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윤리적인 이론과 실천이 갈등을 일으킬 때, 어떻게 해야 하며, 이것이 도덕교과와 어떤 연관을 갖는지 논하라.윤리적인 문제를 논의할 때 궁극적인 문제 중의 하나는 윤리적인 이론과 실제의 행동이 대립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모호하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서 말하는 ‘윤리적인 이론’은 논의하고 있는 이론이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실제의 행동’이라는 말이 적용되는 범위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론과 실천이 갈등을 일으킬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이 문제를 좀더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위 문제는 결국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서 윤리적인 이론대로 행동하면 손해를 보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이익을 볼 수 있는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논지를 바탕으로 문제를 재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윤리적인 이론대로 행동하면 현실에서는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윤리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가?’우리가 도덕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다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우리가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도덕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 사회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 사회는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사람이 아니라 주먹이 센 사람이 주먹이 약한 사람을 지배하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이 견해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도덕을 강조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해도 사회 혹은 모든 사람이 도덕적인 행동을 실천하기를 바란다는 사실은 우리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의 한 가지 이유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둘째,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각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합리적인 생각을 갖지 못한다면 그런 삶은 불행할 뿐만 아니라 자기 모순적인 삶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일관성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인데 어제는 이렇게 행동하고 오늘은 그 반대로 행동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행동이 밥 먹듯이 반복된다면 누가 그 사람과 가까이 할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하는 그 사람 자신은 또 어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윤리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이유는 자신뿐만 아니라 그 누가 보아도 그 행동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리가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이유가 위와 같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자신의 삶과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의 선택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윤리적인 행동을 하건, 부도덕한 행동을 하건 그것은 그의 삶이며 그의 선택이다. 우리는 우리들 각자 삶의 모습에 따라 우리 자신의 본질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들 각자가 어떤 형태의 삶을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것에 의해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지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람들의 행동에는 그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그 사람 나름의 가치관이 담겨있다. 우리는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어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훌륭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이론에 입각한 삶을 사느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할 것이며, 그 행동은 자신이 옳다고 인정하는 이론이나 주장을 담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윤리적인 이론과 행동은 일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이러한 맥락의 논지는 더 나아가 도덕 교과의 필요성과도 연계된다. 