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마찐의 주제 : 근대이성, 공산주의로 대표되는 유토피아에 anti하는 내용은 전형적인 반(反)유토피아 소설로 은 집단화와 획일화를 지향하는 소비에뜨 체제에 대한 풍자로 간주될 수 있다. 단일제국은 모두의 행복을 만들기 위해 모두에게 ?우리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 것이다. 단일제국은 ?우리들?이란 이데올로기에 의해 유지된다. 단일제국은 개인을 무시한 행복을 만들려 하지만 인간의 행복이란 개인의 자유에 의한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개인의 자유가 없는 행복은 존재할 수 없으며 개인을 무시한 ?우리들?이란 생각을 주입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우리들?의 이데올로기가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먀찐의 비판 대상이 어떤 특정한 권력 구조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일 수 있음을 방해하고 압살하는 모든 제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소설에서 제시되는 인간의 소외와 순응, 자유와 행복의 배타적 관계, 균등주의와 개인성의 말살 등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이다. 특히 자유에서 도피하려 하고 군중 속의 고독과 자아의 상실을 체험하며, 개인의 존재감이 파괴된 고도의 산업 사회를 사는 현대인에게 그것은 더욱 절실한 문제일 것이다.인물:1.D-503 : ?인쩨그랄호?(단일제국의 엘리트들이 만든 우주 비행선으로 다른 혹성에 가서 단일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비교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고 있는 단일 제국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의 기사로서 매일 같은 생활을 반복해가며 단일제국의 규칙을 수호하면서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다. 이 소설에서 보면 그는 물질의 하나의 해체된 부품에 불과한 존재로서,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I-330을 만남으로 인해서 꿈과 현실의 반복되는 혼동 속에서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서서히 자아를 깨닫는 사람이다. 그러나 최후에 죽음의 공포에서 자아를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2. I-330 : 보안국의 보안으로 단일제국의 생활을 잘 해 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몰래 그 세계에서 일탈되는 생활을 하면서 자기 세계로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작가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인물이다. 소설의 끝에서 그녀는 처형을 당하게 된다.3. O-90 : D-503과 신체리듬에 따른 서로에게 등록된 연인사이이다. D-503에게 I-330이라는 여자가 생김으로 인해 고통받고 역시 궤도에서 벗어난 임신을 하게 되고 녹색 벽 너머로 간다. 하지만 그녀도 죽음 앞에서는 자신의 사랑을 버리게 된다.
1. 국어의 음운체계1. 모음(홀소리) :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고 나는 소리. 여러 가지 모음이 발음이 되는 것은 입안의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① 입술 모양이 둥근가 아닌가 → 원순모음, 평순모음② 혀의 위치가 앞쪽인가 뒤쪽인가 → 전설모음, 중설모음, 후설모음③ 혀의 높이가 위인가 아래인가 → 고모음, 중모음, 저모음= (입이 조금 열리는가, 많이 열리는가) → (폐모음) (반혜모음) (개모음)현대국어의 단모음체계(10개의 모음)혀의위치혀의높이전설모음후설모음고모음ㅣㅟㅡㅜ중모음ㅔㅚㅓㅗ저모음ㅐㅏ평순원순평순원순④ 단모음과 이중모음단모음 : 발음하는 도중 입모양이 변하지 않는 모음(위의 표 10모음)이중모음 : 발음 도중 입 모양이 변하는 모음 11개(ㅑ, ㅕ, ㅛ, ㅠ, ㅒ, ㅖ, ㅘ, ㅙ, ㅝ, ㅢ)2. 자음 (닿소리) : 목이나 입안의 어떤 자리가 완전히 막히거나 좁혀져서 장애를 받고 나는 소리.① 소리를 내는 자리(조음점)에 따른 자음의 분류입술소리(순음) : ㅂ, ㅃ, ㅍ, ㅁ혀끝소리(설단음) : ㄷ, ㄸ, ㅌ, ㅅ, ㅆ, ㄴ, ㄹ구개음 : 경구개 (딱딱한 입천장)에서 나는 소리 ㅈ, ㅉ, ㅊ,연구개음 : 연구개(부드러운 입천장)에서 나는 소리 : ㄱ, ㄲ, ㅋ, ㅇ목청소리 : ㅎ② 소리를 내는 방법(조음방식)에 따른 자음의 분류파열음 : 폐에서 나오는 공기를 일단 막았다가 그 막은 자리를 터트리면서 내는 소리 : ㅂ, ㅃ, ㅍ, ㄷ, ㄸ, ㅌ, ㄱ, ㄲ, ㅋ마찰음 : 입안이나 목청 사이의 통로를 좁혀서 공기가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면서 마찰하는 소리 : ㅅ, ㅆ, ㅎ파찰음 : 파열 + 마찰음 : ㅈ, ㅉ, ㅊ비음 : 입안의 통로를 막고 코로 공기를 내보내면서 내는 소리 : ㅁ, ㄴ, ㅇ유음 : 유음에는 설전음과 설측음이 있다. 설전음(혀끝을 잇몸에 가볍게 대었다가 떼면서 내는 소리)로 초성의 ‘ㄹ’과 설측음(혀끝을 잇몸에 댄 채 공기를 양 옆으로 내보내는 소리)으로는 종성의 ‘ㄹ’이 있다.③ 소리의 특징에 따른 자음의 분류예사소리(평음) : ㄱ, ㄷ러시아어의 음운체계현대 러시아어는 모두 33개의 문자를 가지고 있다: а, б, в, г, д, е, ё, ж, з, и, й, к, л, м, н, о, п, р, с, т, у, ф, х, ц, ч, ш, щ, ъ, ы, ь, э, ю, я.그러나 러시아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음에서도 경자음을 표시하는 철자, 연자음을 표시하는 철자, 그리고 자음에서도 경자음과 연자음을 구별하여 알아야 한다.1. 