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now my weeknesses. Speaking is hard thing; however, understanding is the hardest thing I think. If people speak slowly and clearly, it`s all right, but most people seem to speak very fast. So it`s not easy to understand their language. Yet, at first it`s easy to speak to people I meet, because everyone asks me the same questions. Usually they ask me like this. To mention a few, "What`s your name?" "Where are you from?"
1. 니그로 르네상스 운동우선 니그로 르네상스 운동 은 우리 경우와 비교해 보자면 1910년대로부터 20년대에 걸치는 신문학에 견줄 수 있는데, 다만 그 주류는 최남선이나 이광수류의 개량주의{) 사회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을 시도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모순과 결함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려 는 사회사상·운동. 사회개량주의라고도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 입각한 현존질서는 본질적으 로 건전하며, 다만 모순과 결함이 있는 일부분에 대해서만 개량·개선·수정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폭력혁명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는 물론이고, 폭력없이 부분적인 개선·수정을 거듭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폭력혁명과 똑같은 성과를 거두려고 하는 사회민주 주의나 구조개혁론과는 다르다.문학 에 있었던 게 아니었음을 지적할 수 있겠다. 흑인으로서 문학을 한다는 것은 20세기 초엽까지만 해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백인들에게 불경죄로 경을 칠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백인인 체하면서 가명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백인 중산층의 취미에 맞을 사랑 노래를 읊조리던 노예문학 내지 도망노예의 문학 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1910년대로부터 흑인임을 떳떳이 밝히면서 아울러 그 작품 속에 흑인들의 리얼리티를 담아내는 문학이 새롭게 대두되었다. 이 문학은 미국문학 이기 이전에 흑인문학 이라고 주장되기도 했다. 바로 흑인 르네상스 운동을 통해서 흑인문학이 백인문학에 종속적·하부적으로 편입되는 것임을 부인하면서, 어느 면에서는 제3세계 문학으로서의 흑인문학운동이 새롭게 배태{) 어떤 일이 일어날 빌미를 속으로 지님. 예문) 불행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다.돼 나온 것이다. 미국 흑인운동사는 1차 대전을 전후한 이 시기의 문예운동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데 이는 흑인사회에 불어닥친 사회에 불어닥친 사회변동의 양상과 관련이 있다.제국주의 전쟁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 1차 대전이었지만, 미국은 이 전쟁을 통한 군수산업의 호황으로 급격한 도시화·산업화의 변모를 보이게 되고, 노동력 수요의 팽창은 백인과 외국 이민자뿐만 아니라 남부 농촌지 휴즈와 또하나의 20세기 문학」, 실천문학사, 1994.2. 니그로 르네상스 운동과 랭스턴 휴즈랭스턴 휴즈는 흑인의 흑인됨, 백인들은 전혀 갖추지 못했고 오로지 흑인만이 천부적으로 지녀온 흑인성의 정수- 소울 에 대하여 가장 처음으로 긍지 높게 노래하였던 시인이었다. 그는 20세기 문학의 뒤안길을 새롭게 탐험해 들어간 할렘의 셰익스피어 였고, 검은 피부의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흑인문학의 외교관 이었다. 존 프랭클린이 편찬한 『노예에서 자유민으로』란 미국 흑인운동사에 관한 책은 특별히 랭스턴 휴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휴즈는 니그로 르네상스 운동을 통해 새로운 니그로 의 전통을 수립해 나간 작가였다. 하지만 그는 저항시인의 진면목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었을 때에도 울거나 고함을 지르는 문학을 하지 는 않았다. 그는 인종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로움과 함께 백인문학의 도식성으로부터 벗어 나는 자유로움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늘상 웃음을 잃지 않는 문학을 해왔던 것이다. 그는 흑인의 흑인다움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한 감동적인 시편들을 썼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학적 기량을 소설에서도 발휘했고, 희곡을 통한 연극운동에 매진했는가 하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평론들 과 역사성 있는 산문 등 모든 분야의 글을 썼다. 이러한 면모 때문에 어떤 이들은 그를 가리켜 할렘의 셰익스피어 라 부르기도 한다.랭스턴 휴즈의 문학적 성격, 즉 저항시를 줄곧 견지하였으되 울음을 우는 문학이 아니라 웃음을 잃지 않는 작품을 써 왔다는 설명은 바로 가장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하여 누구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그의 저명도와 대중성에 기인되는 것이었다. 