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공용화(dollarization)를 경계한다.들어가며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은 외국통화로서 자국통화의 기능 즉, 교환수단, 가치저장, 가치척도를 공식적으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외국통화가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국의 달러를 선호하기 때문에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이라고 불리운다.많은 국가들에서는 법적규제에도 불구하고 비공식적 달러라이제이션이 존재한다. 교환수단이나 가치척도로는 자국화폐를 사용하면서 가치저장으로 美 달러예금과 지폐를 보유하는 경우, 교환수단으로 자국화폐를 사용하더라도 주택이나 자동차를 구입시 달러를 사용하는 경우, 교환수단까지 달러가 자국화폐를 대처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달러라이제이션의 목적은 가장 안정된 기축통화인 미국달러를 자국통화로 도입해 외환위험을 줄이고 교역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공식적으로 달러라이제이션은 자국화폐를 발행하지 않으면서 달러를 공식적인 자국화폐로 사용하는 경우인데, 규모는 적지만 자국 鑄錢을 발행하여 통화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공식적인 달러라이제이션 제도 하에서 통화공급은 국제수지에 의하여 결정된다.중앙은행 제도 하에서 본원통화는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현금과 예금증서가 되지만 달러라이제이션 제도 하에서는 美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발행한 달러가 된다. 달러를 자국화폐로 사용하는 국가경제는 달러를 축적하기 위하여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할 필요가 없으며 유출량보다 많은 투자자금을 유입시키는 자본수지의 흑자만으로도 가능하다. 달러라이제이션 하에서는 중앙은행이 아니라 시장에 의하여 통화공급이 결정됨으로써 수요에 대한 공급이 더욱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즉, 중앙은행제도에서 본원통화의 관리에는 불태화 개입으로 인한 투기적 압력이 존재하여 왔으나 달러라이제이션 하에서는 달러보유고가 본원통화가 되므로 본원통화에 대한 수요감소가 달러보유고를 낮추게되어 자동적인 조절과정으로 연결된다.달러라이제이션 제도의 국가별 사례1)에콰도르1980년대 중반의 석유가격 폭락으로 국민소득이 50%로 줄어들었고 1983년의 엘리뇨 때문에 홍수가 일어나 농업과 어업 기반이 무너졌으며 1987년에는 대지진이 일어나 30마일의 석유 파이프 라인이 파괴되고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런 연속된 불행으로 대외 부채가 많고 화폐가치는 크게 하락하였다.1999년 3월 10일은 1927년 대공황이래 최악의 경기후퇴를 맞이하면서 국가 파산 직전의 상태였다. 같은 해 9월 26일 외채 일부에 대한 모라토리움(지불유예)선언을 하였고 2000년 1월 대통령은 수크레(에콰도르 화폐)를 포기, 달러를 공용통화로 쓰는 방식을 택하였다.국제 사회에서 신용도를 높이고, 통화가치 하락을 막고, 통화 증발로 인한 인플레이션 요인을 제거, 국제 거래시 달러와 수크레를 환전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겠다는 의도로 달러공용화를 선택하였다.마하오드, 친 IMF대통령은 IMF의 뜻을 받아들여 석유가격과 가스가격 인상, 재정적자를 줄여보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국민들의 70%이상이 절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있는 상태에서 재정적자를 줄인 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식량, 전기, 가스보조금 삭감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았다. 국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000년 3월 9일 자국 통화를 달러로 전환하였고 중앙은행은 최후의 대출 기능도 포기하였다.2)캄보디아에콰도르는 완전히 달러화 되었지만 캄보디아는 자국의 통화(리엘화)와 달러를 같이 쓰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이런 달러공용화의 방식은 완전 달러공용화에서 보여지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달러화 사용보편화 현상은 소득분배의 불균등을 심화시킨다. 캄보디아는 달러화 월급을 받는 노동자와 리엘화로 월급을 받는 노동자 등 두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달러화로 월급을 받는 계층은 중상급 정도의 소득 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리엘화로 월급을 받는 노동자는 저소득층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엘화가 평가 절하될 경우 두 계층간의 이해관계는 상이하게 작용된다.캄보디아가 달러화 유통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경제거래시 달러와 리엘화가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리엘화의 사용을 증가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리엘화의 사용을 조정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며, 오히려 두 화폐의 격차만 크게 만들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둘째, 리엘화의 사용을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해야한다.셋째로 리엘화와 달러화의 교환을 자유로이 필요한 양만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두 화폐간 태환성 보장은 리엘화 추가 발행을 통한 인플레이션 발생요인을 통제할 수 있다.3)아르헨티나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는 외채문제로 허덕이던 1980년대 이후 자유화, 개방화, 민영화, 시장경쟁원리, 작은 정부, 복지 지출 축소 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해 왔다.그러나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인플레이션 진정 등의 가시적 효과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외부문의 불균형 시정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즉, 물가안정을 위해 고정환율제도나 제한적 변동환율제도를 유지함으로써 페소화의 대달러 환율을 1대 1로 묶었지만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페소화의 고평가에 따른 경제 후유증이 심화되게 되었다.