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선*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5
검색어 입력폼
  • [고전문학] <향가>서동요,헌화가 평가B괜찮아요
    Ⅰ. 서론서동요와 헌화가는 향가의 대표적인 4구체 시가로 삼국유사에 수록된 설화와 함께 시가에 대한 논의가 다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작품으로 학자들마다 각기 다른 견해로 작품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에 대한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서동요는 설화와 관련하여 서동의 실체와 서동요의 작자문제, 그리고 설화의 사실성 등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고 다각적인 관점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학자들마다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달라 설화해석부터 설화에 삽입된 서동요의 해석까지 일치된 견해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헌화가 또한 서동요와 같은 입장으로 설화와 관련하여 헌화가의 해석과 성격에 대한 연구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서로각자 다른 입장에서도 그 나름대로의 근거를 들어 그 타당성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연구되어온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살펴보고. 어느 한쪽의 입장을 택해 따르기보다는 그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살펴보고 학습하는데 그 의의를 두고자한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시가가 수록된 관련설화의 내용과 설화해석, 그리고 작품분석에 들어가 시가의 성격과 향찰로 기록된 시가를 해독해 보며 두 작품을 이해하고자 한다.Ⅱ. 본론서동요와 헌화가는 모두 삼국유사에 수록된 설화 안에 삽입된 삽입시이다. 따라서 시가적인 성격보다도 관련설화에 대한 해석과 설화와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 본론에서는 관련설화의 내용과 그에 따른 견해를 먼저 살펴보고, 작품분석에 들어가 시가의 성격과 향찰로 기록된 시가에 대한 어석풀이의 순서로 작품을 이해하고자 하며, 어석풀이에 있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향가는 借字表記法을 이용해서 기록된 것이다. 借字表記法은 音借와 訓借의 둘로 구분되는 것으로 音借는 字音을 이용하는 것이다. 즉, 향가는 字音과 字義를 적당히 활용한 混合表記라 할 수 있고, 이러한 표기법이 바로 鄕札이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吏讀(이두)가 있는데 鄕札도 넓은 의미에서 포함되어진다. 吏讀는 漢語에 國語가입장에서 설화를 해석하는 관점과 불교적인 사찰연기담으로 해석하는 관점, 그리고 설화로 해석하는 관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설화 속의 주인공의인 서동의 실체 그리고 서동요에 대한 작자문제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으므로 이 세 가지 관점을 기준으로 살펴보고자 한다.1) 역사적 관점에서 보는 견해이 견해는 삼국유사의 편자인 일연이 서동설화를 백제의 무왕에 얽힌 이야기로 해석하고 있는데 동조하거나 혹은 다른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인용한 것으로 생각하는 견해로 유사의 기록을 사실이라 생각하고 이 설화를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사건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이러한 주장을 편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양주동 교수는 古歌硏究에서 백제 무왕=서동 의 견해를 대체로 수긍하고 있는 입장에서 서동이 용의 아들이라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대해서는 자소(自少)로 기량(器量)이 難測 風儀 英偉 함에서 생긴 것이요 마를 캐서 팔았다는 사실은 무왕의 아동명이 서동 임에서 생긴 전설로 반드시 사실이 아니다 라고 했다.{) 양주동, 고가연구, p433.이병도 교수는 사학도의 입장에서 무왕 조의 기록을 역사적 사실이 서동의 이야기로 설화화된 것이라 해석하였는데, 그는 서동설화에 대한 신고찰 에서 백제 武王代와 신라 진평왕대의 羅濟 관계를 고려하여 역사상 유일한 예로서 백제 제23대 東城王때의 新羅女聚婚 즉, 신라 귀공녀를 배우자로 맞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를 단서로 하여 서동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동성왕 기인(其人)이라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 {) 歷史學報, 1집, p59.고 하였다. 그리고 동성왕이 신라의 귀공녀를 배우자로 맞이한 사실이 유사에서는 마치 무왕이 진평왕의 공주를 취한 것인 양 잘못 부회(附會)된 것이라 단정하고 나아가서 동성왕의 휘(諱) 모대(牟大)(삼국사기·삼국유사), 마제(麻帝)(삼국유사), 모도(牟都)(모대의 이칭), 말다(末多)(백제신라·일본서기)등 어음상 서동(마둥) 말통과 매우 근사하다는 점을 강조하여 서동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동성왕이었을 것 그들을 집약·상징하고 대표하는 전형으로서 상정해낸 이상적 인물이요 영웅적 인간상으로 이 설화는 서민 대중의 꿈을 대변하는 민담적인 이야기가 미륵사창건연기전설인 무강왕전설 및 제석사창건연기전설인 무광왕전설과 결부되고 이것이 다시 나말여초에 익산지역의 패자인 후백제의 견훤에 관한 이야기와 결부되는 복합적인 과정을 겪은 설화로 보고 있다.이종출은 서동요는 초동(나뭇군)이나 목동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서여(마)를 팔아 활업으로 삼는 서동들의 세계에서 비록 가난하게 사는 현실속에서나마 그들의 꿈만은 희망적인, 다시 말해서 현실적으로는 이룩하기 어려운 이상의 세계, 꿈의 세계를 노래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서동요이기 때문에 서동은 무왕도 무강왕도 그 어느 실존인물도 아닌, 한 설화 속에 설화적 인물일 따름이니 서동요의 작자는 미상일 수밖에 없으며, 삼국유사소재의 기록은 결국 참요적 성격의 전승민요인 서동요의 부대설화가 역사화과정에서 무강왕 또는 무왕전설로 윤색되고 여기에 다시 미륵사연기설화까지 습합되어 문헌에 정착된 것으로 보았다.김열규는 서동전승을 역사적 전설로 보고, 무왕조의 서수적 구조를 서동이 선화를 맞이하는 부분과 서동이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오르는 부분의 두 단계의 고비를 지니는 것으로 보았다. 서동이 태어나서 왕위에 오르게 되는 생애담을 주축으로 하는 이 이야기는 영우담의 구조를 지니고, 서동이 선화를 맞이하는 부분은 온달전이나 해모수 신화와 유사한 혼사장애로서 이 장애를 극복하여 공주와 결합하는데 서동요가 돌파구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삼국유사에서 서동을 무왕으로 해서한 것을 신빙할 수 없다고 하고 역사적으로 실존한 특정인물 아무개이기 전에 , 이고, 서동과 무왕, 무령왕, 동성왕과 같은 역사적 인물과의 결합은 우연적으로 허구의 인물이 역사화되어 전승된 것 뿐이라고 하였다.