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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세대학] 오늘날의 대학과 비교한 중세 대학의 실생활
    중세 대학의 실생활은 어떠하였을까?-오늘날의 대학과 비교해서1.서론서양 문명의 역사에 있어서 '암흑기, 쇠퇴기'에 해당하는 부분이 중세라는 것이 흔히 우리가 머릿속에 담고 있는 중세의 이미지다. 하지만 중세의 문화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미개한 것은 아니었다. 중세 동안 대부분의 지적 활동들은 특정 분야의 세세한 지식들을 종합·정리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런 활동의 주무대가 되었던 곳이 바로 교회의 수도원과 중세의 대학이었다. 중세 시대의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던 대학은 중세시기에 그 개념이 처음으로 나온 것이기에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흔히 대학을 정의할 때 '정규과정을 제공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교수와 학생의 공동체'라고 일컫는다. 그렇다면 중세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들의 실생활은 어떠했을까? 과연 대학에서 제공하는 정규과정과 학위가 실생활에 얼마만큼 도움이 됐을까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보려고 한다. 또한 초기 대학의 대학생들과 오늘날 대학생들은 과연 어느 만큼 다른 것일까? 하는 질문에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2.중세 대학생들의 생활과연 중세 대학의 대학생들의 실생활은 어떠했을까? 살레르노, 볼로냐, 파리, 옥스퍼드, 캠브리지 등의 대학들이 초기 중세 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초기 대학들은 언제 성립되었는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후 13,14,15세기에 생긴 대학들은 군주들에 의해 창설된 대학이 많기 때문에 그 창설 연대를 정확히 알 수가 있다. 오늘날처럼 그 당시의 대학들도 어떠한 학문분야에서 이름난 대학이 있었고 학생들은 자신의 배우고 싶어하는 분야에 정통한 대학에 입학을 했다. 살레르노 대학은 의학에, 볼로냐 대학은 법학에, 파리 대학은 신학에서 뛰어난 연구업적과 교수진들을 갖추고 있었다. 중세 시대에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학에 입학하기를 원하는 학생은 학교마다 그 규정의 차이는 있었으나 라틴어 독해를 할 수 있는 수준이면 거의 대부분 입학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입학한 학생은 교양과목으로 인문학을 배우는 동안에도 많은 학생들이 대다수 학교에서 떠났다. 즉, 입학이 쉬운 만큼 중도하차하는 경우도 많았다. 인문학을 배우고 나면 baccalarius artium(문학사)가 될 수 있었다. 문학사는 일종의 교사로서 학생을 가르칠 수가 있었다. 이렇게 문학사 일을 5~6년 동안 하면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이렇게 문학석사를 받고 나서는 2년여 동안 남아 공부를 하고 인문학 교수가 되던지, 아니면 상급의 전문학부로 진급할 수 있었다. 상급의 전문학부에는 법학, 의학, 신학부에 진학할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급의 전문학부에 진학한 학생들은 그 분야 최고의 학위 내지 권위를 갖을 수 있다. 이들은 신학, 시민법, 교회법 또는 의학 분야에서 교사자격증을 얻을 뿐 아니라 동시에 교수가 될 수 있었다. 15세기 독일의 예를 보면, 10명 중 4-5명이 문학사를 얻고 10명 중 한 명이 문학석사학위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상급의 전문학부를 마치고 교수가 되기 위한 청원은 14,15세기에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렇다면 이런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학비이다. 오랜 세월동안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보내야하기 때문에 재정적인 어려움이 가장 컸으며 그것 때문에 중간에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었다. 이런 재정적인 어려움만으로 고생을 한 것이 아니었다. 초기 대학은 학생들의 학비를 받아서 교수들에게 봉급으로 지급했기 때문에 당연히 부르주아 계층의 학생들에 대해서 차별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는 대학도 있었지만, 어떤 대학에서는 강의 때 출신배경에 따라 고위층 자녀들을 앞자리에 앉히기도 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출신배경에 따라서 무리지어 생활을 했다.학생들은 가난 이외에도 오늘날의 대학생들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었다. 그들은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강의에서 교수의 수업에 대한 반발로 휘파람을 불거나 책상을 두드리며 소리를 치는 등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이것에서 많은 범죄가 저질러지기도 했다. 학생에게는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학교 근처에는 당시 이름난 범죄소굴이 많이 있었다.많은 학생들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많은 노력이 시행되었다. 교회나 대학에 학자금 융자제도를 두거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학비 등을 감면해 주는 학칙도 마련했다. 또한 많은 자선가들이 13세기 후반에 가난한 학생들을 무료 혹은 싼 값으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기숙사를 설립했다. 이런 기숙사에서는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의 품행을 유지하기 위해, 대개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교수에게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도록 숙식을 제공했고 공부에 도움을 얻으려는 학생은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들 교수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여기서 college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그렇다면 수업시간은 어떠했을까? 이 역시 대학마다 차이가 있었겠지만 대부분 강의는 아침 일찍 시작되었고 종종 세 시간동안 계속되었다. 유명한 교수에게는 많은 학생들이 몰려 들었으며, 강의실이었던 낡은 방에 많은 학생들을 수용하지 못할 정도였다. 중세의 대학생들은 오늘날에 비해서 주도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대학측에 요구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연합하여 교수들이 강의 시간을 정확하게 준수하도록 벌금을 마련했었고 동맹 휴업으로 인기없는 교수들에게 보복을 했다.