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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영학수강생]자본주의 철학자들을 읽고
    자본주의 철학 경영학경영학이란 무엇인가? 기업을 이끌어가는 수단으로서 경영학은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그러나 과연 경영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답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대학에는 경영학이라는 과목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 곳에서 배우는 것이 실제 얼마나 기업의 현실에 적용되는지는 의문이다. 내가 아는 한 교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경영학이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들의 모음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그러나 과연 그런가? '자본주의 철학자들'은 경영학을 이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경영학을 하나의 독자적인 사상으로서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종래 자본주의의 철학은 주로 경제학에 의해 대변되어 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오늘날 자본주의 철학의 진수는 다름 아닌 경영학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경영학은 짧은 역사, 빈약한 이론체계 등으로 학문이라 불려지는 것조차 민망하게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 책은 경영학을 사상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 같은 일이 가능한 근거로서 대범한 스케일과 치열한 고민으로 경영학 연구에 일생을 바쳐 온 대가(大家)들의 존재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다.이 책의 저자인 안드레아 가보는 '비즈니스 위크' '월드 리포드' 등 미국 주요언론의 논설위원이자 기자이다. 그는 1980년대 초기 국가경쟁력 저하로 미국 경제가 위기를 맞던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경영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세기 초에 시작된 경영학의 큰 흐름을 13명에 이르는 대가들의 생애와 사상의 발자취를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경영학에는 크게 두 가지의 흐름이 있는데 '과학적 전통'과 '인본주의적 전통'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전통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상호 치열한 다툼을 벌이기도 하고 때로는 협력하기도 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F. 테일러 "작업의 과학적화"우선 경영학의 출발점은 프레더릭 테일러(Frederick Taylor)의 과학적 전통에서 비롯된다. 테일러는 작업현장을 감독하는 일선의 엔지니어로서 1903년 '공장관리(Shop Management)'라는 논문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현장관리 지침을 공개했다. 테일러에 따르면 현장의 작업은 작업자의 의지나 숙련도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작업에 관한 모든 행위와 일정은 철저히 기록되고 정형화되어 관리자에 의해 부과되어야 한다. 테일러는 작업현장에서 모든 인간적인 체취를 제거해 버렸는데 그에 따르면 작업은 과학적이어야 하며 인간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테일러는 본래 상류사회의 가정에서 태어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출신에 개의치 않고 현장의 말단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존의 경영자나 관리자가 깨닫지 못했던 작업장의 비밀들을 참신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가령 테일러는 당시 대부분의 작업장에서 일반화되어 있던 솔저링(soldiering :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처벌을 받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하는 태도)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를 배제한 '1일 과업량'을 도출해내었다. 1일 과업량의 과학적인 도출은 노동자들의 극심한 반대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테일러는 '과학'에 대한 신념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경영관리에 대한 테일러의 가장 위대한 공헌은 작업현장에 과학적 견해와 체계적 분석을 가져왔다는 것이다.메리 파커 폴렛, “권위는 피지배층의 동의를 전제되어야 한다”과학적 관리가 절정기를 지나 점차 퇴조하고 있었던 1920년대의 경영사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은 여성 경영학자 메리 파거 폴렛(Mary Parker Follett)이었다. 그녀는 실험주의와 참여민주주의 사상의 신봉자였다. 그녀는 권위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피지배층의 동의를 전제로 현실화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독단적인 명령은 임직원의 책임감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생각은 매우 시대를 앞선 것으로 일견 메이요로 대표되는 '인간관계학파'와 유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다르다. 인간관계학파는 임직원들이 스스로 중요한 사람임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폴렛은 임직원들이 실제로 중요한 인물들이라고 생각했다.C. 바너드, "기업은 하나의 사회체제이다"한편 1930년대의 경영사상가였던 체스터 바너드(Chester Barnard)는 기업을 공학적으로 복잡하게 구성된 기관으로 파악하기보다는 하나의 사회체제로 간주했다. 실제 AT&T의 경영자이기도 했던 그는 명령과 통제에 기반을 둔 리더십 모델 대신에 심리학에 기반을 둔 설득적 리더십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조직 내에는 어느 정도의 마찰과 잡음이 있어야 한다. 무슨 결정을 하든지 간에 당신이 거부했던 다른 대안이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하여 조직의 획일성, 집단성을 경계하기도 했다.뢰슬리스버거, “종업원에 대한 인간적 대우가 성과를 좌우한다”1930년대와 40년에 걸쳐 경영학은 물론 미국의 사회과학 전반에 파장을 몰고 왔던 인간관계이론은 프리츠 뢰슬리스버거와 엘턴 메이오에 의해 서막이 열렸다. 이들은 무려 4년이나 지속된 '호손 공장'의 실험을 통해 단순한 성과급이 아니라 종업원에 대한 인간적 대우가 작업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저자는 호손실험의 성과는 뢰슬리스버거와 메이오라는 대조적인 성격의 천재들이 스스로의 신경증을 견디어 가며 이룩한 위대한 발견이라고 말한다. 사실 호손공장의 실험은 세인들이 짐작하듯이 그리 체계적이지도 깔끔하지도 않았다. 실험목표는 중간에 완전히 변질되었고 실험과정에서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실험 중간에는 해석하기 애매한 각종 해프닝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이것을 일관성있는 이론의 체계로 기술해낸 사람이 다름 아닌 뢰슬리스버거이었던 것이다.숱한 화제를 뿌리며 장기간 미국의 경영학계를 지배했던 인간관계론도 50년대 후반 맥나마라로 대표되는 계량경영학자들, 소위 위즈키즈들에 의해 저평가되었다. 