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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유럽의술문화 평가A좋아요
    Ⅰ{유럽의 술문화에 대한 보고서1. 술이란 무엇인가고고학에서는 술의 역사를 20만년전으로 추측하고 있다. 술이 인간의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수렵 시대에 바위틈이나 움푹 패인 나무 속에서 과실이 자연적으로 발효되어 나타났다고 한다. 먹을 것이 한정되 있었던 당시의 사람들이 이 진귀한 과즙을 마시고 얼마나 황홀경에 빠졌을 지를 상상하면 웃음이 날 정도로 그들의 즐거움이 잘 이해되지 않는가. 유목 시대와 농경 시대 사이에 곡류에 의한 술이 만들어진 후로 술은 다양화 되었다. 현재 곡주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맥주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부장품에 술항아리를 받쳐 든 여인상이 그려져 있는데, 맥주를 왕에게 바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일설에 의하면, 비에 젖은 빵이 발효되어 맥주가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술은 기후의 영향을 매우 받는데, 포도 재배가 잘 안되는 독일, 영국 등지에서는 그래서 맥주가 개량되어 애용되었다.술은 마치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선물처럼 과일이 발효되어 처음으로 인간의 역사에 등장하였고, 마침내 작물을 경작할 수 있게 된 인간은 곡주로 다양한 술을 등장시켰다. 다양한 음식들이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도 술에 대한 애정이 고대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은 오랜 시간동안 인간의 몸에 축적된 술의 향취를 후세가 계속 이어받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1. 술의 의미{< 최후의 만찬 - 출처 : 인터넷 이미지>>주정(酒精)에서 정신의 정과 같은 글자를 쓰는 것처럼 유럽권에서는 스피릿(Spirits)이 정신외에도 술 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옛부터 술은 단순한 음료의 기능과 도취ㆍ환각제와 같은 효과로 의학치료 기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종교의식,제례 행사와 같은 정신적인 행사에서도 주요한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 예수는 가나안의 혼례에서 직접 술을 빚기도 하였으며 마지막 만찬에서는 열두 제자와 포도주를 마셨다하니, 분명 술은 육체에 미치는 영향 외에도 정신적인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들은 술을 단순한 음료로서만 이용하지 않고 보다 한층 높은 의미를 부가하여 함께 하는 것일까. 잘 알고 있 다시피 술의 주요 성분은 알코올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건강에 도움을 주는 물질들과 당분, 여러 종류의 펩타이드, 핵산, 칼슘, 철과 같은 무기질과 비티만 B등 100여종의 성분이 들어 있다. 술마다 제각기 독특한 향과 향취, 색을 갖는 것은 이 성분들의 작용 때문이다. 이러한 성분들의 작용으로 술은 식욕을 증진시키며,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 비록 절제를 잃고 많은 양을 취했을 경우 건강을 해치고 오히려 정신에도 피폐한 결과를 초래하기는 하나 적당한 양의 술은 인간의 삶을 더욱 윤택하고 여유롭게 해주는 신의 선물이다. 게이트는 물은 세계 사람들을 분리시키기도 하지만, 술은 그들을 융합시키는 것이다 라고 표현했을 만큼 술을 단순한 음료로서가 아닌 보다 더 많은 기능을 함축하고 있는 매개체로 보았다. 