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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리스토텔레스의 개연성
    사실보다 더 사실다운 사실이란...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을 인간 본성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가장 모방적이면 모방을 통해서 세상을 배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이란 단순히 사물의 껍질을 있는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실체와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의 대상은 자연을 말한다. 즉 자연의 본질을 언어를 통해 모방하고 재연하는 것을 시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모방의 대상인 자연을 2가지 세상으로 분류해서 바라보았다. 하나는 지상세계로 사물의 생성과 소멸이 존재하는 세계 이며 다른 하나는 천상의 세계로 모든 것이 무한히 반복되는 세계를 뜻했다 예를 들면 해가 뜨고 지는 일들을 말한다. 그가 모방하려는 세계는 바로 이러한 본질적인 세계 즉 개연성을 가진 세계를 뜻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인이란 발생했던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할 수 있었던 종류의 것, 다시 말해 개연적이거나 필수적인 것으로서 있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을 묘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시인과 역사가의 차이란 전자가 있었던 일을 묘사하고 후자가 있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을 묘사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므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며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역사의 진술이 성질상 개별적인데 반해 시의 진술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진술이라는 말로써 내가 뜻하는 것은 그러한 혹은 그러한 종류의 사람이 개연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말할 혹은 행할 것에 관한 진술이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시인은 보편적인 자연의 본질을 모방해서 글을 쓰기 때문에 역사라는 개별적인 것에 비해서 시가 훨씬 많은 자연의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았다.잘 만들어진 한편의 소설이 허구임을 알면서도 사실적이다 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개연성에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일보다 훨씬 사실적이다 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 또한 같을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글에서 “개연성이 있되 불가능한 일이 개연성이 없되 가능한 일보다 항상 선호된다. (A likely impossibility is always preferable to an unconvincing possibility)” 라고 이야기 한다. 그 것은 어떠한 일련의 사실이 그럴 수 있었거나 마땅히 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 모방은 특정 공간에서의 일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닌 그의 개연성의 개념에서 과거, 현재, 미래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났고 또 일어날 수 있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즉 사실보다 더 사실다운 사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개연성이 단순 실현가능성, 인과관계에 기반 된 실재하는 모든 것을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다. 사실 현실의 모든 것은 일정한 개연성에 의한 것 들이다. 하지만 이 개연성은 작품 속의 그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높은 문학의 양식으로 생각했던 비극에서 우연에 의한 사건의 전개를 용납하지 않았다. 인물들의 말과 행동들은 인과관계 형성하여 움직이며 모든 사실들은 긴밀히 연결되어 잘 짜여진 전체의 형식을 이룬다고 하였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 합당한 인물의 조건을 첫째, 주인공은 행복에서 불행으로 떨어져야 한다. 둘째, 주인공이 완전무결한 인격자이어서는 안 된다. 셋째, 주인공의 몰락은 부덕과 천박한 욕망에 연유되어서는 안 된다. 넷째, 주인공의 신분은 일반 서민이 아닌 고귀한 가문 출신이어야 한다.’라고 하는 규칙을 이야기한다. 그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방하는 세계는 개연성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며 각자 분리된 부분들이 전체의 체계에 통합이 되고 있다.
