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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영국의 르네상스극 평가A+최고예요
    연극의 이해----------------[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 ]{목 차.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의 특징.토마스 키드 (Thomas Kyd).크리스토퍼 말로우 (Christoper Marlowe).셰익스피어 (Shakespears).참고문헌. {-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의 특징영국과 스페인 등 두 유럽국가들은 16세기 말 이전에 강력한 대중극단과 주요 희곡작가들을 배출했다. 그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에 대한 관심의 부활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나 그 보다는 자국의 중세적 유산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이러한 발전의 사회적 배경에는 상업무역의 발달, 세계국민으로서의 자부심, 엘리자베스 여왕 (1533 ∼ 1603)의 즉위, 전통적 중세상과 르네상스 사상의 적절한 융화, 연극에 관한 귀족과 대중사이의 차별 해소 등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직업극단의 출현15세기 말까지는 영국에도 유랑연예인들이 있었으나 배우들은 당시 법에 따라 부랑자나 건달들이었다. 그러나 귀족의 집안에 부속된 연기자들은 이 범주에서 제외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배우로서보다는 하인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연기는 1572년에 처음으로 합법적인 직업으로 인정되었다. 왕의 칙령이 발표되어 각 극단으로 하여금 한 귀족으로부터, 또는 두 치안판사(지방관리)들로부터 면허를 받도록 하고, 이 밖의 모든 사람에게는 공연활동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이 칙령으로 인해서 영국 극단의 수효는 줄어들게 되었지만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최초로 배우로서의 분명한 법적 신분이 부여되었다.1582년의 이 칙령은 지방관리들이 극단에게 면허를 주도록 했으나 1574년에 새로운 칙령이 발표되어 왕실축하연 담당관에게 모든 희곡의 검열과 극단의 면허를 담당하게 했다. 이로써 영국의 연극은 중앙 정부의 직접통제를 받게되었다..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발전에 영향을 준 요소1580년대 말에 등장한 연극은 그 이전까지 있었던 많은 요소들의 영향을 받은 바가 크며, 그 중에서도 학교, 대학리아 시극의 표준 시형이 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P.셸리, A.테니슨 등 낭만파 시인에 의하여 사용되었고, 20세기에는 T.S.엘리엇이 극시에서 이 시형과 산문의 중간형식을 사용하였다.를 완성시킨 것, 한 사람의 강한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그의 동기를 철저히 파헤치면서 작품을 구성한 것 등이다. 그밖에 말로우는 역사극을 최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작품세계토마스 키드의 희곡으로는 한 목동이 유럽의 정복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비극 탬벌린 대왕 (Tamburlaine the Great, 2부, 1590) 과 파우스트 박사 (Dr. Faustus, 1592) 가 특히 유명하다. 그밖에도 물욕의 권화라고나 할 사나이를 그린 비극 '몰타섬의 유대인 (The Jew of Malta, 1589)', 영국사극 에드워드 2세 (the Trouble some Raigner and Lamentable Death of Edward the Second, King of England, 1592)', 프랑스 사극 파리에서의 학살 (1593) 등이 있다.이러한 극의 공통적인 특징으로는 물욕·지식욕·정복욕 등 한결같이 인간으로서의 규범을 벗어난 욕망에 휘말려 거의 좌절해 가는 주인공을, 그것도 구성의 졸렬함 따위에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당대 연극의 기조를 이루었던 무운시로 발표한 것이다. 시작(詩作)에는 미완의 서사시 히어로와 리엔더 (Here and Leander, 1598) 등이 있다.. 파우스트 박사 (Dr. Faustus)파우스트 박사는 말로우 사후인 1594년 런던 로즈 극장에서 공연된 바 있고,1616년에 두 번째 사절판이 출판되었다. 작품의 집필시기는 대략 1592년경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이 작품은 고전극의 전통에 따라 5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막은 주인공 파우스트의 서재를 무대로 펼쳐진다. 코러스의 소개와 더불어 등장한 비텐베르크 대학 신학박사 포스터는 논리학, 의학, 법학, 신학을 차례로 섭렵한 화려한 학문적 편력을 반추하며, 자신의 지척 호기심을 채워줄 궁극hty line'의 메아리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희극에서는 실험적 윤곽이 더욱 뚜렷이 엿보인다 하겠다. The Comedy of Errors는 Plautus의 희곡을 본뜬 것으로 남녀 두 쌍의 쌍둥이 때문에 일어나는 혼란을 다른 극으로 작가는 여기서 주로 plot과 상황의 조작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개성적인 성격보다는 어떤 틀에 박힌 인간형을 주로 다루고 있다 하겠다. The Two Gentlemen of Verona에서는 주로 성격묘사에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 친구인 두 청년 Proteus와 Valentine이 한 아가씨 Julia를 가운데 두고 중세 로만스적인 과장된 감정과 갖가지 비현실적 모험 속에서 사랑의 대결을 벌이다가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가 Valentine은 본래의 애인 Silvia의 품에 안긴다는 줄거리의 이른 바 romantic comedy 인데 셰익스피어는 여기서 처음으로 두 청년과 한 아가씨의 성격을 서로 대조적으로 묘사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Love's Labour's Lost는 당시의 사회풍조에 대한 일종의 익살풍자극 (burlesque)으로서 The Two Gentlemen of Verona와 같은 얘기 중심의 플롯과는 아주 다른 이를테면 영국 역사상 최초로 시도되는 일종의 풍습희극(Comedy of Manners)이라 하겠다.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놀라운 업적이며 훗날 몰리에르 (Moliere)나 콩그리브(Congreve)에게서 볼 수 있는 우아하고 세련된 하나의 사회를 발견하고 있다. Navarre의 왕은 세 사람의 조신과 더불어 삼년동안 여자를 멀리하고 학문에 정진하기로 맹세하나 프랑스의 공주가 귀부인들을 거느리고 국사를 의논하러 그들에게 오자 그만 그 맹세는 무산되고 저마다 사랑에 빠진다는 얘기인데 복잡하게 얽힌 극적 장면들이 모두 심적 변화를 초래하도록 짜여져 있지만 이 극에서는 주로 재치와 환상이 주요한 특색이라 하겠다. 여기서는 성격 묘사나 플롯은 희미해지고 귀족이나 귀부인의 재치 싸움, sonnet를 읊는 더욱 돋보이는 명랑하고 행복한 여러 장면들로 말미암아 이 작품은 가장 인기 있는 연극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Twelfth Night는 Illyria의 바닷가에 표류한 쌍둥이 남매 Viola와 Sebastian이Duke Orsino 와 Countess Olivia 사이의 사랑의 숨바꼭질에 뛰어들어 갖가지 복잡하게 얽힌 사건을 거친 다음 마침내 Viora 는 Orsino와 Sebastian은 Olivia와 맺어진 다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이다. 여기에 Malvolio와 Sir Toby Belch와 Maria가 엮어내는 부 줄거리가 곁들여져 사랑의 감정의 가지가지 명암과 위선이 한꺼번에 밝혀진다. 