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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역학]반덤핑관세
    서론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의 결과로 1995년 설립된 WTO의 등장으로 세계는 자유무역의 기치아래 모든 상품에 대해서 무한 경쟁의 상태가 되었다. 그러면 이러한 자유무역의 시대에 왜 관세라는 보호무역의 산물에 대해 알아보아야 하는가? 그것은 현재의 세계는 표면적으로는 자유무역을 주장하지만 속으로는 자국상품의 보호를 위해 WTO의 눈을 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을 하게 되면 생산과 소비의 모든 부분에서 이득을 얻게 된다. 생산에서는 효율적인 투자를 할 수 있게 되고 소비에서는 다양한 상품의 소비로 효용의 증가가 일어나고 동일한 상품이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담스미스나 리카도의 말처럼 비교우위의 상품은 생산하고 비교열위의 상품은 수입하는 것이 소비자에게는 이득이 되었지만 생산자에게는 독이 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로 스미스나 리카도가 자유무역을 주장하면서 제시한 연구는 2국가 2상품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유무역을 하게 되면 모든 국가와 모든 상품에 대해 자유무역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어느 상품이 비교우위에 있는지 선택할 수가 없다. 둘째로 비교우위의 상품을 선정하였다. 하더라도 비교열위의 상품을 퇴출시키는 것이 문제가 된다. 리카도의 말처럼 퇴출된 상품의 노동력을 비교우위 상품에 투입시키면 생산효율이 증가하기 때문에 이득이라고 한다. 하지만 퇴출된 많은 기업의 노동력을 흡수 할 수 있는 기업이 몇 안 될 것이다. 셋째로 만약 퇴출된 기업의 노동력을 모두 흡수 하였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역시나 발생한다. 노동의 생산성이라는 것은 체감하게 마련이다. 거기에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였다고 하더라도 생산성은 증가하지 않고 오히려 감소하게 될 것이다. 또 인건비의 상승으로 상품의 대외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어 위와 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또한 모든 상품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다면 소비자 효용은 증가 시킬 수 있을지 모르나 국제수지는 만성적 국내시장에의 침투로 인한 국내산업의 타격이나 고용기회의 상실 등 경제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대항조치에 그 목적이 있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국내산업의 보호를 위하여 이 관세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각국이 덤핑방지관세를 자의적으로 부과하는 것은 수입을 제한하는 결과가 되므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은 덤핑의 정의, 덤핑방지관세의 세액과 과세요건 등을 규정하여 그 남용이 방지되도록 하고 있다(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제6조). 관세법은 덤핑방지관세에 대하여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관세법 제51조 내지 제56조). 국내산업에 이해관계가 있는 일정한 자 또는 주무부장관의 부과요청이 있는 경우로서 외국의 물품이 덤핑되어 국내산업에 실질적 피해 등이 있는 것이 조사를 통하여 확인되고 당해 국내산업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그 물품과 공급자 또는 공급국을 지정하여 당해 물품에 대하여 정상가격과 덤핑가격과의 차액에 상당하는 금액 이하의 덤핑방지관세를 추가하여 부과할 수 있다(동법 제51조).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함에 있어서 관련 산업의 경쟁력 제고, 물가안정, 통상협력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때에는 이를 반영할 수 있다(동법 제52조). 덤핑방지관세의 부과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조사기간 중에 발생하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당해 조사가 종결되기 전이라도 그 물품과 공급자 또는 공급국 및 기간을 정하여 잠정조치를 할 수 있으며(동법 제53조), 예비조사 결과 당해 물품에 대한 덤핑과 그로 인한 실질적 피해 등의 사실이 있는 것으로 판정된 경우 당해 물품의 수출자 등은 그 피해가 제거될 정도의 가격수정이나 덤핑수출의 중지에 관한 약속을 제의할 수 있다(동법 제54조). 덤핑방지관세의 부과와 그에 따른 잠정조치는 그 조치일 이후 수입되는 물품에 대하여 적용되며(동법 제55조), 필요한 때에는 그에 대하여 재심사를 하여 덤핑방지관세의 부과, 약속의 내용변경, 환급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덤핑방지관세의 부과나 그에 관련된 약속은 원칙적으로로부터 ’양 괘도 접근방법‘으로 이행해갔다. 이것은 GATT에 대한 지원을 특정한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의 체결과 조합시킨 접근방법이다. 미국이 이러한 대외무역에 대한 정책의 변화를 보이게 된 계기는 일본의 영향이 컷다. 대외무역에서 세계최대의 채권국이었던 미국이 1980년대 말에는 채무국으로 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일으킨 데에는 일본의 영향이 컷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은 다른 국가에게 공정한 무역을 할 것을 원하게 된다. 이른 위해 WTO의 출범을 주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WTO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자신의 산업은 보호하는 전략으로 사용하고 타국가의 보호무역은 막으려는 것이다. 