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번에 ‘사도세자의 고백’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비록 ‘다시 보는 조선의 선비’ 교양수업에 의하여 이러한 책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수업에서 새로운 역사의 진실을 알 수 있고 세상에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인식되어 있는 허상을 파헤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얻을 수 있게 됨에 항상 흥미를 가지고 있던 터라 오히려 이번 기회에 역사에 관련된 새로운 관점을 얻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상당히 능동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조선 왕조에는 비운의 3인방이 있었다. 광해군, 소현세자,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룬 사도세자이다. 이 분들은 모두 살아있던 당시에 여론의 심한 비판으로 인해 배척당했고 비참한 말로를 겪은 분들이다. 당시의 사료들은 그들의 ‘그릇됨’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러한 인식들은 현대의 한국사학계에까지 이어져왔다. 그런데 최근의 역사연구들은 이 세 사람들이 조선 사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던 사람들인데 그 때문에 기득권세력의 거센 반동 때문에 희생당했을 거라는 해석(가능성)을 내리고 있다. 이 책에서 3인방 중 사도세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예전부터 조선의 역사와 사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기존에 다년간 축적시켜 왔던 역사지식을 배경삼고 이렇게 다년간 축적한 역사적 지식을 토대로 구축된 나름대로의 사관을 대입하여, 본문이 주로 딱딱한 고어체로 쓰여 졌기에 어떤 측면에서 본다면 약간은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갖게 될 수도 있는 이 책에 깊게 빠질 수 있었다. 책을 읽어 내리면서 시종일관 당시 상황을 상상하고 사도세자의 비극적 운명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들었으며, 이러한 새로운 기조로 당시의 인물들을 평가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는 미래를 보는 거울’ 이라 일컫는 것처럼 책을 읽고 역사의 진실을 깨달으며 현재와 미래가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나름대로의 구도를 잡아보기도 하였다.이렇듯 나에게 상당한 충격을 선사해 주었던 이러한 사도세자의 불행한 삶에 대하여 이 책을 읽어 내리면서 깨우치게? 일부의 역사를 직시할 줄 아는 유식한 학자들은 역사의 본질을 꿰뚫어 보아 그의 강직함과 현명함을 부각시켰으나, 다수의 무지몽매하고 기존의 사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으려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게 사도세자의 죽음에 큰 애도를 가지고 그의 죽음에 대한 의의를 가지지 못했다. 즉, 그는 일반적으로 난봉꾼으로 조선왕실의 도덕적 엄중함에 물의를 일으키고 반역의 조짐까지 보였던 것으로 평가되어 왔던 것이 현재까지의 대중의 인식이었다.이 부분에 있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도세자의 빈(부인)인 ‘혜경궁 홍씨’ 가 지은 ?한중록? 이란 책이 널리 알려지면서 거기에 묘사되었던 사도세자의 모습 즉, 사도세자가 정신병에 걸려 주색을 밝히고, 여자사냥을 위해 관서유람 등의 미행을 일삼으며 기생을 비롯해 심지어 여승(비구니)을 궁에 들이고, 왕손의 어머니인 귀인박씨를 죽이고 뒤주에 갇혀 죽을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인 역모를 꾀했다는 사실 등이 널리 알려 졌던 것이다. 이리하여 한중록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연민의 정만 느낄 뿐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않았고 그의 본모습을 알지 못한 것이다.이 책을 통해 한중록은 왜곡된 역사를 기술한 책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였던가? 왜곡된 사실이 대중들에게 알려져 사도세자는 죽어서도 억울함을 위로받지 못하고 슬퍼했을 것이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역사학자들은 한중록의 이런 편협한 주관성을 밝혀내었다. 한중록이 쓰여 졌을 당시의 배경을 추적하고 다른 역사서의 탐구를 통해 한중록의 거짓됨을 밝혀냈다고 볼 수 있다.정의는 결국 승리한다했던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음으로서 정의가 드러나고 차츰 일반화 되어가고 있다. 지금이나마 나 또한 이렇게 그 정의를 알게 되었으니 사도세자가 유명을 달리한지 길고 긴 시간이 흘렀지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한중록의 왜곡된 사실은 나를 분노하도록 하였다. 아니 그보다 더욱 분노하도록 한 것은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쓰게 되었던 동기일 지도 가문의 종말과 노론의 도태에 따른 기득권의 상실로 인한 한을 담은 책?, 이게 어울릴 듯하다. 나는 혜경궁 홍씨가 나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볼 때 정말로 아니라고 본다. 당시 시대 상황으로 보아 출가외인으로서 당연히 남편을 추종해야하거늘 자신의 가문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 더구나 국왕이 될 남편인 훗날 장헌세자로 추존된 사도세자를 모함한 것이다. 이제 어느덧 이십대 중반에 와있는 나는 심각하게 결혼을 생각할 때가 종종 있곤 하는데, 나와 결혼할 반려자는 내가 어떤 길을 가든 나를 따라와 주길 바라는 이상적인 결혼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나의 관점에서 보아 혜경궁 홍씨의 그런 악덕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라 하겠다.