또한 재정적자 규모 역시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 기준치를 초과하고 있는데다 수출채산성마저 떨어져 아르헨티나는 사실상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게 되었다.빈털터리 국고를 넘겨받은 현 델라루아 대통령은 노조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세금인상과 공무원 봉급삭감 등의 극약처방을 내놓기도 했지만 올해만도 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적자재정을 메울 길은 없는 상태며 외채원리금 상환액도 올해 11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돼 가뜩이나 빈약한 재정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경제위기 해소책으로 등장한 것이 '달러 공용화 정책'이다.현재 아르헨티나 뿐 만 아니라 남미의 에콰도르, 중미의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 파나마에 이어 온두라스도 미국 달러화를 공용화폐로 채택하는 문제를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 달러 공용화 정책은 결코 아르헨티나를 경제위기에서 살리는 방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이다.이처럼 달러 공용화가 경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며 외국인 투자에 활기를 부여할 것이 확실하지만 달러 공용화 도입의 가장 큰 문제는 다음과 같다☞화폐발행차익화폐발행차익은 정부가 화폐발행권을 독점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이익으로 기술적으로 화폐의 액면가치에서 그 발행비용을 감한 차액으로 정의된다.아르헨티나 정부가 화폐발행권을 포기하고 미국 달러를 법정통화로 사용할 경우 이 나라의 화폐발행차익은 미국으로 이전된다.☞최종대부자중앙은행은 국내 금융기관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는 경우 긴급자금을 제공해 주는 최종대부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중앙은행이 화폐발행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그러나 달러 공용화가 도입될 경우 중앙은행은 더 이상 화폐발행권을 보유하지 못한다. 이 경우 누가 최종대부자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발생한다.☞통화정책지나친 달러 사랑이 아르헨 망친다[머니투데이] 아르헨티나는 미국과의 경제 교류 면에서 밀접도가 떨어지는 국가다. 교역 규모는 연 80억 달러로 멕시코-미국간 규모에 비해 3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을 찾는 이민자는 이탈리아나 스페인보다 적은 규모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국민은 미국보다 유럽에 더 친근함을 느낀다고 한다.그러나 '화폐'에 있어서 만큼 아르헨티나-미국간 밀월을 따라갈 국가는 흔치 않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1인당 달러 보유액 최고 국가가 바로 아르헨티나이다. TV에서는 온 종일 실시간 달러 환율을 전달하며, 길거리에서 환율을 속삭이는 행객을 쉽게 만난다. 그러나 이 같은 지나친 '달러 사랑'이 아르헨티나 경제를 파괴하는 '독약'이 되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21일 보도했다.아르헨티나는 이미 파산했다. 파산의 원인은 10여 년 간 지속된 고정 환율제 영향이 컸다. 경쟁국들의 화폐가 평가절하 될 때 아르헨티나의 페소화는 꿈쩍하지 않았다.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고 국가 산업은 피폐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부족한 재정을 빚으로 충당하다가 결국 '빚의 늪'에 빠졌다.미국 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약 250억 달러가 아르헨티나 국민의 장롱 속에 잠자고 있다. 달러에 대한 사랑은 정도를 넘어 일부 국민은 벽 속에 달러를 숨기고 봉합해 버린다. 모든 화폐를 달러로 바꿔 보유하고 있고, 이를 숨겨놓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실물 경제는 갈수록 경직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지나친 달러 사랑은 외환 시장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페소화 가치는 연 초 변동환율제가 시행된 이후 첫 열린 외환시장에서 무려 39% 급락했었다. 가치 하락은 물가인상을 부추기고 있다. 생필품 가게 등은 20~30% 값을 올렸고, 화폐 가치가 추가 하락할 때는 값을 더 올린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아르헨티나가 시행하고 있는 긴급 경제 대책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달러 매입 심리가 극에 달하며, 현 정권에 위기를 가져다 줄 것으로 염려한다.
공포영화에 대해1. 들어가며공포영화란, 관객들에게 간접적인 공포감을 전해주려고 제작되는 영화들이다. 국내의 경우 많은 영화 장르 중에서도 유독 대중적인(다양한 관객층)관심을 받지 못하고 소외 받아왔던 장르이다.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는 장르는 아니지만 그에 비해서 소수의 열광적인 팬 특히10대에서 20대 초반의 팬들을 가지고 있는 것도 공포영화이다.공포영화의 주된 내용이 사람을 살해하고 살해하는 이유 또한 그렇게 납득이 갈만한 것들이 아니라서 공포영화를 싫어하시는 사람들에게는 싸구려란 인식을 많이 비추기도 한다. 그러나 수없이 많이 제작된 공포영화들이 싸구려 주제를 가지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며 나름대로 높은 완성도와 관객들 평론가들에게 인정받는 작품들도 많은 편이다. 공포 영화 자체가 관객들에게 공포감과 서스펜스, 스릴감을 전해주기 위해서 제작이 되는 작품이라서 가급적이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다.액션영화가 많이 때려부수고 사람을 많이 죽여야만 관객들이 좋아하듯 공포 영화 역시도 잔인한 작품들이 공포영화팬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액션영화나 공포영화가 똑같지만 공포영화의 경우 액션 영화 쪽보다는 훨씬 잔인하게 죽인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사람이 죽어나가는 숫자 면에서는 액션 쪽에 비교도 안되게 많은 편이지만 욕은 공포영화가 얻어먹는 편이다.2. 한국의 공포영화한국의 공포영화들이 남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까닭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할머니 무릎 위에서 한번쯤 들었음직한 친숙한 이야기로 기억의 저편을 불러냄으로써 바로 우리 내부에 잠자고 억압된 소망들을 원귀와 별종, 시체와 이단을 통해 풀어놓기 때문인지도 모른다.