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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래문학] 문학으로서 아리랑 교육
    문학으로서의 『아리랑』 교육국어교육 2차, 김 동 훈Ⅰ. 서론민요는 노래이며, 구전물이다. 민요는 생활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것이 보통이며, 전문성이 없는 일반적인 민중의 노래라는 점에서 노래로 된 다른 구전물과 구분된다. 민요는 민중들이 그들의 일상적인 삶을 통해 불러 온 노래이다. 일을 하면서, 의식을 나누면서, 그리고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데, 일과 의식, 그리고 놀이는 모두 민중들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민요는 삶과 분리되지 않고 생활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7차 교육과정에서는 문학 교육의 목표를 ‘문학의 수용과 창작 활동을 통하여, 문학 능력을 길러 자아를 실현하고 문학 문화 발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바람직한 인간을 기른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문학의 가치와 전통을 이해하고 문학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문학 문화 발전에 기여하려는 태도를 지닌다.’를 하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문학의 가치와 전통을 이해’ 한다는 것은 문학 작품을 통해 우리 ‘민족의 삶과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족의 삶과 정서’는 고전 문학 작품에 다양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는 고전 문학 작품 중에서도 민중들의 삶과 직접 맞물려 있는 민요에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그러나 현 학교 교육에서 민요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문학 교육에서 민요가 얼마나 냉대를 받고 있는가가 여실히 드러난다. 중등교육과정의 국어 교과에서는, 6차 교육과정에서 상주지방 민요인 「달노래」 한편이 수록되어 있었으나, 7차 교육과정에서는 배제되었다. 7차 교육과정의 〔기본〕과정에는 한편의 민요도 수록되어 있지 않으며, 다만 2학년 1학기 ‘4. 삶과 문학’의 〔보충?심화〕 과정에 「모내기노래」가 수록되어 있으나, 이는 단순히 과거와 현재의 삶의 변화를 이해시키는데 치중하였다. 3학년 1학기 ‘5. 읽기와 매체활용’의 〔보충?심화〕 과정에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이 수록되어 있으 교육적 가치를 통해 『아리랑』 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아리랑』 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아리랑』 교육의 방향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즉 교육 대상, 교육 내용, 교육 방법의 설정을 통하여, 문학 교육에 있어서 『아리랑』 교육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다.Ⅱ. 『아리랑』의 의미와 교육의 필요성1. 『아리랑』의 의미우리 민족에게서 민요는 삶의 일부처럼 여겨지고, 민중의 삶과 자연을 형상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노래이다. 또 민요는 민중의 삶 속에서 불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민중의 삶과 운명을 같이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민요는 민중의 삶을 떠나서는 생각하기 힘들다. 『아리랑』도 민중의 삶 속에서 민중의 필요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운명을 같이 하면서 삶 속에서 생겨나는 기쁨과 고통, 희망과 절망, 분노와 저항 등 이 모든 감정들을 노래에 투사시켜 지금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는 노래로 자리 매김한 것이다.그렇다면 과연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아리랑』은 무엇인가?어릴 때부터 우리들은 『아리랑』이라는 민요를 듣고 부르면서 자라왔다. 요즘은 수많은 대중가요의 유입으로 인하여 그렇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아리랑』이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민요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아리랑』은 우리 민족과 더불어 오랜 세월을 같이 하면서 그 분포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고, 지역에 따라 부르는 『아리랑』이 달라서 그 지방의 지역성과 함께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는 노래로 인식되고 있다.『아리랑』은 18세기에 이르러 근대 평민의식의 확산, 19세기 후반부터 더욱 고조되는 민중의식의 성장과 더불어 성격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개화와 일제의 침략에 마주하여서 끊임없는 저항과 힘찬 투쟁을 고취한 민족적 노래로 성장하였다. 민요 생활권에 내재해 오던 『아리랑』은 18세기 이래 평민 의식의 확산, 19세기 후반부터 더욱 고조되는 민중별의 노래, 한의 노래, 사랑의 노래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일제에 의해 왜곡된 『아리랑』의 성격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이는 바로 올바른 『아리랑』의 의미를 교육해야 하는 당위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것이다.『아리랑』은 지금 현재에도 세계의 도처에 뿌리를 내려 해외동포의 삶에 활력소를 주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노래로 알려져 민족 의식을 고양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인이 살고 있는 세계 곳곳에는 어디나 『아리랑』이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는 해외 동포들이 사는 고장과 가정을 방문했을 때, 애국가보다 『아리랑』을 가창하는 실상들을 TV특집 등에서 공공연하게 보아 왔다. 먼 타국에서 그들은 우리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을 부르면서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남?북한이 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 동포 선수들을 응원하는 운동 경기에서도 『아리랑』은 남과 북을 엮는 매듭이 되었다. 다가오는 21세기, 민족의 화합과 통일이라는 민족의 최대 과제를 앞두고 『아리랑』은 공통의 정서와 언어로서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2. 『아리랑』 교육의 필요성1) 『아리랑』의 교육적 가치민요에 있어서 그 분포와 가사의 다양성에 있어서 『아리랑』을 따를 장르는 없다. 『아리랑』은 민족의 노래로서 전국 방방곡곡에 존재하면서, 고통을 털어놓고 현실을 풍자하고 모순에 항거하고 투쟁하는 적극적인 민중의식의 반영을 그 기본 성격으로 한다.『아리랑』은 생로병사의 유감, 본능과 욕정, 빈천한 삶의 애환, 시집살이의 희비, 망향과 객수, 애정의 괴리, 별리의 정한, 고독과 그리움, 애국 계몽 등의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아리랑』이 모두 이러한 기본적 테두리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근대생활의 만화경이라고 일컬어졌듯이 도회지로 팔려나가는 시골 처녀, 일본으로 품팔이 가는 농민, 기차 개통, 전등, 시어머니에 대한 대담한 반항, 황금 만능사상, 세기말적 에로티시즘 등의 모든 세태와 체험이 광범위하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우리의 시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민요 『아리랑』의 가락을 익히는 것은 필수적인 조건이 될 수 있다.2) 『아리랑』 교육의 필요성7차 교육과정의 문학교육의 목표는 문학의 수용과 창작 활동을 통하여 문학 능력을 길러 자아를 실현하고 문학 문화 발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바람직한 인간을 기르는데 있다고 한다. 7차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교육적 목표가 6차 교육과정과 비교하여 크게 달라진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문학의 수용과 창작 활동’이다. 이는 그 동안 전문작가에 의해 창작된 작품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던 입장에서 나아가 학습자 스스로 문학 작품을 창작하고 향유함으로써 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이다. 