모음러시아어의 모음을 표시하는 철자는 모두 10개인데, 이 가운데 경자음을 표시하는 철자가 5개이고, 연자음을 표시하는 철자가 5개이다. 경자음임을 나타내는 경자음 표시 모음과 연자음을 나타내는 연자음 표시모음은 다음과 같다.러시아어의 기본모음은 и, е, а, о, у의 다섯 개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문자 я, ю, ё는 [j]에 모음 а, у, о를 합한 것을 표시하는 문자이다. [j] 음의 특성상 해당 문자 앞에 경자음이 놓이면 해당 경자음은 연자음으로 발음된다:та[ta] : тя[t'a]ту[tu] : тю[t'u]то[to] : тё[t'o]2. 자음문자상으로는 모두 19개의 자음이 있지만, 음운상으로는 18개의 경자음(п, б, т, д, к, г, ц, ф, в, с, з, ш, ж, х, м, н, л, р)과 16개의 연자음(п', б', т', д', к', г', ч, ф', в', с', з', х', м', н', л', р') 그리고 반연자음 й[j]으로 나누어진다. 음운적으로 러시아어의 자음의 특징은 유성자음과 무성자음의 상관쌍의 구조와 경자음과 연자음의 상관쌍의 구조가 마치 육면체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과 같다.① 유성자음과 무성자음의 쌍러시아어에는 발음위치가 동일한 여섯쌍의 유성자음과 무성자음이 있다.② 경자음과 연자음의 쌍러시아어는 п에서 р까지의 모든 자음이 경자음-연자음의 쌍을 구성하고 있다. 이것이 러시아어의 자음의 주요한 특징이다. 다만 ц, ш, ж는 짝이 없는 경자음이고, й, ч, щ는 짝이 없는 연자음이다ф-ф': фабрика - фёдор⑶치음(잇소리)т-т': ты - тигрд-д': Димас-с': СЭП - семяз-з': завтра - зиман-н': нос - нянял-л': лампа - люди⑷치경음(잇몸소리)р-р': рад – рядц: 항상 경자음임. центр[ce'ntr] , цена[cyna']ш: 항상 경자음임: шест[?ect]ж: 항상 경자음임: жест[?est] , жена[?yna']⑸경구개음(센입천장소리)ч: 항상 연자음임. час[?as], часы[?isy'] счастливый[?isli'vyj]счастливая жизнь [?isli'vaja ?izn']Чайковский[?ijko'vskij]щ: 항상 연자음임. щедрый[??e'dryj]й: мой[moj]⑹연구개음(여린입천장소리)к-к': когда -кислыйг-г': гордый -генийх-х': хорошо -хитрый⑺. 분철기호ъ: 이 문자 앞에 있는 자음은 항상 경자음으로 발음하라는 표시임.съёмка[s"jomka]ь: 이 문자 앞에 있는 자음은 항상 연자음으로 발음하라는 표시임.мять[m'at']3. 러시아어와 국어의 음운체계의 비교러시아어에서 문자 ы는 경자음 다음에서만 사용되는 것으로 모음 и의 상보적변이음이다. 그리고 다른 문자 я, ю, ё는 모음이 아니라 이 문자의 앞의 자음을 연자음으로 변화시키는 문자이다. 예를 들어, тя의 발음은 [t'a]이다. 즉 문자 я는 이 음에 내포되어 있는 음 й로 인하여 앞의 경자음 т를 연자음으로 되게 하고(구개음으로 되게 하고) а만 남는 기능을 한다(тя = тйа: [tja] -> [t'a]).그리고 자음 편에서 한국어의 자음은 폐쇄음과 파찰음에서는 조음방법상으로 평음을 기본으로 하고, 후두에 긴장을 동반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따라 경음과 평음으로 대립되고, 폐쇄음, 파찰음 그리고 마찰음에서는 기식의 유무에 따라 격음과 평음으로 대립된다. 그리하여 한국어 자음의 발음의 유성자음과 무성자음으로 구분된다: б-п, д-т, г-к, в-ф, з-с, ж-ш. 그리고 조음 위치상으로는 한국어와는 달리 경자음-연자음으로 구분된다: б-б', п-п', д-д', т-т' 등. 양순폐쇄음 п, п', б, б'를 도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한국어는 양순 무성음이 3가지(ㅃ, ㅂ, ㅍ)나 되지만, 러시아어는 양순 무성음이 한가지(п)이고, 한국어에서는 양순 무성음이 공명음이나 모음 사이에 올 때에 유성자음으로 발음되는 변이음이지만, 러시아어는 독립음운이다. 그리고 한국어는 경자음만 독립음운이지만, 러시아어는 연자음도 독립음운이다. 그리고 한국인은 동이라 위치에서 자음이 세 개나 되기 때문에 자음의 변별력이 섬세하지만, 러시아어는 그렇지 못하다. 러시아어의 양순 무성자음은 한국어의 양순 경음에 가까운 음이다. 그래서 книга를 한국어로 표기하면 [크니가]가 아니라, [끄니가]가 옳다. 그러나 러시아인에게는 두 음 사이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러시아인은 양순음 위치에서는 성대가 울렸느냐 울리지 않았는지에 따라 구별되기 때문이다. 양순 위치에서 성대가 울리지 않게 발음했으면 그것이 [끄]이건 [크]이건 간에 러시아인들에게는 비슷하게 들린다.따라서 러시아어의 발음을 제대로 하려면 이러한 양국 언어의 구조적인 차이를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한국어의 자모체계에 익숙하여 있는 한국인들이 처음으로 러시아어를 배울 때에 하는 발음상의 실수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① 한국어에서는 유성자음을 제외한 모든 자음들이 초성에서 무성자음으로 발음되기 때문에, 초성에서 러시아어의 유성자음을 무성자음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бабушка에서 첫 음절 ‘ба’에서 자음 ‘б’는 유성자음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그냥 한국어의 바[pa]를 발음하듯이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러시아어의 бабушка에서 첫 음절 ‘ба’의 ‘б’는 유성자음이기 때문에 성대를 강하게 울려야 한다. 초성에서 성대움림소리를 제대로 발음하기 위하여 성대를 울렸다가/과 /l/이 모두 올 수 있다: лампа[lampa] ‘램프’, лавка[lavka] ‘조그만 상점’, расписание[raspisanie] ‘시간표’. 처음 러시아어를 배우는 한국인에게 лампа를 발음하라고 하면 약 50% 정도는 한국인의 발음습관에 따라 [rampa]로 발음한다.