이러한 표리부동한 행위들은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리포트의 주제인 반덤핑관세의 불합리한 과세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신문기사와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이 신문기사는 미국이 지난 2004년 7월 중국과 베트남산 새우에 부과한 반덤핑관세에 대한 기사이다. “중국과 베트남산 새우에 대해 최고 112%의 반덤핑관세 부과 결정을 발표한 가운데 베트남수산물수출가공협회(VASEP)는 7일 이 결정이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VASEP는 이날 특별성명을 통해 미국에 수출되는 베트남산 새우가 의도적으로 시장가격 이하로 덤핑판매된 적은 결코 없다고 강조한 뒤, 미 상무부의 이번 결정이 부당한 것은 물론이고 베트남의 새우양식어민들과 미국 소비자들의 피해를 가중시키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성명은 "미 상무부가 베트남측 새우양식업체들이 제출한 원.부자재의 실제가격 자료 등을 철저하게 검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VSEP는 이번 결정이 작년 미국 내 새우 양식업체들을 대표하는 남부새우동맹측이 베트남, 중국, 태국, 브라질, 에콰도르, 인도 등 6개국에서 생산돼 미국에 수출되는 새우에 대해 최고 263%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청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나머지 관련국들과 강력하게 공동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미 상무 미국 전체 수입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율이 3.5%로 독일(5.4%), 캐나다(18.7%)보다 낮은 점을 감안하면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제소조치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는 제소건수의 절반이 넘은 41건에 대해 산업피해 긍정판정을 받아 이탈리아(32.9%), 독일(28.2%), 캐나다(32.4%)에 비해 불이익을 많이 받았다. 불공정 무역관행 시정을 명목으로 발동된 미국 통상법 301조의 사례 119건을 보더라도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10건을 발효, 이중 8건을 성공시켰다. EU(50%), 일본(78.6%), 캐나다(55.6%)보다 높은 성공률이다. 개도국은 미국에서 차지하는 수입비율이 40.1%이지만 반덤핑 및 상계관세 전체건수의 47.7%를 제소당해 미국의 제소조치가 개도국에 편중돼 있음을 입증했다. 오 국장은 "미국은 대선, 대통령의 소속정당, 의회선거, 무역수지, 경제성장률,상대국의 교역규모, 무역수지 등 복합요인을 통해 통상정책이 움직인다"면서 "이에대응하려면 다자간채널, 효율적인 체제구축, 전문인력 양성, FTA 적극활용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것도 WTO의 최혜국대우에 어긋나는 것으로 수정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반덤핑제도가 무역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자. 미국의 반덤핑 제소현황을 알아보면 80년대에 미국으로부터 반덤핑 제소를 받은 국가는 총 50여개국 428건에 달한다. 이시기 반덤핑 제소를 가장많이 받은 나라는 일본으로 총 52건이 제소되었으며 우리나라는 23건이 제소되어 브라질과 함께 6위를 기록하였었다. 이 기간중 협상타결, 반덤핑관세 부과 및 제소 기각건수의 비율은 각각 3분의 1정도이다. 그러면 이러한 반덤핑 제소가 미국의 수입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쳣을까? 80년대 덤핑혐의로 제소된 235건을 대상으로 반덤핑 제소가 미국의 수입에 미친 영향을 보면 반덤핑 당사국으로부터의 수입 미국이 반덤핑관세를 부과한 경우 당사국으로부터의 수입은 대체로 관세부과 전에 비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음. 기간별로 보면 관세부과 우보다 조사후 제소가 기각된 경우의 수입전환효과가 훨씬 크고, 반덤핑관세가 부과된 경우에는 세율이 높을 수록 동 효과가 더 컸던 것으로 나타났음.(고율관세 부과시에는 부과 2년후 30%, 3년후 40% 증가한 반면 저율의 관세부과시에는 동 기간중 15-20% 증가에 그쳤음.) 또한 반덤핑관세 부과 대상국가가 늘어날수록 동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 제3국으로부터의 수입증가율은 낮았던 것으로 나타남. 한 국가에 대해서만 관세를 부과한 경우 제3국으로부터의 수입은 관세부과 1년후 35% 증가하였으나 3개 이상 국가에 대해 관세를 부과할 경우 동 수입은 4% 증가에 그쳤음. 관련상품 총수입을 보면 이와 같이 반덤핑 제소시 당사국으로부터 수입은 감소하나 수입전환효과로 인해 제3국으로부터의 수입이 늘어남으로써 관련상품 총수입은 오히려 증가하였음. 반덤핑관세가 부과되었을 경우에는 1년후 당사국으로부터 수입이 11% 감소한 반면 관련상품 총수입은 오히려 15% 증가하였으며 2년후에는 당사국으로부터 수입은 9% 감소하지만 관련상품 총수입은 11% 증가 덤핑조사후 제소가 기각되었을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있는데 1년후 당사국으로부터 수입은 5% 증가에 그친 반면 관련상품 총수입은 19% 증가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반덤핑관세 부과가 관련상품 총수입 억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음. 관세가 부과한 경우의 관련상품 총수입증가율은 수입전환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조사후 제소가 기각된 경우보다 약 5-10%포인트 낮음. 따라서 반덤핑 조치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소된 당사국으로부터의 수입감소효과만을 보아서는 안되며 제3국으로부터의 수입증가효과를 함께 고려하여야 함. 수입단가 및 수입물량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반덤핑 제소시 수입단가는 제소가 기각되었을 경우보다 실제로 관세가 부과되었을 경우에, 그리고 저율의 관세 부과시보다 고율의 관세가 부 과되었을 경우 더 높게 상승하였음. 관세부과후 3년동안 수입단가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을 때보다 2배이상 상승했다.있다.