    인문/어학| 2008.05.03| 2페이지| 무료| 조회(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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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나리자의 진실 감상문
    2006년 프랑스 르부르 박물관에는 820만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했다. 그들 중 절반이 모나리자를 감상하려고 르부르를 찾았다. 모나리자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으로 불리는 르부르 박물관의 심장으로써 전시장 가장 넓은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도난사건이후 특별 관리를 받고 있다.그림 모나리자의 최초의 기록은 1550년대 한 책자에서 발견된다. 책은 조르지오 바사리가쓴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전기 이다. 이 책에 의하면 모나리자의 모델은 피렌체 상인의 아내이며 이름은 리자이다. 모나리자에서 모나는 부인이라는 뜻으로 리자부인을 뜻한다. 바사리의 기록에 의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03년 피렌체에서 모나리자를 만났다고 한다.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지금도 도시전체가 하나의 문화 유적지 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렌체의 빈치라는 지역에서 태어났고 생의 대부분을 밀라노와 프랑스에서 지낸다. 피렌체에는 다빈치의 흔적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피렌체의 한 수도원에서 모나리자가 그려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도원 벽에는 다빈치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벽화가 있다. 다빈치 그림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다른 쪽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특유의 새 그림이 발견되었다. 비상하는 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서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곳 작업실은 외부와 단절되어있어서 그림에 전념할 수 있었을 것이다.그는 1503년 18년간의 밀라노 생활을 청산하고 피렌체로 돌아왔다. 이때 이미 최후의 만찬 등을 통해서 최고의 경력과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모나리자는 새롭게 미술의 소비자로 등장한 피렌체 상인들의 자화상이었다. 르네상스시기 미술은 세력을 과시하고 시민을 교화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도시국가 이었는데 금융과 섬유산업이 발달한 피렌체가 가장 발달하였다. 점차 도시규모를 뛰어넘는 거상과 금융가들이 등장하였다. 당시 피렌체의 통화가 오늘날은 달러의 역할을 할 정도로 피렌체의 발달은 세계를 압도 하는 것 이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제2의 로마시대를 꿈꾼다. 이를 선전할 수 있는 미술의 필요 또한 말할 것도 없다. 각종 조합들이 청동상을 주문하는 것만 보아도 예술 후원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또 다른 후원그룹으로 상인계급이 등장한다. 대표적 예가 메디치 가문이다. 피렌체에서 가장 큰 은행을 물려받고 예술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사람이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코시모 데 메디치이다. 그리고 그의 손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가 있다. 이들은 상인연합과 달리 여러 분야를 후원하였다. 로렌초에 이르러 후원이 더 활발해진다. 그는 예술 후원을 정치적으로도 잘 이용했다. 즉 정쟁을 좋아하지 않고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1481년 로렌초의 소개로 밀라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도착한다. 이후 18년간 밀라노의 통치자로부터 후원을 받게 된다. 밀라노의 통치자는 다빈치를 궁정화가 군사 전략가 등으로 임명한다. 그는 다빈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구 후원하였다. 최후의 만찬 같은 걸작이 밀라노에서 태어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1499년 밀라노가 프랑스에 침공을 받으면서 그의 열렬한 후원자를 잃는다. 다음해 그는 피렌체로 돌아간다. 그가 떠나 있는 동안 피렌체도 많은 변화를 겪는다. 메디치 가문을 몰아내고 예술 문화를 금기하며 신권정치를 하던 한 수도사가 처형되었다.이로써 피렌체 예술의 암흑기가 끝나고 도시의 영광을 재현할 벽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가장 뛰어난 화가 두 명에게 벽화를 그리게 하려고 했는데 그들 두 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였다. 두화가의 대결은 피렌체의 자부심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계획은 흐지부지된다.그러나 교황의 부름으로 피렌체를 떠나는 미켈란젤로는 다비드 상을 피렌체에 남겼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기존의 해석을 뒤엎는 것이었다. 그의 다비드는 더 이상 초원의 목동이 아니었다. 그 무렵 레오나르도 다빈치 또한 신흥세력이던 상인층에게 초상화를 의뢰받은 것이다. 이는 어떤 변화가 찾아오고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당시 초상화는 교황이나 추기경 권력자의 전유물이었다.그렇다면 모나리자의 가문은 어떠했을까? 피렌체의 고문서 보관소에는 그 당시 바사리가 언급한 모나리자의 남편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는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 이었다. 