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자센터란?{하자센터는 연세대학교가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청소년 센터입니다. 1999년 12월에 개관하였고, 공식 명칭은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입니다. 스스로 업그레이드하자 , 하고싶은 일 하면서 먹고살자 , 자율과 공생의 원리 를 모토로 하는 이 곳은 21세기 청소년 문화작업장 또는 하자센터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센터를 연세대학교에서 위탁 운영하게 된 시대적 배경은 IMF경제 위기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경제 위기와 실업 상황에서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었고, 이때 특히 문화 영역에서 활동하던 인문계 출신 청년들이 받은 충격은 큰 것이었습니다.{현재 하자센터장인 조한혜정 교수를 중심으로, 고학력 실업과 청년 실업 문제의 돌파구를 모색하는 기획이 시도되었고, 그 결과 문화 산업계에 종사할 새로운 인재를 기를 청소년 센터들을 서울시에 만들어야 한다는 기획이 채택되었습니다. 서울시는 기존의 오래된 근로 청소년 회관을 직업체험센터 외에 정보문화센터 와 성문화센터 로 특화하여 대학이나 적절한 새로운 단체에 맡겨 새 시대에 맞는 활동을 하도록 하였는데, 1999년 봄에 제안서를 제출하고 공개 경쟁으로 단체를 선정하는 과정을 거쳐, 청소년직업체험센터(일명 하자센터) 는 연세대학교 내 사회복지문화사업 운영위원회 소속의 청년문화센터 가 위탁 운영하게 되었습니다.하자센터의 스스로 물주는 나무 이미지.2> 하자 작업장 학교는?하자작업장학교(http://school.haja.net)는 하자센터 안에 만들어진 작은 실험학교입니다. 그것은 탈학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아닌 학교 라 할 수 있는데, 탈학교 십대가 늘어나는 현 상황에서 아주 필요한 형태의 학교라 할 수 있습니다. 작년 9월 이 학교는 서울시장과 연세대 총장단이 참석한 가운데,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면서 개교하였습니다. 학생 수는 한 학기 15-25명, 3학년제이고 전체 학생은 100명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기존 제도권 학교가 틀에 박힌 교과 내용을 주입하느라고 있지만, 실행 면에서는 아직 속도가 나지 않아서 인가를 받으면 기존 커리큘럼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담임제와 학점제를 근간으로 하는 이 곳은 아주 새로운 학습을 하는 곳이고, 교육원리의 핵심은 자기 주도 학습 과 더불어 살기 입니다.{학습 범주에 따른 프로젝트 영역은 다음과 같습니다.{학습범주자기계약문화작업학습문화시민학습언어학습자치학습프로젝트일곱가지 약속학교생활의 약속작업장프로젝트인턴십프로젝트졸업프로젝트인문학프로젝트여행프로젝트글로벌네트워크디지털리터러시외국어학습자치회의자치학습모임벽이없는학교3> 하자센터의 5개의 작업장{하자센터에는 5개의 작업장이 있고, 작업장에서는 수십 가지의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십대들은 이 프로젝트 중에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 해 보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택해서 참여하게 됩니다. 모두들 서로를 가르치고, 서로에게 배우는 사람으로 업그레이드해 가고 있습니다.·생활디자인 작업장은 시각 디자인과 패션 디자인 관련 작업장입니다. 평소 십대들은 매주 거리에 나가 디자인 프리마켓 을 운영하고 있으며, 서울의 화랑가에서 미술관습격 이라는 전시회를 기획하여 기성 작가들에게 도전장을 내기도 했고, 십대아트상품전시회(십아상전) 를 열기도 했습니다.하자에서 가장 화려한 시각디자인방 문.{·영상디자인작업장은 다수의 단편 영화와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계절마다 작품 시사회를 열어 십대들의 영상 언어를 실험하고 있으며, 각종 청소년 영상제에서 입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자 홍보 영상, 하자 영상뉴스 등을 제작합니다.{영상방 작품 특별시 소년 소녀 .대중음악방 서커스유랑단 공연.·대중음악작업장은 가장 많은 십대들이 모여 있는 작업장으로 거리로 나가 신나는 콘서트를 열기도 합니다. 서커스 유랑단 은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가 복합 장르의 공연을 하는 팀입니다. 많은 십대 밴드들과 힙합 팀이 소속되어 있고 해마다 스스로 앨범을 제작하는 가장 활기 넘치는 작업장입니다.·웹작업장은 하자넷(haja.net)을 개발, 관리, 운영하고, 21원센터 , 십대 페미니스트들의 준거집단인 소녀들의 페미니즘 , 에코 캠프 등이 시민 문화적 감수성을 기초로 하여, 다양한 대안 문화적 삶의 모델을 제안하고 실험하고 있습니다.시민문화작업장에서는 에코캠프를 통해서 환경과 생태에 관심이 많은 죽돌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주로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하자센터의 죽돌들이 생태적인 공동체를 경험하고, 그곳에서의 경험을 도시 생활에서 이어갈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지요.4> 하자의 활동 원리· 스스로 업그레이드 하자.(Upgrade by Myself)하자의 인문학 교양코스는 소통 프로젝트이면서 동시에 ‘평생학습’을 위한 자기 기획 프로젝트이다. 스스로 자신의 학습프로그램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그려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필요한 프로젝트를 수행하여 학점을 취득하게 된다. 학생 개인의 요구와 담임들의 평가에 따라 3인 이상이 신청하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개설한다. 또 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개인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 하자작업장학교는 이처럼 개인맞춤형 학습을 지향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속도와 동이에 맞게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해 가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수료와 졸업도 탄력적으로 운용하여 10학기 내에서 자신의 역량에 맞게 진로 설계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며 하자작업장학교를 그만두는 경우에도 여기서의 자기주도적 학습의 경험이 이후의 학습에 도움이 되도록 돕고 있다. 