    경영/경제| 2005.10.16| 8페이지| 1,500원| 조회(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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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역]장보고의 나라를 읽고
    국제 무역사학 번 :A231054이 름 :김 상 원담당교수 : 이 균서론내가 읽은 장보고의 나라라는 책은 2003년 동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제직중인 윤명철박사와 그의 대원들이 중국을 시작으로 해서 한국을 일본을 잇는 황해를 뗏목으로 항해한 것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기행문이다. 윤명철박사의 이번 여행의 목적은 1000년 전 아시아의 바다를 지배하였던 장보고의 업적을 기리고 장보고에 대한 부족한 사료대신에 그가 1000년 전에 항해했던 길을 따라 그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한 한 걸음이 이었다.윤명철박사는 사학박사인데 왜? 사료를 가지고 연구하지 않고 하필이면 힘들게 태풍과 맞서며 장보고에 대한 연구를 한 것일까? 그것은 우리나라에는 장보고에 대한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또 있다고 해도 간략히 그가 실존했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오히려 그의 본국보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그에 대한 자료를 얻기 더 쉬울 정도이다. 그러면 천 년전 동아시아 바다를 지배해 거대한 해상왕국을 건설한 위대한 인물에 대한 자료가 이렇게 없는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장보고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추측할 수가 있다. 장보고는 당시 경제력 및 군사력에서 신라중앙의 세력에 버금가는 형세를 이루었다. 이를 두려워한 신라귀족들의 암살에 의해 우리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상왕은 자신의 뜻을 제대로 피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뭍혔다. 역사는 사실을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의 주관이 섞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마도 정권을 장악한 중앙에서 장보고에 대한 기록을 말소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예전 우리가 일제의 지배하에 있을 때 우리 역사에 또 다른 해상의 영웅인 이순신장군에 관한 이야기는 금지인 동시에 거북선에 대한 그림을 유포하는 것도 법에 저촉을 받았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장보고에 대한 기억은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을 것이다. 그리고 신라사람이면서도 한국보다 외국에 자료가 더 많은 사람이 되어버린것이다.본론이제 책 내용으로 들어가면 이 책의 시작은 중국의 법화원에서부터 시작한 그다지 노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사용해서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급박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에는 이도 없으면 항해를 할 수가 없고 침몰의 위험도 있다. 이러한 준비를 마치고 중국측의 환송을 받으며 2003년 3월 26일 사스가 창궐했던 중국의 법화원을 뒤로하고 황해로 기수를 돌렸다. 이번의 항해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항해를 강행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이번의 기회는 그에게는 커다랗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번 항해는 3월 하순으로 아직도 추위가 사그러 들지 않은 시기인데다가 바다는 지상보다도 추위가 더 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날씨 또한 도움을 주지 않아 바람을 받아야 순항을 하는 뗏목이 계절풍을 받지 못해 원래 원하던 항로로 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안고 출발한 대원들의 처음의 기분은 반드시 동북아의 해상왕이었던 장보고가 천년 전 수시로 다니던 항로를 답사하여 장보고에 대한 이해를 하겠다는 결심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작은 비슷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서해를 너무 얕보았던 탓일까? 서해의 파도가 다른 바다의 파도에 비해서 얕다고 생각한 때문일까? 이번 항해에서 대원들은 상당한 고전을 겪게 된다. 계절풍의 영향을 받지 못하여 직선로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항로는 U자형으로 밑으로 갔다가 위로 올라가는 항로를 그려 북한으로 갈 위험도 있었다. 그보다 견디기 힘든 일은 출렁이는 파도에 의해 고통받는 몸이었다. 날씨도 한 몫 하였다. 맑은 날이 지속되도 힘든 항해에 흐린 날이 지속되고 비가 지속적으로 내려 괴롭혔기 때문에 대원들은 일차 중국에서 한국의 변산반도까지의 계획된 항해를 다 못 채우고 인천앞바다에서 국내의 해경선에 예인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잠시간의 휴식과 장비의 재점검 부족한 물자의 보충을 위해 일주일간의 휴식을 갖고 해안선을 따라 제주도로 향하였다. 원래의 계획은 자신들 스스로 제주도까지 갔으면 했지만 해안선 근처에는 양식장 및 기타의 그러나 그것도 결국은 일본의 해경선에 예인되는 반쪽의 성공으로 끝난다. 이러한 항해를 겪으면서 필자는 장보고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애썼다. 그러면 과연 장보고는 누구인가? 그의 이름은 장보고(張保皐) 다른 이름은 궁복(弓福)·궁파(弓巴)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무예에 뛰어났고 물에 익숙하였다. 