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蔡萬植) 연 보(年譜)1902년 전라북도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에서 부농인 채규섭과 모친 조쌍섭의 육남 삼녀 중 다섯째 아들로 6월 17일 출생.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1914년 임피보통학교 졸업.1918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입학.1920년 8월 15일 함라인 은선홍(殷善興)과 결혼.1922년 중앙고보 졸업. 渡日하여 4월 14일 일본 와세다대학 (第一早稻田高等學院) 문과 입학. 축구부 선수로 활약.1923년 關東大震災로 고등학원 중퇴 귀국. 처녀작 중편 「過渡期)」탈고(문학사상 1973년 8월 ∼ 9월호에 遺稿로 발표).1924년 강화의 사립학교 교원으로 취직. 단편 「세 길로」가 「조선문단」에 추천됨. 장남 무열 출생1925년 동아일보사 정치부 기자로 입사. 단편 「불효자식」이 「조선문단」에 추천됨.1928년 차남 계열 출생1931년 開闢社에 입사. 희곡 「스님과 새장사」(彗星), 평론 「평론가에 대한 작가로서의 不伏」(동아일보), 단편 「부촌」(신동아), 「농민의 회계보고」(동방평론), 희곡 「행랑 들창에서 들리는 소리」(신동아), 「감독의 아내」(동광) 등 발표.1933년 開闢社 사퇴하고 조선일보사로 옮김. 장편 「인형의 집을 나와서」(조선일보) 연재. 단편 「팔려간 몸」(新家庭), 「레디 메이드 인생」(신동아), 평론 「백 명이 한 개를 낳더라도 옳은 프로 작품을」(조선일보), 「批評精神과 內容의 兩全에」(조선일보), 「似而非評論拒否」(조선일보), 희곡 「曹操」(신동아), 「인텔리와 빈대떡」(신동아) 등 발표.1936년 조선일보사를 사퇴하고 開城府 南山町으로 移居함. 단편 「언약」(여성), 「보리방아」(조선일보), 희곡 「심봉사」를 「문장」에 발표하려다 검열로 전문 삭제당함. 장편 「濁流」(조선일보), 「天下太平春」(조광) 등 연재, 중편 「정거장 근처」(여성), 희곡 「예수나 안 믿었더면」(조선문학) 등 발표.1939년 장편 「탁류」를 上梓함. 「채만식 단편집」이 「조선문고」로 출간됨. 장편 「금의 정열」(매일신보) 연재. 단편 「정자나무 있는 삽화」(농업조선), 「巡公있는 일요일」(문장) 발표.1940년 개성에서 안양으로 移居함. 장편 「天下太平春」을 「太平天下」로 改題하여 「3人長篇」에 수록 上梓함.1941년 장편 「금의 정열」을 上梓함. 「아름다운 새벽」(매일신보) 연재. 단편 「近日」(춘추), 동화 「왕치와 소새와 개미와」(문장), 「시대를 背景하는 문학」(매일신보), 「문학과 전라주의」(삼천리), 오리지널 시나리오 「無藏三冬」(문학사상 1976년 2월 ∼ 3월 호에 遺稿로 발표) 탈고.1942년 삼남 훈(勳) 출생1943년 중편 「배비장」을 博文書館刊 단행본에 수록. 장편 「어머니」를 조선총독부의 겸열로 「여자의 일생」으로 改題 발표(조광).1944년 장녀 실(實) 출생1945년 일제의 탄압에 못이겨 향리 임피(臨陂)로 이주, 이곳에서 해방을 맞다.1946년 익산 고현동에 사는 중형(仲兄) 준식 씨 댁으로 이사. 발간1947년 창작집 상재함. 사남 영훈 출생. 어머니 별세1948년 발간1949년 익산시 마동으로 이사. 탈고. 중편 「소년은 자란다」(월간문학 1969년 9월호에 유고로 발표) 탈고함. 동화 「이상한 선생님」(어린이 나라) 발표. 과격한 창작 생활로 인하여 6월 병상에 눕다.1950년 老年性 肺患으로 49세를 일기로 영면(永眠). 미완성 소설 「소」를 남김장지는 전북 군산시 임피면 축산리 계남마을*글의 내용1930년대 후반의 어느 늦가을. 서울 계동의 만석꾼 부자 윤직원 영감 은 명창대회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소작료와 수형 장사로 1년에 십 수만 원을 챙기는 이 거부 윤직원 영감은 타고 온 인력거에서 내리자마자 인력거꾼과 요금 시비를 벌인다. 30전은 주어야겠다는 인력거꾼과 15전밖에 못 주겠다며 옥신각신하다가 마침내 25전으로 낙착을 보자 거만의 갑부 윤직원은 몹시 속이 상해서 집으로 들어간다. 매년 십 수만을 버는 윤직원 영감이지만 밖으로 나가는 돈은 이처럼 절치부심, 아까워하는 것이다. 치재의 비결이 워낙 이러한지라 윤직원 영감은 버스를 타더라도 짐짓 큰돈을 내밀어 거스름돈을 받지 못한다는 핑계로 무임승차를 즐기는 터이기도 하다.거만의 부를 움켜쥐고 있는 윤직원이지만 그에게도 비참한 역사는 있다. 