따라서 술이라 함은 단순한 성분 분석외에도 인간에게 미치는 보다 정신적인 기능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지혜로운 선조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걸음 외에도 예술 분야에서도 그 윤기를 더하고 정서의 정화제로서의 술을 함께 보았으니 왜 술이란 글자에 정신이 함께 내포되어 있는 지를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2. 유럽의 술에 관한 신화신화는 역사의 암호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역사가 문서로 정확히 기록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오래된 역사를 말해주는 것이니, 신화는 그 대표적인 구전 역사이다. 술은 고대 신화에도 등장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커스는 열 두 신의 자리에 끼진 못하더라도 엄연한 술의 신으로 불려지고 있다. 혹은 디오니소스라고 불려지기도 하는데, 디오니소스는 임신6개월에 어머니 세멜레가 죽자 제우스 대신의 허벅다리에 옮겨져 거기서 세상 빛을 보았으며 요정들의 양육과 뮤즈들, 사튀로스들, 늙은 실레노스들의 교육을 받으며 토라키아 지방의 뉘사산에서 자랐다.디오니소스는 뉘사산에서 포도를 발견하고 와인을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디오니소스가 뉘사산의 수업을 마치고 그리스로 돌아왔는데 아타카주 이카리오스란 사람이 그를 환대하여 디오니소스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에게 포도나무를 주고 와인 담그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카리오스는 이 신가한 와인을 근처의 목동들에게 한잔씩 권하였더니 달콤한 맛이 마시고는 취하여 눈알이 아찔한지라 독을 타먹인줄 알고 당장에 이카리오스를 죽이고 말았다.이카리오스는 술의 첫 순교자인 셈이다. 그리스의 아티카주에서는 '디오니소스 小祭' 혹은 '마을'이라 하여 12월에는 신에게 와인을 바치는 '포도주제'와 2우러말 경에는 지난해에 담근 술을 처음 맛보는 꽃놀이 축제가 있어 사흘동안 노래와 춤을 추며 즐기는 행사가 있다.또,
    인문/어학| 2003.07.15| 20페이지| 1,000원| 조회(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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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렬사견학문 평가A+최고예요
    옛 시간이 기억되는 곳 - 충렬사를 다녀와서충렬사는 아는 후배에게서 추천받은 곳이다. 타지역에서 유학온 지 몇 년이 되었거만 지독한 길치로 인해 여즉 부산 지리에 깜깜한 내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서 추천해 준 곳이라는 것은 도착하고 나서야 알아챈 사실이다. 한참을 버스를 타고 달리다 조금은 시골길 같은 낯설은 풍경들이 보일 거라고 상상했던 먼 거리가 실은 예상시간을 한시간이나 단축한 제법 가까운 거리였던 것이였다. 처음 충렬사라고 하기에 무슨 절간인가 생각했다가, 사당이란 말을 듣고는 한적한 곳에 옛 시간들이 축적된 고즈넉한 기와집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창밖의 풍경들은 항상 보던 도시의 그것이였고, 친절한 아주머니가 가르쳐주신대로 내린 곳 역시 번잡한 도시 거리였을 뿐이였다. 아마 길을 조금 헤매고 간신히 발견한 충렬탑이 아니였다면, 이 거리 어느 곳에 고즈넉한 사당이 존재할 수 있겠냐고 걸음을 되돌렸을 지도 모른다. 아담한 산 아래의 풍경또한 내가 상상했던 것이 아니여서 순간 과연 이곳이 오늘 내가 찾을 곳으로 적합한 지가 의심스러워졌다. 시대의 풍화로 옛시간의 잔재가 쌓인 기와는 달리 없고 정갈하게 깔끔한 기와집들이 보였다. 충렬탑은 그 위세와 용렬함이 돋보이는 장군과 병사의 기개가 돋보이고 하늘로 높이 솟은 긴 탑이 우아함과 호국정신의 기개를 잘 드러낸 듯 싶었으나, 도무지 도로가 몇 개로 나눠지는 지 많은 차들이 이리저리 교차하는 도로를 마주보고 있던 터라 숙연히 감상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그래서 충렬사에 당도했을 때 내 기대감은 벌써 반이 증발되고 사라진 듯한 허탈감이 들기도 했었다. 