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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복지] 부모교육의 모든 것 평가A좋아요
    목차제 1장 부모교육이란?Ⅰ. 현대 어린이의 특성Ⅱ. 현대 부모의 특성Ⅲ. 부모 교육의 필요성 및 정의1. 부모 교육의 필요성2. 부모 교육의 정의Ⅳ. 부모교육의 발달과정1. 우리나라2. 서양제 2장 부모교육 이론들Ⅰ. 민주적 부모교육 이론Ⅱ. 인본주의 부모교육 이론Ⅲ. 부모 효율성 훈련 이론Ⅳ. 상호 교류 분석 이론Ⅴ. 행동 수정 이론Ⅵ. 부모 교육 이론의 비교제 3장 부모교육 프로그램Ⅰ. 부모 효율성 훈련-PETⅡ. 부모 효율성 위한 체계적 훈련-STEPⅢ. 교류 분석-TAⅣ. 행동 관리 프로그램Ⅴ. 한국형 부모교육 프로그램제 4장 우리나라 부모교육 프로그램의 현황Ⅰ. 부모의 역할 및 자질향상교육Ⅱ. 부모의 교육기능 강화 교육 프로그램제 5장 부모교육을 마무리하며제 1장 부모교육이란?Ⅰ. 현대 어린이의 특성현대사회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변호하는 불확실한 시대이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유연한 새 가치와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제대로 적응할 수도 없고 살아남을 수도 없다. 우리 가정에서의 자녀양육 및 교육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우리 부모세대들이 어린 시절에 부모들로부터 익혀왔던 자녀양육관, 교육관은 더 이상 오늘날의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효육적인 양육 지침이 되지 못한다. 이제 가정의 기능과 부모의 역할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부모들은 과거와 다른 현대적 발전적인 자녀양육 및 교육관을 가져야 한다. 그럼 아동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현대 어린이의 세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가정의 의식주 생활 수준의 현저한 개선으로 인해서 어린이의 발육상태가 이전에 비해 크게 양호해졌다. 그리하여 오늘날 어린이들의 몸은 많이 성숙해졌고,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어린이의 자율적 결정권이 많아졌다. 더 이상 부모는 어린이를 무조건 어린애 처럼 취급하고 다루는 것은 오늘날의 부모상이 될 수 없다.둘째, 어린이의 개방적인 자세와 태도를 들 수 있다. 과거의 어린이들이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가 수동적이었고, 부모의 말에숙명적인 길로 여겨지지 않고 성인의 다른 제반 일처럼 선택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높아져 가고 있다. 각종 피임도구의 개발, 여성의 사회참여 및 경제활동 참여의 증대, 정보화 시대에서 요구하는 고도의 전문화된 지식 습득에 따른 교육 연한의 연장 등으로 인해 부모가 된다는 것은 개인의 철학에 따른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시 말해, 부모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의 길을 택하기는 매우 어렵다. 마치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에 따른 인생 여정이 타인과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모의 길로 택한다는 것은 그러하지 않은 사람과 판이한 인생여정을 거치게 된다. 자녀에게 훌륭한 부모가 된다는 것은 훈련 또는 교육을 받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2. 부모 교육의 정의우리나라 교육학 사전에서는 부모교육을 이미 성인이 된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성인교육 으로 정의를 내니고 부모교육의 목적, 방법, 부모교육 담당 기관을 통하여 그 성격을 설명하고 있을 뿐 부모참여나 훈련, 개입 등과는 특별한 구분을 하고 있지 않다. 「교육학 용어사전」(서울대 교육연구소 편, 1981)에서는 보다 더 현대적 의미에 가까운 다음과 같은 정의를 하고 있다. 유치원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부모들에게 아동발달, 교육과정 등을 알려 주고, 가정에서의 협력을 도모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시작된 교육…, 부모로서 효율적인 양육태도 및 방법을 지니도록 교육하는 것을 일컫는다. 미첼(Mitzel, 1982)이 편집한 미국의 「교육학 백과사전」에는 협의의 부모교육 개념과 광의의 부모교육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먼저 광의의 정의를 보면, 가정이나 사회에서 보편화된 자녀양육의 가치, 기능, 기법을 전수하는 것 이라 하였고, 협의의 정의는 부모의 자녀양육 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해개발된 조직적 활동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주요한 부모교육의 내용으로 아동복지, 아동연구, 아동발달, 아동행동, 아동보호, 영양 및 건강, 정신위생, 가정관리, 가족생활 등을 포함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양육 지침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7) 1980년대의 부모교육1980년대 이후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유아 교육을 활성화하면서, 유아 교육의 질적인 향상이라는 시대적인 요청이 부모 교육 및 참여의 활성화를 도모하게 되었다.2. 