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삼국 통일에 대한 해석신라의 삼국 통일은 세계 역사상 특이한 유형의 하나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신라의 삼국 통일은 진정한 통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7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초반까지 약 300여년 간을 ‘통일신라 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남북국 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통일의 기준을 국가의 이름으로 잡을 때 신라는 분명히 삼국을 통일했다. 그러나 그 기준을 전체 주민이나 영토로 잡을 때 신라의 삼국통일에 의문을 제시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러면 삼국 통일의 주역으로 일컬어지는 김춘추와 김유신의 관계부터 짚고 넘어가 보기로 하자.김춘추는 ‘정치가 어지럽고 음란하다’는 구실로 귀족들에 의해 쫓겨난 제 29대 진지왕의 손자이다. 진지왕의 폐위 이면에 가로 놓인 정치적 갈등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김춘추의 집안이 성골의 계보에서 제외되어 왕위 계승권에서 멀어진 것만은 분명하다.진지왕이 폐위된 뒤 진평왕이 등극했다. 귀족들을 견제하여 왕권강화정책을 펼치던 진평왕은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진지왕의 아들 용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둘째 딸과 결혼시키고 국왕의 측근 관직인 내성사신(內省私臣)을 맡겨 자신을 보위토록 했다.용춘은 역시 왕권과 긴밀하게 결탁함으로써 정치적 지위를 강화시켜 갔다. 이러한 가운데 김춘추도 김춘추도 정치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김춘추는 어려서부터 ‘세상을 다스릴 뜻을 품었다’고 한다. 그러나 폐위된 왕손이 그 야망을 실현시키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김춘추는 준수한 용모였던 것 같다. 그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의 풍채를 보고서 당 태종이 ‘신성(神聖)한 사람’이라고 감탄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에다 그는 매우 예리한 정치적 감각까지 겸비하고 있어서 자신을 뒷받침할 세력만 있다면 별로 두려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때 뛰어난 활약을 하면서도 토착 귀족들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던 김유신은 그의 적절한 상대였다.김유신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해왕의 증손자이다. 서기 532년 구해왕이 가족을 이끌고 신라에 투항하자, 신라 법흥왕은 이들을 최고신분층인 진골에 편입시키고 경주에서 살게 했다. 그 이후 그 후손들은 군사면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구해왕의 아들인 김무력은 서기 554년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전사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김무력은 김유신의 할아버지이다.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도 장군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김서현의 결혼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경주의 토착 귀족인 숙흘종의 딸 만명과 사랑에 뼈져 중매도 없이 야합했다. 서현이 만노군(萬弩郡 : 충북 진천) 태수로 부임하면서 만명을 대려가지고 했다. 그제서야 숙흘종이 자기 딸이 그와 야합한 것을 알고 딸을 가두어 두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에 벼락이 쳐서 문지기가 혼비백산한 틈을 타서 몰래 빠져나온 만명은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달아났다. 이런한 우여곡절 끝에 김유신은 만명에게서 태어났다.서현과 만명의 결혼에서도 알 수 있듯, 금관가야의 왕족 출신인 김유신 가문의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 못했다. 또 김유신의 동생과 김춘추의 결혼도 썩 좋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토착 귀족들이 배타성이 워낙 강해서였다. 같은 진골이면서도 금관가야의 왕족 출신은 ‘신김씨’라 하여 차별 대우를 받았다.김유신과 김춘추는 일찍부터 친밀하게 어울렸다. 김유신은 김춘추에게 누이인 문희를 소개한다. 김춘추는 문희에게 임신을 시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를 눈치챈 김유신은 선덕여왕이 경주 남산 행차길에서 문희를 살리고, 김춘추와 결혼시킨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후에 삼국 통일을 완성시키는 30대 문무왕이다.서기 642년 무렵부터 신라는 심각한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신라대당 통로의 거점인 당항성(唐項城 : 경기도 남양)이 공동 전선을 편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공격 위협을 받았다. 그리고 신라 서쪽 국경의 요충인 대야성 마저 백제에게 침략당했다. 대야성 함락으로 신라의 대백제 방어체제는 일시에 무너지게 되엇다. 그리하여 수도 자체가 백제의 직접 노출되게 되었다. 대야성 전투에서 사위와 딸을 잃은 김춘추는 고구려에 군사 원조를 요청하러 갔다가 연개소문의 한강유역을 반환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여 감금당하고 만다. 김춘추는 겨우 꾀를 내어 탈출에 성공했다. 김춘추는 곧바로 왜 열도에 건너가 군사 원조를 얻으려 했으나 백제와 형제 관계에 있던 왜국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기는 어려웠다. 결국 김춘추는 당나라로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당나라는 고구려 정벌이 여러 차례 실패하자 장기 소모전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었다. 그 전략의 하나로 고구려 남부 국경에 강력한 제 2전선을 구축, 고구려의 방어력을 분산시키는 방법을 강구하던 참이었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당태종과 김춘추는 나 ? 당 군사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군사 원조의 대가로 원산만 이북의 고구려 영토를 당나라에 양보한다는 밀약을 추가했다.신라 군대를 총지휘하던 대장국 김유신은 거듭되는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대야성을 탈환하여 그 성가를 높였다. 김춘추와 김유신이 외교와 군사 활동을 주도하면서 확고한 지위를 굳혀가자 이에 반발하는 귀족 세력들이 ‘여왕이 정치를 잘못하여 위기를 자초했다’는 구실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서기 647년에 일어난 상대등 비담과 염종의 난이다. 반란의 와중에서 선덕여왕이 죽고 동생인 진덕여왕이 즉위했다. 그리고 김유신의 활약으로 반란은 진압되었다. 반란 진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김춘추 ? 