그렇다면 중세 대학에서 여학생들도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 여러 자료들을 살펴볼 때 여학생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무했고, 실제로 여학생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경우도 없었다. 당시 많은 상류층 여성들은 대학에서 공부하기보다는 집에 직접 교수나 저명인사를 불러서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대학에 있는 여성들-대학교수의 부인, 일을 돕는 하녀, 여사환, 칼리지의 요리사들 등은 법적으로 대학의 준회원으로써 구성원에 해당했다.당시 대학생들은 공부 외의 단체 오락이나 활동을 즐길 수 없었다. 이것은 육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당시 교회의 영향이 크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축제, 체육대회, 동아리 폭력적이고 저돌적이 되기 쉬웠고 이는 음주, 도박, 비도덕적 행위, 소요, 범죄 같은 형태로 나타났다.3.중세 대학 졸업생들의 사회진출학생들의 생활이 이러했다면, 과연 대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에 어느 정도 사회진출의 길이 열었을까? 하는 물음이 생겨난다. 여기에 대한 답으로는 초기 대학의 졸업생들과 후기 대학의 졸업생들로 나누어서 살펴보는 것이 이해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초기 대학의 졸업생들은 사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그것을 이용해서 사회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거나, 대학 졸업이 졸업생 자신의 사회·경제적인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대학에서 오랫동안 머무는 동안의 재정적인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그래서 초기 대학에는 귀족계층, 도시 중산층, 부유한 도시상인출신이나 그들의 자녀들이 대학에 많이 입학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사회적 위신이나 권위를 높이고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결국 초기 대학은 대학의 졸업을 통해서 졸업생이 사회적 지위의 이동을 꾀할 수 있을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결국 대학은 사회신분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상류계층의 권위·위신의 기반에 힘을 보탰을 뿐이다. 그렇다면 상류계층이나 그들의 자제가 아닌 학생들은 왜 대학에 들어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단순한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 역시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으나 또 다른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대학의 학위가 직접 취직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대학을 가는 사람을 돋보이게 하였고 그와 더불어 본인 역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즉, 대학의 학위가 취업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갖춤으로써 비슷비슷한 상황의 경쟁자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 놓일 수 있었다.이렇게 대학의 학위가 취업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학과 학생들의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늘어만 갔다. 왜냐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후기로 갈수록 대학은 군주나 교회, 그 지방의 실 대학은 자치권을 얻어내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후기로 갈수록 대학의 졸업자들이 교회로 진출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교회에서 대학 졸업자가 상위직책을 차지하는 수가 증가하고 특히 법학을 공부한 사람들의 필요는 적극 증대했다. 교회법이나 시민법을 불문하고 그 같은 동향인 것은 그만큼 사회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그에 따른 대응의 필요가 증대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학 졸업자 중에서 교회로 진출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았으며 그 외에도 행정·법률 분야에 진출하거나 대학에 남거나 그에 관련된 분야에 진출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또 하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초기 대학에서는 신학에 관련된 공부를 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후기로 갈수록 법학 전공자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에서 신학을 공부한 사람보다는 시민법이나 교회법 전공자를 더 필요로 하기도 했지만, 당시 귀족 가문의 해체와도 관련하여 법학 전공자의 지원자 역시 많았다. 즉 귀족들은 자신의 가문들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지켜줄 다른 신분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통해 지도적 가문의 정통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법학 전공자를 통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거나, 더 상승하려는 목적으로 법학 전공자들의 지원자로 자처하고 나섰다. 대학은 졸업생들의 사회진출의 통로 뿐 아니라 근대 정신의 확립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로도 작용한다. 14,15세기에 들어서면서 대학을 나온 학생, 그 중에서도 문학사의 학위를 받지 못하고 교양과정인 인문학만을 배우고 졸업한 학생들일지라도 인문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배우는 논리학·수사학 등은 그 학생에게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하고 자기성찰과 비판의식을 가질 수 있게 했다.4.중세 대학과 오늘날의 대학오늘날 대학생들과 중세 대학생들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주도적인 권리 추구이다. 중세 대학생들은 길드 같은 연합을 통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되는지를 대학 측에 알렸다. 수동적으로 대학에서