문학 작품의 창작을 통하여 상상력과 감수성을 개발하고자 하는 7차 교육과정의 문학교육 목표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아리랑』은 아주 적절한 텍스트가 될 수 있다. 『아리랑』의 형식이 단순한 이행구조를 지니는 것은 창작 활동의 용이함을 가져온다. 또한 『아리랑』은 민중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삶을 투영하는데 효과적이다. 실제로 정선에서도 끊임없이 아라리가 창작되고 향유되고 있는데, 이는 이러한 『아리랑』의 특성 때문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 교육을 통하여 학습자에게 이러한 특징을 이해시키고 스스로 창작하는 과정을 거쳐 학생 자신의 정서와 경험을 나타내는 활동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는 7차 교육과정의 문학교육 목표를 명확히 실행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아리랑』을 가르쳐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아리랑』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고 민족문화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다. 앞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리랑』의 본질이나 실상은 일제에 의하여 왜곡, 변질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를 ‘한의 노래’, ‘이별과 사랑의 노래’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아 올바른 민족 문화를 수립하여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해야 할 책임이 교육 현장에 있다은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라는 교육 대상이 선정되어야 비로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아리랑』을 교육시킬 경우 본격적인 교육은 중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여기서 교육 대상을 중등과정으로 한다는 것은 중등학교에서만 『아리랑』을 교육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교육 대상의 선정은 『아리랑』의 의미와 가치 등, 『아리랑』을 역사적, 문학적으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핵심이 되는 내용을 교육하는 대상을 의미한다.『아리랑』의 교육 시기를 정하는데 학생과 교사의 의견을 모은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중등과정이 그 시기로 적당함을 알 수 있다.〈아리랑을 배운다면 배우는 시기는 언제가 좋다고 생각하십니까?〉구분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사회에 나가서학생(100명)53%41%1%0%5%교사(50명)54%36%10%0%0%)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교사와 학생의 90%이상이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아리랑』을 가르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아동의 발달 과정을 고려할 때, 감각적이고 정서적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초등학교 시기에는 우리 가락의 이해를 위한 『아리랑』의 가락과 정서를 익히는데 그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결국 사회적 의식이 형성되고 민족과 역사에 대한 인식이 싹트는 중학교 과정에서 『아리랑』의 형성배경과 문학적, 역사적 의미를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2. 교육 내용『아리랑』의 문학적, 역사적 의미를 중학생들에게 교육한다고 할 때 그 내용은 『아리랑』의 역할과 의미, 성격, 교육적 가치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즉 중학교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하여 그와 부합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하여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첫째, 『아리랑』은 불려지는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와 같은 특성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작품의 편수를 조정해야 한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과 더불어 오랜 세월을 같이 하면서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나, 지역에 따라 부르는 『아리랑』이 다것이다.
    인문/어학| 2005.06.17| 8페이지| 1,000원| 조회(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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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작가론] 서포김만중교육론
    과 목 명 : 한국고전문학작가교육연구지도교수 : 박 영 주 교수님발 표 일 : 2004년 11월 25일《서포 김만중 교육론》전 공 :국어교육 1차학 번 :2 0 0 4 5 2 8 6성 명 :김 동 훈- 차 례 -Ⅰ. 들어가는 말Ⅲ. 『구운몽』에 투영된 작가의식Ⅱ. 서포의 삶과 문학관Ⅳ. 서포 김만중 알리기1. 서포의 삶Ⅴ. 나가는 말1) 정통 사대부로서의 삶[참고문헌]2)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삶2. 서포 김만중의 문학관Ⅰ. 들어가는 말오늘날의 문학은 고전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기나긴 시간의 흐름 속에 잦은 비바람이 부딪쳐 왔다고 하더라도 그 뿌리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기둥을 받들고 있다. 오랜 시간의 흐름과 시련 속에서 그 뿌리를 지킬 수 있음은 우리 민족의 의식과 정서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전문학을 교육하는 것은 그 속에 담겨있는 민족의 의식과 정서를 이해하는데 있다고 하겠다.현 고전문학교육 현장에서는 단편적인 작가의 생애를 주입하는 형식의 수업이 주류를 이룬다. 이는 작가와 작품을 별개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의 이해는 반드시 작품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작가는 독자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작품을 통하여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즉 작품은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사상과 가치관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수단인 것이다.여기에서는 서포 김만중의 삶과 문학관을 살펴보고, 이들이 작품에 어떻게 드러나 있는가를 『구운몽』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본 발표문은 서포 김만중이라는 작가 교육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은 중등과정을 그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구운몽』에 대한 자세한 작품 분석이 아닌,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식을 중점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이를 학습자에게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Ⅱ. 서포 김만중의 삶과 문학관1. 서포 김만중의 삶한 작가가 처한 환경과 성장과정을 살펴 그의 사람됨을 파악하는 일은 그의 작가의식이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 이념 자체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면서 다른 사대부들과는 달리 일탈된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1) 정통 사대부로서의 삶서포의 가문은 광산 김씨(光山 金氏)이다. 조선조 예학(禮學)의 대가인 김장생(金長生)은 그의 증조(曾祖)이며, 신독재 김집(金集)은 그의 종조(從祖)였다. 그의 아버지는 후금이 침입한 1636년에 강화도 방위에 종군하여 1637년에 23세의 나이로 전사한 충렬공(忠烈公) 김익겸(金益謙)이며, 그의 형은 인경왕후의 아버지인 광성 부원군 김만기(金萬基)였다. 