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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 열사 문익환 독서감상문
    - 세 번의 인연으로 당신을 생각해 봅니다.--『문익환 평전』을 읽고-내가 살아가면 맞이하는 매해, 매 순간 중 소중하고 귀중하지 않을 순간이 없을 테지만 내게 2002년과 2006년은 참으로 특별한 해였다.2002년 난 대학생이 되었다. 아직 겨울기운이 가시지 않는 캠퍼스는 등록금인상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로 가득 메워져있었고 그것이 내가 본 운동권의 첫 모습이었다. 그 해 여름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거리는 온통 축제분위기로 가득했었다. 저마다 붉은 티에 곳곳에선 응원가가 울려 퍼지고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은 거리거리마다 사람들로 가득 찼었다. 그런데 왜인지 나에겐 그것이 축제로 다가오지가 않았다. 그 축제에 나는 빠져있었다. 그렇게 2002년이 저무는 듯 했으나 2002년은 그리 조용히 내게서 멀어지지 않았다. 그해 가을과 겨울 난 우연히도 미선이 효순이를 추모하는 촛불집회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난 비로소 그 곳에서 축제를 만났다. 그 곳은 슬픔과 애도가 넘치는 아주 조용한 현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에서 만나는 촛불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마음 하나가 참으로 축제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적어도 나에게 그 장은 축제였다.그 경험으로 인해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운동, 혁명, 열사 등과 같은 단어에 관심을 가졌다. 내 스무 살은 그렇게 그들을 만나면서 저물고 있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들은 이름이 문익환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그 시점에서의 문익환은 그저 재야인사에 지나지 않았다. 특별할 것 없는 더욱이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문익환이란 존재는 조금 더 멀게만 느껴졌다. 나와 문익환 사이를 멀어지게 했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문익환과는 전혀 상관없는 기독교의 기복신앙이라는 것을 나는 비로소 이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으니 그 역시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이 아마 나와 문익환의 첫 인연이었으리라.그 후에도 분명 나는 문익환과의 인연을 쥐고 있었던 것 같다. 문호근의 책이나 장준하, 윤동주 등등으로 이어진 내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그것은 계속 이어져 온 인연이었다. 허나 내가 그와의 인연의 두 번째로 꼽는 건 2006년이다.2006년 5월 나는 남북대학생대표자회의에 남한 대학생 대표자의 자격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이 일은 다시 생각해보더라도 내 생애 다시는 있을 수 없는 감격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북한 대학생들과 등산을 하고 그네들과 인사를 나누고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가슴 한 구석이 아련해짐을 느꼈다. 가슴 한 구석이 계속 바늘로 찌르듯이 아팠다. 그리고 그들과 헤어질 때 다시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그리고 왠지 모를 벅참에 나도 모르게 펑펑 울었었다. 그 때가 처음이었다. 통일이 민족이 그저 공허한 이야기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오고가는 이론이 아니라 내 가슴으로 느껴지고 내 가슴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것임을 내가 안 것이 그 때가 처음이었다.그 경험으로 인해 나는 다시 문익환과의 인연의 고리를 찾았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우연히 문익환이 이전에 방북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의 방북에 대한 글들을 읽어보는 기회가 생겼다. 그 그들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통일에 대해 생각을 잡았고, 그동안 내가 통일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문익환의 방북 모습은 분명 가슴 절절한 한민족의 염원이 잘 그려진 모습이었다. 글을 읽으며 장면을 떠올리면 누구 나다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목한 부분은 문익환이 가지고 있던 통일의 방법, 통일의 체제 등에 대한 부분이었다. 