과연 기대가 너무 컸음인가, 아니면 사당이라는 이미지를 너무 획일적으로 생각했음인가.마치 공원처럼 탁 트인 충렬사의 마당에는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가족단위의 사람들로 제법 북적거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기차 타고 여행갈 듯이 벙거리 모자를 푹 둘러쓰고 카메라로 금방 풍경을 잡아낼 듯한 내 모습이 오히려 편안한 가족분위기를 내는 이 곳에 맞지 않을 있었다. 잠시 쉴 요량으로 적당한 의자를 찾아보다 발견한 것은 한 구석에 있는 임란동래 24공신 매안감고비였다. 한 구석에서 발견한 작은 그 비를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날 내가 서 있던 명상의 숲이라 이름된 곳에는 두세명의 사람들 밖에 없었고, 유난히 그곳에서는 새소리조차 나지 않는 적막함이 흐르고 있었고, 한 구석에서 발견한 작은 유적비는 쓸쓸함마저 돌 정도로 초라해보였다고.. 계단에서 처음 올라오자마자 본 제법 큰 공적비와는 달리 그 작은 비는 사각의 틀 중앙에서{햇볕을 쬐고 있었다. 임란 7년동안 동래 지방 출신의 공신들 중 왜전 토벌에 혁혁한 공을 세운 66명의 선무원 중공신 가운데 24인 공신을 선정하여 그 공신비를 묻어두었다는 설명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다, 그 작은 비석을 둘러싸듯이 서있는 나무들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에 눈부시게 빛나는 비석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도저히 고개를 깊숙히 숙여 인사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4인의 공신비가 묻혀있는 곳을 사진만 덜렁 찍고 가기에는 그곳의 쓸쓸함이 조금은 가슴 아팠기 때문이였다.{명상의 숲안에는 털머위, 붓꽃, 비비추등 붓꽃외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풀들이 녹음의 향기를 내는 나무 아래 앙증맞게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인상적이였던 것은 그 안에 있는 의자들은 사람이 지나가도록 만들어놓은 길 쪽으로 향한 게 아니라 바로 녹음을 향해 뒤돌아 세워져 있던 풍경이였다. 그 세세함의 정성에 조금은 아까의 쓸쓸함이 정화된 듯한 기분이 들어 나 역시 의자에 앉아 눈앞에 앙증맞게 심어져 있는 풀들과 진한 향기가 베어나오는 나무를 잠시 감상했다. 다른 곳으로 가기위해 내려오다 작은 무언가가 또르륵~ 저 앞을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다람쥐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색깔이 거무튀튀한 것이 분명 무어라 이름을 들어봤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아 답답했지만, 다람쥐가 아니라도 이런 작고 귀여운 짐승을 보았다는 것이 반가워 얼른 사진 찍었다. 사진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못나와서 좀 실망스럽긴 하지만, 쪼조들이 보인다. 찬찬히 일일이 읽다보니, 그 시조마다 담긴 그 시대의 비통함이 절절히 묻어나 있어 숙연한 기분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은 컴컴하고 싸늘한 냉기가 조금 서려있는 기념관 안에는 한 벽을 가득 채우는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처음 본 그림은 부산분적순국도. 그림의 크기나 그 표현의 역동성이 하도 생생하여 이걸 다 찬찬히 보려면 한참을 걸리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사진촬영 금지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마침 관람객이 나 밖에 없었던 지라 카메라를 슬그머니 얼굴쪽으로 올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지금 바깥날씨가 어때요? 