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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 인문사회] 멋진 신세계 평가A좋아요
    이미 반세기 전에 올더스 헉슬리가 예언한 인간제조기술의 실체! 시험관에서 태어나는 인간, 환경에 저항하지 않으며 소마라는 약을 통해서만 위안을 얻는 유토피아 사람들…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현실이다. 소설 속에서 대량생산의 원칙이 마침내 생물학에 응용된다. 멋진 신세계는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들처럼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인간은 처음부터 입실론 ,델타, 베타, 알파 그리고 총통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애초부터 인간은 제조의 대상이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성에 대한 문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계급별로 인간의 제조과정은 다르다. 단계별로 투여되는 여러 약품과 산소의 양. 현 인류의 인생에 최대의 비극인 선천적 장애를 그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하위계급이 가지고 태어나도록 조작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또한 아무런 문제도 발생되지 않는다. 하위계급은 지성적으로 저급으로 만들어질뿐 아니라,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프의 개에 대한 실험과 같은 조건반사 훈련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열악한 환경을 오히려 좋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기계보다 더 비참한 도구로, 그러나 완벽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인간의 가장 큰 슬픔이며 두려움인 죽음을 변태적으로 답습하는 복제 아이들과 병원 모든 사람들. 과연 20세기가 이룩한 진보는 인류에게 유토피아를 꿈꾸게 하였는가? 아니면 인간성의 파괴를 가져온 것인가? 물질문화, 기계문명의 발달과 과학의 진보가 전체주의 사상과 밀착될 때 어떠한 인간적인 비극이 초래될 수 있는가를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풍자적이고 희화적인 과장은 오늘날 우리가 현실로 느끼는 현대문명의 심각한 위기를 공감하게 한다.이러한 인간통제·인간복제에 관한 문제만을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 라는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물론 이러한 인간복제에 관한 문제는 복제양 돌리 가 출연하고 출산을 함으로써 그 논쟁이 시작되었고, 이제 인간복제까지 가능하지만 종교적 이유와 인간존엄성, 도덕성의 이유로 현실에 적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기에 당연히 인간복제는 인류의 크나큰 문제거리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 아니다. 바로 인간성에 관한 문제이다.멋진 신세계 는 모든 것이 자연의 순리가 아닌 기계적 혹은 조작적 학습에 따른 세계이다. 지금 현재의 것과 모든 것이 상반된 세계,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개념은 이미 퇴색해져 버려 그들의 기억 속에도 없는 과거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개념쯤으로 생각해 버리는 그러한 세계이다. 하나의 난자가 분화해서 수 십 개의 동일 인물을 창조 할 수 있는 과학의 발전, 단지 필요에 의한 선택적인 발전으로 인해 각각의 우수한 상황에 따라 알파, 베타, 혹은 감마로 불리우는 계층으로 나뉘어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조작적인 학습을 통해 그들은 그 계급에 따라 조직의 상하가 구분 지어 진다. 상승욕구라는 것은 전혀 없고 오로지 현실에만 만족하는 그들은 지금은 행복하다 라는 끊임없는 반복학습으로 무의식적으로 행복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그것만이 그들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그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 간혹 생기는데 그들은 섬으로 추방되어 문명 사회와는 분리되어 생활하게 되는 가혹한 벌이 주어진다.실험실적인 인물이 아닌 어머니를 통해 출생한 존이라는 인물이 문명인과의 접촉 후 문명 사회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가 멋진 신세계라고 표현했던 문명사회가 그리 좋은 사회가 아닌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도가니라고 그는 느끼게 된다. 약간의 소마만 가지고 있다면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회, 성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사회, 단지 사회 유지를 위해 양성(?) 되는 인간들, 교육받은 것 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는 그들, 체제에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는 그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등 이러한 모습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존은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문명이 없는 상태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들의 실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사람이 비정상인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존을 통해 보여지는 멋진 신세계는 말 그대로 멋진 신세계는 아니다. 변화에 대한 저항과 비주체적 즉 자신의 자율성이 박탈당한 상태. 물론 자유가 주어진 듯 하지만, 피상적인 자유일 뿐이다. 그들 스스로의 의지라기 보다 체제에서 주어지는 것에 국한된 자유이다. 그리고 단지 조직의 효율성을 위한 동일 인물의 무한적인 복제, 조작적 학습에 따른 체제에 필요한 인물만의 양성, 오직 리더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그런 사회이다. 이 사회에서는 관료제로 인한 역기능적인 요소가 많이 발견된다.
