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아무리 그가 인간적이고, 사람들에게 잘 해 주어도 좋은 성과를 거두어야 인정 받기 마련이다. 히딩크의 리더십이 화제가 되었던 이유도 그가 월드컵 4강이란 신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은 탁월한 리더라 할 수 있다. 여러 면에서 성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1446년 (세종 28년)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등 집현전 학사들과 더불어 순수한 우리 글 훈민정음을 만든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그만큼 우수한 언어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세종대왕은 한글의 창제로 우리 국민에게 인정 받아오고 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이 업적 외에도 리더십을 발휘한 훌륭한 업적이 많음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이번 ‘세종의 리더십’ 6회 연재는 한글창제의 업적 때문에 세종대왕의 리더십 등 다른 훌륭한 점이 희석되고 있는 안타까운 점을 잘 해소해주었다고 생각한다그렇다면 어떠한 이유로 세종대왕의 리더십이 훌륭하다고 평가되는지 ‘세종의 리더십’의 6가지 항목을 통해 살펴보겠다.1. 과학적 회계와 통계15세기 세종대왕이 국가경영을 위해 사용한 회계는 인류가 창안한 가장 위대한 문명이라고 까지 한다. 또한 회계와 함께 국가 경영에 통계도 사용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의 내용은 전국 군.현 단위로 호수와 인구 수, 경지면적, 논과 밭의 비율 등 오늘날 국세 조사와 유사한 통계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통계는 회계는 뒷바침 하는 회계체제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회계문자를 이두문자로 쓰는 등 회계체계는 세종 때부터 구체화되었다고 한다. 이는 회계의 목적이 기록과 계산을 넘어서 공개장소에서 큰 소리로 낭독하는 투명한 보고 행위에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2. 지방 수령 6년 임기제세종대왕의 '정치가 세종'의 면모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게 '지방수령 6년 임기제', 즉 수령육기제(守令六期制)의 도입과 제도화 과정이다.고려시대와 조선 초기 수령의 임기는 3년이었지만 세종대왕은 그게 너무 짧다고 보고 세종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해 임기 6년제가 추진되었다. 그러나 이에 따른 관료들의 저항이 지속되었다. 세종대왕은 관료의 반대가 사적인 이해관계와 불편을 의식한 탓이라고 확신하고 이 문제를 '공익 대 사익'의 차원으로 몰아갔다. 이를 계기로 6년 임기제는 완전히 제도화되고, 조선 후기까지 변함없이 유지된다. 세종대왕은 유교경전과 역사서에 대한 깊은 독서(이해)를 바탕으로, 이를 당시 조선의 정황에 걸맞게 정치적으로 해석해 냄으로써 구체적 전략으로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과거의 제도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과제로 삼는 주체적이고 능동적 자세를 그가 가졌다는 점에 과거의 리더 속에서 차별됨을 찾을 수 있다.3. 비밀 프로젝트 한글세종대왕은 날로 흉포해져 범죄가 늘어나는 그 당시의 풍속을 바로잡기 위한 기존의 방법이 범죄 예방에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세종대왕은 백성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한 국가경영책 실행의 필요성을 인식했는데, 훈민정음이 바로 그 소통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런 문자의 창제는 비밀리에 이루어졌으며, 성삼문. 신숙주.이개. 이선로. 박팽년. 최항 등 소수의 근신만으로 수행하였다. 그리고 세종대왕은 자신의 인사정책과 정책 수행에 대한 소외된 세력의 저항이나 비판을 정공법으로 타개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자신의 정책이 무엇보다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에 의거해 반대세력을 논박했다. 여기서 세종대왕 리더십의 핵심은 정책의 비전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데 있다. 정책 수행에 대한 저항에는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하게 했다. 실력은 함께 정책을 수행하는 신하에게도 요구됐다. 우리의 운서를 만들기 위해 성삼문과 신숙주를 중국인 황찬에게 13번이나 보내 조언을 구하게 한 것이라든지, 정음을 만들고 나서 3년 동안 해례서를 만들게 한 일은 이론적 보강에 만전을 기하려는 철저함과 치밀함을 말해준다.4. 약자들에 대한 배려세종대왕이 등극한 후 무려 7년간 조선은 혹독한 가뭄에 시달렸고 백성들의 생활은 참혹했다. 세종대왕은 백성과 아픔을 같이 하기 위해 경회루 동쪽에 버려둔 재목으로 초가를 짓게 하고 그곳에 머물렀다. 정승과 판서들은 연일 세종이 기거하는 초가에 꿇어앉아 침전으로 들 것을 간청하였으나 그는 그 건물에서 지내면서 백성과 고초를 같이 했다. '무지한 백성'에겐 관대했지만 백성의 안위를 어지럽히는 일에는 용서가 없었다. 또한 백성의 접점인 수령과 감사들에게 “만약에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굶어죽는 경우가 발생하면, 감사와 수령에 죄를 묻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세종은 결코 군림하는 리더가 아니었다. 그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한글을 창제하여 백성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소통의 벽을 허문 점도 이 시각에서 볼 수 있다.5. 싱크탱크 집현전 확장세종대왕은 국가경영 리더십의 손발 역할을 하던 집현전을 대폭 정비해 젊은 학자들의 연구와 토론을 위한 상설기구로 발전시켰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전을 연구하고 외국의 사례를 비교해 조선에 적실한 법제를 마련하도록 했다. 집현전은 국왕에게 필요한 정제된 지식과 당면한 정책과제를 풀어나갈 정치적 지혜를 적시에 제공하는 싱크탱크였다. 국가 일을 내 자신의 임무로 여기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집현전 인재들은 37년간 100여 명이나 배출됐다. 