그는 성공한 실크 사업가였다. 그러나 메디치가문과 같은 유력가문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는 귀족과의 연결을 위해 몰락한 귀족인 리자와 결혼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신분의 상승을 꾀했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리자의 가문 또한 초상화를 주문할 정도는 아니었다.전문가들은 2가지 가능성을 얘기하는데 그중하나가 귀족가문인 리자의 아버지와 공증인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아버지가 서로 아는 사이였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는 산티시마 아누치아타 성당이 그것이다. 리자의 남편은 성당에 실크를 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알게 되고 사랑하는 아내를 그에게 소게했을 수도 있다.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초상화를 그릴 때 내면적인 부분을 많이 따진다. 그가 그린 여성들은 단순히 지체 높은 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사벨라공작부인은 여성으로 유일하게 예술을 후원한 여성이지만 다빈치는 그에게 스케치 한 장만 보냈을 뿐 초상화는 그리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공작부인데신 선택한 모델이 모나리자였다.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초상화는 기존의 것과 다른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 혁명의 중심에 모나리자가 있다. 모나리자에는 윤곽선이 없다. 안개와 같이 흐릿하다는 뜻의 스푸마토라는 기법이다. 이기법의 비밀은 2005년 모나리자의 정밀 검사에서 드러났다. 그림의 제일 밑바닥에 있어야할 밑그림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그 시대의 기법과는 완전히 다른 기법이었다. 선을 그리고 색을 채우는 방법이 아니라 얇은 붓으로 덧칠해나가는 기법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 기법을 모나리자 이전부터 연습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초기 작품들과 후기 작품들을 정밀검사 해보면 밑그림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또 다른 특징으로는 콘트라토스토자세를 들 수 있다. 콘트라토스토자세란 정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생동감을 주는 기법이다. 그림의 역동적인 이미지는 기존의 초상화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기존의 초상화에서는 모델들의 측면을 그려서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일률적이었다. 이 두 가지 기법은 다빈치가 일관적으로 추구해온 기법이다. 이런 특징은 최후의 만찬에서도 나타난다.모나리자의 혁명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모델의 뒤쪽으로 매우 복잡한 배경을 그려 넣는데 이는 인물의 이미지에 매우 큰 작용을 한다. 모나리자의 배경이된 자연은 섬세하면서도 유려하다. 마치 인물의 분신처럼 묘한 밀착 감을 준다. 이는 여자의 몸과 자연이 유사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또한 인물의 감정과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미소를 사용한다.
    독후감/창작| 2008.05.03| 3페이지| 무료| 조회(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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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톤의 시인추방
    플라톤은 근본적으로 철학자이다. 그는 공화국(Republic)에서 정의로운 국가의 전망을 철학자의 의해 통치 받는 철인정치가 행해지는 국가를 제시하였다. 그는 이 전망에서 국가의 질서 유지를 위해 시인에 대한 통제 (시인의 추방)를 주장하였다. 그는 호머가 최상의 시인이며 독창적인 비극작가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어린 시절부터 호머를 경외하고 사랑해 왔으며 호머의 시구절을 외우며 시를 사랑했다. 하지만 자신이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시를 규제의 대상으로 삼았다. 플라톤은 시인이 아닌 철학자였기 때문이다.플라톤은 기원전 427년아테네에서 출생했다. 스승 소크라테스에게 그가 사형 당할 때 까지 가르침을 받다 소크라테스의 사형 후 동료들과 메가라에 망명, 이탈리아와 이집트를 여행하였다. 시케리아에 머물던 중 과두정치를 비난했다는 죄목으로 노예로 팔리게 되고 키레네 사람들에게 구출되어 아테네로 돌아온 후 아카데미아 학원을 건립하여 후학양성에 힘쓰다 기원전 347년 80세로 생을 마감하였다.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플라톤이 시를 사랑하면서도 시인의 추방을 주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첫째는 시인은 이성이 아닌 감정에 호소한다는 이유이다.플라톤이 말하길 철학자들은 이성에 호소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철학자들이 말하는 이성은 사물에 숨겨져 있는 본질을 볼 줄 아는 능력이다. 순수한 이성을 통해서만 진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시인들은 이성이 아닌 감정에 호소한다고 보았다. 어찌 보면 조금은 우매할지도 모를 대중에게 시인들은 얕은 꾀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리란 사물속에 내재하는 본질적인 것으로 순수한 이성을 통해서만 포착, 파악된다. 