    교육학| 2004.12.07| 8페이지| 1,500원| 조회(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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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 소수의 엘리트 교육 평가A좋아요
    ― 서론플라톤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말은 이데아, 동굴비유, 철인교육 등이다. 플라톤의 교육에 대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난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교육과 인격중심교육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그가 주장한 철인교육은 충분히 이상적이다. 하지만 철인교육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교육받는 것이 아니라 재능있는 사람을 선별하여 소수 엘리트만이 교육을 받아 지도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 교육이다. 과연 이러한 소수 엘리트 교육이 오늘날 정당한 것일까? 그리고 신체적인 훈련, 지적인 훈련 두 가지가 조화되면 인격적인 교육이 된다. 이러한 교육이 오늘날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은 자명하지만, 이 역시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에 소수를 위한 교육이었다.이렇듯이 플라톤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재능있는 사람만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선 왜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는지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배경에 대해 간단히 서술해 보고자 한다.플라톤은 그리스 세계의 문화의 중심지였던 곳에 살고 있는 부유한 가정인 귀족적인 아테네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들은 그들의 도시의 정치적인 생활에 깊이 관여했다. 플라톤은 정치,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는 가족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지적인 생활에 대해 우수한 교육을 받았다.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의 대부분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당파들로 분할되었다. 부자는 소수의 부유한 시민들에 의한 정부인 과두정치를 지지한 반면, 빈자는 민주정치를 지지했다. 이 두 정치 형태 중에서 플라톤은 전자를 우선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플라톤의 생각은 철저하게 그 시대의 산물인 것 같다.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패했다. 민주정도 참주정도 제 구실을 못했다. 따라서 질서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어떤 종류의 통치가 절박하게 필요하였다. 따라서 그는 소수 철인들이 지배하는 철인국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플라톤은 민주정치에 대해 "통치할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나라에서는 통치할 의무가 없고 또한 내라고 말했다. 즉그가 말한 민주정치의 문제점은 제한받지 않는 다양한 생활방식이고(지나친 자유), 그것이 국가에 대한 의무감을 위축한다.따라서 플라톤은 민주정치에서 행해지는 모든 사람이 교육받는 것을 비판하고, 재능있는 소수의 엘리트들만이 교육을 받아 잘 사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본론◆ 플라톤의 철인 통치자 교육과 나의 생각철인 통치자의 교육을 생각하기에 앞서 우선 플라톤의 사고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의 교육이론은 그의 사고에 기초하여 체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사고 중 하나는 개인과 관련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정치체재와 그 체재에서의 개인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전자는 이론적인 삶이 최상의 삶이라는 것이고, 후자는 권위와 지혜의 결합이 통치자 속에 있어야 하며 국가는 철학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플라톤이 주장한 정의로운 사회를 규정하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플라톤의 이상국가에는 재산도 결혼도 아예 없다. 이런 것들은 아마도 그런 일들에 알맞은 유일한 사람들인 하류계급 사람들의 소관이다. 물론 이러한 하류계급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생모와 격리되어 공적인 교육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국가를 자기 부모로 여기게 되고, 자기 또래 아이들 모두와 형제자매가 된다. 어쩔 수 없이 사생아가 되어 버린 이 아이들은 20세가 될 때까지 체력훈련이나 의기 북돋우는 음악으로 교육받게 된다. 아이들이 20세가 되면 끊임없이 훈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적격판정을 받은 찌꺼기들은 도태된다. 이들은 농부나 상인으로서 공동체 전체를 먹여 살리는 천한 일들을 하는 곳으로 보내진다. 반면 우수한 학생들을 또다시 10년 동안 산수, 기하학, 문학을 공부하게된다. 이러한 단계의 실패자 집단은 군사적인 일 쪽으로 돌려진다. 이제는 엘리트들만 남는다. 이들에게는 35세가 될 때까지 5년 동안 철학을 공부하는 영광이 부여된다. 그리고 나서 15년 동안 그들은 세상사에 뛰어들어 통치 실습을 받는다. 50세가 되면 들은 모두 공동 막사에 함께 살면서 사유재산을 전혀 갖지 않고, 자기들이 선택한 자와 함께 산다. 거기에는 남자와 여자사이에 완벽한 평등이 있다. 이 엘리트들은 공동생활을 하고 아무런 개인적 이해관계도 없기 때문에 뇌물에 초연할 것이며 그들의 유일한 야망은 국가의 정의를 확립하는 일이다. 이 무리 중에서 국가의 최고 우두머리인 '철인왕'이 뽑힌다. 플라톤은 이러한 철인왕이 통치하는 국가가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플라톤 시대에 철인국가는 어느 정도 통했다. 하지만 이러한 철인 국가가 어느시대나 보편적이게 통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한마디로 철인국가는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의 우열을 무시하고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보는 것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우월은 본질존재 Idea에 대한 앎을 뜻하고 이 지혜를 정치에서 실현하는 도덕적 우월성을 뜻한다. 