일찍이 HYPERLINK "http://100.naver.com/100.php?id=43519" 당나라 서주(徐州)에 건너가 무령군소장(武寧君小將)이 되었으나, 신라에서 잡혀간 노비(奴婢)의 비참한 처우에 분개하여 사직하고 귀국했다. 해적들의 HYPERLINK "http://100.naver.com/100.php?id=129543" 인신매매를 근절시키기 위해 왕의 허락을 얻어 1만의 군사로 해로의 요충지 청해(淸海:莞島)에 진을 설치하고 가리포(加利浦)에 성책을 쌓아 항만시설 을 보수, 전략적 거점을 마련했다. 그리고 청해진 대사(淸海鎭大使)가 되자 휘하 수병을 훈련시켜 해적을 완전 소탕했다. 그러면서 해상무역을 장악하였는데 그가 해상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당나라는 각지에 절도사(節度使)가 할거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장보고는 그러한 지방군벌의 속성과 그들의 군대양성 방법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중국의 동해안 지역에는 남으로는 양자강 하구 주변에서 북으로는 산동성(山東省) 등주(登州)에 이르는 지역일대에 많은 신라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 들 중에는 연안 운송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자들도 있었고, 양주(揚州)·소주(蘇州)·명주(明州) 등지에서 아라비아·페르시아 상인과 교역하는 한편, 중국과 신라·일본으로 내왕하며 국제무역에 종사하던 자들도 많았다. 해안지역 출신으로 바다에 익숙하였던 장보고는 이러한 해상무역에 대하여 깊은 인상과 이해를 얻었다. 또한, 그 무렵 당나라나 신라 모두 중앙집권력이 이완되어, 흉년과 기근이 들면서 잇달아 각지에서 도적이 횡행하였다. 바다에서도 그러하여 해적이 신라 해안에 출몰하여 많은 주민들을 포획해가 중국에 노로 풀솜〔綿〕과 비단〔絹〕 등을 가져갔다. 당나라와의 교역에서도 통일 기 전에는 주로 토산품이 수출되었으나, 통일 기 이후에는 고급직물과 비단 및 금은세공품이 수출되었다. 또한, 당시 신라귀족들이 애용하였던 향료 등의 동남아시아 및 서남 아시아산 물품들도 신라상인의 중계무역으로 수입된 것이다. 장보고의 무역선도 대체로 이러한 물품들과 피혁제품·문방구류들을 취급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장보고는 무역활동과 함께 나아가 외교교섭까지 시도하였다. 840년(문성왕 2)에 무역선과 함께 회역사(廻易使)를 파견하여 일본조정에 서신과 공물을 보내었다. 이러한 시도는 일본측에 의하여 국제관례에 따라 거부되었지만 무역은 계속되었다. 또한 당나라에는 견당매물사(遣唐賣物使)의 인솔하에 교관선(交關船)을 보내어 교역을 활발히 하였다. 회역사와 견당매물사의 칭호가 붙은 교역사절을 파견하였던 사실은 그가 일반 무역상인과는 달리 독자적인 세력집단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일본의 지방관과 승려 엔닌(圓仁)이 장보고에게 서신을 보내어 그의 귀국을 보살펴줄 것을 탄원하였다는 것은 일본·신라·당을 잇는 당대의 해상교통로에서 그의 위세가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산동성 문등현(文登縣) 적산촌(赤山村)에 법화원(法華院)을 건립하고 이를 지원하였다. 이 법화원은 상주하는 승려가 30여명이 되며, 연간 500석을 추수하는 장전(莊田)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지역 신라인의 정신적인 중심지로서 법회 때에는 한꺼번에 250여명이 참석하였던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장보고의 세력이 중국 동해안의 신라인 사회에도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또한, 그 자신이 한미한 신분 출신이었으므로 골품제와 같은 기존의 신분제에 구애됨이 없이 유능한 인재들을 널리 받아들였고, 또 환대하여 그들의 능력을 적극 발휘할 수 있게 하였다. 812년(헌덕왕 7) 흉년이 들자 170여명의 굶주린 자들이 바다 건너 중국의 저장(浙江)지역에 먹을 것을 구하러 갔으며, 이 무렵 일본에 300여명이 건너간 것과 같은 사실 희강왕이 피살되고, 민애왕이 즉위하였다. 이 정변을 틈타 장보고는 김우징일파를 강력히 지원하여 군대를 보내어 경주로 반격하게 하여, 김우징이 왕으로 즉위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신무왕은 그를 감의군사(感義軍使)로 삼는 동시에 식실봉 이천호(食實封二千戶)를 봉하였고, 그의 세력은 중앙정부를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중앙귀족들은 그의 딸을 문성왕의 왕비로 맞아들이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 뒤 청해진과 중앙정부 사이에는 대립과 반목이 심화되어갔다. 그러자 중앙정부에서 한때 장보고의 부하였던 염장(閻長)을 보내어, 짐짓 그의 막하에 투항한 척하다가 그를 암살하게 하였다. 그의 암살 뒤 그의 아들과 부장 이창진(李昌珍)에 의하여 청해진 세력은 얼마간 유지되어, 일본에 무역선과 회역사를 보내어 교역을 계속하기도 하였다.그러나 곧이어 염장을 비롯한 중앙군의 토벌을 받아 청해진은 완전 궤멸되었다. 851년(문성왕 13) 청해진의 주민을 벽골군(碧骨郡:전라북도 김제)에 이주시키고, 청해진을 없애버렸다. 장보고는 불의에 피살되었으나, 그는 8세기 후반 이래의 신라인의 해상활동의 한 정점이었으며, 신라 말기 각지에서 등장하는 호족세력의 선구적 존재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장보고는 우리나라가 현재 하지 못한 일을 천년 전에 이룩한 멋있는 사나이였다.결론이번의 여행은 분명 완벽한 성공은 아니었다. 그러나 커다란 고생 통해 해양강국이었던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또 21세기의 새로운 주인이 될 아시아의 3대 강국의 교류의 하나의 장으로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렇듯 이번의 여행은 단순히 뗏목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간 것이 아니라 역사 및 문화가 흘러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키워드였던 장보고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기술력의 발달로 폭풍우도 헤쳐나는 것도 가능하고 GPS장비를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고 또한 통신장비를 통해 외부에 자신의 위험을 알리는 것도 가능하지만 천 년 전에는 이러한 장비이다.
