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민담과 독일민담 비교를 통한 프랑스문화의 이해(프랑스문화와 예술)2003. 5. 18과 목 프랑스 문화와 예술교 시 수요일 7 - 8 교 시교 수 님 김 남 연 교 수 님학 과 산 업 디 자 인 학 과학 번 9 9 4 7 0 6 1이 름 정 윤 빈사춘기 시절 나는 릴케의 시와 헤르만 헤세에 매료되어 독일을 짝사랑했다. 지금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모든 것에 호기심이 가득찼던 소녀시절만큼의 독서량에는 반도 미치지 못하지만 1,2年전쯤부터 독일 민담에 관심을가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전래동화처럼 그 나라의 민담이 그나라의 문화를 또 문학의 밑바탕을 알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담에서부터 ‘그림형제의 가정동화’까지 접했다.프랑스문화와 관련된 이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다시 프랑스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프랑스민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독일민담과 동화를 보면서(특히 그림형제의 가정동화) 우리나라의 민담이나 전래동화와 매우 닮아있고 안데르센의 동화와도 거의 비슷함을 발견했다. 프랑스의 민담 또한 다른나라의 민담과 매우 닮아있다. 따라서 민담은 프랑스의 것이 우리의 것이고 또 우리의 것이 프랑스의 것이며, 더 나아가 세계의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민담이란 그 민족의 것이든 다른 민족의 것이 전파되어 온 것이든 일단 그 민족 속에 정착되면 그 민족만이 지니는 특성 속에 여과되는 것이므로 프랑스와 다른 나라의 똑 같은 두 이야기 속에서 어느 점이 다른지 특성의 차이를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다. 닮은 것이면서도 은연중에 다르게 나타나는 것, 그것이 곧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한다.프랑스 최초의 민담집은 1462年에 쓰여진 “신 백화”(Cent Nouvelles Nouvelles)이다. 문예부흥기에 이르러서는 이탈리아식 단편형식이 유행하여 이탈리아 작가들을 모방하여 많은 민담을 소재로 삼았다.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민담을 멸시하는 경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민담을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어린아이들을 위한 민, 그리고 문화는 상대적이므로 프랑스민담과 독일민담을 비교하면서 프랑스문화를 살펴보기로 하겠다.민담에 나타나는 신비성은 독일에서는 원시의 숲 속에서 일어났던 추억을 간직한듯 비법과 주술로 가득찬 신비의 장소들이 주류를 이루는 반면, 프랑스에서는 난폭한 행위가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신비롭고 명랑하고 부드러운 요소들이 한 데 어울어질 뿐만 아니라 아주 독특한 해학으로 더욱 흥미를 준다. 그러므로 마술에 걸린 듯 가끔 통일성이 없어 보이고 엉뚱한 세계를 넘나드는 듯 하다.먼저 그 환경면에서 보면, 독일 민담에서는 모험, 시험, 탐색 등이 거의 언제나 가장 깊은 숲 속에서 이뤄지는 반면에, 프랑스의 것에서는 보다 보편젹이고 다양하고 밝고 변화가 많고 따라서 대하기보다 더 친숙한 장소 즉, 집 근처의 샘 속, 일하는 밭이나 포도밭, 정원, 길 가, 하수구, 화덕, 바다, 섬 등이다.둘째로는 환상적인 등장물로 보면 독일 민담에서는 아주 다양하게 나타나고 프랑스의 것에서는 집약되어 있다.독일에서는 난장이만 해도 수염난 것, 머리털이 난 것, 무쇠로 된 것, 숲에 사는 것, 동굴에 사는 것, 광산에 사는 것 등 다양하고, 그 이름도 또한 다양하다. 그 밖의 등장물로 거인, 물의 요정, 야인, 백조 소녀, 철인, 산인 등이 있다.반면에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등장물들은 요정과 식인귀 두가지로 크게 집약된다. 난장이 이야기는 거의 없다. 페로 이래로 신비담을 “요정이야기”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그의 의 서문에서 그는 자기가 쓴 이야기들을 라고 부른 것만하여도 그렇다.셋째로 주술물로 보면 독일 민담에서 자주 나타나는 요술 거울은 프랑스 민담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동물을 통해서 똑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프랑스에서는 합리적이고 친근한 면이 더 강조된다. 합리적인 프랑스인의 문화와 생각은 그때부터 이어져내려온 것같다.프랑스인은 빨간불이라 하여도 다니는 차가 없으면 주위를 둘러보고 건너고, 독일은 차가 없어도 빨간불엔 절대 건너지 않고 이탈리아인들은 빨간불에만 건넌다고 했던가.한 번도 그 잔인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일이 없다. 피가 흐르는 장면이나 처형의 고통을 한 번도 강조한 적이 없다. 그림형제의 동화집에서는 이야기 속의 마음씨 나쁜 이복 언니들이 맞지 않는 작은 구두에 그녀들의 큰발을 억지로 집어넣기 위해 칼로 발을 자른다. 흐르는 피가 구두와 흰 양말에 빨갛게 흘러내려 속임수임이 드러난다. 신데렐라가 왕자의 결혼한 후에 비둘기들이 언니들의 눈을 뽑는다.그 묘사와 방법, 구체적인 차이가 있지만 독일의 민담에도 프랑스의 민담, 동화에도 지금의 동화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잔혹하고 엽기적인면이 많다. 강간, 아동학대, 그리고 내다버리고 돌보지 않는 것이오늘날 신문의 헤드라인과 영화의 주된 내용이라면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러한 내용들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많은 동화들의 중심 주제 - 원래 만들어진 내용 - 이기도 했던 것이다. 