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우*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4
검색어 입력폼
  • [건축기행]미국건축기행-계획및보고서
    미 ? 국 ? 건 ? 축 ? 연 ? 수 - 계 획 서서/부/지/역/을/중/심/으/로Contents1. About the United States of America2. 미국서부지역의 지역별 특징 및 관광지::::::::::::::::::::::::::::: 건축물을 중심으로...3. 참고사항::::::::::::::::::::::::::::::::: 비자 준비사항::::::::::::::::::::::::::::::::: 연수 계획서...::::::::::::::::::::::::::::::::: 예산 계획서...1. About he United States of America위 치북아메리카 대륙수 도워싱턴 (Washington D.C)언 어영어기 후온대 또는 냉대...종 교개신교 58%, 로마가톨릭교 26%면 적951만 8323㎢표 미국의 일반사항면적은 951만 8323㎢, 인구는 2억 9158만 7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31.1명/㎢(2003)이다. 정식명칭은 아메리카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며 수도는 워싱턴이다. 통화는 US 달러이고 1인당 국민총생산은 3만 4280달러(2003)이다.본토 48개주와 알래스카 하와이 2개주로 구성된 연방공화국이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온대 주요부를 차지하며, 50개주와 1개 수도구(컬럼비아구:약칭 D.C.) 외에 해외속령(海外屬領)으로 푸에르토리코·사모아제도(諸島)·웨이크섬·괌섬과, 국제연합(國際聯合)의 신탁통치령(信託統治領)인 캐롤라인제도 등을 보유한다.동쪽의 대서양 연안에서 서쪽의 태평양 연안까지 걸쳐 있는 국토의 너비는 가장 넓은 곳이 4,500km나 되어 4개의 표준시간대로 구분된다. 미국은 독립한 지 200여 년에 불과하지만 건국 이래 자유와 평등을 표방하여 근대국가로서는 가장 오래된 성문헌법(成文憲法)을 갖는 등 근대사에서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본토의 대부분이 온대에 속하며 광대한 평야는 농목업의 발달에 적합하여, 세계 제2위의 농업생산국을 이룬다. 석탄·철광·석유 등 다.그는 65년 UCLA를 졸업하고 하버드와 UCLA에서 석사를 마쳤다. 또한 그는 찰스무어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으며, 작품활동 시 그 지방 토착 건물에 파편을 결합하는 토착성과 유클리드 기하학의 변형에 기초하여 디자인을 하고 있으며, 부지의 형상을 준거로 하여 전체의 형상을 점진적으로 완성해 간다.대표작으로는 패러마운틴 세탁소 건물)(Paramount Laundry Building : 3960 Ince Boulevard, Culver City, CA. 9023), 게리그룹빌딩)(Gary Group Office Building : 9046 Lindblade Street, Culver City, CA. 90232) 등이 있으며, Eric Owen Moss의 대부분의 건물은 Culver City에 위치하고 있다.? Cathedral of Our Lady of the Angels [천사의 모후성당]명 칭Cathedral of Our Lady of the Angels [천사의모후성당]건축가- 라파엘 모네오주용도성당주소LA 다운타운 북쪽교 통게리의 디즈니콘서트홀에서 걸어갈만한 거리이므로, 즉 다운타운 내에서는 일단 걸어다닐만하므로 찾기 어렵지는 않습니다.(temple st * grand ave 교차로에 있습니다.)차를 이용하실 분들께서는 다운타운은 주차비를 일단 내야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참고로 성당에 부속된 주차장은 평일 $12, 주말 $4 정도 됩니다.성당하면 떠 올리게 되는 첨탑, 돔등의 형태상의 특징이나 최소한의 verticality의 이미지를 기대하는 분들에게 라파엘 모네오의 ‘천사의 모후성당’은 1960년대의 Paul Rudolph나 I.M. Pei 가 보여준 formalist Modernism에 가까운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건물 방문시, 많은 건축가들이 종교건축을 디자인하면서 고민하게 되는 신비하고 초월적인 공간을 라파엘 모네오는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였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건물은 십자형 평면을 취하고 있으며, 대지 옆에 위치한 고속도로는 최소한 투명성을 지닌, 돌로 만든 등 공예품의 일종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2.2 Las Vegas2.2.1 Las Vegas의 일반사항LA에서 라스베가스까지는 승용차 3시간이 소요되며, 초호화 호텔, 카지노, 라이브 쇼로 대변되는 도박과 유흥의 도시이다. 