    사회과학| 2004.04.21| 3페이지| 무료| 조회(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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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학,일탈,사회문제] 가정폭력
    가 정 폭 력Ⅰ. 서론가족은 혼인, 혈연, 입양 등의 관계로 맺어진 의식주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전통사회에서 가족은 출산을 통한 재생산 기능뿐만 아니라 재화의 생산과 소비 등 경제적 기능을 비롯하여 사회화 및 교육과 사회통제 기능 등 폭넓은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제도로서 존재하여 왔다. 이런 의미에서 가족은 사회의 기본 단위라고 할 수 있다. 흔히 가족은 애정, 정서, 휴식, 안전 등의 단어로 상징될 수 있는 따스하고 아늑한 곳으로서 경쟁과 갈등보다는 협동과 화합을 주된 구성원리로 하는 곳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경쟁과 갈등이 주요한 사회적 원리로 작용하는 현대사회에서 가족이 더욱 주목받고 지속적 으로 중요하게 취급되는 이유를 말해준다.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주의가 확대되는 전반적인 사회변화에도 불구하고 친밀성을 특징으로 하는 가족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증대되고 있다.가족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는 평온한 이미지는 가정폭력이라는 테마에서는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가정폭력은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 가운데 가장 직접적이고 위협적인 현상이다. 이와 관련해서 보면 가정은 항상 갈등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지극히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 변모한다. 김익기 등(1992)은 개인이 살아가는 동안 가족 테두리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가족원들로부터 폭력을 더 많이 당한 다는 조사결과를 제시하였다. Gelles와 Straus(1979)는 가정을 온화하고 친밀한 환경으로 만드는 요인이 동시에 폭력적인 제도로 만들기도 한다면서 가족이라는 사회 조직이 갈등을 유발하기 쉬운 제도 또는 집단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가족 구성원의 일부가 다른 일부에 의해 지속적인 폭력의 위협에 놓여 있을 경우에 가족생활은 그 구성원 모두에게 정서적 만족을 달성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된 다고 볼 수 있다. 개인주의가 크게 만연하는 현대사회에서 일부 구성원의 지속적인 희생을 바탕으로 한 가족생활은 쉽게 유지되기 어렵다. 이런 경우 가족 제도 자체 의 의미에 대해 심각한 관찰 또는 경험을 통하여 공격행동을 배운다는 것이다.3) 교환이론: 권위 또는 힘이 더 있는 사람이 적절한 보상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지위에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면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폭력의 결과로 손해보다 보상을 얻게 될 때 계속해서 폭력을 사용하게 된다.4) 자원이론: 경제적, 교육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사람이 낮은 사회적 신분, 경제적 어려움 등 열등감 속에서 필요한 권위를 확보하고 욕구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한다고 본다.5) 폭력 문화 이론: 폭력을 허용하는 문화, 관습, 태도, 사회구조 등이 폭력을 촉진하거나 조장한다고 본다. 즉 가부장적 태도, 남성중심의 사회구조, 아내구타에 대한 전통적 사회의 용인, 여성에 대한 법적인 차별, 전통적 성 역할 기대 등이 가정폭력을 허용하는 요인이라고 본다.6) 체계론적 접근: 이상의 이론들은 부부 폭력의 다양한 면모를 어느 정도 타당하게 설명하고 있으나 단순하게 원인-결과라는 인과론적 틀 속에서 설명함으로써 부부관계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이나 가족체계와 같은 환경적, 관계적 요인을 간과하고 있다. 체계론적 접근은 가정폭력에 대한 통전적 설명을 시도하는 것으로 폭력 가해자 개인을 이해하려면 그가 속해있는 체계, 즉 조부모, 부모 및 형제, 부부와 자녀관계를 모두 포함하는 가족체계와 그가 자라난 환경과 지역사회, 그리고 문화적 체계등 모든 관계성 속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폭력적 행동은 체계가 역기능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며 개인의 폭력을 고치기 위해서는 한 개인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체계 내에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3. 가정폭력의 원인1) 생물학적 요인공격적 성향을 증가시키고,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에 문제가 초래되는 경우 폭력행동이 증가할 수 있다. 유전적인 폭력성, 간질발작, 뇌졸중, 교통사고로 인한 두부손상, 알코올중독, 약물중독이나 금단상태 등 생물학적인 요인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가정폭력범 구속/술먹고 아내 구타 세계일보 98.7. 들어 가서는 문을 꼭 잠근다는 것이다.부인의 말에 따르면 남편의 폭언이나 정신적 학대를 목격한 아이들이 정신적 상처를 입어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것이다.그런데도 남편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으니 이혼하겠다는 김씨 부인에게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지 그저 막막하다.정신과에 한번 가보자고 말하여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외출도 하지 못한채 몰래 상담소에 전화하며 우는 김씨 부인의 딱한 사정이 지금도 가슴을 저미게 한다(2) 어린시절의 폭력경험(3) 기타의 우울증과 같은 정신장애나 성격장애(4) 피해자의 요인가정폭력 예속화 이런 아내에 많다 조선일보 94.3.4.어린시절 가정폭력을 경험했거나 건강상태가 나쁠수록,경제력과 사회능력이 낮을수록 노예화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한양대 대학원 의학과 문경서씨는 「여성의 전화」에 상담해온 여성등 1백4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박사 학위논문 「구타당하는 아내의 무기력, 자아강도 및 자아기능에 관한 연구」에서 이같이 밝혔다.