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序 論중국인들의 식성은 정말 대단하다. 네 발 달린 것은 책상 빼놓고는 다 먹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그들은 먹는 것에 대하여 어떤 편견을 갖지 않는다.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먹어 치운 것들을 무엇으로 소화시키고 있는가를......그들은 차로써 모든 음식에서 배어 나온 기름기를 말끔히 씻어 내리고 있는 것이다.중국은 차의 나라라고 할 만큼 사람들의 생활 속에 차가 보편화되어 있고 역사 또한 장구하다. 지금도 중국에 가면 각양각색의 차와 함께 도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중국인을 접할 수 있어서 차가 중국인의 삶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차의 기원에 관해서는 중국의 전설적인 왕인 神農氏(기원전 2737년)가 마셨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으며, 차는 72종류의 독을 해독할 수 있다는 古史가 전해져 왔다. 기원전 1066년경에는 차를 중국 황제에게 공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으며, 기원전 59년에 쓰여진 글에는 차를 사고 판 기록이 있다. 기원전 2세기에는 차를 만드는 법과 마시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가 세워졌으며, 차를 무덤에 묻는 풍습도 있었다.) 『우리차 세계의 차-바로알고마시기』, 최성희, 서울, 서원, 1999.차는 한대(漢代) 이후 위진남북조를 거치면서 서서히 중국인의 음식문화 속에 자리잡게 된다. 당대에 들어와 육우(733?∼804)가 차에 관한 전문서인 『다경(茶經)』을 저술하면서 '다도(茶道)'라는 독립된 영역을 갖게 되었고, 송대에 이르러 보편화된 차는 생산에서부터 음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이 개발되어 차문화의 절정기를 맞이하게 된다. 송대의 오자목이 『몽량록(夢粱錄)』에서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생활필수품은 땔감, 쌀, 기름, 소금, 간장, 식초와 차이다." 한 것은 위의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다.실로 차는 음료와 약용 그리고 차 음식에 이르기까지 용도가 다양해졌으며, 차가 정신문화와 연결되면서 다도가 발달하는 한편 문인에게는 사로(思路)를 넓혀 주고, 사찰과 도관에서는 수도의 방편으로 널리과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었다.) 『중국차의 향기』, 박정도, 서울, 박이정, 2001.그래서 중국에서 가장 먼저 차를 즐겨 마신 부류는 문인이다. 한나라 때 왕포를 비롯하여 악부가인 사마상여와 양웅은 모두 일찍부터 차를 마신 유명한 다인(茶人)이다. 당시 사마상여는 황제 곁에서 왕을 모실 때 궁중에서 차를 마셨을 것이며 또 왕명으로 차의 본고장인 운남성이족에 있는 곳에 갔을 때 그곳에서 차 산지의 기후, 풍토, 풍속에 대해 깊이 연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나라 때 陸羽는 『다경(茶經)ㆍ육지음(六之飮)』에서 역대에 음차(飮茶)한 사람으로 한 대에는 양웅과 사마상여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삼국시대에 와서 궁중에서도 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三國誌ㆍ吳書ㆍ韋曜傳』에 보면 吳나라 왕 손호는 대신들과 연회를 베풀 때마다 술을 억지로 먹도록 권했는데 韋曜라는 사람이 술을 잘 못마시니까 손호가 차를 은밀히 내려 술을 대신하게 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다도』, 김명배, 서울, 명문당, 1993.