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학습지도안1. Lesson의 제목 -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 이해하기2. 학습 대상 및 인원 - 중학교 1학년 Class3. 소요 시간 - 50분4. 학습 목표▶ 하나의 전치사가 각 문장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변화되어 사용되는 것을 이해한다.▶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고 많은 오류를 범하기 쉬운 전치사의 올바른 쓰임을 안다.5. Lesson의 특징■ 학습 영역 - 장소 전치사 (단순 전치사, 이중 전치사, 구 전치사)■ 교수 전략▷ The Grammar - translation Method (문법 번역식 수업)▷ The Audio - Lingual Method (청화식 수업)▷ Cooperative Learning (협동식 수업)■ 교수 전술▷ 새로운 기능의 적용 -> 시범▷ 기능의 완전한 연습 -> 훈련과 연습▷ 피드백의 중요성 -> 협동 학습 (토론 및 발표)▷ 교실 밖에서의 학습 연장 유도■ 교수 매체▷ 개념 및 원리 이해 ->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시뮬레이션 -> 비디오 디스크, 프로젝트▷ 청각자료 - MP3 파일, 디지털 녹음기▷ 동작과 상호 작용 -> 컴퓨터, 인쇄자료, 그 밖의 준비 자료(코팅지 등)Ⅱ. 수업 자료◆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고 많은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중의 하나가 영어에서 30여개가 넘는 전치사의 올바른 쓰임이다.◆ 하나의 전치사가 가진 의미가 확고 부동하게 정해져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고 각문장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변화 되어 쓰여 질 수 있기 때문이다.ⅰ) Grammar Part◆ 전치사의 정의? 명사, 대명사 (또는 그에 준하는 말 ) 앞에 놓여 명사, 대명사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품사? 다시 말하면, 전치사는 명사 또는 대명사 앞에 위치하여 형용사구, 또는 부사구를 구성하고 문장의 기본 낱말과의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기능어로서의 품사이다.?예 - The books on the desk are mine. (형용사구)Put the book on the desk, pleaerns and another word which may be a verb, an adjective or another noun or pronoun.? 기술 문법에서 전치사는 문장의 의미를 부여하는 구성 문법이지만 자체로는 거의 뜻이 없는 ‘기능어(Function word)’로 보기도 한다.?‘구절 동사(Phrasal verb)’라고도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관용어(Idiom)’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전치사의 종류1. 단순 전치사 - on, in , at 과 같이 한 낱말로 된 전치사ex) Mother gets up early in the morning.2. 이중 전치사 - from under, from behind 등과 같이 두 낱말로 된 전치사ex) The cat ran out from under the desk.3. 구 전치사 - in spite of 처럼 구로 된 전치사ex) They went there in spite a heavy rain.◆ 관용어를 학습 할 때 전치사가 가지는 특정적인 기본 의미를 알고 있으면 관용어를 반복 암기하는 것 보다 더 체계적으로 효과적으로 학습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배울 전치사 >>◆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 at - 비교적 좁은 장소? in - 비교적 넓은 장소 (대도시 , 국가 등)ex) He works as a guide at Biwon in Seoul.? on - (표면에 접촉된) 위에ex) My watch is on the desk.? beneath - (하면에 접촉된) 밑에ex) I put the pillow beneath my head.? above - (보다) 위쪽에= A is above the line (higher than the line)ex) The top of the mountain was seen above the clouds.? below - (보다) 아래쪽에= B is below the line (lower than the line)ex) We saw the whole city under the table? up - (운동을 수반 할 때) 위쪽으로ex) The monkey ran up the tree.? down - (운동을 수반 할 때) 아래쪽으로ex) They went down the hill.? out of - ~ 밖으로ex) They went out of the room,? into - ~ 안으로ex) They came into the room.? in- ~ 안에ex) My parents are in the room.? through - ~을 통과하여ex) A bird flew into the room through a window? beside - 옆에ex) Our house is beside the sea? by - 옆에ex) My desk is by the window.? between- 둘 사이에ex) The town lies between Seoul and Daejeon.? among - 셋 이상 사이에ex) Many birds are singing among the trees.? behind - ~ 뒤에ex)There is a hill behind the house.? before - 앞에 = in front of - ~앞에ex) He is standing before the house.ⅱ) Writing Praice1. The book is (on) the desk.2. The dog is (under) the bench.3. The book is (between) apple and banana.4. The people is (beside) (next to) the tree.5. The tree is (behind) the bench.? 5번까지는 제가 앞에 만든 그림으로 직접 보여줍니다.6. 우리가 본 그림 중 4번 She is standing (in front of) the piano.7. 우리가 본 그림 중 8번 The cupboard (over) the sink.8. 우리가 본 그림 중 뒷장 4번 A womugh) a window.? 6~10번까지는 그림 참조해서 만듭니다.