그들에 의해 조선왕조는 수성의 안정기로 진입할 수 있었고, 빛나는 문명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었다.6. 리더십의 요체 爲民'백성을 위한다'는 그 많은 말은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졌는데 여기서 세종대왕 리더십의 특징을 세 가지로 볼 수 있다.첫째 세종대왕은 상당한 균형 감각을 가지고 국가를 경영했다. 가령 세법(稅法) 개정 과정에서 그는 신료와 일반 백성들, 그리고 중앙과 지방의 여론을 골고루 들었다. 둘째 예방적 조치를 많이 취했다. 백성들의 불만이 적극적으로 표출되기 전에 필요한 정책을 미리미리 마련하고 주변을 설득해 나갔다. 셋째 세종은 깊이 생각하고 여러 번 의논하는 '숙의(熟議) 정치'를 실천했다.그리고 무엇보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의 기반인 독서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 수많은 경전을 읽으며 왕자 수업을 받고, 세종의 건강을 걱정해 태종이 환관을 시켜 서책을 감춘 때에도 방안에 남아있던 '구소수간을 수도 없이 반복해 읽었다고 한다.고전 읽기와 정치현실에 대한 꼼꼼한 관찰을 통해 실력을 쌓고 지혜를 얻어 32년간 조선을 탄탄하게 경영했던 세종의 리더십은 현재에도 되짚어 볼 중요한 부분이다.- 결론 -이와 같이 세종대왕은 기득권의 저항을 흡수하고, 새로운 룰로 과도한 세력을 잠재우면서 지식발전소와 같은 집현전을 필두로 다양한 조직의 핵심 브레인들과 함께 수많은 기획과 실험을 통해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다양한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질적으로 백성에게 다가간 생활을 하면서 백성의 삶을 이해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한 리더의 면모가 눈에 띈다. 인간적인 매력이 함께했기에 리더십이 더욱 빛난 것이다. 불황이라고 직원들에게 허리띠 졸라맬 것을 강조하면서 자신은 고급차에 골프를 치러 다니는 사장이나, 국민들이야 힘들건 말건 아랑곳 하지 않는 권력층의 사람들은 세종대왕의 ‘백성을 이해하기 위한 솔선수범’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종은 자신의 경영을 학문에만 그치지 않고 현실에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 ‘경학’ 공부 또한 최선을 다했다. 리더로서 자신이 알지 못하면서 내리는 결정과 지시만큼 위험한 것이 없음을 생각하게 한 부분이다.이러한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조화를 이룬 세종대왕의 리더십은 작은 단체, 회사, 나아가 국가를 경영하는 데에 있어 다시 한번 새기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기여입학제 도입 논의는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국제경쟁력을 가진 대학의 육성을 위한 선결 과제인, '사립대학의 부족한 재정문제 해소'의 방안으로 출발하였다. 그런 반면 기여입학제가 계층간의 위화감을 조성하고 교육에 엄청난 불평등을 초래하며, 대학간의 빈익빈 부익부를 부추겨 대학서열을 가속화시키리라는 도입 반대 주장도 팽팽히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 대학의 열악한 재정문제를 해결할 별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인 기여입학제를 무조건 금기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세계 일류대학들은 우리 대학에 비해 10배 이상의 예산과 막대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세계적 석학들을 교수로 초빙하고 풍부한 장학금으로 훌륭한 학생들을 유치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일류의 도서관과 연구 환경을 조성하여 아낌없는 연구와 행정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 대학에 비해 훨씬 높은 학생-교수 비율을 유지하며 교수들로 하여금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고 학생들에겐 보다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반면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정부 재정지원 자체의 한계가 있으며 그 외의 방법으로는 재정확충이 곤란한 시점이다. 이로 인하여 세계 일류대학과 우리나라 일류대학의 교육의 질의 차이가 생겨날 수 밖에 없으며, 그에 따라 대학 재정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대안이 강구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위에서 언급한 기여입학제 도입으로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기여입학제의 도입 찬성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더 살펴보고 반대 입장도 자세히 분석해 보며 끝으로 나의 입장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찬성입장]해마다 등록금 인상 문제로 학생과 대학간의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이는 대학 재정의 대부분을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학의 재정난이 취약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다시 말하면 대학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은 돈이라는 게 대학 사회의 공통된 인식이다. 그러나 국내 대학의 예산 규모는 미국의 10분의 1, 일본의 4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한 실정이다. 현재 정부가 사립대에 지원하는 예산은 사립대 전체 재정의 5%에도 못 미친다. 예산의 70%가량은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한다. 이런 구조 아래에서는 학생 수 감축에 따른 대학들의 재정 부족 현상이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기여입학이 허용된다면 오랫동안 문제시가 되어왔던 사립대학의 이러한 재정난의 상당부분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기여입학이 시행되면 일반전형으로 입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는 기여입학의 경우 일반 학생선발과는 별도로 정원 외로 선발함으로써 일반학생간의 경쟁에 피해가 없도록 한다면 이는 도리어 교육재정 확충이라는 공익이 모두에게 돌아가는 것이 되므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기여입학제가 도입되면 연구비.