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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국문]이상화론
    대구.경북 시단의 초석을 놓은 시인, 그러나 우리 모두 민족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이름 앞에 먼저 놓고 싶은 이상화! 그는 생전에 흔한 시집 한 권을 남기지 못하였지만 우리 가슴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민족혼의 불멸함을 외치던 목소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이런 이상화의 시는 대략 두 가닥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나의 침실로’ 계열의 관능과 퇴폐적인 면으로, 이는 당대 백조파 시인들이 지향하는 세기말의 유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른 하나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계열의 투철한 현실인식과 정치적 문제로 이어지는 민족 현실에 대한 탐구이다. 한 시인의 작품 세계 내에서 이렇듯 모순되어 보이는 두 대표작의 존재는 모순되어 보인다. 이처럼 조화를 이루기 어려워 보이는 대표작품과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유미주의와 현실주의는 20년대 한국시의 흐름을 한 데 집약하고 있다. 그리고 그 두 축은 이상화의 작품세계 안에서 기묘한 공존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925년은 이상화의 작품 활동에서 중요한 기점이 된다. 1925년에 이상화가 조선 프롤레탈리아 예술동맹에 가입하면서 이때부터 유미주의 작품보다 현실주의적인 작품이 두드러지게 되었던 것이다.그렇다면 이상화의 63편의 시작품에서 이와 같은 두 갈래의 작품세계가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유미주의 퇴폐주의로부터 저항적인 현실인식으로 흘러가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상화의 모순되어 보이는 두 작품세계의 대표작에 대한 분석과 그 작품들과 함께한 논의와 특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1. 연보1901 : 일제치하 민족저항시인(詩人)이며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아호는 상화(尙 火)? 상화(想華)?무량(無量)?백아(白啞)?백아(白亞) 등. 대구광역시 서문로 12번지에서 아버지 이시우와 어머니 김신자 사이의 4형제가운데서 둘째 아들로 태어남.1907 : 7세때 아버지 사망1915 : 당시 3천여 석 지기 지주(地主)이자 대구의 명망가(名望家)인 백부이상화가 백조의 창간에 관여하게 된 것은 현진건의 추천에 의한 것이다. 백조의 동인은 사상적 결합에 의한 것이 아니었으며 동인들도 각각 지향하는 바가 틀리었다. 노작과 이상화는 시를 썼지만 월탄과 도향은 소설을 쓰고 회월은 평론을 써오고 있었다. 이들은 동인지를 내면서 스스로 문학청년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동인들은 낭만주의를 내세웠지만 몇몇은 퇴폐적 낭만주의에 젖어 있었다.또한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뒤의 우리 시의 경향은 더러는 도피적 경향을 보이기도 하고 더러는 저항적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 당시 도피적 경향의 시들은 19세기 가장 중요한 시의 경향이던 낭만주의와 상징주의를 동시에 흡수하였고, 거기에 세기말 사조까지 곁들여 일종의 자포자기적인 퇴폐주의에까지 물들게 되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요인들이 그 시기의 이상화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⑴처녀작 시비와 함께 한 말세의 희탄은 지상의 발표순으로 보면 이상화의 최초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는 이미 그 이전서부터 시작을 하고 있었던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산문시의 제작연대가 보다 앞선 것이라는 점이다. 산문시 는 1925년 6월호의 여명지에 발표된 작품이기는 하나 이상화가 경성중학교를 수료하던 1918년 여름에 금강산 일대를 주유하였다는 사실은, 이 시의 제작 연대를 발표 연도보다 훨씬 이전으로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이외에도 등 2편의 산문시는 발표 연대와는 달리 훨씬 앞서 씌어진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참고 설명: 이상의 처녀작에 대한 견해들)하지만 여명의 편집자들이 이상화에게 금강산 여행기를 써달라고 부탁했던 것 같은데 그것을 이 시로 대신한다는 것이고, 이 시를 “지난 해 어느 신문에 한 번 내었던 것”이라 했으니 당시 발간되던 어느 신문일 터이지만 어느 신문인지 확실치 않으나 당시 이상화가 작품을 가장 많이 발표한 잡지가 개벽이고 신문으로는 시대일보이니 어느 신문이란 시대일보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니까 금강산에 대해서 쓴 금강송가 라고 해서 반드시 속에서 자조하고 파멸하는 퇴폐적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폐허]나 [백조]등 동시대의 시인들이 어느 정도 같은 경향을 지닌 것을 볼 때 이상화도 별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⑵나의 침실로 ‘마돈나, 영원한 사랑의 이름’ vs '죽음 의식과의 연관‘이상화의 시 나의 침실로는 잘 알지 못해도 ‘마돈나’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이상화의 시가 있다는 사실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그리고 마돈나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귀부인을 가리키는 존칭이거나 종교적으로 성모마리아, 혹은 그 상을 말하는 이름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이상화의 시 나의 침실로는 이와 같이 잘 알려진 마돈나라는 귀부인 혹은 애인의 호칭을 12번이나 등장시켜 사랑과 격정을 환기시키는 이상화의 대표 시이며 동시에 한국 근대시 가운데의 대표 시이다. 