때때로 학생들은 어떤 부분에서 학교에서 요구하는 지식이나 문화작업의 수준을 능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학교가 납득할 만한 증명 프로젝트를 함으로써 프로젝트를 수행하지 않고도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놓고 있다.이와 같은 적극적인 학습(active/positive learning)은, 십대들이 졸업 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거나 진로를 찾지 못해 방황하지 않고, 항상 자기관리와 자기기획을 할 수 있는 자기길찾기(find-flow) 훈련이다. 하자센터의 모토인 "스스로를 갖고 있음에 비해, 하자 작업장 학교의 학생들은 하자센터의 세 개 작업장(생활디자인, 대중음악, 영상) 중의 한 곳에서 코스워크를 이수한다. 이는 자기의 매체를 갖는 일이며 동시에 문화작업자로서 자기 길을 가꾸는 기초적인 작업이다. 아울러 아이들은 시민문화 학습을 통하여 자신의 언어를 갖는 학습을 함으로써 단순히 기능이나 테크닉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를 갖게 된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결국 자신의 언어와 매체를 갖는 즉 인문학적 감수성과 문화 작업을 결합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작업장 전공 프로젝트를 통하여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기”란 하자의 모토를 자기 삶에 연결하는 실험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자기 길을 찾게 된다. 아이들의 문화작업은 디빌리지의 홈피에 축적되어 서로의 학습과정과 성장과정을 보고 서로 배울 수 있도록 되어 있다.인턴십 프로젝트는 일종의 '벽이 없는 학교'(school without walls)를 지향하면서 고안한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하자 밖의 학습 자원을 활용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을 스스로 구성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사회 각계의 전문가들이 조언자(mentor)로 참여하게 되며, 십대들은 그 현장에서 3개월 또는 6개월간 인턴으로 지내보면서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하게 되고 장차 진로 설정을 위한 경력을 쌓게 된다. 이는 각계의 전문인들이 학교의 자원으로 참여하는 21세기적 학교실험의 일환이며, 이미 서구 선진국에서 실험하고 있는 사회의 재활력화(revitalize) 프로그램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문제해결과 소통을 통해 배운다.(Learning by Problem Solving)십대가 좋은 시민으로서 행복하게 살아나가는 데에는 전문적인 능력 외에도 사회공동체와의 관계 맺는 능력이 중요하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시대를 읽어내고, 가치를 실현하며, 소통하는 능력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근대 이전의 인문학이 '독해'(reading)와 주해 중심적이었다면, 근대의 인문학은 개인의 '표현'(expressi 아는 것, 장애(handicap)를 다른 능력과 더불어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 다양한 문화를 고려하면서 세계시민으로서의 의식을 갖는 것, 정보사회를 상업적 동기만으로 생각하지 않고 네트워크와 공유의 마인드로 체험하는 것, 개인의 자리를 가지면서도 그를 둘러싼 사회공동체를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름짓는 사람이 되자.(하자 작업장 학교 판돌 김희옥님의 글중에서 발췌) 하자센터에는 특별한 호칭문화가 있다. 진작부터 콜레지오(하자센터의 인문학부과정)의 아이들은 센터장 조한혜정 교수를 그냥 '조한'이라고 부르고, 부관장 전효관 박사를 '전군'이라고 부르며, 나를 '희옥스'라고 부른다. 교수님, 부관장님, 박사님, 선생님 등의 호칭은 없다. 호칭의 체계는 사회적 질서를 적나라하게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호칭을 부르지 않음으로써 아이들은 조금 자유로움을 맛본다. '전효관 부관장님'일 때는 어렵다.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전군'으로 통일되자 눈에 띄게 달라진 현상이 있다. 아이들은 '전군의 생각은 어때요?'라고 한다. 전군의 생각을 묻는 일이 많다. 전군이 아무리 어려운 말로 알튀세가 어떻고 신자유주의가 어떻다며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대답하여 아이들을 아연하게 만든다고 해도, 아이들은 자주 '전군의 생각'을 묻는다.또한 나는 콜레지오의 어떤 아이를 '원'이라고 불러야 하고, '문지원'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또 한 아이는 '하토'라 부르고 '김한결'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하토를 '화투'라 놀려도 되지만, '김한결'이라고 부르면 안된다. 아이들은 어느날 '나를 이라 부르기를 원한다'고 선언하며, 그 뜻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다. 작년 11월 나는 남이와 퀸 오로라를 데리고 타이페이에서 열렸던 NGO대회에 참가했었는데, 그 대회측에서는, 공식적으로, 남이와 퀸 오로라의 본명을 묻지 않는 '예의'를 지켜주었다. 그들이 만들어준 대회이름표에는 'Nami, Haja Center', 'Queen Orora, Haja C.
