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해외 서플라이체인 개혁정책 요약서플라이체인대책을 위한 국내투자촉진사업□ 사업목적? 제품 및 부품소재의 원활한 공급을 확보하는 공급망 강화 도모-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대로 인해 드러난 일본 서플라이 체인의 취약성 극복- 생산거점의 집중도가 높은 제품, 부품소재, 국민건강에 중요한 제품 관련 국내 생산거점의 정비 추진□ 사업예산 : 2,200억엔 (2020년 기준)□ 지원대상? 지원요건을 충족한 대·중소기업으로서 사업종료 후에도 건물·설비의 관리 운영을 책임지고 실시할 수 있는 법인- 일본 국내에 등기된 법인으로 국내에 사업 실시 장소를 가지고 있을 것- 본 사업을 적확하게 수행하는 조직, 인원 등을 보유하고 있을 것- 본 사업의 원활한 수행에 필요한 경영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자금 등에 대해 충분한 관리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 것- 경제산업성의 보조금 교부 등 정지조치나 지명정지 조치가 강구된 자가 아닐 것.- 단독 또는 복수사의 대기업, 중소기업일 것□ 지원요건① 보조대상설비 : 공장 또는 물류시설에서 사용하는 설비 및 기계장치- 설비 및 기계장치의 구입(개조 포함)을 필수로 하며, 설비 및 기계장치의 구입을 수반하지 않는 안건은 보조대상에서 제외② 보조대상시설 : 공장 또는 물류시설일 것- (공장) 제조업 또는 정보통신업의 용도로 사용되는 시설- (물류시설) 도로화물운송업, 외항해운업, 연해해운업, 항공운수업, 창고업, 항만운송업, 화물운송취급업, 도매업, 제조업 또는 소매업용으로 사용되는 창고 또는 배송센터(스스로 사용하는 시설일 것)※ 일시적인 수요 증가에 의해 수급이 부족할 우려가 있는 제품·부품소재 가운데 국민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을 취급할 것③ 보조대상요건- A, B, C 중 하나를 택하고, 해당 사업의 요건을 모두 충족할 것보도대상사업 A보조대상요건 A? 생산거점의 집중도가 높은 제품·부품소재의 공급 끊김 리스크 해소를 위한 생산거점 정비사업으로, 다음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것①생산거점의 집중도가 높은 제품·부품소재의 국내 생산거점 정비사업②생산거점의 집중도가 높은 제품·부품소재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기술을 활용한 생산을 하는 생산거점 정비사업? 생산거점의 집중도생산거점의 집중도를 통계지표나 사업자 단위로 조달 집중도의 증명서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 설비기계장치의 첨단성보조 대상이 되는 설비 기계장치의 성능(사양·스펙)이 첨단적*일 것* 특별주문품 또는 제조기기 제조회사의 최신 카탈로그에 게재되어 있는 것보도대상사업 B보조대상요건 B? 일시적인 수요 증가에 의해 수급이 부족할 우려가 있는 제품·부품소재 가운데 국민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의 생산 거점 등의 정비 사업? 수급 압박성- 다음 중 하나의 서류로 확인할 수 있을 것① 정부가 증산이나 안정공급 요청을 한 것에 대하여 증산요청문 등 제3자에 의한 증명서② 통계, 고객이나 전문가로부터의 추천서 등 제3자에 의한 증명서? 국민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중요한 것- 다음 중 하나의 서류로 확인할 수 있을 것① 정부가 증산이나 안정공급 요청을 한 것에 대하여 증산요청문 등 제3자에 의한 증명서② 정부 결정 문서(방재 기본계획, 신종플루 등 대책 정부행동계획 등)③ 생활필수품, 의료기관·복지시설 등에서 사용하는 것 등에 대해서 전문가 추천서 등? 설비투자 효과아래의 서류로 확인할 수 있을 것① 설비투자 계획(배송량의 증가 및 원활화·효율화에 관한 내용을 포함)② 국민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의 취급에 관한 계획③ 수급 압박 시에 정부로부터 우선 공급을 의뢰받았을 때, 상기 품목의 취급에 관한 계획(배송량의 증가나 원활화·효율화에 관한 내용을 포함)보도대상사업 C보조대상요건 C? 이하의 ①부터 ③ 모두를 충족하는 사업① 복수의 중소기업 등 그룹에 의한 공동사업②사업 A에 해당하는 사업③그룹화 메리트를 가진 사업? 이하의 모든 요건을 충족할 것① 여러 중소기업 등의 그룹이 공동으로 실시·신청하는 사업② 보조대상요건 A에서 제시하는 요건을 충족할 것③ 그룹화 장점이 있을 것- 규모 확대에 의한 효율화* (예) 설비 가동률 향상이나 자재 발주량 확대 등에 의한 조달 비용 절감 등- 그룹화에 의한 시너지 효과(기술 등의 보완에 의한 효과)* (예) 기술, 조달처, 판매처 등의 증가에 의한 개발·생산 유연성 확대 등④ 투자계획 : 해당 보조사업에 관한 투자 계획에 대해서 공고일 이전에 대외에 발표한 사업이 아닐 것□ 지원내용 (대상경비의 구분, 보조율 및 한도액 등에 대하여)? 보조 대상 사업 A대상사업생산거점의 집중도가 높은 제품·부품소재의 공급두절 리스크 해소를 위한 생산거점 정비 관련 사업대상경비의 구분건물취득비①투하 고정자산액(「지방세법」 제341조에 규정하고 있는 고정자산 중 해당 사업용으로 제공하는 것의 취득등가격의 합계액(소비세 및 지방소비세 제외)②상기와 함께 실시하는 부대공사비 등설비비시스템구입비보조율대기업 : 1/2 이내, 중소기업 등 2/3 이내한도액150억엔? 