지금까지 이상화에 대한 각종 연구논문이나 비평문들이 100편 가량 씌어졌는데 그 가운데 나의 침실로에 관한 논문 혹은 비평문은 약 40평에 이른다. 그런데 이 논문들이 나의 침실로를 보는 눈은 동일하지 않다. 동일하지 않다는데서 나의 침실로는 이행의 어려움이 있다.나의 침실로‘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도다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挑)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 오너라.‘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眞珠)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덴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 오, 너의 것이냐?‘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촉(燭)불을 봐라.양털같은 바람결에도 질식(窒息)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 곳 다. 그래도 나는 너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으니 새벽을 알리는 사원의 쇠북이 울리기 전에 어서 너는 와서 네 흰 팔로 내 목을 안아라고 한다. 8, 9연 내가 너를 데리고 가려고 마련해둔 침실은 아무도 열 수 없는 은밀한 곳에 있다. 그런데 너는 오지 않고 너를 기다리는 내 가슴의 샘은 다 타서 말라버린 듯 하다고 호소한다.10연, 우리가 가려고 하는 그곳은 인간적 제약을 넘어선 피안적인 곳, 마치 성서에서 말하는 예수의 부활의 장소 같은 곳이다. 11, 12연 너를 데리고 가려고 하는 곳은 삶과 죽음마저도 초월한 곳, 그곳엔 나의 아씨인 너를 데리고 가야 하는데 너는 끝내 오지 않고 동이 트려한다. 이제 나에게 남아 있는 길은 두 가지 길뿐이다. 기다림을 포기하는 길고 그래도 기다려 보는 길이다 그러나 너를 기다림은 나의 숙명이므로 나는 너를 기다릴 수밖에 없고 너를 부를 수밖에 없어 나의 아씨여 나는 너를 부르고 있다. (추가 설명 교수님 논문 87)☆죽음 의식과 마돈나이 시의 화자는 사랑하는 마돈나를 ‘침실’로 가자고 한다. 그러나 그 침실은 사랑이 영그는 외연적 의미의 침실이 아니라 ‘오랜 나라’ 즉 죽음의 나라를 내포하고 있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 죽음의 나라에서 그들의 사랑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바로 이러한 요소들을 통하여 당시 자포자기적 도피적 경향을 띤 시의 진수를 보게 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가장 백조파적인 시, 흔히 병적 낭만주의라고 일컬어졌던 백조파 시의 한 면모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이렇듯 이상화의 초기시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죽음의 의식이다. 김흥규 교수는 침실의 이중적 의미에 주목한다. 전반부(제1~6연)에서는 침실이 관능적인 쾌락의 장소이지만, 후반부(제7~12연)로 가면서 죽음의 공간으로 변해 간다.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침실’이란 바로 죽음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의 종말로서의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부활’이다. 죽음으로써만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린다. 달리 어찌할 수 없는 현실적 절망 속에서 조파의 ‘월광으로 짠 病室’, ‘나의 침실로’ 등의 작품에서 그들이 지표로 삼은 세계는 속악한 현실을 벗어난 진리만이 항존 하는 절대적 세계이다.다음은 이상화의 중기와 후기 시에서 보여준 계급사상의 영향이다. 이는 백조파에 속한 시인들의 전반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이처럼 백조파의 중심인물들이 쉽사리 계급주의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20년대 초기의 한국의 사회현상이 그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했으리라 생각된다. 사회현상을 외면한 채 월광으로 짠 침실과 어린애 가슴같은 세월 모르는 침실에서 안주할 수는 없었다. 세속적 세계를 부정하고 그들이 지표로 삼고 있는 영원한 나라가 내면화된 절대적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기력의 감염에 불과한 낭만적 몸짓이었던 것이다.이상화가 계급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은 백조가 붕괴된 중요한 사건인 바, 여기까지 몰고 오게 된 이유는 첫째, 백조파 소속시인들이 어떤 이념의 집단에서가 아니다 시인적 기질의 집합이었다는 것, 둘째, 그들의 초기 시에 볼 수 있었던 구질서에 대항한 생명적 욕구가 일견 계급주의와는 대립되는 것이지만 사회현실을 위한 투쟁이나 저항에 필요한 정열과는 동질성이라는 것, 셋째, 사회의식 변화와 그들의 낭만주의가 어떤 형이상학적 비젼을 가지지 못했으므로 상상력의 한계점에 도달했으리라는 것 등을 들 수 있다.)