미국인이지만, 그러나 흑인 이라는 자기 확인은 백인만이 옳은 미국사회에서 참으로 곤혹스런 인식 내용일 수밖에 없거니와, 휴즈는 이를 지식인의 언어가 아니라 기층 흑인의 어조로 문학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20세기 초중엽의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야기되는 모순과 갈등을 정면에서 다루는 리얼리즘 문학과 자연주의 문학이 미국문학사한 문학, 또는 미의 추구, 예술성을 높이는 것으로서의 엘리트 문학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럴 여유나 여건을 가진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도리어 그러한 문학을 지향하는 흑인 예술가들을 공격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흑인문학 의 강인한 성격을 형성케 한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문학은 가난하고 무식하며 천대받는 흑인 동포들과 대열을 함께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는 별도의 문학이론을 세울 여유도 이유도 갖지 못하였다. 그러기에 그의 시는 쉬운 시가 아니라 쉽게 읽히지 않으면 안 되는 시이고, 또한 무식한 흑인들이 읽게 하기 위한 시였다. 실제로 그는 몇 번에 걸쳐 박해와 위험을 무릅쓰고 아메리카 대륙을 샅샅이 누비면서 시 낭독회를 다녔다. 그의 많은 시편들은 이러한 낭독시, 흑인들이 애창할 수 있도록 만든 암송시들이다. 이러한 까닭에 그는 흑인민중의 계관 시인으로 찬양되지만, 또한 평자에 따라서는 너무 단순하고 평면적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가하면 그의 시는 밑바닥 흑인들의 껄끄럽고 반항적인 생활감정을 거칠게 담아내고 있다 하여, 과격분자, 불순분자로 지적되기도 하였다. 특히 1920년대의 니그로 르네상스 운동의 초창기에는 같은 흑인 동료들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즉 니그로 르네상스 운동에 있어서 대다수 흑인 지식인층들은 온건노선을 택해, 백인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또한 문학도 흑인 중산층 내지 상류층과 백인 지식층을 대상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 랭스턴 휴즈의 문학적 태도를 시기상조라고 공격하고 그의 작품을 졸렬하고 과격하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때에 랭스턴 휴즈는 굴하지 않고 자기의 신념을 이렇게 밝혔다.나는 니그로 시인이 흑인의 세계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시인이 되더라도 흑인적인 것은 싫 다. 라고 말할 때 수치를 느낀다. 또한 나는 흑인화가가 니그로의 얼굴을 그리는 게 아니라 백인 들의 화풍에 거역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카데믹한 수법으로 일몰 풍경이나 그리는 것을 볼 때 북전쟁이 일어나 북부가 승리하고 흑인노예들은 해방되었지만 랭스턴은 노예제도의 폐지가 문제해결이 아니라 시작에 부과하며, 평등 없는 자유는 껍질 없는 계란과 같다는 생각으로 평생 흑인해방운동으로 일관하다가 가난하게 죽었던 것이다.랭스턴 휴즈는 소년시절 외할머니인 메리 랭스턴으로부터 흑인의 투쟁사를 들으며 자랐는데, 이것은 그의 초기시 『수우 아줌마의 이야기』에 감동적으로 그려진 바 있다. 사내는 결코 울지 않는다. 일하고, 계획하고 싸우는 게 사내의 일이다. 라고 외할머니는 그에게 말하곤 했던 것이다. 이와 아울러 그의 소년시절을 결정짓는 것은 가난한 흑인소년이 겪어야 하는 자각 과정, 즉 급사·신문배달·호텔보이 등 일주일에 50센트 정도가 고작인 막벌이 일에 전전하면서 삶의 가파로운 급경사를 기어오르고 이러한 생활 가운데 삶의 모순, 특히 흑인에게 가해지는 백인의 압박과 차별, 그리고 모순으로부터 서서히 움터 오르는 하나의 흑인으로서의 자기 자각과 모든 흑인들에 대한 연민과 자기 일체감이었다.소년시절에 그는 문학에 대해서는 그리 큰 흥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학급의 문예 반장이 되면서 시를 쓰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블루스 시대 가 펼쳐지게 되었다. 이것은 격변의 시대였고 변혁이 요구되는 시대였다. 1차 대전은 연맹국의 승리로 끝났으나 그 여파는 미국에 있어서 새로운 흑인에 대한 박해로 나타났는데, 도처에서 흑인의 진출에 분노한 백인들의 린치와 학살이 잇달았다. Mckay같은 흑인시인은 제발 돼지처럼 죽게 하지는 말라, 사람답게 죽을 수 있도록 하라. 라고 절규했고, Du Bois 박사는 20세기의 문제는 유색인종의 문제 임을 말하면서 흑인의 피는 세계를 위한 메시지 라고 주장, 흑인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한편 문학에 있어서 냉엄한 도시의 비정을 노래하는 새로운 시인들이 등장, 랭스턴 휴즈는 그 영향을 받았다. 이 계열에 속하는 시인들은 미국 대도시의 메커니즘과 비인간적 문명의 횡포를 거칠게 규탄하면서, 폭력과 비정을 거칠게 시 속에 담았다캐롤라이나에서는 순백인 학생들만 다니는 대학 학생회에서 그를 초청한 일이 있었다. 이것이 대학신문에 예고되고 『알리바마의 그리스도』라는 그의 시가 미리 게재되자 학교 당국과 그 마을 보안관은 격노해서 휴즈가 나타나면 짐 크라우에 따라 체포하겠다고 공표했다. 휴즈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곳에 갔다. 대학생들은 캠퍼스에서의 시 낭독회가 불가능해지자 멕시코인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을 빌려 이를 개최했다. 이 사실은 각 신문에 보도, 남부의 흑인들은 사자굴에 들어갔다 온 선지자 다니엘 이라고 그를 칭송했다. 또 Tuskegee란 마을에서의 시 낭독회는 흑백문제를 언급한 시는 절대로 낭독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백인 보안관과 백인 유지들의 감시 하에 개최되었는데 이 자리에 등석한 흑인들은 한 명의 어린애를 제외하고는 시종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감은 채였다. 백인들의 보복이 두려웠던 것이다.그의 시 낭독회는 2년간 남부에서 서부로 이어지면서 계속되었고, 이로부터 그는 시뿐만 아니라 여러 문학장르를 통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아직 웃음은 있다』라는 소설은 1년 반의 각고 속에 이루어졌고, 그리고 흑인 전용 극장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미국 전국을 일주하며 동지들을 규합하고 희곡『Millato』를 공연했다. 