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열풍-일본 ‘겨울연가’를 중심으로서론. 한류열풍의 시작과 일본상륙한류 열풍이란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을 위시하여 대만, 홍콩, 베트남 등의 주민, 특히 청소년 사이에서 번지고 있는 가요, 드라마, 패션, 관광, 영화 등 한국 대중문화를 향유?소비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러한 한류 열풍은 1998년 중국에서 H.O.T, 안재욱, NRG의 음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시작으로 현재 일본에서의 드라마 겨울연가의 남자주인공 배용준의 ‘욘사마’ 열풍까지 대단한 속도로 이어져 오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미 90년대부터 이어져온 중국의 한류열풍이 아니라 일본에서의 한류열풍이다. 한류는 90년대부터 동아시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었지만 일본에는 21세기에 들어서도 좀처럼 상륙하지 못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일본 속에 한국문화가 존재하기도 했었지만 이는 식민지 이후의 문화적?정치적 풍경이었다. 즉 식민지적 상상력의 구속에서 벗어나 우리한국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았다.이러한 상황속에 일본에서 새로운 한국문화로서 주목받은 것은 영화였다. 125만명을 동원한 쉬리에 이어 공동경비구역JSA, 엽기적인 그녀가 잇따라 성공했고, 지금은 연간 수십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월드컵 공동개최로 형성된 우호분위기도 이러한 움직임에 박차를 가했다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집중적으로 다룰 겨울연가가 2003년 4월에 NHK의 위성방송채널에서 처음으로 방영되었다. 첫 방송 이후 NHK는 잇따른 재방송 요청에 따라 그해 12월에는 위성방송에서 2차방영을 했고, 작년 4월에는 공중파에서도 방송했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20%를 넘어섰고, 이때부터 ‘후유소나(겨울연가) 씬드롬’이라는 사회현상이 생기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붐이 중년여성층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배용준의 일본방문 때 나리따 공항에 모여든 팬들은 ‘오빠부대’가 아니었다. 이는 중국이나 대만, 홍콩에서 불고 있는 한류현상과 매우 다른 모습이다.본론 1. 일본의 한류열풍이 중국과 다른 점중국에서의 한류는 젊은층의 문화로서 받아들여져 현대적인 것의 상징처럼 보인다. 1990년대 초반의 드라마를 빼면 중국에서의 한류는 대중음악 중에서도 댄스음악, 멋진 배우들의 연애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트랜디’ 드라마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소비층은 대부분 중국, 대만 등의 젊은층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일본에서 한류에 열광하는 층은 주로 중년여성들이다. 이러한 차이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중국과 일본의 한류 열풍의 차이점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것은 근대화론적 발전단계설인데, 중국이 한국의 70년대라면 한국은 일본의 70년대라는 설명이다. 겨울연가의 스토리는 일본의 ‘70년대 소녀만화’ 같고, 주연배우는 ‘왕년의 일본배우’를 연상시켜 그 시절을 보낸 일본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긴 하지만 이 논리에는 몇가지 모순이 있다. 겨울연가가 왜 중년남성들에게는 중년여성들에게서 만큼의 인기가 없으며 일본의 옛날 드라마의 재방송은 왜 겨울연가만큼 인기를 얻지 못하며, 적어도 패션이나 생활감각에서 지금의 일본인과 크게 다르지 않는 한류스타를 보고 왜 열기가 금방 식어버리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겨울연가의 시청률이 높게 나타는 원인은 의외로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원래 NHK 위성방송은 별도의 수신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안정된 중년층 이상에서 시청률이 높다. 게다가 밤 10시에서 11시 이후의 시간대에 방송되었다. 따라서 중년여성층이「겨울연가」에 노출되어 이를 주목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우연이었다. 그 결과 그들은 계속되는 재방송의 시청자가 되어 유행을 주도하는 집단으로 부상한 셈이다. 