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ge of innocence' Review......배가 등대를 지날 때까지 그녀가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그냥 돌아가리라.....너무나 로맨틱한 아처의 대사...그에 걸맞은 눈부신 석양의 바닷가 풍경과 엘렌의 뒷모습.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의 아름다운 영상은 충분히 설명이 될 정도다. 평소 순수의 시대 라는 제목을 많이 들어보아서 인지 내용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친근하게 다가왔다. 부끄럽게도 이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은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과 영문학 전공자가 꼭 봐야하는 작품이라는 것이 전부였다.영화는 1870년대 뉴욕 이라는 자막과 함께 조앤 우드워드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오페라의 선율과 화려한 의상이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집중력은 끝까지 유지 될 수 있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귀에 낯익은 음악과 함께 화려한 의상쇼는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강한 임펙트 없이 물 흘러가듯 흘러가는 구성이 약간 밋밋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 스타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다. 영화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보았던 센스&센서빌리티 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처음부분에 영화의 등장인물과 배경 소개가 나레이션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여러 등장인물의 이름과 인물간 관계가 계속 설명이 되어 머리 속으로 정리해가면서 영화를 따라가려 하니 정신없는 감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차차 영화 내용에 빠져들어 갔다.이 영화는 1870년대 뉴욕상류 사회를 배경으로한 세 남녀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중심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주인공들은 관습과 격식에 굉장히 얽매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영화의 감독 마틴 스콜세지 가 예의 범절과 고상한 취미의 뒤에 가려진 잔인성을 그리고 싶었다 고 말했듯이 뉴욕 상류사회의 허위, 위선, 진실보다 더 중요한 허례허식에 괴로워하는 세 남녀의 사랑과 집념이 잘 드러나 있다. 대사를 듣다보면 관습에 어긋난.....관습을 따라야..... 등 관습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 시대 사람들이 그러했겠지만 관습과 틀에 얽매여 자신의 감정을 굉장히 억제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더 답답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당시 상류층은 정해진 관습대로 옷입고 말하고 정략결혼을 했으며 조금이라도 관습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가차없이 매장 당했다고 한다.영화속 인물과 상관없는 내가 답답함을 느꼈을 정도이니 배우의 연기력도 칭찬할 요소 중 하나이다. 아처 역할을 맡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가 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나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잘 알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자유에 대한 열정으로 고뇌하는 주인공의 절제된 심리를 연기로 잘 표현했다. 위선과 고민에 가득찬 상류 사회의 기존 질서 앞에 한 개인의 열정은 묻혀 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 그 많은 희생이 있기에 이 사회가 유지 될 수 있다고 메시지를 던지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래서 더 강한 여운이 남는 것 같다.영화 속에서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상류사회의 화려한 의상이다. 아무래도 영상 매체이다 보니 눈을 즐겁게 하는 요소에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의상을 통해 빅토리아 시대 상류사회 문화와 등장인물들의 심리까지도 파악 할 수 있었다. 19c 귀족사회 문화를 완벽히 재현하고 의상, 소품, 파티 장면등 그 어느 때보다도 화려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모습을 세세하게 잘 표현했다. 우선 메이의 의상을 살펴보면 주로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메이의 순결함을 드러내고자 한 의도인 것 같다. 뉴욕 상류층에서 신부수업을 받으며 성장한 메이는 도발적이기보다는 수줍음을 느낀다. 마치 메이를 감싸고 있는 뉴욕 상류층의 분위기처럼 화려한 보석보다는 꽃이나 리본으로 장식하며 머리를 단정히 빗어 올린 모습도 인물의 캐릭터를 잘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에 반해 예술과 자유를 사랑하는 엘렌은 주로 빨강, 자주, 황금색처럼 강렬한 색을 주로 입고 노출을 즐기며 화려한 보석 장식을 좋아한다. 