보조 대상 사업 B대상사업일시적인 수요 증가에 의해 수급이 부족할 우려가 있는 제품·부품소재 가운데 국민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는데 중요한 것의 생산 거점 등의 정비에 관한 사업대상경비의 구분건물취득비①투하 고정자산액(「지방세법」 제341조에 규정하고 있는 고정자산 중 해당 사업용으로 제공하는 것의 취득등가격의 합계액(소비세 및 지방소비세 제외)②상기와 함께 실시하는 부대공사비 등설비비시스템구입비보조율대기업 : 2/3 이내, 중소기업 등 3/4 이내한도액150억엔? 보조 대상 사업 C대상사업생산 거점의 집중도가 높은 제품·부품소재 공급 리스크 해소를 위해 복수의 중소기업 그룹이 공동으로 실시하는 생산 거점 정비 관련 사업으로, 그룹화 메리트가 있는 것대상경비의 구분건물취득비①투하 고정자산액(「지방세법」 제341조에 규정하고 있는 고정자산 중 해당 사업용으로 제공하는 것의 취득등가격의 합계액(소비세 및 지방소비세 제외)②상기와 함께 실시하는 부대공사비 등설비비시스템구입비보조사업 실시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구입비보조율중소기업 등 그룹 : 3/4 이내한도액150억엔□ 사업실시기간? 교부금 신청 : 2020년말까지- 교부 결정 후 신속하게 사업에 착수할 것 → 보조사업에 관한 건물 및 설비 취득에 관련된 발주 진행 등? 사업완료 시점 : 2022년말까지 사업 완료- 사업완료는 건물·설비의 취득이 완료되고 경비가 모두 지불된 시점을 말함- 다만, 대규모 투자 안건으로서, 기한 내 사업을 완료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한 경우에는 사업 완료 기한을 1년 연장 가능(신청)해외 서플라이체인 다원화 지원사업□ 사업목적? 아시아 지역에서의 생산 거점의 다원화 등에 의해서 서플라이 체인을 강인화해, 일본 ASEAN 경제산업 협력 관계를 강화-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대로 인해 드러난 일본 서플라이 체인의 취약성 극복- 현지기관, 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공급망최적화를 실현하기 위한 실증조사, 네트워크 구축 지원
1. 기독교 수용의 이유와 결과기독교 수용은 988년 블라지미르 1세 대공에 의해 이루어졌다. 기독교 수용의 원인에는 정치, 경제, 종교적인 이유들이 있는데, 서구세력으로의 편입과 왕권강화를 위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기독교는 백성들에 대한 공후와 대귀족들의 권력을 강화시켜 줌으로써 끼예프 루시에서 봉건관계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교회의 성직자들은 공후가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치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기독교가 도입됨으로써 끼예프 루시는 비잔틴 제국 및 서구의 다른 여러 나라들과 더욱 가까워졌으며 슬라브인들의 문화는 더욱 빨리 발달하게 되었다. 루시의 도시들에는 아름다운 사원과 수도원들이 세워지고 학교들도 설립되었다.2. 몽골 압제의 영향?러시아의 황폐화, 민족발전 저지?남부 스텝지역의 상실: 경제적 손실, 중심이 북쪽으로 이동?서유럽과 단절: 기독교 세력의 방파제?군사적, 신권적 통치구조의 영향: 러시아 전제정치의 기원?러시아어에 나타난 몽골어원: 예 돈.?몽골한의 종교적 관용정책으로 인한 교회의 지위 상승 및 강화3.모스크바 공국의 성장 배경지정학적 관점에서 모스크바는 상대적으로 러시아의 중앙부에 위치하여 상대적으로 몽골의 피해가 적었다. 두 번째로는 경제적인 원인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지리적 요인과 맞물리는 것으로 여러 강이 교차하는 지역에 위치한 모스크바는 교통이 발달하여 시장이 번성하였다. 세 번째로 유능한 통치자들이 계속 뒤를 이었고 넷째로 교회의 중심지가 되면서 교회의 지원을 받고 실질적인 러시아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4.제3로마론제3로마론의 주 내용은 이반 3세가 비잔틴의 마지막 황제인 콘스탄틴 팔레올로그의 조카딸 소피아 팔레올로그와 결혼하여 스스로를 비잔틴 황제의 계승자임을 칭하고 비잔틴 제국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의 깃발을 자신의 옥새의 도안으로 썼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모스크바 제3로마론은 독립국가의 표방, 대내적으로는 러시아 땅의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정을 헤쳐 나가는 데 이데올로기를 제공한 종교적인 이론이었다. 즉 루시가 중세를 넘기면서 중앙집권의 절대군주국가로 옮아가는데 결정적인 이데올로기를 제공한 이념이었다는 것이다. 이 이념을 주장한 이는 요십파의 한 사람인 필로페이였다.5. 교회의 분열로마노프 왕조, 알렉세이 짜리시대에 있었던 종교적인 분열을 ‘교회의 분열’이라고 한다. 이 사건은 1654년 총대주교 니꼰이 모든 교회서적을 그리스어 원본으로부터 다시 번역하고 예배의식도 통일 시키자고 하는 개혁안을 종교회의에서 받아들임으로부터 시작한다. 사제장 아바꿈을 대표로 한 구교도들은 개혁에 반대하고 일어나 자신들에게 익숙해져 있는 오래된 교회서와 의식들을 보존하고자 했다. 그러나 권력의 압박으로 인해 이들은 가혹한 박해를 당하게 된다. 