이처럼 그의 가문은 중세 권력의 핵심을 이루는 인물들을 배출한 벌열(閥閱)로서, 숙종 연간에는 청풍(淸風) 김씨가, 여흥(驪興) 민씨가와 더불어 국정 전반에 걸쳐 막대한 실력을 행사하였던 삼척(三戚)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정통 사대부로서의 삶을 지향으로 꿈꾸었음은 이러한 가문적 배경을 통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서포는 1665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봉건 사대부로서의 본격적인 삶을 시작하여, 1686년에 대제학(大提學)의 자리까지 오른다. 이처럼 그는 중세권력의 최상층부의 봉건 관료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서포가 살았던 17세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고 하는 역사적 전란을 경험한 직후로, 전란 이후의 질서를 수립하는 것이 이 시기의 중대한 과제였다. 즉 17세기의 역사적 과제는 국가재조(國家再造)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의 지배층은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뉘어 정치적으로 대립했다. 주자(朱子)와 주자학(朱子學)을 절대 신봉하고 그 인식틀 속에서 현상 타개책, 체재유지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서인(西人)?노론(老論)과 주자학의 범주를 넘어선 범유교(汎儒敎), 비유교 사상(非儒敎 思想)과 연결하여 현실 극복의 논리와 방법을 찾으려는 남인(南人)?소론(小論)의 정쟁(政爭) 대립이 그것이다.서포의 관료 생활은 바로 서인의 보수적 입장을 현실화하기 위한 실천이었던 것이다. 그는 송시열, 송준길을 핵심으로 하는 서인의 주요 인물로서 매우 주도적이고 전위적인 역할을 그의 사대부적 삶의 궤적이 얼마나 고단한 것이었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2)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삶서포는 벌열 가문의 일원으로서, 보수적인 정치적 입장을 지닌 인물이었다. 하지만 서포 개인을 보다 전면적으로,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정치적 입장이 보수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과 아울러 이러한 정치적 입장과 일정하게 차별되는 비판적 인식이 그의 세계관의 한 일면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서포가 주자학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학문에 대한 객관적, 합리적 태도를 지녔음은 서포만필의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송대의 정주학(程朱學)이 선학(禪學)의 영향으로 심학화(心學化)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대체로 다들 유학을 위주로 하고, 불학을 보조로 했는데, 이는 마치 사람이 약을 먹을 때, 아침에는 출부양(朮附陽)을 먹고 저녁에는 청량산(淸凉散)을 마시는 것과 같다. -(『서포만필』)서포는 정주학이 불교를 배척하지만 사실은 불교의 절대적 영향 아래 정주학이 형성되었음을 밝힘으로써 정주학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정주학자들이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맹자, 주자의 유연한 학문태도를 거론함으로써 당대 학자들의 맹신적 자세와 선명히 대비시키고 있다. 즉 주자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의 논거를 바로 그들의 숭배 대상에서 마련한 것이다.)성현의 가르침을 내리는 것은 때에 따라 달랐다. 맹자가 성선설(性善說)을 말한 것은 공자의 한언설(罕言說)과는 달랐고, 그가 기를 말한 것은 공자 문하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주자는 중용의 성(性), 도(道), 교(敎)를 훈몽서(訓蒙書)에 맨 먼저 내세웠고, 근사록의 제일장은 정자가 일찍이 고제자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대저 전인이 비밀에 붙여 홀로 전하던 것이 후인에게는 문득 진부한 말이나 일상적인 방법이 되었다. 이것이 어찌 고의적으로 이설을 만든 것이랴? 아마도 부득불 그렇게 되었던 것뿐이다.-(『서포만필』)서포는 맹자를 맹자답게, 주자를 주자답게 만든 것을 공자, 정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사미인곡(思美人曲)」을 대상으로 문학에 대한 견해를 개진하였던 바), 거기서 그는 국문문학의 독자적 가치를 간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중 언어에 대한 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한문문학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던 당시의 사대부들의 보수적 견해에서 훨씬 벗어나 있는 것이었다.서포의 이러한 진보적 문학관은 시가에 한정되어 표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포행장』에 의하면 그는 “어머니가 서책을 좋아하므로 옛 기이한 책들을 모으고 또 패설(悖說) 작품까지 모아서 낮밤으로 이야기하여 드림으로써 좌우가 모두 기뻐하였다”고 하는데, 자신의 독서 체험에 기초하여 소설의 가치를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그의 국문문학 긍정론에서 보여주고 있는 진보적 인식과 틀을 함께 하는 것이라 하겠다.Ⅲ. 『구운몽』에 투영된 작가의식『구운몽』은 지금까지 1722년 간행된 금성판(錦城板) 한문목판본을 비롯하여 국문방각본? 국문필사본?국문활자본?한문필사본?한문현토본 등 30여 종이 넘는 많은 이본이 전해지고 있는 작품이다. 국문본과 한자본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구운몽』이 상하에 걸쳐 상당히 광범위한 독자들에게 애독되어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다음의 『서포연보』의 기록은 『구운몽』의 창작 시기뿐만 아니라 창작 동기에 대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언급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부군이 이미 귀양지에 이르러 윤부인의 생신을 맞이했다. 시를 지어 이렇게 말했다. “멀리 어머님께서 아들을 그리며 눈물 흘리실 것을 생각하니, 하나는 죽어 이별이요 하나는 생이별이로다.” 또 글을 지어 부쳐서 [윤부인의] 소일거리를 삼게 하였는데 그 글의 요지는 ‘일체의 부귀영화가 모두 몽환이다.’라는 것이었으니, 또한 (부군의) 뜻을 넓히고 슬픔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위의 인용은 『서포연보』 정묘년(丁卯年)의 기록이다. 서포가 ‘일체의 부귀영화가 모두 몽환’이라는 글을 지어 어머니 윤씨에게 소일거리를 삼게 하였다고 했는데, 이 때의 글이 『구운몽』임은 쉽게 알 수 있다. 이 기록불제자 성진이 양소유를 거쳐 다시 성진으로 돌아오면서 겪는 사유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이 때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가)의 성진과 (나)의 양소유, (다)의 성진이 동일자이면서 개별자라는 사실이다.(가)의 성진은 세속적인 욕구의 세계에서 벗어나 참 진리를 지향하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육관대사의 심부름으로 용궁을 다녀온 뒤 성진은 자신의 구도의 길에 대해 회의한다.남?ㅣ 셰상의 나 어려서 공명의 글? 닑고 자라 요슌?? 님굼을 만나 나며 당슈ㅣ되고 들면 졍승이 되여 비단옷? 입고 옥?ㅣ? ?고 옥궐의 됴회?고 눈의 고은 빗? 보고 귀에 됴흔 소?ㅣ? 듯고 은??이 ??셩의게 밋고 공명이 후셰의 드리오미 ?? 대댱부의 일이라.이러한 세속적 욕구로 충일된 삶, 그것은 바로 유가적 삶의 지향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탈욕의 세계에서 구도에 정진하고자 한 성진의 내면에 용솟음치는 심리적 동요의 정체는 세속적인 욕구를 마음껏 향유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세속적 삶의 형식으로써 유가적 삶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나)의 양소유의 삶은 (가)의 성진의 이상이 꿈(사유)의 형식으로 실현된 것이다. 15세에 집을 떠나 과거에 급제한 후 대원수로 외적을 물리치고 위국공에 봉해지며, 이소화, 정경패, 진채봉, 계섬월, 백능파, 적경홍, 심요연, 가춘운 등 2처 6첩을 거느리는 대가문을 이룩한 양소유의 삶은 (가)의 성진이 꿈꾸던 세속적 욕구가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즉 양소유의 삶은 유가적 삶의 이상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가)의 성진으로서 꿈꾸던 욕구의 세계가 유가적 형식으로 완성된 그 순간에 양소유는 (가)의 성진이 그랬던 것처럼 욕구 그 자체의 덧없음을 회의한다.??ㅣ로 집을 삼고 억조로 신쳡을 삼아 샴광을 두로혀 천셰를 지내고져 ?더니 이제 엇?ㅣ 잇?뇨. 소유? 하동일포의로 다??이 형쥬를 마나 버슬이 쟝샹의 니?고 ? 제 낭?로 더부러 서로 만나 후의와 심졍이 늙도록 더 쥬밀?니 젼?? 연분이 아니면 엇지 그러 ?리오. 연분이 이셔 뫼오.