장학금 등에 대한 재정지원뿐만 아니라 시설확충 등으로 세계적 대학이 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렇듯 기여 입학제는 교육기회 확대와 부의 재분배 효과, 대학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그리고 재정수입이 부당하게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외부인사가 포함된 특별관리위원회를 구성해 관리하게 한다면 그에 대한 우려는 해소될 것이다. 또한 기여입학과 관련한 재정수입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철저하게 이를 교육시설 투자와 장학금에 한정해 집행 하도록 하고, 그 내용은 투명하게 공개하고 감독관청의 감사를 받는다면 공정성 및 투명성 문제를 해결되리라 생각된다. 또, 무조건 기여가 있다고 입학시키는 것보다 최소한의 학력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하나의 기여 입학제에 대한 보완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반대입장]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만약 기여입학제가 허용된다면 교육의 기회균등이라는 사회정의 원칙을 위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계층간 학생간의 불평등을 초래하게 될 것이며, 기여입학자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열등감과 인격발달과 학교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기부금을 못 내서 대학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학부모를 무능한 부모로 취급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될지도 모른다.그리고 기여입학제가 돈과 입학을 맞교환하는 기부금 입학과 별반 다를 것이 없으며 이로 인해 학생들에게 실력에 의한 사회참여보다는 경제력이 최고라는 황금만능주의 가치관을 심어주게 될 것입니다. 대학이 강단에서는 물질만능주의와 금전만능주의를 비판하면서 한편으로는 교육의 장에서조차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또한 대학으로서는 돈으로 대학입학증을 살 수 있는 풍토가 확산되면 대학이미지가 훼손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마지막으로 만약 기여입학이 허용된다면 일부 최상위권 대학에서는 기여입학의 자격요건을 제한함으로써 납득할 정도의 자격을 갖춘 학생들을 선발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외의 대부분 대학에서는 기여입학 희망자가 있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있다 하더라도 자격이 되지 않는 학생이 대학 입학을 돈으로 사려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여입학제를 통해 입학하는 학생의 실력과 기여금 액수에서도 대학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확연히 나타나면서 상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비싼 기여금과 높은 자격기준이 적용될 것이다.
-EMU의 등장 및 발전 그리고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1. EMU의 배경과 발전과정가. EMU 등장배경가)유럽통화동맹(EMU) 추진의 정치∙경제적 배경-유럽통합의 추진 움직임은 이미 1950년대부터 태동하기 시작하였다.-유럽경제공동체(EEC)의 선구자격인 유럽석탄공동체(1951), 유럽원자력공동체(1955) 등을 통해 핵심산업을 초국가적인 정치적 통제하에 두고자 하였다.-각국의 정부기관, 정당, 민간기관이 유럽통합 추진에 기여를 하였으며, 냉전체제 하에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전략적인 파트너로 유럽을 지원, 육성하고자 했던 미국 또한 유럽통합 추진에 일정한 기여를 하게 되었다.-1958년 유럽경제공동체(EEC)가 등장하게 됨으로써, 시장의 확대, 지속적 산업성장, 농업기반의 견고화 등 유럽통합의 긍정적 효과가 가시화됨에 따라 유럽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유럽 국가들은 시장통합을 신속하게 추진함과 동시에 시장통합의 효과가 궁극적으로통화통합을 통해 극대화 될 것이라 보고 통화통합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유럽통합에서 통화통합이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원인은 미국과 타국간의 비대칭성에 기초한 달러본위제가 유럽의 장기정체를 극복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달러본위제에서 이탈하기 위해 유럽통화동맹의 필요성이 대두되게 되었다.나)유럽통화제도(EMS)의 창설 (1979. 3)- 유럽통화제도(EMS)의 요소는 다음과 같이 3가지이다.ㆍ ECU(European Currency Unit)의 창설: EMS(유럽통화제도)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며, EC(유럽공동체)통화의 바스켓(통화가치를 일정 비중으로 합성한 통화)으로 되어 있으며 그 구성비율은 각국의 경제력에 의해 정해져있다. 계산단위, 결제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ECU라는 통화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ㆍ ERM(Exchange Rate Mechanism: 환율개입 메카니즘):EMS회원국 통화가 對ECU 중심환율에 따라 환율변동허용폭(±2.25%) 한계에 이U 발전과정1)EMU 발전과정가)1단계: 1990.7∼1993.12ㆍEU회원국과 제3국간의 자본이동에 관한 규제 철폐.ㆍ경제, 재정 및 통합문제에 관한 EU회원국간의 긴밀한 협력.ㆍ경제 통합을 위한 경제수렴조건의 달성계획 수립(1992).나)2단계: 1994.1∼1998.12ㆍ유럽중앙은행(ECB) 모태가 될 유럽통화기구(EMI)설립.ㆍ각국 중앙은행의 독립성보장을 위한 관련법 개정.다)3단계(EMU 공식출범): 1999.1∼ㆍ단일통화인 유로화의 도입.ㆍEMU가입국 통화의 유로화에 대한 환율고정. 