(참고)낭만주의 경향과 ‘백조’1920년대 초기는 우리 근대 문학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라는 데서 일찍부터 문학사적 주목을 받아왔다. 1910년대 말에 계기가 된 문예 동인 활동이 20년대에 들어와서는 한층 본격화하여 동인지 문학 시대로 발전하였다. ‘백조’는 그 출현에 앞서 예행연습과 같은 준비 기간을 가진다. 그것이 ‘장미촌'과 관계를 맺는다. 백조와 장미촌과의 상관관계는 그 사조의 경행과 참가 동인 등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장미촌은 폐허의 세기말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그 대신 낭만적인 경행이 강하기 나타나있는 것이다. 이 점이 백조의 낭만주의적 경향과 일치한다. 또한 두 잡지의 기고자들을 통해.
    인문/어학| 2005.05.30| 8페이지| 2,000원| 조회(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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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국문]이태준연구
    Ⅰ.서 론상허 이태준(尙虛,李泰俊)은 시의 지용(芝溶), 소설의 상허(尙虛) {){1)『이태준 소설연구』, 태학사, 1996 p3: 흔히 30년대 문단을 가리켜 시는 지용, 소설은 상허 라는 말을 하곤 한다.라는 말이 잘 알려 주듯이 신경향파가 대두하던 1925년부터 6.25직후까지 약 30편에 걸쳐 단편60편과 중.장편 18편을 발표한 한국현대소설사의 대표적인 작가이다.그는 우리시대의 뛰어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시인 정지용과 같이 월북작가 라는 이유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가 최근 다시 조명되기 시작한 작가이다.그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를 중심으로 문학의 자율성과 예술성을 강조하는 한편, 의 실질적 책임자로서 민족 문화의 수호와 한국 문학의 발전에 간과할 수 없는 역할을 한 것으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해방 후 그가 보여준 일련의 행적 때문에 그와 관련된 논의는 편향되거나 유보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는 작가 이태준의 생애와 그의 전반적인 작품경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 론1. 이태준의 생애와 문학 활동호는 상허(尙虛), 필명은 상허당주인(常虛堂主人). 이태준(李泰俊)은 1904년 11월 4일{) 1904년 11월 7일 생은 1937년 6월 한성도서 출판부에서 간행한 이태준의 장편소설 『제 2의 운명』 책머리에 적 히 내용이다. 하지만 민충환은 이태준의 휘문고등보통학교 학적부에 기재된 사항을 토대로 1904년 11월 4일로 교정하고 있다.강원도 철원군에서 지식계층에 속했던 부친 이문교와 소실인 모친 순흥안씨 사이의 1남2녀중 장남(서자임)으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1909년(5세)에 러시아 땅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하지만, 그곳에서 상허의 부친은 웅기(雄基)에서 들어온 행인에게서 어떤 소식을 듣고는 땅을 치며 통곡하다가 병이 돋쳐 {)이태준, 「조그만 客主ㅅ 집 使喚 - 소설가 이태준씨 앨범에서」,《신가정》, 19331909년 8월 28일 35세에 세상을 떠난다. 가장을 잃은 가족은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배 안에서 모친이 누이동생을 분만하자 었던 1930년대 중반 이후인만큼 현실에서 인간소외를 극적으로 추구하는 아방가르드적 성격보다는 현실에 기초하지 않은 단순한 흉내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압도적이었다. 물론 그러한 흐름으로부터 벗어나 당시 식민지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경성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새로운 존재양식과 그 속에서 필연적으로 야기될 수 밖에 없는 여러 문제들을 다룬 경우도 없잖아 존재하였다.이태준의 작품활동은 양적· 질적인 면에서 당대의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더구나 카프의 해체 이후 1930년대의 문단에 〈구인회〉의 결성을 통해 순수문학을 제창했고, 《문장》의 출현과 함께 주간,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한때는 문단의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8·15직후 곧 월북하여 그곳에 정착하였고, 그것이 남쪽의 체제와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남쪽에서는 그 동안 그에 대한 연구 및 논의가 금기시 되었으며, 심한 경우 그의 문학적 업적이 전면적으로 부정되기도 했다. 게다가 6·25 후에는 북에서조차 남로당의 숙청과 함께 그들의 문학사에서 사라짐으로써, 이태준은 한국의 현대문학사에서 미아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후 1988년 우리정부의 월.납북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금조치 후 실질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따라서, 이시기는 문학활동의 기반의 확충되고 예술적 기교가 발달하였으며, 신문이나 잡지의 수가 늘어나 작품이 발표될 수 있는 지면이 확대되어 활발한 문학활동이 이루어진 시기이다.