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무왕조에 대한 서동설화는 연구하는 학자마다 견해를 달리한다. 그러나 이것을 꼭 하나의 관점에 비추어 볼 필요는 없을 듯 싶다. 삼국유사는 정사인 사기와는 달리 일 정열모는 薯童 을 머슴아이 라는 의미를 가진 일반명사 머선 으로 풀이하였으며, 朝鮮語史講義五講{) 정열모, 같은 책, p. 115에서는 房 을 거처하는 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홍기 문은 방을 집 으로 읽었고 그 의미는 서동을 가리키는 말로 보았다.{) 홍기문, 향가해석, 사회과학원, 1956夜矣卵乙抱遣去如이 부분은 서동요에서 논란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곳으로 논란의 발단은 삼국유사 원본에 卵 자가 식별하기 어렵게 기사되어 해독자마다 卵 과 卯 로 달리 읽은 데서부터 출발한다.夜는 훈독, 矣는 음독, 卵/卯은 이견이 많음, 乙은 음독, 抱는 훈독, 遣은 음독, 去는 훈독, 如는 음독으로 보았다.小倉進平 : 卯乙 을 卯 는 音 묘 , 乙 은 音 을 로, 卯乙 은 모을 로 읽으며, 몰내 가 된다 고 했다.양주동 : 을 卯 자로 가정하고, '자는 卯 의 속체라 보고, 이것을 부사로 보아 몰래 로 풀이했다. 抱遣 은 안고 로 읽었고 去如 는 가다 라고 읽었다.김완진 : 乙 자는 원칙적으로 대격의 표시로 쓰이는 자이기에 卵乙 을 알힝 로 읽으며 이 구 전체를 바애 알힝 안고 가다 라 읽는데,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단지 알을 안고 간다 는 것이 당시의 은어 내지는 비유적 표현일것 같다고 추정했다.기타의견 : 지헌영은 卵乙 을 대격형으로 파악해서 몰 로 읽고 의문을 나타내는 무엇을 이라는 의미로 풀이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밤에 무엇을 안고 서동방으로 가는가? 가 된다. 한편, 서재극은 卵 자로 보고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그는 卵 을 알(남성의 고환)로, 乙 을 대격형으로 보았다. 후에 그는 이를 숙어로 보아 안겨 지다 로 읽고 품었다 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한편, 남풍현은 명사+조사(대격)으로 보고 모링 로 읽어 마(薯)를 일고 새롭게 풀이하였다. 또, 홍기문은 卵 으로 보고 夜矣卵 을 붙여서 읽어야 한다고 하고, 乙 은 통용상 덧붙여진 것으로 의미를 바 므란 (밤이면) 이라고 하였다.※ 소창진평, 양주동, 김완진의 해독과 해석{少倉進平덕왕대 순정공부강릉태수 행차해정주선방유석장 여병임해고천장상 유척촉화성개 공지부)人水路見之 謂左右曰 折花獻者基誰 從者曰非人路所到 皆辭不能 傍有老翁 牽牛而者 聞夫人言(인수로견지 위좌우왈 절화헌자기수 종자왈비인로소도 개사불능 방유노옹견우이자문부인언)折基花 亦作歌訶獻之 基翁不知何許人也 ...(절기화 역작가가헌지 기옹부지하허인야...)다시 이틀 길을 가다가 바닷가 정자에서 점심을 먹는 차에 바다용이 홀연히 나타나 부인을 끌고 바다로 들어갔다. 공이 갈팡질팡 발을 구르며 땅을 치나 아무 방책이 없었다. 또 한 노인이 나타나 옛사람 말대로 입이 여럿이면 쇠도 녹인다 하였으니 이제 그까짓 바다짐승이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마땅히 고을 안 백성들을 모아서 노래를 지어 부르며 몽둥이로 언덕을 두드리면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하여 공이 그대로 하였더니 용이 바다에서 부인을 데리고 나와 바치었다. 수로부인의 용모는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깊은 산이나 큰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이상한 것들에게 잡히어갔다. 여럿이 부른 바다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생략(2) 배경설화 및 시가의 해석수로부인의 배경설화와 가사는 본래 2장면, 2개의 가요로 나뉘어져 하나는 노옹이 불렀다는 헌화가와 집단이 불렀다는 해가로 나뉘어져 있으나 해가는 향가인 헌화가와 달리 한시영역이므로 우리는 헌화가를 중심으로 배경설화를 알아보고자 한다. 이때 배경설화는 학자들마다 그들 나름대로 상이한 의견차이를 보이는데 그들의 의견을 나누어 정리 해보고 학습하는데 의의를 두고자 하며 정리함에 있어 한가지 사물을 동일하게 두고 여러 관점으로 나누었다기보다는 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를 함축하여 정리하였다.1) 제의적 관점헌화가를 제의적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삼국유사의 서술이 한 개념체계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민중들의 구전에 의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제의적 관점으로 보는 견해는 학자마다 그 주장이 다양하므로 그들의 의견을 정리해 보며 작품을 이해하고자 한982
    인문/어학| 2001.11.20| 20페이지| 2,000원| 조회(772)
    미리보기
  • [국어국문] 수필의 특성 평가A+최고예요
    Ⅰ. 서론수필문학은 그 동안 문학성이나 독자성 등 여러 논란을 거치면서 이제 엄연한 문학의 한 장르로 그 위상이 자리잡혀 가고 있다. 일찍이 아나톨·프랑스가 말한 바 있듯이 수필문학이 전 문예를 석권할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언과 같이, 오늘의 수필문학은 그 질적 양적으로 팽창일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수필문학의 저변 확대와 함께 수필 인구가 폭증해 왔으며, 수필집의 폭발적인 출간과 아울러 문학사적 흐름에서 시나 소설이 독자로부터 멀어지고 대신 그 자리에 수필문학이 위치하게 되는 독서 취향의 변화도 한 몫을 해왔다 하겠다.수필은 인생을 통찰하여 정서의 감미로움을 씹기도 하고 지성의 섬광이 번득이는 문학이다. 그렇기에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의 다른 장르와는 달리 직접 독자의 심정에 부딪치거나 사색의 반려가 되기도 한다. 수필은 그저 담수(淡水)와 같은 심정으로 인생을 바라보게 하는 문학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작가의 마음을 자유로운 형식에 담아 사색의 앙금이 반짝이는가 하면, 읽는 이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기도 한다.따라서 수필이 소설의 산문성을 침식하고 시의 서정성을 차용한다고 하여 수필문학을 장르 밖으로 내몰 수 없으며, 천대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수필이야말로 무한한 제재를 자유로운 형식에 담아 마음껏 포현하며 인생의 향기를 더하고 성찰의 고양을 가져와야 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본론에서는 이 같은 수필문학이 지닌 특성을 살펴 수필을 좀 더 깊게 이해해 보고자 한다.Ⅱ. 본론1. 개성의 문학첫째로 수필문학의 특성은 개성의 문학이다. 문학의 어느 장르나 그렇듯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수필문학의 경우에는 어느 장르보다 특히 개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학양식이라 하겠다.시는 정서를 순화시키고 메타포의 기법 속에 개성이 융합되며, 소설이나 희곡은 그 표현의 뒤에 개성적 향취나 무드가 있지만, 수필문학은 작가의 적나라한 심적 나상(裸像)이 그대로 노출되고 개성이나 취미 또는 지식과 이상, 그리고 인생관이 그대로 나타나소가 가장 개성적으로 나타나는 문학양식이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소설가 이태준은 수필을 일러 자기 심적 나상 {) 이태준, 《문장강화》, 박문출판사, 1946, p185이라고 말한 바 있으며, 최태호는 자조문학 {) 최태호, 《수필작법》, 어문각, 1961, p207-208이라고 하여 수필이 개성을 품고 있는 문학임을 말하고 있다.