노름꾼이던 그의 아비 윤용규가 어찌어찌 한몫을 잡아 가산이 일게 되면서부터 윤두섭(윤직원의 본명) 부자는 화적떼로부터 무수한 약탈을 당했는데, 급기야는 어느날 밤 들이닥친 화적떼에게 윤용규가 무참히 살해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고의춤도 여미지 못한채 달아나 명을 보전한 윤두섭은 화적들이 물러간 뒤 돌아와 참경을 목도하고 비장하게 외친 바 있다. "오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화적떼에게 뺏기고 관리들에게 수탈당하던 두꺼비 윤두섭이 세상에 외친 위대한 선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연고를 겪으면서 모은 거만의 재산이니 그가 한푼의 돈을 쓰는 것에도 벌벌 떠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 하겠지만, 그는 착취니 뭣이니 하는 말에도 펄쩍 뛰는 무치의 소유자이기도 하다.이만큼 돈을 번 것은 자신의 치재 수단이 좋았고 시운이 따라 가능했던 것이지 절대로 남의 것을 뺏은 것은 아니라는 탄탄한 소신이 그에게 내장되어 있는 탓이다. 시골 치안의 허술함과 후손 교육을 기회삼아 서울로 올라온 윤직원 영감에겐 지금이야말로 '태평천하'이다. 든든한 경찰이 있어 도둑 걱정없고 자신의 고리대금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으니이런 좋은 세상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니만큼 현재의 그에게는 사회주의 운동 운운하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경멸스럽고 두려운 인물들이다.그러나 현실적 위협이 없으니 그것도 피안의 불일 따름, 윤직원 영감에게 절박한 위협이 없으니 그것도 피안의 불일 따름, 윤직원 영감에게 절박한 근심은 없다. 단지 남은 소원이 있다면 그의 두 손자 - 종수와 종학이 각각 하나는 군수, 하나는 경찰서장이 되어 집안에 지위와 명성을 보태어주는 것뿐이다. 돈이 있으니만큼 이러한 자리 욕심이 생긴 터인데, 사실 직원이라는 그의 직함도 시골에 있을 무렵, 향교의 수장자리를 돈주고 사들인 것이다.자신의 만수무강과 후손의 영화를 위해 자신의 소변으로 눈을 씻고 어린아이의 소변을 사서 매일 아침 장복하는 등 갖은 양생법을 실천하는 윤직원 영감이지만 실인즉 그의 집안 사정은 난맥상을 드러내가고 있다. 그의 외아들 창식은 진작 첩살림을 차려나가 하는 일이라곤 노름에 계집질뿐으로 주색잡기에 수천금을 뿌리고 있으며, 맏손자인 종수는 군수가 되리라는 명목으로 시골 군청의 고원으로 취직해 있으면서 역시 첩살림에 갖은 주색잡기로 수만의 가산을 탕진하고 있는 판이다. 둘째 손자 종학은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윤직원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터이지만 이도 서울집에 있는 본부인과 이혼하겠다며 성화를 피우고 있다.또 윤직원 영감은 회춘을 하려고 여러 차례 동기를 바꾸어 가며 동접(童接)을 기도하나, 이번에는 열다섯살짜리 동기(童妓) 춘심이년이 애간장을 태우게 한다. 실은 춘심이는 윤직원의 증손자 경손이와 눈이 맞아 연애를 즐기는 중이었다.이런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윤직원 영감에게 비보가 날아든다. 맏아들 창식이 동경으로부터 온 전보를 윤직원에게 전해주는 바, 거기에는 '종학, 사상관계로 피검' 이란 활자가 선연히 찍혀있다. 윤직원의 차손 종학이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증오하고 두려워 해 마지않는 사회주의에, 가장 큰 희망이요 보람이었던 경찰서장감 종학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안 윤직원은 격노하여 비틀거리며 소리지른다. 왜 태평천하에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는 사랑으로 사라진다.
좁은 문을 읽고서...을 흥미롭게 읽으려면 먼저 작가에 대해 알아두면 좋다. 이 책은 바로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작중에서 주인공은 부정한 어머니를 둔 사촌과 사랑에 빠지는 데 실제 지드 역시 그런 사촌과 결혼했다. 사촌이라면 가족과 같이 생각하는 우리 나라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과거 서구에서는 권장되기까지 했었다. 좋은 가문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결혼을 했을 뿐이지 실제로는 순전히 관계를 전혀 갖지 않는 부부였다는 이다. 왜 그랬을까? 아니, 실제로 그런 생활이 가능 할 수 있는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이 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앙드레 지드는 어린시절을 엄격한 신교도인 부모들로부터 엄격한 권위에의 복종이라는 원리 속에서 종교의 구속적인 측면을 강요받으며 관심을 갖지 못했었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 파리 출생으로 11세 때 파리대학 법학교수인 아버지를 잃고,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청교도적 교육을 받았다. 