③ 러시아어를 배우려는 사람은 이미 영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순치음에 익숙하여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러시아어의 순치음 в, ф의 발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한국어에서는 순치음이 없다. 따라서 이 문자의 발음은 윗니를 아랫입술에 가볍게 대고 발음되는 것으로, 순치음을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하여 윗니를 아랫입술에 가볍게 대는 발음연습에 신경을 써야한다.④ 러시아어에서 т와 с는 치음의 위치에서 발음된다. 그러나 한국어의 [ㄸ]와 [ㅅ]의 발음위치는 치경이다. 따라서 러시아어의 т[t], с[s]의 발음위치는 한국어의 [ㄸ], [ㅅ] 보다 치음에 가깝게 발음된다.⑤ 한국인은 러시아어의 ж를 제대로 발음하기가 어렵다. 이 음은 한국어에서는 없다. 그러나 한국어의 발음원리를 이용하면 쉽게 익힐 수 있다. 러시아어의 ж의 발음은 한국어의 쉬의 음에서 성대를 울리면 러시아어의 ж의 음으로 된다.⑥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조음 위치상으로 러시아어는 한국어에 없는 연자음이 있다. 그래서 한국인이 러시아어의 연자음을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을 대단한 훈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러시아어의 연자음을 제대로 발음하는 것이 러시아어의 발음을 제대로 하는 관건이다.러시아어는 세계에서 연자음이 가장 발달되어 있는 언어이다. 러시아어는 특별한 몇 문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자음이 자신의 짝의 연자음이 있다. 연자음의 발음상의 특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경자음이 й[j]음과 결함될 때에 혀의 가운데 부분의 센입천장 부위에서 조음되는 й[j]의 조음적 특성으로 인하여 경자음이 이 부분으로 들여 올라가면서 발생되는 음이다. 따라서 혀의 가운데 부분보다 앞에서 조음되는 양순음 б[b], п[p], 치음
고르바초프출생 : 1931년 3월 2일국적 : 러시아학력 : 모스크바대학교 법과대학수상경력 :1990년 노벨평화상1985년 당 서기장1988년 연방최고회의 간부회의장 겸임1990년 3월 소련 최초 대통령으로 선출1991년 12월 대통령직 사임1994년 씽크탱크인 사회, 정치연구소 의장 활동199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러시아 연방 남서부 스타브로폴 지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46년 콤소몰(공산주의청년동맹)에 가입했으며, 이후 4년 동안 국영농장의 콤바인 기술자로 일했다. 콤소몰에서의 활동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1952년 모스크바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고 그 해 공산당원이 되었다. 1955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콤소몰과 정규 당 조직의 여러 직책을 거치면서 지역 당 위원회의 제1서기에 올랐다.그는 1971년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지명되었으며 농업담당서기(1978)와 정치국원(1980)을 역임했다. 그가 꾸준한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이데올로기 담당 서기였던 미하일 수슬로프의 후견이 큰 역할을 했다. 유리 안드로포프의 통치기간 동안 눈부신 활동을 보였던 고르바초프는 1984년 2월 취임 15개월만에 안드로포프가 사망하고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권력을 승계했을 때 이미 차세대의 지도자로서 부각되고 있었다. 1985년 3월 10일 체르넨코마저 급사하자 정치국은 최연소 위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했다.고르바초프는 노쇠하고 무능력한 당 간부들을 패기에 찬 신진관료들로 교체하는 등 집권 초기부터 자신의 위상을 확립하는 데 주력했다. 첫번째 국내목표는 브레즈네프 시대이래 정체되어온 소련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위하여 기술현대화를 표방했으며 노동생산성 증대와 부패한 관료기구의 혁신에 힘을 기울였다. 피상적인 변화들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1987~88년 경제 및 정치체제에 관한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착수되었다.'글라스노스찌'(개방) 정책은 소련사회 전반에 해빙 무드를 조성했다.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가국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리투아니아 등지의 반소 소요사태는 명백히 분리독립운동의 성격이 짙었다. 중앙아시아의 인종분규를 유혈 진압한 고르바초프는 1990년 3월 리투아니아 공화국이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포하자 경제봉쇄를 통하여 이탈을 잠정 유보시키는 동시에 연방탈퇴의 법적 요건을 마련하기 위한 헌법개정작업에 착수했다. 민주화조치는 소련 공산당의 권위를 실추시켰고 그는 이 여세를 몰아 국가권력을 행정기구로 대폭 이관시켰다. 1990년 3월 인민대표회의에서 소련 대통령으로 추대된 고르바초프는 광범위한 행정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인민대표회의는 헌법에 보장된 공산당의 일당독재를 폐지함으로써 복수정당제의 법제화를 준비했다.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전체주의 정치를 불식하고 소련에 대의제 민주주의를 이식하는 데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계획경제의 요소를 일소하여 사기업과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는 데는 비교적 소극적이었다. 