지도자의 임무는 모든 사람이 복되고 안정된 삶을 즐길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이 소수 엘리트를 올바로 교육하지 않으면 국가를 통치하는 사람이 국민들을 안정되게 인도하지 못하고,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철인국가는 계급을 낳게 된다. 플라톤은 "신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었지만 지배계급에게는 금을 섞어 만들었으며 그들이 피지배계급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교육은 이런 지배계급을 선발하는 도구로 보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이다. 하지만 현대 교육은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 어떻게 교육받으며 이를 훈련하고 노력함에 따라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며, 나아가 자기 성장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단지 도구가 아닌 교육은 이런 가치있는 과정이다.플라톤이 교육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지만 위에서 말한 소수 엘리트를 위한 교육은 지지하지 않는다. 이미 정해져 있는 계급, 이들간의 이동이 거의 안되는 것은 자유와 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현대 사상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플라톤의 말대로 소수엘리트만을 교육시켜야 한다면 평등의 논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각 단계에서 성공받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사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평등하게 교육을 받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이상적인 모습이 될까! 엘리트 교육을 다르게 말한다면 차별적인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정해진 사람만이 교육을 받게 되고 실패한 사람들은 교육받을 기회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아니 처음부터 교육이란 것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플라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을 무지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고등교육은 국가를 다스리는 철학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다.내 생각에는 아는 사람만이 계속 교육을 받게되면 교육받은 사람만이 자신들의 지식을 넓혀 갈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교육에 대한 욕구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가난의 악순환이란 말이 있듯이 무지의 악순환이 되지 않을까? 이렇듯이 플라톤이 말한 교육은 소수 엘리트만을 위한 교육으로서 모든사람에게 적용되지 않는 과정이다.그러나 다행히 현대사회에는 이러한 평등이 그나마 잘 지켜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비롯해 아직 능력이 계발되지 않는 어린 아이들까지 초등학교부터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 자신의 능력에 맞게 대학에 들어와 자신의 자리에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플라톤이 현 교육에 많은 시사점을 남긴것은 사실이지만, 소수 엘리트만을 위한 교육을 지향한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이 말한 인격훈련으로서 교육과 그에 대한 나의 생각플라톤은 교육을 넓은 의미에서 정의하지 않고 좁은 의미에서 정의하였던 것 같다. 그는 경험은 학습의 과정이고 자연은 위대한 교사이며 자연과의 상호작용으로 이해되는 경험보다 오히려 사회기관에서 지도받은 경험을 교육이라고 보았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교육은 단순한 자연보다 통제된 경험이다.플라톤은 신체적인 훈련, 지적인 훈련 두 가지가 조화되면 인격적인 교육이 된다고 한다.현대에도 건강과 지식은 많은 연관이 있다. 몸이 불편하고, 병에 걸린 사람이 과연 교육을 편하게 원하는 만큼 받을 수 있을까? 결코 아니을 받을 수 있고, 활동력도 커서 많은 것들을 배울수 있다.그는 체(체육)를 강조하였다. 그가 정신을 이야기하면서도 체육을 강조한 이유는 최상의 마음은 건전한 육체에만 기거할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즉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아닐까! 또 다른 이유는 체육은 규칙에 지배를 받으며 일정한 신체적 운동들을 일정한 방식으로 수행(게임이나 무용)하기 때문에 선호했다고 한다. 이렇듯 플라톤은 지, 체 등 모든 측면의 교육인 인격의 전체적인 훈련이 교육(인격교육)이라고 보았다.이는 교육이라고 하면 자유교육보다는 통제된 경험을 중시했던 플라톤의 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플라톤은 체육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체육(그리고 문예)을 교육으로 인정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체력을 그 자체만의 목적으로서 갖는 활동은 교육이란 이름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체육의 목적이 내재적인 것이 아니라 교육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교육과 체육에 대해 많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그리고 플라톤은 좋은 교육에 대해서 많은 제한을 했다.어떤 교육이든 하고싶은 것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을 선별하여 해라는 식으로 시켰다고 한다. 이렇게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나 효율적인 교육이 행해질 수 있었을까! 교육만이 통제 한 것이 아니라 위에서 말했듯이 플라톤은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교육을 우선시 하였다. 인격교육 역시 소수를 위한 교육이었다.사회질서를 지키고 통제수단으로 사용한 교육.......그리고 이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사회에서의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함께 참여하는 사회가 될 수 있었다면 더 이상적이었을텐데 안타깝다. 플라톤의 동굴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태양을 닮아가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렇게 태양으로 나아갈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제한적인 교육을 하는데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플라톤!