이후 숫자와 모형으로 가득찬 새로운 경영의 물결이 60년대의 미국경영학을 주도했다. 60년대에 수치전문가들이 기업의 요직을 차지하게 된 배경에는 2차 세계대전이 있었다. 2차 대전시 거의 전세계를 커버하는 미군에게 갖가지 군수물자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조달하는 일은 고도의 응용수학이었고 최고의 효율을 추구하는 과업이었다. 바로 이 일을 담당하던 젊은 장교들이 제대 후 기업으로 진출했고 이들은 10여년의 승진기간을 거쳐 마침내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최고경영진에 합류하게 되었던 것이다. 포드자동차의 사장으로 재직하다 미 국방부장관에 이른 맥나마라(Robert McNamara)는 이러한 인물들의 대표격이다.한동안 이들의 경영기법은 성공을 거두는 듯이 보였으나 통찰력보다는 숫자를, 인간보다는 방정식을 우선시하는 이들의 방법론은 긴 후유증을 남기며 결국 퇴조의 길로 접어들고 만다. 수치상의 효과만을 중시하는 위즈키즈의 대표적인 실패사례가 1970년에 출시된 포드자동차의 '핀토'라는 차종이다. 핀토는 후면충돌이 발생할 경우 차량이 폭발할 위험을 안고 있었고 실제 이 차를 몰던 고객 중 59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문제는 포드자동차의 경영진이 이같은 위험을 알고 있었음에도 리콜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리콜에 드는 비용이 사고피해자에 대한 배상액보다 더 많이 든다는 계산결과에 따라 리콜보다는 배상해주는 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 일은 먼 훗날까지도 포드라는 회사의 도덕성과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 말았다.매슬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인센티브가 효과적이다”그러나 1960년대는 수치전문가들만이 활개친 시대는 아니었다. 다른 한편에는 매슬로(Abraham Maslow)와 맥그레그(D. McGregor)로 대표되는 인본주의 심리학이 경영학의 또 다른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구분하고 그러한 욕구의 최상위에 자아실현의 욕구라는 고차원의 욕구를 위치시킴으로써 인간에 대한 낙관론을 전개했다. 매슬로와 친분이 두터웠던 맥그레그도 이 같은 낙관주의에 동조하여 인간에 대한 X, Y이론을 주창했다. 이들은 인간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해서는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인센티브가 더욱 효과적임을 보여 주려 노력했다.E. 데밍, "품질관리의 노하우, 일본에서 찾아라"데밍(Edwards Deming)은 1950년대 일본에서 맥아더장군 다음으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미국인이었다. 데밍은 품질관리 경영철학을 진심으로 신뢰했으며 이것을 평생 동안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적용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주된 활동무대는 고국인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전후 인구조사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데밍은 일본인들의 참담한 삶과 꿋꿋한 삶의 의지를 접하고 동정심과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1950년 일본인들의 헌신과 노력을 목격한 데밍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 제품의 우수한 품질은 1955년쯤이면 전 세계시장을 석권하게 될 것이다." 1951년 JUSE(일본과학기술연맹)는 데밍이 품질관리를 통해 일본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품질상을 제정하고 이를 '데밍상'이라 명명했으며 60년에는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일왕 히로히토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사이먼, “종업원들의 사기와 생산성은 반드시 직결되지 않는다”
    독후감/창작| 2006.06.01| 5페이지| 1,000원| 조회(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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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고찰(리더쉽) 평가A좋아요
    카리스마적 리더쉽의 소유자 박정희(朴正熙)1. 도 입꾸준히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그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먼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의 근원인 업적들을 살펴보면 먼저 경부고속도로 건설, 새마을 운동 실시, 포항종합제철소 건립, 수출 100억불 달성, 소양강 다목적댐 건설, KAIST 설립, 자주국방을 위한 미사일, 핵무기 개발시도 등이 있다. 특히 요즘 갑자기 붉어진 북한의 핵개발의혹과 관련하여 많은 잡음이 발생하고 있는데, 좀 더 일찍 우리가 핵무기의 개발에 성공하였다면 하는 아쉬움에 더욱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져 가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3차에 걸친 경제개발5개년 계획에 의한, 경제 분야에서 이룩한 일련의 업적들은 우리나라를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의 위치까지 이르게 하였으며,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주국방의 길을 열기 위한 노력했던 모습에서 민족주의자로서의 박정희의 리더쉽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하지만 이점에 대해 박정희의 독재적 리더쉽에 대한 비판의 의견도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 대통령의 탄핵사건 심판과 같은 현 정권의 리더쉽 부재와 관련하여 과거 박정희 정권을 통해 박정희의 지도자로써의 리더쉽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2. 박정희의 리더쉽의 사례1) 철저한 친인척 관리과거 우리나라 역대정권은 친인척의 부정부패로 인해 정권에 불명예스런 오점을 남긴 경우가 많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친인척을 엄격히 관리해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을 중시하였다. 제가(齊家)에 실패한 대통령이 치국(治國)이나 평천하(平天下)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이권으로부터 친인척을 떼어놓는 데에 무척 엄격했다. 아무리 가까워도 예외가 없었다.?제조업을 하는 박대통령 누이의 아들이 어머니를 통해 쉽게 대출받으려 한다는 정보가 청와대에 보고된 적이 있다. 그 누이는 어머니 대신 朴대통령을 업어 키운 무척 가까운 혈육이었고 아들은 이를박정희?1974년 육영수여사 피살 사건 당시 국립극장에서 박대통령은 연설을 하던 중 총성이 나자 박대통령은 연설대 뒤에서 몸을 낮추었다. 경호원들이 옆에 붙었다. “『잡았나?』 『총쏘지 마!』”이것이 박대통령의 첫 반응이었다.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는 순간에도 경호원들이 청중석을 향해 사격을 할 때의 유혈극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육여사가 피격당한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한 이도 박대통령이었다. 경호원에게 “『저기 우리 식구한테 가봐!』”라고 했다고 한다. 박대통령은 『연설을 계속하겠습니다』라면서 8?15 경축사를 다시 읽기 시작하였고 총성으로 중단되었던 귀절 바로 뒷문장을 정확히 짚어내 읽어갔다. 퇴장할 때 박대통령은 육여사의 고무신과 핸드백을 자신이 직접 주워 갖고 나오다가 경호원에게 넘겼다. 그리고 박대통령은 독립유공자들을 위로하는 리셉션장에 들러 공식행사를 끝낸 뒤 서울대 병원으로 갔다.박대통령은 그 위기의 순간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대담하면서도 세심하게 처신하였다. 