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행정관련 전 분야 중고교 평준화 정책의 적합성에 대해1. 개요2. 현황분석3. 문제점 도출4. 혁신방안 제시5. 기대효과1. 개요현재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교육은 고등교육 혹은 노동시장으로 진출하는 가교이자 개개인의 진로가 갈라지는 분기점으로서, 생애의 기본교육을 완성시키며 기초 산업인력 양성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같은 고등학교 교육의 기능적 특수성은 21세기에 접어들어 세계 각국 정부 차원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맞이하여 전 세계적으로도 고등학교교육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개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OECD에서 주관하여 2000년 및 2003년도에 실시한 두 차례의 PISA연구. 그리고 1995년 및 1999, 2003년 실시한 수학, 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 비교연구(TIMSS-R)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각국이 교육의 국제 경쟁력을 의식하고 고등학교 교육의 질 제고를 강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측면을 보아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한편으로 우리나라는 최근 고교간 학력격차 논란(고교등급제), 이공계 대학 기피현상, 수준별 교육과정 운영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 고교평준화 정책과 관련된 학교 선택권 문제, 실업계 고교 지원자의 감소와 운영부실화 현상 등 고교체제와 관련된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 중에서 지난 30년동안 도입, 확대, 보류, 해제, 재도입, 확대 등의 과정을 거쳐 온 고교평준화 제도의 공과에 대한 논의는 교육계의 관심을 넘어서 이미 사회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2. 현황분석평준화정책의 추진배경은 학생, 학교 간의 과열경쟁, 중학교 교육의 정상화 쟁점, 고등학교 교육 기회의 확대, 학교시설과 여건 측면의 평등한 교육기회 등을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정책이념과 가치 측면은 평등한 교육기회를 부여하고 입시 위주의 교육을 탈피하여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고 사회적인 위화감을 해소하는 측면의 효과분석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정책 목표의 달성 여부를 검토하기 위하여 평준화정책이 지닌 긍정적인 효과와 더불어 현재까지도 달성하지 못한 과제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고교평준화 정책의 보완 과제를 확인하고자 한다.고교평준화 정책을 적용하는 지역이 확산되는 배경과 과정에 의해 분석하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평준화 확신 실태 및 동향에 대해 조사, 분석한다. 또한, 현재 평준화 정책을 적용하지 않는 비적용 지역의 교육적인 특성을 분석하고 이와 대조적으로 평준화를 재도입하는 지역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도 분석하고자 한다. 다른 한편으로 현재 평준화가 적용되지 않는 지역과 평준화를 적용하는 지역의 학생, 학부모, 교육들이 교육당국에 요구하고 있는 과제에 대해 의식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다.동일한 기준이 평준화 적용 지역속에서도 서울, 광역시 등 대도시 적용지역과 지방, 중소도시 간 평준화 적용정책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체적인 연구내용으로 학생에 대한 학교 배정방식, 각 지역별 학군규모 및 실태, 학생의 교육성취 수준 및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학교교육 만족도 등에 대해 실증적으로 분석한다.3. 문제점 도출① 지난 몇년동안 우리 경제가 침체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근원적인 주범으로 교육, 특히 '고등학교 평준화'정책을 지목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학교교육위기, 조기유학, 학력 하향화 현상 등이 교육적인 쟁점으로 부상되면서 소위 경재계, 언론계를 중심으로 한 여론 주도층에서 현재의 학교 실패 주범으로 '고교평준화 정책'을 지목하면서 이 정책의 적합성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특히 정부부처 내에서도 교육과학기술부는 평준화 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고교교육의 다양화, 특성화를 통하여 현행 제도의 일부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반면에 재정경제부를 비롯한 경제 부처에서는 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가 차원에서 요구하는 인력자원을 충분하게 마련하는 방안으로서 고교평준화 정책을 폐지하고 자립형 사립학교를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② 고교평준화 정책은 중등교육의 성격규정과 제도 운영의 규범적 원칙, 교육제도 운영의 기본적 틀을 형성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현재 고교평준화 정책과 관련하여 교육, 사회적 논란이 핵심이 되고 있는 여러 쟁점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체계적으로 수행하고, 그 결과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하며 고등학교 체제는 물론 학교체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전략과 장기적 전망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③ 고교평준화 정책의 특성과 효과를 교육성취도 측면과 사회경제적 측면, 학교 운영에 미친 영향으로 구분하여 각 쟁점별 논의내용과 관련한다.