자신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에 대한 체계를 세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행동의 도덕적인 의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행동의 도덕적인 의미를 이해하도록 이끈다는 것은 교과를 통한 도덕교육만의 특징이다. 교과로서의 도덕은 총체로서의 행동의 도덕적 측면을 조명해주는 개념들을 체계화시켜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윤리학적인 개념을 통하여 총체로서의 행동을 도덕적 측면에서 이해하는 일은 학생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옳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또한 더 나아가, 공자의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없었다.’라는 말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굳이 도덕적인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인간을 양성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교과를 통한 도덕 교육을 통해서 그것이 학생의 마음을 크고 아름답게 만드는데 기여하는지, 그것이 학생의 도덕적 완성을 지향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사진, 그 투명성의 신화 ?- 목 차 -? 작품 감상문 ?1. 김종성, 2. 이완교, 3. 이경애, ? 나오는 말 ?? 작품 감상문 ?? 김종성, ?처음 전시실을 들어섰을 때, 하얀 벽 위에 상아색 조명을 받고 있는 작품들이 차분한 미술관의 분위기와 더불어 내 마음을 편안하게 정돈시켜 주었다. 마치 벽에 걸린 작품들이 내게 손짓이라도 한 것처럼, 어서 와서 나를 보고 느껴달라고 내 귀에 속삭이기라도 한 것처럼 난 작품들의 모든 것을 느끼기 위해 눈과 마음을 활짝 열어보았다.무엇보다도 나의 시선을 즐겁게 했던 것은 한 눈에 보아도 친근한 둥근 곡선들이, 잔잔히 떠가는 하얀 구름위로 이리저리 겹쳐져 있는 작품이었다. 완만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언덕의 일부가, 맑게 개인 하늘을 배경으로 색상 톤을 달리하며 배열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툭하고 건드리면 깨어질 듯한 맑은 하늘도 나의 기분을 즐겁게 해주었지만, 그 공간을 더욱 편안하게 해 준 것은 언덕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었다. 마치 컴퓨터 합성 작업을 한 것처럼‘언덕위에 하늘, 언덕 아래 하늘’과 같은 모습을 표현한 작품도 있었고, 한쪽 면은 태양 볕을 받아 연갈색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언덕의 모습을 표현한 반면 다른 쪽 면은 진녹색의 그늘진 산비탈을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m'자 모양의 언덕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언덕을 절반으로 잘라 서로 마주보는 형상으로 세워 놓은 작품도 있었다. 물론 그 여백은 시리도록 파란 가을 하늘이 자리하고 있었다.처음에 김성종 님의 라는 작품들을 한번씩 감상을 했을 때에는 단순히, 둥근 모양의 언덕들이 그저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생각에 얼굴에 미소까지 지어가며 그 넉넉함을 즐기는 데에만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과연 작가는, 보는 이로 하여금 곡선의 여유를 가르쳐주려고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한번 천천히 작품들을 돌면서 각각의 작품들이 나에게 외치고 있는 소리에 주의를 기울여 들어보기로 하였다. 라는 작품들은,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언덕의 면면을 찍어서 배열해 놓은 작품은 아니었다. 언덕이 가운데에 위치해 있고 그 위와 아래를 파란 하늘이 채우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어울릴만한 광경은 아니다. 게다가 한쪽 언덕 면에 햇볕이 비추고 있다면 그 면 전체가 다 볕이 비치고 있는 장면이어야 할 텐데, 언덕의 절반에는 진녹색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또한 가로로 길게 누워있어야 할 언덕들이 마치 사람의 옆얼굴처럼 세워져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모순적인 그림들 앞에서, 마치 이 그림들이 당연한 것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어긋난듯하면서도 어울리는, 아닌 듯 하면서도 그럴듯해 보이는 신비로움의 이면에는 ‘조화’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표현하고 싶은 작가의 욕망이 숨어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드넓은 하늘과 구릉의 완곡한 곡선미는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 한 치의 의심의 마음도 들지 않게 정돈 시켜 준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의 여러 가지 일탈의 흔적이 발견되었을 때 느끼는 희열을, 나의 가난한 언어로는 형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이완교, ?제목은 ‘무념무상’이지만, 내가 보기에 작가는 참 많은 생각을 가지고 이 작품을 제작한 듯싶다. 