성격 묘사도 특히 자만심 강하고 야심 많고 남을 업신여기는 Malvolio의 묘사는 작가가 그린 낭만적 인물 중에서도 일품으로 알려져 있다.이와 같이 로맨틱 의 수법이 한창 무르익고 있는 동안 한편에서는 또한 그의 비극이 나타나고 있었다. 아직은 비극의 본질에 대한 뚜렷한 개념을 찾아볼 수 없었던 초기의 melodramatic한 유혈공포극인 Titus Andronicus와는 달리 이 시기의 Romeo and Juliet은 작가로서의 미숙으로 인한 여러 가지 결함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연극예술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에는 르네상스의 사상과 감정이 가득 차 있고 서정적인 맛(lyricisom)도 이따금 절정에 달하고 Mercutio와 Nurse의 희극적 기질도 훌륭하게 다루어져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아직은 지정한 비극적 정신을 형성하지 못했던 시기라 그 서정주의에도 불구하고 Romeo와 Juliet의 사랑은 세속적인 것이며 그의 시에는 감동적인 웅변이 넘쳐흐르지만 아무래도 차원 높은 비극의 개념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가령 후기의 Macbeth나 Hamlet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신적 message나 심리적 갈등 그리고 거의 신비주의적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는 지친 감정(emotion) 등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서로 어긋난 별(star-crossed)을 타고징이라 하겠는데, 이것은 그가 저지른 악의 심상이 열병처럼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뛰어난 시적 상상력이 스스로 자기 학대의 상징들을 수시로 그려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 하겠다. Macbeth는 야심에 병든 용감한 정심의 비극이라 하겠다.King Lear는 노쇠하여 판단이 흐려진 자부심이 강한 Lear왕이 두 악한 딸의 위선적인 감언이설을 믿고 그들에게 왕국을 나누어주는 대신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착한 딸의 참말은 믿지 않고 그녀를 추방해 버리지만, 결국엔 은총을 입었던 두 딸에게 버림받고 내쫓았던 딸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는 줄거리이다. 또 하나의 평행적인 줄거리는 남의 말을 잘 믿는 Gloucester 백작이 서자인 Edmund의 감언이설에 속아 적자인 Edgar가 자기를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믿고 그를 쫓아 버리고는 서자를 후계자로 삼지만 결국은 그 서자에게서 배반당하고 쫓아내 적자에게서 구원을 받는다는 얘기다. 이것은 부 줄거리(sun-plot), 말하자면 일종의 밑줄거리(under-plot)로서, 당시에 도덕적 우화로 잘 알려진 주 줄거리가 자칫 단순한 비현실적 민담으로 가볍게 보아 넘겨지지 않도록 받쳐주고 있다 하겠다. Lear는 결국 딸들에게 배반당하고 기가 넘쳐 미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세상일을 뚫어보는 지혜를 얻게 되고, Gloucester는 두 눈을 뽑히고 장님이 된 다음에야 비로소 세상일을 똑똑히 가려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참사랑에 눈을 뜬 Lear는 싸늘한 Cordelia의 시체를 안고 참사랑만이 느끼는 극단적인 환희와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인간의 본질을 분석하고 불순한 교양의 껍질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진실을 밝혀주는 이 극은 서사시적인 규모를 갖고 유사이전의 이교도적인 배경 속에서 전개되지만 그 가치 기준은 물론 기독교 시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이 극은 압축보다는 확산적이며 특히 폭풍의 장면들에서는 그 거친 상징적인 동작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하고 있는 듯이 보일 정도이다.Antony and C다.
    인문/어학| 2003.10.27| 21페이지| 1,000원| 조회(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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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학] 대원군 집권기의 국내외 정세 평가A+최고예요
    ▶ 서 론 ◀한국사에서 19세기 중엽은 커다란 변동기였다. 이 시기 한국사회는 안으로는 19세기 초 이후 중세사회체제가 해체되어 가면서 나타난 새로운 변화에 대응해야 했고, 밖으로는 서구 자본주의 열강의 문호개방 압력에 대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18세기이래 계속된 중세사회의 동요현상은 19세기 초 해체단계로 접어들었다. 신분제의 해체가 가속화되었고, 농촌사회에서는 농민층분해 현상이 심화되어 가면서 근대적인 산업구조가 발달하고 있었다. 사상적으로도 전통적 사상체계에 균열이 일어나고, 새로운 사상체계가 모색되었다. 지식인층은 실학사상의 계승, 유학사상의 변환을 모색하였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정감록 미륵신앙이 널리 유포되었다. 또 새로운 사회에 대한 농민의 갈망은 농민항쟁으로 표출되었다.1876년 개항은 한국사회를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게 만든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한국사회는 개항으로 세계자본주의체제에 편입되었으며, 세계자본주의체제의 변화가 한국사회의전개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당시의 사회세력들은 치열하게 노력해 갔다. 그들은 개혁의 방향을 둘러싸고 동도서기파ㆍ개화파ㆍ위정척사파ㆍ부농ㆍ빈농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되어 갔다. 이들 사회세력은 외세에 대한 대응, 사회적 위기의 극복방향을 둘러싸고 서로 대립하기도 하였다. 그것의 극복·대립과정이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운동으로 분출되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임오군란, 갑신정변, 상인들의 철시운동, 농민의 외국상인 배척운동, 농민항쟁 등은 그러한 예이다.1894년은 그러한 대립이 정점에 달한 획기적 시기였다. 농민들은 반외세·반봉건을 기치로 내세우고 전면적인 투쟁을 벌였다. 농민들은 신분제의 타파와 농민적 토지소유를 지향하면서 근대사회를 이룩하려고 하였다. 이 전쟁은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외세의 침략을 배척하고 중세사회체제를 타파하면서 자주적인 근대화를 만들려는 아래로부터의 변혁운동이었다. 온건개화파들은 이 농민전쟁에 자극을 받아 농민들의 요구조건을 수용하면서 한국사회를 근대화시키는민들에 대한 억압착취를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 정권을 독차지하고 전횡{) 권세를 오로지하여 제 마음대로 휘두름.을 부리면서 독판치는 극단한 배타주의적 문벌정치였다.세도정치는 토지와 노비, 정권을 빼앗기 위한 싸움을 둘러싸고 지배 계급안에서 벌어진 알력{) 집안이나 한 집단의 내부에서,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충돌하는 일.과 대립, 모순의 산물이었으며 수세기 동안 지속되어온 당파싸움의 연장이었다. 세도정치가 판을 치기 시작한 것은 어린 순조가 왕좌에 앉게 되고 외척이 정권을 잡은 19세기초 부터였다. 