이렇게 차는 문인들의 애호품이 되어 사마상여ㆍ양웅ㆍ위요ㆍ제갈공명 같은 문학가나 정치가가 차를 가까이 할 당시에는 차문화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지만 그 싹은 조금씩 움트기 시작했다.양진과 남북조 때에는 왕뿐 아니라 귀족들도 부정축재가 성했으며 일반관리들도 부유함을 자랑거리로 여겼다. 그러나 육납과 환온은 검약한 삶을 살아 술 대신 차를 접객용으로 내놓자 차로 술을 대신하는 '以茶代酒'라는 고사도 생겨나게 되었다. 또 남북조 시대에 남제의 세조 무제가 남긴 조서에는 "짐의 영좌위에는 삼가 희생을 제물로 삼지 말고, 다만 떡, 과일, 차, 밥, 술, 말린 고기만을 차릴지어다."라고 적혀 있었고 아울러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이에 따르라고 명령을 했으니 차를 祭需用品化한 것은 이 때부터 비롯된 것 같다. 이렇게 차는 이 때부터 사회적인 효용이 인정되어 차로서 손님을 대접한다든지 제사 때 마음을 표하는 수단이 되었고, 아울러 정신영역에 침투하여 문화적으로 좋 도구편을 더욱 갖추어 서술하므로 천하에 차 마시는 것을 널리 알렸다." 했듯이 당나라 때 차문화를 거론하면 陸羽를 빼놓을 수 없다. 문인ㆍ도가ㆍ불가ㆍ달관귀족은 말할 것 없고 심지어 황제까지도 차를 애호하는 사람이면 陸羽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사실 중국 차문화의 기본구조를 陸羽가 세웠다고 할 수 있으니 이는 陸羽의 『茶經』이 세상에 나오면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당송대(唐宋代)에 이르러 차를 마시는 풍속이 널리 보급되었다. 그런 만큼 차를 편하게 마시고 즐기려는 경향도 커졌다. 당대(唐代) 봉연(封演)이 쓴 『봉씨문견록(封氏聞見錄)』에 의하면 “많은 점포들이 문을 열고 차를 끓여 팔았는데 도속(道俗:승려와 민간인)을 불문하고 모두 돈을 내고 차를 마셨다”고 하여 신분을 불문하고 거리의 상점에서 차를 사서 마셨던 것을 알 수 있다.) 「서은미의 차이야기」, http://members.namo.co.kr/~yinmei이 때 차문화를 형성시킨 사회적 배경을 살펴본다면 첫째 차문화의 형성은 불교의 발전과 관계가 깊다. 불교는 당나라 때 조정의 제창에 힘입어 전국 각지에 사찰이 들어서고 큰 사원에서는 차를 심어 승려들이 정신수양을 할 때 차를 마시게 되었다. 차문화의 발전은 선종과 관계가 아주 깊었다. 선종은 부처가 내 마음 안에 있어서 좌선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는데 차 산지인 남방에서 흥기한 선종은 일찍부터 茶禪一如를 터득했다. 사찰에서 저녁에는 공양을 하지 않으며 밤에는 졸음을 물리치고 참선수행에 들어가야 했으니 차는 승려들에게 필수품이 된 것이다.둘째는 당대에는 詩風이 성했던 것과 관계가 깊다. 당대의 과거시험에는 詩作을 주요 고시과목으로 채택했기 때문에 문인이 시를 연마하자 세간에 시를 읊조리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고 시가의 전성시대를 이루게 되었다. 시인이 시상을 떠올리려면 영감에 도움을 주는 것이 있어야 했는데 술은 李白이나 이하 같은 시인이 좋아했고 반면에 차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시인에게 적합했다. 李白은 말술을 마시는 동안 시 백 편을 쓴다당(唐)대부터 주변민족들은 차를 즐겨 사갔는데 당시 기록인 『봉씨문견기(封氏聞見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차 마시기는) 중국에서 시작되어 새외(塞外)로 전파되었다. 지난해 회골이 입조하였는데 명마(名馬)를 대거 몰고와 차(茶)를 사가지고 돌아갔다.” 이렇게 당나라의 차문화는 문인의 詩會나 禪房, 朝廷과 外交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인연을 맺게 되었다.) 