당시 종교적 숙청으로 인해 큰 노동력 사실이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이들의 분열을 러시아 정부는 해결할 수 없었고 18세기에 이르러는 구교도의 존재권리를 인정하게 된다. 이리하여 러시아에서는 구교파와 니꼰 추종파라는 러시아 정교의 두 흐름이 형성되게 된다.6. 농노제와 농민봉기농민들의 자유가 억압당한 것은 이반3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반3세(1497)는 수제브니크라는 법령으로 11월 26일 유리의 날을 전후 15일로 농민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한다. 그 이후로 이반 4세(1540), 표도르 황제(1598) 등도 점점 농민의 자유를 구속하게 된다. 결국 1649년 로마노프 왕조 알렉세이 황제 시대에 이르러 울로제니에라는 번전에서는 농민이 죽을 때까지 주인에게 봉사하도록 하여 농민을 사유재산화 하였다. 농민에서 농노로 전락하게 되는 농노제를 제도적으로 확립한 것이다.이러한 농노제에 반발하여 반란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그 중에서도 중요한 3대 농민반란은 다음과 같다.?볼로뜨니꼬프의 농민 봉기-혼란의 시기에 일어났는데, 이 시기는 러시아의 중앙집권화와 러시아 정치의 성숙을 위한 과도기적 진통의 단계였다. 그 이전까지 비교적 자유로웠던 농민의 지위가 격감하여 농노제도가 확립되어간ㄴ 시기이기도 했다. 볼로뜨니꼬프의 봉기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의 산물이었으며 그간 직눌려있던 국민드르이 불만이 노예출신의 지도자인 볼로뜨니꼬프에 대한 기대와 함께 폭발한 사건이었다.?스쩨빤 라진의 농민 반란-짜리 알렉세이 시대에 일어났으며, 그 시대 제도적으로 농노제가 확립되면서 이에 대한 불만으로 까자크 출신의 지도자 스쩨반 라진에 의해 일어났다.?뿌가쵸프의 난-예까쩨리나 대제 시대에 일어났다. 귀족들의 권력 쟁탈을 위해 궁정혁명을 벌이던 이 시기는 예까쩨리나 대제가 귀족들을 병역의 의무와 국가 봉직의 의무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고 농노에 대한 지주들의 권한을 거의 무제한적으로 확대시키던 시기였다. 따라서 농민들에 대한 착취와 수탈이 많이 일어났고 인민들의 마음속에는 선량한 짜리(표트르3세)가 나타나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가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 뿌가쵸프의 난은 일어나고 결국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인민봉기의 결과로 여제는 절대주의와 농노제를 강화시키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게 되고 까자크 자치령을 모두 없앤다.
One-Third of US Diet Is Junk Food- 미국 식품 1/3이 정크 푸드 -WASHINGTON (Reuters) - Junk foods such as sugary sodas and chips make up nearly one-third of calories in the U.S. diet, researchers said on Tuesday (June 1)A study of 4,700 adults showed that, despite the increased popularity of low-carbohydrate diets, soft drinks and pastries pile on more calories in the daily diet than anything else."What is really alarming is the major contribution of 'empty calories' in the American diet," said Gladys Block, a professor of epidemiology and public health nutrition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who led the study.Writing in the June issue of the Journal of Food Chemistry and Analysis, Block and colleagues said that sweets and desserts, soft drinks and alcoholic beverages account for nearly 25 percent of all calories consumed by Americans.Salty snacks and fruit-flavored drinks add another five percent."We know people are eating a lot of junk food, but to have almost one-third of Americans' calories coming from those categories is a shocker. It's no wonder there's an obesity epidemic in this country," Block said in a statement.Block used data from a U.S. government survey called the National Health and Nutrition Examination Survey. She analyzed the answers of 4,760 adults interviewed in 1999 and 2000.They were asked to report all the foods they ate in the previous 