이완교 님의 작품은 대부분이 검은색, 회색, 흰색 등 무채색 계열로 이루어져 있어서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표현 방법을 보아도, 검은 색 점을 점점이 찍어서 무척 혼란스러운 느낌도 많이 들었고, 붓을 아무렇게나 휘갈겨서 표현한 듯한 작품도 더러 있었다. 왠지 ‘무념무상’이라는 제목에는, 아무런 색도 칠해지지 않은, 아무런 외적인 제재도 가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 즉 하얀 캔버스나 백지가 가장 잘 어울리지 않을까하는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작품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무채색들의 암울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나서 나의 머릿속에는 온통 혼란만이 가득했다. 왠지 모를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듯한 느낌도 들었다. ‘무념무상’이라는 제목을 가진 여러 장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마치 강풍에 흔들리는 갈대들의 모습을 묘사해 놓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에도 그 어둡고 강한 분위기에 억눌려서 저절로 얼굴이 굳어지긴 했었지만, 자세히 작품을 들여다보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라면,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누워있어야 할 텐데, 작품속의 갈대 모양은 서로 제각각의 방향으로 뻗어나가 있었다. 게다가 대의 가장 윗부분이 모두 낫 모양으로 꺾여져서, 마치 부러진 갈대모양을 하고 있었다.나는 이 작품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무념무상’이라는 이 작품의 제목은, 작가가 절실히 바라는 그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아마도 작가는 자신이 처한 현실의 세계가 바로 혼돈과 무질서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이와 같이 무겁고 어두운 무채색 계열의 색상과 더불어 표현해내고자 한 것이다. 제 멋대로 여러 방향으로 휘어진 대의 방향이 그것을 잘 드러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기초해 보았을 때 꺾여진 낫 모양 같은 갈대의 머리는, 혼란스런 세상 속에서 결국 힘들어하고 절망하는 우리의 참 모습을 반영한다는 생각까지 확장하게 되었다.실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어떠한가.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개인은 갈피를 못 잡고 휘청거리는 경우가 많고 ‘군중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다운 면모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세태이다. 대중매체에서는 상상하기도 끔찍할 만큼 놀랄만한 범죄들에 관한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며, 그것도 또한 웬만큼 흉악하거나 잔인하지 않으면 인구에 회자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이것이 요즘의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본다면, 이러한 세상을 표현해 내고 싶었다면, 그래서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면 작가의 이러한 표현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도피하고 싶은 조용한 충동, 그것이 바로 이라는 이 작품들의 진짜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개념도 없는 상태. 혼돈의 시대를 견뎌내어야 하는 작가와 우리들 각자에게 어쩌면 가장 절실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바로 무념무상의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제2전시실을 빠져나왔다.? 이경애, ?이경애 님의 이라는 작품들은, 이제까지 감상해온 사진 작품들 중에서 가장 사진 작품다웠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제까지 지금까지의 작품들은 사진을 찍고 나서 그것을 다시 다른 형태로 가공했기 때문에 - 컴퓨터로 합성을 한다던지, 전기 프린터로 출력을 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사진을 그대로 인화한 것이 아닌 다른 형태 - 정말 내가 사진전을 관람하고 있는 것인지 회화전을 관람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었는데, 이경애 님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벽’의 모습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너무나 익숙해서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무심해 버리기 쉬운 벽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비가 와서 벽의 페인트가 위에서 아래로 벗겨진 벽의 모습, 양철판을 길게 이어놓고 대못으로 꽝꽝 박아 연결해 놓은 임시 벽의 모습, 시골의 창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흙벽, 곰팡이가 너무 심하게 슬어서 그냥 쳐다보고 있기만 해도 곰팡내가 나는 듯한 벽의 모습 등 여러 가지 우리 주변에서 마주칠 수 있는 벽의 모습을 제시해 놓았다.그 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끌었던, 그리고 한참 그 앞에 머물러 이것저것 생각하게 만들었던 한 작품이 있었다. 