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어가 걸어온 길고대 국어(古代國語) 중세 국어(中世國語) 근대 국어(近代國語)고대 국어 : ~ 통일 신라 중세 국어 : 10세기~16세기 근대 국어 : 17세기 ~ 19세기이 활동을 통해● 국어의 역사를 안다. ● 국어의 음운, 문법, 의미, 표기법의 시대별 변화상을 안다. ● 국어의 변화 과정을 현대 국어와 비교하여 설명한다. ● 국어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 듣고 읽는다.국어가 걸어온 길(1) 고대 국어 -고대의 국어생활의 특징 -국어의 기원과 형성 -고유명사 표기, 항찰 표 기의 원리 및 배경(2) 중세 국어 -한글 창제의 의의 -한글의 과학성 -중세 국어의 특징(3) 근대 국어 -한글의 확대 -근대 국어의 특징 -개화기와 외래어의 증가단원의 내용 구성준비학습] 다음 자료들을 살펴보고, 오늘날의 국어와 다른 점을 눈에 띄는 대 로 이야기해 보자1930년대의 책 광고1990년대의 책 광고1930년대-90년대 언어 비교국문 전용 (영어가 많아짐)국한문 혼용 (한자어 많음)어휘가로쓰기 분철 띄어쓰기 철저세로쓰기 연철, 분철, 중철 혼란 띄어쓰기 부족표기1990년대1930년대언어는 변한다 = 역사성(1) 고대 국어(古代國語)① 국어의 뿌리와 줄기국어는 아득히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와 그 일대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한 때에 형성되었다. 그러나 고대의 언어 생활을 알 수 있는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국어의 뿌리는 무엇이며,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 왔는지 분명하게 알기 어렵다. 이런 점에 유념하면서 우리 조상들의 언어가 어떠했을지 그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보자학습 활동혼자 하기 상황 1을 보고, 고대 삼국의 언어가 어느 정도 달랐을지 말해 보자. 상황 2를 보고, 고대 삼국에서 지배 계층과 백성들은 어떻게 의사 소통했 으며, 서로 의사 소통할 때에 어떤 불편함이 있었을지 토론해 보자.문헌자료- '삼국지' 위지 동이전, '삼국사기', '삼국유사', 금석문 등계통-알타이어족으로 추정우리말의 옛모습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임(1) 고대 국어(古代國語)① 국어의 뿌리와 줄기상황1 때는 서기 642년. 뒷날 신라의 왕이 될 김춘추가 백제를 무찌를 구원병을 보내 줄 것을 고구려 보장왕에게 청한다.통역 없이도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고대 삼국의 언어는 큰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보임. 북방 부여계 언어와 남방 한계언어의 방언적 차이는 존재했을 것이다.)(1) 고대 국어(古代國語)① 국어의 뿌리와 줄기상황2⇨ 삼국시대에도 백성들은 가옥이나 토지를 소유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문서로 기록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을 표기하는 문자는 없고 한문은 너무 어려워 일반 백성들은 사용할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지배층만이 한문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지배계층과 백성들 간의 의사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자의 필요성 증대 →차자 표기법의 발달, 훈민정음의 창제⇨ 삼국시대에도 백성들은 가옥이나 토지를 소유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문서로 기록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을 표기하는 문자는 없고 한문은 너무 어려워 일반 백성들은 사용할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지배층만 한문을 사용 →지배계층과 백성들 간의 의사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힘듦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문자의 필요성 증대 →차자 표기법의 발달, 훈민정음의 창제(1) 고대 국어(古代國語)① 국어의 뿌리와 줄기국어의 계통과 형성○ 국어의 계통국어가 알타이 어족(語族)에 속할 가능성이 있음.(가설)북방 부여계어남방 한계언어고구려어신라어 백제어통일신라어고대국어고유명사표기 향찰전기중세국어후기중세국어근대국어현대국어훈민정음창제임진왜란개화기훈민정음 소학언해동명일긔 독립신문국어의 역사{nameOfApplication=Show}
1. 국어가 걸어온 길고대 국어(古代國語) 중세 국어(中世國語) 근대 국어(近代國語)이 활동을 통해● 국어의 역사를 안다. ● 국어의 음운, 문법, 의미, 표기법의 시대별 변화상을 안다. ● 국어의 변화 과정을 현대 국어와 비교하여 설명한다. ● 국어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 듣고 읽는다.(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학습 활동혼자 하기 우리 조상들이 왜 한자를 빌려 썼는지에 대해 말해보자.1. 중국 대륙의 앞선 제도와 문화를 수입 2. 통치의 한 수단으로 사용(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학습 활동2. 우리가 고대에 살았다면, 다음 경우에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어떤 방법으로 표현했을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1) 인명(人名)과 지명(地名) 적기 (2) 노랫말 적기· 인명 : 음을 한자의 음을 따서 적은 경우 예) 이가람 - 李可藍 / 김슬기 - 金霧氣 · 지명 : 한자의 뜻을 따서 적은 경우 예) 안골 - 內里 / 버들골 - 柳里 / 새터 - 新垈[한자의 음과 뜻을 따서 적은 경우] 예)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羅衣 薩多隱 故鄕隱 花皮隱 山骨, 福崇亞花 薩九花 牙器 進達來)(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2-1. 고유 명사의 표기-한자 차용素那 = 金川 흴 소 어찌 나 쇠 금 내 천(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알아두기한자를 이용하여 고유 명사와 같은 단어를 국어식으로 표기 1. 한자의 의미를 버리고 음만 빌려 오는 경우 예) '소나'를 표기하기 위해 '素那'로 적고 그 음을 빌려 옴. 2. 한자의 음을 버리고 뜻만 빌려 오는 경우 예) '소나'를 표기하기 위해 '金川'으로 적고 그 뜻을 빌려 옴.고유 명사의 표기(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학습활동한 사람의 이름을 '素那(소나)'와 '金川(금천)'으로 표기한 사실을 참고하여 고대 시기의 표기 방법을 설명해 보자.⇨'素那(소나)'는 어떤 사)은 吉로 표기 훈독(한자의 뜻만 빌려오는 경우) 永으로 표기(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 경덕왕(?~765) : 관제를 정비 우리말로 된 지명(地名)을 두 글자의 한자(漢字)로 된 중국식 지명으로 바꿈 759년에는 중앙 관부의 관직 이름도 모두 중국식으로 바꾸었다.(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학습활동함께하기 1. 경덕왕은 '길동군(吉同郡)'을 '영동군(永同郡)'이라고 고쳤다. 이것은 고유 명사 표기 방식 중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말해 보자.☞ '길동군(吉同郡)'을 '영동군(永同郡)'으로 바꾼 것은 한자의 뜻을 빌려 지명을 표기(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벌말 = 평촌(坪村) 평평한 마을(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첫째 그 당시 선진 문명을 대표하는 문자가 한자였다는 점, 둘째, 선진 문명을 먼저 접한 집권층이 한자를 정치적 도구로 받아들였다는 점 한자어나 외래어의 남용을 하지 말자.알아두기고유어와 한자어의 경쟁= 널리 쓰이는 한자어를 인정하되, 고유어를 한자어로 대체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한자어와 고유어솔고개송현동 (松峴洞)밤골율곡(栗谷)새터신기(新基)안골내리(內里)애오개아현동 (兒峴- 阿峴)벌말평촌(坪村)(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3-3. 종합적인 표기 체계 - 향찰(鄕札)善化公主主隱 선화 공주님은 他密只嫁良置古 남 몰래 결혼하고 薯童房乙 맛둥서방을 夜矣卯乙抱遣去如 밤에 몰래 안고 가다.선화공주 님(주)은 ( ) - 음남 그(밀)지 얼(가)어 두(치)고맛(서)동방을밤(야)에 몰 안(포)고 가(거)다(여)善:착할, 좋을 선, 化:될 화, 隱:가릴, 숨을, 숨길 은, 他:남, 타인 타, 密:깊숙할, 은밀할, 빽빽할 밀, 只:다만 지, 嫁:시집갈 가, 良:좋을 량, 置:(00을 00에) 둘 치, 薯:서여 마, 童: 아이 동, 房:방, 서방 방, 乙:새을, 夜:밤 야, 矣:어조사 의, 卯:토끼 묘, 抱:안을 포, 遣:보낼 견, 去:갈 거, 如:같을, -다울(인간답다) 활을 영위하자 하였다. 서동이 크게 웃으며 “이것이 무엇이냐?”하니 공주는 “황금인데 백 년 동안 부자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하였다. 서동은 그 말을 듣고 “내가 어려서 마를 캐던 곳에는 이것이 진흙처럼 쌓였었다.”하였다.(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공주가 듣고 깜짝 놀라 “이것은 천하의 보배인데 당신이 금이 있는 곳을 알았으니 이 보배를 우리 부모의 궁전으로 보내는 것이 어떠합니까?”하였다. 서동이 “좋다.” 하고 금을 모았는데 그것이 구릉처럼 쌓였다. 용화산 사자사 지명법사가 머무는 곳에 가서 금을 보낼 계책을 물으니 “금만 가져오라”고 하여 공주는 편지를 쓰고 금을 법사에게 가져다 주었다. 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하룻밤에 신라 궁중으로 실어다 놓았다. 진평왕이 그 신통한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존경하고 항상 서신으로 안부를 물었고, 서동은 이로 인해서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하루는 무왕이 부인과 사자사에 가려고 용화산 밑 큰 못가에 이르자 미륵삼존이 못에서 나타나 수레를 멈추고 경의를 표하였다. 부인이 왕에게 “이곳에 큰 절을 세우는 것이 소원입니다.”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지명법사에게 나아가 못을 메울 일을 묻자 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산을 무너뜨려 하룻밤 사이에 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이에 미륵삼회를 법상으로 하여 전, 탑, 낭, 무를 각각 세 곳에 세우고 절 간판을 미륵사(국사에는 왕흥사라 했다)라 하였는데, 진평왕은 많은 공인들을 보내어 도왔다. 지금도 그 절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법왕의 아들이라 하고 여서는 과부의 아들이라 하니 확실치 않다.) - [삼국유사 권2 기이. 무왕](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배경설화의 신화성] ① 탄생담 : 이물교혼담을 내포한 야래자(夜來者) 전설과 비슷함.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의 어머니는 못가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그 못에 사는 용(龍)과 정을 통하여 아들 장을 낳았다. 