그런가 하면, 김광섭은 에서 수필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다른 문학보다 개성적이며 심경적이며 경험적이다. 우리는 오늘날까지 위대한 수필문학 그 얻는 것이 비록 객관적 사실을 취급한 것이라 할 지라도 그 심경에 부딪치지 않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강렬하게 자아내는 심경적이 아니요, 자연히 유로되는 심경적인 점에 그 특징 이 있다.이는 수필문학의 개성을 강조한 말이다.수필을 심적 나상 이니 자조 문학 이라고 부르거나, 고백적 문학 이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개성적 특질을 두고 한 말로 풀이된다. 예를 들어 피천득의 나 김형규의 그리고 이양하의 등을 보면 수필의 특징이 바로 개성적임을 알게 한다.서정시와 함께 수필은 자기 표현의 문학이다. 따라서 수필은 1인칭으로 서술되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작품이 창작된다. 강렬하게 풍겨 나는 자아의 고백은 독자로 하여금 자기를 신임하도록 하며, 자유로운 기법과 문체로 자기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몽테뉴는 수필과 자기를 동질동체(同質同體)로 본 것이다. 어떻든 수필은 개성을 생생하게 나타내면서 예술적인 수필로 확대하는데 수필의 특징이 있다고 하겠다.2. 산문의 문학수필문학은 말할 것도 없이 산문으로 씌어진 문학이다. 윤오영은 수필문학을 일러 자유로운 산문 으로 규정하여 《수필문학입문》{) 윤오영, 《수필문학입문》, 환동출판사, 1975, p15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수필이란 자유로운 산문이다. 수심소욕(隨心所慾)에 호무체애(豪無滯碍)한 것이 곧 수(隨) 이니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독서성령(獨抒性靈)에 불구격투(不拘格套)라는 것이다. 필(筆)은 산 문이란 뜻이니, 대립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산문으로 표현된 문학이 수필만은 아니지만, 수필만큼 산문 정신에 투철한 장르도 드물 것이다. 물론 소설이나 희곡도 산문으로 씌어지긴 하지만, 소설이나 희곡의 지문이나 대화에 쓰이는 산문이 정리되고 다듬어진 것에 비하면 수필은 조잡한 채 표출되는 산문이라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근대문학이 산문 정신에서 출발하였음을 상기할 때 더욱 그러하다.H. Read는 에서 시는 창조적 표현이고 산문은 구성적 표현이다 라고 말하면서 산문은 축적된 언어의 분산활동이라고 말하고 있다.말할 것도 없이 산문은 근대에 와서 발달한 것으로 이의 특징은 논리적이고 이지적인 문장이다. 또한 객관적이며 과학 정신에 입각한 문장이라 하겠다. 따라서 근대 이후 몽테뉴나 베이컨에 의해서 시작된 수필이 산문으로 씌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결론적으로 말해 수필문학은 산문의 대표 양식이다. 간혹 수필 속에 운문이 삽입되는 경우도 있지만, 산문은 수필의 용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산문이면서도 소설이나 희곡의 문장과는 다르다. 소설이나 희곡이 의도적이요, 조직적인데 비해 수필은 사유에 비치는 제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결과적현상으로 나타나는 조탁되지 않는 생경한 산문인 데에 그 특징이 있다.3. 제재가 다양한 문학수필은 다른 장르보다 제재가 다양하고 광범위하여 인생이나 사회문제는 물론 온갖 삼라만상 무엇이든 다 제재가 될 수 있는 문학이다. 시나 소설은 제재의 제한이 없어도 작품의 기법에 융합되는 것임에 비하여 수필의 제재는 생생한 그대로 다양하고 무한하다. 더욱 수필은 그 안에 과학, 철학, 종교까지 포함하며 극히 사소한 개인적 생활까지를 망라하여 그 제재가 무궁하다.백철은 이와 같은 수필문학의 특징을 일러내용성에서 보아 한계가 제한되지 않고 영토가 광대하다. 인간성에 관한 것이나, 습관이나 역사, 교육, 과학, 경제, 종교, 스포츠 등 모든 방면의 것이 수필의 주제가 될 수 있는 것이 다. 따라서 그 어떤 특정의 내용이나 주제의 의미에서 수필을 정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의해서 취향이 여러 가지로 변화할 것은 또한 물론이다.이와 같이 수필은 무한하고 다양한 제재를 문학적 표현으로 작품화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인간이 사유 속에 포용할 수 있는 것이 그대로 수필의 제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제재는 작가의 투철한 통찰력과 달관에 의해 소재 중에서 선택되어져야 하며 작가의 정서적, 신비적 이미지를 거쳐 나오는 생생하고 독특한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수필의 작가적 자세가 문제가 된다. 결국 수필문학은 무엇이라도 담을 수 있는 용기요, 무엇이든 수필문학의 제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4. 무형식의 문학시를 쓰려면 메타포나 리듬, 이미지 등의 여러 가지 시의 형식적 제약을 받아야 한다. 또 소설의 경우에는 플롯이나 시점, 인물, 배경 등 소설을 이루게 하는 형식적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수필은 그런 제한이 사실상 필요치가 않다. 물론 수필도 구성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구성의 진행이나 그 방법에 있어서 특별한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에 수필이 지닌 무형식적 형식의 특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구인환·구창환, 《문학의 원리》, 법문사, 1973, p242그러나 이 같은 일정한 제약이 없고 패턴이 없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문학적 수필을 써야 한다는 것이 수필창작의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수필이 잡문으로 떨어져 수필의 가치를 잃게 하는 경우도 이 형식의 자유를 잘못 구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형식의 문제에 대하여 김진섭도 에서수필에는 일정한 형식이 없고 또 모든 것이 수필의 재료가 될 수 잇는 동시에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데에 수필이 횡해·발호하는 이유가 있지만 또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고 쓰기고 쉬운 대신 좋은 수필을 얻기란 실로 곤란한 것이니 수필만큼 단적으로 쓴 사람 을 표시하는 문장은 다시 없으며, 원래 좋은 수필에는 그 근저에 특이한 사람의 마음이 있 지 않아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일이 있다.이런 견해와 맥을 같이하면서 김광섭도 그의 에서 형식으로서의 수필문학은 무형식이적이면서도 시가 아니고, 소설이나 희곡이면서도 소설이나 희곡이 아닌 수필만의 독자적인 형식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자유로운 형식으로서의 수필문학의 특징이 있다고 하겠다.5. 