김유신 세력은 정치적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서기 654년 마지막 성골인 진덕여왕이 죽었다. 귀족들 사이에 왕위 계승 문제가 논의되었다. 첫 번째로 꼽힌 인물이 귀족 회의의 대표자인 상대등 알천이었다. 그러나 그는 김춘추와 김유신의 은근한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왕위를 김춘추에게 양보했다. 김춘추는 세 번의 사양하는 예의를 갖추고 왕위에 올랐다. 바로 태종 무열왕이었다.]무열왕은 자신이 추진한 나 ? 당 군사 동맹의 이행을 당나라에 끈질기게 요구했다. 그동안 몇 번의 고구려 침략에 실패한 당나라는 우선 백제부터 공격하자는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서기 660년 나 ? 당연합군은 총공격을 시작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부여성은 무너졌지만, 상황은 신라의 뜻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당나라는 백제 영토를 직접 지배하려는 야욕을 감추기 않았고, 곳곳에서는 백제 저항군의 무력 항쟁이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태종 무열왕이 죽고 삼국통일의 과제는 그의 아들 문무왕에게 넘겨졌다.신라는 백제 저항군의 진압 또는 회유하면서 백제 영토를 차지해갔다. 한편, 당나라군은 신라의 지원을 받아 서기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켜버린다. 고구려가 망하자 당나라는 신라마저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이후 8년에 걸친 나 ? 당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김유신은 노령에도 불구하고 상징적인 활약을 계속하다가 당나라 군대의 축출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던 시점에서 세상을 떠났다.김유신과 김춘추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한반도에 신라를 최후의 승자로 남게 한 두 주역이었다. 따라서 신라 당대에는 그들은 삼국 통일의 영웅으로 숭배되었다. 사대 명분론을 강조하는 중세 유학자들 역시 그들에게 긍적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이들의 평가가 그 절정을 이룬다.‘중국에 사대의 예를 다하고 그 문물을 받아들여 거친 풍속을 개량하였으며 당 군대의 위엄을 빌어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하고 태평성대를 이룩한 뛰어난 임금’ 으로서 김춘추를 평가했고, 마찬가지 입장에서 김유신에게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주저하지 않았다.그러나 지금은 그 평가가 다르다. 과연 신라는 삼국 통일을 한 것인가 아니면 남북국 시대인가, 이 논란은 오래 갈 것 같다. 이 논란의 핵심은 대진국(발해)과 신라가 병존한 시대를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에 있다. 지금가지 흔히 사용해온 ‘통일신라시대’라는 용어는 대진국을 제외한 듯한 인상이다. 대진국사를 우리 역사의 일부로 다루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대진국과 통일 신라 모두를 균형 있게 취급해야 할 것이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남북국 시대’라는 용어이다. 이는 통일신라시대와 대진국이 양립했던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신라와 대진국은 서로 교류 ? 경쟁 또는 대립하면서 약 220여년 간 병존했다. 그러나 김부식은《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삼국과 통일 신라만을 다루고 대진국을 제외시켜 버렸다.대진국과 신라 두 나라는 동쪽의 원산만 용흉강에서 서쪽으로 대동강과 압록강에 이르는 선을 경계로 하여 남북으로 병존했다. 대진국 건국 직후인 700년에 대조영은 신라에 사신을 파견했다. 당시 대진국에 가해지고 있던 당나라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었다. 8년여에 걸친 격렬한 전쟁을 통하여 당나라 세력을 내쫒은 신라로서도 대진국의 사신 파견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때 신라는 대종영에게 신라관등의 제 5등급에 해당하는 대아찬의 벼슬을 내려 회의를 베풀면서 형식적으로나마 대진국을 신라의 영향권에 포함시키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신나는~!박물관 교재학년이름◈ 박물관은 어떤 일을 하나요?박물관은 우리의 조상들이 남겨놓은 여러가지 유물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곳이죠.왜 보관하고 전시하느냐고요?조상들이 남겨놓은 유물은 전부 소중하고 우리가 역사나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물건들이죠. 그래서 튼튼한 건물을 지어서 유물을 한 곳에 모아놓고 보관하며, 우리가볼 수 있도록 전시하지요. 그리고 안전하게 잘 보관해야 우리 후손들에게 유물을 깨끗하게 물려줄 수 있겠지요.여러분들도 자기가 아끼는 사진이나 물건은 잘 보관하지요?그 사진이나 물건들을 여러분이 어른이 되어서 본다면 "아! 내가 어렸을 때에 이랬었구나" 하고 알 수 있지요.여러분이 쓰는 물건도 몇 백년이 지나면 박물관에 전시될 수도 있겠지요.* 유물 : 조상들이 남겨놓은 물건박물관 내부 모습박물관 내부 모습박물관 내부 모습박물관 내부 모습박물관 내부 모습박물관 내부 모습박물관 내부 모습박물관 내부 모습박물관 내부 모습◈ 박물관에서는 유물을 보관, 전시만 하나요?박물관에서는 유물을 보관, 전시할 뿐만 아니라, 유적과 유물을 조사, 연구하고 일반인들이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교육도 하지요. 유물을 연구하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시는 분들을 "연구사-큐레이터"라고 부르지요.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물발굴 모습이 분들이 박물관에서 하시는 일은 참 많아요. 여러분들이 박물관을 관람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연구사님에게 물어보면 자세하게 설명을 들을 수가 있어요.* 유적 : 조상들이 땅에 남겨 놓은 자취. 집, 집터, 무덤, 조개무지 등◈ 그 장소에 유물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고 발굴을 하나요?발굴을 하기 전에 먼저 유적이나 유물이 묻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내는 조사를 하는데 이것을 지표조사라고 하지요. 지표조사는 아무런 도구 없이 눈으로만 여기저기 보고 다니는 것이지요. 땅위에 어떤 유물이 있으면 그 속에 어떤 유적이 있을 것인지 알지요. 예를 들어 토기파편이 있으면 그 토기가 어느 시대의 것인지 학자들은 금방 알 수 있되었을 것이다.'라고 서로 비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것을 "상대연대"라고 하지요.그런데 몇 만년전, 몇 십만년전인 경우에는 당연히 기록이 있을 수가 없고,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유물이 없는 경우도 많아요. 이런 경우에는 유적에 남아 있는 '여러 가지 시간의 증거물'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연대를 알아내지요.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이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C14연대측정법)이예요.