장은 어려서부터 마(서.薯)를 캐어 팔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서동(맛둥해 어휘적 의미 나타내는 요소는 한자의 뜻을 따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 한자를 우리말로 표기하기 위한 노력 한자는 뜻 글자이기 때문에 우리말을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당시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한자를 이용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말을 기록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고유 명사를 표기하고, 더 나아가 우리말 어순에 따라 한자를 나열하여 문장을 쓰기도 했다. 즉, 한자를 빌려다가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에 맞게 바꾸어 쓰려는 노력을 했던 것이다. 이 같은 노력으로 마침내 향찰 세계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말에 맞는 문자 체계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향찰(鄕札) 향찰은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의 형태와 의미 요소를 전면적으로 기록하는 표기 체계이다. 향찰은 국어 문장 전체를 적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앞의 고유 명사 표기법과는 다르다. 향찰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자를 나열해 놓은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 신라인들은 이것을 보며 한자로 읽은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 읽었다. 향찰은 한자를 빌려 쓸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우리 조상들이 고안해 낸 기록 방식으로 가장 종합적인 체계를 갖춘 것이다.(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고대 국어(신라 이전의 우리말)] 1. 음운 ① 자음 : 예사 소리(ᄇ, ᄃ, ㅈ, ᄀ)와 거센 소리(ㅍ, ㅌ, ㅊ, ㅋ) 두 계열이 있었고, 된소리 계열은 존재하지 않았던 듯하다. ② 모음 : 중세 국어와 마찬가지로 7모음 체계( ․, ㅡ, ㅣ, ㅗ, ㅏ, ㅜ, ㅓ)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③ /ᄀ/, /ᄃ/, /ㅂ /, /ㅅ/이 약화, 탈락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아, 탈락되기 이전의 형태를 가진 말이 많이 있었다. 예) 몰개(모래), 가시개(가위), 바(바 바다), 사비(새우), 더버서(더워서), 말밤(조(藻)), 가슬(가을), 겨슬(겨울)夜入伊遊行如何[밤드리 노니다가] ③ 종결 어미 : 齋(-저), 如(-다 : 설명 어미), 古(-고 : 의문 어미) 예) 逐內良齊[좇누아져], 知古如[알고다], 何如爲理古[엇디리고](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옛 말의 기록(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기록방법) ① 임신서기체(壬申誓記體) 6-7세기 유물로 추정되는 비석에서 나온 글로 한자를 우리말 어순에 맞도록 배열한 것이다. 임신서기체의 한문 문장은 한문의 작법을 우리말 어순에 맞도록 배열한 것이며 한자를 빌어 우리말 자체를 표기한 것은 아니다. 壬申年 六月 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三年 以後 忠道執持 過失牙誓 苦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亂世 可容行誓之 又別先辛末年七月甘二日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임신년 육월 육일 이인병서기 천전서 금자삼년 이후 충도집지 과실아서 고차사실 천대죄득서 약국불안란세 가용행서지 우별선신말년칠월감이일대서 시상서예전윤득서삼년] (임신년 6월 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여 기록한다. 하느님 앞에 맹세한다.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도를 執持하고 과실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일, 이 일을 잃으면 하느님에게 큰 죄를 얻는 것이라고 맹세한다. 만일, 나라에 편안하지 않고 크게 세상이 어지러우면 가히 모름지기 행할 것을 맹세한다. 또, 따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세하였다. 시·상서·예기·좌전을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세하되 3년으로써 하였다.)(1) 고대 국어(古代國語)② 고대의 국어 생활② 이두(吏讀) 신라 31대 신문왕 때 설총이 표기법의 통일을 위해 정제 대성한 것으로, 향찰식 표기수단과 유사하다. 한문어의 보조용이 된 것이 향찰과 다르다. 신라시대에 널리 사용된 향찰 표기 체계는 사대 중문으로 정치적 기반을 마련한 고려조에 들어 상층 지식계급에서 멀리 하게 됨에 따라 자연히 쓰지 않게 되고 말았다. 그렇게 되자 단어의 배열 순서가 한문과는 달리 국어의 구문에 맞는 일부 관계사나 특수어를 표기하여 일상 생활에 이용해 보려는 욕구에서 창안된 것이 바로 이두이며, ow}
1. 국어가 걸어온 길고대 국어(古代國語) 중세 국어(中世國語) 근대 국어(近代國語)이 활동을 통해● 국어의 역사를 안다. ● 국어의 음운, 문법, 의미, 표기법의 시대별 변화상을 안다. ● 국어의 변화 과정을 현대 국어와 비교하여 설명한다. ● 국어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 듣고 읽는다.(2) 중세 국어(中世國語)② 소학언해(小學諺解)· 표기상 특징 ① ㅸ, ᅙ, ㅿ 소멸 ② ㆁ,ㆍ 존속('ㅇ'은 종성으로만 존속) ③ 방점 사용 ④ 끊어적기가 나타나 끊어적기와 이어적기가 혼용. ⑤ 사잇소리는 'ㅅ'으로 통일되어 나타남 ⑥ 종성은 8종성으로 표기 ⑦ 명사형 어미 '-옴-/-움-'에서 ' -오-/-우-' 탈락 ⑧ 명사형 어미 '-기-'가 나타남 ⑨ 선어말 어미 '-오-/-우-'의 쓰임이 혼란스러움 ⑩ 간혹 어두 자음군이 보임. ⑪ 한자음은 (현실 한자음)을 사용하였다.16C 우리말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귀중한 자료. 선조 17년(1584)에 나라에서 교정청(校正廳)을 설치한 후, 선조 20년(1587)에 경서 언해 사업의 일환으로 출판(2) 중세 국어(中世國語)② 소학언해(小學諺解)孔·공字·ㅣ 會字·다·려 닐·러 ·샤·, ·몸·이며 얼굴·이 며 머·리털·이·며 ·· 父·부母 : 모· 받·온 거·시·라. : 감·히 헐·워 ·오·디 아·니 : 홈·이 : 효·도· 비··르·소미·오, ·몸·을 셰·워 道 : 도·를 行·하·야 일 : 홈·을 後 : 후世 : 셰·예 :베퍼· 父·부母 : 모 : 현·뎌케 : 홈·이 : 효·도· ··이니·라.더러, 에게말하여 ++샤+오형체[體], 의미 축소 '안면' +(대조보조) 부모께 받은[身] 몸+과 얼굴⇒'꼴받+(객체높임)+(받자)헐+우(사동접사)+어상+이오(사동접사 중복)비릇+옴(명사형)+이+오입신(立身)하여, 출세하여날리게 하여현저(顯著)하게, 드러나게셔+이오(중복사동접사)+어 한문의 '以'를 직역하여 나타난 표현임. '이로써, 그것으로써'孔子 謂 (이를 위) 曾子曰 身體 보중) + 효도의 끝(입신양명) ⇒ 부자유친, 부위자강출처 : 효경(2) 중세 국어(中世國語)② 소학언해(小學諺解)▶ 주제 : 명륜편-효지시종(孝之始終)(원전:효경) ▶ 요지 : 효(孝)의 시작은 몸을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고, 효(孝)의 마침은 입신출세(立身出世)하여 가문(家門)을 빛내는 것이다. 노래지희(老萊之戱)-70세에 어린애 옷을 입고 어린애 장난을 하여 늙은 부모를 위안하였다는 효자 노래자의 효도 망운지정(望雲之情)- 멀리 떠나온 자식이 어버이를 사모하여 그리는 정 반포지효(反哺之孝)- 자식이 커서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 회귤고사(懷橘故事)- 중국 후한의 육적이 원술의 집에 갔다가 대접 받았던 귤 3개를 어머니께 드리려고 가슴에 품어 가져 왔다는 데서 유래된 고사(2) 중세 국어(中世國語)② 소학언해(小學諺解):유·익 ·이 : 세 가·짓 : 벋·이요, : 해·로온 ·이 : 세 가·짓 : 벋·이 니, 直·딕 이· : 벋·며, :신·실 ·이· : 벋·며, 들: 온 ·것 한 ·이· : 벋·면 : 유·익·고, : 거··만 니·근 ·이·를 : 벋· 며, 아: 당·기 잘 ·· 이·를 : 벋·며, : 말··만 니·근 ·이· : 벋·면 해·로·온이·라.8종성정직한 이, 구개음화X진실한 이들은 것 많은 이, 박학다식(博學多識)속 빈 강정, 빛 좋은 개살구, 빈 수레가 요란하다아첨하기, 교언영색(巧言令色)益者三友 損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 友便僻 友善柔 友便 損矣 - '소학언해(小學諺解)' 권 제2, 선조(宣祖) 20년(1587년)주제 : 벗의 사귐(벗의 종류), 교우의 도리(2) 중세 국어(中世國語)② 소학언해(小學諺解)현대어 풀이 유익한 벗이 셋이고, 해로운 벗이 셋이니, 정직한 이를 벗하며, 신실한 이를 벗하며, 견문이 많은 이를 벗하면 유익하고, 행동만 익은 이를 벗하며, 아첨하기를 잘하는 이를 벗하며, 말만 익은 이를 벗하면 해로우니라.벗의 유형 : 유익한 벗 세 가지 + 해로운 벗 세 가지 ⇒ 붕우유신, 近墨 후기로 나누기도 하는데, 훈민정음이 창제되어 한글로 적은 문헌 자료가 많이 나온 시기가 후기에 해당하고, 그 이전 시기가 전기에 해당한다. 중세 국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된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둘째, 모음 조화 현상이 잘 지켜졌으나, 후기에는 부분적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셋째, 성조(聖詔)가 있었고, 그것은 방점(傍點)으로 표기되었다. 넷째, 중세 특유의 주체 높임법, 객체 높임법, 상대 높임법 등이 있었다. 다섯째, 고유어와 한자어의 경쟁이 계속되었고, 앞 시기에 비해서 한자어의 쓰임이 증가하였다. 그리고 말할 때는 우리말을 사용하면서 쓸 때는 한자로 쓰는 언문 불일치(言文不一致)가 계속되었고, 한글 문체는 아직 일반화되지 못하였다. 여섯째, 이웃 나라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중국어, 몽골 어, 여진어 등의 외래어가 들어오기도 하였다.(2) 중세 국어(中世國語)② 소학언해(小學諺解)∙ 각자 병서가 안 쓰임. 예) 말 ∙ 분철(끊어적기) 확대 예) 몸이며, 머리털이며 ∙ /ᅙ/이 안 쓰임.∙ 각자 병서가 쓰임. 예) 말 ∙ 연철(이어적기) 보편적 예) 말미, 미니라 ∙ /ᅙ/이 쓰임. 예) 배, 몯 노미표기법∙얼굴(형체)∙ 어린(어리석은) ∙ 서르(서로)어휘∙ 명사형 어미 '옴/움' 혼란 예) 비르소미라, 미니라 ∙ 명사형 어미 '-기'가 쓰임. 예) 아기 ∙ 'ㄹㅇ'형 활용형이 'ㄹㄹ'로 나타남. 예) 닐러∙ 명사형 어미 '옴/움' 규칙적 출현 예) 메 ∙ 명사형 어미 '-기'가 안 쓰임. ∙ 'ㄹㅇ'형 활용형 규칙적 출현 예) 달아문법∙ /ㅸ/이 소실됨 예) 해로〉해로온, 받〉받온 ∙ 모음 조화가 파괴됨. 예) 비르소미오 ∙ 방점 혼란 ∙ /ㅿ/이 소실됨.∙ /ㅸ/이 존재함. 예) 수 ∙ 모음조화가 규칙적임. 예) 메음운소학언해(16C)훈민정음(15C)구분(2) 중세 국어(中世國語)② 소학언해(小學諺解)1. 훈민정음의 창제자 : 세종 대왕이 집현전의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창제 2.