한편 그는 외국여행을 계속, 중앙 아시아·일본·상해까지 순회했고, 스페인 내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이에 참가한 흑인들을 취재 보도하기 위한 종군기자로 그곳 사회에 갔다.랭스턴 휴즈의 후기 인생은 더욱 다양한 문화활동으로 점철돼 있지만 그의 자세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의 시는 미국문학 비평계의 정통파들에 의해 오래도록 거부돼 왔으며, 그의 가장 대표적인 걸작도 아카데믹한 비평가들이 좋아하는 유형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그의 시가 갖고 있는 단순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학 비평가들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그를 외로운 시인으로 만들지 못했다.1960년대의 흑인 민권운동의 거센 파도 속에서 랭스턴 휴즈는 의연히 그의 진보적인 자세를 견지했다. 그는 1967년 5월 22일 뉴욕 할.
·이문열의 1. 들어가는 말이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제목이었다. 아마 중앙도서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 중 한 권이었으리라. 내가 이 제목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헤르만 헤세의 이 먼저였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여태껏 '이문열'이라는 작가의 작품은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나의 독서는 유독 내가 선호하는 몇 명 안 되는 작가들에게 치우쳐 있었고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잡이 식으로 읽었으며 주로 외국작품에 편향되어 있던 터였다.그러나 그런 나도 '이문열'이라는 이름은 자연스레 접할 수 있을 만큼, 그는 유명인 이었다. TV와 신문, 동네 서점에서도 그의 이름은 쉽게 볼 수 있었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도 그의 이름을 들어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명명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문열'이라는 거대작가가 뿜어내는 상업주의에 적기 않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외곬수마냥 그의 작품들은 손대지 않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건 일종의 고집이었고 얄팍한 자존심이었다. '나는 아니다. 나만은 아니다. 나는 다르다.' 라는 알량한 자존심이었다.그런 내게 [한국문학의 이해]는 이문열을 포함한 우리 작가들의 작품에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4월 초부터는 그들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어 나가고 있었다. 그 동안 번역서에서 느꼈던 답답함은 찾을 수가 없었고 난 점점 그들의 매력에 빠져 가고 있던 중이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아무런 기대도 사전 지식도 없이, 어쩌면 '이문열'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시작된 여행이었기에 힘겨웠던 만큼 더욱 값진 감동을 안겨다 주었다.2. 하구-안개와 갈대, 강진에서의 기억그 여행의 시작은 이러했다.흔히 나이가 그 기준이 되지만,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을 가리켜 특히 그걸 꽃다운 시절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세상 일이 그러하듯, 꽃답다는 것은 한번 그늘지고 시들기 시작하면 그만큼 더 처참하고 황폐하기 마련이다. 내가 열아홉 나이를 넘긴 강진(江盡)에서의 열 달 남짓이 바로 그러하였다. (P. 9)이 책의 주인공 '나'는 자신의 열아홉을 처참하고 황폐한 모습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의 배경으로 강진의 안개를 떠올린다. 방향성을 상실한 채 표류하는 '나'의 모습과 안개의 혼미한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지는 설정으로, 강진이라는 공간에 대한 효율적 인상화 과정이 무엇보다 탁월하게 뇌리에 남았다.'나'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목적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 지쳐 고향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그는 '서투른 어른들의 흉내나 북구(北歐)의 음울한 소설 나부랭이와 철학도 문학도 아닌 얼치기 저작물의 현학적인 감상 따위로 맞바꾼, 또래의 아이들은 이미 다 밟았거나 또는 다 밟아 갈, 정상적인 삶의 과정으로 돌아오기 위해' 고등학교 과정을 홀로 밟기 시작한다. 이 무렵의 '나'를 회상하기 위해 작가는 일기장 속에 끄적거린 낙서들을 자주 인용한다. 열아홉의 과장된 어법과 미문(美文) 취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 문장들은 그가 열아홉 고비를 넘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2년 동안이나 놓아 버린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것도 그랬고, 때마침 찾아온 병마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무엇은 그를 끊임없이 채찍질했고,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그는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에도 합격한다.나의 열아홉은 어떠했던가. 