치안과 물가 가 안정되어 있다.2.2.2 Las Vegas의 주요지역1) 스트립 지역-최고급 호텔, 레스토랑, 쇼핑센터[350m 높이의 스트래터스피어 호텔 꼭대기(놀이기구)]2) 프리몬트 스트리트 익스피어리언스[야간에 펼쳐지는 라이트 쇼가 압권]그림 16 모포시스가 설계한 식당3) 인근 구경지후버댐-미 경제공항 타개위해 세워진 댐으로 높이가 221m임.2.2.3 Las Vegas 및 인근지역의 주요 관광지 및 건축물Las Vegas 에 소재한 Venetian Casino Resort는 2002년 미국건축사협회(AIA) Los Angeles Interior Award를 받은 작품이다.Morphosis 설계 사무소에서 디자인한 레스토랑입니다. 이 Lutece 라는 식당은 뉴욕에서 프랑스 요리 전문 식당으로 꽤 유명한 곳인데, 라스베가스에서도 그 맛을 만날 수 있는 셈입니다.고급 레스토랑이라 값이 비싸다.? Guggenhein Hermitage Museum, Las Vegas그림 17 구겐 하임 뮤지엄설계 : OMA design(Rem Koolhaas) 위치:Las Vegas, Nevada굳이 라스베가스에서 '건축적인' 현대건축을 보고 싶다면 가장 유명한 호텔 중 하나인 'the Venetian' 정문에 위치한 구겐하임 미술관을 봐도 좋을 것입니다.2.2.4 기타사항숙소 : 호스텔 $50/일숙소 : 유스호스텔 도미터리 $20/일2.3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2.3.1 Grand canyon의 일반사항애리조나 주 중앙부에 위치하며 입구도시인 플래그스태프(Flagstaff)까지 가는게 순서이다. 사우스 림, 노스 림, 이너 림 으로 나뉘어 있다. 약 277마일의 길이, 깊이는 약 1마일, 대부분의 관광객뒤의 주차장에 주차하는 것이 좋다.? 시애틀 미술관 (1991, 로버트 벤츄리)그림 24 스애틀 미술관미술관은 태평양이 보이는 언덕위의 전망이 무척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미술관 전면은 수직으로 홈을 판 플루팅 석회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파사드 상부에는 가로로 커다란 문자를 새겨 넣어 미술관의 디자인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위치는 100 University Street at 1st & 2nd Avenues, Seattle, Washington에 있다.참고로 거대한 사람모양의 실루엣 같은 조각이 있는데, 이 조각은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인데 팔이 1분에 4번씩 위아래로 움직여 시애틀 노동자를 상징합니다.? EMP (2000, 프랭크 게리)Experience Music Project는 미국의 팝음악과 대중문화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게리의 창의적 작품이다. 전체는 6개의 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시애틀 시내에서 모노레일을 타면 이 건물을 관통하는데 탑승자가 모노레일 안에서 건물안을 볼 수 있도록 계획된 것도 흥미롭다.2.7 포틀랜드오레건 주의 최대도시1)포틀랜드 빌딩(마이클 그레이브스)2) 러브조이 프라자(1967, Lovejoy Plaza)____오영근의 건축스케치여행 참조공원디자인으로 유명한 로렌스 헬프린이 포틀랜드에 디자인한 인접한 2개공원 가운데 하나로 분수를 포함하는 도시 중심부의 광장이다. 1968년 에 S,O.M에 의해서 완성된 포트랜트 센터 주거단지 전면에 위치하는 이 광장은 단지 내의 주민 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도시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2.8 새크라멘토경유지2.9 요세미티 국립공원빙하가 빚어 낸 계곡과 작은 폭포2.10 샌프란시스코2.10.1 샌프란시스코 일반사항그림 25 샌프전경 사진태평양 연안에서는 로스앤젤레스에 이은 제2의 대도시이다. 