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 : 구멍소리)ㅆ,ㅉᅀ(반치음)ㅈ,ㅊㅅ치음(잇소리)ㅃㅂ,ㅍㅁ순음(입술소리)ㄸㄹㄷ,ㅌㄴ설음(혀소리)ㄲᅌ(옛 이응)ㅋㄱ아음(어금니소리)병서자▶이체자▶가획자기본자▶ 이체자 : 가획의 원리 적용 안 됨 ▶ 병서자 : 나란히 쓴 글자 각자 병서 : 쌍자음(ㄲ,ㄸ,ㅃ,ㅆ,ㅉ) 합용 병서 : 다른 자음끼리 결합 - ㅂ계(ㅳ,ㅄ), ㅅ계(ㅼ,ㅽ) ,ㅄ계(ㅴ,ㅵ)(2) 중세 국어(中世國語)② 소학언해(小學諺解)② 소리의 성질에 따라ᅀ반치음ㄹ반설음ㅇㆅㅎㆆ후음ㅆ, ㅉㅊㅅ, ㅈ치음ㅁㅃㅍㅂ순음ㄴㄸㅌㄷ설음ᅌㄲㅋㄱ아음불청불탁전탁(된소리)차청(거센소리)전청(예사소리)울림소리안울림소리성질 위치(2) 중세 국어(中世國語)② 소학언해(小學諺解)⑵ 중성의 제자 원리 : 성리학에서 말하는 우주의 기본 요소 삼재(천,지,인)를 상형 초출, 재출, 합용의 원리 적용, 총 11자(단모음 7개, 이중모음 4개)ㅣ人(중성 모음)ㅝ ㆊㅠ ㅕㅜ ㅓㅡ地(음성 모음)ㅘ ᅹㅛ ㅑㅗ ㅏ天(양성 모음)④ 합용자 (②+②, ③+③)③ 재출자 (②+ㅣ)② 초출자 (①+①)① 기본자⑶ 종성의 제자 원리 : 종성부용초성 (終聲復用初聲) : 초성을 다시 종성에 사용함(2) 중세 국어(中世國語)② 소학언해(小學諺解)6. 소실 문자의 순서 : 10원(ᅙ)을 가지고 산(ᅀ)에 올라가서 사과(ᅌ)를 따먹었더니 씨( · )만 남았다.① 아(첫글자) 예) ⇒ 가을 ② 으(둘째 글자) ⇒ 항상 규칙적인 것은 아님음가(16세기부터 문란, 18세기 초 소실) 문자(1933년 이후)· (아래 아)ㅇ 예) 바 ⇒ 올 ⇒ 방올 ⇒ 방울16세기 말 (임진왜란 이후)ᅌ (옛이응)ㅅ ⇒ ㅿ ⇒ ㅇ 예) 짓+으니 ⇒ 지니 ⇒ 지으니16세기 말 (임진왜란 이후)ᅀ (반치음)ㅇ 예) +이+여 ⇒ 이여 ⇒ ⇒ 여 ⇒ 여 ⇒ 하여15세기 중엽 (세조 이후)ᅇ (쌍이응)① ㅋ 예) 다 ⇒ 켜다 ② ㅆ 예) 물 ⇒ 썰물15세기 중엽 (세조 이후)ᅘ (쌍히읗)① 오(양성 모음) 예) 돕+아 ⇒ 도 ② 우(음성 모음) 예) 덥+어 ⇒ 더 ③ 예) 기픈, 니믈 ② 끊어적기(분철) : 표의적 표기(의미를 살려서) 예) 깊은, 님을 ③ 거듭적기(중철) : 과도기적 표기(①+②) 예) 깁픈, 님믈(2) 중세 국어(中世國語)② 소학언해(小學諺解)9. 방점 ① 글자 왼쪽에 찍는 점(좌가점, 사성점) ② 성조(소리의 높낮이) 발생 ③ 임란 후 소멸(현대 국어의 경상도, 함경도 방언에 잔재) ④ 현대에서는 소리의 장단으로 변화(상성 ⇒ 긴소리)엿, ·랏, :0, 2, 1빨리 끝을 닫음, 받침 ㄱ,ㄷ,ㅂ,ㅅ으로 끝남입성:말2낮음 → 높음상성·미1높음거성나0낮음평성예방점 수소리종류(2) 중세 국어(中世國語)② 소학언해(小學諺解)10.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 ① 이상적 한자음(중국의 원음에 가깝게 표기) 예) 中 國 귁, 便 뼌 安 ② 형식 종성(글자의 완성도를 위해 초성, 중성, 종성을 모두 갖춤) 예) 世 솅 宗 ③ 이영보래 : ㄹ 종성의 한자음에 ㆆ을 나란히 적어 그 발음 이 입성임을 표시함 예) 戌슗(2) 중세 국어(中世國語)② 소학언해(小學諺解)※ 참고 문법 모음조화 : 양성 모음(, 아, 오, 옴)과 음성 모음(ㅡ, 어, 우, 움)이 자기끼리만 어울림 예) 메 : + 움 + 에 비르수미오 : 비릇 + 움 + 이오 초미니라 : + 옴 + 이니라 2. 두음 법칙 : 글자의 첫소리가 발음할 때 제약을 받음 예) 로동 ⇒ 노동, 녀자 ⇒ 여자 3. 구개음화 : ㄷ,ㅌ 이 ㅣ 앞에서 구개음(ㅈ,ㅊ)으로 변화하는 현상 예) 굳이 ⇒ 구디 ⇒ 구지, 같이 ⇒ 가티 ⇒ 가치 4. 원순모음화 : ㅁ,ㅂ,ㅍ 아래의 ㅡ 가 ㅜ 로 변함 예) 믈 ⇒ 물, 블 ⇒ 불, 스믈 ⇒ 스물 5. 어두자음군 : 합용병서(다른 자음끼리 합하여 글자를 이룸)를 초성에 사용함, 임진왜란 후 ㅅ계로 통일 예) 들, 메, 미니라 6. 르 불규칙 : '르'로 끝나는 어간 + 어/아 일 경우 'ㄹ'을 모음 사이에 표기함 예) 부르 + 어 ⇒ 불러, 이르 + 어 ⇒ 일러 7. 재음소화 표기 : ㅊ,ㅋ,ㅌ,ㅍ을 ㅈ+ㅎ,ow}
1. 국어가 걸어온 길고대 국어(古代國語) 중세 국어(中世國語) 근대 국어(近代國語)이 활동을 통해● 국어의 역사를 안다. ● 국어의 음운, 문법, 의미, 표기법의 시대별 변화상을 안다. ● 국어의 변화 과정을 현대 국어와 비교하여 설명한다. ● 국어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 듣고 읽는다.(2) 중세 국어(中世國語)① 세종 어제 훈민 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世․솅 宗종 御․엉 製․졩 訓․훈民민正․졍音 나 · 랏 :말 · 미 中듕國 · 귁 · 에 달 · 아 文문字 · · 와 · 로 서르 · 디 아 · 니 · · 이런 젼 · · 로 어 · 린 百 · 姓 · 셩 · 이 니르 · 고 · 져 · 홇 · 배 이 · 셔 · 도 · :내 제 · · 들 시 · 러 펴 · 디 :몯 · 노 · 미 하 · 니 · 라 · 내 · 이 · 爲 · 윙 · · 야 :어엿 · 비 너 · 겨 · 새 · 로 · 스 · 믈여 · 듧 字 · · · 노 · 니 :사:마 · 다 : · :수 · 니 · 겨 · 날 · 로 · · 메 便뼌安 · 킈 · 고 · 져 · 미니 · 라 - '훈민정음(訓民正音)', 세조(世祖) 5년(1459년)세종임금이 지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世∙솅 宗 御∙엉 製∙젱 訓∙훈民민正∙音 나∙랏:말∙미 中國∙귁∙에 달∙아 文문字∙∙와∙로 서르 ∙디 아∙니 ∙세종 사후에 기록되었음을 증명성조: 나∙랏:말∙미(평성-입성-상성-평성-거성)말이 :일반적 음성(말) 높임말(말씀)-의미축소나라의:나라+ㅅ(관형격조사)달라 - 다(다)+아달아(ㄹㅇ형-15c) 달라(ㄹㄹ형-16c)중국과(-에:비교부사격조사)한자와통하지 – (기) 다 8종성법자주정신달라서'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형식적인 종성으로 소리 및 의미 없음방점(사상점) : 소리의 높고 낮음을 표시중국의 원음에 가깝게 표기∙이런 젼∙∙로 어∙린 百∙姓∙셩∙이 니르∙고∙져 ∙ ∙배 이∙셔∙도 ∙:내 제 ∙∙들 시∙러훈민 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세종(世宗) 어지- 훈민정음 창제의 배경과 취지 *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 不相流通 故 愚民 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 予 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 易習 便於日用耳 국지어음 이호중국 여문자 불상유통 고 우민 유소욕언 이종부득신기정자 다의 여 위차민연 신제이십팔자 욕사인인 이습 편어일용이 월인석보본 훈민정음(月印釋譜本訓民正音)-세조(世祖)4년(1459)우리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2) 중세 국어(中世國語)① 세종 어제 훈민 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학습활동함께 하기 이 자료를 중심으로 중세 국어와 현대 국어를 비교해 보자.(1) 음운의 변화를 중심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① 글자 왼쪽에 찍힌 점에 기능에 대해 알아 보자.가) 음의 성조를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평성은 무점, 거성은 한 점, 상성은 두 점을 찍 어 표시하였다. 나) 방점은 음의 고저와 장단에서 변별력을 부여했던 것 같다. 예) :말(語) /․말(斗), :눈(雪) /․눈(眼) 다) 16세기(임진왜란)를 넘어 점차 의미상 변별력을 상실하면서 체계가 문란해지고 근대 국어에 들어서는 표기도 사라졌다.(대체로 임란이후 소멸)-유희 '언문지'에 서 불필요성 주장 라) 입성(1, 2, 0) : ㄱ, ㄷ, ㅂ, ㅅ 받침으로 끝나는 음. 마) 상성은 현대 국어에서 장음으로 바뀌었다. 중세국어에서 상성인 語와 雪은 장음 으로 거성이었던 斗와 眼은 단음으로 발음된다. 바) 성조가 소멸되고 난 뒤에도 그 길이만은 계속 남아서 의미의 차이를 구분해 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16세기에 소멸했으나 일부 방언(경상, 함경도 방언)에 남아 있다.(2) 중세 국어(中世國語)① 세종 어제 훈민 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평성 ㈇←입성↓↑은 상성이 장음으로 발달했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그 모음이 장음이었고 성조가 소멸한 뒤에도 그 음장이 그대로 남았기 때문이다.(2) 다음 표기가 현대 국어에서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해 보자① 다음 단어들이 음운상, 문법상, 현대국어에서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해 보자.근대 국어 시기에 순음(ㅁ, ㅂ, ㅍ) 아래에서 모음 'ㅡ'가 'ㅜ'로 바뀌는 원순모음화의 영향으로 '스믈'이 '스물'로 바뀌었다.스물·스·믈근대 국어 시기에 나타나는 구개음화의 영향으로 '디'가 '지'로 바뀌었다.펴지펴·디중세 국어 시기에 존재하는 어두 자음군이 소실되어 된소리로 바뀌어 'ㅳ' 이 'ㄸ'이 된 것이다.뜻을··들어두의 'ㅣ'에 선행하는 'ㄴ'이 탈락되어 'ㅇ'으로 바뀌었다. 어미 '-고져'가 '고자'로 바뀐 것은 근대국어 시기에 일어난 어미 모음의 양성화 경향 때문이다.이르고자 (말하고자)니르·고·져음운상의 차이점현대 국어중세 국어(2) 중세 국어(中世國語)① 세종 어제 훈민 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중세 국어에는 비교나 기준을 나타내는 부사격 조사 '에'가 있었다.중국과·귁·에문법상의 차이점현대 국어중세 국어② 다음 단어의 의미가 현대 국어에서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해 보자.중세 국어에서는 '가련하게, 불쌍하게'의 뜻이었으나 현대 국어에서는 '예쁘게, 어여쁘게'의 뜻으로 바뀌었다.어여쁘게:어엿·비중세 국어에서는 '보통사람'의 뜻이었으나 현대 국어에서는 '남자의 낮춘말'의 뜻으로 바뀌었다.놈이·노·미중세 국어에서는 '어리석은'의 뜻이었으나 현대 국어에서는 '나이가 적은'의 뜻으로 바뀌었다.나이가 적은어·린의미상의 차이점현대 국어중세 국어(2) 중세 국어(中世國語)① 세종 어제 훈민 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한글의 과학성한글은 상형(象形)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여 기본자를 먼저 만들고, 이에 획을 더하는 가획(加劃)의 원리와 문자를 합하는 합용(合用)의 원리에 의해 창제 되었다. 자음 자모는 발음하는 기관의 모양을 본떠 'ㄱ, ㄴ, ㅁ, ㅅ, ㅇ'의 다섯 자를 기본으로 만든 다음, 각(양순음)ㄸㅌㄷㄴ혓소리(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양)(舌音) 舌端音(설단음)ㄲㅋㄱ(ㆁ)어금닛소리(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牙音) 軟口蓋音(연구개음)전탁 (된소리)차청 (거센소리)전청 (예사소리)불청불탁 (울림소리)소리의 소리나는 성질에 따라 위치에 따라2. 자음의 종류기본글자 음성기관상형가획자이체자 다른 모양각자병서훈민정음 제자 원리- 자음자 음ㄱ,ㅋ,ㅇ 은 혀가 어디에 부딪히며 소리가 날까?'엄쏘리'(어금니소리)라고 한다.ㄴ,ㄷ,ㅌ 을 발음할 때 혀는 어떤 모양이 되는가?혀가 'ㄴ, ㄷ, ㅌ'의 모양으로 굽어지므로 '혀쏘리'라 한다.ㅂ,ㅍ,ㅁ 은 왜 입시울쏘리(입술소리)라 할까?ㅈ,ㅊ,ㅅ 은 왜 니쏘리(잇소리)라고 할까?'이'들 사이로 바람이 나가며 소리가 난다.ㅇ, ㅎ 은 왜 '목소리'라 할까?목구멍이 둥글게 열린 모양을 본땄다.발음기관1. 발음할 때 이와 이 사이에서 바람이 나가는 소리가 나므로 '니쏘리'(잇소리)라 한다.2. 글자의 모양이 발음할 때의 입술 모양을 닮아 '입시울쏘리'(입술소리)라 한다.3. 발음을 할 때 혀가 어금니에 닿아 소리가 나므로 '엄쏘리'(어금닛소리)라 한다.5. 글자의 모양이 발음할 때 혀가 구부러진 모양과 닮아 '혀쏘리'(혓소리)라 한다.4. 