그는 자유경제와 통제경제라는 전혀 상반된 두 체제 사이에서 절충을 모색했고, 그 결과 소련경제는 별다른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행정부가 취한 모순되고 자멸적인 개혁조치들은 경제혼란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허물어져 가는 공산당 지도자로서 새로운 법령과 개각을 통하여 사태의 수습에 안간힘을 썼지만 행정부는 이미 권위와 효율성에 있어서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었다. 대통령은 경제파탄, 민중의 욕구불만, 소수민족국가의 세력확장 등으로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보안기구와 당내 보수세력에 가까워졌다.1991년 8월 19일 오랫동안 예견되어왔던 쿠데타가 일어났다. 크림 반도의 여름별장에 머물고 있던 고르바초프는 부통령인 야나예프, 국방장관 야조프, KGB 의장 크류츠코프 등으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 가족들과 함께 연금상태에 놓였다. 그러나 KGB의 사전검거를 면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 연방공화국 대통령과 소프차크 레닌그라드(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됨) 시장 등 개혁파 인사들은 러시아 공화국 의사당에 집결,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쿠데타 세력안은 공화국에 독자적인 외교권과 군대창설권을 부여한 점에서 이전에 비해 연방권한을 훨씬 축소시켰지만 중앙집권적 명령체계를 갖는 통합군의 구성을 보장하고 핵의 중앙통제를 강조함으로써 연방정부의 핵심기능을 담보해 놓고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그 해 말까지 신연방조약안이 조인되지 않으면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겠다고 배수(背水)의 진(陣)을 쳤지만 옐친은 러시아 연방공화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연방체제를 유지하려는 고르바초프의 노력에 제한적인 협조만을 보낼 뿐이었다.1991년 12월 8일 벨로루시의 브레스트에서 회동한 옐친과 우크라이나의 크라프추크 대통령, 벨로루시의 슈슈케비치 최고회의의장은 민스크를 행정수도로 하는 '독립국가연합'의 결성을 선언, 연방해체를 막아보려는 고르바초프의 노력에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12월 21일 알마아타에서는 1992년 1월 1일부로 독립국가연합을 발족시킨다는 전제 하에 그루지아를 제외한 11개 공화국이 협정안에 서명했다. 1922년 스탈린에 의하여 강제 구성되어 69년 동안 지속되어왔던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12월 25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사임연설이 텔레비전을 통하여 전국에 방영되었다. "나는 이제 우려뿐만 아니라 인민 여러분의 지혜와 의지에 대한 희망을 함께 지닌 채 대통령직에서 물러납니다. 나는 알마아타 합의가 진정한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내고 개혁과정을 용이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나의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1. 고르바초프 현상 : 새로운 사고소연방의 해체와 소멸은 한 세기에 한번 나타날 수 있는 국제정치사적인 현상이었다. 전후 국제질서의 기본의 하나였던 냉전체제를 종식시킨 사상적 심층동인인 소련 공산당의 해체로부터 시작하였다. 이는 고르바초프 현상의 여러 가지 요인 중 특히 뻬레스트로이까에서의 새로운 사고와 관련되어 있었다. 소련이 대외정책을 새롭게 전개하게 되는 기초로서 '새로운 사고'라는 개념은 주로 대외정책 분야에서부터 기인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이스트로이까를 시장사회주의 와는 반대되는 것으로서, 중앙계획경제의 테두리 내에서의 시장메카니즘의 주요한 활동으로 묘사하고 있다.(즉, 일종의 사회주의적 시장) 많은 경제학자들과 이데올로그들에게 있어서 사회주의적 시장은 단지 시장 사회주의로의 전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소련의 변화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르바쵸프가 주장하는 급속한 재건 은 또한 합리화와 이윤추구 로 간단히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목표들을 추구함으로써 여타의 목적들이 더욱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 근대화, 산업시설, 원료와 에너지의 효율적 활용, 시급한 부문에서의 로보트와 현대정보기술 사용의 확립, 현실적인 임금체계의 확보, 기업자율성의 확대, 작업 수행정도에 따른 노동소득체제, 세계시장의 통합 증진, 곡물과 육류문제의 해결, 주택문제의 해결 등등3. 고르바쵸프의 정치개혁고르바쵸프 진영이 제안한 사회민주화는 분명 다소 제한된 목표들을 포함하고 있다. 모든 수준의 통치기구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체의 극복, 즉 사회의 상층부를 뻬레스트로이까의 도정으로 이끌어 내는 것, 뻬레스트로이까의 성공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창조적 에너지와 일련의 동기를 해방시키기 위해 사회 하층부의 부분적인 탈정치화와 동력을 뻬레스트로이까의 도정에 결합시키는 것 그리고 전체 민주화과정이 체코슬로바키아의 경우처럼 좌절되지 않는다는 것, 즉 쇄신 의 통제 속에 당을 묶어두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화의 도정이다.