빠른 생일 때문에 또래 아이들보다 한 살 어리다는 것을 무슨 훈장처럼 달고 다니던 나는 열아홉에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은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우기 위해, 알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몸으로 흡수하듯 자연스레 흡수된 지식으로 성적을 받고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아무 생각 없이, 그 무엇도 개의치 않고 즐기고 웃고 떠들며 살아야 하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1학년 19살,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간의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한 맹목적인 질주로 자유에 목말라 있던 나는 대학생활의 시작과 함께 '새내기는 이래도 된다'는 식의 맹신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것이다. 대책 없는 사랑놀이와 책에 빠져 수업을 소홀히 하고, 스무 살의 주인공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술은 취하기 위해 마신다는 가당치 않은 생각을 가지고 대부분의 날들을 음주에 빠져지내기도 했다. 주인공에게도 나에게도 '대학 합격'은 방황의 마무리가 아니라, 젊은 날의 혼미하면서도 치열한 방황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던 셈이다. 1부 에서의 주인공의 치열한 열아홉은 열아홉을 이미 지나온 독자들을 그 시절의 기억 속으로 잡아끌고, 아직 열아홉을 경험하지 못한 독자들을 열아홉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으로 흥분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우리의 열아홉이었다.3. 우리 기쁜 젊은날-문학의 대지 위에 첫발을 내딛다대학 신입생이 된 '나'는 책에 대한 턱없는 갈망에 굶주린다. 갈망은 항상 더 큰 갈망을 낳기 마련. 무모하리만큼 열심히 읽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갈증은 더해 갔다. 게다가 날마다 똑같은 곳을 왔다갔다해야 하는 생활의 단조로움과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가정교사 노릇은 조금씩 그를 지치게 했으며, '가끔씩 유망한 학생들을 잡아먹는 무서운 병' 가난은 그를 피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해 보면, 힘들었던 시간이나 기억들이 오히려 삶의 큰 힘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그 역시 그런 피로와 가난들을 '언젠가 극복되고 말 젊은 날의 값진 체험'이라 생각하며 이겨낸다. 또한 그는 '거칠고 외진 세월의 길목'에서 그 쓰라림을 함께 나눌 벗들 - '김형'과 '하가'를 만난다.그들 사이에 오가는 사변적인 대화는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고작 2~3살 차이나는 나와 같은 또래의 대학생일텐데…. 왜 난 그들이 사유하는 그것들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세상을 향해, 나 자신을 행해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것인가? 그가 모든 것을 다 아는 바보라면 나는 세상도 모르고 나 자신도 모르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인 것이다. '정말 그 시절 학생들은 이런 생각과 이런 대화를 하며 살았을까?'하는 의문과 존경심이 내 마음을 가득 메웠다.'김형'의 이끌림으로 찾아간 문학 서클에서 그는 문학과 숙명적인 첫 대면을 하게 된다. 거기서 그는 그때까지 그를 괴롭혀 오던 피로도 잊고 한동안 문학 수업에 열중한다. 그러나 점차 문학에 대한 자신의 열정이 '비극적 결말이 명확한 짝사랑'은 아닐까 하는 회의에 빠져들고, 결국 문학 서클을 그만두게 된다. 그런 그에게 '김형'은 지금은 방황하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올 '어쩔 수 없는 그 대지의 사람'임을 강조한다.견딜 수 없게 된 객지생활의 피로와 단 한 번의 사랑놀이, 그리고 가난은 그가 속절없이 영락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늦은 귀가와 술 때문에 가정 교사로 입주해 있던 집에서 번번이 쫓겨나고 할 수 없이 구해 든 하숙집에서조차 돈을 못내 쫓겨 나와 그는 그야말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구원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철학이나 문학과 같은 값비싼 지식은 '나'에게 오히려 세계에 대한 관념적인 시선만을 안겨다 줄뿐이었다. '나'는 우연히 마주치게 된 어린 신문팔이 소년과의 하룻밤을 통해 그동안의 문학과 철학에 대한 사색과 독서가 한갓 관념이었음을 깨닫는다. 무섭고 섬짓하면서도 진실에 가장 근접한 모습은 가난과 한판 당당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신문팔이 소년에게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그렇게 '나'를 관념으로부터 쫓아내 황량한 여행에 보낼 전주곡을 연주한 것이다.그 여름의 끝, 문학과 '나'를 이어주는 끈이었던 '김형'이 갑작스런 사고로 사망한다. 그때부터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슬픔에 빠져들고, 그것은 또 까닭 모를 허무와 절망으로 번져 갔다. 무언가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이제 그만 떠나야겠다'고 마음먹는다.보다 확실하게 알기 위해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릴 것. 더욱 큰 가치를 붙들기 위해 이미 접근해 있는 모든 가치로부터 떠날 것. 미래의 더 큰 사랑을 위해 현재 자질구레한 애착에서 용감히 벗어날 것. (P. 192)출발에 즈음하여 새로 마련한 그의 두툼한 수첩의 맨 앞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문열의 '나'에게 묻고 싶다.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는지. 이미 접근해 있는 모든 가치로부터 떠나면 더 큰 가치를 붙들 수 있게 되는지. 자질구레한 애착에서 용감히 벗어나면 미래의 더 큰 사랑을 얻을 수 있게 되는지. 아마도 나의 스무 살은 그런 큰 모험을 할 만큼 담이 크지 못해서 그리도 시리고 아팠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허탈하기도 하지만 그때의 그 진지함은 지금의 어떤 철학적인 사색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었다. 