발음할 때 목구멍이 둥글게 벌어진 모양을 본따 만들었기에 '목소리'라 한다.ㄱ,ㅋ,ㅇㅈ,ㅊ,ㅅㄴ,ㄷ,ㅌㅇ, ㅎㅂ,ㅍ,ㅁ꼭 알아두기!(2) 중세 국어(中世國語)① 세종 어제 훈민 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 모음 체계2. 모음의 종류1. 제자 원리 : 성리학에서 말하는 우주의 기본 요소인 천(天)․지(地)․인(人)을 상형 한 'ㆍ,ㅡ,ㅣ'를 기본자로 하여 이를 조합한 합성의 원리에 따라 모음을 만들었다. ① (상형 )의 원리 - (천 ) ․ (지 ) ․ ( 인)의 삼재를 본떠 기본자 'ㆍ,ㅡ,ㅣ'를 만들었음 ② (합성 )의 원리 - 이 글자를 합성하여 초출자와 재출자를 만들고, 이들을 다시 합 용하여 29자를 만들었음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본땀ㅣㅢ, ㅟ, ㅔ, (ㆌ), ㅖ, ㅞ, (ㆋ)ㅝ세전기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말의 근간이 된다.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기했다. 임신서기체, 이두, 구결, 향찰 등이 있다.경주-통일신라고대국어특징중심시기시대국어의 발달 과정(2) 중세 국어(中世國語)① 세종 어제 훈민 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끊어적기를 주로 하고 있으나 간혹 거듭적가 보임․끊어적기가 확대 것이, 믈속으로셔, 긔운이 ․거듭적기(중철 표기)가 나타남 것, 소 ․'ㄹㄹ'이 'ㄹㄴ'으로 표기된 예가 있다. 올나 ․''이 쓰이지 않음 반 ․방점 소멸 ․7종성 표기․각자병서 안 쓰임 (예)말 ․끊어적기(분철)확대(예)몸이며, 머리털이며 이어적기 와 혼용 ․'ᅙ' 안 쓰임 ․방점 사용 ․8종성 표기․각자병서 쓰임 (예)말 ․이어적기(연철) 보편적 (예)말미, 미니라 ․'ᅙ'쓰임 예)배,몯노미 ․방점 사용 ․8종성 표기 사디표기․일본계 한자어 사용․감각어 색채어 매우 활발, ․순 한글 어휘가 많이 등장․'얼굴'의 의미가 현대와 다름(형체 낮)․'어린, 어엿비,놈'의 의미가 현대어와 다름의미․주격조사 '가'사용․명사형 어미 '-기' 매우 활발 븕기, 통낭기 ․비교격 조사 '텨로, 도곤' 사용․명사형 어미 '옴/움' 혼란 (예)비르소미오, 미니라 ․명사형어미 '-기' (예)아당기 ․'ㄹㅇ'형 활용형이 'ㄹㄹ'로 나타남 (예)닐러 ․높임법(-샤-,-) 사용․명사형 어미 '옴/움' 사용이 규칙적임 (예)메 ․명사형 어미 '-기' 안쓰임 ․'ㄹㅇ'형 활용형 규칙적 출현 (예)달아 ․'귁에' '에' 비교격조사문법․'' 사용 ․어두 자음군 간혹 사용․''의 소멸 처 처엄 ․성조 소실- 방점 소멸 ․모음조화 파괴나를, 보는, 거 ․'ㄴ' 첨가 뛰노던니 ․''이 'ㅇ'으로 변형 ․''존속(음운소실문자로만)․''소실 (예)해로온, 받온 ․모음조화 약화 (예)비르소미오 ․',ᅙ,' 소멸 ․',' 존속 ․어두자음군 간혹 ․모음조화 예외 나타남․''사용 (예)수 ․모음조화 규칙적 (예)서르 ․',ᅙ,,ᅇ,'사용}
1. 국어가 걸어온 길(3) 근대 국어(近代國語)이 활동을 통해● 국어의 역사를 안다. ● 국어의 음운, 문법, 의미, 표기법의 시대별 변화상을 안다. ● 국어의 변화 과정을 현대 국어와 비교하여 설명한다. ● 국어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 듣고 읽는다.(3) 근대 국어(近代국어)① 동명일긔近代國語 17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의 국어. 국어사(國語史)에서 중세와 근세의 경계를 16세기와 17세기의 교체기에 두는 이유는 국어의 음운 체계․문법 체계가 16세기에 큰 변화를 겪었으며, 그 결과 17세기에 와서 국어는 전반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 근대 국어도 중세 국어와 마찬가지로 언해(諺解)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큰 차이가 있다. 즉 중세 국어에 많았던 불경 언해(佛經諺解)는 근대 국어에 오면 거의 볼 수 없고, 대신 경서 언해(經書諺解)가 많아진다.또 17․18세기 자료에서 역학서(譯學書)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실과 19세기 자료에서 소설 내지 가사(歌辭)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실도 근대 국어 자료의 특징으로 들 수 있다. 17세기의 근대 국어에는 중세 국어에 있었던 유성마찰음(․)이 이미 없으며 어두자음군이 된소리로 변하는 경향을 보였고, 모음 ․ 는 어두음절에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중세 국어에 있었던 성조(聲調)도 없었다. 17세기와 18세기의 교체기에 ㄷ․ㅌ 의 구개음화가 일어나 ㅈ․ㅊ 으로 된 사실과 18세기 중엽에 어두음절의 ․ 마저 ㅏ 로 변화했고, 그 뒤를 이어 이중모음 ㅐ 와 ㅔ 의 단모음화(單母音化)가 일어난 것은 특기할 만하다.(3) 근대 국어(近代국어)① 동명일긔근대국어의 문법 체계를 중세 국어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간소화, 즉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체계에의 지향을 가장 뚜렷한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선어말어미 -오/우- 가 없어졌으며 경어법도 중세국어의 존경법․겸양법․공손법의 체계에서 존경법과 공손법의 체계로 바뀌었다. 중세국어에 잡다했던 강세(强勢)의 첨사들이 대폭 정리되어 야․곳 등만, ㄷ+ㅎ, ㅂ+ㅎ 으로 분석하는 경우(3) 근대 국어(近代국어)① 동명일긔현대어 풀이 홍색(紅色)이 거룩하여 붉은 기운이 하늘을 뛰놀더니, 이랑이 크게 소리를 질러 나를 불러, 저기 물 밑을 보라고 외치거늘, 급히 눈을 들어 보니, 물 밑 홍운(紅雲)을 헤치고 큰 실오리 같은 줄이 붉기 더욱 기이하며, 기운이 진홍(眞紅) 같은 것이 차차 나 손바닥 너비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불빛 같더라. 차차 나오더니, 그 위로 작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가 호박(琥珀) 구슬 같고, 맑고 통랑(通朗)하기는 호박보다 더 곱더라.의유당 조선 후기의 여류문인. 남편이 함흥 판관으로 부임할 때 함께 가서 명승 고적을 탐승하여 기록한 기행, 전기, 번역 등을 합한 문집. '의유당관북유람일기' 의 작가로, 우리 문학사에서 수필 문학의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탁월한 여류 문인이다.(3) 근대 국어(近代국어)① 동명일긔그 븕은 우흐로 흘흘 움여 도 처엄 낫던 븕은 긔운이 지 반 쟝 너 만치 반시 비최며 밤 던 긔운이 되야 커 가며 큰 반만 여 븕 웃븕웃 번듯번듯 놀며 젹이 왼 바다희 치며 몬져 븕은 기운이 가 며 흔들며 놀기 더욱 로 며 항 고 독 것이 좌우로 놀며 황홀이 번득여 냥목이 어즐며 븕은 긔운이 명낭야 첫 홍을 혜앗고 텬 듕의 반 것이 수레박희 야 믈 속으로셔 치미러 밧치시 올나 븟 흐며 항독 긔운이 스러디고 처엄 븕어 것 빗최던 거 모혀 소혀텨로 드리워 믈 속의 풍덩 디듯 시브더라 일이 됴요며 믈결의 븕은 긔운 이 가며 일광이 쳥낭하니 만고 텬하의 그런 장관은 두할 업슬 더라 -'의유당관북유람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 영조 48년(1772년)처음반듯이감각어, 색채어백지(白紙)적색(赤色)사라지며, 없어지며자주두 눈, 두음법칙X明朗, 밝고 환하여하늘 가운데, 구개음화X,단모음화X항아리ㄹㄴ형재음소화, 7종성거듭적기, 7종성모여소혀처럼구개음화X싶더라조요하며(조용하며X), 환 사용하는 계층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다섯째, 개화기에 이르러 한글 사용이 확대되면서 문장의 구성 방식이 현대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게 바뀌었다.(3) 근대 국어(近代국어)① 동명일긔학습활동함께 하기1. 이 글에서 중세 국어와 달라진 점을 눈에 띄는 대로 찾아보자.끊어 적기가 확대된 모습을 보인다.(예) 것이, 믈속으로셔, 긔운이) 중철 표기가 나타난다.(예) 것, 소) 어중의 'ᄙ'이 'ᄘ'으로 표기된 예가 있다. (예) 올나) ㆁ이 쓰이지 않는다.(예) 반) 재음소화 표기가 나타난다. (예) 붓흐며)표기법감각이나 색채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매우 활발하게 쓰였으며 순 한글 어휘가 많이 나타난다. 어휘의 형식 면에서도 약간의 차이를 보여 중세 국어의 '그몸'이 '그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어휘명사형 어미 '-기'가 매우 활발하게 쓰여 '븕기, 통낭기'와 같은 예를 볼 수 있다.문법'ㅿ'의 소멸로 '처'이 '처엄'으로 바뀌었다. 성조가 소실되어 방점이 나타나지 않는다. 모음조화 파괴가 매우 심하게 나타나 '나를, 보는, 거'등의 예를 볼 수 있다. ㄴ 첨가 현상이 나타나 '노던니'와 같은 예를 볼 수 있다.음운달라진 점(3) 근대 국어(近代국어)① 동명일긔2. 여성들이 한글로 문자 생활을 한 이유를 조사하고, 그 의의를 토론해 보자.한글 창제 때도 한글의 창제는 지배 계층의 주요한 관심사는 못 되었던 듯합니다. 특히 한글 창제가 우리 나라 문화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었음에도 조선왕조실록 등에 매우 간단하게만 언급되었다는 점, 이후 한글이 사용된 분야는 한문으로 된 유교나 불교 경전 등의 언해본을 중심으로 한 협소한 부분 등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한글이 상당히 경시되었다는 점은 언문, 암클, 아햇글과 같이 한글이 불리기도 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말을 자유로이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은 지배계층에 편입될 수 없었던 여자들, 특히 궁중을 중심으로 한 여성들의 편지, 일)① 동명일긔기출 문제 유형 익히기유형2 알타이어족의 특징 파악 질문 유형 ① 알타이어족의 일반적 특징으로 거리가 먼 것은?★ 알타티어족의 특징 ㉠ 모음조화 ㉡ 두음법칙 ㉢ 수식어 + 피수식어 ㉣ 주어 + 목적어 + 서술어 ㉤ 관사, 전치사, 관계대명사, 성 구별 없음 ㉥ 교착어, 첨가어(어미와 조사의 결합이 가능)(3) 근대 국어(近代국어)① 동명일긔기출 문제 유형 익히기유형3 고유명사 표기의 이해 질문 유형 ① ㈎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발음을 추측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② ㈎를 바탕으로 추리한 내용으로 알맞지 않은 것은?예1) 素那 (휠소, 어찌나) - 소나(음차) 예2) 金川(쇠금, 내천) - 쇠내(훈차) ① 두 이름이 동일 인물을 지칭함 ② 당시 발음은 素那와 金川, 모두 동일한 발음이었을 것으로 추정 ③ 우리말의 인명이나 지명을 표기하는 데 있어 한자의 음차나 훈자의 방법을 사용 예2) 영동군(永同郡)은 본래 길동군(吉同郡)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 이를 그대로 쓰고 있다. ⇒ 길동군(吉同郡)에서 영동군(永同郡)으로 변화 ① 음차 방식에서 훈차 방식으로 변화 ② 차자 표기에서 한자어 자체 사용으로 변화 비교) 새말(신촌), 벌말(평촌), 새재(조령), 한밭(대전), 아현(애오개)(3) 근대 국어(近代국어)① 동명일긔기출 문제 유형 익히기유형4 '서동요'의 특징과 향찰 표기 특징의 파악 질문 유형 ①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② ㈐의 표기체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서동요 ① 지은이 : 백제 무왕 ② 갈래 : 형식상 - 4구체 향가, 내용상 - 참요(모함하는 노래, 예언하는 노래) ③ 주제 : 선화 공주에 대한 연모의 정 ④ 특징 : 주체의 전도 ⑤ 의의 : 가장 오래된 향가, 향가가 동요로 정착한 유일한 노래 ★ 향찰 : 한자의 음과 훈을 이용한 문자 ① 실질적 의미(훈) / 문법적 의미(음) 善 化 公 主 主 隱 / 他 密 只 嫁 良 置 古 / 薯 童 房 乙 / 夜 矣 卯 乙 抱 遣 去 如 ② 의의 ㉠ 한자에기 ⇒ 아당홈 13. 