(조금 어려운 내용이지만.....)고고학자들은 이러한 시간의 증거물(꽃가루, 불탄 나무, 돌, 짐승 뼈) 등을 세밀하게 찾아서 유적의 나이를 알아 내지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은 뭔가요?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은 유기물질에 들어 있는 C14의 양을 측정해서 연대를 알아내는 방법이지요.C14는 우라늄과 같이 반감기를 가지는 방사능 물질로 생물체가 살아 있을 때는 그 양이 줄어들지 않으나 생물체가 죽으면 그때부터 그 양이 줄어들어요. 따라서 이러한 반감기(C14는 그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약 5300년이 걸림)를 과학적으로 측정하여 유적이나 유물의 연대를 알 수 있지요.◈ 박물관 안에선 예절을 지켜야 하나요?박물관에는 소중한 유물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지요.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관람합니다. 그러므로 몇 가지의 예절은 지켜야 하겠지요.☞ 함부로 만지지 맙시다.☞ 조용히 관람을 합시다.☞ 차례로 줄을 서서 관람을 합시다.☞ 함부로 촬영을 하지 맙시다.☞ 애완동물을 데리고 들어가지 맙시다.☞ 허용된 장소 외에서 음식물을 먹지 맙시다.일부 박물관은 만지고 떠들고 촬영을 허용하는 곳도 있으나 안내인에게 문의 바랍니다. 촬영이 금지된 박물관은 안내 책자를 구하시면 견학 보고서 작성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박물관 내부 모습박물관 내부 모습박물관 내부 모습신문 박물관100여 년의 신문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곳은 한성순보, 독립신문, 매일신문 등에서 현재의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중앙일보 등에 이르기까지 국내의 신문이 걸어온 역사의 발자취를 조심스레 옮겨 놓았다. 은 ?신문역사관?, ?기획전시 학습화폐 금융 박물관1. 우리의 중앙은행한국은행의 설립 배경과 목적, 한국은행이 하는일, 한국은행의 조직과 운영, 중앙은행제도의 기원에 대해 알아본다. 전시되어 있는 여러 가지 사료와 업무관련자료, 그리고 한국은행의 발전과정에 관한 영상물이 여러분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2. 화폐의 일생화폐의 제조 및 순환과정, 위변조화폐 식별법, 손상화폐 교환방법, 미래의 화폐 등에 대해 알아본다. 화폐제조와 관련된 여러 가지 실물과 영상물 그리고 위변조화폐 식별장치가 전시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3. 돈과 나라경제통화?금리?물가의 개념과 나라경제, 물가안정의 중요성,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 우리경제 발전과정에서의 한국은행의 역할에 대해 알아본다. 영상물, 모형, 컴퓨터게임이 물가안정의 중요성과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4. 화폐광장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화폐가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고 세계 각국의 진기한 화폐가 여러 가지 특징별로 전시되어 있다. 화폐광장에 전시된 화폐를 통해 경제발전의 역사와 화폐에 담겨있는 여러 나라 문화를 살펴보자.박물관에서- 스스로 학습전쟁기념관1. 호국추모실우리민족은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에 맞서 강인한 저항정신으로 조국을 지치면서 5천년의 민족사를 면면히 이어왔다. 주변 강대국을 이웃한 지정학적인 여건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자존을 지키고 세계사에 자랑할만한 고유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온 것은 우리민족의 호국정신과 문화창달의 저력에 있다고 하겠다.호국 추모실은 국가와 민족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 국방의 최 일선에서 호국의 영령으로 산화한 애국열사들의 정신과 위엄을 되새기고 추모하는 전당이다.2. 전쟁역사실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침을 받아 왔지만 전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슬기롭게 대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대대로 겪어야 했던 외세의 침입은 우리의 빈약한 국력이 그 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가져다 주는 뼈저린 교훈을 망각하여 우리의 역사가 단절되는 비운을 맛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민족 일념으로 북한의 침략야욕을 분쇄하였다.전쟁 후 국군의 각종 신예의 무기의 도입과 자체기술로 개발한 방상장비로 무장하였으며 특히 우리의 여건과 지형에 맞는 전술교리를 연구 발전시켜 막강 국군으로 성장하였다.이러한 전력을 바탕으로 월남전과 걸프전, 소말리아 전, 서부 사하라 및 앙골라 등에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전 세계에 국위를 선양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 유지에도 크게 기여하였다.7. 방산장비실1960년대까지 국군이 보유한 장비는 주로 미군장비에 의존하였으나 1970년초 자주국방력 강화를 위한 방위 산업이 추진되어 70년대 초기에 군 기본병기인 M16소총을 자체 생산하였다. 그 후 80년대에는 한국지형에 적합한 전차, 장갑차, 아포, 구축함, 전투기, 통신전차장비, 유도탄, 잠수함까지 독자적으로 자체 개발하여 성능이 우수한 국산장비를 양산함으로써 우리의 방위산업은 획기적으로 발전하였다. 대형장비실 2층에 각종 방위산업 무기와 장비가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8. 대형장비실 / 옥외전시장대형장비는 옥내와 옥외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옥내전시장에는 주로 한국전쟁 당시 피 아 육 해 공군의 장비류 등을 비교 할 수 있도록 하였다.또한 한국전쟁 후 국내 방위 산업체에서 생산된 한국형 표준장비들을 전시함으로써 자주국방 체제 확립 의지를 고취시키도록 하였으며, 그밖에 제2차 세계대전과 월남전에서 주요 국가들이 운용하였던 대형장비를 전시하고 있다.박물관에서- 스스로 학습서울과학관우리는 지금 과학기술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적인 시대 흐름에 뒤쳐지지 않는 선도적인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국민의 과학 마인드 확산이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서울과학관에서는 일반인,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과학적 사고와 탐구심을 배양하고 미래 과학자로서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하여 체험을 통한 여러 가지 과학의 원리를 습득할 수 있는 전시장 운영과 공개과학교실운영, 과학강연회, 과학영화 상영 등 다양한 과학교육 프로그램을 연중 비롯하여1999년 3월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김도훈 선수가 결승골을 터트린 기념 공 등은 다시금 감동적인 순간의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귀중한 축구 자료들이다.