서양서양에서 부모의 자녀 양육에 대한 이론이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며 다양화·체계화된 것은 20세기 후반의 일이다.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규준이나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으며 그 시대의 보편적인 문화 및 가치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다.(1) 초기의 부모교육먼 옛날에 사람들이 동굴 속에서 살 때도 여자들은 딸에게 새로 낳은 아기를 보살피는 방법을 가르쳤을 것이다. 기원전 300년에는 일찍이 플라톤은 정치의 부패와 정부에 대한 불신의 대안으로 아동의 양육과 교육이 이상사회를 건설하는 수단이라고 믿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도 아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키워야 된다고 믿었다. 이들의 생각은 1970년대 미국의 많은 개혁가들의 태도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동이 국가가 아니라 자기 가족에 의해서 키워져야 한다고주장한 점에서 플라톤과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동마다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아동에게 적합한 양육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다.그리스 로마 문명이 패망하여 문화의 중심이 중세로 옮겨간 다음 약 1000년간은 종교적인 독단이 자리를 잡았다. 암흑시대로 불리는 4세기부터 14세기까지 인간의 행동과 발달, 부모교육에 관한 모든 논의에는 성서가 바탕이 되었다.(2) 17세기의 부모교육17세기 초기에는 아동기가 일생의 독특한 독립된 한 시기로서 그 중요성이 인식되었다, 아동의 변덕스러운 요구를 만족시켜 주는 일이 너무 만연되어 있어서 철학자나 교육자들은 아동을 응석받이로 기르는 부모들에게 경고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하여 아동의 순수함은 보호하고 강화되어야 하고 아동양육과 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도록 부모들에게 강조하였다. 그리고 자녀양육에 대한 플라톤과 아이스토텔레스의는 민주적 양육태도를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아동들을 이해하고 격려 하며, 아동 스스로 행동할 수 있도록 동기를 유발시켜 주는 양육기술이 필요하다 고 보았다. 이를 위해 부모는 자녀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 상호 존중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가정에서의 사회화 과정에서 민주적인 방법을 적용하였다. 가정은 민주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장이므로 부모는 자녀를 평등한 한 개체 로 여기며, 자녀들이 자기 통제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게 하 였다.2. 양육의 원리부모들은 아동스스로가 옳지 않은 목표를 설정하지 않도록 부모-자녀간의 대화를 통하여 평등주의에 기초한 관계를 형성하도록 해야한다. 민주적인 부모-자녀관계 달성에 목적을 둔 Dreikurs의 민주적 자녀양육 원리의 내용에는 생활양식, 심리적 목표, 아동행동의 이해 그리고 바람직한 양육방법이 있다.1) 생활양식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사고와 태도, 종교 및 신체적ㆍ정신적 테두리 속에서 생활하게 된다. 부모를 통하여 자녀는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경계하면서 생활태도를 형성한다. 아동의 질 높은 생활양식의 형성을 위해서는 가족간의 사랑과 친절, 상호간의 존중 그리고 용서와 이해 등이 필수 조건이다. 아동은 부모의 행동, 신념, 태도를 통하여 세상을 배우고 보게된다. 즉, 인생에 대한 전망을 확립하게 되고 윤리적이고 과학적인 것을 기초로 한 생활양식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2) 심리적 목표심리적 목표는 아동의 성격발달에 교육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심리적 목표 설정을 위한 일반적인 원리는 다음과 같다.첫째, 질서를 존중하고 사회적 규칙을 수용한다.둘째, 오해와 갈등을 피한다.셋째, 계속적인 용기를 준다.3) 아동행동의 이해아동의 잘못된 행동의 원인에는 다섯 가지의 직접적인 목표가 있다.1 관심 모으기(Attention-getting-mechanism : A.G.M)이는 주로 어린 아동에게 생기는 관심추구 행동의 유형이나 방법이다. 관심 모으기의 목적은 자신의 행동이 부정적이라 할지라계 형 성에 효과적인 방법이다. 