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개요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교수·학습하는 일과 그 과정.교육의 양태는 시대나 장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어느 경우에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활동이다.교육의 개념교육은 관점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이해되는데, 크게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① 한국의 교육학자인 정범모(鄭範謨)의 〈교육과 교육학〉에서 제시된 교육의 공학적 개념으로, 교육을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하나의 활동이 교육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그 활동이 의도하는 인간행동의 변화가 실제로 관찰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교육에는 공학과 공통된 요소가 있다. 공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 또는 임무가 우리가 바라는 변화를 일으키는 데 있으므로 공학의 핵심개념은 '의도적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교육도 이와 마찬가지로 교육이 행해지는 곳에는 반드시 어떤 종류의 것이든 결과를 이루기 위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② R. S. 피터즈의 〈윤리학과 교육 Ethics and Education〉에 제시된 교육의 성년식개념(成年式槪念)으로, 교육은 가치있는 활동들 또는 사고와 행동의 양식으로 사람을 움직이되 교육의 개념에 논리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3가지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제시된 3가지 기준은 첫째, 교육은 가치있는 것을 전달함으로써 그것에 헌신하는 사람을 만든다는 규범적 기준, 둘째, 교육은 지식과 이해, 지적 안목을 길러주는 일이며 이런 것들이 무기력한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인지적 기준, 셋째, 교육은 교육받는 사람의 의식과 자발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 있어 몇 가지 전달과정은 교육의 과정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과정적 기준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교육'이라는 용어에는 인간이 오랫동안 끊임없이 해오던 활동의 의미, 또는 그 활동을 하는 동안에 사람들이 틀림없이 했을 것으로 보이는 그런 생각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교육이라는 용어의 역사는 곧 교육을 하면서 살아온 인간의 삶의 역사라 하겠다. 지적 유산을 물려받았거나 문명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지식이라는 형식을 사용하고 전수하는 것이다. 교육은 이러한 지식의 형식 또는 문명된 삶의 형식에 사람들을 입문시킴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문명사회의 성숙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③ E. 뒤르켐의 〈교육과 사회학 Education and Sociology〉에 제시된 교육의 사회화개념으로, 교육을 어린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체계적 사회화라고 정의했다. 여기서의 사회화란 이기적·반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이 집단적 의식을 내면화함으로써 사회적 존재로 변화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은 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존속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조건을 마련하는 수단이며,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출생할 때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닌 전혀 다른 존재로 변형 또는 창조되는 길이다. 뒤르켐에 의하면 교육은 하나인 동시에 여러 개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한 사회가 존속하려면 그 성원들 사이에 어느 정도의 동질성이 유지되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에는 각각 다른 행동양식과 정신적 자질을 요구하는 수많은 이질적인 집단들이 있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려면 이러한 이질성과 동질성을 동시에 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교육은 별개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과정 속에 서로 다른 측면을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중 어느 하나에 작용하는 것은 다른 하나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교육의 구조학습은 배울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의 발견에서부터 시작된다. 