박물관에서- 스스로 학습서울 역사관서울 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선사시대에서 현대까지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도시역사박물관이다.초기 백제와 조선왕조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으로 발전해 온 서울의 역사를 보여 준다.1. 조선의 수도, 서울서울은 조선왕조의 왕도이자 수도로서 지리적으로 전국의 중앙이요 교통상의 중심이었으며 정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서울에서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았으며, 도성 내부로부터 한강 가에 이르는 도시시설은 한성부를 비롯한 여러 관청에서 관리하였다.2. 서울사람의 생활서울사람들의 의식주 생활은 다른 지역에 비해 화려하고, 고급스러웠으며, 그들의 생활은 대도시다운 세련미를 갖추고 있었다.서울에는 운종가(종로), 시전, 이현, 칠패 등 큰 시장이 있어서 전국의 온갖 물산이 서울로 모여들었다. 서울은 나라의 중앙시장이었다.* 운종가 : 종로의 다른 이름* 시 전 : 시장거리에 있는 가게들* 이 현 : 지금의 동대문 시장* 칠 패 : 지금의 남대문 시장3. 서울의 문화서울의 궁중문화는 주권자이자 통치자인 국왕의 권위를 드러내며, 최고 수준의 품격을 갖고 있었고 서울은 새로운 지식의 유입과 전파, 서적의 편찬과 간행, 인재의 양성 등 조선사회의 학술문화를 선도하였다.4. 도시서울의 발달서울은 일찍이 선사시대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여, 백제 초기에는 백제의 수도로, 고려의 남경으로 그리고 조선의 수도로 우리 민족사의 중심도시로 성장해 왔다. 근대와 현대 우리 역사의 굴곡을 딛고 서울은 이제 세계의 유수한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나아가고 있다.5. 체험공간조선시대 각종 과학기구, 놀이기구, 생활용구 등을 비치하여 만들어 보고, 조작해보고, 다루어 봄으로써 직접 체험을 통해 생활문화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는 공간이다.6.터치뮤지엄전시주제 있다.
실험으로 이해하는 과학의 세계과학실험교재반 :이름 :첫째날 - 생물편현미경에 대해 알려주마!!생물편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꼭 설명이 필요한 실험기구가 있어요. 현미경이라는 기구죠. 작은 것을 수십 수백배로 확대해서 보여줄 수 있는 기구랍니다. 그럼 그 자세한 설명을 시작해 볼까요?현미경은 정밀한 광학기기이므로 사용방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용방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경우 시료 또는 대물렌즈를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현미경은 크게 현미경 몸체, 접안렌즈, 대물렌즈, 스테이지, 조명 장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윗그림에서는 조명장치는 반사경으로 대처한다.1) 시료가 놓여져 있는 Stage를 대물렌즈로 부터 멀리 놓이게 한다.이는 현미경을 다루는데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부분이며 이렇게 하므로써 실수로 고배율로 대물렌즈를 회전시켜도 시료와 부딪혀서 생기는 렌즈나 시료의 손상을 방지 하게 된다. 옆에서 스테이지위의 시료를 쳐다보면서 스테이지를 이동시키며 시료와 대물렌즈의 위치가 직선상이 되도록 조정한다.2) 대물렌즈를 선택한다.현미경은 낮은배율에서 높은 배율로 옮겨 가면서 관찰을 하는것이 기본이다. 저배율에서 관찰을 하면서 관찰하고자 하는 시료의 위치를 확인하고 배율을 조금씩 높인다.3) 접안렌즈를 선택한다.현미경의 배율은 접안렌즈와 대물렌즈의 배율을 곱한 것이므로 (예: 대안렌즈 20배, 대물렌즈 10배일경우 총 200배가 된다)적당한 접안렌즈를 선택하여 접안렌즈부에 꽂는다.4) 밝기를 조절한다.통상 초등학교,중학교에서 쓰이는 현미경은 1)번을 행할때 반사경을 조절하여 밝기를 조절해야 하지만 최근의 현미경은 대부분 조명장치가 함께 있으므로 조명장치의 다이얼을 돌려서 조명을 조절한다.5) 관찰한다단안렌즈의 경우 보통 왼쪽눈을 사용하여 보며 이는 왼쪽눈으로 관찰하며 오른쪽눈으로는 관찰한 시료를 스케치 하기 위한 것이다. 쌍안 현미경은 두눈을 이용해서, 모니터가 있는경우에는 모니터를 통해서 본다.대략적인 초점은 조동나사를 이용하여 맞추며 세밀한 초점을 맞출 덮는다.⑤ 아세트산카민 용액을 커버글라스 한쪽에 떨어뜨린 다음 반대쪽에서 거름종이를 대어 아세트산카민 용액을 빨아드린 후 1분~5분 정도 놓아둔다.⑥ 저배율에서 고배율 순서로 관찰하여 그린다.(가장 선명한 상)⑦ 검정말 잎 세포는 슬라이드글라스에 검정말 잎을 올려놓고 물을 한 방울 떨어뜨린 후 염색하지 않고 관찰한다.□ 관찰한 결과를 그려보자□ 세포 모양이 어떤지 토의해 보고, 아세트산카민 염색액에 의해 염색이 되는 부분을 알아보자.□ 어떤 식물이 녹색을 띠고 있으며, 녹색을 띠는 물질이 무엇인지 토의해 보자.□ 생물의 몸을 이루고 있는 기본 단위를 무엇이라고 하는가 ?4. 학습 내용(1) 생물체의 기본 단위가) 세포 : 생물체를 이루는 구조적?기능적 단위이며, 그 모양과 크기는 생물의 종류와 기능에 따라 다르다.나) 세포의 수와 생물체의 크기- 외부와의 원활한 물질 교환을 위해 세포막의 표면적이 세포 전체 부피에 비해 넓은 것이 유리.- 세포가 작을수록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이 커지므로 물질 교환이 더 원활하게 일어날 수 있게 된다.(2) 세포설가) 모든 생물은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나) 세포는 모든 생물의 구조적?기능적 단위이다.다) 세포는 다른 살아있는 세포에서 만들어진다.(3) 세포의 크기와 모양가) 생물의 종류와 부위에 따라 차이가 있음- 달걀 노른자, 개구리 알도 세포 1개- 기린의 신경세포는 1m 이상의 길이- 대부분의 세포는 직경이 1㎛~100㎛이다.(4) 세포의 수가) 단세포 생물 : 몸이 하나의 세포로 되어 있음.- 예) 짚신벌레, 유글레나, 아메바 등나) 다세포 생물 : 여러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세포들이 모여 생명활동을 수행함.(5) 식물세포의 특징 : 세포벽이 있어 단단하며 엽록체가 있어 독립적인 영양, 당과 유기산?색소 및 노폐물 등을 포함하고 있는 액포가 있음.(6) 세포 내 소기관가) 원형질 : 세포의 생명 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곳(핵과 세포질)- 핵 : 생명활동의 중심, DNA를 갖고 있지만 이들의 일생을 살펴보면 같은 성격이나 지능을 가진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나왔기 때문. 이에 대한 설명으로 성격이나 지능은 DNA가 아닌 다른 환경 요소들에 의해 형성된다는 주장이 있음.- 현재의 기술로는 복제된 아이를 성인으로 키우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 아기를 즉시 성인의 상태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4. 호기심 풀이 -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지금 당장 증명해 보일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생물학적 이론으로 볼 때 닭보다는 달걀이 먼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상에 생물이 나타나기 시작한 순서를 보면 맨 먼저 하나의 세포가 한 개체로 이루어진 단세포 생물이 처음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아메바나 유글레나, 짚신벌레 같은 종류입니다. 