ⅲ) Listening1. A man came (out of) the house and got (into) a car.2. We got (on) the bus in Yonsei Street.3. We walked (up) the hill to the house.4. Some people say it is unlucky to walk (under) a ladder.5. Be careful! Don't fall (down) the stairs.6. The old road goes (through) the village.7. The pictures are (above) the shelves.8. The ice gave way (beneath) our feet.9. The sun has just (below) the horizon.ⅳ) 팝송으로 응용해보기1. Under The Sea - Various Artists( under ) the sea( under ) the seaDarling it's better( down ) where it's wetterTake it from me( up on ) the shore they work all dayOut ( in ) the sun they slave awayWhile we devotin'Full time to floatin'( under ) the sea2. A Lover's Concerto - 진혜림How gentle is the rain that falls softly( on ) the meadowBirds high ( up on ) the trees serenadethe flowers with their melodies oh ~*See there ( beyond ) the hillthe bright colors of the rainbowSome magic from ( above ) made this dayfor us just to fall ( in ce again( on ) my own and I know that I'm strong enough to mendAnd every time I feel afraidI hold tighter to my faith4. Moon Over Bourbon Street - StingThere's a moon ( over ) bourbon street tonightI see faces as they pass ( beneath ) the pale lamplightI've no choice but to follow that callThe bright lights, the people, and the moon and all5. Lemon Tree - Fool's GardenI'm turning my head ( up ) and (down)I'm turning, turning, turningTurning, turning aroundAnd all that I can see isJust a yellow another lemon treeⅢ. 학생들용 프린트물전치사◆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고 많은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 중의 하나가 영어에서 30여개가 넘는 전치사의 올바른 쓰임이 다.◆ 하나의 전치사가 가진 의미가 확고 부동하게 정해져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고 각 문장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변화 되어 쓰여 질 수 있 기 때문이다.◆ 전치사의 정의명사, 대명사 (또는 그에 준하는 말 ) 앞에 놓여 명사, 대명사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품사다시 말하면, 전치사는 명사 또는 대명사 앞에 위치하여 형용사구, 또는 부사구를 구성하고 문장의 기본 낱말과의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기능어로서의 품사이다.예 - The books on the desk are mine. (형용사구)Put the book on the desk, please. (부사구)-> A Preposition is a word that indicates a relation between the noun or pr
Ⅰ. 서 론크루서블 이라는 작품은 4월 16일 3시 공연에 보게 되었다. 소극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이 작품의 작가가 누군지도 모른채 갔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중간 쉬는 시간에 팜플렛을 산 후에야 작가가 아서밀러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는데, 정말 당황스러웠다. 늘 아서밀러 하면 세일즈맨의 죽음 과 모두가 내 아들 이라는 작품밖에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을 보면서 아서 밀러의 또다른 작품 세계를 경험한 것 같아 매우 좋았고 그 전까지 나의 문학 세계가 얼마나 협소한지 다시금 질책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연극이라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세계인 것 같다. 일상적인 TV나 영화 속에서의 일방적인 대화가 아닌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 흥미진진한 모습들이란 정말 그 감회를 말로 표현하기는 너무 어려운 것 같다. 그럼, 이번 과제는 연극의 3요소인 배우, 무대, 관객를 중심으로 감상평을 할 것입니다. 미흡한 점이 많더라도 예쁘게 봐 주세요.Ⅱ. 본 론 - 크루서블 의 무대 및 배우들에 대해서..전체적인 무대 배경이 5번 정도 바뀌었다. 첫 번째는 숲 속에서 소녀들이 악마 의식을 거행한 곳, 패리스 목사의 집, 프록터의 집, 교회 부속 건물로 임시 재판장이 되었던 곳, 사형 집행장 등이었다. 무대의 전반적인 세팅과 소품들은 기본적으로 연극에 필요한 물건들만 있었고 불필요한 장식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또한 조명의 사용은 인물들 간의 심리 고조나 또한 긴장 상태일 때마다 갑자기 확 어두워진다던지 아니면 천천히 밝아지거나 어두워지는 등 극적 긴장감을 더욱 효과적으로 일으키는데 일조를 했다. 특히 이 극에서는 내가 여태까지 보아왔던 다른 극들에 비해서 소리 즉, 사운드 장치가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된 것 같다. 이 극을 보는 내내 소름이 서너번이나 돋았는데 그때마다 사운드에 의해서 더욱 소름이 끼쳤기 때문이다.배우들의 연기들 살펴보면 더할 나위없이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 에비게일 윌리엄즈 역을 맡은 강지은 언니의 연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가냘픈 체구에서 놀랄 만한 파워풀한 연기력과 관객들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다분히 지니고 있는 그녀에게 난 이번 극을 통해 그녀의 팬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연극 중에서는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극단들도 여럿 있는데, 예전에 이런 극단이 만든 청춘 예찬 이란 극을 봤었다. 