웨이브의 금발머리는 자유로운 느낌이 들며, 아처는 이런 도발적이면서도 우아하고 열정적이며 신비로운 엘렌의 모습에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가 93년 아카데미 5개부문 수상을 하고 그 중에서도 의상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빅토리아 시대의 패션을 잘 드러내서라기 보다는 의상 속에 감춰진 위선과 허위를 잘 드러냈기 때문이며 또한 의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는 진실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지금으로부터 100년이나 전 이야기를 보면서 느낀 점은 결국 인간 사회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허례허식을 중요시 여기고 관습에 얽매여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동떨어지지 않는다. 한 세기가 지난 시대에도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은 영화에도 잘 드러나듯이 인간사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결국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감상한 기쁨이 더 크기에 너무 우울해 지지만은 않는다. 오랜만에 잔잔한 여운이 남는 영화를 감상하여 좋았다. 소설만 보다가 영화로 영문학 작품을 감상하니 소설에 대해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이런 소설이 영화화된 작품을 더 감상해 보고 싶다.
§영화 속에서의 가정§♧영화 "Story of us"주연: 브루스 윌리스, 미셀 파이퍼 감독:롭 라이너◎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언제부터인가 추상적으로만 여겨지던 결혼이라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혼은 가정을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보통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결혼 생활은 현실과 동떨어져 그려지기 쉽다. 너무 낭만적 성격을 강화시키거나 아니면 너무 극단적으로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이 영화 속에서의 결혼 생활이다. 나는 현실적인 결혼 생활을 담은 영화를 감상하고 싶었다. 이런 이유에서 'story of us'는 결혼 생활에 대해 비교적 사실적으로 담은 영화인 것 같았고 결혼을 통해 가족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어서 리포트의 주제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극중 인물과 상황 분석。벤-이 영화에서 벤의 직업은 소설가이다. 그것도 진지한 내용을 다루는 것이 아 닌 상상력이 풍부하고 즉흥적이며 장난기가 많은 소설가로 등장한다. 아마도 이러한 직업을 통해서 성격을 드러내려고 한 것 같다.。케이티-케이티의 직업은 퍼즐 게임을 출제하는 사람이다. 퍼즐게임은 항상 정답 이 있고 완성된 결과가 있다. 여기서 또한 케이티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케이티는 꼼꼼하며 질서 정연함을 추구하는 인물인 것이다.어떻게 보면 반대되는 성격의 사람들이다. 영화 속에서 이 두사람의 만남은 첫 눈에 반한 것으로 나온다. 생활력이 강한 현실주의자인 케이티와 반대로 항상 덜렁대고 실수 투성이지만 꿈 많은 철부지 소년 같은 벤. 이 두사람은 서로에게 강한 이끌림을 느낀다. 서로 반대 성향의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이다. 첫눈에 반한 두 사람에게 결혼 생활이 진행 될 수록 문제 상황들이 하나씩 발생한다. 여기서 벤과 케이티의 갈등이 싹트게 된다. 영화는 이 갈등상황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영화 속에서의 가족 분위기영화를 감상하면서 바람직하다고 느낀 부분이 바로 두 주인공의 부모로써의 역할이다. 벤과 케이티는 1남 1녀를 두고 있는데, 영화 장면 중 네 가족이 아침식사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어제 하루동안 가장 나빴던 일과 가장 좋았던 일을 한가지씩 말하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 뿐아니라 부모들도 모두 자신의 어제 하루 동안의 일들을 이야기한다. 이야기후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조언이나 좋은 해결방법을 제시해 준다. 이런 대화 속에서 아이들의 생각과 부모의 생각들을 공유하게 되고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찾게 해주는 것 같다. 또한 눈여겨 볼 부분은 부부 사이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전혀 들어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서로의 감정이 좋지 않아도 아이들 앞에서는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이 아이들에게 전이되지 않도록 제어한다. 사실 일반적으로 볼 때 부부 사이의 감정이 좋지 않을 때 이것을 아이들에게 전혀 들어내지 않는 것은 그리 쉬운 일 만은 아니다. 그러나 벨과 케이트는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자신들의 갈등 상황을 지워버리고 아이들을 위한 행동을 한다. 영화 내용중 부부의 별거 생활 부분이 나오는데 이때에도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이 캠프를 갈 동안 별거하기로 합의한다. 이런 부분들로 보았을 때 두 주인공은 근본적으로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의지가 강한 것으로 보여진다.◎갈등 상황이 가정의 모습을 살펴보면 우선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되어 있고, 아이들도 문제없이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남편이 폭력을 사용한다거나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는 심각한 성격 이상은 보여지지 않는다. 부인도 마찬가지로 가정에 문제를 일으킬만한 성격 장애는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첫눈에 반해서 결혼한 부부 사이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정에서는 심각한 가족 문제보다는 현실적으로 결혼 생활을 하면서 부딪힐 수 있는 부부 갈등을 보여준다. 