여러 차례 퇴학을 당하는 등 불규칙한 학창시절을 보냈으나 18세 때부터 문학에 몰두, S. 말라르메 등을 알게 되면서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이 시절에 싹튼 외사촌 누이 마들렌과의 사랑과 뒷날의 결혼은 평생동안의 작품활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1891년 첫 작품 를 발표한 이래, 마들렌으로 대변되는 전통적 가치와 프로테스탄트 도덕 규범들에 대하여 순응과 반발이라는 내적 갈등을 겪으면서, 이런 갈등을 작품 전반을 통해 표현해 냈다. 도덕과 인습의 굴레에서 오는 고통을 피하고자 93년부터 수 차례에 걸친 아프리카 여행을 하였으며 이 체험을 바탕으로 , 등 생명과 욕망을 열렬히 찬미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 뒤 , 에서는 자기 생명을 극단적으로 향락하는 인물과, 반대로 신의 사랑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여인을 가가 그려냄으로써 그의 일관된 테마를 나타냈다. 지드 자신의 분류법에 따르면 그의 소설은 3가지로 나뉜다. 레시라고 부른 것은 엄격한 심리 해부적 작품들로써 , , 등과 3부작이 이에 속한다. 소티는 지적 유희의 요소가 강한 풍자적인 작품으로서 , 등이 그것이다. 그가 말한 로망은 단일한 테마를 넘어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룬 것으로서, 유일한 장편소설인 이 이에 해당한다. 훗날 50세에 이르러 콩고와 차드라는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때까지 무관심하였던 사회문제에 눈뜨게 되면서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 프랑스 식민정치를 비판한 을 발표하고 32년에는 사회주의로 사상적 전화을 하였으나 그때까지의 강력한 반작용으로 나를 공산주의로 이끄는 것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복음서이다. 라며 공산주의에 가담하게 되는데 그러나 곧 공산주의의 실상을 알고는 결별한다. 36년 에서는 획일화된 소련체제에 대한 심한 환멸을 표시하기도 한다. 비펴 분야에도 뛰어나 와 같은 명저를 남기기도 했다. 지 창간을 주도하여 20세기 전반의 프랑스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기성의 종교.도덕의 구속을 거부하고 열정적인 구도자로 평생의 작품세계를 추구한 끝에 4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 51년 영광속에서 죽었다. 어쨌거나 그의 종교적 권위에 대한 반감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등이 주로 읽혀지고 문학 평론과 희곡 등에도 솜씨를 보였다. 194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광의의 문학 작픔으로서는 광대한 분량의 일기가 있다.앙드레 지드가 지은 좁은 문의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의사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롬의 일가는 학업을 위해서 파리로 이사를 한다. 매해 여름 휴가 때에는 뷔콜랑 외삼촌 댁에 가곤 했는데, 주인공 제롬은 어느날 외삼촌의 집에 갔다가 두 살 위인 외사촌 누이인 알리사 뷔콜랭한테 한 눈에 반하게다. 그 후, 알리사의 어머니인 외숙모는 젊은 장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 버린다. 제롬은 외숙모 류실르는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키곤 하고 알리사는 조용히 자기방에서 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는 알리사를 지켜줄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생각에 그녀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목사의 설교처럼 좁은 문으로 들어 갈 것을 결심한 것 이다. 