사도세자는 정말 훌륭한 기품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에 기초하여 다방면에서 역사적 근거를 충분히 가지고 모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상당한 사실성이 있다. 사도세자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고 노론 소론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삼종(三宗)의 혈맥(血脈)’을 잇기 위한 하나밖에 없는 영조의 귀한 아들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넘어 뛰어난 학식과 무예와 성품으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납득시킨 것이 더욱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라 보인다.우리가 알고 있던 정신병자는 모든 역사서에 훌륭한 자질로 태어났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렇게 훌륭한 자질을 가진 세자는 너무나 기괴한 삶을 살아간다. 기괴한 삶을 살아가게 된 제일 큰 이유는 바로 아버지 영조에게 있다고 본다. 영조는 유일한 아들 ‘선(?)’(사도세자)이 태어난 직후 바로 세자로 책봉하였고, 세자가 15세 되던 해에 대리청정을 명하였다. 세자는 어린 나이부터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만큼 더욱 공부에 전념해야 했고 영조의 지나친 노파심을 견뎌내야 했으며 나아가 어린나이에 그 험난한 정치에 발을 들어야 했었다.여기에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영조의 콤플렉스이다. 영조는 백성을 생각하고 탕평책을 실시하였던 군주였지만 영조의 집권기간 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편집광적으로 콤플렉스 극복에 연연하였던 것이다. 두 가지 콤플렉스란 하나는 경종 독살설과 다른 하나는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이다. 영조는 집권기간 내내 이 두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과거 자신의 대리청정이 합당하다는 것을 시사하기 위해 세자의 대리청정을 위한 명을 수없이 남발했고, 사도세자는 어쩔 수 없이 영조의 연기를 위한 도구가 되었다. 또한 정치를 맡기기 위한 영조의 극대의 관심으로 인해 세자는 보다 더욱 힘들여 공부하여야 했었다.이런 영조의 행태로 인해 사도세자는 어릴 적부터 효를 위한 명분으로 수없이 공부하고 수없이 울부짖어야 했고, 결국 대리청정으로 인해 15세의 나이로 정사를 접해야 하였다.당시 사도세자가 정치에 임하면서 영조는 탕평을 위한 공정성을 가르쳤다. 이 공정성에 대한 가르침이 어쩌면 사도세자의 운명을 더욱 기구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어린 나이에 정사를 접하고 당시 소론과 노론의 대립을 감지하게 된 사도세자는 세력에 굽히지 않는 공정성을 자신의 아버지 영조에게서 배움으로서 차츰 노론의 공격을 받게 될 행동을 취하게 된 것이다.바로 아버지 영조가 가르친 공정성이 사도세자가 당파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꼭두각시의 모습을 떨치는데 크게 한 몫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도세자의 타고난 강직성이 있었겠지만 또한 출생 후 요인인 환경이 더욱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는가?결국 영조 31년(1755) 영조의 탕평책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고 부자를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한 ?나주 벽서 사건?으로 인해 사도세자는 노론의 반감을 사게 된다.?나주 벽서 사건?이란 한마디로 말해 영조의 왕위등극에 대한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흉서가 나주 객사에 걸린 사건이다. 물론 영조가 평소부터 미친 듯이 극복하고자 했던 콤플렉스인 경종 독살설을 비판한 것이었다. 영조의 왕위 등극은 나주 벽서 사건의 문서의 내용과 같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영조가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정확한 사실여부는 판단두말 할 것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영조 역시 권력에 대한 욕심이 있었겠지만 노론의 정권욕이 하늘을 찌른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하겠다.어린나이에 대리청정으로 정사(政事)를 하게 되는 사도세자는 아버지인 영조의 콤플렉스로 인한 노론 편애, 소론 말살과정에 자연스럽게 연루하게 된다. 영조는 자신을 역적으로 몰아세운 소론의 잔당에 크게 분노하여 사건에 연루되었던 인물들을 잔인하게 몰살하고 소론을 배격한 후, 노론의 일당독재를 적극적 지지를 하게 되는데, 이 때에 사도세자도 자신의 입장에 동조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정의와 공정성으로 뭉친 사도세자는 스스로 옳음과 그름을 판별하여 영조의 분노가 그의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노론의 소론 말살을 위한 상소문에 ?모두 따르지 않겠다.?라는 말로 일관하고 노론에 대한 적개심을 품었다. 이에 결국 당시 기득권 세력이었던 노론은 사도세자의 대응에 눈치를 채고 반감을 가지게 되며, 나아가서는 사도세자의 왕 책봉이 자신들에게 악 영향을 미칠 것을 예상하며 사도세자의 왕 책봉을 적극 반대하기에 이르렀다.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또한 자연스레 견해차가 틀려진 영조와 사도세자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발현되게 된다. 아마도 영조는 자신의 콤플렉스에 대한 민망함이 너무나 앞서 콤플렉스 극복에 대한 극도의 민감함을 보였기에, 비록 아들이지만 자신의 민감함을 자극하는 사도세자에 대한 시기와 미움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항상 사도세자의 효심을 시험한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라 사료된다.당시 명분과 의리에 극도로 치중하던 사회적 분위기에 왕은 경연을 통한 심경의 학습을 필수적으로 하고 있었다. 즉 성리학 사상에 기반을 둔 모든 정치를 하기위해 왕은 수기와 수양을 일삼으며 도덕을 품고, 의리와 명분을 따랐던 것이다.하지만, 영조는 목숨보다 귀한 의리와 명분에 어긋났었기에 왕권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 체 앞서 말한 두 가지 콤플렉스를 가지고, 시종일관 그것을 만회하기위한 정치적 궤도에 머물렀다. 이로 인하여 결국은 그의 지하겠다.