먼저 부모는 부모와 자녀 중 어느 한족에 문제가 있는지 를 알아낸 후에 만약 자녀에게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적극적인 방법을 사용하도록 하고 부모들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나-메세지를 사용하도록 한다.나-메세지를 활용할 때 도움될 몇 가지 주의 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너-메세지 사용을 피한다.예를 들어 자녀에게 너는 빈둥거리고 숙제는 안했구나. 라는 너 메시지보다 나는 (엄마)네가 숙제를 안 하니까 참 속상하구나. 라고 나-메세지를 사용했다면 자녀 스스로 책임을 지고 싶어하는 마음을 느끼게 하고 변하게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2 부정적 감정을 강조하지 않는다.자녀의 행동과 태도에 대하여 우선 긍정적인 느낌을 나타내는 나-메세지를 전달하 고 나중에 정직한 느낌으로 실망한 태도를 전달하도록 한다.3 훈련과정에서 부모들이 감정을 조절(control)하도록 도와준다.부모의 감정폭발은 화가 많이 났다는 표현이며 이런 경우에는 자녀에 대해 객관적 인 비판과 판단이 결여된다. 따라서 훈련과정을 통해 먼저 일차적 감정과 이차적 감정의 차이를 이해한 다음 가정에서 각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일차적 감정을 자 녀에게 전달하도록 하는 것이다.3) 무승부법Gordon은 부모-자녀관계에서 갈등해결의 새로운 방법으로서 무승부법을 제안했다. 이 방법은 부부간, 사회생활에서의 대인관계, 경영인들 사이에서 등 다양하게 사용 할 수 있는 갈등해소 방법이다. 이는 힘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해결에 사용 되는데 그 이유는 서로 힘을 사용해 보아도 아무런 득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다.4) PET 교육의 내용부모-자녀관계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승부법이 효과적인데, 무승부법 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6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제 1단계 : 욕구해결을 위한 문제 정의하기제 2단계 : 가능한 해결방법 모색하기제 3단계 : 해결방법에 대한 평가하기제 4단계 : 상호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 결정하기제 5단계 : 결정된 해결방법 실행하기제 6다.
    교육학| 2001.11.03| 35페이지| 2,500원| 조회(1,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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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테마가 있는 답사(한국문화답사)
    '우리나라 중심부에 남아있는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 서울의 정동일대를 돌아보며1. 주제 선정 절차주제 선정을 위하여 모임을 하기로 한 날, 우리는 좀 의미가 있는 문화유산을 답사해야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이런 저런 의견이 오가는 중, 문득 삼희가 아이디어를 냈다. '테마가 있는 한국 문화 유산'이라는 강의 교재대로 테마가 있는 문화유산 답사여행이 좋겠다고… 그럼 어떤 테마를 잡을까?이런 저런 의견이 오가는 중, 우리는 남이 미처 생각하지 못할 우리의 숨기고 싶은 과거 일본 식민지 시대의 우리문화 유산에 대한 것을 주제로 잡기로 결정하였다. 계속되는 일본의 망언에 대한 반기 때문일까? 과거 우리 선조들의 고통에 애끓는 애족심 때문일까?우리에겐 분명히 반일 감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거의 일로 현재의 일본을 멀리해서는 안된다는 합리적인(?) 생각에 그러한 감정을 애써 감추려고만 했지 왜 그러한 감정이 느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반일 감정에 대한 정당성(?)을 찾기 위해 우리는 직접 여전히 존재하는 일제의 모습을 답사하면서 그때의 우리 선조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동참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반일감정이 단순한 분을 넘어 (말 속에서 만이 아닌) 가슴 깊은 곳에서 샘솟는 애국 애족심으로 발전하길 원하고, 더 나아가 한국인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우리에게 심어주어 우리 인생에 커다란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우리의 문화재가 고쳐진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일제의 잔재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이 아직까지 우리에게 많이 남아 있으며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있는 지조차 모르고 있는 곳에 숨어 있음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여기에 주목하면서 주제를 잡아 나갔다. 