    교육학| 2004.12.07| 7페이지| 1,500원| 조회(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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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공학] 교수매체의 역할
    교수매체의 역할- 학습과정 촉진교수메시지의 정확한 의미 전달다양한 표상방식으로 학습자의 인지과정에 영향사고와 지식구성과정을 촉진시키는 도구 : 정보탐색도구, 사회적 매개도구, 초인지 사고 조력 도구- 동기유발-주의집중- 인지발달 촉진 : 매체가 기초적 인지활동을 담당함으로 학습자가고차적 기능에 집중할 수 있음- 새로운 학습환경 창출 : 사이버 공간교수-학습과정에서 교수매체의 기여도교수활동이 표준화될 수 있다.교수-학습과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교수-학습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교수매체가 가진 보완성은 교수자나 학습자에게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장소에 서 교수-학습활동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매체의 사용은 교수자가 교수-학습과정에서 보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있도록 돕는다.교수-학습과정에서의 교수매체의 역할(1)교사중심의 수업을 보조하기 위한 보조자료로서의 교수매체아직까지 가장 일반적인 수업의 형태는 교사중심의 수업이다. 이는 교사가 강의 등의 방법을 통해 수업을 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각종 매체를 보조자료로 사용하는 형태이다. 보조자료는 수업내용 및 수업방식의 특성에 잘 맞는 걸로 선택해야 한다.(2)교수매체 중심의 수업교사가 없는 상황에서도 교수-학습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CAI가 그 좋은 예이다. 이러한 교수매체 중심의 수업은 학습자들이 스스로 매체를 이용해 학습하기 때문에 교수자들은 강의나 설명 등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으며, 이렇게 해서 얻어진 시간을 개별 학습자들을 위해 할애할 수 있다.(3)학습자의 개별화 학습을 위한 도구로서의 교수매체학습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교수매체의 개발로서, 교수매체의 개별화란 교수매체와 학습자 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상호작용은 컴퓨터에 의해 제시될 수 있으며, 따라서 각종 교수매체와 컴퓨터가 결합하는 경향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멀티미디어는 그 좋은 예가 된다.(4)특수한 대상이나 목적을 위한 교수매체의 활용지능의 부족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아동보다 교사의 처치가 10배정도 더 필요한 아동이 있을 때, CAI 등의 적절한 교수매체를 활용하면 더 효과적인 학습을 할 수 있게 되고, 따라서 교사의 시간부담도 줄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특수교육과 유아교육은 적절한 교수매체의 개발과 활용이 가장 많이 요구되는 분야이다.(5)원격수업과 가상수업을 위한 교수매체
    교육학| 2004.11.05| 2페이지| 1,000원| 조회(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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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기교육] Piaget의 인지발달이론을 통해 본 조기교육 평가B괜찮아요
    Piaget, 조기교육, 효과가 있나?- Piaget의 인지발달이론을 통해 본 조기교육1. 서론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조기교육이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갖가지 조기교육을 시키고, 또 하려고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기교육 무용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 열풍으로 불리며 조기교육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조기교육이라 함은 학령(學齡)에 도달하지 않은 아동에게 일정한 커리큘럼에 따라 실시하는 교육을 말하는 것으로 독일의 F.W.A. 프뢰벨과 J. 코메니우스가 창시자이다. 대체로 만 4∼5세 아동을 대상으로 유아의 지적 잠재력을 조기에 개발하거나 훈련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음악이나 외국어 교육이 조기교육의 주 대상이지만 영어를 거의 주로 하고 있다. 요즈음은 조기교육 붐으로 인해 연령층이 심지어 만2∼3세까지 내려가고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열풍이라고 불릴 정도로 붐이 일고 있는 조기교육, 이 조기교육을 피아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피아제는 조기교육을 찬성했을까 아니면 반대했을까? 여기서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 근거하여 조기교육의 필요성과 그 효과 또는 그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2. Piaget의 인지발달 이론피아제 Jean Piaget(1896∼1980)는 아동의 인지발달 분야에 대한 이론가들 중 가장 인정받는 학자이다. 스위스 태생인 그는 1918년 생물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관심을 심리학 분야로 돌려 파리의 Binet 연구소에서 연구하다가 제네바에 국제발생학적 인지론 연구소(Center of Genetic Epistemology)를 설립하였다. 피아제는 아이들이 올바르게 반응한 양보다 아이들의 실수의 질에 더 흥미를 느꼈다. 피아제는 이 실수들이 아이들의 무지나 불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추측에서 비롯된, 가볍게 보아 넘길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실수들은 아이들의 마음에 내재된 논리적 구조가 어른들에게 내재된 지식의 논리적 구조와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부인과 함께 그들의 그것을 바탕으로 유아 발달에 관한 초기 개념들을 정립하였다. 그 후 여러 해에 걸쳐 아동의 인지발달이론들을 발표하였다.우선 Piaget 이론의 주요 이론적 개념을 살펴보자.Piaget의 인지발달 이론에서 살펴 보아야할 주요한 기본 개념은 적응(adaptation), 동화(assimilation), 조절(accommodation) 등을 들 수 있다. Piaget는 지능이란 적응능력이라고 하고, 지적발달은 단순한 쉐마(scheme)가 복잡한 쉐마로 변화되어지는 과정을 말한다고 했다. 이러한 적응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인지적 발달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본다. 그리고 이러한 적응과정에서 주요하게 작용하는 요소가 바로 동화와 조절이다. 