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序論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정치는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그 이론적 바탕을 형성하는 통치이념이 매우 중요한 요소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의 삶과 그 군집체인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이는 계속해서 보다 더 발전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 근원하고 있다.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는 보다 발전된 정치사상을 만들고자 하는 학자들이 있었고 이를 현실정치에 활용하는 군주들이 있어왔다. 이런 일련의 변화들에 대한 평가가 당시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정치이념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음은 사실이다. 때문에 정치사상의 변화과정은 그 미래에 있어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5 -조선은 500년 역사를 지닌 한반도의 유일한 국가였고 그 통치이념은 性理學으로 대표되는 유학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성리학은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해 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런 변화과정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겠지만 이 논문은 주된 입문서였던 「大學」을 중심으로 이를 논하고 있다. 성리학이 우리나라에 수입된 이후로 이를 탐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있었고 그에 의한 많은 해석들이 존재하였다. 그 다양함 속에서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대학」이 그 논의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성리학에서 「대학」이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대학」에 근거한 저자의 탐구과정은 그 적실성이 있다고 보여 진다.또한 이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사림들에 의한 성리학적 중흥기로 가는 과도기적 단계로 여겨졌던 15C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에 있어 그 발전기는 己卯士林들에 의해서 다양한 성리학적 해석이 이뤄졌던 16C라고 볼 수 있다. 이에 그 전 시기인 15C의 성리학은 상대적으로 그 존재감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에 대한 저자의 재해석을 살펴보는 것 또한 중요할 것이다.2. 本論이 논문은 다양한 학자들의 성리학에 대한 해석을 시대적 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구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여기서는 사림적 성리학적 해석과 그 이외의 해석으로 나누어 평을 작성해 보고자 한다. 분량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논문의 전체적인 내용에 대한 의견보다는 부분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고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있어 개인적인 입장을 표현할 것이다.가. 士林外的인 解釋16C에 사림들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성리학에 대한 주체적 수용의 시도가 이뤄지기 전까지, 李齊賢-李穡-權近 등의 성리학은 단지 외국에서 수입된 성리학, 그 이상이 아니었다고 여겨진다. 고려 말 元代 성리학이 수입된 후 이것이 조선개국의 바탕이념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나 이 과정에서 주체적 수용의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이 시기의 성리학은 원-명 등으로 이어지는 외국에서 변화되는 성리학의 단순한 수입과 그 적용만이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李石亨의 ‘大學衍義輯略’을 가리켜 ‘大學衍義’의 주체적 수용이었으나 실패했다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석형의 저서는 주체적 수용이라기보다는 ‘대학연의’에 대한 요약본의 제시라고 보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 주체적 수용이 어려웠던 것은 학문의 재해석에는 그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어느 분야의 학문이든 마찬가지이지만 그 이론에 대한 재해석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우선 그 이론에 대한 완전한 이해과정이 필요하다. 제대로 이해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주체적 수용을 시도하는 것은 무리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이황이나 이이의 저서와 같은 재해석이 15C에 이뤄지지 못한 것은 첫째로 성리학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도를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두 번째로는 이해는 하였으나 재해석을 시도할 만한 역량을 가진 학자가 없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에 관하여는 조금 더 확인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수용과정이 나중에 사림들에 의하여 다양한 재해석이 논해지는 씨앗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생각한다.15C의 정도전은 정도전의 당시 막강한 권세를 근거로 실현가능성이 높았다 말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의 정치라는 것이 그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재상정치가 당시 신하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했을까. 당시의 조선은 역성혁명을 통한 개국이 아직 마무리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이를 정치체제의 혁신을 위한 좋은 기회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본다면 그런 상황이었기에 더욱 강력한 군주권이 요구되었으리라는 생각이다. 때문에 당시 정도전이 주장했던 재상정치의 경우 그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생각하며 설사 실현되었다 하더라도 그 유지기간이 길지 않았을 것이다. 내용은 좋을지 모르되 그 변화과정을 너무 빠르게 시도하게 된다면 당연히 거부과정이 발생하게 되어있다.이런 개혁에 대한 거부반응은 이후 士林派와 官學派의 갈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중종반정으로 중종이 왕위에 오른 이후 등용된 趙光祖에 대한 관학파의 시선은 곱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조광조가 지나치게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고, 특히 정치부분에서의 급진적 변화과정은 필연적으로 그 후유증이나 거부반응을 가져오게 되어 있다. 이는 그 개혁에 대한 정당성이나 필요성을 충분히 다른 이들에게 인지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 조광조에 의한 위훈삭제 사건 등은 훈구파에게 조광조에 대한 분노를 갖게 하였고 그 결과 조광조는 사약을 받고 죽게 된다. 관학파의 입장에서는 급진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사림파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나. 