말 ⇒ 말(3) 근대 국어(近代국어)① 동명일긔기출 문제 유형 익히기유형8 작품의 중심내용 파악 질문 유형 ① ㈏의 내용을 가장 잘 정리한 것은? ② ㈐에서 말한 '유익한 벗'과 가장 거리가 먼 유형의 학생은?1. 소학언해 의 중심 내용 ① 효도의 본질 : 효도의 시작(몸의 보중) + 효도의 끝(입신양명) ⇒ 부자유친, 부위자강 ② 벗의 유형 : 해로운 벗 세 가지 + 유익한 벗 세 가지 ⇒ 붕우유신, 근묵자흑, 대조, 예시, 병렬식 구성 2. 독립신문 창간사 의 중심 내용 ① 독립신문 국문 사용의 의의 ⇒ 넓은 독자층 확보, 띄어쓰기로 독해의 용이성 보장 ② 한문보다 우월한 조선 국문 ⇒ 배우기가 쉬움, 알아보기가 쉬움 ③ 기존 국문 사용 방식의 난점과 국문 미사용의 폐해 ⇒ 띄어쓰기를 하지 않음, 국문을 자주 쓰지 않아서 서툶 ④ 유식한 사람 되기와 국문 신문의 의의 ⇒ 유식함의 조건(국문, 물정, 학문), 독립신문을 통해 새지각과 새학문 습득(3) 근대 국어(近代국어)① 동명일긔기출 문제 유형 익히기유형9 현대어로 해석 질문 유형 ① ⓐ~ⓔ의 현대어 풀이가 잘못된 것은? ② 다음 단어 중, 중세 국어와 현대 국어의 의미상 차이점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주요 어휘 정리 1. 세종어제훈민정음 ① 듕귁에 : 중국과(비교격) ② 디 : 통하지 ③ 아니 : 아니하므로(원인격조사) ④ 젼 : 까닭, 이유 ⑤ 어린 : 어리석은 ⑥ 시러 : 능히 ⑦ 하니라 : 많으니라 ⑧ 어엿비 : 불쌍히 2. 소학언해 ① 샤 : 말씀하시되, 끊어적기② 현뎌케 : 드러나게 ③ 아당기 : 아첨하기(교언영색) 3. 동명일기 ① 거룩야 : 매우 아름다워 ② 헤앗고 : 헤치고 ③ 우흐로 : 위로 ④ 통낭기 : 환하기 ⑤ 호박도곤 : 호박보다(비교격) ⑥ 처엄 : 처음 ⑨ 냥목 : 두 눈 ⑩ 명낭야 : 밝고 환하여 ⑪ 텬듕 : 하늘 가운데 ⑫ 스러디고 : 사라지고 ⑭ 소혀텨로 : 소혀처럼 ⑮ 시브더라 : 싶더라 ⑯ 일, 일광 : 햇빛 ⑰ 됴요ow}
◆ 목 차 ◆ Ⅰ. 머리말 1) 연구 논문 분석의 필요성 2) 연구 논문 주제 선정의 목적 3) 연구 논문 분석의 방법 - 15가지 준거 항목에 대한 설명 Ⅱ. 본문 1. 실험연구의 분석 1) 연구 논문 분석의 준거 항목 2) 논문 분석에 대한 평가 2. 상관연구의 분석 1) 연구 논문 분석 준거 항목 2) 논문 분석에 대한 평가 Ⅲ. 맺음말 - 연구 논문 분석을 마치고 느낀 점 * 참고 문헌 연구 논문 분석 과제 Ⅰ. 머리말 1) 연구 논문 분석의 필요성 연구란 사실과 현상을 객관적, 일반적으로 기술, 설명, 예언, 통제할 수 있는 신뢰로운 지식체계를 창조하려는 자기 수정의 과정이라고 흔히 정의한다. 그렇다면 연구에 대한 논문은 이 정의에 맞게 되어 있는가? 어떤 주제에 관해 보고서를 쓰거나 조사를 할 때 꼭 참고하게 되는 자료가 바로 논문이다. 지금까지 어떤 비판적 인식 없이 그저 논문에 있는 내용을 읽고 참고하는데 그쳤다. 본 보고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연구를 연구 논문 준거 항목에 따라 올바르게 진술되어 있는지 논의해 볼 것이다. 이러한 연구 논문의 분석은 차후 실제 논문을 작성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논문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초석을 마련해줄 것이다. 2) 연구 논문 주제 선정의 목적 실험연구는 김영선, 「스트레스와 자아존중감이 공격성에 미치는 영향」(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2000)을 택하였다. 스트레스와 자아존중감이 공격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공격성 정도를 줄여줄 것이라 예견되는 자아 존중감과의 관계를 분석하는데 초점을 두고 가정과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이해하고 지도하기 위한 기초를 자료를 제시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상관연구는 강영호, 「중학생이 지각한 담임교사의 의사소통 유형과 집단응집력 및 학교생활 적응의 관계」(서강대학교 교육대학원, 2002)을 택하였다. 교사가 학생들과의 의사소통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얼마나 잘 청취하는가의 ‘경청태도’와 학생들에게 얼마나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가의 ‘의사전달 태도’를 조사하여 의구인타당화를 거친 정의이다. (11) 연구 대상 집단(전집) 연구 대상 집단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되어야 한다. 연령, 지역, 성별 등 (12) 주된 표집 방법 연구 대상을 표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교육평가에서 배운 내용이다. 양적 표집과 질적 표집이 있다. 양적 표집에는 무선표집, 할당 표집, 눈덩이식 표집 등이 있다. (13) 사용된 통계적 방법(자료 처리 및 분석 방법, 통계적 가설 검증 방법) 각 연구마다 사용되는 통계적 방법은 다르다. 이 때 독립변인(처치)와 종속변인 간의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데 저해 요인을 통제해야 외재 변인과 혼재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14) 언급된 제한점(연구의 한계점 등) 연구 보고서의 형식으로 자료를 분석하고 결과를 보고한다. 결과를 잘 매듭짓고 연구 결과에 대한 판단 및 결정을 한다. (15) 주된 결과 및 결론(연구의 의의, 목적과 일치 정도) 연구 개시 이전(특히 자료 수집 이전 단계, 연구의 설계 단계)에 설정, 진술해야 한다. 특히 연구 계획서에 발표하여 전공분야의 관심 인사들에게 하는 약속과 같은 기능을 한다. Ⅱ. 본문 1. 실험연구의 분석) 1) 연구 논문 분석의 준거 항목 (1) 연구 주제 및 문제 또는 연구의 주요 내용 청소년기 스트레스와 자아존중감이 공격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이다. 주로 청소년기 전기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에 중기와 후기에 대한 연구가 후행되어야 한다. (2) 연구의 의의, 목적 및 필요성) 청소년기를 뜻하는 영어의 adolescence라는 단어는 성인의 모습으로 성장한다는 것, 즉 ‘성숙한다’는 의미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 성숙이란 신체적, 정서적, 지적, 사회적으로 발달된 상태나 상황을 의미하기 때문에 청소년기란 심신 양면에 걸쳐 급격히 발달하고 변화하여 아동에서 성인으로 전환하는 시기를 말한다. 청소년기는 급격한 신체 변화와 발달에 대처할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이나 기술을 아직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불안과 혼란 속에서 긴장하고 갈등하게 된다. 우리나라 청소심리적 과정을 배제함으로써 환경과의 관계에서 개인의 능동적인 역할이 무시되고 따라서 개인차를 다루지 못한다. 그래서 이 입장은 스트레스를 환경과 개인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상호작용으로 보는 심리 과정에 근거를 둔다. 따라서 환경 내의 자극의 특성과 이에 대한 반응간의 매개체로서 개인의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2. 자아존중감 3. 공격성 (8) 연구에 사용된 독립변인, 종속변인(준거 및 측정변인)과 통제변인 또는 조절변인(moderator v.)과 중재변인(매개변인 intervening v.)) 1. 독립변인 2. 종속변인 3. 통제변인 4. 중재변인 이 연구 논문에서는 독립변인과 종속변인, 통제변인, 중재변인이 독립 문항으로 진술되어 있지 않았다. (9) 변인에 대한 조작적 정의(실험조작 및 처치 절차 및 방법) 1. 스트레스 2. 자아존중감 3. 공격성 (10) 변인에 대한 측정 중심의 조작적 정의(측정 절차 및 방법 등)) 본 연구의 결과는 중학생에서의 스트레스 하위변인과 공격성 하위 변인간의 상관관계, 자아존중감과 공격성 하위변인간의 상관관계 그리고, 개인이 지각한 모(母)의 결혼 만족도와 고 공격성과의 상관관계를 제시하였으며 스트레스와 사회존중감이 공격성에 미치는 영향과 각 하위요인들의 상대적 영향력을 비교 검토하기 위하여 중다회귀분석을 하고 그 결과를 제시하였다. 또한 자아 존중감 수준과 스트레스 수준에 따라 공격성에 유의한 차이를 보이는 가와 두 변인이 상호 작용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이원변량분석을 실시하였다. (11) 연구 대상 집단(전집)) 본 연구의 조사대상은 용인시에 소재한 Y중학교의 1학년 2학급 중에서 남학생은 42명, 여학생이 58명으로 총 100명과 J중학교의 1학년 2학급 중에서 남학생 42명, 여학생 48명으로 총 90명, 그리고 성남시에 소재한 T중학교 2학년 3학급 중에서 남학생 60명과 여학생 60명으로 총 120명을 임으로 표집 하였다. (12) 주된 표집 방법 용인시에 소재한 Y중학교 1학년 2학급과 J중학교의 1학년 2학스가 가장 높은 상관이 있다는 결과(김영생,1997)와는 다르나, 가족 구성원간의 애정이 결여된 관계가 청소년의 공격성과 높은 상관을 보인다는 Glueek&Glueck(1950)의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 것이다. 또한 부모가 관여적이고 자녀 중심적으로 양육한 청소년들은 책임과 사회적 역량이 높고 성취 지향적이나 부모 중심적인 태도로 양육된 청소년들은 충동적이며 일찍부터 술과 담배를 시작하는 등 비행경험이 있는것으로 알려진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셋째, 자아 존중감과 공격성 간에는 유의미한 부적 상관을 보였다(r=-.29). 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나 가치 판단이 낮고 자신의 자아에 대해 위협을 느낄 때 공격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결론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학교 자아 존중감이 공격성과 가장 높은 상관을 보였다(r=-.35). 학교생활을 통하여 자존감이 높아진 학생들은 공격성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학교생활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는 교사로부터 인정받거나 교실 수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만족감, 행복감 그리고 자신의 생활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지기에 공격적인 성향이 낮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가족 자아 존중감도 유의한 부적 상관(r=-.34)을 보였으나 총체적 자아 존중감과 사회적 자아 존중감은 공격성과 유의한 상관을 보이지 않았다. 넷째, 자아 존중감 수준과 스트레스 수준에 따른 공격성 점수의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자아 존중감 수준과 스트레스 수준별 공격성 점수 평균을 산출하였는데, 자아 존중감의 높고 낮음에 따라 공격성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많고 적음에 따라 공격성 점수가 큰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자아 존중감의 정도에 따라서 스트레스에 영향을 주어 공격성정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이는 본 연구의 조사 대상자들이 자아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청소년 초기이므로 뚜렷하고 명백한 자아상을 갖지 못한데서 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공격성에 대한 자아 존에서 나의 책임은 적절하며 학급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학급에서 할 일을 잘 알고 있으면 ‘학생동기’가 있는 것으로, 학급에서 생활이 편하거나 학급원이 된 것을 만족해하면 ‘학급매력’이 있는 것으로 분류함) 7문항을 하위영역으로 하여 13문항으로 제작되었다. 