공인과 사인의 갈림길에서 보여준 박대통령의 이 같은 태도는 너무나 인상적이었으며 보는 이에 따라 가슴을 아프게 했다. 박대통령을 평하기를 「청탁을 같이 들이마시는 사람」「작게 치면 작게, 크게치면 크게 울리는 큰북 같은 분」이라고 한 말이 있었다. 박대통령은 담대해야 할 때는 무섭게 담대하였고, 자상해야 할 때는 자상했으며, 슬플 때는 누구보다 눈물이 많았던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그의 주변인들은 박대통령이 당황하거나 서둘고 허둥대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박대통령은 늘 정리하고 계획하며 대비하는 사람이었다. 박영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일할 때였다. 박대통령이 동남아 순방에 나서기 하루전인데 갑자기 박비서관을 부르더라는 것이다.그리고 박대통령은 『내가 깜박 잊고 갈 뻔했다.』면서 민정반 활동비를 건네주었다고 한다. 『출국을 하루 앞둔 시기에 그렇게 사소한 데까지 신경을 쓰는 데 질려버렸다』고 박영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회고했다.?박대통령은 늘 긴장된 만군이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아버지, 저는 학교공부도 복잡해서 제대로 머리에 정리가 안 되는데 아버지는 그 복잡한 나라일을 어떻게 다 보십니까?』 그러자 박정희 대통령은『내 책상의 서랍들이 정치, 경제, 문화, 사회로 분류돼 있다고 하자. 나는 정치 서랍을 빼내어 일을 볼 때는 거기에 정신을 집중하고 그것을 닫은 다음, 경제 서랍을 빼내 일을 볼 때는 정치는 싹 잊어버리고 경제에 온 정신을 쏟는다. 그런데 너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서랍들을 한꺼번에 열어놓고 있으니 어느 하나도 제대로 공부하고 있지 못한 거야』그렇게 박대통령은 서랍을 빼고 닫는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분이었다고 전해진다. 아침에 어느 장관에게 화를 냈다가도 다음 면담자를 맞을 때는 언제 그랬던가 할 정도로 냉정하게 변했다. 변화하는 그 순간순간의 상황에 진지할 수 있는 분이 박대통령이었다. 박대통령은 기억력이 비상했지만 쓸데없는 것은 아예 외우려 하지 않았다. 라디오 주파수를 몰라 라디오에다가 KBS, MBC란 표지를 붙여 놓았다. 사소한 것에는 무관심하고 중요한 것에는 신경을 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럼으로 해서 일의 중요한 가닥이나 흐름, 그리고 사물의 핵심을 결코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포항제철 확장공사 계획을 박대통령께 보고하게 된 외지 담당 비서관이 계획안과 포철의 현황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나서 공장사진과 브리핑차트를 들고 집무실에 들어가 열심히 설명을 했다. 설명을 다 듣고 난 박대통령이 공장 사진을 보면서 「이 공장 옆에 있던 배수로를 어떻게 처리했느냐」고 물었다. 모든 것을 암기했던 그 비서관이었지만 대통령이 관심있게 보아 온 배수로를 알 턱이 없었다.박대통령의 꼼꼼함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박대통령은 고위인사이외에도 모든 사람들에게 세세히 신경을 쓸줄 알았다고 한다. 1970년 가을에 박대통령은 2군 사령부 관할 지역을 시찰하기 위해 헬리콥터 편으로 날아가다가 헬기고장으로 논에 불시착한적이 있었다. 박대통령, 박종규실장, 경호원이 황급히 트는 데 인색하여 직원들은 속옷을 두껍게 입고 더운물이나 커피를 자주 마시면서 한기와 싸워야 했다. 박대통령은 집무실 화장실 변기속에 벽돌 한 장을 넣어 두게 했다. 그만큼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10?26사건 뒤 청와대를 정리하던 직원들이 박대통령의 침실의 변기 물통에서도 벽돌을 발견하고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침실이면 다른 사람이 들어갈 리가 없는 곳이고 그런 절약을 억지로 할 필요도 없을 터인데 빅대통령은 절약을 쇼로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정직한 방법으로 했던 것이다.박대통령은 전력을 아낀다고 집무실에서 책상 위 전등만 켜 놓고 일을 보았다. 어둑어둑한 저녁 때 누가 들어서면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야?』라고 기웃거리기도 했다박대통령은 여름 휴가를 진해에서 보냈다. 진해 앞바다에는 저도라는 섬이 있었다. 대통령은 낮에는 이 저도에 가서 쉬다가 진해로 돌아오곤 하였다. 박대통령은 1972년 여름에 박종규실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도에 있는 일제시대의 목조건물을 수리해서 잘 수 있도록 해놓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1973년 여름 박대통령은 고속도로를 따라 진해에 도착하였다. 그날 진해에 밤에 도착한 박대통령일행은 밤늦게 저도에 상륙하였다. 거기에는 목조건물은 없어지고 새 돌집이 한 채 서 있었다. 일반주택만한 2층건물이었다. 호화주택으로 분류할 정도는 아니었다. 박대통령은 새집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실장을 불러』라고 했다. 박종규 경호실장이 나타나자 벼락치듯 꾸중을 했다. 『집수리하라고 했지 누가 새로 지으라고 했어? 너는 뭘 시키면 꼭 이렇게 하더라. 짐 내리지마! 도로 나가자』며 화를내자 당시 건물 건축을 담당했던 정주영 회장은 『각하, 제가 새로 짓도록 했습니다. 각하께서 쓰시는데 저의 사재인들 아깝겠습니까. 돈이 많이 들지도 않았습니다』고 해명을 해 대통령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박대통령은 경제성장의 수단으로 재벌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가진 자들의 호화판 생활이나 재벌의 횡포에 대해서는 체질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공화당, 목욕탕 영업 단축, 출퇴근. 통학때 2㎞ 걷기, 차종별 경제속도표 부착등등 한 나라의 절체절명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던 것을 알수 있다.위기가 터지자마자 외국에 '경제특공대' 를 급파하는 대통령의 결단은 위기극복에 큰 역할을 했다. 朴대통령의 친서를 품고 미국 석유 3사의 회장을 만난 특보는 유조선 몇 척의 원유분량을 추가로 따왔다. 朴대통령은 이스라엘과 가까운 한국을 무척 미워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는 최규하 (崔圭夏.전직 대통령) 외교특보를 밀파했다. 崔특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착하자마자 친 (親) 아랍정책 4개항을 발표해야 했다. 사우디는 공급제한을 해제했고 쿠웨이트는 우리나라 대우를 중립국 차원으로 올렸다.朴대통령은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했다. 朴대통령은 74년 1월14일 긴급조치 3호를 가지고 TV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달러를 잡아먹는 에너지의 절약과 국민의 협조를 호소했다."우리는 값 비싼 수입자원을 최대한 절약해야만 합니다. 우리 경제는 어느 때보다 어려운 고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심기일전해 자신과 용기를 갖고 정부.국민이 합심해…. "고 국민에게 호소하였다. 그결과 74년 많은 나라가 마이너스 성장에 시달렸지만 우리는 GNP 8.1%, 수출 38.3% 성장이라는 국난극복의 기록을 세웠다.?또한 박정희 대통령은 위기극복을 위해 인사를 만사로 여기고 매우 중시하였다.73~74년 에너지위기 돌파는 하나의 전쟁이었다. 참모들은 작전을 수립했고 총사령관으로 나선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은 군단장.사단장에 해당하는 부처장관을 지휘했다. 승리의 요인은 팀워크였다.朴대통령은 경제참모.장관을 치밀하고 신중히 골랐으며 일단 쓰면 믿음을 주고 오랫동안 일을 맡겼다. 경제기획원.재무.상공.과기처 등의 장관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각종 경제성장기록은 군단장.사단장들이 그런 사령관을 믿으며 전투를 훌륭히 치러냈음을 보여준다. 일선지휘관의 능력과 열정은 안정적인 재임에서 자연스레 드러났다. 5.16을 일으키느라이다.