그 때는 커다란 아픔이요, 시련으로만 느껴졌을 일들이 이제 와 아득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바로 젊은 날의 특권이기 때문이 아닐까.4. 그해 겨울-절망,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도시와 학교를 떠나 '나'는 광부가 될 작정으로 강원도로 간다. 그러나 개인탄광의 갱에 들어간 첫날 막장이 내려앉아 두 사람이 묻히는 것을 보고 그 날로 광부노릇을 단념하고 만다. 그 뒤 '나'는 어부가 될 마음으로 동해안의 조그만 어촌으로 흘러 들어가지만 그것조차 여의찮아 무턱대고 내륙으로 걸어서 도착하게 된 곳이 바로 그 해 겨울 그가 방우로 지내게 되는 여관 겸 술집이다. 하지만 채 두 달이 되기도 전에 '나'는 '깊은 동면에 빠진 의식을 자극하는 두 개의 상반된 목소리'를 듣게 되고 '나'의 길은 산촌에서 바다로 향하는 200여 리로 이어진다.
·김원일의 1. 들어가는 말 다음으로 읽게 된 책은 김원일의 이었다. 이렇게 유명한 작품을 이제야 읽다니 부끄러운 마음도 없지 않지만 어느 작가의 말처럼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작품인 것이다. 어느 작품이든 만나게 되는 시기가 있는 듯 하다. 사 놓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무료한 일요일 오후 들쳐 보게 된다면 바로 그 날이 내가 그 작품과 만나는 최초의 날인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같은 경우에는 만날 뻔한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2년쯤 전에 있었더랬다. 대학 새내기 시절,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는 내게 주어진 -정녕 요술방망이인들 그 쓰임새를 모르면 한낱 나무토막에 지나지 않을- "자유"라는 요술방망이는 그저 게으름과 무책임의 방편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아니었다. "자유"가 주는 달콤함에 빠져 있던 덧없는 날들 중에 하루였으리라. 무슨 수업이었나 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교수님께서 요즘같이 물질이 풍부한 시대에 고생과 배고픔을 모르고 자라난 우리 세대가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며 이 책 이야기를 꺼내셨고 그 말씀을 하시던 교수님의 얼굴에 어린 아련한 회상의 흔적 때문이었을까 그 뒤로 이 책이 내내 마음에 남았었다. 그러던 중 나는 이번 기회를 빌어 드디어 이 작품과 만나게 되었다.소설 은 전후 경남 진영에서 대구로 올라온 김원일의 가족이 대구시 약전골목에 있는 다세대 한옥 집에서 겪은 일을 담은 작가의 자전적 기록이다. 작가의 분신으로 보이는 길남이라는 소년이 바라본 한국전쟁 이후의 세태를 담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자신이 될 수도 있고 집안 아저씨들의 얘기일 수도 있으며 또, 우리 아버지들의 얘기일 수도 있는 내용으로, 힘들고 고단했던 50년대 한국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작가는 그 시절을 뚫고 지나 온 사람들의 아련한 향수를 조심스레 되짚어 가며 6·25를 겪었을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슬프고도 흥미로운 추억 한 보따리를 펼쳐 놓는다.그 동안 나에게는 6·25 소설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 같이 무겁고 우울하며 음침한, 그런 종류의 작품들에 나는 어떤 부채의식마저 느끼며 시달려 오지 않았나 싶다. 중고교의 주입식 교육에서 이미 입시적으로 문학을 배워 왔던 책임도 있을 것이다. 유희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학문으로서의, 이론으로서의 문학은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너무도 많은 한국 중단편 소설들이 모두 전후시대의 산물들이었고 피폐한 현실과 이데올로기의 혼란을 그리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왜 우리네 역사는 이렇게 칙칙한 과거의 기억들로 점철되어 있는지 답답했다. 나의 부모님들이 막 태어나기 시작했을 무렵의 일들이니 더욱이 내게 그런 과거들은 실감날 리 없었다. 그래서 가끔 배부른 투정이라도 부릴라 치면 부모님은 그 시절의 일화들을 들려주며 지금 우리 세대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일깨워 주곤 하셨다. 추억이란 비록 남의 것이라 해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듯 하다. 가끔 아버지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지루한 드라마보다도 훨씬 실감나고, 즐거움과 신기함을 주는 것처럼 이 책의 내용은 아버지의 추억담과 닮아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잔뜩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마당 깊은 집 대문 틈 사이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곳에는 간난했던 시절의 허기짐과 추위,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알 수 없던 혼란스러움과 이 악물고 버텨야 했던 시간들의 아픔과 눈물이 고스란히 서려 있었다.2. 마당 깊은 집 엿보기휴머니즘의 극치라고 할까…. 단지 마당 깊은 집에 수많은 가정이 함께 살면서 어울리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는 모습만이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주인공 길남이의 시선이 이들을 객관적이지만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음에 휴머니티를 느끼게 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의 여러 가지 모습들은 그 시대의 실상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 남편을 잃고 주렁주렁 딸린 자식들을 건사하기 위해 악바리처럼 사는 어머니는 마치 여전사와도 같은 면모마저 비쳤고, 바느질을 하면서 장남에게 스스로 자기의 일을 찾아 살아가야 한다는 생존법칙을 가르치며 때로는 마당 깊은 집에 남기 위해 수를 쓰기도 하는 모습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써의 타락이 아니라 서민들의 소소한 일상사를 보는 듯해 피식 하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새침때기같은 경기댁과 억척스러운 평양댁, 상이군인인 지아비에게 순종하는 준호엄마, 그리고 바깥채의 가게에서 자식 하나와 사는 복술 엄마, 이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동시에 '나만이라도….' 