어머니에게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인 것 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그때 알리사의 여동생인 줄리엣 역시 알리사를 사랑하게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된 알리사의 동생을 위해 제롬을 멀리하게 되고 동생 또한 괴로워 하다가 언니의 사랑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나이 많은 청혼자와 결혼해 버린다. 그리고 3년후 제롬은 알리사를 만나게 되지만 이미 알리사는 세속적인 사랑이나 행복보다는 하나님을 따르는 삶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한 뒤였고 그러므로 제롬의 사랑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달 뒤 제롬은 줄리엣으로부터 알리사가 연락이 안되 찾아봤더니 요양원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가지만 소쓸 겨를도 없을 상태였고 사망했다는 편지를 받는다. 알리사는 죽음을 맞게 되고 며칠 뒤 우편으로 그녀가 남긴 일기를 받고 그 일기를 통해 그녀 역시 제롬을 사랑했으나 보다 큰 기독교적인 완성을 위하여 그 사랑에 저항한 것임을 깨달은 제롬은 그녀를 따라 자신도 좁은 문을로 들어가는 삶을 살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10년 뒤 다섯 번째 아이를 낳고 아이 이름을 알리사 라고 지어 주었다.앙드레 지드의 이 은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할 수가 있다.우선은 두가지로 간단히 나누어서 말 해 보겠다.이 책은 제목에서도 보여 주듯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을 살려는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다. 청교도적인 이상과 인간적인 행복의 갈등이 빚어내는 비극을 심리적으로 분석한 작품으로 영혼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영혼의 사랑을 그린 원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의 세속적인 사랑과 이 성경이 의미하는 좁은 문이 결코 함께 할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이 청춘 남녀의 비극은 시작된다. 알리사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삶을 살기 위해 즉, 신을 향한 삶을 살기위해 자신에 대한 제롬을 위해 자신에 대한 제롬의 사랑을, 그리고 제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거부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좁은 문이 그토록 극단적인 고행의 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도덕적인 삶을 지향하자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알리사가 세속적인 사랑을 거부하고 청교도적인 삶을 살아가고 한 동기는 역시 그녀 어머니의 불륜에 있었다고 할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알리사는 철저히 금욕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알리사는 제롬의 사랑을 받아들여 세속의 행복을 추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 세속적인 사랑이 아닌 보다 더 높은 사랑, 신을 향한 삶을 살기 위해 제롬의 사랑을 거부한 채 고행의 좁은 문을 선택한 것이다. 제롬은 자신의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알리사를 미덕의 정상으로 끌어 올려 둘이서 좁은 문으로 들어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나 마침내는 그것이 불가능의 이상에 불과했었다는 점을 깨닫는다. 알리사는 또 제롬을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제롬이 자기와 하나닐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생각에 고민한다. 그녀는 두 사람의 영혼이 세속의 사랑을 초월하고 함께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가져보지만 결국엔 좁은 문은 자기 혼자만이 통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랑을 포기하기로 한다. 이렇 듯 좁은 문을 향한 알리사의 집념은 놀랍기도 하고 가엾기도 하다. 