「서은미의 차이야기」, http://members.namo.co.kr/~yinmei중국의 차문화에서 陸羽의 저작 『茶經』은 3권 10장으로 차의 근원과 도구, 차 만들기, 차의 그릇, 차를 끓이는 법, 마시는 법, 차의 역사, 차의 산지 등을 서술하고 있어서 전문적인 茶書로 자리잡았다. 중국의 봉건 사회에서 經書를 연구하는 것이 학자의 正道라면 차에 관한 학문은 일종의 雜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陸羽와 다른 학자들은 유학에 조예가 깊었지만 이런 말에 介意치 않고 깊이 있는 학술연구방법을 차에 적용하여 차문화를 향상시키게 된 것이다.여기서 陸羽가 『茶經』을 쓰게 된 사상적 근원을 살펴보겠다. 陸羽는 호북성 천문현 사람이다. 陸羽는 어릴 때 버려진 아이로 용개사의 지적선사에게 양육되면서 불경과 다예를 익혔다. 그러나 그는 사찰에서의 무료한 삶에 회의를 느끼고 불경보다는 유학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어 12세의 나이로 절을 뛰쳐나오게 된다. 그 후 그는 유랑극단에 몸을 담고 광대생활을 할 때 경릉태수 이제물의 눈에 들어 유학을 공부할 것을 권유받고 최국보의 지도로 경사를 깊이 공부하게 된다.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당시 25세의 나이로 유랑하다가 지금의 절강성 호주에 정착한 陸羽는 차의 명산지인 호주에서 차의 생장과 재차에 대해 많은 자료를 수집하며 연구하는 가운데 유명한 詩僧이자 茶僧인 교연과 교분을 갖고 차를 좋아하는 많은 시인과 교류하며 차와 예술을 결합시켜 훗날 『茶經』의 초고를 끝내고 다시 수정을 거듭하여 10여 년 뒤에 『茶經』3권을 완성하여 세상에 내놓았다.두 번째로 중국의 차문화는 불교와 하였던 효과적인 정책이었다. 이로써 서북지역 민족과의 교역은 차마(茶馬)무역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당나라 때에 비록 변방과 외국에까지 차가 전파되었다고 하지만 飮茶활동은 중원과 차 산지에 국한되어 당시 사원이나 도관에서 또는 문인들이 주체가 되어 음차활동을 했다. 그러나 송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상하 계층 모두 음차를 즐기게 되어 위로는 궁정 차문화가 정식으로 출현하여 국가의식에 다례가 행해지고 차연회가 거행되기도 했으며, 神靈과 宗廟에 제사를 지내고 변방의 사신도 술과 차로 대접하고 신하나 승려에게 차를 하사하기도 했다. 이 때 공정이 까다로운 龍團鳳餠을 공차하게 하여 차문화를 格上시킨 반면에 사치스러운 감이 있었고, 아래로 서민들은 음차와 투차놀이를 즐기니 소박함이 공존하게 되었다. 송태조인 조광윤을 위시해서 인종, 신종도 모두 차를 좋아했는데 특히 휘종은 다예에 정통하여 친히 『大觀茶論』을 저술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나라안이 태평하여 왕이나 신하도 자연스럽게 천하를 다스리게 되었으며 고관이나 백성들도 은혜를 입고 왕의 덕화를 입어 고아한 것을 서로 숭상하니 차 마시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비록 하찮은 벼슬아치도 이러한 시대에 차를 쌓아 두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참으로 성세에 맑은 것을 숭상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이렇게 음차는 윗사람이 하는대로 아랫사람들도 따라서 하니 온 나라에 전에 없던 성황을 이루게 되어 드디어 생활 필수품이 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송나라는 중국에서 봉건 사회 발전의 최고 단계이자 물질문명과 정신문화가 최고조에 도달한 시기였다. 송나라 때에 요나라는 북송과 대치하고 금나라는 남송과 대항하다가 비록 싸움에는 졌지만 문화와 경제 면에서는 번영하여 차문화는 송과 요, 송과 금의 교류를 통해 발전하고 북방의 유목민족에게도 전파되어 북방을 통제할 수 있는 국책이 되어 남북의 경제와 문화를 연결하게 되었다. 사회경제면에서는 농업생산의 증가와 상공업의 발달로 도시경제는 신속히 번창하여 사회상으로는 배금주의 심리가 팽배