고르바쵸프 진영이 주도하는 개혁의 도구는 세 가지로 뚜렷하게 구분해볼 수 있다.첫째, 미디어와 미디어 밖에 있는 토론과 비판의 해방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글라스노스트이다)둘째, 모든 부문의 관료기구의 정화와 근대화(국가, 문화제도, 경제기구, 군사기구들, 공산청년동맹과 여성조합과 같은 대중조직)셋째, 직접적으로 권력을 집행하는 제도나 기제의 유연성을 증대시키는 것4.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내용1. 뻬레스트로이까(개혁)--소련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회주의가 허락할 수 있도의 과도기 단계로 또 이를 파악하려 한다.이렇듯 고르바쵸프의 뻬레스트로이까가 소련의 사회주의 발전과정에서 자리잡을 수 있는 일정한 역사적 단계로 이 단계는 혁명적인 단계이며, 또 과도기적인 단계라고 하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논리에서 보면 뻬레스트로이까의 슬로건을 걸치고 행해지고 있는 체제개혁을 위한 모든 정책들도 혁명성과 과도기성이라고 하는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또 이와 같은 이중적인 성격이 그들 개혁정책의 내일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2) 뻬레스트로이까의 구도고르바초프가 뻬레스트로이까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이상목표는 개별적인 범위에서는 소비에트체제의 발전'이며 포괄적인 범위에서는 사회주의의 강화'에 두고 있으며 이러한 점은 뻬레스트로이까의 목적이 소비에트 사회를 새로운 개척지로 이동시켜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다고 하는 고르바초프가 설계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청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그는 뻬레스트로이까의 성공은 어떤 사회체제가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적합할 것인가 하는 역사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며, 공산주의 혁명이라고 하는 역사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며, 공산주의 혁명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조건에 의해 형성된 소비에트는 매력 있는 국가로 변화, 사회주의 사회의 본질적인 우수성이 구체화될 수 있어 사회주의 이념의 새로운 전개가 약속된다"고 주장함으로써 뻬레스트로이까가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체제의 승리와 국가의 발전을 겨냥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이상과 같이 뻬레스트로이까의 이상목표는 소비에트체제의 발전과 사회주의 강화이다.또한 고르바초프는 서구인들이 뻬레스트로이까를 사회주의의 포기, 또는 적어도 토대 일부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서구의 시선에 대해서 그는 현재 소련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개혁이 사회주의의 길에 따라 지도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지금까지 제기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그 해 하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 고유의 문학이 잇게 마련이다. 한국의 문학의 역사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스페인 문학 역시 독재자 프랑코 이후에 그 문학의 자유와 내지 민주화 경향을 경험하게 된다. 언론 및 출판물 검열제 금지, 금지된 도서들의 수입 및 재출판 붐이 36년간의 독재 정치 하의 억압속에 있다가 한꺼번에 밀려 터졌기 때문이다. 또한 중남미 문학 또한 1960년대 이후 중남미 소설의 붐을 제외하고는 세계문학에서 이렇다할 수확이 없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컸다. 단순히 상업적인 성공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 부정할 수 없는 새로운 소설 기법, 정치 사회적인 혼란속에 악순환을 거듭하는 지역적 문제성이과 그들만의 독특한 토속적 매력이 뒷받침된 소설의 붐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스페인 문학과 중남미 문학을 그 역사적 배경과 함께 일부 내용을 토대로 글을 써 나가고자 한다.스페인 문학독재가 프랑코 총통의 죽음을 계기로 스페인 문학은 자유화, 민주화 경향을 띠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우선 프랑코 사망이후 가장 두드러진 현상의하나는 회고록 붐이다. 한편 스페인의 자유 민주화 물결의 일환으로 70년대 말기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스페인 내란의 개관적인 사적 정리 작업이다. 즉 프랑코하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정치인 및 지성인들의 귀국과 함께 내란기의 진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됨으로써 어느 정당이나 정권의 편견없는 스페인 현대사를 조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엽적으로 출판된 전쟁사들이 허다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상 1960년도까지는 모두가 승자 폐자를 막론하고 편파적인 선전역할을 담당하는데 불과했던 책자들이, 점차 신중성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회고록 붐과 매스 미디어의 각광이 프랑코 사망이라는 대역사적인 명제를 두고 직접 문화사회에 두드러진 현상이라면 마샬, 멕루한의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오늘 스페인 사회에 신문 도큐멘트 텔레비전 등 사실적인 매게체의 중요성이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 예로 스페인에서는 도큐멘타리 창작물이 소설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 도큐멘타리 소설? 