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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철학]교육철학에서의 실학사상과 교육
    실학사상과 교육1. 실학사상의 성립실학이란 실사구시의 학문이라는 뜻으로, 이전의 유학이 경전의 해석이라든지 현실생활과는 동떨어진 분야에 머물렀다면, 실학은 실제 생활에 유익한 쪽으로 구해 나가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실학은 주관적 관념론인 성리학의 사상체계를 지도이념으로 한 17세기의 봉건적 사회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새로운 사상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 새로운 사조는 17세기 초엽부터 일기 시작한 무실적 기풍(務實的 氣風)과 반성적 기운, 그리고 자아의 자각이었다. 이런 기풍과 반성, 그리고 자각은 새롭게 전래되기 시작한 서구의 문물 및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더욱 확대되고 심화되어 18세기에 새로운 사상적 결정으로 실학의 학풍을 형성하게 되었다. 실학은 종래의 사장을 주로 하는 관념적인 학풍은 물론이고 현실에서 유리된 공리. 공담의 허구에 급급한 연역적인 학문을 배제 내지 지양하고, 경험적. 실증적. 귀납적인 연구방법을 토대로 이용후생(利用厚生)과 실사구시(實事求是) 그리고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문을 강조하게 되었다. 즉, 실학의 학문적 특징을 살펴보면, 모든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롭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실증학이며, 허(虛)에 대한 실(實)의 학문이고, 사실에 옳음을 구하는 실사구시의 학인 동시에 이용후생의 학이며 경세치용의 학이다. 이런 학풍을 가진 학파를 시학파, 국학파(國學派) 또는 경제학파(經濟學派)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실학교육의 대두배경을 살펴보면, 송학(宋學)인 주자학(朱子學)에 대립되는 명학(明學)인 양명학(陽明學)의 유입과 자극으로 인해 대두되었고, 궁극심성(窮極心性)의 송학에 대하여 새로이 창도된 훈고고증(訓?考證)의 한학(漢學)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하였다. 주자학에 대한 내성적 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종래의 사회체제의 경직화에 대응하여 현실적인 연구와 체계적인 사회정책의 대두이며, 연경(燕京)을 통한 서양문물의 유입으로 인한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실학연구를 살펴보면, 1980년대의 애국계몽운동가와 개화사상가들에 의해 주목되기 시작하여 정약용의 사상에 연구가 집중 되었다가 1929년에는 정인보의 학문적. 사상적 연구가 이루어졌다가 조선후기의 신학풍에 이어 실학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실학의 흐름을 살펴보면 정주학적 세계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며 새로운 자아각성의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시기를 나타내는 태동기, 사상적 측면보다는 자유롭고 다양한 현실적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지리. 사상. 어문 등 각 분야에 걸쳐 많은 업적을 이룩하는 성숙기, 영.정조의 탕평책과 문운흥기책으로 실학은 크게 고무 받아 국가사업에 반영되던 시기이며 구체적 내용을 담은 이용후생론을 추구한 전성기, 쇠퇴의 기미를 보이며 세력도 크게 약화되면서 이용후생학파는 문체반정의 탄압을 당하고 경세치용파는 천주교 교란에 휘말린 뒤 실학은 더 이상 적극적 개혁의지를 나타내지 않게 되는 쇠퇴기로 분류해 볼 수 있다.2. 실학자들의 관심분야실학자들의 관심분야를 살펴보면, 실학자들은 특히 농촌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당시 농촌경제의 안정 여부는 사회의 안위와 국가의 존폐에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실학자들은 농촌경제의 안정을 추구하여, 농민층의 입장에서 토지제도, 조세제도, 군사제도, 교육제도 등의 폐단을 시정하려 하였다. 실학자들은 토지소유의 편중으로 인하여 농민생활이 안정되지 못한다고 보고, 토지제도의 개혁을 가장 중요시하였다. 실학자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조선후기의 사회를 단순히 그 시대의 현실로서 이해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어지고 미래에 연결되는 역사적 현실로서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민족의 전통과 현실의 당면한 문제에 대하여 관심이 컸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의 역사, 강토, 언어 등의 연구에도 학문적 관심을 집중시켰다. 현실에 대한 절실한 관심이 새로운 역사의식과 문화의식을 고조시켰던 것이다. 실학사상은 조선 후기의 독특한 사상체계이다. 왜냐하면, 실학이 유학 사상에 토대하고, 유학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조선 후기 사회의 개혁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었던 학문이기 때문이다. 실학 운동은 사림의 성리학이 현실 세계에서 긍정적 의미를 상실하자, 현실에 토대하여 기층 세계의 입장에서 사회 모순을 개혁하고자 하였으니, 따라서 실학사상은 비판정신, 근대 지향 의식, 그리고 민중 중심으로 세계관을 강조하였다3. 실학파의 기본적인 학풍이용후생의 도를 강구하여 경국제민의 술(術)에 힘쓸 것을 주장하였고, 낙토조선(樂土朝鮮)을 만들기 위해서 조선의 역사. 지리. 물산. 풍토 등을 연구 제목으로 하였다. 북학론(北學論)을 주장하여 청조를 통하여 들어오는 외국의 문물제도와 학술 가운데 우수한 것은 수입. 활용할 것을 강조하였고, 고증학(考證學)에 대한 연구로서 고증학의 내용은 문헌적 고증에 이한 문자, 음운(音韻), 훈고(訓?)의 연구와 이에 바탕을 둔 고전의 해명. 정비이며, 실사구시를 주안으로 하는 실증성. 