단일통화도입 및 그 경과1단계(EMU 준비)1998년초~1998년말ㆍ참가국 결정ㆍESCB(유럽중앙은행제도) 및 ECB(유럽중앙은행)의 설립(1단계를 통해서 준비를 본격화하고 사전에 채용 가능한 시책을 실시)ㆍ ESCB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완전한 법적 제도 마련ㆍ 국내 운영기구 정비ㆍ 은행 및 금융업계의 유로 전환계획2단계(EMU 발족)1999년1월1일~2001년12월31일ㆍ 참가국 통화와 Euro화간 교환비율 고정ㆍ 독립통화로서 Euro화 통용ㆍ ECB, Euro화에 의한 단일통화 및 환율정책 실시ㆍ 은행간 시장, 금융시장, 자본시장, 환율시장에서 계산단위를 Euro화로 통일ㆍ Euro화에 의한 거액 결제제도 채택ㆍ 은행과 금융기관의 Euro화로 전환계속ㆍ 공적기관 및 은행을 제외한 민간부문은 각각 스케줄대로 Euro화로 전환3단계(단일통화완전도입)2002년1월1일부터ㆍ Euro화 지폐와 주화도입ㆍ 은행의 전환종료 (모든 소매거래에서 Euro화만 사용)ㆍ Euro화, EU역내 유일한 법정통화로서 통용ㆍ 각국통화 지폐 및 주화 회수ㆍ 공적기관 및 민간부문의 전환 작업 완료다. EMU의 경제수렴조건EMU 참가 기준은 1992년 체결된 마스트리트 조약에 의거하고 있다. 마스트리트 조약은 EU 회원국들이 EMU 가입시 필요한 경제수렴조건을 다루고 있다. 이들 조건은 아래표와 같이 물가, 금리, 재정, 환율 부문에 대한 기준치를 제시하고 이다.마스트리트 경제수렴조건구분질경제지표와의 수렴도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EMU에 가입이 가능하였다1차 참가국 결정당시, 최대한 많은 국가들이 EMU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마스트리트 경제수렴조건 중 몇 항목이 융통성 있게 조정되었다.•환율조건핀란드의 마르카(Markha)화는 1996년 10월, 이탈리아의 리라(Lira)화는 1996년 11월에 ERM에 가입하였는데 이는 평가시점까지 각각 16개월과 15개월 동안만 ERM에 가입한 것으로 최저기준치인 2년을 채우지 못하였다.•재정조건재정조건은 예외규정의 해석을 통한 EU 회원국의 정치적 판단에 따하 결정된다. 1997년 벨기에의 정부부채가 GDP대비 122.2%, 이탈리아는 121.2%를 기록하고 있어 기준치인 60%를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래표와 같이 이들의 부채잔액은 1994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였고, 이와 같은 감소 추세가 고려되어 벨기에와 이탈리아는 1차 참가국으로 포함되었다. 특히, 이들은 EU 창립국으로 EMU 1차 참가국에서 제외되는 것을 정치적으로 고려할 수 없었다.벨기에와 이탈라아의 정부부책잔액 감소 추이(GDP 대비 %)19941995199619971998벨기에133.5131.3126.9122.2118.1이탈리아124.9124.2124.0121.6118.1자료: EMI(1998) Convergence Report라)마스트리트 조약의 또 다른 해석마스트리트 경제수렴조건은 명목조건으로 EU 회원국의 최적 통화지역을 결성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아니며,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해석될 수도 있어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그러나, 회원국들에게 물가기준이나 재정기준을 제시함으로써 EMU에 참여하는 국가들이 유럽중앙은행의 최대 목표인 물가안정을 지키는데 기여하였다.라. 유럽중앙은행(ECB)과 EMU1)유럽중앙은행(ECB)의 설립 배경70년대 전반을 통한 유럽의 고실업과 인플레이션으로 거시경제정책의 한계점이 대두되었으며, 가격안정정책의 제도적 기반을 공고히 할 장기적인 통화정책의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그리고 통화정책의 성공적 운용에 있cil), 집행이사회(Executive board)와 일반위원회(General council)등 3개 기구로 구성된다.ㆍ 최고 의결기구인 '정책위원회'는 단일통화정책 결정을 담당하며 ECB 총재와 부총재,4명의 위원, 12개 유로 참가국 중앙은행 총재들로 구성된다.ㆍ '집행 이사회'는 정책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세부사항을 결정하고 각국 중앙은행에 지시사항을 하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3)유럽중앙은행(ECB)과 경제통합-성격: EMU(European Monetary Union: 유럽통화동맹)가 발족하여 각 회원국의 개별 화폐가 소멸되자 유럽 통화정책에 관해 집단결정을 강화할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회원국의 통화 주권을 인수하고 유럽 공동의 통화금융정책을 지휘한다.-경제통화동맹의 발전과정 3단계 中, 제2단계가 유럽중앙은행의 창설이며, EMU의 진행과 정상 참가국의 통화주권은 유럽중앙은행제도(ESCB)로 이관된다.4)유로화의 출범이 갖는 의미와 ECB의 과제-의미: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통화동맹이 상호 분리될 수 없는 관계로서 단일유럽의 경제통합을 이끌어 가는 중심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과제: 회원국의 경제정책 및 조세정책의 운용, 노동시장의 통합 가속화 등의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유럽중앙은행(ECB)의 독립적, 독자적 정책운용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2. EMU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가. 역내경제에 미치는 효과단일통화를 사용함으로써 환전에 따르는 거래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다. 또한 환율변동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어 관세 혜택과 더불어 역내의 환율 불안이 사라져 무역이 증대되고 직접투지에 의하여 자본의 이동이 촉진되어 경제의 효율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리고 물가안정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여러 나라의 중앙은행이 물가를 관리하는 것보다 하나의 유럽중앙은행이 물가를 관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가진 나라들을 낮은 인플레이션을 가진 국가로 유도하여 그 나라의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단일통화가 실현될 경우 외환시이 높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EMU로 금융시장이 통합되고 인플레이션이 낮이질 경우 역내경제로의 해외직접투자가 늘어날 것이다. 세계무역구조가 변화될 수 있다. 