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을 읽고』-이미 난장이였던 나를 발견하며…-학 번 : 2000117439이 름 : 전 민 구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을 어렵게 찾아내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인지 며칠 전만 해도 모두 빌려가서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말이다. 처음 이 책을 대하며 왜 난쟁이가 아니고 난장이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난 이글에 등장하는 난장이가 나의 삶으로 넘어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되는 뫼비우스의 띠에서 처럼…….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고통이며 진실이다. 아이러니 하게 한쪽 면만을 지니게 되는 뫼비우스의 띠. 절망과 고통이 쾌락이 되는 모순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에 실린 12편의 작품이 발표된 시기는 박정희 정권이 주도하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표면적인 성과를 거두어 유례없는 경제 성장을 이룬 시기였다. 그러나 성장의 이면에서는 동시에 이농의 물결과 두터운 도시빈민충의 형성,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양적확대와 계급간 갈등의 첨예화라는 산업사회의 어두운 측면 역시 차츰 뚜렷해지고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출간된 이 책은 산업사회의 계층갈등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집으로 호평받지는 않았을까?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이 대목에서 꽃을 던지는 영희의 행동이 영호의 꿈속에서인지 실제의 그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가운데 '팬지꽃과 폐수', '귀여운 소녀와 꽃을 버리는 행위'의 대조적인 이미지를 통해 강렬한 시적 호소력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작은 부분에서도 문학적 요소를 드러내는 이 작품을 누가 호평하지 않겠는가?당신은 절망을 아는가? 글 속의 영수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사랑을 주려 하였으나, 나는 지금 그 사랑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외친다. "나는 지금껏 태어나서 그 어떤 선택도 해보지 못했다." 진실은 썩었다고 영수는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모순이다. 그 믿음이 진실한 길이 아니란 말인가. 모든 것이 아이러니에 빠졌다. 영희의 생각은 어찌 보면 영수의 생각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녀도 결국엔 다시 그들의 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뫼비우스의 띠의 겉면으로 나간다 해도 그것을 다시 안으로 우릴 이끌기에. "아버지, 전 질경이가 싫어요. 질경이는 밟혀야 살아 나는 풀 이예요. 그런 끈질긴 삶에 대한 집착이 두려워요." 영희가 두려워하는 질경이는 영희다. 그 자신이며, 오빠이며 엄마이며 난장이 아버지이다.난장이가 꿈꾼 세상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그 세계는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그 세계의 지배계층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난장이는 말했었다. 하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또 그들은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는 것을 보자. 난장이는 자살을 하는 것으로 현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뫼비우스의 띠를 이야기해 주던 지섭은 그의 말에 따라 어쩌면 정말로 외계인들과 함께 다른 혹성으로 가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난장이와 지섭은 어쩌면 함께 여행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정 그들이 원하던 일탈이 현실이 되어 뫼비우스의 띠를 벗어났다. 그러나 그러한 글을 읽은 우리에겐 안타까움만이 남을 뿐이다. 이렇게 밖엔 꿈꾸는 세상이 다가올 수 없다는 것인가?변두리 생활로 전전하고, 삶의 절망 끝에 공장 굴뚝 위에서 달나라 를 향해 종이 비행기를 날리고 작은 쇠공을 쏘아 올리다 추락사하는 난장이 아버지와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어렵게 가계를 꾸려 나가는 어머니, 공장을 전전하다가 노동 운동에 뛰어든 큰아들 영수, 노동자로써 은강 전기 회사에서 연마 일을 하는 둘째 아들 영호, 그리고 온갖 궂은 직업을 경험하는 딸 영희로 구성되는, 난장이 일가의 삶의 문제들을 전혀 낙원도 아니고 행복도 없는 낙원구 행복동 을 바탕으로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