문씨는 먼저 아내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타한 빈도가 높을수록,아내가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구타당한 경험이 많을수록 이혼을 결심하지 못하고 폭력에 예속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결국 폭력가정에서 자란 아내가 남편의 구타를 계속 받을때 무기력해지는 정도가 심하고 자아강도와 자아기능이 더 많이 손상된다는 것이다.아내의 경제력과 사회능력도 중요한 변수다.교육수준,경제적 능력이 강할수록 폭력남편에게서 독립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이런 경향은 특히 맞벌이부부에게서 강하게 나타났다.또 남편의 경제­사회적 능력이 높을 때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남편의 수입과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아내의 예속 정도는 낮은 반면,남편의 재산이나 직업이 없을 경우 길들여지는 정도가 심했다.이밖에 문씨는 자녀의 수가 많고 결혼기간이 길수록,남편의 구타 빈도가 많고 구타정도가 심할수록,구타기간이 길고 상처가 심할수록 예속이 심해진다고 밝혔다.3) 사회적 요인(1) 가부장적 사회제도가부장제 자체가 가정폭력의 직접적 원인이기보다는,을 대상으로 실시한 ‘빈곤결손위기 가정사례조사’에서 나타난 것. 강원장은 “부모중의 한 분이 돌아가셨거나 가출을 한 경우와 부모님이 다 계셔도 빈곤과 열등감으로 가정폭력이 빈번한 가정이 결손가정”이라고 정의했다.사례조사에 의하면 결손발생의 원인은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가출한 경우가 46명(23.1%), 부모사망 이후 빈곤과 2차 결손상황이 전개되는 경우 38명(9.1%)에 이른다.또 가출원인을 세분해 보면 어머니의 가출이 41명으로 아버지의 가출 5명보다 8.2배나 높다.그러나 전체적으로 아버지의 알코올중독 도박 외도 가정폭력과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원인 때문에 자녀 양육에 부적합한 가정이 99명(49.7%),어머니의 가출이나 외도 사망으로 발생된 결손가정이 41명(20.6%)인 것으로 볼 때 아버지로 인한 경우가 2.4배나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결손가정의 어린이 청소년의 문제행동은 대부분 부정적인 사고,사회성과 자신감 결여, 학습부진,경제적 빈곤에 따른 나쁜 습관 (도둑질 거짓말 의존심) 등으로 한 아이당 1.8개의 문제행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4) 사회경제적 상태낮은 사회경제적 수준의 가정에서 폭력이 많지만, 실제로는 상류나 하류 사회경제상태를 막론하고 가정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탤런트 아내 폭행 교수 남편 기소 동아일보 98.9.2결혼한 이후 잦은 가정불화를 겪어오다 인기 탤런트 겸 라디오 DJ인 부인 O씨(40)를 심하게 때린 E대학 K교수(44)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는데…서울지검 형사6부는 1일 “남편 K씨는 97년 6월 서울 종로구 구기동 자택에서 과거 남자관계를 묻는 질문에 부인 O씨가 기분 나쁜 투로 대답한다며 마구 때려 전치 12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라고 기소이유를 설명….4. 영향1) 피해자의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악영향피해자는 정신적 무기력에 빠지고 사회적 소외 속에서 살게 된다. 신체적인 만성질환에 시달리며, 타박상, 골절, 탈구, 호흡곤란, 유산등 또한 구타 후의 강제적 환은 계속된다.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나라의 급속한 사회변화 역시 여성의 사회참여가 대폭 확 대된 역사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에 따라 가부장제, 확대가족의 가족 규범이 크게 변화하였으며 가족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크게 향상되었다. 이에 따라 가정 내에서는 여성의 발언권이 강화되면서 여성이 경험하고 있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다.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게 되면서 여성운동이 활성화되었으며 여성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치적 입김 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1980년대 들어서 두드러지게 되었다.이와 관련하여 국내에서는 그 동안 여성계를 중심으로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상담소와 쉼터 등이 다수 설치ㆍ운영되면서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물론 이들이 주장하는 가정폭력은 주로 가정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에 대한 것이다. 여성계에서는 가정폭력의 문제에 대하여 그 동안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왔는데, 크게 피해 여성에 대한 상담 및 보호활동과 가정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위한 활동을 병행하여 왔다. 피해여성에 대해서는 가정법률상담소나 한국여성의 전 화 등의 단체에서 전화상담과 방문상담을 비롯하여 쉼터를 마련하여 운영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해왔다. 특히 여성단체에서 운영하는 쉼터는 지속적인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이 가정을 벗어나 갈곳이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몇 몇 연구자들은 이들에 대한 상담경험을 바탕으로 가정폭력의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 로 이슈화하는 주목할만한 연구성과를 산출하기도 하였다.이와 더불어 여성계에서는 가정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국가적 관심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는데, 이들의 노력은 1998년 7월부터는 '가정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 법'과 '가정폭력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등의 시행으로 결실을 맺게 되어 가 정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 마련됨으로써 제도적 장치라는 다.