다양한 문학양식이 선을 보였으며, 브나로드 운동의 영향으로 계몽 문학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말기에는 광적인 탄압으로 문학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3. 전개 양식1).초기 소설과 아이러니 양식30년대에서부터 1937년 까지가 상허의 문학활동에서 초기에 속하며 38년부터 43년 까지가 중기, 해방이후가 후기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이 시기를 구분할 수 있는 이유는 작품의 주제 경향이 달라지고 서술방법에서도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중기 일체기적으로 단순히 생활을 나열한 것은 아니며 작가를 대리한 인물이라고 여겨지는 현 의 정치행위에 초점이 모아져 있다. 소설은 유감을 표시하고 표표하게 사라지는 김직원에 대해서 현이 연민의 감정을 보이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소설가의 의도는 그러한 현과 김직원을 형상화하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그러나 순수문학파 작가인 이태준이 카프계열의 임화 등과 손을 잡은 동기는 해명이 필요한데, 그 동기가 흥분된 기분으로 들떠 있었기 때문만도 아니고 공산주의의 농간 에 있었던 것만도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소명자료를 찾을 수밖에 없으며, 그 유력한 단서가「농군」에 대한 평이다.임화는 당시의 소설월평에서 40편이 넘는 작품 가운데 소설다운 소설은「농군」한편밖에 없다고 극찬한다.{) 임화, 「현대소설의 귀추」,「문학의 논리」(학예사, 1940).그 이유는 이 작품이 여러 장점 중에도 내일을 위하여 필요한 정열과 의지를 보여주고 있고 크나큰 비극을 속에다 감춘 서사시의 감정 을 전반에 관철시키고 있는데 있다. 낭만적 정신에 일관된 본격소설을 대망한 임화로서는 당연한 관점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두 사람의 관계에 비추어서 더 중요한 점은 임화가「농군」의 작품성향이 상허의 초기 세계관이 발전한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는 점이다.「오몽녀」에서 나타난 발랄한 생명충동이 초기소설의 애수 속에서도 면면히 지속되고 있었고「농군」에서 절정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보면 임화와 상허는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문학관과 창작에 임하는 자세까지도 친화감을 가진 사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열려진 공간이었던 해방정국에서 그 동안 외부 현실에 의해 금압된 정치의식이 풀려난 것을 감안한다면 그 친화감이 이내 동지적 결속으로까지 발전이 가능했었을 것이라고 본다.「농토」는 해방직후 북한에서 진행된 토지개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예전에 단편소설이 대부분 소품이었던 것에 비해 장편소설이라고 할 만한 분량의 이 중편소설은 작가의 신문연재 장편소설에서 자주 눈에 띄던 그간의 파 묘사를 통해 주인공인 '그'와 '그'의 문명(文名)을 사모하는 어떤 여인과의 만남을 그리면서, 인간의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태준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소외된 인물들이 등장하며, 이에 따라 작품의 주조(主調)가 어둡게 채색되어 있다. 작가는 죽어 가는 인물을 연민의 시선으로 그려 나가면서 서정적인 정서가 투사된 서술 태도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 태도를 단순히 감상주의로 규정할 수는 없다. 작가의 감정이 절제되고 있기 때문이다.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감각적 묘사이다. 고색 창연한 별장의 시각적 묘사와 까마귀 울음 소리의 청각적 묘사를 통해 작품의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특히, 까마귀의 울음 소리는 작품의 정조 를 우울하게 만드는 역할뿐만 아니라 젊은 여인의 죽음이라는 극적 사건을 예감케 한다.다른 한편으로, 이 작품은 작가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시도해 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가 난, 여인의 병, 정혼자에 대한 그녀의 사랑, 그리고 여인에 대한 '그'의 감정 모두를 아름다운 것으 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가 삶의 비극성을 역설적으로 미화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소멸의 미학, 죽음의 미학이라 불릴 만하다. 일반적으로, 소설에서는 서사성과 인물의 형상화가 중심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분위기가 그것을 압도하고 있다.갈래 : 단편소설배경 : 시간 - 늦가을에서 겨울까지공간 - 고풍스럽고 음습한 별장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성격 : 유미주의제재 : 폐병 환자와 까마귀. (또는, 고독과 죽음)주제 :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죽음의 문제괴팍한 문체로 독자에게 별 인기를 못 얻고 있는 작가인 '그'는 생활의 여유가 없다. 그는 궁여지책 (窮餘之策)으로 한적한 시골에 있는 친구의 별장을 빌려 겨울을 나기로 한다. 그 별장 주위의 나무에 는 많은 까마귀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있다. 어느 날, 별장 정원을 산책하던 중, 폐병 요양차 이곳에 온 한 여인과 만난다. 몇 번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일제 치하 우리 농민의 궁핍한 모습은 물론 끈끈한 생명력을 엿볼 수 있다.