프로이트식 어법을 빌리자면 현대와 같은 과잉억압의 사회에서는 정상성을 유지하려는 제도의 이면에 욕망이 억압되어 있다가 악몽을 통해 되살아난다. 공포영화의 괴물들은 이러한 악몽을 재현하는 존재이다. 괴물들은 초현실적인 악의 존재처럼 멀리서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물들은 점차 우리 자신의 내부로 들어온다.그리고 괴물의 모습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족의 모습과 흡사해진다. 비정상적인 괴물은 정상적이라고 믿는 우리들의 악몽인 것이다. 또한 가족을 골간으로 유지되는 현대사회에서 가족제도의 분열은 국가와 민족의 문제로 연결되게 마련이다. 공포영화에서 가장 끔찍한 순간은 정상적인 가족이 괴물과 대면하는 순간, 또는 정상적인 가족이 괴물로 변하는 찰나이다.3. 한국 공포영화의 내용의 특징1924년 을 필두로 한국공포영화에서 독보적인 존재는 뭐니뭐니 해도 속옷바람에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귀신들이다. , , , 등 고려시대나 이조시대쯤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들은 한결같이 사회의 지도층으로 자리잡고 있는 양반 집 내부를 무대 삼아 원한을 품고 죽은 며느리가 등장하고, 원귀로 돌아온 며느리가 남편과 시어머니를 괴롭히는 내용이다. 온갖 주술을 동원하여 가까스로 원귀를 물리치더라도 원한은 끝나지 않는다. 가문의 대는 끊어지고, 가정은 풍비박살난다. 처럼 홀로 남은 남편마저 무덤 속으로 말려들면서 가문이 완전히 공동묘지로 변하는 최악의 결말도 심심치않게 보인다. 는 이러한 이야기를 현대로 옮긴다. 여기에는 가부장제에 의해 희생된 며느리의 원한에 덧붙여 시어머니의 성적 욕망, 계층상승을 꿈꾸며 중산층 집안으로 편입하려는 며느리들의 물질적 욕망이 얽히고 설킨다.한국 공포영화의 여자 원귀들은 모두 이유 있는 귀신들이다. 대를 잇지 못한다고 하여 억울하게 독살 당하거나 가문의 정통성에 흠집을 낼 만한 불륜의 아기를 가졌다고 해서 살해당한 여성들의 원혼인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산 자와 죽은 자들간의 싸움이 여성들 사이로 한정되고 원수로 설정되는 인물의 몸을 빌려 처절한 복수를 꾀한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에 의해 암살된 며느리의 원혼은 시어머니의 몸으로 들어가고, 며느리를 살해해 가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가부장제의 사악한 고리들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에서 원귀가 씌운 시어머니가 손주들을 핥으며 잡아먹으려는 장면은 정말 충격적이다. 시어머니는 이런로서의 역할이 가장 크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신의 성적 욕망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도 하며 며느리의 원귀가 몸 속에 스며드는 분열적인 주체로 그려지는 것이다. 여성을 훔쳐보는 남성의 시선에 벌이라도 주려는 것처럼 이러한 가족 공포영화에서 남편은 헌신적이던 홀어머니가 괴물로 변하는 것을, 아이들이 납치되어 공중으로 사라지는 것을, 괴물과 맞선 새 아내가 괴물과 닮아가는 것을 꼼짝 못하고 목격하게 만든다.한국 공포영화의 또 한가지 특징은 여인들의 원혼이 과 에서처럼 고양이, 처럼 박쥐, 그리고 김기영의 에서는 은유적으로 나비 등 동물의 몸에 전이되었다가 다시 인간의 몸을 빌려 환생한다는 것이다. 나 등 천년 묵은 동물이 여인의 몸에 들어왔다가 인간으로 살아남는 것은 이러한 이야기를 뒤집어 구사한다. 속옷만 입고 머리를 푼 여자 귀신들은 동물과 내통하면서 가족제도 밖으로 밀려난 여성들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쪽진 머리가 규율에 적응하고 복종하는 의식이라면 격식을 차리는 대가집일수록 제상 음식 수만큼 여성의 속옷수도 늘어나지 않던가. 우리네 관습법은 규칙위반자들을 발가벗기고 머리 풀어서 저잣거리로 내몬다. 속옷 입고 머리 푼 원귀들은 이러한 제도에서 밀려나고 침묵 당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하지만 속옷과 풀어헤친 머리는 역으로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던 규칙과 규율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금기 없는 욕망의 힘으로 어떤 무술이나 부적도 물리치는 강력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여인의 한을 다루고 있는 한국의 공포영화는 한 맺힌 민족의 누적된 슬픔을 안으로 동여매어 미학적으로 승화시킨다는 따위의 고상한 강박관념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억압당하고 고통 당하고 출구를 찾지 못한 응어리를 미적으로 승화시킨다는 수사가 이데올로기적이고 고상한 한풀이라면 이러한 공포영화는 고통을 가하던 계급과 성만이 누릴 수 있는 풍류로 고통받는 자의 감각을 침묵시키는 ‘한의 미학’을 ‘원한의 반(反) 미학’으로 전복시킨다고 할 수 있다.4. 외국의 공포영화와 특징외국 공포영화들의 특징으로는 많은 소재가 이 많이 제작되는 곳은 미국이라 할 수 있으며 유럽의 경우에도 여러 가지 장르의 공포영화들이 제작이 되고 있다. 유럽 공포영화들의 특징은 빈약한 스토리를 가진 작품들이 많은 편이나, 이런 빈약한 스토리를 보강이라도 하듯 공포 영화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잔인한 장면들로서 단점들을 메워놓고 있는 편이다.유럽 쪽에서 제작이 되는 공포영화들은 대체적으로 가해자인 살인자의 모습을 결말부분에서나 볼 수 있는 편이며 변태적인 장면들과 성적인 면이 뒤섞인 공포 영화들이 많이 제작이 되는 것도 유럽 공포영화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공포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곳으로 국내의 공포 영화팬들이 가장 많이 대할 수 있는 작품들이 이 미국 공포영화들이다. 영화산업이 거대한 만큼 이 곳에서 만들어지는 공포영화들은 공포영화장르의 영화들이 모두 제작이 되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호러영화에도 많은 제작비를 투입한 결과 화려한 특수효과와 분장효과로써 관객들을 만족시키는 작품들이 무척 많은 편이며 다른 나라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대작 SF 공포영화들이 독점적이다시피 제작되고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하는 사례들이 많은 편이다.