이는 일본 여성들의 취향이 생산재 남성에서 소비재 여성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일본은 2차대전 패전 후의 사회개혁으로 남녀평등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사회제도에서도 남녀불평등은 상당히 해소되었지만, 군국주의나 경제의 고도성장과 결합된 근대의 가부장주의는 여전히 일본문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동안 소외되었던 그들이 현실의 억압에서 자유로워져 유행과 소비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겨울연가의 성공을 끄집어내기가 어렵다. 위의 일본여성의 해방은 일본여성이 유행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지 겨울연가가 왜 일본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겨울연가의 인기요인은 드라마 속에서 도출해 낼 수 있다.본론 2. 겨울연가의 인기비결첫째는 드라마속 한국 남성의 이미지이다. 드라마속에서 배용준은 멋진 외모와 함께 매우다정다감하고 인간미 넘치는 인물로 묘사된다. 사람들 간에 얽히는 장면이 흔한 한국 드라마 속에서 인간미가 흠뻑 느껴지는 한국 나자 배우들을 보면서 일본 여성들이 생동감과 삶의 희망을 느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일본 여성이 한국에 시집와 겪는 생활 에피소드를 다룬 만화 에세이 ‘새댁 요코짱의 한국살이’를 올해 펴낸 다가미 요코(32)는 한 살 연하인 한국인 남편과 2001년 결혼했다. 그녀는 한국 남성의 경쟁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직설적 애정 표현과 유머 감각이 여성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고 말한다. 일본 여성이 꼽는 한국 남성의 경쟁력은 이처럼 일반적으로 알려진 전통 가부장 사회의 무뚝뚝하고 남성 우위인 한국 남성상과는 많이 빗겨나 있다. ‘욘사마’가 대중문화에서 제조된 이미지라 하더라도, 실제 한국 남성들도 부드럽고 서구화된 매너를 갖추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둘째는 드라마속의 범지국적인 문화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인 이민형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강준상의 정체성을 되찾게 하는 과정이라든지 엔딩신에서 해변가의 이름 모를 저택은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나 심성이 아닌 혼성성이 존재하는 장면들이다. 또한 극중 여주인공인 정유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에 옮기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초국가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즉, 겨울연가에 나타나는 범지구적인 문화가 비록 다른나라의 이야기이지만 일본여성들에게 큰 거부감 없이 작용하도록 한 것이다.본론 3. 성과그렇다면 겨울연가와 같은 한류열풍이 일본에서 거두어들인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일까? 결론적으로는 ‘한국이 변했다’ 는 것이다. 이전의 일본에서의 한국이미지를 살펴본다면 쉽게 그 이유에 다가설 수 있다. 과거의 한국 이미지는 유교나 데모 그리고 남존여비로 상징되며 부정적이고 어두웠다. 한국인의 이미지는 일본사람들에게 ‘성난 얼굴의 조센징’ 이었던 것이다. 일본에서의 성난 조선인은 반일의 상징이기도 했다. 물론 반일이란 일본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지배와 군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미화화려는 세력에 대한 비판을 의미한다. 이러한 반일의 얼굴이야말로 늘 화를 내고 있는 조센징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성난 조센징이 부드럽고 온화한 조센징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해왔고, 그러한 변화가 한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며, 좀처럼 성난 얼굴을 풀지 않는 모습에 대해서는 한국 민족주의의 병이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렇지만 일련의 한류 열풍으로 부드럽고 로맨틱한 남성, 그리고 역동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긍정적으로 변한 것은 영화 ‘쉬리’와 ‘가을동화’ ‘겨울연가’ 같은 드라마의 인기, 그리고 월드컵 대회 기간 중 ‘붉은 악마’ 응원을 통해 드러난 한국 젊은이들의 거침없는 에너지라는 것이 일본 현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일본 마이니치(每日) 신문 기타무라 마사토(北村正任) 사장은 2002년 월드컵 대회 직후 “한국인의 생생한 얼굴표정이 일본인들의 안방에 전달됐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한국 관련 뉴스라면 데모하는 광경, 대형 사고로 통곡하는 장면만을 봐온 일본인들에게는 한국인들이 밝게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변화였다는 것이다.