    교육학| 2004.12.28| 7페이지| 1,000원| 조회(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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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학] 근대국어의 음운
    과 목 명 : 국어학 교육 연구지도교수 : 김 무 림 교수님발 표 일 : 2004년 11월 2일《근대 국어의 음운》전 공 :국어교육 1차학 번 :2 0 0 4 5 2 8 6성 명 :김 동 훈- 차 례 -1. 들어가는 말3.1.2. 움라우트2. 음운 체계3.1.3. 전설 모음화2.1. 자음 체계3.1.4. 원순 모음화2.2. 모음 체계3.2. 음운의 강화 및 첨가 현상2.3. 초분절 음운3.2.1. 음운의 강화3. 음운 현상3.2.2. 음운의 첨가3.1. 음운의 동화 현상4. 나가는 말3.1.1. 구개음화[참고문헌]1. 들어가는 말국어의 역사에서 근대는 현대에 근접하면서 회고적으로는 중세에 연결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근대 국어의 음운 체계는 중세의 음운 체계를 염두에 두면서, 아울러 현대를 참조할 수 있는 통시적 시각이 필요하다 하겠다.그러나 17, 18, 19세기를 아우르는 근대의 국어가 공시적 균질성으로 파악되는 것은 아니다. 3세기에 걸치는 근대의 내부에서도 음운 체계의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났으며, 이러한 변화는 다양한 표기 양상과 함께 근대의 문헌에 점철되어 있다. 그러므로 근대 국어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문헌의 서로 다른 표기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여기에 각 방언의 반영을 함수 관계로 풀어야 하는 복잡한 작업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여기서는 근대 국어의 음운 체계와 음운 현상에 대하여 통시적 변화 현상을 중심으로 공시적 변이 양상을 살펴보도록 하겠다.2. 음운 체계2.1. 자음 체계근대 국어 자음 체계의 특징은 중세 국어 자음 체계와의 대조를 통하여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순경음 ‘ㅸ’과 반치음 ‘ㅿ’, ‘ㆅ’의 음운으로서의 기능 상실과 경구개음의 등장이 그것이다.〈중세 국어의 22 자음 체계〉조음위치조음방법양순음치경음경구개음연구개음후음파열음평음ㅂpㄷtㄱk격음ㅍp?ㅌt?ㅋk?경음ㅃp?ㄸt?ㄲk?비음ㅁmㄴnㆁŋ파찰음평음ㅈts격음ㅊts?경음ㅉts?마찰음평음ㅅsㅎh경음ㅆs?ㆅh?유성음ㅿz유음ㄹl〈근대 국어의 19(20) 자음 체계〉조음위치조음방법양순음체계에서 양순 마찰음인 ‘ㅸ’은 이미 15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소멸하였고, 치경 유성 마찰음인 ‘ㅿ’은 최소한 16세기 전반까지는 음소의 기능을 유지했던 것으로 파악되나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음운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순경음 ‘ㅸ’과 반치음 ‘ㅿ’은 근대의 자음 체계에서 제외된다.① 어드?(용비어천가 30) 〉어두운(금강경언해 55))② 아?爲弟(훈몽자회 용자례) 〉 아?(노걸대언해 하-31) 〉아?(노걸대언해 하-30))중세의 경음 계열에는 ‘ㆅ[h']'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근대 초기의 문헌에서 다음과 같은 표기가 등장하여 중세의 음운 ‘ㆅ[h']'이 여전히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① 法을 ?ㅕ(引法)(경민편언해/1656 3)‘?ㅕ’의 중세 어형은 ‘혀다~ㆅㅕ ’이므로 ‘?ㅕ’는 근대의 일반적 경음 표기의 방법에 의해 경음‘ㆅ’을 표기했다고 할 수 있다. 근대 국어의 자음 체계에서 ‘ㅎ’의 경음인 ‘ㆅ’은 기능 부담량이 적었던 관계로 18세기 이후에는 다른 음운(주로 ‘ㅋ’)에 합류되었다.중세 국어의 자음 체계에는 기저 음운 목록에 경구개음이 포함되지 않는다. 이것은 현대 국어의 음운 목록에서 경구개음 계열에 속하는 ‘ㅈ, ㅉ, ㅊ'이 중세 국어에 있어서는 치경음 계열에 속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근대에 들어서 구개음화 현상이 활발히 나타나는데, 구개음화는 전설 고모음(경구개 모음) 앞에서 치경음 ‘ㅈ(ts)'이 경구개음 ‘ㅈ(t?)'으로의 변화를 경험한 후에, 경구개 모음 앞에서 ‘ㄷ’의 ‘ㅈ'으로의 변이를 설명하는 것이 타당한 순서이다. 그러므로 ‘ㅈ, ㅉ, ㅊ'의 경구개음 계열로의 이동은 구개음화에 앞서는 음운 변화로 추정되기 때문에, 근대 초기를 전후하여 일어난 음운사적 사항이 된다고 하겠다.2.2. 모음 체계근대의 내부에서 모음 체계는 매우 역동적인 변화를 겪었다.〈중세 국어의 7 단모음 체계〉) 〈근대 국어의 8 단모음 체계〉전설 후설이 우 고 ㅣ/i/ ㅡ/?/(ㅜ/u/)어 으 오 중 ㅔ/e/ ㅓ/?/(ㅗ/ 나타난 현상이다. 둘째 음절 이하의 소실은 이하에서의 소실은 모음 조화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와 관련이 되기 때문에, ‘?’의 본질적인 비음운화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제2 단계의 변화, 즉 어휘 첫 음절에서의 소실이 실증되어야 한다. 첫 음절에서의 ‘?’의 동요는 곧 ‘?’의 소실을 증언하는 것이다.근대에 일어난 모음 변화 중에 ‘?’의 소실에 이어지는 중요한 사항은 ‘ㅐ, ㅔ’의 단모음화이다. ‘ㅐ, ㅔ’의 단모음화에 대한 선명한 실증은 다름아닌 ‘?ㅣ, ㅐ, ㅔ’의 혼기라 하겠다. ‘?ㅣ, ㅐ, ㅔ’의 혼기는 17세기 후반에서 시작하여 18세기의 문헌에 많이 나타나므로 ‘ㅐ, ㅔ’의 단모음화는 18세기에 들어서 완성된 음운사적 현상이라 하는 것이 적당하겠다.‘?’