2006년 금강산에서 가진 대표자모임이 나에게 가슴으로 통일을 해야 하는 것임을 알려주었다면, 문익환의 이야기는 머리로도 통일을 고민해야 하는 것임을 알려주었다. 그것이 3단계 통일론이든, 연방체제이든 우리는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여야 하는 것이다.분명 이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였다. 제도하의 교육에서 우리는 통일에도 다양한 모델이 있고 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져야함을 배우지 못한다. 늘 통일의 모델은 하나로 상정되어있고, 통일을 막연히 해야 한다는 식으로 모든 교과서는 끝맺음을 한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는 그 누구도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이는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통일은 분명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과제이기에 우리의 성찰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나는 그의 통일론을 보면서야 비로소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기 시작했다. 그와의 인연은 이제 통일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 것이다.그리고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야 나는 비로소 그의 삶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꽤 많은 페이지의 책이지만 읽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쉽게 읽어내려 갈 수도 있을 이 책을 다 읽는데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 일주일 동안 나는 그의 삶 구석구석을 음미하고 되새기고 마음에 담아 두기위해 부단히도 노력하였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유목민이라 칭한 것처럼 그의 유년시절은 북간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드넓은 광야와 혹독한 자연환경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친화력 있는 공동체. 이 중 그 무엇도 내가 경험해 본 것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부단히도 이 장면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려했지만 잘 떠올려지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 이 장면은 넓은 평야에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윤동주, 송몽규, 문익환의 모습으로만 그려진다. 그저 아름다운 그런 시기로만 내게는 다가온다. 실제로 그 시기의 그의 삶은 참으로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랬기에 그는 늘 북간도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그의 청년시절도 나에게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나는 본디 신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에 그의 신학에 대한 열정이나 신학에 대한 사고들은 상당부분 내가 공감을 하기에는 어려운 주제들이었다. 그리고 청년시기의 그는 매우 고귀한 존재인 것처럼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의 청년시절의 신학으로부터 깨달은 것은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기독교와는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기독교는 강압과 강요였다. 그것은 기독교신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견고한 벽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기독교는 울타리 없는 공간 같았다. 그의 기독교는 세상과 소통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기독교신자가 아니어도 넘나들이가 가능한 그런 공간으로 느껴진다. 아마 이 역시 그가 세상에 대한 열린 시각과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 민족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나 역시 그의 56세 이후의 삶의 행적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은 아마도 그 나마 내가 조금이라고 공감할 부분이 여기에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사실 작가는 문익환이 민중에게로 민주화운동으로 뛰어들게 된 것은 새삼스럽거나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준비되어 온 과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허나 나에게는 그것이 그리 보이진 않았다. 나에게 그것은 갑자기 일어난 문익환이란 사람의 일생에서의 큰 변혁이었다. 물론 그 씨앗은 그가 가지고 있었겠지만 그것이 폭발적인 힘을 보임은 그야 말로 변혁이었다. 난 그 후의 그의 행적들을 읽으면서 부끄럽기도 했고, 참 많이 아프기도 했다.