電子商去來 - 경제법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시험 예상 답안지Ⅰ. 序전자상거래라 함은 전자거래의 방법으로 상행위를 하는 것으로 기업ㆍ소비자ㆍ정부 등 경제활동의 주체들이 전자적인 매체를 통신망과 결합하여 재화의 용역을 거래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디지털 경제는 비대면 거래라는 특수성 때문에 사업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워 거래의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전자상거래에 관련하여 소비자피해의 유형, 국제기구의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 법제, 각국의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 법제, 거래안전 확보방안 등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消費者被害의 類型사기판매, 개인정보 누출, 잘못된 배송, 다른 상품배달, 불법상품 판매 등이 있다.Ⅲ. 國際機構의 電子商去來 消費者保護法制1. OECD - 1999년 12월,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가이드라인이 공표되었는데, 기본원칙은 소비자가 다른 형태의 상거래와 동등한 수준의 투명하고 효과적인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1) 기술 중립성, 소비자보호를 위해 특정한 기술의 사용을 강제ㆍ금하지 않는다.(2) 통일규범수립을 유보하여 각국의 법질서 존중(3) 국가주도가 아닌 민단주도를 기대2. UNCITRAL - 전자거래에 관한 제도적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전자상거래 모델법을 제정하였다.(1) 모델법의 형식으로써, 각국의 국내입법을 함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하였다.(2) 국내ㆍ국제거래에 적용할 수 있고, 그 적용을 국제거래에 한정하는 규정을 들 수 있다 고 하였다.(3) 상사거래에 적용되며 공공부문은 제외된다.3. APEC -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를 위한 권고안4. EU(1) EU의 전자상거래법 정비를 위한 지침(2) EU원격거래 소비자보호지침Ⅳ. 各國의 電子商去來 消費者保護法制1. 韓國(1) 우리나라는 전자거래기본법으로 전자거래의 법률관계를 명확히 하고, 전자거래의 안전 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며, 전자거래의 촉진을 위한 기반을 조성함을 목적으로 한다.(2)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지침-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지침은 일반사항과 권고사항으로 구성된다.- 일반사항은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 동법시행령 및 동법시행규칙상의 개념을 명확히 한다.- 권고사항은 전자상거래와 통신판매에 있어 소비자보호를 위해 특별히 규정할 필요가 있는 사항을 규정한다.1) 사업자 금지행위2) 사이버몰 등에서의 표시3) 청약의 철회4) 소비자 의사에 반하는 구매권유광고의 금지 등(3)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2. 美國(1) 미국통일상법전(UCC)의 개정(2) 통일 컴퓨터 정보거래법(3) 통일 전자거래법3. 獨逸(1) 계약체결시 소비자보호(2) 철회권(3) 보통거래약관4. 日本(1) 전자소비자계약(2) 전자상거래 등에 관한 학칙Ⅴ. 去來安全 確保方案1. 消費者被害補償保險加入擴大(1) 意義 및 必要性 - 소비자가 전자상거래로 피해를 입은 경우, 쉽게 보상 받을 수 있 게 만든 장치로, 특별한 사유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은 경우, 그 보험회사에 피해보상을 요청함으로써 피해를 보상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2) 活性化方案1) 사업자는 보험에 가입하고 이를 소비자에 홍보해 매출신장을 도모해야 한다.2) I-SAFE 등의 인정마크를 받을 수 있는 필수적 기준으로 하는 방법이 있다.3) 보험가입자를 비가입자와 구별하여 부각될 수 있도록 하는 동기부여.2. 에스크로(escrow)制度 導入(1) 거래대금의 입출금을 제3자가 개입하여 공정히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2) 소비자는 대금거래 후 미배송 등의 사기피해방지, 판매자는 거짓주문ㆍ도난카드를 이 용한 주문을 방지한다.(3) 施行方案1) 에스크로 사업자가 갖춰야 할 자격요건을 상당한 수준으로 정하고 엄격히 해야 한다.2) 금융기관에 연계시킨다.