24 hours.Sodas contributed 7.1 percent of the total calories eaten. Sweets topped the list, followed by hamburgers, pizza and potato chips."It's important to emphasize that sweets, desserts, snacks and alcohol are contributing calories without providing vitamins and minerals," said Block."In contrast, such healthy foods as vegetables and fruit make up only 10 percent of the caloric intake in the U.S. diet. A large proportion of Americans are undernourished in terms of vitamins and minerals," Block added."You can actually be obese and still be undernourished with regard to important nutrients. We shouldn't be telling people to eat less - we should be telling people to eat differently."WASHINGTON (Reuters) - Junk foods such as sugary sodas and chips make up nearly one-third of calories in the U.S. diet, researchers said on Tuesday (June 1).→설탕이 포함 된 소다와 칩 같은 정크푸드(불량식품)이 미국 식단의 열량의 거의 1/3정도를 차지한다고 연구자들은 화요일(6월 1일)에 밝혔다.A study of 4,700 adults showed that, despite the increased popularity of low-carbohydrate diets, soft drinks and pastries pile on more calories in the daily diet than anything else.→성인 4,700명을 대상으로 한 보고서에는, 저탄수화물 식단의 인기가 향상되었음 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청량 음료와 밀가루 음식이 일일 식단의 대부분의 열량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What is really alarming is the major contribution of 'empty calories' in the American diet," said Gladys Block, a professor of epidemiology and public health nutrition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who led the study.→이 연구를 이끈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 역병 및 공중보건영양 교수 Gladys Block은 “정말 놀라운 것은 미국인 식단의 주된 기여물이 ‘빈열량’이라는 것”이라 밝혔다.Writing in the June issue of the Journal of Food Chemistry and Analysis, Block and colleagues said that sweets and desserts, soft drinks and alcoholic beverages account for nearly 25 percent of all calories consumed by Americans.→식품의 화학과 분석이라는 잡지 6월호의 기고에서, Block교수와 동료(연구원)ef은 사탕류와 디저트, 청량 음료 및 주류가 미국인들이 섭취하는 총 열량의 거의 25%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Salty snacks and fruit-flavored drinks add another five percent.→짭짤한 스낵과 과일향 음료가 5%를 더 해주고 있다."We know people are eating a lot of junk food, but to have almost one-third of Americans' calories coming from those categories is a shocker. It's no wonder there's an obesity epidemic in this country," Block said in a statement.→성명에서 Block교수는 “우리는 사람들이 정크푸드를 많이 먹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와 같은 식품에서 미국인들이 취하는 열량의 거의 1/3 정도가 나온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미국에 비만 유행병이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Block used data from a U.S. government survey called the National Health and Nutrition Examination Survey. She analyzed the answers of 4,760 adults interviewed in 1999 and 2000.