그것은 여느 시멘트벽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지만,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구도를 이용하여 벽이 한없이 높게 보였다. 마치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지닌 듯한 그런 무게감도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런 무게감을 조금 덜어준 것은, 그 벽 너머에 펼쳐진 너무나도 해맑은 하늘 때문이었다. 정말 보드라워 보이는 솜털 구름들이 파란 물감을 풀어헤쳐 놓은 듯한 창공을 사뿐히 떠가는 그 모습은, 어두컴컴한 벽의 둔중한 모습을 충분히 감싸주고도 남았다. 그리고 그 파란 하늘을 밝게 비춰주는 따뜻하고 하얀 햇살이, 감나무 잎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어쩌면 그 햇살이 그렇게 눈부시게 보였던 것도 크고 묵직한 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자신을 주인공 삼아 찍은 줄도 모르고 그저 무덤덤하게 그곳에 서있는 벽. 땅에 발을 붙이고 서있는 그 벽도 늘 당당하고 강해 보이지만, 아마도 많이 외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 위를 바라보면, 아름다운 하늘과 구름이 자기를 마주보며 흘러가고 있고, 낮에는 따스한 햇살이 밤에는 서늘한 달빛이 자신을 비추고 있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 아래를 바라보면,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이 세상의 모습을 한결 더 아름답게 가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자의 입장에 서서, 키만 멀쑥하게 큰 벽은 아마도 많이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늘 같은 공간에 서서 자신이 감싸고 있는 그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벽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만은 않았다. 도대체 그 벽은 무엇을 닮아있는 것일까.
언제나 그랬다. 들뜬 마음으로 새 교과서를 받고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제일 먼저 집어 들어서 하루 만에 다 읽어버리곤 했던 책이 있었는데, 바로 「바른 생활」과 「생활의 길잡이」였다. 그동안 내가 받아 왔던 도덕 교육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하다보니 어렸을 적에 「바른 생활」책을 유난히 좋아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왜 「바른 생활」과 「생활의 길잡이」책을 유난히 좋아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바른 생활」과 「생활의 길잡이」책에는 내 주위에서 일어 날 수 있을만한 일들이나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가 그림과 함께 나와 있으니까 단순히 동화책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교과서를 즐겨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1?2학년 때 「바른 생활」과 「생활의 길잡이」를 통해서 도덕을 배웠는데, 이렇게 저학년 때 이야기 형식으로 도덕을 소개하는 방법이 매우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충분히 수업에 대한 흥미를 유발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그 이후로 내가 받은 도덕 교육은 다른 과목의 수업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날 배울 부분을 교사용 지도서나 전과의 도덕 부분을 보시고 칠판에 판서를 하셨고, 우리들은 선생님께서 적으시는 것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게 일이었다. 그렇게 필기가 끝나면 선생님은 일방적으로 그 내용에 관한 수업을 하셨다. 그리고 가끔씩 도덕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예습을 해오라고 숙제를 내셨는데, 아이들 대부분은 전과의 도덕 부분을 베껴서 그대로 발표하곤 했었던 기억도 난다.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역시 도덕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역시 수업 방법은 초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책을 한번 읽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난 후 노트 필기를 하고, 선생님께서 설명을 하시는 방식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로 과목 명칭만 도덕에서 윤리로 바뀌었을 뿐 교과서를 이용해서 선생님께서 직접 일방적으로 수업을 하시는 방법은 여전히 계속 되었다. 다만 중학교 때와 고등학교 때 약간 달라진 점을 꼽는다면, 고등학교 때엔 더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중해서, 윤리 교과서를 1학년 때 다 끝내고 나머지 2년간은 문제집을 풀면서 모의고사 점수를 올리는데 신경을 썼다는 것 정도이다.이제 와서 생각을 해보니 “도덕성을 함양하여 자율적인 도덕생활을 이끈다” 라는 도덕과의 목표는 도덕이라는 교과를 배움으로써 얻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초등학교 1?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종례 때 매일 매일 하셨던 말씀이 더 효과가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담임선생님께서는 집에 학생들을 보내시기 전에 “건널목을 건널 때는 손을 들고 건너자!” “길바닥에 쓰레기가 있으면 주워서 버리자!” “동네 어른을 만나면 인사를 하자!” 