평준화 정책은 도입 초기부터 사학의 독자성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고, 전국 모든 학교의 교육과 학교운영을 획일화 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런점에서 평준화 도입 이후 학교의 교육과정의 운영 실제에 어떤 변화가 초래되었으며 이런 변화가 교육의 다양화, 특성화를 강조하는 사회적 환경변화 속에서 어떤 가능성과 한계를 갖는지 알아본다.④ 학생의 학교선택권과 관련하여 학군 단위 학생배정이 이루어지는 평준화 제도는 기본적으로 한계와 제약이 있음을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최근에는 이런 제약을 완화하기 위해 선지원 후배정 방식이 일부 도입되고, 점차 확대되는 추세인데, 이런 경우에도 특정학교의 선지원자가 배정인원을 초과하면 지원자 가운데서 추첨을 할 수 밖에 없으므로 원하는 희망 학교에 배정받지 못하여 불만이 생길 수 있다. 학생의 학교선택권과 관련하여 보다 심각한 문제는 오히려 비평준화 지역에서 자주 발견된다. 현재 비평준화 지역의 진학지도는 철저히 서열화된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성적순에 따라 이루어지고, 학생들도 결국 자신의 성적 수준이 뒷받침하는 학교에 갈 뿐이지 실질적인 학교선택권은 없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 고입탈락자 최소화를 명분으로 중학교 간 담합과 교육청의 암묵적 지원 아래 학생의 학교선택권과 학교의 학생선발권 대신 석차 순으로 특정 학교(공립명문고)지원을 유도하고 있는 관행이 보편화 되어 있다. 평준화 적용에서 비평준화로 환원한 중소도시들의 경우, 평준화 시절 개별 학교가 보인 교육적 성과와 무관하게 과거 명문 공립고 위주로 급격하게 재서열화 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⑤ 평준화, 비평준화 지역 모두에서 고교 교육과정의 특성화를 통한 실질적인 선택권을 확대하려는 조치가 필요하다.대부분의 지역에서 평준화 제도가 정착된 단계에서는 사립 고등학교의 열성적인 진학지도 성과에 힘입어 학부모와 학생들의 사립학교 선호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들어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는 공립학교의 책무성 약화, 특히 도농복합지역에서 나타나는 일부 교사들의 편의 위주 근무지 선택이 교육의 질에 대한 지역인사와 학부모들의 불신과 사교육 수요를 부채질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평준화 지역에서 일부 학부모들의 사립학교 선호 현상이 과거 공립 명문고 출신지역 유지들의 위기감을 고조시켜 평준화 해제 요구로 세력화 시키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평준화가 해제되는 순간 중학교의 진학지도와 지역교육청의 지원이 과거의 명문고(공립) 중심으로 다시 이루어지면서 우수한 학생유입이 실질적으로 차단된 사립고등학교와 비명문 공립고등학교들 간에는 실질적인 교육력 경쟁이 불가능해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제 6장 사회복지 서비스 전달체계제 1절 서비스 전달체계의 개념과 원칙1. 서비스 전달체계의 개념1) 서비스 전달체계의 개념클라이언트에게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주기 위해서는 클라이언트의 욕구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적합한 서비스 전달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사회복지서비스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전국민의 복지 증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사회복지에 있어서 전달체계란 급여 또는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수혜자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어떠한 조직을 통해서 실천할 것인가의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사회복지 전달체계를 가장 일반적으로 분류해 보면 구조, 기능적 전달체계와 운영주체적 전달체계로 나눌 수 있다.①구조, 기능적 전달체계란 서비스를 기획, 지원 및 관리하는 행정적인 기능과 전달자와 소비자가 일선 현장에서 상호 접촉하에 서비스를 직접 전달하는 집행적 기능으로 구분할 수 있다.②운영주체적 전달체계란 정부(중앙정부와 지방정부)나 공공기관이 직접 관리, 운영하는 공적 전달체계와 민간 단체와 개인이 직접 관리, 운영하는 사적 전달체계로 나눌 수 있다.2) 서비스 전달체계의 원칙①전문성의 원칙기관의 목표에 부합되는 서비스의 경우 반드시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분류해보면 해당 분야에서 차지하는 전문성의 정도에 따라 전문가, 준전문가, 비전문가로 구분한다.②적절성의 원칙클라이언트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양과 질, 제공되는 기간이 클라이언트나 소비자의 욕구충족과 서비스의 목표(자활 및 재활) 달성에 충분해야 한다.③포괄성의 원칙현재 인간에게 발생되어지는 문제의 특징은 하나의 문제가 하나의 원인으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의 문제들이 상호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의 욕구와 문제에 대해 접근해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좀 더 포괄적으로 접근해나갈 필요성이 제기된다.