재미 없을지도 모르는 이성적 통찰력 보다는 요즘 말로 말하자면 멜로 드라마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처럼 감정에 호소하는 이야기들이 대중들에게 더 관심을 받고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을 포함한 예술가들은 대중들의 취향에 합하여 자신의 이론을 알리려 하는데 이것이 대중들의 이성이 아닌 감정에 호소한다는 것이다.하지마나 플라톤의 생각은 이런 감정에 호소하는 예술을 한번 잘못 배우면 평생 간다는 점을 걱정하였다. 그는 어린이들은 밖으로부터 영향을 받기가 쉬우며 일단 받아 들인 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되는 성향을 지녔다고 말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나라 속담에도 볼 수 있듯이 어린시절 익혔던 버릇은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고칠 수가 없다. 태어나서 처음 가정이라는 사회속에서 생활하면서 1차적으로 가정교육을 받는다. 자신의 부모를 보고 성 역할을 인지하고 옳고 그른 일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학습하게 된다. 이 시기 가정의 교육은 매우 중요하며 어렸을 때 자신의 부모에게 듣고 자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중 그 아이의 인격 형성을 이루는 데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임신 때부터 자녀 교육을 위하여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생각을 하는 태교의 이유도 자녀 인격형성을 위해서 부모들이 노력하는 것이다. 사리 구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좋은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모두 다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이런 어린 아이들이 듣는 첫 이야기는 아이들의 도덕적 함양에 최상으로 적합하도록 명확히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플라톤은 시인이 어린이에게 신으로부터 고약함이나 불행이 유래한다고 가르친다고 보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볼 수 있듯 그 속에서 다루어 지는 신들의 이야기는 기독교 성경처럼 언제나 곧고 자애로우며 착하게 표현되지는 않는다. 신들은 인간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단, 해를 바로 볼 수 있다거나, 땀을 흘리지 않는다거나, 죽지 않는다고 표현함) 서로 사랑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탐욕스러우며 시기하고 질투를 한다고 표현한다. 신들의 왕 제우스가 인간의 여자를 탐하기 위해 몰래 잠입을 한다거나 헤파이스토스가 부인 될 사람을 몰래 잡아오는 등. 온갖 나쁜짓을 신들이 행하는 것을 보여준다. 유명한 트로이 전쟁 역시 그 시작은 세 여신의 탐욕과 질투심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헤파이스토스가 벌인 일 때문에 세상에 겨울이 생겼고 여신의 질투심 대문에 트로이 전쟁은 시작되었다. 신들은 오직 좋은 것만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주지 시켜야 하는데 시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호머가 그의 시에서 표현한 신들의 다툼들이 그 의도가 우화적이었다 할지라도 아이들에게 도덕적으로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어린이들이 가능한 적게 예술에 접하기를 원했다. 이 접촉의 통제를 통해서 플라톤은 예술이 어린이들에게 진리 분별의 능력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하고자 했다.젊은이들에게는 싸움터에서 용감히 죽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며 죽음을 두려워 해서는 안되는데 시인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장면을 보여줘 죽음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또 시인들은 작품에서 보통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을 등장시켜 옳지 않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허용한다거나 인간문제에서 못된 자들이 행복해지고 착한 사람이 불행해 지는 것을 표현해 그들의 행동을 용인하거나 고무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공화국 13장에서 플라톤은 보통사람들이 대상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예술가들이 이용한다고 말했다.동일한 물체들이 물에 넣어 바라보면 휘어 보이고 꺼내 바라보면 반듯해 보이며 시력이 색상에 오도되는 탓에 오목하게 보이기도 하고 볼록하게 보이기도 한다. 우리의 마음은 명백히 이와 같은 각 종류의 혼란에 처할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다. 사람을 현혹하는 회화가 단지 요술로 묘사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본성들 속에 있는 이 고민거리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제13장, 602d)
    인문/어학| 2008.05.03| 2페이지| 무료| 조회(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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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엇의 개성배제이론 평가A+최고예요