오늘날 많은 비평가들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 그리고 그들이 따라 부르는 -많은 동화들과 노래들이 광기, 술취함, 사람과 동물을 갈기갈기 찢는 것, 거짓말, 그리고 뻔뻔스러운 인종 차별의 주제 등을 교묘히 위장한 근본적으로 불건전한 내용이라고 계속해서 주장한다. 사실 많은 이야기들이 이 모든 요소들뿐만 아니라 더한 것도 담고 있다. 원전대로 이야기할 때 특별히 더 그러하다.그런데 동화작가들이, 또 민담에서 왜 부도덕하고 비인간적인 내용들을 다루었을까?한 가지 대답은 엘리자베스 시대부터 19세기 초까지 어린이들이 작은 어른으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가족들은 좁은 공간에서 갇혀 살았다. 따라서 아이들은 어른들과 같은 시간대에서 생활을 했으며, 음탕한 말을 듣거나 따라했고, 어른들의 성적인 농담에 무방비 상태였다.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술주정을 목격했고 음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공개 태형, 교수형, 할복자살, 족쇄형 등을 마을 광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으므로 폭력, 잔인함, 그리고 죽음 등이 아이들에게 낯선 것이 아니었다. 삶은 험악한 것이었다. 동화는 그러한 냉혹한 현실에다 행복한 환상을 가미했다.분으로 끌어 올리려 하지 않고 청자의 흥미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소박한 주인공의 모험을 더 부각시킨다.구전본에서 소개되는 왕은 마치 부유한 농삿꾼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신분은 왕이면서도 하인들의 일을 칭찬도 하고, 목장에서 돌아오는 양치기를 마중도 하며, 자신이 손수 시장에 가기도 하며, 딸들이 사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서 시장에서 사다주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나타난다.문득 강의시간중에 프랑스 대중들에 언급으로 인하여 내가 프랑스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부분이 떠올랐다. 프랑스혁명, 그리고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과 왕족과 귀족을 처형한 역사, 절대 정치적 문제에 휘둘리지 않고 아닌건 아니다라고 외칠 줄 아는, 그래서 가장 정치가 어렵다는 나라……서민중심의 사상은 거기서부터 비롯된 것같다.프랑스에 비해 아주 뒤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나라도 서툴게 나마 서민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언젠가 그 일예로 고스톱을 들었던 기사가 생각난다. 화투자체는 우리나라의 것이 아니지만-일본이 우리나라의 정신문화를 뒤흔들어 놓고자 화투를 한국에 들여왔고 정작 일본인들은 화투를 치지 않지만 유독 한국인들만 화투를 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이미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게 고쳐졌고 그 게임방법또한 한국에서 다시 만들어지고 쓰여졌으므로 화투는 이미 한국의 문화이다. 이런 화투에 요즘들어 변화가 생겼는데 예전에는 민화투가 유행했고 나이드신 어르신들은 아직 민화투를 즐기시지만 온라인 게임등을 통해서 젊은층이 고스톱을 즐기고 맞고라는 방법등으로 새롭게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민화투가 유행하다가 고스톱으로 바뀐 것이, 젊은층이 즐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냐 하겠지만 그 속에는 커다란 문화의 변화가 숨어 있다고 한다. 민화투에서는 서민을 상징하는 피가 전혀 쓸모없는 존재로 점수에 상관이 없어 버려지지만 고스톱에서는 왕족이나 귀족을 상징하는 광이나 각종단들도 점수를 부여받긴 하지만 특히 피가 모여서 이루는 점수가 가장 크며 피박이라는 벌점이 있다는 것이다. 으며 교훈을 주거나 교육을 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민중의 유산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학술적인 의도가 짙다.는 양적인 면에서 보다 세배는 길다. 그리고 에는 프랑스의 모든 작품과 마찬가지로 ‘도덕’ 조항이 있다.사랑으로 가득 찬 미덕과 기다림의 미덕은 에도 거의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두 번째의 교훈, 여성이 추구하는 결혼생활의 행복은 그림의 작품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에서 왕자와 공주는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산다. 그러나 에서는 결혼까지가 이야기의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어머니와 아내의 갈등 모습이다. 결혼을 하면 어머니와 아내사이에서 갈등을 겪어야 하는 우리 네 모습이 이야기 속에 나타난다.숲 속의 사랑 부분에서도 정식 결혼이 아닌 동거의 형태가 나타난다. 왕자는 인간을 잡아먹는 마녀 출신인 어머니 때문에 숲 속에서 있었던 일을 숨긴다. 두 명의 자녀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은 계속 된다. 왕자와 공주가 정식으로 결혼하게 되는 것은 2년이 지나 아버지 왕이 돌아가심을 통해서다. 왕자가 왕이 되고 겨우 안정을 찾지만, 왕의 가정에는 또다시 시련이 닥친다. 악의 상징인 늙은 왕비가 선의 상징인 젊은 왕비와 두 자녀를 잡아먹으려 한다. 이것은 에서 두 아이를 잡아먹으려는 마녀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들 셋은 하인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벗어난다. 프랑스 민담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도움을 주는 사람의 모티브이다. 독일민담이였다면 요술지팡이쯤되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기술중심적인 독일과 인간중심적인 프랑스의 틀린점이 아닐까.한때 독일을 사랑했었고 지금은 프랑스를 꿈꾸고 있는 나이지만 같은 아시아면서도 일본과 한국이 다르듯 독일과 프랑스가 이처럼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프랑스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취업등으로 그다지 여유로운 시간은 아니지만 틈틈이 프랑스문화와 관련된 책을 접하고 졸업전에 파리로 여행을 가고 싶다. 일주일이 되었든 한달이 되었든 말이다.어쩌면 나는 고등학교때부터 나는 나의 작은 파리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홍대문화의 자유분음사)
