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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림의 기상도 평가A+최고예요
    金 起 林 의 《氣 象 圖》Ⅰ. 序 論1930년대의 시단은 계급주의 문학에 바탕을 둔 이념시가 퇴조하는 가운데, 김영랑·정지용과 같은 시문학파 나, 김기림·김광균·이상과 같은 모더니스트 들, 그리고 서정주·유치환 등의 생명파 가 차례로 등장하여 나름대로의 독특한 시 운동을 전개하면서, 현대시의 기틀을 점진적으로 잡아나간 시기라 할 수 있다.이 시기에 가장뚜렷한 실체로 나타났던 실체의 흐름 중 하나가 바로 30년대 초 金起林을 필두로 등장한 모더니즘 운동인데, 여기서는 그의 모더니즘 시론과, 그의 첫 시집 《氣象圖》와의 영향관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Ⅱ. 本 論1. 金起林의 생애{) 김유중, 『김기림』, 문학세계사, 1996.金起林은 1908년 함경도 학성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돌림병으로 그녀의 어머니와 누이를 잃어 이것이 그에게 적지 않은 정신적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는 1921년 보성고보에 입학하여, 진학 동기생인 이상, 이헌구, 윤기정, 임화 등과 훗날 그와 문단 활동을 같이 하게된 문우들과 동교 선후배의 인연을 맺게된다. 1925년 그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데, 日本大學 문학예술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쌓게된다. 재학 중 그는 당시 일본문단에서 크게 관심을 모으고 있던 서구 모더니즘의 제 사조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30년 졸업 후 그는 귀국과 동시에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를 하면서 문필활동을 시작하기 시작한다. 1932년 그는 결혼 후 다시 창작활동에 몰두하게되는데 이 시기 그의 작품활동 영역은 시, 평론, 소설, 수필, 희곡 등 전 영역에 걸쳐 있었다. 1935년부터 를 《중앙》·《삼천리》에 연재하였고, 1936년《氣象圖》가 첫 시집으로 발간되었다.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위원장 홍명희)에 가담하게 되고, 이 무렵 그는 자신이 추구해왔던 모더니즘의 방법론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민족문화와 세계문화 건설이라는 과제에 몰두하게 된다. 1950년 6.25사변 중 북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2. 金起林의 모더니즘 詩論金起林 있지 아니하면 안된다.{) 上揭書, PP 80∼85, 재인용.라고 하면서 작자 의식 을 표방하고 主知的 詩 를 이야기하였는데, 따라서 金起林이 主知的詩라고 했을 때, 그것은 엘리어트의 主知的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主知的 詩 를 위해 金起林은 詩人이 詩의 材料 가 되는 언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 유의하였다.일찍이 나는 말한 일이 있다. 「詩는 言語의 建築이다.」 그렇다. 詩는 어디까지든지 正確하게 계산되 어 設計되고 構成되어야 한다.{) 上揭書, PP 80∼85, 재인용.여기에서 詩는 지어지는 것 이라는 태도와 詩人은 언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는 입장이 분명히 나타나게 되며, 이것이 바로 金起林의 作詩上의 태도라 할 것이다.3) 形而上學的 詩의 理念 - 全體로서의 詩1 감상주의 비판과 知性의 존중金起林은 20년대 감상주의를 표현주의 , 자연발생적 시 라고 비난하고, 이의 극복책으로 知 性 을 내세웠다. 이러한 주장은 1920년대의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의의있는 일이었다. 1920년대 는 대부분의 시들이 감상을 극복하지 못한 채 감상주의의 수준에 머물고 말았던 것도 사실이 다. 이러한 상황에서 金起林이 내세운 것은 확실히 획기적이었고 이러한 점에서 그의 詩論은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 하겠다.金起林은 감상주의의 극복과 明澄한 知性 의 입장에서 1920년대의 시만을 비판한 것이 아니 라 1930년대의 詩文學派 까지도 비난하였다. 우울한 정서의 지향이 1920년대 한국시의 일반적 인 경향이었고, 이러한 경향이 詩文學派 에 까지 남아있었던 것이다.2 기교주의·경향파 비판과 종합의 의지{) 한상규, 「김기림의 문학론과 근대성의 기획」, 『한국 현대시론사 연구』, 문학과지성사, 1998. pp146∼172.金起林은 시의 순수화 방향은 技巧主義를 동반했다 는 논거에 따라 순수시를 비판하고 시가 단순히 技巧로 그치는 것에 대하여 경계하였으며, 편향화한 순수는 결국 一面化하여 시를 일종 의 장식으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고 비판하였다. 그의 논지는 결국 技巧主義를 2 모험정신과 실험정신金起林은 모험정신과 실험정신의 강조를 통해 前時代의 문학을 그대로 답습하느 고정화된 사 상과 관념을 비판하고 있으며, 앞서 논한 바와 같이 金起林의 詩論이 자신 이전 시대의 문학에 대한 비판이었다는 점도 이러한 모험정신, 실험정신의 발로였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험 정신이나 실험정신을 강조하고 그의 말대로 낡은 것에 대한 潔癖을 보였는데, 이 낡은 것 의 범주에 과거의 모든 것을 포함시킴으로써 그는 결국 전통문화와 역사에의 관심 을 결여한 채 그의 이론을 전개하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3. 氣象圖의 구성과 특징{)박상천, 「金起林의 〈氣象圖〉硏究」,『韓國 近代詩의 批評的 省察』, 국학자료원, 1990, pp.254∼265.〈氣象圖〉는 모두 7부로 구성되어 있다. 文德守는 이 시를 다음과 같이 3단계{)문덕수, 「氣象圖의 분석」,『한국 모더니즘시 연구』, 시문학사, 1981, p.185.로 나누었다.이 長詩는 모두 7부로 되어 있다. 7부를 다시 3段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 1단은 世界의 아침 , 市民行列 ,颱風의 起寢時間 으로서 태풍이 來襲하기 이전의 情勢이고 제 2단은 자최 , 病든 風景 , 올배미의 呪文 으로서태풍이 내습한 이후의 狀況이며, 제 3단은 쇠바퀴의 노래 로서 태풍이 지나간 뒤의 場面이다.이러한 구조 분석은 일면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이 시를 4단계 구성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러한 4단계 분석의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한마디로 말하면 이 시는 2중구조를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이 시를 4단계로 나누게 되면 마지막 단계를 제외하고 4단계는 모두 2개의 部로 구성된다. 