과학성이 있는 학문으로서 정밀한 귀납적 방법과 왕성한 비판적 정신에 기초했다. 실학의 학문적 토대를 살펴보면, 성리학의 세계관은 주관적 자연관인 반면에 실학의 세계관은 객관적 자연관으로서, 실학의 자연관은 자연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규범적인 인식을 극복하고 순수한 물질적 존재로 객관화 하는데 있다. 그리고 실학은 경험적인 실천윤리로서 인간의 윤리는 자연의 사변적인 원리에서 해방되어 사회적인 실천윤리로 전환하였고, 실학의 윤리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생활 윤리를 강조하였다. 또한 민족적 주체의식으로서 근대적인 민족적 주체의식은 중국 중심의 ‘화이론’의 세계관을 극복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며, 한국문화의 독자성을 발견하여 국사. 지리. 언어. 산업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실학사상의 의의를 간추려 보면 실학은 실용에 대한 관심, 현실비판정신, 실증적 방법론, 개방적 태도, 주체적 입장을 가진 학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민족의식과 근대지향 의식을 가진 것이라고 규정 지어 질 수 있으며, 봉건사회의 여러 현상에 대한 회의와 반항의 성격으로 유교를 근거로 한 봉건사회의 규범 안에서 형성되며 실천에 있어서도 보수적인 태도가 보인다. 정체된 봉건사회를 극복하고 근대정신을 잉태하는 태반의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의미를 가지고 그러므로 실학은 민족과 민족문화에 대하 주체적 인식을 전제로 한 조선 후기의 근대 지향적 과도기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교육학| 2006.07.20| 3페이지| 2,000원| 조회(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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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의과학]아름다운 성과 추한 성
    리포트라는 딱딱한 형식은 버리고 그냥 내 생각을 주절대보는식으로 적어보고싶다..아름다운 성과 추한 성이라...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게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성과 추한 성의 차이는 바로... 사랑 의유무가 아닐까..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지금도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물론 처음에는 이성적인 호감을 느껴서 정신적인 사랑으로 시작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신적인 사랑을 육체적 쾌감이 점점 지배해 가는건 아닌지..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건가? 아님.. 진정한 사랑을 못해봐서 그런가...하긴.. 그렇게 생각하면 아름다운 성이란건 존재할 수가 없게 되는건지도 모르겠다..이런 말을 들은 것 같다.. 여자가 자신의 몸을 허락할 때에는 남자를 믿고 자신의 마음까지맡기는거라고... 난 그말에 깊은 생각을 했고 그게 사실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얼마전에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내가 그말을 했을 때 친구들은 전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그건 말이 안된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내가 사랑을 너무 감성적으로만 보고 있는건지아님 친구들의 생각이 잘못된건지.. 확실한 결론을 찾기란 어려운 것 같다.. 남자만이 여자를이용대상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고.. 여자라고 그렇지 않다고만은 생각할 수도 없을 것 같기도 하다..아름다운 성과 추한 성이라... 다시 생각해 보니깐 쉽게 결론 지을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사랑 의 유무로서만 나눌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렇다면 교과서적이고 도덕적인 범주 안에 있는 것은 아름다운 성이라 말할 수 있고 그렇지 않는 것을 추한 성이라 해야하는건가..사회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상식적으로 비난 받지 않는 범주 내의 성이라면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는건가...생각 할수록 어려워 지는 것 같다..아름다운 성이라면 바로 내 자신이 추구해 나가고자 생각하는 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가 추구해 나가려는 성이라.. 처음에도 쉽게 말했듯이 내가 추구하려는 성은 상대방과의 아름다운 사랑속에서 숨쉴 수 있는 성이라 여겨왔다.. 물론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라고 반박해 온다면 나로서는 뭐라 할수 없다.. 내 자신도 확신을 가지고 있진 못하니깐..창녀촌, 원조교제, 동성애등... 주위에서 비난 받아오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비교과서적이고 도덕적인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람들 대부분이 비난해 오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저들의 입장에서 시야를 달리하여 생각해 본다면 이것들이 굳이 비난 받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들은 비록 쾌감만을 원하여 사랑이 빠져버린 성생활을 한다고 하지만은 이것은 그들 나름대로 추구해오는 아름다운 성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회과학| 2006.07.20| 1페이지| 1,000원| 조회(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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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자본주의와 재벌과 정경유착