현대사회의 QK른 움직임에 대해"Nomadism"이라고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유목"은 음식이나 물 같은 자원을 찾아 이동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과거의 인디언이나 북극인들, 몽고인들이 사냥이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시즌에 따라 옮겨다녔다.현대의 새로운 유목민은 중간이상의 계급의 현대의 빠른 발전에 발맞추어 빠르게 움직여다니는 이들을 말하는데 이런 사람들을 위해 작고 가벼운 제품들이 등장했다.과거에나 현재나 유목민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의 특징은 심풀하고 미니멀리즘적인 제품이다,방 한 칸만한 컴퓨터에서 지금의 컴퓨터로, 노트북으로, PDA로 GPS등등..휴대폰의 등장도 매우 획기적이었지만 우리나라만 봐도 그것의 크기가 작아지고 점점가벼워지고 또 다른 제품의 기능과 결합되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화 PDA, 시계가 결합된 제품도 있고 썬글라스 같은 모니터도 있고, 아무튼 앞으로는 제품명을 뭐라 칭하기 힘든 여러 가지 기능이 결합되어 제품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뒤이어 가상현실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MP3 PLAYER가 그 대표적 예인데 OBJECT에서 가상현실로 변한 것이다. 팩스, 전화기도 컴퓨터 속으로 가상현실이 되어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제는 라이도 TV까지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아직은 조금 속도가 느린 단점이 있지만....팩스는 이제 더 이상 현실세계에서 필요가 없어졌고, 계산기는 발명된지 50년이 넘었으나 가상현실에서도 똑같은 디자인이다.현대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런 디자인을 시작했고 또 주목 받는다. IDAS에서도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전에 2D DESIGNER들이 이런 일을 했지만 이제는 제품 DESIGNER들이 이것을 해야하는 것이 문제다.디자인이 모두 가상현실이 되면 필요한 것은 빛+공간뿐이다.뒤이어 교수님의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제품디자인을 공부했다. 교수님의 말씀으로는 앞서 말한 'NOMADIZM'과는 상관이 없다고 했지만 꼭 그렇지 않았다. 포트폴리오를 다 보고나선 그것들의 색깔이 확연했다. 모던하고 미니멀리즘적이고... 유목민들이 사용하는 제품의 특징과 같다. 아무래도 그래서 포트폴리오전에 그런 현재의 추세를 덧붙이신건 아닐까.디자이너는 전시용 디자인을 해보는 것도 좋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생각도 자유로워지고 기 쉐입이 다시 자신의 쉐입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 예로 자신이 전시한 의자가 면도기의 쉐입으로 활용 된 것이과 재떨이 들이 있었다.실용 중심적인 미국을 한 눈에 할수 있는 안전중심으로 디자인한 손잡이가 눈길을 끌었다.후에 나온 이야기지만 디자이너는 한 재료를 3-4년 사용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그건 그 재질의 유행기간이 그 정도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교수님의 작품도 시기에 따라 재질의 사용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과학의 발달에 한계를 정할 수 있는가. (산업디자인학과 4학년 9947061 정윤빈)과학기술은 인간에게 천사인가,아니면 악마인가.아침에 눈뜨고 일어나 다시 잠자리로 들기까지 우리는 무수한 과학 기술들과 생활하고,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거나 행동하는 것에서 그것의 혜택을 받고있으나 현대인의 스트레스중에서 그것에서부터 비롯된 것도 적지 않다.나는 책에서 언급된 “어떠한 기술에도 반드시 폐해나 부작용이 수반되게 마련이며 100%좋은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따라서 과학의 진보를 무조건적으로 가로막을 수도 없고 그 폭주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닌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이 만들어내고 발전시켜온 과학은 다분히 인간을 닮아 있다. 마치 우리의 자식들인냥……인간 또한 완벽한 선을 가지지 않았으며 완벽한 악을 가지지도 않았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진화를 하고 지적인, 고학력의 사람들을 넘쳐나게 쏟아내고 있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이것이 인간성의 진화에는 이바지 하였는가. 전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인간은 진화하였지만 역사적 경험을 통해 얻은 보편적 가치가 축적된 인간성의 진화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히틀러의 나치가 유럽을 얼어붙게 했을 때 세계의 지식인들은 괴테와 쉴러와 휠데를린의 나라, 독일이 그럴 수가 탄식했다. 핏속에 면면이 이어져 흐르고 있을 독일인들의 지성이 홀로코스트를 저질렀다니 믿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나치를 제일 먼저 지지한 집단의 하나가 독일 대학생들이었고 지식인이었고 교회였다. 