여기에서는 술을 마시면 진짜로 음료가 들어있는 것을 마셨으며, 또한 극중 여배우가 간질로 쓰러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입에 어떤 걸 물었는지는 몰라도 정말 거품을 일으키며 쓰러지는 등 연기를 실제로 그대로 행했었다. 반면에 이번 크루서블이라는 연극에서는 실제로 하는 연기보다는 판토마임적인 연기도 많이 눈에 띄었던 것 같다. 또한 극중 사건들이 실제로 무대에서 재현되기 보다는 극중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부분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극 맨 처음 장면이 숲속의 악마 의식 장면에서 에베게일이 짐승을 찢어 피를 마시는 장면은 그게 인형이었고 마시는 척 연기를 했으며, 프록터의 집 배경에서 프록터가 밖에서 돌아와 손을 씻는 장면이나 저녁을 먹는 장면 등도 전부 판토마임이였다. 판토마임 연기가 가장 돋보였던 장면은 재판관에서 에비게일이 잠시 배신한 메어리를 악마에 씌였다며 노랑새야, 노랑새야 그러지마~ 라며 집단적인 광기를 부리는 장면은 실제로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데 거짓 연기를 하는 부분이기에 절묘한 조화를 부리며 관객으로 하여금 가장 소름돋게 한 장면이었던 것 같다. 이런 장면 연출은 밀러가 가 생각한 극의 개념인 극이란 기본적으로 단지 인물들의 일련의 행동이 아니라 은유다 라는 생각에도 부합하는 것 같다.위 장면 외에도 소녀들이 처음으로 입을 모아서 자신들이 악마를 봤다며 그 속에 누가 누가 있었다고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 역시 사운드에 의해서 집단적인 광기를 매우 잘 표현해 주었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또한, 자일즈 코레이 라는 캐릭터는 극 전반에 흐르는 알 수 없는 우울함과 긴장감 속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을 이완시키는 작용을 하는 인물로, 희극적인 캐릭터였다. 이 캐릭터가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처럼 작가는 부분 부분 희극적 요소를 잊지 않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지속적인 김장감으로부터 잠시동안 해방시켜주고 극을 보는 동안 덜 피로하게 해 주었다.그리고 이 극의 매우 중요한 인물인 프록터와 그외 중심 인물들의 연기 역시 훌륭했으나 개인적으로 그다지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Ⅲ. 결 론 - 관객으로서의 나의 짧은 평..『크루서블』은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는 모순을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 신앙의 명분을 앞세우면서도 실은 해괴한 미신적 광기가 행해졌던 17세기 미국의 매사추세츠의 세일럼에서 일어난 소위 마녀사냥을 다룬 것으로, 작자는 이 사건에 따른 집단 히스테리를 탐색하면서 중심인물 프록터와 헤일 목사가 서로 자기의 가치들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을 극화하고 있다.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고 소름이 끼쳤던 것은 위의 상황이 비단 17세기 그 당시에 국한되지 않고 지금 현 시대에도 우리에게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기에 극을 보고 나오면서도 일종의 공포심에 휩싸였던 것 같다. 이 극을 전개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코드는 바로 복수와 배신, 그리고 그 속에서의 도덕적 양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배신이라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매우 민감한 것이고 의식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공포이기도 하다. 밀러가 이 극에서 나타내고 있는 배신은 개인의 부도덕을 꼬집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공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와 연관 짓는다. 또한 밀러는 사회 조직 속에서 개인의 양심, 개인과 국가간의 관계, 물질 추구의 과정 속에서 파손되는 양심과 정의라는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를 추구했다. 이 극에서만 보더라도 간음을 저지르고 마음에 독기만 가득한 에비게일이 자신의 복수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도덕적 양심을 배신하고 거짓 연극을 함으로써 오히려 성녀로 추앙된다. 또한 그녀로부터 시작된 마녀 사냥은 마을 전체를 휩쓸면서 어제는 같이 더불어 살아가던 이웃을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거짓 밀고를 해야만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극중에서 말했듯이 이 회괴한 현상이 만연한 이 마을은 혼돈 그 자체이며 이는 지옥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밀고하여 자신의 생명을 되찾은 사람들에게 과연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나는 단연코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Historical person이 아니다. 단지 하루 하루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농민들일 뿐이었다. 그들은 Ordinary person으로서 마땅히 Self-preservation을 한 것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도덕적 양심을 배신하고 하느님의 사명이란 이름 아래 저질러진 아이러니한 죄는 그들이 얻은 생명이 다할때까지 짊어지고 가야할 십자가인 셈이다. 이런 이들에게 누가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은 모순적이고 불합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힘있는 사람에 의해서 유린당한 불쌍하고 가엾은 희생양일 뿐이다. 