샌프란시스코만(灣)에 면한 천연의 양항(良港)으로, 골든게이트에서 남쪽 서안(西岸)에 위치한다.2.10.2 샌프란시스코 주요지역1) 골든 게이트 파크- 도심속에시간대별 일정내 용기 타오 전3:30한국시간 적용4:008:05인천공항 도착9:45발권시작(JAL은 2층 J열 위치)오 후12:00비행기 탑승2:30오사카 도착5:30LA행 비행기 출발. (12시간 30분 소요)(한국시간 A.M 4:00, 현지시간 P.M 12:00오 후1:30LA공항에서 입국심사 끝2:30알라모에서 렌터카 대여(입국심사장을 빠져 나온 후 정문으로 나오면 렌터카 회사들 차 정류장이 있음)4:306:307:30숙소 [Rotex Hotel & Condo]팜플렛 참조위치 :8:00한인타운 식사 [삼겹살]9:00가주마켓 [아침식사 및 야식]12:00취 침LA는 무척 건조한 도시이므로 항상 물을 휴대하고 다녀야 함.영 ? 수 ? 증 ? 첨 ? 부 - 6. 26지출 내역비 용기 타Tip1 $주유비31.50 $Sport Shop87.57 $버너, 아이스박스, 렌턴...주차비1 $석 식144.85 $멕시코 식당전화카드40 $Total달러 :표 2 6.27일 지출내역06. 6.27시간대별 일정내 용기 타오 전9:30목조 쇼핑센터 건설현장 출발10:00Shopping CenterⅠ 현장도착(2층 규모, 골조공사 완료, 사진참조)11:30Shopping CenterⅡ 현장도착(1층 규모, 완공)오 후1:00중식 [한식-북창동 순두부]2:00목조주택 완공건물 답사[CA. East]-사진참조2:30Steel House 골조공사중인 건물 답사[CA. East]-사진참조4:00Duke. Lee 사무실 방문 - 교회2층5:00주유소에서 기름 주유5:30인근 목조주택 건설현장 방문6:00Sport Shop 방문(버너, Ice Box...구입)8:00Melrose 인근 멕시코 식당10:00전화카드 구입11:00취 침영 ? 수 ? 증 ? 첨 ? 부 - 6. 27지출 내역비 용기 타Tip1 $오전 장13.69 $갤러리아 슈퍼주차비7 $Getty Center숙박비68.4 $주차비8 $Diesney Concert Hall저녁 장28.7 $Total달러 :표 2 6.28일 지출내역06 7
    공학/기술| 2006.07.21| 51페이지| 1,000원| 조회(980)
    미리보기
  • 프로페셔널의 조건을 읽고 평가A+최고예요
    「 프로페셔널의 조건 」을 읽고서9 7 3 5 1 0 5 4건 . 도. 토 학부이 우 원「프로페셔널의 조건」의 저자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을 전공하는 내 친구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아는 경영학의 아버지 격이다. 그래서 그는 경영학 계보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경영의 구루 로 칭송받고 있다.또한 나에게 있어 더욱 놀라게 하는 그의 경력은 90세가 넘은 고령의 할아버지 인데도 여전히 저술가로, 교수로서, 컨설턴트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피터 드러커와의 첫 만남은 「 21세기 리더의 선택 」이라는 책을 통해서 였다. 이책은 드러커 뿐만아니라 여러 학자, 미국의 CEO, 정치가등이 서로 대화 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여기에서 난 피터 드러커라는 대가를 만났다. 대가를 만나면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평생을 통해서 대가가 아닌 소인배 주변에만 몰려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소인배가 되는게 아닐까? 대가와의 만남은 나의 축복이었다. 드러커의 글은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릎을 치게 만든다. 그리고 나같이 실용적인 사람은이것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까? 를 놓고 고심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피터 드러커는 경영에 있어서 지적 자극의 저수지 이다.제러미 리프킨의 「 The Age OF Access 」번역 소유의 종말 이라는 책을 며칠전 읽었다. 이책에서 리프킨은 풍성한 혜안과 인사이트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드러커는 현실적이다. 그래서 드러커의 글을 읽으면서 내 자신에게 마구 질문을 던진 기억이 난다.그럼 이 책을 읽고 인상 깊었던 몇 부분을 옮겨 보고자 한다.미래는 지식사회가 된다. 과거에는 지식과 현실이 유리되어 있었다. 이 점에서는 동서양이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프레드릭 테일러같은 사람은 최초로 지식을 산업에 적용시켰다. 그 유명한 '작업 연구'(work study)가 그것이다. 테일러의 지식을 산업에 연결시키는 일련의 작업으로 인해서 '생산성 혁명'이 일어났다. 