그리하여 정해진 것이 우리의 중심부 즉, 서울에 남아있는 일본 제국주의(일제)의 잔재를 찾아 가는 것이다.마침 희은이가 서울에 일제의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 많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했다. 생각해 보니 서울역부터가 그랬다. 일제6시간 예정의 답사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정한 순서는 정동 일대의 지도를 바탕으로 해서 나온 것인데 덕수궁을 출발로 해서 돌담길을 따라 정동을 거쳐 크게 한 바퀴를 돌고 다시 덕수궁으로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사실 이것은 옛 모습의 덕수궁을 크게 한 바퀴 도는 의도였다.① 덕수궁우리가 출발지로 삼은 덕수궁은 서울시 중구 정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누구나 한번쯤은 가본 곳이며 너무나도 유명한 우리의 문화 유산이다. 원래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으로 광해군 때부터 고종 때까지 297년간 사용되다가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이 터지자마자 이 사건을 트집잡아 일제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바꾼 것이다.일제는 조선왕조를 집어삼키면서 조선의 혼을 말살하기 위해 조선 정권의 상징인 궁궐부터 무너뜨리기 시작하는데 그중 가장 피해가 컸던 고궁이 바로 덕수궁이다.덕수궁에 대해 미리 조사한 자료에서 우리가 살펴봐야 할 부분을 찾아내었는데 우선 덕수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덕수궁은 원래 월산대군의 집으로 세워졌다. 월산대군은 성종의 형으로 왕위에 오르지 못하는 대신 이 궁전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당시에 신의주로 피신 갔다 돌아온 선조의 임시 행궁으로 사용되면서 경운궁으로 이름지어졌다.덕수궁의 중건은 고종이 아관파천(1896년)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1년간 머물다가 다음해 2월20일 덕수궁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되었다. 기울어 가는 나라를 다시 세우고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시작한 경운궁 확장 공사는 그 명분에 걸맞게 전국에서 수집한 자재와 전통 건축 기술을 총동원하여 진행하였다. 중건 도중에 큰 화재를 한 번 겪었으나 뒤이어 2차 중건을 시작해 즉조당, 석어당, 준명당, 중화전, 함녕전, 영복당, 경효전 등 주요 전각의 상량식을 마쳤다. 고종은 일본의 고문 정치를 인정하는 1904년 '제1차 한일협약'과 '제2차 한일협약'을 경운궁의 수옥헌(漱玉軒)에서 체결하였는데 이곳은 고종이 헤이그 사건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곳이기도 하다. 고종은 구한말의 정동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 등 총 4 부분으로 되어 있었다. 이 지도는 우리 답사를 더 수월하게 해 주었다. 지도를 통해서 우리가 계획한 부분들을 점검하고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② 정동교회덕수궁 뒤편 사거리의 한 면에는 두 번째 답사지 인 정동교회가 있었다. 이 교회 건물은 1887년 10월 9일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에 의하여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는데,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세워 한국의 근대 교육을 창시하였고 이를 보급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교회는 근처에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있어 학생들이 그 교회의 중요 회원이 되어 개화운동의 한 중심지가 되었었다. 특히 서재필이 미국에서 귀국하여 배재학당에서 강의하면서 정동교회 청년회를 중심으로 협성회를 조직하여 독립협회의 전위대를 만들기도 하였다. 1897년에는 현대식 예배당이 준공되었는데, 이 건물이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19세기 교회 건물인 정동 제일 교회이다.이 건물이 처음 지어질 때는 비교적 소규모의 기와집이었는데 교인 수가 점차로 증가함에 따라 현대식 예배당의 필요성을 느껴 1895년 새로운 건물을 착공하여 1898년에 완공하였다. 6·25 때 전화로 인하여 교회의 일부가 부서졌으나 1953년 말에 중수를 통하여 거의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정동 교회 답사는 솔직히 일제의 잔재라기 보다는 당시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 건물을 찾아보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정동교회를 나와 우리는 ‘덕수궁길 주변 안내문'을 통해서 좀더 명확한 지금의 지도를 파악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③ 중명전(重明殿)정동극장 뒤편으로 조금 들어가니 2층짜리 고색 창연한 벽돌 건물이 한 채 있었는데, 이 곳이 바로 1905년‘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중명전이었다. 