은 이태준 소설 중에서는 특이하게 농민들의 생존을 위한 끈질긴 투쟁의 모습을 리얼리즘의 기법으로 담고 있다. 작가가 작품의 서두에서 "이 소설의 배경 만주는 그전 장작림 정권 시대임을 말해 둔다."고 밝히고 있듯이, 은 1931년에 있었던 '만보산 사건'을 소설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만보산 사건'이란, 만주 토착민과 조선에서 이주한 농민 사이에 있었던 갈등이 빚은 사건이다.실제로 1932년 4월 만주로부터 만보산 지역 미개간지를 조차(租借)한 일본인이 이를 다시 조선의 농민에게 10년 기한으로 빌려 주고 180여 명의 조선 농민을 끌어들이면서 만주 토착민과의 갈등은 시작되었다. 조선에서 만보산 지역으로 이주한 농민들은 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이퉁허'로부터 20여 리(里)의 수로(水路)를 만든다. 이 수로 공사로 인해 부근의 토착 중국 농민들이 피해를 입게 되자 그들은 당국에 고발하는 한편, 조선 농민들이 만든 수로와 제방을 파괴한다. 이에, 조선 농민들의 공사를 보호하기 위해 현지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경찰이 사격까지 가하며 중국 농민들을 강압적으로 해산시킨다.이러한 사실을 왜곡하여 만주인들의 만행(蠻行)이라고 조선에 보도함으로써 한때 조선에서는 만주인 배척 운동과 함께 만주인에 대한 살인, 테러 등이 횡행했다. 결국, 일본의 만주 침략의 구실을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는 다소 사실과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즉, 기본적인 골격은 동일하지만, 사건의 해결 주체는 상이(相異)하다. 실제 사건에서는 조선 농민들이 보호받는 대신 일본 경찰이 중국 농민에게 사격을 가했지만, 에서는 중국 군인들이 조선 농민들의 수로 공사 저지를 위해 무차별 사격을 가해 주인공 '유창권'의 다리에 관통상을 입히고 경상도 노인을 죽이고 있다.이러한 점이 바로 사전 검열이 강화되던 1937년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이 작품의 발표를 가능하게했 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태준이 조
    인문/어학| 2005.04.12| 20페이지| 2,000원| 조회(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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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문화의 이해] 영화 크라잉게임 감상문 평가C아쉬워요
    Crying game"을 보며, 이제껏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혹은 피부에 와 닿지 않아 무심하게 지났쳤던 일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영국의 식민정치에 저항하기 위해 1969년부터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시작한 아일랜드공화군 (Irish Republican Army) 이라 불리우는 IRA의 요원 퍼거슨은 포로로 잡혀있던 영국인이지만 흑인인 병사 조디와 인간적인 교감을 가지게 되고, 이로써 이 둘 사이에는 미묘한 우정이 싹트게 되는데, 이와 같은 현상을 우리는 흔히 스톡홀롬 신드룸 이라고 부르는데, 스톡홀롬 신드룸이란 약자나 포로의 운명에 처해진 사람이 생사 여탈권을 쥔 힘있는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의지해 자신의 생명이나 안전을 도모하려는 심리적 상태를 일컫는다. 이런 정의에 빚대어 생각해 본다면 조디가 퍼거슨에게 심리적으로 의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디와 퍼거슨이 인간적인 교감을 가지는 과정에서 전갈과 개구리 이야기가 잠시 나오는데, 이 이야기를 잠시 옮기자면, 강을 건너기 위해 개구리의 등에 타고 있던 전갈은 자기가 개구리를 찌르면 자기도 개구리와 함께 물에 빠져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의 본능 때문에 개구리를 찌르고 함께 죽고 만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마도 Human Nature 즉, 본성을 없애야 한다는 것인 듯 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작품과 연관해 설명하자면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주장하는 북아일랜드 구교도 사이에서 발생한 분쟁을 바탕에 두고 이것을 천성이 다른 두 집단의 분쟁이기 때문에 이 천성이란 것을 배제 시켜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다.(여기서 잠시 북아일랜드 분쟁의 기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기원전 4세기에 켈트의 여러 민족이 아일랜드 지역에 들어와 정착, 5세기에 성 베드로가 크리스트교를 전파하였다. 잉글랜드 인은 12세기부터 침략을 시작해 1603년에는 제임스 1세가 아일랜드인의 폭동에 대비해서 아일랜드에 거주하고 있는 가톨릭 교도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이 지역에 아일랜드인과 스코틀랜드인의 신교도들을 이주시켰다. 1801년, 잉글랜드 의회는 아일랜드의회를 통합하여 연합왕국을 건설하였다. 1916년 잉글랜드의 지배에 대항해 남아일랜드 에서 이스타봉기 가 발생했으며, 1921년 영국의 자치령으로 아일랜드 자유국이 성립되었지만 신교도들이 많이 살고 잇는 북부 아일랜드 지방은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17세기에 아일랜드를 식민지화한 영국은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 신교도들의 이주정책을 감행하였고, 이후 많은 신교도들이 아일랜드에 정착하게 되었다. 