실제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깬 것은 바로 테일러의 생산성 혁명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일러는 파이를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에서 '파이의 크기를 크게 만드는' 대안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드러커의 글에는 항상 대안적인 접근이 있다. 이것이 드러커의 강점이다. 그는 예언자임과 동시에 구도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드러커는 끊임없이 학습하는 사람이다. 드러커는 3년 주기로 새로운 분야에 대한 학습을 한다고 한다. 한 분야의 학문을 한다는 것은 그 학문의 방법론을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접근이 가능한 것은 다양한 방법론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원래 탁월한 인사이트는 그 내부에서는 모르는 것이다. 오히려 다른 분야를 연구하다보면, 본래의 자기 분야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철도는 자체의 갱신의 능력으로 개선된 것이 아니다. 비행기, 선박과 같은 타 분야의 압박이 철도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다. 사회의 변화가 사고에도 영향을 주고, 산업에도 영향을 준다. 이런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시각을 드러커는 지적한다.피터 드러커는 경영철학을 가진 일종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태도와 정신에 대한 강조를 언제나 빼놓지 않는다. 이런 예를 든다. 미국 정부산하 연구소에 나이 많은 출판국장이 있었다. 그는 과학자도 훈련받은 작가도 아니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전문가적 세련미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퇴직을 했다. 그의 퇴직 이후 일류 과학 전문 기자가 출판국장으로 채용되었다. 물론 전문가다운 냄새가 물씬 풍겨 나는 잡지로 변신되었다. 그런데 그 간행물의 주요 독자층인 과학자들이 구독을 중단하겠다는 연락들을 하는 것이다. 왜? 어떤 독자가 이런 말을 했다. "지난 번 출판국장은 '우리들을 위해'(for us)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국장은 '우리에게'(to us)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차이이다. 3학년 2학기를 접어들며, 많은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강의내용은 똑같은데 왜? 수강자의 태도가 다른가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있었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매 수강신청때 마다 일찍 수강인원이 초과 되는 과목의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 우리를 위해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는 교수님을 만난다. 정말 피부로 느껴질 정도의 열정적인 강의는 학구열을 더욱 달구는 휘발류와도 같았다.
    독후감/창작| 2002.12.03| 3페이지| 1,000원| 조회(1,027)
    미리보기
  • 45~48년 한국의 현대사
    「남북한에 각각 다른 단독정부가 수립되는과정을 미국 소련 양국의 정책과 관련하여 설명」건.도.토 학부97351054이 우 원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됨으로써 우리 나라는 35년간의 일본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 광복이 되었다.앞서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3년 11월 미국.영국.중국의 외상은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의 해방,독립을 최초로 언급했다. 이어 43년11월 테헤란 45년2월 얄타 회담, 45년 7월 포츠담 회담에서 조선을 독립시킨다는 것이 재확인 되었다. 조선의 독립에 대한 국제적 보장은 일본 패망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의 꾸준한 항일 독립운동과 단결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일본 제국주의의 학정에 시달렸던 우리 민족은 광복이 곧 독립이라 굳게 믿고, 환희와 감격에 휩싸이게 되었다.