우리가 조금 놀란 것은 지방 문화재(제53호)로 지정되어 있다고는 믿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 곳에는 단지 안내판만 하나 서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그 옆에는 안내판보다 훨씬 더 큰 간판과 함께 일반 가게 및 각종 사업 외국 사람들의 사교장으로 쓰여 왔다. 최근에까지 영친왕의 비인 이방자의 명의로 되어 있었으나 그 뒤 팔려 지금은 개인 소유로 되어 있다.④ 구러시아 공사관(사적 제 253호)그 다음으로 간 곳은 예원 학교 옆에 위치한 구 러시아 공사관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아관파천’의 아관이 바로 이 곳이다. 지금은 탑 부분만 남고 나머지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이 곳에 있는 안내문에 건물의 지하가 덕수궁과 연결되어 있다고 나와있는데 예전에는 덕수궁의 범위가 이 곳까지 포함하였음을 나타내 주는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1885년 10월에 정동에 개설한 러시아 공사관(당시 영사관)에 정식 건물을 짓기 위하여 1890년 8월 그 자리에 초석을 놓았다고 한다. 서재필 주재의 독립협회가 결성되는 등 다난한 시대의 증인이 된 건물이다. 건물은 6·25 남침으로 대부분 파괴되었다고 한다.⑤ 손탁 호텔구 러시아 공사관에서 다시 큰 길로 나오면서 우리는 손탁 호텔 터에 들렀다. 지금은 빈땅만 남은 손탁 호텔은 국내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고종의 아관 파천 후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처제 손탁(Sontag)이 지은 것이다. 이곳에서 국내 최초로 커피를 판 것으로도 유명한데, 1903년 처음 지어질 당시의 이름은 '정동 클럽'이었다가 나중에 '손탁 호텔'로 바뀌었다. 한일 합병 당시에는 내각총리 대신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가 나라를 팔고 사는 흥정을 벌이기도 한 곳이라고 한다.손탁은 1895년에 고종으로부터 경운궁 건너편에 있는 땅과 집을 하사 받았다. 원래 이 집은 외국인들의 입회소 구실을 하였고, 청일전쟁 뒤에는 미국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정동구락부로 사용되어 외교의 중심지였다. 1902년 10월 원래의 집을 헐고 양관을 지어 호텔로 경영하였고, 1904년 3월과 1905년 11월에는 이토가 이 호텔에서 숙박을 하였다. 1917년 이 호텔 건물을 이화학당에서 구입하여 교실과 기숙사로 사용하다가 1922년에 이를 헐고 프라이 홀이라는 3층 건물을 다시 지었다.지금은 담장이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경희궁까지의 답사를 마치고 나서는 허기진 배를 채우러 준비한 도시락을 들고서 라면집을 찾았다. 몇 시간을 계속 걸어서인지 정말 힘들고 더웠다.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돌아 본 곳들과 앞으로 더 돌아 볼 곳들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면서 힘을 재충전했다.♠일제가 만든 길!점심을 먹고 우리는 일제가 덕수궁을 가로질러 만든 길을 걸어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더 빠른 길이 있었지만 그 길을 꼭 우리 답사 코스에 놓고 싶었기에 일부러 돌아가는 그 길을 택했다. 일제가 덕수궁을 축소시키면서 궁 가운데로 뚫어 버린 길...이 길이 바로 우리가 답사를 나온 주제를 보여주는 길인 듯 했다.지금 이 길에는 수많은 전경들이 경비를 서 있는데, 그 이유는 이 곳에 지금 미 대사관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대사관 반대쪽만 촬영이 가능하다며 제재를 가했다. 예나 지금이나 외세에 간섭을 받는 덕수궁의 단면이라는 생각이었다.다시 덕수궁 앞을 지날 때 마침 주말을 맞아 덕수궁에서 전통 수문장 교대식 행사가 열리고 있어서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많은 외국인 및 시민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조금 어설픈 면이 많이 있기는 했지만 문화 행사로서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생각에 잠시 동안 구경을 했다.⑦ 부민관(府民館)덕수궁 앞을 지나서 약 200m 쯤에 다음 답사지 인 부민관(지금의 서울시의회)에 도착했다.일제 당시 경성부청과 짝을 이룬 건물이 '부민관(府民館)'이었다. 이 건물은 요즘으로 치면 서울의 세종문화회관이나 지방 도시의 시민회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공연도 하고 집회도 하고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공회당으로 세워진 건물이었다.일제 말기 이곳에서는 각종 정치집회와 친일성이 농후한 공연 예술이 무대에 올려졌었는데, 춘원 이광수 등이 조국의 청년들에게 학도병 권유 연설을 행한 곳도 이곳이다.우리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 마침 서울 시의원들이 점심 식사를 마치고 들어오던 중이라서 .