消費者保護法-경제법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시험 예상 답안지Ⅰ. 序소비자보호법이란 광의로는 상품 및 용역의 최종소비자와 관계를 맺고 소비자보호의 효과를 가져오는 모든 법률을 말하고, 협의로는 소비자보호를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자보호에 관한 기본법인 소비자보호법이 시행 중인데, 지금부터 이러한 소비자보호법과 관련하여 一般的 法構造와 現行法의 構造와 內容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一般的 法構造소비자보호법의 구조를 소비자ㆍ기업ㆍ정부라는 경제의 3주체에 대하여 고찰해 보면 다음의 사항을 도출할 수 있다.1. 消費者保護 私法 : 소비자와 기업 사이의 상거래를 대상으로 한다.2. 消費者保護 公法 : 정부와 기업 또는 소비자 간의 행정관계나 형벌관계를 대상으로 함3. 消費者 社會法 : 경제정책이나 사회정책의 현실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4. 消費者保護節次法 : 소비자분쟁해결의 절차를 대상으로 한다.Ⅲ. 現行法의 構造와 內容1. 消費者의 權利와 役割(1) 消費者의 權利 - 우리나라의 소비자보호법은 제1조에 소비생활의 향상과 합리화를 기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바, 소비자는 다음의 권리를 공유한다.1) 모든 물품 및 용역으로 인한 생명ㆍ신체 및 재산상의 위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2) 물품 및 용역을 선택함에 있어서 필요한 지식 및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3) 물품 및 용역을 사용 또는 이용함에 있어서 거래의 상대방ㆍ구입 장소ㆍ가격ㆍ거래조 건 등을 자유로이 선택할 권리4) 소비생활에 영향을 주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과 사업자의 사업 활동에 대하여 의견을 반영시킬 권리5) 물품 및 용역의 사용 또는 이용으로 인하여 입은 피해에 대해 신속ㆍ공정한 절차에 의 하여 적절한 보상을 받을 권리6)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필요한 교육을 받을 권리7) 소비자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단체를 조성하고 이를 통하여 활동할 수 있 는 권리8) 안전하고 쾌적한 소비생활 환경에서 소비할 권리(2) 消費者의 役割 - 소비자라 함은 사업자가 제공하는 물품 및 용역을 소비생활을 위하여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자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를 말한다(제2조 제2호).2. 國家 및 地方自治團體의 義務(1) 危害防止義務 -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소비자의 기본적 권리가 실현되도록 하기 위하여 관계법령 및 조례의 제정 및 개폐, 필요한 행정조직의 정비 및 운영개선, 필요한 시책의 수립 및 실시, 소비자의 건전하고 자주적인 조직 활동의 지원ㆍ육성 등의 일반적 의무를 진다(제5조).(2) 品質保障義務 - 국가는 소비자가 사업자와의 거래에 있어서 계량으로 인하여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물품 및 용역의 계량에 관하여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제7조).(3) 消費者選擇의 保障義務 - 현행법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으로 하여금 소비자가 물품의 사용이나 용역의 이용에 있어서 표시나 포장 등으로 인하여 선택이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경우에는 그 주관하는 물품 및 용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표시기준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제8조).1) 물품의 용도ㆍ성분ㆍ재질ㆍ성능ㆍ규격ㆍ가격ㆍ용량ㆍ허가번호 및 용역의 내용2) 물품을 제조ㆍ수입ㆍ가공하거나 용역을 제공한 사업자명3) 사용방법ㆍ사용 및 보관상의 주의사항 및 경고사항4) 제조연월일ㆍ품질보증기간 또는 식품이나 의약품 등 유통과정에서 변질되기 쉬운 물품 은 그 유효기간5) 표시의 크기ㆍ위치ㆍ방법6) 물품 또는 용역에 대한 불만 또는 소비자 피해가 있는 경우의 처리기구(주소 및 전화 번호를 포함) 및 처리방법(4) 去來의 適定化 確保義務 - 국가는 사업자의 불공정한 거래의 조건이나 방법으로 인하여 소비자가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ㆍ실시하여야 한다(제10조 제1항).(5) 消費者被害 救濟義務 -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소비자의 불만 및 피해를 신속ㆍ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하며, 국가는 소비자와 사업자간의 분쟁의 원활한 해결을 위하여 품목별로 소비자피해보상기준을 제정할 수 있다(제12조).(6) 試驗ㆍ檢査義務 -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물품이나 용역의 규격ㆍ품질ㆍ안전성 등에 관하여 시험ㆍ검사 또는 조사를 하여야 한다(제13조 제1항).3. 事業者의 義務(1) 協力義務 - 사업자는 물품 또는 용역을 공급함에 있어서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이나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거래조건이나 방법을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제15조 제1항).(2) 危害防止義務 - 사업자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위해의 방지를 위하여 제정한 기준에 위배되는 물품을 제조ㆍ수입ㆍ판매하거나 용역을 제공하여서는 아니 되며, 사업자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표시나 포장 등으로 인하여 소비자의 선택이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제정한 표시기준에 따라 모든 사항을 표시하여야 한다(제17조의 4).(3) 被害補償機構設置義務 - 사업자는 물품 또는 용역에 관하여 소비자로부터 제기되는 정당한 의견이나 불만을 반영하고 그 피해를 보상 처리하는 적절한 기구를 설치ㆍ운영하여야 한다(제17조 제1항).4. 消費者保護機構(1) 消費者團體 -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재정경제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된 소비자단체는 다음과 같은 의무를 행한다(제18조).1)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소비자보호시책에 관한 건의2) 물품 또는 용역에 대한 시험ㆍ검사 및 거래조건이나 거래방법에 대한 조사3) 소비자문제에 관한 조사ㆍ연구