이러한 갈등 상황이 바로 내가 공감한 결혼 생활에 대한 부분이다. 처음에는 그저 좋게만 보였던 부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대하기 싫은 단점들로 보여지고 심지어는 별거 생활로 이어지게 된다.이 가정은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보다는 내부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사실 이 정도의 문제는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아닐까?이 가정에서의 부부는 우선 반대 성향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 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모습을 가진 사람에게 순간 좋은 느낌을 가질 확률이 높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서로에게 실망을 하게되고 이런 갈등 상황을 잘 극복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결혼 생활의 성공여부가 가려지는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의 가족 문제는 우리들 모두에게 충분히 일어 날 수 있는 문제 일 것이다.◎갈등 해결겉으로 보여지는 문제의 심각성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부부 사이에 갈등이 있으므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영화 속에서의 두 주인공도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방법이 상당히 건설적인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부부는 정신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는다. 상담을 통해 서로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되짚어 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물론 이 영화가 외국 영화이므로 정신과를 찾아가는 것이 실정에 안 맞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부부가 함께 찾아가서 상담을 받는 것은 우리가 받아드려도 좋을 것 같다.또한 부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구체적인 모습을 보면 영화 내용중 부부의 별거 생활 부분이 나오는데 이 때에도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아이들이 캠프에 가있는 동안 별거하기로 합의한다. 캠프 일정 중에 부모와 함께 하는 활동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때에도 부부는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부부 갈등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텐데도 말이다. 부부는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서 교육적 부분에서만큼은 철저하게 부모의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부분들로 보았을 때 두 주인공은 근본적으로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의지가 강한 것으로 보여진다.부부의 갈등 해결을 위한 적극성은 별거 형태에서도 드러난다. 별거를 했다고는 하지만 단순한 별거가 아닌 서로에 대해 좋은 감정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별거이다. 두 부부는 별거 기간중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다.이 가정의 갈등 해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감정이다. 비록 서로의 단점들이 많이 보인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랑하는 마음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 별거 중에 서로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영화 중반을 지나서도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기보다는 계속 갈등 상황이 반복된다. 서로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다가도 다시 잊으려고 하는 단점이 눈에 띠고, 처음의 감정을 되새기려 하면 다시 말다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 아이들이 캠프에서 돌아오자 마중 나가는 길에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며 결국 두 주인공은 화해를 하게된다. 결국 서로의 단점을 이해하고 극복하면 가정의 행복을 지키게 된다. 이 영화에서 부부가 성공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 많은 노력을 했고 가정의 행복을 지키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던 점을 꼽을 수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관한 보고서◎개요우리는 영화를 가르켜 종합 예술 이라고 한다. 그만큼 한편의 영화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감독과 배우의 노력과 더불어 음악, 의상, 소품, 영화 속의 배경등 여러 가지 요소가 종합적으로 잘 조화가 되었을 때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보았을 때 오래도록 기억되는 명화가 탄생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명화중 이번 리포트의 주제로 삼은 영화 아마데우스는 앞에서 언급한 여러 요소가 잘 조화된 영화라 할 수 있다. 