    사회과학| 2004.04.21| 12페이지| 1,000원| 조회(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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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굿의 미학 평가A+최고예요
    굿의 미학굿이란 과연 무엇일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굿에 대해서 한번쯤은 보고,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굿은 좁은 의미로는 무당이 신에게 인간의 만사를 기원하는 제의형식의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고, 넓은 의미에서는 농악에서 풍물을 치는 것을 일컫기도 한다. 무당은 제물을 올리고 잽이들은 악을 치면서 굿판을 벌린다. 굿은 기본적으로 액을 막고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식의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삶과 예술이 따로 분리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삶 그 자체가 예술이며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는 것이 삶과 예술과의 관계인 것이다.예로부터 제주도는 '신들의 고향'이라고 불리워졌다. 수백의 무수한 신들이 있으며 그 신들과 더불어 공존하는 섬이 이 땅인 것이다. 이러한 신들이 고향이 된 이유를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보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굳이 내가 '굿'을 소재로 예술사회학이라는 과목의 주제로 삼은 것은 巫의 그 종교적 속성을 떠나서 무가 우리의 삶과 어떠한 연관을 지니고 있는지 삶으로서의 굿을 한번 고찰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나는 어릴 때부터 바닷가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굿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용왕굿(굿의 이름을 잘 모르겠다.)과 같은 바다에서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굿, 만선을 기대하는 굿처럼 굿은 내 주변에 있었다. 또 그러한 굿을 행할때면 곧 마을 잔치로 번졌고,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과 잽이들이 악을 치는 모습, 어른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나에게는 즐거움과 호기심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굿이라는 것은 나에게 미신으로 다가왔다. 심방이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뛰는 모습을 보면서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점점 멀어졌다. 또 굿은 내가 어릴 때와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점점 사회로부터 격리되어갔다. 이렇게 나처럼 굿을 하나의 미신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요즘 사회이다. 그러나 그것(미신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당연한 문제만은 아니다. 그 잘못된 인식이 새로운 문화와 접하면서 우리가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자주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는 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굿을 가리키며 야만적인 행위라고 일컫는 이들이 많다. 2년 전 문예회관에서 '이제수의 난'인 그리고 교회측에서는 '신축교안'인 주제를 가지고 연극을 올린 적이 있다. 내가 무를 새롭게 다시 인식하게 된 것은 그 때인 것 같다. 무속을 단순히 미신이라고 여기고 교회측에서는 많은 신당을 파괴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이질감이 형성되고 서로 적대적인 관계로 나아가 나중에는 피를 부르게 된다. 그 극에서 나는 무당의 역할을 했다. 그 시기에 한을 한판 굿놀이로써 희석시키고자 마을 사람들은 굿판을 벌이는데, 슬픔을 해악으로써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굿이 단순히 종교성을 떠나서 하나의 마을의 단결체가 되는 매개역할을 한다는 것을 내 역할을 통해서 새롭게 인식했었다. 이렇게 굿은 여러 형태의 마을제로 승화되면서 민중의 굳센 단결을 도와주는 계기가 되었었음을 알아야 한다.다시 한번 굿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면, 굿은 미신인가' 하는 질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보다 세밀하게는 굿=개인굿=무굿=샤머니즘=신내림=미신=타파해야할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은 극히 간략하게 조목조목 비판될 수 있다. 굿에는 개인굿만 아니라 더 중요한 굿으로서 대동굿이 존재하므로 굿=개인굿'이라는 등식의 오류를 지적해 낼 수 있다. 또한 샤먼은 액스터스의 기술자이며 액스터스 속에서 신령과 직접 교섭하여 자연과 초자연의 합의를 이루는 주술적 매개자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샤머니즘에서의 샤먼과 우리의 무당을 동일시하여 전적으로 같은 현상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신내림의 문제만 하더라도, 신내림한 무당의 존재를 어떤 광적인 기형아로 보려는 편견의 문제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당을 바라보는 시각도 민중적이고 역사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굿났다', 굿판같다', 굿벌인다'는 말의 속뜻에는 으레 민중적 삶의 건강함이 깃들여 있다. 이로서 굿은 민중의 노동 양식, 집회 양식, 놀이 양식, 신앙 양식 등으로 민중 생활 양식을 의미하는 법칭어임을 알 수 있다.