    경영/경제| 2006.10.19| 7페이지| 1,500원| 조회(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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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북공정의 현황 및 문제점과 대응방안
    동북공정의 현황 및 문제점과 대응방안Ⅰ 서 론일본의 역사왜곡문제와 더불어 이와 유사한 중국의 동북공정이 새로운 화두로써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반만년 역사 속에 꾸준히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얼과 정신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기에 이에 대한 대책을 충분히 세워야 할 것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백승(百戰百勝) 이라고 동북공정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아야겠다. 우선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로서, 중국 동북 변경지방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 작업을 뜻한다. 즉, 우리말로 '동북 변강의 역사와 그에 따라 파생되는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프로젝트'로 옮길 수 있는 동북공정은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중국사회과학원과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 3성이 연합해 추진하는 국책사업으로,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 계획으로 중국 사회과학원 소속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 주관이 되어 추진하고 있다.연구비는 5년간 중국 정부에서 1000만 위안,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125만 위안, 동북 3성에서 375만 위안을 조달할 계획으로, 이는 약 24억 원에 이르는 규모다. 또한 동북공정의 구체적인 연구내용은 고대 중국의 강역이론 연구, 동북지방사 연구, 동북민족사 연구, 고조선·고구려·발해사 연구, 중조(中朝)관계사 연구, 중국동북변경과 러시아 극동지역의 정치·경제관계사 연구, 동북변경의 사회 안정 전략 연구, 조선반도의 형세 변화와 그것이 중국동북변경지역의 안정에 미치는 영향 연구 등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동북지역 과 그에 얽힌 한반도와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적으로 연구하고 있다.Ⅱ 본 론1. 동북공정과 우리의 반박(1) 고구려는 중국의 영토위에 세워졌다.① 중국측 주장 : 고구려가 탄생한 지역은 기원전 3세기 모두 연(燕)의 영역이었고, 진(秦)이 6국을 통일한 뒤에는 진나라에 속했다. 기원전 108년 한(漢)나라가 족은 중국 고대의 한 민족이다.① 중국측 주장 : 고구려가 망한 뒤 고구려의 후예들 가운데 일부는 중원·돌궐·발해 등으로 들어가 모두 중국의 각 종족에 융화되었다. 대동강 이남의 일부 고구려인들만 신라로 넘어갔다. 오늘날 한(韓)민족의 선조는 주로 고대 삼한(三韓) 곧 신라인이고 조선 반도로 옮겨간 중국의 각 종족도 상당 수 섞여 있다. 고구려의 후예는 극소수이다.② 한국측 반론 고대 중국은 자기네 민족만 중화로 부르고 나머지는 동이·서융·남만·북적 등 오랑캐로 단정했다. 이는 각종 사료에도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와서 고구려가 중국 민족이었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고조선·부여·예맥을 중국 민족이라고 규정하는 주장은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주장이었다.(4) 수·당과 고구려의 전쟁은 중국내 분쟁이었다.① 중국측 주장 : 고구려가 자리했던 곳은 1,000년 간(낙랑군 400년 + 기씨 / 위씨조선) 중국 한 족이 지배하던 곳이기 때문에 수·당이 고구려를 친 것은 중국 국내 민족간 전쟁이었다. 고조선 - 위씨조선 - 낙랑으로 바뀐 것도 모두 한족이기 때문에 같은 민족의 통일 전쟁이며 고구려가 낙랑군을 차지한 것도 중국 내에서 전개된 민족 간의 침범이었다.② 한국측 반론 : 수·당 전쟁은 고구려만 참여한 게 아니었다. 백제·신라·왜 등이 모두 참여한 동북아의 세계 대전의 성격이 짙었다. 더구나 수나라와의 전쟁은 고구려가 먼저 수나라를 침공함으로써 발발한 전쟁이었다. 세계의 어느 지방 정권이 중앙 정권에 대해 그처럼 대규모의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말인가. 고구려가 자리했던 곳은 고조선 - 부여 - 고구려로 이어지는 한(韓)민족의 강역이다.(5) 왕씨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가 아니다.① 중국측 주장 : 왕건은 신라 장군이었고 신라를 멸한 다음 후고려를 건립했다. 왕건은 신라 김씨 계통으로 고구려 고씨의 위(位)를 계승한 것이 아니었다. 왕씨 고려는 대동강 이남만 차지했고 수도 개성은 신라의 옛 땅이지 고구려의 땅 있는가?첫째, 중국은 남북한의 통일을 대비하여 통일된 이후 조선족 이탈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동북공정에서 목표하는 지역은 동북 3성으로 길림성과 흑룡강성,요녕성이 있다. 여기에는 특히 다수의 조선족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대부분의 조선족 자치 구역이 여기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아직 한국의 언어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문화적으로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적 요소가 짙다고 볼 수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 볼 때 연변조선족 자치주는 지금 현재도 한국 경제에 예속되어 있다. 지금 사정도 이러한데, 통일이 되면 이것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행될 수 있다. 비록 국경은 두만강과 압록강으로 갈리고 있지만, 문화나 경제적으로는 한국 쪽에 속하는 상당히 기형적 형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지금도 중국 정부는 조선족들에게 조국관·민족관·역사관에 대한 대대적인 사상교육을 시키고 있다. 