몽골기병?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일군 대제국.?, ?저항하는 자를 남김없이 죽여 없애고 말위에서 절대로 내리지 않는 몽골군.?, ?동유럽까지 진군하여 늠름한 말을 타고 온몸을 갑옷으로 감싸며 긴 창을 꼬나든 유럽기병대를 말 그대로 작살내버린 몽골 경기병.?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시위에 열거한 사항들은 우리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이라도 들어보았던 몽골제국과 관련된 수식어들이다. 이러한 내용의 원천에는 몽골이 대제국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닦은 칭기스항이 있었다. 칭기스항이 없는 몽골제국은 상상하기 힘들 듯 칭기스항이 몽골인, 더 나아가 전 세계인에게 끼친 영향은 정말로 지대한 것이었다. 훗날,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가 꿈꾸던 세계대제국도 결국은 칭기스항이 일구었던 몽골대제국에서부터 잉태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몽골의 대축제 나담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근교에 위치한 야르막 평원. 그 곳은 드넓은 광야였고 광대한 초지였다. 그 야르막 평원에서부터 대제국 몽골의 기운이 뻗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 야르막 평원에서는 1206년 칭기스항이 대칸에 추대된 때로부터 현재까지 매년 개최되었다는 유서 깊은 몽골 최대의 축제 ?나담?이 열린다. 이 또한 야르막 평원이 대제국 몽골의 원류이며, 현재까지도 몽골의 기운을 상징하는 좋은 실례라 사료된다.몽골축제 나담의 말달리기2몽골축제 나담의 말달리기이러한 몽골의 축제 ?나담?에서는 몽골식 씨름, 활쏘기, 말달리기 등의 여러 종목의 전통 스포츠들이 서로 경합을 벌이는데, 그 중에서도 몽골사람들이 최고의 종목이라 칭하는 것은 역시 그네들의 웅혼한 민족성을 상징하는 말달리기이다. 이러한 말달리기는 10세 이하의 아이들이 기수로 출전하게 되는데, 재미있는 것은 말의 나이에 따라 경주의 급수를 정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달리기는 우리의 개념에서 영산(靈山)이라 말할 수 있는 복드산의 아이친드와 언덕에서 실시되는데, 우승마에게는 몽골의 전통발효음료인 아이락 세례가 퍼부어진다고 한다. 참으로 흥미로운 의식이라 볼 수 있겠다.이러한 ?나담?그들의 주거 게르전부터였다는 사실을 접하고서였다. 1921년에 몽골의 국부라 칭송받는 ?수흐바타르?가 소비에트 연방의 지원 하에 중화민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몽골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이래로 70여년의 세월 동안에 구소련의 영향 하에 있던 몽골사람들은 그네들의 영웅 칭기스항은 무자비한 침략자이며 살인마로 배워야만 하였다. 척박한 땅에서 당장 내일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그들은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베풀어지는 약간의 경제지원을 유지하기 위하여 구소련이 지시하는 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탓이리라. 몽골을 에워싸듯 위치하고 있는 소비에트 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으로서는 자기들이 위치하고 있는 영토에 대제국을 건설하였던 칭기스항이 영웅시되고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매우 싫어했을 것이다. 아니, 두려웠을 것이다. 현재 몽골사람들에게 성씨(姓氏)가 없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본래 몽골에는 성씨가 있었다. 즉 우리의 김씨에 해당하는 성씨는 ?버르지긴?이라는 성씨인데, 칭기스항과 그의 아버지 ?예수게이?도 이 성씨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몽골이 구소련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 이후로 그 전까지 존재하였던 성씨의 사용을 금지시키고 아버지의 이름이 성씨가 되어 버렸다고 하니 꼭 일제강점 하의 우리나라에서 일제에 의해 행하여졌던 창씨개명(創氏改名)과 다를 바가 없는 듯 하다. 그리하여 구소련의 영향 하에서 벗어난 이후로 요즘의 몽골에서는 성씨 찾기 운동이 한창이라고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칭기스항의 영토확장현재 몽골에는 ?몽골비사(=원조비사)?라는 책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이 책은 몽골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서 1240年경에 몽골의 한 역사가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데, 칭기스항이 죽은 이후에 후손들에 의하여 몽골족의 잉태 시기부터 칭기스항 시대까지의 몽골역사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이 몽골비사의 기록에 의하면 훗날 칭기스항으로 추대된 테무진의 태어날 당시에 몽골족은 내부적으로는 버르지긴 씨족, 타이쵸드 씨족,들의 배후에는 여진족의 대추장 아구다가 세운 금나라가 자리하고 있어서 이들 5부족이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도록 계속 이이제이(以夷第夷)를 구사하고 있었다. 테무진의 아버지였던 ?예수게이바타르?는 몽골족 1代 칸의 직계후손으로 당시에는 약간 세력이 큰 일개의 부족장에 불과하였으나 그 용맹은 주위에 널리 떨치고 있었다.테무진의 탄생연도는 1162年說과 1155年說이 학계에서 대립하고 있는데, 그 사유로서 이슬람의 역사가였던 라시드 앗딘은 1311年에 당시의 지배계층인 몽골족이 페르시아어로 편찬하게 하여 자신이 저술한 『집사』라는 역사서에서 1155年說을 주장하였고, 몽골과 중국에서는 1162年說을 주장하는 바, 여기에서는 몽골족 자신들이 주장하는 1162年說을 취함이 인과관계를 고려할 때에 옳다고 사료된다.