士林的인 解釋사림들의 성리학에 대한 탐구는 己卯士禍 이후에 성장세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그 이론적 탐구에 몰두한 이유는 학문적 견해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향촌 사회 내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결국 순수하게 조선을 위한 학문적 탐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림들의 모습이 더 알려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역사서를 보면 대부분 사림들과 이전의 성리학은 그 수준차가 있다는 생각이다. 사림은 군주의 帝王學이 강조된 ‘대학연의’보다 ‘대학’을 염두에 두며 사대부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제왕학을 목표로 하였다. 이런 제왕학에 대한 시도는 발전을 거듭하여 최종적으로는 가장 완성된 군주학적 책이라 생각하는 이이의 ‘聖學輯要’에 이르게 된다. 이는 이이 자신의 능력이 출중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전까지 다양한 성리학적 재해석을 시도한 많은 사림 학자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었기에 이뤄질 수 있었던 학문적 성과라고 생각한다.개인적으로 이 논문을 통해 알게 된 가장 큰 점은 조광조에 대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조광조를 단순히 똑똑한 학자로만 알고 있었다. 훈구파의 득세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하여 행동하였다고만 알고 있었지 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알지 못한 점이 많았다. 그런데 성리학의 변화과정 속에서 조광조의 위치를 읽게 됨으로써 그 이념적 기원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조광조가 급진적인 개혁의 시도로 인하여 훈구파에 의해 사라졌지만 학자로서의 자세와 그 능력은 매우 뛰어난 인물 이었다 생각한다. 단지 조광조가 사상을 펼쳤던 시대의 주도적 정치사상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이런 식의 정치사상의 변화는 잘되면 조선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일국을 바꿀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조광조의 경우처럼 그 뜻을 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 시도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15C 학자들에 의한 성리학의 수용이 16C 사림들에 의한 성리학 재해석의 기반이 된 것처럼 조광조가 시도했던 이념의 변화가 나중에 사림들에 의하여 시도되었기 때문이다.조선의 재미있는 부분은 경연이라 불리는 제도일 것이다. 이는 유교경전을 중심으로 논하며 군주를 교육하는 것으로써 자의적인 제왕권의 행사를 막고 군주를 설득하여 적극적으로 유도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또한 단지 군주를 교육하던 제도가 아닌, 성리학에 기반한 정치의 방향을 제시하고 토론하던 자리였다. 이런 제도가 활성화된 배경에는 무엇보다도생각은 성리학의 흐름을 「대학」을 중심으로 파악한 것은 어느 정도 적실성이 있지만 그 설명력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정치외교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의 입장에서 국내?외 다양한 국가들의 정치적 변화과정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느낀 것이 정치이념의 변화라는 것은 몇 가지 요소들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다양한 요인들의 종합적 작용 결과로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특히 한 국가의 지배통치 이념에 대한 논의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조선 초의 성리학은 아직 그 체계가 명확히 잡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즉 고려 말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시기는 정치사상의 변화과정을 성리학 자체로만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 주변적인 요소들도 고려해야 함을 언급하고 싶다. 6?25전후 우리나라가 미국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그 이념적 장점에 대한 학자들의 인식이라기보다는 지리적 시대적 요소의 제한으로 인해 다른 선택사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해석은 당시 조선시대에도 어느 정도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저자는 고려 말 성리학의 수입과정을 말하고 있지만 ‘왜’ 수입되었는지에 대하여는 설명이 명확하지 않다. 혹시 당시 중국으로부터의 강요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학문적 인식에 따른 자발적 수용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논문에서 예를 찾아본다면 앞서 말했지만 사림들에 의한 성리학적 추구는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학문적 추구 이외에 경제적 혹은 정치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예로는 새로운 성리학에 대한 사림들의 욕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다. 논문에 보면 延山郡의 폭정으로 성리학과 관련된 책이 불타 없어졌고 中宗 때 중국의 책을 수입하면서 체제교학적인 성리학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는 부분이 나온다. 그리고 이에 「대학」에 대한 이론적인 검토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연산군에 의한 폭정이 이뤄지지 다.
3 -1. 서론시리아나는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의 석유권 확보를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그려낸 영화이다. 감독을 맡은 스티븐 개건은 ‘크래쉬’의 각본자로 당시 감독을 맡았던 스티븐 소더버그와 함께 다시 한 번 우리네 현실의 어두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리아나라는 말은 워싱턴의 정치 참모들이 미국 중심의 이해관계에 의해 재편(reshaping)된 중동의 새로운 지역 구도 재편을 일컫는 일종의 은어라고 한다. 즉 미국의 힘으로 재구성되는 중동의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다른 지역이나 국가의 틀을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만들 수 있다는 오만함의 표현인 것일까. 시리아나는 제목에서부터 미국의 무소불위식 권력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하필 중동일까.‘석유를 알면 미국이 보인다’) 라는 말이 있다. 이는 그 만큼 미국이 석유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 국제정치경제에서 그 패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미국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 바로 석유확보이다. 석유로 상징되는 자원을 갖느냐 마느냐에 따라 그들의 패권유지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나는 그런 미국이 어떻게 석유자원을 확보하고 유지해 나가는지 조금의 가감도 없이 보여준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과의 보이지 않는 이권다툼을 볼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2. 영화에 나타난 미국식 패권주의와 이기주의 그리고 그에 따른 종속주의시리아나는 4명의 중심인물을 축으로 4가지 이야기가 전개된다. 