통화통합으로 역내에서 교역량이 증가하는 반면 역외국가로부터의 수입이 감소할 것이다. 또한 단기적으로 역외국을 차별하는 보호무역이 강화되어 역외국가로부터의 수입량은 더욱 감소할 것이다.다. 한국경제에 미치는 유로화 출범의 영향1996년 한해 동안 우리나라의 유럽연합에 대한 수출규모는 152억 2,000만 달러, 수입은 212억 달러였다. 미국, 일본, 동남아와 함께 우리의 4대 교역상대이다. 이 지역에 대한 국내 기업의 직접투자 규모는 1996년 말 현재 13억 5,000억 달러이다. 동남아(57억 5,000만 달러)와 미국(40억 6,000만 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이다. 향후 유로화 출범에 따른 영향을 보면 유로화의 출범이 현지에 진출한 기업과 금융기관에 부담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대부분의 자산을 달러화 기준으로 갖고 있는 금융기관은 유로화로 전환해야 하는 비용이 소요되며, 외환거래의 수익 감소와 경쟁격화로 수익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EU 집행위원회는 유로화가 사용될 경우 역내 외환거래의 20%가 줄어들고 연간 300억 달러의 외환거래비용 절감을 예상하고 있다.그만큼 금융기관의 수익이 줄어들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 금융기관의 업무전문성 부족, 규모의 영세성은 현지 은행과의 경쟁에서도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기업들도 단기적으로 유로화의 약세, 경쟁격화에 따른 가격조건의 불리함, 유럽지역 기업의 경쟁력 강화 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우리 기업의 무역은 대부분 우리나라와 개별국가간 거래형이기 때문에 통합의 이점이 적다.수출둔화와 수입증가로 현재 나타나는 EU에 대한 무역적자 현상은 단기간 중 심화될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향후 유로화 출범에 대비하여 유럽통화시스템에 대한 정보수집과 체계적인 대응책 마련에도 주력해야 한 것이2
EU경제의 구조적 특징과 전망1. EU의 경제통합과 리스본전략 추진(1) EU의 역내시장 통합: EU는 세계 제2차 대전이후 유럽국가간 전쟁을 불식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하여 유럽국가간 역내시장통합을 적극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로 EU는 1968년 관세동맹을 출범시킨데 이어, 역내경제가 가장 어려웠던 198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인 통합노력을 통하여 1993년 역내시장을 출범시켰으며, 1999년에는 역내단일화폐인 유로화를 도입하여 경제통화동맹(EMU : Economic and Monetary Union)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아울러 EU는 관세동맹 출범당시 6개국에서 5차에 걸친 회원국 확대를 거듭하여, 현재 서유럽 대부분과 동유럽을 10개국 아우르는 모두 25개 회원국에 인구 4.5억명을 포함시키는 거대 유럽단일시장을 형성하였습니다.(2) 리스본 전략 추진: EU경제의 구조적 특징을 대변해주는 리스본전략은 EU가 1990년대 이후 역내시장통합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경제력 격차가 더욱 심화됨에 따라, 1999년 유로화 출범을 통한 단일통화권으로 발전을 계기로 미국을 따라잡기 위한 정책이 바로 리스본 전략이다.. 리스본 전략의 배경- EU 정상들은 2000년 3월 리스본에서 유럽경제를 201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경제체제로 만들자는 경제개혁 전략인 리스본전략을 채택하였습니다.- EU는 고질적인 실업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사회보장과 강력한 노조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는 고용시장을 더욱 경색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또한 유럽기업의 R&D활동과 정부의 지원은 미국, 일본보다 뒤져 있었고 화폐는 통합되고 물적, 인적이동은 자유화되었으나 여전히 유럽경제는 하나의 단일시장경제로 통합되지 못하고 회원국별 단위의 경제로 나뉘어져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화폐가 통합된 만큼 각국의 거시정책은 상호조화를 이루어야 했고 유럽의 사회보장모델은 혁신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였습니다. 공동화폐를 사용하는 단일시장인 만큼 이러한 과제는 설사 성공한다 해도 효용성이 없으므로 불가피 전 회원국이 공동으로 추진할 필요성을 제기하였습니다.. 리스본전략 추진의 중간평가- 채택 된지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리스본 전략의 이행현황에 대한 EU의 자체 평가는 상당히 부정적이었습니다.고용분야의 경우: 약 600만개 일자리가 새로 창출되어 취업률이 64.3%로 향상되기는 하였으나 중간목표 2005년 67% 최종목표 2010년 70%를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국별 행동계획: 각 회원국이 시행해야 하는 국별 행동계획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예컨대 역내시장통합을 위해 회원국은 2003년까지 40개의 지침을 국내 입법을 통해 이행하였어야 하나 현재 각국별 이행률이 58%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입니다.방향성 상실: 경제성장과 사회통합 및 환경이라는 상충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우선순위가 불분명해지고 방향성마저 상실하고 있어 추진에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예상입니다.(3) 신리스본전략의 추진: EU는 2005년 3월 브뤼셀에서의 정상회담을 통하여 신리스본전략 을 채택하였습니다.경제성장, 사회결속, 지속가능 환경 등 기존 리스본 전략의 3대 지주 가운데에서 성장과 고용 위주로 정책 우선순위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고 이를 조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신 리스본 전략은 지식과 혁신, 투자와 고용환경의 조성, 고용창출을 3대 핵심분야로 삼고, 10대 실행계획을 제시하였습니다.