중경의 임정은 한국 독립당을 여당으로 해서 건국강령을 통해 보통선거로 민주공화국을 수립하고 정.경.교육의 삼균주의를 국정에 반영시키기로 했다. 한편 중국 화북지방에서는 사회주의 인사에 의해 독립동맹이 결성되어 그 아래 조선의용군을 인솔했다.국내에서는 광복과 더불어 들뜬 민중의 과격한 흥분과 환호 속에 정당과 사회 단체가 난립하기 시작했다. 무슨 단체가 생기느니. 무슨 정부가 들어선다는 등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활개를 쳤으며, 이들을 통일.영도할 만한 구심체가 없어 민중은 우왕좌왕하였다. 송진우를 위시한 민족주의 진영은 임시정부가 곧 귀국하여 정권을 담당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좌익계의 여운형, 조동호, 최근우 등은 1944년에 건국동맹을 조직, 일제하 항쟁의 구심점을 마련했다가 이를 기반으로 해서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민족주의 세력에서는 조선국민당과 송진우를 중심으로 한 한국민주당(약칭 한민당)이 생겨났다. 좌익 세력은 인민공화국이라는 정치단체를 만들어, 임시정부에 대립하였다.국내에 이렇게 해방감에 들떠 질서가 문란하고, 좌.우익이 분열되어 대립이 시작되고 있을 무렵에 (테헤란 회담에서 르즈벨트는 소련에게 연합국으로의 참전을 권유했는데) 소련은 45년 8월 8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후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소련군은 만주로부터 일본군을 몰아내고 북한지방을 급속히 점령해 나갔다. 이런상태에서 미국은 향후 한반도에서 자신의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 소련에게 `일반명령 1호`를 제시했다. `일반명령 1호` 는 미국이 소련에게 38도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여 일본군을 무장 해제한다는 내용으로 결국 이후 뼈아픈 민족 분단의 서곡이었다.미국의 24군 군단장 하지 중장은 1945년 9월 9일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들어왔다. 서울에 들어오자 미군정의 실시를 발표하였다. 미군정이 실시되자, 건국준비위원회는 자연 해체되었다.1945년 12월 15일 미국.영국.소련의 3개국 외상들은 모스크바에서 회의를 열고, 패전국 일본 문제 등을 토의하는 과정에서, 조선 독립에 관한 구체적 절차를 결정하였다.조선에 민주주의적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조선을 최장5년간 미국.영국.중국.소련 4개국의 신탁통치하에 둘 것이며, 그 준비를 위하여 미국과 소련의 현지 주둔군 사령관은 2주일 이내에 미.소 공동위원회를 개최하도록 한다 이 회의 결정안의 핵심은 결코 신탁 통치에 관한 협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소의 협력으로 `조선을 독립 국가로 재건하고 일제 잔재를 신속히 청산하기 위해서 임시 조선 민주 정부를 수립한다.` (제1항) 라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미국.영국.중국.소련 4개국이 협력, 원조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신탁통치 제안은 미국이 즉시독립과 위 내용의 제안은 소련이 했다. 그러나 국내에는 신탁통치 소련주장 만을 대서 특필했다. 그리하여 이렇게 왜곡된 보도를 접한 남한의 민중은, 회담 과정과 내용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 길 없는 가운데 모스크바 3상 회의의 결정을 지지하는 모든 세력은 소련의 사주를 받은 자, 나라를 팔아먹는 민족 반역자, 그리고 소련을 지지하는 공산주의자로, 반면에 반탁 세력은 애국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민족 내부에서는 자연스럽게 반탁운동이 그리고 반소련, 그리고 반공운동으로 연결되었다.또한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모두 반대 성명을 발표하며, 즉시 독립을 주장하였다. 줄 사람은 생각도 아니하는데, 김치국부터 마시는 격이었다. 국내의 정치 세력들은 모스크바 결정안을 놓고 반탁세력은 즉 남한을 점령한 미군정에 대한 적극 협력 및 참여 방침을 결정한, 이승만과 한민당 을 필두로 한 국민 회의파로 급속히 모여 들었다. 