학습의 대상이 배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자각하게 되면 학생의 내면에는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자발적 욕구가 생기게 되며, 이 욕구는 그를 학습과정으로 인도하게 된다. 이러한 학습욕구는 학습에의 몰입과 연습의 반복이라는 학습과정의 첫번째 단계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움의 세계에서의 깨달음이란 쉽게 얻어지지 않거나 실패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좌절의 극복이라는 학습과정의 2번째 단계가 시작된다. 이 단계에서는 실패원인을 스스로 찾거나 교사의 도움을 통해 잘못을 고침으로써, 학생은 좌절에의 굴복이나 학습으로부터의 이탈이라는 상태에 빠지지 않게 된다. 좌절을 극복해낸 학생은 전보다 더 강한 학습욕구를 갖고 학습과정의 3번째 단계에 들어선다. 여기서 학생은 배우는 일에 최우선의 가치를 부여하고, 그 일과 양립할 수 없거나 방해가 되는 다른 일들은 기꺼이 포기하고 학습에만 집중하게 된다. 학습에서 오는 실패와 좌절 등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를 갖고 학습에만 집중하게 될 때, 학생은 자신의 수준이 향상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이 때 학습의 독특한 가치를 실제로 체험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한 수준의 학습이 끝나게 된다. 그러나 학습에 있어 완전히 끝나는 수준이란 없다. 학습은 인간사에 있어 끝없이 계속되는 활동이다. 교육은 학습을 통해 가치있는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을 때, 이를 아직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시작된다. 학습을 통해 남을 가르칠 만한 수준에 오르게 되고 가르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면, 이는 실천적인 교수행위로 표출된다. 교사와 학생 간에는 수준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양자의 관계는 구조적으로 전혀 다른 의미와 사고의 체계를 지니고 있음을 전제한다. 교수과정은 학생의 수준을 가늠하는 첫번째 단계와 그 수준으로 내려가는 2번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교사는 자신이 처음 그 수준을 배울 당시에 느꼈던 경이로움을 지니고 가르치는 일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교수과정의 3번째 단계이다. 교육의 기준에서 보면 학습과정에서의 체험이 결과의 성취보다 중요하다. 교수는 학습의 체험을 보장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 교사는 인내를 가지고 학생을 대해야 한다. 교수의 결과 학생이 깨달음을 얻게 되었을 때 교사는 자신의 교수활동의 가치를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수준의 교수과정은 학생이 교사의 수준에 이를 때까지 계속될 수도 있다.교육의 기능이돈희(李敦熙)의 〈교육철학개론〉에 따르면 교육의 기능은 본질적 기능과 수단적 기능으로 나눌 수 있다. ① 교육의 본질적 기능은 교육과 인간변화의 관계처럼 교육이라는 활동이 논리적 조건으로 포함하는 기능이다. J.듀이, R.S.피터즈 등은 교육은 다른 무엇의 수단이기 이전에 그 자체의 목적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교육에 의한 지식이나 규범의 획득은 다른 무엇의 수단적 행위라고 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일로서 그 자체가 가치있는 일이다. 공자가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기쁘지 않은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한 말은 이러한 배움의 욕구를 나타낸 것이다. 이렇듯 인간에게는 배움과 깨달음의 욕구가 있으며, 이러한 욕구의 충족은 그 자체로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거나 자신의 정체(正體)와 인격을 형성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따라서 교육은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들을 통합하여 그의 정체와 인격을 특정짓게 하는 본연의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② 교육의 수단적 기능은 교육과 경제성장의 관계처럼 교육이라는 활동의 의미 속에 내포되어 있지는 않으나 교육이 수단이 되어 일어나는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이다. 