그런데 2개의 부로 구성된 각 단계마다 前部와 後部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즉 전반부는 자연 현상으로서의 태풍과 일상적인 생활의 풍경이 나타나고 후반부는 실제적인 태풍이 아닌 비유적, 상징적 태풍으로서 세계 정세의 소용돌이와 정신 세계의 혼란한 상황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2중 구조는 金起林이 이 시를 는 것이나 기독교인들의 위선에 대한 피상적 관찰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金起林의 지식수용이 책이나 보도매체 등을 통한 것이었기 때문이며, 그가 해박한 지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체험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피상적이라는 인상과 함께 감동을 유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문학은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선구자적 공로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구가들에게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일면이다.2) 태풍 발생과 활동기1부와 2부에서 나타난 불안한 상황과 태풍의 발생 요인은 3부로 이어지면서 드디어 태풍을 발생시킨다. 제 3부의 태풍의 기침시간 은 실제적인 태풍의 발생 위치로부터 시작하여 태풍 경보의 발령, 그리고 市의 게시판의 주의문으로 이어지고 있다.한 사명에로 편성된 단파·단파·장파·단파·장파·초단파·모-든·전파의·동원·(市의 게시판)〈신사들은 雨備와 現金을 휴대함이 좋을 것이다〉위의 인용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전파를 동원하여 반복함으로써 긴박감을 조성하고 있으며 단어와 단어 사이에 부호를 집어넣음으로써 마치 전파가 발생하는 것과 같은 시각적 효과를 노리는 기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적인 면에서의 성공과는 달리 市의 게시판 을 동원한 것은 필연성이 결여되어 있다. 〈氣象圖〉에서 태풍은 실제 자연 현상으로서의 태풍보다는 세계 정세의 소용돌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雨備와 現金 은 상징이 아니며,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雨備와 現金 은 3부에 나타난 자연현상으로서의 태풍의 피해를 줄이고 그 속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도의 제시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3부에서 태풍의 발생지역은 바기오의 동쪽 북위 15도 라고 했는데 이 곳은 시 전체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바기오의 동쪽 북위 15도 는 南太平洋上의 한 지점으로 자연 현상으로서의 태풍 발생 지역일 뿐 세계 정세로서의 태풍이 발생할 지역은 아닌 것이다. 3부의 〈발칸〉의 東北 , 남미의 고원 , 중앙기상대의 기사 는 모두 실제적인 태풍과 관계 있을나고 난 후의 암담한 상황이 제시되고 있다. 병든 하루의 臨終 은 오고, 붉은 香氣를 떨어버린 海棠花의 섬에서는/ 참새들의 이야기도 꺼져 버렸고/ 먼 등대부근에는/ 등불도 별들도 피지 않는 절망의 세계, 죽음의 세계가 다가오고 있다. 이 밤의 세계, 어둠의 세계에서 눈을 밝히고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은 올배미 다. 시인은 이 어둠의 세계에서 눈을 밝힌 올배미 가 되어 주문을 읊조리게 된다.제 6부는 다른 部와는 달리 나 라고 하는 1인칭 화자가 등장한다. 세계를 향해 있던 시각이 자신에게로 돌아와 밤을 지키는 올배미의 시각으로 변모하게 된다. 시선을 내부 세계로 돌린 시인은 어둠의 세계로부터 탈출할 길을 찾기 시작한다.나는 갑자기 신발을 찾아 신고도망할 자세를 갖춘다 길이 없다.그에게는 어둠의 세계에 정면으로 대결할 용기가 없었다.〈氣象圖〉라는 시 자체가 어쩌면 도망의 한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믿을 수 있는 神이나 모신 것처럼 , 信者의 숭내를 내서 무릎을 꿇어 보지만 나를 떠난 希望은 돌아오지 않고 來日이 없는 칼랜다를 쳐다보 며 절망하고 내몸에 깊이 親切한 밤 만이 깊어간다. 도망할 길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 암담한 현실 속에서 결국 조그마한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어둠에 반란하는 바다의 이미지인 것이다.바다는 다만어둠에 반란하는영원한 불평가다.바다는 자꾸만흰 이빨로 밤을 깨문다.어둠에 반란하는 실체인 바다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그러나 바다를 통해 재생의 이미지 를 암시하는 것은 필연성을 상실한 우연적이고 순간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결점으로 인하여 연구가들은 〈氣象圖〉가 內面性을 결여했다고 비판하게 된 것이다.{)일제하의 민족적 상황을 도외시한 역사의식의 결여와 신화구조의 결여에서 내면성이 깊지 못한 작 품이 되었다고 연구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당시 한국현실에 대한 외면에서 온 결과라고 할 수 있으 며 역사의식·전통의식의 결여로 말미암아 내면성의 심도가 얕은 작품이 되었다는 것이다.이렇게 암시적으로 드러나는 절망다.
    인문/어학| 2004.04.08| 12페이지| 1,000원| 조회(1,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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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교육/국문학] ○ 개화기의 우국 설화, 민요
    ○ 개화기의 우국 설화구연과 기억에 의하여 전승, 유통되는 구비문학은 문학적 전달의 원초적 형태이다. 뿐만 아니라 기록문학의 발달 이후에도 기층적인 문학의 존재방식으로서 그것이 오랜 동안 광범위한 분포를 유지하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김홍규, 「한국문학의 이해」, 민음사, 1986 p.180이러한 구비문학의 대표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설화는 조선조 후기에 이르러 새롭게 변모되고, 우국 설화로서의 특징을 갖게 된다.조선조 후기 민란이 일어날 때면 진인 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고, 민란 주동자들은 이 말로 민심을 선동하고 규합하려고 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던 항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인 출현설 이 널리 유포되었다는 사실이 그 것을 입증한다.{) 민족문학사연구소, 「민족문학사 강좌 -상-」, 창작과 비평사, 1995 p.346이렇게 항쟁의 승리를 결정적으로 이끌어줄 영웅의 출현을 고대하는 이야기인 진인출현설 은 한국의 설화에 있어 집권 세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문제를 검토하고자 할 때 만나게 되는 이야기인 아기장수 설화 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이 글에서는 아기장수 설화 의 기본 이야기와 그 설화의 변이형인 사라진 아기장수 , 그리고 진인 출현설 의 연관관계를 살펴보고 나아가 한국 설화가 봉건항쟁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1. 아기장수 설화와 진인출현설1) 아기장수 설화"어느 집에서 아들을 낳았다. 어느 장군이 와서 아이를 죽였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곡식 일정 량을 청하여 바위 밑으로 들어갔다. 장군이 잡으러 와서 아이 묻은 곳을 다그치자 죽음이 두려 운 어머니가 발설하고 말았다. 곡식이 변하여 된 군사와 말을 이끌고 막 일어서려던 장수가 죽 임을 당하고 말았다."{) 민족문학사연구소, 앞의 책, p.346."