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환경 비디오 자료 감상문1.위대한 실험 (생명체의 위대한 진화의 실험)지구의 역사에 따라 각각의 시기의 특징적인 사건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45억년 ; 선 캠브리아기35-20억년 ; 원핵 세포 출현20-10억년 ; 진핵 세포 출현캠브리아기 ; 종의 폭발적 증가위 사건들은 생물의 진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비디오 자료에서는 위와 같은 생물의 진화에서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미국 로키산맥의 퇴적암에는 당시의 생물종을 잘 보여주고 있는 셰일층이 있다. 버거스 셰일 (혈암, 매우 견고한 화석) 이라는 셰일층으로 약 5억 3천만년 전에 형성되었으며 과거에는 해저였다. 이 층은 융기에 의해 산맥을 이루었고 따라서 산 위에서 해저 생물의 화석이 나타난 것이다. 그 당시는 캠브리아기로서 생물들이 대량의 토사에 의해 그대로 화석으로 묻혀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절벽의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흙이 해저로 대량 들어가 생물들 한꺼번에 빠른 시간에 매몰된 것이었다. 그 당시의 생물종을 화석을 통해 살펴보면 오파비니아(눈 5개, 코끼리 코), 할루시제니아(환각이란 뜻을 가짐) 넥토카리스, 디노미슈스 (꽃과 비슷한 모습), 오돈토그리피스 등의 지금은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양을 한 다양한 생물들이 많이 나타났다.최초의 단세포 생물이 진화한 이후에는 10억년 전 30개의 세포를 가진 디사이미나가 출현하고 6억년 전 천해에서 대기 중으로 산소가 증발하고 영양분이 바다로 흘러듬으로써 에디아카라힐스(호주남부)에서 작은 크기의 연한 조직을 가지는 다세포 동물의 출현을 발견하였다.그 이후로 육식 동물이 출현하였는데 그 최초의 생물이 바로 아노말로카리스이다. 아노말로카리스는 해파리의 입모양과 촉수를 가진 길이 60cm , 14쌍의 지느러미가 있었다. 이 명칭의 뜻은 이상한 새우라는 말인데 처음 학자들이 화석을 발견했을 때 머리가 없는 새우 모양이였다고 한다. 나중에 이것은 아노말로카리스의 일부분인 촉수로 발견되었지만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인간이 발달했을 것이라는 획기적인 가정을 종의 기원이라는 책에 내놓게 된다. 그때까지의 통념과 많은 부분이 다른 가정이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다.뇌의 용적으로 비교해 보면 자바인, 북경인이 피테칸트로푸스로 진화한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중간에 출현한 종보다는 현대인과 더욱 닮아 있다.에티오피아 하다르에서는 가장 오래된 인간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루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뇌용량 400cc)는 원숭이와 흡사 하지만 직립을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타났다. 골반이 옆으로 넓게 퍼져 내장기관을 지탱할 수 있게 진화하였으며. 허벅지 골격이 구부러져 무릎으로 체중을 지탱할 수 있었다. 이러한 특징들 덕분에 인간이 두발로 걷는 것이 가능하였을 것이다.따라서 최초의 인간인 루시의 화석에서 보여지듯이 인류 진화의 첫 번째 특징으로는 무엇보다도 직립 보행을 말할 수 있다. 침팬지는 인간의 유전자와 99%가 같고, 공통 조상인 프로콘술에서 진화했지만 직립의 특성을 갖지는 못했다.직립을 하려면 여러 가지 특징들이 나타나는데 우선, 허리의 중둔근은 두 다리로 걸을 때 몸의 균형을 잡아주어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네 발로 걷는 침팬지는 중둔근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수직으로 올라갈 때에만 잠시 사용한다. 따라서 인류로 진화한 프로콘술은 나무를 수직으로 타면서 두 발로 걷는 연습을 할 수 있었으며, 나뭇가지를 타면서 등뼈가 곧게 펴져 수직으로 설 수 있었을 것이다. 프로콘술은 나무 위를 네발로 걸어 다니면서 풍부한 나무 열매를 먹었을 것이므로 자연히 몸무게가 점차 늘어났다. 따라서 다른 나무로 이동할 때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른 나무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전과 같이 나무를 타고 갈 수 없으므로 다른 나무로 걸어서 이동한 후에 올라갔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프로콘술은 걷는 연습을 점차 하게 되었던 것이다.그러면 인간과 침팬지, 혹은 인간과 오랑우탄은 어디에서부터 갈라진 것일까?유전자 염기 서열을 을 저장해 놓는다고 한다. 또한 아카시아나무들은 잎사귀의 표면적을 줄임으로써 증산 작용에 의한 수분 손실을 많이 줄이고 있다.식물의 가장 큰 번식 체계인 꽃을 피우기 위해 사막의 식물들은 특이한 구조를 하기도 한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고무나무로 보호갓 속에서 꽃이 성장하고, 나중에 보호갓은 떨어져 나간다. 어떤 요인으로 진화의 과정에서 식물이 그 방법을 채택했는지 궁금해졌다. 캥거루는 그늘을 찾아다니며 쉬고, 침으로 열을 식히는 등 생물들 모두가 나름의 대책을 세우고 있다.