→Block교수는 한 미국 정부 조사에서 전국 보건 영향시험설문 이라고 불리는 설문에서 나온 데이터(정보)를 이용했다. Block교수는 1999년과 2000년에 인터뷰한 성인 4,760명의 응답을 분석했다.They were asked to report all the foods they ate in the previous 24 hours. Sodas contributed 7.1 percent of the total calories eaten. Sweets topped the list, followed by hamburgers, pizza and potato chips.→이들은 24시간 전 자신들이 먹은 모든 음식들을 말하기를 요구되었다. 소다 음료는 이들이 취한 총 열량에 7.1% 기여했으며 과자는 이 목록의 최고치를 이루었고, 햄버거, 피자, 감자칩 등의 순이었다."It's important to emphasize that sweets, desserts, snacks and alcohol are contributing calories without providing vitamins and minerals," said Block.→“사탕류, 디저트, 스낵 및 주류는 비타민과 무기물의 공급 없는 열량을 제공하고 있음을 강조해 주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Block교수는 밝혔다."In contrast, such healthy foods as vegetables and fruit make up only 10 percent of the caloric intake in the U.S. diet. A large proportion of Americans are undernourished in terms of vitamins and minerals," Block added.→“대조적으로 야채와 과일 같은 건강식품이 미국인의 식단에서 취하는 열량의 10%밖에 차지하지 않고 있다”라고 Block교수는 덧붙였다.
Ⅰ. 서론처음에 러시아에 관한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야할 지 매우 막막했었다. 수업시간에 했던 러시아 문학이나 정교에 관한 내용도 재미있었고 흥미로웠지만, 아무래도 발표를 했었던 러시아 역사에 관한 부분에 대해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었다. 한 나라의 천년이 훨씬 넘는 긴 역사 중에서 어떠한 부분에 대해 쓸까 고민하던 중, 노어 문법 시간에 교수님께서 러시아의 3대 농민혁명에 관해 말씀하신 것이 기억에 남아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제정 러시아를 뒷받침하고 있었던 것은 전제주의와 농노제라는 두 기둥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농노라는 개념이었다. 본론의 농민혁명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그들이 처했던 상황, 즉 농노라는 개념부터 먼저 서론에서 정리하고자 한다.농노는 농노주(農奴主)와의 관계에서 일컬어진 특정한 농민에 관한 역사적 호칭이다. 농노와 농노주와의 관계는 여러 지역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다. 농노는 인신(人身)이 하나의 물건으로서 예속된 노예와 비교하면 보다 자립적, 자유적 존재이지만, 일체의 전근대적 속박에서 해방된 독립 자영농민(自營農民)과 비교하면 자립성이 보다 낮으면서 부자유한 존재였다. 농노에게는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한 토지가 대여되어 자립적 농업경영이 허용되었으나, 그에 대한 보증으로서 농노주에 대한 인신상(人身上)의 예속관계가 수반되어, 노역(勞役)을 비롯한 현물 및 화폐의 공조(貢租)를 제공해야만 하였다. 특히, 농노주의 직영지(直營地) 경영에 노역을 바쳐야 하는 농민은 농노주에 대하여 강한 인신예속(人身隸屬)의 상태이어서, 좁은 의미로 보면 농노라고 할 수 있다.하여튼 일반적인 농노는 봉건사회의 농민에 관계되는 개념이지만, 사적특질(史的特質)에 대응해서 농노개념의 적용방법에서는 차이점이 생긴다. 이것을 대별하면, 다음과 같이, 법학적 영역과 경제학적 영역으로 정리할 수 있다.①법학적으로 중요시되는 것은 농노가 승려, 귀족, 평민과 더불어 봉건사회 신분 구성의 한 요소라는 점이며, 더욱이 고유한 인신적, 세습적的)인 '경제외적강제(經濟外的强制)'를 통하여 지배적 관계가 성립한다. 이러한 점에서 농노는 봉건적 농민과 같은 뜻이 된다.또 한정된 좁은 의미로서의 용어는 경제외적 강제가 노골적, 직접적인 형태로 행하여지는 경우는 농노로 보다 완화되어 관습화된 경우는 예농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대체로 노동지대(勞動地代)의 단계는 농노, 생산물 내지 화폐지대(貨弊地代)의 단계는 예농으로 볼 수 있다.본론에서는 3대 농민혁명, 첫 번째로 볼로뜨니코프( o o )의 난, 다음으로 유명한 스텐카 라진( )의 난, 마지막으로 푸카초프( )의 난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이 3대 농민혁명은 농노제라는 개념을 두고 벌어진 러시아 역사의 큰 사건들이다. 제정 러시아의 뒷받침이 되주는 농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농민들의 항쟁에 대해 알아보면서 그 당시 러시아가 처했던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Ⅱ.본론1. 볼로뜨니코프( o o )의 난 「1606∼1607」1497년 이반 3세는 한 법령을 발표한다. 