라는 심정을 가진 채 이기심을 내비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그들의 이기를 보면서도 욕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이기에 당연하다는 것을 아는 자로서의 연민 같은 것이리라. 등장인물들은 자체로 인간인데 그것은 마당 깊은 집에 세 들어 사는 집이든 주인집이든 다르지 않다. 인간의 여러 군상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 바로 마당 깊은 집인 것이다.마당 깊은 집의 스물두 명의 인물들 가운데 가장 눈이 간 사람은 준호아버지였다. 그는 북에서 교사를 하다가 한국전쟁이 난 이후에 전향을 한 상이군인으로 이 사람에게서 나는 김원일의 휴머니즘, 그러니까 공산주의든 자유주의든 "인간"이 가장 우선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접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을 옮긴다면, 바로 여기다. 평양댁의 첫째 아들로,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한 정태씨와의 대화 중에서, 준호 아버지가 말하기를,"최형 같은 반골은 어느 체제든 쉽게 순응하기 힘들겠지만,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자유의 소중함을 깨워주기 위해서두, 또 총을 들고 직접 싸워보지 않은 최형 같은 이를 위해서두 반공 정신은 필요하우. 무슨 말인구 하니, 이 땅에서 전쟁과 같은 폭력 혁명을 신봉하는 자들은 무조건 사라져야 한다구 봅니다. 우리 전우가 목숨 바쳐가며 어떻게 지켜온 자유입니까. 아직 참다운 자유주의를 제대로 실행해보지 못해 정치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남한으 자유주의는 문제점이 없지두 않지만 말입니다." (P. 95)반공이든 공산이든, 그것이 피어나는데 사람의 목숨을 필요로 한다면 그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찬성이다. 한낱 사상을 신봉하고자 희생되어진 인간의 목숨에 당위성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원일이 보는 참다운 자유주의란 무엇인가.소설의 앞부분에서, 우기에 내린 많은 비로 마당 깊은 집에 물이 차게 된다. 그러자 준호아버지를 필두로 해서 세를 든 집과 세를 준 집의 사람들이 한데 힘을 모아 물을 퍼내는데, 이것이 바로 김원일이 말하고자 하는 참다운 자유주의가 아닐까. 물론 다들 힘들여 협동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서지 않는 부르주아도 있고, 몸을 사리는 프롤레타리아(경기댁)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함께 힘을 모아 주는 부르주아(짱구형, 똘똘이형)도 있고, 몸을 바쳐 같이 일하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가려는 프롤레타리아도 있다. 이처럼 계급끼리 뭉쳐서 누구는 빛에서, 누구는 어둠 속에서 저마다의 목표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함께 어울려 같은 목표를 위해 일하는 세상이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참다운 자유주의의 모습인 것이다.3. 마당 깊은 집 그리기공간은 얼마나 많은 기억을 품고 있는가. 빼곡이 들어찬 아파트 방 칸간마다 불이 꺼지면 이불 속 숨겨 둔 저마다의 고민들이 꿈처럼 녹아 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21년의 내 인생 중 16년 동안의 추억과 고민이 녹아 있는 곳이다. 15년이 넘게 살았으니 나를 둘러 싼 모든 것이 지겹게 느껴질 것 같을 테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언제나 상반된 것은 동시에 존재하듯이 난 여전히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내가 낯익다고 느꼈던 그것들에 대해서 기분 좋은 낯설음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어릴 적 오빠와 뛰어 놀던 아파트 산책로의 한 길가는 이제는 수풀로 우거져 더 이상 뛰어 놀 수 없지만 여덟 살의 나는 언제나 그 곳에서 해맑은 모습으로 뛰어 놀고 있을 것이다.이처럼 길남이에게도 마당 깊은 집에서의 1년은 짙은 어둠만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속에 서린 자잘한 재미와 일상은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항상 주머니에 넣고 펼쳐 보기라도 한 것처럼 선명히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물론 성인이 될 때까지 주인공은 그 기억을 곱씹으며 반추하고 또 반추해서, 다시 생각하여도 담담히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래서 동생의 죽음과 동일시되는 아픔의 기억을 다시 한번 말 할 수 있을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의 삶 주변에 놓여졌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을 터이다.마당 깊은 집…. 고층 아파트가 점유한 서울이지만 한 때 비 오면 물 빼기 바쁘고 눈 오면 연탄불 꺼질까 애태우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하루 세끼 해결이 수능 300점 넘기보다 어려웠던 50년대, 다세대 주택이 아니건만 한 집에는 여러 가구가 뭉쳐 살았었고, 숟가락이 몇 개인지 손바닥 뒤집듯 훤히 보이는 뻔한 살림살이, 그 뻔한 살림에도 서로 재고 견제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렇게 마당 깊은 집에 사는 실향민들의 삶은 치열함 그 자체였다.전쟁이 마당 깊은 집 식구들에게, 동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남긴 상흔은 컸다. 전쟁과 전쟁이 낳은 부조리 속에서 힘 없는 자들은 더 고통 받고 멸시 받아야만 했다. 그 가운데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떠나기를 갈망했던 젊음(길남)이 있었고, 타고난 생명력으로 바지런하게 일어선 젊음(한주)도 있었다. 그리고 상처 입음을 지독히 저주한 끝에 외눈의 삐딱이가 된 젊음(정태)도 있었다.