그러나 이극이 훌륭한 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록터라는 인물을 통해서 Ordinary person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Self-preservation과 도덕적 양심과 그 책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이 부분은 프록터의 사형집행일을 하루 남겨두고 임심한 부인인 엘리자베스가 100명 이상이 피고들이 자백해서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알려주고, 진리 편에 서는 가치와 생명을 위한 허위 자백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분인데 이것이 이 극의 갈등이 나타난 부분 중에서 최고조를 이루고 있는 부분이다. 처음에 프록터는 자신은 성자가 아니라며 Ordinary person임을 공식적으로 내뱉으며 생명을 택하나 곧 내 평생 다른 사람의 이름을 가질 수 없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버지이고 싶다. 라는 말을 하면서 결국에는 목숨을 버리고 진실을 택함으로써 허위 자백서를 찢어버리고 사형대로 향하게 된다. 이런 모습을 보며 헤일과 패리스 두 목사는 엘리자베스에게 아직 시간이 있으니 남편의 결심을 바꿔보라고 간청하나 그녀는 저 분은 지금 선을 찾았어요. 그건 거역할 수 없는 신의 뜻이에요. 라는 말을 하며 간신히 몸을 지탱한다. 이때 저 멀리 사형장에서 빛이 프록터의 얼굴을 비추는데 이 빛은 마치 신의 광명과 같이 보였으며 죽으러 가는 데도 불구하고 프록터는 신의 반열에 오른 듯이 보였다. 과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자신의 입으로도 말했듯이 성자도 영웅도 아니었다. 여기서 작가는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과 도덕적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것은 꼭 Historical person이 아니어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프록터라는 인물이 분명 용기있고 대범함 인물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한 개인 개인이 불합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모두가 힘을 모아 대항하면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또한, 프록터가 사형장으로 행할 때 부인인 엘리자베스는 임신 중이었는데 이 아기는 프록터의 생명의 연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록터는 자신의 존엄성을 지킴으로써 신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고 동시에 프록터의 새로 태어날 아기는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의 빛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이처럼 밀러는 단지 Odinary person으로서 불합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유린당하는 비참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강한 진실의 힘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습과 새로운 희망까지도 놓치지 않고 보여줌으로써 그 훌륭함을 더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Realism 극으로서의 「A Doll's House」 0081041 장지윤제목에서처럼「A Doll's House」은 입센의 대표적인 희곡 작품으로 사실주의 극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 서구의 근대극에 한 획을 그었으며 나올 당시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주인공 노라는 새로운 여성의 대명사로 되면서 이때 페미니즘이 거세게 대두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이 작품이 그 당시까지 희생과 복종을 강요받은 여성들의 자아 실현에 관한 바른 길을 제시해 주었느냐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왜냐하면 노라가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자각하고 자아 실현을 위해 새로운 모색을 하려 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한 가정에서 아내로서 자신의 의무나 아이들의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포기한 것은 새로운 문제들을 낳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이 사실상 여성의 자유와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독립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사회와 개인의 갈등이라는 넓은 의미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집을 나가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노라는 '한 인간으로서'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여성의 독자적인 권리와 주장, 미래에 대한 언급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레포트에서는 이 작품에서 노라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올바른 자아 실현이 무엇인가를 밝혀 보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자아 실현의 모습도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볼까 합니다.우선 당시 부르주아 시대에서 여자란, 어떤 법적 책임을 질 수 없는 참으로 무기력한 존재였다고 생각된다. 상업적 거래도 아버지나, 남편의 보증이 없이는 불가능한 존재이며 이것은 곧 노라 스스로가 말한 '인형'으로서의 존재이다. 그리고 그런 인형이 머물고 있는 집은 철저한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고분고분 살아갈 때는 마치 인형을 대하듯 다정하게 대하다가도 자신에게 조그마한 피해가 오면 남편은 가차없이 분노를 터뜨리며 아내에게 명령하고 비난한다. 