한국은 고국일 뿐이지만, 태어나서 사는 곳은 중국이므로 그들이 충성을 바쳐야 할 곳은 중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조선족들의 이탈을 방지하고, 자신들의 국경과 영토를 문화적이고 경제적인 것과 연계시키지 않으려는 정당성을 역사해석에서 확보하려는 것이 바로 동북공정이다.둘째, 동북공정의 목표는 남북한이 통일된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영토분쟁에서 역사적인 우위를 확보해 두려는 것이다. 지금도 중국과 한국의 영토에 관한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원래 간도는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영토분쟁단계로 남아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의 모습으로 고착화 된 것은 1909년에 체결된 간도협약을 통해서였다. 그 이전 간도는 중국의 땅도 아니고 조선의 땅도 아니었다. 간도협약은 잘못된 조약인 을사조약에 근거해서 당사자인 조선이 빠진 채 일본과 청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2005년까지 을사조약의 하자를 들어서 이것을 무효화시키게 되면, 여기에 기반해서 이루어졌던 간도협약 역시 무효가 된다. 이렇게 되면 간도는 중국과 한국 사이의 엄청난 영토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중국은 이통성을 선점하거나 연고권이 중국에게 있다고 하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단적인 예가 변경사지연구중심의 홈페이지에 명백히 언급되어 있는 분쟁지역초점의 소개이다. 변강사지 중심에서 문제로 언급하고 있는 지역은 고구려문제, 탕누우리양하이, 동굴궐문제, 난샤군도문제, 디아오위따오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현재 중국이 그들의 영토로 점유하고 있거나 점유하고 싶어하는 분쟁지역들이다. 이 중 고구려 문제는 동북공정의 주요한 연구대상의 문제인 것이다.따라서 중국 입장에서 고구려 문제는 과거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혹은 미래에 불거질 정치적 문제에 대한 역사적 예방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극히 현재적 문제라는 것이다. 중국이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만든 배경에는 1990년대 후반 북핵 문제 뿐만 아니라 탈북자의 증가로 인한 북한의 정세 불안이 주요한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북공정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변강사지중심에서 수행하여 작성한 1998년의 ‘한반도형세의 변화가 동북지구의 안정에 미치는 충격’이라는 보고서 작성은 그 사정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1990년대 ‘당대중국의 변강 지역에 관한 조사연구 시리즈’를 수행하던 변강사지연구중심은 중국 동북지역의 연구 주제를 한반도의 형세 변화가 동북지역, 특히 지린성 엔벤자치주와 랴오닝성 단뚱 지구의 안정에 미치는 충격에 주목하였다. 연구할 과제로는 첫째,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한반도의 동란 상황과 그 난민들의 유입상황, 둘째, 현재 북한과 지린성의 국경 현상 등이었다. 주제의 선정에서 보듯이 1997년 당시 북한의 대규모 식량난으로 인한 탈북자들의 증가와 맞물려 그것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주어졌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위의 연구를 위해 변강사지연구중심은 1997년 하반기부터 두 가지 연구 사업에 착수하게 된다. 첫째가 중국공안부 변방국과 동북지역의 유관기관의 지시를 받아 지린성 북한-중국의 변경지역을 조사·연구하게 된다. 두 번째는 지린성 공문서보관소에서 소장하고 있던 청대강사지연구중심은 동북지역에 대한 연구를 자체 연구인력으로 수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외부의 연구 인력에 연구 과제를 주는 개방적 성격의 연구작업으로 전환하였으며 동북지역의 과학적 연구조사를 위해 1996년 10월 ‘중국변강지구의 역사와 사회연구를 위한 운남공장 기구’를 운영한 경험을 살려 1999년 ‘중국 변강 지구의 역사와 사회 연구를 위한 동북공작 기구’를 조직하여 연구의 시급성에 부응하는 활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동북공작기구는 이후 동북공정으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조직으로 이해된다. 그 조직은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의 변강사지연구중심과는 또 다른 인적 구성과 연구 소재지를 가지고 운영되었다. 이후 동북공장기구는 2000년 5월 창춘시 동뻬이 사범대학에서 동북공장기구의 공작회의를 개최하였으며, 2001년 6월에는 중국사회과학원과 중국공산당 지린성위원회가 연합 주관하여 ‘동북변강역사와 현상연구공작세미나’를 창춘시에서 개최하였다.(3) 창춘회의와 동북공정의 추진2001년 6월의 이 회의는 그 규모에서 중앙 및 동북지역의 지방 당정 기관 및 학술단체들이 대부분 동원된 대규모 대회였다. 일단 참여조직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참여조직으로는 중국사회과학원, 중국공산당 지린성위원회, 중국공산당 랴오닝성위원회, 헤이룽장 성위원회 선전부, 국가문물국 등 관련부문의 지도급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였으며, 중국사회과학원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 민족연구소, 고고학연구소, 아태연구소, 지린, 랴오닝,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 문화관, 박물관, 고고학 및 민족연구부문, 지린대학, 동뻬이 사범대학, 엔벤 대학, 뻬이화대학, 통화사범대학 등의 지도인사 및 학자들이 참여한 규모있는 학술회의였다.회의의 중심주제는 동북변강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를 어떻게 진일보 심화시킬 것인가였다. 회의는 동북지역에 관한 연구가 신중국건설 이후, 특히 개혁개방 이후 상당정도 진전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걸음을 걷기 시작한 단계에 불과하며, 연구성과나 연구역량에서 상대적으로 박약하다.