    독후감/창작| 2009.07.30| 3페이지| 1,000원| 조회(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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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열사 독서감상문 박종철
    * 당신들과 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 나는 아직도 눈을 감지 않았습니다.버스를 타고 산복도로에서 내렸다.길게 이어진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오른다.닫힌 철문 옆 경비실 작은 창문을 열고 "안녕하세요, 박종철 기념비 보러 왔습니다. 어디 있지요." "그러세요. 저기 운동장 지나 흰색 승용차 뒤에 있습니다."작은 화분들로 둘러싸인 그곳에 박종철 기념비는 있었다. 그의 모교인 혜광고 건물을 뒤로 하고서 학교 건물 창가로 가까이 있다.난 다가가서 비문을 읽는다.'박종철을 생각하며 이 교정에서 함께 미래를 꿈꾸었던 벗들. 또 우리의 뒤를 이어오는 후배들. 당신들과 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 나는 아직도 눈을 감지 않았습니다.'가파른 계단을 올라오고 발걸음을 서두른 탓에 숨 가쁜 이유도 있지만 비문에 적힌 글 중 ‘나는 아직도 눈을 감지 않았습니다.’라는 구절이 자꾸만 목에 걸려 밭은기침 소리를 내게 한다. 오래도록 심호흡을 하며 서있었다.다시 대면한 '시대의 불꽃 박종철'은 갑자기 들이 닥치는 봄이 감당이 안 되듯이 처음엔 버겁고 두려웠다.독한 냄새로 영역 표시하는 동물처럼 나 역시 높은 철조망으로 나만의 울타리를 쳐놓고 살고 있으니, 그래서 나와 가족외의 타인과 세상일은 그저 무덤덤한 객체일 뿐이었다.독한 냄새로 영역 표시했던 바깥세상과의 경계선은 붉은 핏자국처럼 선명하다.혼자가 아니라는 뜨거운 마음으로 서로를 위무하며 가슴 뜨거웠던 80년대 그 시대의 기억에 대해 치매라도 걸린 듯 매정하게 잊고 산 내게 박종철 열사와의 오랜만의 대면은 나의 위선과 어중간한 정치적 중립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을 요구하는 것 같아 불편한 자리에 앉은 듯 속이 울렁거렸다.'세상사는 게 영 만만치 않아'라고 일상의 불만을 비명처럼 내지른 내가 초라하고 비겁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20년 전 그 굴곡 많은 시절의 일을 떠올린다는 것 불편하고 고통스럽다.학교를 휴학하고 1년 동안 신발공장에서 핸드 그라인더 공으로 일하면서 공장 밖의 학교 소식엔 되도록 입과 귀를 막고 살았다. 공장 안은 공장 밖보다 더 내게 절박했다. 당장 난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어야 했다. 그래야 복학할 수 있기에.1987년 등록금을 내고 복학한 학교는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 용광로의 중심에 박종철 열사가 있었다. 신발 공장에서 잔업과 특근을 견뎌내던 내 몸이 매일 같이 이어지는 가투와 집회에 지칠 정도로 87년은 유난히 뜨거웠다. 뜨거움은 6월로 이어지고 무신정권을 이은 적자인 그의 항복 선언이 곧 우리 모두의 승리인 6월 항쟁이었다.2007년 오늘에 있어 박종철 열사는 내게 무슨 의미로 다가오는지. 다시 대면하는 그는 내게 왜 이리 부담감을 주는지. 가투의 현장까지 오셔서 너만은 안 된다. 2대 독자인 내가 잡혀가거나 박종철, 이한열처럼 죽으면 아버지 없이 너만 바라보고 살아온 이 엄마는 못산다고 내 손목을 붙잡던 어머니의 그 이끌림에 가투 현장을 벗어나던 그때의 내 심정만큼이나 부끄러운 속앓이를 하게 한다.후배에게 보낸 편지 중 가장 착한 사람만이 가장 강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 난 책을 옆으로 밀쳐두고 한참동안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자기가 먹지도 않은 설거지를 묵묵히 남아서 하고, 부모님이 보내주신 새외투를 경찰서 유치장에서 풀려나는 친구에게 건네던, 후배 면회 가서 덧버선에 내의, 신발까지 넣어주던 그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장 강한 시대의 불꽃이다.진정 낮은 곳에 섰을 때 가장 순결한 눈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그가 85년 여름 일당 3500원을 받고 한 공활을 통해 그리고 농민들과 함께 한 농활을 통해 노동자와 농민을 향한 가장 순결한 눈을 가질 수 있었듯이.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는 따뜻함은 그저 혼자만의 독차지, 오직 득과 실로만 세상을 보는 혼자만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과의 아낌없는 나눔과 동참이란 모두의 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공활과 농활을 통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순결한 눈을 가진 그였기에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실천 앞에서 더욱더 당당하지 않았을까.