노라의 행위는 오로지 자신의 남편을 위한 것이었음에도 헬머는 자신의 명예를 생각하며 고민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포용하고 이해하고 그녀의 편이 되어 주지 못하는 남자로 드러난다. 이러한 모습을 예상한 노라는 어떤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파국의 나날을 기다려 온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인형으로서의 삶을 버리고 자신을 찾기 위한 가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노라가 가출을 하면서 막을 내린다는 점이다. 남편인 헬머가 아내인 노라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해 주려고 하는데도 성급하게 집을 나가기로 결정한 것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이 문제점의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한다.첫째, 여성의 자아 실현은 여성의 성적 역할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한다. 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딸, 남편의 아내의 역할을 하면서 자아 실현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구성원임을 포기하고 혼자 살아가는 것이 자아 실현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딸의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길은 많이 있다. 마찬가지로 한 남편의 아내, 아이들의 어머니의 역할을 하면서도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이것을 포기하면서까지 가출만이 전부라고 결정해버린 것은 노라의 경솔한 행위이다. 물론 노라가 남편의 그러한 위선과 비열함을 보고서 다시 예전처럼 남편에게 순종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그 동안 자신이 느껴왔던 불만을 토로한 것은 정말 잘 한 것이다. 그 시대의 사회상으로 볼 때도 아내가 남편에게 그러한 강경한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내인 노라가 그러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그 시대 여성의 사고의 전환이 되게 할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자아 실현의 시작을 말할 수 있다면 노라가 집을 나간 순간이 아니라 남편과의 대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항변한 그 순간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라의 가출 행위는 그 동안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고난과 억압, 남성과의 불평등 구조를 피해 그 것들이 없는 곳으로 달아난 일종의 현실 도피 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한다. 차라리 가정을 지키면서 그 동안의 삶을 뒤로하고 앞으로의 자신이 여성으로서 지내야할 삶을 다시 설계하고 새로운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을 선택했더라면 이 작품은 아마도 그 시대에 보다 더 크나 큰 이슈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 세상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함께 살면서 자신의 삶의 영역을 찾아가는 것을 모색해야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여성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어떡해야 하는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둘째, 노라의 정체성 찾기는 그녀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특성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여성이므로 여성의 특성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루어져야지만 설득력이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모든 일이 남자가 해야 하는 영역과 여자가 해야 하는 영역이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성적인 차이로 인해 구분되는 것도 있겠지만 자아 실현을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들은 인간으로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런데도 가족의 구성원으로 남아 있으면서 이러한 일들을 하려고 노력도 해보지 않고 가출부터 결정한 것은 잘못이다. 노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찾아보지도 않고 가출만 하면 무엇인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헛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비틀 쥬스 를 보고 나서...- 영화 속에서 나타난 중산층에 대한 시각 -영어영문학과 0081041 장지윤Ⅰ. 서 론비틀쥬스 란 영화를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예전이 기억을 떠올려보면 무척이나 즐겁게 봤었던 영화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주제에 보다 잘 접근해서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아서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여러 번 볼 때마다 관객에게 매번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독의 뛰어난 능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금 본 비틀쥬스 란 영화는 코믹하고 흥미진진한 표면 속에 팀 버튼 감독의 생각과 짙은 사회성을 담은 작품이란 생각이 듭니다.이번 레포트에서는 먼저 이 영화 속에서 드러난 시골의 전형적이고 평화로운 중산층의 삶과 뉴욕 출신의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중산층의 삶에 대한 표현 방식과 이에 따른 팀 보튼 감독의 시각과 제가 바라본 시각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쓸 것입니다. 