이것은 교육의 규범적 개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과정에서 교육을 다른 행위와 관련시킬 때 성립되는 개념이다. 교육의 필연적 기능이라기보다는 우연적 기능으로, 교육을 생리적·경제적·정서적·사회적·지적·심미적·도덕적·종교적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할 때 성립된다. 교육의 본질적 기능의 중요성을 1차적으로 내세우는 교육관에서는 수단적 기능이 교육의 본질을 왜곡시킨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교육 특히 현대사회의 교육은 다른 사회적 과정과의 관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수단적 기능의 가치를 외면할 수는 없다.교육의 내용교육의 내용으로서의 교과목은 본래 정규 학교교육에서 학생들이 이수해야 하는 기본적인 학습의 과정을 영역에 따라 조직해 놓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과목은 학생들이 학습활동을 할 때 기억하고 응용하고 비판하는 대상이 되는 지식·규범의 조직체이거나, 어떤 기능이나 기술을 익히기 위해 연습하고 실습하는 데 지켜야 하는 규칙이나 지침이다. 따라서 교과목은 지식·규범·원리 등을 어떤 기준에 의해 분류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각 영역에서 학습자가 실제로 경험해야 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은 그릇과 같은 것이다. 이돈희는 〈교육철학개론〉에서 교육내용을 이론(인지적 내용)과 비이론(실천적 내용)으로 나누었다. 첫째, 이론은 언어나 기호에 의해서 표현되며 암기·이해 등 인지적 행위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이다. 이론이 진술들의 체계라면 그것은 어떤 방식의 사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사고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 교육에 있어 이론은 주입될 내용이 아니라 새로운 이론의 추구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기 위한 사고의 능력, 즉 지력(智力)을 개발하는 데 동원되는 내용이다. 지력은 공허한 것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며, 어떤 대상과 더불어 작동한다. 둘째, 비이론은 모방·숙달·느낌 등 실천적 행위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이다. 인간의 사고와 지력이 반드시 이론에만 관계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생활은 언어·기호·이론의 필요없이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사건과 사실을 내용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간의 사고 역시 그러한 것들과 함께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지력이 실제의 장면에서도 작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언어·기호·이론의 매체없이 행해지는 사고는 객관적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교실의 상황에서와 같이 말로 가르치거나 배우기가 어렵다. 이러한 사고가 가져오는 방법들은 실천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비이론적인 것들이다.
● 관념론(idealism)1) 관념론(idealism)이론적이건 실천적이건, 관념 또는 관념적인 것을 실재적 또는 물질적인 것보다 우선으로 보는 입장. 실재론 또는 유물론에 대립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드물게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처럼, 어떤 종류의 관념을 정신과 개체를 초월한 참다운 실재로 보는 입장을 관념론이라고도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중세철학에서의 용법에 따라 실재론이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반적으로 관념론이란, 외계 또는 물질적 세계의 실재에 대한 근세 이래의 인식론적 문제에 관한 입장을 나타내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며, 이에는 다음과 같은 입장들이 있다. ① 외계 또는 물질적 세계의 존재를 사람이 이에 대해서 가지는 관념으로 환원시켜 개인의 정신과 이를 통괄하는 정신으로서의 신에 대해서만 실재성을 인정하는 주관적 관념론이며, G.버클리의 입장이 대표적이다. ② 외계는 인간 주관의 아프리오리적(a priori 的) 인식의 여러 형식에 따라 구성되며, 그러한 입장에서는 객관적 타당성을 가진 ‘현상(現象)’이라고 보고, 이 현상의 배후에 참다운 실재로서의 ‘물자체(物自體)’를 상정하면서 그 구체적 인식은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한다고 하는 I.