와 같은 내용들을 먼저 말씀하신 후 두 번씩 따라하게끔 하셨다. 실제로 나는 그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실천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손을 들고 건널목을 건너는 내 자신이,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줍는 내 모습이, 모르는 어른에게도 인사하는 내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이러한 습관들이 몸에 잘 배지 않게 되었다. 비록 한때였지만 도덕적인 생활 습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몸소 실천했던 때가 내게도 있었고, 그것이 도덕 시간에 배운 내용이 아니라 선생님께서 단순히 주의를 주셨던 말씀이었다는 것을 되짚어 보니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이 있었다. 아이가 도덕심을 기르고 그대로 행할 수 있는 실천력을 갖는 것은 비단 수업시간에 학습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수업 외 시간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생활지도 차원에서 언급을 하는 것도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이다.
Ⅰ. 작가 분석 - 1. Malraux의 생애Paris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난 Malraux는 동양어 학교를 나온 후 1923년 고고학 조사연구의 일원으로 인도차이나로 건너가면서 모험적 행동을 시작한다. 그는 이 탐험여행을 토대로 하여 「La Voie royale」(1930)을 집필하고, 중국에서 몸소 체험한 정치적 혁명을 소재로 하여 「Les Conquerants」(1928)을 완성하였고, 상해혁명을 중심으로 한 「La Condition humaine」(1933)를 발표하여 Goncourt 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 인정받게 된다.중국에 다녀오고 난 후에는 반 나치주의, 반 유태인 탑안운동 등 정의를 위한 투쟁의 선두에서 활동하면서 나치 전제에 대해 고발하고 증언한 「Le Temps du mepris」(1935)를 발표하였으며, 스페인 내전이 일어났을 때에는 공화정부군의 지휘관으로 참전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한 「L'Espoir」(1938)를 내놓았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다시 정규군으로 실전에 가담하며, 그 숨막히는 전란 속에서 서구정신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인간의 운명에 대해 성찰한 「La Lutte avec l'ange」를 집필하지만 그것은 독일군에 의해 압수됨으로써 그 일부만이 「Le Noyer de L'Altenbourg」(1948)라는 제명하에 빛을 보게 된다. 조국과 서구문명을 수호하기 위한 이러한 일련의 투쟁을 거쳐 그는 전후 De Gaulle 대통령 밑에서 문화부장관으로 일하였으며, 고대 예술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여 예술철학을 논한 「Les Voix du silence」(1951), 「Le Musee imaginaire de la sculpture mondiale」(1952∼54), 「La Metamorphose des Dieux」(1957)를 완성시켰다.이처럼 Malraux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철학적 니힐리즘의 연장 속에서 여러 전란을 거친 정신적 무정부 상태에 빠진 서구문명의 위기를 통찰하고, 그러한 절망과 불안을 행동으로따름이었는데, 그 뒤 행동은 혁명에 헌신한다. 혁명에서 사람들은 박애 정신을 발견한다. 인간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타인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이다. 의 등장 인물인 카토우는 그의 동료들을 위해 희생하며 그들에게 그가 산 채로 화형되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자신의 청산가리를 준다.1933년 봄 부터 말로는 파시즘에 대항하여 투쟁한다. 그는 에서 수용소를 묘사하며, 에서는 스페인 내란을 그려낸다. 그 자신 프랑코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공화국 비행대를 조직한다. 그 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레지스탕스에 뛰어들어 여단의 지휘자로 프랑스 해방군에 참여한다.전쟁이 끝난 뒤 말로는 혁명적인 이데올로기를 버린다. 그 후 예술과 정치에 몰두했는데, 1958년 문화부 장관이 되어 오래 일했다.2. 행동주의 문학가 Malraux죽음의 문제는 말로의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전반적인 주제인 동시에 소재이다. 이 죽음의 문제가 작가에게 깊이 영향을 끼친 것은 그 자신이 모험과 전쟁속에서 목숨을 건 행동주의자로 참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말로는 일생동안 행동의 현장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한다. 밀림과 사막에서 유적을 찾는 모험가로서, 월남과 스페인에서 대중의 자유을 찾는 혁명가로서, 그리고 2차대전중에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그후에는 예술심리와 신들의 변모를 서술한 에술가와 영화감독으로서, 드골 내각의 각료로 서 전후의 시기를 보낸다. 이러한 다양한 체험과 경력을 통해 말로가 일관적으로 내어놓은 것이 죽음의 관념이었다. 