동화란, 유기체가 현재의 메카니즘으로써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문제를 취급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동화의 결과, 지식의 양적 팽창을 가져온다. 한편 조절이란, 현재의 메카니즘으로써는 도저히 해결하지 못할 새로운 상황과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써, 기존의 지식을 변화시켜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조절의 결과 지식의 질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동화와 조절은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여 지식의 양적·질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으로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이며, 이러한 상호작용이 적절히 조정되지 않으면 결국 적응자체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Piaget는 이러한 상호작용의 자기조정기제를 평형화(equilibr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평형화란 동화와 조절의 균형을 의미한다.Piaget는 인지발달단계를 크게 네 단계로 나누었다.각 발달단계는 그 특징들이 나타나는 순서가 변하지 않으며, 발달은 누적적인 방법에 따른 계속적인 흐름으로써 새로운 단계는 이전의 단계와 통합된다. 이것이 바로 피아제가 구분한 단계의 중요성인데, 그 까닭은 각각의 단계가 그 뒤를 따를 단계에 반드시 필요한 인식론적 준비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각 단계는 이전 단계에 단순히 덧붙여지는 것이 아니라, 이전 단계로12세 이후)로 나뉜다. 각 단계의 특징들을 살펴보자.우선 첫째로, 감각운동단계(sensorimotor stage)는 출생 후 약 2년 간 지속된다. 아이는 이 동안 감각과 운동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고 적응해간다. 아이는 태어나면서 반사(反射) 및 자발적 운동을 하게 되고, 그 후 순서대로 첫 반복 습관, 흥미 있는 광경이 계속되게 만드는 행동, 수단과 목적의 협응, 수단의 발견 등을 하게 되고, 16개월쯤 갑작스러운 이해로 새로운 수단의 발명을 가능하게 하는 표상적 사고(思考)가 시작된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는 대상영속개념(concept of object permanence)의 획득이다. 즉, 대상은 그가 직접 경험하고 있지 않을 때도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둘째로, 전조작 단계(preoperational stage)는 감각운동단계에서 조작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아이는 사상을 점차 내적으로 표상할 수 있는 사고(思考)를 하게 되는데, 사물을 판단할 때 눈에 보이는 직관적 속성에 의해서만 판단한다. 이 단계의 뚜렷한 특징은 언어의 발달이다. 그 언어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만 개념발달을 크게 도와 준다. 다른 특징에 자기중심성(ego-centrism)이 있다. 즉, 이때의 아이는 다른 사람의 역할과 견해를 고려할 줄 모른다. 또한 중심화(centering) 즉, 한 번에 하나의 차원이나 하나의 모습에만 주의를 집중한다. 그리고 보존성과 유목화 개념을 발달시키지 못하며 비가역성 사고를 한다.셋째 단계로 구체적 조작단계(concrete operational stage)에 들어서면 사고의 가역성이 나타나고, 자기중심성이 약화되며 보존성과 유목화 개념이 발달한다. 또한 탈중심화가 일어나고, 관찰한 실제 사실에 한정되긴 하지만 논리적 사고력이 발달한다.마지막으로 형식적 조작단계(formal operational stage)의 아동은 사고에 있어서 질적 변화가 나타난다. 가설적인 것, 가능성 등에 관하여 생각하는 의한 사고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추상적 사고가 발달하고 가설설정 및 검증이 가능해지며, 적극적인 자기 정체감을 인식하게 된다.3. Mr. Piaget. 조기교육, 과연 효과가 있을까?그렇다면 Piaget는 조기교육을 어떻게 볼까?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자면 피아제(혹은 그의 이론)는 조기교육에 부정적이다. 아동의 지능발달이 교육이나 환경에 의해 촉진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피아제는 인위적인 가속화의 효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다만 가정이나 학교의 교육이 아동의 지적 발달을 도울 수는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중요한 것은 교육은 지능이 자발적이고 자연스럽게 발달하도록 돕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며 발달을 돕는 방법으로써 교육방법을 강조하였다.교육적 방법을 마련할 때는 구조화된 본성과 자기조정된 지능의 발달을 고려해야 한다. 피아제의 개념인, 본래적으로 동기 유발된 실행(기능적 동화)은 학교에 다니는 아동들에게도 아기들 못지 않게 잘 적용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동기 유발되는 첫째 요소가 외부적 보상이나 강화(强化)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각각의 아이들이 자신의 지적 능력을 분화하는 자연스러운 경향을 가지고서 자신의 고유한 속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발달하지만, 일련의 구조화되지 않은-대개는 이해하지 못하는-사실들을 배우는데는 거의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조기교육은 효과적이지 않다기보다는 해롭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기교육은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허구적으로 이해한 것처럼 덮어 버릴 우려가 있고, 그에 따라 교사와 아동 모두가 현재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절박한 구조의 발달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조기교육은 대개 만 4∼5세 혹은 더 빠르게 만 2∼3세에 시작을 한다. 즉, 이 시기는 피아제가 말한 인지발달 단계 중 전조작단계(preoperational stage)에 속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조기교육에 대해 생각할 때 피아제르면 이 언어는 전조작단계에서 시작하게 된다.전조작단계에서 외부 환경과의 변증법적 상호 작용은 지능의 발달에 여전히 중요하다. 여전히 증가하는 아이의 육체적 협응 또한 지능의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육체-조절에 집중된 감각운동이 더욱 두드러지게 지적인 성취에 대한 구조적 토대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피아제식 교육가들은 놀이방과 유치원에 다닐 시기인 두 살에서 네 살, 그리고 네 살에 일곱 살 사이의 아이들이 다양한 도구들을 경험하도록 장려하며, 스스로 개념화할 수 있는 자질을 발견 혹은 구성하도록 돕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피아제주의자들은 세밀하게 차별화된 동작뿐만 아니라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발달시키는 육체적인 활동을 선호한다.