점령국 영국에 대하여 아일랜드 인들은 다혈질이라는 민족성 만큼이나 격렬한 독립운동을 펼쳐 마침내 192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러나 영국은 신교도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북아일랜드 지역은 여전히 자신의 관할아래 남겨두었다. 따라서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북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가톨릭교도를 중심으로 영국의 지배에 저항한 반면 신교도들은 계속해서 영국 잔류를 희망해 양 민족간 갈등이 표출되기 시작했다.)정통 영국인은 아니지만, 영국군에 입대하면서 영국인이 된 조디가 탈출하려다 영국군 차에 치여 죽게 되는 장면도 아이러니한 국가관의 일부분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이렇게 사고로 죽어가며 남긴 조디의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그의 애인인 딜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렇게 해서 영화의 배경은 북아일랜드의 테러 현장인 사우드 아마프에서 태만과 탐욕, 속임수로 가득 찬 런던으로 전환된다. 이렇게 조디의 애인을 찾던 중 클럽에서 원래 IRA의 전투 암호명이었다고도 하는 크라잉 게임 을 노래하던 조디의 애인인 미모의 흑인가수 딜의 모습에 반한 퍼거슨은 매일 그녀를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함께 밤을 보내게 된 날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딜이 사실은 남자라는 것을 알게된다. 퍼거슨은 구토를 일으키며 딜을 밀어내고... 딜 또한 자신이 남자였음을 퍼거슨이 몰랐다는 사실에 의아해 한다. 마치 자신을 벌레보듯 하는 퍼거슨에게 딜은 사랑하는데 자신이 남자라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냐고 소리치고, 퍼거슨도 자신이 이미 남자이든 여자이든 딜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진정으로 딜을 사랑하게 된 퍼거슨은 딜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남성적인 원래의 모습으로 딜을 되돌려 보호를 시도한다. 이 장면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겉모습이나, 고정관념에 의해 구속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이들의 사랑이 굳게 다져지는 것을 통해 감독은 사랑이란 것은 성의 종류와는 상관없는 엄숙하고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2.06.02| 3페이지| 1,000원| 조회(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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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상문] 오만과 편견 평가A좋아요
    수업시간에 대강의 줄거리를 듣고 참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전체적인 내용을 읽어두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책을 펴게 되었다. 그런데 한 중간정도를 읽을 때 까지는 사실 좀 지겨운 감이 없지 않았다.하지만, 18C의 결혼관이나 연애관을 이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어 좋았다. 제인과 빙리, 엘리자베스와 다르시, 리디아와 위컴을 통해 여러가시 사랑과 결혼의 유형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사랑, 연애, 결혼등은 18C나 지금이나 다 비슷하다는 것이다. 18세기말 19세기 여성들은 남편 고르기 에 열중이었다. 18세기 말 그 때는 부모의 재산이 여자에게는 상속이 안되었기 때문에 여자들은 어떻게든 좋은 가문의 부유한 남성과 결혼을 하는 게 인생의 성공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혼기가 찬 딸 가진 부모들은 어떻게든 딸들을 결혼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베네트 가에는 다섯 명의 딸이 있다. 베네트 부인도 어떻게든 이 다섯 명의 딸자식들을 좋은 데 시집보내는 것이 일생의 목표이다.이런 당시의 상황을 비판하는 의도에서 작가는 소설 첫머리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재산께나 모은 독신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리라는 것은 누구 나가 다 알고 있는 진리이다. 이런 남자가 이웃에 처음으로 옮겨오게 되면, 그 사람의 기분이 어떠하고 생각이 어떠한가를 동리 사람들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더라도, 이 진리는 주위 사람들의 마음 속에 꽉 들어차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되어, 자기네 딸들 중의 누군가가 의당 그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소설의 중점은 엘리자베스와 다르시의 서로에 대한 편견과 오만으로 서로를 오해하다가 자신의 그릇된 판단,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두 사람은 함께 성숙해지고 사랑과 신뢰로써 자기 발견을 하면서 결혼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주위에 있는 여러 커플들이 겪는 경험과 본보기들은 결혼 상대자를 고르는 일에 따르는 위험과 교훈을 나타내는 것이다.