    자본주의란??자본주의 사회란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자본가와 임노동자 사이에 생산된 상품을 시장을 통해 판매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사회이다.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를 말하며 봉건사회 와해시기에 생겨난 자본가와 임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에 초석이 되었다. 초기의 자본주의는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 에 의해 합리적으로 생산, 분배된다는 아담스미스의 이론에 따랐으나 실제 이윤의 불균등 분배로 인해 임노동자의 생활이 궁핍해 지게 되자 마르크스는 당시의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사유재산의 인정때문이라 지적하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수는 계속 증가하며 자본주의는 앞으로 경제 대공황을 겪게 되고 그 여파로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한다고 주장하였다. 몇 년 후 마르크스의 예언대로 과잉생산으로 인해 세계는 대공황을 겪게 되며 자본주의의 붕괴를 우려한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의 단점을 수정 보완하여 수정자본주의라는 이론을 펼치며, 아직까지 자본주의의 틀을 계속 유지해 오고 있다.재벌과 정경유착의 개념..재벌이란 어떤 사회적 조직인가? 재벌의 사회조직으로서의 특징을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재벌은 본인의 선택에 따라 가입되는 이익집단적인 2차 조직집단이다.출생부터 숙명적으로소속되는 집단도 아니고 이익에 따라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게 결정되는 조직이다.둘째, 재벌은 목적을 지닌 조직이다. 재화의 생산을 위한 협동조직,즉 생산공동체이다.기업주에게는 부를 창출하기 위한 인간조직체이며 노동자에게는 물질 또는 성취감등의 보상을 받고 노동을 제공하는 일터이다. 즉 재벌은 노동과 대가로 이어지는 타산적 조직으로서의 기업집단이다.셋째, 재벌은 범계급적 복합집단이다. 기업을 구성하고 있는 성원들은 사회의 모든 계층을 대표하고 있다. 기업소유주, 관리직, 사무직 그리고 단순근로직 종사자들은 사실상 사회의 전 계층을 망라하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따라서 하나의 기업내에는 사회내에서 서로 대립하는 이념들이 거의 그대로 공존하게 된다.이런 의미에서 재벌은 그 자체로서 어느 한 계층의 이익이나 한가지 이념을 대표하는 정치집단과는 전혀 성질을 달리 한다.넷째,재벌은 초지역적 집단이다. 기업과 재벌은 기업운영에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할 인원을 전문성을 기준으로 선발하여 고용하기 때문에 하나의 복합기능 집단이다. 재벌은 일반적으로 지리적 집단도 아니고 혈연 집단도 아니다.이상과 같은 여러 특징을 종합해 보면, 사회조직으로서의 재벌은 이념공동체도 아니고 혈연, 지연과도 관계가 없고, 계급적 동질성도 갖지 않은 집단이며 이익의 공정성도 희박한 선택적 생활공동체라 할수 있다. 즉, 조직체로서는 재벌은 어떤 정치적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재벌은 그 자체가 정치적 집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인간 조직체로서가 아니라 부의 집단으로서 작용할 때 생겨난다. 민정치체제에서 재벌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는 정치자금의 공급자 라는 점에서 두드러진다.재벌은 정치자금을 특정 정당 혹은 정치집단에 공급함으로써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친다.그런 뜻에서 재벌은 정치를 지배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한편 재벌의 흥망성쇠는 정치적 결과에 의하여 영향을 받으며 특정 정치집단의 비호로 성장할수 있고, 또한 반대로 특정 정치집단의 탄압에 의해 위축될 수도 있다. 그런 뜻에서는 재벌은 정치적 결정의 대상물이라고도 할수 있다. 이렇듯 재벌과 정치권력집단과는 서로가 서로에 영향을 주는 양면적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가 비합법적으로 이루어질때 정경유착이라고 부른다.재벌은 정치적 이익집단이 될수 있는가? 그렇게 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기업 종사자는 기업을 생활공동체로 인식하고 있으나 정치적 이념이나 이익을 공유하는 공동체로는 인식하고 있지 않다. 기업 종사자들은 기업에 대해서보다 월등히 동일계급 구성원에 대하여 더 높은 충성심과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는 재벌을 지역공동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준공공조직으로 보아야 한다.결국 재벌은 정치적 이념을 같이하는 인간집단으로서는 의미가 없고 오직 부의 집단 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를 가지며, 재벌과 정치와의 관계도 소유주와 정치세력과의 관계가 의미를 가질 뿐이지 기업 종사원과 정치세력과는 아무런 의미있는 관계도 없다. 즉 재벌과 정치와의 관계는 기업주와 정치와의 관게일 뿐이며 재벌기업의 종업원으로 구성된 인간집단과 정치와의 관계는 아니다.재벌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거론되는 부정적 평가는 이른바 정경유착 문제이다. 정경유착이란 문자 그대로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할 정치권력과 기업이 떳떳하지 않는 방법으로 밀착되어 있는 경우를 뜻한다. 즉, 기업은 법이 허용하는 공정한 경쟁규칙에 따라 자유시장 속에서 이윤추구를 해야하며 정치권력의 비호 및 특혜 등 공정성을 깨는 변칙으로 사업을 해서는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정치자금과 특혜를 거래하는 현실을 정경유착이라고 하는 것이다.