“그동안 일본인들은 한국을 아예 ‘없는 나라’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한류를 통해 미국과 같은 ‘보통 외국’ 취급을 하게 된 거예요. 앞으로도 한국에 대한 인식은 더 좋아질 것입니다.” 1983년 배구선수 강만수의 팬으로 한국을 좋아하게 되면서 20년간 한류 전파에 힘써온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黑田福美)씨의 말이다.이와 같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포지티브한 이미지’는 일반 사회로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다. “이영애가 말을 하면 한국어도 멋진 불어처럼 들린다(과장급 공무원)”에서 한발 더 나가 “배용준이 말하는 한국어의 울림이 그렇게 멋질 수 없다(아나운서)”는 데 까지 발전했고, “복도를 걷다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한국어로 인사를 받았다”, “업무로 방문한 곳에서 한국 드라마가 화제로 나오는 바람에 붙잡혀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일본주재 한국인들이 요즘 한 두번은 겪어보는 반가운 경험이다. ‘성난 얼굴의 조센징이 로맨틱한 욘사마로’ 라는 특집기사(조선일보 2004년 11월 9일자) 제목은 이러한 변화를 날카롭게 뽑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의 물결이 지난 60년간 부정적으로 고착되어왔던 한·일 두 나라의 상대방 이해에 새로운 전기를 불러오고 있다.
라면의 유래중국 유래설 중국음식인 건면에서 유래일본 자체개발설 모방없이 자체개발 했다는 주장중국에서 기원,일본에서 상품화 시켰다고 보는것이 바람직라면 역사삼양식품 우지사건으로 중단되었던 '삼양라면'을 재출시1994. 1.삼양식품, 오뚜기식품 등 우지사건 겪음1989. 11.오뚜기 사업참여1987대법원 우지사건 무죄판결1997. 8.26.빙그레 사업참여1986한국야쿠르트 사업참여1983삼양식품 국내 최초의 용기면인 '컵라면' 생산1972. 3. 7.라면 유해론 시비, 국립보건원 실험결과 무해한 것으로 판명1970.11.롯데공업주식회사(현 '농심') '롯데라면' 생산1965. 9.삼양식품 국내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을 생산1963. 9.15.성공요인기업의지와 정부지원식량부족,절대빈곤 해소국민소득 향상50-7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레저생활 증가간편한 조리맛과 가격얼큰한 맛과 저렴한 가격방대한 시장형성세대별 종류제1,2세대 면과 달리 기름에 튀기지 않고 면을 숙성시키고 살균시킨 수분함량 60% 수준인 자연 지향적 차세대 라면즉석면류 중 1회용 용기에 면을 넣어 별첨스프 또는 여타의 양념을 첨부한 것기름에 튀긴 면으로 일반적인 라면용기면제 2세대 라면(1982~)생면제 3세대 라면(1994~)유탕면제 1세대 라면(1963~)영양 성분1. 칼로리 충분 - 450-500kcal 2. 비타민과 광물질 부족 -부식으로 보충 3. 높은 지방함량 - 체중 증가 우려특 징1식 기준라면 상식⊙ 라면 때문에 얼굴이 붓는다? – 자기 전 물 섭취 때문 ⊙ 라면이 꼬불꼬불한 이유? – 단위면적 늘려 시간적 이득, 잘 부서지지 않음 ⊙ 라면 한개의 길이는? – 50-60미터 ⊙ 컵라면이 잘 익는 이유는? - 감자전분이 들었기 때문▸ 농심라면 ▸ 1975년 1월 방영 ▸ 곽규석 / 구봉서 출연라면 광고라면과 인물◎ 박병구 할아버지 강원도 화천군(69세) 마흔살 정도에 장협착증 발병 특이 체질로 라면은 몸에 잘맞음 그 후로 30여년간 라면을 주식 하루에 4-5개, 총 45000여개 라면의 안전성과 영양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심{nameOfApplication=Show}
매스 미디어 효과 이론과 그 사례1. 프라이밍매스 미디어 효과 이론 중 하나인 프라이밍은 매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노출이 수용자들의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관련된 사고를 활성화할 때 발생한다. 미디어 메시지 내용은 관련된 개념, 사고, 학습 혹은 과거에 습득된 지식을 자극하여 그것이 상기시키는 관련된 사고 및 개념들에 의해 연결, 연관 혹은 강화된다.최근 TV 프로그램에 등장한 범죄수법을 모방하여 교회 헌금함을 상습적으로 턴 원모씨(30)에 대해 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2004.11.10)되었다. 원씨는 한 사찰의 불전함을 터는 모 방송사의 범죄 재연 프로그램을 보고 수법을 착안해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례는 위에서 말한 프라이밍 활성화가 한 사람의 행위에까지 영향을 미쳐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반응하도록 할 수 있으며, 그로인해 모방범죄와 같은 극단적이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이 뿐만 아니라 미디어 폭력에 대한 노출로 인한 프라이밍 효과도 실생활에서 적용될 수 있다. 