테무진, 즉 칭기스항테무진이 태어났을 때, 한손에 핏덩어리를 꼭 쥐고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에 약탈혼의 개념이 상당히 강하였으므로 메르키드 부족의 허엘룬도 테무진을 낳기 전에 여러 번 겁탈을 당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함으로 인하여 테무진이 예수게이의 친아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테무진이라는 이름은 타타르족 장군의 이름인데, 예수게이가 타타르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테무진이라는 적장을 죽일 때, 허엘룬으로부터 테무진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기에 이를 기념하여 이름을 지워주었다고 몽골비사는 전한다. 현재의 추론으로는 아마 테무진이 예수게이의 친아들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자신이 죽인 적장의 이름을 자신의 아들에게 지어주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칭기스항의 후손들1170年, 테무진이 9살 되던 해에 테무진의 아버지였던 예수게이가 타타르족에게 독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당시에 데릴사위제의 풍습이 있었던 지라 테무진을 엉기라뜨 부족의 버르테에게 약혼을 시킨 후, 테무진은 엉기라뜨 부족에 남겨두고 자신만 귀환하다가 타타르족의 손에 독살되어진 것이었다. 4년 동안 처갓집에서 데릴사위 노릇을 하고 있던 테무진에게 아버지의 죽음의 소식라면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칭기스항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테무진에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교훈으로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종종 회자되곤 하는 화살5개의 고사를 들려준 것도 어머니 허엘룬이었고, 이러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인하여 테무진은 포용력이라는 큰 자산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듯 자식을 대제국의 강건한 군주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길러준 허엘룬의 어머니로서의 위치 때문에 현재 몽골사람들에게는 어머니와 관련된 노래가 많다.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바타르가 독살된 뒤에 왕족인 테무진을 죽이려고 몽골족의 실권자가 된 타이쵸드 씨족의 타르쿠타이는 테무진과 그의 가족이 있는 곳으로 추격대를 보내게 되는데, 테무진과 그의 가족들은 흩어져서 9일 동안이나 산 속에서 숨어 지내었으나 결국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제 발로 걸어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비록 예수게이의 옛 부하들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아직도 테무진과 그의 가족들 앞에는 척박한 초원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이 놓여 있었다.그 당시에 몽골에서 왕이 되기 위해서는 ?안다?, 즉 피를 나눈 듯한 형제 같은 친구들이 많아야 한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테무진의 첫 번째 안다이자, 가장 절친했던 동지였던 ?보올츄?를 만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사건에 힘입어서였다. 어느 날, 전 재산인 8마리의 말을 도둑맞아 테무진이 찾으러 나섰는데, 어느 부락에 이르러 자기와 연배가 비슷한 청소년을 만나게 된다. 그가 바로 보올츄였다. 보올츄는 테무진의 행색을 보고, 자신의 말 두 마리와 무기, 식량 등을 자비로 부담하여 타이쵸드 씨족이 훔쳐간 말 8마리를 모두 되찾도록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이에 테무진은 보올츄를 자신의 안다로 삼고, 훗날 대제국을 건설할 때에도 함께 하였다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테무진의 주위에 조금씩 이나마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 두 번째 안다인 ?젤메?를 만나게 되는 등 테무진의 세력은 조금씩 이나마 확장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테무진의 칸으로의 추대그은 이 사건이 몽골고원의 패자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에 필요한 중요한 명분이 되리라 생각하여 이참에 어느 정도의 세력견제가 필요해진 자다란 씨족의 자무하까지 끌어들여 전쟁을 할 수 있도록 테무진에게 설득하도록 한다. 이에 테무진은 자무하의 승낙을 얻어 옹칸과 자무하의 군사 도합 6만으로 메르키드부를 정벌하여 메르키드부를 몰살시키고 자신의 아내인 버르테를 구출하게 되니 이 시기가 1179年이었다. 이 전쟁의 전리품으로 테무진은 옹칸과 자무하로부터 자신의 세력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터전과 병기지급을 약조 받는데, 이로서 테무진은 자신의 부족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신분을 철폐하고 능력에 따른 보수의 차등지급 등을 주창한 테무진의 휘하로 점차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예전에 자신의 아버지 예수게이 아래에 있던 버르지긴 씨족 사람들도 테무진 휘하로 들어오게 되는데, 테무진은 자신의 어머니 허엘룬에게서 몸소 체득한 포용력을 바탕으로 그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고 귀부하는 모든 이들을 수용하게 되니 그 기세가 날이 갈수록 번창하게 되었다. 서기 1189年 테무진의 휘하에 있던 3천여명의 무리가 후흐노르 호숫가에서 테무진을 ?하막그 몽골링 항?(전 몽골의 왕)으로 추대하였다. 이에 전부터 자신의 세력권에 있던 사람들이 테무진의 휘하로 넘어가는 것에 대하여 의심의 눈초리를 품고 있던 자무하는 군사를 이끌고 테무진을 치려하나, 테무진은 자신의 세력이 아직 자무하의 세력에 미치지 못함을 알고 재빨리 퇴각을 명한다. 몽골부 내부에서의 자무하와 테무진의 분열의 시기에 몽골의 제사장들은 테무진의 손을 들어줌으로서 테무진이 장차 칭기스항으로 추대되는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 당시에 상당히 친한 관계에서 테무진의 가장 큰 적수가 되어버린 자무하와의 일전은 ?달란발조트?라는 지역에서 행하여졌는데, 자무하와 테무진이 각각 13개의 군단을 이끌고 이 전투에 임하였다고 전하여진다. 이 전투의 결과는 테무진이 패배하여 자신의 무리들을 이끌고 제레네 협곡으로 후 영역