혼자 꿈을 꾸면 몽상에 불과하지만 함께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그때 그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한 꿈을 함께 꾸고 실천을 통해 현실이 되게 하는데 소중한 밑거름이 된 것이다.'혼자만의 꿈'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산 그의 짧은 삶은 오히려 더 뜨겁다.아들을 가슴에 묻으며 '철아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란 열사의 아버님의 독백을 책 속에서 읽으며 맨몸뚱이에 찬 물을 뒤집어 쓴 듯 엄청난 한기가 몰려왔다.내 몸 밑천 삼아 가난과 싸워 하나라도 더 챙겨야 한다는 처절한 삶의 진실 속에는 오직 득과 실로만 판단한 편협하고 이기적인 나만의 꿈, 나만의 시선이 있을 뿐이었다.나이 들면서 무너지는 체형의 둥그스름한 그 모호한 선처럼 대학생 때의 꿈은 이제 지겨운 밥벌이를 면하기만을 바라는 꿈으로 변질되어 버렸다.뜨겁고 치열했지만 함께 해서 따스하고 뭉클했던 80년대의 흔적은 지나온 시간만큼 빠르게 지워지고 있다. 그리고 지워졌던 20년 전 기억을 대면하는 박종철 열사를 통해 다시 생생하게 복원하고 있다.그 날의 열정도, 그 날의 희망도, 그 날의 뚝심도. 이제 더 이상 순결하지도 더 이상 치열하지도 않다.가투 현장에 와서 내 손목을 붙잡으신 어머니를 따라 나선 그 당시의 내 모습은 떠올리기 싫은 비겁한 기억이다.스물한 살 그가 치열하게 당당히 산 삶보다 난 곱빼기로 이 땅에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내게 운동은 언제부턴가 낯선 단어이고 투쟁은 두려운 행동이다.밥벌이란 얄팍한 이유를 대며 일상에 매몰되어 웅크리고 사는 내게 오랜만에 책을 통해 대면하는 책표지 속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은 내가 미처 몰랐거나 아니 애써 외면한 진실한 세상의 목소리이다. 단지 먹고 살아야 한다는 그 알량한 핑계만으로 난 이제껏 오직 받는 노임의 크고 작음에 따라 편협하게 이기적으로만 세상과 타인을 차갑게 냉정하게 대해온 것이다.1987년 1월 14일 오전 11시 20분경 그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짧은 삶을 앗긴 이후로도 살아남은 자들로 이 땅의 일상과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연로하신 박종철 아버님이 아직 이 땅의 참다운 민주주의를 위하여 현장에 계신다고 한다. 오늘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과연 성취된 과업으로 종결된 과거 속의 찬란한 업적으로 남아 있는가. 라는 날 선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본다.그를 기억하는 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어떤 인물이 되어 있을까라는 작가의 상상에 그는 한결같았을 거라고. 그다지 출세는 하지 못하고 재테크에도 능하지 못하지만 혼자만 잘 사는 세상이 아닌 모두 잘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살고 있을 거라고.
    독후감/창작| 2009.07.30| 4페이지| 1,000원| 조회(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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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서평-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저 / 최정수 역 (문학동네, 2001)노마드적인 형식으로 그린 영혼의 탐구서연금술을 통해 찾는 자신의 보물과 표지1988년에 출간하여 전 세계 20여 개 국어로 번역된 는 브라질 작가 코엘료(Paulo Coelho, 1947~)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 외에도 (1994), (1996) 등 내놓는 작품마다 히트를 친 코엘료는 신비주의 작가로 이름을 굳힌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문학동네’에서 번역본이 출간된 후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우선 라는 제목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전문분야로 호기심부터 불러일으킨다. 연금술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아라비아, 중세 유럽에 전해진 원시적인 화학기술을 말한다. 구리ㆍ납ㆍ주석 등의 비금속(卑金屬)으로 금ㆍ은 따위의 귀금속을 제조하고, 더 나아가 늙지 않는 영약(靈藥)을 만드는 일도 연금술의 영역이다. 그래서인지 고대에 연금술사는 항상 신비한 사람으로 여겨졌다.소설 는 물론 연금술 제조비법을 설명하는 화학서는 아니다. 스페인의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와 영국에서 건너온 ‘연금술사’가 각자의 꿈을 찾아 이집트의 사막을 지나면서 겪는 노마드(nomad)적인 이야기다.