무기(미사일)를 밀매하는 형제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수행하나 미사일 한 개의 행방을 놓쳐버리게 되고, 돌아오는 길에 사우디의 나시르 왕자(미국에 비협조적이므로)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는 CIA요원인 밥, 스위스 회사에서 일하는 에너지 분석가로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나시르 왕자의 자문 역을 맡게 된 브라이언, 흑인이라는 차별이 싫어 출세하고 싶어 하는, 대형 석유 회사의 합병을 위해 중개 역할을 하고 이익을 챙기는 베넷, 그리고 합병으로 인해 석유 회사에서 일하다 일자리를 뺏기고 미사일로 자살테러를 하게 되는 파키스탄인 와심. 이들은 각자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결국 미국이라는 한 부분으로 모여지게 된다. 감독은 이런 서술방식을 통하여 중동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석유를 둘러싼 미국의 시각과 주변의 이권다툼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 4가지 이야기는 서로 계연성이 없는 듯 보이지만 영화의 종반부로 갈수록 서로간의 공통분모가 드러난다. 그 공통분모란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듯이 다름 아닌 ‘석유’이다. 개건은 ‘석유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발광적으로 중독된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석유에 대한 미국의 지나친 사랑을 바라볼 수 있다.영화를 보는 내내 끔찍하다 여겼던 부분은 자신의 패권을 지키기 위한 미국의 그 폐쇄적 정책집행성이다. 미국은 하나의 국가로서 그 자신의 국력향상을 위해 어떤 비리나 위법도 인정하고 묵인한다. 그리고 이는 패권주의자들이 말하는 패권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다. 즉 자신의 국력이 그 어떤 가치나 규범보다도 앞선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행위자로서의 국가 자신을 우선시하는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세계를 다양한 국가들의 장소로 바라보고 이 때 각자마다 자신의 국익증대를 위해 최대의 노력을 한다는 가정 하에 미국의 패권주의는 일련의 적실성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패권주의의 기본 틀이다.) 영화에서 미국은 카자흐스탄의 석유권을 따내기 위해 불법적인 기업합병을 용인하고 아랍 왕가의 후계자 선정에 개입하며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현 CIA요원을 냉정하게 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이기주의성은 아랍왕가의 왕자를 살해하는 장면에 이르러 최고치에 다다른다. 변호사 베넷이 석유회사의 비리를 파헤치고는 관련자를 찾아가 추궁하자 그는 소리친다. “부패야 말로 미국을 지탱하는 힘 아닙니까!” 이 말은 패권과 이기주의로 뒤엉킨 미국의 현재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겉으로는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패권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저분한 미국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주장하는 세계경찰이라는 호칭보다는 세계악 적인 측면이 강하다 볼 수 있다. 미국의 행태로 인한 문제점은 무엇일까.세계정치에서 일국에 의한 패권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내고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상대국과 미국 간의 종속화 부분이다.) 미국은 아랍 국가들이 석유판매를 통해 얻은 이익을 바탕으로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미국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꼭두각시 정권을 바랄 뿐이다. 미국이 원하는 석유값을 책정하고 미국이 원하는 석유채굴권을 줄 수 있는 그런 정권 말이다. 만약 막대한 부를 이용해 아랍국이 민주주의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미국에 의한 패권유지가 어렵게 된다. 종속론이란 한 국가가 특정국가에 종속적으로 속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 등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일어날 수 있다. 아랍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허수아비 정권을 통한 정치 경제적 종속화이다. 천연자원 판매를 통한 엄청난 부는 아랍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일부 정책 집행자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이 제공하는 향응을 충분히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다. 이런 상화이라면 영원히 아랍국은 후진국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미국에 대한 종속화가 매우 크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해결하거나 이에 반하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각종 전쟁이나 기타 정책, 비리로서 이를 미국이 막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원하는 나시르 왕자가 결국 미국CIA의 인공위성 추적 미사일에 격추되어 암살당하는 장면은 이런 미국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아예 발전의 싹을 잘라버린다고나 할까. 미국은 이미 세계 초강국으로서 막대한 부와 기술과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런 미국이 석유라는 천연자원을 얻기 위해 자신들의 힘을 이용하여 아랍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세계의 악이라 부를 수 있다. 막대한 천연자원을 지녔음에도 왜 아랍국은 발전하지 못할까 라는 의문을 가졌던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3. 미국식 회개가만히 따져보면 이런 식의 미국에 대한 비판적 소리들은 예전부터 계속해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세계에 대한 미국의 패권주의가 변한 적이 있었던가.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었는지 가만히 생각해보게 된다. 미국의 자유의 나라이다. 영국에서 건너온 선교사들이 미국이라는 땅에 깃발을 꽂을 때부터 그들은 자유의 기치아래 살아왔다. 그러나 그 자유에는 책임이나 그에 대한 대안이 없는 것 같다. 말하자면 무작정식의 자유라고나 할까. 자유의 여신상은 오른손에 횃불을 왼손에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의 오른손은 세계를 향한 강도질을 하고 왼손은 반성과 사죄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자신들의 해악에 관하여 말하고 성토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성토는 성토에서 끝날 뿐, 그 이상의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미국의 강도질은 계속되고 반성과 사죄도 계속된다. 세계라는 제단 앞에서 반성하고 사죄한 이상, 죄의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일주일 내내 강도질을 하고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서 회개하기만 하면 다음 월요일에는 깨끗한 마음으로 강도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시리아나의 이런 충격적 영상들이 단지 보여주는 수준에서 멈춘다면 이 영화는 미국식 회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이를 시작으로 미국 전체의 어떤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마련되기 위해 노력되어야 할 것이다.4. 