종교 박해를 피해 바다를 건너와 민주주의를 이룬 청교도의 나라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할 수가 하고 세계의 이성들은 허탈해했지만 대다수 미국인들은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다. 1960년대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의 중심이었던 미국 대학에선 산발적인 반전시위가 벌어졌을 뿐이다. 사람은 그들의 앞 세대가 이룬 역사·문화적 경험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은 개별 인간들이 배고 집어삼킬 먹이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도 야생의 동물과 다름없이 본성을 포기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생명체일 뿐인 것이다.그래서 더욱 우려가 되는 것이다. 완벽하지않은 인간이 완벽하지 않은 과학기술과의 만남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더욱 예상하기가 힘들다.미국 피츠버그대학의 윌리엄 킹 교수는 '정보통신과 미래의 사회'라는 주제발표문에서 "인공지능은 우리의 삶을 보다 편하고 즐겁게 만들 것이며,인류는 전지구적인 정보 공유의 길로 나아갈 뿐 아니라 인간의 창조력은 향상되고 인간 사회의 많은 불일치들이 발달된 통신에 의해 해소되는 것이 긍정적 시나리오"라고 말했다.그는 부정적 시나리오에 해서서는 “프라이버스가 성립되지 않고 과적인 정보에 시달리면서 대분의 사람들이 자제력을 상실하게되는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사이버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고 디지털화 될 수 있는 모든 것은 가치를 상실하게 되며 창조적인 작업을 위한 동기는 극히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윌리엄 킹 교수는 "긍정적-부정적 시나리오는 둘 다 실현 가능성이 있지만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 야기하는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부정적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현재 대두가 되고 있는 핸드폰 문제가 가장 적절한 예일 것같다.중·고교 여교사 "핸드폰 몰카…교실이 무서워"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를 쓰는 중·고생이 급증하면서 학내 ‘몰카’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학생들의 왕성한 호기심에 시달려온 여교사들은 카메라폰 때문에 치마입기를 아예 포기하는 등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지난해 12월 서울시내 A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수업시간 중 휴대전화에 장착된 디지털 카메라로 여교사의 치마 속을 몰래 찍으려다가 혼쭐이 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 교사들은 아침조회시간에 휴대전화를 모두 수거했다가 수업이 끝난 후 돌려주고 있다.남자중학교에서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이모씨(28·여)는 “어린 학생들일수록 카메라가 장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 휴대전화를 수거했다가 다시 돌려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안한 마음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수업시간에 여선생님의 치마 속을 몰래 들여다보려는 남학생들의 시도는 최근의 일은 아니다. 회사원 김모씨(28)는 “중학교에 다니던 10여년 전에는 자동차 백미러에 붙이는 꼬마거울이 여선생님의 치마 속을 훔쳐보려는 악동들에게 인기가 높았다”며 “볼록거울이라 다양한 각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이제 장난으로 넘겨버리기에는 문제가 있다. 손거울과 비교하면 폰 카메라는 최첨단 몰카 장비인 셈이다. 2001년 처음 선보인 이후,최근에는 거리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고성능 줌기능과 밝기 조절은 기본이고 해상도 역시 30만 화소에 달해 웬만한 디지털 카메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또 사진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실제 인터넷 폰카메라 관련 사이트나 게시판에는 계단 아래서 위를 보고 찍은 스커트 입은 여성이나 미니스커트 사이로 보이는 속옷 사진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여성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지난해 개봉해 많은 남성들의 동감을 얻으며 인기를 모은 영화 ‘몽정기’는 사춘기 남학생들의 성적 호기심을 가볍고 발랄하게 표현하고 있다. 실제 대부분의 남성들은 사춘기 시절 여선생님을 대상으로 성적 관심을 가졌던 경험을 아련한 추억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폰 카메라를 이용한 몰카는 순수한 호기심을 넘어선 범죄행위일 뿐이다./김미현 HYPERLINK "mailto:mihkim@sportstoday.co.kr" mihkim@sportstoday.co.kr한겨레 2003-04-21 18:23:00기사에서 다루었듯 현재 폰카메라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요즘 초등학생까지 들고 다니는 휴대폰을 보면,이것이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를 생각해본다.바야흐로 "휴대폰 만능시대"이다.