미흡한 부분이 많겠지만 예쁘게 봐 주세요.Ⅱ. 본 론 - 각 캐릭터들 간의 비교 분석..먼저 바바라와 아담 부부 는 이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중요한 캐릭터들이면서, 전형적인 시골의 소박한 중산층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 부부는 단순히 길가에 서 있는 강아지 한 마리를 피하려다 사고를 당해서 유령이 된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만약에 찰스와 델리아 부부였다면 아마도 강아지가 죽었을 것이다. 이처럼 바바라와 아담은 순박하며 고운 심성을 지닌 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꾸민 집의 벽지나 입고 나오는 의상들 등은 깨끗하고 자연적인 풋풋함을 느끼게 해주는 밝은 이미지였다. 또한 그들의 얼굴에는 늘 웃음이 가득해서 비틀쥬스가 이들을 처음 보고 귀엽고 바보같이 생겼다 며 만만하게 보기까지 했다.두 번째로, 바바라와 아담 부부와는 대조적인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는 찰스와 델리아 가족들 이 나오면서 이 영화는 더욱 흥미로운 갈등 구조를 보인다. 찰스와 델리아 가족들은 뉴욕 출신의 중산층을 대표한다. 찰스는 부동산 중개업자로 목숨보다도 돈을 중시하게 여기는 속물이다. 그의 아내 델리아 역시 조형 작품 같은 것을 만드는 예술가로 나오는데, 자칭 예술가라는 표현이 더 걸맞을 듯 하다. 왜냐하면 진정한 예술가란 그의 작품을 통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야 하는데, 영화 속의 다른 사람들도 그녀의 작품을 인정해 주지 않고 있으며 나 또한 그녀의 작품들이 기괴하고 볼썽사나울 뿐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그녀는 실속도 없으면서 괜히 있는 척하고 사람 자체가 물질 문명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이 아닌 물질 문명 질질 끌려 다니며 체면 치례와 같은 형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을 표현한 것일 것이다. 이런 속물들에게도 리디아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세속에 찌든 부모들 속에서 늘 소외되고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암울한 세계에 갇혀 있는 듯이 보였다. 그녀는 냉혹한 도시 문명 속에서 버려지고 따뜻한 시선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대변하기도 한다. 또한, 그녀는 인간으로서는 유일하게 유령이 된 바바라와 아담을 인식하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이것은 비틀쥬스와 더불어 사후 세계와 인간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나중에는 갈등을 해소시켜주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세 번째로, 찰스와 델리아가 등장할 때부터 같이 나온 뚱뚱한 남자 가 있는데, 그 역시도 의리나 동료애 따위는 전혀 없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만 약삭빠르게 움직이는 현대인의 대표적인 속물들 중의 하나로 표현되고 있다. 그의 외관은 뚱뚱한 편인데 이는 탐욕스러운 모습을 상징하는 듯 했다.네 번째로,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비틀쥬스 란 캐릭터를 우린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비틀쥬스는 영화 제목이긴 하지만 영화상에서는 주연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보는 동안에는 왠지 모르게 조연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비틀쥬스로 인해서 많은 사건들이 생기지만 그 자체가 이름을 불러야지만 세상 속에 있을 수 있는 얄팍한 힘과 누구보다도 재치 있는 만담꾼이기도 하지만 누구도 귀 기울여 주지 않는 소외된 역할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틀쥬스를 보면서 연극에서 나오는 코러스나 우리 고유의 마당극에 등장하는 말뚝이가 연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특히나 그의 익살스러운 말투와 찰스와 델리아를 주축으로 하는 속물들을 괴롭히고 풍자시키는 그의 모습들은 예전에 양반들을 조롱하고 비판했던 말뚝이의 역할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그래서 개인적으로 비틀쥬스를 조연인 듯한 주연이며, 우리 현대 사회에 시골의 소박한 중산층의 계층마저도 외면해버리는 천민을 대표하는 대변자라고 생각한다. 비틀쥬스는 리디아와 더불어 이 영화 속에서 현실과 사후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리디아는 나중에 자신의 가족과 또 유령 부부들과 공존을 하지만 그 시각 비틀쥬스는 머리마저 작아져 버린 채 사후 세계를 떠돌며 여전히 그들과 공존되지 못하며 어두운 거리를 헤매인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어떤 순간이든지 스포트라이트 밖의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대변해주는 듯한 비틀쥬스에게 개인적으로 일종의 연민마저 들었다.Ⅲ. 결 론- 영화 속에서 내가 바라보는 팀 버튼 감독의 시각 -이 영화의 처음 장면은 교외에 있는 아름답고 멋진 집들과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거리에 원색적인 색상을 지닌 차들이 한가로이 길가에 듬성듬성 서 있는 그야말로 평화롭고 소박한 시골의 한 정경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형이었고 주요 무대인 언덕 위의 하얀 집 위로 커다란 거미 한 마리가 집을 집어삼킬 듯이 올라탄다. 바로 이 장면은 앞으로 이 마을과 아담과 바바라에게 다가올 불길한 징조를 암시해 주는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까 한다. 사실 이 장면은 이미 시작부터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인 주제를 다 보여주고 시작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Ⅰ. 서 론「오이디푸스 왕」과 「리어 왕」이란 작품은 중학교 시절에 읽었던 작품이다. 