학교생활 적응 검사지는 임정순(1993)의 아동의 ‘학교생활 적응에 관한 검사지’를 참고로 유윤희(1994)가 32문항으로 중학생들에 맞게 수정.보완한 것으로 ① 교사관계(담임교사에 대한 호감, 인정, 대화정도, 존경심 등 ) 8문항 ② 교우관계(학급친구들과의 어울림, 대화상대, 도움, 인기도, 괴롭힘 등) 8문항 ③ 수업태도(수업시간에 발표, 즐거움, 유익함, 숙제, 이해, 집중도, 질문 등) 8문항 ④ 학교규칙(학교에서 정숙, 좌측통행, 주번활동, 시설이용, 청결, 질서와 규율에 대한 느낌 등) 8문항 총 32문항으로 구성되었으며 응답방식은 5점 Likert식으로 처리되었으며 점수가 높을수록 학교생활에 잘 적응함을 의미한다. (7) 가설 및 문제에 포함된 변인(변수)들 1. 의사소통, 집단응집력과 학교생활 적응 ① 의사소통 유형 :수용촉구형, 수용명령형, 비수용촉구형, 비수용촉구형 ② 집단응집력 : 구성원들로 하여금 조직이나 집단에 애착을 가지고 참여하고 싶어하며, 오래도록 그 집단에 머물고 싶어 하는 정도 ③ 학교생활 적응 (8) 연구에 사용된 독립변인, 종속변인(준거 및 측정변인)과 통제변인 또는 조절변인(moderator v.)과 중재변인(매개변인 intervening v.) 독립변인은 질문지였기 때문에 명확하게 진술되지 않았다. 또한 종속변인과 통제변인, 중재변인을 알 수 없었다. (9) 변인에 대한 조작적 정의(실험조작 및 처치의 절차 및 방법)) 수용 Ⅱ Ⅰ 비수용 Ⅳ Ⅲ 명령 촉구 의사소통 유형의 분류 경청태도 의사전달태도 Ⅰ. 수용촉구형 : 교사가 학생들의 의견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면서도 학생들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형태의 쌍방적 의사소통 (T재-way Com
? 목 차 ?Ⅰ. 우리의 글자 : 한글1. 문자론 이미지형 통신문자2. 한글의 문자적 의의 한글창제 이전의 차자표기3. 한글의 가치Ⅱ.『훈민정음』1. 세종시대의 언어정책2. 세종과 훈민정음Ⅲ.『용비어천가』1『용비어천가』의 찬자들과 훈민정음과의 관계2『용비어천가』의 가치* 참 고 문 헌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훈민정음 창제의 기원과 제자 원리’와 관련되는 내용은 제외)Ⅰ. 우리의 글자 : 한글1. 문자론제프리 샘슨은 문자의 유형을 의미 표기적 문자와 언어표기적 문자로 분류하여 보다 세분화된 분류를 시도한다.)* 의미 표기적 문자 : 기호와 지시대상의 관계가 직접적이고 필연적이며 구상적인데 반해, 부호 처리 체계가 주관적이고 비경제적이다. 그러나 특정 개별 언어의 문자체계와 관련 없이 인류 공통의 문자 체계인 그림문자라는 점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제품사용 설명서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언어 표기적 문자 : 기호와 지시대상의 관계가 간접적이고, 우연적이며, 추상적인데 반해, 부호 처리 체계가 객관적이고 경제적이다. 이러한 언어 표기적 문자는 어표 표기적 문자와 음성 표기적 문자로 구분이 가능하다.* 어표 표기적 문자 : 표의문자는 의미를 중시하는 유연적인 기호로소 다형태소 단위에 입각한 회의문자와 형태소적 단위에 입각한 상형문자로 나눌 수 있다.* 음성 표기적 문자 : 표음문자는 음성을 중시하는 자의적인 기호로서 음절문자, 음소문자, 자질문자로 나눌 수 있다.일종의 표의문자인 그림문자는 가장 앞선 시기의 문자로, 상형문자의 전 단계 문자이다. 일반적으로 그림문자는 생활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조개껍질, 나무, 돌멩이, 동물의 껍질, 뼈, 뿔 등을 이용하거나 생활터전인 동굴이나 하천 등지의 벽면에 조각하거나 채색하는 방법으로 기록되는데,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비롯하여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현실체계를 그대로 그려내는 도상적 기호이다.표의문자인 상형문자는 고대의 4대 문명발상지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를 중심으로 널리 사 창출해 낸다는 점에서 예술의 경지를 엿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원시적인 초기의 문자가 그랬듯이 추상적인 개념도 표현할 수 없는 언어 표현으로서의 한계가 지적되기도 하지만 문자 언어의 보조수단으로서는 충분한 가치가 인정된다. 더욱이 텍스트형 통신 문자에 비해 부호화와 해독화가 쉽고, 언어보편성을 갖추었으며, 언어 파괴라는 사회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선생님’과 ‘쌤’이란 말에서 ‘쌤’이 ‘선생님’보다 친근감 있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텍스트형 통신문자가 올바른 언어표현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미묘한 정감의 차이를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듯이 이미지형 통신문자는 점차 이미지가 복잡해져 가는 단점을 갖고 있다.2. 한글의 문자적 의의훈민정음은 국어뿐만 아니라 한자음과 이웃의 여러 나라의 언어음도 표기할 수 있도록 창제된 표음문자였다.) 또한 훈민정음의 문자로서의 성격은 위구르 문자계 몽고 문자나 티베트 문자계 파스파 문자와 같은 음소문자였으며 표기할 때는 한자나 파스파 문자처럼 몇 개의 음소문자를 하나로 묶어 음절 단위로 나타냈다.『훈민정음의 연구』에서는 훈민정음이 문자로서 이상과 같은 성격을 띠게 된 것은 당시 주변 민족들의 문자로부터 받은 영향의 결과라고 서술하고 있다. 세계 문자사상 아시아에서 훈민정음과 비슷한 성격을 가졌던 문자 체계는 모두 저 멀리 셈족 사이에서 발달된 아람 문자 계통의 글자들이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두 갈래로 동진해 온 것들로 보고 있다.하나는 북방계로서 위구르 문자를 거쳐 몽고 문자에 이르러 다시 17세기에 만주 문자로까지 발전하였다. 또 하나는 남방계로서 역시 아람 문자로부터 브라흐미 문자 등 인도계 문자로 이어지고 여기에 티베트 문자로 나아가고 이를 기초로 하여 원나라의 파스파 문자가 만들어졌다. 이들 문자는 15세기의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훈민정음 창제자들이 음소문자를 만들게 된 배경은 이러한 문자들에 대한 지식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중국의 성운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자가 없었다. 따라서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중국의 한자를 빌어 글말로 사용했다. 그러나 입말인 한국어를 유지하면서 언어 체계가 전혀 다른 중국의 한자를 글말로 사용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특히 한국어와 중국어가 계통적으로 아주 다른 언어라는 점에 있다. 우선 중국어는 고립어로서 문법형태가 필요 없는 언어이지만, 한국어는 교착어로서 문법형태소인 조사나 어미가 필요하다. 또한 어순도 중국어는 동사가 목적어 앞에 오지만 한국어는 그 반대다.* 서기체 표기법 : 가장 앞선 시기의 차자 표기는 인명이나 지명과 같은 고유 명사에 국한되었다. 한자의 어휘적 개념과 한국어의 어순을 이용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단순한 표기법이다. 따라서 조사나 어미와 같은 문법적인 관계 개념을 표시하지는 않는다.* 이두 표기법) : 이두는 서기체 표기에 한자의 음이나 훈을 차자하여 만든 문법소를 덧붙여 만든 것으로, 실용문에 국한하여 쓰인 차자 표기법이다. 일반적으로 이두는 관청에 소속된 이서 또는 서리가 행정문서에 사용했음을 의미하여 이서 또는 이문, 이찰이라 하였다.* 구결 표기법 : 한자의 음을 차자하여 문법소를 한자와 한자 사이에 덧붙이는 차자 표기법이다. 이런 점에서 구결표기는 이두 표기와 비슷하지만, 구결은 한문을 그대로에 구결 표기를 하여, 주로 유교와 불교의 경전에 토를 덧붙임으로써 독해력을 증진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한자의 주석에 쓰이는 구결은 현토, 석의 또는 입겾이라 한다.* 향찰 표기법 : 한자의 음과 뜻을 빌어 한국어를 표기한 전면적인 차자 표기법이다. 향찰은 신라의 노래인 향가를 적은 표기뿐만 아니라 실용문서의 글과 한문의 구결을 표기한 글 모두를 두루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쓰여 한자에 대립한 한국어 표기 형식을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에게 전해 오는 향가는 삼국유사에 실린 14수와 균여전에 실린 11수로 모두 25수가 내려온다. 향가는 고도의 비유법이 적용된 문학 작품이기 때문에 향찰 표기는 매우 해독하기 어려운 자료에 속한다. 또한 향가는 후대에 채록된 만큼 오자나 설정③ 중국 본토 표준자음의 제시-표준 중국자음의 제시④ 이웃 여러 민족어 학습을 위한 사학의 장려이들은 서로 밀접한 관련 아래 유기적으로 진행된 사업으로서 고유 문자인 훈민정음은 백성들에게 표기 수단을 마련해 주기 위한 것이었으나, 동시에 나머지 3개항의 문제도 해결해 주어야 하는 필요성에서 창제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훈민정음은 다음의 세 가지 요구를 다 충족시켜야 될 문자였다.① 순수한 국어의 표기② 개정된 우리 한자음의 완전한 표기③ 외국어음의 정확한 표기이 밖에 정책 수행자들이 표방하고 있던 교화와 훈민정책에도 이용될 수 있는 문자여야만 했다. 훈민정음은 이러한 여러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한 글자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음소문자로서는 훌륭한 글자였음에도 문자 체계상으로 보아서는 순수한 국어 표기에는 불필요한 글자도 약간 내포하고 있었다.2. 세종과 훈민정음세종대왕은 우리 역사뿐만 아니라 인류사에 있어서도 드문 위인이다.) 천성이 어질고 부지런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여러 분야에 걸쳐 능통하였다. 특히 음운학 이외에도 음악과 성리학 등에 조예가 깊었고, 그 가운데서도 훈민정음 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다고 한다.세종은 학문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항상 앞장서서 손에서 책을 놓은 일이 없었고 여러 학자들과 학문을 논하기를 좋아했다. 이러한 학문 중에도 세종은 실무자적이고 실리주의적인 면이 강해서 천문을 연구하고 음악을 정리하였다. 이러한 실리적은 민본주의적인 대왕의 성격이 백성의 표기 수단을 해결하려고 하는 훈민정음 창제로 이어졌던 것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보탠다면 세종은 특히 백성을 사랑했다. 어떠한 국왕도 백성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세종은 언제나 백성의 편리한 생활을 생각했다. 그래서 한글을 창제하자마자 불경을 번역하도록 지시했다.조선시대 전기, 특히 세종 및 그 보필자들이 가지고 있었을 언어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① 조선시대의 언어관은 건국이념이었던 유교(특히 송학)를 바탕으로 해서 성립된 것이다.② 때마침 우리다.)