언젠가 해발 7백50m의 산봉우리에서 등산객은 자기집 동네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아이들에게 먹일 자장면을 주문할 수 있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에개폐기를 원격 조정하는데 쓰이기도 한다.휴대폰 결제가 시작되면서 각종 금융 업무가 가능해졌고,미아 방지를 위해 핸드폰 위치까지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또 휴대폰이 신용카드 구실을 해서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에서의 물건 구입이 더욱 손쉬워질 것으로 보여 휴대폰의 사용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예견할 수 없게 됐다.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수단으로 나온 핸드폰이 사람간의 정감을 끊어버릴때가 있다. 대화의 맥을 흔들어놓거나 회의시간에 벨소리가 울려 분위기를 망쳐놓는다.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첫 회의를 시작하면서 한 첫 마디는 휴대폰을 꺼달라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그런 당부를 했을까.병원은 물론 각종 공연장에서도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어댄다. 청각의 침해도 분명 사생활 침해다.우리는 타인이 내 물건을 가져다 쓰는 것에는 민감하면서도 청각을 침해당하는데는 관대하고 무신경한 것 같다. 이같은 휴대폰은 사용자에게 생활의 편의성을 제공해 인간의 의식까지 바꿔놓는다.우리는 단 하루도 핸드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는 힘들어졌다.그 어떤 장소에 있어도 벨소리를 울리고 답변을 강요한다.게다가 휴대폰 위치까지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다면,인간에겐 이제 "홀로 설 땅"이 없게 된다.폰카메라 문제의 야기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문제는 아닌듯 싶다. 카메라가 초소형으로 핸드폰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젊은이들은 사진찍기에 열광하며 새로운 유희꺼리를 찾고 보다 손쉽게 꼭 필요한 자료의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윤리관이 제대로 서지 않은 아이들이나 성인들조차도 그것을 좋지 않은 곳에 활용하면서 문제는 일어난 것이다.게다가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워하는 IT강국이라는 명예는 이 문제를 더욱 부추기고 확산시켰다.핸드폰이 인터넷 포르노공화국 만들기에 한몫 거든 것이다. 디지털카메라가 장착된 디카폰으로 연예인의 모습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폰파라치(핸드폰+파파라치)들이 등장한 것이다. 인터넷에는 폰카메라로 찍은 출처 불명의 노출 사진들이 심심찮게 돌아다닌다. 포털의 검색창루는 것을 시청했는데 지하철 안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우리 여성들을 안전하지 못했다. 예전에 카메라나 보통 디지털카메라보다 이 폰카메라가 더욱 위험한 것은 렌즈가 작고 문자를 보내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의 사진을 찍고 있고 자신이 타겟이 되고 있음을 전혀 눈치 챌 수가 없다는 점이다.이런 과학기술의 양면성을 보면 “기술의 파수꾼”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기술의 파수꾼으로 내세울 인간은 어디에서도 육성되고 있지 않고 관리방식의 문화를 만들어 놓지 않았다.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폰카메라와 같이 고도로 과학기술이 응집된 몰래카메라나 감청장비들이 즐비한 사회에서 또 과학기술을 반전하여 이번엔 이것들을 막는 기술이 나왔다는것이다.핸드폰에 장착하는 액세서리형 몰카 탐지기(놀라미)가 바로 그것이다.놀라미는 최소형(가로 2.5㎝, 세로 2.3㎝, 두께 1.2㎝, 무게 6g)으로 휴대하기 쉽고 1만2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이다. 놀라미는 휴대폰 착·발신때 깜빡거려 액세서리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반경 1m 범위 내에서 3㎒~4㎓ 영역의 주파수를 사용하는 몰래 카메라 및 도청기를 탐지한다. 또한 몰카 및 도청기가 있는 지 유무는 놀라미의 반짝거림이 점점 빨라질 수록 가까이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참 재밌는 세상이다. 편리한 기술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악용되고 사회적 문제가 되기 시작하면 다시 빠르게 기술을 개발하여 그 기술의 악용을 막는 기술을 다시 만들어낸다.그렇다면 그 기술이 악용되면 또 기술이 만들어지고 또 만들어지고 하는 다람쥐 쳇바퀴돌 듯 세상은 혼란스러워질 것이다.우리의 위대한 과학이 점점 빨라지는 과학의 발달을 계속 따라잡을 수 있을지, 그것이 기술의 파수꾼 역할을 해낼 수 있을 지도 의문이거니와 그 혼란스러운 사회속에서 불완전한 인간의 윤리성이 제대로 서 있을지도 의문이다.자연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 최선의 방법같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써 좀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는 사진기를 잘 다루지 못합니다. 물론 반 수동 카메라나 디지털카메라는 익숙하지만......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기초 사진학이라는 강좌를 수강하기도 했습니다. 카메라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다였지만 과제로 제출할 사진을 찍으며 전엔 해보지 못했던 고민과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영상매체론 강좌를 통해 세계 사진사 란 책을 접하게 된 것 또한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제게 그 조그만 물건(카메라)은 아주 매력적인 것이었습니다. 