옛날 어느 곳에 한 평민이 살았는데, 산의 정기를 받아서 겨드랑이에 날개(비늘)가 있고 태 어나자 이내 날아다니고 힘도 센 장수 아들을 기적적으로 낳았다. 그런데 부모는 이 아기장수 가 크면 장차 역적이 되어 집안을 망칠 것이징조라며 부부가 의논 끝에 죽이자 고 결판을 보고, 어린 것을 볏섬이라나 멧돌로 찍어눌러 죽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모가 장 사를 찍어 죽이고 나니, 용마봉에서 용마가 나와서 날아갔다고 한다. (서울 용마봉 이야기) "{) 최래옥, 「한국구비전설의 연구」, 일조각, 1981 pp.290∼291아이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렸다는 것은 아이가 능력자임을 나타내는데 이는 봉건체제에 대한 저 항과 관계가 있다. 부모가 화를 걱정하여 아이를 죽였다는 것과 장군이 와서 아이를 죽였다는 설정 은 그 자체로 이미 봉건적 질곡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문학사연구소, 「민족문학사 강좌 -상-」, 창작과 비평사, 1995 p.346기존 체제에 반발하는 인물로서 아기장수 설화는 진인출현설과의 공통점을 갖는다. 또한 설화 속의 두 인물 모두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상을 변혁시킬 것인지 설화 안에 드러나고 있지 않다는 것도 공 통점으로 들 수 있다.(2) 둥구리 전설"한 부부가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용사라, 그래 아이를 낳으면 뭘 하나 아이가 봉사인데, 그 날이 6월이라 모를 심는데 봉사아이가 말을 타고 와 벼 폭을 잘 가지고 심는지라. 그를 보고 놀 라니 아이가 이 정도보다 더 어려운 것도 할 수 있다. 고 하니, 그러면 나의 말의 발자국 수를 아느냐? 고 하니 정확히 알아 맞춰서 사냥꾼이 졌다. 사냥꾼이 이놈이 나의 부아를 돋구는구 나. 하고 이놈을 죽이리라 생각하며, 장에 가서 콩 세 되를 볶는데 하나라도 뛰어가면 안 되고 먹 지도 말라고 하니 당신은 어떻게 해도 나를 해칠 것이요. 하고 콩을 볶았다. 볶는데 콩 하나가 튀어나가서 콩이 화살을 맞추어 떨어지고 맞추어 떨어지고 하는데 그만 그 사냥꾼이 화가 나서 화살을 쏘아서,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 아들이 죽으면서 억새풀 세 폭시를 남기라 하고, 바위를 자르면 잘라지니까 그 속에 묻어달라 하여 그대로 바위에 묻었다.10년이 흘러 사냥꾼이 생각해 보니 아이가 죽지 않은 것 같아 아이가 살던 곳에 와서 아이 가 어찌 되었느냐고력을 보여주고 세상을 흔들 인물로 여겨진다는 점 에서 진인 이야기와 연결됨을 알 수 있다. 또한 더욱 주목할 사실은 대결 의 구도가 더욱 구 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인데, 이성계(둥구리 전설에서는 사냥꾼)가 적대자로 제시되었는 바, 이는 아기장수가 조선왕조와 적대적인 위치에 놓이는 인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그리고 남에게 노출되지 않는 바위나 땅 속 같은 은밀한 장소에서 곡식알로 군사를 만들어 거 병을 도모하는데, 진인출현설에서도 진인이 은밀히 양성한 병사를 데리고 진격할 것이라는 내용 은 이야기의 핵심에 해당하므로 이 또한 공통된 것이라 할 수 있다.2) 사라진 아기장수아기장수 설화와 진인출현설 간의 관련성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아기장수 설화의 변이형 중 아기장 수가 죽지 않고 사라졌다는 것이다."겨드랑이에 날개 나나 아기장수가 자기 발로 나가면서 목적이 있어서 태어나나 내가 그냥 나가니까 언젠가 남씨 집에 빛이 나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충남 아산군 온양 수리조합 자리 남씨댁 선조){) 최래옥, 「아기장사 전설의 연구」, 한국민속학 11, 1979 p.124."겨드랑이에 날개 난 아기장수를 부모가 죽이려 하자 바위 속으로 들어간 후 안 나왔다." (전 북 익산군 함열면 울산리 장군바위)아기장수가 태어나자마자 자취를 감춘다는 점에서 이들 이야기는 아기장수가 나중에 큰일을 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큰일을 할 장수라는 것은 진인의 모습과 연결되는 것으로, 민중들 사이에서 은밀히 전파되던 사라진 아기장수 이야기가 변혁기를 맞아 진인출현설로 분출된 것이다. 실제로 홍경래란에서 그러한 전이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저의 집은 선천 수청면 안산리 깨골에 있습니다. 예전에 중형수가 처음 잉태하여 열 달 후 어느 해 정월에 괴물을 낳으니 고깃덩어리와 같았습니다. 저의 형수는 이 흉물을 낳고서 남 보 기가 부끄러워 볏짚 쌓아둔 데 두었다가 파묻었습니다. 이웃사람이 아이를 낳되 울음소리가 없 고 또한 흔적이 없음을 의심하여 말하기를 장수가 났구나. 그래서리석게도 반항하는 자가 있으면 철기 5천으로 밟아 씨도 납기지 않을 것이니 마 땅히 협조하여 거사에 동조함이 옳을 것이다.(홍경래란의 격문){) 강영수, 『한국사 이야기』, 좋은글, 2001, pp.70∼71.위 격문을 통해 우리는 진인출현설이 항쟁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 다. 진인이 철기 10만을 거느리고 진격해온다면 승리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주저말고 거사에 가담하고, 명령에 저항하지 말고 복종하라는 뜻이다. 이렇듯 진인출현설은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군 중의 불안한 마음을 단결시키는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민족문학사연구소, 앞의 책 p.348.2. 이야기 전승의 위상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통해 사라진 아기장수 이야기가 진인 출현을 열망하는 의미를 지니고 오 랜 세월을 거쳐 전승되다 민란이라는 결정적 시기를 맞아 진인출현설로 분출돼 나온 것임을 알 수 있 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 3. 우국 설화의 의의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진인 이야기에 결말은 없다. 오직 승리의 가능성을 예언하는 데서 이야기 가 끝나는데, 그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전파될 수 있었다. 이 경우 를 결말의 미비 라 하여 문학형식상의 실패라는 시각에서 평가절하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오히려 미해결의 결말을 현실적인 의미맥락이 충분히 메워주고 있으며, 그것이 미래에 대한 강한 낙관적 전 망으로 전이되는 그 자체의 독자적인 미적 구조를 올바로 짚어야 한다.실제로 홍경래란 이후 홍경래불사설 이란 것이 두루 퍼지게 된 것도 바로 그러한 사정에 근거한 다. 이렇게 아기장수 설화와 함께 진인출현설은 계속 이어져 항쟁의 도화선에 결정적으로 불을 당겼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이 비록 신비화되고 있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겸하여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바라는 민중의 염원이 그 배후에 강하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민요민요는 민간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노래로 민중들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나서 지 그리고 염원을 가장 집약적으로 그리고 발빠르게 표출하기에 적절한 형식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 다.