인기를 끌고 있는 온라인 게임 ‘리니지 2’ 가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결정되어 그동안 18세 이상이면 즐길 수 있었으나 앞으로 19세 이상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제작사인 ㈜엔씨소프트가 “온라인게임 ‘리니지2’를 19세 이상만 이용하도록 한 것은 부당하다”며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상대로 청소년 유해 매체물 결정 취소소송을 냈지만 원고의 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청소년은 이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템을 얻기 위해 상대방을 속여서 죽인다는 상황에 반복 노출돼 정서에 악영향을 받고 배금주의에 익숙해질 우려가 있다”며 “이 게임에서 상대방 게임이용자를 집단 대량 살상할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 게임은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형성을 저해하는 반사회·비윤리적 매체로 판단 된다” 고 밝혔다.위의 사례는 폭력적인 게임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게임에 익숙해질수록 공격적으로 프라임 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 판례라 할 수 있다.2. 이용과 충족이용과 충족 이론은 수용자들 사이의 개인적 차이가 각 사람들로 하여금 각기 다른 메시지를 추구하게 하고, 그러한 메시지를 다르게 이용하게 하며 또한 그러한 메시지에 대해 다르게 반응하게 만든다고 가정한다. 이용과 충족 연구는 언제나 시청자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프로그램이나 다른 미디어내용을 선택한다고 가정한다.드라마 최초로 `전회 19세 이상 시청가` 를 적용해 시작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SBS 금요드라마 은 부부 사이의 은밀하지만 보편적인 관심사인 성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 심야 주부 시청자 층에 특히 공감을 얻고 있다고 한다. 심각한 부부간의 갈등(외도 등)을 세 명의 여자들이 합심해서 벌이는 좌충우돌 식 문제해결 이야기에 중장년층의 주부들이 대리만족을 느끼고 응어리진 한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TNS 미디어 코리아에 따르면 의 전체 시청률 중 50대 이상 여성이 8.7%로 가장 높게 집계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주 시청자 층의 연령대를 반영하듯 홈페이지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많은 글이 올라오진 않지만, 자신의 부부관계에 대해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는 주부들의 게시물들이 눈길을 끈다.위의 사례는 이용과 충족 연구의 주요 초점인 개인적 수준의 미디어이용과 효과를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모델 중 충족-추구 및 수용자 능동성 모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델은 시청자들의 태도 뿐 아니라 시청자들이 추구하는 특정한 충족의 종류가 그러한 메시지의 내용에 대한 시청자들의 주목을 결정한다는 것이다.어떤 부부든, 어떤 가정이든,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그것 때문에 크고 작은 충돌을 겪어 봤을 것이다. 그러한 점을 여성편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해나가고 해결해 나간다는 점에서 남성보다는 여성이, 여성 중에서도 미혼보다는 기혼여성이 이라는 프로그램을 더 즐겨 찾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 일지도 모른다.3. 설득한국에이즈퇴치연맹은 지난 10월초부터 에이즈 예방을 위해 콘돔 사용을 권장하는 텔레비전 공익광고를 시작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와 콘돔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시청자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작했다”고 밝혔다.과연 질병관리본부의 말마따나 시청자들이 이번 광고를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이 광고를 통해 콘돔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고 콘돔 구매 시 거부감을 없애는 데 일조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광고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데 실패했다. 