유럽에서는 양식화된 민속놀이가 축제 형식으로 발전 계승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스미드어를 통하여 자주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축제를 부러워하면서 우리에게는 그러한 축제가 없음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우리의 제 의식들은 너무 엄숙한 형식에 눌려 거기에서 유희적인 요소를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더욱이 축제의 분위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경스럽기까지 하다. 많은 굿 행위들이 미신행위라 하여 근대화 과정에서 급격히 소멸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판 굿은 노동현장이나 대학이라는 일정한 집단 안에서 계속 존재해 왔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축제를 벌일 때 흔히 '대동제', '대동굿' 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러한 행사를 통하여 한판 어우러짐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명이 존재하고 한데 어우러짐을 의미한다. 그리고 소소한 부분에서도 길놀이를 함으로써 우리는 한판 난장을 벌이는 것이다. 굿은 공동체적인 신명이며 노동양식, 집회, 놀이, 신앙의 총체인 것이다. 굿은 서양의 연극의 양식과는 달리 연희자는 이제 종교적 권위의 집행자로서 군림한다는 의식은 전혀없고 관객이라는 공동체 구성원인 동민들을 즐겁게 "놀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굿판을 아직도 '미신적인 것'이라는 오해로 인하여 어디 시골구석에서 행해지는 삼류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굿은 무당의 종교 행사운데 하나이다. 무당과 단골과 신령사이의 종교적 관계를 총체적으로 무(巫)라 부르고 굿은 그 종교관계의 하나를 구성할 뿐이다. 그리고 굿은 성격, 짜임세, 규모면에서 무의 가장 중심이 되는 의례이다. 하나의 굿판이 이루어지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며 굿은 임시적인 것과 때에 따른 정기제가 있다. 굿이 결정되면 제가집의 재정상태에 맞추어 굿의 규모를 잡고 길이를 잡는다. 이렇게 이루어진 굿판은 무의 가장 성대한 종교 의례이다. 이렇게 하여 굿판이 벌어지면 제가집에 관련된 사회조직(집안사람, 출가한 여자, 모계집안, 이웃)이 고르게 함께 자리한다. 굿판은 모두 세요소로 짜여 있는데, 제가집에 관련된 사회조직, 무당팀, 신령이 각기 한 부분씩 되어있다. 그밖에 굿판을 꾸미고 진행되는 동원에는 유형 무형의 요소가 다양하다. 굿판을 꾸미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계통의 신령에게 젯상(음식, 지화, 기타 장식물)을 올려야 한다. 무당은 굿에서 거리에 따라 다른 신령이 모셔 짐으로 그 신격에 어울리는 신복을 갈아입으며 이는 엄숙하고, 장엄하고, 화려하다. 이런 신복에 부가되는 방울, 부채, 월도와 삼지창, 제금, 신탈, 오방신장기 등을 신구라 하고 이들이 굿판에 쓰이는 유형요소이다. 한편 신을 모시고 즐겁게 해드리며 공수에 감사하고 되돌려 보내기 위해 춤, 노래, 음악을 올리는데 이러한 것들이 무형의 요소이며 모두 전통문화와 관련된 하나의 맥이라 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02.10.24| 3페이지| 1,000원| 조회(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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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상된 아동기 감상문
    《 손상된 아동기 감상문 》우리 나라의 교육열이 높다는 증거를 가장 먼저 찾아 볼 수 있는 것을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입시위주의 교육을 통한 대학 진학에서이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 나라 교육열의 최종목적은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나도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어릴 때부터 학원을 다녔다. 그 때에는 나의 흥미를 일으켜주고 다양한 재능을 개발시키기 위해서라는 핑계가 먹힐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이 대학을 향한 하나 하나의 작전이고 전술 중 하나였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릴 때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강요당하며 살고 있다. 일류대학만 가면 되는 세상이 바로 지금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구성원에 대한 가치를 학벌이나 학력 또는 성적 등으로 뽑는 것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나라 높은 교육열은 교육 내에서 삐뚤어진 결과만을 얻어내고 말았다. 동심이라는 말 자체를 꺼내기가 부끄러워지는 세상이 지금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먼저, 교육열이 과연 무엇인지를 정의해야 될 것 같다. 교육열이란 개념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인데 이것은 교육동기의 정도를 표현하는 한 가지 언어로 생각할 수 있다. 김희복(1992)의 검토에 의하면 교육열에 관한 몇 가지 논의들은 다음과 같이 추론하고 있다. 교육열은 '욕구', '욕망', '열기'. '열의' 등의 개인적 또는 집단적 심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열은 교육에 대한 동기 그 자체가 아니라, 교육동기의 정도를 나타낸다. 즉, 교육동기가 대단히 높은 경우 그것을 교육열이라고 부를 수 있다.그러면 우리의 교육열은 과연 어떤 것이기에 그토록 높다고 느껴지는 것일까? 아마도 이것은 우리사회의 교육열이 어떤 목적이나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인의 교육열은 교육 목적의식에 의해 방향 지어진 것이 아니라, 교육결과(과거급제.학력.학벌.성적.순위)로 얻게 되는 사회적 가치에 의해 방향 지어진 것이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교육열은 보다 학력열에 가까운 것이다. 