{) 민족문학사연구소, 『민족문학사 강좌 (상)』,창작과 비평사, 1995, p342의 논지 인용작석일(昨昔日, ≒어제)에 통문(通文) 돌아금일조(今日朝, ≒오늘)에 닐붙었네일가하(一駕下, ≒멍에)에 매인 듯이호미빛은 전광(電光) 같고가요성(歌謠聲)은 뇌성(雷聲, ≒천둥소리)이라{) 위의 책, p344이 노래는 민중의 노래가 항쟁의 무기로 가능한 노래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민요의 사회, 역사적 국면의 변화에 발맞추어 일종의 참요(讖謠)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는 노래들도 있다.새야 새야 녹두새야 웃녘 아랫녘 새야전주 고부 녹두새야 함박 쪽박 열나무 후여새야 새야 녹두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靑包)장사 울고 간다새야 새야 팔왕(八王)새야 너 무엇 하러 나왔느냐솔잎 댓잎이 푸릇푸릇 하절(夏節)인가 하였더니백설이 펄펄 헛날리니 저 건너 청송녹죽(靑松綠竹)이 날 속인다{) 위의 책, p344~345녹두새 노래는 전파되는 중에 여러모로 변모했기 때문에 다른 내용의 노래들이 많음. 모든 기록들에 대해 다 알아볼 수가 없기 때문에 위의 책에 기록된 하나를 골라 논지를 전개할 것임「파랑새 노래」로 알려진 이 노래는, 동학난을 배경으로 발생한 녹두새 노래로 동학난 당시 군중심리의 일시적 흥분과 사태판단을 잘 못한 원인으로 동학난이 실패하고 말았던 당시 상황과 민중들의 심정을 잘 드러낸 노래라 할 수 있다.하지만 이 시대의 민요(民謠)가 단지 신세 한탄 정도의 성격만 지닌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봉준아 봉준아 전봉준아양에야 양철을 짊어지고놀미 갱갱이 패전(敗戰)했네개남아 개남아 진개남아수많은 군사(軍士)를 어데다 두고전주(全州)야 숲에는 유시했노{) 위의 책, p345위의 노래는 표면적으로는 전봉준과 김개남의 패배를 드러내고 있으나, 단지 패했다는 정도에 그치 지 않고, 패배한 이유에 대해서까지 되짚어 보고자 하는 내면적 의도도 담고 있는 대표적 민요라14
    인문/어학| 2004.04.09| 9페이지| 1,000원| 조회(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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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교육/국문학] <두 파산> 평가A좋아요
    두 破産Ⅰ. 단원 설정 이유「두 破産」(1949)은 염상섭의 후기작품으로서 전반기 작품에서 보이던 으로서의 대사회의식은 약화되고 범속한 일상생활에 그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던 시기의 작품으로서 같은 해에 발표된 「임종」과 함께 그의 후기 대표작으로 지적되고 있다.金東里는 이들 작품을 염상섭의 작품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했고, 趙演鉉 역시 사실주의 문학이 가질 수 있는 비교적 완성된 전형적 작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연현의 경우에는 이들 작품들이 문제의 제출에만 머물 뿐 그 해결이 없다는 점에서 비판적 자세를 취했다.이 단원에서는 작품「두 破産」을 통하여 인물의 대립 구도가 주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표현하는가와 사실주의 문학이 갖는 특징을 알아보도록 하자.Ⅱ. 학습 목표1 소설과 현실과의 관계를 안다.2 인물의 대립 구도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안다.3 사실주의 문학의 특징에 대하여 안다.4 소설의 개요를 정리하고 구성의 단계를 안다.Ⅲ. 학습 지도상의 유의점1 학생들이 작품 속에 나타난 이야기와 당시의 시대상황을 관련시켜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2 소설 내용을 충분히 이해함으로서 작품의 주제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다.3 다른 사실주의 문학을 함께 학습함으로서 사실주의 문학을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돕는다.4 소설의 구성 단계를 스스로 분석할 수 있다.Ⅳ. 학습 내용1. 작가의 생애와 그의 문학염상섭은 1897년 8월 서울에서 출생했다. 보성학교에 재학중 도일하여 교토부립중학을 졸업, 게이오대학 사학과에 입학했으나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귀국, 동아일보 기자가 되었다. 1920년 지 동인에 가담하여 문학의 길에 투신했다.염상섭의 작가생활은 20년대에 비롯하여 60년대에 이르는 40여년으로 한국 근대문학의 성립,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관한 논의는 초기의 몇몇 단편들과 30년대의 장편 「삼대」에 거의 국한되어 있다. 또 논의의 결과도 「만세전」이나 「三代」등 수편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부정적이다.염상섭의 문학은 과 이라는 두 개의 세계로 유형화가 가능하다. 이를테면 「만세전」이나 「삼대」가 전자에 해당된다면 「조그만 일」,「전화」그리고 「두 파산」을 비롯한 그의 후기 작품이 후자에 속하는 것이라 하겠다.그런데 일상적 삶의 세계를 그린 작품들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에서 논의되었으니, 이를테면 , 또는 로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그의 후기작품은 정상적이고 건전한 감각으로 현실생활을 보려는 데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의 소설에는 초기 작품과 같은 극적 사건도 강렬한 주제의식도 없다. 그의 제재는 가장 평범한 일상적 삶의 모습을 즐겨 다루고 있다. 그는 언제나 냉정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인생의 조그만 기미를 빈틈없이 포착하여 제시해 주는 데 충실함으로써 일상적 삶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고 하겠다.2. 두 파산(破産)의 줄거리해방이 되자, 정례 어머니는 별 수입도 없이 정치를 합네 하고 돌아다니는 남편을 믿고 있을 수 없게 되자 문방구 가게를 열기로 결정한다. 남편에게 졸라 집문서를 담보로 하여 은행에서 빚어내어 국민 학교 앞에 가게를 차린다. 그러나 돈이 딸려서 물건을 제대로 갖추어 놓지 못하면서 장사가 어렵게 되고, 할 수 없이 옛날 동창생인 김옥임 에게 빚을 얻어 가게를 운영한다. 그러나 새로이 시작한 남편의 자동차 사업이 실패하게 되어 옥임에게 진 빚의 이자마저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어려운 형편이 된다. 문학을 사랑하고 여성 해방 운동을 찬양하면서 꿈 많던 처녀 시절을 보낸 옥임이는 이젠 돈놀이에 몰두하여 성격 파산자로 변모, 경제적으로 파산한 정례 어머니에게 길거리에서 심한 창피를 준다.동경 유학생으로 신여성임을 부르짓던 김옥임은 도지사 대감의 후실이 되었는데, 그 남편이 지금은 중풍을 앓을 뿐더러 반민자(反民者)로 몰려 있다. 그러자 옥임은 고리 대금업에 삶의 재미를 갖게 되었고, 정례 어머니는 옥임이의 그러한 정신 파산(破産)을 한탄한다. 그러나 옥임이는 오히려 친구인 정례 어머니에게 망신을 준 것을 통쾌하게 여기면서, 젊은 남편과 장래성 있는 자녀를 둔 친구에 대한 시기심에서 나온 화풀이인 것을 자인한다.옥임이 교장에게 빚을 진게 있었는데, 정례 어머니더러 교장에게 자신이 진 빚을 대신 갚으라고 말하고, 교장은 정례 어머니를 졸라댄다. 