인간의 조건에 대한 자유와 저항의 결과로 빚어진 죽음, 그 죽음에 대한 말로의 의식은 대 사건에 참여하여 창조된 작가의 작품의 변화에서 고찰이 가능하다.1928년의 「정복자(Les Conquerants)」는 말로의 초기 작품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다. 그 이전의 작품 세계는 신의 부재와 서구 문명의 가치 몰락만을 선언하고 있지만, 「정복자」에 이르러 비로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 이다. 그러나, 모험과 도전을 통한. 상해 상공회의소의 재벌들은 공산주의자 제거를 전제로 장개석 지원을 약속했고, 혁명의 확산과 장기화를 전망한 코민테른도 당원들에게 무기반납을 종용했다. 장개석에 의하여 선포된 계엄령은 이제까지 혁명의 동지였던 국민당과 공산당원들을 순식간에 적대시하게 만들었다.천은 그의 장기인 암살의 재능을 살려 그 상대를 장개석으로 잡았으나 실패 할 뿐만 아니라 당으로부터도 과격파로 지목받아 비판당하는 처지로 몰리자 폭탄을 안고 자동차로 뛰어들어 빈사상태에 이르자 권총 자살로 짧고 격렬한 생을 마감한다. 기요는 공산당 본거지가 있는 한코우(漢口)로 가서 장개석군에게 무기 반납의 부당성을 주장했으나 이미 코민테른 본부로부터의 명령은 확고부동한 사실과 그 자신이 체포자 명단에 올라 있음을 알게된다. 기요의 출구는 단 하나, 그것은 반 장개석 그룹을 재편성하여 행동하는 길뿐이었고 실지로 그는 그런 노선을 택한다.내외의 사태는 장개석에게 유리했고 그의 선제공격으로 행동파들은 체포된다. 혼혈아의 몸으로 일찍부터 혁명에 투신하여 노동자와 고락을 함께 했던 불굴의 투지를 지닌 기요는 동요 없이 청산가리로 자살하고, 직업적인 전문혁명 기술자인 러시아인 카토브 역시 체포당해 외로움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기다린다. 카토브는 직업혁명가답게 지니고 있던 청산가리를 중국인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산채로 불태워 죽이는 고통을 선택한다.피신에 성공한 기요의 아내 메이는 일본 고베에서 시아버지 지조르에게 살아남은 동료들을 규합하여 다시 모스크바로 가서 싸울 것을 간청하지만 이미 아들을 잃은 그는 모든 투지를 상실한 채 아편으로 노년의 영혼을 달랠 뿐이다.인간을 만드는데는 아홉 달이 걸리지만, 죽이는데는 단 하루로서 족하다 는 말을 하면서 지조르는 메이에게 죽은 사람에 대한 미련보다는 산 사람을 사랑하라고 충고하지만 그녀는 그 충고를 거절한다. 지조르는 계속 말한다.사람 하나를 만드는데 9개월로는 부족한 거야. 육십 년이 걸리는 거야. 희생이나, 의지의, 그리고 여러 가지 많은 것의 육십 년이―인간이 되었을에서 죽음을 맞는 태도와 양립하여 그려진다. 죽음에 대한 시간의 차이는 뚜렷이 구별되고, 그 강박관념은 자아의식과 더불어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유발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간의 조건」에서 말로가 언급하는 죽음의 속성은 일반적인 통념으로 내려오는 파괴와 허무의 관념으로 귀착된다. 한 인간을 만드는데는 9개월, 완성에 가까운 인간을 만드는데는 숱한 희생과 노력이 점철된 60년이란 긴 세월이 걸리지만, 그러한 한 인간을 죽이는 데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으며, 또 완성에 가까운 인간이 되어봤자 그때는 이미 어린시절도, 청 춘도 다 지나고 죽음만이 남는다는 지조르(Gisors) 노인의 말은 죽음의 파괴성과 인생의 허무함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허무함의 동인으로 작용하는 죽음은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인생의 사멸감이 오히려 인생에 가치와 품위, 흥미를 부여하여, 죽음의 의식이 삶의 시간동안 인생의 가치를 찾고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로서 포착 되는 것이다. 그러나 등장 인물들의 의식 속에서의 죽음의 속성은 한결같이 파괴성을 띠고서 나타난다. 다만, 그 인물들이 신념과 사상에 의해 죽음에 대한 태도를 달리할 뿐인데, 말로는 이 작품에서 혁명에 참가하는 행동주의자와 현실을 방관, 도피하여 살아가는 인물들을 대비시켜 놓고 있다.먼저, 혁명에 참가하는 인물들에 있어서 죽음에서 오는 강박관념은 예기치 않은 행위를 낳게 한다. 이 행위는 인간의 도덕성과 통상적인 관념을 넘어서서, 심리적 원인과 본능적 욕구에서 나오는 자유를 부여받아 자기 행위의 무한한 권리를 지니고서 순간적인 행동으로 발현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이 이러한 행동으로 표출되어 나오는 것은 「인간의 조건」의 영웅들 을 창조한 작가 자신의 의도적인 시도로 볼 수 있다. 죽음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영웅들과는 반대로, 죽음으로 치닫는 시간에 대해 회피하는 인물들의 모습도 나타난다. 혁명에 행동으로 가담하는 키오(Kyo), 첸(Tchen), 카토프(Katow)에 비해, 현실 도피시한다.신의 죽음, 개인적인 가치의 몰락,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속에서 말로는 가치 창조를 위한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여러 작품을 창작한다. 그 중에서 「인간의 조건」은 진실되고 보편적인 가치를 찾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작품으로, 여기에서 그의 사상은 시종일관 죽음이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작품의 목적인 동시에 주제이며, 바로 존재 그 자체이기도 한 이 죽음에 대하여 말로는, 그 파괴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삶을 더 힘차게 살아가도록 하는 동인으로서의 역할을 부각시킨다. 