모차르트의 일생을 음악적인 영상으로 표현한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한 천재 음악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 그 시대의 복식이라든지 음악적 시대 등을 파악 할 수 있으며 영화 속의 인물이 갖고 있는 심리에 대해 고찰해 보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한편의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가슴 찡한 감동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알아보고자 하는 것은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내용들이다. 이런 내용들을 통해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에 대해 좀더 정확한 관점을 가질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고 싶다.◎본론아마데우스에서 가장 먼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화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는데 한 몫한 영화속 패션이다. 모차르트가 살던 시대는 로코코 시대로서 이 영화에서도 로코코 복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인 배경과 복식과의 밀접성은 이미 시대를 거쳐 증명되었고,18세기 로코코 시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시대의 곡선 감각은 우아하고 여성적이며 또한 귀족적, 반 자연적, 인공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의상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감각에 지배적이었다. 남자 복식의 두드러진 특색은 활동에 편리성을 부여한 코트 프락과 아름다운 자수로 장식한 베스뜨, 허리 길이의 질레, 바이어스 재단한 뀔로뜨와 호우즈, 목장식의 일종인 끄라바뜨, 머리장식인 가발과 모자 등을 볼 수 있다. 여자 복식은 깊게 파인 목선과 양옆으로 부풀린 스커트, 꼭 끼는 바디스, 밖으로 보이는 페티코트, 천을 주름지게 접어 맨 벨트, 다양한 슬리브등이 특징적이었으며, 모차르트가 머리장식을 위해 가발을 고르며 머리가루를 뿌리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그 시대의 복식을 정확히 고증하였고 또한 풍부한 의상만으로도 최고의 찬사를 받을 만 하다. 그 당시의 복식이 제대로 고증되지 않는다면 그 영화의 가치는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영화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의 생애를 기록한 면에서뿐만 아니라 복식의 고증에 있어서도 빛나는 불후의 명화로 길이 남을 만 하다.다음으로 다룰 부분은 영화속 배경이 된 음악적 시대이다. 모차르트가 음악활동을 했던 시대는 고전파 시대로서 이 시대를 대표할 만한 작곡가로는 하이든, 베토벤, 모차르트 등이 있다. 빈 시대의 모차르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하이든이었다. 하이든은 모차르트가 빈에 정주한 1781년 6곡으로 된 유명한 을 발표하였는데, 모차르트는 그 작품 속에 이때까지의 현악 4중주곡에는 없었던 긴밀한 조형력을 인정하고 이를 본보기로 1782년부터 85년에 걸쳐 6곡의 현악4중주곡을 작곡 이것은 하이든에게 헌정했다.이것이 "하이든의 현악 4중주곡"으로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곡중 최고의 것이었다. 한편, 그의 나이 29세이던 1785년에 베토벤과의 극적인 대면이 이루어 졌으나, 모차르트가 베토벤에게 몹시 매정하여 베토벤이 몹시 실망하게 됨으로써 그들의 음악적 교류가 이루어지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마지막으로 아마데우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살리에르의 심리에 대한 내용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어찌 보면 모차르트가 아닌, 그의 음악과 천재성 때문에 질투심으로 거의 미칠 지경이며, 당시의 궁정 악장이었던 살리에르라고 할 수 있다. 이 살리에르는 천재 모차르트와 맞부딪침으로써 고통스러운 좌절을 겪는다. 이와 같은 것은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스포츠. 과학 등 모든 분야 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들이 겪게 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살리에르라는 작곡가는 아마 모차르트가 없었다면 오늘날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음악전문가들의 이야기다.살리에르는 모차르트를 만난 후에 심한 갈등을 느끼기 시작한다. 모차르트는 그의 우상이었지만 그를 만날 때면 그를 비방하려는 감정이 그를 휩싸 안는다. 그리고 그는 모차르트가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아가기 시작했을 때 증오심이란 감정을 처음 느낀다.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곳까지 올랐지만 신이 준 재능 앞에서는 좌절할 수밖에 없는 2인자의 모습. 이런 살리에르의 심리는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천재 앞에서 범인들이 느껴야 하는 보편적 모습일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살리에르의 심리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또다른 요소로 자리 매김 한다. 이 부분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마광수의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의 한 부분을 살펴보겠다."