라고 사람 말소리가 들린다. 화들짝 놀라서 뒤돌아보니 충렬사를 뜬 큰 모형대 뒤로 여자분이 앉아 있었다. 그곳을 지키는 직원인 듯 책을 읽다가 사람이 들어오니 말을 한번 걸어본 듯 한데, 만약 내가 행동이 아까처럼 굼뜨지 않고 후다닥 카메라로 그림을 찍었다면 그분에게 무슨 망신을 당했을 지 얼굴이 화끈거려서 말까지 더듬지 않았나! 화끈거리는 얼굴을 진정시키고 시간이 걸려도 그림들을 찬찬히 감상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부산분전순국도는 당시의 전쟁상황을 너무도 리얼하게 표현되어 있어, 서늘한 기념관 안의 냉기까지 그 분위기를 더하여 팔에 소름기가 돋을 지경이였다. 임진 음력 4월 13일 오후 5시경 왜군 소서행장이 이끄는 18,700명의 대군이 부산진성을 공략하자 성주 정발장군과 군,관,민이 거센항전으로 대항했으나 결국 정발장군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순절하였다. 그러나 왜장 평조신은 우리 군사가 부산에서 크게 좌절하였다 라고 평했을만큼 우리 군사들의 항쟁이 과히 격렬하지 않았겠는가. 도래보국충정도 역시 전쟁의 격렬함속에서도 숙연함을 안겨주었는데, 송상현공의 충효가 정발장군 못지 않았기 때문이였다.4월 15일 아침 왜적이 조총으로 동래성을 침공하여 닥치는 대로 살생하는 가운데 우리의 관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왜적들에게 대항하고 있었다. 숨가뿐 전투현장의 한편에서는 송상현이 후퇴하지 않고 갑옷위에 조목을 입고 투구대신 사모를 쓴 뒤 호상에장군들과 창과 칼을 든 관군들 사이에서 그들 못지 않은 항쟁을 펼치고 있는 평민들을 그제서야 알아채고 지나온 그림들사이에서도 발견하여 다시 보게 되었다.제대로 된 무기가 없어 갈퀴같은 농기구등으로 무장하고 갑옷하나 없이 백의의 한복 그대로 입고 나와 헤진 버섯이 없으면 맨발으로라도 나와 칼을 들고 설치는 왜군을 상대하였으니 - 그 광경을 보지 않고서도 비통함이 느껴져서 그들의 모습 하나하나를 손으로 쓰다듬고 싶을 지경이였다. 농사와 땅 외에는 배운 것이 없이 살아온 그들이 나라를 지키고자 그나마 가지고 있는 농기구들을 갖고 나와 전쟁에 능숙한 왜군을 상대했으니, 의연히 후퇴하지 않고 싸운 장군들의 충절보다 못할 것이 없지 않은가. 하나같이 잘 갈은 칼을 들고 설치는 왜군을 마주하며 평생 땅외엔 아는 것이 살아온 순박한 농군들이 느꼈을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그 기개가 흙물외엔 묽힐 게 없던 백의위에 흐뿌려진 핏물처럼 붉디 붉게 보여 그림 앞에서 손을 모으고 합장을 했다. 마음같아서 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말이다. 그림 외에도 갑옷 및 투구가 전시되었는데, 갑옷과 투구 하나 하나 마다 온전히 남아있는게 없었다. 낡고 헤진 갑옷은 비단 시대의 풍화때문은 아니였을 것이다. 단단한 투구의 문양이 문드러지고 마치 바로 어저께 흙먼지라도 묻어난 것처럼 낡아보이는 것또한 시대의 흐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잊혀진 시대의 무게감만큼 당시의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격렬하고 험하고 두려운 것이였는 지는 낡고 헤진 갑옷과 투구로 짐작이 충분히 되었다. 오랜시간의 잿빛으로 변한 시간의 무게가 저 투구와 갑옷에 고스란히 묻어있으니 오늘은 내가 다음 날은 다른 사람들이 찾아와 바로 지금의 내가 느끼는 이 숙연함을 누군가가 이어서 계속 느낄 것임을 알기에 무거운 걸음을 조금은 가벼이 털고 기념관을 나왔다.{두 번째의 관문을 오르니 의열각과 정화 기념비가 보인다. 임진왜란때 동래성에서 기왓장으로 왜적과 싸웠던 무명의 두 의녀와 그림에서 보았던 숭상현공과 정발장군을 의 자세에 솔직히 나는 조금 감동까지 했었다. 할머니를 따라 본전으로 오르고 향을 피워둔 제단 앞에서 다시 합장을 하는 할머니를 따라 나 역시 이번에는 좀 제대로 된 자세로 합장을 했다. 