한민당은 대개 일제 말기에 변절한 친일파, 식민과료, 매판자본가, 그 가운데서도 친일 지주 세력을 대표하던 집단 이었다. 모스크바안 지지 세력은 민주주의 민족 전선으로 결집하여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였다. 그런 가운데 그 동안 한민당에 참여했던 임정 계열과 진보적 민족주의 세력들이 한민당의 본질을 폭로하면서 탈퇴하고 속속 민전에 참여했다.그러나 반탁.반소 운동을 지원 내지 묵인해 온 미 군정의 해위는 결국 스스로 소련과 합의한 내용을 실질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자체 모순을 지녔다. 아니 그것은 모순이 아니라 미국이 의도한 결과였다.`최소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이 미국의 의도였다. 이 점에서는 최소한 북한에라도 자기들에게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하려던 소련 역시 마찬가지였다.이런 광경을 처음 당하는 국민들은 좌익이 무엇이고, 우익이 무엇인지 어리둥절하였다. 모스크바 협정에 따라 1946년 2월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으나 위의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1차회담은 결열되었다.사태가 이렇게 되자, 좌익과 우익이 합작을 시도하였으나, 말뿐이고 이루어 지지는 않았다.결국 미 군정과 한민당과 이승만은 남한의 변혁 세력을 제거하는 데 뜻을 같이하면서 각자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었다. 미군정은 남한 내 변혁 세력을 대체할 친미 인사를 육성하는데 한민당과 이승만이 필요했고, 한민당은 지원 세력으로서 미 군정이, 그리고 자신들의 친일 행각을 포장할 인물로서 이승만이 필요했다. 이승만으로서는 자신의 허약한 국내 기반을 보완, 확충하는데 이들이 필요했다. 한편 미국에 의해 `임시 정부`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개인 자격`으로 뒤늦게 귀국한 김구를 중심으로 한 상해 임시 정부 세력은 `상해 임정`의 `법통성.정통서`을 내세우며 활동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남한의 유일합법 정부 천명한 미 군정에 의해 탄압받을 수 밖에 없었고 이들은 결국 일개 정당인 `한국 독립당`으로 결집되었다. 해외 `독립 인사`들인 이들은 이미 중경 임정 시절 `일본인과 친일파 재산의 국유화 및 토지 개혁을 강령으로 선언했고, 친일파 제거를 강력히 주장했다. 민중은 이들의 귀국으로 강력한 통일 세력이 형성되기를 기대했지만 김구의 임정 법통성 고집과 우유부단한 태도로 결국 민중의 기대는 충족되지 못하였고 김구 역시 한낱 보잘 것 없는 정파의 우두머리로 남게 되었다.1947년 3월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으로 대소 봉쇄라는 냉전 정책을 표방한 바 있었던 미국은 제2차 미.소 공동위원회의 결렬을 일방적으로 선언(47년 5월)하고 조선 문제를 UN에 넘겨 버렸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소련과 합의한 모스크바 결정안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당시 자신의 거수기에 불과했던 UN에 조선 문제를 넘겨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고자 하였고 결국 미국의 제안대로 UN감시하의 남북 총선거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소련과 북한에 의해 명백히 거부될 사항이었고 그 결과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 그리고 단독 정부 수립이었다.미국은 소련이 미.소공동위원회를 통해 한반도에 소련의 위성국가를 수립하려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실패할 경우 소련은 북한의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선동과 조직활동을 통해 남한 내에서 세력을 증대 시킴으로써 미군정을 불신하도록 조장할 것이라고 보았다. 요컨대 양측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상대방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진력할 것이라고 예단하고 각각의 점령지역에 대한 정책을 추진해 나갔던 것이다.이후 미국과 소련은 토지 개혁, 귀속기업의 처리, 친일파 처리의 식민지 유제 처리를 실시하였다.