    경영/경제| 2001.11.01| 9페이지| 1,000원| 조회(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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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보화] 정보화사회에서의 직업 평가B괜찮아요
    정보화 사회의 직업1. 들어가는 말우리는 21세기와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 살고 있다. 21세기 정보화 사회는 한계에 도달한 산업사회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가 의식과 가치관의 변화를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면 21세기를 바로 예측하지 못하고 우리는 도태될 것이다. 나는 21세기를 특징짓는 '정보화 사회'에 대해 알아보고, 정보화 사회에 예견되는 직업들을 조사해 보았다. 또한 정보화 사회에 사는 우리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또 내가 희망하는 직업은 정보화 사회에서 과연 전망이 있는지, 또 어떠한 역할을 할지도 알아보았다.그럼 우선 정보화 사회에 대해서 알아보자.2. 정보화 사회란정보화사회는 산업사회 이후에 급격히 발달되었다. 다니엘 벨은 이 사회를 탈산업사회(post industrial society)라고 불렀고, 엘빈 토플러는 초산업사회(super industrial society)라고 불렀으며 에치오니는 탈근대사회(post Modern society)라고 부르고 있다. 1946년 최초의 전자계산기인 ENIAC이 만들어진 이래 컴퓨터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인류문명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는데, 이는 다름 아닌 정보사회(information society)내지 정보화사회의 진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정보화사회의 도래를 알려주는 생소한 용어들을 수없이 접하고 있는데, 제3의물결, 제4차 산업혁명, 제5세대 컴퓨터, OA(Office Automation: 사무자동화), HA(Home Automation: 가사자동화), FA(Factory Automation: 공장자동화), 정보시스템, 반도체 전쟁, 첨단 기술, 데이터 통신, 위성 비지니스, 테크노폴리스, 광산업, R&D산업, 다중적 경제사회, 인공지능, 전문가 시스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정보화사회는 정보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컴퓨터피아(comouterpia)도 디스토피아(distopia)도 될 수 있는 것이다.정보화의 진전에 따라 다 윤택하고 편리한 생활을 영위할 것이다.여기에서는 정보화 사회의 개념과 의미, 특징, 정보화 사회의 전망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정보화사회의 개념우리는 지금 앨빈 토플러가 예언한 바와 같이 농업시대를 지나 정보의 시대인 정보화 사회의 문턱에 들어섰다. 이것은 벨의 후기산업사회, 토플러의 초산업사회 등으로 말해지기도 한다. 즉, 물질이나 에너지를 대신하여 정보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사회를 오늘날 일반적으로 정보화 사회라 한다. 정보화사회를 보다 상세히 개념 정의하면 "규범적으로는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민주화, 복지화, 합리화의 여러 가치를 실현시킴을 목적으로 하며, 정보, 지식이 중요한 자원의 하나로 인식되어 사회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며, 고도로 발달된 정보기술을 기반구조로 하여 정보의 이용이 보편화되고 이의 생성, 전달, 가공, 누적이 활발해져, 정보통신 시스템의 응용분야가 복잡 다양화되고 광범위하게 확대된 사회"를 말한다. 즉, 정보화사회는 한마디로 주요 인간활동이 정보 빛 통신기술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는 사회를 뜻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정보화사회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정보가 신속하게 처리되고 전달·공급되며, 대부분의 고용이 지식과 정보의 생산, 처리, 유통과 관련된 정보 산업에 집중되는 사회를 가리킨다.