본전안에는 여러 나무 위패가 세워져 있었는데, 부산을 지키다 선열한 선열 22위와 동래,부산진,다대진, 부산포해전에서 전사한 무명용사 4위, 그리고 이병 61위를 모신 위패였다. 이름이 새겨진 혹은 기억될 사람들의 위패가 비단 저들에게만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닐터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기억에 사라져 간 것을 안타까워 하며 저 많은 위패 하나하나에 눈길을 한번씩 주었다. 충렬사 입구에 당도했을때는 햇볕에 쨍쨍했던 것이 본전에 도착했을 때는 사진처럼 조금 흐려져 있어 아까의 빛나는 녹음대신 그늘진 짙푸른 녹음이 바람따라 스산히 흔들리고 있었다.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청푸른 기와청을 한참 올려다보고 있으니, 귀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스산한 나뭇잎자락 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본전 뒷편에 심어져 있는 대나무의 잎새의 흔들리는 소리가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애절하여 쉽사리 본전을 떠나지 않고 발길을 머무르게 한다. 그때 하늘에서 까마귀 몇마리가 날아오르며 까악 까악하고 울어댔다. 카메라를 눈에 대고 까마귀 두 마리가 날고 있는 하늘을 찍으려는데, 푸른 청기와대쪽으로 날아가 사라지는 통에 황당히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아마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어도 사진을 찍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본전의 왼편에는 약 270년 된 모과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스산하게 흔들리는 가냘픈 대나무와 대조적으로 굳건하게 서있는 그 나무는 한눈에 보아도 시간의 흐름이 무겁게 느껴지는 오래된 향취가 느껴졌다. 270년의 시간이 풍화시켰을 나무둥치의 구멍들마저 아름답게 보인 것은 모과나무 특유의 향기나는 자태때문이지 않나 싶다. 우리 학교 정문으로 들어설 때 보이는 그 나무 역시 우리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였기에 본전 옆에 서 있는 그 오래된 모과나무 역시 오래 오래 감상해도 질리지 않았
    인문/어학| 2003.05.29| 6페이지| 1,000원| 조회(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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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과학] 핵전쟁에따른 환경오염 평가A좋아요
    Ⅰ. 서론『어느 해 8월 어느 날 아침 8시경, 서울 광화문 상공에 번쩍이는 섬광이 터졌다. 1,000개의 태양을 합친 것 보다 밝은 빛을 내뿜었다가는 눈깜짝할 사이에 지름 30m의 불덩어리로 변하면서 태양의 표면 온도 보다 50배나 더 뜨거운 30만도의 높은 열을 토해 냈다(이는 히로시마에 투하했던 것보다 더큰 20kt짜리 핵폭탄이 터진 것이다). 폭발과 동시에 강력한 압력파를 발생시킨 불덩어리는 1초 후에 최대의 지름에 이르렀다가 10초동안 줄어들고는 수킬로미터 솟아오르는 거대한 버섯구름으로 바뀌어 갔다. 광화문에서 5km 안팎의 여의도에서 이 같은 현상을 우연히 목격했던 사람들은 너무 밝은 빛으로 인해 망막에 화상을 입고 실명하게 되었고, 100km나 떨어진 주민들까지도 태양 광선의 30배나 되는 강력한 빛과 열을 받아 일시적으로 실명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만약, 그보다 덜한 12.5kt급의 히로시마 원폭(LITTLE BOY)피해 결과를 대충 훑어보자. 폭발 중심 반경 1km안에 있던 사람은 거의 대부분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살아남은 부상자들도 4개월 내 54%가 숨져 45년 그 해 도시 인구의 절반이 죽었고, 5년 뒤인 50년까지 히로시마 전체 인구의 70%가 숨졌다. 