국왕의 증조할머니인 정순왕후 김씨는 1802년 1월 김조순의 딸을 순조의 왕비로 삼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영조통치시기 이후 권세를 부리던 노론의 양반문벌{) 소론(少論)과 함께 앞시기의 서인(西人)에서 갈라져 나왔다. 17세기 말엽 숙종 초기에 서인 내부 에는 정치운영 방식, 훈신(勳臣)·척신(戚臣) 등 특권세력과의 제휴, 남인(南人)에 대한 처리 등 여 러 문제를 둘러싸고 입장의 차이가 나타났으며, 거기에 지도자인 송시열(宋時烈)과 그 제자 윤증 (尹拯) 사이의 불화가 거듭되는 상황에서, 송시열을 중심으로 하나의 정파를 이루어 남구만(南九 萬)등을 중심으로 결집한 소론과 대립하였다.노론의 사상은 대개 이이(李珥)를 거쳐 김장생(金長生)·송시열에 의하여 조선식으로 소화된 성리 학(性理學)을 신봉하였고 이단을 적극적으로 배격하였다. 사회적으로는 중원에서 명(明)나라의 멸 망으로 끊어진 천하의 정통성을 조선이 이어받았다는 조선중화사상(朝鮮中華思想)과 대명의리론(對 明義理論)으로 국가의 정체성과 사회질서를 유지하려 하였다.인 안동김가가 왕의 외척이 되어 권력을 독차지하게 된 주요계기로 되었다.1803년에 순조가 15살이 되면서 정순왕후 김씨의 섭정{) 군주국가에서 국왕이 어려서 즉위하거나 병 또는 그 밖의 사정이 생겼을 때 국왕을 대리해서 국가 의 통치권을 맡아 나라를 다스리는 일 또는 그 사람.은 끝나고 왕권은 명목상 순조에게 돌아갔으나 임금의 장인 김조순은 자신의 안동김 마 구 때렸다고 썼다.(『여유당전서』 1집 12권)이렇듯 인민들을 가혹하게 억압ㆍ착취한 봉건통치배들의 죄행을 놓고 볼 때 19세기는 세도양반들이 판을 치고 그들의 앞잡이인 중앙과 지방의 모든 관리들에 의한 학정과 탐욕, 뇌물과 비행이 횡행하며 불법이 공인되던 혼란기였으며 봉건적 중앙집권적 왕권이 약화되고 봉건통치체제가 안으로부터 썩어가던 위기의 시기였다.2) 매관매직의 성행, 과거제도의 문란탐욕스러운 세도대신들은 국가정치를 좌우할 수 있는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하고 관리들을 마음대로 임명하고 파면하였다. 세도대신들은 중앙의 벼슬자리는 물론이고 지방의 감사와 고을원을 비롯한 크고 작은 모든 관직을 뇌물이나 돈을 받고 팔았다. 매관매직이 공공연하게 진행되는 이러한 형편에서 관리들은 세도양반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아첨하지 않고서는 벼슬을 얻어낼 수 없었으며 더 높은 벼슬자리는 바랄 수도 없었다.감사자리는 보통 5만∼6만냥 고을원의 자리는 2만∼3만냥 안팎으로 매매되었고 그밖에 모든 벼슬자리도 그 값이 정해져있을 정도로 매관매직이 성행하였다. 당시 세도양반들뿐 아니라 봉건국가도 또한 공공연하게 돈이나 곡식을 받고 벼슬을 팔았다. 국가에 의한 매관매직은 공명첩{) 이름을 밝히지 않은 벼슬임명장.을 파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19세기에 들어와 과거제도는 또한 일부 집권양반들의 파렴치한 돈벌이수단으로 되어버림으로써 기만적인 ‘인재등용’의 너울마저 완전히 벗어 던져졌다. 때문에 돈 있고 권력 있는 귀족양반자식들은 권력을 믿고 과거에 응시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다만 ‘시골의 가난한 선비들’만이 시험장에 몰려갔다. 국가시험에서 ‘재물을 받거나 편지로써 합격’시키는 등의 허다한 무법과 돈벌이의 폐습이 예삿일이 되었다. 그리하여 시험장은 ‘물건거래장소’로 되고 말았으며 시험답안지는 위조되고 합격증은 돈을 많이 낸 자에게 주어졌다.3) 국가재정의 고갈, 나라의 방어력의 약화세도정치 밑에서 세도대신들과 그 앞잡이들의 횡령과 사치로 하여 국고는 탕진되고 국가재정은 고갈되었다. 이와 함께 나 특별세를 부과하고, 도성 문을 지나는 물품에 통과세를 징수했다. 원납전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금전을 바치게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부역에 동원되었으므로 원망 또한 높았다. 당백전이라는 악화를 주조해 적지 않은 혼란을 초래하였다.개항을 전후에 재정적 궁핍은 한층 더 심해졌다. 면세, 진황, 은결 등에 의해 수입이 감소 된 데다 내외국 사절의 영송, 배상금 지불, 새로운 문명시설의 도입 등으로 지출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지출의 일부는 관세 수입과 차관에 의해 메워졌다. 하지만 대부분은 농촌에서 거둬들이는 것이었다. 농민들의 부담이 이중, 삼중으로 커졌다. 각종 명목의 세금이 늘어났고, 향리들의 행패 또한 심했다.일본의 경제적 침투 역시 농촌 경제를 좀먹어 들어갔다. 무뢰한이나 낭인 출신 일본 상인들은 농민들을 상대로 폭리를 남기는 약탈적인 무역을 했다. 일본으로의 곡물수출이 많아지자 곡가가 앙등하는 등 조선경제에 문제가 발생하자 곡물의 수출을 금하는 방곡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또한 외국 상인들이 오고 대외무역량이 늘어나자 객주와 여각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들 고도상인은 정권과 밀착했던 육의전과는 달리, 외국 상인과 접촉, 새로운 상업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외국 상인들 역시 그들을 통해 상업행위를 해야 했다. 객주와 여각은 보부상을 통해 수입품 판매나 수출품 매입을 통해 재산과 부를 축적했다. 점차 외국 상인들이 내륙에서 상업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자, 객주와 여각은 타격을 받았다. 그들은 상사회사를 조직, 외국 상인들에 대항했다. 상업 자유화에 밀려나는 보부상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혜상공국을 설치했다(고종 20년, 1883). 특권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보부상단은 근대적인 상인단체로 성장하지 못했다. 반면 객주들은 객주 상회를 조직, 근대적인 상인단체로 성장해갔다. 고종 20년(1883) 근대적인 무기를 제조하는 기기국, 화폐를 주조하는 전환국, 출판물을 인쇄 하는 박문국을 설치했다. 고종 22년(1885)에는 방직을 위한 직조국, 고종 24년 있고, 이 조약으로 일본은 청나라와 같이 조선에 대한 파병권을 얻게 되었고, 10년 뒤 일어난 동학농민운동 때 일본의 파병 구실이 되었다.2. 일본일본은 개항 이후 1868년 메이지유신을 단행하고 기존의 막부시대를 마감하고 천황제국가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은 청과의 관계를 대등한 관계로 정립하고자, 1871년 9월 전문 18조로 된‘청일수호조규(淸日修好條規)’를 체결했다. 이 조약에서 일본은 청조황제와 자신들의 천황을 조약서문에 열거함으로써 ‘양국 원수가 동격임을 분명히 할 것’과 최혜국대우를 요구하였다. 이 같은 요구는 비록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이후 일본은 청과 대등한 입장에서 외교를 펼칠 수 있었으며 일본의 새로운 정부는 당시의 세계의 각축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강력한 일본을 담보할 ‘富國强兵’을 목표로 재빨리 산업화에 나섰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대외팽창주의는 1874년의 대만출병을 통해 실체화되었으며 이는 일본에서 새로운 정부체제에 대해 불만을 가진 무사계급을 무마하려고 주장한 ‘征韓論’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며 이를 계기로 일본은 조선을 비롯한 대외관계에서 적극적인 팽창정책을 추구하는 원동력이 되었다.정부는 근대산업의 발달을 위해 노력하며 해외로의 진출을 점차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조선을 강제로 개국시켜 일본제품을 팔 시장으로 만들고자 하였으나 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세력범위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과 청국과의 대립이 커지게 되었다.1894년 조선에서 농민들이 봉기하자 조선정부는 청국에 출병을 요청했다. 그러자, 이를 알게된 일본도 출병을 하여 양국간의 전쟁(淸日戰爭)이 시작되었으나 이 전쟁에서 일본은 단기간에 청국을 제압할 수 있었고, 그 이듬해 시모노세키(下關)조약을 체결하여 많은 배상금과 함께 타이완(臺彎)과 요동반도(遼東半島) 등을 손에 넣었다.그러나 곧바로 러시아·프랑스·독일 삼국은 삼국간섭(三國干涉)으로 요동반도를 중국에 반환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게 되고, 이에 일본은 할 수 없이 요동반도를 중국에 돌려주게 된다.하였다.