유머와 위트의 비평문학수필은 단순한 생활의 기록이나 객관적 진리를 서술한 문학이 아니다. 수필은 R. M. Alberes의 말과 같이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신비적인 이미지로 되어진 것 이어야 한다. 따라서 수필은 따스한 서정의 감미로움이 있어야 하고 입가에 스치는 미소가 있어야 하며, 벽을 뚫는 비평정신이 있어야 한다.그런가 하면 수필은 주름살을 펴고 파안대소할 수 있는 유머를 필요로 하며 깜짝 놀라 기겁을 하면서도 즐거움을 주는 위트가 있어야 하고, 얼음과 같은 냉철한 비평정신과 내일에의 지표가 있어야 한다. 서정에 어린 지성의 섬광(閃光)이라고나 할까, 이것이 수필문학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여기 유머와 위트는 소설이나 희곡에서도 중요시되는 요소이며, 비평정신은 문학비평의 기본적인 정신이다. 특히 수필에서는 지적 작용을 할 수 있는 비평정신이 밑받침이 되어 시가 아니면서도 정서와 신비의 이미지가 그려지게 하기 위해서 유머와 위트가 반짝여야 한다. 따라서 비평정신이 없는 수필은 신변잡기나 사색의 부질없는 유희에 그치기가 쉽다. 그리고 유머와 위트가 없으면 평면적 생활의 지루한 넋두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김광섭도 이런 수필의 특성을 에서수필은 단순한 기록에 그쳐서는 우리의 흥미를 진작시키지 못할 것이니, 거기에는 유머가 있어야 하겠고 위트가 있어야 한다. 전자는 무의식적 속성에서 피는 꽃 같은 미소요, 후자 는 지혜와 총명의 샘과 같다. 이 천성스런 유머와 보석 같은 위트는 수필의 본성같이 인식 되어 일대 수필가 램이나 헤즈리트에게서 빛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정서의 승화나 행동이 성격에서 오는 공감이나 고상한 즐거움을 줄 수 없는 수필은 마치 제비가 푸른 물을 박차는 듯한 위트와 시골 농부의 구수한 유머가 있어야, 읽는 이의 가슴을 훤하게 뚫어주어 카타르시스의 심경
    인문/어학| 2001.11.02| 6페이지| 1,000원| 조회(1,101)
    미리보기
  • [향가] 찬기파랑가 분석 평가A+최고예요
    {- 차 례 -Ⅰ 서론Ⅱ 본론1. 해 독2. 시대적 배경3. 관련설화4. 사상적 배경5. 작품성격Ⅲ. 결론* 참고문헌Ⅰ 서론는 「삼국유사」권 제2 기이 제2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기에 실려 전하는 10구체 향가이다. 이노래와 관련된 기록들이 대체로 단편적인 것이어서 노래의 성향을 파악하는데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따르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창진평에서 시작하여 여러 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연구들이 계속되어와서 해석면에 있어서도 큰 진전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연구에 의해 이 노래의 완전한 제목이 였다는 것과 이 노래를 통하여 를 지을 수 있었다는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본연구는 이렇게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자료를 중심으로 가장 이견이 많은 부분인 는 어떤 의미에서 불리워졌던 노래이며,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던 노래였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하였다.Ⅱ 본론{咽鳴爾處米露曉邪隱月羅理白雲音逐于浮去隱安支下沙是八陵隱汀理也中耆郞矣兒史是史藪邪逸烏川理叱 惡希郞也待以支如賜烏隱心未際叱 逐內良齊阿耶栢史叱枝次高支好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 현 대 역 >흐느끼며 바라보매이슬 밝힌 달이흰 구름 따라 떠간 언저리에모래 가른 물가에耆郞의 모습이올시 수풀이여.逸烏내 자갈 벌에서郞이 지니시던 마음의 갓을 쫓고 있노라.아아, 잣 나무 가지가 높아눈이라도 덮지 못할 고갈이여.해독해독의 경우 다양한 이견들이 많이 있지만 김완진의 해독을 중심으로 초기의 연구자인 소창진평과 양주동의 연구를 비교하였다.1 咽鳴爾處米열치매{) 소창진평 / 鄕歌及び吏讀の硏究/1929열치매{) 양주동 / 朝鮮古歌硏究 / 1942늦겨곰 빛라매{) 김완진 / 鄕歌解讀法硏究 / 1980양주동이 이래적으로 소창진평의 의견을 따른 부분이다. 그러나 김완진의 경우 이것을 열치매 로 읽을 경우 다섯자를 내리 音讀한 것이 되어 訓主音從의 일반적 유형에서 벗어난다고 보아 이러한 해독을 부정하였다.2 露曉邪隱月羅理들어나 빛잎 딪이나토(낟호)얀 딪리이슬 빛갼 딪라리소창진평이 들어나 빛잎 이 邪 자를 무시한 것임에 비하면, 양주동은 을 달리하는 해독들이 여러 갈래로 갈리어 왔다. 김완진은 지정문자 支 의 지시에 따라 安 자는 훈독되어야 하는 것인데, 엇디 로서는 문맥에 맞지 않고, 편안하다 는 뜻만이 남으나, 한자어 아 고훈이 전하지 않는 것에 문제를 삼았다.4 沙是八陵隱汀理也中모래 팔은 믈까애새파링 나리여힝몰이 가링 믈서리여힝沙是八陵隱 의 경우 대부분 양주동이 해독한 새파링 과 같이 해독하였으나 김완진과 소창진평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였다.汀理 에 대해 김완진은 믈서리 라는 어형을 사용하였다. 문헌에서의 용례를 아직 찾지 못한 순전한 재구적 조어로 출발한 것이엇으나, 경상도 방언에서 실용되는 어형임을 찾아내어 좀더 신빙성을 갖추게 되었다.5 耆郞矣兒史是史藪邪耆郞의 짓이사 고자耆郞잎 즈힝 이슈라耆郞잎 즈힝올시 수프리야.대체로 양주동의 해독에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모아지는데, 김완진의 경우 是史藪邪 에 대하여 종래의 해독들에서와는 전혀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이슈라 계의 해독이 파랑의 모습이 있도다 로서 평면적이며 산문적이었다면, 수프리야 야 말로 시적 정조에 상승을 가미해줄 수 있다고 보았다.6 逸烏川理叱 惡希일온 내ㅅ 쟉벼리에일로 나리ㅅ 짜힝힝逸烏나릿 짜힝긔逸烏 를 우리 고유의 지명으로 보는 의견에 연구들이 모여지고 있다.7 郞也待以支如賜烏隱郞이 지녀 괴여샨郞잎 디니다샤온郞이여 디니더시온也 에 대하여 여러 이견들을 보이고 있는데, 김완진의 경우 待以支 와 같은 환경에서의 支 자는 待以 전체에 걸리는 존재로 보았다.8 心未際叱 逐內良齊밑 까ㅅ잎 조차제밑힝밑 까힝 좇누아져밑힝밑 까힝 좃다라져대부분 연구자의 의견이 없는 부분으로, 양주동의 경우 良 자를 기본적으로 라 이라 읽힐 존재로 보았다. 또한 자음에 연결될 때만 그 두음 ㄹ'이 탈락 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逐內良齊 에서 처럼 모음 아래 연결되는 良 은 라 라는 음가를 유지시킨다고 보았다.9 阿耶栢史叱枝次高支好阿耶 잣ㅅ 가지 놉하아으 잣ㅅ가지 노파아야 자싯가지 노포김완진은 阿耶 는 耶 의 음가를 존중하여 아야 로 읽었까지의 천문지(天文志)를 「삼국사기」를 통해 알아보면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다.17년 : 왕자가 태어난 직후 큰 電이 있어 佛寺 16개소가 벼락을 맞다.18년 : 혜성이 나타나 가을에 이르러 없어졌다.19년 정월 : 도성 方에서 소리가 나는데 뭇 사람들이 귀신의 북소리라고 하였다.(이때 왕자 건운을 봉하여 태자로 삼았다)20년 1월 1일 : 무지개가 해를 꿰었는데 해 귀고리가 되었다. 4월에 혜성이 나타났다.(三國遺事에는 19년에 二日竝現{) 처지의 변괴를 통하여 당시의 정치현실에 감안하여 나라의 위급한 사태를 알고 대처하던 고대 인의 사고에 의해볼 때 이것의 현상이 꼭 어떤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지 상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당시 사회 정치적 구조로 볼 때 나라에 심상치 않은 불길한 사건들이 일어났음을 짐 작할 수는 있다.