Ⅰ. 序·········································································2Ⅱ. 애니메이션의 語原과 槪念··············································21. Animation의 語原······································································22. Animation의 槪念······································································2Ⅲ. 애니메이션의 定義······················································2Ⅳ. 애니메이션의 製作 樣式················································5Ⅴ. 그림 애니메이션의 種類와 製作技法···································61. 2D 애니메이션··········································································62. 드로잉과 彩色······································································· ··63. 카메라리스 애니메이션·································································74. 그림 애니메이션의 種類································································91) 셀 애니메이션·········································································92) 풀 애니메이션과 리미티드 애니메이션··············································123) 모래 애니메이션·화적인 경향을 가진다는 것은 흥미롭다.‘연속체’는 모든 독립된 상황들이 어떻게 서로 관련이 있는가를 의미하며, ‘정의’는 각 상황들을 분리시킨다. 연속체를 이용하면 어떤 한 상황이 정확히 어떻게 애니메이션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애니메이션이라는 틀 안에 정의되어 있는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Ⅳ. 애니메이션의 製作 樣式영화학자 데이비드 제임스는 지배적인 제작 양식과 주변화된 제작 양식을 비교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어떠한 대안적인 실천 행위도 단지 자신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엇이 아닌가를 역시 말한다. 즉, 그것은 자신과 다른 것들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지배적이고 관습적인 형식에 반대하며 대안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양식들-아방가르드 혹은 실험으로서-을 의미한다. 상업적인 제작 양식은 분리된 실체로서 볼 수 없으면, 각각 서로 연관된 속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임스는 시트니와 같은 역사학자들이 독립적 제작양식과 상업적 제작양식을 두 개의 분리된 실체로 잘못 파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임스는 이와 같은 해석을 ’대안 영화의 다양성과 점점 폭넓어지는 이들과 할리우드의 타협점을 수용하지 못한 이유에서‘ 비롯된다고 한다.제임스의 관찰 초점은 주로 실사영화에 있지만 애니메이션에 대한 논의와도 연관되어 있다. 독립 애니메이션을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나 실사영화 같은 지배적 영식과의 연관관계를 부인한 채 하나의 문화적 산물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과 애니메이션 광고 같은 상업적 성격이 짙은 애니메이션 역시 독립적인 ‘순수예술(fine art)'작가와 이들의 작품과 연관을 맺고 있다. 이런 사실은 가장 촉망받는 독립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부분적으로 메이저 스튜디오의 제작물이나 광고 분야에서 일한다는 사실만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앞에서 언급된 ‘연속체 모델’을 이용해 상업 애니메이션과 독립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독립 작가들이 대중 상영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어떤 점에서 잘못 이해되카메라리스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애니메이터들은 일반적으로 움직임에 대한 탐구에 흥미를 느끼는 작가들이다. 카메라리스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모든 애니메이션 기술의 대가였던 스코틀랜드 작가인 노먼 맥라렌이 그러했다. 캐나다 국립영화 위원회(NFBC)에 오랜 기간 있으면서 만든 (피들 디 디 Fiddle Dee Dee, 1947)같은 작품을 보면, 애니메이션 미학의 가장 큰 특징인 운동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이런 작품들은 사운드 트랙을 먼저 녹음한 후 만들어지는데, 음악의 다양한 부분에 어울리게 필름의 길이를 자른다. 그 다음 필름의 따는 다양한 수단에 의해 재질이 입혀진 잉크와 염료로 채색된다.하지만 노먼 맥라렌은 이렇게 운동성이 넘치는 작품과는 반대로 그 움직임이 극도로 통제된 카메라리스 애니메이션도 만들었다. (수직선Line Vertical1962), (수평선Line Horizontal, 1965)등이 그 예에 속한다. 맥라렌은 개인적인 도전으로서 이 작품들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보다 관습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부드러운 움직임이 ‘디렉트 온 필름 애니메이션’에도 가능한가를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수직선)은 35mm필름 위에서 에칭을 통해 만들어졌다. 