의 소실과 ‘ㅐ, ㅔ’의 단모음화를 종합하면, 18세기가 국어 모음사에서 근대의 특징이 현저한 시기가 된다. 그러므로 근대의 모음 체계는 중세의 7 단모음 체계에서 ‘?’가 소실되어 6 단모음 체계가 되었다가, 이어서 ‘ㅐ, ㅔ’의 단모음화가 완성되어 8 단모음 체계로 귀납된다.2.3. 초분절 음운중세 국어의 성조는 표준적인 중앙어에 있어서 고저가 변별적 기능을 하는 성조 언어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 중앙어에 있어서는 고저로서의 초분절 음소가 사라지고 이 자리에 소리의 길이 즉 장단이 자리잡게 된다. 운소로서 장단의 성립 과정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근대 이후의 일로써 추정할 뿐이다. 근대 국어의 운소로는 장운소가 설정된다. 장운소는 단운소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유표격인 장운소만 음운 체계에 포함된다.3. 음운 현상근대 국어의 음운 현상으로서 특징적인 것은 구개음화, 움라우트(‘ㅣ’ 모음 역행 동화), 전설 모음화, 원순 모음화 등의 동화 현상을 들 수 있다. 음운의 동화 현상이 발음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면, 이와는 달리 표현의 효과를 위한 것으로는 음운의 강화 및 첨가를 들 수 있다. 음운의 강화 및 첨가 현상은 공시적 변이라기보다는 어휘 형태의 기본형이 바뀌음운의 동화 현상3.1.1. 구개음화구개음화에는 입력 음운의 계열에 따라 ‘ㄷ’ 구개음화, ‘ㄱ'구개음화, ‘ㅎ'구개음화의 세 가지로 분류된다. 구개음화의 성립에는 무엇보다도 음성형으로서 경구개 자음의 목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인데, 이미 16세기의 문헌에서 ‘ㅅ, ㅈ, ㅊ’의 구개음화 변이 표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ㅅ, ㅈ, ㅊ’의 구개음화를 토대로 하여 ‘ㄷ, ㄱ, ㅎ’ 구개음화가 성립되는 것이다.‘ㄷ’ 구개음화는 16세기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중앙어에서 일반화된 것은 근대에 들어서의 일이므로 근대의 특징적인 음운 현상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ㄷ’ 구개음화는 변별 기능성이 약한 비어두 위치에서 먼저 활발한 양상을 보이다가, 이후에 어두 위치로 확산되는 경향을 지닌다. 따라서 17세기의 지방판 문헌에 ‘ㄷ’ 구개음화가 어두 및 비어두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것은 지방에서의 구개음화 발생이 근대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그러나 17세기의 중앙어에서는 ‘ㄷ’ 구개음화가 아직 세력을 얻지 못하였다. 이것에 대한 선명한 실증은 동남 방언을 반영한 『어록해』의 원간본(1657)과 중앙어를 반영한 『어록해』개간본(1669)의 비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① 지?다(원간 1) ~ 디?다(개간 2)② 엇지?고(원간 19) ~ 엇디?고(개간 33)중앙어에서 ‘ㄷ’ 구개음화는 어두 및 비어두의 구분 없이 18세기 중기 이후에 전면적으로 나타나면서, 다시 ‘고티+디〉 고치지’와 같이 어간 재구조화로 인하여 형태소 내부의 구개음화 규칙이 소멸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근대 후기의 ‘ㄷ’ 구개음화는 형태소 경계 및 어두 위치에서만 일어나는 음운 현상으로 축소되었다.‘ㄱ' 및 'ㅎ'구개음화는 그 일반화 시기가 뒤늦은 까닭으로, ‘ㄷ’ 구개음화와는 달리 어두 위치에서만 나타나며, 주로 서남, 동남, 동북 방언에서 나타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① ‘ㄱ'구개음화 : 지름(油, 여사서언해 3-22)② ‘ㅎ'구개음화 : 셩뎨(兄弟, 사법어 15)근대 국어에서 ‘ㅅ의한 음운 현상이다. 움라우트의 예는 중세에서부터 간혹 나타나지만, 근대에 들어 남부 방언, 즉 동남 및 서남 방언을 중심으로 활발해졌으며, 19세기 이후에 중앙어에 파급되었다.① 15세기 : 새굔(雕)② 16세기 : 졔기(略)③ 17세기 : 지애비, 제혀④ 18세기 : 네기리, 귀경⑤ 19세기 : 지??이, 올?ㅣ비, 욍기다움라우트는 이와 같이 근대를 전후하여 꾸준히 축적된 음운 현상이기 때문에, 적용 원리의 파악에 있어서도 ‘ㅣ’ 모음 역행 동화라는 대전제 아래 묶일 수 있는 성격이다. 남부 방언에서 시작된 움라우트 현상이 중앙어로 파급된 것은 구개음화보다 늦은 19세기 이후이지만, 중앙어에서 세력을 일반화하지 못하고 현대로 이어졌다.3.1.3. 전설 모음화전설 모음화는 치경음 ‘ㅅ, ㅆ'과 경구개음 ’ㅈ, ㅉ, ㅊ'뒤에서 후설 고모음인 ‘ㅡ’가 ‘ㅣ’로 변하는 현상이다. 전설 모음화는 19세기 이후에 일어난 음운 현상이기 때문에, 현대 국어 어형으로부터 그 변이 및 변화를 파악하는 경우가 많지만, 근대에 일어난 음운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함은 물론이다.① ㅅ-계에 의한 것 : 씻다(←씃다), 시리다(←스리다), 싫다(←슳다)② ㅈ-계에 의한 것 : 짐승(←즘승←즘??), 질다(←즐다), 칡(←츩)③ 한자어 : 금실(琴瑟), 규칙(規則)전설 모음화는 대개의 변화 형태가 표준어로 자리잡았는데, 이는 움라우트가 방언에서 활발한 반면에 전설 모음화는 중앙어에서도 세력을 얻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3.1.4. 원순 모음화원순 모음화는 양순음 ‘ㅂ, ㅍ, ㅃ, ㅁ’아래에서 모음 ‘ㅡ’가 원순 모음 ‘ㅜ’로 바뀌는 현상이다.① 믈(水, 훈민정음) 〉 물 강(河, 왜어유해 상-9)② 블(火, 용비어천가) 〉불(역어유해 하-18)③ 플(草, 월인석보 9-23) 〉풀(동문유해 하-45)④ ?(角, 월인천강지곡 상-56) 〉?(동문유해 하-38)이에 따라 중세 국어에서 어휘 분화에 이용되었던 ‘브, 프, 쁘, 므'와 ’부, 푸, 뿌, 무‘의 대립이 근대에 들어 사라지다.