칸트의 비판적 또는 초월론적 관념론이다. ③ 외계에 대하여 그 자체로서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점에서는 전술한 두 경우와 같지만, 이를 어떤 주관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객관적 관념 또는 정신의 전개라고 보는 절대적 관념론인데, 곧 G.W.F.헤겔의 입장이 전형적인 것이다.이상의 어느 형의 관념론에서나, 외적(外的) 실재에 대한 내적(內的) 관념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은 인식의 객관성의 기초를 다지는 데 있어 상대주의(相對主義)에 빠질 위험이 있는 반면에, 실천적 사상으로서는 인간 주체의 자발성·자율·자유를 존중하는 태도를 낳는 결과가 된다. 유럽어의 관념론이 동시에 이상주의를 의미하는 것도 이 때문이며, 관념론과 종교와의 친근도 이와 같은 성격의 결과로서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관념론은 극단에 흐르면 현실 인간과 근대사회로 전환되는 태동을 겪는 때였다. 30년 전쟁 이후, 시대의 흐름에 뒤졌던 독일에서도 내면적·사상적인 영역에서 대규모로, 또한 근원적으로 근대적인 인간존재에 대한 반성과 그 구조의 정착이 행하여졌는데 그것이 바로 독일 관념론이었다. 한편 관념론은 이상주의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는데, 사상 영역에서 근대적 인간의 이상이 이상의 이면(裏面)에 내재된 관념성·추상성을 노출시켰다는 점에서 독일 관념론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위대함과 동시에 한계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독일 관념론의 시발점인 I.칸트는 계몽시대의 표어였던 ‘이성’에 대하여 전면적인 반성과 비판을 가하였다. I.뉴턴으로 대표되는 근대의 수학적 자연과학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밝히고, 이론이성(理論理性)으로는 신(神)·자유·영세(永世) 등 종래의 형이상학의 과제를 결정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또한 칸트는 그것의 최종적인 해결을 근대적인 자율적 인격에서 나오는 자유로운 실천영역에서 구하면서, 근대적 이성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그 기초적인 구조를 명백하게 하였다. 칸트 철학으로써는 이론과 실천의 세계가 충분히 통일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피히테는 통일적 원리로서 ‘자아’를 내세웠고, 또 셸링은 일종의 무한한 신적(神的)·창조적 원리로서의 ‘자연’에 의거하였다. ‘자아’이든 ‘자연’이든 간에 여기에는 선구자인 프랑스의 J.J.루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한한 것에 대한 낭만적 동경이 내포되어 있는데, 칸트의 유한적 이성의 입장은 버렸다. 헤겔은 이러한 영향을 받아 역사·자연·사회 등을 비롯하여 유형이든 무형이든 일체의 사상(事象)을 무한한 정신의 변증법적인 자기전개와 자기실현의 과정이라고 보는 이론 체계를 수립하였다. 이와 같이 독일 관념론은 칸트의 이원론적 입장을 넘어서서 일원론적인 통일적 체계를 수립하기 위해 각기 다른 입장에서 계속적으로 시도되었으며, 헤겔에 이르러는 극에 달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 관념론이 너무 대담하게 이성주의적 확립하였다. 그 영향은 여러 가지 형태로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으며, 근세 철학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마구(馬具) 제조업자인 아버지와 경건하고 신앙심 두터운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루터교 목사가 운영하던 경건주의학교에 입학하여 8년 6개월 동안 라틴어 교육을 받은 후 고향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또 모교의 교수로 일생을 마쳤다. 스코틀랜드에서 이민해 온 변경(邊境)의 소시민 가정에서 장성한 칸트는 프리드리히 대왕 시대의 계몽적인 시민육성책의 혜택도 받을 수 있어 지리적·역사적 조건이 그의 철학으로 하여금 독일적 특수성을 떠나 참다운 ‘세계시민적’인 철학이 되게 하였다. 대학 재학 중에는 당시의 신사상이었던 뉴턴역학에 특히 관심을 두었다. 이 방면에 대한 연구는 대학 졸업 후 10년이 지나 모교의 강사직을 얻은 1755년에 《천계(天界)의 일반자연사와 이론:Allgemeine Naturgeschichte und Theorie des Himmels》으로 결실을 보았다. 이 저작에서 그는 뉴턴역학의 모든 원리를 확대 적용하여 우주의 발생을 역학적(力學的)으로 해명하려고 하였는데, 후일 ‘칸트-라플라스의 성운설(星雲說)’로 널리 알려지게 된 획기적인 업적을 수립하였다. I.뉴턴의 방법의 철저한 적용이라는 이 대담한 시도는 목적론적 세계관에의 귀의(歸依)와 표리일체를 이루며 그것의 바탕 위에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는 일면을 지닌다. 여기의 내포되는 모순이 의식에 떠오른다면 그것은 커다란 위기에 봉착함을 뜻할 것이다. 이 위기에서 칸트를 구한 것은 J.J.루소이다. 