① 1443년(세종 25) 12월: 새로운 음소문자인 고유문자 훈민정음 창제② 1445년(세종 27)~1447년(세종 29): 『용비어천가』보완③ 1445년(세종 27)~1455년(단종 3): 표준 중국한자음용 『홍무정운역훈』,『사성통고』편찬④ 1446년(세종 28) 9월: 고유문자에 대한 해설서인 『훈민정음』(해례본) 편찬⑤ 1447년(세종 29) 9월: 표준 한국한자음용 『동국정운』편찬⑥ 1447년(세종 29): 『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편찬,『훈민정음언해본』완성(추정)이상의 내용을 요약하여 제시하면 조선은 ‘숭유억불’을 국시로 하여 건국 초기부터 유교 정선에 입각하여 이상적인 정치로 시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특히 세종 시대에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분야에 걸쳐 모든 정책을 힘차게 펼쳤고, 이 결과 내치, 외교,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룩하였다. 세종시대의 언어정책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으로서 고유문자인 훈민정음의 창제는 세종 시대에 고조되어 있던 ‘우리 문화(우리 것)에 대한 자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더군다나 세종과 그 보필자들은 다음과 같은 언어관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와 같은 언어정책의 정책이 가능했다. 첫째 무엇보다도 삼국시대부터 한자, 한문을 차용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 실지 음성 언어생활과 이중적인 표현 생활을 해오고 있어서 이 일이 이만저만 억지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고, 궁여지책으로 사용해 온 차자표기법을 가지고는 도저히 만족할 만한 언어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음으로 유교를 바탕으로 하여 예와 악을 치국안민의 요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성음이 순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송나라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성인의 도를 옳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성운학과 문자학에 관한 이론적인 연구부터 필수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밖에 조선 건국 초기부터 이웃 여러 나라들과 원활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기 었다.
교육실습보고서* 목 차 *Ⅰ. 1. 실습 학교 소개2. 첫날 오리엔테이션3. 학생 상담활동4. 학습지도 활동5. 교생들과의 관계6. 선생님께 배울 점7. 마지막 인사Ⅱ. Ⅰ. 교육실습보고서1. 실습 학교 소개▒ 학교명:▒ 주소:▒ 전화:▒ 설립:▒ 시설:▒ 학급 수: 30평▒ 교훈: 사랑 성실 봉사, 미래를 선도하는 동북의 상징▒ 급훈: 나날이 새로워지자.▒ 지도교사:▒ 지도과목: 국어2. 첫날-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과의 첫 만남교무실에서 많은 선생님들 앞에서 인사를 했다. 긴장되고 떨리는 날이었다. 다른 교생 선생님들도 정장 차림으로 예의를 갖추고 있었으며 첫날이라 그런지 조금 긴장된 모습이었다. 인사를 마치고 교생실로 올라와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연구부장 선생님께서 올라오셔서 교생선생님이 가져야할 몸가짐, 그리고 학사일정 등을 알려주셨다. 2교시 쯤 지나서 각 지도 선생님과 대면하였다. 내가 맡은 반은 2학년 7반이었으며, 지도 선생님은 김낙승 선생님이었다. 교원대를 졸업하시고 교단에 서신지 7년차라고 하셨다. 아이들과 편안한 친구처럼 스스럼없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종례 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 앞에서 처음으로 인사를 했다. 너무 떨려서 다리가 후들 후들거렸다. 하지만 반 아이들이 반갑게 맞아주어서인지 매우 기뻤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인사를 마치고 우리 학교에서 연중행사인 축구 경기를 보러 효창운동장으로 이동했다. 우리 학교는 축구로 유명하다고 한다. 前 국가 대표 선수 홍명보가 우리 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6호선 효창 운동장 역으로 이동하여 축구 경기를 관람하였다. 일사분란하게 응원도 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첫날 선생님 소개에서부터 축구 경기 응원까지 정신없었던 하루가 지나갔다.3. 학생 상담 활동길동사례 연구 대상으로 선정한 우리 반 학생은 이길동라는 학생이었다. 평상시에는 매우 활발하고 적극적인 학생이나 기초학력이 부족하여 학업에 대한 흥미가 부족하다. 주위가 매우 산만해서 끊임없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한다.청소 시간 : 이길 2학년 1학기 「3단원 우리 고전의 맛과 멋」, ‘토끼전’과 보충, 심화 활동과 생활 국어 「1단원 경험한 일 말하기」, 「2단원 토론하여 내용 마련하기」이다. 수업 자료로는 파워 포인트와 학습지를 이용했다.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교생선생님이라서 그런지 집중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첫 수업 때 많이 떨렸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이 잘 따라주어서 재미있는 수업을 했던 것 같다. 교생 선생님에 대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수업을 마치고 지도교사선생님께 조언을 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꼼꼼히 모니터링을 해주시고 칭찬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5. 교생들과의 관계여러 학교에서 오신 교생선생님들은 다들 좋은 분이었다. 남자 6명, 여자 6명으로 구성된 12명의 교생선생님들의 전공은 국어과와 수학과가 가장 많았고, 도덕, 영어가 있었다. 국어과 선생님이 많아서 서로의 수업에 많은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매일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친해지고 정도 들었다.셋째 주에 교생 선생님들끼리만 회식을 했다. 사실 교생 실에서는 서로 바쁘고 조금 어색했지만, 술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이 가까워졌다. 선생님들과 연락처도 교환하고 교생 실습이 끝나도 자주 만나서 정보도 나누고 친분도 쌓아야겠다.6. 선생님들께 배울 점나의 지도교사 선생님께서는 전교조원으로 열린 교육을 철저히 실천하시는 분이셨다. 토론과 발표 수업 위주로 이루어지는 수업은 언제나 화기애애했다. 나는 명제적 지식을 전달하는 주입식 교수에 익숙해져 인지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이 쉽지 않았다.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참 좋았다. 교생 환영회날 많은 선생님들과 고기를 먹고 노래방을 갔다. 어렸을 때 고리타분하다고만 생각했던 선생님들께서 요즘 유행어는 물론이고 춤까지 추시면서 즐겁게 노시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고 즐겁기도 했다.분위기를 띄워 주시려는 선생님들 덕분에 즐겁고 유쾌하게 회식을 마칠 수 있었다.7. 학급 경영 활동매일 조례와 종례한마디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4주간의 교생 실습 기간에 생각보다 반 아이들과 골고루 친해지지 못했다. 길동을 사례 연구 대상으로 삼아서인지 거의 길동에 대해서만 관찰하고 이야기 한 점이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길동과 심층적인 대화를 나누지는 못한 것 같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서인지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모른 척하고 그냥 넘어간 것은 지금 생각해 보건데 좀 잘못한 일이었다.비록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나중에 정말로 내가 교단에 서게 된다면 아이들과 편하게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교생 선생님의 장점은 아이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아마도 내 일평생에 한번뿐인 교생 실습 기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시간이 될 것 같다. 마지막날 아이들과 편지 교환 시간이 있었다. 절대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거렸다. 눈물을 참으며 아이들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현재 나는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에 교단 앞에 서서 당당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한 달간의 교생 실습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5월부터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Ⅱ. 실습 로그4/4 월요일 맑고 바람 부는 날첫날 오리엔테이션8:20 등교8:30 교무회의축구결승 -> 오늘 응원 (1학년 : 효창운동장)4월 동료 장학 -> 실제 수업 참관 후 일지기록 (교장선생님)5월 청소년의 달 : 모범학생 (3명 입상) 추천요망토요일 ‘통행료’로 통행 (다친 학생 발생)4/30 학교폭력자진신고 ‘홈페이지신고’ 미리 파악해서 지도기록 남길 것.경찰청 홈페이지에 신고 되면 바로 잡혀가는데 미리 파악하면 예방 가능.1차 정기고사 : 성적 평가권한 선생님께 부여4/7 8:40~9:25 표준화 검사1학년 - 수요일 자습시간에 연습체육부 : 축구결승, 교통편 오전 시간에 학생에게 전달10시경에 입장료 가격 공지 티켓 관리 잘하도 (도움닫기, 100m, 800m) => 화요일로 연기 됨.*학생과 상담하기.*연구사례대상학생 결정허정, 이길동 학생활발하고 교우 관계가 원만하나 학업에 흥미가 부족하다. 상담 활동을 통해 학습 부진의 원인을 진단해보고, 학업에 대한 흥미나 적성을 발굴하기 위한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원만하고 올바른 자습환경을 해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교생선생님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우선,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학생과 친해지도록 노력한다.*조회지도 -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읽도록 지도하기.-> 다음 주 옆반과 바꾸어 볼 책이므로 다음주 목요일까지 전부 구입하도록 유도 한다.4/9 토요일오늘은 비빔밥을 먹는 날입니다. 다들 즐거운 얼굴입니다. 어렸을 때 저도 학교에서 먹는 것은 모두 맛있었던 생각이 납니다. 교실에 신발을 신고 온 학생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습니다. 