아리스토텔레스는 연극의 흥미가 '연민'과 '공포'를 통해서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의 연극이나 영화 소설 등의 장르에서 연민과 공포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오히려 '질투와 선망'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현대사회는 표면적으로 평등한 사회이므로 질투와 선망의 감정이 사람들 상호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극중 인물에 대한 강렬한 질투심이 주인공의 몰락에 의해 잠시 진정되고 그것이 다시 선망의 감정으로 이행되면서 심리적 평정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서 '묘지'라는 이름의 전차'로 갈아타고 여섯 구역쯤 와서 극락정토(Felysian Field)에 하차한다...블랑쉬가 그녀의 여동생 스텔라를 찾아갈 때 종이에 쓰인 이 글귀는 마치 그녀의 운명을 암시해주는 듯하다. 그녀의 가문은 무슨 저주를 받았는지 가족들이 차례로 병에 걸려 죽는다. 그녀의 임무는 가족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다가 죽는 장면을 지키보고 장례를 치르는 일이었다. 그녀에게 충격을 준 또 하나의 사건은 남편의 죽음이었다. 우연히 남편이 동성연애자임을 발견한 그녀는 남편을 모욕하는 말을 하고, 남편은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다. 블랑쉬는 죽어 가는 사람들과 죽음에 둘러싸여 살아온 셈이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큰 불행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불행한 삶으로부터 탈피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 노력에 대한 시도로서 그녀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술과 망상으로 지탱해 나가는 여자음란증 환자, 매춘부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 후 그녀의 마지막 도피처, 은신처로서 여동생 스텔라의 집을 찾게 된다. 그곳에서 블랑쉬는 스텔라의 남편인 쾌활한 폴란드 태생 노동자인 스탠리와의 사이에서 많은 마찰을 빚는다. 그리고 그녀의 과장된 까다로움과 오만스러움이 그녀의 최후의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블랑쉬는 미치라고 하는 스탠리의 친구를 사귀게 되고 결혼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결혼을 통해 그동안의 어두웠던 생활을 모두 청산해버리고 새롭게 세상을 살 희망을 꿈꾼다. 그러나 스탠리에 의해 벗겨진 그녀의 과거들은 파멸로부터 완전히 구원될 수 있는 결혼의 기회마저 박탈시키고 만다. 스탠리와 블랑쉬의 싸움은 계속되고 그런 싸움 중에 스탠리는 결국 블랑쉬를 욕 보이고 만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블랑쉬는 광적인 상태로 빠져들게 되고 끝내는 정신병자 수용소에 끌려가고 만다.귀족적인 생활에서 급격히 몰락한 자기 자신을 사회에 적응시키지 못한 것이 과연 블랑쉬만의 문제일까? 그녀의 여린 감성이 어린 시절의 풍요로운 생활에서 비롯되었다면, 후에 그러한 감성을 지켜 내어 줄 풍요로운 생활이 보장되지 못한 것은 그녀의 잘못이라기보다 개인적인 환경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녀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극중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변태 성욕자였다라는 사실에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성에 대하여 흔들리는 가치관과 행동을 가지게 해준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물론 그녀의 삶이 비판받을 부분도 많이 있다. 먼저 노동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경멸한 것, 우아함이나 고상함이란 삶의 주변이지 중심은 아니기 때문에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된 후에야 그 이상의 예의나 신사, 숙녀다운 행동이나 고상함도 나오는 것이라는 점, 그러한 최소한의 자격도 가지지 못한 블랑쉬가 그것을 제공하는 스탠리의 교양 없음과 상스러움을 지나치게 대한 것은 분명히 비난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녀의 지나친 자존심도 인간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처했던 상황을 고려하고, '낮선 사람들의 친절을 항상 고맙게 생각했다'는 말에서 그녀는 그동안의 외로움과 힘겨움을 벗어나 보호받고 싶었던 간절함을 알 수 있다. 또한 파혼을 선언한 미치에게 '나는 바위 투성이의 세상에서 빈 틈 같은 사람을 찾았다고.. 내가 쉴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고..'한 말에서 블랑쉬가 괴로움과 외로움에서 벗어나 보호받고자 했던 욕구의 절실함을 알 수 있다.또한 주위에서 그녀를 보는 시각에도 원인이 있겠다. 블랑쉬는 진정한 사랑을 했고 그 누구도 느끼지 못한 엄청난 아픔도 가지고 있는 여자이다. 하지만 주위에서 그녀를 생각하는 시선은 좀 달랐다. 대표적인 인물로 스탠리는 블랑쉬가 더러운 여자이고 거짓투성이며 같이 살아서는 안될 여자로 낙인 찍어버린다. 하지만 그가 블랑쉬는 비난할 자격은 조금도 없다고 본다. 결국 자신도 블랑쉬를 성폭행을 하고 말기 때문이다. 아마도 스탠리는 그전까지 블랑쉬 주변에 있었던 남자들의 대표적인 모습일 것이다. 여기서 남자들은 자신의 모습이나 위치는 생각도 하지 않고 여자 위에 군림하려하고 복종을 바란다. 그 권위주의에 처절하게 짓밟히고 정신 이상까지 가는 비참한 여성이 블랑쉬이다.