    T. S 엘리엇의 개성배제 시론시론이란 단순히 한 시인이 시를 쓸 때 사용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시인이 처한 시대와 환경을 반영하면서 나아가 시인의 그것에 대한 대응 방식을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문명의 변천에서 우주와 신 그리고 인간에 대한 태도는 분명한 변화를 겪어왔다. 시 이론은 결코 이 변화의 밖에 있을 수 없다.엘리엇(T. S. Eliot)은 자신의 일반적인 이론을 갖고 있지 않으며 시를 정의하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After Strange Gods)에서 당시에 있었던 개성 중시의 풍조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개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성실성"을 중시한 나머지 문제의 자아가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옳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의 여부를 소홀하게 다뤘다고 보았다 엘리엇은 이러한 개성의 중시가 위험한 것임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그의 진리 관에 토대를 두고 극단적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정신의 원리를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는 가에 대한 자기 자신 나름대로의 해답 이였다.엘리엇은 총체적 예술이 형성하는 어떤 정신에 나아가기 위해 우선적으로 취해야하는 자세는 스스로의 한계적 자아를 비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서 시인이 시를 쓸 때, 자신의 개성은 배제하고 써야한다는 것을 말한다.엘리엇은 시인의 정신이 비어 있는 "그릇"(receptacle)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예술이 결코 개선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말의 본뜻은 예술은 이미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예술에 있어서의 가장 높은 진리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어서 새로운 시인이 그의 정신력에 의해 창조해 내는 것은 그보다 열등한 것이기 쉽다. 그래서 엘리엇이 총체적 예술이 형성하는 어떤 정신에 나아가기 위해 우선적으로 취한자세는 스스로의 한계적 자아를 비우는 일이었다. 엘리엇은 시인의 정신이 개성을 표현하지 않고 오직 그 안에 담기는 것들이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결합하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여겼다.시인은 아무 것도 내세움이 없이 자신의 비워진 마음의 자리에 온갖 것들이 들어와 차게 해야 한다. 그의 개성배제 시론은 그의 전통론의 또 다른 표현이다. 엘리엇은 개성배제 시론을 더욱 뚜렷이 설명하기 위해서 화학 물질과 촉매제와의 관계에 비유하여, 시인의 정신이란 결국 다양한 감정을 마음껏 구사하여 새로운 결합을 이루게 하는 '세련되고 원숙한 매개체'의 구실을 수행하는 데 불과하다고 말했다. 시인의 정신은 '무수한 감정이나 어구나 이미지를 포착하여 저장하는 그릇'에 불과한 것이니까 '시인은 개성을 표현할 것이 아니라 특수한 매개체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결국, 시인의 정신이 스스로를 비우고 촉매로서 작용하는 것은 현재의 경험과 과거의 경험들이 자유로이 서로 결합하여 어떤 새로운 것을 형성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새로운 것의 잉태에서 한 개인은 스스로의 한계적 의식을 벗어나 개별성을 초월하는 어떤 정신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엘리엇은 과거로부터 계승된 예술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최상의 상태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것이 결코 진보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었다. 엘리엇은 과거 유럽의 전체 문학이 형성하는 어떤 것, 예컨대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는 것으로서의 최상의 "유럽의 정신" 등에 나아가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스스로를 내세우기보다는 현재와 과거의 의미 있는 것들이 자신 안에서 융합하도록 하는 매체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다.그가 생각하는 전통과 개인의 재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고 넘어가 도록하자.엘리엇이 비평가들에 의해 문학이라는 제도권 내부로 흡수된 과정은 그의 문화적인 위상과 관련하여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대부분의 경우 작가의 위상은 몇 몇 텍스트를 재료로 삼아 비평가들이 만들어 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엘리엇의 보수적인 면모가 굳어지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엘리엇 정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의 초기 비평 (Tradition and the Individual Talent)에서 그가 ‘전통’의 개념을 앞세워 낭만주의의 전개성과 자아의 개념을 공격한 데에서 기인한다. 그 엄청난 복합성에도 불구하고, 엘리엇이 내세운 ‘전통’이라는 개념은 피상적으로 ‘보수’ 내지는 ‘반동’과 연결되어 결국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엘리엇의 시와 비평을 관통하고 있는 커다란 철학적인 증거가 있다면, 그것은 자아의 좁은 영역 밖에 존재하는 ‘전통’ㅡ 달리 말하면 한 개인이 자신의 것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ㅡ 에 대한 예리하고도 지속적인 의식이다. 엘리엇이 내세운 ‘전통’이란 개념은 상식적인 차원에서의 ‘전통’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전통이란 물려받을 수 없으며, 만약 당신이 그것을 원한다면 엄청난 노력을 통하여 획득해야만 한다.” 즉 ‘전통’이란 수동적으로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써서 작가는 자신의 ‘전통’을 구축하는가?