이외에도 뛰어난 분장효과를 필요로 하는 괴물들이 등장하는 공포 영화들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며 유럽에서 출발한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의 경우도 미국작품들이 거의 대부분이며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것들 또한 미국 공포영화의 몫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 슬래셔호러들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제작이 되는 장르로써 영화의 인기와 함께 영화 속 캐릭터들까지 독립적으로 인기를 모으며 팬클럽이 존재하는 등 국내의 천대받는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히트를 치는 작품들은 어김없이 씨리즈로 제작되기도 하는데 속편들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살인동기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편이며 무차별적인 살인을 행하기도 한다.그리고 이 살인자는 대부분이 백인 남성들로 이루어져있는 편이며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에서 망치, 도끼, 톱 등을 이용해서 살인을 저지르며 될수록 잔인한 장면으로서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전해주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의 프레디 크루거와 같은 남성적인 괴물이 여성주인공과 내통하거나 여장남자, 혹은 남장여자를 등장시키는 미국 공포영화와는 달리 한국공포영화에서 남자 원귀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여성성과 남성성 사이를 차단하는 성벽은 공포영화도 깨뜨리지 못하는 금기인가. 에서 한국 여성을 찾아 바다 건너온 드라큘라가 거의 유일무이한 남성괴물인 것 같다. 외국인이라는 단서를 달고서 말이다. '토요일 밤의 열기'의 존 트라볼타를 연상시키는 파란 눈의 서양의 드라큘라는 디스코 장에서 한국 여성들을 유혹하고 한국인 예비부부의 관계를 파경에 몰아넣는다. 주인공 한국 여성은 뱀파이어가 되고 외국인 여자 뱀파이어와 동성애적 관계를 맺음에 따라 영화는 이민족 공포증과 동성애 공포증을 교묘히 결합시킨다. B급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한 어설픔이 자아내는 웃음도 만만치 않다.5. 공포영화의 몰락1973년 가 1억 6500만달러를 벌어들이면서 공포영화는 상업적으로 큰 돈벌이가 되었다. 그 후 , 등의 걸작이 뒤를 이었고등의 시리즈 물이 양산되었다. 공포 영화는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몰락의 원인이었다. 몸집을 키우는 것과 비례하여 공포영화의 속살은 썩어 들어갔다. 싸구려 속편들은 가공할 힘을 지닌 살인마를 부활시키고 마지막에 어떻게 죽일 것인가 만이 관건이 되었다.은 살인마를 제이슨의 어머니에서 제이슨으로 교체하는 것으로 2편을 만들었고 3편에서는 죽은 줄 알았던 제이슨이 사실 혼수상태였고 영안실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처리했고 그 후부터는 초자연적 괴물로 만들어 더 이상의 고민은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초현실적인 나이트메어의 크루거는 이런 고민도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는 피와 비명이 얼룩진 축제만이 존재하게 되며 어떤 메시지 전달하지 못한 채 피의 가학만이 전부가 되어갔다. 그리하여 점차 열광적인 공포영화 매니아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관었다.
장미의 이름이 영화는 수도사인 아드소가 예전에 스승을 따라 머물렀던 수도원에서 일어났던 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시대적 배경은 1327년이고 그 수도원은 북부 이탈리아 벽지에 위치하고 있었다.아드소가 윌리엄과 함께 그 수도원에 도착한 첫날, 그는 음침한 수도원의 분위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 윌리엄은 매우 총명하며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예를 들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하는 아드소의 마음을 읽고는 그에게 화장실을 가르쳐준다. 그 수도원에는 처음 오는 건데 어떻게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는 아드소의 물음에 그는 아까 어떤 수도사가 초조한 표정으로 들어갔다가 시원해하며 나오는 걸 봤다는 말을 한다. 이처럼 눈치가 빠른 그는 창 밖으로 보이는 무덤을 보고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무덤 중 하나가 흙으로 덮여있었으며 그 위에는 까마귀가 앉아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얼마 전에 사람이 죽었다는 걸 의미한다. 죽은 사람은 아델모라는 수도사로 유머 있고 캐리커쳐에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우박이 온 다음 날 토막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원장과 나머지 수도사들은 교황의 사절이 오기 전에 그 일을 해결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들은 명석한 두뇌를 소유한 윌리엄에게 사건의 수사를 맡긴다. 사건이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이단 심문관이 그 사건을 맡게 되기 때문이다.우베르티노 신부는 윌리엄과 아드소가 속한 프란씨스코파의 지도자였다. 그는 윌리엄에게 그곳에는 악마가 있으니 떠나라고 말하지만 그리스 합리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인 윌리엄은 그것은 반 그리스도적인 근거 없는 소문이라며 그 무시한다. 사건 장소를 둘러 본 윌리엄은 아델모가 자살한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아드소는 신의 안식처인 수도원에서 자살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해 한다. 얼마 안 있어 돼지우리에서 또 한 명의 시체가 발견되는데 이번에 윌리엄은 자살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번역하는 최고의 번역승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이것이 묵시록의 예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세심하게 주위를 둘러보던 윌리엄은 눈에 난 발자국이 깊다는 걸 발견한다. 이것은 뚱뚱한 사람이 지나간 자리이거나, 아니면 또 한 사람을 짊어지고 지나간 발자국이라는 걸 눈치챈다.윌리엄과 아드소가 도서관에 갔을 때 호르세 주교가 왔다. 누군가가 웃었을 때 그는 웃음은 인간의 얼굴을 찌그러뜨려 원숭이처럼 만든다는 말을 했다. 그는 웃음을 경멸했다. 한편 윌리엄은 도서관에 책이 너무 적다는 생각을 하고 책은 아마 탑 속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마침내 탑 속에 들어간 윌리엄과 아드소는 탑 속에서 뭔가를 보고 있는 뚱뚱한 수도사를 발견한다. 인기척을 듣고 도망간 그가 있던 자리에서 윌리엄과 아드소는 쪽지를 보게 되는데 거기에는 "저속한 자들에게 결점을 즐기게 하라"는 말이 씌어 있었다. 그리고 불에 비춰보자 사수좌, 태양, 수성, 전갈좌...와 같은 글씨가 나타났다. 