의 지변이 일어남22년 7월 : 大風이 불어 기왓장이 날리고 나무가 뽑혔다.8월 : 桃李가 피었다.23년 3월 : 혜성이 作變12월 11일 : 유성이 여럿이 나타났다.24년 4월 : 지진이 있었다.6월 : 流星이 心星을 범했다.이러한 自然災異에 대해 경덕왕은 佛法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 했고, 중국을 극진히 섬겨 현종의 사랑을 받았으며, 지방의 군 현의 명칭과 중앙관부의 명칭을 모두 漢式으로 고치고 중앙 관제를 정비했다. 하늘의 이상 현상과 도성에 귀성의 소리가 들리는 변고는 군주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자연의 재해를 좋지 않는 일이 일어날 조짐으로 사고한 고대인들의 사유를 알 수 있다.즉 경덕왕 때에는 천재지변이 전례 없이 자주 일어나고 정치현상 또한 심히 어수선했던 관계로 음이 들끊었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이 부정한 날을 피하고 좋은 날을 가려 귀정문 누상에서 충담을 만나 를 지어 부르게 한 것은 천재지변과 정치현상의 혼란에서 국가를 구하고자한 구국의 정신에서 발로된 것이다. 이러한 경덕왕의 구국 정신은 진흥왕대로부터 신라인의 호국사상은 진흥왕대로부터 불교의 호국사상을 끌고 옴으로써 전래의 호국사상을 더욱 강화시을 생각하지 않은 무리한 염출과 부역이 뒤따랐음을 간과 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관련설화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24년에 오악삼산의 신들이 때때로 나타나 전정(殿庭)에서 모시었다.3월 3일에 귀정문 누각 위에 올라 좌우에게 말하기를 "누가 길에서 영복승을 데려올 수 없겠는가?" 하였다. 이 때에 마침 한 고승이 있어 위의(威儀)가 깨끗하였는데, 배회하며 가고 있었다. 좌우가 바라보다 인도해 와 뵙게 하니, 왕이 이르기를, "내가 말한 영승(榮僧)이 아니다." 하여 물리쳤다.다시 한 승려가 있어 납의(승려들의 옷)를 입고 앵통(혹은 삼태기를 지고 있었다 한다.)을 지고 남쪽에서 오고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만나 보고는 누각 위로 맞아들여 그 통 안을 보니 다구(茶具)가 가득차 있었다.왕이 말하기를 "그대는 누구인가?"하니, 승려가 아뢰기를 "충담이라 합니다."하였다. "어디에서 오는 길인가?"하니, 승려가 말하기를 "승이 매해 중삼일(重三日), 중구일에 차를 끓여 남산의 삼화령 미륵세존(彌勒世尊)께 올리는데, 지금도 이미 올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하였다.왕이 이르기를 "과인에게도 역시 한 잔의 차를 나누어 줄 수 있겠는가?"하니 승려가 이에 차를 끓여 바쳤는데, 차의 맛이 이상하고 찻잔속에서 이상한 향기가 풍겼다.왕이 말하기를 "짐이 일찍이 대사가 기파랑(耆婆郞)을 찬미하여, 사뇌가(詞腦歌)를 지어 그 뜻이 매우 높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런가?" 하니,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하였다.왕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짐을 위해 안민가(安民歌)를 지으라."하였다. 승이 곧바로 왕명을 받들어 지어 바치니, 왕이 아름답게 여겨 왕사(王師)에 봉하였으나, 승이 재배(再拜)하고 받지 않았다.● 사상적 배경충담사가 를 짓는 과정에서 其意甚高 하다는 짤막한 언급만을 가지고 자체의 창작경위나 모티브를 설명할 수는 없다. 이는 의 삽입 에피소드에 불과한 문맥이며 의 작품은 단지 소개되는 정도로 권2의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에서 중심이 되는 기록은 아니다. 충담사가 지은 두 노래 가운데 수 있다.또한 같은 정치적 사회적인 배경에서 二日竝現 의 현상이나 五岳三山神의 출현을 통해 당시 사회, 정치적 구조에서 심상치 않은 불길한 사건들이 일어 났음을 알 수 있으며 치국에 대한 도를 구함에 있어 등장한 두 인물이 공히 남쪽 방향에서 오는 공통점을 보인다. 남쪽은 四天王寺가 있던 호국의 도량이 있는 곳이다. 문무왕때 狼山 남쪽 神遊林에 사천왕사를 짓고 호국의 도량을 개설하였다.향가 중에 미륵사상이 나타나 있는 것은 월명사의 뿐이다. 그러나 향가 작가로서는 충담이 더 미륵신앙에 철저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나 에는 직접적인 미륵사상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작품의 내면에 흐르는 사상은 신라의 호국불교나 화랑사상을 생각해 보면 그 근거들을 찾을 수 있다. 화랑은 미륵의 이상국토를 찾는 무리이며 그 승화된 정신은 이미 도솔천의 미륵처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에 달을 이끌어 그를 높게 칭찬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기파의 숭고한 정신을 미륵과 같이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화랑정신은 미륵신앙과 결합하여 미륵불의 현신으로서 이상국토를 기원하고 있던 당대인의 사고로서 의 사상적 배경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작품성격본 작품에 대한 연구는 소창진평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연구들이 있었다.연구자들은 다양한 시각에서 를 보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을 연구별로 정리해 보면 크게 네가지 견해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우선 기파를 화랑으로 보고 사후제식의 불찬가나 혹은 순수 서정시가로 보는 연구들이 있다. 박노준{) 신라가용의 연구 / 박노준 / 1989도 기파를 화랑으로 보고 사회, 역사적 배경을 밝혀 노래의 뜻을 이해하려는 입장을 견지했다. 윤영옥{) 신라시가의 연구 / 윤영옥 /1988은 는 기파랑의 사후에 그를 위한 어떤 형태의 제의에서 그 인품을 찬양해 고해 바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기파랑은 생가 세계의 죽음으로써 죽음을 초탈하여 영원한 삶을 획득한바, 이는 곧 세속적인 삶만을 축하는 현실 세게에 대한 부정을 상징적인 어법으로 노래한 것으로
    인문/어학| 2001.11.02| 11페이지| 2,000원| 조회(1,181)
    미리보기
  • 현진건론 평가A+최고예요
    Ⅰ.서론 Ⅱ.본론 1. 연구사 2. 작가생애연구 3. 계층의식과 문학의식 4. 작품분석 Ⅲ.결론Ⅰ. 서론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요 공로자로 알려진 빙허 현진건은 우리 소설사에서 20년대의 주역으로 공인되고 있다. 처녀작인「희생화」이후 『무영탑』에 이르기까지 20년동안 단편 소설 20편과 장편소설 6편, 그리고 약간의 수필 및 비평문장을 남겼다. 비교적 짧았던 생애를 통해서 남겼던 문학은 민족적 비애로 충만된 민족의 수난과 역사를 증언하는 사실주의 작가로 일관했음을 잘 알려주고 있다.현진건이 문학사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이유는 근대 문학 초기에 김동인, 염상섭 등과 더불어 단편소설 양식을 개척하여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근대문학의 선구자 였으며, 문학의 내용과 기교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인식한 작가였다는 점 등이다. 