한 학기를 마무리 짖는 지금도 아직 잘 다루지 못하고, 잘 모르는 것이 더 많지만 사진이란 매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사진이 예술이냐, 단순한 기록의 의미이냐 라는 분쟁에서부터 자연주의, 포토저널리즘, 리얼리즘......모든 것이 지구의 순리처럼 돌고 도는 것인지, 지금의 일반화된 사진 조작이라든지, 합성이 이미 초기 사진가들에 의해서 행해졌다는 것은 의외였습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교묘하게 합성해서 마치 낭만주의나 자연주의에 회화작품처럼 만드는가 하면 사진에 수정을 가하고 붓질도 서슴지 않았고 밑그림을 그려서 사진을 갖다 붙여 인화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는 소위 픽토리얼리즘 사진...... 픽토리얼리즘 사진은 사진을 예술매체로서 그 가능성을 탐구하고 예술의 반열에 올려 놓으려 했던 최초의 노력이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지금의 조작 사진과는 다른 의미이지만 말입니다.그때의 사진가들이 대부분 2류, 3류 화가 출신이었다는 것이 아마도 예술가라는 칭호에 대한 열망과 명예욕 같은 것이 남다른 것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리고 그 후 그에 반한 의견으로 자연주의가 생성되고 또, 8장의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사진에서처럼 포토저널리즘사진 또는 매체사진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매체란 것은 제 생각으로는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사진이 매체사진,- 가장 구체적인 보도는 직접 사건을 관찰하여 또는 관찰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난 그 장소에 있었고 사건을 직접 보았으며, 사건은 이렇게 전개되었다."는 식으로 인쇄 매체에서 어떤 사건을 가장 사실과 밀접하게 보여주는 것은 적합한 헤드라인과 그에 맞는 사진이 된 것입니다. 한 직접적인 예로 2차 세계대전중의 [라이프]처럼 말입니다. 제가 어릴적 사진을 전공하신 어머니의 책장에서 [라이프]를 보곤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유년시절의 나로써 그렇게 리얼한, 아니 거침없이 사실을 보여준 매체는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철조망에 걸린 잘려나간 목들, 사지가 찢겨나가 도저히 누군지 알 수 없는 가족의 몸통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어린아이의 모습...... 그것을 보고있노라면 마치 그 총성과 오열의 울부짖음이 매쾌한 화약냄새가, 몸에 찌든 피냄새가 마치 내 것 같았습니다. 깨알 만한 글씨가 간혹 있긴 했지만 거의 사진으로 구성된 잡지 [라이프]는 순전히 연속된 사진으로 사건으로 이야기 하는데 지금으로 말하자면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처럼 아주 리얼하고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한편의 영화 같았습니다.마치......사진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그러나 오늘날의 그런 매체사진은 어떤 이의 말처럼 조금은 변질된 것 같습니다.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극화하던 것이 이제는 그 사진가들의 주관적으로 흘러가 때론 사실이 아닌 사진이 되기도 합니다.제 소견으로는 사진의 가장 커다란 특성은 현실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현실을 바탕으로, 현실을 재현해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사진입니다. 그것이 예술이건 기록이건 다르지가 않고 사진의 예술성은 기록성을 벗어난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것도 소위 사진작가라는 사람들 중에도 제법 있는데, 이것은 사진에 대한 아주 잘못된 인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사진에 찍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진에 찍혀 나왔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있거나, 있었던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이 사진의 가장 큰 특성으로, 사진의 현실성, 또는 기록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소위 '만드는 사진'이라고 해서, 기계적으로 찍지 않고 그 위에 손질을 가하는 사진들이 가끔 보이는데, 그 손질을 통해 사진의 표현 영역을 넓힌다는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되면 사진이 사진이라기보다는 회화, 즉 그림의 하나로 되기 쉽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사진을 찍지 않고 만들게 되면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인간의 의지가 개입하게 됩니다. 앞서 말한 요즈음의 보도사진, 매체사진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의지에 의해 조작된 기록을 놓고 순수 기록적 가치를 논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의 소중한 가치인 현실성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 현실성이 사진의 가장 큰 가치로 인정받는 것은, 기록에 관한 한 다른 어느 매체도 따라올 수 없는 사진만이 가진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존재이지만, 그 지혜가 오히려 본질을 해치는 경우가 있는데, 위와 같은 경우가 그 일례일 것입니다..사진은 우연이라는 말과 참 잘 어울립니다. 