    독후감/창작| 2005.10.16| 6페이지| 1,000원| 조회(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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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차 ] 녹차시장의 소비자행동적분석 평가A좋아요
    서 언우리가 처음에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 토론을 거듭한 결과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 이유는2003년부터 지금까지 나온 광고가 너무 많았고 성공한 제품도 역시 다양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얘를 들자면 아미노 음료를 들 수 있고 참 선식 등의 웰빙 상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우리가 녹차를 선정한 이유는 발매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고 우리의 정서와 많이 친근한 제품이기 때문이다.먼저 녹차에 대해서 알아보면 녹차란? 차나무의 잎을 발효시키지 않은 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내어 만드는 차이다. 녹차의 역사를 살펴보면 녹차를 처음으로 생산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곳은 중국과 인도이다. 그 후 일본 ·실론 ·자바 ·수마트라 등 아시아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중국에 이어 일본이 녹차 생산국으로 자리잡고 있다. 차는 제조과정에서의 발효 여부에 따라 녹차 ·홍차 ·우룽차로 나뉜다. 어떤 차를 제조하든 차나무의 잎을 원료로 사용한다. 새로 돋은 가지에서 딴 어린잎을 차 제조용으로 사용하며, 대개 5월 ·7월 ·8월의 3차례에 걸쳐 잎을 따는데, 5월에 딴 것이 가장 좋은 차가 된다. 차나무는 HYPERLINK "http://100.naver.com/php?id=87119" 상록수로 비교적 따뜻하고 강우량이 많은 지역에서 잘 자란다. 녹차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딴 잎을 즉시 가열하여 HYPERLINK "http://100.naver.com/php?id=85785" 산화효소를 파괴시켜 녹색을 그대로 유지하는 동시에, 수분을 증발시켜 잎을 흐늘흐늘하게 말기 좋은 상태로 말린다. 예전에는 사람이 가마솥에서 직접 잎을 손으로 비벼 말았다. 그 후 가열을 계속하여 대부분의 수분을 제거하여 어느 정도 바삭바삭하게 만든다. 근래에 와서는 증열기 ·조유기(粗機) ·유염기(捻機) ·재건기(再乾機) ·정유기(精機) ·건조기 등을 사용하여 차를 제조한다. 녹차는 많은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다음과 같은 동맥경화&고혈압 예방 으로 각광받고 있는 감성바람이 유통업계에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다. 제품에 갖가지 이미지를 부여해 신세대들의 잠재구매력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 경쟁력도 배가시킬 수 있으며 단기간에 제품 이미지를 인식시켜 히트상품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소비자들의 잠재된 구매력을 끌어내기 위해서 그린이라는 색상을 통해서 자연이라는 이미지와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느끼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또한, 젊은 층의 생황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이 광고에서처럼 그들의 생활에 동요를 유도하고 있다.고객의 육체적인 경험과 라이프 스타일을 강조하면서 이를 가능케 하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 행동마케팅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2004년 방영중인 런칭광고에 반영되었다. 젊은 두 남녀 모델을 통해서 언제나 녹차와 함께하는 젊은이들의 생활을 담아내면서 소비자들의 동조를 얻고자 시도한다.감각적 요소에 소구언어적/시각적 광고에 대한 소비자 태도 ( http://www.advertising.co.kr/) ,컬러가 이제는 효용가치에서 새로운 상품의 부가가치로 그 존재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즉, 컬러가 부여할 수 있는 심리적 내지 생리적 효용,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 시각 전달에 사용하는 효용 이외에 컬러는 상품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현대의 상품은 이미지로서의 상품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바로 상품이 지닌 본질적인 속성 이상으로 기업은 상품의 소비자언어적/시각적 광고에 대한 소비자 태도 ( http://www.advertising.co.kr/) ,도상품의 이미지를 산다.이미지를 산다는 것은 마치 그림자와 같이 실체가 없는 것을 사는 듯한 느낌도 주지만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의류분야에서 보면, 의복은 본래 몸의 보호, 보온 등의 기능성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의 기능이 상품 가치의 중심적인 위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작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은 입생 로랑의 색이고 그 드레스다. 상품에“보성녹차”을 발매함으로써 음료시장 속에 본격적인 캔녹차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동아 오츠카에서는 음료시장의 동향, 소비자 욕구의 변화 그리고 경쟁상황 등 3가지 측면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끝낸 후, 본격적으로 캔 녹차 시장에 뛰어들기로 결정하였다. 