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갖고 있고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는다. 그것을 코엘료는 연금술에 비유하여 꿈을 ‘보물’로, 그것을 찾는 키워드를 ‘표지(標識)’로 상징했다.양치기 산티아고는 양치는 일을 통해 세상을 아는 청년이다. 책을 싫어하며 책에서 배울수 없는 것들을 양들에게서 배우고, 떠돌이 생활속에서 매혹적인 소녀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이런 산티아고의 운명은 스스로를 살렘의 왕이라고 하는 노인을 만나면서 바뀌고 만다. 이집트 피라미드에 있는 보물을 찾게 해주겠다면서 미리 비용의 10분의 1을 주라고 제안하는 노인. 무언가에 끌려 산티아고는 60마리의 양을 전부 팔아 그중 6마리를 노인에게 제공하고 피라미드가 있는 아프리카로 떠난다.모로코 타리파 항구에 도착한 산티아고. 그러나 도착의 기쁨도 잠시, 가진 돈을 전부 사기당해 빈털터리가 된다. 다시 1년간 크리스탈 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많은 돈을 벌어 비용을 충당한 후 여행을 계속 떠난다. 여행중에 만난 영국인 청년 ‘연금술사’는 산티아고와는 달리 책을 좋아하는 청년이다. 보물을 찾는 산티아고와 연금술의 비법을 찾는 연금술사. 그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면서도 영혼의 대화를 하며 사막의 힘든 여행을 함께 한다.산티아고는 여행을 하는 도중 많은 경계에 부딪친다. 아름다운 여인 ‘파티마’를 만나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지만, 파티마는 사막에서의 사랑은 ‘희망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힘들때마다 산티아고를 지탱해주는 것은 처음 여행을 제시한 노인(살렘의 왕)의 말이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사막을 횡단하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포로로 잡히기도 하지만, 여러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천신만고 끝에 도달한 피라미드. 그곳에서 산티아고가 발견한 보물은 과연 무엇이엇을까?물질문명의 풍요속에서도 현대인들은 항상 고독하기만 하다. 자신의 정체도 모르고 물질적 향락만 추구하다 보면 어느 순간 허전함의 벽에 부딪치고 만다. 인간 자체가 정신을 추구하는 고상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빵 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역설적인 표현이 때로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인간의 본질을 나타낸다.코엘료가 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소설이다. 대체로 신비주의로 포장된 영적인 소설로 보지만 꼭 여기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페이소스(pathos, 비애)도, 언뜻 니힐리즘(nihilism, 허무)도 엿보인다. 필자는 를 노마드(nomad)적인 소설로 보고 싶다.노마드(nomad)란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는 용어로,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가 그의 저서 (1968)에서 노마드의 세계를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묘사하면서 현대 철학의 개념으로 자리잡은 용어이다. 노마디즘은 이러한 노마드의 의미를 살려 철학자 이진경이 들뢰즈의 저서 (1980)을 강의하면서 남긴 글을 정리하고 보충해서 2002년 출간한 책의 제목으로, 우리말로는 유목주의로 번역된다.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불모지를 옮겨 다니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일체의 방식을 의미하며, 철학적 개념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화ㆍ심리 현상을 설명하는 말로도 쓰인다. 노마드란 공간적인 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 가는 것, 곧 한 자리에 앉아서도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뜻한다. 철학적으로는 철학ㆍ문학ㆍ정신분석ㆍ신화학ㆍ수학ㆍ경제학 등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삶을 탐구하는 사유의 여행을 의미한다.양치기 산티아고에게 보물이라는 희망이 상정된 이후, 그에게 나타나는 일상의 삶은 하찮은 것이었고 부정할만한 가치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양치기로서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양들도, 모로코에서 빈털터리 상태에서 다시 벌어들였던 많은 돈도, 사막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여인 파티마도 그에게는 진정한 보물이 아니었고 떠나야할 대상이었다.