찰칵 하는 순간에 그것이 결정 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에는 우연이라는 행운도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연도 예술이라는 말일까? 솔직히 우연 자체가 예술일 수는 없습니다. 우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예술은 있을 수 있지만….그 우연을 소중하게 다루는 예술이 바로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우연은 일단 사진가의 계산에 따라 잡히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리하여 우수한 사진사일수록 그런 우연을 잡을 기회가 많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 그 현장에 마침 사진가가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 우연이 아닐 수 없다.
{그림형제와 독일 동화, 그 모티브에 관하여(독일문화와 예술)2001. 11. 27 (火){과 목 명독 일 문 화 사교 수 명오 정 진 교수님교 시화 5 , 6 교시학 과산 업 디 자 인 학 과학 번9 9 4 7 0 6 1성 명정 윤 빈그림형제는 독일헤센(hessen) 주 하나우(hanau)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는 프리드리히 그림이라는 이름을 같이 썼으며, 직업도 똑같은 목사였다. 증조부 프리히는 20세에 이미 이젠부르크 왕가의 궁정 목사가 되었고, 다음해에 부 목사로서 하나우로 초빙되었으며, 1706년 34세에 담임목사가 되어 그 지위에서 42년 동안 목회를 하였다.그의 유일한 동상 요나스 그림도 목사였고, 훌륭한 신학자였다. 이와 같은 선조 들의 신앙적 삶은 훗날 야콥과 뷜헬름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항상 같은 지에서 살았고, 함께 일했으며, 함께 학교를 다녔다. 야콥과 뷜헬름은 카셀에서 카톨릭 신학교를 졸업하였고, 대학공부를 형제는 그곳에서 법학자 사빙니 선생 밑에서 법학을 공부하였고 사빙니가 학문이란 고귀한 개념을 알게 한 그들의 첫 번째 선생이었으며, 그를 통해 브렌타노와 아르 님을 알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의 재촉에 의해 그림형제는 약 13년 동안 동화들을 수집, 1812년에는 [어린이와 가정동화] 제 1권을, 1814년에는 제 2 권을 완성하였으며, 1822년에 그 동화들을 위한 [주해서들]을 출판하였다. 이 동화 모음집에서 두 형제는 민족의 자연시학을 민요 민속전설 그리고 민속동화를 통하여 단순하고 충실하게 재생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이 동화들의 해설을 위해 쓴 [주해서들]은 깊이 있는 비교론적 동화연구의 훌륭한 저술로 평가된다.대학을 졸업한 후 야콥과 뷜헬름은 1805년에는 베스트팔렌의 제롬 왕의 개인 도서관원이 되었으며, 1809년에는 동시에 추밀원 배석판사가 되었다. 특히 1806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의 침략에 의해 국가에 불행이 닥쳐왔을 때, 그들은 조국의 명예와 해방을 위해 일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며, 독일의 통일과 주권동화는 끊임없이 변형되었다. 그것은 크게, 신화, 전설, 우화, 민담 등의 내용을 어린이들에게 알맞게 개작 또는 재구성한 민속동화와 작가의 창작에 의해 쓰여진 창작동화로 나뉘어진다.2 18세기 동화의 역사적 발전구전되어 전래해 온 민속동화들은 1696년 프랑스의 페로에 의해 문학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독일에서는 로코코 시대에 무조이스가 독일인의 민속동화를 출판하였고, 빌란트가 동화 서사시를 썼다. 창작동화의 전통은 본질적으로 17세기 말에 비로소 프랑스에서 꽃을 피웠다. 아동문학의 장르로서의 창작동화는 작가들이 어린이들의 양육과 서구 문명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는 정치적·사회적 담화에서 기초가 되었다.1697∼1789년의 프랑스의 대표적 창작동화 작가들은 레르떼, 드오니, 빌뇌브, 해밀턴 그리고 보몽 등이다. 이 여류작가들은 우아하고, 고상한 담화예술을 창작동화에 접목하였고, 그것으로써 사교계에서 즐거움과 지루함을 몰아내었다. 쉽게 말해 사교계의 즐거운 대화를 위해 동화가 이용되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의 동화는 궁정과 시민의 관념과 기대를 강하게 반영하였다. 그러나 창작동화는 구전되어 온 민속동화와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분명히 구별된다.독일에서 프랑스 동화들은 대부분 우선 번역 없이 친숙하게 수용되었다.그 이후는, 교육받은 계층들이 프랑스어를 말하고, 프랑스 문화를 찬미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8세기 중엽부터 페로의 동화와 프랑스의 요정동화 모음집에 대한 번역물들이 출현했다. 어린이를 위해 표면적으로 도덕적 요소가 강조된 작품으로는 보몽의 [어린이 매거진]으로 내용과 형식면에서 독일 동화작가들의 모델이 되었다. 특히 두 개의동화 [미녀와 야수]와 [왕자 스프리튀엘]에서는 소녀, 소년들을 위한 고전적 교제방식과 일상생활에 대한 도덕적 규범 등을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두 주인공인 미녀와 야수는 그들의 에로틱한 성향을 자제하고, 스스로 기독교적/시민적 도덕에 종속되기를 갈망한다. 기독교에 의해 주어진 굳은 행동규범과 금욕과 규범이 내면적으로 요구되었고, 잘학스트하우젠, 요르디 부인, 아힘 촌 아르님, 피이멘닌 부인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이름들을 뷜헬름은 그의 동화 모음집 제 1권에 기입하였다.1765년에 태어난 도르트헨 빌트는 1811년, 16세에 뷜헬름 그림에게 가장 아름다운 동화들을 들려주었다. 1811년 아름답고 따듯한 가을날 [한스의 트리네], [작은 식탁아 식사준비를 해라..], [홀레부인] 과 같은 동화들이 이야기되었다. 