생사가 걸려있는 짧은 순간에만 비로소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는 말로이기에,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이 삶을 더욱 진하고 생기있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말로에게 있어서 죽음을 생각지 않는 삶이란 있을 수가 없으며, 또한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곧 삶을 생각하는 것이 된다. 인간이란 죽음을 의식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3) 한계 상황에 빠진 인간 해부말로는 〈인간의 조건〉에서 삶과 죽음, 허무와 행동, 개인과 집단, 시대와 운명의 역학관계를 꼼꼼히 반추한다. 인간은 죽음과 고독에 대해 늘 푸념하고 불안해 하면서도 명징한 정신세계로 대응하려 들지않는다. 실천과 자유의지의 부재다. 그 이유를 〈인간의 조건〉에서 다음처럼 밝힌다.‘인간이란 항상 자기 안에서 공포를 발견한다. 샅샅이 그 공포를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중략) 다행스럽게도 인간은 행동할 수 있다.’그러면 행동을 이끌어낼 원동력은 무엇일까. 말로에 따르면, 생명의 긍정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이 보다 강렬해질 방법을 찾는 문제이기도 하다. 생명의 강도에 따라 근원적인 죽음의 고뇌를 넘어서 고독의 담벼락도 헐어버릴 수 있어서다. 이는 죽음에 대한 집요한 사색과 부조리한 세계에 의해 희망을 상실한 인간, 운명에 대해 번민 하는 모습이 작품 전반에 걸쳐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배경이다.〈인간의 조건〉은 허무의 심연에 빠져든 인간이 삶의 긍정을 확보할 방안도 여러 각도에서 암시한다. 주인공 키요나, 그것이다.
Ⅰ. 문학 작품 속에서 발견한 의문점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국어 선생님께서 문학 작품 한 편씩 읽고 감상문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그때 나는 김유정 님의 동백꽃 을 읽고 독후감상문을 제출한 일이 있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의심이 가는 내용이 있어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번 자연지리학 과제의 테마를 생각하다가 전에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나서 그때의 그 궁금증을 해결해 볼 겸, 그리고 지역에 따른 식생과 문화의 차이를 함께 알아보기 위해서 다시 한번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기로 했다.아래에 제시된 글은 김유정 님의 소설, 동백꽃 의 일부분이다....거지반 집에 다 내려와서 나는 호드기 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그 틈에 끼어 앉아서 점순이가 청승맞게시리 호드기를 불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너 말 마라!그래!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어?하고 어딜 갔다 온 듯싶은 그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아래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위의 제시된 글 중, 내가 의심이 가는 부분은 밑줄 그은 부분이다. 우선 노란 동백꽃 이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동백꽃이 노란색도 있을까? 그리고 알싸한,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 라는 부분도 의문이다. 내가 아는 동백꽃은 향기가 없다. 동백꽃에서 굳이 향기를 찾는다면 풀내음이 날 뿐 동백꽃만의 독특한 향기를 발견할 수는 없다.물론 중학교 때에는 그냥 그런 종류가 있나보다 라고 나름대로 합리화를 해서 넘겨버렸지만, 모든 현상이 지리적 이치와 맞물려 있다는 교수님 말씀이 갑자기 생각 나면서 의문은 더욱더 커져갔다. 혹시 이 안에도 어떤 지리적 이치가 깔려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Ⅱ.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한 나의 전략모든 문학 작품 안에는 인물, 사건, 배경이 나오기 마련이다. 또한 이것들은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하므로 문학 작품속에는 그것을 쓴 작가가 처해있었던 시대적 배경이나, 공간적 배경이 녹아 들어있을 수 밖에 없다.그래서 나는 동백꽃 의 작가 김유정 님의 고향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다. 실제로 김유정 님이 작품속에는 그의 어릴적 고향의 모습을 많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작가의 고향땅에 관한 연구를 하고, 그곳이 과연 동백나무가 자라기 좋은 곳인지에 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우선 김유정 님의 고향은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이다. 실레마을 이라고도 하는 이 곳은 훗날 김유정의 주옥같은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같다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호도 못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원본 발췌, 김유정 전집,1987>그럼 이제부터 하나하나 체계를 세워서 춘천과 동백나무 서식처에 관해 비교를 해 보겠다.1 동백나무가 자라기 알맞은 산림대{동백나무는{잎이 넓고 사철 푸른 특성을 지닌 상록 활엽수로서, 연평균 기온이 14℃ 이상이고 북위 35°이남의 곳인 지대에서 자란다.