    독후감/창작| 2009.07.30| 4페이지| 1,000원| 조회(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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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열사 독서감상문 김경숙
    그 사흘간의 낮과 밤'김경숙'을 읽고어느 날 선생님께서 여러 권의 책들을 사오셨다. 전기문이라고 하시길래 나는 이율곡선생이나 유관순열사같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위인전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표지에 쓰여있는 이름들은 무척이나 생소했다. 최종길, 김진수, 김상진, 성완희, 박영진 등등... 무슨 책을 골라야할지 어리둥절해 있던 나는 일단 아무 책이나 집어들었다. 그 책의 제목은 '김경숙'이었다. 여자이름이어서 왠지 친숙했다. 표지를 보던 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라는 출판사이름을 보고 나서야 이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알수 있었다.표지를 넘기고 한두장을 넘겨보니 김경숙열사로 보이는 소녀의 흑백사진이 보였다. 결말이 결국은 죽음임을 아는 나는 괜히 코끝이 찡해왔다. '마석 가는 길'로 시작해서 '죽음 그리고 이후'로 끝나는 이 책의 줄거리는 이렇다. 김경숙은 어느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두 남동생을 둔 장녀였다. 어렵게 어렵게 살아가던 어느 날 밤 경숙의 아버지는 지병으로 돌아가시게 된다. 그런 후 평화로운 세월도 잠시, 막내동생 재곤이마저 죽고만다. 열여섯살이 되던 해 경숙은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간다. 공장에 취직을 하게된 경숙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지만 공장이 차례로 부도가 남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게 된다. 그러던 중 입사하게 된 'YH'무역은 경숙에게 천국과도 다름없었다. 봉급을 떼어먹힐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YH무역에 입사한 후 경숙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이 생겼다. 이 동료들과 함께 난생처음 영화라는 것도 보고 경숙은 알 리 없었던 동료들의 연애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천국같던 세월도 잠시, YH무역은 폐업을 선언했다. YH노조 대의원을 맡은 경숙은 동료들과 함께 시위에 나섰다. 시위가 계속되던 어느 날, YH노조는 경찰의 눈을 피해 신민당 당사에서 시위를 했다. 그날 밤, 불침번을 서던 경숙은 당사 주변을 둘러싼 경찰기동대를 발견하게 되고 그들이 진격을 서두르자 손에 쥐고있던 유리벼을 창틀에 깨어 동맥을 갈랐다. 경숙이 죽은 후 YH무역 여공들은 강제귀향을 당했다. 그리고 경숙이 숨을 거둔 두 달후에 박정희대통령은 부하가 난사한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되고 그로인해 유신정권은 막을 내렸다.나는 이 책을 읽은 후, 울어야할지 말아야할지 혼란스러웠다. 분명 책의 내용은 슬펐다. 그런데 결정적인 장면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김경숙열사는 왜 자결한 것일까? 자고 있던 동료들에게 경찰기동대가 진격함을 알리기 위해서? 아니면 죽을 것을 미리 예감하고? 이런 것을 이해 못하는 나도 내가 참 한심스럽다. 민주화운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책을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17살인 나도 이렇게 생각없이 살고 있는데 김경숙열사의 16살 인생은 여느 어른 못지 않았다. 어린 나이의 소녀가 혼자 상경하기는 정말 힘들었을 텐데 16살의 김경숙열사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안쓰럽다. 앞으로는 밖에 나가서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가정형편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김경숙열사는 속이 깊음과 함께 리더십까지 갖췄나 보다. YH노조의 대의원에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대의원이 된 이상 동료들을 살려야겠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컸을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인 것 같다. 내가 만약 그 상황에 있었다면 분명 도중에 포기를 하고 고향으로 도망쳐버렸을 것이다. 내가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에게 어느 집단의 '리더'라는 직책을 주지 않으셨나보다. 와... 이렇게 김경숙열사의 위대한 점을 나열하다 보니 본받을 점이 한도 끝도 없을 듯싶다.