제1장 전통적 교육과 진보주의 교육제2장 경험이론의 필요성제3장 경험의 기준제4장 사회적 통제제5장 자유의 성격제6장 목적의 의미제7장 교육내용의 점진적인 조직제8장 교육의 수단과 목적으로서 경험제1장 전통적 교육과 진보주의 교육어떤 문제를 대하고 생각하는 데에 있어서 사람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극단의 사고방식을 갖는 것은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육이론의 역사는 교육을 보는 두 가지 정반대되는 입장, 즉 교육은 내부로부터 계발하는 것이라는 생각과 외부로부터 형성하는 것이라는 입장 사이의 대립으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전통적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교육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잘 조직된 지식 및 정보체계 그리고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을 습득하게 함으로써,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자 합니다. 교육내용이나 올바른 행위의 표준은 먼 과거로부터 누적적으로 전달된 것이어서 그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타당하고 올바른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대체로 그러한 교육내용과 행위의 표준에 대하여 수용적이고 순종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교육내용과 방식에 대해 비판의 관점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지만, 진보주의 교육은 교육의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기 이전에 전통적인 교육을 무조건적으로 배격하고 극단의 반대 입장을 자지게 될 여지가 있습니다. 전통의 교육이 완성된 교육내용, 진리를 중심으로 교육한다는 것에 반대하면서 교과를 조직한다는 생각 자체를 잘못된 것으로 보기 쉽습니다. 새교육의 기본적인 생각을 건설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험 에 대하여 올바로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교과서에 들어있는 사실이나 지식을 공부해야 할 내용으로 채택하고 있는 전통적 교육이 너무 과거 지향적이라면 우리는 과거를 아는 것이 어떤 점에서 미래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밝혀야 합니다. 하는 경험이 다음에 올 경험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경섬의 계속성 의 중요성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전통적 교육에 반대한다고 해서 진보주의 교육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즉흥적으로 해도 좋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전통적인 학교는 체계를 갖춘 교육철학이 없이도 별 어려움 없이 잘 해 나갈 수 있으나, 새교육의 경우 적합한 교육내용, 교육방법, 그리고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인간관계에 대한 명확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은 전통적 교육의 경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새교육 운동이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듯이 보이는 모습에 대해 전통적 교육은 옹호하는 사람들이 교육은 역시 조직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나아가 조직이라는 것은 과거의 방식, 실험과학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답습해 온 그 케케묵은 전통적인 교육방식이 유일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새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경험적이고 실험적인 사실에 토대를 둔 교과와 교육내용을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방안을 확립하지 못하게 되면, 이러한 반동적인 내용은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경험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라면 질서와 조직의 문제에 있어서 아무런 지적인 방안도 없는 무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까닭이 없으며, 반동주의자들로부터 그런 부당한 취급을 받을 이유도 없습니다.제3장 경험의 기준진보주의 교육을 보다 더 좋아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진보주의 교육이 인간적인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며, 또한 진보주의 교육이 민주주의와 아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보주의 교육이 전통적 교육과 비교할 때 학생들에게 훨씬 더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경험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바로 계속성의 원리 입니다. 여기서 계속성은 그저 막연한 의미의 계속성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특정한 방향으로의 발달은 계속적인 성장에 기여할 때에만 교육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지, 계속적인 성장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교육의 기준으로 볼 수 없습니다. 만약 교사가 키게 됩니다. 경험은 진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개인과 개인 밖에 무언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개인 밖에 상호 작용할 무엇인가가 주어져 있지 않다면 경험은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환경적 조건들을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외부에서 강제로 부과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아동들의 경험을 잘 지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과 경험의 관련을 강조하는 새교육의 경우에 교육이 경험의 원리에 충실하게 이루어지려면, 교사들은 지역사회의 제반 조건들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검토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흥미나 취향에 외적인 조건들을 그저 종속시키는 교육을 하는 것도 가능할 테지만, 그럴 경우에 교육은 교육내용, 교육방법, 학교 시설 등 모든 것을 아동들의 즉각적인 기분이나 감정에 맞추는 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외적 통제를 가하지 않거나 개인의 자유를 전혀 제한하지 않을 경우에는 결국 경험의 중요한 요소인 외적 환경요소를 무시하고 개인의 내면 상태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내세우게 되며 그럴 경우만이 진정한 교육이라는 그릇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진정한 교육은 아이들의 즉각적인 내적 상태와 바람직한 상호작용 이 일어날 수 있도록 외적 조건들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어야 하며, 이때 상호작용 이라 함은 객관적이고 외적인 요소와 주관적이고 내적인 요소가 있으며 이 두 가지 요소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두 가지가 상호 작용하는 것 그 자체를 하나의 전체로 생각할 때에 경험은 바로 상황 이 됩니다. 