위의 두 그림을 비교해 보면 춘천은 지역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동백나무는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 해안에 집중 분포하지만, 동으로는 울릉도, 서로는 대청도까지 분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고 그 또한 섬으로나 가야 볼수있다. 춘천처럼 내륙지방의 산 속에서 발견되는 그런 나무가 아닌 것이다.2 동백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 요구되는 기온 및 강수량동백나무는 습윤하며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따라서 고르게 온화한 18∼20℃정도의 기온과 연중 1500 2000㎜ 의 고른 강수량을 필요로 한다.{다음에{제시된 그래프는 김유정 님의 고향인 춘천과 대표적 동백 자생지인 울릉도의 기후 그래프이다.한겨울의 기온이 영하 8°까지 내려가고 강수량도 적은 춘천의 겨울 기후는, 동백꽃이 자라기에 너무 힘이 들지 않을까?3 동백나무가 잘 자라는 토양동백나무는 겉흙이 깊고 모래와 조약돌이 섞인 부식토로서 배수가 잘 되면서도 보수력이 강한 점질양토에서 잘 자란다. 점질양토는 대개 편마암이 풍화되어서 나타나는 것으로 산도는 PH 5 안팎의 약산성이라서 동백나무가 자라기 알맞다. 아래의 왼쪽 그림을 보면 이 같은특징을 갖는 토양은 남부지방에 있는 적색토가 알맞다. 물론 춘천지방은 보다시피 갈색토라고 나와있다.물론 갈색토와 적색토 모두 산성토양에 속하지만 분명 다르다. 나는 토양의 이러한 작은 차이 하나 하나도 모두 주변 자연환경과 기후에 따라서 제각각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마도 이러한 차이가 식생에 영향을 미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4 동백나무의 일반적인 특징동백꽃은 간혹 드물게 하얀 꽃이 피기도 하지만, 노란 동백꽃 은 피질 않는다. 또한 미리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향기가 없다. 따라서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 라는 말은, 이 소설 속의 동백꽃이 당연히 우리가 흔히 아는 붉은 동백꽃이 아님을 강력하게 증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이제까지의 논의에 비추어 보면, 확실히 김유정 님의 소설 동백꽃 에 등장하는 노란 동백꽃은, 선운사를 그렇게 아름답게 꾸며주는 동백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 이 소설에 등장하는 동백꽃은 과연 무엇일까?Ⅲ. 동백나무의 또다른 이름 - 생강나무답은 바로 강원도의 언어문화 속에 있었다. 동백꽃에 관한 자료를 열람하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된 산동백 . 그러나 그 옆에는 아주 노란 꽃이 달린 꽃나무의 사진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서 산동백 이라는 이름으로 자료를 또 찾아 보았다. 결국 비밀은 드러났다.실제로 동백나무는 열매에서 기름을 짜는 것으로 아주 유용하게 쓰였는데, 남쪽 지방에서만 자라므로 중,북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기름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이런 동백나무와 같은 역할을 하는 나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생강나무 . 생강나무의 씨앗에서 기름을 짜서 유용하게 썼으니 남쪽의 동백나무와 다를 바 없다하여, 그 이름도 산동백 . 개동백 ,심지어 그냥 동백나무 라고도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생강나무라는 이름은, 나뭇가지나 잎 등을 부러뜨리면 생강냄새가 나는 데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바로 이러한 특성이 소설의 동백꽃이 바로 생강나무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 준다. 소설 속에 표현된 알싸하다 라는 말은 (매운 맛이나 냄새 때문에) 혀나 콧 속이 알알하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생강냄새를 맡을 때와 유사하다.그리고 생강나무는 이른 봄에 노란색 꽃이 피는데, 강원도 사람이라면 노란색 꽃이 피는 생강나무를 노란 동백꽃 이라고 표현해도 아무렇지 않게 느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또한 생강나무는 산에 연두빛이 돌고 얼었던 계곡이 녹으면 우리나라 어디든지 양지바른 동네 뒷산 산기슭에 노랗게 꽃망울을 터뜨리던 낯익은 꽃나무이다. 실제 동백나무처럼 기후나 토양을 깐깐하게 가리지 않는다.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볼 때, 어느 이른 봄 날 사춘기 소년 소녀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소설 동백꽃 속의 동백꽃은, 바로 다름아닌 생강나무인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Ⅳ. 나의 생각이번 학기 자연지리학 과제 동백꽃과 동백꽃 을 준비하면서 수없이 많은 자료와 책과 참고도서를 찾아보고 연구하고 생각해 보았다. 이제 모든 것을 마치며 정리하려고 하는 이때에 나는 총 두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첫째로, 모든 문학 작품에는 작가가 살았던 공간과 작가가 경험한 문화가 그대로 녹아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과제에 내가 고찰해 보았던 것은, 작가가 실제로 살았고 경험했던 그 공간적 배경이, 소설속에 자연스레 묻어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동백꽃 안에 나오는 시골 마을의 배경은, 실레마을의 닮은 꼴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