    인문/어학| 2003.10.27| 15페이지| 1,000원| 조회(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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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화] 각 나라의 신화 평가D별로예요
    ▶목차◀Ⅰ. 서론Ⅱ. 본론1. 신화의 개념과 역할2. 그리스·로마 신화3. 이집트 신화4. 인도 신화5. 중국 신화6. 각 나라의 신화의 특징Ⅲ. 결론Ⅳ. 참고 문헌Ⅰ. 서론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만의 신화가 있다. 지금 형성되어있는 나라의 신화도 있고, 고대 국가도 저마다 모두 신화가 있다. 우리 나라만 해도 얼마나 많은 신화가 있는지 모른다. 단군신화로 시작하여, 그 후에 생긴 많은 국가들의 신화와, 각 성씨가 생기게 된 신화도 있다.세계 주거 문화 기행이라는 강의명과는 조금은 안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과제 주제를 신화로 하고 싶었다. 교양공부와 전공공부를 연결하면서 공부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그리고 개인적으로 신화라는 내용이 참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신화들을 정리해보고, 또 지금까지 몰랐던 신화들도 알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가장 많이 알고 있는 우리 나라 신화는 빼고, 외국의 신화를 살펴보려고 한다.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신화 중에 하나가 그리스·로마 신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책으로도 많이 나와 있고, 또 소설로도 유명한 것이 그리스·로마 신화 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는 거의다 비슷하지만, 신들의 이름이라든지, 내용이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다.그리고 그리스·로마 신화 외에 다른 나라 신화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내가 접한 다른 나라의 신화는 『람세스』등의 신화를 읽고, 예전에 이집트 문명전에 갔을 때 이집트 신들의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있다. 생각과는 다르게 이집트도 재미있는 신화가 많고 신들 종류도 많았다.또, 『퇴마록』을 읽다 보면 인도신 들에 대한 얘기도 무척 많이 나온다. 성격이라든지, 무기 등등.. 읽으면서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중국 신화는 사실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지만,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고, 종족도 많은 중국은 왠지 신화도 굉장히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되었다.사실이 아닐지도언제나 확고한 자리가 되었다.그리고 불사의 신들 가운데 가장 멋진 에로스가 생겼는데,그는 사지를 풀어놓았으며,모든 신들과 인간들의 가슴 안에서 현명한 사고와 의도들을 굴복시킨다.그런데 카오스로부터 에레보스와 검은 밤(뉘스)이 태어났고,또 밤으로부터 에테르와 낮(헤메라)이 생겨났다.한편 가이아는 먼저 그녀 자신과 같은 크기인, 별이 빛나는 우라노스를 낳았고,그래서 그녀 전체를 돌려 덮도록 했는데,그리하여 우라노스는 행복한 신들을 위한 언제나 확고한 자리가 되었다.한편 가이아는 높은 산들을 낳았는데, 그것은 여신들의 즐거운 거주지,즉 굴곡 깊은 산들에 거주하는 님프들의 거주처였다.그녀는 또한 마르지 않는 바다를 낳았다. 즉 그녀는 거세게 부풀어오르는폰토스를 부드러운 사랑 없이 낳았다.그러나 다음으로 그녀는 우라노스와 잠자리를 같이하여,깊이 소용돌이치는 오케아노스를 낳았고,코이오스와 크리오스와 히페리온과 이아페토스를,그리고 테아와 레아와 테미스와 기억의 여신을,황금관을 쓴 포이베와 사랑스러운 테튀스를 낳았고,이들 뒤에 막내인 꾀 많은 크로노스가 태어났는데,그는자녀들 가운데 가장 무서웠고, 원기 왕성한 그의 아버지를 매우 싫어했다.- 「神統記」 중 116~138행또한 인간의 창조에 대해서는 학설의 대립이 있는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가 인간을 창조) 에피메테우스와 프로메테우스 형제는 인간을 만들기 이전 모든 동물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그 동물들을 지배할 인간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가 프로메테우스가 없는 사이에 동물들에게 발톱, 이빨, 날개 등 모든 유용한 것들을 달아 주어 더 이상 줄 것이 없자, 나중에 돌아온 프로메테우스가 천상의 불(또는 아폴론의 태양 마차에서 붙여온 것, 지혜를 상징함)을 가져다 인간에게 주었다고 전한다.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5가지 금속 종족 설화) 5가지 금속 종족 설화에 따르면 인간은 각각 황금의 종족, 은의 종족, 청동의 종족, 철의 종족이 차례로 나고 사멸하게 되는데, 마지막 들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어 프랑스인(人) J.F.샹폴리옹이 1822년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인 성각문자(聖刻文字)의 해독해낸 데 이어, 그 후 각문(刻文)이나 파피루스 문서의 해독과 연구가 급속히 진전되었고, 그에 따라 고대 이집트인의 정신생활에 관해 상당히 자세한 것을 알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인의 신앙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사후(死後)세계에 관한 것인데, 그에 의하면 인간은 죽어도 그 혼(魂:바)은 죽지 않으며, 사후세계로 가서 때때로 원래의 육신으로 돌아오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육체는 미라로 만들어 묘소에 정중히 모셔졌다. 