    인문/어학| 2004.12.28| 7페이지| 1,000원| 조회(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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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학] 고대국어의 차자표기 평가B괜찮아요
    ?차자표기?Ⅰ. 서언차자표기는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이용하여 국어를 표기한 것이다.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국어를 표기하게 된 것은 중국어와는 다른 국어의 어순 및 형태를 표기하고자 하는 언중의 욕구가 작용한 결과이다. 차자표기는 그 성격에 따라 고유 명사 표기, 이두(吏讀), 향찰(鄕札), 구결(口訣)로 하위 분류할 수 있으나, 공통의 근본적인 원리는 국어의 구조에 얹힌 차음과 차훈이다. 현재까지 이들의 구별은 표기법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단지 그 언어적 표현방식에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될 뿐이다. 즉 향찰은 전면적으로 국어를 표기한 것이고, 이두는 실용문인 이두문 속의 국어적 요소를 가르키며, 구결은 한문에 토(吐)를 달아 그 한문을 한국식 독법으로 읽는 것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구별하는 배경에는 형태론의 범위를 넘어 문장의 단위보다도 한 단계 높은 글의 단위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향찰, 이두, 구결은 향찰문, 구결문, 이두문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생각해야 그 구별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Ⅱ. 고유 명사 표기인명, 지명, 관명 등은 호칭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언어의 내용보다는 언어의 형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호칭이나 지칭에 있어서 해당 어휘의 음상이 언어 표기에 반영될 때는 그 표기는 번역보다는 음상(音相)을 충실히 나타낼 수 있는 표기 방법이 바람직한 것이다. 고대 국어의 차자 표기는 이러한 표기의 욕구에 의하여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廣開土王陵碑(414)에서-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옛적 시조 鄒牟王이 나라를 세웠는데.위의 명문(銘文)에서 고구려의 ‘鄒牟’는 고유 명사를 표기한 것이다. 이 표기의 특징은 표의 문자인 한자의 본래 의미가 반영되지 않고 단지 어휘의 음상만을 표기하기 위해 한자를 빌려 썼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鄒牟’는 여타의 문헌에 의하면 ‘朱蒙, 中牟, 都慕’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러한 이표기의 존재는 이들 고유 명사에 대한 표기에 있어서 당시의 한자음에 의해 음상만 동일하게 나타낼 수 있다면, 고유 명사 표기까지 보두 포함하는 것이니 차자 표기 전반에 대한 대명사와 같이 쓰이는 것이다. 이두가 이러한 개념으로 쓰인 것은 이 명칭이 생겨난 초기부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협의의 이두란 ‘이두문에 쓰인 우리말’을 가리킨다. 이두문이란 행정문서에 주로 쓰이는 실용적인 문장으로서 산문이 중심이 된다. 행정문서에 주로 쓰여 이서(吏書)?이두(吏讀)란 명칭으로 불렸지만 민간에서도 서간(書簡)이나 조성기(造成記), 발원문(發願文) 등에 널리 쓰인 실용문이다.이두문은 한자 어휘가 국어식 어순에 따라 배열된 초기의 것에서부터, 여기에 조사와 어미가 간략히 또는 자세히 표기된 후대의 이두문에 이르기까지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였으므로, 차자 표기의 형식면에서 구결이나 향찰보다 다양한 양상을 갖는다.1. 삼국시대의 이두1) 고구려의 이두이두는 고구려에서 이미 발달하였음이 분명하다. 현재 전하여 오는 삼국시대의 비문(碑文) 가운데 매우 이른 것으로 알려진 5세기 초의 광개토대왕비(414)에 이미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홍기문은 그 어순이 한문으로서는 어색하고 우리말의 어순으로 풀이해야 뜻이 통하는 문구가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이두적인 요소라고 하였다.-王臨津言曰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郞 鄒牟王 爲我連?浮龜-왕이 물가에 임해서 말하기를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요 어머니가 하백의 딸이요 추모왕이다. 나를 위하여 ?를 連하고 거북을 띄우라.에서 ‘추모왕’을 앞 구의 ‘母河伯女郞’에 연결시키거나 뒷 구인 ‘爲我連?浮龜’에 연결시키거나 어느 편도 문리가 통하지 않고 어색하다. 우리말식으로 그대로 두고 해석해 나가야 전체의 뜻이 명료하게 드러난다고 하였다.이기문은 이 비문의 맨끝에 나오는-其有違令賣者刑之 買人制令守墓之-令을 어기고 판 자는 형벌을 준다. 사들인 사람은 수묘를 하도록 한다.에서 앞 구의 ‘刑之’에 나오는 之는 목적어로 중국 한문에 어긋남이 없으나 뒤의 ‘守墓之’의 之는 목적어로 볼 수 없으니 중국 한문의 문법에 어나는 것으로 보고 이는 신라의 예들과 같이 문장의 종결형으고구려식 한문이고 이 한문에는 우리말의 요소인 이두적 표현을 섞어 쓰는 당시인들의 문장 의식이 나타난 것이라 하겠다.2) 신라의 이두신라 이두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은 바로 壬申誓記石이다.-壬申年 六月 十六日 二人幷誓記天前誓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若此事失 天大罪得誓若國不安 大亂世 可容行誓之-壬申年 6月 16日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여 기록한다.하느님 앞에 맹세한다.지금부터 3年 以後 忠道를 執持하고 過失이 없기를 맹세한다.만약 이 일을 어기면 하느님에게 큰 罪를 얻을 것을 맹세한다.만약 나라가 不安하고 크게 어지러운 세상이면 可히 용납될 수 있도록 행할 것을 맹서한다.이 서기석명(誓記石銘)은 한자를 완전히 우리말의 순서로 배열하였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 가운데서도 ‘今自’와 같은 표현은 개사까지도 우리말의 순서로 배치하였다는 점에서 기억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 어순식으로 한자 어휘가 배열되었다고는 하나 ‘可容行誓之’ 의 ‘之’를 제외한다면, 국어의 조사나 어미는 표기에 반영되지 않았다.2. 통일신라시대의 이두이 시기에 쓰여진 이두문으로서 현재 우리에게 남아 전하는 것은 25점이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금석문(金石文)이고 종이에 적힌 것이 3점, 삼베에 적힌 것이 1종 2점이 있다. 이와 같이 기록의 성격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교양이나 문예적인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내용으로 고문서의 성격을 띠는 것들이어서 후대의 이두문에 그대로 맥락이 이어진다.여기서는 新羅華嚴經寫經造成記(720)의 일부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이두의 모습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新羅華嚴經寫經造成記(720)에서-右 諸人等 若 大小便爲哉 若 臥宿哉 若 食喫哉 爲者香水 用? 沐浴令只但 作作處中 進在之-위의 여러 사람들이 만약 대소변을 하거나 만약 누워 자거나 만약 먹고 마시거나 하면향수를 써서 목욕시키어야만 만드는 곳에 나아간다.諸는 ‘모?’, 人은 ‘사?’으로 훈독되었을 것이다. 等은 ‘?’로 읽히는 훈독자로 토로 표기한 것이다. 若은 뒤의 爲者와 호응한다. 爲는 훈독자)의 뜻을 가진 종결어미나 연결어미 ‘거나’에 해당된다. 여기서는 뒤에 이어지는 哉 와 호응하여 연결어미 ‘-거나’로 해석된다. 臥宿哉의 臥는 ‘눕-’, 宿은 ‘자-’로 훈독되고 재는 ‘-거나’로 해석되어 이 어절은 ‘누워 자거나’로 풀이된다. 食喫哉의 食은 ‘먹-’, 喫은 ‘마시-’로 훈독되므로 이 어절은 ‘먹고 마시거나’로 해석된다. 爲者의 爲는 대동사 ‘?-’를 표기한 훈독자이다. 者는 ‘(으)ㄴ’으로 읽힌다. 여기서는 앞의 若에 호응하여 후대의 ‘-면, -거든’에 해당하는 조건법어미로 쓰였다. 따라서 이 어절은 ‘??으로 읽고 ’하면‘으로 풀이한다.用? 의 用은 훈독자로 동사 ‘ -’를 표기한 것이다. ?는 ‘금’을 표기한 훈가자이다. 