그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리어 왕」을 읽었을 때는 처음으로 희곡 형식의 글을 접한 탓인지 독특한 마력에 이끌려 밤을 새어가며 읽고 나서 왠지 모를 성취감과 함께 리어왕이 비운의 사나이라 느끼며 일종의 진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리어왕은 현대 시대에도 공감대를 잘 형성할 수 있는 성격 비극 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반면에 「오이디푸스 왕」을 읽었을 때는 「안티고네」도 같이 읽었었는데 「오이디푸스 왕」이란 작품은 「안티고네」를 위한 에필로그에 불과하다는 느낌밖에 주지 못한 나에게는 그저 스쳐 가는 작품에 불과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리어 왕」이 아닌 「오이디푸스 왕」을 택한 이유는 존경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비극에 관해서 논할 때마다 언제나 이 오이디푸스왕을 가장 우수한 비극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내 스스로가 체험해보고 싶어서이다.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와 지금 다시 보는 「오이디푸스 왕」과는 7년이라는 시간적 차이가 있으니 감상 역시 크게 다르리라 생각한다.그러면 지금부터 작가 소포클레스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그의 사상에 더불어 오이디푸스의 작품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소견을 덧붙여 이번 과제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미흡한 점이 많더라도 예쁘게 봐 주세요.Ⅱ. 본 론론ⅰ) 작가 소포클레스에 대해서..소포클레스는 부유한 기사 계급 출신의 무기 제조업자인 소필로스(Sophillos)의 아들로서, 아테네 근처의 콜로노스(Kolonos)에서 태어났다. 사회적으로는 상류층 계급에 속했고, 뛰어난 용모와 훌륭한 재능을 겸한 인물이었다.그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전부 123편, 또는 130편에 이르는 작품을 썼다. 그 중 100편 이상이 제목과 단편으로만 우리에게 알려져 있으며, 완전하게 전해 내려오는 것은 7편에 지나지 않는다. 연대적으로 먼저 씌어진 것은 BC 441년에 상연된 「안티고네」이지만, 이것보다 그 짜임새나 표현이이디푸스 왕」,「트라키아의 여인들」,「필로크테테스」의 순서로 볼 수 있다.「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이 시인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 밖의 최근 발견된 사티로스와 「뒤쫓는 사람들」의 일부분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비극 작품 이외에 찬가, 엘레게이아(Elegeia), 에피그람(Epigram), 그리고 가무단(Choros)에 관한 산문 등도 지었다.ⅱ) 소포클레스 희곡의 특징 및 사상..소포클레스의 희곡은 신이나 자연력의 작용보다 대표적인 인간상들간의 상호 작용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등장 인물과 관객을 시작과 함께 변화의 과정 속에 끌어들인다. 그러나 전체적인 전개나 유형은 많은 등장 인물 또는 관객의 경험뿐만 아니라 각 희곡 형태를 낳은 바탕이기 때문에, 인간상 자체보다 더 근원적이다. 이 역동적인 유형은 소포클레스가 생각했듯이 우주 전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의 세계관, 또는 우주관은 크리스트교나 근대 과학의 우주관을 비롯한 어떤 우주관과도 다르다. 신 , 역사 , 물질 이나 운명 과 비슷한 것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관점에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다. 그의 우주관은 다원적이다. 말하자면 신성 , 시간 , 자연 , 필연성 같은 다양한 힘 사이에 생기는 긴장 관계이다.우주는 이러한 힘들이 질서 있게 조정되거나 율동적인 일정한 형태를 이루는 것이며, 여기에서 비극의 줄거리에 기본적으로 내재해 있는 기쁨과 절망, 삶과 죽음의 엇갈림이 나온다. 이 우주는 근대적 관점에서 보면 신적 인 동시에 자연적 이며, 비개인적 인 동시에 개인적 이다. 우주를 응집력 있는 하나의 통일체로 보든 추진력으로 보든 우주는 영속성을 갖고 있다.희곡에서 우주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상징은 신이다. 신은 영원한 힘과 현실의 구조를 구현한 화신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인간은 이런 힘과 구조에서 차단되어 있고 시간과 변화, 고통과 죽음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어두운 무지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우주 질서와 확실하게 접촉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시간·고통·죽음을 디푸스 왕」이 쓰여진 연대는, 대체로 기원전 429~420년 사이로 짐작하고 있다. 이 희곡은 테바이를 휩쓴 열병의 재앙을 면하기 위해서는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자를 색출해야 한다는 신탁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극 속의 비극적인 운명의 원인은 극 밖에 있다. 곧 라이오스 왕가에 내려진 저주가 그것이다. 라이오스 왕은 젊었을 때, 엘리스의 펠로프스 왕의 궁궐로 망명하였었는데, 펠로프스의 아름다운 왕자 크리시포스를 사랑하여 이른바 동성애를 범했기 때문에 펠로프스 왕의 저주를 받은 것이다. 저주의 내용은 라이오스 왕은 자식을 낳아서는 안 되며, 만약 이것을 어기고 자식을 낳을 경우에는 그 아들의 손에 죽어야 하며, 또한 그의 아내는 자식과 동침하게 된다는 신탁이었다. 그 후 테바이로 돌아온 라이오스 왕은 그의 아내 이오카스테와 사랑을 나누어 아들 하나를 얻는데, 그가 바로 오이디푸스였다.이로 인해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한다는 저주스러운 운명을 타고 난다. 오이디푸스는 격하기 쉬운 기질이었지만 끝까지 자기 힘을 신뢰하는 정의의 사나이였다. 그는 자기 손에 죽은 사람이 바로 자기 아버지인 라이오스 왕인 줄은 꿈에도 모른다. 오직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일념으로 라이오스 왕의 살해범을 추적한다. 원인을 더듬어 가는 가운데서 오이디푸스 왕은 차츰 자기 정체가 의심스러움을 알아차리고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너무나 성급하고, 자신을 지나치게 믿는 오이디푸스의 기질은 그칠 줄 모르고 운명의 끝으로 자신을 몰고 간다.Ⅲ. 