즉, 그린타임의 발매배경을 두 가지로 요약해 보면, 첫째 다류 음료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경쟁사에서 먼저 캔녹차를 출시하였으므로,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 이미 만만치 않은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캔 커피시장의 소비자 중에 이미 캔커피에 식상한 소비자 계층을 발견했고, 이러한 계층을 목표로 한 새로운 다류 캔음료 시장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동아 오츠카에서는 음료시장에 대한 분석과 이미 녹차 음료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존에 있는 녹차음료 시장의 소비자들을 연령층에 따라 나누었고, 목표 고객을 결정하고 그들의 욕구와 라이프 스타일을 분석하여, 그에 맞는 전략을 구사하였다.기존 녹차시장 소비자의 욕구분석누가중년층에서 노년층언제/어디서손님접대, 식후에, 음주 후에, 여유를 즐길 때건강을 생각할 때, 무료함을 달랠 때, 아침에 일어나서집안에서, 직장에서, 야외에서, 자판기어떻게일회용(인스턴트), 캔녹차, PET병왜건강에 좋다, 숙취제거, 피부미용효과, 손님접대대화매체, 청량음료, 사색을 위하여은은한 맛과 향,품위 이미지,동양적,전통적목표시장의 소비자의 욕구분석누가20대 초반의 젊은층언제/어디서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어떻게캔이나 PET병왜건강에 좋다, 암예방/숙취,피로회복피부미용 효과, 청량감(상쾌한 맛/갈증해소)전통적 감각추구와 함께 현대적 이미지, 자연지향적타겟마켓의 결정타사의 녹차음료 제품이 녹차 시장에서 강력한 선두에 위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목표 소비자의 연령층과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세분시장을 구분하여 타겟이 되는 연령층을 결정하고 그들이 음료를 마시는 상황,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어 차별을 두고 전략을 구사했다.시키면서, 흑백으로 처리된 배경과 인물과 그린색상만을 글자와 테두리, 녹차잎에 부각시키면서 자연 자체의 그린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이 광고의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모던한 분위기의 갤러리를 거닐며 여유를 즐기고 있는 여자 모델 이은주, 그녀가 마주선 화폭 속에는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시계가 그려져 있다.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날아 온 녹차잎이 그린타임 녹차를 든 이은주의 손끝을 스치는 순간 그림 속 시계의 분침이 딸깍 하는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이어 그림 속에서 녹차 잎을 실은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주위를 감싸며 휘돌며, “이제 새로운 자연이 내게로 온다”라는 멘트를 한다. 순간 갤러리의 바닥에 푸른 잔디가 펼쳐지는 듯 싶더니 이은주가 서 있던 갤러리는 어느덧 녹차잎이 날리는 시원한 들판으로 펼쳐진다. 그 안에서 자연이 준 시간을 만끽하며 은은하게 녹차를 마시는 이은주는 그린타임 녹차의 깊고 진한 맛에 반해버렸다.이 광고는 기존 녹차광고의 전형적인 형식과 틀을 탈피한 색다른 느낌의 그린타임 광고에는 그린타임만의 녹차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담겨 있다. 모던한 분위기의 갤러리가 시원한 바람이 부는 푸른 초원으로 변신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한 3D CG 작업에 첨단의 영상기술과 막대한 시간이 투입되어, 막상 광고를 보면 CG에서 오는 이질감이 전혀 없는 자연스러운 장면이 스케일감 있게 펼쳐진다. 광고의 엔딩에서는 스펙타클하게 펼쳐지는 싱그러운 초록의 들판은 제주도 로케로 촬영되었다고 한다.그린타임 광고의 소비자 행동적 분석(의사결정과정과 정보처리 과정)소비자 의사결정 과정1. 문제의 인식소비자는 어떤 사안과 관련하여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실제상태(actual state)와 이에 상응하는 바람직한 상태(desired state)간에 상당한 차이(gap)을 지각했을 때 그 차이를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수단에 대한 욕구를 환기한다. 욕구의 환기가 즉 문제를 인식(problem recognition)하는 단계이다.동아 오츠카의 그린타임의 2 동시에 자극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고객에게 우연적 노출로부터 선택적 노출로의 유도를 하는데 신인 배우인 조윤희와 김동윤이 일상생활에서 사랑과 녹차를 즐기는 장면을 녹차빛 화면구성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소비자가 노출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다음으로는 정보처리과정의 두 번째 단계인 주의에 관해 말해 보겠다. 주의란 개인소비자의 인지적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시점에서 노출되는 모든 정보를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개인의 인지시스템은 유입정보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계속적인 정보처리를 위하여 이 중의 일부를 선택하게 되는데 이러한 메커니즘이 곧 주의가 된다. 다시 말해 주의는 특정 정보에 대한 정보처리 능력의 집중이라고 표현된다. 주의와 노출의 개념은 구분하기 상당히 모호하다. 쉽게 표현하자면 어쩌다 눈에 띈 것은 노출이고 노출된 것을 바라보는 것은 주의라고 할 수있다.주의에 대한 개인적 요인의 영향은 매우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관여도와 기존의 신념과 태도, 소비자의 감정상태, 광고에 대한 적응 등에 따라 달라진다. 주의와 관여도와의 관계를 보면 주의는 관여도에 의해 달라지는데 그린타임은 음료이기 때문에 저관여 상품이므로 대부분의 고객들은 정보에 노출되더라도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린타임의 광고방법처럼 광범위한 광고매체를 사용하여 고객에게 노출의 빈도수를 높인다면 고객의 인지적 구조에 자리잡게 되어 훗날 소비자의 기억에서 회상될 수 있다. 그린타임의 경우에는 “나의 생활은 녹차다”,”나의 물은 녹차다”,”나의 건강은 녹차다”와 같은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제시하여 소비자의 인지적 구조화가 쉽게 되도록 하고 있다. 소비자는 정보처리능력의 한계로 자신과의 관련성이 높은 정보에는 주의를 기울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지각적 경계라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지각적 경계에 의해 소비자는 필요한 정보에 보다 주의를 할 수 있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상품이 고객의 지각적 경계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이 목E 24