정경유착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516군사혁명 이후이다. 새로 등장한 군사정권의 비호로 새로운 기업이 생성, 성장, 지배하게 되면서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제5공화국 시절에 더욱 심화되어 전혀 존재도 없던 기업이 정치권력의 비호로 하루아침에 대기업, 그리고 재벌로 변신한 예가 많아지면서 정치문제로 발전되어 소위 5공비리 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게까지 된 것이다.정경유착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정치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첫째로 문제되는 것은 정치권력에 의한 경제질서의 파괴이다. 정치권력의 간섭으로 인하여 경제내의 공정질서가 무너지고 선의의 경쟁체제가 깨어져서 특혜받은 소수 기업인을 제외한 다른 기업인의 의욕을 감퇴시키는 질서교란 문제가 가장 직접적 정경유착의 영향이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불공정 특혜는 기업의 논리성 파괴, 법질서에 대한 공신력 저하,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저하 등의 부차적 효과를 동반하기까지 한다.둘째로 정치권력 부패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정경유착은 비난받고 있다. 즉, 정치권력이 국가사회를 위한다는 대의를 기준으로 행사되지 않고 사기업의 이익증대를 위하여 행사됨에 따라 수혜기업은 정치권력에게 반대급부를 제공하게 되고, 이것이 반복됨에 따라 정치권력이 반대급부 그 자체를 위하여 권력을 행사하게 되면 결국 부패의 길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셋째로 재벌 일반에 대한 국민의식을 부정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도 정경유착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재벌은 성실한 노력과 기업주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비호와 특혜로 성장한 몇몇 기업으로 인하여 국민의 의식속에는 재벌 일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심어지게 되었다.넷째로 정부권력의 재벌 예속화도 문제가 되고 있다.전체국민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사되어야 할 정부의 권력이 재벌이 공여하는 정치자금에 매수되어 재벌소유주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사 된다면 일반 대중의 눈에는 정부가 소유계층의 착취적 지배도구로 전락한 것으로 비추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고 사회에는 반체제 의식이 팽배해지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재벌의 정치자금 공여는 집권여당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력의 예속화 문제는 더욱 부각된다. 특히 집권정부가 반민주적인 전제정부인 경우에는 집권여당에 집중적으로 정치자금을 공여한 재벌도 전제정부의 공범자로 인정받게 되어 국민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며,재벌 문제는 단순한 경제문제의 차원을 벗어나 정치문제로 확대되는 것이다.5 16 이후 탄생한 박 정권은 쿠데타로 인한 정권의 정통성의 미약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을 타개하기 위해서 5 16직후에 농촌 고리채를 정리하고, 민주당 집권당시의 부정축재자를 처리하였다. 또한 자유방임적 경제구조에서 경제적 자립이라는 미명하에 강력한 정부주도의 경제 정책을 실시하였고,이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경영/경제| 2006.07.20| 4페이지| 1,000원| 조회(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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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사회]학교붕괴와 대안학교
    학교 붕괴학교붕괴 현상 - 학교 떠나는 청소년, 한해 6만명...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이 한 해 무려 6만명을 넘고 있으며 전년에 비해 8%나 늘어났다. 이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따라서 이들을 위한 대안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음악을 좋아하는 전 모군은 지난 4월까지 인문계 고등학교의 수험생이었다. 그러나 정 군은 대학진학에 대한 생각이 없어지자 숨막히는 학교에 하루도 더 머물기 싫었다고 말한다.수업 끝나고 방과 후에 농구를 해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무슨 농구를 하냐. 대학 안 가냐, 너 미쳤냐 그러고.이처럼 자발적으로 학교를 거부한 청소년이 최근 부쩍 늘었다. 또 여러 사고로 학교에서 쫓겨난 학생들에게도 학교는 다시 돌아가기 싫은 곳이다. 사고친 것도 있고, 공부는 둘째 치더라도 선생님들이 학생 입장을 잘 고려 안 해준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학교는 다니는 아이들에 대한 건강한 보호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다수를 위한 보호가 이것이 소수에 대한 포기로 나타나고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이다.최근 한 조사에서도 교사의 80%, 학생의 68%가 학교를 떠난 학생들을 위한 대안교육이 필요하다고 대답할 만큼 교육체제가 절실한 실정이다.- [KBS뉴스 9](2001.10.21) -더 이상 학생들은 교사의 말에 귀 기울지 않고, 교사들도 그러한 아이들을 훈계하지 않는다. 