    사회과학| 2006.11.29| 10페이지| 1,000원| 조회(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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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영]불확실성을 경영하라 평가A+최고예요
    불확실성은 새로운 기회의 원천다수의 사람들은 오늘날을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말한다. 과거 무엇이 생겨났고,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그리고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불확실하기만 하다.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산업간, 국가간 경계의 소멸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거대한 세계화의 물결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이 책의 저자는 오늘날 많은 경영자들이 당면하고 있는 불확실성과 무질서의 원천에 대해 고찰하고 이러한 불확실성속에서 새로운 세계관과 질서를 창조하기 위한 도구를 제시하며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고 기피하기보다는 과감하게 맞서라고 주문한다.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사회경제 체계와 경영환경은 한 마디로 질서와 무질서가 병존하는 제한적 불확실성을 갖고 있는 복잡적응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태동하는 질서를 간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이 경영자의 몫이자 사회적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보내는 변화의 신호에 민감해야 합니다. 어제까지 있었던 봉우리가 갑자기 없어지거나 저 멀리 옮겨 갈 수도 있고 새로운 봉우리나 계곡이 생겨 날 수도 있습니다. 변화의 신호들을 바탕으로 우리가 현재 서있는 곳의 지형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상상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지형도를 그려나가야 합니다.”불확실성의 원천19세기 초 뉴턴 역학을 바탕으로 완성된 결정론 사상은 자연 법칙을 안다면 세계의 모든 현상을 알 수 있다는 완벽한 결정론의 세계였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결정론적 세계관은 서서히 그 힘을 잃어 갔다. 결정론의 타당성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사례가 하나 둘 쌓여갔기 때문이다. 이들 사례들은 정확한 측정과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무질서를 지향했다.무질서 현상이 던져준 가장 큰 시사점은 비선형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동일한 현상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비선형적 현상으로 바뀌는데 이때 다른 변수와의 관계가 중요해진다. 비선형성은 선형적 관계에 기반을 둔 유추에 의한 예측의 타당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예기치 못한 급진적 변화를 야기하며, 또한 개개 요소의 단순 합계가 전체가 아니라는 특징을 지닌다. 이로 인해 하나의 시스템을 몇 개의 구성 요소로 분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분석이 된다고 해도 그것들이 종합될 때는 각 부분이 상호 작용하여 전체 행동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그러나 복잡해 보이는 현상 속에서도 우리는 단순한 질서를 발견할 수 있고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공교롭게도 무질서와 불확실성을 강조한 카오스 이론이다. 우리는 카오스라는 단어가 엄청난 무질서와 카오스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카오스란 완전히 무질서한 혼란 상태가 아니다. 그리고 카오스 이론에 의해 명백히 임의적 형태를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배하는 원리는 단순한 법칙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카오틱 시스템에서 발견되는 질서는 예측 가능한 패턴을 형성하고 우리는 그 패턴을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질서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이처럼 무질서한 조건으로부터 질서가 생성될 수 있다는 자기 조직화의 아이디어는 1980년대 후반 우리를 복잡계 과학으로 인도했다. 어떤 시스템을 복잡계라고 부를 수 있는 경우는 다음 두 가지 현상이 관찰될 때이다. 첫째, 복잡계는 상호 작용하는 수많은 요소로 구성된다. 이것은 시스템에 피드백 메커니즘이 존재함을 말하며, 피드백은 시스템의 동학에 비선형성을 도입한다. 둘째, 복잡계는 창발적 특성(emergent properties)을 보인다. 창발적 특성이란 뚜렷이 관찰될 수 있고 실증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전체적 패턴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수많은 분자들이 서로 충돌하는 데서 창발하는 가스의 온도나 압력이다. 이러한 복잡계 이론은 조직, 경제, 생태계 등 복잡해 보이는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경영환경과 불확실성사회적 생태 시스템에서 각 조직은 모든 관련된 사업, 소비자, 공급자 뿐 아니라 경제, 문화, 법적 제도로 구성된 사회 생태 시스템과 영향을 주고받는 또 하나의 참여자이다. 따라서 전략을 단순히 조직과 별개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대응으로 보기보다 행동을 시작한 조직이나 그것에 영향을 받게 되는 모든 조직에 영향을 미치는 적응적 움직임, 즉 '공진화(co-evolution)'의 과정으로 간주해야 한다. 우리가 새 신발을 사 신게 되는 경우우 신발과 내 발은 서로를 수용하기 위해 변화한다. 한마디로 공진화하는 것이다. 공진화의 과정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무엇,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잡적응계의 구별되는 특성이다.넓게는 인간사회, 좁게는 시장경제에서 상호 작용으로 생겨난 비선형성은 대체로 두 가지 형태의 피드백 효과로 반영된다. 자기 강화적 성장 효과를 보이는 양의 피드백과 자기 약화적 효과를 보이는 음의 피드백이 그것이다. 양의 피드백은 변화를 야기하고 음의 피드백은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한다. 하나의 조직이 구조조정이나 합병 등을 통해 교란을 받고 임계점에 도달하게 되면 무질서로 빠져들거나 새로운 질서와 조직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일관성을 창조해낸다. 양의 피드백 과정이 바로 이러한 변환을 지배하며 이들은 복잡계에서 변화와 안정간의 끊임없는 움직임을 이해하는 출발점을 제공한다.개인들이 경제 시스템 내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국지적 적응 노력은 새로운 적소를 만들어낸다. 새로운 적소가 끊임없이 창발되므로 경제는 균형상태에서 멀리 떨어져 움직인다. 그리하여 많은 경제 주체가 다양하게 상호작용하며 자기조직화 하는 임계 상태가 생겨난다. 자기조직화란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질서정연한 패턴이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경제에 창발적인 자기조직화 현상이 내재해 있다는 인식은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개인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체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표현했다. 시장의 자기조직화나 창발적 질서의 진화가 어떻게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을까? 그것은 생명체가 안정적 동태균형의 상태를 달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장 역시 음의 피드백을 통해 자기 자신을 규율할 수 있기 때문이다.결국 사소한 변화가 어떤 경로를 통해 새로운 질서로 귀결되는가 하는 문제는 양의 피드백과 음의 피드백의 상호관계 또는 구심력과 원심력의 상대적 크기에 좌우된다. 물론 구심력과 원심력의 크기, 양의 피드백과 음의 피드백의 크기는 사전에 확정할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새 질서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양의 피드백이 음의 피드백을 극복하고, 또는 기존 질서에 대한 구심력이 새 질서를 향하는 원심력에 지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불확실성하에서의 기업 경영전통적 견해는 기업 경영이 환경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아왔고 이에 따라 현대의 경제학과 경영학은 불확실성에 처한 경영인들에게 다양한 해결책들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이들 해결책의 상당부분은 새로운 사고방식을 요구하기보다는 전통적인 경영기법을 특정한 문제, 즉 불확실성하에서의 의사결정에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복잡적응계는 환경에 대한 객관적 이해나 합리적 선택을 부정한다. 