    사회과학| 2004.11.14| 24페이지| 1,000원| 조회(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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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방법서설을 읽고 평가A+최고예요
    방법서설을 읽고서이 책에 대한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책의 저자인 데카르트와 책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먼저 이 책의 저자인 데카르트에 대해서 프랑스의 철학자 및 수학자로서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다음으로 책의 개괄적인 내용을 설명하자면 이 책은 작자인 데카르트가 41세 때인 1637년에 네덜란드의 얀 마이레 출판사에서 저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출판되었고, 정확한 타이틀은 “이성을 올바로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 이야기[서설], 그리고 그 방법의 시도인 굴절 광학, 기상학, 기하학”으로 모두 5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의 처음의 78페이지가 “방법 서설”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진리를 찾아내는 “방법)“에 대해서 짧게 설명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진리를 찾기 쉽게 하기위한 지도서이다. 방법 서설은 여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제 1부는 학교에서 배운 인문학이나 스콜라 철학 등의 여러 학문을 검토하고, 그 학문들이 불확실하며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학업을 마친 다음에 책 등속을 버리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제 2부에서는 독일의 난로 방에서의 사색을 통해 학문 혹은 자신의 사상 개혁을 위한 ‘방법’이, 4개의 규칙으로서 제시되어 간다. 명증, 분석, 종합, 매거. 이것은 수학의 어려운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고, 나아가 자연학의 여러 문제에도 적용되며, 여러 학문의 보편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표명된다. 제3부에서는 도덕(moral)을 다루고 있다. 당장 살아가기 위한 실생활의 지침이 3개의 규칙으로서 서술된다. 스토아적 색채가 남아 있는 이 도덕은 임시의 잠정적인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그 후 새로운 학문의 방법에서 새로운 도덕이 생겨나지는 않았고, 데카르트는 평생 동안 그 이상의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제 4부에서는 형이상학의 기초를 언급하고 있다. 방법적 회의를 거쳐 ‘정신으로서의 나’, ‘신’, ‘외계의 존재’가 제시되어 간다. 철학사상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 한다’, 심신 이원론, 그리고 스콜라의 용어나 개념을 사용하면서 이루어지는 신의 존재의 증명 등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회의한 끝에 의식의 내용은 의심할 수 있어도 의식하는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 한다’를 철학의 제1원리로 삼고, 확실한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제 5부에서는 출간하지 못했던 의 에센스가 상상 이상의 것으로 일컬어지고 우주와 자연현상, 기계적인 인체론이 기술되고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논했다. 제 6부에서는 갈릴레이가 단죄된 사건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는 데카르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게 만드는 철학, 자연의 연구과 그 의미, 의 출간을 중지한 경위, 그리고 이 텍스트를 우세에 남기는 이유 등이 서술되어 있다.이제 위에서 설명한 각부의 내용을 자세히 다뤄보겠다. 먼저 1부에서는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학교에서 배운 인문학과 철학에 대해서 검토하고 이 것들이 인생에서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1부에서는 양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데카르트는 양식은 이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즉, 누구나 올바른 판단을 하고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능력을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사물을 판별하는데 의견이 분분한 것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욱더 이성적이라서가 아니라 단지 서로 생각을 다른 쪽으로 이끌어가고, 동일한 사물을 고찰하고 있지 않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어려서부터 인문학 및 수학 등의 학문을 공부하였는데 인문학을 공부하면서는 인생에 유익한 모든 것을 인문학을 습득함으로 해서 얻을수 있다고 배워왔지만 인문학 공부를 마치자 생각이 바뀌어 면학에 힘쓰면 힘쓸수록 더욱더 무지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수학을 공부하면서는 수학의 논거의 확실성과 명증성에 대하여 알게 되었지만 아직 수학의 진정한 용도에 대해서는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역시나 실생활에서는 그다지 효용이 없다고 생각된다고 하였다.2부에서는 자신이 30년 전쟁 동안에 독일에 거주하면서 사색을 통해 얻은 학문 혹은 사상개혁을 위한 “방법”이 제시된다. 