결 론ⅰ) 『오이디푸스 왕』이 최고의 비극일 수밖에 없는 이유..『오이디푸스 왕』이 최고의 비극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첫 번째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이란 심각한 인간 행위의 모방으로서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이를 다시 정화시켜 준다고 했다. -바로 이 부분이 카타르시스 를 의미하는 부분이 될텐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카타르시스는 나중에 뒤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또한 그는 의견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기르던 강아지가 차에 치어 죽었다고 했을 때 그것은 지극히 슬픈 일이지 비극적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비극이란 인간 존재의 본질, 인간과 신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사회의 관계, 인간의 참된 도덕성 등과 같은 보다 원대하고 심오한 질문들을 제기하는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이디푸스 왕의 운명은 슬픈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할 때 우리는 당연히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났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운명은 그 자신과 관객들로 하여금 신이 만들어 논 운명의 굴레 안에서 허우적대는 한계를 지닌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인간과 신의 관계 및 인간의 참된 윤리의 잣대까지 다시금 일깨워주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이 작품은 비극적인 요소를 지녔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두 번째로, 통상적으로 전통적 비극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우수하고 우월하며 위대하다. 이러한 비범한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비상한 행위를 하며, 비범한 용기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비극의 주인공은 바로 그 비상한 용기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하며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그가 옳다고 믿는 신념과 용기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비극적 아이러니라고 한다. 실제로 작품의 주된 내용을 살펴보면 곳곳에 아이러니가 내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에피소드는 살인자에 대한 저주와 그 처벌에 재한 오이디푸스의 선언으로 시작된다. 이 선언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에게 저주를 내리고 있는 오이디푸스에게서 아이러니를 느낀다. 즉 라이오스의 살해자가 자신임을 깨닫지 못한 채 오이디푸스가 살해자에게 퍼붓는 저주는 극의 결말을 짐작하고 있는 관객에게 인간의 무지에 대한 준엄한 경고로 작용한다. 그리고, 눈을 뜨고도 자신의 운명을 보지 못하는 오이디푸스와 맹인임에도 불구하고 신탁의 예언이아스는 실제로 비극의 진실을 깨닫고 있는 현인이지만, 정상적인 눈을 가진 오이디푸스는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에 가해진 수수께끼를 결국 풀지 못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모습이다. 오이디푸스는 인간으로서 가장 뛰어난 지혜와 성실과 열정을 한 몸에 지니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이란 자리에 있었으나, 그 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저주받아야 할 인간의 추한 모습 또한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보여준 모든 결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파멸을 가져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역시 아이러니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이런 부분 역시 비극이 갖추어야 될 요소들이 섬세하게 작품 속 여기저기에 내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세 번째로, 비극의 주인공의 파멸은 외부적인 원인이나 우연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주인공 자신의 오판이나 실수가 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리스 시대의 비극은 흔히 운명 비극 이라고 하는데, 이는 주인공의 성격적 결함 즉, 하마르티아 보다는 운명이나 숙명 같은 강력한 초월적 힘이 주인공을 불행으로 인도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오이디푸스 왕은 급한 성질과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 결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신들이 정해 논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에 농락 당하여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오이디푸스 왕은 비극 중에서도 운명 비극 이라 말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오이디푸스 왕이 비극 중에 최고의 비극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소포클레스의 빈틈이 없고 독창적인 짜임새를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오이디푸스 왕도 그랬거니와 왕비에게도, 또 그녀 동생인 크레온에게도 선의 밖에는 없었지만, 마지막 파국은 어쩔 수 없이 다가오고야 만다. 한 정의의 인간이 인과 응보의 저주 속에서 파멸의 길을 재촉하고, 소포클레스는 이 피치 못할 신의 뜻이 차츰 차츰 오이디푸스에게 닥쳐 가는 비극을 솜씨 있게 전개해 놓고 있다. 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