단세포 생물이 태어난 후 시간적으로 어림잡아 5,6억년 뒤에 아주 원시적인 다세포 생물이 출현(?)했는데 아시다시피 다세포 생물이란 여러 개의 수많은 세포가 한 개체로 이루어진 생물체죠. 우리 인간도 다세포 생물의 하나입니다. 닭은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다세포 생물이고 달걀은 단 한 개로 이루어진 단세포 생물임을 감안할 때 당연히 단세포생물인 달걀이 먼저 태어났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참고로 지구상에서 제일 큰 단세포 생물로 알려진 것은 타조 알입니다.5. 입안 상피세포의 관찰- 메틸렌블루 용액으로 염색하는 시간은 3-5분정도가 적당하고 너무 오래되면 세포의 모든부분이 파랗게 염색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한다.- 대부분 학생들은 면봉으로 입 안 상피세포를 채취할 때 세게 긁어 세포가 뭉쳐져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6. 식물세포와 동물세포의 차이점과 공통점- 차이점 : 식물세포는 세포벽, 엽록체, 액포가 있으나 동물세포는 없다.- 공통점 : 세포막과 핵이 있다.(낮은 배율의 현미경 수준)기 본 학 습 안 내1. 준비재료 : 현미경, 면봉, 슬라이드글라스, 커버글라스, 핀셋, 거름종이, 아세트산카민, 증류수- 입안의 상피세키면 부옇게 흐려지므로 이산화탄소의 검출에 이용한다.- 수산화칼슘은 표백분, 석회 벽돌의 원료, 산성 땅의 토질 개선 등에 이용된다.③ 암모니아(NH3)- 염화암모늄과 수산화칼슘의 혼합물을 가열하여 만든다.- 암모니아는 코를 찌르는 자극성 냄새가 나며, 공기보다 가벼운 무색 기체로 물에 제일 많이 녹는다.- 비료의 원료나 공업 약품으로 이용된다.산이란??- 여기서 산이란 백두산 한라산의 산이 아니 구요 황산, 질산, 염산 등과 같이 산성을 나타내는 물질을 말합니다. 썰렁~. 그럴 줄 알았지요.가. 산의 성질은 어떤지 대략은 아시지요?모든 산의 수용액에는 수소 이온(H+)이 들어 있으며, 이것이 산의 성질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지요.(1) 산은 신맛이 납니다. 그럼 식초가 산성이겠다구요? 맞습니다.(2) 산은 여러 가지 지시약의 색을 다음과 같이 변화시킵니다.지시약(원래의 색)변화된 색푸른 리트머스 종이 (푸른 색)붉은 색BTB 용액 (녹색)노란 색페놀프탈레인 용액 (무색)무색(변화 없음)메틸 오렌지 용액 (주황 색)붉은 색(3) 산은 마그네슘, 철, 아연 등이 금속과 반응하여 수소 기체를 발생시킵니다. 수소는 가벼우니 수소기체가 발생할 때는 당연히 뽀글뽀글 올라가는 모습이 보이겠지요?Mg + 2HCI → MgCI₂+ H₂↑(염산) (염화마그네슘)Zn+H2SO4 → ZnSO₄+H₂↑(황산) (황산아연)나. 산성 물질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봅시다.(1) 식품 속에 들어 있는 산① 탄산(H2CO3) : 탄산음료에는 탄산이 용해되어 있지요. 사이다, 콜라와 같이 이산화탄소가 용해되어 있는 청량음료 속에 들어 있습니다.CO2 + H2O → H2CO3[2H+ + CO32-]② 아세트산(CH3COOH) : 가정용 식초에 4~6% 가량 들어 있으며, 17℃이하에서 얼어 있어 빙초산이라고도 한답니다③ 젖산 : 발효유인 요구르트나 신 김치 속에 들어 있습니다.④ 과일에 있는 산 : 시트르산(레몬), 타르타르산(포도), 말산(사과) 등이 있습니다.(2) 화학 공업에 쓰이반적으로 리트 머스액을 거름종이에 흡수시켜 리트머스 종이를 만든다.페놀프탈레인(phenolphthalein)산성인지 염기성인지를 알아 내는 데 쓰이는 지시약의 한 가지.약산성을 가진 흰색 결정으로 물에 는 거의 녹지 않으나 알코올에는 잘 녹는다. 산성이나 중성 용액에서는 색깔이 변하지 않으나 염 기성 용액에 넣으면 선명한 붉은색으로 변한다. 페놀과 무수프탈산에 진한 황산을 작용시켜서 만 든다.메틸오렌지(methyl orange)액성이 산성인지 염기성인지를 알아 내는 데 쓰이는 지시약의 한 가지. 오렌지색의 가루로서 물에 녹는다. 0.1% 용액을 지시약으로 사용하며, 산성 용액에 넣으면 붉은색을 나타내고, 염기성 용액에 넣으면 노란색을 나타낸다.비 티 비(BTB)용액이 산성인지 염기성인지를 알아내는 데 쓰이는 지시약의 한 가지. 브롬티몰블루라고도 부른다. 비 티 비는 알코올에 녹여 사용하며, 용액의 색깔은 녹색이다. 산성에서는 노란색, 염기성에서는 푸른색을 나타낸다. 물풀 등의 호흡 및 광합성에 의해 나타나는 매우 적은 양의 이산화탄소의 증감도 알아 낼 수 있다.지시약색 깔 변 화산성 용액중성 용액염기성 용액리트머스 종이푸른색 리트머스종이가 붉게 변함변화 없음붉은색리트머스 종이가 푸르게 변함페놀프탈레인변화 없음변화 없음붉게 변함메틸오렌지붉게 변함변화 없음노랗게 변함비티비(BTB)노랗게 변함변화 없음푸르게 변함미니 호버 크레프트 만들기!!1. 이실험은요?만화나 영화를 보면 물이나 땅위를 살짝 떠서 다니는 자동차가 나옵니다. 물이나 땅위를 직접 달리는 것보다 마찰이 적어 훨씬 빠르겠죠? 물론 아직은 그런 자동차를 보기 힘들지만요.... 그럼 직접 지상에서 살짝 뜰 수 있는 미니 오버크래프트를 만들어 볼까요?2. 무엇이 필요하지요?미니 호버크래프트 : 불필요한CD(코팅지), 빨대, 풍선, 스카지테잎3. 이렇게 해요.① 빨대끝을 십자 모양의 칼집을 낸 후 cd가운데 구멍에 붙입니다.② 풍선의 입구부분을 약간 잘라낸 후 빨대를 끼워 스카치 테잎으로 고정시킵니다.③ 풍선을.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별자리교재학년 반 이름Ⅰ. 별1. 별이란 무엇일까?STAR(스타), 즉 스스로 타는 것이 별이다. 스스로 타서 빛을 내지 못한다면 별이 아닌 것이다.지구는 스스로 타지 못하고 스스로 타는 태양 주위를 돌면서 스타의 빛과 열의 혜택을 받는 행성이다.자, 별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스스로 타는 것이 별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무엇이 타는 것일까? '스스로 타는 것'에 점 하나씩만 찍으면 된다. '수소로 타는 것' 그러니까 수소가 모여서 타는 것이 바로 스타이다. 따라서 별은 수소가 타면서 태어나고, 시간이 흘러 더 이상 탈 수소가 없으면 죽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수소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별일 것이다. 그러니까 수소가 많이 모여 있는 곳, 즉 성운(우주의 가스 구름)에서 만류인력(모든 물체사이에 작용하는 당기는 힘)으로 수소가 모이고, 모인 수소 덩어리 속의 온도가 올라가 불이 붙게 되면 드디어 별이 태어나는 것이다.2. 별의 갯수하늘에는 얼마나 많은 별이 있을까? 실제로 지구에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약 6천개이다. 이 중 우리는 어느 한 순간 하늘의 절반만을 보기 때문에 약 3천개의 별을 볼 수 있다. 물론 우리 나라처럼 산이 많은 나라에서는 이보다는 적은 수의 별이 보일 것이다.당연히 우리가 맨 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이란 태양 가까이에 있는 우리 은하의 별들이다. 대부분이 천 광년(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 약 9조km) 이내의 거리에 있는 별들이고, 가장 멀리 있다고 해야 기껏 수 천 광년 정도 떨어진 별이다. 물론 천 광년 이내에 있는 별을 우리가 맨 눈으로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어두운 별은 볼 수 없고, 밝은 별들만이 보일 것이다.우리 우주에는 은하들이 약 1천억개쯤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각 은하에는 평균적으로 1천억개의 별이 있다. 그러니까 우주에 존재하는 별의 개수는 어림잡아 천억이 천억개 모인 정도가 될 것이다. 