④지속성의 원칙서비스의 다양성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내에서 서비스의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들을 상호 연계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⑤통합성의 원칙통합적인 서비스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시설이나 조직의 행정책임자하에 서비스가 제공되어야하며 서비스제공의 지리적 근접성과 서비스 시설 및 조직간에 상호연계성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어야 할 것이다.⑥평등성의 원칙나이, 연령, 성별, 교육수준, 국적, 언어, 종교, 지위에 상관없이 평등한 서비스 제공이 국가와 사회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공공부조나 특별한 연령 및 건강상태를 기준으로 특별하게 서비스가 제공되어지는 경우도 있다.⑦책임성의 원칙복지국가(사회)가 시민의 권리로 인정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전달하도록 위임받은 조직이 사회복지조직인데, 서비스 전달에 있어서 책임성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⑧접근용이성의 원칙클라이언트가 접근하기 용이하게 서비스 전달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접근의 용이성을 방해하는 요인들로는첫째, 원거리 또는 교통의 불편으로 인한 거리적 장애둘째, 서비스 정보부족셋째, 자신의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의 결여 및 심리적 장애넷째, 기존 법률의 엄격함과 선정절차의 까다로움다섯째, 문제해결을 위해 필요한 인력 및 자원의 부족 등이 있다.※전달체계 구축시 접근 용이성의 문제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2. 서비스 전달체계의 구분①구조적 기능을 중심으로 한 구조기능적 구분국가, 기관, 시설, 단체, 개인 등은 사회복지 서비스 공급자로서 기능하게 되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직체의 구조와 기능이 어떻게 분화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구조기능적 구분이다.②운영주체나 서비스 종류에 따른 구분서비스 전달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조직과 프로그램들의 운영은 국가, 사회, 공공기관, 민간 등에 의해 이루어지고 민간체계와 공공체계로 나누어질 수 있다.공공전달체계 : 행정체계로서 자원전달은 일관적인 위계구조 및 관료제적 조직구조를 통해 전달민간전달체계 : 집행체계는 다양한 서비스 공급주체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발빠른 적응을 하는데 있어 유리한 측면이 있다.3. 공적사회복지 전달체계1 )공적사회복지 서비스 전달체계의 구조현대사회에서 사회복지는 공식적으로 조직된 활동이고, 법률에 의하여 제도화한 것이므로 조직체계를 통하여 전달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공적사회복지 행정은 중앙정부의 거의 모든 부처와 고나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 공적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문제점현재 공공서비스 전달체계는 공공부조 및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와 4대 사회보험의 전달체계로 구분되는데 서비스 제공에 따른 책임성, 전문성, 효율성, 효과성 등의 미흡함과 정책 결정기관(보건복지부)집행기관(행정자치부)의 분리로 인한 구조상의 불일치가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다.①사회복지담당자가 전문성을 발휘하여 일하기에는 행정체계가 너무 획일화되어 있다.②관료제적 명령체계로 인해 지역사회의 욕구를 탄력적으로 반영하는데 미흡한 점이 있다.③업무 간의 유기적 협조 및 통합적인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대상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중복 및 누락의 가능성이 생긴다.④현재 배치된 사회복지전담공무원들은 업무과중과 주변여건의 미비로 인해 취약계층의 자립, 자활, 재활을 가능토록 상담하는 등의 전문적 대인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⑤사회복지 분야에서 공통으로 지적되는 인력상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전문인력의 부족이다.⑥전반적인 복지제도의 발달이 미흡한 상태에서 복지욕구에 대한 국가의 투자가 부족했다는 점, 그동안 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욕구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는 점, 우리나라의 전통적 가족제도가 복지서비스의 개입을 용이하게 하지 않았다는 점.⑦사회복지 관련 위원회와 위원의 활동부진3) 공적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개선전략①전달체계 계층을 단순화 시킨다.②사회복지서비스 업무를 하급기관으로 이양한다.③사회복지 전달체계를 수직적이고 지시적, 감독적, 후견적 관계에서 상호보완, 수평적, 협동의 관계로 전환한다.④정부담당 업무 중 민간부문에서 담당해야 할 업무는 민간조직의 활성화를 위하여 이양한다.⑤사회복지서비스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위해 사회복지 관련 위원회를 그 조직과 운영면에서 활성화시켜야 한다.⑥전문인력을 충원하여 클라이언트에 대해 서비스 제공이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을 전달체계 내에 확대 배치하여야 한다.