繭?소설도 시도 수필도 아닌 애매한 문학장르를 일컫는다.프랑코 이후의 스페인 시는 사회 참여시와의 결별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195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스페인시를 누비어 온 건 호세 가르디아 니에또와 루이스 로살레스를 중심으로 한 신 고전주의와 사회참여시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참여시는 시언어에 있어서 하나의 개혁을 단행하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모든 언어가 시적인 상황에 응결될 때 시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점이다.이상 모든 시 개혁의 움직임은 하나로 체계지을 수 밖에 없는 시운동에 불과한 것이나 오늘날 스페인시의 한 현상으로서 종래의 논리적인 문장에 의거해야했던 시표현방법의 붕괴를 가져왔다. 초현실주의의 자동필기법을 모방했다고만 말할 수 없는, 언어에 대한, 언어자체의 배카니즘에 대한 신뢰가 사실 현대 스페인시의 새로운 국면이라고 봐야되겠다. 즉 오늘 대부분의 시인들은 시작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직감 내지 미감, 이미지의 참신성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내용으로 보면 신낭만주의와 서사시풍으로 볼 수 있는데 신낭파시란 댄디즘, 혹은 베니스풍으로 불러웠던 'Ncomodcrnismo' 의 시인들 및 단독적으로 새로운 감각의 사랑과 정열을 노래한 시인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이들 낭만주의 시인들의 시작법으로는 전통적인 형식에 대한 무관심, 파노라마식의 자동필기법 사용, 이색적인 것에 대한 동경, 토속적인 요소들의 무절제한 인용 등을 새로운 요소로 가지고 있다.이후 스페인 내란과 새로운 질서의 승리로 말미암아 전후 몇 년 사이에 소설은 하나의 장르로서 소멸을 예상하게 되었다. 이 시기는 사실주의, 객관주의, 침묵의 시기라 할 수 있으며 60년대에 들어서는 이제 스페인 소설도 결정적으로 국제적인 소설의 위치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소망으로 문학에 뛰어들어가게 된 어떤 출판자의 노력은 위태로운 신문투의 형용사들이 남발하는 사실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스페인 소설의 내용에 도움이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70년대에 들어서자 검열왕국을 낳게했던 정치체계의 위기와 환경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독재자가 살아있을 적부터 후기 푸랑코 시대라는 말이 나돌게끔 되었다. 그리고 스페인 문화의 물질적 발전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또한 안달루니아 소설이니 카나리아 소설이니 하는 따위의 지방 문학을 자치적으로 발전해 온 문화로 간주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아무런 성공도 거두지 못하였다.돈키호테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가 창조한 알론스 끼하다 영감이 기사 소설에 미쳐 자기 창조한 인물이다. 여기서 세르반테스가 소설의 주인공을 창조하는 과정, 주인공이 자신 속에서 또 다른 주인공으로 둔갑하는 2가지 창조과정을 볼 수 있다. 돈키호테라는 방랑 기사는 그들이 즐겨 꿈꾸는 소설 속의 영웅이면서 현실적으로 서반아에서 찾지 못한 부나 영욕, 종교적 선교를 목표로 바다를 건너 떠나는 모든 서반아 정복자들의 마음자세였다. 여기서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와 같은 미치광이를 바로 잡고 거짓과 환상에 살고 있는 무리들을 정말로 깨우쳐주겠다는 생각으로 돈키호테라는 비틀어진 것을 바로 잡고 잘못된 데를 고치겠다고 나서는 돈키호테를 내세워서 소설을 쓴다.돈키호테에서 현실이 환상세계로 둔갑하는 기본패턴은 주인공의 광증에 있으며 이러한 돈키호테의 의식 속에는 자신의 기사로서의 명예를 질투하고 헤살질하려는 라이벌적인 마술사의 현실 둔갑능력이 늘 그를 괴롭히고 있다. 그를 미치광이가 아니라는 면에서 관찰할 때 돈키호테의 사랑과 정열, 분노. 꿈의 화신으로서의 낭만주의적 감성으로 변질되는 성격을 엿볼수 있다.중남미 문학1960년대 이후의 세계소설은 중남미 소설의 붐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수확이 없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5년까지는 사실주의 소설로 이들은 종래의 풍속도적인 묘사를 배제하고 소위 마술적인 사실주의라는 새로운 사실주의 수법을 창안했다. 이후 60년대까지 당시의 사실주의 수법에 권태를 느낀 작가들이 있는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고 고발하는 형식의 판에 박힌 소설형식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문제와 농촌이 주된 무대였던 종전의 소설과는 달리 도시생활과 보다 근본적인 인간의 존재와 환경이 테말 등장한다. 까르띠메르는 사실주의란 아메리카 대륙의 놀라우리만큼 기묘한 현실을 부각시키는데는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는 곳곳마다 이런 신비스러운 힘에 의해 움직여 왔기 때문이다.60년대 이후 중남미는 세계적인 소설군을 형성할 정도로 질적, 양적 성장을 하게된다. 