(뒷면 참조)신리스본전략의 실행계획(2005){핵심분야실 행 계 획투자와 고용하기좋은 환경 조성- 역내시장의 확대와 심화 : 서비스시장, 에너지, 운송시장 자유화 등- 개방적이며 경쟁력 있는 대내외 시장확보 : DDA 및 FTA 추진,정부구매시장, 정부보조금 축소- 규제완화 : 행정비용 영향 평가시스템 구축 등- 인프라 개선 및 확충 : 범유럽 네트워크(TENs) 추진성장기바으로서지식과 혁신- R&D투자 확대 및 개선 : GDP대비 3% 수준 달성- 혁신, IT, 자원의 효율적 사용 : EU특허제도, 벤처 효율화 등- 강한 산업기반 구축 : 하이테크 산업육성, 지역클러스터 조성 등고용창출- 노동시장 참여확대 및 사회보장제도 현대화 : 기회균등 제공,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 인구고령화 대책, 청소년 실업대책, 연금 및사회보장제도 개혁- 기업 및 노동자의 적응성과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 노동이동성 제고,고용 친화적 임금협상, 노동시장 유연성 촉진- 교육 및 훈련강화를 통한 인적자원 투자 확대 : 평생교육, 직업훈련및 교육개선, 인적자원투자 대폭 확대2. 경제구조의 특징 변화(1) 70, 80년대 저성장, 구조적 대량실업에서의 탈피. 저성장에 따른 만성적인 실업 증대1970년대 양차에 걸친 석유파동, 국제통화 위기 이후 1974-75년 세계경제의 대불황 등으로 경제가 심각한 침체현상에 빠짐EU의 실업률은 1980년 8%에서 1986년 11%로 상승하였고 90년대 중반까지 12%대의 고실업 상태가 지속. 2004년 현재 실업률 9.2%의 실업률- 특히 25세 이하의 젊은 층, 여성실업, 1년 이상의 장기실업이 증가하여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작용- 산업별로는 서비스 부문의 고용이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실정, 지역별, 국가별로도불균등한 고용구조를 노정EU의 고실업은 산업구조 조정 지연, 노동관련제도 등 기본적으로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 경기불황이 심했던 80년대 초반 및 90년대 초반까지 실업률 크게 증가. 고실업 완화 대책으로 대량실업 점차 감소 추세EU는 90년대 초반 고용, 성장 및 경쟁력에 관한 백서 를 토대로 첨단산업부분에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 노력, 서비스 산업부문에서 고용증대 노력 등 성장 및 고용확대를 위한 다각적인 대책 강구. 아울러 개별 회원국 차원에서 국영기업의 민영화 추진, 중소기업 지원책 마련, 직업훈련 기회 확대 등 고용 확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하였습니다.- EU차원에서 대규모 정보통신망, 운송망 구축 등 투자확대로 고용창출 기회 확대, 기업의 사회보장비, 의료비 등 비임금 코스트 축소, 고용 및 해고 규정완화, 생산성 향상 범위내에서 임술교육 강화 등을 실시하였습니다.- 국별차원에서는 노동분담을 통한 시간제근무 확대, 신규고용기업에게 자금지원, 물가연동 임금인상제도 폐지 등에 이어 최근에는 프랑스정부와 같이 노동시간 단축 등 공동쳐ㄱ인 실업대책의추진으로 고용창출기회를 확대하였습니다.(2) 산업경쟁력의 강화. EU의 주요산업 미국, 일본에 비해 열세EU가 비교우위를 보이고 있는 산업분야는 대체로 시장이 성숙해 있으며, 부가가치 창출이 낮은 기계, 금속, 식품산업 등 중후장대형 산업분야와 전통산업분야이며, 통신, 사무기기 등 첨단기술산업분야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특히 신경제분야의 경쟁력은 낙후된 상태입니다.- EU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R&D투자가 매우 저조. 디지털 산업의 육성을 통한 경쟁력 강화EU는 90년대 역내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적인 노력 전개- 80년대 중반이후 역내 단일시장의 형성을 통하여 경쟁력 있는 기업환경 조성에 노력한데 이어,1999년부터 단일통화의 출현을 위한 EMU를 추진하여 경쟁적인 기업환경을 창출하였습니다. 또한1994년 6월 이후 새로운 산업정책을 마련하여 추진하였습니다.신산업정책 : 연구개발, 상표권, 작업훈련 등 무형자산의 확충, 역외기업과 전략적 제휴 등 산업협력의 증진, EU역내외 기업활동에 있어 기업간 공정경쟁의 보장, 행정규제의 완화등 EU 회원국 정부 및 EU기구의 기능과 역할의 근대화 등을 포함하였습니다.EU는 제조업의 비효율적인 비용구조 개선, 낙후된 정보·통신분야에 활력을 제공하기 위하여 다각적인 노력 전개를 하였습니다. 디지털 육성전략의 추진을 통해서 미국의 1/3 수준에 머물고 있는 인터넷 이용률을 제고하여 2010년까지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최강의 지식기반 경제육성 계획을 추진하기로 하였습니다.- 중소기업육성, 벤처기업 자금지원, EU단일시장 구축, 통신시장 자유화, 전자상거래를 위한 법 체제정비 등 20여 개의 구체적 실천계획을 마련하였습니다.(3) 복지지출 축소를 통한 재정적추세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의 단일통화 창출을 위한 경제수렵조거에서 재정작자 규모를 GDP대비 3% 이내로 축소해야 된다는 지침이 마련되기 전까지 회원국들의 재정적자가 꾸준히 증가하였습니다.. 복지비 축소, 공기업 민영화 등으로 재정적자 감소그동안 EU의 재정적자 누적은 대부분 지나치게 확대된 사회보장비 지출이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그러나 EU는 단일통화 도입의 전제가 되는 EMU의 경제수렴조건을 충족하기 위하여 정부지출의 삭감, 복지 후생비의 지출 억제 등 재정건전화 노력, 공기업의 민영화 추진에 따른 매각대금의 활용 등을 통하여 적자폭을 축소3. EU의 통상정책EU의 거시경제 동향 2000년 현재 유럽연합(EU)은 15개국으로 구성된 지역경제 공동체이다.1) · 인구는 약 3억 7천 7백만명· 1인당 GDP는 2만 2천 5백 유로, GDP 8조 5천억 유로· 전세계 GDP와 무역거래에서 각각 17%와 17.9%를 차지2) 1957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 6개국을 회원국으로 하여 출범한 EU는 1970년대 초반까지 건실한 경제성장을 실현하였습니다. 1961년부터 오일쇼크가 발생된 1973년까지 EU읜 연평끄 경제성장률은 4.7%로 이는 주로 해외로부터 저가의 자원확보, 풍부한 양질의 노동력 공급, 그리고 높은 저축률에 의한 투자의 확대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70년대 초반이후 80년대 중반까지 EU경제는 성장률이 크게 둔화되고 높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경험하는 등 경제 전반이 매우 불안정한 생태로 전환되었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와 이로 인한 에너지 가격의 폭등, 총수요관리 위주 경제정책의 한계, 강력한 노조로 인한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이 이 기간의 EU경제침체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한편 80년대 후반부터 1990년까지 EU경제는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라는 소위 3저현상으로 인하여 다소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986년에서 1990년까지의 평균 실업률은 1974-85년의 평균 수준인 6.4%습니다.