이런 사막에서는 대부분 한꺼번에 비가 내리므로 한번에 많은 양의 수분을 급속히 저장하거나 보충할 수 있는 체계가 필수적이다. 개구리는 1미터의 땅 속에서 살다가 천둥 소리에 깨며 단 2분만에 수분을 보충할 수 있다. 꽃은 이 때를 맞아 최대한 빨리 싹을 틔우고 씨를 만들어낸다. 사막에 못이 소생하면 민물 새우는 2주 안에 알을 신속히 낳을 수 있다. 잠시소생했던 연못에 잠시 생존하던 생물들은 알을 낳은 후 물이 말라 죽게 된다.꿀단지 개미는 조금 특이한 방법으로 영양분이나 수분을 저장해 사막에서 살아가는데, 몸속에 꿀이 저장된 일 개미를 여왕이나 유충들의 먹이로 저장한다.미국 남서부에 위치한 아리조나 사막에서도 역시 많은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곳은 일년 내내 건조하지만 2번의 우기가 찾아와 사막의 생물들에게 수분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이처럼 수분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물들은 여러 모습들을 하고 있다. 오커티오는 잎을 떨어뜨려 증산 작용을 막고 칼로버드는 나무 껍질에 엽록소를 저장하고 있어 잎의 역할을 한다. 또한 프리몰리는 줄기 껍질 안에서 엽록소를 보호하고, 나뭇잎이 가시로 변해 동물의 몸에 매우 잘 붙는다. 따라서 널리 퍼져 싹을 틔울 수 있다. 이 사막의 대표적인 식물인 큰 사바로 선인장은 12미터가지 자라지만 자라는 속도가 느리다. 한번에 몇 달치의 수분을 저장할 수 있으며 따라서 번식에 유리하다. 또한 큰 사바로 선인장들은 동물들의 거 사고에 의한 원유 유출 시에는 다시 한번 돌이킬 수 없는 생태계의 파괴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우리 나라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원유 유출 사고를 보면, 바다에 흘러든 탁한 원유에 의해 일차적으로 햇빛이 바다 속으로 투과하지 못하여 광합성이 일어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광합성에 의존하는 식물성 플랑크톤들이 고사하게 되고 이어서 동물성 플랑크톤이 먹이가 부족하여 죽게된다. 그러므로 바다 속의 1차 2차..소비자들 역시 죽으면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아나크라카토아 섬과 락카타 섬의 천이와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는 자연의 역할 못지않게 인간의 관심과 노력도 요구된다.5.지방 시대를 연다생태보고 우리의 식탁에 매일 오르는 밥과 채소들은 지금 농촌에서 어떻게 길러지고 있을까? 이런 문제에 대해 도시에 있는 현대인들은 거의 생각해 본적이 없을 것이다. 또한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우리의 생명을 이어주는 먹을거리는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우리 사회가 산업화를 겪으면서 농산물의 생산력을 높이고 잡초와 해충도 쉽게 제거할 수 있는 많은 비료, 농약, 제초제가 합성되어 농촌으로 빠르게 유입되었다. 그러나 이런한 화학 합성물들이 정말 그러한 효과를 가지고 있으며 부작용은 없는 것일까? 토양과 화학 비료, 농약, 제초제는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또 궁극적으로 토양과 생물,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이에 대한 좋은 예를 보여주는 곳이 바로 충북 기산군의 한 고추밭이다. 충북 지역은 예로부터 강수량이 많아 농약을 한번 사용하기 시작하자,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많은 양을 사용해야만 했다. 따라서 농작물들은 점차 농약에 내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강한 산성 화학 합성물인 농약을 사용하면서부터 토양은 점차 산성화 되어갔고 기름기 없이 푸석푸석 해졌다. 따라서 이런 흙에서 자라는 농작물들은 흙에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그 역할을 해낼 수 없게 되었다. 식물이 가져야할 자연적인 병충해 내성은 거의가 없어져 이제는 계속적으로 화학 비료를넣어서 함께 농사를 짓는 다면 생산력을 증가시키고 일손도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실제로 미생물을 써온 한 농가에서 주위의 많은 밭에 병충해가 돌았을 때 유일하게 건강한 농작물을 수확한 예를 보았다. 미생물을 5년 정도 넣어준 밭으로 흙이 기름지고 부드러워 식물이 자라나기에 적당하였다. 지속적인 토양 살림이 긴 시각으로 보았을 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사회가 산업화에 이어 다시 정보화의 물결을 타고 변해오는 동안 우리는 과거보다 더 큰 성장과 풍족한 생활을 누려왔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는 먹을거리는 어떻게 변화해 오고 있었을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농촌에서는 우려의 수준을 넘어 막대한 양의 위험한 농약이 사용되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의해 도시의 인구는 넘쳐나고 농촌은 점차 쇠락해 가고 있다. 인구는 과거의 절반도 않되게 줄어들고 노인들만이 농촌을 지키고 있다. 이렇게 극도로 농촌의 노동력이 모자란 현실 속에서 농민들은 농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또한 환경을 사람의 이기에 의해서만 사용하려는 가치관과 물질주의가 팽배했던 산업화 시기에는 생산력의 증대를 위해서 농약 사용을 권장하기도 하였다.