또 히로시마 도시 내의 건물 가운데 90%가 파괴되었으며 파괴된 건물의 70%는 완전히 붕괴되었다.이를 근거로 서울 광화문 상공의 폭발할 경우를 추정해본다면ㆍ반경 1km안에 있는 사람의 70%가 그 자리에서 숨진다ㆍ반경2km안에서는 30%r정도가 그 자리에서 죽는다.ㆍ반경5km안에서는 그 자리에서 숨지는 사람이 있게 된다ㆍ반경 2.5km안에 있는 건물은 일단 피해가 간다고 해야 할 것 이며ㆍ피해 건물 중 절반 이상은 완파를 면치 못하며ㆍ고층 건물은 붕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ㆍ반경 4km인 여의도까지 주민은 폭발 순간 100만분의 1초만에 48.8 의 화상을 입게 된다.만일 폭탄이 지상에서 높은 곳에서 폭발할수록 폭풍과 열 피해는 상대적을 줄어들지만, 방사능 피해는 오히려 더 체의 어느 부위에 집중적으로 받았느냐 하는 것이다. 방사선 피폭선량이 동일한 경우에는 한번에 일시적으로 받는 경우가 수차에 걸쳐 조금씩 받는 경우보다 그 영향이 크게 나타나며 회복도 느리다.방사선의 인체 영향은 일반적인 질병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차이가 다소 있지만, 그 차이는 미미하다. 방사선은 일정치 이사의 피폭을 받게 되면 그 영향이 피폭된 자신에게 신체적인 영향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이지만, 생식세포에 변화를 일으켜 피폭된 사람의 자존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인 영향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 또 만성적인 신체적 영향은 소량의 방사선에 장기간 피폭되는 과정을 통해 살아남은 세포에서 일어난 손상이 그대로 남아 있다가 세월이 지나게 되면 백혈병, 암, 백내장 및 태아에 영향을 주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잠복 기간은 세포의 조직, 신체 기관의 종류, 나이, 피폭선량 등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10~30년 후에 나타난다. 그러나 방사선 피폭에 의한 만성적 영향이나 증상은 방사선 이외의 다른 원인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 장해원인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백내장은 수년 내지 수십년에 걸쳐 증상이 일어날 수도 있고, 백혈병은 약 14년안에, 갑상선암, 유방암, 폐암, 피부암 등 각종 암은 20년 이상이 된 후에도 그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그렇다면 사람들은 한꺼번에 얼마만한 방사선에 노출되면 틀림없이 죽게될까?학자들은 70만밀리렘이라고 말한다. 피폭선량이 이 치사량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중요 세포의 세포사로 인하여 뇌사, 위장사 및 골수사를 일으키게 되고, 중추 신경계나 위장 계통에 치사선량의 피폭을 당했을 경우에는 현재 치료가 불가능하다.방사능에 의한 피해 사례중 네바다의 원자탄군인이였던 쿠퍼의 예를 들자면, 그 끔찍성을 잘 이해할 것이다. 1957년 스모키라고 명명된 원폭 실험에 참가한 쿠퍼는 11년째 되는{1968년 백혈병의 징후를 발견하고 1978년에 사망할때까지 투병생활을 했다. 백혈구가 전혀 없는 위독한 상태를 맞기도 가연성 재질의 3/4이 불태워지며 연기들은 지면과 폭발 지점 상공 9 km 사이에 균일하게 분포하는 것으로 가정하였다.연기와 아산화질소(nitrous oxide)와 관련된 가정들이 요구된다. 연기의 50%는 입자들을 수집하고 비로 성장시키는 수분과 상승하는 동안에 제거된다. 연기 입자들의 제거는 사흘 안에 대류권으로부터 그들이 반 정도로 계속 제거되도록 가정하였다. 그러나 성층권으로부터 연기 입자들의 반 정도의 제거에는 30일 정도 소요된다. 부수적인 가정은 대기 중에 주입되는 아산화질소가 오존층을 고갈한다는 것이고 다시 원상태로 복구되기 위해서는 수 년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ⅳ. 