동국대 광고학과 조형오 교수 또한 “콘돔으로 에이즈를 예방한다는 광고 메시지는 확실하지만 설득력 있는 메시지 전달은 아니다”면서 “에이즈와 콘돔에 대한 공중의 인식단계를 사전에 조사했는지 의문”이라며 아쉬움을 보였다. 설득 모델 중 정교화 가능성 모델(이하 ELM)은 사람들이 어떤 설득 메시지를 인지적으로 정교화하거나 매우 신중히 생각할 가능성을 밝힘으로써 설득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광고에서 많이 이용된다. 이 모델에는 중심경로와 주변경로라는 두 가지 개념이 사용된다. 중심경로는 수용자 측의 상당한 인지적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고 이에 반해 주변 경로는 단순 자극신호나 전문가의 이용, 밴드웨건 효과처럼 덜 인지적인 것이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도 에이즈 환자들이 많이 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그의 심각성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에이즈와 콘돔에 관한 광고는 대중들의 큰 시선을 끌지는 못하므로 정교화 가능성이 낮거나 중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정교화 가능성이 감소할 때는 설득 과정에서 설득에 이르는 주변 경로가 중요해진다. 이에 적용할 때 앞에서 말한 콘돔 공익 광고는 주변 경로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고 볼 수 없다.
Marcel Duchamp [뒤샹, 1887.28~1968.10.2]목 차뒤샹의 일대기 뒤샹과 예술 -다다이즘/Ready-Made 뒤샹의 주요작품 미술사적 의의뒤샹의 일대기1887 7월 28일 프랑스의 작은 마을 블랭빌 출생 1902년 인상파 풍의 풍경화 그림 [블랭빌의 교회] 1905년 줄리앙 아카데미입학, 병역위해 자퇴. 1910년까지 신인상주의,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초상화와 풍경화 그림 -사과밭의 빨간 집/1908 등 1910년 퓌토그룹 통해 입체주의 원칙 받아들임 1912년[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2]앙데팡당전에 출품 1913년 아모리 쇼에 [계단을내려가는 누드]등 4점을 출품 1914년 [큰유리]를 위한 습작(초콜릿 분쇄기, 정지들의 네트워크 등). 레디 메이드 [병걸이] 1915년 6월 15일 뉴욕에 도착. 〈큰 유리〉제작에 착수. 1916년〈독립 예술가 협회〉창립에 협력.1917년 독립 예술가 협회전에 레디메이드 《샘》출품 거절 당함 로세, 아렌스버그와 잡지 [Rong Wrong] 을 출판. 1918년 최후의 유채화 《Tu m》그림 8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다. 10월, 형 레이몽 전사. 1919년 체스에 열중. 파리의 다다 그룹과 접촉. 레디 메이드《L·H·O·O·Q》를 제작. 1920년 캐서린, 만 레이와 함께 〈무명사회〉을 창립 마샬 체스 클럽에 입회. 1921년 만 레이와 《뉴욕 다다》지를 출판. 1923년〈큰 유리〉의 제작을 미완인 채 중단하고 서명 점점 더 체스에 열중. 1925년 1월에 모친, 2월에 부친 사망. 《회전 반구》를 완성. 1926년 [아네미크 시네마]를 만레이와 함께 제작.[큰 유리]전시. 1927년 6월, 리디에 사라징 레바소르와 결혼. 이듬해 1월에 이혼. 1935년 《회전하는 유리판》을 제작. 1936년 5월, 깨어진 〈커다란 유리〉를 복구시키기 위해 뉴욕으로 가다. 여름, 미국 횡단 여행. 가을에 귀국.1937년 시카고에서 첫 개인전. 1938년 파리의 〈국제 쉬르레알리슴전〉에 조직 위원으로 참가. 1942년 뉴욕의 초현실주의전시회 기획 1946년 《(1)폭포》에 착수. 1947년 [1947년의 쉬르레알리슴]전(파리)의 카달로그 표지를 제작. 미국 시민권을 신청(55년에 획득. 귀화). 1949년 샌프란시스코 근대 미술관에서 현대 예술 원탁 회의에 참석. 1954년 1월 16일, 알렉시나(티니) 사트라와 결혼. 1957년 미국 예술 연맹의 집회에서 〈창조적 행위〉에 대해 강연. 1963년 6월에 형 자크 비용, 9월에 누이동생 수잔느 사망. 파사데나 미술관에서 대회고전, 거장으로서의 명성 확립. 1965년 〈큰 유리〉세부의 에칭 9점을 제작. 1966년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에서 대회고전, 런던을 방문. [(1)폭포, (2)조명용 가스가 주어진다면]을 완성. 1967년 [(1폭포]의 분해와 재구성을 위한 노트. 1968년 케이지와 커닝햄의 작업에 협력. 10월 2일, 파리 체재 중에 뉠리에서 사망뒤샹과 예술-다다이즘- 1. 배경 -전쟁을 피해 스위스 취리히에 모여든 젊은 예술가들 주축 -전통적인 문명 부정. 기성의 사회적, 도덕적 속박에서 탈출 -파괴정신으로 대표되는「다다」를 탄생 2. 특징 -선택성, 우연성, 관념성 -미술형식을 부정하기 위한 의도 -기존의 도덕적 또는 심미적 가치가 전쟁으로 인한 무의미 인식 -도발적인 것, 파렴치한 행위들로 이어지는 우연성 -기성의 권위와 조형 이론을 무시한 반문명, 비합리적인 예술 운동2. 