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인교육의 발전방향목 차서론 3▣ 성인교육의 필요성3본론4▣ 학교 교육과 성인교육의 차이점41)자발성42)비제도화43)경험관계성44)목적지향성45)참여성56)자각적 자발성5▣ 성인교육의 발전방향5결론6Ⅰ. 서 론▣ 성인교육의 필요성현대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두 개의 큰 축에 의해설명되어질 수 있다.첫째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A.토플러가 말한 ‘지식과 정보의 사회’이다. 그는, 일 만년 동안 농업사회인 ‘제 1의 물결’을 지나, 300년 동안 산업사회인 ‘제 2의 물결’을 경험하였고, 앞으로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에 의해 ‘제 3의 물결’인 지식과 정보의 사회를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현재 우리는 20여년 전 토플러의 예언대로 사회 전반에 걸쳐 지식과 정보에 의한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은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양산해 냈고, 이러한 과학 지식은 사회 각 분야의 첨단기계화와 디지털화를 낳았다. 의학분야의 지식 증가는 평균수명의 연장과 인구의 증가를 이뤄냈고, 이로 인해 인간 생애 주기에 대한 인식은 변화되었다. 산업분야의 기계화와 디지털화는 직업의 구조적 변동을 가져왔고, 이는 직업의 전문화, 세분화, 다양화,탈숙련화, 직장 이동의 증가, 핵가족화 등을 야기시겼다. 또한 첨단기계사용으로 인해 1인당 생산량은 증가했고, 반대로 노동에 필요한 수요는 감소했다. 그러면서 인간은 점점 더 많은 소외를 경험하게 되었다.둘째는, 18세기 후반 일어난 프랑스 시민혁명이다. 시민혁명은 우리에게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안겨주었다. 시민혁명으로 얻어 낸 자유와 다양성은대중의 의식 수준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었다. 대중은 그들의 문화를만들어내고, 여성들은 사회로 진출했다.그러나 이러한 자유와 다양성은 과거 사회에서 선천적?자연적으로 주어지던 권위와 안정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현대 사회에서 각 개인은 전통에 의해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찾아야 했다. 곧 ‘나를 만든다는 것’과 ‘내 삶의 방식은 내가 선택한다’는 큰명제에 따라서 자율적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것이다.(앤토니 기든스, 현대성과자아정체성) 이것은 현대 사회를 사는 개인들에게 가치관의 혼재와 자아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결과로 다가왔다.이렇게 우리는 변화가 다양한 지식사회와 자율성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한 사회의 교육은 그 사회의 구조적 특성과 문화적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구조와 문화의 변화가 다양한 사회라면 이것은 평생교육으로써 성인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과학지식의 발달과 직업 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기술과 기능을 요구하게 되었고, 민주사회의 도래는 성숙한 민주시민 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세계화 시대의 도래는 국제사회에서 능동적인 대처능력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Ⅱ. 본론▣ 학교교육과 성인교육의 차이점(1)자발성학교교육은 의무성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성인교육은 자발성에 바탕을 둔다.즉 성인들은 아동?청소년교육과 같이 강제적이거나 의무적 특성이 아닌학습하고자 하는것을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하는 자기동기적(self-motivated)?자기계획적(self-designed) 자기주도적(self-directed) 의 주체적 입장에서 어떤 구체적인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학습이다.