결론서론에도 말했듯 이 영화는 미국의 석유권 확보를 통한 패권주의를 적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는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3년 전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전 세계 반전단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던 구호 중 하나는 “오일을 위한 피는 이제 그만!(No Blood for Oil!)”이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소유를 빌미로, 9.11 테러를 주도한 테러그룹 알카에다와의 연계 가능성을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운 부시 행정부의 진짜 속셈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석유 매장량이 많은 이라크의 석유 때문이라는 건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이다. 사실 우리들은 이미 진작에 미국의 지성이라 불리는 촘스키라던지 기타 많은 내.외국의 학자 및 언론기관들에 의해 미국의 권력과 그 유지과정을 접할 수 있었다. 새로울 것도 없는 주제의 영화지만 색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에 대한 판단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분명 미국의 잔인하다 여겨질 정도의 패권유지 과정을 보여주지만 그 행동을 하는 이들은 더 없이 진지하고 각자 나름의 사정을 가지고 있다. 아들의 대학등록금을 걱정하는 밥, 무능력한 아버지와 반목하는 베넷, 아들을 잃은 상황을 자신의 이익과 연결시킨 브라이언, 기업합병으로 직장을 잃게 된 와심까지 이 영화에는 절대적 선도 절대적 악도 없다. 영화의 종반부에서 나시르 왕자를 암살하려는 미사일을 조종하는 CIA 요원들의 진지한 얼굴은 탐욕스럽기 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느낌을 준다. 마치 감독이 관객들에게 ‘내가 사실을 말했으니 판단은 각자 하라‘ 고 말하는 듯하다. 이 영화의 원작의 제목이 ‘See no Evil'이라는 점은 영화를 보기 전 유념해야할 부분이다. 감독은 미국의 패권주의를 말하면서도 이것이 나쁘다거나 혹은 부정적인 의미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다만 다소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정도로 진행과정을 담담히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1. 서론 - 세계화의 시대5 -개인적으로 ‘세계화’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94년도 김영삼 정권 때가 아니었나 싶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부르짖었던 세계화의 표어는 ‘SEGYEHWA’로서 지금의 Globalization과는 그 의미가 다른 듯 보이지만 세계가 분리된 구역이 아닌 하나의 구역으로서 무한경쟁의 시대에 도입했다는 기본적인 인식은 동일했던 것 같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세계화 어쩌고 하다가 외환운영을 잘못하여 대우와 함께 우리나라의 외환을 거덜 낸 장본인으로도 기억되고 있다. 때문에 사실 세계화에 대한 개인적인 이미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 점차 여기저기서 ‘세계화’라는 단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이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된 것이다. 세계화가 정말 현대의 국제사회에서 필수적인 요소인지, 아니면 단지 미국에 의해 강요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예전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주체적 수용’이라는 단어를 배운 기억이 있다. 무비판적으로 외래(주로 청나라 등의 중국 국가)의 문물을 수입한 우리나라가 그 자신의 줏대를 잃고 외국에 문화적?사회적으로 종속되어 버린 역사가 있음도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확실한 우리만의 ‘잣대’를 가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확실한 주체성이 없으면 파도처럼 밀려오는 세계화를 그저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옴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주체적 수용을 위해서는 우선 이 세계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화란 무엇이고 누구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학습은 우리들의 ‘잣대’를 확립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매우 유용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2. 렉서스의 침입저자는 일본의 최고급 세단 자동차인 렉서스를 세계화에, 과거의 전통을 입한다. 이런 그들에게 있어 렉서스라는 일본의 최고급 세단자동차는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느낌과는 차원이 틀릴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올리브 나무는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기본 음식 첨가물이 올리브유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쉽게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즉 예전부터 널리 사용되어 온 기본 음식재료인 올리브유를 만드는 올리브나무를 ‘과거?전통’ 등의 개념과 연결시켜 묘사한 것이다. 사실 이런 문화적 배경만 이해 가능하여도 이 책의 제목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책은 총 약 800p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지만 대부분이 저자의 다양한 사례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정작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내용은 그 분량이 적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요약하면,“전자투자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세계화는 거부할 수 없는 추세이다. 때문에 이에 역행하는 것보다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그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전자투자란 인터넷 등을 이용한 On-line 금융거래를 말하는 것으로 사실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용어들이다. 우선 이 책이 작성된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1999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99년의 우리나라를 생각해본다면 세계적인 IT강국이라 불리던 국가였음에도 인터넷이 전 가정에 채 보급이 안 된 상태였다. 사람들은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의 4대 통신망을 이용하여 분당 30원 등의 유료 인터넷으로 조금씩 On-line의 맛을 보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저자가 처음 전자투자라는 개념을 정립했을 때는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금융거래를 예상했다기보다는 온라인 주식거래 등의 커다란 금융거래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지금 우리들이 하는 것처럼 핸드폰을 이용해서 물건 값을 결재 하고 인터넷을 통해 중국에 있는 부동산과 주식을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을 저자가 예상하고 글을 썼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그 기본적 인식으 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압축된 거대시장은 당연히 복잡성을 띠게 되고 서로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커진다. 