    독후감/창작| 2009.07.30| 2페이지| 1,000원| 조회(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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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열사 독서감상문 전태일
    남의 아픔에 진심으로 아파할 수 있는 사람들의 세상을 꿈꾸며……- , 조영래, 돌베개 출판사‘건설노조 인천전기분과 주44시간 노동과 단체협약 체결파업 135일째, 10월 27일 조합원 정해진씨 분신 사망’‘화물연대 서울우유지회 단체교섭과 화물연대 가입인정파업 17일째, 10월 31일 조합원 고철환씨 분신 시도’‘코스콤 비정규지부 불법파견 비정규직 직접고용 주장파업 49일째, 노조원 장기고공단식농성(10월 11일~29일), 정인열 부지부장 무기한 단식농성 중’‘이랜드 ? 뉴코아 노조 비정규직 고용보장 요구파업 131일째, 이랜드 본사 앞 고공농성 8일째’ 전태일 열사를 만난 건 대학생이 되어서였다. 그 당시의 우리들은 ‘전태일 평전’을 읽고 눈물로 범벅된 기억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학원자주화투쟁부터 노동자?농민 등 수많은 투쟁의 연속이라는 상황에서 전태일 열사는 우리의 가슴을 늘 덥혀주던 인물이었다.조영래 변호사 때문에 울었던 기억도 있다. 얼굴도 모르는 한 젊은 노동자를 두고두고 가슴에 품었던 그 넉넉한 마음이 가슴을 아리게 했었다. 만약 지금 전태일 열사가, 조영래 변호사가 살아있었다면 현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나는 이 구절을 보면 숙연해진다. 언제나 모든 일의 중심이 나인 까닭에 문제가 생기면 나만의 해결법을 찾곤 했다. 그러나 전태일 열사는 자신만의 삶을 살지 않았다. 당시의 가난한 노동자들 중의 대부분이 자신의 출세(혹은 열악한 상황에서의 벗어남)를 지향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해결방법도 검정고시를 통한 학력 취득 등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태일 열사는 사회 모순을 총체적으로 보고 노동자 전체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였다.이것은 그의 감수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가슴이 아파지는 그의 타고난, 성자와도 같은 감수성, 남의 아픔에 대한 공감 능력......다른 사람이 아프면 자신도 아플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면 세상은 얼마나 살맛나는 곳이 될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면서, 이주노동자들을 보면서, 장애인, 성적 소수자 등의 소외된 계층을 보면서 그들을 넉넉히 품어보려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노동시간은, 작업량이 비교적 많은 기간(가을, 겨울, 봄)은 보통 아침 8시 반 출근에 밤 11시 퇴근으로 하루 평균 14~15시간이었다. 일거리가 밀릴 때에는 물론 야간작업을 하는 일도 허다하며, 심한 경우는 사흘씩 연거푸 밤낮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다. 업주들이 어린 시다들에게 잠 안 오는 약을 먹이거나 주사를 놓아가며 밤일을 시키는 것도 이런 때이다.- 시다의 경우, 열서너 살짜리 여공이 하루 14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하여 받는 일당이 70원 꼴이었던 것이다.당시는 박정희 정권 주도하에 경제발전을 제일의 목표로 삼고 있던 시기였다. 노동자들의 삶조차도 성장 논리 속에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어린 여성 노동자들은 위에서와 같이 가혹하게 노동착취를 당하던 상황이었다.그렇다면 현재는 어떨까?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아져도 법과 제도가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화물 지입차주나 보험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근로자 지위’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임금과 근로조건의 차별, 사회보장의 배제, 고용 불안정 등의 비정규직 문제로 회사 쪽과 장기 갈등을 빚고 있는 노동자들도 많다. 이랜드나 코스콤 사태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중은 35.5%(545만7천명, 정부 발표)~55%(845만명, 노동계 발표)다. 현재 월 100만원 미만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의 63.1%가 비정규직이며,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38.8%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한국의 비정규직은 정규직 ‘보완형’이 아니라 ‘대체형’이라는 것이다. 가족 중 한 사람도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비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재단사가 나쁘다고 생각하고 나도 어서 빨리 재단사가 되어서, 노임을 결정하는 협의를 할 때는 약한 직공들 편에 서서 정당한 타협을 하리라고 결심했다.- 어머니가 나 집 나올 때 차비 30원을 주잖아요. 시다들이 밤잠을 제대로 못 자서 낮이면 꾸벅꾸벅 졸고, 일은 해야 하는데 점심까지 쫄쫄 굶길래 보다 못해 그 돈으로 풀빵 30개를 사서 여섯 사람한테 나눠주었더니 한 시간 반쯤은 견디고 일해요. 그래서 집에 올 때 걸어 왔더니 오다가 시간이 늦어서 파출소에 붙잡혔어요.전태일은, 1960년대를 살았던 그의 해결방법은 처음에는 위와 같이 개인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 해결방법은 점점 범위가 커진다. 1968년 말경부터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10명 남짓한 재단사들의 모임을 시작하여 1969년 6월 말경에 정식으로 ‘바보회’의 창립총회를 열게 된 것이다.