이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정례 어머니는 문방구 가게를 처분하여 빚을 갚고는 허탈감에 앓아 눕는다. 그러나 성격이 욱한 남편은 어수룩한 자동차로 옥임이에게 사기 칠 궁리를 한다.3. 구성·발단 해방 후 정치에 뛰어든 남편 대신 살림을 위해 은행 빚을 얻어 가게를 여는 정례 모친·전개 장사가 어려워지자 옥임에게 빚을 얻어 가게를 운영함.·위기 정례 부친의 자동차 사업 실패와 이자 마저 못 갚는 어려움·절정 옥임에게 빚 때문에 망신당하는 정례 모친·결말 정례 모친이 옥임에게 가게를 뺏기고 온임의 성격 파산을 한탄※ 구성상의 특징시간적 순행 기법에 과거 회상이 삽입되어 있으나, 대체로 평면 구성이다. 내용면에서 는 정례모친과 옥임의 경제적, 정신적 파산이 병행적으로 구성되고 있다.4. 인물정례 모친 : 일본 유학을 했음. 정치를 한답시고 돌아다니는 호남형의 남편을 못 믿어 은 행빚을 내어 국민학교 앞에서 문방구 구멍가게를 차려 놓고 생계를 유지하나 장사가 어려워 옥임에게 빚을 지고 가게를 운영하나 결국 남편의 자동차 사업 실패와 친구 옥임과 교장의 수에 넘어가 친구 옥임에게 가게를 넘기고 파산 함. 작가의 삶의 양식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물질적 파산자)김옥임 : 동경 유학시절에는 신여성 운동과 자유 연애를 하던 꿈많은 여인이었으나 개인 적 욕망을 위해서 나이 많은 도지사의 후실로 해방 후에는 남편이 반민법에 몰려 재산이 몰수될 것을 알고 고리 대금으로 살 길을 찾는 시류에 편승하는 인물이 다. 정례 어머니와 대립되는 기회주의적 이기주의자로 돈에 모든 가치를 두는 근 대적 성격의 입체적 개성적 인물이다. (정신적 파산자)정례 부친 : 가난하면서도 호남으로 생활력이 없으며 부인에게 정성을 다하고 낙천적임. 새로 찾은 나라를 위해 정치 일선에 나서기도 함. 어수룩한 자동차로 옥임에 게 사기 칠 궁리를 함.옥임의 남편 : 친일파 고위 관리.교장 : 정례 어머니와 옥임이 사이에서 중간 이득을 획득하는 속물로 빚놀이란 어려운 세 상을 살기 위한 방편이며, 오히려 양심 있는 행위로 생각하는 정신적 파탄자이다.5. 두 파산의 주제「두 파산」은 난세를 살아가는 두 유형의 인물을 대립적 관계에 놓고, 그들 인물이 살아가는 양식을 사실적으로 제시해 줌으로써 삶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다시 말하면 세상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며,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은 새로운 삶을 기대할 수 있지만 정신적 파산은 비인간화를 초래함으로 속물주의에 빠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교육학| 2004.04.09| 4페이지| 1,000원| 조회(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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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교육/국문학] 김동인의 작품세계와 문학사적 의미 평가B괜찮아요
    1. 단원 설정의 이유김동인은 한국 근대소설사에 있어서 우리나라 신문학의 초창기에 최초로 순수문학을 표방하며 순수 문예활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순수문학운동의 선두 주자였다. 또한 그는 현대적인 단편 소설의 기틀을 세움에 있어서도 큰 구실을 하였다. 그럼에 볼 때, 이러한 양상이 잘 나타난 그의 초기작 는 많은 의의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수 있다.이 단원에서는 이러한 를 대상으로 인물, 배경, 사건이 주제를 어떻게 구현하는가와 단편소설로서의 특징 그리고 작가의 유미주의적 양상이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2. 학습목표1. 작가의 유미주의적 양상이 소설에 어떻게 반영됐는가를 알아본다.2. 작품의 단편소설로서의 특징에 대하여 알아본다.3. 작품의 주제 및 작중 인물, 배경, 사건등이 주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본다.3. 학습지도상의 유의점1. 형식과 화자의 양상으로 유미주의적 의식을 파악하도록 한다.2. 작품의 구성상의 특징에 관계하여 이해할수 있도록 한다.3. 주제와 요소들과의 상관관계를 알수있도록 한다.4. 김동인의 생애김동인은 1900년 10월 2일 평양부 상수리 6번지에서 3남 1녀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인 김대윤은 기독교 장로이자 대부호로 도산이라든지, 중국의 개화파 인사등을 초청하여 시국을 걱정하는 그러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의 형 김대윤은 전처의 소생으로서 동인과 17년의 나이차이가 난다고 한다. 장자를 본 후 17년만의 자식인지라 부친과 모친은 그에 대해 맹목적인 편애를 하게되고 이러한 부모의 행동으로 인해 동인은 어릴적부터버릇없으며, 비사교적이고, 사회성이 결여된 채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성격으로 자라게 된다.14세가 되던 해 동인은 성경시험의 부정행위로 학교를 자퇴하게 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동경학교에 입학한 그는 1915년 동경학원이 폐쇄됨에 따라 주요한이 다니고 있는 명치학원에 입학하게 된다. 1917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일시 귀국하였고 다음해 4월에 평양의 부호상의 딸인 김혜인과 결혼하게 된심적인 성격으로 변모시켰고 이것은 이 당시까지의 그의 작품에 그대로 묻어날 수 밖에 없었다. 문학을 자기가 지배한 자기의 세계 로 의식한 동인이 택한 문학은 결국 순문학이 될 수밖에 없었다.1921년부터 1925년까지 동인은 방탕과 낭비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인은 여자와 인생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깨닫게되고 낭비의 결과로 궁핍함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동인은 여러 가지 사업에 손을 댔으나 모두 실패하고 부인까지 도망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재정적 파탄으로 인해 그는 편협하고 오만 가득하던 성격에서 생활인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그의 변모는 그의 작품에도 반영되어 , , 등의 작품에서 삶의 모습을 진지하게 다루고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파산과 실처로 인해 작품활동을 하지 않던 동인은 1929년부터 다시 작품활동 재개를 시작한다. 동인은 김경애와 재혼을 하게된다. 그후 생활을 위해 그는 왕성한 집필활동을 시작한다. 1933년 모친의 사망으로 그는 심한 신경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고 마약 중독 증세까지 보이게 된다. 1934년에는 이광수의 문학을 공박하는 를 발표하고 1935년에는 동인지을 발간 주재하였으나 이듬해 폐간되게 된다. 1941년 천황불경죄로 3개월간 옥고를 치루고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한 동인은 1948년까지 꾸준히 집필활동을 하다가 병석에 누워 있다가 1951년 1월 5일 세상을 떠났다.5. 김동인의 작품세계와 문학사적 의미1.김동인의 작품세계{) 尹明求, 「金東仁 소설연구」, 인하대학교 출판부, 1990김동인의 작품세계는 나누어 보면 크게 단편소설, 역사소설의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단편소설동인의 단편소설로는 대표적으로 배따라기, 광화사, 광염 소나타등을 거론할 수 있다.