최근 이러한 교실의 모습들이 대중매체를 통하여 적나라하게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학교붕괴에 대한 논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원래 학교붕괴란 일본에서 많이 사용된 용어로써, 교사의 수업에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들이 잡담을 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안을 돌아다니거나, 교실 밖으로 나간다거나 교사에게 물건을 던지고 폭언을 하는 등 학생들의 난폭한 행동으로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수업의 불성립, 교사의 지도력 결여 등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의도적인 난폭성에 의한 것이 아닌 돌교46.210.825.915.84.4인문계고등학교37.510.242.023.44.8실업계고등학교37.416.937.927.311.3교사들의 경우 교육제도 및 구조의 경직성(40.6%), 교육부의 정책실패(31.4%), 학생문화의급변(20.9%), 교육에 대한 매스컴의 보도(10.8%)의 순으로 나타났다. 그에 비하여 학생들의 경우에는 주입식교육(40.0%), 교육제도 및 구조의 경직성(36.5%), 교육부의 정책실패(22.1%), 사회변화에 대한 교원들의 무지(11.8%)의 순으로 나타났다. 교사들의 반응은 대체로 학생문화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경직된 교육제도 및 구조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학교붕괴가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반면에 학생들은 주입식교육과 교육제도의 경직성 그리고 사회변화에 대한 교사들의 무지로 인하여 학교붕괴현상이 발생, 촉진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렇듯 교사와 학생들의 주입식 교육에 대한 인식에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주입식교육에 별다른 문제 의식이 없는 대부분의 교사들이 주입식 교육을 계속 고집한다면 학생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이것은 학교붕괴 현상을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2) 탈학교론의 등장이러한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탈학교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탈학교론이 무엇인지 알아보자.탈학교(deschool)란 말은 이반 일리치가 처음 사용했으며 학교의 억압에서의 해방이라는 의미로 탈학교화 사회라고 부른다. 탈학교론자들하면 반학교주의자와 같이 인식하여 학교 비판론자들로 생각하지만 학교론자들은 일리치(I.Illich)와 레이머(E. Reimer) 그리고 이들의 선구자인 굳맨이 있다. 굳맨은 「부조리한 성장」, 「의무교육의 실패」 등의 저서 속에서 현대사회에서의 청소년 문제를 지적하면서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 일리치는 「탈학교화 사회」 저술하였고, 레이머는 「학교는 죽었다」를 펴냈다. 이들이 학교에 대한 기본적인 성격에 대한 비판은 첫째, 강제적인 교육과정, 매일하는 출석, 특정 연령층 전문가로서의 교풀이식 보충수업도 한편에서 진행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들을 수 있다. 전체 구성원이 참가하는 ‘식구총회’와 ‘간담회’는 물론 토론식 수업과 일상화된 대화 속에서 자율성을 키워나간다. 19일에는 고등학교 간담회가 열려 선생님까지 참여한 가운데 인성교육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대안학교 다운 수업을 하고 있는지를 놓고 심각한 토론을 벌였다.“대학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하려는 아이들의 심리적 고립감을 이해하고 용기와 철학을 제공하고 있는지”와 “자유와 방종을 구분 못하고 기본이 되는 회의도 형식적으로 참가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과연 간디학교가 제대로 되겠는지”를 교사와 스스로에게 물은 것이다.지난해 고3들은 15명 가운데 10명이 대학 진학을 바랐고 5명은 직업을 선택해 자기 길을 차고 갔다. 올해는 어떨까.“글쎄요. 한 명은 한양대 수시모집에 합격했고 다른 한 명도 일본국제대학 진학이 결정됐습니다. 남은 16명도 수능 원서는 일단 다 썼지만 실제 어떨지는 있어봐야겠죠. 겉보기에는 절반 정도가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철학이 좋고 재미있어서 내달 치러지는 한신대학교 철학과 수시모집 응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김재은군이 하는 말이다.간디 학생들은 사회에서 이미 서열화된 기준으로 본 일류대학 가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다른 학교 아이들이 열심히 지식공부할 때 다른 공부도 하면서 즐겁게 지내 놓고 이제 와서 이른바 일류 가야겠다면 정직성과 형평성에도 어긋나죠.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일 줄 압니다.”“학교를 찾는 분들의 상투적 질문 가운데 하나가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적응할 수 있겠냐는 건데요, 대학 간 졸업생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달라질 겁니다. 다른 학교 나온 친구들이 대학 들어와 왜 그렇게 노는지 알 수 없다는 건데요 ,자기 스스로 진로를 결정해 공부하려고 진학한 사람하고 그렇지 않은 이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겠지요.”(경남도민일보, 2001/09/24)2 . 과연.. 대안 교육이란?(1) 개념대안학교는 1920년대를 전후해 획일적인 공교육 제도를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작은 학교 , 혹은 지역에 기초한 교육 프로그램 의 만남은 첫째, 그 운영이 주민들(특히 어머니들)에 의해서 직접 이루어지며, 둘째, 생활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자녀 교육에까지 관심의 폭이 확장됨으로써 주민이 자기 지역 사업이나 운영, 발전에 건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사회변혁 운영으로서의 주민자치 운동의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III. 