이것은 다시 좋은 학력을 얻기 위한 학교교육열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다. 학원이나 과외에 대한 욕구가 높은 것도 성적을 올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학교 교육열의 표현인 것이다. 학교 교육도 최상급의 학교, 특히 대학 입시에 편중된 교육열이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대학졸업이 문제가 아니라 대학입학이 교육열의 목표가 되는 것은 아마도 우리 나라 대학의 부실함(입학이 곧 졸업이기 때문임.)이 그 이유가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손상된 아동기」라는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화두가 과연 무엇인가! 나는 교육열이 아닌가 싶다. 위에서의 말처럼 교육이 우리의 사회계층을 구분 지어주는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에 너도나도 교육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 희생되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물론 부모들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해야되므로… 이러한 항변은 그들이 초래한 일이다. 어른들의 욕구를 위해서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일이라는 말이다.우리는 다양성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너도 나도의 교육열은 모두 똑같은 어린이가 되길 원한다. 말 그대로 꼬마 성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인류학을 배울 때 아주 중요한 명제가 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사람은 각각 다르다.", "사람은 모두 똑같다." 가물가물한 명제이기는 하지만-지금의 내 느낌으로는 뭔가 틀린 것 같다.-모두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 사람이 아닐까! 각기 서로 다른 개체들에게 하나의 모델로서의 인간이 되길 원한다는 것은 억지임이 틀림이 없다. 광수생각이라는 만화에서 우리의 교육을 아주 명쾌하게 꼬집은 일이 있었다. 학생들은 모두 똑같은 크기의 풀들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유독 웃자라는 풀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풀을 다른 풀들과 같은 크기로 싹둑 잘라내고 말았다. 남과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일률적인 아이를 찍어내어 배출하는 곳이 학교인 것이다.또, 우리의 교육열이 높다는 증거를 몇 가지 더 다루어 보도록 하자. 요즘 TV의 광고를 보면 유아때부터 천재를 만들려고 난리이다. 남과 다른 이유식을 선전하면서 이 이유식을 먹이면 천재가 될 것이라는 암시를 던져주는 것이다. 또 학습지 광고를 하면서 '이 아이는 지금 3살입니다. 글을 읽고 쓸 줄 압니다.'라고 하면서 꼬마아이가 신문을 줄줄줄 읽어 내려가는 것을 보여준다. 또 우리의 부모들은 그 학습지가 천재로 가는 지름길인 것처럼 앞다투어 아이들에게 안겨주어 강요할 것이다. 이렇게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부모들의 교육열에 질려버리게 된다. 이러한 모든 일은 일류대를 가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지금 학교에서 외치는 인성이나 창의성 등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학생들간의 경쟁으로, 이러한 경쟁은 성적경쟁으로 치닫게 된다.많은 학교로 인한 문제로 인하여 이제 우리의 교육은 경쟁이라는 탈을 벗고 전인교육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제적인 사회여건속에서 교육이라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써 이용되고, 교육열은 반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인 경쟁률로 바뀌어져 있다. 분명 이것은 과거의 우리 조상들의 교육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조선사회에서의 교육열을 보면 이 당시에도 교육열이 높았다. 그러나 그 당시의 교육열은 과거시험 합격만을 절대 기치로 삼는 경쟁열이 아니라 사람답게 되기 위한 전인격적 삶의 교육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조선조 후기로 오면 과거시험과는 무관한 상민층에도 배운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나 동학혁명을 비롯한 갖가지 사회적 저항운동에서 우주적 질서와 원리로서의 사람다움과 국가다움의 질서회복을 혁명 내지 저항의 명분으로 하는 기치를 들고 나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서 삼국시대 역시 나름대로의 전인교육이 행해졌다. 특히 신라의 화랑도는 집단수행을 통한 충이나 효, 의 등을 강조하였고 자연을 통한 경험과 집단적인 춤과 노래 등을 통해 조금 더 전인적인 교육이 행해졌다. 요컨데 우리의 오랜 문화적 전통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교육열은 오늘날의 교육열처럼 단세포적이고 편협한 단편적 지식 암기위주의 실리주의적 경쟁열이 아니라 삶의 과정 전체를 포함하는 전인격적 도의 교육의 실천이었으며, 교육방법에서도 개인적, 지성적 측면보다는 집단적, 감성적 교육이 더 중요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현대의 개념으로 풀이한다면 학교중심의 지식교육이라고 하는 삶의 좁은 한 부분만을 교육적 관심영역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학교생활이나 지식교육 영역 이외의 넓은 삶의 경험 전부를 교육적 관심사로 삼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교육과 학업석차만으로 사람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것이 오늘날 교육열의 특성이라면 과거의 교육열은 학업석차나 지식수준이 전체교육 속에서 부분적 비중밖에는 차지하지 않는 폭 넓은 교육열이다. 학교 밖에서의 삶의 과정 전체가 교육경쟁의 마당이기 때문이다.