다다의 전개 -취리히다다(1916~1919) -뉴욕다다(1915~1920) :마르셀 뒤샹과 피카비아가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시작. 'ready made'나 반 미학사상이 중요한 특징. 미국 현대미술에 큰 영향. 뒤샹,피가비아,만레이 -독일다다(1918~1923) -파리다다(1919~1922)-Ready Made-:도기로된 남성용 서변기에 자신의 싸인을 넣고 [레디메이드] 라는 제목을 붙여 전람회에 출품함으로써 일반화된 명칭 무관심 미학 : 선택은 완전한 무감각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 -감각적인 것을 배제하고 지적인 사고과정 중시 Prime Word : 뒤샹은 언어조차도 레디메이드로 인식 -언어 또한 그의 선택과 배열에 따라 또 하나의 작품으로서 의미를 갖게 되는것 : [L.H.O.O.Q] 관람자-해석가의 존재가 아닌 창조자의 일원 폭넓은 인식의 자유와 능동성의 기반 제공 20세기 서구미술에 큰 영향-팝아트, 개념미술에 도입뒤샹의 주요작품1. 초기의 습작 시대 2. 기계의 이미지를 도입한 회화 시대 3. 대형 유리판 그림시대 4. 레디 메이드에 의한 오브제 시대 5. 기타1. 초기의 습작 시대[예술가 아버지의 초상] 1910[의사 두무세의 초상] 1910[봄의 청년과 소녀] 1911[초상 둘시네아] 19112. 기계의 이미지를 도입한 회화 시대[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2] 1912 1월[처녀로부터 신부에 이르는 길] 1912년 7~8월[신부] 1912년 8월[초콜릿 분쇄기 No.2] 19143. 대형 유리판 그림시대[큰유리] 1915~19234123*****####4. 레디 메이드에 의한 오브제 시대[자전거 바퀴] 1913[병걸이] 1914[에나멜을 칠한 아폴리네르] 1916~1917[샘] 1917[L.H.O.O.Q] 1919[몬테카를로 차용증서] 1924, 사진 콜라주5. 기타[텀] 1918'초현실주의의 첫 서류들' 전시장면 1942[주어진 것 : 1.폭포 2. 조명용 가스…] 1946~1966미술사적 의의-미술의 형태를 변화시키기보다는 미술 개념 자체에 혁신을 가져옴. -모더니즘의 권위주의 미학(남성다움)을 배척하고 미술과 인생의 장벽을 붕괴시킴. -미국의 팝아트에 영향을 끼쳤고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네오다다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의 거대한 창시자가 되었음.-The End-{nameOfApplication=Show}
국가 보안법에 관한 보고서1. 서론최근 송두율 교수{) http://100.naver.com/100.php?id=771812가 올해 7월 21일 집행유예로 석방된 것을 두고 몇몇 보수언론들이 강한 유감을 표시한 데 이어, 여러 보수단체들은 송 교수 체포조를 결성하겠다는 식의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히기까지 했다. 이런 송두율 교수의 석방은 해묵은 색깔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국가보안법 폐지논쟁으로까지 이어져 정치계의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송두율 교수 석방 다음날인 7월 22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열린우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움직임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나왔다. 박 대표는 그날 열린 당 운영위원회의에서 ■■운영상의 문제가 있는 몇 가지를 개정할 수는 있지만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민들도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원하지 않고 있다■■며 ■■국가보안법이 갖는 상징마저 무장해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보안법이란 대체 무엇이며 그가 가지는 상징이란 무엇일까?국가보안법은 1948년 11월 발생한 여순 사건을 계기로 남한의 좌익세력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서둘러 제헌의회에서 제정되어 1948년 12월 1일 공포, 시행되었다. 이는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지 4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기이다.국가보안법 전문 중 1조에는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서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모체로 구성되었고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반공, 반통일, 반민중적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 후 정권의 독재강화로 국가보안법은 지금까지 확대, 강화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면 국가보안법에 대한 존폐론의 입장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자.2. 