또한, 그의 문학은 동시대와 그 현실에 대응하여 살아가는 삶의 문제를 추구하였다는 데서도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현진건 소설은 그 변모 과정을 살펴볼 때, 크게 3단계로 구분되는데, 첫째 자아와 세계와의 불화양식을 드러낸 초기 소설과 둘째로 사회에 대한 자아의 탐구 양식을 드러낸 2기 단편소설, 셋째는 1930년대 세계에 대한 초월양식인 장편, 역사소설이다. 이러한 3단계의 변모 과정은 그의 소설이 당대 시대상황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시대 인식과 대결 방식을 드러낸다.이러한 변화과정은 많은 논자들에 의해 논의되었고, 본고에서는 이러한 변모과정의 객관적 상관물로 하나의 뼈대를 이루는 현진건의 세계관으로 그의 작품을 바라보고자 한다. '현대 단편소설의 주춧돌', '탁월한 기교의 작가', '사실주의 작가' 등 많은 논자들에 의해 논의가 있어왔던 현진건의 문학은 세계관의 측면에서 바라볼 때, '조선혼'으로 상징되는 구민족주의를 지향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세계관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 되고 있는지, 당대 사회에 대한 현실 인식과 반영을 작품분석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본론에서는 먼저 기존의 현진건 문학 주었던 집안환경과 사회활동시기에 대해서는 좀더 자세하게 다루고자 한다.1) 출생과 집안환경玄鎭健(호 : 憑虛)은 1900년 음력 8월 9일 구한말 경북 대구에서 우체국장을 지내던 부친 玄警運) 일반적으로 慶運으로 알려져 있으나 오기이다. 현길언,「현진건소설연구」,한양대학교박사논문,1984과 모친 李貞孝 사이에서 4형제 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홍건, 석건, 정건 형이 있었고, 생모가 일찍 세상을 뜨자 두 번째 모친에게서 난 동생 성건이 있다.부친은, 무과에 급제한 후 내장원) 조선 후기 왕실의 재산인 전토(田土) ·미포(米布) ·전화(錢貨)를 관리한 관청.卿) 한말 관료의 최고직계을 역임, 구한말 창원 감리겸 재판소 판사였던 현학표의 장자로, 동생으로는 용궁 군수를 지낸 철운, 대한제국 군령부 참장인 영운, 태복사) 조선 후기 임금의 거마(車馬)와 조마(調馬) 등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기사를 지내고 대한체육구락부 창설 멤버였던 양운, 태복사 기사였던 붕운이 있다.외가는 완산 이씨 집안으로 외조부 재연은 호조참의를 역임하였고, 생모 이씨는 빙허가 열한 살 되던 1910년, 부친은 해방 이듬해 11월에 세상을 떠났다.그의 집안에 대해서는 무관으로 이름난 집안, 서울 중인으로 무관, 역관 집안이라고 인식되어 왔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확실한 자료는 없다. 다만, 일찍부터 개화하여 외국어에 능통하여 가족 모두가 시대의 각광을 받아 훌륭한 직책을 가졌다는 것만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보여 진다.6대조부터 4대조까지는 참의 또는 참반 벼슬을 하였고, 증조부와 종증조부는 궁내부에서 협변과 호조판서를 역임하였다. 또한 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의 관직생활과 사회생활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그의 叔父인 현영운은 관립영어학교 1회 졸업생으로 일본 관비 유학생으로 派日되었다가 1885년 유학생 송환자 중에 끼어 귀국하여서는 갑신정변으로 폐간된 한성순보를 복간하는데 참여하고, 1896년 개화당 무고사건에 관련되기도 하며, 1888년 궁내부) 조선 말기에 왕실에부장) 한일합방 이후로 극도로 제한된 표현의 자유와 표현기관의 한정 때문에 신문이 문화활동을 독과점하는 통로로 되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아래서 신문기자들은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신문사에 대한 일반의 신뢰감은 절대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신문사가 일제 치하의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민중을 조금이나마 대변해 주는 유일한 기관이자, 동족의 손에 의해 경영되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업기관이었다. 더구나 현진건이 몸담았던 사회부는 유일하게 활동분야가 넓고 독자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한 부서였다.으로 승진하고 나자 언론계 진출과 함께 가뜩이나 뜸해지던 창작활동은 한층 줄어든다. 창작보다는 몇 편의 신변잡기적인 문장을 발표하고, 그 동안에 발표하였던 번역소설을 묶어 간행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의 문학에 대한 정리와 아울러 새로운 전기를 의도하여 장편에 관심을 갖는다. 또한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위하여 역사의 현장 순례에 나서고,) 古都慶州巡禮紀行文을 『동아일보』(1929.7.18∼8.19)에 발표하고, 단군성역을 순례했다.(1932.7.8∼10.23)주나라 하강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 「웃는 포사」를 4회에 걸쳐 발표하다가 중단한다.) 『新小說』(1930.9)과 『解放』에 3회(1931.1∼3) 걸쳐 발표하다가 중단함그가 단군성지 순례에 나선 것은 망각되어 가는 민족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충성에서 였다.이러한 가운데 만기 출옥한 형의 죽음에 이어 형수의 죽음, 양모의 죽음 등 충격적인 집안 일을 당하고서, 그 나름의 문학적 진실을 확인하는 소설 「적도」를 집필, 1933년 12월 20일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1934년 6월 17일 끝낸다.사회부장으로서도 현진건은 그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선후배로부터 선망을 받았고, 그의 명성은 당시 한글로 발간되던 3개의 신문이 없어지고 "대 합동일보"가 출현하는 경우를 가상하여 투표한 편집국 간부선거에서 사회부장으로 당당히 피선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후인 1937년 현진건은 손기정 선는 '조선혼'에 대한 요망사항에서 '조선혼'은 어떤 특수한 계층의 잡지가 아니라 일반 민중의 잡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여 문화의 대중화, 일반 민중을 위한 문화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역사와 사회의 주체자로서 일반 민중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문학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먹는 문제에 따른 가난의 문제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며, 그 다음에 예술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삶의 현실을 무시한 예술의 허위성과 허구성을 강조하면서, 영원한 예술에 대한 기대로 현실을 외면하는 고답적인 예술을 비판하였다. 작품의 가치성에 대해서도 예술은 내용적 가치와 생활적 가치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므로, 현실의 시간과 공간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작품만이 힘있는 예술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이러한 조선혼과 시대정신은 식민지 시대의 문학의 논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문학은 식민지 지성인의 양식과 화합을 이루는데서만 가능한 것이고, 이를 통해서 민족문학이 잘못 빠지기 쉬운 회고적 아집이나, 프로문학의 생경한 비문학적 논리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여기에 필연적으로 현실에 대한 역사적 통찰력이 요청되었다. 