그러나 환경과 사람의 관계를 무시하고 자연 정복적인 가치관은 결국 토양의 능력을 잃게 하였다. 우리가 그 문제점을 깨닫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이미 대부분의 토양에서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미래에 닥칠 영향을 정확히 예측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농법에 의해 또 다른 어떤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건강한 토양에서 자란 건강한 농산물을 재배해야 한다. 농산물재배는 비단 농산물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 농산물과 연계되어있는 많은 생물들에도 영향을 미치며 생태계의 가장 위에 위치하는 우리의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자연에 친화적인 농법은 생태계를 보존하며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지금처럼 생태다.
시작하며'죄와 벌'은 누구나 제목은 알고 있을 만한 유명한 고전이다. 작가도 도스도예프스키라는 상당히 유명한 러시아 작가이다.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를 대표할 만한 인간의 내면을 밝히는 작가라고 알려져 있다. 인간의 내면을 밝힌다...... 그런건 내게 중요하지않았다. 다만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지않을까 하여 읽기 시작했다.책을 펴자마자 혼란스러운 주인공의 머릿속이 그려져 있다. 처음엔 여느 서양 고전과 마찬가지로 그냥 읽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라스콜리니코프의 생각을 조금씩 더 알아갈수록 어느새 공감과 그 반대의 감정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면서 책 내용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이 작품이 내게 주는 의미간략한 줄거리부터 알아보도록 하겠다.법과대학의 학생인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이웃의 고리 대금업자인 노파를 살해한다. 살해의 배경에는 인류는 구원하도록 선택된 비범한 인간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추악한 인간을 죽여도 괜찮다는 초인 사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즉, 나폴레옹은 수십 만의 인간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후세의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숭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살인 이후 깊어지는 고립감을 참을 수 없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인 어머니, 누이와의 인간적 단절의 고통을 맛보며, 라스콜리니코프는 번민과 고뇌 속을 방황하다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춘부가 된 소냐를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할 대상으로 소냐를 택한다. 그는 소냐의 발밑에 엎드려 그녀의 발에 입을 맞추면서 '나는 당신앞에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고통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꺼져 가는 촛불 아래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가 읽어주는 성경구절 나자로의 부활을 듣는다. 그는 소냐에게 자기 죄를 고백한다. 자수를 한 그는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되고 소냐도 그녀의 자유의사로 그를 따라가 함께 고통의 십자가를 진다.어렸을때부터 자신이 범인임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몇이든지 그 사람은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얼마후에 찾아올 자신의 평범함에 대한 자각을 겪지 않아도 될것이지만 그러나 그 과정을 겪은 사람보다 덜 성숙할 것이다. 나도 한때는 내 자신이 초인이라고 규정하진 않았지만 꽤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나이가 차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넓어짐에 따라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되었고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받아들여가긴 했지만 말이다. 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을때는 다른 사람이 저지르는 잘못과 내가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 이기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르니까 특별하니까, 나 자신만을 위해서 이렇게 한 건 아니었으므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작고 어설픈 라스콜리니코프였던 것일까? 