교육 주체의 원상회복흔히 교육 주체라 하면, 교사·학부모·학생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교육의 발달과정에서, 학부모로서의 지위는 박탈되었고, 나머지 교사와 학생 두 교육 주체간의 관계도 상호적인 것이 아닌, 일방적인 관계로 뒤틀려 버렸다. 우리의 대안교육 실천들은 한결같이 이처럼 뒤틀린 교육 주체간의 원상 회복을 첫 출발점으로 삼고 잇다. 교육주체의 원상 회복에서 특히 두드러진 특징은 학부모(학교운영위원회라는 제도가 생겨나기 이전에도 이미 풀무농업기술학교 에서는 학부모회가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여 왔는데, 육성회와 연계되어 그 예산도 학부모가 편성하고 기숙사비 등의 모든 결정을 학부모 스스로 결정한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 의 교육 주체로서의 자각과 교육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용기이다.사실 어머니 의 교사로서의 중요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식되어 왔다. 신사임당이나 맹자의 어머니가 그 화신이고, 페스탈로치나 프뢰벨 등과 같은 서구 교육의 거장들도 가장 훌륭한 교사는 어머니 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자기 자녀의 최초의 교사 로서의 어머니 의 제자리 찾기 가 우리의 대안 교육의 뚜렷한 특징으로 자리잡고 있다.IV. 나의 변화를 통한 교육우리는 지금의 잘못된 교육을 교육 관련법이나 제도, 교육, 이론, 교육 내용, 교육 방법 등의 탓으로 돌려 왔다. 그런데도 나아지는 기색은 별로 없다. 그래서 이제는 고름 심지가 우리 생각과는 다른 곳에 깊이 박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봄직 하다.제도권 교육 현장에 느닷없이 열린 교육 강풍이 몰아치고 잇다. 그러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정적인 지지단체, 즉 재단법인이나 연합 또는 조합 등 다양한 조직에 의해 학교가 운영된다. 예컨대 교육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 문제는 당국과 교섭을 하고 학교의 재정적인 상황을 조사하며 학부모들과 학교에 내는 기부금과 재정확보에 대해서 의논한다. 학부모들이 내는 돈은 학비로서가 아니라 학교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며, 교사들의 보수는 봉급이 아닌 일종의 사례를 받는 정도이므로 다른 공립 교사들 보다 재정적인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발도로프 학교는 학부모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이 돋보인다. 학부형들로 구성된 학부모회나 학부모-교사 연대협의회 등의 각종 기구를 통해 학교의 중요한 문제를 다루며, 학교 재정과 경영에 있어서도 공동 작업을 수행한다. 학부모회의와 교사집단에서 선출된 대표자들로 구성된 이사회는 경제, 재정상의 계획과 학교의 운영을 떠맡는다. 학부모들이 재정은 물론 법적인 절차까지 책임을 지며, 교사의 임명권도 행사한다.*교육과정*통합적 교육과정 발도로프 학교의 교육과정은 슈타이너의 인지적 발달론에 근거하여 구조화되어있기 때문에 전인적인 교육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지적 교과와 함께 예술, 종교, 노작 교과가 중요시되며 인간의 생활 조건에 적합한 다양한 종류의 수업 활동을 전개한다.II. 우리나라 경우1정규학교형제도교육 밖에 존재하지만 일반학교와 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형태로 간디학교, 거창고등학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영산성지학교 등이 있다.-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이 학교의 설립목적은 지역의 교육력을 활용하며, 학교도 지역의 일부로서 역할해야 하며 나아가 학교가 자치적인, 협동적 지역사회 형성의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는 인문, 실업 통합형 고등학교를 지향하며 인문교과 내용지도와 농업기술을 가르쳐 지역의 일꾼을 길러낸다.*교육이념 및 목적*성서에 바탕을 둔 인생관과 기본적 학문과 실제 능력에서 균형 잡힌 평민, 하나님과 이웃, 지역과 세계, 자연과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사는 평민을 했다.
    교육학| 2005.12.14| 17페이지| 1,500원| 조회(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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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를 읽고...역사서에는 별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터라 처음 교수님으로부터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를 읽어보라는 말을 듣고 지금 수업을 받고 있는 경제체제론과 그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하였다. 빨리 읽고 싶은 욕심에 얼른 학교 도서관과 다른 곳에서 찾아보았지만 책을 구하기 힘들었다. 결국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인터넷으로 구입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한 장씩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원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하여 교수님은 책에 빠져들어 금방 읽었다고 하셨지만, 나의 경우에는 다른 과목의 레포트와 중간고사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읽었지만 결국 중간고사가 끝나고 거의 보름 만에 책을 다 볼 수 있었다. 