Ⅰ. 서론현재 수권의 약 2%인 담수의 대부분은 빙하로 존재하며, 현재 육지의 약 10%는 빙하로 덮여 있다. 지난 수백 만년 동안 빙하가 지표의 넓은 지역을 덮고 있었던 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북반구의 1/3이상이 빙하에 의해 덮였다. 이러한 지구적인 혹한기 동안에는 중위도 지역까지도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엄동의 시대를 맞고 있었다. 오늘날 빙하는 대부분 남극대륙(88%)과 그린란드(11%)에 분포한다. 빙하의 침식, 또는 퇴적작용에 의해 형성된 지형을 빙하지형이라고 한다.¹ 빙하는 흘러내리면서 하천물과 같이 침식, 운반, 퇴적의 3작용을 한다. 다만 하천물에 비하여 침투력이나 하각력 및 측방침식력이 훨씬 강하다.Ⅱ. 본론1. 빙하의 형성과 빙하 작용빙하의 형성은 바닷물이 직접 얼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수의 증발에 의해 내리는 눈에 기원을 두고 있다. 처음에 내린 눈은 눈송이 사이에 공기가 채워져 비중이 0.06~0.16 정도로 낮지만, 눈이 쌓이게 되면 자체의 무게로 압축되어 공기가 빠져 나간다. 계속 눈이 쌓이게 되면 자체의 무게로 압축되어 공기가 빠져 나간다. 계속 눈이 쌓이여 수년이 경과하는 동안 눈은 녹기도 하고 다시 얼기도 하면서, 그리고 재결정 작용 등을 반복하면서 점점 치밀해지는데, 비중이 약 0.5에 이르게 되며, 이때 만년설(firn)이라고 한다.만년설이 더욱 치밀해져서 비중이 0.8에 이르면 빙하 얼음(氷河氷, glacial ice)으로 변한다. 이 얼음 내에는 많은 기포들이 들어 있다. 이는 직접 물이 얼어서 된 것이 아니라 눈이 쌓여서 압력을 받아 공기와 함께 압축되면서 얼음으로 변했기 때문이다(물이 동결될 때의 얼음의 비중은 0.917로서 빙하얼음과 구별되어져야 한다). 이렇게 점점 빙하 얼음이 발달하여 빙하가 형성된다.빙하작용(glaciation)은 지형학적인 관점에서 두 가지 점이 중요하다. 하나는 빙하가 발달하거나 후퇴시 침식과 퇴적 작용에 의해 생성된 빙하 지형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해수면의 상승 또는 하강 운동에 의해서 해안 및 하곡(河谷) 지형의 발달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현재 남아 있는 빙하작용의 흔적은 북미 대륙에 60% 정도와 북유럽에 20% 정도로 집중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고산 지대에 흩어져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백두산과 관모봉의 고산지대에 빙하 작용의 흔적이 남아 있다.주로 고산지대에서 빙하가 계속 두껍게 형성되면 빙하의 바다 쪽에는 압력이 높아지고 녹기 시작하면서 지면과의 접촉부가 미끄러워져 빙하는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흘러내리는 빙하는 이동하면서 침식 작용과 운반 작용을 하 -------------------¹『두산세계대백과사전13』,두산동아백과사전연구소,1999,두산동아-1-면서 여러 가지 빙하 지형을 남기고, 빙하가 후퇴하면서 운반해온 퇴적물들을 남기면서 다양한 빙하 지형을 만든다. 전자 빙하의 침식 및 운반작용에 의한 지형, 후자를 퇴적 작용에 의한 빙하 지형이라고 한다.2. 빙하의 침식, 운반작용과 빙식지형빙하도 유수와 마찬가지로 장애물에 대해서는 압력을 가하고, 기반암에서 암편을 뜯어내는 굴식과 함께 암설을 도구로 운반하면서 기반암의 표면을 갈아내는 마식을 한다. 마식을 받은 기반암은 표면이 매끈하고, 굴식을 받은 기반암은 표면이 거칠다. 빙하 밑에 얼어붙은 채로 활동성 운동에 의해 운반되는 암설은 기반암에 가느다란 금, 즉 찰흔을 그어 놓거나 좁고 기다란 홈인 그루브를 파놓는다. 