(2)비제도화성인교육은 학습자인 성인이 학습목표, 개발, 주제선정, 학습방법들을 결정하는데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지만 학교교육은 그들의 교육 목표와 교육 방법 그리고그 수단 이 제도화된 형식기관에 속한 자격을 갖춘 교사에 의해 일방적 방식으로 배우게 된다.하지만 성인교육은 학습목표를 성취하기위한 환경과 자원만을 제공받을 뿐이다.(3)경험관계성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사회적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 사회적 관계속에서 여러 정보를 습득하고 경험을 통한 학습과 교육학습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내적?외적 형태를 만들어 간다. 이때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에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경험은 무의식의 영역 안으로 잠재화되거나 의식 속에서 잊혀 지지 않고 계속 끊임없이 존재하여 그와 흡사한 환경이나 상황 조건이 주어졌을 때 부정적영향을 미치게 할 것이다.그러므로 일부 성인학습자가 학교 재학시절에 성적으로 인한 부정적인 경험을하고 영향을 받고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성인교육자는 학습자의 과거 부정적 경험의 영향으로 인하여 현 교육의 학습과제 성취하는 데 있어 방해받지않도록 ,성인학습자의 다양한 경험과 관련시켜 수업을 설계하여야 하는 것이다.(4)목적지향성성인학습자의 목적에는 목적지향(goal oriented)?활동지향(activity oriented)?학습지향(learning oriented)등 세 가지 종류가 있다①목적지향적 학습자: 특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매우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학습참여.②활동지향적 학습자: 학습주제에 관계없이 학습경험에 참여③학습지향적 학습자: 학습활동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학습(5)참여성학교 교육은 학습과제, 성취 수단 및 방법 등에 대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않기 때문에 수동적이고 보편적이며 획일화된 반면 성인들은 자신의 학습목표를구체화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자유의지를 표현하고 참여할 기회를 가지려한다. 성인학습자들은 자기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목적과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의식을 가지고 학습상황에 참여한다.(6)자각적 자발성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자기도야성을 전제로 해야하는데 학교교육과 성인교육의 자기도야성에는 차이가 있다. 학교교육의 경우에는 자연적 자발성에 바탕을 두지만 ,성인교육의 경우에는 자각적 자발성에 바탕을 둔다.성인교육은 자유로운 이성의지를 기초로 하는 교육이다. 즉,성인교육은 자각적자발성에 기초한 자기도야인 동시에 자유로운 이성의지에 의한 교육이다.▣ 성인교육의 발전방향21세를 지향하는 성인교육학습 체제의 비전으로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려진 '열린 교육사회, 평생학습사회'의 건설이 요구된다. 이는 성인교육학습 사회의 목표를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것이다. 하나는'열린 학습체제'를 지향한다는것이며,다른 하나는 '수요자 중
제목: 미술감상과 비평담당교수 : 임 지 향 교수님과 목 명 : 미술감상과 비평학 과 : 미술치료학과학 번 : 70505184이 름 : 김 기 혁제 출 일 : 06. 09. 20. 수.1) 작품설명 및 감상자 자신의 개인적 느낌■ 작 품 명 : 온일 溫日■ 제작연대 : 1930년대 중반■ 제작배경제10회 조선미전에서 과 를 출품하여 대구 중심가의 우체국을 배경으로 그린 이 특선을 수상하자 이인성을 화가로 키우자는 여론이 지역사회에 형성되고 당시 고미술 수집 및 연구가로 유명했던 경북여고 교장 시라가 주키치의 후원으로 연말경 일본으로 유학길에 오름. 일본 유학중 일본 도쿄의 오오사마 상회 크레용 회사에 입사하여 낮에는 사환으로 일하고 밤에는 태평양 미술학교 야간부에 나가 공부하면서그린 작품.■ 작가의 표현의도작가는 본 작품을 남국의 정원을 연살시킬 만큼 이국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또한 그림에서 인물이 화면의 중심이 아니라 부차적인 중요성을 갖게 함으로써 정원의싱그러운 꽃과 초목들의 은밀한 대화를 느끼도록 표현 하였습니다.