박완서의 소설과 여성의 자기 찾기1. 작가 소개2. 박완서의 소설과 여성의 역사3. 억척모성4. 여성 - 어머니와 딸5. 살아있는 날의 시작6.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7. 익명성에서 이름 찾기8. 박완서의 소설과 여성1. 작가 소개박완서는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을 조부모와 숙부모 밑에서 보내고, 1944년 숙명여고에 입학하였다. 여중 5학년 때의 담임이었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한말숙과 교분이 두터운 친구가 되었다. 1950년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하고 미군부대 초상화부에 취직하였다. 1953년 결혼하고 살림에 묻혀 지내다가 1970년 마흔이 되던 해에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이후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6?25전쟁과 분단문제, 물질중심주의 풍조와 여성 억압에 대한 현실비판을 사회현상과 연관해서 작품화하고 있다.처녀작 을 비롯하여 (1971) (1973) (1975) (1980)을 통하여 6?25전쟁으로 초래된 작가 개인의 혹독한 시련을 냉철한 리얼리즘에 입각한 산문정신으로 작품화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 (1980) (1985) (1989)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하면서 여성의 억압문제에 눈길을 주게 되고, 1980년대 중반 이후 여성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주목받았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사별하고 가톨릭에 귀의하였으며, (1994) (1995) (1998) 등 자전적인 소설을 발표하면서 6?25전쟁의 오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면모를 보여주었다.1993년부터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1994년부터 공연윤리위원회 위원, 1998년부터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으로 한국문학작가상(1980), 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1981), 으로 대한민국문학상(1990)과 제3회 이산문학상(1991), 로 제38회 현대문학상(1993), 으로 제25회 동인문학상(1994), 로 제5회 대산문학상( 갈망이 투영되어 있다. 특히 등단작인 은 작가 스스로도 밝힌바와 같이 이러한 자기 상실속에서 다시 본연의 자기를 찾기까지의 과정을 구성의 축으로 하고 있다. 또한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 역할을 대신하던 오빠마저 전쟁으로 잃은 채 엄마와 딸이 만들어가는 삶의 모습은 가장으로서의 어머니의 전형이라 할 억척모성의 표상과 함께 어머니와 딸의 관계라는 여성적 정체성 형성에 대한 탐색을 낳게 한다.박완서의 작품 세계가 전쟁과 분단, 왜곡된 근대화 과정에서의 비인간화와 이데올로기적 억압으로 인한 여성의 비인간화 등의 주제에 걸쳐 대단히 폭넓게 전개되어 왔으며, 우리 문학의 질적 성장을 이끌어 왔다는 것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일제시기와 해방, 전쟁과 분단, 근대화 과정 등을 온몸으로 겪어낸 박완서의 작품 세계는 말 그대로 우리 역사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기억으로서의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질을 가장 잘 체현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 박완서의 소설은 일제 시기에서 지금 이곳에 이르는 우리 역사적 시간들을 항상 현재형으로 이 자리에 불러낸다. 따라서 박완서의 소설에서 과거의 기억은 단지 체혐의 반복과 기록에의 소명에 의해 추동된다기 보다 현재의 우리 삶에 대한 끝없는 성찰의 동력으로 작용한다.박완서의 소설에서 체험과 기억이란 태평성세를 구가하는 이 세상을 향한 안타까운 환기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가 그렇게 살았다우. 이 태평성세를 향하여 안타깝게 환기시키려다가도 변화의 속도가 하도 눈부시고 망각의 힘은 막강하여, 정말로 그런 모진 세월이 있었을까, 문득문득 내 기억력이 의심스러워지면서, 이런 일의 부질없음에 마음이 저려오곤 했던 것도 쓰는 동안에 힘들었던 일 중의 하나이다.” 라고 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가 망각 속에 묻어둔 그 세월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뿌리임을 환기시킨다. 우리 스스로의 자기됨을 성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망각으로부터, 왜곡의 원천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박완서 소설에서 기억이란 참된 자기를 도 그렇게 곰살궂게 군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생애만큼 먼 옛날의 작명이 나에게 그런 위무를 해주고 있었다. ()급체인지 맹장염인지 걸린 남편을 굿해서 고치려다 잃고 층층시하와 봉제사의 의무와 안질에 거머리가 약인 무지를 떨치고 도시로 나온 엄마의 지식과 자유스러움에 대한 갈망은 박완서 소설 곳곳에서 드러난다. 에서 시작하여 , , , 등의 작품은 이러한 어머니들의 자유와 지식에 대한 피맺힌 갈망에 대한 기록들이다. 이 작품들에서 딸이 신여성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엄마의 소망, 즉 ‘공부를 많이 해서 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게 없고 마음먹은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로 딸이 살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사실상 어머니 자신이 되고 싶은 그런 여자의 모습이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식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자식을 통해서 밖에 실현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신여성이 될 수 있을만한 지식도, 사회적 근거도 갖지 못한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의 어머니는 지식과 자유스러움에 대한 갈망으로 봉제사와 봉건적 질서를 박차고 도시로 나왔으나 그 도시에서는 기생바느질과 같은 수공업적 노동력 외에는 어떤 기반도 없는 이었을 뿐이다. 