다양한 두께의 칼들을 이용해 선이 그려졌으며 6피트 길이의 곧은 제도용 자가 사용됐다. 필름이 완성된 후 모리스 블랙번이 작곡을 담당했다. 맥라렌의 작업에는 보조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에블린 램버트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맥라렌의 미학적 감수성을 공유한 작가였다.몇몇의 작가들은 카메라리스 애니메이션을 통해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유명해졌다. 뉴질랜드의 렌 라이가 그중 한 사람이다. 사실 맥라렌에게 영향을 준 사람이 바로 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라이의 작품 (컬러 박스, 1936)는 영국 우정성 광고를 위해 만들어졌는데, 이는 공개적으로 상영된 최초의 카메라리스 애니메이션이다. 영국 정부가 지원하는 라이의 또 다른 작품은 (트레이드 터투, 사용된다. 하지만 이런 그림의 반복되는 사용은 풀 애니메이션에 있어서는 하나의 금기이다.진정한 풀 애니메이션에서는 모든 그림이 오직 한 번만 사용된다. 풀 애니메이션에서 그림 그리는 과정을 복작하게 만드는 요인은 이미지가 상당히 변화하는 경향으로 진향된다는 사실이다. 종종 캐릭터 디자인은 그것의 감정이나 반응을 나타내기 위해 변형된다.풀 애니메이션은 순환이나 그림의 재사용 없이 연속적인 움직임과 변화를 만들기 때문에 아주 많은 그림이 필요하다. 풀 애니메이션의 실제 촬영 과정 역시 그림 양에 대한 필요성을 높인다. 애니메이션 카메라로 이미지를 쵤영 할 때 풀 애니메이션은 리미티드 애니메이션보다 많은 양의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 단 하나의 프레임을 위해 이미지를 이용하거나 ‘하나의 그림을’ 찍은 작품은 세 개의 프레임을 위한이미지나 ‘세개의 그림을’찍은 작품보다 훨씬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여준다.만약 한 장의 그림을 한 번만 촬영한다면 한 장의 그림을 세 번 촬영하는 방식에 비해 세 배나 많은 이미지가 필요하게 된다. 한 장의 그림을 한 번 또는 두 번 촬영하는 것이 풀 애니메이션 스타일이라면, 세 번, 네 번, 또는 여섯 번 촬영하는 것은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스타일이다.카메라 움직임역시 애니메이션에서 사용되는 그림의 양에 영향을 끼친다.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은 카메라 움직임을 넓은 범위에 걸쳐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움직이는 느낌을 만들기 위해 배경을 패닝하는 경우가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에는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간혹 카메라 패닝을 시작하기 전 더욱 많은 시간이 경과할 수 있도록 몇 프레임을 시작과 마지막 이미지에 고정시키기도 하는데, 아마도 이런 기법은 그림 수를 절약하기 위한 시도에서 개발되었을 것이다. 카메라는 또한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캐릭터에 고정될 수 있는데, 가능하면 아주 간단한 동작이 일어나는 동안에 그러하다.시각적 요소만이 풀/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을 특징짓는 요소가 아니다. 사운드 역시 큰 역할을 한다. 풀 애니메이션이 시작적인 것을n)스크래치 애니메이션 (scratch animation)은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방식보다도 많은 경비를 사용하지 않고 작가의 의식을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타의 제작방식은 여러 소재를 활용하여 평면이나 입체의 환경을 조성하고, 다시 그런 조작된 이미지를 촬영함으로써 필름으로 만드는 단계를 갖는 데 비해, 스크래치 애니메이션은 35mm 혹은 16mm 필름 면을 직접 송곳이나 칼로 긁어 작가의 이미지를 형상화시키는 제작방식이다.그러므로 작가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긁혀진 선과 면을 통해 빛이 투과되고 긁혀지지 않은 부분은 필름 자체로 남기 때문에, 작가의 거친 표현 질감과 필름 자체의 유연한 소재 질감이 교차되며 다양한 미학을 산출해 내는 방식이다.유럽과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는 학생의 실습작품과 독립작가들의 실험 작품 방식으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 제작방식이다. 스크래치 애니메이션의 제작은 필름을 고정시킬 수 있는 조절판이 있어야 한다. 긴 나무판이나 금속판으로 좌우의 기준면을 제작하여 필름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고정할 수 있는 고정 장치와, 작가가 직접 송곳으로 필름에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업대, 즉 넓은 라이트 박스 위에 조절판이 설치되어야 한다.실제로 작품을 필름에 직접 묘사하기 때문에 다른 소재로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처럼 여타의 예외 변수들은 거의 없지만, 각 프레임을 완전히 설계하고, 촬영콤마를 작화 전에 결정해야 하는 등 철저한 준비가 요구되는 방식이다. 움직임의 흐름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프레임 수를 정렬시킬 수 있는 작가능력이 필요하므로 많은 훈련이 요구되는 방식이기도 하다.6) 페이퍼 애니메이션 (paper animation)애니메이션의 최초 형태는 대개 페이퍼 애니메이션이었다. 정지된 각 그림에 동영상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움직임의 잔상을 기억하여 수용자가 무의식의 상태로 동영상을 형상화할 수 있도록 그림을 여러 장 그려야 한다는 간단한 원리가 작동된 것으로서 영화사의 트릭 전문기사들이 실사영화의 트릭을 종이에 옮기면서 페이퍼 애니메이션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