소설 구성에 있어서 대부분의 소설이 종전의 이야기 중심으로의 전개방법을 버리고 순간순간의 삽화라던가 시간상 서로 다른 사건의 동시전개, 심리적인 묘사의 비약등으로 소설은 하나의 지속되는 이야기 줄거리를 잃고 작가의 의식의 흐름속을 따라가게 된다. 즉 종전의 작품속에서의 전지전능한 소설가의 입장을 양보하고 독자와 함께 사건의 관조자가 되는 것이다. 이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대화보다는 독백이 소설에 많다는 것인데 독백을 쓴다는 것은 한 생각안에 서로 연관이 없는 모든 기억, 느낌, 감촉이 조직화되지 않은 채 원형그대로 부각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꿈의 세계에서처럼 하나의 의식의 흐름을 표현할 수 있어 자유로운 환상의 전개가 가능하다.금세기에 들어와 서방세계에서 앙가쥬망 문학의 필요성이 역설된 것은 그들의 시대적 위기위식과 관련한다. 독재와 폭력을 주무기로 행세하는 중남미 사회에 있어서 압박과 굴욕, 소외의 의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몇몇 대기업의 손에 국가 경제가 놀아나고 군부 쿠데타, 집단살륙이 자행되는 상황 속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의식상의 갈등은 모두를 비인간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1959년 쿠바 혁명을 계기로 중남미 시는 게릴라적인 혁명열기를 띠고 거리로 뛰쳐 나온다.중남미의 민중서사시-빠블로 네루다네루다는 1904년 칠레의 어느 조그만 마을인 빠르릴에서 태어났다. 네루다의 민중시는 인간 해방에 대한 구가다. 억눌린 자와 고통에 시달리는 자, 농민들의 아픔과 고통은 공간적으로는 우리의 눈앞에서 우리의 가슴을 부르고 민족의 역사속에서 끊임없이 우리의 손을 찾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인간이고, 인간이어야할 세상에 지배자도 피지배자도 자꾸만 비인간이 되어가는 삶의 비극속에서 그는 용감하게 하나의 길을 택하고 뛰어든 사람이다.이 투명한 빛 위에농장이, 도시가, 광산이 태어나리라,이제 땅 속에서 굳고 땅처럼 싹을 틔우는이 단결 위에, 영원한 창조생명들을 위한 새로운 도시의 싹이 놓였다.---에서스페인 및 중남미의 아방가로드 문학운동의 전개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선언이 있고나서 아방가르드가 소개되었고, 서반아의 아방가르드 운동인 울트라이스모가 모더니즘 후의 문예사조로써 등장하게 되었다. 서반아의 울트라이스모는 모더니즘의 호화스러운 수사법과 이야기 스타일, 감상주의, 음악성등을 과감히 버리고 미래주의의 테마와 같은 현대문명의 산물들을 소재로하여 비유와 이미지에 의거하는 시적 표현 방식을 추구했다.
동양은 오랜 옛날부터 서양인들의 꿈의 고향이었다. 동양인들의 사상과 문화는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동경의 세계였다. 역사적으로 서양인들의 동양에 대한 꿈이 역사적으로 중요성을 띈 것은 마르코 폴로때부터이다. 마르코 폴로가 24년 동안 동양에서 보고들은 얘기를 엮은 것이 `동방견문록`인데 이때부터 유럽인들의 그들의 동경의 대상이던 꿈의 발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근대 문명으로 인한 물질문명의 우위를 달리던 서양의 세력은 곧 동양의 문화를 미개 문명으로 전락시켜버린다. 고유한 문화를 자랑하던 동양문화는 곧 정체성의 혼란 속에 서양문화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는 뿌리없는 독창성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서세동점의 세계기류를 타고 동양의 것, 우리 고유의 것이 상실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 서양인들의 문화를 통하여 우리의 것을 재조명하는 시도를 해야하기에 이르렀다.동서 만남의 역사시대동양은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꿈의 고향이었다. 서쪽으로 간다는 것은 많은 종교에서 죽은 뒤 영혼이 가야 하는 길이라면, 동으로 가는 것은 신비스러운 생명과 역사의 원천으로 가는 길을 의미했다.알렉산더 대왕의 동양 정복 야망도 그런 꿈의 산물이었고 630년경부터 1300년경까지 동서양에 걸쳐 대사라센 제국을 리더한 아랍인들의 발길도 자연히 동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연유가 된다.그러나 서양인들의 동양에 대한 꿈이 역사적으로 중요성을 띠기 시작한 것은 마르코 폴로 때부터다. 마르코 폴로가 1271년 고비 사막을 거쳐 중국 개평까지 도착한 것은 꿈을 따라온 발길이었다. 129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돌아가기까지 24년 동안 동양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엮은 것이 그 유명한 이라면 이로부터 유럽은 가까스로 자신들의 꿈의 발을 잡은 셈이었다.르네상스와 바로크 문학 속의 동양이미지여행기와 역사책이 판치고 동양사상의 번역서가 책방을 나도는 판국에 문학이 온전할 리가 없다. 환상과 동경의 고장이 동양이 되고 이상적인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땅이 또 중국이다. 이제 마르코폴로에게 영향을 받은 꿈의 대륙, 황금의 고장인 동양의 이미지에서 그들의 개척 정신의 구체적인 목표요 현실로 바뀌는게 16세기, 17세기 유럽 문학의 동양에 대한 비전의 변천이다. 르네상스적인 동양의 이미지는 작가에 따라서 쉽게 사실적인 현실로 넘어간다. 16세기 중반부터 극동은 유럽인의 구체적인 현실이었던 만큼 문학 속에서 그런 흔적은 역력하다.17세기로 들어서면서 동양은 다이아몬드,호박,금,명주의 나라이자 도자기의 나라가 된다. 이들과의 교류로 그들의 문학은 바로크이후 현실화된 동양의 실상을 작품화 하게 된다.계몽주의 사상과 동양 유교철학애초에 서구의 동양 전략이 기독교 복음 전달에 정신적인 뜻을 두고 있었던만큼 그들 선교사들은 처음부터 동양인들의 맘을 읽으려고 애를 썼다. 동양종교,미신,사상에 관심을 표명을 것도 사실은 그것이 심어야 할 기독교 정신의 터전에 대한 탐색때문이었다.16,17세기에 걸쳐 소개 번역된 동양사상은 그들의 지식과 비판의식에 커다란 지침서가 된다. 