서로서로와 관계를 맺은 가닥들이 많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우리는 이미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통해 겪어본 경험이 있다. 당시 태국의 바트화 폭락으로 시작된 금융위기는 우리나라, 태국, 말레이시아 등을 쓰러뜨리며 세계화의 무서움을 보여주었다. 서로에 대하여 깊이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 쪽이 쓰러지면 다른 한 쪽도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에 관하여 저자는 “오늘날 경제적 위기는 세계화된다. 예전에 세계 정치판에서 통용되던 도미노 이론이 이제는 금융세계에 해당하는 것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이런 서로에 대한 상호성을 저자는 97년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경험을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당시 미국의 한 기업총수는 러시아의 한 실업가와 동업을 추진하는 와중에 그가 국가에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합작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총수의 국내적 사정상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는 외국인과의 거래가 불리했기 때문이었다.) 즉 한 국가의 제도적 규범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며 이를 표현하자면 국제적 표준규범의 정립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Global standard)의 이름 아래 전 세계 시장을 하나의 자유로운 시장으로 통합한 뒤 그 안에서 경쟁한다는 논리가 세계화의 주된 생각이라 말할 수 있다.한국미국중국일본- Multiple market -- Single market -GlobalStandard한국미국중국일본이는 위와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세계화의 문제점이라면 무엇보다도 극단적으로 자유주의를 지향하다보니 그 안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양극화에 대하여 무방비상태라는 것이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부터 계속해서 강조한 부분이 부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 방책의 일환으서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겪고 있다.) 아름다운 보랏빛 향기를 내뿜으며 사람들을 유혹하는 세계화가 그 이면에는 굶주리고 배고픈 이들의 희생을 숨겨놓고 있었던 것이다.3. 풍전등화, 올리브나무그렇다면 이런 렉서스와 대비되는 개념인 올리브나무는 무엇인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이는 세계 각국의 자신만의 Origin을 설명한다. Global standard와 반대되는 개념인 올리브나무는 자신만의 주체성, 색깔, 개성, 고유의 그 무엇 등 다른 나라에서는 지니지 못한 것으로서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이다. 특히 우리들은 흔히 반만년 역사를 말하며 오랜 시간 이어온 한민족의 핏줄을 자랑한다. 그런 장구한 역사 속에서 우리들이 지금까지 지켜오고 이어온 수많은 문화, 풍습, 전통 등이 있다. 이는 삶을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스며들어 있을 수도 있고 직장생활 내에서의 대인관계 속에 있을 수도 있다. 가족, 학교생활 등등 한 마디로 우리나라의 삶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박동진 옹)의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 우황청심환 광고는 올리브 나무를 쉽게 설명해 준다고 할 수 있겠다. 이뿐 아니라 자주 인용되고 있는 "신토불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등의 표현도 올리브 나무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세계화란 결코 렉서스의 추구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균형 속에서 추구되는 발전을 통해서만이 제대로 된 세계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세는 렉서스를 지나치게 추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높은 기술과 생활수준을 추구하다 못해 영어공용화 논쟁까지 생겨나는 걸 보면 미국의 53번째 주에 편입되자는 주장까지 나올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이 책은 전자투자가 집단과의 접속이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줄 수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느림보 거북이에게는 큰 구속이며 충격이 될 수 있고 결국에는 반발만을 불러 일으켜 세계화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관행)를 포기하라고 협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올리브나무도 끝까지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렉서스만 타려고 한다면 어느 순간에 올리브나무의 반란이 시작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충고는 조심스럽게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4. 과연 미국은 세계화의 표본인가?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눈에 거슬리는 문장들이 빈번하게 나오기 시작한다. 세계화가 곧 미국화이며 미국이 세계화에 가장 적합한 체질을 갖고 있어 앞으로도 계속 번영할 것이라는 저자의 미국 우월주의는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반감을 가져오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세계화를 주도할 나라가 지녀야 할 조건으로 16가지를 언급한다. 그리고 그 조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지구상의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고 말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세계화는 미국을 모델로,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변화이며 미국식 ‘황금구속복’에 몸을 맞춰야 진정한 세계화에 동참하며 흘러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현실의 미국이란 국가시스템이 과연 세계화의 모델로서 적합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당선 이후 미국의 상황 및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상황을 보면서도 과연 프리드먼은 "세계화는 미국을 모델로 한,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변화"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들은 점점 자국이기주의에 빠지고 이민자들을 억압하고 자국이익을 위해 남의 나라 침략을 당연시 한다. 프리드먼이 말한 투명한 미국의 기업 상을 자랑하던 "엔론사"는 회계부정으로 인해 월가(Wall St.)에서 그 이름을 없앨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내부적으로 곪아 개혁이 필요한 곳은 바로 자신의 나라, USA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결국 그 또한 미국의 시민으로 그는 지금의 미국주도하의 세계화는 만족스러울지 모르나 실제 그것을 통해 억압받고 있는 입장에서는 또 다른 신제국주의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기반 없이 받아들이는 정보가 진정 가치 있는 정보가 되기는커녕 부작용을 낳는 사례는 역사를 통까.