피아제주의자들은 초등학교에서 읽기와 쓰기를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것을 비난한다. 그 같은 교육은 지능의 자발적인 성장을 방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조기교육은 흔히 아이의 언어적인 반응을 과도하게 중시하는데, 그것은 옳지 못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단어에 대한 아이의 이해는 시간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피아제에 따르면, 구어(口語)는 성숙하고 합리적인 지능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것은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논리와는 별개의 것이다. 그리고 2차적인 언어 기술인 읽기와 쓰기는 아동의 지능 발달과는 더욱더 관계가 없다.요컨대, 피아제(혹은 그의 이론)는 조기교육을 부정적으로 보았으며, 더 나아가서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4. 조기교육,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피아제(혹은 그의 이론)에 따르면 조기교육은 필요가 없는 것으로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조기교육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인가,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 것인가?지능발달을 촉진하기 위한 취학 전 프로그램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실제로 이 훈련을 받지 아동보다 전체적으로 발달이 빨라졌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리고 훈련에 의해 어
    교육학| 2004.11.05| 6페이지| 1,500원| 조회(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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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불교] 일원상의 진리
    일원상의 진리1. 진리의 상징 일원상1) 궁극적 진리와 일원상인간은 누구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또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의미추구는 역사 속에 전개되어 문화라는 의미체계를 형성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 중에서도 인간에게 가장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의미로 대두되는 것은 우주와 인생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다. 인류는 유사 이래 궁극적 진리 추구를 끊임없이 지속해 왔으며 모든 종교의 중심과제 또한 이러한 궁극적 의미 파악과 그의 실현에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궁극적 존재의 세계는 일반적 언어나 상대적 개념에 의해서는 그 의미의 전달이 불가능 하다. 그래서 함축적 의미를 표현할 수 있는 상징이 등장하게 된다. 종교적 상징은 어떠한 인위적 조작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즉, 상징은 깨달음이나 계시의 차원을 통하여 발현이 가능하다. 그것도 그 상징을 받아들이는 민중의 집착적 무의식의 반응을 통해서 비로소 상징의 기능이 발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궁극적 진리의 상징은 그 표상된 상징과 그에 대한 상징적 태도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종교와 종파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성장하기도 하고 사멸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 문명사회의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기성종교들에 의해 주장되어온 절대적 진리관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반종교적 회이가 만연됨에 따라 종래의 많은 전통적 종교의 상징들이 시련을 겪고 있다. 이에 소태산 대종사는 정신개벽과 대문명세계 건설에 의한 인류 구원의 새로운 종교 상징으로서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우주만유의 본연과 인간 자아의 본성을 자각케하고 생명의 원천과 삶의 새 차원을 현시한 새로운 상징인 것이다.일원상은 한국적 정신토양을 바탕으로 하여 인류구원의 시대적 사명과 미래지향적 종교로서 새로이 출범한 원불교의 일원상 상징이 과거 모든 종교의 전통적 상징들을 배타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 전통적 종교 상징들의 근본적 의미를 자체 안에 소화 흡수한 위에서, 앞으로의 미래사회를 향도할 새로운 차원의 종교적 국면을 제시하고 있다.모든 종교의 궁극적 진리의 상징이 그러하듯 일원상 상징은 소태산이 깨달은 궁극적 진리 즉, 일원상의 진리를 알리기 위한 최선의 상징적 표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소태산은 일원상을 예컨대 이라 비유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언어해석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궁극적 진리의 심오한 의미는 직관의 종교 체험을 통하여서만이 비로소 의식의 지평위에 조명됨을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2) 일원상 상징의 보편성궁극적 진리의 상징으로서 일원상 상징은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에 의하여 독자적으로 천명된 것이지만 인류의 정신문화사에 있어 원(圓) 상징은 우주와 인생에 관한 궁극적인 진리의 표현 또는 상징으로서 동서고금, 철학 사상이나 예술, 또는 현대과학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세계의 표상으로서 원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1) 서양에서의 원(圓) 상징서양사상에 사용된 원의 상징 - 파르메니데스 ; 세계는 불생불멸하여 불변 부동한 유일한 존재인 절대의 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중심으로부터 모든 방향으로 똑같게 균형 잡혀 있는 하나의 거대한 구와 같은 것이라 했다. 즉, 그는 존재의 궁극적 실체를 구형으로 파악했다.기독교 안에서의 원의 상징- 에크하르트 ; 이것은 신에서 나오는 문이요 신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라고 하며 인간은 원을 통해 신에 귀일한다고 함.