미리 주의를 주었다면 혼나지 않았을 텐데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다음 주에는 실제 수업에 들어갑니다. ppt자료도 만들고 학습지도 내용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실제 수업에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교생 선생님이라고 아이들이 떠들고 집중하지 않으면 곤란한데, 제가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오늘 처음으로 축구부 학생 2명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책상이 없어서 앉을 자리가 없습니다. 조금 안되보입니다. 아무리 축구부지만, 학업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축구만 하는 것은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그 아이들이 모두 성공해서 프로 축구선수가 되면 되지만, 그게 아니면 그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아이들을 사랑하고 친해지고 싶은데, 저도 선생님이라고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보면 조금 섭섭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교생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4/11 월요일*전달 및 지시사항1.내일 육상 대회 - 체육복 가져오기2.과학 탐구 대회 희망자 게시판에 적어 놓을 것.3.교복 깨끗이 입기*련회 참가 동의서 걷기.2.생활기록부 작성해보기.*학급 지도 활동1.2-9 수업 토끼전 두번째 시간2.2-7 수업 토끼전 두번째 시간3.2-6 수업 토끼전 세번째 시간, 생활 국어4.2-16 수업 토끼전 세번째 시간, 생활 국어*생활지도1.조회 시간에 정숙 지도하기.2.청소 시간에 도망가지 말 것 - 어제 도망간 학생 있었음.3.종례 시간 - 전달 사항 지도하기.4.생활기록부 작성 연습하기.*학습 지도 활동시조1. - 노인에 대한 공경.시조2. - 임을 기다리는 마음.경험한 내용 말하기토론하여 내용 마련하기4/14 목요일*전달 및 지시사항1.인터넷 서약서 부모님 사인 받아서 제출하기.2.정기고사 점검표 부모님 사인 받아서 제출하기.3.희망도서에 이름표 붙이기.*일일 계획 사항- 실기 및 수행평가 반영 비율 변경 알림.*학급 지도 활동1.2-7 수업 - 생활국어 (1) 경험한 일 말하기.2.2-8 수업 - 생활국어 (2) 책 읽고 이야기하기.3.2-6 수업 - 생활국어 (3) 토론하여 내용 생성하기.*생활지도1.승민, 승규가 인터넷 서약서와 정기고사 점검표 부모님 사인 받은 것 수거하기.2.희망도서 목록 집에 가서 알아 오기.3.복도에서 심한 장난치지 않기.4.조회, 청소시간 지도하기.*학습 지도 활동(1)경험한 일 말하기(2)책 읽고 이야기하기.단원에 들어간 반 - 토론하여 내용 마련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4/15 금요일*전달 및 지시사항1.주번 베란다 청소 깨끗이 하기.2.CA 장소 확인 및 시간 엄수 하기.3.월요일까지 가정 통신문 제출하기.*일일 계획 사항- 과학 탐구 대회 출품 독려하기.*학급 지도 활동1.2-8 수업 생활국어 - 경험한 일 말하기.2.2-9 수업 생활국어 - 경험한 일 말하기.3.2-10 수업 생활국어 - 책 읽고 이야기하기4.2-7 수업 생활국어 - 책 읽고 이야기하기.*생활지도1.요즘 지우개를 잘게 잘라서 던지는 장난을 치는 학생이 많아서 주의를 시킴.2.내일 CA시 복장 단정히 하고 오기.3.조회 - 전달 사항 및 지시 사항 말 훈화
영상문학론 보고서『꽃잎』을 보고◆ 줄거리정처 없이 떠도는 소위 ‘미친 소녀’. 하지만 영화는 그녀가 행복했던 시절 김추자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하면서 그녀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추적해나간다. 오빠의 친구들은 소녀를 찾아 떠나지만 쉽사리 찾을 수 없다. 소녀는 오빠와 닮은 ‘장씨’를 보고 그를 따라나선다. 장씨는 소녀를 거부하다 성까지 유린한다. 그의 짐승 같은 욕정 앞에 소녀는 그저 작은 꽃잎일 뿐이었다. 그는 일용 노동자로, 술에 절어 사는 하층민의 전형이었다. 장씨를 따라가 그의 집에 머물면서 장씨는 어렴풋이 그녀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녀의 아픔의 원인을 알게 되지만, 또다시 소녀는 어딘가로 떠나고 만다. ‘우리’는 소녀를 찾아 계속 수소문 하지만, 결국 찾지 못한 채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감상 및 비판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의 희생양이 된 광주사람들, 그중의 그날의 상처를 간직한 채로 아파하는 작은 꽃잎이 있었다. 한 소녀의 자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진행되는 이 영화는 소녀의 외부적 상황과 내부적 상황을 병치시켜 보여준다.꿈속에서 나오는 커다란 벌레의 공격에서 나를 구해주는 ‘왕자님’(오빠)은 현실 속엔 없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상처받고 그로 인해 정신 이상자가 되지만, 아무도 그녀의 진짜 아픔은 알지 못한 채로 성적 노리개로 삼을 뿐이었다. ‘누가 나의 상처를 알아주겠느냐?’ 엉뚱하게도 난, 소녀의 아픔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경험을 대신해서 그것에 공감하고 함께 느껴주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 5월 18일 그곳에서 그 일은 ‘직접 겪었던’ 그들을 가슴으로 공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랴.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나 역시 이 영화에 대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5.18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던 나는 영화를 보고 80년 5월 18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졌었다. 잔혹하고, 참혹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내 기억 속에서 잊혀졌고, 아직 그때의 일을 가슴에 상처로 안고 있는 뭇사람들에 의해 매년 이맘때쯤 한 두번 떠올려 볼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날의 ‘아픔’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 영화는 수작이 아닐까 한다. 독재 권력 앞에서 민중들의 인권이 얼마나 처참하게 유린되고 있었는지 두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이나 한 듯 그렇게 그려내고 있었다. 흔들리는 기차의 차창 밖에서 ‘소녀’를 향한 어느 여자의 외침 - ‘말해 봐, 그 뻔뻔한 입술로 말을 해봐...’라고 말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꿈에라도 나올까 무서울 정도로 ‘소녀’의 불안한 죄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을 붙잡았던 죽어가는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 결국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 현실 속에서 오늘의 ‘꽃잎’은 소리 없이 지고 있는 것일까.
영상문학론 보고서『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고◆ 줄거리‘안 나가는 작가’ 효섭과 평범해 보이는 주부(그러나 남편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하다) 보경은 오래전부터 불륜 사이다.(원작 ‘낯선 여름’에서는 첫눈에 반해서 불륜이 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효섭을 사랑하는 어린 민재와, 민재를 사랑하는 어느 스토커 같은 남자(민수)의 엇갈린 사랑, 보경의 의처증 같은 남편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소설가인 효섭은 성공하기를 바라면서도 자신만은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듯 애쓴다. 선후배 모임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소동을 피운다. 민재는 2년 넘게 효섭을 따라다니며 좋아하지만, 효섭은 그런 민재를 이용할 뿐이다. 효섭의 생일날 민재는 효섭의 집에서 나오는 보경을 보게 되고 효섭은 민재를 때리며 너 같은 것을 사랑할 것 같냐면서 민재를 구타한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민수는 그녀를 위로하고 민재는 몸을 허락하게 된다. 한편 보경과 약속했던 효섭이 보이지 않는다. 효섭과 민재가 스토커에게 살해되어 처참하게 누워있는 모습을 관객에게만 보여준다.◆ 감상 및 비판홍상수는 ‘낯선 여름’을 전혀 다르게 각색하였다. 이 영화는 80년대 남성 문인의 허위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문학인이 얼마나 자기모순에 빠져있는지, 효섭의 행위를 통해 그 밑바닥까지 치부를 드러낸다. 또한 효섭의 행위뿐만 아니라 다양한 군상들을 통해 현대인의 이면에 드러난 심리를 낱낱이 파해 친다. 마치 심리학자처럼 더 이상 감출 것도 없다는 듯이 적나라한 현대인의 일상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나 역시 꽉 막힌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한명으로 더 이상 나아질 것도 없는 하루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지나쳤을 주옥같은 장면들도 많았다. 우연히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접하게 되었는데, 영화를 볼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더 섬세하다고 해야 할까. 민재와 효섭이 커피숍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있을 때, 민재는 효섭에게 아침을 먹었냐며 물어본다. 바로 전 컷에서 효섭이 아침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효섭은 안 먹었다며 말하면서 육개장 트름을 한다. 냄새가 날까봐 고개를 트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를 볼 때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이 또한 효섭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는데 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이 조금 아쉽다. 동우가 출장가서 옆방에서 어린 여자와 실갱이를 벌이다 섹스를 하는 전무 역시 다음날 만나기로 했던 사람이었다. 이외에도, 제사 장면이 나에게 그러했다. 그것은 보경이 죽은 효섭과 민재를 만나는 것으로 보경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미 효섭과 민재가 죽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영화는 결코 즐거운 영화가 아니다. 마음이 안정되고 즐거워지기는커녕 마치 숨겨있는 내 내면을 들킨 것처럼 불편한 영화이다. 추악한 세상, 권태로운 일상, 우울한 현대인의 내면을 숨김없이 다루면서 그 어떤 방향성도 제시하지 않은 채 영화는 끝이 난다. 그것은 현대인의 일상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