본론 1 국가보안법 폐지론자의 입장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요 요지는 크게 여덟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첫째 국가보안법은 헌법과의 관계에서 위헌적이다. 헌법은 국가의 최고법이자 기본법이고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국가권력의 체계 및 그 통제를 규정하는 법이다. 따라서 모든 법 질서는 헌법에 그 정당성의 기초를 두고 있으며 헌법이 정하고 선언하고 있는 가치를 침범할 수 없다. 그러나 유독 국가보안법은 이와 같은 법률의 위계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헌법 위에 군림해왔다고 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우선 범죄와 형벌을 미리 법률로 규정하여야 한다는 근대형법의 기본원리인 죄형법정주의를 부정하고 권력자가 마음대로 범죄와 형법을 전단하는 죄형전단주의로 한국의 법을 전락시켰다. 죄형법정주의의 근본적 의의는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승인되는 국가권력의 자기제한으로 어떤 경우에도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철칙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의 대부분의 조문은 매우 모호하고 불명확한 개념으로 구성되어 광범위하게 해석될 수 있는 '백지형법' 식의 요건을 두고 있어 명확성의 원칙을 파괴하고 있다.둘째, 국가보안법은 형법과의 관계에서 중복적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의 또 다른 중요한 논거는 동법이 폐지되어도 국가안보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점이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국가보안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부분의 조항이 이미 형법이나 기타 형사특별법규와 중복되어 있으므로 진정으로 위험성 있는 국가안보 침해사범은 충분히 규율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국가보안법 제3조의 반국가단체의 구성, 가입, 예비, 음모 조항은 형법 제87조의 내란죄의 에비, 음모, 제 114조의 범죄단체 조직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과 중복. 국가보안법 제4조의 목적수행은 형법의 각조에 의해 대체가능. 국가보안법 제5조의 자진지원, 금품수수 조항은 형법의 공범규정으로 처벌가능. 국가보안법 제6조 잠입, 탈출은 형법 제 92조 외환죄, 제98조의 간첩죄의 예비음모로 처벌 가능. 국가보안법 제8조 회합, 통신과 제9조의 편의제공은 국가보안법 위한행위에 대한 공범유형으로 성립하는 경우에만 형법에 의해 처벌하면 되고. 국가보안법 제10조의 불고지죄는 범인은닉죄로 처벌할 수 없는 단순 불고지범을 처벌하는 것은 반인륜적이며 불필요하다고 할 것이다.셋째, 국가보안법은 남북교류협력법 등과의 관계에서 상충적이다. 정부의 통일정책의 수립은 명백히 국가보안법에 저촉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른바 '통치행위론'으로 용인되어 왔으며, 이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문제를 피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1990년 8월 1일 남북교류협력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제2조는 명백히 북한당국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 법률을 그대로 둔 채 반국가단체와 교류와 협력을 허용하는 남북교류협력법을 제정한 것은 실질적으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면서 두 법체계의 혼란만을 초래하고 있다.넷째, 국가보안법은 비상시기의 한시법이자 군사정권에 강화되고 악용되어온 정권유지법일 뿐이다. 국가보안법은 내란행위특별조치법 발의(1948.9.20)->여순반란사건 발생(1948. 11) ->국가보안법으로 명칭변경을 거쳐 제정(1948.12.1) 되었으며, 일제시대 치안유지법 승계한 죽고 죽이는 극단적 좌우대립 시기의 산물이다. 그리고 현재의 국가보안법은 1948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이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해 1961년 제정된 반공법과 합쳐져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본 모습을 갖추게 (1980년) 된다. 즉, 이승만 정권 시대의 무자비한 좌익사냥의 도구(제정 국가보안법)와 박정희 군사쿠데타 정권의 정권유지 수단인 반공법이 전두환 학살정권에 의해 반인권, 반민주 악법으로 통합된 국가보안법은 분단과 냉전, 독재와 인권탄압의 역사와 완전하게 한 몸이었다.