1. 서론토마스 불핀치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그의 유명한 책『The Age of Fable』에서 이렇게 말한다...."Our readers may thus at the same time be entertained by the most charming fictions which fancy has ever created, and put in possession of information indispensable to every one who would read with intelligence the elegant literature of his own day."..."동시에 우리의 독자들은 결코 이전에는 만들어진 적이 없던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들[fictions]에 즐거움을 느낄 것이며, 그 시대의 우아한 문학작품을 읽고 이해하려는 모든 이들은 필수적인 지식들을 얻게 될 것이다."그리스 신화의 사상이나 생각등은 고대 유럽의 뿌리를 마련했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을 미쳐오고 있다. 그리스의 신들은 그 문명의 몰락과 함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지배권을 잃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져 나갈 것이다. 그 과정속에서 우리들이 얻게 되는 그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부터 3천 800년전 그리스 인들이 그들의 지식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만든 하나의 정교한 타임캡슐이랄수 있는 그리스 신화에 나타난 인간관에 대하여 알아보자.2. 본론가. 신화속 인간들의 모습.먼저 신화속에 나타난 인간들의 모습을 대충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그 예들은 너무 많기 때문에 여기서는 줄여서 나타내도록 한다.케팔로스-새벽의 여신 오로라의 총애를 받았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있기에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아 오로라를 노하게 하여 그녀의 간계로 케팔로스는 아내를 동물로 착각하고 창을 던져 죽이게 된다.칼리스토-쥬노의 질투를 산 미녀중 한사람으로서 쥬노는 그녀를 곰으로 만들어고 창을 던져 찌르려고 하였다.쥬피터가 이광경을 보고 그를 중지 시키고 그녀와 그의 아들을 하늘로 올려보내 별이 되게 하였다.그것이 대웅성과 소웅성이다.악타이온-카드모스왕의 손자로서 사냥을 나갔다가 다이아나와 님프들이 목욕하는걸 우연히 보게 되는데 다이아나가 이에 노해 그를 사슴으로 변하게 하였다.결국 그는 그의 사냥개에 의해서 갈기 갈기 찢기게 된다.파에톤-아폴로와 님프인 클뤼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아버지의 태양의 이륜차를 몰고 갔다가 고삐를 놓혀 세상을 불지르게 된다.쥬피터가 번개불을 던져 그를 떨어 뜨렸다.마이다스-박카스에게 호의를 베풀어 손으로 만진 모든것이 황금으로 변할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기뻐하던 것도 잠시 뿐이고 그는 먹을것 조차 제대로 먹을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박카스에게 자비를 구해 그 황금의 멸망으로 부터 구원 받을수 있었다.퓌그말리온-자신이 만든조각과 사랑에 빠진 그는 비너스 에게 그녀와 같은 여인을 아내로 점지해달라고 빌었다.비너스는 이 청을 받아들여 그조각의 처녀가 생명을 가질수 있게 해주었다.아도니스- 비너스의 사랑을 받은 그는 사냥을 즐겼는데 비너스가 자리를 비운새에 산돼지의 공격을 받고 죽게된다.비너스는 그의 피위에 신주를 뿌리고 그것은 꽃이 된다 .그꽃은 아네모네 이다.휘아킨토스-아폴로가 몹시 귀여워 하던 소년으로 그와 원반던지기 놀이를 하다가 그것을이마에 맞고 죽게 된다.아폴로는 이에 슬퍼하며 그를 꽃으로 만드는데 이꽃은 히아신스이다.프쉬케-비너스 보다 더아름답다 하여 비너스의 질투를 사게 된다.비너스는 아들을 시켜 그녀를 추남과 맺어주라 하지만 아름다운 프쉬케를 본 큐피드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나르시소스-에코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것을 거절하고 그를 그리며 죽어간 에코의 부탁으로 복수의 여신은 그에게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게 한다.그는 그것이 자신인지도 모르고 물속의 연인을 그리다 죽고 만다.아라크네-길쌈과 자수의 명수로서 아테네와 경쟁 해도 이길수있을 거란 말에 화가난 아테네가 그녀와 겨루고 그녀를 거미나를 모욕했기 때문에 그녀의 아들 딸들은 죽임을 당한다.휠라스- 헤라클레스가 사랑한 미소년 어느날 그가 물을 뜨러 갔을때 물의 님프들이 그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를 놓아 주지 않았다고 한다.헤라클레스-제우스와 알크메네사이에스 태어난 아들.쥬노의 미움을 받아 그녀의 간계로 헤라클레스의 열두가지의 노역을 겪게 된다.테세우스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와 아이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성인이 되었을때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로함.그도중에 그는 여러가지 모험을 겪게 되고 후에 아버지가 자결하고 그가 아테네의 왕이 된다.다이달로스-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실을 가지고 탈출한 미로를 만든 솜씨좋은 명장.이카루스의 아버지 이카루스-다이달로스의 아들.아버지가 만든 날개를 달고 날아가다가 너무 높이 날아 태양에 날개가 녹아 떨어져 죽게 된다.아리아드네 - 미노스왕의 딸.테세우스의 애인으로서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그에게 버림받는다.비탄에 잠겨 있을때 비너스는 그녀에게 신을 애인으로 주겠다고 약속한다.그녀를 불쌍히 여긴 박카스는 그녀를 처로 삼는다.그리고 그녀가 죽은후 박카스는 그녀에게 결혼선물로 준 금관을 던져 성좌로서 그녀를 하늘로 올려보낸다.아스클레피오스-아폴로의 아들로서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신비한 의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놀란 플루토는 제우스를 설복하여 그에게 번개를 내리게 한다페넬로페- 정절의 여신으로 상징된다.그미가 용모라기보다는 성격과 행위에 대해 미인이었다.후에 율리시즈가 많은 구혼자를 물리치고 그녀를 처로 맞이한다.오르페우스-죽은 아내를 찾아 지옥을 찾아나선 그는 아폴로와 뮤즈인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났다.그의 리라연주는 너무 훌륭해 명왕의 여왕을 감동시켜 아내르 찾아오게 된다.하지만 절대 아내 얼굴을 밖으로 나가기전에는 보지말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다시 찾지 못하게 된다.리노스- 헤라클레스의 음악 선생이었는데 그를 너무심하게 꾸짖어 화가난 헤라 클레스는 그를 리라로 때려 죽인다.멜람푸스-예언력이 부여된 최초의 인간이다.어미를 잃은 새끼 뱀들을 키웠는데 그새끼 아들이었고 아름다운 거인이었다.그리고 또 힘센 사냥꾼이었다. 후에 다이아나와 함께 살았는데 그는 다이아나를 아주 좋아했다.그러나 아폴로가 이를 맘에 들지 않아 했으므로 다이애나에게 수면에 올라오던 그의 머리를 쏘게 한다.당연히 그걸 모르고 활을쏘았던 그녀는 슬퍼하며 그를 오리온성 한자리에 올려 놓았다.티토누스-오로라가 가장 총애한 인간으로서 트로이왕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영원한 생명만을 부여하고 영원한 젊음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늙고 그녀는 그를 메뚜기로 만들어 버린다율리시즈-오딧세이의 주인공으로 그가 자기의 왕국인 이타케로 돌아가는 도중에 겪은 모험이 바로 오딧세이다.지금까지 신화속에 나타난 인간들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여기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신화속 인간들의 모습은 대부분의 결말이 비참하게 끝나게 된다. 물론 예외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이다. 