경험은 외적이고 객관적인 요소와 내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함께 상호 작용하는 상황적인 것입니다.어떤 경험이 교육적인 경험인지를 평가하는 방법은 그 경험의 상호작용과 계속성의 정도를 특정하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교육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가장 중요한 측면은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겸험의 상황입니다. 경험상황은 개인적인(인간적인) 요소과 환경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 사회적 통제가 있을 수 있는데, 교사가 권위를 가지고 단호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을 때 즉 통제를 가할 필요가 있을 때에, 교사는 개인의 권위와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통제를 행해야 합니다. 이처럼 어떤 의도에서 통제를 가하느냐에 따라서 외적으로 보기에는 동일한 교사의 통제 행위가 자의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고 정당하며 공정한 행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공동체 생활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서로 함께 어울려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의 사회적 성격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사전에 충분한 생각과 계호기이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학교의 교사는 학생 개개인 및 교과내용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진보주의 학교에서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진보주의 학교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진보주의 교육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보주의 학교에서 아동들을 제대로 통제하려면 교사들은 학생 개개인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상황, 소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교사의 임무는 그의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전체 사회와 공동체의 삶에 유익한 것이 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학습내용을 선정하고, 적절한 학습방법을 통하여 이를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들이 공동체의 삶과 관견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만큼 공동의 활동에 참가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며, 바로 공동의 활동에 참가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학생들로 하여금 충동을 자제하게 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게 하는 통제력을 지니게 합니다. 그 사회의 가장 성숙한 구성원이라고 볼 수 있는 교사는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원활한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특별한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 서로로 얻어지는 이점은 교사가 학생들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전통적적인 학교의 교육사태는 학생들을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외적인 행동의 자유가 있다는 것은 스스로 심사숙고해서 가치 있는 목적을 선정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러한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외적 행동의 자유는 그러한 찬단과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수단이 됩니다. 결국 자유가 주어지지 않게 되면 그만큼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게 됩니다.사고한다는 것은 즉각적인 욕망에 따라 행동하기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하며, 욕망이 보다 일관성 있는 행동과 관련을 맺을 수 있도록 욕망을 조절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고를 통해 충동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자율적 통제를 의미합니다.제6장 목적의 의미노예라는 것은 신체적으로 남의 구속을 받는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정한 목적은 없고 다른 사람이 정한 목적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목적은 충동이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어떤 행위를 할 때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리라는 것에 대한 예상을 포함합니다. 결과에 대하여 예상하는 것은 일종의 지적 작용입니다. 무엇보다도 결과에 대한 예견은 객관적인 상황과 환경에 대한 관찰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충동과 욕망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은 그 자체만의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 상황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로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아이가 불꽃이 뜨거운 것이라는 아는 것은 이전 경험의 의미를 기억해내려고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누적된 경험의 결과로 불꽃을 보는 즉시 불꽃이 빛과 열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익숙하지 못한 경우에는 관찰된 사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알려면 우리는 지나간 경험을 주의 깊게 검토하며, 현재의 상황과 과거의 경험들이 어떤 점에서 유사한지를 입니다.