사색을 통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중 데카르트는 우리의 판단력이 태어난 순간부터 이성을 완전히 작용시켜 이성에 의해서만 이끌려왔다는 경우만큼 순수하고 견고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사색을 기초로 진리를 얻고자하는 방법으로 논리학)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규칙 대신에 스스로 4가지의 규칙을 만들었는데 첫째, 일반적으로 명증성의 규칙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 이든 내가 명증적 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 것이든 진실로서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었다. 둘째, 일반적으로 분석의 규칙이라고 불리는 내가 검토하는 어려운 문제 하나하나를 가능한 많이, 더구나 문제를 보자 잘 풀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작은 부분으로 분할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일반적으로 종합적인 규칙이라고 불리는 나의 사고를 순서에 따라 이끌어가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인식하기 쉬운 것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계단을 올라가는 식으로 가장 복잡한 것들의 인식에까지 올라가고, 자연 상태에서는 서로 앞뒤의 순서를 알 수 없는 것들 사이에도 순서를 상정하여 나가는 것이다. 넷째, 일반적으로 열거의 규칙이라고 불리는 모든 경우에 하나하나 철저히 살피고 전체에 걸친 재검토를 하여,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것을 기초로 하여 데카르트는 가장 단순하고 인식하기 쉬운 것부터 시작해서 데카르트 이전의 수학자들이 증명한 모든 부분과 스스로 개척한 부분 모두를 고찰하게 된다.3부에서는 이성과 행동에 불일치를 막기 위하여 몇 가지의 도덕률을 제시하는데 그 첫째 격률은 내 나라의 법률과 관습을 따르는 일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의견 가운데 가장 온건하다고 생각되는 것만을 선택해서 행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 이유로 데카르트는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모든 극단적인 것보다는 중용을 지키는 의견이 행하기에 가장 편리하고 최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둘째로, 중용의 의견을 따라서 실수했을 경우에도 양 극단 중의 한쪽을 선택한 다음에 다른 쪽을 택했어야 했다고 이해하기 보다는, 참된 길에서의 간격이 좁혀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의 격률은 자신의 행동에 있어 되도록 확고하고 과단성 있게 행동하고, 아무리 의심스러운 의견이라도 일단 그렇게 정한 이상은 매우 확실한 의견일 때 못지않게 일관하여 따르라는 것이다. 세 번째의 격률은 운명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이겨내도록, 세계의 질서보다도 자신의 욕망을 바꾸도록 항상 힘쓰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완전히 우리의 능력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은 우리의 사상밖에 없다고 믿듯이 자기를 습관들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종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직업을 대충 살펴보고, 그 중에서 가장 최선의 것을 선택하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전 생애에 걸쳐 자신의 이성을 배양하고, 스스로 규정한 방법에 따라 가능한 한 진리를 인식하는데 만족을 얻어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4부에서는 형이상학의 기초를 다루고 있는데 그 것을 살펴보자면 감각이 때로는 우리를 기만하여 잘못된 추리를 할 수도 있으므로 이전에는 논증으로 간주하고 있던 추리를 모두 허위로 보고 폐기해 버리는 것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을 회의하기 시작하여 다음과 같은 철학의 제 1원리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것으로 인해 자신은 하나의 실체이며, 그 본질 내지 본성은 생각한다는 것에만 있을 뿐 존재하기 위해서는 하등의 장소도 필요치 않고, 물질적인 것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로써 심신의 이원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또, 사색하던 중 자신의 존재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닫고 전혀 결함이 없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어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우리의 완전무결하지 않은 점을 들어 우리의 생각의 오류가능성 제시하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4.11.02| 3페이지| 1,000원| 조회(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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