왜 이렇게 인간들이 헤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신화속에서 비춰지는 인간들의 여러 모습중 특히 신에게 굴복되는 모습이 강하게 나타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당시 신들을 바라보던 인간들의 시각이 드러난 부분으로 볼 수도 있다. 인간보다 한단계 위의 존재로서 신을 평가하고 대신 인간에 대한 평가를 낮게 놓는 것이다. 신화속에 나타나는 인간들의 모습은 다음부분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다.가. 인간의 태초와 신화속 신과 인간의 관계.여기서는 자료를 찾으며 내가 생각했던 바를 적도록 하겠다. 성서에서는 주께서 6일째까지 모든 사물을 창조한다. 또 북구신화의 주신인 오딘은 바다에서 떠내려온 나뭇가지에서 인간을 창조해낸다. 그러나 그리스신화나 켈트신화 이집트신화에서는 인간의 창조에 대한 얘기가 없다.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 뚜렷하지는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최초의 인간에 대한 얘기가 없다는 게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 인간을 창조한 것일까.? 심심해서인가.? 이유가 뭐든지 간에 인간이 신보다 하등의 존재로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대부분의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다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화에서 모든 신들은 인간에게 숭배받고, 그들을 지배하고, 인간들위에 군림한다. 신들이 인간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신의 대리자, 숭배자, 노예로서의 모습이 바로 인간의 모습이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예들이 있다.가.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 나오는 글.오늘날에는 남성과 여성 2가지 성만이 존재하지만 아주 먼 옛날에는 한 몸에 남녀의 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제삼의 성의 인간이 있었다. 제삼의 성을 가진 인간들은 몸뚱이가 둥글었으며 손발이 넷씩 달려있고 머리에는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있는 두 개의 얼굴이 붙어 있었다. 귀도 넷이었고 성기도 남녀의 것 하나씩 쌍으로 되어 있었다. 이들은 지금의 인간들처럼 고개를 똑바로 들고 양쪽 방향 어디로든 걸어다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빨리 움직일 때는 마치 곡예사들이 재주를 넘듯 여덟 개의 손발을 쳇바퀴 돌리듯 번갈아 움직여 굴러가듯 달렸는데 그 빠르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남성은 원래 태양의 자손이고 여성은 땅의 자손이며 제삼의 성의 족속은 달의 자손이었다. 달은 양성적 존재이다. 이들은 자신의 조상을 닮아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고 걸음걸이 마저 달을 닮아 굴러가듯 움직였다. 이들의 힘은 강했고 야심도 많았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들은 끝내 올림포스 신들에게 도전하기에 이르렀다. 제우스는 이들을 벼락을 내려 없애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신들에게 제물을 바칠 인류마저 전멸할 판이었다. 골똘히 궁리한 끝에 제우스는 제삼의 성을 가진 인간들의 몸을 두 쪽으로 갈라 놓았다. 몸을 자를 때마다 얼굴을 돌려 놓아 절반이 된 짝을 바라보게 함으로서 이들의 힘이 약해지게 했다. 아폴론은 갈라진 이들의 몸을 지금의 배쪽으로 사방의 가죽을 끌어다 꿰매주었다. 그 꿰맨 자리가 배꼽이다. 그 후 인간은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을 그리워하며 합치려 했다. 그리하여 남녀는 서로 끌어안고 하나가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제우스의 바람대로 인간의 힘은 몸이 반쪽으로 되면서 반으로 줄어 들었다. 게다가었다.
Ⅰ 무가베·약력짐바브웨 북서부의 쿠타마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남195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포트헤어대학 졸업1960년 국민민주당 입당1961년 ZAPU창설 (부서기장)1963년 ZANU창설 (서기장)1976년 PF결성 (공동의장)1980년 초대 총기 취임1987년 대통령 당선1990년 대통령 재선·과거짐바브웨의 북서부에 위치한 쿠타마에서 태어난 무가베. 지금은 잔혹한 지도자로 알려진 그는 원래 평범한 목수의 아들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학졸업 후 짐바브웨의 남로디지아·잠비아의 북로디지아·가나 등지에서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의 평범한 생활은 1960년 조국인 짐바브웨의 국민민주당에 입당하며 끝이 난다. 입당 후 무가베의 정치활동은 활발해지기 시작한다.1961년 국민민주당의 비합법화 → J.은코모와 함께 짐바브웨아프리카인민동맹(ZAPU)창설 → 1962년 체포 → 1963년 탄자니아로 도피 → N.시톨레와 함께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ZANU)창설 → 1964~1974년 체포,구금 → 가석방 후 ZANU 의장에 취임) 두산세계대백과사전 2001.자신이 창설한 ZANU의 의장에 취임한 무가베는 게릴라투쟁을 지도한다. 1970년 후반 로디지아에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지만 그는 계속해서 무력해방을 주장하며 1976년에는 애국전선(PF)를 결성한다. 은코모와 함께 PF의 공동의장에 오른 무가베는 해방세력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 1979년에 열린 독립선거에서 당을 압승으로 이끌게 된다. 철저하게 감시된 1980년 3월 선거에서 무가베는 큰 득표차로 짐바브웨 초대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되며 짐바브웨는 아프리카 독립국 반열에 올랐다.) 신발끈 여행사(http://www.shoestring.co.kr) - 짐바브웨편이어 1987년에는 짐바브웨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1990년 3월에 재선되었다.·현재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인 무가베는 90년 당선후 계속 권력을 잡아왔다. 그는 부정한 정부, 게리맨더링, 협박 등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대 불만이 고조에 달해 교전상태와 폭동, 약탈 등이 발생했다.) 신발끈 여행사(http://www.shoestring.co.kr) 짐바브웨-역사편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주변 국가에서도 짐바브웨에 은근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최근상황·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두 나라인 나이지리아와 남아공화국은 30일 짐바브웨에 대해 백인소유 농장 몰수 계획) 무가베 대통령은 백인들이 소유한 3천여개의 상업농장을 몰수해 토지가 없는 흑인들에게 재분배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그는 이어 '토지 분배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가려는 백인들의 터무니 없는 행동에 대해 경고한다'며 '백인들이 조화를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이 나라를 떠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앞서 짐바브웨 대법원은 정부가 법률에 규정된 토지보상 규정과 사전통지기간을 지키기 않은채 토지재분배 계획을 집행했기 때문에 이는 '위법'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짐바브웨에 거주하는 4천여명의 백인 농장주들은 국가 전체 경작지의 3분의 2를 소유하고 있다.과 관련, 자국법을 준수하라고 요구했다. 혼란되고 굳은 표정의 무가베 대통령은 정상회담후 기자회견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며, 기자회견을 주재한 오바산죠 대통령만이 발언했다.) 