그는 칸트로 하여금 문명에 침식되지 않은 소박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눈뜨게 하고, 여기에다 그 후의 모든 사상적 노력의 숨은 기초를 뿌리박게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뉴턴, 루소를 두 개의 기둥으로 삼고 D.흄을 부정적 매개체로 하여 중세 이후의 전통적 형이상학을 그 밑뿌리까지 파고들어 전면적 재편성을 시도함으로써 비판철학을 탄생시켰다. 그는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 Kritik der en Vernunft》(88)에서 칸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율적 인간의 도덕을 논하고, 실천의 장(場)에서의 인간의 구조에 불가결한 ‘요청(要請)’이라는 형태로 신(神)·영세(永世) 등의 전통적 형이상학의 내실을 재흥시켜 그것이 새롭게 인간학적 철학에서 점유할 위치를 지적하였다. 종교를 도덕의 바탕 위에 두는 이 구상(構想)은 그 후의 《종교론》(93)에서 다시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이상 두 가지 비판서로 명백하게 된 인식과 실천이라는 두 개의 장면을 매개하고 인간의 삶이 영위되는 장(場)의 구조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새로운 인간학적 철학을 종결짓고자 구상된 것이 제3의 비판서인 《판단력비판(判斷力批判):Kritik der Urteilskraft》(90)이다. 여기서 칸트는 미(美)와 유기체(有機體)의 인식이라는 장면의 분석을 통하여 목적론적 인식의 구조를 명백히 하고, 또한 목적론과 기계론의 관계라는, 일생의 과제이며 동시에 세기적 과제에 비판적 해결을 부여하여 스스로의 철학적 노력을 결말지은 것이다. 이상 3권의 비판서에 의하여 그 토대가 놓여진, 비판철학 사상과 밀접히 관련하여, 또는 그 위에 기초한 사고(思考)를 전개한 기타의 주요 저서로는 《순수이성비판》의 해설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프롤레고메나:Prolegomena》(83), 《실천이성비판》에 앞서 비판적 논리학의 기본구상을 기술한 《도덕형이상학원론(道德形而上學原論):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85), 이것에 기초한 법철학·도덕철학의 구체적 체계를 전개한 《도덕형이상학:Metaphysik der Sitten》(97), 그 자매편으로 자연철학의 체계를 전개한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원리:Metaphysische Anfangsgr웨de der Naturwissenschaft》(86)가 있다. 또 오랜 기간의 강의를 정리하여 출판한 《인간학》(98) 《자연지리학》(1802)은 칸트의 폭넓은 실제적 지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이다. 칸트의 철학 비판철학(critical philosophy)《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에 나타난 I.칸트의 비판주의 입장. 즉, 독단론이나 회의론에 빠지는 것을 피하고 이성(理性)의 자기인식을 규명하는 것이 비판주의의 입장으로, 그에 의하면 비판이란 책이나 체계의 비판이 아니라, 일체의 경험에서 독립하여 얻어지는 인식에 관한 이성 능력에 대한 비판이라고 하였다. 19세기 후반 O.리프만의 이른바 ‘칸트로 돌아가라’를 표방한 신(新)칸트 학파는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이 입장을 계승하였다.5)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5.19∼1814.1.27)독일의 철학자. 독일 관념론의 대표자의 한 사람이다. 작센주 라메나우 출생. 가난한 삼베직인의 아들로 태어나 예나대학 신학과에 입학하였다. 그 후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전학하였고, 졸업 후 가정교사 시절에 저술한 《종교와 이신론(理神論)에 관한 아포리즘》(1790)은 B.스피노자의 결정론의 영향을 받았으나, 1791년에 칸트 철학을 알게 됨에 따라, 특히 그 실천이성의 자율(自律)과 자유(自由) 사상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 후 쾨니히스베르크로 I.칸트를 찾아 그의 주선으로 《모든 계시(啓示)의 비판 시도》(92)를 익명으로 출판하였다. 이것은 처음에 칸트의 저서로 세인들이 알고 있었으나, 칸트 자신의 정정과 천거에 의해 피히테의 명성은 널리 알려졌다. 92년에 예나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93년 한(Johaanna Hahn)과 결혼하고 97년에 ‘지식학(知識學:Wissenschaftslehre)’에 대해서 몇 가지 중요한 논고를 발표하였다. 98년 《철학잡지》에 포르베르크의 논문에 서문으로 발표한 《신의 세계지배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 근거에 관하여》라는 논문이 무신론이라는 의혹을 받아, 유명한 무신론 논쟁을 야기시켰으며, 결국 다음해 예나대학을 물러났다. 그 후 베를린에서 슐레겔 형제를 비롯하여 낭만파 사람들과 교유하였고, 사상적으로는 신비적·종교적 색채를 더해 갔으나, 동시에 시국(時局) 정치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