1.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감독 : 구스 반 산트출연 : 로빈 윌리암스, 맷 데이먼, 벤 애플렉, 스텔란 스카스가드천재로 태어난 인간은 자신의 천재성을 포기 할 권리가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인가? 만약 내가 천재로 태어났다면 난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얼마 전 송유근 학생이 8살의 나이로 인하대학교에 수시 합격한 사실을 접하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8살의 학생이 것은 나와 지적 수준이 비슷하다, 아니 어떠한 면에서는 이미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점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어찌 보면 그러한 영재, 천재가 이 땅에 있고, 또한 그를 위한 특별한 교육제도가 마련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천재는 자신의 천재성을 포기해선 안된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정에서의 부모의 역할과 학교에서의 교사의 역할,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이 해법을 비뚤어진 수학천재 윌 헌팅이 어떤 스승과의 만남을 거쳐 따뜻한 가슴을 가진 천재가 되는지의 과정을 담은 굿 윌 헌팅에서 풀어보고자 한다.이 영화에서 나오는 윌 헌팅(메트 데이몬)은 아인슈타인에 비교될 수 있는 수학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성장한 사회적 환경은 그로 하여금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잡부직으로 젊음을 보낼 수밖에 없는 처지로 만들어 버렸고, 동네 친구들과 싸움을 일삼으며 일상의 모든 관계를 반항과 피해 의식의 자세로 받아드린다.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뚜렷한 방향설정을 가지고, 천재적인 지능의 소유자인 하류층 젊은이에게 포커스를 맞춘다.고아로 성장한 윌 헌팅은 가난한 동네인 사우티에 살고 있다. 보스톤의 강을 건너면 하버드 대학이 위치한 겜브리지 근접하고 있는 곳이다. 윌과 그의 친한 친구들은 술집이나 들르고, 심심하면 대학촌으로 몰려나가 여대생들에게 접근하려한다. 그들에게는 장래를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생활이 연 속 될 뿐이다. MIT대학 강의실의 청소부로 일을 하는 윌은 혼자 있게 될 때 대학교수들이 몇 년간 머리를 맞대 고 풀고자 복도에 붙혀 놓은 엄청나게 복잡한 수학 문제를 재미 삼아 풀어 논다. 수학 교수인 램보(스텔란 스카스가드)는 윌에 대하여 큰 관심을 품게되고, 싸움으로 구치소에 수감된 그를 가석방시킨다. 세상 밖에서 고삐 풀린 듯 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신세대 아인스타인 윌에게 램보교수는 자기와 함께 수학을 연구할 것과 정신과 상담을 받을 것을 권한다.윌에게 정신과 상담이란, 이미 그가 스스로 습득한 정신분석학 이론에 의하면 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최면을 시켜 잠재의식을 끄집어내려는 정신과의사를 데리고 노는 윌의 태도는 다수의 의사들이 혀를 차고 치료를 중단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의 호적수로 나타나는 인물이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암스)다. 숀은 램보교수의 동창생으로 아내와 사별 후 세상돌아가는 것을 뒷전에 두고 전문대학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는 정신과의사이다. 상냥한 성격이면서도 유머스러우나 깊은 눈속에는 슬픔이 내포한 모습을 보이는 숀은 윌과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소외된 천재에게 삶의 가능성을 깨닫게 만들며, 굿 윌 헌팅이 표현하고자하는 핵심적인, 영혼이 간직된 이미지를 완성한다.윌과 함께 다니는 세 명의 친구들 또한 이 영화의 주변을 경솔하지 않게끔 감싸준다. 정직하지만 목표없이 배회하는 이들 인생 탈락자들에게 학교란 이미 오랜 시절의 기억뿐이고, 야망없이 막노동과 맥주마시는 것을 일상의 생활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낙인 것이다. 네 명의 관계묘사와 그들의 행동처리는 굿 윌 헌팅을 뛰어난 영화로 만드는 독특한 뒷받침이 되는 것이다. 윌에게 매일 아침 차편을 제공하여 직장으로 데려가는 친구(밴 에플렉)는 생각없이 살아 가는듯 하면서도 윌의 비상함을 깨닫고, 언젠가는 윌이 더 큰 세 상으로 빠져나가길 기다리는 진정한 우정의 방향을 제시한다. 윌의 여자친구로 등장하는 하버드 대학의 의예과 학생 스카일라(미니 드라이버)의 애정은 윌과의 이루기 힘든 사랑의 성취를 나타내며, 윌로 하여금 진정으로 그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든다.여러 가지의 작은 훈훈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 굿 윌 헌팅에는 우정과 사랑이 들어있으며, 충절에 관한 이야기이며, 한 남자로 탈바꿈 하기위한 젊은이의 고뇌가 들어있는 것이다.처음 질문을 던졌던 것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있지 않나 싶다. 윌은 자신의 천재성을 포기하지도 않은 채, 그렇다고 어떠한 의무감도 없이 그 천재성을 진정한 학문에 던져보려고 한다.영재는 태어나면서 부터도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윌의 환경이 불우했기 때문에 학교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듯 가정환경과 부모의 역할이 지대하며, 자신의 명예를 위해 제자를 삼은 램보교수보다는 따스함으로, 인내로 차디찬 윌의 가슴의 녹여준 숀처럼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며, 무엇보다도 그러한 영재가 사라지지 않게 국가의 지속적인 지원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이 삼박자가 상호 작용을 할 때 비로소 영재가 태어나는 것이다.2. 