레몬즙으로 쓴 글씨여서 불에 비춰보니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별자리로 방향을 나타내는 것이었다.윌리엄과 헤어져서 뚱뚱한 수도사를 찾으러 다니던 아드소는 예전에 쓰레기를 줍던 여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을 나눈다. 깜빡 잠든 아드소가 깨어보니 옆에는 동물의 내장이 놓여있었다. 숙소로 돌아가서 아드소는 윌리엄에게 고해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윌리엄은 고해보다는 친구로써 말하라고 하고 사람을 사랑해 봤냐는 아드소의 물음에 사랑과 욕정을 혼동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아드소는 그녀가 행복해 지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윌리엄은 수도사의 경우에 사랑은 문제가 된다며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천주에 대한 사랑은 훌륭한 것이지만 여자는 남자의 혼을 뺐기 때문에 여자에 대한 사랑은 죽음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는 얘기를 한다. 또한 금욕 생활은 지루하기도 하지만 평온하고 태평스럽고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한다는 자신의 철학을 얘기한다.한편, 원장 신부는 조수와 말라키아를 빼고는 아무도 서고에 들어가지 말라는 엄명을 내린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라진 베링카가 묵시록의 예언대로 물에 빠져 죽은 건 아닐까, 하고 의심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물에 빠져 죽어있었고 그의 혀와 왼손에는 잉크자국이 있었다.기독교계의 최대 도서관이라는 그곳에 책이 너무 없다고 생각한 윌리엄은 마침내 숨겨진 도서관을 찾게 된다. 왜 책을 숨겨 두냐는 아드소의 물음에 그는 다른 사상이 섞여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기초가 흔들릴까봐 그랬을 거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 숨겨진 도서관에 있는 길을 미로처럼 얽혀 있었고 함정과 거울도 있었다.드디어 이단 심문관인 베르나르 드 귀가 도착했다. 그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단지 식량을 구하려던 여자를 마녀로 몰고 돌치노파의 수도승을 유혹 당한 수도승으로 몰았으며 그들이 악마의 의식을 치르려 했다고 한다. 그들이 마녀로 몰았던 여자는 바로 아드소와 사랑을 나눈 여자였다. 윌리엄도 예전에는 베르나르 드 귀와 함께 이단 심문관이었다. 성서와 어긋나는 그리스어를 번역한 사람에 대해서 베르나르 드 귀는 유죄를 주장했고, 윌리엄은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윌리엄은 투옥되어 고문을 받았다. 결국 그는 굴복했고 그 사람은 화형을 당했다.다음 날 새벽에 교황의 특사들이 도착했고 논쟁을 시작되었다. 프란시스코파는 그리스도의 청빈보다 교회 자체의 청빈을 주장하며 성직자는 재산은 내놓아 불쌍한 농민을 도와야 한다고 했고 교황 측에서는 교회에서 재산을 내놓으면 이단를 처벌할 수 없고 거대한 성당을 지을 수 없으므로 교회의 위신을 알릴 수가 없다고 말한다.베르나르 드 귀는 마녀재판을 도울 보좌관으로 원장과 윌리엄을 지목한다. 유혹 당한 수도승으로 몰린 돌치노파의 수도승은 지난 12년간 배부르게 먹고 여자를 즐기고 착취한 그들과는 달리 그들이 약탈한 것을 농민에게 돌려주었다고 말하면서 자랑스러워한다. 아드소는 제발 그녀를 구해달라고 성모마리아에게 기도한다. 결국 돌치노파의 수도승은 고문이 무서워 자백 아닌 자백을 하고 모든 것이 악마가 시킨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두 번째 책인 희극론을 금서로 지키기 위한 호르세 주교의 계략이었다. 그는 웃음은 인간의 악마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또 그러한 두려움이 없다면 신앙이 없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기득권을 보존하기 위해 희극론에 독을 발라둔 것이다. 그 책이 공개되면 세상에 두려움을 없애는 웃음이 공개되고 그러면 다시 세상은 혼돈으로 가득 찰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책을 몰래 본 사람들은 혀와 왼손에 독이 묻은 채 죽었던 것이다. 결국 호르세 주교는 도서관에 불을 지르고 책과 함께 타 죽는다. 그 책이 공개되게 하느니 차라리 그 책과 함께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수도원의 화재로 마녀재판으로 인한 화형식은 중단된다. 그곳에 몰려있던 군중들은 돌을 집어들고 베르나르 드 귀 신부에게로 몰려가고, 그는 달아난다. 군중들은 마차를 타고 도망가는 그의 마차를 붙잡아 그를 마차와 함께 낭떠러지로 밀어버린다. 한편, 윌리엄은 책이 불타는 것이 안타까워서 불길 속에서 책을 지키다가 탈출할 기회를 놓치지만, 다행히 밖으로 나온다. 이제 윌리엄과 아드소는 수도원을 떠난다. 그후 아드소는 스승 윌리엄과 헤어진다. 아드소는 자신의 스승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지혜·양심·진실이었다.
◑ 태백산맥(太白山脈)「태백산맥」의 제1부는 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는 데, 여순반란사건이 종결된 직후부터 1948년 12월 빨치산 부대가 율어 지역을 해방구로 장악하는 데에까지의 과정이 그려져 있다. 첫 장면은 정확하게 말해서 1948년 10월 24일 밤이다. 여순사건과 함께 좌익에 의해 장악되 었던 벌교가 다시 진압 세력인 군경의 수중에 들어가자, 좌익 반란군들은 산 속으로 퇴각한다. 이 때 정하섭이 상부의 명령을 받고 벌교로 잠입하게 된다. 정보 수집과 자금 조달을 위한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현씨네 제각에서 살고 있는 무당딸 소화를 이용한다. 소화는 정하섭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며 감시를 피해 정하섭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게 된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사랑이 싹튼다.불과 나흘 전만 해도 벌교는 좌익의 수중에 들어 있었지만 여수에서 국군 14연대가 반란을 일 으키자, 이를 기점으로 하여 좌익 반군들이 순천까지 그 세력을 반군에 합세하여 벌교를 장악한 것은 1948년 10월 20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흘을 견디지 못하고 군경 진압군에 의해 밀려서 벌 교를 포기하고 산 속으로 퇴각하게 된 것이다. 벌교를 장악했던 군당 위원장 염상진은 하대치, 안 창민 등과 함께 조계산으로 쫓겨 가게 되었지만 진압군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궁벽한 율어면을 점거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 지역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한 후 그곳을 해방구로 선포하고 조직과 세력을 정비하게 된다. 