서의 거의 모든 중요문화재(공민왕릉,개성 선죽교,박연폭포,구월산의 월정사,온달과 평강공주의 무덤인 동명왕릉)가 천년된 은행나무와 함께 서있을수 있다는 것이 그런 상대적인 면일 것이다.2. 사회북한에 관한 (특히 보통사람들에 대한)어떤 기사를 읽어보아도 그리 좋은 얘기는 아직 없는듯하다. 우리나라도 따지면 지금은 비슷하지만...하지만 느낄순 있다.분명 북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대동강 주변엔 저녁만 되면 데이트를 하는 남녀가 보이기도 하고 비록 대다수가 외국인이긴 하지만 전쟁전 교황청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노신부가 평양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기도 한다. 그리고 책을 보면서 한가지 재밌었던 것은 사람들의 옷차림이었다.대부분이 6,70년대를 봄직한 패션이다. 대학생들의 옷은 상의 흰색와이셔츠,저고리에 검정색 바지,치마였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이미지가 괜시리 정답게만 느껴진다. 그런 것 같다. 여지까지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몰랐던 것 같다. 서로와 너무나도 비슷하고 잘 어울리는 것들이 사상,정치적인 차이로 모든 것이 대변되어져 왔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그것이 가장 큰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그런것들은 너무나도 많은곳에서 나타난다. 평양에서 유명한 음식점인 옥류관냉면, 평양냉면과 더불어 평양 단고기집(?)이 있었다.방문단의 글엔 "보신탕을 좋아하진 않지만, 부위별로 나온 음식에선 실제로 단맛이 나왔다"고 한다. 그것이 당시의 모두들의 의견이라니... 역시 먹는덴 못 속인다고... 별반 이곳과 차이가 없는 가 보다.사람이 지내는 것이 똑같지만, 그곳은 우리와 더욱 그런가보다. 김치를 즐겨먹고,마을에서의 축제엔 농악이 울리고...영락없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당시의 아쉬운 점은 그런 우리의 모습들이 시골로 갈수록 힘들다는 점이었다.위에서 잠시 이야기 한 것처럼 실제로도 그렇다는 것을 직접북한을 방문했던 사람의 책에서 그 내용을 발견하니 안타카울 뿐이다. 북한에서의 교육도 그런 편인 것 같다. 평양 중구역의 이란 곳을 방문했을때의 일이라고 하는데... 도서관의 책의 지질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꽤 괜찮은 편이라니...다소 낭비에 젖은 나의 모습과 광고지로 좋은 것을 낭비하는 모습이 좀 부끄럽다.
1. 서론약 1년 전 쯤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검도 동아리에 낯선 두 명이 찾아왔다. 11월에 있을 학교 내 연극 발표회에서 『羅生門』을 하게 되었는데 극중에 나오는 검술을 위해 검술 몇가지만 지도해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당시 회장으로 있을 대여서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 고마워하면 1주일쯤 지도를 받았지만 당시 나는 내심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느낌도 받았다. 명색이 일문과에 다닌다는 학생이 『羅生門』이 어떤 소설인지도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다니 말이다. 사실 후배들이 『羅生門』에 대해 물었을 때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그때 소설과 연극을 모두 보게 되었다. 그때는 소설을 다 앍고 난 후 소설의 느낌이 어둡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은 수업시간에 설명을 듣고 해소가 되었다.이 소설의 탄생배경에는 작가의 염세주의와 회의주의, 허무주의가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芥川는 자신의 생활체험을 고백하지 않는 작가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다음의 여러 가지 이유에서 볼 때 『藪の中』에서는 이이야기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藪の中』는 다 알다시피 『今昔物語』에서 그 소재를 가져왔다. 하지만 여기에 더하여 당시 芥川가 처했던 생활 속의 고민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당시의 某夫人은 芥川의 표현에 의하면 利己主義와 동물적 본능이 극히 강한 여성이며, 그러한 여성과의 애욕은 芥川에게 상당한 심적고통과 타격을 주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芥川가 이 여성을 특히 南部修太郞와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 좀더 심하게 말한다면 삼각관계에 있어서 芥川와의 이 여성과의 정사가 앞에 있었고, 南部와의 관계가 뒤에 일어났다고 하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 결국 芥川는 이것에 심한 굴욕감을 맛보았음에 틀림없으며 그것이 또한 그의 자살의 한 요인이 되었으리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芥川의 고뇌의 깊이를 헤아려 볼 때 『藪の中』를 집필한 시기였던 大正 10년말의 심한 그의 신경쇄약증세와 이 사건과는 확실히 관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芥川은 여성의 정조관념과 성욕에 대해서 어떤 흥미와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이유와 당시 芥川가 소재를 얻었다고 생각되는 『指輪と本』라든가 『月光の道』에서도 『藪の中』와 비슷한 장면이 많이 발견된다. 이러한 증거로 볼 때 芥川가 『藪の中』를 쓴데에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어떠한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아마 앞에서 설명했던 某夫人과의 관계와 자신에게 상처를 안긴 에 대한 고발의 폭로가 아닐까 생각된다.2. 