이 법령에 의하면 농민들은 가을철인 '유리의 날'(11월 16일 : 성자 게오르기 유리의 날에서 기인함)을 전후하여 각각 1주일 동안 자기의 주인을 떠나 다른 주인을 찾거나, 아니면 봉건영주에게 속해 있지 않은 자유로운 땅으로 떠날 수 있었다. 이 때 농민들은 부역을 이행하고 소작료와 토지이용에 대한 '특별 경작세'를 지불해야 했는데 농민이 필요했던 봉건영주들은 이들을 대신하여 경작세를 지불 해 주었다. 그러자 이반 4세는 몇 해 동안을 '이동 금지 기간'으로 선포한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주인으로부터 도주하여 숲 속에 숨기도 하고 유그강이나 볼가강으로 또는 우랄산맥 너머로 떠나기도 했다. 돈, 쩨레끄, 꾸반, 야이끄강 등의 연안 지역에는 자유민 즉 까자끄인들의 정착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그리하여 1597년 모스끄바 정부는 5년 기한의 수색기간을 설정하여 만일 이 기간 동안에 발각되지 않으면 그 농민은 새 주인에게 남거나 혹은 자유인으로 간주되게 해 주 었다. 또한 바로 이 당시에 노예는 죽을의 도시에서 봉기의 물결이 일어났다. 쁘로고삐 랴뿌노프와 이스또마 빠쉬꼬프의 지휘 아래 뚤라와 랴잔의 귀족 부대까지도 볼로뜨니코프에게 가담하였다. 귀족들은 마음에 들지 않은 짜리 바실리 슈이스끼와 싸우는 데 봉기자들을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1606년 10월 볼로뜨니코프는 모스끄바로 접근하였다. 인민운동의 규모에 놀란 랴뿌노프와 빠쉬꼬프는 결정적인 순간에 부대를 이끌고 황실군 쪽으로 넘어가 버렸다. 전투는 꼴로멘스꼬예 마을 근처에서 3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봉기군은 분쇄되었고 포로로 붙잡힌 수천 명의 봉기자들은 바실리 슈이스끼의 명령에 따라 사살되었다.-------------------1) 이 사실에 대해서는 기연수,'러시아의 역사' -'고대 루시에서 볼쉐비끼 혁명까지' p.121남은 군대와 함께 볼로뜨니코프는 깔루가로 퇴각하였다. 그는 5개월 동안 깔루가를 방어하다가 식량과 탄약이 다 떨어졌다. 1607년 5월 그는 도시에서 나와 정부군의 포위망을 뚫고 뚤라로 왔다. 그곳에서는 일리야 고르차꼬프라는 자가 탈주 농민군을 이끌고 있었는데 그는 자신을 실제로는 있지도 않았던 표도르 황제의 아들 뾰뜨르 황태자라고 자처하였다. 바실리 슈이스끼는 약 15만명에 달하는 귀족군대를 모집할 수 있었고 1607년 6월에는 이들 군대로 뚤라 요새를 포위하였다. 슈이스끼가 지휘한 황실군은 4개월 이상 뚤라의 돌성벽을 향해 돌격을 감행하였다. 봉기군의 저항이 거세었으므로 슈이스끼는 뚤라를 가로지르는 우빠강에 둑을 건설하여 봉기군을 이겨내었다. 1607년 10월 봉기군은 항복했고 뾰뜨르 황태자를 지칭하던 자는 교수형을 당했고 이반 볼로뜨니꼬프는 북방으로 끌려가 두 눈을 잃은 채 얼음구덩이에 쳐박혀 죽었다. 이 밖에도 뚤라 방어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은 처형을 당하였다.후에 농민들의 봉기는 몇 해를 더해 간다. 곳곳에서 농민, 노예, 도시빈민들의 개별적 봉기가 일어났지만 가혹한 탄압의 철퇴 아래 점차 수그러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참패에도 불구하고 이반 볼로뜨니꼬프가 이끈 농민 전기한에 제한없이 무한정으로 도망간 농민들을 찾아 내 다시 데려올 수 있도록 허용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렇게 농노제가 강화되면서 많은 농민들이 자유를 찾아 까자끄의 세계로 들어왔다. 그리하여 16세기가 되면, 전에 유목민들이 지배하던 드네프르 강과 돈 강의 하류, 볼가 강의 중·하류 등지에 막강한 까자끄 집단이 형성된다(중앙 아시아의 까자끄 인과 어원·철자는 같으나, 여기서 말하는 까자끄는 민족개념을 가진 중앙 아시아의 까자끄 인과는 다르다).3)까자끄 집단에는 도망 농민 외에도 도망 노예, 범법자, 비러시아계 유목민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었다. 독립정신이 왕성한 까자끄들은 무엇보다도 자유를 중시했다. 까자끄가 모두 모이는 집회(크루크)에서 선거로 자신들의 수령(아타만)을 뽑았고, 자유를 찾아 도망 온 사람들은 관대히 받아들였으며, 교회 분열 후에는 분리파 정교를 승인했다.까자끄는 중앙 정부에게는 골칫거리였다. 정부는 이들에게 자치를 허용하고 물자를 제공하는 등, 여러 가지 특권을 부여하는 대신으로 전투와 국가 방위에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정-------------------------2) 인용, C.H 스이로프 저, 기연수 역 '러시아의 역사' P.1233) 이무열 지음 '러시아사 100장면' P.125부는 까자끄인들로 구성된 돈 까자끄군을 창설했던 것이다. 당시 돈 까자끄인들은 재산 관리를 잘하여 부를 축적한 상층 까자끄인들과 그렇지 못해 가난한 하층 까자끄인들로 갈라져 있었다. 부유한 상층 까자끄인들은 돈 까자끄군 내에서 모든 간부직을 차지했으며 하층 까자끄인들은 헐벗고 가난한 사람들로서 이들의 대부분은 돈강 지방으로 도망해 온 지 얼마 안되는 농민과 농예들이었다.러시아 역사에서 까자끄는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 시베리아 개척의 선두에 선 것도, 동란 시대에 볼로트니코프 반란군의 주력부대가 된 것도, 우크라이나 독립전쟁의 주역도 모두 이들 카자흐였다. 그 뒤를 이어 까자끄 역사의 최대 영웅이 등장하게 되니, 이가 스텐카 라진이다.'스텐카'라는 애칭으로 우년 3월 페르시아로 향한다. 