숫자로 표시하면 10,000,000,000,000리 모습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3) 용자리용자리는 헤르쿨레스자리의 발 부분에서 북쪽, 서쪽으로 구부러지면서 별들이 이어져 있고, 작은곰자리를 반쯤 돌아서 북두칠성 가까이에서 꼬리를 감춘다. 따라서 연중 북쪽 하늘에 보이지만, 저녁에 북쪽 하늘 높이 떠서 잘 보이는 때는 여름철이다.그리스신화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헤라클레스(헤르쿨레스자리)는 제우스와 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이 사실을 알고 격분하여 헤라클레스를 죽이려고 하였다. 헤라의 간계에 의하여 에우리스테우스의 부하가 된 헤라클레스는 시키는대로 무엇이든지 해야 할 운명에 처해진다. 에우리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12가지 어려운 일을 시킨다. 그 중 11번째가 가장 어려운 일이었는데 헤스페리스들이 지키고 있는 황금사과를 따오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헤라클레스는 그것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사과는 헤라가 대지의 여신으로부터 결혼 선물로 받은 것으로 헤스페로스의 3자매에게 지키게 하고 라돈이라고 부르는 잠들지 않는 용까지 붙여 주었다. 헤라클레스는 사과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아틀라스를 만났는데 그는 제우스에게 패한 후 하늘을 떠 받치고 있는 벌을 받고 있었다. 아틀라스는 헤스페리스의 삼촌이었으므로 아틀라스에게 부탁하기로 한다.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 대신에 하늘을 지탱하여 주고, 그 대가로 황금사과를 따오게 한다. 그 후 황금사과를 지키고 있는 용을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었다고 한다.작은곰자리 둘레로 별들을 이어 가면 찾을 수 있다. 직녀가 보일 때는 그 북쪽에서 마름모꼴로 된 용의 머리를 찾는 것이 더 빠르다. 주의할 것은 용의 꼬리가 북두칠성의 국자 바로 앞까지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4) 카시오페이아자리카시오페이아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에티오피아왕 세페우스(세페우스자리)의 아내이자 안드로메다(안드로메다자리)의 어머니이다. 이 흑인 왕비는 자신이 포세이돈의 딸들보다 더 아름답다고 자랑하자 화가 난 포세이돈이 바다괴물 케투스(고래자리)를 보내어 에티오 신화에 의하면 사랑의 신 에로스(Eros)가 쏘아 올린 화살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화살이 누구를 겨냥해서 쏘아올려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화살이 가리키는 방향을 더듬어 가면 페가수스(Pegasus)의 앞발을 관통해서 멀리 안드로메다(Andromeda)의 머리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보면 에로스가 안드로메다와 페르세우스의 사랑을 이뤄주기 위해 쏘아올린 화살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일설에는 플레이아데스의 잃어 버린 한 자매 엘렉트라(Electra)가 북두칠성의 손잡이 별 미자르로 날아가는 모습이라고도 전해진다.(7) 전갈자리- 싱과 상 이야기..신화에 의하면 오리온이 '이 세상에서 나보다도 강한 것은 없다'라고 큰소리 치며 잘난척 하자 이를 얄밉게 여긴 여신 헤라가 전갈을 시켜 오리온을 죽여 버렸다. 전갈은 그 공적을 인정 받아 하늘에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오리온자리는 전갈이 질 때쯤에야 동쪽하늘에서 떠 올라 전갈이 동쪽하늘에 얼굴을 내밀 무렵에는 진다고 한다.중국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형인 상과 동생인 싱의 사이가 벌어져 툭하면 싸움을 하곤 했다. 이를 보다 못한 황제가 두 형제를 떼어 놓고 평생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상은 전갈자리의 안타레스를 중심으로한 세 별이고, 싱은 오리온자리의 세 별을 가리킨다.이렇게 해서 형제가 동서로 떨어져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별자리가 되어 중국에는 '싱과 상은 서로 만나지 못한다'라는 유명한 속담이 생겼다고 한다.(8) 헤라클레스자리헤라클레스는 대신 제우스와 알크메나(Alcmena)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가 아직 요람에 있을 때 남편 제우스가 낳은 인간 자녀에게 항상 적의를 품고 있던 여신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죽이기 위해 뱀 두 마리를 보낸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린 헤라클레스는 뱀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손으로 뱀을 목 졸라 죽여 버렸다.헤라 여신의 미움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헤라클레스가 청년이 되자 헤라는 간계를 부려 그를 에우리테우스(Eu기지금까지 항성과 행성의 차이점과 구별법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우리 눈에 보이는 다섯 행성인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맨눈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아주 먼 옛날부터 이들 오행성을 알 수 있겠는가?다섯 행성은 각각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별다른 정보가 없이도 구분이 가능하다.금성은 초저녁 서쪽 하늘이나 새벽의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데, 가장 밝을 때는 -4.7등급으로 온 하늘에서 태양과 달 다음으로 가장 밝다. 그러므로 초저녁 서쪽 하늘이나 새벽 동쪽 하늘에 눈에 띄게 밝은 별이 보이면 무조건 금성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수성 역시 금성과 마찬가지로 초저녁 서쪽 하늘이나 새벽의 동쪽 하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수성과 금성이 모두 지구보다 안쪽에서 태양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성은 태양의 주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보기가 쉽지 않다. 수성의 최대밝기는 -1등급 정도다. 밝기가 충분히 밝으니 주변의 1등성과는 확실히 구분이 될 것입니다. 수성은 여간해서는 보이지 않고 관측여건이 좋은 날을 골라 만반의 준비를 한 후라야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보기가 힘듭니다.화성은 맨눈으로 봐도 그 붉은 기운이 확 느껴질 정도로 붉은 색을 띤다. 행성 중에 붉은 색이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화성이다.목성은 최대 밝기가 -2.8등급이고 항상 -1등급 이상의 밝기를 유지한다. 따라서 평소에 태양, 달, 금성 다음으로 밝다. 화성은 가끔씩은 목성만큼 밝아지지만 그런 때는 아주 드물다. 금성은 초저녁과 새벽에만 볼 수 있으므로 만약 한밤중에 유달리 밝은 별이 보이고 붉은 색을 띄지 않으면 목성이라고 보시면 됩니다.토성은 다섯 행성 중에서는 어두운 편입니다. 평소에는 1등성 정도의 밝기를 가지고, 그 최대 밝기는 -0.5등급이다.* 이런 만약 행성이 아니라면?