또한 당시 제전에서는 지나치게 실험적이거나 또는 보수적이지 않으면서 선과 색채를 장식적인 감성으로 처리한 작품들이 입선되고 있었는데 작가역시 이 작품의 주제나 기법 면에서 그러한 경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신 인상주의적 분할터치가 화면에 골고루 사용되어 매우 장식적인 효과를 내면서도 빛의 순간적인 변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에 대한 개인적 느낌유학당시 일하던 회사의 사장이 그의 재능을 아끼어 일을 시키지 않고 그림을 그리게 화실을 마련해주고 많은 배려를 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한 사장댁이나 다른 부유한 저택을많이 보았는지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의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화려하고 호화롭다는느낌을 개인적으로 받는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국적인 느낌이 들면서 객관적이기 보다는 주관적인 관점으로 사물을 보고 그림을 그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본다. 이러한 화려하고 호화로운 듯 하 면서도 왠지 모를 신비감 때문에 내가 이 작품을개인적으로 좋아 하는게 아닐까한다.2) 화가 이인성의 일대기 및 개인적 느낌■ 이인성 일대기 ( 1912~1930 )1912 년 (1세)-8 월 28일 대구시 북내정 16번지에서 부 이해영과 모 이금옥의 4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 본적은 대구시 태평로 3가 56번지)1922 년 (11세)-3 월, 뒤늦게 수창공립보통학교에 입학, 6년 동안 도화 과목에 성적이 뛰어남- 보통학교 3학년 때 담임인 이영희 선생에게 자질을 인정받아 화가가 되기를 결심1927 년 (16세)-교회가 있는 곳으로 사생을 나갔다가 대구 미술계의 선배들로 구성된 0 과회 회원들(서동진, 박명조, 배명학, 최화수 등)을 알게되고 회원으로 참여1928 년 (17세)-3 월 25일, 수창보교를 13회로 졸업하였으나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서동진이 경영하는 일종의 미술종합센터인 대구미술사에 들어가 수채화를 배움-10 월, 이라는 수채화를 세계아동예술전람회에 출품하여 특선 수상1929 년 (18세)-8 월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이하 조선미전)에 계성중학교 정문을 그린을 출품하여첫 입선- 일본 경찰 고등계의 감시대상이었던 0과회 해체됨1930 년 (19세)-2 월 26일, 동아일보에 친구 윤복진의 동요 을 그린 시화가 실림-3 월 2일, 동아일보에 윤복진의 동요 을 그린 시화 실림-5 월, 제 9회 조선미전에서 과 을 출품하여 입선- 해체된 0과회에서 순수예술론적 입장에 있던 서동진, 최화수, 박명조, 김용준, 김성암배명학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향토회 창립회원으로 제1회 향토전에서 ,등 13점출품1931 년 (20세)-5 월 제10회 조선미전에서 과 를 출품하여 대구 중심가의 우체국을배경으로 그린 이 특선을 수상하자 이인성을 화가로 키우자는 여론이 지역사회에 형성됨- 제 2회 향토회전에 출품- 고미술 수집 및 연구가로 유명했던 경북여고 교장 시라가 주키치의 후원으로 연말경, 일본으로 유학, 일본 도쿄의 오오사마 상회 크레용 회사에 입사하여 낮에는 사환으로 일하고 밤에는 그림 공부함1932 년 (21세)- 태평양미술학교에 입학, 이 무렵 오오사마 상회 사장이 마련해준 아틀리에에서석고 데생을 연마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함- 5 월, 제11회 조선미전에 출품한 는 특선을, 과은 입선,이 중 는 일본 궁내성에 매상됨- 일본 도쿄의 광풍회전에 입선- 가을, 제13회 제국 미술원전람회(약칭 제전)에 입선- 제3회 향토체전에 일본에서 그린 작품을 보냄1933 년 (22세) -일본수채화회전에 를 출품- 5 월, 제12회 조선미전에 를 과 함께 출품하여 입선하고< 초여름의 빛>으로 특선, 는 이왕가에 매상됨- 7 월 14일~19일, 대구 역전 상품진열소에서 석재 서병오 등 지역 유지의 발기로 개인전개최-10 월, 제14히 제전에 입선-11 월 11일~14일, 도양회관에서 열린 제 4회 향토회전에 출품1934 년 (23세)- 한 친구로부터 그림 공부를 하고 싶어하던 4살 연하의 김옥순을 소개받음-5 월, 제 13회 조선미전에 을 무감사로 출품하여 특선하고, 와는 입선-8 월, 방학을 맞아 귀국하여 대구에서 머물다가 더위를 피해 서울로 올라와 수채화로를 제작,이때 북한산 일대를 돌며 쓴 글과 스케치를 9월 8일부터 11일까지 