폴란드를 제외하고는 전 유럽이 동양과 외교두절 상태에 처해있었기에 이미 알려진 기록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유토피아적 모델로서 동양 정치,사상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런 편파적인 견해는 수정된다. 종래의 기독교적 중심적인 역사관을 탈피하기 시작하는 이들의 상대 문화관은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문명과 전통이 서구와는 다른 독자적인 발전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든다. 이런 역사나 지리적 조건의 독자성에 대한 인식은 당시의 미학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즉 미학의 개성론을 낳게 만든 모태로 작용하게 된다.꿈속에서 만난 동서의 재회1600~1850에 걸친 동양인의 절교는 서양인에게 그리움을 더해주는 결과를 낳았다. 그들에게 다원론적인 개념, 상대적인 비전의 발달은 동양문화의 독자적인 인식으로부터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개인의 독창성을 인정하는 낭만주의로의 발전을 모색하게 된다. 19세기의 낭만주의는 개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동시에 인간의 감정이 중요한 문학의 테마로 등장하는 시기이다. 질풍노도와 같은 사랑, 원시적인 자연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자연히 이국취향이라는 낭만주의 문학의 한 특질을 낳게 된다. 이집트, 카이로등 옛도시들은 낭만주의 시인들에게는 꿈의 왕국이었다. 즉 중동,그리스 등지는 동양이라는 지역적인 이질감과 고대 역사 속의 고향이라는 지역적인 이질감과 고대 역사속의 고향이라는 시간적 향수가 이룬 이그조티시즘 문학의 천국이었다.인상주의적 동양의 예술과 문학19세기 후반의 서구 문학들은 사실주의,자연주의,고답파,상징주의,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느 문학 조류의 복선시대이다. 이 복잡한 문예사조에 인상주의 예술로 본 동양 문화의 인상주의적인 전수방식은 동서양에 뜻하지 아니한 시학의 혁명으로 발전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서양에 없던 미학이 갑자기 동양예술의 영향에서 발생되었다기 보다는 차라리 동양의 자극에 힘입어 그들의 전통과 창의력이 강화되고 풍성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중요한 것은 19세기 후반기, 회화주도시대에 있어서, 그림에서 시작한 인상주의 기법이 동양영향과 함께 어떻게 문학에 파문을 미치는가를 아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일본 판화의 발견은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도구였다. 그들은 이성적인 것을 천박하다고 타박하며 미지의 것 불가사의한것에 매혹을 느낀다. 일본판화의 신비성, 비적격성, 어떤 개인의 순간적인 인상을 암시적으로 형상화한 듯한 감각적인 터치는 자신들이 추구하던 그것이었다.20세기 전후에 만난 서구 문학과 동양사상19세기 말 동양제국의 문호 개방과 함께 서구는 새로운 기대와 꿈에 부푼다. 낭만주의에 뿌리한 동양에 대한 이그조티시즘, 인상주의예술, 문화에서 본 바와 같은 동양의 예술 및 감성에 대한 관심은 20세기 들어서면서 보다 구체화되고 본격화되기 시작한다.20세기 초 프랑스와 영미 문학등은 직접 동양의 사상과 문학에 대한 관심과 접근으로 그 양태를 바꿔간다. 내용에 있어서도 중국계 불교의 영향이 짙어지고 나비나 달,대나무 등 동양문학의 소재가 눈에 띄게 많아진다.서구인의 눈에 비친 동양문학동양에 대한 관경,동양미술에의 심취,동양사상에의 접근을 거쳐 이제 서구 문학은 직접 동양문학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문학사나 동양시,기타 문학 작품의 번역, 일본의 노,가부끼 등의 공연에 이르기까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바뀐다. 동양 문학에 대한 관심도도 초기가 중국 문학 중심이었다면 러일 전쟁의 일본 승리를 계기로 서구의 관심은 완전히 일본 일색이 되어간다.19세기 말경에 로 잠깐 관심에 오르던 한국에 관한 테마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거의 빛을 잃고 일본의 그늘속에 잠자게 된다. 그렇다면 서구인이 본 동양시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동양시의 형식은 짧다. 둘째 동양시는 운율감이 약하다. 셋째 동양시의 수사학적 강점은 여운과 이미지이다.동양시를 모방한 서양의 이미지스트들1차 세계대전이후 서구에 미친 동양시, 특히 일본 하이쿠의 영향을 르네상스에 있어서 소네트의 전파에 비교하는 학자가 있다. 그만큼 동양시는 서양 현대시의 구석구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서구인들이 본 하이쿠는 오히려 동양시의 일반적인 특질이라고 보아야 할 파랄렐리즘,이질적인 이미지의 병치가 전부이며 그 형식에 있어서도 우리시에까지 낯설은 자유시 형식을 본받고 있는 점이다. 서양의 하이쿠는 그들 나름대로의 동양선호 문학의 전통적인 이그조티시즘까지 곁들인 이상야릇한 것이어서 우리는 차라리 모호한대로 동양시의 영향으로 보는 것이다.그러나 서양의 동양문학에 대한 관심이 급기야 어는 일정한 시 형식의 모방으로까지 발전하는 데는 지금까지의 동양에 대한 관심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서반아 및 중남미의 동양사 모방1920년 말기 프랑스의 하이까이즘 영향으로 서반아 및 중남미에 일기 시작한 일본시 모방 붐은 사실상 이미 세기 초부터 서반아어권 문학에 태동을 시작한다. 1918~1923까지 의 서반아의 아방가르도 운동은 비록 특별한 문학적 슬로건은 없었지만 비교적 지속적인 시운동이 있었다.서반아 아방가르도 하이까이 운동에서 많은 나라의 많은 나라 시인들의 동양시 모방시도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