1> 현대에 성기 신앙이 가지는 의미는...현대의 세속적인 인식은 성을 단지 유희적 가치로만 보려는 것에서 외형상 위축되어 버렸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범죄와 미혼녀, 낙태문제들은 현대인들의 성인식이 크게 잘못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생명 이라는 본래적 가치를 망각한 결과이며, 종래의 성을 생산성을 바탕으로 한 관념, 곧 성의 신성 가치에 대한 종교적 심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성이 생물학적인 성 상식에 머물거나 오히려 놀이로서의 성관념이 지배적이다. 그러므로 생산과 풍요의 신성가치를 몰각한 성은 진정한 의미의 성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2> 성기 신앙성기 신앙은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전통적인 구조물과 마을이름, 그리소 세시풍속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성기 신앙은 생식기 자체를 신앙하는 직접적 계기로 삼거나, 성행위를 신앙관념으로 수용한 사례등이 있다.이러한 성기에 대한 숭배 현상은 단순한 생식적 도구로서의 신앙이 아니라 그 이면에 내재한 주체적 본질인 성의 생식력 곧 성력을 신앙하는 것이다. 성기 신앙은 그것이 생산 주술적 대상이 되는 대지의 생산물일 때, 일차적으로 풍요와 다산을 원칙으로 한다. 이것이 바로 성기 신앙이 갖는 일차적인 의미이다.고대 사회, 특히 농경사회에서 그들 생활의 주를 이루었던 농경에서 그들이 처한 여러 가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신앙의례로서 존재하였던 것이다. 마을의 안녕과 평안 및 마을공통의 욕망을 해결하려는 의미를 가졌으며 또한 이것이 사회적 의미에서 벗어나 개인적 문제로 전이하게 될 지라도, 그것이 다산을 위한, 특히 아들을 낳기 위한 것으로서 의미를 가지게 됨으로서 농경에 필요한 일손의 증가를 구원하게 됨으로서 성기 신앙은 어떻게 보면 사회여건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인간사의 모듬 문제들에 두루 관여할 수 있는 신앙이었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성기신앙이 비단 농촌지방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농경지방이 아닌 다른 지많은 목형(木型) 음경을 만들어 이를 걸으니 음탕하기 이를 데 없다. 혹은 말하길 부근이란 관사의 뿌리로서 목경을 거는 뜻은 사람의 뿌리가 신경(腎經)이기에 그에 따른 것이라고도 한다. 외읍(外邑)에서도 이를 모신다. - -음력 섣달 그믐날이면 온 사중(寺衆)이 모두 모여 제사를 행했는데 목봉(木棒)으로 양경(陽徑)의 형용을 만들고 거기에 붉은 칠을 하여 그것을 들고 춤을 추며 신을 위안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찰에 재난이 생기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행하였으나 근년에 비로소 혁파되었다. - 이능화 -남근에 대한 숭배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유부녀가 남근석에 올라타면 회임을 할 수 있다는 경우나, 처녀로 죽은 여인의 혼을 달래기 위해 나무로 남근을 깍아 신전에 바치는 행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남근석을 신성시 하고 신전을 지어 남근석의 훼손을 막고 제를 올림으로서 숭배로서의 의식을 갖추었으며, 그것이 현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곳이 많다.4> 여근 숭배 의식이러한 문헌들에서 남근에 대한 숭배의식을 찾아볼 수 있는데 성기 숭배에서 남성의 성기만을 숭배하였던 것은 아니다. 양음의 조화를 말하는 풍수지리 사상의 영향으로 여성의 성기에 대한 숭배도 남성의 성기에 대한 숭배에 못지 않았으며, 남근석의 분포에 비례한 숫자로 여근석이 분포하며 여성의 성기에 대한 숭배는 구조물로뿐만 아니라 어느 한 지방 전체가 되기도 하고, 계곡 전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보지골 이나 보지 바위 , 공알바위 라는 이름으로 제의를 베풀거나 또는 남근석에 올라타는 것과 유사한 모방 성행위로 목적하는 바를 기원하기도하였다. 그러나 여근에 대한 숭배가 남근숭배와 다른 점은 여성기 자체를 불길하게 생각하거나 부정하게 여겨 엄격하게 금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여성기와 관련해서는 마을 사람들이 꼬챙이로 장난을 하거나 손을 대거나 하면 마을 처녀들이 바람이 나서 가출을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근에 대한 숭배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동시에 그것은 여성의 생산을 촉진시킬 수 있도록 달의 정기를 많이 받고자 하는 의도로 벌어지는 주술적 놀이라고도 할 수 있다.또는 남녀의 성적인 결합을 유도하려는 놀이 형식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원무행위는 신과의 성적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이 여자들만이 참여하는 이유가 된다고 본다. 자궁의 입구를 상징하는 원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 그리고 놀이가 처음에는 완만한 단계에서 촉급한 상황으로 나아가 마지막에는 단순놀이로 마감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동작들이 성적인 결합과정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며 놀이 과정에서 불리는 노래 자체가 남녀간의 애정이나 입을 기다리는 내용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참고 -性, 숭배와 금기의 문화 - 이종철외 2명 (대원사 1997)한국의 민속과 性 - 비교민속학회 엮음 (지식산업사 1997)성풍속으로 보는 일본문화 - 이경덕 (가람기획 1999)일본의 성기숭배◈남성 성기 숭배일본에서 성기 숭배의 전통은 단절되고 말았다. 