    인문/어학| 2002.12.03| 5페이지| 1,000원| 조회(392)
    미리보기
  • [예술철학] 비극 미 (悲劇美 das Tragische, le tragique, the tragic) 평가D별로예요
    「비극 미 悲劇美 das Tragische, le tragique, the tragic」● 비극이란 고뇌로 말미암아 그 값어치-대상-를 더 높인 존귀함이다.비극 미는 쾌, 불 쾌의 '혼합감정混感'이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슬픔에 푹 빠졌다 나오게 되면 오히려 마음이 거뜬해질 때를 우리는 체험한다. 마치 동경이 없는 것을 바라면서 그 결핍을 더욱 의식하는 감정처럼 애수는 잃어버린 것의 애달픔이 아물어 쓰라린 어제의 정감을 달콤한 감정으로 남기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비극은 유럽에서 생겨났다가 다른 세계로 퍼지게 되었는데, 그 첫 기록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 연유한다. 니콜 Allardyce Nicoll이 짚은 대로 이집트가 이미 기원전 200년 내지 300년에 그 예를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오늘의 극본은 아테네에서 나온 것이다.그리스인들에게 비극은 주제신인 디오니소스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는 한 가지의 의식이었으며, 이 신의 제관들은 마치 요새에 대포를 앉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처럼 지정석에 배정했다. 따라서 비극은 반드시 불행으로 끝날 필요는 없었다. 오이리 피데스의 몇 작품을 포함해서 몇 개의 현존 작품은 우리들의 감으로 보아 비극 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희극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고대로부터 인간의 의지와 행위를 불가피한 운명의 갈등에서 생기는 비극적 고뇌의 실상으로 형태화 하려는 의도 아래 비극은 중요한 예술 형식을 창안하고 희곡이나 연극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와 아울러 비극미의 개념에 관한 반성의 연원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BC 384∼322)의 『시학詩學』에서 였볼 수가 있다. 그에 따르면 비극이란 고귀하며 그 자체 완결된 그리고 규모를 갖춘 행위의 모방이다.그는 비극을 울적한 마음의 해소자라 하여,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비극의 목적으로 보았다. 카타르시스가 종교의식의 정화작용이건 생리적 체액의 배설을 뜻하든 간에, 이열치열의 요법으로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가련함과 두려움의 감정을 통하여 가벼운 정신 회복을 꾀하게 된다. '고뇌를 통하여 환희에로' 나아가는 통로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미이다.● 중세에는 '비극'이 무대 상연이란 의의와는 관계를 결별한다. 디오미더스Diomedes(A.D.4)는 "비극은 불행에 처한 영웅적인 또는 반 신적인 인간의 운명을 서술한 것이다" 이와 같이 중세기의 비극에 관한 인용문들을 보면 '비극'이 단지 하나의 서술 형태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세기로서는 '비극'은 단순히 불행으로 끝나는 얘기를 뜻했으며, 스스로가 조심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불행을 자초하게 되리라는 경고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근세 영국의 르네상스기 에는 대중 극장을 위해서 쓰여진 것이 아니고 런던의 법학원이나 대학의 무대를 위해 쓰여진 것으로서, 로마시대의 비극을 본따서 이 세상의 끔찍함과 이승을 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강조한 작품들이 많았다.괴테는 영웅적인 인물묘사에 능했던 그리스 작가도 그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심한 고통을 격을 때 울부짖도록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말하기를 훌륭한 사람이란 울 줄 아는자 라고 했다. "메마른 마음과 메마른 눈을 지닌 이들이여 ! 나를 탓하지 말아라. 불행한 이들이란 한낱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행복한 이들을 나는 저주한다" 브래들리는 "세익스피어가 인간들에게 신의 섭리를 정당화하려 하거나 이 우주를 신의 드라마로 나타내려고 꾀한 것은 아니다. 그는 비극을 쓰고 있었다. 고통의 신비성이 없다면 비극이 될 수 없었다"고 갈파했다. 비극의 주인공은 고통의 무서운 부담을 모른다. 다음 순간에 그는 글리템네스트나 이피게네이아와 더불어 울부짖고 한탄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눈물과 울움은 가라앉는다. 그러나 가슴에서 나오는 한숨은 고문이라고 키에르케고르는 언급했다.