어머니는 이상향과 현실의 갈등 속에서 억척모성이 된ㄴ 길 외에는 그의 이상을 실현할 길이 없었다. 우리 역사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억척모성의 표상은 전쟁과 분단 등의 역사적 격변기 속에서 가장으로서의 어머니가 형성되어온 과정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즉 박완서 문학에 이르러 가장 뚜렷하고도 선명한 문학적 표상을 얻은 억척모성은 우리 격변의 근대사의 산물인 동시에 근대사 과정에서 여성의 자기 정체성 찾기의 특질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박완서 문학에서 억척모성이라는 표상은 모성의 생명력이라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억척모성이라는 표상에는 모성이라는 보편적 범주보다는 우리 역사 속에서 여성이 자유로운 자기를 얻기 위해 치러야 했던 갈등과 질곡의 의미가 더 깊다. 박완서 문학에서 이 억척모성들로 바라보는 딸의 세계는 이 억척모성이란 모순의 발견자이자 그들 이름의 발견자라는 이중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어머니의 이름을 발견함으로써 어머니는 익명적 존재에서 벗어나게 된다.4. 여성 - 어머니와 딸어머니란 무엇인가. 어머니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지칭일 뿐 어떤 개별 존재자의 이미가 각인되지 않은 하나의 명사일 뿐이다. 이때 어머니란 그저 하나의 추상적 범주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란 이러한 추상적 범주일 수 없는 하나의 호칭이 된다. 바로 그 고유한 호칭은 여전히 익명적이지만 그 익명성 속에 개별 존재자의 고유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박완서 소설에서 딸의 세계는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머니 세계의 발견자로서 딸은 어머니라는 이름 속에서 익명성에 가려진 개별 존재자로서의 고유한 의미를 복원해 낸다. 그 복원 작업은 어머니라는 보편의 이름이 아닌 기숙(어머니의 이름)이라는 개별 존재로서 어머니의 이름을 발견한 데서 완성된다. 또한 이 발견 과정은 딸이 자신을 발견하는 성찰 과정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이름을 발견하는 과정은 보편의 이름 - 억척모성이라는 표상이 내포하듯 어머니라는 보편의 이름에서 시대와 역사의 규정이라는 보편의 이름까지 - 과 개별 존재자의 이름 사이의 갈등과, 조화에 도달할 수 없었던 갈망에 대한 성찰과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딸은 억청모성으로서 어머니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바로 보편의 이름과 개별 존재자의 이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수행하는 것이며, 이 성찰 과정은 자신이 놓인 역사적 현실적 맥락 속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다. 딸은 어머니의 세계에 대한 성찰을 통해 결국 억척모성의 이중성의 내용이던 높은 이상과 척박한 현실, 자기됨의 진정한 근거에 대한 갈망과 현실적 기반 사이의 낙차와 갈등이 단지 억척모성의 이중성의 내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성들 삶의 이중성의 내용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발견은 박완서 소설에서 오늘 여성들 삶의 이중성과 갈등, 현실과 이상간의 괴리감, 의식서 수공업적 노동력에 기반한 일에 종사하게 된다. 그녀의 일이 자본의 형식까지 갖추게 된 것은 순전히 노력의 결과였지 일 자체의 성격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다. 에서의 여성상인 억척모성과 에서 청희와는 시대적 배경과 세대가 다르지만, 눈부시게 발전하고 변화해가는 시대와는 달리 여성의 삶의 본질은 그다지 눈부시게 발전하지 않았다는 점. 그것이 박완서가 오늘 여성의 삶을 억척모성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 근거이기도 하다. 억척모성이 그토록 갈망했던 지식과 자유의 영역은 요즘 시대에 표면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신여성이 됨으로써 이루어 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남성적 질서 속에 갖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오늘 여성의 삶이 처한 이중성은 더욱 기형적이다. 표면적으로는 지식과 자유를 얻은 듯 하지만 그 지식과 자유는 엄마 노릇과 여자 노릇, 아니면 생산력 제공자로서의 노릇에 적절한 선만 허용되는 것이다. 이는 지식과 자유를 철저히 남성적 영역으로 폐쇄시키면서 여성의 지식과 자유에 대한 갈망은 뿌리내리기라는 가정 지키기, 여자 노릇하기, 엄마 노릇하기 등의 신성함이라는 윤리의 이름으로 박탈하고, 동시에 여성의 생산력은 내조라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착취하는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드러난다.박완서 소설에서 줄곧 비판되는 ‘여성이라는 마성과 모성이라는 신화’는 여성됨이나 엄마됨이라는 규정에서 참된 가치나 의미 내용은 박탈된 채 도덕과 윤리의 이름으로 완고하고 배타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철두철미하게 작동한다. 미풍양속이라는 허울좋은 윤리의 형식으로 여성들의 자유로운 삶을 철저히 박탈하고 생산력만을 착취하는 근대적 가정에 대한 박완서의 비판은 우리 근대화 이데올로기의 기형적 이중성을 본질적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나름의 자의식을 갖고 있는 청희가 아무리 미풍양속의 위력이 대단하다 해도 유독 남편과 부덕에 대해서만 근 20여 년의 세월동안 아무런 문제점을 못느꼈고 따라서 시정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나는 책 제목을 알고 있었다. 