그의 단편소설의 특징은1) 제제가 다양하다.개인의 자각에서 출발하여 인간본성의 추구 현실과 민족에 대한 인식, 절대미의 추구라는 예술적 인식에까지 폭넓은 제제를 다루고 있다.2) 제재의 다양성에 결여를 보여줌으로써 크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소설 안에는 민족 사관에 의한 정통론이 각 작품마다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민족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수립하려는 작가의 의도에 근거한 것이라 볼수 있다.2.문학사적 의의김동인은 최초로 순수문학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는 초창기 문단을 주도했던 이광수의 계몽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 문학의 예술성과 순수성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근대 문학의 확립에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또한, 김동인은 현대적인 단편소설의 확립자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김동인 이전의 작가들이나 동시대의 작가들의 단편 소설들 거의가 단순하고 짧은 서사형태에 접근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면 단편소설의 간결하고 엄격한 형상화에 성공한 작품은 김동인의 , , 등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6. 작품의 줄거리나 가 어느 화창한 봄 날 기자묘 부근을 거닐다가, 속절없이 애처롭게 들려오는 배따라 기 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취해 주인공을 찾게 된다. 소리의 주인을 찾은 나 는 사 연이 있어 보이는 그에게 얘기를 청하고 그는 얘기는 시작된다.영유 고을 가까운 어느 어촌 마을서 제일 부유한 형제가 살았다. 형은 아내와 남들이 부 러워 할만큼 금실이 좋았다. 그런 부부였기에 형은 동네 청년 누구에게나 늘 웃음을 흘 리는 그의 아내를 의심하여 몹시 학대하였을 뿐 아니라, 얼굴이 희고 늠름한 위엄을 띤, 그의 아우에게 넘치도록 친절한 그의 아내가 노상 못마땅했다. 하루는 그가 아내에게 줄 거울을 사 가지고 돌아왔는데, 때마침 아내와 아우가 쥐를 잡던 찰나였다. 옷차림과 머 리채가 흐트러진 것으로 보아 분명 못된 짓을 했다고 단정한 그는 마침내 분노가 폭발하 여 아내를 구타한다. 아내는 바다에 빠져 자결하고, 아우도 어디론지 자취를 감춘다. 자 신도 집을 떠나 아우의 자취를 찾아 방랑한다.7. 단편소설로서의 배따라기우리나라 문학사에 있어서 단편소설을 확립한 작가나 작품을 고려할 때 김동인의 배따라기를 빼 놓을수 없을 것이다.주의자이다.2배따라기를 듣고 그 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3 그 의사연4 그 의이야기에감동을받고인생의숙명적인의미를깨닫는다.1,4는 1인칭 화자 나 가 등장하는 부분이고, 2,3은「배따라기」를 부른 그 의 이야기로 나뉘어 진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액자형 구조가 아니라 이상주의자인 나라는 인물을 설정시켜 그로 하여금 지극히 정상적이고 도덕적인 사공 형제들이 비극에 부딪히게 함으로써 나의 향락은 오히려 허무로 전환되고 나라는 화자는 무지의 상태로써 벗어나 인생의 숙명에 대하여 깨닫게 되는 서사구조로 되어있는 것을 보면 외화(나가 등장하는 부분)가 내화를 위해서 있는게 아니라 오히려 내화를 통하여 외화의 나 가 변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언뜻 보아서는 나 가 등장하는 부분은 단지 도입부와 결말부의 이야기에 불과해 보이지만, 나 가 등장하는 부분과 그 가 등장하는 부분이 감정의 균형면에서 줄곧 대응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것은 그전에 보였던 단편소설들의 실패를 액자라는 방법을 통해 잘 정리함으로서 단편소설의 간결 엄격한 형상화와 인생에 대한 예각적 관찰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8. 배따라기에 나타난 유미주의김동인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추구, 작품 형식의 정교화, 교훈성의 배재와 사회성의 결여등 유미주의적 기질을 가진 작가이다. 소설 배따라기는 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미주의 계열의 작품이라 볼수 있다.화자와 구조을 통해서 본 유미주의배따라기의 유미주의 양상은 작품의 전체적인 구조와 작품속의 주인공인 그와 나의 심미적 이미지의 추적 과정 속에서 엿 볼수 있다. 작품의 구조를 5단계로 나누어 보면,1. 나와 그의 만남2. 그와 아내 사이의 아이러니3. 그와 아내, 동생의 갈등과 반전4. 그와 아우사이의 패이도스5. 그와 나의 헤어짐단락 1과 5는 이 소설의 기본 스토리가 되는 단락 2,3,4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그 액자로서의 기능을 가지는 단락이다. 단락 1은 봄날의 경관을 맞아 심미적 추적을 진전해 오던 내가 그라는 사람의 노래를 매개로 해서 두 있다.을 추적하게 된다. 이것은 단락 1에서의 심미적 추적이 그와 동질적 기능으로서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단락 5의동질적 심미적 이미지의 추적은 단락 1의 의미구조의 연속이면서 그것과 대응되는 구조인 것이다.단락 2,3,4는 이 소설의 기본 스토리이다. 단락 2에서는 그가 현실세계에서 심미적 이미지의 근원이던 아내를 혼자서 완전히 과욕과 질투에서 항상 승리자로서 그 환경을 지배하게 되는 구조의 미학이다. 19년이 지난 그에게 아내는 다시 없는 유일한 심미적 존재라는 고백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그에게 아내가 아직까지도 미적 이념 그대로의 집념이요, 상징이었음을 말한 것이다.단락 3에서는 그의 심미적 추적에서의 갈등이 최상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동시에 그가 승리자의 위치에서 몰락과 패배의 주인공으로 반전하게 되는 구조의 미학이다. 곧, 그와 아내 동생 사이의 비극적인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한편, 그를 승리자에서 패배자로 전락케 하는 반전의 기축을 보여주고 있는 구조라고 할수 있다.단락 4에서는 아내의 그 미적 이미지는 이미 죽음 뒤에 배따라기라는 노래로 재생되었음을 모르는 채 끈질긴 미의 추적만 하게된다는 구조이다. 이것은 아내가 현실적으로 사라짐으로서 시작되는 그의 새로운 추적과정을 나타내는 구조였다. 아내의 미적 이미지가 아우에게 로 옮겨 가 있으리라고 상상했던 그의 아이러니 속에서 그의 미적 이미지 추적은 바다로 간 아내에서 바다로 간 아우에게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결국, 아우를 찾으면서 결국 자신에게서 불리워 지는 노래가 아내의 미적 재생이었다는 것도 미처 깨닫지 못한다. 이 비극적 아이러니는 심미적 이미지의 추적이라는 연쇄성을 지니고 있는 의미구조로서 반복된다.9.배따라기의 주제그 는 진시황처럼 화려한 유토피아를 꿈꾸지는 않지만, 그 는 자기의 아내를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은 소박한 유토피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우와 아내에 대 한 오해와 아내의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서 처절히 깨지고 만다. 그래서 그 는 유랑생활이라는 이다.