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으로 암시 혹은 인유를 들 수 있다. 하나의 텍스트가 또 다른 텍스트를 암시할 때 두 텍스트는 서로 연결이 된다. 흔히 암시는 널리 알려진 텍스트를 향한 것으로서 독자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작가가 기대할 때 비로소 쓸 수가 있다. 그러나 엘리엇의 경우 별로 알려지지 아니한 텍스트 역시 암시하며, 이 경우 암시의 상식적인 기능은 뒤바뀌고 만다. 즉 암시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는 엘리엇의 어려운 암시를 통하여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거나 독자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게 되는데, 의 주석에서 언급된 제시 웨스턴(Jessic L. Weston)의 (From Ritual to Romance)기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암시라는 기법은 남의 텍스트를 끌어오는 것이므로 개성 혹은 절제성에 입각하여 작품을 창조한다는 낭만주의의 선화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엘리엇의 논리를 따르자면 시인 자신이 있다기보다는 선배시인들이 쓴 텍스트가 그의 머릿속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이 경우 시인은 천재성을 내세운 한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짜인 텍스트들의 이합집산이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공간으로서 존재한다. 낭만주의의 ‘자아’가 위치했던 그 곳을 이제는 남의 ‘텍스트’가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엘리엇의 시학은 ‘비개성의 시학’인 것이다. 엘리엇이 내세운 ‘전통’의 개념은 미시적으로는 시에서 시인을 지우거나 추방하고, 자서 적으로는 그 포괄성과 타자성 때문에 바로 엘리엇 자신을 문화적인 이방인으로 만든다.
    인문/어학| 2008.05.03| 4페이지| 무료| 조회(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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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시작된 질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많은 학자들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았으니 그중에 정답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인간을 언어를 가지고 사고할 줄 알고 사회를 이루며 사는 지구상의 고등 동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한 말들로 인간을 정의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로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알아보도록 하자우선 첫 번째는 철학적인 견해에서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을 철학적으로 정의해보면 인간은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존재자이다. 인간을 다른 것들과 구별하는 것은 그가 이성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즉 인간은 근본적으로 본성으로서 이성적인 힘을 지니고 또한 유일하다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이 아닐까?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올바른 정의를 위해서는 논리적인 분류가 필연적임을 인식하고 인간을 합리적인 동물로 분류 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추상과정을 통해 보편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이들 보편개념으로부터 추론 규칙을 쫓아 삼단 논법에 의거해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다. 특히 하는 글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는 회상이라는 능력이 인간을 짐승으로부터 구별시키는 특징이라고 말한다. 물론 동물들도 기억을 한다. 그러나 오직 인간만이 회상을 할 수 있다. 이때 회상이란 망각하고 있었던 것을 마음속에서 체계적으로 찾아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사회학적인 차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 즉 공동체 도시 국가 등의 복잡한 조직을 편성하고 그에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그는 인간을 잘 웃는 즉 유머감각이 있는 동물이라고 정의했다.니체는 에서 실존적 관점을 취해 인간을 앞날을 기약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묘사한다. 즉 인간은 특정한 유형의 행위에 스스로를 매이게 하고 그것을 지키는 데 안간힘을 쓰는 존재라는 것이다.이처럼 위대한 철학자들의 인간에 대한 정의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두 나름대로 문제를 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을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한다면 사람은 이성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능력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동물임에 틀림없다. 