▶정보화사회의 특징정보화사회의 정치체계는 많은 정보를 소유하며, 그 정보처리능력이 뛰어나고 많은 지식과 기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technocracy형태를 취할 것이다. 정보사회는 사회구조가 급속히 변화하고 복잡해져서 국민들이 정치환경에 대한 정보를 수집 평가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뿐 아니라 사회의 여러 면에서 자극량이 증가하여 개인의 인식과 판단이 한계에 달할 것이기 때문에 technocrat들이 정치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니엘 벨에 의하면 전산업사회의 노동력은 대부분 추출산업에 종사하고 산업사회에서는 상품생산에 주로 종사하나, 탈산업사회에서는 서비스업에 주로 종사하게 된다고 하고, 탈산업, 정보화에 따른 직군변화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체계적인 연구가 미흡한 실정이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우선 정보기술 발달 및 산업구조에 따른 직군변화 방향, 정보화로 인한 유형별 직군 변화를 알아보고자 한다.▶ 2000년대 사회변동과 직군 변화직군의 변화는 기술혁신과 산업구조의 변화 등 사회변천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따라서 직군변화에 대한 예측을 위해서는 2000년대 한국사회의 경제, 사회, 기술 각 부문에서의 변화방향 및 직군변화 원인에 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하겠다.첫째, 기술적 측면: 기술혁신에 의한 정보화로 사회의 우선 가치 및 경쟁력의 원천이 자본이 아닌 기술과 정보 및 지식위주로 변화한다. 일반론적으로는 IT의 발달과 함께 기술 대체성이 큰 직군일수록 '직군소멸'의 가능성이 높은 반면, 새로운 정보기술의 발달로 지식산업화, 정보화, 전문화가 진전됨에 따라 미래산업에 필요한 정보직업군등 새로운 유망직군의 '창출'이 예상된다.둘째, 경제 산업구조적 측면: 경제성장으로 제반 경제여건 및 생활수준의 향상, 건강 및 생활의 질에 관한 관심의 변화 등이 직업의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본다. 특히, '80년대 이후 3차산업의 성장 등 산업구조의 변화는 기존의 직무상 역할을 분화 특화시키며 새로운 직업들이 창출되고 기존의 직업들을 변화시킨다.셋째, 인구구조생활환경의 변화 측면: 인구증가의 둔화(선진국형인 항아리형)에 따른 노인인구의 증가(사회의 고령화)로 노인의 건강 등 관련산업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사회의 고학력화는 인력 공급구조에 영향을 주어 산업의 서비스화를 진작시킨다. 한편, 정보화와 더불어 전문직, 관리직의 확대에 따른 고학력 여성노동력 수요의 증대와 여성의 경제사회활동 참여 증대 등 여성인력의 공급구조의 변화, 생활의 질을 추구하는 가치의식의 변화 등이 직군 변화에 영향을 준다.넷째, 문화유산적 측면: 고유한 전통, 종교, 문화 유산적 영향으로 다소의 변형은 있겠으나 대체로 보전(保全)되어지는 직군으로서 전통혼례관련 사업, 장의(葬儀)업, 무형되므로 그로 인한 직업(군)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는 논리로서 다음의 가설들을 제시한다.첫째, 정보 및 지식화 사회에서 정보와 지식이 생산성과 경제성장의 주요 원천이며 핵심적 경쟁자원이 되므로 지식과 정보의 생산처리분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문직, 관리직, 기술직 등 이른바 정보직업군이 증가하여 핵심적 직업구조화가 이루어진다.둘째, 경제활동이 재화의 생산에서 서비스 제공으로 이행함에 따라 고부가가치의 정보통신, 컴퓨터 소프트웨어, 금융서비스 등 서비스직이 직업구조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서비스경제로의 이행이 예상된다.셋째, 사회정보화와 더불어 고부가가치화 된 정보로서의 전문지식과 자격기준을 중시하는 전문화 경향을 초래한다.넷째, 전문직의 성장에 상응하는 반숙련·비숙련 서비스직도 주목할 만한 성장을 가져와 상층의 정보직업군과 하층의 저숙련 서비스직으로 직종의 양극화 경향(polarized two-tier society)이 나타난다.2)전망되는 직업21세기 사회의 특성들로 제시되는 정보화, 국제화, 고도기술화, 다변화, 다양화, 개방화 등의 용어들은 미래사회의 일과 직업세계의 모습을 미리 예견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직업세계의 판도변화가 조용하지만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직업 100년사를 살펴봐도 유망직업은 언제나 산업사의 동향과 맥을 같이했다.1940∼50년대 농업종사자, 광업철도, 은행원(인텔리전트), 1960년대 농업의 인기는 낮아지고, 공업 및 서비스직의 인기가 높아진다. 