혼이 사후세계로 가는 과정이나 사자(死者)의 신(神) 오시리스 앞에서 선악 판정의 저울에 올려지는 과정은 『사자의 서(書)』라는 종교적 문서에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고대 이집트인은 자연이나 동물, 또는 여러 가지 관념을 모두 신으로 보는 다신교(多神敎)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주요한 것은 『사자의 서』에 기록되어 있으나, 그 밖에도 지방에 따라 대소(大小)의 신들이 존재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숭배되고 있었다.1) 창세 신화고대 이집트의 유물에는 바빌로니아의 창세신화나 구약성서의 『창세기』와 같이 체계적인 기록은 없지만, 각지에 있는 신전의 각문 등에 어렴풋이나마 세계의 시초와 신들의 계보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중에도 헤르무폴리스 ·헬리오폴리스 ·멤피스 ·부시리스(그리스식 발음) 등의 도시에는 독립된 신학체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재구성된다.원초에는 눈이라고 불리는 바다가 있었고 여기에서 아툼이 태어났다. 이는 태양신 라와 동일시되는데, 눈은 나일강 물이라고 여겨진다. 아툼 라는 스스로의 수정작용(受精作用)으로 게브·슈·테프누트·누트를 낳았다. 이 4명은 서로 다툰 끝에 게브는 대지가 되고 슈와 테프누트는 공기와 증기(蒸氣)가 되었으며, 막내 누이동생 누트는 하늘이 되었다. 그리고 게브와 누트는 부부가 되어 오시리스와 이시스라는 남매를 낳았 의지하며 살던 민족들의 원시적인 신이다. 베다에 나오는 신들은 자연의 힘을 의인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베다에 나오는 신은 또한 그리스의 신들과 견주어 볼 수 도 있다. 알렉산더의 정복 정치와 함께 이루어진 문화전달의 영향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베다에 나오는 신들 이후에 삼위일체의 성격을 가진 브라흐만(Brahman)의 신들이 나온다.브라만의 신들은 약 15세기에 나타났다고 전한다. 그러나 예수의 탄생 이전부터 전해진다고 말하는 사료도 있다. 그들은 서로 독립되고 분리된 존재로 생각되어지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브라만이란 신의 세가지 모습이라고 나누어 구분되기도 한다. 그 세 가지 모습이란 브라흐만 (Brahman)의 태고의 창조의 힘과 비슈누(Vishnu) 의 보존의 힘 그리고 시바(Shiva)의 파괴의 힘이다. 이 세가지는 모두 브라흐만이라는 하나의 존재에 세가지 모습인 것이다. 힌두 신화는 브라흐만의 신들까지 와서야 드디어 단순 자연숭배적인 단계를 벗어나존재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하기 시작한다.1) 창세 신화인도에는 두가지의 창세신화가 있다는데 두가지 모두 한번 간략히 보겠다.① 프라자파티(Prajapati)의 창세 신화프라자파티는 많은 자손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요가(Yoga)를 수행했다. 고행을 통하여 그의 몸은 타파스(tapas:요가 중 몸에서 나는 열)가 되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불, 바람, 해, 달 그리고 여성인 새벽이 창조되었다. 프라자파티는 그들에게 "너희들도 나처럼 고행을 수행하여라."고 말했다. 명령에 따라 그들도 엄격한 고행에 전념하였다. 그들이 이처럼 고행을 수행하고 있을 때, 프라자파티의 딸인 새벽이 아름다운 천상의 여인의 모습을 하고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긴 그들은 마음이 몹시 흔들렸다. 그리하여 그들의 고행을 향한 일념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리고 대신 육체적 욕망에 마음이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그녀를 향한 욕정을 이기지 못한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씨앗을 흘리고 말았다. 그들은 곧 후회를 . 또한 그녀는 자기를 숭배하는 이들을 늑대와 도둑으로부터 보호하여 안전하게 지킨다.▲ 아수라 → 아수라는 일반적으로 Anti-god, 즉 악마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고대 베다에서는 아수라는 단지 god'을 의미하고 있다. 베다에서는 아그니, 인드라 그리고 바루나신 조차도 아수라라고 언급되고 었으나, 후에 아수라라는 명칭은 그리스의 다이몬 (daimon : 다이몬은 demon의 어원을 이루는데, 원래는 신이라는 뜻으로 쓰였는데 후에 악마라는 뜻으로 변하였다)과 같이 악마를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리그 베다에서의 아수라는 어떠한 신을 지칭하는 단어로써 사용되었다. 아수라라는 단어로써 지칭되어지는 신들을 살펴보면 아그니, 바루나, 사비트리, 미트라바루나, 루드라, 디야우스, 소마, 아리야만, 푸샨 그리고 파르쟌야등이 있다. 이중 아그니가 가장 빈번하게 아수라로 지칭된다.②힌두교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 브라흐마 - 창조의 신이며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고 체계적이며 질서를 창출 한다. 브라흐마는 비슈누 신의 배꼽에서 탄생되었다. 연꽃을 상징하는데 그것은 연꽃의 질서적인 창조와 확장을 뜻하는 것이다. 브라흐마 신은 인도의 최고 경전인 4개의 베다 (Veda)인 , , , 베다를 상징한다. 그래서 네 머리와 몸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창조주인 브라흐마는 어둠(타마스tamas), 기(라자스rajas), 선(사트바satva)이라는 세 가지 기본 요소로 이루어진 여러 종류의 몸을 가지고 있다.▲ 비슈누 → 보호의 신이며 수많은 이름과 화신(化身)으로서 표현되었다. 비슈누의 어원은 "확장시키고 모든 곳에 스며들어간다"라는 뜻이다. 또 다른 이름은 나라야나이다.그 뜻은 모든 한계없는 존재의 바다 위에 누워 있다는 뜻이다. 또 인간 존재의 마지막 목표를 상징한다. 또한 최초의 스승이라고 한다. 10가지의 중요한 화신으로 나타났는데 이 화신들은 인도의 전통문화를 이끌어 나갔다. - 물고기의 화신 마츠야(Matsya), 거북의 화신 쿠르마(Kurma), 맷돼지의 화신 바라.