누구든 자신의 이상을 향해정진 할 저유는 있겠지만 너무 집착 할 경우엔 행복은커녕 불행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보통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알리사의 신을 향한 삶에 대해 할 말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어떤 고행의 삶을 살기 위해서 가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세상에 낸 신의 뜻이기도 할 것이다. 신을 위한 삶을 산다는 핑계로 지상에서의 삶을 소홀히 한다는 것이 바로 신의 뜻을 져 버리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므로 우리는 알리사가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정말로 사랑을 희생할 만한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고 종교적 희생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의 말을 달리 옮겨 놓으면 사랑보다 더 송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앙드레 지드는 알리사가 일생을 바쳐 좁은 문을 통해 천국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그것은 결국 신에게 조롱 당한 것임에 불과했음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물론 조롱은 신이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무지에서 온 것이겠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신에 대한 앙드레 지드의 생각의 한 단면을 엿 볼 수 있겠다. 혹시 종교적인 생활과 세속적인 앙드레 지드의 생각의 한 단면을 엿 볼 수 있겠다.혹시 종교적인 생활과 세속적인 삶의 혼돈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이다면 이 책을 읽고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지구 환경의 위기와 생태계 기회인류는 자연 환경이 준 혜택을 이용하면서 지금까지 생활을 해 오며,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우리들은 자연에서 태어나 살다가 결국은 자연속으로 돌아가게 된다.즉, 우리 삶의 보금자리는 자연이며, 앞으로도 자연은 우리후손들이 건강하고 복된 삶을 누려 나갈 터전이다. 따라서, 우리는 후손에게 물려줄 자연을 깨끗이 보전하고, 나아가 나빠진 것은 좋게 하여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한정된 땅에 인간이 거주하면서 인구와 차량 등의 증가, 도시팽창, 자원 소비와 산업 시설의 발달, 개인 이기주의의 심화 등에 따라 자연 환경은 점차 오염되거나 파괴되고 있다. 대부분의 환경 오염은 조그만 것들로부터 우리가 느끼지 목하는 사이에 계속적으로 누적, 심화되어, 일어나는 것이다.고무 풍선에 바람을 넣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팽창할 수 있으나 한계를 넘으면 터지는 것과 같이, 우리 주위의 환경 오염 문제는 터지기 직전의 고무 풍선과 같은 상황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으며, 우리 모두의 힘으로 우리의 환경을 가꾸어 나갔으면 좋겠다.물론 다른 환경오염도 심각하겠지만 거기에 앞서 우리 나라뿐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으로 심각한 수지에 이른 대기의 오염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지구 대기는 대부분 질소와 산소로 이루어져 있다. 오존층은 이 산소와 자외선이 함께 작용하여 만들어진다. 오존층은 대기 중에 쌓여 있는 산소가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자외선을 받아 광화학 작용이라 불리는 화학 작용을 일으켜서 형성된다. 산소 원자(O) 두 개로 이루어진 산소 분자(O₂)는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자외선을 받으면 반응성이 매우 높은 산소 원자로 분해된다. 이 산소 원자(O)가 다른 산소 분자(O₂)와 결합해서 오존(O₃)을 만든다고 한다.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오존층은 지구상의 생물들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태양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광선들이 모두 생물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다. 