플롯 [ plot ]소설 ·희곡 ·각본 등의 이야기를 형성하는 줄거리 또는 줄거리에 나오는 여러 사건을 하나로 짜는 작업과 그 수법.간단하게 ‘줄거리’라고 하기도 한다. 이야기가 시간적 경과에 의한 줄거리의 전개를 뜻하는 것이라면 플롯은 작품의 주제를 증명하는 데 관련된 등장인물 등의 내적(內的) 인과관계를 추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플롯을 비극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 이래 작품의 ‘묘사’에 선행하는 극적 효과의 중요한 지주(支柱)로 삼아왔다.소설(小說)작자가 자기의 눈을 통해 본 현실적 인생을 구성적(構成的)으로 서술한 창조적 이야기.형식별 길이로 구분하면 콩트·단편소설·중편소설·장편소설로 나눌 수 있다.【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이란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옛날부터 쓰이던 뜻이요 다른 하나는 개화 이후 서양의 근대문학을 받아들이면서 영어의 novel이나 불어(또는 독어)의 roman을 옮긴 말로서 적용된 소설이란 말이 그것이다. 전자의 예로는 《춘향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등을 고대소설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그것이요, 후자의 예로는 이광수의 《무정》, 김동인의 《감자》, 염상섭의 《삼대(三代)》 등을 소설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그것이다. 소설이란 말이 담문학(譚文學)이란 뜻으로 처음 쓰인 근원을 살펴보면, 한글 소설은 한문 글자 ‘小說’의 음역(音譯)이요, 한문 글자 ‘小說’은 중국 고대의 한서(漢書)에서 처음 쓰였다고 한다.곧 “소설가란 대개 패관(稗官)에서 나왔다. 거리나 골목에 떠도는 이야기를 길에서 듣고 길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지어낸 것이다(小說家者蓋出於稗官 街談巷說 道聽途說者之所造也)”(漢書藝文志第十七卷). 그러니까 중국 고대인 한(漢)나라 때, 나라의 정사(政事)를 맡은 왕이 세태민정(世態民情)을 살피기 위해서 패관이라는 벼슬을 두고,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을 채록하게 했는데, 소설이란 말은 패관이라는 관제(官制)와는 상관 없이,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들은 대로 꾸며내거나 문장으 갖추어야 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소설의 특성-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이다. 현실의 사건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허구적으로 꾸며낸 이야기이다. 그래서 소설을 라고 한다.- 소설은 한편으로 진실을 추구한다. 현실에 바탕을 둔,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진실성이 있다. 통일성이 있고, 필연적인 인과 관계에 따른 사건 전개에 의해서 진실성이 살아난다.- 소설은 인생을 표현한다. 인간 존재를 탐색하고, 삶의 진실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즐거움과 교훈적 의미를 준다소설의 3요소① 구성(사건의 인과적 질서) : 인물, 사건, 배경 의 3요소② 문체(개성적 언어의 특색)③ 주제(작품 속에 용해된 의미, 사상)●구성(構成, plot)-소설에서의 : 주제의 효과적 표현을 위한 사건의 인과적 질서1. 개념 : 구성이란 어떤 사물의 짜임새, 틀을 말한다. 따라서 소설의 구성은 작품의 짜임새를 말하며 흔히 '플롯'이라고도 한다. 소설에는 일정한 이야기(스토리)가 있고, 그 이야기는 인과적 질서에 의한 일정한 틀에 의해 전개된다.* 현실의 줄거리(story) :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건의 순차적 배열* 소설적 줄거리(plot) : 작가가 재구성한 사건의 인과적(因果的), 미적 질서---N. 프라이(Frye)는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 플롯 : 차창을 통해 시선을 집중시키는 나무들과 집들(the trees and houses that we focus our eyes on throught a train windows). 스토리 : 앞마당에 내던져진 잡포와 돌들(the weeds and stones that rush by in the foreground)'소설의 양상'(Aspects of the Novel) --- 포스트(E. M. Forster)의 견해스토리는 시간적 순서대로 배열된 사건의 서술이다.플롯도 사건의 서술이지만 인과(因果) 관계에 중점을 둔다.'왕이 죽고 왕비가 죽었다.'라고 하면 스토리이지만, '왕이 죽자 다.( 일제시대 배경 :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 )④ 배경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에서 '좁은 방' : 폐쇄된 공간, 탈출행동의 유발 )⑤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의 '조마이섬' : 소외 지역민의 삶의 고발 )⑥ 독자로 하여금 현장감을 지니도록 한다.■ 배경의 종류-자연적 배경(시간적, 공간적)1) 사건 발생의 구체적 시간, 공간적 배경2) 작품의 분위기 형성에 이바지.3) 주제를 상징하기도 함.-시대.사회적 배경소설에 반영된 현실의 시대,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다. 소설 속의 인간도 사회 속에 있는 인간이므로 통시적인 시대성과 공시적인 사회성이 나타나야 한다. 특히 역사적 사회가 부각되어야 한다. 