그저 과거에 그런 사실이 있었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일본 정부가 메이지유신을 선포하고 외국과의 교류를 활발히 진행하는 과정에서 외국인에 대한 체면 때문에 성기 숭배를 추방한 까닭이다. 외면적인 체면을 생각했던 것이다.그러나 고대 일본에서 가장 사랑 받았고, 또한 가장 많았던 신성은 다름 아닌 남성 성기였다. 사람들은 길 곳곳에 특히 십자로나 밭에 붉게 칠한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돌과 나무 기둥을 세워 놓고 풍요나 다산, 희망들을 기원했다. 다리의 제방에도 이와 같은 남성 성기를 의미하는 기둥이 서 있었다. 이것을 오바시라 라고 불렀다.이 오바시라에 대응하는 것을 이집트, 그리스, 로마 및 인도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집트의 신전 앞에는 오벨리스크라는 거대한 돌기둥이 서 있다. 그리스인이 이집트인에게 배우고 로마인이 그리스인에게 배운 것처럼 일본인은 중국인을 통해서 붉은 돌과 통나무를 이용해 인간의 모습으로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조야한 상징물 성기를 두드리면서 큰 가마니에 일곱 가마니 라고 노래한다.인근의 히라노 지방에서는 파종이 끝나면 부부가 함께 밭에 나가서 남편은 성기를 내놓고 아내는 팔을 걷어붙이고 아카이과의 부부가 했던 것과 같은 행동과 노래를 되풀이한다. 또 모심기가 끝나면 젊은 남녀를 껴안게 하고 마을 사람들이 주위에 둘러서서 물을 끼얹으며 축하한다 라는 말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가장 소박한 도소진은 남자 성기를 모방해서 만든 돌기둥으로 대부분 농촌 입구에 있는 밭 가운데 놓여 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군마 현 하카에 있는 것으로 높이 97cm, 둘레 36cm, 무게 150kg인 돌기둥으로, 곡식의 풍요와 자손의 번창을 안겨주는 신으로 신앙되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여성 성기는 길옆의 큰 고목 뿌리에 있는 구멍이나 자연동굴, 큰돌의 우묵한 곳이다.사에노카미는 역신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사에노카미 자신이 나쁜 병을 옮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쁜 병을 막아준다는 뜻이다. 성기는 생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직접적인 물건이다. 생식은 고대인들이 두려워 했던 병과 죽음의 반대물이다. 따라서 성기를 병으로부터 지켜주는 신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음부를 노출해서 악령을 내쫓는 풍습이 있었다.악령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남성 성기의 모습을 한 신을 손에 쥐고 있으면 된다. 그러나 그것을 손에 쥘 수 없는 경우에는 직접 성기를 드러낸다. 또한 성기의 상징을 집이나 보호해야 할 물건에 적어 붙여 두기도 하고 그리는 방법도 있다. 이것은 중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풍습이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경우 남근 모양의 돌기둥에 여자가 걸터 앉아 비비면 효과가 있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돌기둥에 화환을 걸어두는 일도 있다. 화환은 물론 여성 성기를 상징한다. 이러한 풍습은 미개 민족뿐만 아니라 세련된 문화를 지닌 민족도 지니고 있으며, 또한 하층 계급뿐만 아니라 상류 계급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굳이 도소진으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해도 성기를 닮은 나무나 바위는 성기로부터 30여m쯤 떨어진 곳에 여성 성기가 세워져 있다. 여성 성기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3개의 바위가 자연스럽게 어울어져 여성 성기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많은 성기를 비에 젖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는 작은 신사일본에서 유명한 관광지인 닛코부근에 있는 유모토 호수 위에 있는 곤세이 라는 산마루에서 남근 제단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이 제단을 곤세이 제단이라고 부른다. 이 제단은 만들어진 시기가 상당히 오래 된 듯했다. 일본 연구가로 이름이 높은 챔절리와 메이슨은 이라는 책에서 이 제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숭배의 대상인 성기는 처음에 금으로 만들어졌고 나중에 돌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전설로 남아 있다. 공물, 특히 목제와 석제 장식품이 자주 제단에 바쳐졌다. 일본의 성기 숭배의 기원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곤세이는 시골이고 그와 함께 동북 지방이라는 사실은 성기 숭배가 거의 모든 지역에서 행해진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이 예배소는 나무로 만든 작은 집으로 주위가 약1.2m이고 삼면이 장식을 위한 돌출부가 있으며, 그 위에 다양한 크기의 목제와 석제로 만들어진 남성 성기가 2,30개 놓여 있었다 예배소 근처에 커다란 석등이 서 있다. 또한 제단에는 여관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는데, 그것은 순례자들을 상대로 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 여관들이 돈을 내서 제단을 수리했을 가능성도 있다.이와 비슷한 예배소가 아마테라스를 숭배하는 이세신궁의 북서쪽에 있는 오야마쓰미노카미(큰 산을 소유하고 있는 신이라는 뜻)를 숭배하는 신사와 그의 딸 고노하나시쿠야히메(산에 피어 있는 꽃처럼 아름다운 여자라는 뜻)를 숭배하는 신사의 중간에 있다.이 제단은 전형적인 남성 성기와 여성 성기로 에워싸여 있다. 그러나 12개나 되는 도리이(신사의 입구에 에워 놓은 기둥 문)가 그 앞에 있어서,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곳에 무엇이 있는 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고노하나사쿠야히케를 숭배하는 신사에는 아이와 아내, 있다.