본론이 이야기는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네 사람의 증언과 실제 사건의 인물 세 사람의 증언으로 작품이 이뤄져있다. 우선 네사람의 증언에서 살펴본 진실은 무엇인지 알아보고 사건의 외적인 진실을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처음 등장하는 나무꾼과 뒤이어 스님, 검사, 眞砂의 어머니가 진술한 내용을 조합해 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실을 일 수 있다.가슴에 칼을 찔린 武弘이라는 사내가 덤불 속에 있었고 주위에는 격투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빗 하나와 새끼줄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처음에 이 사내는 부인인 眞砂와 말을 타고 여행하고 있었으나 처의 행방은 모른다. 말과 武弘이 가지고 있던 활과 화살은 多襄丸라는 유명한 도적이 가지고 있었다.여기까지가 이 사건을 풀어나갈 실마리 역할을 하게 된다. 이제 본론으로 이 사건의 주인공 세사람의 진술이 나오게 된다. 자가는 여기서 독자의 편의를 제공한다는 단순한 측면을 넘어서 이미 독자에게 결과를 유추하라는 암시로써 네사람을 먼저 등장시피고 다음으로 세사람의 진술을 보여준다는 점이 이채롭다. 대부분의 평론이 그렇지만 나도 이 분류에는 동의하는 바이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상식적으로 범인으로 지목 받고 있는 多襄丸를 먼저 증언하게 하여 독자로 하여금 센세이션과 함께 자신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그럼 多襄丸의 증언을 간략하게 살펴보면'처음에 그 사내를 죽인 것은 나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고 자백하면서 이어서 내가 그 부부를 만난 것은 어제 오후 지나서였다. 부부를 한번보고 나는 여자를 빼앗을려고 결심했다. 남자를 속여서 쓰러뜨리고 나무에 묶고 난 후 여자를 범했다. 그대로 떠날려고 한 즉, 여자가 팔에 매달리며 두 사내에게 수치를 보인 것은 죽기보다 괴롭다. 그러니 어느 쪽이든 한사람은 죽어 달라. 살아남은 사내와 살겠다고 했다. 나는 그 여자의 남편의 새끼줄을 풀어 주고 칼로 싸윗다. 나는 그 사내의 가슴을 찔러 쓰러뜨렸다. 여자는 우리가 싸우는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칼과 말을 빼앗아 도망쳤다.단지 도적多襄丸의 증언만을 듣고 보면 전통적인 유교사상에 깃들어져 있는 우리들은 '저런 나쁜놈이...'하며 한편의 강간범의 이야기정도로 흘려듣기가 쉬다. 그리고 호기심 많은 청소년기의 학생이라면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또는 쓸데없는 상상을 연상케하는 주제 제시 따위로 치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라는 거장은 자신의 작품을 그런 도구로 전락하게 놔두지는 않았다. 뒤이어 두 부부의 진실을 듣고 난 후에 더욱 구체적인 주제를 살펴보자.多襄丸의 고백다음에 나온 眞砂의 고백이다.나는 남편의 눈앞에서 욕을 당했다. 욕을 당한 후 남편을 보자 남편의 눈에는 나를 경멸하는 차가운 눈빛이 있었다. 그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실신해버렸다. 한참 뒤에 정신이 들었지만 나를 범했던 사내는 떠났는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묶인 채로 있는 남편에게 함께 죽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면은 에게 차가운 경멸의 눈빛을 한채 '죽여라'고 한마디했다. 나는 남편의 가슴을 단검으로 찔렀다. 그리고 서 죽은 남편을 묶은 새끼줄을 풀고 남편의 뒤를 따라 죽으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죽을 수 없었다.그리고 소설 중 마지막으로 등장한 죽은 武弘으 死靈의 고백이다.도적은 부드럽게 아내를 달랬다. 아내는 '그러면 남편을 죽여주세요'라고 외쳤다. 그러자 도적은 아내를 차 쓰러뜨리고 '이 여자를 어떻게 할까? 죽일까? 아니면 살려줄까? 대답은 다만 고개만 끄덕이면 된다. 죽일까?' 라고 나에게 물었다. 내가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아내는 도망쳤다. 도적은 떠나기 전에 나를 묶은 새끼줄을 한곳만 끊어 주었다. 나는 새끼줄을 풀고 아내가 떨어뜨린 단검을 주워 들고 나의 가슴을 찔렀다.이세사람의 증언을 통해서 확정된 것은 부인이 강간당했다는 사실 만이다.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전후의 사건을 유추함과 동시에 세사람의 심리적 변화를 읽을 필요가 있다. 먼저 나는 이 책을 읽고 그리고 쿠로자와 아키라감독의 라쇼몽을 본 뒤에 유교사상에 젖은 대한민국에 사는 일반적인 남자 대학생으로써 多襄丸에 대한 분노와 동시에 武弘에 대한 일종의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아울러 '내가 武弘이라면...'이라는 순간적인 가정도 해보았다. 이후에 진술하는 나의 글도 이런 맥락에서 쓴 것이다.우선 주지할 것은 이 세사람은 3각형의 구도로써 부부사이의 직선 위에 多襄丸라는 또 다른 점을 지나는 모양으로 그려 볼 수 있다. 즉 두사람의 부부관계를 먼저 살펴보고 도적과의 관계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武弘의 심경의 변화를 먼저 살펴보면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의 부인이 또 다른 남자에게 범해졌다면 누구나 심한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그 충격이란 두가지로써 부인에 대한 심한 배신감과 죄책감이다. 타인에 의해 강간당하여 당시 모든 사회에 퍼져있던 정조를 지피지 못하여 자신만의 여인에서 타인과 공유해야 하는 여인으로 바뀌면서 부인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고 한편으로 부인을 도적으로부터 지키지 못한 자신의 무력함에서 오는 죄책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