    독후감/창작| 2002.10.24| 4페이지| 1,000원| 조회(1,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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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상된 아동기 요약
    손상된 아동기 요약1. 아동기 제거를 위한 음모어른들의 조바심과 끝없는 기대 - 우리들이 자녀들에게 온갖 혜택을 주고자 노력한 결과 우리는 정말로 우리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고, 가장 경쟁적이고, 심한 압력을 받고, 과잉으로 조직화된 가장 불행한 세대를 생산해냈다. 우리는 아동기의 많은 부분을 제거하기 위해서 맹렬하게 노력했다. 아동기의 성장시기에 대한 우리 어른들의 조바심은 反어린이적인 느낌을 반영하는 것 같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이유로 해서 지금의 우리가 우리의 어린이들을 진실하게 양육한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많은 어른들이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으며 통제하기 어려운 홍수와 같은 힘에 쓸려가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인생의 목적이나 인생의 고귀함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책임있는 성인들을 길러내기 위해서 어린이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인도하는 것을 겁내고 있다.과학발달에 대한 맹신의 위험 - 불행하게 공학이나 과학 발전의 결과 우리는 인간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즉, 우리는 인간의 두뇌가 기계로만 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환경을 조작하려고 하고 어린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기계들을 설계하며, 인간의 생명이나 성장과정에서 정밀하고 썩지 않는 것을 추출해 내려고 하는 공학적이고 기계적으로 훈련된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의 과학 혁명의 비극은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 알고자 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가치있는 일을 하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이나 과정들은 인간사에는 전혀 적절하지 못하므로 인간만이 지닌 인간성을 상실케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근래에 교육의 기초가 되는 이론들은 사회가 기계화나 과학적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생활의 대부분이 기계에 의존하고 있으며 우주연구나 미래의 발전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가 물리학 등에 발달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생존하는 유리한 길은 수학이나 공학, 그리고 물리학들의 발전에 보며 학습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라는 방법도 값비싼 희생을 요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린이들의 자연적 성장과 정상적인 학습능력의 발달을 기다리지 못하고 신경질적 반응을 나타냄으로 해서 더 많은 낙제생들, 학습 혐오자들, 그리고 정서장애 아동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만능이 될 수 없는 어린이 - 관심의 대상인 어린아이들은 변한 것이 없으며 수십 년 전부터 파악해 왔던 어린이들의 요구 자체도 실제로는 변하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가 기계공학적인 만능감에 휩싸여 균형감각과 올바른 판단능력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이제는 분명히 아동들의 복지를 확립하기 위하여 부모들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행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생의 초기인 영유아기의 어린이들이 보다 강한 동기유발을 일으키고 빠르고 많이 학습한다는 가정도 타당성 있게 입증되지 못하였다. 그들은 모방과 기억을 통해 습득할 수 있으나 이러한 능력들을 학습으로 혼돈해서는 안 된다. 학습은 개개 사실들의 축적만은 아니다. 학습은 사고능력의 발달이며, 의미있는 질문에 대답을 찾아 내기 위한 자연적 호기심을 나타내는 힘이며 좀 더 성숙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고력의 발달을 의미한다. 분별적 사고와 상황과 관련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의미있는 학습은 유아기를 지나서야 가능하며, 많은 경험을 하면 할수록 더 성숙해지고 학습 자체도 보다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동기유발도 조작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자신의 지식을 보다 확대시키고자 하며 풍부하게 하는 법을 알기 원하며 자심이 원하는 일을 스스로 찾기를 원하는 데서 나온다. 2∼3세 시기를 더없이 '소중한 흡수시기'라고 명명한 것에 대한 반박을 위해 과학적 자료를 찾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생활경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사실들을 빨리 흡수하는 능력만을 강조 받은 어린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데 필요한 적응능력을 기르지 못한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영리한 어린이는 충실하으로, 생명력과 표현욕구를 억압하고 그들을 다루기 쉬운 인간으로 만든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편하게 지내려고 어린이들을 다 성장한 작은 성인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교구들은 미리 정해진 방법으로 사용될 예정이기 때문에 어린이가 행할지도 모르는 활동의 범위를 축소시킨다. 그리고 옹호자들 자신이 새로운 통찰력을 개발하고 새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고 아무리 주장하여고 그들이 실제로 부추기는 것은 순응과 편협된 경험뿐이다.어린이답지 않은 침묵과 집중 작업 - 몬테소리 접근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어린이들의 복지에 대해 순수한 관심을 기울일 때 그 양육 결과가 보람있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철학과 목표가 무엇이든지 교사들이 어린이들에게 개별적 관심을 충분히 베풀 수 있고 학습에 대한 어린이의 본능적 욕구를 격려해 주는 학교에 다닐 수 있을 만큼 큰 행운이 있다면 어린이들은 마음껏 발달할 수 있다. 