{공자와 한국사회Ⅰ > 현대사회의 모습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유교는 하나의 문화로서 서서히 외면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가족관계 또한 핵가족화 되고 있으며 남녀평등을 부르짖고 있는 현실에서 효를 강조하고 장남이 대를 잇기를 바라는 등의 이야기는 현대인에게 아무런 막힘없이 들린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또한 최근들어 발생한 IMF 와 그동안의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우리 사회의 병폐적인 단면들을 서서히 드러내게 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을 찾게 하였다. 그 근원을 유교문화와 그 사상에서 찾으려 했다는 것은 그만큼 유교 문화가 우리 민족의 생활과 사상에 깊숙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Ⅱ> 유교문화와 한국사회ⅰ) 효(孝){공/자/와/한/국/사/회효는 한자상으로 의미를 따져보면 노인을 아들이 업고 있는 모습인데, 이것은 조상이 아들인 자손을 통해 성씨를 이어가고 핏줄을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이 핏줄의 전수는 바로 짧은 생물학적 생을 극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효라는 것은 따뜻한 정이 있고 가정의 화목을 지탱해가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으로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긍정적인 효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고 그 역효과가 오히려 팽배해 가정의 행복을 파괴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주택, 직장, 맞벌이, 자녀교육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현대 사회의 여러 상황들은 이를 근본적으로 어렵게 한다. 유교적 교훈들이 산업화가 가져온 가족 구성원들의 다양한 위치 변동과 상황변화를 효과적으로 해석하고 대체 할 수 없게 만든다. 게다가 효도에 대한 생각과 수준이 서로 달라져 서로 사랑해야 할 두 세대는 오히려 갈등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적지 않은 수의 노인이 버려지는 현실이나, 고부간의 갈등, 노인들의 인생은 뒷전으로 한 채 손주를 기르는 일에 맡겨지는등의 현실이 효 사상의 어긋나버린 모습을 보여준다.시대는 변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효도의 이름아래 빚어지는 억지스런 모습이 아니다. 노인과 자녀들 모두의 사랑이 상처를 입지 않을 균형 있는 제도다. 사랑의 본질을 깨닫고 그 고귀함을 느낄 수 있는 대안책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그러나 세대가 변하였다고 해서 부모에 대한 효의 마음과 정성, 그리고 사랑에는 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시대에 따른 새로운 효도 문화구축을 위해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물질로 효도를 대신하기보다, 실버타운에 보내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기보다 나이 든 부모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심으로 알고 그것을 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자세가 곧 효도일 것이다.지금의 부모의 모습이 곧 자신의 모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보다 진심으로 부모를 섬길 수 있을 것이다.ⅱ) 종적관계질서유교문화에서는 종적인 관계에 대한 언급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간, 남자와 여자, 하늘과 땅 등등.자식의 부모에 대한 효, 신하의 임금에 대한 충성, 집안의 보조적 위치에 머물렀던 여성의 위치. 이러한 모습들 그 자체에서 문제점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이것에서 발전하여 현대사회속에서 다양하게 문제점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러한 종적인 관계에서 젊음과 창의성의 말살이라는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힘 의 소유자에 대한 약자의 맹목적인 복종이 사회의 발전보다는 머무름을 좇게 하였다. 예로써 회사의 관료주의의 모습을 들 수 있다. 상사에 무조건적인 복종이 있어야 하는 모습, 그럴 경우 경영자의 뜻에 의해 일의 처리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으나, 이러한 힘 의 남용은 전체를 부식시켜 끝에 마침내 붕괴의 시점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상부에 대한 복종은 출세를 위한 로비등, 사회의 온갖 비리를 만들어내는 요인이기도 하다. 혈연이나 학연에 의존하는 사회 현실의 모습도 이런 것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상하 관계를 규정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삼강 때문이다. 그런데 삼강은 오륜의 일부를 줄여서 만든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삼강과 오륜의 근본이념이 다르다는 점에 있다. 오륜은 인륜관계의 상호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삼강은 한나라의 동중서에 의해 제창된 것으로, 약자의 일방적 의무만을 강요한 것이다. 여성계 인사들이나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주로 삼강의 내용과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삼종지도 혹은 칠거지악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모두 변형된 유교이며, 동시에 본의에서 벗어난 유교라 하지 않을 수 없다.많은 사람들이 오륜의 평등성을 무시한 채 삼강의 불평등성만을 문제삼고 상하 종적인 관계의 문제를 따지고 드는 탓에 근본적인 출발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ⅲ) 세계화중국과 일본은 한국과 달리 일찍부터 서구사회에 개방을 허락하였다. 