    인문/어학| 2002.06.10| 21페이지| 1,000원| 조회(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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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문학] 위대한 유산 평가A좋아요
    ▶목차◀Ⅰ. 서론Ⅱ. 본론1. 디킨즈의 생애2. 소설 위대한 유산3. 영화 위대한 유산4. 소설 VS 영화1) 영화는 디킨스의 원작에 충실했는가,아니면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그러한가?2) 원작과 달리 린이 디킨스와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는 인물들이 있다면그들은 누구이고 어떻게 달리 표현되고 있는가?3) 감옥선으로 다시 잡혀가는 매그위치가 핍을 바라보는 눈길의 의미는무엇인가?4)소설과 영화속에서의 누나의 존재5) 몰리에 대한 제이거스의 언급은 어떤 것이 있는가?그 언급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6)영화 속에서 에스텔러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7)죄수의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8) 디킨스의 의도를 가장 완벽히 구현해 낸 영화 속 인물로는 누구를들 수 있겠는가?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Ⅲ. 결론Ⅰ. 서론위대한 유산.. 사실 오래 전부터 소설로나 영화로나 많이 들어본 작품이다. 그러나 흥미가 없어서, 혹은 시간이 없어서 보지 못했던 작품중 하나이다. 수업 시간을 통해 본 영화는 생가보다 재미있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수업시간 이라서 인지 집중해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또 영화를 보는 동안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며 책도 한번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교수님께서 영화 보는 내내 이 장면은 책과 어떻게 다르고, 저 장면은 이렇게 다르게 표현되었다고 설명을 해주셨지만, 책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책도 구해서 읽게 되었다.대부분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으면 먼저 본 영화의 내용 때문에 책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책을 읽으면서 상상하기보다는 먼저 본 영화의 모습에 책의 내용을 끼워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책보다 영화를 먼저 보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을 해왔다.그런데 위대한 유산을 좀 달랐다. 물론 어느 정도는 영화의 내용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장면이 많이 등장해 상상의 여지를 갖게 해주었다.그래서 책도 읽고 영화도 본 것이기에 선택하게 되었다작품 『황폐한 집 Bleak House』(1853)이 그 좋은 예로서, 그의 전기작품(前期作品)에서처럼 한 사람의 주인공의 성장과 체험을 중심으로 쓴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사회의 여러 계층을 폭넓게 바라보는 이른바 파노라마적인 사회소설로 접근해 갔다. 개인의 힘으로써는 어찌할 수 없는 사회의 벽에 직면하여, 그의 자랑거리인 유머도 그 빛을 잃고 무력감과 좌절감이 전편(全篇)을 흐르게 되었다.그러나, 그의 창작력은 조금도 쇠퇴되지 않아, 공장직공의 스트라이크를 다룬 『고된 시기 Hard Times』(1854), 프랑스혁명을 무대로 한 역사소설 『두 도시 이야기 A Tales of Two Cities』(1859), 그리고 다소 자서전적인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1860∼1861) 등의 작품 이외에도, 대단히 많은 단편과 수필을 썼으며, 한편 잡지사의 경영, 자선사업에의 참여, 소인연극(素人演劇)의 상연, 자작의 공개 낭독회, 각 지방의 여행 등, 참으로 쉴 사이 없는 정열적인 활동을 계속하였으므로, 그의 건강상태는 나빠졌지만 쉬려고 하지 않았다. 더욱이 1858년에는 20년 이상 함께 살아 왔고 10명의 아이를 낳은 부인 캐서린과 별거하는 등 정신적인 고통도 겹쳐, 1870년 6월 9일 추리소설 풍의 『에드윈 드루드 Edwin Drood』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세계의 각계각층의 애도 속에 문인 최고의 영예인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안장되었다. 그의 소설은 지나치게 독자에 영합하는 감상적이고 저속한 것이라는 일부의 비난도 있지만, 각양각색의 인물들로 가득찬 수많은 작품에는 심각함에서 우스꽝스러움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태가 다 묘사되어 있고, 그의 사후 1세기를 통해 각국어로 번역되어 셰익스피어 못지 않은 명성을 누리고 있다.2. 소설 위대한 유산주인공 핍은 부모가 없는 고아로 누나의 손에 의해 길러진다. 어느 날 늪지대에서 탈출한 죄수와 만나게 되어 그의 탈출을 도와준다. 핍은 이 기억을 잊기 원하지관이 없는 매부 조와 대장간에서 일하는 소년일 뿐이었다. 그러나 죄수를 만나면서 점차 사회와 접하게 되고, 결국 핍 스스로 사회속으로 들어가게 된다.그러나 사회속에서 핍이 느낀 것은 고통뿐이었다. 소년기의 핍은 누나 때문에 불행했고 미스 해비샴으로 인해 야심에 차 있었고, 에스텔러로 인해 좌절을 맛보았다. 또한 제이거스가 가져온 위대한 유산 의 소식 때문에 유혹을 당했었다. 핍은 이러한 유혹과 좌절을 맛보면서 점차 사람들에 대한 애정의 깊이를 알아간다. 이것이 바로 그를 신사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한편 그와 함께 신사의 과정을 밟아온 허버트는 마음으로부터 시사가 아닌 사람은 태도에서도 진짜 신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핍이 상류계급인 에스텔러를 쫓아다니는 반면 허버트는 일부러 돈 한푼 없는 클라라와 약혼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속해 있는 위선적인 계급에 도전한다.그러나 이 작품에서 진정한 의미의 신사는 귀족 태생의 드러믈도, 런던에서 신사교육을 받은 핍도 아니다. 시골 대장간에서 묵묵히 정직한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매부 조가 바로 디킨즈가 찾으려한 신사라는 생각이 든다. 제이거스가 핍을 데리러 와 그 동안 키워준 데 대한 대가를 지불하려 했을 때 매부는 당당히 거절한다. 그는 두 번 화를 내는데, 한번은 자기 부인을 위해서였고 또 한번은 어린 핍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비난받았을 때였다. 매부 조는 겉으로는 대장장이의 거친 완력으로 뭉친 인물이지만 내면에는 진정한 신사만이 가질 수 있는 온화함이 넘쳐흐른다. 그는 영원히 핍의 보호자이다. 자신을 비난하고 떠난 핍이 런던에서 죄수와 에스텔러, 방과 열병으로 고생할 때 매부 조는 천사와 같은 마음으로 핍을 보살펴 준다.매부 조와 더불어 진실한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비디 이다. 어릴적 핍에게 글자를 가르쳐주고, 조의 집안 사람들을 돌보아준다. 결국 자신과 같은 유형의 사람인 매부 조의 아내가 된다.핍이 오랜 방황 끝에 고행으로 돌아왔을 때, 매부 조와 비디 사이에 난 아이를 핍 이라고 이름지은 것이 다름이혼한 에스텔라를 만나게 된다.4. 소설 VS 영화기네스 펠트로우가 주연하여 유명해진 위대한 유산, 그러나 정작 이 영화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라는 작품이 원작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이 영화는 이는 찰스 디킨스의 원작과는 구별된다. 우선은 스토리 자체가 많이 바뀌었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에스텔라를 제외하고는 다 바뀌었다. 이 원작을 의도에 맞게 각색한 영화는 데이비드 린의 『위대한 유산』이다.소설에서의 자세하고 상세한 스토리 전개와 많은 인물들의 설명이 많이 각색되어진 영화에서 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을 맛볼수 있다.1) 영화는 디킨스의 원작에 충실했는가, 아니면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는가?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그러한가?