군국주의의 암담한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미래에 대한 확신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역사의 주체자로 인식하고, 직접 역사의 현장에서 민족정신의 실체로서 체험하였다.4. 작품분석1) 단편소설현진건의 초기작으로는 단편소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빈처」,「술권하는 사회」, 「타락자」「운수좋은날」, 「고향」을 통하여 단편소설에 나타난 작가의 세계관을 살펴보고자 한다.①「빈처」(1921년)빙허가 처음 발표한 「희생화」) 사회적 인습에 희생당한 남녀간의 사랑의 비애를 담은 이 작품은 현진건의 처녀작이긴 하나 비평가 황석우는 이 작품에 대하여 '허위와 과정이 많고 묘사도 불충분하며 예술 형식을 갖추지 않은 작품'이라고 혹평을 하였고, 그 후에도 빙허의 습작 정도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이 작품이 구성 형식면에서 미숙성이 가 깊이 파고들어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바라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현진건은 '조선혼'으로 상징되는 민족주의를 지향했다. 속악한 현실이 '조선혼'을 파괴하고, 이것은 곧 민중들의 생활을 위협하여 처참한 현실 속으로 몰아넣게 한다. 이러한 현실의 모습을 밀도 있는 구성으로 치밀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3인칭에 의한 순객관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중기 이후의 소설은 조선일보 시대일보를 거쳐 동아일보에서 계속 재직해왔던 신문기자 생활과 관련이 깊다. 현진건 소설의 특징은 자신이 보고들은 사실 그대로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방식, 즉 엄정한 이지적 관찰태도에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단편형식의 구성과 묘사 등의 치밀한 기교에 의해 극적 효과를 동반하도록 소설적 가공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이러한 견지에서 현진건은 '조선혼'을 파괴하고 민중들을 억압하는 사회적 병폐들을 고발한 것이다.⑤「고향」(1926)「고향」은 당시 사실자료에 근거하여 '조선의 얼굴, 곧 일제 식민지 억압하의 민족의 형상'을 파악한 작품) 임형택, 「신문학운동과 민족현실의 발견」, 『한국문학사의 시각』, 창작과비평사, 1984.이라고 평가된다. 당시 사회의 폭압적 현실을 바라볼 때, 식민지 조선의 모습은 '조선혼'을 파괴하고 민중의 근거를 말살하는 위협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현실 세계의 구현을 위해서 작가는 개별성 속에서 보편성을 구현하는 단편구조를 형상화하여 한 비극적 한국 청년의 반생 얘기와 그의 외모를 통해, 비극은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그를 포함한 민족의 비극임을 말하고 있다.이 작품은 직접적 서술형태로 두 가지 사실을 이야기한다.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땅을 빼앗기고 또 중간소작인에게 소작료를 뜯겨 소출의 3할도 떨어지지 않는 비참한 지경에 점차 이농하는 인구가 늘어간다는 사실과, 만주로 일본으로 떠돌며 품을 팔았지만 가난을 벗어날 수 없어 다시 귀국하여 고향을 찾아가서 그 실상을 본 장면이다. 고향의 실상을 확인하는 장면에서는 과거 혼담이 있던 여인이 유곽으로 팔려가 나이 들고 병들어, 일본.
    인문/어학| 2001.09.11| 16페이지| 2,000원| 조회(870)
    미리보기
  • 孝에 대한 시조 평가A좋아요
    Ⅰ 서론유교사상이 많이 뿌리내려 있는 우리나라에서 孝의 사상은 중요한 윤리덕목의 하나로 이해되어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실천을 여러면에서 권장하였으며 이를 주제로 창작된 문학작품도 많다. 소설, 가사 등 여러 장르에 있어서 널리 창작되었으나 그 중 양적으로 간략하고 정제된 형식을 갖춘 문학형식인 시조에 가장 많은 작품이 남겨져 있다.본론에서는 이렇게 많이 전해져 오는 효에 대한 시조가 어떠한 양상으로 창작되어왔는가에 대하여 대표적인 작품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론고려조의 思母曲)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사랑이 깊다는 내용을 호미나 낫에 비유하여 표현한 고려가요에서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노래하였으나 시조에서는 孝를 노래하는 방법은 크게 父母의 恩惠, 孝의 方法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1) 父母의 恩惠를 노래한 시조이런 시조에서는 부모가 生育해 준 사랑과 은혜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공경과 사랑과 감사에서 비롯된다. 주세붕, 원화랑, 김천택, 김수장 등의 여러 사람의 작품이 널리 알려져 있다.뉘라셔 가마귀를 검고 흉(凶)타 하돗던고.반포보은(反哺報恩)) (1) 까마귀는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 함. 그리하여 까마귀를 반포조(反哺鳥)라 함. (2) 자오반포(慈烏反哺)에서 反哺라는 말이 나옴.이 긔 아니 아름다온가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끝내, 잊지못하고, 늘슬허하노라 - 박 효 관) 철종, 고종 때의 가객으로 자는 경화, 호는 운애, 정조 24년에 태어났다는 기록만 있어 정확한 생몰년대를 알 수 없다. 고종 13년에 안민영과 함께 3대 가집의 하나인 를 편찬하여 가곡창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시하였다. 그는 일생을 시와 술, 거문고와 바둑으로 살다간 가객으로 가곡에 일가견을 가져 란 신보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노래도 많이 지어 15수의 시조작품이 전해지고 있다.-누가 까마귀를 검고 흉하다고 하였던가? 반포보은 하는 것이 그 얼마나 훌륭한 새인가? 사람이 저 까마귀만도 못함을 못내 슬퍼하노라.까마귀를 예로부터 반포조라고 한다. 어미가 늙으면 먹이를 물어다가 혹은 입에 있는 것을 씹어서 어미를 먹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어렸을 때 어미새가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하기 이한 것이다. 그래서 까마귀를 효조(孝鳥)라고도 일컬었다. 즉, 작가는 까마귀도 자라면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데 하물며 인간이 그렇지 못함을 한탄하여 효도할 것을 권계하고 있는 것이다.어버이 자식 사이 하늘 삼긴) 점지한지친(至親)) 부모와 자식이라부모(父母) 곧) 부모만아니면 이 몸이 있을 소냐오조(誤造)도 반포를 하니 부모 효도하여라. - 김 상 용) 인조조 때의 문인. 호는 선원, 벼슬은 형조 이조 판서를 역임하였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왕족을 보호하여 강화도에 피신하였다가 강화도가 함락되자 자살하였던 인물-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는 하늘이 점지한 지친이다. 