작가 조세희에 대해서도,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에 대해서도 익히 들어왔고, 영화를 보았고, 이 책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리고 나서 대체 왜 이 책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질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지, 영화화 되기 전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왜 이 책이 쓰여졌으며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야만 했는가를 알게 되었다.난쟁이인 아버지, 그리고 난쟁이가 아닌 어머니와 영수, 영호, 영희는 삶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도시의 소외 계층이다. 보장된 미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평범한 가정이었는데, 어느날 집을 철거하겠다는 철거통지서가 날아온다. 며칠 후 철거 시한이 지났다며 쳐들어온 철거반원들은 쇠망치를 들고 멋대로 담을 부수고, 마침 식사를 하고 있던 난쟁이 일가는, 자신들의 집이 허물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식사를 한다. 그 집은 철거촌에 지어진 집일 뿐 아니라 넓거나 깨끗한,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좋은 집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거반원들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을 한 것 뿐이겠지만, 그들은 오백년에 걸쳐 지어진 집을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부순 것이다. 그 집은 오백 년에 걸쳐 지어진 집이었다. 영수가 인쇄한 옛날 노비 문서에서 보듯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은 수 대에 걸친 것이었으며, 그 갈등의 대상은 변함이 없었다. 그 집은 난쟁이 일가에게는 수 대에 걸친 핍박을 헤치고 겨우 마련한 삶의 보금자리였던 것인데, 바로 그 집이 허물린 것이다.그래도 가족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인쇄소 제본 공장에 나가고 영수는 인쇄소 공무부 조역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 나간다. 영호와 영희도 몇 달 간격으로 학교를 그만둔다. 투기업자들의 농간으로 입주권의 값이 뛰어오르고 영수네도 승용차를 타고 온 사나이에게 입주권을 판다. 그러나 전세값을 갚고 나니 남는 것이 없다. 영희는 집을 나간다. 영희는 그 투기업자 사무실에서 일하며 함께 생활하다가 그 투기업자를 마취시키고 가방 속에 있는 입주권과 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때 영희의 난쟁이 아버지는 벽돌 공장 굴뚝에서 자살하고 난 뒤였다.그러나 난쟁이 아버지는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리던 달나라로 떠난 것이었다. 그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함께 말이다. 그가 쏘아올린 공은 사랑이요 희망이었다. 그리고 본문에서의 난쟁이의 대사와 같이,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 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하는 그런 달나라를 희망하며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끝난다.책을 읽고 난쟁이 아버지와 그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난쟁이 아버지는 그 가족의 가장으로서 책임이 있는 사람이지만 신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힘들게 살아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소외된 계층에 더구나 난쟁이라는 신체적인 장애까지, 그리고 그에게 의지하는 가족들. 작가는 난쟁이 아버지를 얼만큼 힘들게 하려했던 것일까. 그보다 어려운 상황을 만들려고 해도 힘들 정도로 그에게 현실은 잔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정상적으로 태어나서 자라는 자식들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 그래서 난쟁이 아버지는 자식과 집과 희망 때문에 삶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리라.난쟁이라는 소외계층, 열악한 조건의 공장 노동자, 생계를 위해 주먹을 맞는 권투선수, 집을 찾기 위해 부동산 투기자에게 몸을 허락하는 딸, 허물리는 무허가 집. 이러한 모든 설정은 작가가 우리에게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알게 해준다. 점점 비인간화 되어가고 각박해지는 세상에 경고를 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을 한다면 불행할 수 밖에 없는 난쟁이의 가족이지만, 사실은 서로 사랑하고 무허가이지만 집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나날들에도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그런 가족과, 그런 가족을 벼랑으로 내몰았던 사회를 그리며 사랑과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옛날 이야기도, 다른 나라의 이야기도 아니다. 불과 몇십년 전 바로 우리 사회의 한 단편이며 지금 우리 주위에도 분명 힘들게 살아가는 이런 가정이 있을 것이다. 이런 가족이 달나라를 꿈꾸며 지구에서의 삶을 포기하게 해야 하는가. 이들을 살리는 것은 이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애정일 것이다. 동화에서도 보통 난쟁이는 늘 노래를 부르며 일을 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이고 거인은 메마른 마음과 남을 괴롭히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주인공이 난쟁이겠지만 난쟁이가 보는 우리는 메마른 거인일 뿐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이 책은 피폐한 어떤 사회의 힘들게 살아가는 한 가정을 단순히 묘사 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그 가정에서 보여지는 사랑과 희망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약간이라도 감동을 받았다면, 아직 우리는 완전한 거인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아직 희망은 있다.