⇒데이비드 린(David Lean)의 영화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1946)은 찰스 디킨즈(Charles Dickens)의 소설 『위대한 유산』(1861)의 첫 장을 읽어가면서 시작한다. (첫장면이 책을 펼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 시작부터 철저하게 원작 과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내내 디킨즈의 소설 의 내용과 린의 영화는 매우 일치한다. 이것은 소설과 영화가 문자와 영상이라는 확연한 매체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사 장르라는 동일 범주 속에서 유사성 을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특히〔8장-해비샴 양을 만나고 싶으세요?/ 그녀가 만나고 싶어한다면/ 해비샴 양은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아요〕부분은 원작의 문자를 대사에, 나레이션에 그대로 사용함으로서 이 작품의 신중하고 침울한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주고 있을뿐 아니라 원작에 대한 충실성 또한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찰스 디킨즈의 소설 『위대한 유산』은 비그놀라(Robert G. Vignola)의 〈위대한 유산〉(1917)부터 워커(Stuart Walker)의 〈위대한 유산〉(1934), 그리고 가장 최근 인 쿠아론(Alfonso Cuaron)의 〈위대한 유산〉(1998)에 이르기까지 약 8편의 영화 원작의 각색과정에서 감독의 생략과 첨가가 적절히 이루어졌으며, 원작에 나타난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등장인물의 심리적 모습을 상당히 잘 그려냈다.2) 원작과 달리 린이 디킨스와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는 인물들이 있다면그들은 누구이고 어떻게 달리 표현되고 있는가?⇒원작에 충실한 영화이다 보니 원작과 많이 상이한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조금 부분적인 면만을 보여준 인물들은 있었다.에스텔라의 남편인 드러물인 것 같다. 원작에서의 그는 숲 속의 방울새(런던의 부 패한 신사들의 모임) 중에서도 가장 둔한 인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정작 드러물은 에스텔라와 너무 닮은 인물이다. 아내에게 무관심하고 오히려 아내를 학대하고 구 타함으로써 에스텔라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결국 드러물은 사고로 죽게된다.그러나 영화에서는 드러물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아서 인지 우선 우둔함은 알 수 없다. 다만〔43장-난 너랑 말하고 싶지 않아. 유쾌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앞으로는 피차간에 어떤말도 하지말자./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화도 내지 말자.〕이런 핍과 드러물의 신경전만 잠시 다룰 뿐이다.그래서 영화에서는 드러물의 성격이나 성품은 알수 없고 때문에 다른 각도로 조명하는 인물로 보여진다.3) 감옥선으로 다시 잡혀가는 매그위치가 핍을 바라보는 눈길의 의미는 무엇인가? ⇒초반에 탈옥한 두 죄수가 늪에서 서로 물을 튀기고 진흙을 날리고 욕을 하며 싸우게 되고 이때 군인들이 죄수들을 잡게 된다. 이 장소에 매형인 조와 핍이 따라가게 되어서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영화에서는 한마디하고 싶은 말이 있소. 어느 대장장이에게서 파이를 얻어먹었소 이때 핍은 자신이 이 장소를 갈켜준것이 아니라는 눈짓을 보였다.실은 여기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분명 영화에서는 얻어먹었다 는 표현을 통해 대장장이의 누군가가 자기를 도와준 것처럼 말하고 있다. 또 핀이 안 그랬다는 것 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고 배우의 눈길이 분명 핀을 원망하는 듯한 눈길이었다.하지만 원작에서는〔5장-그때한다.
    인문/어학| 2002.06.04| 13페이지| 1,000원| 조회(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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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박완서와 마른꽃 평가A좋아요
    ♠목차Ⅰ. 작가에 대하여...Ⅱ. 줄거리..Ⅲ. 등장인물 분석Ⅳ. 박완서의 다른 작품..Ⅴ. 작품 감상Ⅵ. 평론Ⅰ. 작가에 대하여...-시대를 넘어선 깊이, 박완서 (朴婉緖, 1931- 현재 70세)▶작가연보-1931년 10월 20일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에서 출생. 아버지 박영노(朴泳魯), 어머니 홍기숙(洪己宿). 열 살 위인 오빠 있음.-1934년 아버지 별세. 어머니는 오빠만 데리고 서울로 떠남. 조부모와 숙부모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냄.-1938년 서울로 와서 살게 됨. 매동국민학교 입학.-1944년 숙명여고 입학.-1945년 소개령(疎開令)이 내려져 개성으로 이사, 호수돈여고로 전학. 고향에서 해방을 맞음. 서울로와 학교를 계속 다님. 여중 5학년 때 담임을 맡은 소설가 박노갑 선생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음.-1950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국문과 입학. 6월 초순에 입학식이 있어서 학교를 다닌 기간은 며칠 되지 않음. 전쟁으로 오빠와 숙부가 죽고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됨. 미군 부대에 취직, 미8군 PX(동화백화점, 곧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자리)의 초상화부에 근무. 거기서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됨.-1953년 호영진(扈榮鎭)과 결혼, 이후 1남 4녀의 자녀를 둠(1954년 원숙, 1955년 원순, 1958년 원경, 1960년 원균, 1963년 원태).-1970년 「裸木」으로 『여성동아』 여류장편소설 공모에 당선.-1975년 남편이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옥바라지를 함. 「都市의 흉년」을 『문학사상』에 연재.-1976년 첫 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일지사) 출간. 「휘청거리는 午後」를 『동아일보』에 연재.-1977년 남편의 옥바라지 체험을 바탕으로 전해에 발표했던 단편 「조그만 體驗記」에 얽힌 기사가 일간지에 실렸는데, 개인의 명예를 생각하지 않고 검찰측의 입장만 밝혀서 문제가 됨. 『휘청거리는 午後』(창작과비평사, 전 2권), 중편집 『창 밖은 봄』(열화당), 수필집 『꼴찌 에게 보내는 갈채』(평민사), 『혼자 부르는 合唱』(진문출판사쓸쓸한 당신』(창작과비평사) 출간.-1999년 묵상집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여백) 출간. 『너무도 쓸쓸한 당신』으로 제14회 만해문학상 수상.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문학동네, 전 5권) 출간.▶작가경력1970 장편소설 '나목'으로 등단1993.05 - 현 유니세프 친선대사1994.05 - 현 공연윤리위원회 윤리위원1995.01 - 현 사제마을을 위한 모임 대표1995,96년 문학의해 조직위원회 회원1996.05 - 현 토지문화재단 발기인1996 제27회 동인문학상 본심심사위원1998.10 - 현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2000.10 - 현 환경부 환경홍보사절▶작가소개한국인이라면 박완서라는 이름 석자를 안 들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우리 시대 대표적인 여류 문인, 우리 어머니 같은 푸근한 인상, 어눌한 말투,가끔 여성 잡지에 소개된 그녀의 일상생활과 인생. 그러나 그런 것들을 넘어 그녀의 소설을 보면 아~ 과연 인생의 깊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탄성을 지르고 만다.