무리는 카스피해의 서쪽 해안에 자리잡은 제르벤뜨와 그 밖의 여러 도시들을 황폐화시키고 노예시장을 파괴하여 수천 명의 노예들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당시 직접 라진을 보았던 네덜란드인 스뜨레이쓰는 라진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고 전해진다.그는 위엄있는 모습에, 고상하고 점잖은 태도 그리고 큰 키에 당당한 얼굴표정을 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사람들에게 공포와 사랑을 동시에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가 내린 명령은 무엇이든지 지체없이 수행되었다.4)1670년 라진은 2만의 군대를 이끌고 모스끄바로 향한다. 그가 행동을 개시하자 농민과 하층 도시민이 그에게 모여들었고 수비대 병사들도 그의 편이 됐다. 라진은 돈 강을 거슬러올라가 차리친(볼고그라드)을 손에 넣은 뒤 그곳에 본영을 설치했다. 볼가 하구의 아스트라한은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그의 것이 돼 있었다. 이어 사라토프와 사마라가 이 까자끄 영웅에게 성문을 열어주었다. 러시아의 지배자들에게 자기네 땅을 빼앗긴 바슈키르, 추바슈, 마리, 모르드바 등의 소수민족들도 그에 호응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러시아 중앙부의 오카 강 유역에서도 학살과 약탈이 광범하게 행해졌다. 저 멀리 백해 연안의 솔로베츠키 수도원도 호응했다.라진은 볼가 중류의 심비르스크를 포위하고 군대를 여러 갈래로 나누어 모스끄바로 진격해갔다. 당시 20만에 이른 반란군은 돈 까자끄 부대를 제외하고는 사실 오합지졸이었다. 그에 반해 정부군은 좋은 무기와 잘 훈련된 부대들을 갖고 있었다. 개중에는 서유럽 사관들에게--------------------------4) '러시아의 역사' P.135 인용최신식 훈련을 받은 부대도 있었다. 이윽고 정부군의 반격이 시작됐고, 정부군은 카잔을 거쳐 심비르스크로 공격해왔다. 라진의 군대는 참패를 당하고 차리친의 본영으로 철수했다. 이윽고 상층 까자끄의 배신으로 1671년 4월 그는 체포당했다.라진은 그의 아우 프롤과 함께 모스끄바로 압송돼 붉은 광장에 던져졌다. 그리고 뼈를.
☆'신식의사 산촌에 오다'를 읽고...☆사회봉사에 관련된 책을 읽으라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많이 고민했었다. 그러다 집에 있는 책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여러 유명 인사들이 자신이 체험한 것에 대해 쓴 책들도 있었고 자신들의 봉사체험에 관한 수기들도 있었다. 살피던 중, '신식의사 산촌에 오다'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어렸을 때,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 왔었다. 지금은 물론 의대생의 길을 걷고 있지 않다. 하지만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내가 의사가 된다면 '국경없는 의사들의 모임'같은 봉사모임에 들어가 일을 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네팔의 산악지대에서 12년동안 봉사하고 온 의료선교사의 이야기가 끌린 것 같다.봉사활동이란 사회문제의 예방 및 해결을 하고 공사의 공식조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영리적 반대급부를 받지 않고서도 인간존중의 정신과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낯선 타인들을 상대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사회의 공동선을 높이고 동시에 각 개인의 이타심의 표현을 통해 자기실현을 성취해 나갈 수 있다. 이 책에서는 12년동안 의료선교사가 네팔에서 겪은 이야기와 그 봉사활동 과정 속에서 느껴가는 자아실현의 과정을 읽을 수 있었다.아내, 두 아들과 함께 1970년 카트만두(Kathmandu)에 토마스 헤일 선교사는 도착했다. 네팔 국왕의 영접은 고사하고 그들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200만 명이 사는 네팔(Nepal)에 제대로 수련 받은 외과, 소아과 전문의가 없는데 그들과 같은 의사가 왔으니 네팔 사람들은 행운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 그런 마음은 의료 선교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나쁜 태도 중에 하나였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봉사교육을 받을 때, 그러한 눈꼽만큼의 우월감도 벽이 되어 현지 주민들이 봉사자들의 우애와 선의를 거부하게 될 것이라고 여러 번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 저자는 깊게 숨겨진 우월감들-그들은 중요한 사람이고, 교육을 잘 받았고, 주민들에게 줄 것이 많다-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그러나 점점 그곳 생활 중에서 그들의 한계를 발견하고 네팔의 아름다운 경치뿐 아니라 현지인들의 좋은 특성과 능력을 이해한 후, 행운을 잡은 것은 그곳에 가게 된 바로 자신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그들이 12년동안 네팔에서 겪은 슬픔과 기쁨, 성공과 실패 및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내내 산악 지역에서 살았고, 그들이 만난 네팔인들은 거의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허세를 부리지도 않고, 오래 전통을 존중하며 그저 생존하기 위해 투쟁하는 보통사람들이었다.