찰흔이나 그루브는 빙상의 이동방향을 알아내는데 중요한 지표로 이용된다.¹빙하는 충분한 압력을 가지고 있을 때는 소성이 있어 매우 원만하게 이동한다. 두께가 30m 정도가 되면 이동하기 시작하고 강한 침식력으로 곡벽과 곡저를 깎아 여러 가지 모양의 빙식지형을 형성한다. 빙식을 받은 산지는 비빙식산지에 비해 기복이 크며, 스위스의 마터호른이나 히말라야산맥의 모든 산봉우리와 같이 날카롭고 뾰족한 산정을 형성하는 것이 많다. 산정부의 곡두에는 빙하의 함양구역을 이루는 카르가 발달해서 강한 침식력으로 말발굽 모양의 와지를 형성하고, 카르와 카르가 접하는 봉우리는 이른바 호른이라는 첨봉을 형성한다. 곡빙하의 이동에 따라 측벽이 깎여 수식작용에 의한 V자곡과는 다른 U자곡이 형성된다. 또, 곡벽과 곡저를 깎은 암설을 퇴석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빙하와 함께 이동한다. U자곡이 침수하면 노르웨이, 칠레 남부, 알래스카의 해안에서 볼 수 있는 4것과 같은 피오르드식 해안을 형성한다. 빙하가 침식한 곳에 물이 괴면 북아메리카의 5대호나 북부 유럽의 많은 호수와 같은 빙하호를 형성한다. 특히 대륙빙하의 침식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지형으로는 빙식평야, 누나탁 등을 들 수 있다. 또 빙식을 받은 암면에는 찰흔이 남고, 곡저에는 양배암이라고 불리는 찰흔이 남아 있는 둥글고 매끈한 유상돌기군을 볼 수 있다. 빙하의 침식 및 운반작용에 의한 빙하 지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1) U자곡(U-valley):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빙하의 침식에 의하여 형성된 U자형 계곡.(2) 현곡(shirk): 빙식곡의 상류쪽 끝에 있는 3면이 절벽으로 된 우묵한 지형.(3) 즐형 산릉(arete): U자의 빙식곡 사이의 예리한 능선.(4) 호른(horn): 뾰족한 뿔 같은 산꼭대기.(5) 권곡(cirque): 즐형 산릉 사이에 둥글게 움푹하게 파인 지형(6) 피요르드(fiord): 빙하의 침식에 의해 형성된 해안--------------------¹『自然 地理學』,권혁재, 1997, 법문사-2-(7) 빙하호(glancial lake): 빙하의 무게에 의해 지각이 가라앉거나 빙식되어 평원이 형성된 후, 빙하가 녹은 물이 채워져 생긴 호수.(8) 미아석(lost stone): 빙하에 의하여 운반되어 퇴적된 커다란 돌덩어리로 표이석(dirt stone)이라 부르기도 한다.(9) 찰흔(streation): 빙하에 박힌 암편에 의하여 기반암의 긁힌 자국.3. 빙하의 퇴적지형빙하가 운반, 퇴적하는 물질은 퇴석 또는 모레인이라고 한다. 퇴석은 주로 빙하의 침식에 의해 공급되지만 곡빙하의 경우에는 빙하 위의 사면에서 매스무브먼트에 의해 공급되는 암설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빙하 밑에서 운반되는 하중은 저퇴석, 곡빙하의 경우 곡벽을 따라 양쪽측면에서 운반되는 측퇴석이라고 한다. 측퇴석의 상당한 양은 빙하에 얹힌 상태로 운반된다. 두 개의 곡빙하가 합류하면 안쪽의 측퇴석은 서로 합쳐져 중앙퇴석이라고 불리우는 검은 밴드를 빙하의 표면에 만들어 놓는다. 지류빙하가 많으면 하류로 갈수록 중앙퇴석의 수가 늘어난다.¹빙하에 의해서 운반된 퇴석은 빙하가 녹아 없어지게 되면 퇴석지형을 형성한다. 즉 빙퇴구, 에스커 등의 지형을 비롯하여 불규칙적인 퇴석에 의하여 여러 모양의 퇴적지형을 형성한다. 퇴석에 의해 막혀진 골짜기나 퇴석으로 둘러싸인 와지에는 빙하호가 형성된다. 빙하지형은 남극대륙, 그린란드를 비롯해서 중앙유럽 이북 및 미국 북부로부터 캐나다, 알래스카에 걸친 지역에 널리 분포하며, 안데스, 로키, 히말라야, 알프스 등 모든 산맥에서 발달한다. 한반도에는 관북지방의 함경산맥 중에 솟아 있는 관모봉에 제4기 빙기의 빙하에 의해서 형성된 카르지형이 존재한다. 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