    인문/어학| 2004.04.09| 11페이지| 1,000원| 조회(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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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교육/국문학] 홍길동전
    {『홍길동전』Ⅰ. 서론한국에서는 15세기에 훈민정음이 창안되자 비로소 한국의 국문문학을 제대로 가꿀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국문문학은 상ㆍ하층 문학담당자들의 상호 교섭과 협동이 있어서 나타난 결과로 민중을 가르치면서 다스릴 필요가 있어 훈민정음을 창제했으며, 도덕적 교화의 효과적인 방법을 국문문학에서 마련하려고 했다. 국문소설이 권선징악의 주제를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그런데 민중은 신분에 따른 차별이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고, 지배층의 특권에 반발하는 문학을 이룩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이라 할 수 있는 허균의 홍길동전이 대표적인 예이다.『홍길동전』은 허균이 창작한 최초의 국문소설로 알려져 있다. 사회 개혁가이자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으며 동시에 문인이었던 허균은 17세기 초엽에 창작한 이 작품을 통해 사회 개혁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열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허균이 자신의 정치적 동지들과 함께 반란을 꾀했다는 죄명으로 처형됨에 따라 그가 쓴 일체의 글들과 함께 은 금서로 지목되어 공개적으로 유통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몰래 전해져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왔으며, 현재 국문 고전소설 가운데서 불후의 명성을 얻고 있는 작품의 하나이다. 국문소설이 사회성을 뚜렷이 갖는 작품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은, 한국소설의 전통과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강한 사회적 관심은 고전소설에서도 물론이고, 오늘날의 한국소설의 한 주요한 전통을 이루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홍길동전』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Ⅱ. 본론1. 작가 연구허균은 선조때 당대의 명문이며 도학의 중심을 이룬 초당 허엽의 삼남으로 그의 두 형 허성, 허봉과 누이 허난설헌과 더불어 재사가정에 태어나 자를 단포, 호를 교산이라 하였다. 그는 12세때 부모를 여의고, 근조 삼당시인의 일인이면서 서류인 손곡 이달에게서 시를 배웠단. 그리고 선조 27년에 가서 문과함으로써 드디어 문장이 일세에 독점하였다. 그는 서민층 및 서자류와 친근히 사귀게 되었는데, 특히 박응서, 윗사람을 탓하고 원망한다. 그러나 이들은 원망하는 데 그칠 뿐이다. 그러므로 항민과 원민은 그렇게 두려운 존재가 못 된다. 참으로 두려운 것은 호민이다. 호민은 남모르게 딴마음을 품고 엿보다가 시기가 오면 일어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가 받는 부당한 대우와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하는 무리들이다. 호민이 반기를 들고 일어나면 원민들이 소리만 듣고도 저절로 모여들고, 항민들도 또한 살기를 구해서 따라 일어서게 된다. 진(秦)나라가 망한 것은 진승. 오광 때문이고 한나라가 어지러워진 것은 황건적이 원인이었으며, 당나라도 왕선지와 황소가 틈을 타서 난을 꾸몄는데 끝내 이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이들은 모두 호민들로서 학정의 틈을 노린 것이다. 지금 우리 조선의 경우를 보면 백성이 내는 세금의 대부분이 간사한 자에게 흩어지므로 일이 있으면 한해에 두 번도 거둔다. 그래서 백성들의 원망은 고려 때보다도 더 심하다. 그런데도 위에 있는 사람들은 태평스럽게 두려워할 줄도 모르고 "우리나라에는 호민이 없다"고 한다. 견훤. 궁예 같은 자가 나와서 난을 일으키면 백성들이 이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위에 있는 사람들은 두려운 형세를 바로 알고 정치를 바로 하여야 한다는 것이 의 요지이다.2. 『홍길동전』의 창작배경허균이 살던 시기는 조선 중기로 당쟁과 성리학의 팽배,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란의 발생, 광해군의 폭정, 이에 따른 농촌 황폐화와 가중되어가는 백성의 생활고, 신분차별 등 분열과 혼란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허균은 〈홍길동전〉이라는 작품을 어떤 의도로 창작하게 되었는지 정치·사회적 배경과 사상적 배경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1) 정치·사회적 배경 - 혼란과 모순의 시대허균(1569∼1618)이 살았던 宣祖·光海君 시절에는 당쟁으로 인한 정치인들의 반목과 갈등이 심화되어 국정의 기강이 문란해지고 여기에 임진왜란의 피해가 겹쳐 민생고는 최악의 상태였다. 또한 상류층에 있어서는 사상·출신·향별로 인한 분열이 생겨 東人과 西人몰하지 않는 날이 없다.{) 『宣祖實錄』40년 6월 갑인조, 이이화, 「허균의 생각」(뿌리깊은나무, 1980), 16쪽 재재인용또한 서얼들도 세력을 규합하여 지배층의 세력에 도전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서얼 추종자들의 동향은 서얼방한 이라는 제도적 장치에 크게 자극을 받은 때문이었다. 적서차별의 관습은 조선조 초기의 『經國大典』에 庶孼永世禁錮法 을 삽입하면서부터 문제되었다.{) 이상백,「韓國史」조선전기편, 331쪽 재인용서얼과 그 자손들, 그리고 改嫁女의 자식은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는 등 신분제약이 가해졌던 것이다. 태종 15년에 시작된 嫡庶의 차별은 왕자난 후 왕실 내에서 계승권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骨肉相殘의 참극을 막고자 하였던 것이 관료에게도 적용, 제도화되어 성종조에 이르러서는 굳어지게 되었다. 