선교사 가족은 앰피팔이라는 곳에 머물게 되는데, 처음에 그곳에서 위와 같은 네팔인들과 생활하면서 갖가지 도전적인 상황들에 대처하게 된다. 소위 '문화 충격'을 겪게 되는데, 외국의 풍습, 음식, 위생관념등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을 때 겪는 어려움이다.저자의 '문화 충격' 에 관한 저술 부분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 중에 하나였다.'염소들이 당신의 비파나무 열매를 먹는다고 화낸 경험이 있는가? 꼬리 모양이 동그란 고양이에게 화낸 적이 있는가? 5센트 값의 파인애플을 위해 6센트의 노력을 해본 경험이 있는가? 저녁 식사에 초대한 손님이 오셨는데 2000마리의 개미가 벽에서 기어나와 소란 피우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우유를 취급하는 사람이 우유에다 물을 붓는다고 해고시킨 적이 있는가? 당근을 잡초로 알고 송두리째 뽑아내는 정원사에게 소리쳐 본 경험이 있는가? 당신의 "장모"님을 바구니 같은 데 담아서 10km산 위에까지 모셔왔다고 50센트를 더 달라는 짐꾼에게 화낸 적이 있는가? 이런 일들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하고 싶으면 네팔에 오십시오.'그가 가서 겪었을 체험들이 잘 느껴졌다. 성공적인 해외 의료 봉사는 문화에 어느 정도 동화되며, 자신들의 편견과 기존의 태도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다.선교 봉사를 갔는데 왠 정원사나 요리사를 고용한 얘기가 나오는 지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네팔 산지에서는 모든 것을-빵 굽는 것, 양념 가루 만드는 것-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 끼를 먹으려면 하루 종일 부엌에서 살아야 할 정도라고 한다. 냉동식품이나 인스턴트 식품이 없고 컵 라면 같은 것도 없고 정육점도 없다고 한다. 산지이니 가게라는 자체가 없느게 당연할 지도 모른다. 식초, 오이 절임, 마요네즈, 잼 같은 것들이 요리사의 솜씨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요리사가 이런 일을 해 주지 않았으면 토마스 선교사의 아내, 신시아 선교사는 환자 치료는 고사하고 집 밖을 벗어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현대 의학적 지식에 구애받지 않는 보통 네팔인들은 영양 문제, 대변 처리, 수질 오염 및 일반적인 청결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질병은 악령이나 귀신들에 의해 걸리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뇌막염이나 파상풍 및 간질같이 특별히 신경 계통을 침범하는 경우에는 과학적인 설명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훨씬 더 신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결과 네팔 사람들은 질병에 걸리면 악령을 달래거나 쫓아내기 위해서 무당이나 승려를 찾아가서 제사를 지내고 회복을 위해 값비싼 굿판을 벌인다고 한다. 좀 깨우친 사람들 일부가 증상이 있을 때 병원을 찾지만 몇 가지 질병에 국한된다.현대 의학을 점차 많이 받아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병원보다 마을에 있는 "치료자"들을 더 믿는 실정이라 한다. 우리나라 무당 같은 사람들인 것 같다. 마을의 승려는 건강뿐 아니라 다른 문제에 있어서도 최종적인 권위를 가진다고 한다. 어느 사회나 부패가 있듯이 그들의 조그마한 산지 마을에서도 "마을 치료자"들은 그들의 환자로부터 많은 대가를 챙긴다고 한다. 사람들이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에 도착할 정도니, 현대의학에 대해서 많이 계몽할 임무를 토마스 선교사는 가지고 있었다.또한 그들은 영리를 추구하는 병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재정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한정이 되어 있었고 도와 줄 사람은 많았기 때문에 의료봉사를 하면서 그 문제는 큰 골치거리였다고 한다.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얘기는 찬드라 바하두르(Chandra Bahadur)라는 사람의 이야기 였다. 그는 1년에 한, 두 번 정도씩 간질을 알았는데 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잎사귀를 끎어 내리던 중 간질 발작으로 인해 떨어져 척추 신경에 손상을 입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네팔에서는 걷지 못하면 생존 할 수 없는 곳인데 그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