1842년 아편전쟁을 겪은 중국은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유교의 폐해를 조목조목 열거한 후, 마침내 완전한 서양화 를 주장하게 된다.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유교는 사람을 잡아먹는 것 이라는 공감대를 확산시키며 중국사회가 새로운 선택을 하도록 끌어갔다. 마오쩌똥에 의해 시작된 10년 문화대혁명이 유교를 공격목표로 한 것이었다는 점을 떠올려 볼 때 중국인들의 유교에 대한 피해의식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알 수 있다.한편 서구에 녹아버린 중국의 모습이 일본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서양열강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일본은 존왕양이 의 슬로건을 내건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켰고 어두운 쇄국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들은 철저한 서구화만이 강대국이 될 수 있는 길이라 믿었고, 탈 아시아론 을 주장하며 중국전통의 유학 문화를 맹비난하였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일본은 그후 신분사회가 천황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일한 신분으로 바뀌게 되었다. 신분과 지위의 고하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이때에 조선은 끊임없는 당파싸움으로 유교를 정리한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아직도 낡은 사상에 싸여 나름의 방법과 위안을 찾는 것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실학이 발생하면서 새로운 사상이 펼쳐지기 시작하였다.서구식 가치가 인류의 생존을 보장해줄 것이라 믿었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서서히 동양적 가치에 눈을 돌리고 있기도 하다.유교국가들의 개인주의에 대한 거부, 부드러운 권위주의, 근면, 검소와 같은 덕목, 가족간의 결속, 교육열, 노동력, 위계질서 등 유교적 원리가 경제발전을 위한 아시아적 가치는 긍정적 측면으로 분석된다.독일 마인츠대의 만프레드 믈스 교수는 전통없는 세게문화란 있을 수 없다. 고 말하는 한편 한국의 진정한 발전은 보편적 세계문화와 특수한 한국문화의 조화에 있다. 고 단언하면서, 전통문화가 없는 미국식 세계화에 대한 경계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서구식 가치는 이제 더 이상 인류의 생존을 보장해 줄 수 없다. 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믈스 교수의 주장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가 전통 문화를 제대로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될 것임을 깨닫게 된다.ⅳ) 여성의 위치유교문화의 커다란 폐해중 하나는 여성의 위치를 왜곡시킴으로 인한 남성의 위치까지의 왜곡이다. 사람들의 의식에 암암리에 새겨지게 된 가부장적 사회질서는 현모양처의 전형적 한국의 여인상을 만들어 내었고, 여성의 사회 진출에 방해가 되었으며, 이러한 여성들 스스로 자신을 집안에 가두는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집안에서조차 여성의 위치는 극히 보조적이라는 것을 제사나 집안의 큰 일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또한 여성을 한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돈과 권력이면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 상품으로서 가치를 메기는 병폐적인 현상까지도 생겨나게 되었다.이것은 남자, 여자 의 종적 질서에 의한 폐해로서 이러한 여성에 대한 억압은 여성에게뿐만 아니라 남성 스스로에게도 위치의 왜곡을 안겨주었다. 예를 들어 남성은 슬플 때 울지 못하게 한다든지, 남아는 어릴적부터 씩씩하고 용감하기를 요구받는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여성에 대한 고정된 사고방식은 그에 따른 남성에 대한 고정된 사고방식으로 이어졌으며, 잘못된 가부장적 사회질서는 현대의 우울한 가장을 만드는데 한몫 하게 된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남녀차별의 주범이라고 만은 볼 수 없는 이유도 있다.남성중심의 사회를 만들게 되었던 요인으로는 과거 농경중심의 사회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남성의 힘을 필요로 하였던 농경사회에서는 힘이 센 남자의 역할이 중요하였고, 여자의 역할은 남성에 비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거나 존귀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종족을 보존해나갈 수 있는 것에서도 어느 한쪽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니 이렇듯 동양의 관습 속에서는 남녀의 위치는 각각의 역할이 보장되는 관계이지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관계가 아니다.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각기 나름대로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우월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각각의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인류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누가 누구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이 있어서는 안 된다.또한 농경사회에서 발생한 분업의 원칙이 여지껏 이어져 산업사회에서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그 동안 잘못된 인식의 뿌리를 제거하고 산업사회에 맞는 남녀의 구별을 해야 한다.이제 일에 있어서는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사라졌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모순을 타파하는 데 남녀가 모두 앞장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