군경 진압군은 벌교를 장악했던 좌익 반군 세력을 몰아낸 후, 청년단의 도움으로 마을에 남아 있는 좌익 세력과 부역자들을 찾아 내기 위해 힘쓴다. 그 바람에 마을 사람들마저도 좌익과 우익 으로 서로 갈라지고 원한이 겹쳐서, 반란군과 함께 산 속으로 가 버린 입산자 가족들은 온갖 곤 욕을 치르게 된다. 벌교의 유지로서 주민들의 신망이 두터운 김범우는 무고한 사람들까지 처단되 고 고문을 당하는 등 고통을 받게 되자 희생을 줄여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김범우의 개인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총살을 당한다.벌교 지역에서는 흉흉해진 민심을 돌리고 혼란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수습위원회를 구성한 다. 그리고 일제 시대에 친일파였고 해방 직후 제헌 의회 의원이 된 최익승을 수습 위원회 대표 로 선임하게 된다.김범우는 최익승을 찾아가 읍민들의 희생을 줄이도록 호소하였으나, 오히려 좌 익을 두둔하는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구속되었다가 순천으로 송치된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야기의 줄거리를 이루는 여러 가지 삽화 가운데 많은 등장 인물들의 행 태가 소개된다. 염상진의 아우인 염상구는 청년단 감찰부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양효석, 송일석 등 우익 희생자 아들들을 모아 이른바 멸공단을 조직, 밤이면 입산자 가족들을 찾아다니며 부녀 자, 노인을 가리지 않으며 잔인한 보복을 한다. 이 과정에서 하대치의 아버지 판석 영감은 목숨을 잃는다. 정하섭이 좌익에 가담했기 때문에 좌익 세력이 벌교를 장악했을 때, 악덕 지주로 처단되지 않고 살아남았던 양조장 주인 정현동은 다시 군·경찰이 들어오자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갇힌다. 최익승은 정현동을 빼내주는 조건으로 양조장 지분 절반을 차지하고, 정현동은 벌교에 주둔한 토벌대의 후원회 회장을 맡는다. 아들 김범우가 순천경찰서로 송치되자 그의 부친 김사용은 김 씨 문중의 힘을 빌려 아들을 석방시키고 경찰서장 남인태를 다른 지역으로 전출시킨다.벌교가 수복되고 좌익 잔당이 처단되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벌교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이다. 일본인들에 의해 주도된 간척 사업으로 일찍 부터 일제 자본이 침식한 이 지역은 토지를 둘러싸고 지주와 소작농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쌓였 던 곳이다. 이러한 사회적 모순이 해방 직후 좌우익의 이념적 대립으로 치닫고 결국은 계급의 대 립과 투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국 사회의 한 단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벌 교를 장악했던 염상진을 중심으로 한 좌익 세력의 존재와 그 사회적인 실체가 드러나며, 이에 대 응하는 토착 지주와 자본가를 중심으로 하는 우익 세력이 군경의 힘을 업고 벌이는 여러 행태가 잘 그려져 있다. 이들 사이에 끼어 있는 비참한 입산자 가족들의 삶과 함께 중도적인 입장의 지 식인 김범우 등의 활동은 대립과 갈등의 사태 해결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태백산맥」의 제2부는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여순사건 이후 약 10개월에 걸쳐 일어난 사건들이 1949년 1월의 소작농 봉기를 전후로 하여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제2부 의 내용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토지의 소유와 연관된 농민들의 좌절과 분노이다.벌교 지방은 농민이 전체 주민의 8할에 해당한다. 그리고 대부분이 지주에게 목을 매달고 있는 소작농이다. 농민들은 해방된 후 토지개혁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지만, 이승만 정권이 농지개혁을 하지 못하자 불만이 상당히 높아만 간다. 북에서는 이미 농지개혁이 실시되었다는 소식까지 전해 지고 있다. 그런데 지주들은 오히려 농지 개혁 이전에 소유 농지를 처분하고자 한다. 소작인 모르 게 논을 처분한 고흥 지주 서운상은 불만을 품은 소작인 강동기가 삽으로 내리찍는 바람에 중상 을 입었고, 강동기는 그 길로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다. 반면에 서민영은 지주로서 자기 소유의 논을 모두 소작인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하여 협동농장을 운영하기도 하였고, 농지 문제의 심각성 및 농민들의 참상을 국군 벌교 지구 사령관 심재모에게 들려주어 심재모로 하여금 농민들의 농지개혁 요구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한다. 염상진 등 좌익 반란군은 율어 해방구에서 토지 개혁을 실시하여 농민의 환영을 얻고, 그들의 지원으로 자신들이 내세운 혁명 과업을 수행한다. 벌교의 농민들에게는 이러한 율어 지역의 변화가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염상진 빨치산 부대는 벌교읍을 습격하여 지주들로부터 쌀을 빼앗아 인민들에게 고루 나눠 먹도록 하기도 한다.이 같은 상황에서 사령관 심재모는 용공 협의로 서울로 압송되고 그 후임으로 백남식이라는 관 동군 출신의 친일 경력을 지닌 인물이 등장한다. 벌교 지역 주둔군 사령관으로 새로 부임한 백남 식은 하숙집 주인 과부 송씨와 그녀의 딸을 농락하고 토벌군이 철수하게 되자 송씨의 딸을 속여 끝내 결혼을 한다. 그는 송씨 재산절반을 차지하고 그 돈으로 자신의 병과를 헌병으로 바꾸어 후방 근무를 택한다. 그의 행태는 당시 부패한 군의 실상과 그 비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때 벌 교의 유지 김범우는 벌교를 떠나 서울에서 반민특위 사건이나 백범 김구 암살 사건을 맞는다. 그 리고 백범과 몽양이 이승만과 한민당을 위시한 친일 세력에 의해 암살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런데 벌교 지역에서 지주들이 소작인 모르게 자기 땅을 팔아먹거나 빼돌리는 일이 더욱 늘어 나자, 농민들은 이에 분노하여 대규모 항의 시위를 일으킨다. 지주 정현동은 멀쩡한 논에 바닷물 을 끌어들여 염전을 만들겠다고 하다가 이에 분개한 소작인의 낫에 찍혀 죽는다. 농지를 염전으 로 바꿔 놓으면 농지개혁법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오히려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런데 농지개혁법이 발표된다. 대부분의 소작농들은 토지의 무상 몰수 무상 분배가 아니라 유상 몰수 유상 분배란 것을 알고는 더욱 분노하기 시작한다. 벌교에 주둔한 군경과 지역 청년단은 사 태가 악화되자 농민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짓밟는다.「태백산맥」의 제3부는 1949년 10월부터 1950년 12월까지의 6·25전쟁의 현장과 함께 이 전쟁 의 성격을 소상하게 묘사하고 있다. 