다르시는 처음에 엘리자베스가 별로 예쁘지 않아 춤출 맘이 없다고 함으로서 엘리자베스의 자존심에 손상을 입히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 후 엘리자베스는 다르시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편견을 갖고 적대감을 키우게 된다. 반면 다르시는 그녀에게 무관심했다가 그녀의 재치와 기지에 매혹 당해 마침내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다르시는 엘리자베스도 다른 여자들처럼 자신의 사랑과 부와 계급을 당연히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하고 청혼을 하게되는데 엘리자베스의 거절로 두 사람 사이의 오만과 편견을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르시의 편지로 시작하여 서로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으로 이어지고 둘은 행복한 결혼으로 끝을 맺는다.이 책의 처음 제목이 첫인상 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이 글은 그 첫인상 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첫인상 으로 결정지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첫인상 을 잘 보이기 위해 가식적으로라도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첫인상 에 의해 내려진 결론은 그 사람의 참모습을 들여다보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사람의 잘 판단하는 엘리자베스도 다른 사람 (콜린즈와 빙리, 캐서린 부인 등)을 판단하는 데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나 다르시와 위컴 그리고 젤 친한 친구였던 샬로트를 판단하는 데는 오류를 범했다. 원래는 진실된 신사인 다르시를 거만하고 신사답지 못하다고 생각했으며, 정반대인 위컴을 다정하고 신사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젤 친했던 샬로트가 콜린즈씨와 같은 남자와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지금까지 샬로트를 잘못판단 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신분상으로 다르시는 오만함을 가지고 자신보다 못한 신분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엘리자베스를 알게되면서 그 오만을 버리고 행복한 사랑을 얻는다.사람이 어떤 사람을 잘 알아 가는 과정은 처음에 첫인상 에서 시작해 그 사람에 대해 경험 을 하게 되면서 차츰 수정되고 완성 되어 지식 즉 그 사람을 진정 아는 것 이 된다. 사람들 중에는 첫인상 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 첫인상에서 불쾌감을 느끼면 그 사람을 그런 사람이라고 단정지어버리고는 아예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을 모두 비뚤어진 시각으로 보게 된다. 물론 첫인상 도 중요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고 난 생각한다. 인간이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처럼 오해라는 게 얽혀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알고 보면 엉망인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경험을 해 봐야하는 것이다. 나중에 그 사람을 더 잘 알게 되면 오해에서 이해로 바뀌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첫인상 에 대한 그런 편견을 가지고 그 사람을 결론지으려는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의 마음 속에 자신에 대한 우월감, 자만심, 즉 이 소설에서 말하는 오만을 지니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독후감/창작| 2002.06.02| 3페이지| 1,000원| 조회(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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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구문학]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이야기를 통해 정신 분석학에서 흔히 이야기되어지고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한다.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3~6세 사이의 남자 아이가 심층심리학상의 욕망에서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애정, 또는 이와 반대로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증오-이와 같은 선천적인, 말하자면 운명적인 마음의 편향, 일반적인 이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을 말한다.즉, 이성인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경쟁자로 적대시하는 심리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심리학자인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가 구분한 5단계의 아동 발달 이론 중 제 3기(남근기라고도 불림)에서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성적 에너지라고 말하는 리비도가 구강과 항문에서 남근으로 이동하여 이성부모에 대한 성적 욕망이 드러난다.