우선 이 책을 통하여 예전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닐 때, 국사책에 등장하던 송시열이란 인물을 당시의 시대 상황과 함께 새로운 측면을 비롯하여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가 일생을 살았던 시대는 인조반정문제나 인조를 이어 왕위를 물려받아 북벌을 외치던 효종의 갑작스런 죽음, 이를 둘러싼 예송논쟁을 비롯하여 조선조 최고 당쟁의 시기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당쟁의 시기의 중심에 송시열이 있었고, 송시열은 조선시대 최대의 당쟁가로 서슴없이 온몸을 당쟁에 내던졌다. 논란의 양극단에는 항상 다른 당파들이 있었고, 각 당파들은 서로를 증오하고 저주했고 이런 증오와 저주의 결과로 결국 송시열은 83세에 죄인들의 수괴 라는 애매한 죄목으로 사약을 마시고 사사를 당하고 만다.이러한 내용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서인들의 오로지 권력을 장악할 야심으로 광해군과 북인 정권을 끌어내리려는 인조반정으로 인하여 신하에 의해서 한 나라의 임금이 바뀌고, 또한 그들은 명나라를 향한 의리란 뜻의 항명대의 또는 명나라를 숭상하는 의리란 뜻의 숭명의리를 드높였다. 이러한 친명배청의 정책의 결과 삼전도의 치욕을 낳은 꼴이 되었고, 이후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 문제와 시간이 흘러 귀국 후의 소현세자의 스승이었던 송시열은 드디어 출사길에 올랐다. 송시열을 조선 역사상 최대의 당쟁가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가 조정에서 벼슬한 기간은 불과 몇 년에 지나지 않았고, 그가 조정에 출사해 정승의 임무를 수행한 날은 49일에 불과했다. 나머지 기간은 고향에서 학문을 닦고 문인들을 길렀으며 배후에서 집권당인 서인과 노론을 조종했던 것이다. 병자호란으로 결정적 타격을 입은 인조, 그리고 둘째 아들로서 소현세자의 장남 석철의 자리를 차지한 효종으로서는 산림의 지지 여부가 왕권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지주가 되므로, 송시열에게 자주 벼슬을 제수한 것이다. 송시열이라 함은 국사책에서 효종과 함께 북벌을 함께 외치던 인물로 배운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으나, 송시열의 북벌론은 실제 무력으로 청나라를 정벌하는 무력 북벌론이 아니라 명나라의 은혜를 잊지 말고 우리의 힘을 길러 청나라와 국교를 단절하자는 명분적인 북벌론이자 제한적 북벌론에 그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청나라가 중원을 지배하는 현실을 뒤바꾸지는 못할지라도, 자신의 정체성만을 끝내 지키자는 자기 정체성론이었던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효종은 명분론자가 아닌 현실론자로 송시열처럼 국력을 길러 청과 국교를 끊고 이미 망해버린 명을 섬기는 따위의 명분적인 북벌론은 아무 의미가 없었고, 군사력으로 청나라를 정벌하자는 글자 그대로 북벌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북벌론을 수행하는 데에는 문신들의 반발이 거세었고, 송시열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효종이 치안을 중시한 데 비해, 송시열과 송준길은 시급한 것은 치안이 아니라 군주가 몸을 닦는 수신이라 하였으며, 효종이 군비확장을 주장한 데 비해, 그들은 안민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즉 효종의 일차적 관심이 군사적 북벌에 있었다면 송시열의 일차적 관심은 다른 데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주자가 주인이 되는 주자의 나라를 만드는 데 있었던 것이다. 한 나라의 대신이 나라와 백성을 위한 현실적인 문제는 뒷전이고, 학문적인 명분만을 쫓는 이상만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문제 등의 소동이 일어났으며, 또한 효종의 법적인 어머니 자의대비 조씨가 아들의 국상 때 얼마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벌어진 제1차 예송논쟁이 일어났다. 예송논쟁을 간단하게 말하면 효종이 승하했을 때 모후 자의대비가 장자의 예를 따라 3년복을 입어야 하는지 아니면 차자의 예를 따라 1년복을 입어야 하는지에 관한 논쟁이었으며, 예송논쟁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전례 문제에 지나지 않지만, 내부적으로는 변칙적으로 왕위를 계승한 효종의 종통이 정당한가하는 문제이자, 당시 신분제 사회가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현안으로 등장한 서얼허통 문제나 노비종모법 문제 등 여러 가지 사회 개혁 현안에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또 당시에 이러한 예론이 정권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게 대두한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는데, 하나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신분제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에 위기감을 느낀 사대부들이 수구적인 예론으로 지배질서를 계속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억울하게 비명에 간 소현세자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왕가의 왕통은 일반 사대부가의 종통과 다른 차원의 질서인가 아니면 같은 성격의 질서인가 하는 서인과 남인의 시각차가 있었는데, 바로 이 점이 예송을 정권 차원의 논쟁으로 격상시킨 주된 요인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후 예송논쟁은 격렬하게 진행 되었는데, 인조반정 이후 야당으로 출발한 남인들은 예송논쟁을 이용하여 야당의 지위에서 벗어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국왕을 자당 지지 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3년설을 주장하였고, 반면 서인들은 왕권과 신권의 차별보다는 치자 계급인 사대부의 보편성을 중시한 것이었다.