라스콜리니코프도 나와 비슷한 사상을 갖고 있었다.'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바로 초인과 범인이다. 인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부류는 범인이요, 극소수의 사람이 초인이다. 이 초인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일해야하는 사명을 갖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범인에게 해를 끼쳐도 인류를 위한 일이기에 무방하고 죄책감 또한 가지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인류에 해악을 끼친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죽여도 괜찮다.'그리고 라스콜리니코프 스스로를 초인이라고 생각하고 전당포 노인을 인류에 해악을 끼치는 인물로 규정한 후 죽이기로 마음 먹는다. 이런 라스콜리니코프의 사상을 보면서 한때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공감도 갔지만 공감보다는 그랬던 나에 대한 반성과 그런 생각이 어떤점에서 틀렸는지에 대한 고찰을 하는 기회가 되었다.라스콜리니코프의 사상의 한계와 그 밖의 문제 제기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초인이라고 생각하고 인류에 해악을 끼친다고 판단되는 전당포의 노파를 죽인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라스콜리니코프는 진정으로 그 일이 인류를 위함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인류에 해악을 끼쳐서 반드시 처단해야만 할 인물이 고작 동네의 전당포 노파였을까? 아무리 학생의 신분이었다고는 하나 진정으로 인류를 위하는 일을 하고싶었다면 좀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진정으로 그가 초인이었다면 현재 자신의 어려움을 참고 견뎌 보다 성장한 후에 진정한 인류의 적을 없애려고 했을 것이다. 전당포 노파를 죽인다고 해서 인류에 어떤 혜택이 돌아갈까?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가난함을 견디지 못하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극도로 피곤해진 상태에서 자신을 합리화시킬 이유를 찾기 위해 초인 사상을 생각해낸 것이 아닐까? 라스콜리니코프와는 조금 다르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일상속에서 허울뿐인 대의명분속에서 사실은 자신의 실리를 위해서 일을 해본 경험 말이다. 물론 그 실리를 따지는 두뇌작용이 무의식속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新살아보고 결혼하자'에 대한 감상연극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터라 무엇을 보아야할지.. 어떻게 골라야 할지 막막했다. 처음부터 재미없고 어려운 연극을 보고나서 혹시 갖게될지 모를 연극에 대한 선입견이 두려웠다. 대학로에서 하는 연극들의 목록과 간단한 설명을 보고 많은 고민 끝에 선택한 연극 장르는 코미디...... 로맨틱코미디를 슬로건으로 내건 '新살아보고 결혼하자'라는 작품이었다. 살아보고 결혼하자......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이 현대 사회의 가벼운 애정관을 비판하면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내용일 것 같았다. 그리고 '살아보고'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거에 대해 가볍게 혹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리듬공간이라는 소극장을 찾아가면서 연극에 대한 나의 기대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흔히들 연극과 영화의 차이점을 꼽으라고 하면 배우와 관객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말한다. 내가 본 연극 '新살아보고 결혼하자'는 예우라는 작은 극단이 역시 작은 소극장에서 공연했기때문에 배우와의 교감이 더욱 기대되었다. 그리고 좌석의 맨앞에 앉아 연극을 보게되었다.연극은 전체적으로 가벼웠고 자주 웃음을 터뜨리게 하였으며 내게 생각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예상했던 대로 현세대의 삐뚤어진 애정관을 풍자하는 내용이었고 등장인물들 하나하나가 삐뚤어진 애정관의 유형 하나하나를 대표하는 입체적이고 개성적인 인물이었다. 다만 내 예상에서 빗나간 것은 이 연극에서 바람직한 애정관의 방향을 보여주는 인물이 젊은 세대였다는 것이다.연극에 대한 감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고찰해 보았다. 두 중년의 부부가 나온다. 강호동, 주은혜 부부와 김대문, 고순자 부부...... 각기 삐뚤어진 애정관을 갖고 거기에서 오는 박탈감으로 인한 애정결핍에 시달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의 양심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 호동과 순자는 육개월 가량 부도덕한 애정행각을 벌이며 살았다. 