또한 소설의 주제를 부각시키고, 등장 인물의 성격과 심리, 플롯의 전개, 소설적인 분위기 조성에 맞도록 꾸며 가야 한다.-심리적 배경 : '의식의 흐름', '내적 독백' 등을 꾀하는 심리주의 소설에 등장하는 배경이다.* 논리를 초월하는 공간 영역을 교묘히 배합한 '만화경적 배경'을 가리킴.-상황적 배경 : 실존주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배경으로서 실존적인 상황을 암시하고 상징하는 배경을 가리킨다. 이 경우 배경이 곧 주제가 된다.●시점(視點, point of view, viewpoint)1. 전지적 작가 시점(全知的作家視點)- 이광수 , 김동인 , 현진건 , 황석영 등 다수2. 1인칭 관찰자 시점 - 김동리 , 주요섭 , 김정한 , 윤흥길 , 이문열 , 김동리 등3. 복합 시점- 조세희 , 장용학 전영택 , 최인훈 ※ 하근찬 시점의 혼용이 작품에는 여러 가지 시점이 혼합되어 나타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 사용되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작가 관찰자 시점과 1인칭 관찰자 시점이 동시에 사용되기도 한다. 주인공 박만도의 성격이 작품에 말과 동작으로 제시되어 독자에게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는 것은 작가 관찰자 시점에서 서술된 경우이다. 그리고 작중화자가 인물들의 내면 심리 세계에 대해서까지 서술의 범위를 넓히고 있는 《한중록(閑中錄)》 등 궁중 사건을 담은 실화도 사실의 기록에 지나지 않으니 소설이라 하기 어렵다.고대소설은 고전문학에서 양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여, 현재까지 번역을 포함하여 약 530여 종의 작품이 확인되어 있다. 같은 소설에도 여러 이본(異本)이 있는데, 《춘향전(春香傳)》 《임진록(壬辰錄)》의 이본들처럼 독자성이 강하여 독립적 작품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도 있다. 고대소설 중에서 가장 방대한 작품은 3부작으로 된 《명주보월빙(明珠寶月聘)》으로, 현재 필사본 235책이 전한다.3. 작가와 독자고대소설의 작가는 한 계층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아, 김만중(金萬重)과 같은 집권층의 양반도 있고, 김시습·허균(許筠)·박지원(朴趾源)처럼 집권층에서 배척된 양반도 있다. 전자는 기존 질서나 이념을 긍정하고 이에 융합하려는 방향의 작품을 지었고, 후자는 기존 질서나 이념을 부정하고 이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이념을 담은 작품을 지었다. 소설 창작은 품위 없는 일이라 생각되었으니만큼 지체가 높지 못한 층에서 많은 작가가 나왔으며 따라서 그 작가가 알려지지 않은 소설들이 대부분이다.몰락한 양반 또는 평민 출신의 작가가 상업적인 보급자와 관련을 가지고, 어느 정도 직업적으로 소설을 썼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런 배경에서 나타난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상업적인 보급자는 전기수(傳奇)·세책(貰冊)집 경영자·방각본(坊刻本) 출판업자의 세 형태이다. 소설의 독자도 어느 한 계층에 한정되지 않아, 양반의 부녀자들과 평민층도 소설에 관심을 가졌다.4. 작품의 형식고대소설은 주인공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사건을 차례대로 서술하는 일대기소설(一代記小說)의 형식이 대부분이다. 《홍길동전》에서 시작되는 이런 형식은 ‘영웅의 일생’이라는 전승적 유형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한편, 《춘향전》처럼 주인공의 일생 중 어느 한 시기, 특히 청춘시절만 다룬 것도 있고, 《금오신화》처럼 한 시기의 어떤 사건만 다루는 소설도 있다. 또 《구운몽(九雲夢)》처럼 주인공이 태어나기 전육의(六義)가 있는데 그 하나를 풍(風)이라 한다. 상(上)으로써 하(下)를 풍화(風化)하고 하로써 상을 풍자(風刺)한다.…이를 말하는 자 죄 없으며 이를 듣는 자 훈계로 삼을 가치가 있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것을 후세 사람들이 한마디로 풍자(諷刺)라고 표현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라틴어의 satura(원의는 매우 혼잡함)에서 나온 영어의 새타이어(satire)를 번역한 말을 이에 해당시켜서 쓴다.본래 시의 한 형식이었으나 널리 산문 쪽에서도 발달하여 풍자소설 또는 풍자문학 등의 호칭이 생겼다. 또 전편이 풍자를 주로 한 작품은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 풍자 정신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문학 이외의 회화 ·영화 등에도 풍자적인 작품을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리스토파네스 등의 그리스 희극(喜劇)에서 이미 왕성한 풍자 정신을 볼 수 있었고, 고대 로마의 루킬리우스, 호라티우스, 주베날리스 등 시인에 이르러 풍자시의 장르가 확립되었다. 이후 풍자문학을 쓴 작가는 많으나, 프랑스에서 라블레, 부알로, 볼테르, 영국에서 양(兩) 새뮤얼 버틀러, 스위프트, 버너드 쇼, 헉슬리, 오웰 등, 독일에서 J.파울, 하이네, 러시아에서 고골리, 시체드린 등은 그 대표적 작가라고 할 것이다. 그 밖에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몰리에르 등의 작가도 풍자적 수법을 크게 활용한 사람들이다.한국에서는 1930년대에 이 방면의 작품이 나왔는데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이기영(李箕永)의 《인간수업》이다. 주인공은 서재에서 인간수업을 하겠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며 자기가 철학서적에서 얻은 것을 사람들에게 설교한다. 그러나 이론보다 실제의 농촌생활에서 인간을 배운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이 소설은 인텔리의 비현실적인 사고를 풍자하였다. 이 밖에도 채만식(蔡萬植)은 《사라지는 그림자》 《레디 메이드 인생》 《인텔리와 빈대떡》 등의 우수한 풍자소설을 썼으며 김유정(金裕貞)의 《금따는 콩밭》, 계용묵(桂鎔默)의 《백치 아다다》 등도 이 부류에 넣을 수 있는 작품이다. 풍자는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