밤하늘에 전에는 안 보이던 별이 보이고, 앞에서 설명한대로 살펴본 결과 행성도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까요? 일단 인공위성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로 귀여운 모습을 보여준다.토성의 항성주기는 30년 정도로 1년에 12° 정도를 움직이게 되고, 따라서 2년 정도는 같은 별자리 내를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2000년 6월 부터 2002년 말까지는 황소자리에 머문다. 토성 관측의 적기는 대략 12.5개월에 한번씩 찾아온다.2) 토성의 고리와 카시니 간극토성에서 역시 관측의 초점은 토성의 고리이다. 토성의 고리는 토성의 적도 주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많은 암석이나 얼음 덩어리의 집합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성의 고리는 하나의 고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개의 고리로 나뉘어져 있다. 이들 고리 사이사이에 간극이라 불리는 틈이 존재하여 토성의 고리를 여러 개로 나누고 있다.카시니 간극은 고리의 면적이 가장 많이 보이는 양끝 부분에서 찾을 수 있는데, 카시니 간극의 안쪽에 있는 고리를 B고리, 바깥쪽에 있는 고리를 A고리라고 한다. A고리는 B고리에 비해 어두워서 A고리의 바깥쪽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A고리는 그 폭이 매우 좁게 보이죠. 따라서 카시니 간극을 찾을 때에는 고리의 중앙부에서 찾지 말고 고리의 가장자리에서 찾아야 합니다.토성의 고리는 지구에서 보는 방향에 따라 보이는 면적이 변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14~15년에 한번씩 토성의 고리가 보이지 않게 된다. 이는 토성의 자전축이 공전 궤도면에 대해서 기울어져 있기 때문으로, 토성이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고리가 보이는 면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해가 잘 안 되시는 분들은 경례를 해보세요. 경례할 때 왼손을 비스듬히 해서 왼족 눈썹 끝에 붙이죠? 왼손을 보면 손바닥이 보입니다. 이 왼손을 그대로 눈 앞으로 가지고 오면 손바닥은 보이지 않고 손의 옆면만 보입니다. 오른쪽으로 옮기면 손등이 보이겠죠. 토성의 고리도 이와 같은 원리로 보이는 면이 달라지고, 가끔 고리가 안 보이기도 합니다.토성이 태양 주위를 한바퀴 공전할 때 고리가 보이지 않게 되는 때가 두 번 있게 되며, 토성의 공전주기가 29.5년이므로 14~15년에 한번은 고리가 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사를 찾아서사국사기고구려그 웅장한 기상만주와 한반도에 있었던 여러 국가들이 고구려, 백제, 신라에 의해 하나로 만들어지면서 삼국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 과정은 기원 후 4세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기를 거쳐서 진행되었다. 삼국은 이 시기에 부족 연맹체의 약점을 극복하면서 점차 중앙집권적인 국가의 형태로 발전했다.고구려의건국고구려 건국의 발단은 부여족의 분열과 이동에서 비롯되었다. 부여가 북부여와 동부여로 나뉘는 과정은 『삼국사기』에 설화의 형태로 다음과 같이 전한다.“부여왕 해부루가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 지내며 후계자를 구하였다. 해부루가 근심에 차서 산책하던 중, 타고 있던 말이 곤연이란 연못에 이르러, 큰 돌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돌을 옮겼더니, 거기에 어린아이가 누워 있었다. 금색의 개구리 모양이었다. 해부루는 하늘의 뜻임을 알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서 태자로 삼고, 금와라고 이름 지었다. 후에 국상(재상) 아란불이 하늘의 뜻임을 전하며, 동남쪽 가섭원으로 나라를 옮길 것을 건의하였다. 해부루는 가섭원에 새로이 도읍을 정하고 동부여라고 하였다. 해부루가 동부여로 나라를 옮기자, 옛 부여 땅에는 범상치 않은 한 사나이가 나타나, 스스로 천제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그 곳을 다스렸다. 그 사나이가 해모수였다.”이 해모수의 아들이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었다. 이후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한 신작 삼년 임술에 천제는 아들 해모수를 부여왕의 옛 도읍터에 내려 보내어 놀게 하였다.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에는 오룡거(다섯마리 용이 끄는 수레)를 탔고 종자 백여인은 모두 백곡을 탔으며 채색 구름은 위에 뜨고 음악은 구름 속에 들리었다. 웅심산에 머물러서 십 여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내려왔는데 머리에는 까마귀 깃으로 된 관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이 빛나는 칼을 찼다. 아침에 정사를 듣고 저녁이면 하늘로 올라가니 세상에서 이를 천왕랑이라 하였다.성북 청하에 하백의 세 딸부여는 구려의 다른 이름으로 고구려의 전신이다. 또한 북부여의 수도는 흘승골성이며, 동부여의 수도는 가섭원이고, 졸본부여의 수도는 졸본이다. 하지만 이 곳들의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그러나 부여는 서기전 4세기경에 성립되어 고구려 제21대 문자명왕에 의해 멸망당하는 494년까지 약 800년 동안 지속된 나라이다. 그 영토는 남으로는 발해만 연안과 요서ㆍ요동, 북으로 흑룡강, 서로는 대흥안령산맥, 동으로는 우수리강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에 걸쳐 있었다.동이'동이'라는 말은 초기에는 하나의 민족을 의미하기보다는 중국의 한족이 자신들의 동쪽에 사는 사람들을 통칭해서 부른 명칭이다. 그렇지만 동이가 단순히 한족의 동쪽에 머무른다는 의미만 갖고 있지는 않다. 동이를 풀이하면 '동방의 이'족이란 뜻인데, 이에 대하여 중국 최초의 문자학 서적으로 후한 때 허신이 편찬한 설문해자는 "큰 것을 따르고 활을 잘 다루는 동방의 사람들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주몽이 활을 잘 다루었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동이족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즉, 활을 아주 잘 다룬다는 것은 동이족의 왕이 될 자질을 갖추었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활을 잘 쏘아 왕이 된 예는 비단 주몽에 한정되지 않는다. 회수 유역의 서언왕이나 유궁의 예왕도 활을 잘 소아 왕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며, 조선을 세운 이성계도 활의 명인이었다. 말하자면 동이족은 나라를 세우는 인물이 갖춰야하는 덕목의 하나로 궁술을 꼽았던 것이다. 그러나 동이족은 단순히 궁술만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후한서라는 책에서는 '동방을 이'라고 하였다. 이는 곧 뿌리이며,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동이족은 대개 견, 우, 방, 황, 백, 적, 현, 풍, 양이 등 9종족으로 나뉘어진다. 이들은 한족의 활동동영역이 동쪽으로 확대되면서 점차 중원에서 밀려나와 중국의 동해안과 북방으로 모여들었다. 한족에 의해 동쪽과 북쪽으로 밀려난 동이족은 한과 예맥으로 불리운다. 