오존층은 생명의 기본이 되는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를 포함해서 생물의 중요한 세포 분자를 파괴하는 짧은 파장의 자외선을 대부분 흡수한다.예를 들면, 1985년 남극 '핼리베이'에 기지를 둔 영국 탐사대에 의해 남극의 상공 12∼24Km 지점(성층권 하부)에 있는 오존층이 계속해서 감소해 왔으며, 특히 매년 봄에는 오존층이 그야말로 구멍이 뚫린 것처럼 오존의 양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87년 10월에 조사한 결과로는 남극의 오존층에 뚫린 구멍이 미국 대륙 넓이만큼이나 되었다고 한다.오존층 파괴의 범인으로 지목된 것은 분사제와 냉각제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었던 프레온 가스였다. 프레온 가스의 본래 명칭은 염화불화탄소'이고 이를 간단히 CFC(Chloro Fluoro Carbons)라고 한다. 프레온 가스는 탄소의 주위를 염소와 불소로만 둘러싼 분자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냄새도 없고, 독성도 없으며, 불에 타지도 않고, 화학적으로도 안정해서 산업 분야에 폭넓게 이용될 수 있다.CFC는 화학적으로 안정하기 때문에 대기권(지상에서 10Km 상공까지)으로 방출된 후에도 거의 분해되지 않는다. 그리고 쉽게 성층권(10∼15Km)까지 올라가서 자리를 잡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CFC는 강력한 자외선의 공격을 받아 분해된다. 이때 생기는 것이 염소 원자(C1)이다. 염소 원자는 산소 원자 세 개가 약하게 결합되어 있는 오존을 파괴한다. 지금까지 연구된 결과에 의하면 염소 원자 하나가 10만 개의 오존분자를 파괴한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일단 공기중으로 방출된 CFC는 수십 년간 남아 있으면서 계속해서 오존층을 파괴한다. CFC가 성층권에 도착하려면 20∼30년이 걸리며, 성층권에 도착한 후에는 300년간이나 머무를 수 있다고 한다.예상되는 피해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건강에 끼치는 피해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으로 나눌 수 있다. 건강에 피해로는 피부암으로 유해한 C파 자외선 때문이다. 또 지나치게 강한 자외선은 망막에 많은 피해를 입혀 백내장 환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으로 동물과 식물의 생장에 영향을 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오존층 감소에 민감한 생물로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있다.그러면 오존층의 피해를 없애는 방법에는 우선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CFC의 사용을 중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프레온 가스와는 달리 오존을 파괴하는 염소 원자를 포함하지 않는 대체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또 적극적인 대체 방법으로 오존의 양을 인공적으로 늘려 오존층을 되살려 보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오존을 파괴하는 염소 원자를 없애는 방법이다.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냉장고의 프레온가스와 그리고 자주 쓰고 있는 스프레이의 일종도 오존층의 파괴에 그 영향력을 미치는데 한 몫을 한다.다음으로 토양오염에 대해서 알아보면, 토양오염은 각종 물질의 개발, 사용 및 폐기를 통한 순환과정에서 직접 혹은 간접으로 오염 물질이 토양으로 유입되어 일어난다. 유기성 폐기물의 매립장이나 가축 축사의 분뇨야적장 부근에서 유기물에 의한 토양오염이 발생되며 특히 썩지않는 비닐이 토양속에 섞이게 되면 수분의 토양 내 이동과 작물의 뿌리 뻗음이 방해를 받아 성장하는데 장애를 받게 된다.중금속은 이동이 적고 계속 잔류하기 때문에 토양오염을 심각하게 일으키는데 산업활동 속에서 많이 배출되고 있다. 또한 식량의 안정적 생산을 위해 필연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농약, 비료도 토양 속에 오랫동안 잔류해 있다가 독성작용을 일으켜 큰 피해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