이렇게되어 庶子들은 자포자기하기도 하고 강도·반란 등의 집단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七書事件 인데 벼슬길을 열어주기를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아니하여 박응서 등 7인은 한강의 위쪽인 여강가에 머물면서 자칭 죽림칠현 이라 하고 도적질 등 반사회적 활동을 하였다. 결국 이들은 모두 역모죄로 죽임을 당했다. 이때 허균은 항상 이들과 교류하면서 庶孼들을 은근히 선동하고 격서까지 지어주었다고 하니 이 사건에 관련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이렇듯 허균이 생장한 16세기는 계급 및 적서의 차별 등으로 출가한 인재와 호걸들이 자기의 이상을 펴보지 못하고 불우한 일생을 보냈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허균이 지은〈홍길동전〉은 이렇게 민중의 힘이 대두하기 시작하는 시대적인 상황과 그의 서류들과의 친분관계로 인한 적서차별의 극복의지가 반영된 작품으로 이해된다.2) 사상적 배경 - 유·불·도 사상의 혼재조선사회의 지배이념이었던 성리학은 건국당시 도덕정치, 이상정치의 기조가 많이 변화되었다. 즉 우리나라 성리학은 중국의 그것보다 이론과 명분에만 치우치게 된 것이다. 형식적이고 공리공론과 명분론에 치우친 성리학은 당쟁 발생에까지 영향을 끼쳐 정치적 혼란에 일조하게 되어 하여 出仕의 길을 막아서 영특하고 준수한 인재들을 등용해 쓰지 못하게 하니 허균은 그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였던 것이다.이러한 의식은 2에서 보듯이〈홍길동전〉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영웅호걸의 기상과 비상한 재주를 가진 길동은 적자가 아닌 천비소생으로 태어나는데, 이는 하늘이 재능을 부여함에는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단서가 된다. 이렇게 차별없이 부여된 능력을 신분에 관계없이 등용해 쓰는 것은 3에서처럼 율도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율도국을 정벌하여 이상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길동을 보좌한 장수와 신하들은 조선에서 길동과 함께 활동한 도적의 무리였다. 그런데 길동은 율도국에서 이들을 인재로 뽑아쓰고 있으니 인재는 신분을 가려서 나는 것이 아니라는〈유재론〉의 사상을 허균은〈홍길동전〉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실천해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길동 자신도 율도국의 왕이 됨으로써 능력만 있으면 신분에 관계없이 최고 통치자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1 하늘이 재능을 부여함은 균등한데, 대대로 벼슬하던 집안과 과거 출신으로만 한정하고 있으니 항상 인재가 모자람을 애태움은 당연하리라. …… 모든 인재들이 나의 쓰임으로 되지 못할까 오히 려 염려하더라도 더러는나라 일이 구제될 지 예측하지 못한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이 그러한 길을 막고는 자탄하기를 인재가 없군, 인재가 없군. 한다.{) 허균,『惺』권 11, 문부 8,「論」,〈유재론〉재인용2 일일은 승상이 길동을 다리고 다당의 그러까 부인을 딪힝야 탄식 왈, 이 아히 비록 영웅이오나 천싶이라 무엇승 쓰리요 원통할싶 부인의 고집이여 후회맛급이로소이다.{) 완판 홍길동전, 78쪽, 재인용1의 유재론에서 허균은 우리나라는 인재의 길을 스스로 막아 놓고서 인재가 없다고 한탄만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2의 작품에서처럼 영웅호걸이 태어나도 그 출신이 천하면 나라의 인재로 쓰일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한 것이다.1 한 사내·한 아낙내가 원한을 품어도 하늘은 그들을 위해 감상하는 건데, 하물며 원망하는 남정 네·홀어미무래·창자루를 들고 따라와서 무도한 놈들을 쳐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허균,『惺』권 11, 문부 8,「論」,〈호민론〉재인용2 일일은 졔인이 니링되, 아동이 발셔 합쳔 해인사를 쳐 그 짜물을 탈췽코져 힝나, 지략이 부죡힝 여 거죠링 발치 못힝였더니. 이제 장군의 의향이 엇더힝시잇고 길동이 쇼왈, 다 장칭 발군힝라니 그딪등은 지위딪로 힝라 (중략) 죵짜의게 분부힝여 제승을 다 �� 줄잎 결박힝여 안치니, 사쥼이 황 겁힝여 아무리 힝 줄 모로다지라. (중략) 이후로 길동이 짜호링 활빈당이라 힝여 됴션 팔도로 단니 며 각읍 슈령이 불의로 짜물이 이시면 탈췽힝고, 혹지빈무의�� 짜 이시면 구졔힝며 빛셩을 침범치 아니힝고, 나라의 쇽한 짜물은 츄호도 범치 아니힝니 이러므로 졔져이 그 의췽링 항복힝더라.{) 경판 홍길동전, 32∼36쪽 재인용1의 호민론에서 보듯이 호민은 부당성을 자각하고 그 개혁의지를 숨기고 있다가 기회만 생기면 행동할 수 있는 실천력과 의지가 있기 때문에 두려운 존재인 것이다. 그리하여 허균은 한 사회나 나라의 여러 모순과 부조리와 부패 세력을 없애려면 반드시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보고 민중을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를 호민 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때에 호민이 봉기하면 원민들은 그들의 수탈에 대한 불만을 반항적 행동으로 해소하기 위해 호민에게 동조하며, 항민들은 눈앞의 이익도모를 위해 살아가는 방편으로 그들에게 협조한다. 그리하여 호민은 조직적으로 이들 원민, 항민의 세력을 규합하여 집권세력에 저항함으로써 국가 즉 왕권을 존재위기로 몰아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2의 작품에서처럼 길동은 도둑의 무리를 이끌고 해인사와 함경 감영을 탈취하고, 팔도를 횡행하면서 탐관오리들을 政治하며, 活貧을 명분으로 하여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이는 길동으로 대표되는 民의 힘을 크게 부각시킨 것으로써 천하에 두려워할 바는 오직 백성뿐 이라고 한 호민론의 사상과 통한다고 볼 수 있다.3) 富의 균등한 분배 -〈官論〉허균은〈관론〉에서 백성을 위한 정책으로써 정부 기구와
    인문/어학| 2004.04.09| 12페이지| 1,000원| 조회(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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