소설의 무대가 벌교 지역을 벗어나 전쟁의 현장을 따라 확대 되고 있으며, 남과 북의 상황 변화와 미국의 개입 등이 비판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6·25전쟁의 발발과 함께 벌교는 다시 염상진 등에 의해 장악되고, 좌익 세력들은 인민의 해방 을 감격스럽게 맞이한다. 그러나 경찰이 철수하기 직전에 미리 좌익 전향자들을 사살하였기 때문 에 또다시 살육의 참상을 겪는다. 당시 군부의 모습은 벌교 지역의 주둔군 사령관이었던 심재모를 통해 실감 있게 묘사되고 있다. 심재모는 용공 협의로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벌교 지역 주민들 의 진정으로 풀려나서 군에 복귀하여 태백산 지구 공비 토벌 작전에 참가하고 있던 중 6·25전쟁 을 맞는다. 그는 여러 부대를 옮겨 다니며 6·25전쟁 당시 무방비 상태로 부패와 무능에 빠져 있던 군대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피난 수도 부산의 모습도 그려진다. 민간인들을 빨갱이로 몰아 살상하는 특수대원들의 횡포는 맹목적인 이념 전쟁의 단면을 보여준다. 특히 벌교의 최익승이 부산으로 피난와서도 군대와 짜고 군수품을 빼돌려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는 장면은 반민족적인 자 본가의 행태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조 정 래 론- 태백산맥 속의 아리랑 고개를 넘어 민족의 길로1. 여는 글치욕과 억압으로 점철된 일제 하 36년이 마감하자마자 동족 상잔의 비극인 6·25 이후 우리 겨 레에게 분단이라는 이름이 남겨진 지 어느새 반세기에 이르렀다.작가는 그 불행했던 그 시기에 이 땅 위에 얼룩졌던 기억의 편린(片鱗)들을 모으고 다듬어 정 제된 언어로 생동감 있게 형상화한다. 무릇 인간의 삶을 언어로써 그려내는 '소설'이란 문학의 갈래가 지닌 사명이 그러하고, '소설가'란 일생의 업을 가진 사람들의 의무가 그러하다. 그런 면에서 살펴본다면 조정래는 '소설가'의 본업에 충실한 몇 안 되는 작가 가운데 대표격이 라 할 수 있다. 등단작품 「누명」에서부터 「청산댁」,「황토」,「20년을 비가 내린 땅」,「유형 의 땅」,「불놀이」그리고 80년대 우리 소설 가운데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태백산맥」과 근 작인 「아리랑」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추구해 온 그의 문학관은, 문학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을 여실히 증명한다.조정래는 초기부터 역사의식적인 면과 사회의식적인 면의 두 갈래 길을 작품의 주제로 삼아 줄기차게 그의 개성적 창작세계를 심화, 확대 시켜 왔다. 이러한 그의 인식은 후에 민족의식으로 일치되어 「태백산맥」과「아리랑」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토해내게 된다.그간 와 이라는 우리 겨레의 비극적인 소재를 작품으로 형상화한 작가는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친일파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고, 한 때 우리의 국시이기도 했 던 반공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실체적인 접근이라기 보다는 피상적인 접근에 머무르는 한계를 드 러냈다. 반면에 조정래는 작품에 담긴 이른바 라는 점에서 그들과 격 을 달리한다. 이러한 조정래의 문학은 크게 '한'과 '땅'이라는 단어 위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한'이란 곧 질곡의 역사 속에서 저절로 우리 한국인의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형의 결정체이며, '땅'이란 작가의 말을 빌자면, 땅은 생명성, 잉태성, 불변성, 역사성을 포괄하고 있다. 따 시기(전반기) 에 씌여진 작품들에서도 어쩔 수 없이 발견되는 체험의 흔적들은 전반기에 이루어진 그의 글쓰기 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으리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어린 시절 그가 목도한 우리 현대사의 암울한 표징(標徵)들은 한동안 그를 '야뇨증'과 '환각 증상'에 시달리게 할 정도로 참혹한 것이었 다. 아마도 그 일로 인해 그가 그 시절의 기억을 문학으로 형상화하는 일을 의식적으로 꺼렸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체험을 배제한 상황 아래서도 현대사에 관한 역사 의식과 현실 의 사회 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창작했다.반미 의식을 담은 등단작 「누명」, 「거부반응」과 「타이거 메이져」, 연좌제의 비인간적 잔 인성을 다룬「어떤 전설」, 그리고 「유형의 땅」, 「황토」, 「비탈진 음지」, 「박토의 혼」, 「청산댁」 등의 작품에서는 '땅'이라는 단어가 갖는 심상(心象)과 가족사의 비극으로 인해 맺혀 진 어머니 즉, 모성의 한(恨)이 병치되어 우리 민족의 수난과 그것을 이겨내는 끊질긴 삶의 여정 을 그려내고 있다. 반면에 「동맥」과 「빙하기」, 「이런 식이더이다」, 「마술의 손」 등의 작 품에서는 산업사회의 자기 증식과 비정함에 맞서고 있다.위와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의 조정래의 문학 탐구는 1982년 발표한 장편 『불놀이』에 이르러 역사적 주제 한가지로 편향된다. 「인간 연습」, 「인간의 문」, 「인간의 계단」, 「인간의 탑」 등 네 편의 연작 중편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작가의 말에 의하면 '기층민의 역사 참여의 정당 성과 필연성을 입증하기 위해 썼다' 한다. 하지만, '스스로 만족을 얻을 수 없었기에 총체적인 사 회 구조 속에서 그들 기층민들이 왜 역사의 격랑과 함께 불길로 일어나게 되며, 그들의 행위가 왜 역사적으로 정당하며, 어째서 그들을 역사의 중핵이며 힘이라고 부르게 되는지를 꼭 입증해 보이고자'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80년대 최고의 소설로 손꼽히는 「태백산맥」이다.조정래는 『불놀이』를 끝으로 그의 전반기 문학에 종지부를 찍고, 그것을 딛고 일'하고 있는 것이다., , , 등 4부작 총 원고지 1만 6천 5 백장으로 이루어진 「태백산맥」은 첫 연재부터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왜냐하면 분단 시대의 냉전 상황이 극한에 도달해 있던 시기에 분단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언제 떠올랐는지 모를 그믐달이 동녘 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밤마다 스스로의 몸을 조 금씩 조금씩 깎아내고 있는 그믐 달빛은 스산하게 흐렸다. 달빛은 어둠을 제대로 사르지 못했 고, 어둠은 달빛을 마음대로 물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달빛과 어둠은 서로를 반반씩 섞어 묽은 안개가 자욱이 퍼진 것 같은 미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아슴푸레함 속으로 바닷물이 살려 있는 표구와 햇솜같은 흰 꽃의 무리를 이루고 있는 갈대밭이 아득히 멀었다. 