1812년 1월 9일 [여섯 마리 백조들], [노래하는 뼈다귀] 그리고 [애인 로란트] 등의 동화들이 정원 집의 난로 가에서 이야기되어진 후, 10월 9일 [세 난쟁이]와 [여러 가지 험한 일]과 같은 동화들이 이야기되었으며, 1813년 1월 15일 동화 [헨젤과 그레텔]이 이야기되었다, 젊은 소녀로서 도르트헨은 물론 [헨젤과 그레텔]을 뷜헬름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동화를 뷜헬름이 그녀의 받아쓰기에 따라 썼는지 어떤지는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도르트헨뿐만 아니라 빌트네 가족 전체가 모음집을 위한 소재를 제공했으며, 그 중에서 누구보다도 미와 재능이 뛰어난 그레트헨이 우뚝 서 있다, 그녀는 금발의 맑고 곱슬곱슬한 머리카락과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미인이었다. 그레트헨에 대해 가장 일찍이 날짜를 적어 넣은 동화들이 있었으니, 바로 [백조왕자], 같은 해의 [마리아 아이]그리고 [성실한 대부 슈페링에 대하여], 같은 해 쓰여진 [바보에 대하여], [공동사회에서 고양이와 쥐], [도난 당한 돈 헬러에 대하여] 등이다. 도르트헨과그레트헨의 동화들은 그들의 할머니 후버 빌트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 할머니 후버는 라틴어 사전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케스너의 딸이었고, 일찍이 문헌학을 공부한 매우 고상한 부인이었다. 그 빌트 부인이 두 개의 동화들을 뷜헬름에게 이야기해 주었고, 그 동화 가운데 그녀의 이름이 들어 있다. 즉 [여행 도중의 지푸라기, 석탄 그리고 콩]과 [이와 벼룩]이 그것이다.빌트 가족의 가정부로 일하던 늙은 마리아로부터 동화 모음집의 제 1권의 가장 아름다운 동화들을 얻는다. 곧 대해 기뻐하였고, 그 아이를 항상 따라 다녔던 천사들이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신앙심 없는 원천으로부터 나온 동화 주인공에게 뷜헬름은 신앙심 깊은 특성을 부여하였고, [오빠와 누이]에서는 약한 여주인공에게 저녁기도를 하도록 시켰으며, 신의 자비와 함께 그녀의 삶이 왕의 포옹을 통해 회복될 것이라는 모티브를 설명하였다.셋째, 최초에 보다 명백한 사회 비판적 동기들이 완화되었고, 사회 비판적 내용이 함께 약화되었다. 그래서 동화 [대부의 죽음]의 첫 번째 판에서 가난한 남자가 신을 그의 열 세 번째 아이의 대부로서 거절하였다. 왜냐하면 이 신을 부유한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중의 판에서 뷜헬름은 문장을 덧붙인다.그것을 그 남자는 말했다. 왜냐하면 얼마나 현명하게 신이 부와 가난을 나누는지 몰랐기 때문이다.뷜헬름은 이러한 보충과 함께 신이 하고자 뜻한 질서의 부정에 대한 그 남자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그 태도와 어리석음을 비방하였다. 뿐만 아니라 뷜헬름은 기독교의 틀을 보다 명백히 세우기 위해, 악마와의 만남을 통해 두 번째 판을 확대.부연하였다. [하얀 뱀]에서 뷜헬름은 왕에 대하여 모욕 받은 하인의 정당한 분노를 제거하였고, 그 하인을 훨씬 적게, 당당하고 자부하는 인물로 묘사하였다.넷째, 뷜헬름 그림은 동화에서 부분적으로 동시대의 교육관념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그는 [신데렐라]동화의 잔인한 마지막 장면을 두 번째 판에서 첨부하였다. 즉 뷜헬름은 비둘기들에게 교만한 자매들의 눈을 결혼식 축제 동안에 파먹게 시켰다.뷜헬름 그림은 동화들을 시민적 어린이 교육의 필요에 접합시켰으며. 그것으로서 하나의 발전을 스케치하였다. 상세함과 세밀함에 대한 그의 사랑이 미학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문체양식으로 조화된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특히 그의 언어 창조력, 단어의 위트, 리듬, 반봅 그리고 유모어는 아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제 그림 동화는 어린이를 위한 독본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읽을 때마다 새로운 사건으로 받아들여지자연적인 지원자난쟁이, 노파, 죽은 사람,동.식물베 짜는 소녀, 은혜 갚는 동.식물(死者), 잃어버린 구두,옷이 날개, 충실한 신하룸첼슈틸츠헨, 신데렐라,충실한 요하네스,어부와 그아내주술적인 대상들마술사, 사악한 인간, 선한 인간, 동물주술적인 물건의 잃음 / 찾음,신비한 영약알라딘, 덮여라 식탁보,뱀이 가져다준세 개의 잎초자연적인 힘이나 지식거인이나 난쟁이, 형제재주꾼, 형제들, 특별한 기술을얻는 형제들재주꾼 4형제, 3형제기타의초자연적인 이야기악마, 소녀나 부인, 성인추방당한 여자, 사악한 계모,금지된 방손 없는 소녀, 백설공주,마리아의 일기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동화 중 빨간 모자 소녀 , 가시장미 공주 , 신데렐라 , 장화 신은 고양이 의 모티브와 소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이들 이야기에는 초자연적인 적대자나 초자연적인 지원자 그리고 주술이 나온다. 인간을 잡아먹는 사악한 늑대가 등장하는 빨간 모자 소녀 는 크게 두 개의 소재로 구성된다. 그 하나가 늑대의 야수성이고 다른 하나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다. 이들을 좀더 세분하면 할머니 댁에 가는 길에 늑대를 만남, 할머니를 가장하는 늑대, 늑대의 베를 갈라 희생자를 꺼냄, 배에 돌이 가득 채워진 늑대의 익사가 된다. 이 동화 역시 인과응보의 교훈이 담겨져 있다.가시장미 공주 는 주술에 결려드는 공주가 이야기의 핵심을 이룬다. 공주의 딸이 주술에 의해 깊은 잠에 빠져들고 백년 후 왕자가 나타나 공주의 주술을 풀어준다. 이것을 좀더 세분하면 자식을 원하는 부모에는 자식을 얻기 원하는 부모 요정들의 덕담과 악담, 주술에 걸린 공주, 주술의 풀림으로 나누어진다.자식을 원하는 부모에는 자식을 얻기 위한 순례, 개구리의 예언 등 작품에 따라 다른 모티브가 등장한다. 요정들의 덕담과 악담에 나오는 모티브로는 요정들의 초대, 초대받지 못한 요정들의 저주, 죽음의 저주를 백년동안의 잠으로 변화시키는 요정이 있다. 주술에 걸린 공주의 모티브로는 죽음을 벗어나려는 헛된 시도, 성과 물레, 일정기간동안 잠에 빠지는 성이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