연합뉴스 - http://www.yonhapnews.net/· 영연방은 짐바브웨의 연연방 자격에 대해 심사 숙고하고 있다고 호주 외무부 장관인 알렉산드 도우너(Alexander Downer)가 월요일 런던에서 밝혔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있은 영연방 장관 모임에서 짐바브웨의 영연방회원 자격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도우너는 짐바브웨가 전 식민종주국인 영국 뿐만 아니라 영연방 회원국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밝혔다. 짐바브웨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백인 농장주들에 대한 무가베 정권의 강제 강탈로 흑. 백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무가베는 자신의 정권연장을 위해 독립참전용사들을 앞세워 백인 농장을 무단 점거하고 국제사회의 민주적인 해결을 무시하고 있다. 이같러 왔다. 그렇다고 그가 전적으로 잘못된 인물만은 아니다. 짐바브웨의 독립을 이끌었고 비록 그의 정치나 지도력에 많은 반발이 있기는 하지만 나라를 지금만큼의 수준까지 이끌고 유지시킨 사람이 바로 무가베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를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의 박정희 전대통령과 전두환 전대통령을 섞어놓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6.25전쟁이후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배고픔과 가난에 허덕이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을 때 박정희 전대통령은 우리에게 눈부신 경제의 발전을 안겼지만 지나친 독재로 인하여 비난을 면치 못했다. 발전과 독재의 두 가지 점과 광주사태에서 볼 수 있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폭압정치는 지금의 무가베와 흡사하다.Ⅱ 무세베니·약력1944년 우간다 남부 음바라다에서 출생1966년 은타라학교 졸업1970년도 다르에스살람 대학교 졸업1980년 우간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1986년 우간다 대통령 취임1996년 우간다 대통령 재선2001년 3월 12일 재선 승리·과거현 우간다 대통령 무세베니(52)는 목축업에 종사하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교에 들어갔다. 우간다 남서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MBARARA의 NTARE학교에 재학때부터 정치활동을 시작했던 무세베니는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배웠다. 이어 그곳에서 경제학과 정치학 학위를 받은 후 졸업하였다.1971년 이디아민의 군대가 우간다를 집권한 후 무세베니는 FRONASA(THE FRONT FOR NATIONAL SALVATION-국가구국전선)을 구성하여 이디아민에 대항하였다. FRONASA는 반이디아민 집단중에서 핵심이었고 탄자니아 인민 방어군과 함께 1979년 4월 결국 이디아민 정권을 몰락시켰다.후에 과도정부상태에서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무세베니는 국방부 장관·지역협동부 장관·군의회 부의장직을 역임하고 1980년 우간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 그러나 1980년 12월, 거의 20년만에 처음으로 실시되는 국민선거에서 오보테가 이끄는 국민 의회당이 부정수법을 이있는 정부를 형성하여 국민 저항 운동을 일당체제로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권오능의 가자! 아프리카 칼럼·현재1996년 무세베니가 정권을 잇게 된 것은 그 동안 우간다 국민들을 괴롭히던 악덕 독재자였던 이디아민과 밀턴 오보테의 시간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무세베니가 지금까지 우간다를 통치해 온 15년 동안 우간다는 비교적 평화를 누렸고 지금도 그 상태는 지속되고 있다. 무세베니는 경제를 재건했고 초등 교육 의무를 도입했으며 여성의 권리를 향상 시켰고 HIV/AIDS를 제압했다.) MAIL & GUARDIAN 3월 12일자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은 작은 부분에 있어서의 발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를 재건했다고는 하지만 커다란 성장도 아니고 약간의 경제 발전 정도에서 머물고 있다. 또한 무세베니가 집권하며 여러 가지 국민들을 위한 일들을 이뤄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몇 가지 사실로 나라가 발전하지는 않는다. 한 나라의 통치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다스리는 나라를 얼마만큼이나 국민들의 불만없이 발전시킬 수 있느냐이다. 무세베니는 후자는 이루었을지언정 전자는 이루지 못했다.이것은 일전에 설립된 아프리카 자유무역지대(COMESA)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무역특혜협정(PTA)을 확대시켜 경제를 통합하자는 취지에서 출범한 코메사에는 우간다가 빠져 있는데 그 이유로 파이낸셜 타임스는 "우간다등 경제력이 약한 국가는 경제통합으로 이집트등 지역내 경제강국에 종속될 것을 우려, 참여에 소극적인데다 콩고민주공화국 등 일부 국가는 서로 분규에 휘말려 있는 등 코메사가 정착되기까지는 걸림돌이 많다" 고 밝혔다.) 중앙일보 2000년 11월 01일자 신문 32면.부간다에 있는 많은 농부들은 무세베니가 그들에게 과거에 번영을 누리던 부간다 왕국을 다시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렇게 될까.·최근 상황·미 국무장관 Colin Powell은 우간다의 HIV/AIDS 방지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우실히 알 수 있다. 오랜 기간 군인들에게 약탈을 당해왔던 농부들에게 지금의 무세베니는 구세주와도 같은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과거 쿠데타 활동을 5년만에 성공적으로 이끌은 점등을 보면 무세베니의 전략가로서의 능력은 인정할 만 것이 된다. 또한 무세베니는 15년전 게릴라군의 사령관으로서 정권을 이었고, 1996년 첫 선거가 실시 되었을 때는 투표자의 74%에게 지지를 받았다. 이번 선거에서는 반군 동지였던 베시게의 강력한 도전을 받아왔었다. 그러나 우간다 대통령은 15년간의 통치를 국민들에게 인정받아 이번 재선(2001년 3월 12일)에서도 승리했다. 놀라운 것은 5년 간의 게릴라 전선을 이끌 후 1986년으로 꽤 오래전에 권력을 이어 받은 무세베니가 이번 선거에서도 69.3%를 획득하여 승리한 것이다. 이와 같이 대통령 선거때마다 높은 투표율을 보인 그를 보면 국민들에 대한 신뢰도도 높은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무세베니는 나라를 발전시키는 지도자로서의 능력은 부족한 듯 싶다. 그를 보고 있으면 삼국지의 유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삼국지내에서 유표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통치자의 역할은 훌륭히 수행해낸다. 백성들은 그를 존경하고 따른다. 그러나 유표는 정작 성을 이끄는 지도자로서는 그다지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중에 결국 유비에 의해서 성을 빼앗기고 만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 2권.무세베니 역시 흡사한 태도를 지금 보여주고 있다. 이디아민과 오보테에 의해서 고통받고 신음을 토하고 있던 우간다를 구해낸 뛰어난 전력가이자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 대통령이지만 정작 자신의 나라를 발전시키지는 못하는 그런 대통령.Ⅲ 비교 분석지금까지 짐바브웨의 대통령 무가베와 우간다의 대통령 무세베니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똑같이 한 아프리카 국가의 대통령이고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도 어느정도 비슷하다. 무가베는 짐바브웨의 자주독립을 위해서 투쟁했고 무세베니는 독재집단으로부터 우간다를 구해내기 위해서 투쟁했다. 뛰어난 전략가인 두 사람은 모두 성공했고 조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