빌리 엘리어트illy Elliot, 2000)Billy Elliot, 2000감독 : 스티븐 달드리출연 : 제이미 벨, 줄리 월터스, 게리 루이스, 제이미 드레이븐평생을 살아가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평생 그것을 찾으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만약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의 제약과 주변 여건으로 인해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영화속의 주인공 빌리 엘리어트, 지극히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결국 가장 행복한 소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였고 또 그것을 키워준 선생님과 후원해준 든든한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1984년 영국의 암울한 탄광촌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한송이의 꽃이었다. 위대한 발견은 우연히 찾아온다. 아버지에 의해 마지못해 나가던 복싱도장에 빌리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중 옆에서 이뤄지던 발레 수업에 무심코 눈길이 가게 된다. 위대한 발견의 시작인 것이다. 무엇이나 시작이 가장 중요하듯이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던 발레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발견하게 된 사건이 가장 획기적인 일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빌리 자신조차도 발레에 흥미를 갖게 되는 마음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발레는 ‘남자답지’ 못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빌리의 숨겨진 재능을 눈치챈 발레강사 윌킨스 부인은 흔들리는 빌리의 마음을 발레 쪽으로 이끌어 낸다. 하루 하루를, 발레의 재미와 조금씩 나아지는 자신의 품위에 행복함을 느끼던 빌리, 그런 그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발레를 배우는 일을 감추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전통적으로 교육받아온 ‘남성성’ 그것은 깨버리기에는 너무나 두꺼운 벽이다. 하지만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권투글러브를 밀어놓고 발레슈즈를 신은 빌리의 모습과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무력한 모습의 배치는 전통적으로 전해오던 남성성의 붕괴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마침내 크리스마스날 빌리가 친구에게 춤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게된 아버지. 아들을 위해, 어쩌면 평생을 자신처럼 광산촌에서 썩게 될 지 모르는 운명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굳건히 지켜오던 신념을 꺾는다. 빌리 어머니의 패물을 전당포에 맡기고 또 동지들을 배신하고 광산으로 일하기 위해 가던 모습은 어떤 경건함까지 느껴 지게한다.영화에서 등장한 교육적 관계는 대체로 윌킨스 부인과 빌리의 관계이다. 하지만 윌킨스 부인의 막대한 역할은 빌리의 발레의 품위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재능을 발견해 준 것이었다. 사실상 그녀의 품위는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빌리에게서 자신이 이루지 못한 그 무엇을 구하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속에 숨겨진 또 하나의 교육적 관계를 찾아보자면 빌리와 그의 친구 마이클을 들 수 있다. 이상할 수도 있지만 마이클이 빌리의 발레를 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그가 빌리의 공연을 보러 온 것은 영화 속에서 어느 정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빌리의 발레리나에 대한 열정, 꿈을 향해 나아가는 희망에 찬 모습이 더욱 빛나게 느껴졌던 것은 그가 꿈을 꾸고 있는 배경이 너무나 초라했기 때문이다. 빌리를 왕립발레학교로 보낸 뒤 아버지와 형이 탄광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장면은 꿈을 성취한 빌리의 모습에 흐뭇해하던 관객들에게 작은 충격을 가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내 몸 속에서 불꽃이 일어 새처럼 날아오르는 것 같다’. 빌 리는 오디션에서 춤 출 때의 느낌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그 전까지 심사위원의 표정이나 분위기에서는 불합격의 느낌을 받고 있었지만 이 말을 듣고서는 아! 합격이구나, 하는 안도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자신을 인정해주고 꿈을 펼칠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은 그 무엇 보다 행복하고 행복한 일이다.남성답지 못하다, 여성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잘못 구분 지워진 것에 대한 피해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변화하기는 하였지만 사회는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그러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러한 것에 의해 상처 받고 있을 많은 이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그러한 것에 의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교육에 있어 이러한 점은 많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남자아이에게 총이나 칼, 혹은 자동차 장난감을 사줘야 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여자아이에게 반드시 예쁜 인형을 사줘야 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주고, 조기에 개발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