栗谷 李珥의 漢詩에 대하여安炳鶴, 1991, {現代文學} 12월호 通卷 444 호1. 율곡의 생애와 시대 배경이이(1536~1584 : 중종34~선조17)의 생애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은 많아 번거로운 설명은 피하고 간략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 별호는 석담(石潭),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본관은 덕수(德水 : 경기도 풍덕군)이지만 외가인 강릉부 북평촌(北坪村)에서 아버지 원수(元秀) 어머니 사임당 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6 세에 모친상을 당하고 삶에 깊은 회의를 느껴 삼년상이 끝나자 1554 년 금강산에 들어가 불학에 전념했으나, 그것이 삶의 바른 방향이 아니라 판단하고 곧 돌아와 이듬해 유명한 을 지어 자신의 목표가 성인(聖人)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1558 년 겨울 으로 장원, 1564 년 생원 진사 명경과에서 장원을 한 이후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시무(時務)를 논하면서도, 기대승(奇大升). 성혼(成渾) 등과 성리학에 관한 서한을 주고 받기도 하였다. 34 세 되던 해 가을, 11 조의 을 지어 왕도지치(王道之治)라는 이상의 구현을 희망하면서 군신의 도리 및 백성의 안녕을 위한 현실적 대책을 제시했으나, 선조에게서 우활(迂闊)하다는 평을 들었을 뿐 현실 정치에 반영되지는 못했다. 1570 년 이후 그는 당대의 정치현실이 어지러운 것을 보고 전원에 물러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지만 왕명에 의해 출사와 퇴거를 거듭하던 중, 1575 년 봄 현실적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룬 유명한 를 올렸으나, 문인 김장생(金長生)이 “(선생의 제안이)모두 빈 말로 돌아가 시행되지 못했으니 그것들이 절실한 내용이기는 하나 소용없게 되었다"고 탄식한 것처럼 실현되지는 못하였다.이이가 활동하던 16 세기는 사회경제적으로는 조선조의 기본체제?토지제도, 수취제도, 병제 등-가 극도로 모순을 드러내고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사림이 훈구파에 의해 네 차례에 걸친 사화(士禍)라는 심대한 타격을 입으면서도 끝내는 정계의 주도권을 잡았으나 동시에 사림 내부의 갈등이 동서분당으로 표면화되고 있었으며, 철학적으로는 성리학이 고도의 이론적 성취를 이룬 시대이기도 하다.이러한 당대의 특징적 측면과 그는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즉, 그는 학문적으로는 퇴계를 대표로 하는 주리론(主理論)에 대해 주기적(主氣的) 경향을 지닌 독자적 이론을 전개하였다. 앞의 두 가지 문제, 특히 사림이 받은 타격과 관련하여 그는 당대 상황을 기절한 사람에 비유하여 설명하여, 소생은 하였으나 아직 원기가 회복되지 않아 급히 약을 써야 겨우 살아날 상황인데 무슨 약을 쓸지 몰라 수수방관하거나 일시적 평안함만을 꾀하여 구태의연한 무사안일만을 일삼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그는 조광조(趙光祖)가 지닌 도학정치(道學政治)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면서, 입지(立志)와 수기(修己) 특히 왕의 입지와 수기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주장이 단순한 유가의 일반적 수기론이 아니라 실무적 경세사상의 일환임은 이미 밝혀진 바 있다.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의 문학론이나 시세계는 실무적 경세사상과 곧바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현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문학론과 그 사상적 배경을 간략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2. 율곡의 미의식과 그 사상적 기저율곡은 중국 한시를 모아 편집한 시선집 의 서문과 총서(總敍)에서 시의 최고의 경지를 을 전범으로 하면서 "인정을 곡진하게 드러내고, 사물의 이치에 두루 통했으며 여유있고 부드러우면서도 충후하다(優柔忠厚). 요컨대 올바름에 돌아갔다"고 평하였다. 이어 자신이 생각한 미적 특성을 최고의 미적 기준으로부터 점차적으로 몇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충담소산(沖澹蕭散)', '한미청적(閒美淸適)', '청신쇄락(淸新灑落)'은 그의 미의식의 핵심적 개념으로 주목되어 왔다.'충담소산'은 율곡에 의하면 자연스러운 가운데 깊숙히 묘취(妙趣)가 있어 담박(淡泊)함을 맛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스러움은 인공적 조탁의 기교를 배제하는 것이 분명한데, 문제는 묘취의 함의에 있다. 율곡이 충담소산에 귀속시킨 시들 및 주석을 살펴보면, 남녀가 만나지 못함을 슬퍼한 시―이를 어진 사람이 임금의 지우를 얻지 못한 것이라고 해설―도 있고, 이별의 슬픔을 다룬 것도 있으며, 사시의 특징적 경물을 읊은 도연명(陶淵明)의 시도 있다. 