기업은 직원, 팀, 사업부 등 상호 작용하는 서로 다른 개체들로 구성되어 시장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들을 끊임없이 적응시켜가는 또 하나의 복잡적응계이다. 불확실성하에서의 기업 경영은 복잡적응계의 생존을 위한 고전적 질문, 즉 하위의 복잡 적응계인 기업 조직이 어떻게 상위의 복잡적응계인 경영환경과 동태적으로 공명(共鳴; resonance)하게 할 것인가에 답함으로써 가능하다. 기업은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대응해 생태학적 적소를 획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적응하면서 생존을 도모한다. 기술 혁신과 산업발전, 제품의 다양화, 가격 하락 등이 모두 기업의 적응적 변화의 결과이다. 역설적으로 기업이 현재의 성공을 즐기면 즐길수록, 환경의 변화로부터 생겨나는 소멸의 위협에 더 많이 노출된다.기업과 경영환경 모두를 중첩된 복잡적응계로 간주하는 관점에서 경영전략의 기본적 틀은 카우프만의 적합도 지형 또는 NK지형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변수 N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의 수이고 변수 K는 전략 변수간의 상호 의존성의 정도를 나타낸다. 적합도 지형은 선택된 N개의 전략이 낳는 성과들을 보여준다. K값이 낮고 전략간의 상호작용이 미미하다면 N개 전략의 변화가 기업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러한 적합도 지형의 형태가 바로 하나의 정점(최적해)를 갖고 있는 시지프스 지형이다. 여기서 경영자가 하는 일은 저항하는 종업원과 조직적 관성으로 구성된 지형을 거스르며 매일 언덕 위로 돌을 굴려 올리는 것으로 그려진다.시지프스 지형과는 반대로 K값이 높은 경우에는 N개 전략에서의 사소한 변화가 기업의 전반적 성과에 큰 변화를 초래한다. 전략적 변수간에 상당한 상호작용이 존재할 때 수많은 국지적 정점이 존재해 울퉁불퉁한 지형이 형성된다. 즉 하나의 최적해가 아니라 수많은 차선의 해법이 존재한다. 여기서 경영자는 최적의 전략을 발견하려 하기보다는 시행착오를 받아들이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국지적 정점을 찾은 뒤 잠시 쉬고, 이어서 조직의 여건을 생각해 다시 새로운 정점을 찾아 나서는 탐험가의 역할을 맡게 된다.지형의 국지적 탐색은 매 단계별로 저위험-저수익을 도모하지만 복리에 의해 장기적으로 큰 수익을 획득하는 것이다. 반면 지형도의 변경은 매 단계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기업은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자원을 현재의 기업 활동에 사용해야 하지만 위험성은 높아도 경쟁 지형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전략을 실험하기 위해 자원을 투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지형도는 경영 환경을 적절히 파악해낼 수 있는 기업의 역량에 제한을 받지만 지형 탐색은 누적된 경험에 제한을 받는다. 결론적으로 지형도 변경과 실제 지형의 적응적 탐색은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경영/경제| 2006.10.27| 5페이지| 1,000원| 조회(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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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핵문제의 현주소와 해결방안 평가A+최고예요
    Ⅰ 서 론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우리의 안보에 있어 상당한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동북아를 넘어 세계의 평화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하여 90년대 초부터 많은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으나 얼마 전 있었던 북한의 핵실험 발표는 우리의 수많은 노력들은 수포로 돌려놓았다. 큰 기대를 모았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1)은 이제 허울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북 미 기본합의문(Agreed Framework, 일명 제네바합의, 1994)은 사실상 폐기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02년 10월부터 시작된 제2차 북 핵 사태의 전개양상은 90년대 초 1차 북 핵 사태와 비교할 때, 여러 가지 심각성을 갖는다. 특히 우려했던 지하 핵실험이 현실화 되면서 사태는 더욱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특히, 미국과 북한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미·북간에 체결된 제네바합의의 심각한 손상을 가져왔고, 이라크전쟁 이후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외교정책의 초점이 북한으로 모아져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점차 긴장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한동안 북한의 핵문제는 한반도 위기설의 주요한 논거였으며, 결국 북한의 핵개발 시인과 지하 핵실험이 미·북간 관계를 대화부재의 상태에서 심각한 갈등의 구도로 전환시킴으로써 그 긴장도가 더욱 상승되어 한반도 위기설이 하나의 가능성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렇듯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키고 있는 북핵문제에 대한 좀 더 다각적인 분석과 해결방안 제시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Ⅱ 본 론1. 북핵문제의 발단북한의 핵 문제는 박정희대통령 시절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직접적인 배경은 1980년대에 들어서이다. 1980년대 초 미국의 인공위성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탐지했다. 1986년 일년에 약 6kg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5MWe의 소형 핵 원자로를 영변에서 가동하기 시작했다. 또한 플루토늄을 탄두에 장착할 수 있는 물질로 한 체제의 속성에서 유래한다고 보인다. 특히 군사대국이라는 북한의 목표는 군사의 강국, 사상의 강국을 건설하는 것이며, 이는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발전보다 훨씬 앞서고 중요한 목표라고 간주되는 것이다. 설득을 통해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어려운 본질적인 이유가 바로 북한 체제의 궁극적 목표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세번째로,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정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인민이 헐벗고 굶주려도 국방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북한의 딜레마이다. 현대식 무기를 구입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북한은 비교적 값싸고 파괴력 있는 핵무기의 매력을 알고 대남 군사적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것이다.마지막으로, 북한내의 정치적 이유로부터 발단이 시작되었다. 핵무기 보유는 북한의 정책구호인 군사대국 건설에 걸 맞는 것이며, 군사위주의 정책이며, 북한은 이 핵무기를 이용하여 국제협상의 도구로서 잘 이용하여 정치, 경제 그리고 군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3. 북핵문제의 현황북한의 핵무기 개발 카드에 대해 한국의 참여정부는 병행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남북한 관계 개선과 북핵 위기 해결을 함께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병행정책에 따라 남북한은 북한이 핵 보유를 시인한 뒤에도 장관급회담, 남북철도·도로 실무접촉, 경의선·동해선 철도 궤도 연결공사, 개성공단 착공식, 대구 유니버시아드에 북측 대표 참가 등 남북교류를 계속 추진하였다.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따라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키는 한편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어떠한 협상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미국은 2003년 초반에만 하더라도 이라크 다음 표적은 북한이라는 식으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에 의한 군사제재를 공공연하게 거론하였다. 