만일 부모가 아니 계셨더라면 이 몸이 생을 받아 태어날 수가 있었겠느냐? 저 미물인 까마귀도 반포 보은을 하는 것이니 부디 부모에게 효도하여라어버이 날 낳으셔 어질과저) 어진 사람이 되도록 하고저길러내니이 두 분 아니시면 내 몸 나서 어질소냐) 어질 수 있겠느냐?아마도 지극(至極)한 은덕을 못내 갚아 하노라 -낭 원 군) 1640(인조 18)∼1699(숙종 25). 조선시대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본명은 이간(李侃). 자는 화숙(和叔), 호는 최락당(最樂堂).선조의 손자인 인흥군(仁興君)의 아들이며, 효종의 당숙이다. 왕실작가 중 가장 많은 시조작품을 남겨 총 30수의 시조가 전한다. 《청구영언》 진본(珍本)에만 20수가 전하고 나머지 10수는 여러 시조집에 산재하며, 작품에 따라서는 10여책에 널리 유포되고 있다. 그의 작품이 효종의 작으로 잘못 기록된 것도 있다. 내용은 작가가 산수의 자연미를 혼자 즐긴다고 자부하는 노래로, 금서생활(琴書生活)에 낙사무궁(樂事無窮)함을 자랑하며 취흥이 도도하면 유령(劉伶)·이백(李白)이래로 혼자만이 흥취를 안다고 자랑하는 노래들로 자신의 풍류를 담고 있다. 한편 교훈적 내용의 작품도 많아 오륜과 향당의 예법에 관한 노래와, 자신의 수분(守分)과 자행자처(自行自處)의 생활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표현기법에서 정철(鄭澈)이나 황진이(黃眞伊)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이는 것은 선인들의 작품을 애독한 때문이라고 하겠다. 형 낭선군(朗善君)과 함께 전서·예서를 잘 써 송광사사원사적비(松廣寺嗣院事蹟碑)·백련사사적비(白蓮寺事蹟碑) 등을 남기기도 하였다.-부모님께서 날 낳으시고 어진 사람을 만들고자 온갖 정성을 다하여 길러 내셨으니 만일 이와 같으신 부모님이 없었던들 어떻게 이 몸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진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님의 이 극진하고 은혜로우신 신세를 다 갚지 못할 것만 같구나.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두분 곧) 두분만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가하늘 같은 은덕) 은혜를 베푸는 덕, 은혜를 입은 신세을 어디 다혀) 어디다가갚사을고 - 정 철) 1536(중종 31년)~1593(선조 26년) 조선의 문신, 시인. 호는 송강(松江). 진사시와 별시 문과에 가각 장원, 여러 벼슬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음. 가사 문학의 대가로 시조의 윤선도와 더불어 한국 시가사상 쌍벽을 이루었음.저서에 "송강집", "송강 가사" 등이 있다.-아버님이 나를 낳아 주시고 어머님이 나를 길러 주셨으니 이 두분이 아니셨다면 어찌 내가 태어나 살아 있을까? 하늘보다 더 높은 이 은혜를 어디다가 갚을 길이 있을까?(2) 孝를 하는 방법다음의 시조는 효를 어떻게 행하는 가에 대한 것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부모 섬기기를 지성(至誠)으로 섬기리라계명(鷄鳴)) 새벽 닭이 울때에 관수하고) 손을 씻고,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고욱한( 寒)을 묻자오며) 날씨가 덥고 추움에 따라 부모가 입을실 옷을 가려서 물어보며날마다 시측봉양) 웃 어른 곁에 있으면서 받들어 모심을 몰신불쇠) 희생적으로 봉양하되 끝까지 달라짐이 없음하오리라. - 박 인 로 -부모님을 섬기는데 정성을 다하여 받들겠습니다. 새벽 닭이 울기 시작하면 재 빨리 일어나서 이를 닦고 세수하고 날씨에 따라 그날 부모님께서 입으실 옷 가지를 가려내어 여쭈어 보고 날마다 옆에서 받들어 모시어 끝까지 변함없이 받들겠습니다.왕상) 중국진나라때의 효자의 잉어잡고) 왕상은 그 부모에게 우환이 있으면 잠자리에서도 옷을 벗지 않았다.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를 맞이했으나 그 효성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느해 겨울에 병석에 누운 계모가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왕상이 강으로 나가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으러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할 즈음 갑자기 얼음속에서 잉어 한쌍이 튀어나왔다. 이는 그의 지극한 효성의 소치라고 마을 사람들이 놀라워했다고 한다.맹종)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때의 효자.의 죽순꺾어) 맹종의 어머니는 죽순을 매우 좋아했다. 어느 겨울날 어머니는 죽순이 먹고 싶다고 하는데 구할 수가 업었다. 맹종이 대밭에 들어가 탄식을 하고 있는데 하늘이 감동하였는지 갑자기 죽순이 솟아나 그것을 가지고 와 어머니를 봉양했다. 그 뒤 어머니가 죽은 후에도 겨울에 대숲에 가면 죽순이 솟아나 그것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검든머리 희도록 노래자) 중국 주나라때의 효자의 옷을 입고) 노래자는 70세의 늙은 몸이 되어서도 어린이가 입는 때때옷을 입고 부모 앞에 재롱을 부리며 새를 잡아 달라고 응석을 부렸다고 한다.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함이었다.일생에 양지성효를 증자) 공자의 제자 가운데 으뜸가는 현인으로 효성이 지극함같이 하리라. - 박 인 로 -왕상이 얼어붙은 얼음속에서 어머니(계모)를 위해 잉어를 잡았듯이, 맹종이 한겨울에 죽순을 꺾어 어머니를 봉양했듯이, 검던 머리가 희어질때까지 노래자가 때때옷을 입고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렸듯이 나도 한평생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효도로 이름높은 증자같이 되겠다는 뜻을 노래했다.중국의 역대 효자들인 왕상, 맹종, 노래자, 증자의 고사를 인용하여 효성을 다할 것을 다짐한 내용이다.세상(世上)사람들아 부모 은덕)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은혜와 보살핌아나산다) 아는가? 아시는가?부모 곧) 부모만,아니면 이 몸이 있을소냐생사 장제) 살아 계실 때에 장사와 제사 지내는 일에 예로써 종시 같게 섬겨스라.) 섬기어라- 박 인 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부모님들의 은혜의 보살핌을 알고 있는가? 바로 부모가 없었던들 자기 몸이 생겨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부모 살아 계셨으면 말할 것도 없고 돌아가셨으면 장사와 제사 지내기에 예의를 갖춰 처음부터 끝까지 섬기도록 하여라.부모(父母) 살아신제 시름을 뵈지 말며낙기심(樂其心)) 그 마음을 즐겁게 하고양기체) 그 몸을 보양하여하여 만세) 부모가 오래오래 사시는 동안를 지낸 후에마침내 향화(香火)부절
    인문/어학| 2001.04.24| 5페이지| 무료| 조회(1,024)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7
7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3
  • A좋아요
    3
  • B괜찮아요
    1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04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4:06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