바닷가를 따라 이 어지고 있는 긴 방죽위의 길은 희끄무레한 자취를 이끌며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 끝머리에 읍 내가 잠들어 있었다. 읍내 너머의 들녘이나 동네는 켜켜이 싸인 묽은 어둠의 장막에 가려 자취 가 없었다.···( 조정래, 「태백산맥」,제1권, 《한길사》,1986, P.7 )「태맥산맥」의 서막은 벌교의 밤 풍경 묘사로 시작된다. 묽은 어둠의 장막에 가려 자취가 없어 진 벌교 - 그 어둠 속에는 수많은 죽음과 희생이 담겨 있다. 영웅적인 인물들의 좌절과 패배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멸의 결말로 드러난다. 앞으로 전개될 대서사시를 상징적인 분위기 묘사 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자락은 이른바 '여·순 반란 사건'이라 불리우는 사건이 종결되면서부터 풀어나간다. 당시 민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농투성이들과 그들을 갖은 방법으로 착취, 멸시하는 악덕 지주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철저한 이념으로 무장한 지식인들, - 비교적 선악의 구분이 확실한 구도 속에서 이야기는 이어진다.벌교 지방은 농민이 전체 주민의 8할에 해당한다. 그리고 대부분이 지주에게 목을 매달고 있는 소작농이다. 농민들은 해방 후 토지 개혁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지만, 이승만 정권이 농지 개혁을 하지 못하자 불만이 갈수로 사회주의적 혁명을 꿈꾸는 이념의 신봉자로 변모하게 된다. 반면에 그의 동생 염상구는 형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적개심으로 우익에 적극가담하여 철저하게 사회주의 사회주의자들을 백안시하고 그들의 색출과 검거에 혈안이 된다. 이들 형제의 관계는 옛 「방이 설화에서 비롯된 형제 갈등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그들의 곁에 중도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민족주의자 김범우가 있다. 그는 대립적인 두 세력 가운데 서서 그들을 매개한다. 이런 이유로「태백산맥」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킨 부분 이 바로 김범우라는 주인공의 중립적인 성격, 어떻게 보면 회색주의적인 인물의 위치이다. 김범우 에 관하여 평론가 권영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나는 이것(김범우의 사상)을 조정래의 세계관 또는 이념의 한 측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 유는 좌우익의 분열과 그 투쟁의 과정 속에서 작가는 극단을 오가는 중도적인 노선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고 있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조정래는 어느 시대에도 대립과 투쟁을 드러내는 두 진영의 어느 한편에 모든 민중이 열광적으로 지지를 보낸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민중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두 개의 진영을 오가며 이편에서 저편으로 저편에서 이편으 로 지속적으로 동요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할 뿐이다. (권영민, 앞의 책, p.141)작가의 이러한 인식을 담고 있는 「태백산맥」은 민주와 공산, 남과 북 어느 한 편도 일방적으 로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권영민 교수의 의견처럼 그저 민중의 편에 서서 그들의 질곡된 삶을 통해 역사를 복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민중 속에는 '땅'과 '한'의 인식이 서려 있음은 부연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얼마 전 반공으로 무장한 보수 우익에 의해 이적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방과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그들은 가진 자, 기득권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백산맥」이 거두고 있는 분단문학으로서의 소설적 성과는 여전히 훼손 될 수 없을물론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가 당하고, 짓밟힌 것만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비록 결과는 대체로 우리 가 패배하는 쪽으로 끝나지만, 작품 도처에서 우리가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국 화인 무궁화가 상징하듯이 '은근과 끈기'로 대표되는 우리의 민족적 특질이 작품 속에 형상화된 인물들의 질곡된 삶 속에서 배어나는 것이다.「아리랑」역시 민족주의의 테두리 아래 '땅'과 '한'이라는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한 주제를 표출 하고 있다. 우리 땅을 떠나 낯선 곳의 척박한 땅을 일구는 응어리진 한을 가슴 한 켠에 간직하고 있는 우리 겨레붙이들, 이 소설에서는 우리 민족의 애환이 극에 달했을 때 이 노래가 불려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가령, 하와이에 방영근과 함께 강제로 속아서 이민 간 주만상이 죽어 장례식을 치를 때, 송수익 주도 아래 의병 해산식을 가졌을 때, 많은 영화 관람객이 나운규가 제작한 영화 「아리랑」을 구경하면서 그리고 김제 농민들이 동척 앞에 몰려가서 소작료 인하 시위를 벌였을 때 저절로 아리랑 노랫소리가 울려 나온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아리랑」이라는 민요가 함축한 것은 바로 우리 배달겨레가 지닌 한의 승화이다.「태백산맥」이란 제목은, 지형적으로 한반도의 등뼈인 태백산맥이 실제로 그 허리를 잘림으로 써 우리 민족의 허리가 잘린 분단을 상징하고, 민족통일의 상징인 그 잘려진 라는 의미와 함께, 태백산맥의 골 깊고 산 높은 장대한 흐름은 그 모습 그대로 우리 민족 전체가 겪고 있는 분단 비극의 크기와 깊이를 상징하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반면에 「아리랑」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 제목 안에 우리 민족이 지닌 한과 그것의 승화를 내면에 드리우고 있다.그리고 「아리랑」은 해방으로 귀결된다. 대단원은 만주에 있는 조선인 부락에서 해방전야에 일본군이 다 도망가고 난 다음에 중국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한국사람들을 향해 일본놈들의 주구 라고 하면서 무조건 쳐 죽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민족간의 대규모 유혈극이 예고되고 있다. 우리 민족은「아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