- 우리는 당당하게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살 권리가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태껏 기계취급을 받으며 업주들에게 부당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바보처럼 찍소리 한 번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우리 재단사들의 모임은 바보들의 모임이다. 이것을 우리가 철저하게 깨달아야 하며 그래야만 언젠가는 우리도 바보 신세를 면할 수 있다. 이제 그들은 ‘바보’로 살아오다가 또 다른 뜻의 ‘바보’로 새출발을 한 것이다.이후 노동실태 조사용 설문지를 돌리고 그 결과를 분석, 집계하고, 그것을 근거로 하여 근로기준법상의 감독권 행사를 요구하기 위하여 시청 근로감독관실로 찾아간다. 이 곳 담당자는 전태일을 내몰았으며 노동청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태일은 이 때부터 기업주들만이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근로감독관, 노동청, 아니 그 이상까지도 상대로 하여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여러 가지 좌절을 겪고 삼각산에 올라가 넉 달 동안 돌을 깨고 땅을 파고 장작을 져나르던 그는 1970년 8월 9일 늘 그리움의 대상이던 어린 노동자들의 곁으로 돌아온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조금만 더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1970년 9월 16일 ‘바보회’를 ‘삼동(三棟-평화시장?동화시장?통일상가의 세 건물)친목회’로 이름을 바꾸어 새 조직을 만들고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공동으로 행동”하기로 한다. 1970년 10월 6일 노동청장 앞으로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개선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11월 7일까지 선처해주겠다던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자 11월 13일로 거사 일자를 정하고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제의한다. 이 때 전태일은 분신하며“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를 외치고 죽어간다.이처럼 그의 해결방법은 개인적인 것에서 점차 사회 전체의 변화로 그 외연을 넓혀간다.그렇다면 지금의 노동자 문제도 이렇게 큰 틀에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개인의 안정된 직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신자유주의?세계화라는 허울의 실체를 제대로 바라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개개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세상, 다양한 직업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위해서도 서로가 연대하여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만들고(아예 비정규직이 없도록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소외받는 계층을 위한 복지 부분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추상적인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프랑스가 추진했다는 주 35시간 노동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혹은 단기적인 공공근로가 아니라 문화콘텐츠 분야(공공도서관, 문화공연장 등을 건설하고 그 자리에 인력을 투입하는 등의 방법)에서의 일자리 창출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아니면 학력이나 직업의 차별없이 노동시간에 따라 기본임금을 동일하게 적용하되 각각에 따라 수당을 달리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강의 수당, 건설 수당 등등)또한 교육을 통해서 노동자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누구나 노동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인식) 마치 공부만 하면, 혹은 공부를 해야만 일류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적으로 보장받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주어야 한다. 나 하나만을 위한, 또는 ‘나만 잘되면’이라는 생각으로 주위 친구들을 경쟁상대로 보기보다는 함께 연대하여 세상을 바꾸었을 때 더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알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세상을 위해서도 감수성 훈련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어릴 때부터 슬프고 기쁜 마음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솔직한 감정을 가지도록 가정과 학교에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러한 감정을 길러주기 위해서도 대학평준화 등의 전면적인 입시제도의 변화를 통해 경쟁적인 분위기를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로 전환해야 한다.
    독후감/창작| 2009.07.30| 4페이지| 1,000원| 조회(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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