다섯째, 국가보안법은 적용과정과 방식이 불법성과 야만성으로 가득한 반민주악법의 상징이다. 국가보안법 적용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수사 첫 단계인 연행에서부터 재판이 확정된 후 복역과정의 전향압력에 이르기까지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로 점철되어 왔다는 데 있다. 범죄의 진압을 위한 공권력 행사가 마찬가지의 '범죄적' 불법을 저지르고 있을 때 그 공권력 행사는 도덕성과 신뢰성을 가질 수 없다. 국가보안법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구속 기소가 없으며 보석이나 구속적부심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없었다. 불법연행, 장기구금, 행방불명, 밀실수사와 고문, 조작, 감시와 감금, 차별과 소외 생각만 해도 섬뜩하고 공포스런 단어들은 국가보안법이 역사와 국민에게 상처로 남겨준 슬픈 기억들이다. 국가보안법과 인권, 국가보안법과 민주주의, 국가보안법과 통일은 공존할 수 없는 대척점에 서 있다.여섯째, 국가보안법은 입법기관인 국회에 의해 제정된 법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의 원리에 따라 법은 국민이 선출한 국회에서 제정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위반함으로써 법률로서의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1980년 쿠데타 권력기관에 불과한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제정되었으며, 이에 흡수된 반공법 역시 5.16 군사쿠데타 이후 임의로 설치된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제정되었던 것이다. 이 두 기관은 명백히 국회가 아닌 불법적 군사쿠데타 세력의 무단통치 기구에 불과하다.국가보안법 제정의 역사는 국민의 동의와 합의를 전제로 하는 법률의 규범력을 요구할 없음을 명백히 보여준다.일곱째, 국가보안법 폐지는 왜곡된 과거사 청산의 중핵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해 우리가 잃을 건 냉전과 분단, 반인권과 비민주의 어둠이요, 얻을 건 화해와 통일, 민주주의와 인권의 빛이다. 국가보안법은 모든 가치있고 존재해야 할 것을 먹어치우고 모든 무가치하고 사라져야 할 것을 토해내는 反역사의 상징이었다. 역사를 바로세우고 왜곡된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은 비단 그 사실을 규정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와 같은 역사왜곡을 낳았던 조건과 환경으로서의 법적, 제도적 실체를 혁파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국가보안법 폐지가 과거사 청산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본질적 이유다. 17대 국회의 역사적 소명은 남북화해협력의 시대를 법과 제도를 통해 뒷받침하고 평화와 통일의 징검다리를 튼튼히 놓는 것이며, 국가보안법 폐지는 그 시금석이다.여덟째, 국가보안법은 천문학적인 유지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고비용 악법으로서 개혁의 최우선 과제이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의 법은 더 이상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더구나 반공과 반북이 언제까지 헌법을 능가하는 국민적 가치일 수는 없다. 이제는 굽은 것을 펴고 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북한은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화해, 협력, 통일을 이루어야 할 민족공동체이자 1991년 유엔에 동시가입함으로써 국제법에 의해서도 합법성이 인정된 명백한 국가이다. 따라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국가보안법은 더 이상 존재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냉전과 분단의 20세기가 아닌 화해와 통일의 21세기에 살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한국사회가 반인권에서 인권으로, 반통일에서 통일로, 반민주에서 민주로 가는 첫 관문이며, 참여정부에서 해결해야할 개혁입법의 최우선 과제이다.2 국가보안법 존속론자 입장이에 반해 국가보안법 존속론자들은 아직도 북한 김정일의 적화야욕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따라서 국가보안법의 폐기는 시기상조라는 다소 보수적인 시각에서 국보법을 지켜보고 있다. 특히, 국가보안법은 위헌이 아니라는 요지의 판결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각각 내려졌는데 그들은 이를 기반으로 그들의 주장을 펼쳐가고 있다. 내용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