이 ‘금’은 동사와 연결되면 어미 ‘-아/어-’를 취하므로 이 어절은 ‘ 어금’으로 읽을 수 있다. 令只但의 令只는 ‘시기-’나 ‘하기-’를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作作處中의 作作은 ‘질질’로 읽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作은 근대의 이주주해서에서 作文을 ‘질문’으로 읽는 것을 보면 그 훈이 ‘질’이었음을 알 수 있다. 處는 ‘곧’을 표기한 훈독자이다. 中은 처격조사 ‘긔’의 표기이다. 이 어절은 ‘질질 곧긔’로 읽고 ‘갖가지의 짓는 곳에’로 해석된다. 進在之의 進은 ‘낫-’으로 읽히는 훈독자이고 在도 ‘겨-’로 읽히는 훈독자이다. 之는 토로 평서법 종결어미 ‘-다’를 표기한 훈독자이다. 따라서 이 어절은 ‘낫겨다’로 읽고 ‘나아갔느니라’로 해석할 수 있다.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통일신라시대의 이두는 제한적으로 조사나 어미가 표기되어 있으나, ‘等, 者, 中, 之’등의 용례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국어의 형태를 좇아 표기했다기 보다는, 변체한문(變體漢文)의 속성을 벗지 못한 단계에서 어조사적인 용법에 의하여 국어의 문법 형태에 대한 대응 표기가 이루졌다고 하겠다.3. 고려시대의 이두淨兜寺造塔形止記는 1031년에 쓰여진 문서이면서도 그 내용이 다양하고 풍부하여 고려시대 전반기를 대표하는 이두자료라고 할 만한 것 成是白乎 願表爲遣 成是不得爲乎 天禧 二年 歲次 壬戌 五月 初七日 身病以遷世爲去在乙-석탑 五層을 조성하올 發願을 表하고, 이루지 못한 天禧 二年 임술 오월 초칠일에 신병으로 세상을 떠났거늘乙은 ‘을’로 읽히는 토로 대격조사이다. 成是白乎는 ‘일이?온’으로 읽힌다. 表爲遣은 ‘表?고’의 표기이다. 爲가 ‘?-’로 훈독되는 것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不이 ‘몯’으로 훈독되고, 得이 ‘실’로 훈독되어 ‘몯실?온’으로 읽혔다. 身病以의 以는 ‘-로’로 읽히는 조격조사이다. 여기서는 원인의 뜻을 나타낸다. ‘乙/을’은 연결어미이다. 후세에는 ‘-거늘’로 쓰이지만 이 시대에는 ‘乙/을’만으로도 같은 기능을 나타낼 수 있었다.이처럼 고려시대의 이두 표기는 조사나 어미의 형태에 있어서 ‘乙/을, 去/거’등과 같은 차음 및 ‘是/이, 爲/?, 以/(으)로’등과 같은 차훈에 의한 표기를 보이고 있으므로, 당시의 국어 형태를 어느 정도 재구할 수 있게 하는 단계로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Ⅳ. 향찰 표기향가에 표기에 쓰인 차자 표기법을 향찰이라고 한다. 향가는 『삼국유사』의 14수에 『균여전』의 11수를 합하여 모두 25수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향가는 실용문도 아니고 산문도 아닌 정형 시가라는 점에서 차자 표기의 성격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시가는 어휘 하나 하나에 정감과 율조가 실리게 된다. 그러므로 향가에 대한 차자 표기인 향찰이 조사나 어미뿐만 아니라, 실사의 표기에까지 이른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處容歌에서-夜入伊遊行如可/ 밤 드리 노니다가脚烏伊四是良羅/ 가로리 네히러라-밤들이 노니다가다리가 넷이러라위는 처용가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이두문은 문장의 중요한 어휘가 거의 한자 어휘이기 때문에 한문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대강의 의미를 파악하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향가는 그렇지 않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자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중요한 단어는 차훈하고, 중요하지 않은 단어는 차음하고 있는데, 즉 뜻이 주가 되고,
    인문/어학| 2004.12.28| 6페이지| 1,000원| 조회(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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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공학] 학습자중심교수학습법
    Ⅰ. 들어가는 말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은 지난 50여 년 동안 양적인 면에서 급성장하여 왔지만, 기본적인 교육패러다임에 있어서는 별다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직되고 획일화된 교육조직 속에서 교과서의 단편적인 지식을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두는가 하면, 객관식 평가로 인한 정답 고르기에 충실한 교육, 아동의 개별성을 고려하지 않고 전 학급 아동에게 동일한 방법으로 가르치는 교사 중심의 획일적 수업은 개성이 없는 기계적 인간, 하향 평준화된 인간을 키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학교 생활에서 대부분 교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지시하고 따르게 함으로써 아동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할 줄 모르고 구체적으로 지시해야만 행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21세기의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교육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산업화 사회의 요구와는 다른 차원과 수준의 교육적 요구가 정보화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학습자 중심의 교수-학습 방법에 대하여 보다 많은 관심을 표명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정보화 사회의 새로운 교육적 요구에 있다고 할 수 있다.여기서는 학습자 중심의 교수-학습 모형을 개별화 교수 모형, 구성주의 교수-학습 방법, 열린교육의 세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봄으로써 정보화 시대의 교육적 요구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지를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개별화 교수 모형1. 개별화 교수 개념'개별화 교수'란 학생들의 개인차에 따라서 교사가 학습사태를 구조화하거나 또는 구조화된 교수-학습 프로그램을 통하여 교수-학습활동을 전개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교수의 개별화는 개별학생의 능력, 적성, 성취수준, 동기 등의 제 특성과 요구수준을 고려해서 적절하고 타당한 교수방법 및 절차, 자료의 선택, 평가 등을 구조화시켜서 실천하는 교수체제를 말한다. 개별화 교수의 목적은 전통적인 교수법이나 집단적인 교수법을 탈피하여 학습자의 인지적·정의적·사회적 성장을 촉진시켜 주려는데 있다.학생들의 개인차에 따라 교수방법을반응유도, 반응의 정확성에 대한 즉시적 피드백 등이 포함된다.Keller는 PSI의 개별화 교수-학습체제에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교수-학습절차의 구성요로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즉 자기학습속도에 맞춘 수업통제방식, 목표도달 수준의 구체적 제시, 학습에의 동기화를 목표로 삼는 경우에만 강의법 적용, 교사와 학생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매개체로서 인쇄매체를 활용, 수업진행에 대한 감독 및 조력자(proctor)를 활용하는 등의 다섯 가지 요소를 포함해야 된다는 것이다.PSI교수-학습체제에서 교사의 주된 임무는 학습자의 학습을 촉진시켜 주는 조력자이며, 또한 학습이 효율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학습환경을 구성해 주는 관리자이다.PSI교수-학습체제의 핵심요소인 학습지침서, 명세적 교수목표, 소단위 학습과제의 구성, 자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학습보조자료의 개발 및 학습결과에 대한 피드백 등의 체계적 활용은 하나의 장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목표의 명세화와 소단위 학습과제의 분철화 및 퀴즈의 개발 등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 학습자들이 자기학습속도에 맞추어 수업을 진행하여 감으로써 기대하는 교수목표의 성취가 지연되게 되고, 탈락하는 학생의 비율이 다소 높다는 점, 시청각 매체의 활용이 소극적이거나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정보화 사회의 교육적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 체 연구 관심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강낙근, 「교수방법」, 보고사, 1997.