3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향토를 찾아서」 라는 제목으로 연재-10 월, 제15회 제전에 수채화 입선-11 월 22일~24일, 대구 역전 상품진열관에서 열린 제5회 향토회전에 출품-12 월 17일 김옥순의 조부 얼굴을 그림1935 년 (24세)-1 월호 『신동아』에 1934년말 자신의 회화관에 대해 쓴 「조선화단의 X광선」이 실림- 제22회 일본수채화회전에 로 최고상인 일본수채화협회상을 수상- 귀국을 앞두고 동경의 오오사마 상회를 퇴사-5 월, 제14회 조선미전에 로 최고상인 창덕궁상 수상, 수채화인는 입선-6 월 7일, 김옥순과 대구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대구시 남산정 333번지 남산병원 3층에서살기 시작함-11 월 1일~5일, 이비시야 백화점 2층에서 총50점의 작품으로 작품발표전 개최,이 전시회는 일본 작가들과 함께 결성한 토요회 소품전도 병행함-11 월 7일~10일, 이비시야 백화점 2층에서 열린 제6회 향토회전에 출품1936 년 (25세)-1 월 25일~2월 11일 제 23회 일본수채화회전에 , 출품-5 월 20일, 장인 김재명이 마련해준 남산병원 3층 아틀리에에 대구 최초의 양화연구소를 개소하여 학생들을 지도하기 시작, 일본 화단에서 수채화로 유명한 카스가베타스쿠(1903-1985)가 연구소에 2 개월간 체재하면서 함께 지도를 함-5 월, 제15회 조선미전에 를 무감사로 출품하고, 으로 총독부상 수상-6 월 장녀 애향 출생, 부인 김옥순 의상 공부를 위해 다시 도쿄로 떠남- 제 1회 토요회 수채화 전람회에 을 출품-7 월 15일~20, 대구 역전 상공장려관에서 열린 남조선미술전람회에 진열 위원으로을 비롯한 수 점 출품-10 월 문전에 을 출품하여 호평 받음1937 년 (26세)-5 월, 제 16회 조선미전에서 동양화부의 김은호와 함께 서양화부의 추천작가가 되어< 한정>을 무감사 출품하고, 은 입선- 이 무렵 남정으로 이사하고 마당 한 쪽을 개조하여 순수에술 다방을 표방한 아르스(ARS)를개업-10 월 28일, 다방 아르스에 걸어놓은 100호짜리 2폭으로 된 훼손된 소동발생- 아들 영미 출생1938 년 (27세)-5 월, 제17회 조선미전에 추천작가 자격으로 미완성작 출품-11 월 3일~8일, 동아일보사 주최로 동아일보사 3층에서 개인전 개최( 수채화 20점과 유화 25점 전시)1939 년 (28세)- 윤복진의 동시에 윤태진이 곡을 붙인 동요집 『물새발자욱』(교문사 발행)의 표지화를 판화로 제작-5 월, 제18회 조선미전에 추천작품으로 을 출품하고, 은 입선-8 월 23일, 아들 영미가 뇌막염으로 사망- 제3회 신문전에 입선1940 년 (29세)-5 월, 제19회 조선미전에 과 출품-7 월 8일, 둘째 딸 귀향이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사망-10 월, 삼월관에서 심형구, 김인승과 조선미전 추천작가 3인전 개1941 년 (30세)-5 월, 제19회 조선미전에 , 을 무감사로 출품-10 월 7일~12일, 정자옥 화랑에서 개인전 개최1942 년 (31세)-5 월, 제21회 조선미전에 와 출품-5 월 29일, 부인 김옥순 병사- 남정집을 처분하고 삼덕동 한옥을 구입하여 원룸으로 개조해 아틀리에로 사용-9 월 24일~29일, 대구 공화당에서 제전 입선 10주년 개인전 개최1943 년 (32세)-3 월, 딸 애향이 보통학교에 입학-5 월, 제22회 조선미전에 과 출품1944 년 (33세)-5 월, 제23회 조선미전(마지막회)에 와 을 출품- 중매로 만난 간호사 자격증을 가진 인텔리 여성과 대구 달서동 신궁에서두번째 결혼식을 올리고 삼덕동 집에서 피로연을 함- 서울에 자주 왔다갔다 하며 상경할 결심을 함1945 년 (34세)-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4번지 11호로 이사, 이화여자중등학교(현 이화여고)신봉조 교장의 권유에 의해 미술교사로 부임하고 미술부 창설- 딸 승란 출생, 두번째 부인 가출-8 월 18일, 조선문화건설 중앙협의회 산하 조선미술건설본부 회원으로 참가-10 월 20일~30일, 덕수궁에서 조선미술건설본부가 주관한 해방기념미술전에 을 출품-10 월 15일부터 중도 좌익적 성향을 띤『자유신문』에 연재된 김남천의 소설 「1945년 8.15」의 삽화를 그리기 시작1946 년 (35세)-2 월 조선미술가동맹(위원장 김주경)에 가입하여 박진명과 함께 공동 부위원장에 피선-6 월 28일 『자유신문』에 연재소설「1945년 8.15」의 삽화를 165회로 끝냄-11 월 조선미술동맹이 조선조형에술동맹과 통합하여 조선미술동맹(위원장 윤희순)으로발족하자 오지호화 함께 공동 부위원장으로 활동1947 년 (36세) -3월, 심형구가 주임으로 있던 이화여자대학교의 서양화부에 시간강사로 출강-6 월 21일, 김하순의 장녀로 배화여전을 나온 창경과 재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