주로 발해만을 기점으로 항하 동북 방향쪽에 머무르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그렇게 용감하신 장군께서 운명하시다니 우리 고구려 전체의 큰 손실이다. 참으로 아까운 분이 돌아가셨다 ! 아아, 안타깝구나!""온달 장군님이야말로 장군답게 돌아가셨어.온달 장군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도 이 나라를 위해 힘을 모아 싸워야 해!" 온달 장군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임금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자기 집의 식구가 죽은 것처럼 슬퍼했다. 고구려군은 더욱 나라에 충성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장례를 치르는 날, 묘지에 묻기 위해 관을 들려고 할 때 이상한 일이 생겼다.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 들어 올리려고 해도 온달 장군의 관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온달 장군님께서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 이렇게 땅에서 안떨어지는가 봅니다. 어쩌면 장군님의 부인께서 오시면 죽은 혼이라도 마음을 돌리실지 모르겠습니다."어떤 사람의 의견대로 평강 공주가 온달 장군의 관을 쓰다듬기 위해 왔다. 평강공주는 슬피 울면서 온달 장군의 넋을 위로했다."온달 장군님, 가시는 이 길을 너무 원통해 하지 마세요. 당신은 장렬하게 싸우다 돌아가셨어요! 모든 백성들도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답니다. 온달 장군님, 이 고구려는 우리 모두 힘을 합해 잘 지키겠사오니 부디 눈을 감으십시오!"그러자 기적같이 온달 장군의 관이 들어올려져 장사를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온달 장군은 어린 시절의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평강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여 공주의 힘을 크게 입어 훌륭한 인물이 된 것이다. 온달 장군은 죽는 그날까지 나라를 사랑하고 공주를 아꼈던 고구려의 장군이었다.♣토론해볼까요?‘고구려 민족은 중국 동북 지역에서 발족한 소수민족으로 전반적인 발전 역사를 거치면서 찬란한 문화를 창조했으며, 이는 중화민족의 역사문화 구성에 빛나는 한몫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의 역사일까? 어린이 여러분들의 생각을 적어보세요!바로 요나라(거란)의 소손녕과 고려의 서 희가 벌인 역사 담판이다. 그 역사 담판의 주제도 바로 고구려의 정체성 문제였다.소손있었다..사적 제 12호인 공산성은 총연장 2,660m의 고대성곽으로 해발110m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는 자연의 요지로서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원래는 백제시대의 토성이었던 것을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다시 쌓은 것이다. 성 안에는 웅진도읍기로 추정되는 왕궁지를 비롯하여 백제시대 연못 2개소, 고려시대 때 창건한 영은사, 조선시대 인조대왕이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쌍수정과 사적비, 남문인 진남루, 북문인 공북루 등이 남아있다. 특히 나중에는 청. 일본 등의 외세를 물리치기 조선 말기에 일어난 동학농민전쟁(1894년)때에, 이곳 공산성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동문과 서문은 최근에 복원하였으며 주변에는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공산성은 역사와 문화가 함께 정이 깃든 수려한 자연이 있기 때문에 더욱 값있게 보여지고 있다.성곽에 대하여성곽은 외적의 침입이나 자연적인 재해로부터 성안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인위적인 시설이다. 즉 성은 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목재, 흙, 돌 등으로 높이 쌓아 올린 큰 담으로 내성과 외성을 지칭한다. 안쪽의 것을 성 또는 내성이라 하고, 바깥쪽의 것을 곽 또는 외성이라 하며 도성일 경우에는 바깥쪽의 것은 나성이라 한다. 성은 지형적인 조건과 특성에 따라 축성되는데 우리나라는 산지가 많아 산성이 발달하였다. 우리나라 성곽은 성벽의 축성 재료로는 나무, 흙, 돌, 벽돌 등이 사용되었는데 그 재료에 따라 목책성, 토성, 석성, 토석혼축성, 전축성 등이 있다.삭토법 - 천험의 지세를 이용하여 지형의 안팎을 적절히 깎아 급경사의 성벽을 축조하는 것이다.판축법 -흙을 단순히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두께로 흙을 펴서 다진 다음 다시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정성을 들여 성벽을 토축하는 것이다.성토법 - 주변의 흙을 이용하여 일정한 높이까지 쌓아 올리고 마감높이에서 두들겨 일정한 성벽형태를 축조하는 방법이다.보축법 - 자연지세 자체가 조선 초에는 폐사찰이 된 것 같다. 미륵사가 폐사지가 되어 목조건축은 모두 불타고 무너져 버리게 되었을 때도 석탑만은 건재할 수 있었다. 원래 동탑, 서탑이 똑같은 구조였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동탑은 완전히 파괴되어 없어지고 서탑 만이 6층까지만 간신히 남아 그 뼈대만 보여 주게 되었다. 그러다 일제시대에 서탑의 서쪽이 크게 무너져 내리자 일제는 보존이라는 명목하에 시멘트로 짓이겨 놓았다. 전체의 반 이상이 무너져 버렸지만 서탑의 동쪽면 6층까지는 원상이 온전하여 백제 건축의 구조적 특징과 세련미를 우리는 읽을 수 있다. 미륵사탑은 석탑이지만 목조건축을 충실히 반영한 석탑이므로 목조건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1993년 미륵사지 발굴 작업이 '동탑 복원작업'으로 이어져 5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완공된 동탑은 돌을 정으로 쪼개 만든 자연석이 아니라, 기계로 깎은 인공석으로 만들어서인지 완전히 시신 같은 건물이었다. 뽀얀 돌빛은 창백한 빛깔로 변했고, 반듯한 느낌의 예각은 싸늘한 날카로움으로 변했고 정확한 비례감은 고지식한 면비례로 변했다. 오늘날 기계만 과신하고 손의 묘를 가볍게 생각한 탓이리라. 그러나 그런 형식상의 차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정신에 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는 공사계획과 견적에 따라 석조물을 단지 복원한다는 차원이었고, 그 옛날 백제사람은 절대자를 모신다는 종교하는 마음으로 이 석탑을 만들었으니, 이런 결과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한 쌍의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때 만든 것인데 그 고전적 기품이 미륵사탑과 너무 잘 어울린다. 미륵사지의 당간지주는 반듯한 균형미와 절제된 장식성으로 늘씬한 아름다움과 함께 힘을 유지하고 있다.날짜날씨답사주제답사장소답사내용느낀점신라-아름다운 천년의 역사신라의 건국북방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무렵, 한반도의 동남부, 경상남도 지역에서도 부족 국가들이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이 부족 국가 중의 하나가 사로국이었다. 사로국은 신라의 옛 이름이다. 사로국의 건국 설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