왜 소설가가 되었냐는 질문에 오 백년도 더 산 것 같은 경험 때문에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는 그녀 자신의 말처럼 박완서의 소설에는 다양한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넘어온 한 여성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일제시대에 태어나 6.25를 겪고 한 남자를 만나 마흔이 될 때까지 주부로서의 삶을 살다가 다시금 소설가로 등단한 그녀. 때로는 여성의 심리를 차분히 풀어헤친 연애소설도 썼고, 현대사 속에 매몰되어온 가족사에 대한 눈 깊은 천착도 있었고, 사회 문제, 정치 문제, 여성문제 등등 여러 가지 방면에서 관심사를 달리 하며 그녀는 소설을 써왔다. 이는 그녀가 겪어온 시대의 아픔과 채화된 풍부한 경험 탓에 가능한 일이라 여겨진다.몇 년 전 박완서는 아들과 남편을 비슷한 시기에 여의는 아픔을 겪었다.그 아픔 이후에도 그녀는 왕성하게 집필 활동을 계속 해오고 있다.지친을 여의는 아픔 또한 그녀에게는 생에 대한 속 깊은 시각을 보태주는 하나의 경험이 되었나 보다.예순이라는 나이를 훌쩍 넘안에서도 버스안에서도 그 남자를 지켜보고 관찰한다.여자는 그남자를 보면서 그 남자가 멋쟁일뿐아니라 체중관리도 잘한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남자와 함께 와인을 마시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남자와 여자는 각자가 상상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아쉬움을 남긴채 각자의 집으로 떠나게 된다. 잠깐의 만남이 있고 난후에 여자는 그 남자와 만날 기회를 은근히 생각하게 되고, 그럴 기회가 의회로 빨리 찾아오게 되는데 그 이유인즉슨 사돈이 상을 당해서 강아지를 맡기게 되었는데, 강아지가 여자가 준 먹이를 먹고 난후 탈이 났다. 급한 마음에 이여자는 남자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청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둘은 서로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이러는 사이 주위의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자꾸 케어묻게 된다. 처음에는 딸이 그 남자를 늙은이라고 지칭하다가 나중에는 좋은 집안의 사람인 것을 알고 조박사라고 부르게 됩니다.여자는 딸들의 반응에 우스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여자는 지금의 감정이 사랑의 감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의 남편과의 사랑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젊었을때의 사랑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전의 남편의 곁에서 묻이고 싶어 한다.Ⅲ. 등장인물 분석▶나환갑을 앞둔 노년의 나이이지만 '평범한 할머니'로서의 삶을 거부하며 살아가는 인물,늙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소녀같은 감수성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조박사와의 교제 하지만 결혼까지는 가지 않는 현실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쌍둥이까지 밴 적 있는 배꼽 아래는 참담했다. 볼록 나온 아랫배가 치골을 향해 급경 사를 이루면서 비틀어 짜 말린 명주빨래 같은 주름살이 늘쩍지근하게 처져 있었다. 어제 오늘 사이에 그렇게 된 게 아니련만 그 추악함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욕실 안의 김서린 거울에다 상반신만 비춰보면 내 몸도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또한 욕조에 잠겨서나 나와서나 내 몸 중에서 보고 싶은 곳만 보고 즐기려는 마음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 나는 급히 바닥에 깔고 있던 타월로 추한 부분을 가리면서 죽는 삯바느질을 해 가며 키우게 된다. 문안(사대문 안)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 날을 기대하면서 오빠를 신앙에 가까운 믿음으로 뒷바라지 한다. 그러던 중 인왕산 기슭 달동네에 자그마한 집을 장만하게 된다. 낡은 집이었지만 서울에서 처음 장만한 집이라 엄마의 애착은 남달랐다. 그 곳에 엄마는 말뚝을 세운 것이었다. 6·25의 와중에서 비참하게 오빠를 잃은 엄마는 조카들과 함께 노후를 지내던 어느 날 낙상하여 다리 수술을 받게 된다. 여든여섯 노구의 엄마는 약물의 부작용인 듯한 발작을 한다. 6·25 전쟁 중에에 아들을 잃던 때의 기억이 광란적으로 드러난다. 오빠는 6·25때 좌익에서 전향하였다가 피난을 가지 못하고 피해 망상 증세를 보이며 초췌하게 숨어 지내다가 무참히 살해되었다. 수술 후 엄마는 7년을 더 살다 돌아가셨다. 나는 엄마의 유언대로 엄마의 시신을 화장하여 고향이 바라다보이는 강화도 바닷가에 오빠의 경우처럼 장례 지내고자 하지만 장성한 조카는 주위의 이목과 자신의 사회적 체면을 이유로 매장할 것을 고집하여 뜻대로 장례를 치른다.▶나목1970년에 발표된 박완서의 처녀작인 「나목」은 자신의 체험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전체가 1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51년에서 1952년에 걸치는 겨울을 시간적 배경으로 UN군에 의해 재 수복되긴 하지만 아직 환도는 이루어지지 않은 서울을 배경으로 청춘의 성숙 과정과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한 길을 교차시키고 있다6.25 전쟁이라는 시대적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옥희도라는 미술가가 여성 화자의 관점에서 잘 그려져 있다. 전쟁의 삭막함 속에서는 고목으로 보였으나 안정된 상황에서는 나목으로 보이는 평범한 일상인의 눈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통찰한 예술가의 혜안이 역설적으로 잘 드러난다. 6.25 전쟁 중 서울 신세계 미군 PX 초상화 가게에 일하는 이경은 불우한 화가 옥희도를 만난다. 처음 만나 그의 눈에서 '황량한 풍경의 일각'을 느낀 그는 옥희도에게 끌린다. 두 오빠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던 그는 명 영빈의 여동생 영묘의 결혼과 그녀 남편인 재벌 2세 송경호의 암 발병으로 이어지면서 몇겹의 의미망을 확충한다. 먼저 환자 일족을 중심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졸부의 천민성과 교활함. 이는 『도시의 흉년』 이래 박완서 문학에 거듭 등장하는 이른바 '중산층의 허위의식'으로 분류될 대목일 것이다. 죽을 병에 걸린 아들에게 끝끝내 사실을 숨기는 재벌 부친의 속마음이, 알고 보니 언제 남이 될지 모를 며느리에게 혹시라도 거액의 유산이라도 남겨질까 봐 서였다. 너무나 소설적인 삽화도 있다. 딸만 둘 둔 영빈의 아내가 영빈의 어릴 적 연적인 산부인과 의사의 불임 클리닉에서 현금을 만나 친구가 되는 이야기. 아내도 현금도 모두 영빈의 아이를 낳고자 그곳을 다닌 것이다. 당당한 이혼을 선택한 현금과 아들 못 낳은 죄에 시달리는 '배운' 아내와의 친분 속에서 작가가 표현한 "유구한 여성잔혹사"는 잔혹하게 극대화된다. 무엇보다 [아주 오래된 농담]에 가장 열광할 독자는 의사들일 것이다. 대체의학, 신비요법이라는 미신에 휘둘리는 의료상황, 사회적 지위만큼의 특별대우를 당연시 하는 천박한 VIP환자들의 추태, 의사보다 더 전문가 노릇하려 드는 환자 주변인들의 횡포... 작품의 절반 이상을 할애한 암환자 송경호의 불행을 통해 소설은 한국 의료현실의 고발장과 같은 역할도 한다.Ⅴ. 작품 감상▶이 소설이 읽을만 한 이유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는 상당히 놀랐다. 그것은 주인공이 육십을 넘은 할머니 였음에도 그녀의 심리변화를 이해하는게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가 현란하고 과장되기 보다는 섬세하고 현실적인 글쓰기를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덕분에 주인공에게로의 감정이입이 쉬워지고(시점이 일인칭 주인공시점 이라는 것도 한몫 한다.) 따라서 독자는 상황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여 '현실적이지 못하다'라는 비평을 하기 보다는 자신이 느낀 그대로 '그럴 수 있다'고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작품 초반부가 이에 해당한다. 육갑을 눈앞에 둔 할머니가 사랑에 빠져 소녀시절의 감정.
    독후감/창작| 2001.12.10| 16페이지| 1,000원| 조회(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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