Ⅲ. 구성주의 교수-학습 방법1. 구성주의 교수-학습관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철학적 인식론에 뿌리를 둔 구성주의를 바탕으로 교수-학습환경을 설계하려는 시도가 교육공학 영역 내에서 진행되어 왔다.구성주의에 대한 관심은 행동주의나 정보처리이론 등 지배적인 학습이론에 바탕을 둔 교수설계 혹은 교수전략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되었다. 구성주의 관점에서 볼 때 기존의 교수설계, 교수체제설계, 교수전략에 관한 이론과 모형은 대부분 객관주의 인식론에 바탕을 둔 학습이론에 기초하여 개발되었다.) 박성익 外, 「교육방법의 교육공학적 이 대한 해결안 혹은 자신의 견해나 입장을 전개하여 제시하고 설명하며, 나아가 옹호할 수 있어야 한다"(Duffy,1996)는 것이다. 이 학습자의 목표에 PBL의 추구하는 궁극적인 철학, 방향, 목표, 형태가 모두가 용해되어 있다.(1) 문제 혹은 과제를 다룰 때 문제의 성격과 방법을 제시.(2) 해결안이나 자신의 견해를 제시 - 개개인의 다양한 주장에 대한 가치존중과 권위부여, 획일적 정답형의 결과물 대신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결과물을 기대.(3) 자신의 견해에 대한 전개, 제시, 설명, 옹호 강조 - 관련 분야에 대한 충분한 전문적 지식 요구, 일련의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적 노력 필요.2) PBL학습환경의 구조적 특성PBL의 학습환경은 앞서 제시된 학습목표와 연결하여 4가지로 특정 지을 수 있다.(1) 관련분야에 실재하는 복잡한 비구조적인 문제들을 풀어가야 한다.- 문제해결안 도출 및 해결, 해결과정 중요시. (관련분야의 문제해결 및 비판적 사고력 습득)(2) 학습자 중심이다.- 학습자는 문제의 규명 및 해결과정과 결과에 책임, 결과도출과정의 논리적 주장, 자기평가.(3) PBL의 과정은 크게 자율학습(Self-Directed Learning)과정과 협동학습과정으로 나누어져있다.- SDL(자율학습) : 단순한 개별적 학습시간이 아닌 자신의 문제해결을 위해 어떠한 인지적 작용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이켜보는 시간.(4) PBL학습환경의 특성은 조별활동을 이루어 가는 협동학습환경을 강조한다.협동학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와 관점을 접하게 됨으로써 개인이 지닌 사고의 영역과 범주, 그리고 관련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넓힐 수 있고, 상대주의적 관점(모든 사회현상과 문제는 단일한 해결책으로 설명될 수 없다)을 익힐 수 있다. SDL(자율학습)을 통한 자신의 견해를 비교·평가받을 수 있다.3) PBL에 의한 프로그램설계PBL에 의거한 교육프로그램의 설계 및 개발이라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을 5단계, 즉 문제설계 및 개발의 과정, 문제의 성격, 자료나 조작적 형태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고 현실상황과 가장 근접한 형태로 모든 자료들이 제시되거나 전달되어야 한다. 즉 PBL의 근본적 취지의 실질적 상황과 가장 근접한 상황에서 실제적 과제의 성격을 띤 과제나 문제들을 풀어 감으로 인해 실제상황에서의 적응력을 높인다는 기본전제에 부합되어야한다.(4) 교사의 역할PBL이 근본적으로 학습자중심의 환경에서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조하는 것인 만큼 학습자들이 자아성찰적, 비판적사고를 잘 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문제해결의 도구처럼 습관화 또는 체질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① PBL 프로그램실시 전 : 문제개발 및 평가방법 결정, 학습자료 선정 및 준비 등.② PBL 프로그램 진행 과정 중 : 학습자들에게 문제해결을 진행해나가는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를 질문이라는 형태를 통해 학습자에게 시연(modeling)해 보여야함.(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해서 학습되는 내용과 문제해결을 이루어 가는 과정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함/ 교사의 견해를 불가피하게 제시할 경우 교사의 견해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강조/ 한 과제가 끝나고 나면 배운 내용에 관해 종합 정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함.)(5) PBL의 평가 - 학습자 중심이라는 전제가 우선되어야 한다.① 학습자 개인 스스로의 평가, 팀원간의 평가, 팀간의 평가 등이 모두 포함된다.② 평가는 학습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매시간 이루어지는 것으로 결과 만큼 과정을 중시한다.③ 평가의 방법에서도 학습자 스스로 자신의 학습에 대한 생각을 정리, 검토하고 프로그램 전과 후의 생각의 변화와 지식의 습득 등을 확인 할 수 있는 질문 등을 활용하거나 좀 더 많은 자료를 활용해서 종합 평가한다.) 강인애, 「왜 구성주의인가?」, 문음사, 1997.4. 상황학습1) 상황학습이론의 배경 및 특징전통적 교수 방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적 방법의 하나가 상황학습이론이다. 상황학습이론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사고는 그 사고가 발생하는 맥락에 의해 제한되므로 모든 지식은 그 지식이며, 그 경험은 실세계의 경험을 반영하는 풍부한 맥락 안에서 이루어져야한다. 따라서 학습에 있어서 맥락은 필수적 요건이 된다. 이때 제공되는 맥락은 실제적인 과제를 포함하는 맥락이어야 한다.(3) 전이전이란 학습한 지식이나 정보를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일상생활에 전이되지 못하는데 이는 학교에서 추상적이고, 일반적 원리를 배움으로써 모든 상황에 적용되기를 기대하나 사실상 전이는 구체적인 상황을 다양하게 체험해야 가능하다. 따라서 지식을 다양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맥락을 통해 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2) 상황학습이론의 적용 원리상황학습이론을 수업설계에 적용할 수 있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1) 지식이나 기능은 그것이 사용되는 상황이나 맥락과 함께 제시하라.지식이나 기능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용되는 보다 광범위한 맥락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지식이 관련된 보다 광범위한 맥락을 포함하는 프로젝트나 환경을 조성해야한다. 상황을 제공하는 방법은 크게 미시적 수준과 거시적 수준으로 나눌 수 있다. 미시적 수준은 전통적 수업에 사용해 온 것으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작은 사례나 맥락을 제공하는 것이다. 거시적 수준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유의미하게 해석될 수 있는 충분히 풍부하고 복잡한 맥락을 제공하는 것이다. 상황학습이론은 궁극적으로 거시적인 맥락을 제시할 것을 제안한다.(2) 실제적인 과제를 사용하라.실제적인 과제란 현실 세계에서 사용되는 과제를 말한다. 실제적인 과제는 사실성에 기초를 둔 것으로 복잡한 상황에서 핵심적 원리나 기능을 분석하고 구별하는 기능을 익히게 함으로써 실제 상황에서 지식의 전이를 촉진할 수 있다. 또한 실제적인 과제는 지식의 활용에 초점을 두는 문제 해결 상황이 중심을 이룬다. 실제적인 과제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사용되는 방법을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나 맥락을 고려해서 그 맥락 안에서 지식을 제시해야한다.(3) 구체적이고 다양한 사례를 사용하라.지식의 전이는 구체적이 있다.
    교육학| 2003.11.04| 8페이지| 1,000원| 조회(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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