또한 미국은 제네바 기본합의 이후에도 우라늄 핵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었다며 불신하고 있으며, 북한의 김정일 체제가 교체되어야 하다는 여론이 높았다.2003년 5월 31일 부시 대통령이 폴란드 크라코브시 연설에서 반확산구상(PSI)을 제의해 북한의 핵대북 안전을 보장하는 문서에 서명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부시 대통령의 대북 안전보장 제의에 대해 한국과 중국은 환영하고 있으며 북한은 수용의사를 내비치면서 ‘동시행동원칙에 기초한 일괄타격방안’을 내놓았다. 북한은 또 미국이 대북 안전보장을 한다면 핵 동결과 사찰을 받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북 안전보장에 대한 북한의 수용조건과 관련하여 한국은 포괄적이면서 단계적인 대북 안전보장방안을 제기하였다. 미국은 북한의 핵 개발이 반복되지 않고 투명성이 확보되는 사찰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북한이 우라늄 핵 프로그램을 끝까지 숨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이와 같은 각국의 입장을 토대로 볼 때, 북핵 위기 해결의 균형점은 미국을 포함한 다자적인 대북 안전보장을 북한이 우선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한·미를 포함한 6자회담의 참가국들은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기 위해 회담 참가국과 IAEA가 참가하는 사찰팀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또한 북한의 경제를 재건시키기 위한 프로그램도 가동하게 될 것이다.그러나 6자회담이 결렬되면 북한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소규모 핵무기 보유국의 문턱으로 다가가게 된다. 이럴 경우 한·미·일·중·러는 북한이 핵무장국으로 가지 않도록 연합 압박전선을 펼쳐야 할 것이다. PSI를 가동하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자금 창구를 폐쇄하는 한편 한국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인 보복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남한 내의 친북세력의 준동이다. 합리적 문제해결보다는 비이성적 감정에 따라 민족주의를 선동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4. 북핵문제의 문제점(1) 군사력 불균형 초래북한의 핵보유는 우리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의 안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장 우리의 피부에 와 닫는 문제는 남북한 간의 군사력 면에서 불균형 초래다. 현재 군사력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재래식 군사력에서는 총체적으로 한국이 북한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물량으로는 부족하지만 성능, 훈련, 군수지원 등 기타 요소쉽게 알 수 있다. 남북 간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공식합의문으로는 ‘7·4공동성명’,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에 관한 합의서(기본합의서)’, ‘6·15납북공동성명’이 있다. 그 중에서 남쪽에게 가장 유리하게 체결된 것이 기본합의서이다. 결국 북한이 제1차 북 핵 위기를 조성하면서 한국에게 일시 빼앗겼던 주도권을 되찾아가게 되었으며, 그 후 지금까지 계속 주도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핵 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도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었음을 감안할 때,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더욱 주도권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핵무기는 3대 효용성을 가지고 있다. 3대 효용성이란 군사적 수단, 경제적 수단, 정치 외교적 수단으로서의 효용성을 의미한다. 핵무기가 정치 외교적 수단이라는 의미는 핵무기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보유 그 자체만으로 상대국의 양보와 혼란을 강요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3) 한반도 긴장 고조북한의 핵무기를 개발하고자 한 동기는 냉전적 양극체제의 붕괴로 인하여 후원세력을 상실한 북한체제를 보존하고, 파탄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외부적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막상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체제를 보존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핵위협을 통해 한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국제적으로는 더욱 고립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미국의 제2차 핵태세검토서에서 핵개발 의심국가에 대하여 선제 핵공격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이다. 만약 북한이 핵기술이나 미사일 기술/미사일을 타국에 수출하려고 한다면 이것 또한 미국의 제재대상이 된다.북한의 핵보유는 그동안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개발과 핵문제를 자국에 대한 심각한 안보위협으로 인식해온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이미 30톤이 넘는 플루토늄과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핵무장을 결정하면 빠른 기간 내에 세계 제3위의 핵보유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잠 나포 등을 포함한 맞춤형 봉쇄정책을 제안하였고, 국무성의 대표적 네오콘인 존 볼튼 군축담당 차관은 북한이 핵무기개발금지약속을 준수하기 이전에는 북한에 줄 것은 하나도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화당 존 맥케인 상원의원은 “미국의 안보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력 사용은 최후의 수단이지만 미국이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국제 협력을 얻지 못했을 때에는 독자적 군사행동도 고려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강경파의 목소리는 국민들과 미국의회 속으로 깊이 파고들고 있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발표하고 일본, 유럽 국가들과 해상봉쇄 등 구체적 방안을 협의한 바 있다. 또한 호주 정부가 북한 선박에 대해 마약수송 혐의를 이유로 기습적 수색을 단행한 것도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중동의 여타 국가들과 달리 북한의 핵과 재래식 군사력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 한국, 미국 및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주는 경제적 피해가 크고 중국과 러시아가 인접해 있어 군사적 행동은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라크 문제의 부담과 2004년 미국 대선 때문에 현재 군사력을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서 조건부 대화론 또는 협상론이 거론되고 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북한의 체제보장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고,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 담당 차관보가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에너지를 지원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히며 조건부 대화론의 가능성을 비쳤다. 여기에 리처드 루가 상원 외교위원장은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한다면 국제사회가 경제적인 지원을 할 것임을 북한에 통보해야 한다.”라고 언급하였으며, 최성렬 북한 대표부 차석 대사와 회담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도 미·북 정부 간 직접 대화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결국 미국이 북핵문제와 관련해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협상 해법이 유일한 갈등해소 방법일 것이다. 단지 신보수주의자들이.
    사회과학| 2006.10.24| 11페이지| 1,500원| 조회(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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