육체적 쾌락에 대한 만족도가 자신의 배우자들에게서는 부족했기 때문에 다른 상대에게서 만족시키려 하면서 죄책감이라곤 없다. 그저 거침없는 애정행각을 벌인다. 한편, 대문은 첫사랑을 잊지 못하며 자신의 배우자인 순자에게 정신적으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반대로 순자에게 육체적 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펼치지 못하고 아내에게 눌려살던 대문은 어느날 극장에서 은혜를 만나 서로를 위로해주며 가까운 사이로 발전한다. 은혜는 원래 적극적으로 종교 생활을 하던 여인으로 남편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정신적 만족감을 종교에서 찾으려고 했었다. 종교 자체로서의 신앙이 아닌 대리 만족감을 위한 신앙이었으므로 대문과의 만남에 그 신앙은 쉽게 무너졌다.이들의 엉킨 애정행각은 자식 대에 까지 이른다. 호동, 은혜 부부의 딸 미선과 대문, 순자 부부의 아들 종태는 2년 전부터 동거를 하는 사이로 현재 결혼 문제로 의견이 맞지않아 생각할 시간을 필요로 하는 상태이다. 이렇게 여섯명의 남녀가 복잡하게 엉킨 상황에서 연극은 진행된다.호동과 순자의 애정행각은 문란해진 성도덕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모습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들이 애정과 육체 관계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을 배우들은 오버액션을 통해 나타내려 하였다. 서로의 인격과 감정에는 별 관심이 없고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들을 거리낌 없이 뱉어내면서도 서로의 육체를 탐했다.대문과 은혜는 배우자에게서 얻지못하는 정신적인 만족을 서로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죄책감을 갖고 소극적 자세를 가지면서도 불륜이라는 행위가 풍기는 유혹에 결국은 쉽게 빠져버리고 마는 심약한 캐릭터들이다. 그들의 심약함을 보여주기 위해 배우들은 여러 가지 몸짓과 대사로 열연했고 결국 관객들에게 가장 많은 웃음을 주었던 부분이 되었다.연극에는 소통의 기능이 있는데 그것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진실이 아니라 거짓임을 관객들이 알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거짓임에도 그것은 있을수 있는 일을 과장하는 등의 재구성한 내용이므로 관객에게 기존에 갖고있던 관념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이 연극에서 내게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가장 많이 준 인물은 미선과 종태이다. 미선과 종태는 2년간 동거한 연인들로 결혼에 관한 의견차를 갖고 있긴 하나 애정관에 관한한 이 극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캐릭터들이다. 동거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나가고 그 후에 서로에게 확신이 들면 결혼을 하려는 진지한 자세로 사랑을 키워나갔으며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 동거는 이기적인 사고방식, 즉 자신의 쾌락만을 생각하고 싫증이 나면 언제라도 헤어질 수 있다는 여지를 가지고서 함께하는 생활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동거라면 부도덕한 생각이 먼저 들었던 내게 그들의 확신에 찬 대화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동거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혼전 순결을 지켜가면서 자신의 동반자를 찾기에 이 세상은 너무나 부도덕하고 위험하다는 생각도 하게되었고, 보다 완전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과도기적 단계, 즉 동거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이 연극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종태와 미선의 양가 부모님들이 상견례를 하면서 얼키고 설키는 장면과 마지막 미선의 긴 대사 부분이다. 종태와 미선이 자신들의 문제로 자리를 비운 동안 서로의 불륜에 대해 알고 분노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웃음과 한숨이 동시에 절로 나왔다. 과연 부부란 무엇인가. 무엇으로 사는것인가 등의 의문이 들면서 서로를 충분히 알지 못하고 서로에게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치러진 결혼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육개월간의 불륜과 하룻밤의 불륜을 비교하며 싸우고 있다가, 돌아온 종태와 미선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서 하는 대화를 통해 결혼에 대한 의견의 합일점을 찾아갈 때 뒤에 부끄러운 듯이 서서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기성세대들이 우스운 실루엣으로 비춰졌다. 자신들의 잘못된 애정관을 젊은이들의 열린 대화로 인해 깨닫고 결국 자식들의 결혼을 축복해주는 방향으로 마무리 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