시간이 흘러 이후에 현종의 어머니인 인선왕후 장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제2차 예송논쟁을 불러 일으켰는데, 제2차 예송논쟁은 효종비 인선왕후가 승하했을 때 역시 당시까지 생존해 있던 자의대비가 장자부의 예에 따라 1년복을 입어야 하는지 차자부의 예에 따라 9개월복을 입어야 하는지에 선택해 적통을 물려준 것은 천하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효종이나 인선왕후는 장자. 장부의 복을 입을 수 없으니 자의대비의 복제는 9개월복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었고, 이것은 현종의 왕통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현종이 서인들이 의정한 대공복을 기년복으로 바꾸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집권당 서인에게는 국왕의 명령보다 당론이 더 중요했다. 나라의 권력이 신하에게 있고 임금에게는 있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리하여 현종은 서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정권을 갈아치우기 위해 집권당을 교체하려는 승부수를 던지고 남인 세력을 정권에 등용하기 시작했으나, 이러한 정권교체 와중에 34세의 젊은 나이에 끝내 세상을 뜨고야 마는 이변이 일어났다.현종의 뒤를 이은 숙종은 어린 나이로 예송논쟁의 마무리를 해야 하는 큰 과제를 떠안게 되었고, 이는 체이부정의 당사자인 송시열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나는 문제라 할 수 있었다. 숙종은 제1차 예송논쟁 당시 송시열의 기년복설을 공박하다 좌천된 허목을 대사헌에 발탁해 서인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예송논쟁의 또 한 당사자인 윤휴를 사헌부 장령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송시열과 예론을 벌이다가 죄를 입은 인물들을 모두 신원하였다. 이에 서인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고, 숙종이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들에게 강경한 자세를 취하자 현종의 급서로 낙담했던 남인들은 기뻐했다. 이후 남인들은 송시열을 체이부정 문제를 끌어들여 탄핵하고 나섰으며, 결국 송시열은 함경도 덕원으로 유배되었다. 드디어 남인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나선 것이었다. 송시열은 유배지를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고, 남인들의 권력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하지만 허적의 연시연에 허견이 무사들을 모아 정변을 일으킬 거라는 소문과 이런 남인정권에 위협을 느낀 숙종은 국사의 파트너를 서인으로 바꾸는 경신환국을 단행했고, 6년여 만에 남인들의 세상이 가고 서인들의 세상이 다시 돌아왔다. 이는 송시열의 세상이 다시 온 것이기도 했다. 서인들에 의한 남인들을 처단하는 복수가 이루어 질 것은 그에 대한 처벌을 둘러싸고 젊은 사류들과 서인 정권의 실세들 간에 논란이 일어났다. 이는 훗날 서인을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게 하는 한 계기가 되는 일이었다. 당론과 정권에 얽매여서 자신들을 지켜내기에 급급한 사대부들은 왕권과 연관되어 권력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고, 이는 조선 왕실의 끊임없는 분쟁과 많은 이들의 죽음을 가져오는 비극을 이어나가는 원인이었다.숙종에게는 후사가 없다는 큰 문제점이 있었는데, 그는 김만기의 딸인 인경왕후와 민유중의 딸인 인현왕후 두 왕비를 두었지만 인경왕후는 경신환국이 이루어지던 숙종 6년에 천연두로 사망하고, 그녀가 낳은 세 딸도 모두 일찍 죽고 말았다. 다음해에 숙종은 15세의 인현왕후를 맞이했으나 20세가 다 되도록 왕자는 물론 공주도 낳지 못하고 있었다. 이즘은 숙종은 장희빈이라고 불리는 장옥정이란 궁녀 출신의 여인을 만나게 되지만, 그녀는 천인 신분에 불과했고 집안이 남인가와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서인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하지만 이러한 긴장 상태 속에서 왕자가 탄생하였고, 천지에 핏줄이라고는 없었던 숙종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으나, 서인들은 어린 왕자에 대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숙종은 왕자와 장씨의 지위를 튼튼히 해놓지 않으면 장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자신할 수 없는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왕자가 태어 난지 3개월이 채 안되어 왕자의 명호를 정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왕자의 명호를 짓는 것은 단순한 명호가 아니라 원자의 명호를 짓겠다는 뜻이기 때문에, 원자의 다음 수순은 세자이므로 원자 정호 문제는 왕위계승과 관련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비록 정비가 아닌 후궁의 소생이라 하더라도 원자로서 정호 되면 자연히 다음 세자가 되는 것이었다. 이는 서인 정권에게는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할 일이었고, 실제로 송시열과 서인들은 여기에 정권의 운명을 걸었다. 하지만 숙종의 생각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그는 서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호 문제를 거론한지 5일 후에 장씨가했다.
    독후감/창작| 2006.01.08| 4페이지| 1,000원| 조회(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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