● 현대에 와서 콘Cohn은 비장이란 존귀한 것이 무너짐이요 그 고뇌 라 했다. 그러니까 불운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고귀성을 간직하고 있는 값어치있는 인격의 괴로움이다. 그러므로 비극미의 본질은 오직 인간의 경우에만 적용된다.야스퍼스는 그의 에서 '비극적 앎'과 '비극성 없는 안정감'의 차이를 논한다; "우리는 '비극적 앎'에서 눈뜨게 되어 스스로의 한계상황을 알고 인간 존재의 깊이에서 일어나는 '역사에 참여하는 움직임'을 갖는다. 이에 비해 '비극성 없는 안정감'이란 고대 중국에서 처럼 모든 빈곤, 불행, 죄악은 원래 없어야하는 일시적인 장애에 지나지 않다. 따라서 그것은 세계를 우울하게 보거나, 옳게 보건, 신을 규탄하든가 하는 일 없이 한탄만 한다. 그곳에는 절망에서 오는 자기 분열이 없고, 있는 것이란 그저 참고 견디어 가는 일 뿐이다. 풀리지 않는 갈등이나 흐릿한 오해라는 것이 없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밝고 아름답고 참되다. 서구의 비극적인 의식을 통하여 비춰진 문화에 속하는 사람들에 못지 않게 무서움을 체험한다. 그러나 생활 기분이 명랑하여 투쟁이 없고 반항도 없다"고. 비극적 앎이란 눈앞에 벌어지는 삶의 모순을 묻고 고민하는 길이다. 나아가 비극의 초극을 꾀한다. 그에 따르면 비극성은 초극에 있다. "인간 존재에는 난파속에서 나타난다. 난파속에 존재가 상실되기는 커녕 더욱 뚜렸이 느껴진다. 초극없는 비극성은 없다.비극의 목적은 어두운 고뇌 가운데 빛을 되찾고, 적극적으로 악의 힘에 대항하는 가운데 감정이입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선의 힘을 맛보도록 하는데 있다. 본래 고결한 인격이 무참한 운명으로 짓밟힐 때 우리는 운명의 비극을 보게 된다. 또한 악인에게도 선의 내면적 위력이 생겨 이로 인하여 야기되는 그의 고뇌가 악을 초극하려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게된다. 이러한 고뇌를 통하여 더욱 증대되는 도덕적 가치를 우리가 같이 체험함으로써 비극적 감정이 성립된다.폴켈트는 그러나 비극론에 대한 관점이 조금 다르다. 그는 [1897]에서 비극이란 '인간적 위대성'이라고 규정했다. 인간적 위대란 인간적 중용을 넘어서는 것을 말한다. 그에게는 평균적인 것이나 범속한 것들은 비극적 인상의 발생에 부적한 조건이라고 이해했다. 그는 어떤 위대한 인물이 고뇌에 빠져 몰락되어 가는 것을 볼 때 우리에게 대조감정이 생긴다고 했다. 위대성 앞에서는 세계가 구겨질 일이 없을 것인데,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착하고 정직한 이가 오히려 핍박받는데서 절망과 한탄의 한숨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러한 동정과 횡포의 대조감정은 일종의 '불합리한 감정'이기도 하다. "오오. 얼마나 소중한 품위의 영혼이 여기에서 짖밟히고 마는가 ?"라고 한 오펠리아의 탄식은 의 비극적 효과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었다. 폴켈트는 비극미가 인간적인 것이 그 한계를 넘어서서 초인적인 것에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존귀미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지만 모든 비극미가 존귀는 아니기 때문에 비극미를 존귀미에 예속시키려 했던 종래의 범주 유형에는 반대했던 것이다.그는 비극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전개했다①육체적인 사멸이나 정신적 파멸을 통해서 또는 이들을 통해서 그 희생을 나중에 불행으로 이끄는 격렬한 고뇌이다. ②보통 사람들 보다도 그 의지의 힘이나 감정의 심오성 에서 뛰어난 주인공의 인간적 위대성이다. ③개인의 비극적 운명이 인간성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것으로 모든 과정이 전개된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을 가진 비극미에는 그 내용을 이루는 적극적 가치인 인간적 위대성이 비극적 파멸자 에게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비극의 감정은 억압적인 것과 앙양적인 것, 이 두가지 상반된 감정의 긴장관계에서 성립되는 대조감정이다. 그러므로 그저 고뇌에만 그치고 대조성이 없는 감정체험은 비극이 아니며, 이는 서정시적 소설에서나 볼수 있는 체험이다.이것은 인간적 개성과 밀접하게 결부된 것이기 때문에 일정한 문예·역사·서사시·소설· 우화·극 등에 한해서 만 그 표현이 가능하다.
    인문/어학| 2001.11.28| 4페이지| 1,000원| 조회(590)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3
3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2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1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04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2:16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