지옷토 ; 신이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인신처럼 어떤 형상으로 묘사 될 수 없다. 고 보아 전지전능하고 무소 부재한 신의 풍광을 원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현대과학에서의 원 - 일본의 유가와 히데끼는 서립자의 미시세계 뿐만 아니라 거시세계의 천체에 이르기 까지 선회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보았다.현대철학에서의 원 - 니이체 ; 존재 세계의 원운동을 역사의 흐름과 관련지어 영겁회귀설을 주장함.- 그밖에도 여러 부분에서 원은 보편적으로 사용되어져 왔다.(2) 동양에서의 원의 상징불교 - 궁극적 진리의 개념으로 사용되는 공, 또는 무를 도형으로 표현하면 곧 이 된다. 이 원은 인간의 내면적 마음 세계의 본래 실상으로 파악하였다.- 중국 전통사상의 원류인 역(易) 사상에 바탕하여 새로운 성리학을 개척한 주렴계의 은 원으로부터 시작된다.- 도가의 노자도 무위자연한 도의 근원으로 무극을 강조.- 장자 또한 그러한 도를 모든 만물이 생성 변화케 하는 근본원리라 보았다.이처럼 동서고금을 통해 우주와 인생에 관한 궁극적 진리의 상징적 표현으로 워 상징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어져 왔다.2. 법신불 일원상일원상을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에 의해 밝혀진 궁극적 진리의 상징으로서 원불교의 최고 종지이다. 원불교 교리의 핵심을 일목요연하게 도식으로 표현한 에서는 최고 종지로서의 일원상을 그려놓고 그 아래(가)일원은 법신불이니 (나)우주만유의 본원이요 (다)제불제성의 심인이요, (라)일체중생의 본성이다.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1) 법신불의 일원상(일원상 부처님)원불교의 일원상 진리는 소태산 스스로의 대각에 의하여 천명된 독자적 진리관일 뿐 아니라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하여 동양의 전통적 진리관, 특히 불교적 진리관의 정수를 조화적으로 회통시켜 계승, 발전시킨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불교, 불법이란 석가모니불의 근본적인 진리관 또는 불교사상사를 통하여 다양하게 전개된 제 진리관, 초기불교 뿐 아니라 대승불교 전반의 불교발달사를 통해 심화되고 발전되어온 제 불타관 내지 진리관의 총체적 의미를 조화적으로 종합, 지양한 광의를 의미한다.만법의 근원으로서의 진리 그 자체를 부처로 본 것이다. 그러므로 원불교의 법신불은 우주의 궁극적 진리 그 자체를 부처로 보았다.2)우주만유의 본원으로서의 일원상일원상은 만유가 한 체성에 바탕해 있는 무한한 존재세계의 전체상을 상징한 것이며 동시에 그것은 만법의 근원을 상징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만유, 만법이란 나 자신을 포한한 시-공을 통해 전개되는 유정 무정의 모든 존재 뿐 아니라 그들의 생성변화작용, 그리고 시간과 공간 그 자체 까지도 포함하여 부른 것이다. 나아가 그것은 일체의 가치관이나 진리관 등의 의미적 존재 까지도 폭 넓게 수용한 개념이다.즉, 만유의 근본체성이며 만법의 근원으로서의 일원은 유와 무의 분별 이전의 세계이며 동시에 유와 무를 총섭하되 그 자체는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본원세계로서 그에 의하여 생성, 소멸되는 근원적 존재라는 것이다.3) 인간자아의 본성으로서의 일원상우주만유의 본원으로서의 일원은 동시에 인간 자아의 본성 그 자체로서 그것은 일원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나 깨닫지 못한 사람이나 관계없이 그들의 본성에 일원의 진리가 내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은 바로 법신불 일원의 내재적 진리이다. 이는 초인간적 절대 세계로만 향하던 향외적 진리 추구의 눈길을 향내적 인간 내면의 세계로 돌려 자아 본성에 대한 절대긍정 아래 그 절대적 진리를 주체적으로 자기 안에서 찾아 구현해 나갈 것을 강조한다.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이야 말로 일원의 진리를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절대적 존재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마음이야 말로 일원상 진리의 자기실현의 장이라 볼 수 있다.4) 제불제성의 심인(心印)으로의 일원상심인이란 원래 선가에서 주로 쓰는 용어로 부처님이 마음으로 깨달아 증득한 경지, 즉 언어나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궁극의 경지 그 자체를 비유적으로 표현 한 것이다.제불제성의 심인이라는 명제는 진리의 각증성과 회통성 및 귀일성 등의 의의를 강조한 것이라 본다. 즉, 근원의 진리로서의 일원은 일상적 언어로 개념화 되거나 표현 할 수 없으며 그것은 오직 부처나 성자들의 심오한 종교체험으로서의 직관적 깨달음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체득되는 것이다.궁극적 실재에 대한 제 종교의 진리관들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별개의 진리가 아니라 결국 하나의 진리로 만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종교의 진리관은 하나의 근본적인 진리관에서 비롯된 다양한 전개에 불과한 것이며 동시에 그들 모든 종교의 지향점 또한 그 궁극적 진리를 실현하고 그 근본적 진리에 돌아가기 위한 것이다.3.일원상 진리의 논리적 구조일원상 진리 그 자체로서는 상대적 인식작용의 한계를 넘어선 초논리적, 초경험적 차원에 속한다. 일원상 진리의 (정전) 교의편에 나타난 일원상의 진리는 이해의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 방법이 나온다.1)본체론적 인방에서 본 진공의 체성일체의 상대적인 차별과 관념을 넘어선 진공체가 그의 근본 체성으로 이 경지는 여여 불변하여 생사변화와 선악길흉, 생사(生死) 거래(去來) 일이(一二) 단상(斷想) 등일체의 차별이 끊어진 자리인 것이다.물론 이때 그러한 차별현상들이 그 자리를 떠나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이 차별들은 모두 진공체성의 다양한 현상적 전개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대의 경지는 상대적 언어로 개념화 되거나 표현될 수 없으며 일상적 사유로는 미칠 수 없다2)현상론적 입장에서 본 모유의 조화작용일원의 체성은 일체의 상대적 차별을 넘어선 무상의 진공체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은 물리적 진공이나 무기(無記)의 공(空)과 같은 악취공이 아니라 공적 영지의 광명과 모유의 조화를 포함한 신묘한 공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차별현상은 바로 이 일원상의 진리의 모유작용에 불과한 것으로 그러한 모유의 조화작용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무한하고 영원하다고 하여 우주 만유를 통해 무시광겁토록 은현자제하지 않음이 없다고 한다,
    교육학| 2004.11.05| 5페이지| 1,000원| 조회(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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