그러기 위해서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구체적 어원인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넘어 가겠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테바이의 왕 라이오스(laius) 왕비 이오카스테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델파이 신전에서 아들을 갖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아들이 생기면, 그 아들은 장차 아비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 라는 무시무시한 아폴론의 신탁만 내려졌다. 라이오스왕은 공교롭게도 아들을 보게 되었다. 라이오스는 신탁을 아내인 이오카스테에게 말하면서 비극을 예방하기 위하여 아이를 처치해 버리라고 일러놓았다. 그러나 이오카스테는 어머니의 정으로 자기 아이를 차마 그 자리에서죽이지 못하고 믿을 수 있는 한 하인에게 명하여 깊은 산속에 가져다 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부하는 차마 아이를 죽이지 못하고, 아이의 다리를 묶어 나무에 매달아놓고는 산을 내려왔다. 그 아이는 그 근처를 지나던 코린토스의 어떤 양치기가 발견하고 집에 데려와 키웠다. 산에서 발견될 때 발이 묶여 퉁퉁 부어있었기 때문에 오이디푸스(oedipus-발이 퉁퉁 부은 자)라고 불렀다.오이디푸스는 양치기의 도움으로 코린토스의 왕인 폴뤼보스의 손에서 그의 아들로만 알고 자라났다. 오이디푸스는 건강하게 자라감에 따라 지혜가 출중하고 또 운동경기 등에서 번번이 우승하는 씩씩한 청년이되었다. 이 청년은 어느 때인가 친구로부터 자기가 타국 고아출신의 보잘 것 없는 신분이라는 말을 들었다. 의아하게 생각한 나머지 아폴론의 신탁을 들어보았더니 절대로 고향에 돌아가지 말지어다. 굳이 간다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패륜아가 될 것이니라 는 것이었다.이 신탁을 듣고, 아버지에게 혹 해가 되지는 않을까 해서 그 길로 되도록 코린토스에서 먼 곳으로 방랑의 길을 떠났다. 방랑 중에 어떤 노인과 싸우게 되었고, 노인과 그 부하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 노인이 바로 라이오스로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였던 테바이의 왕이었다.오이디푸스는 계속 방랑하여 테바이에 도착하였는데, 거기에는 스핑크스(sphinx)라는 괴물이 살고 있었다. (스핑크스는 얼굴은 여자이나 몸은 사자인 괴물로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아침에는 네 발로, 낮에는 두 발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게 무엇이냐 는 수수께끼를 내고 그것을 풀지 못하면 잡아먹었다고 하낟. 많은 사람들이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 스핑크스의 제물이 되었으나 오이디푸스가 사람 이라는 정답을 말해 이 괴물을 퇴치하고 테바이의 와이 되었다,) 이 괴물은 사람을 만나면 수수께끼를 내어 풀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그래서 이 무서운 괴물을 죽이는 사람이 그 나라에 홀로 남은 왕비를 차지하고 왕이 된다는 말이 떠돌고 있었다. 한창 젊은 혈기를 가지고 있던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를 찾아가 마침내 수수께끼를 풀어버렸다.약속대로 오이디푸스는 왕위에 오르고 어머니이자 왕비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두 딸과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테바이에 전염병이 번지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자 오이디푸스는 델파이 신전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무도한 인물 때문에 전염병이 번진다'는 신탁이 내려졌고, 이에 격분한 오이디푸스는 모든 신하들에게 그 무도한 자를 잡아올 것을 명령했다. 신하들이 그 자를 조사하는 중에 한 예언자와 그의 외삼촌이자 처남이 되는 크레온으로부터 모든 사실이 밝혀졌고다. 예언을 피하기 위해 자기가 자란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방랑의 길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비극적 운명은 (비록 사전에 알고 행해진 일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리라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 남편과 자기의 안전을 위해 자기가 낳고 버렸던 아이가 바로 지금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왕비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뽑아 장님이 되어 미치광이가 되어 떠돌아 다녔다.
    인문/어학| 2002.05.25| 3페이지| 1,000원| 조회(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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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21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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