섹스피어의 많은 작품들, 그 중에서도 희극중 수업시간에 배운 '한 여름밤의 꿈'과 개인적으로 접한 '베니스의 상인'. 이렇게 두 작품을 읽어보았다. 사실 섹스피어 작품은 비극이 더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두 개의 희극 작품을 비교해 가며 읽는 재미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내가 읽은 이 두 작품에서도 섹스피어의 천재성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각각의 작품에 등장하는 생동감 있는 인물들의 캐릭터, 정형화된 구조보다는 끊임없이 생각하게끔 하게 하는 마력과도 같은 극의 구조적 특징들은 새로운 섹스피어 작품을 접하는 대가로 충분했다.먼저 '한 여름밤의 꿈'과 '베니스의 상인' 이 갖고 있는 희극적 측면에 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 두 작품을 희극에 속한다고 알고 있다. '한 여름밤의 꿈'에서는 두 쌍의 아테네 연인, 오베론과 티타아니아의 갈등 구조가 각각 결혼, 사랑의 되찾음으로 마무리되면서 극중 인물들의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분석의 시각에 따라 이 작품을 희극으로만 볼 것인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극의 배경을 숲으로 하면서 풍기는 낭만적 분위기나, 극에 등장하는 요정들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 신비적 분위기, 또한 인물간 갈등 상황의 원만한 해결 모습만으로도 희극의 요소를 충분히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베니스의 상인'도 마찬가지로 희극으로 분류되는데 '한 여름밤의 꿈' 에서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한 여름밤의 꿈'에서 등장하는 초자연적 존재 즉, 요정과 같은 존재가 갈등을 해결하는 것과는 다르게 '베니스의 상인' 에서는 인간의 이성으로 갈등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 여름밤의 꿈'에서는 모든 인물들 간의 갈등이 정리가 되고 결말을 맺지만 '베니스의 상인' 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악당으로 묘사되는 샤일록의 입장에서 보면 비극의 결말이기 때문이다. '베니스의 상인'을 희극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아마도 주인공들이 나쁜 샤일록의 꾀로부터 벗어나 안정을 되찾고 행복해 진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베니스의 상인'에서 선과 악중 '악'의 역할을 담당한 샤일록은 과연 비극적 인생이 되어야 마땅한 악한 인물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극에 등장하는 샤일록은 유태인으로써 극의 주인공들이 기독교도 인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온갖 멸시를 받은 인물이다. 샤일록은 자신을 개보다도 못하게 취급하는 기독교도 인들에게 속으로만 증오를 키워가며 참고 지내왔다. 샤일록은 다수에 속하지 않는 소수집단이기에 멸시를 받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 샤일록을 복수심으로 가득 차게 만든 것이고 이것이 약간 왜곡되기는 했지만 안토니오로 대변되는 기독교도에게 폭발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했을 때 샤일록을 아니 샤일록의 비극으로 말미암은 주인공들의 행복한 결말로는 이 극을 희극으로만 보는데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섹스피어는 무시를 당했던 샤일록의 상황을 동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복수심으로 인한 샤일록의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면을 비판하려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샤일록이 악당이 되며, 주인공들이 샤일록의 잔인한 꾀에서 현명하게 빠져나왔으니 희극의 요소가 더 강하고 따라서 '베니스의 상인'을 희극으로 보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 같고 결론 지었다.앞에서 '베니스의 상인' 이 '한 여름밤의 꿈' 과 다르게 인간의 이성을 이용해 합리적으로 갈등을 해결했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성만 있는 현실세계만이 배경이 된 것은 아니다. '한 여름밤의 꿈'에서 현실세계와 대비되었던 '숲'이라는 장소적배경과 비슷한 곳을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사랑과 결혼이 주제가 되는 로망스의 세계, 미움과 분규가 없는 평화와 조화의 세계의 상징인 포오샤가 살고있는 '벨몬트'가 그것이다. 벨몬트는 계약과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상인들의 세계인 베니스와는 달리 동화적인 이상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섹스피어 희극에서 보여지는 공통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현실과 꿈의 세계 현실과 현실을 떠난 숲의 세계에 대입해 볼 수 있을 것이다.두 작품에서 보여지는 또다른 차이점은 여성에 대한 시각이다. '한 여름밤의 꿈'에서는 남성우위의 가부장적인 면이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오베론과 티타아니아의 관계만 보더라도 오베론은 동등한 요정신분인 아내 티타아니아에게 꽃즙을 바름으로써 티타아니아 마음의 주독권을 갖고 원하는 데로 움직이지만 티타아니아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한 여름밤의 꿈'에서의 여성들은 왠지 남성들의 기세, 가부장적 권위에 눌려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반면 '베니스의 상인'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모습은 정말 통쾌하기까지 하다. 갈등상황을 해결하는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역할을 바로 포오샤, 현명한 여성이 담당했기 때문이다. 다른 섹스 피어 작품에 나타나는 여성들은 섹스피어 시대의 규칙에 따르고 있다. 즉, 그 시대의 여성들은 목소리가 없는 존재,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행동해야 함을 강조 받았던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 여성에게는 금지되어 온 법 영역에 포오샤가 가담하면서 여성의 지적능력을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여겨온 사회적 질서를 뒤엎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