열정 충동 본능과 같은 것보다는 이성이 사람을 지배해 왔다면 냉혹한 자본주의의 수탈 아우슈비츠와 유태인 학살을 불러온 두 차례의 세계대전 부모들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어린아이들도 무참히 살해하는 테러리스트들등 20세기 문명 세계에 빈번하게 방생하는 다른 여러 범죄 행위들은 매우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두 번째가 과학적인 견해에서의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정의 내려 보면 인간은 동물의 한종으로 분류학적으로 사피엔스(species Sapiens), 호모(genus Homo), 호미니드(family Hominid), 호미노이드(superfamily Hominoid), 앤스로포이드 (suborder Anthropoid), 영장류(order Primate)에 속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의 물리적 질서의 일부분이며, 다른 유기체들이 그러하듯이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법칙들에 종속된다. 다른 대상들처럼 인간은 크기와 무게와 모양과 색을 지닌다. 또한 시간과 공간을 차지한다. 즉 중력의 법칙과 같은 자연의 법칙들이 다른 물리적 대상에서와 같이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별한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인간은 이질의 물질들을 자기의 신체 속으로 흡수하고, 신체 속에서 생명 과정에 필요한 합성물로 변환시킨다. 호흡하고 소화를 시키는 동안, 그리고 분비선의 활동의 결과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인간의 신체를 분석해 보면 공기나 물이나 흙이나 별들에서와 같은 화학적 요소가 발견된다. 이처럼 몇몇 과학자들을 인간을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성분에서 이해한다. 생명은 35억년 내지 40억 년 전부터 시작되며, 모든 세포는 하나의 세포(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므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하나의 공동 조상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뱅상에 의하면 오늘날 인간의 조상인 원숭이 과의 사람이 약 1백만 년 전 기후의 냉각으로 무수히 사라지고 인식 능력 덕분인지 호모 에렉투스만이 살아남게 되었다고 한다. 진화의 완만한 진행과 지속적인 유전자의 교환으로 인하여, 에렉투스는 사피엔스로 변화된다. 그 작업은 10만 년 내지 20만 년 전경에 아프리카에서 완성되었다. 에렉투스 중에서 50만 년 전부터 기후 변동으로 다른 지역과 지리적 장벽이 형성되면서 유럽에 고립된 에렉투스가 있는데 이들이 네안데르탈인이다. 이들은 자신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한 가지 혹은 서너 가지의 원시언어를 사용했다. DNA조사 결과, 인류의 공동 조상은 호모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두 종이 공유하는 특성들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동물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의견에 반론을 재기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인데 이러한 것들도 생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도구를 사용한다거나 말을 하거나 즐거움을 위해 성행위를 하는 것 등의 특징도 사실 다른 동물에게서도 나타나는 특징들이다. 인간이 보다 높은 사고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하게 뇌가 다른 동물보다 발달했기에 가능한 것일 뿐 인간도 결국은 생물학적으로 동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세 번째가 종교적인 견해에서의 인간이다. 인간이 등장한 순간부터 종교는 인간과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인간은 종교적 동물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 사회가 이루어지는 어느 곳을 가도 종교가 등장한다. 최초의 종교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에서 등장하였다. 초기에 인간이 등장하고 그들의 궁극적 관심사는 생존 이였을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야말로 이들이 처한 최대의 문제점이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인간은 자연현상을 극복하는 방법을 몰랐다. 자연에 대하여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자연에 대한 숭배로 변하고 이러한 숭배가 의례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한 숭배가 종교의 기원이 아닐까 생각된다.현대에 이르러 수많은 종교가 세계 각지에 퍼져있다. 이러한 종교에서 인간을 어떻게 정의 하는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자료의 부족으로 많은 종교를 대상으로는 하지 못했지만 그중에서 우리나라에 가장 보편적이고 널리 알려진 유교 불교 기독교를 중심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유교에서는 우주를 하늘, 땅, 그리고 사람의 3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하늘은 물질세계를 넘어 인간에게 성품을 부여하였으며, 땅은 물질적 자연의 세계로써 인간의 신체가 여기에 기반을 두는 곳이다. 따라서 인간은 인격적으로는 하늘의 기품을, 생물학적으로는 땅의 형상을 이어받은 중간적 존재로서의 위치를 차지하는 소우주이다.유교는 하늘과 만물 곧 우주의 모든 존재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입장이다. 유교이념에서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은 순수한 선이요, 보편적 이치이며, 욕망과 연결되어 있는 육신은 선의 기준으로부터 이탈하기 쉬운 충동적 가멸 적 존재이다.
    인문/어학| 2008.05.03| 3페이지| 무료| 조회(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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