따라서 이는 내용 혹은 주제나 제재(와 무관한 것은 아니겠지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의 '품격(品格)'즉 "시의 의미나 효과로서의 느낌의 양식에 대한, 시의 총체적 가치에 대한 개념"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묘취가 주는 구체적인 미적 체험은 자연스러움과 담박함이므로, 충담소산이 평범한 생활 속의 아름다움이 삶 속에 융화된 존심양성(存心養性 : 부여된 본심을 유지하며 선한 본성을 길러 나감)적 태도와 연결된다는 견해는 '아름다움'이라는 측면의 강조를 유보한다면 수긍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성리학적 사유는, 기본적으로 균형을 잃은 과도한 감정의 표출을 제어하는 것을 심성수양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한미청적'은 고요히 자득(自得)하여 흥취를 드러내는 데서 나오는 것이어서 사고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읽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기가 온화해져 화려한 세속의 이익이나 권세를 아득히 먼 것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는 외물에 집착하지 않고 초연한 자세를 취하려는 데서 비롯하는, 혹은 자연 속에 묻혀 소요자적하며 마음의 여유를 누릴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 설명된다. 이 항목에 선정된 시들은 자연과 그 속에 사는 은자나 스님을 무욕의 상태를 포착한 것이므로, 부귀공명과 같은 세속적 지향과 대조되는 자연 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사는 초속적인 삶의 아취를 지칭한 것이라 할 수 있다.'청신쇄락'은 매미가 바람과 이슬 속에서 허물을 벗듯, 화식(火食)을 하는 인간의 입에서 나온 것 같지 않아 인간세계의 부취(腐臭)가 마음을 얽어매지 않는다고 하였다. 여기에 귀속된 시들은 대체로 자연의 풍광―그것도 주로 맑은 가을을 읊은 것이 많은데―을 묘사를 통해 제시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이는 글자 그대로 세속의 삶의 번쇄함이나 번거로움 나아가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씻어주는 '청신'한 자연세계에 상응하는 정신의 청정함을 지향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이러한 입장의 기저에는 다음과 같은 철학적 배경이 있다.사람에게 소리가 있는 것은 기(氣)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기가 기 됨은 누가 시킨 것인가? 마음이 그렇게 한 것이다. 마음(心)이 마음 됨은 누가 그렇게 시킨 것인가? 마음이 마음 됨은 천지(天地)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천지가 천지 됨은 누가 그렇게 시킨 것인가? 천지가 천지 됨은 무극 태극(無極太極)이 그렇게 시킨 것이다. 무극 태극이 무극 태극 됨은 누가 시킨 것인가 ? 그대가 알면 나에게 알려 달라.천리(天理)가 인간에게 부여된 것을 성(性)이라 한다. 성과 기를 합하여 몸을 주재자가 되는 것을 마음이라 한다. 마음이 사물에 감응하여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정(情)이라 한다. 성은 마음의 본체이고 정은 마음의 작용이다. 마음은 드러나기 전(未發)과 드러난 후(已發)를 통칭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은 성과 정을 통괄한다고 말한다.여기서 궁극적 기초는 무극 태극이지만, 소리와 소리의 정수인 시에 초점을 좁히면 문제가 되는 것은 시를 존재하게 하는 기와 그것을 움직이는 마음이다. 따라서 기와 마음에 대한 해석이 율곡의 문학론에 대한 이해의 관건이 된다. 그런데 율곡의 독특한 사상의 하나는 이통기국(理通氣局), 기발이승(氣發理乘)이라는 주장으로서, 이는 퇴계와 그 입장을 달리하는 것이다.이통(理通)이란 말은 이는 우리의 감각으로 포착할 수 있는 형체가 없으므로 시공을 초월한 존재로서 본말선후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와는 기국(氣局)이란 말은 기는 형체와 작용을 지니므로 시공 속의 존재로서 본말선후가 있음을 뜻한다. 기의 본체는 담일청허(湛一淸虛)하지만 그것이 무수한 변화를 일으키면서 현상으로 나타날 때에는, 이(理)와는 달리, 흐리고 맑은 차이가 있게 되므로 그 본연의 모습을 잃는 것도 있고 잃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러한 입론의 궁극적 목적은 '이통'으로 선의 본체가 어디에나 존재하여 변함이 없으며, '기국'으로 수양을 통해 본연의 담일청허한 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여, 기질을 잘 다스려 본연의 성을 확충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기발이승(氣發理乘)은 천지의 변화나 인간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모두 기의 작용이지만 이(理)가 그 속에 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의미는 인간의 마음의 두 상태 즉, 천리와 일치하는 도심(道心)과 욕망에 가리워져 일치하지 않는 인심(人心)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수양을 통해 기를 단속함으로써 인심은 도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결국 시는 사물에 감응하여 일어나는 마음 특히 정의 표현이지만, 수양을 통해 기를 잘 다스림으로써 마음이 도심에 합치하도록 하는 데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논지이다. 시는 마음의 더러운 찌꺼기를 씻어내 존심양성에 일조가 되어야 한다는 율곡의 입장은 언급한 '충담소산', '한미청적', '청신쇄락'등의 미적 특질로 구현된다. 그래서 율곡의 문학론은 16 세기 사림파의 문학의식을 대변하는 것으로 세계의 질서와 평정을 추구한 것으로 논의되고, 잘 조화된 금욕적 세계관과 미의식의 체계에 기초한 것이라 해석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