여성의 간호사직이 선망의 직업이 된다. 1970∼80년 은행원과 공무원, 대기업 사원등은 모두 당시의 산업화를 주도해온 인기직업들이었다. 지금 2000년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문화와 정보화에 관련된 전문직종들이 유망직업으로 단연 선두자리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은 정말 인기가 없는 직종이 어느 한때에는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직업이었다. 앞에서 은행원이 인텔리전트라고 하여 인기직종에 들어간 것을 보니까 참 재미있는 것 같다. 지금은 딱딱하관료,외교관,무역전문가, 항공기조종사,스튜어디스,항공기정비사,영상번역가,동시통역사,관광통역가 이드, 해외관광지개발가⑤ 여가선호로 파생되는 직업호텔국제판매직,연회전문가,항공사여객마케팅,여행기획가,연예오락이벤트기획인,성형외과의사,피부과학전문학자,피부미용사,미용사바텐더,보모,사회체육지도자,레크리에이션연구가⑥ 창의성·개성이 강조되는 직업요리코디네이터,색채전문가,산업디자이너,상업디자이너,인테리어전문가,모델,이미지컨설턴트,테마파크디스플레이어,의상컨설턴트,자동차디자이너,일러스트레이터,공예가,광고디자이너,환경디자이너,시각디자이너,큐레이터,조각가,무대디자이너,만화콘티작가,애니메이션전문가,의류머천다이저,카피라이터,분장사⑦ 문화·예술관련 직업쇼전문PD,드라마 PD,국악이나 양악 전문PD,전문아나운서,장르별MC,음반기획자,뮤지컬배우,영화배우,연극배우,영화홍보업자,이벤트매니지먼트,탤런트,모니터요원,방송스크립터⑧ 환경·건강관련 직업수질전문가,폐기물처리사,환경평가사,환경미생물전문가,환경위생학전문가,환경공학전문가,환경음악작곡가,환경영화전문가,산업보건학전문가,식물치료학자,운동치료사,산부인과상담의사,환경분석학자,생물반응학자,파괴공학자,운동생리학자,예방의학전공학자,약리학자,동물생태학자,해양채집전문가,해저탐사전문가,음악치료사,조산원⑨ 정신문화관련 직업시각심리학자,인지심리학자,임상심리학자,사원사기관리전문가,성격배우,청소년심리연구가,행동과학전문가,심리카운셀러,심리상담목회자,정서장애특수교사,의료사회사업가,공인알콜중독상담가,언어치료사,간호사,전통문화전수자,한복기능사☞내가 하고 싶은 직종※21세기 유망 직종 모두 유망할까?다가올 21세기 정보통신·멀티미디어시대에서 진로나 직업을 선택하게 될 학생들은 순식간에 변하는 정보환경과 직업구조 때문에 상당한 혼란을 갖게 될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매스컴에서 21세기 유망직종에 관해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원리원칙은 아니다. 우선 자신의 능력과 정보화 마인드 정도를 신중하게 고려해 본 다음 '어떠한 분야에서 나의
    사회과학| 2001.11.01| 8페이지| 1,000원| 조회(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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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고서표지
    기타| 2001.11.01| 1페이지| 200원| 조회(4,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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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력서 평가B괜찮아요
    이 력 서 지원부문:4㎝ × 5㎝성 명주민등록번호생년월일서기 년 월 일생 (만세/여)주 소연락전화휴대폰E-mail본 적호적관계호주호주와의 관계의 장녀년월일학 력 사 항발 령 처경 력 사 항외국어 능력컴퓨터 능럭과외·단체활동
    표준 이력서| 2001.11.01| 2페이지| 500원| 조회(2,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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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3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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