문제는 몬테소리식 교육 때문에 성취정도가 높은가, 그렇지 않으면 교육적 관심 바로 그것 때문에 더 성공적인가 하는 것이다.몬테소리교육 부활의 숨겨진 의미 - 가장 행복한 것처럼 보이고 몬테소리 교사가 가장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어린이는 테이블의 먼지를 털고 탁상용의 작은 깔개를 정리하고 혼자 있는 것에서 안정감과 무사함을 찾는 수동적이고 복종적인 어린이들이다. 우연히도 이들 중 많은 어린이들이 다소 조용하고 예절바르고 정상적이고 건강한 어린이일지 모르나 또 다른 어린이들은 심한 정서적 문제로 퇴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옹호자들의 동기가 아무리 순수했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몬테소리 운동은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전개되어 왔다. 그것은 단순하고, 학업적 성취를 약속하며, 단정해 보이고, 아동 교육에서 당면한 복잡한 문제들을 그럭저럭 회피하기 때문에 인기를 끌어 왔다. 그것은 어린 아동들을 성인인 것처럼 가장시킨 때문이었고 옛날과 같이 아동기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몄던 때문이다.4. 당신이 선택한 유아원학부모들의 병적인 기대와 유아교 최적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도록 돕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모든 감정을 발달시키고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만일 그 어린이가 자신의 가치가 단지 얼마나 빨리 읽고 쓰는 것을 배울 수 있는가의 기준에서만 평가된다고 느껴서 그러한 요구에 질리고 걱정하게 된다면 그는 소수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부정적 자아개념을 갖게 될 것이다.과장된 유아기 가능성의 왜곡 - 유아원 교육에 대해 부활된 관심은 중, 상류층 아동을 위한 유아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그 여파는 실조된 아동에 대한 관심으로도 나타났다. 우리는 정말로 아동의 다양한 측면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들이 보다 빠르게 성장하도록 할 수 있는가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모든 유아원에서 지금 끊임없이 일상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다양한 압력들 가운데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놀이의 장과 기회부여에 대한 논란이다. 즉, 유아원은 도처에 설립되었는지 모르나 놀이는 실종되었다. 놀이를 유아기 생의 중심으로서 그리고 의미 있는 측면으로 재정립하려는 데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정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놀이와 더불어 산다는 것은 결코 하찮게 되는 것이 아니다.5. 어린이 놀이의 의미억압된 감정의 배출구 - 아동들은 놀이를 통해서 자신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답을 각자의 방법으로 스스로 발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지각있고 예민한 성인이라면 아동들이 가게주인, 경찰, 동물, 농부, 의사 건축가로 가장할 때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가고 있다는 것을 뚜렷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동이 집단놀이를 하면서, 서로 공유하고 순서를 지킬 때,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좌절을 인식할 때, 상상의 세계에서 그들의 갈등·고통·공포와 혼란을 경험할 때, 그들은 성인들의 분주하고 어렵고 타협하지 못하는 일들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놀이는 무의식적인 욕구와 감정표현을 할 수 있는 아동의 언어이다.놀이의 정신치료 기능과교사의 도움에 의해 스스로 해답을 찾으며, 아동들의 자발성·긍정적 자기 표현감·타인과의 협동적 생활태도·타인과의 자신의 권리존중감 등을 길러주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지능지수를 높이는 교육'에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6. 학습부진아가 지닌 이면의 건강성'학습부진아'라는 낙인의 오류 - 학교 성취에 있어서 학습 부진아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학교라는 세계가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선 학교는 실패냐 아니면 성공이냐를 구분하는 절대적인 세계이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가 될 것을 요구한다. 교육은 경쟁이라는 교리를 가장 중시하는 종교처럼 위협을 가하고 있다. 우리 어린이들의 과반수 이상은 학교에는 우등생들만을 위한 교실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은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정답만을 맞춰야 하는 교육실제의 문제 - 우리 어린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교육적 분위기의 또 다른 주된 특성은 사실을 배우는 것, '정답'을 쓰는 것, 그리고 모든 과목의 모든 것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다. 정신건강 국제기구의 엘리 보워박사는 이것을 '교육의 주입식 이론'이라 부른다. 즉, 원통형 찻잔인 교사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빈 주전자와 같은 아동의 텅 빈 머리에 쏟아 붓는다. 이러한 교육 속에서 아동은 사실들을 연결짓지도 못하고, 필요할 때 정보를 찾고 처리하고, 통합하고, 변별하거나 해석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이러한 식의 지도방법은 도처에서 일어난다.엄연히 존재하는 개인차의 무시 - 현재의 교육 경향은 앞의 순응자 집단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격려하고 있으나, 비순응자 집단은 좌절시키고 있다. 창의적인 성격은 일반적으로 모험, 독립심, 질서를 교란시키는 버릇, 장기적인 계획 수립의 불가능성, 권위에 대한 도전, 그리고 대부분의 교사들이 대단히 다루기 힘들어하는 일탈행동인 개구쟁이 짓과 장난을 잘하는 특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이런 어린이들은 발달의 어떤 단.
    교육학| 2002.10.24| 7페이지| 1,500원| 조회(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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