핵겨울에 따른 오염많은 핵무기들이 폭발하면,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증발시킬 뿐만 아니라 수 km 반경 안에 있는 모든 구조물을 파괴시킬 정도의 거대한 화구를 만들어 낸다. 또 대규모의 삼림 화재에 의한 연기와 수백만 톤이나 되는 먼지가 대기 중으로 불려 올라가게 된다. 이런 검은 구름은 수주일 동안 지구를 덮음으로써,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 광선의 양을 감소시킬 것이다. 곧 이어 2~3일 내에 지구의 기온은 영하로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어, 정오에 밤이 찾아오고, 낮은 오싹한 황혼이 되게 하는 핵겨울이 지구를 엄습하게 된다. 핵겨울이 내습하면 핵폭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독한 추위에 시달리고, 농작물과 가축들은 시들어 죽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인류는 극심한 기아에 직면할 것이다. 핵겨울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전쟁이 일어난 때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비는 대기 중의 먼지 입자를 씻어 내리기 때문이다. 만일 전쟁이 건기에 일어난다면 입자들이 대기 중에 오랫동안 남게 되어, 다음의 우기가 다가와 비가 올 때까지 대류권 내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층권까지 올라간 입자들은 수년간 더 머물게 될 것이다. 핵전쟁이 우기에 일어난다면 올라간 입자의 약 95%가 40일 이내에 씻겨 내려와 그 충격은 덜 할 것이다. 핵겨울 시나리오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 주요한 효과는 성층권으로 주입되는 질소산화물 때문에 나타나는 오존층의 고갈이다. 오존은 화학반응에 의하여 연속적으로 발생되지만 핵교환 후에는 오존의 생산이 적어지게 된다. 기선 시나리오는 핵전쟁으로부터 고갈되는 최대 오존의 양이 17%라고 추정하였다. 폭발이 더 높은 곳에서 그리고 더 크게 일어나면 오존층의 파괴도 더 크게 일어나게 된다. 기선 연구는 질소 산화물이 대기 중에 10에서 12km 범위에 주로 농축되어 있다고 가정하였을 때 오존층이 17% 감소된다고 하였다.핵교환이 일어난 수 개월 후 최저값에 도달하게 된 다음 오존층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데는 수 년의 세월이 걸린다. 이것의 추정은 미국 로렌스 리버모아 국립 연구소(Lawrence Livermore National Laboratory)의 연구원들이 1차원 모델을 사용하여 얻은 것이다. 이 수치 모델이 추정한 결과는 정상적인 오존 수준으로 되돌아 가는 데는 5년 또는 6년 정도 걸린다는 것이다.4 햇빛의 감소핵교환 후 나타나는 주된 요소는 대기를 통하여 투과하는 햇빛의 간섭이다. 광학 두께(optical depth)는 대기를 통과하는 햇빛의 투과를 측정하는 한 방법이다. 구름이 많이 낀 날의 광학 두께는 2를 약간 넘으며 보름달이 비치는 날의 광학 두께는 약 15이다. 이러한 값들은 대규모 핵교환이 일어난 후 햇빛의 투과를 비교하는데 사용된다. 광에 대한 임계값은 광합성의 한계점으로 그 값은 약 5의 광학 두께이다. 대기가 식물 성장에 대한 최초 수준 아래로 광 레벨을 유지하는 이 임계 한계값은 시간의 길이와 함께 대단히 중요하다. 여름철에 핵교환이 일어난 후 만약 광학 두께가 너무 길어서 식생을 죽이게 된다면 전세계의 작물 실패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식량 생산의 부족은 인류의 생존에 극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5 기온시간에 따른 광학 두께의 변화들이 핵교환 후 예상되는 온도를 계산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25일 후 북위 30°에서 70° 사이에 위치하는 장소에서 기선 가정에 사류 혼합은 11km이상에서 발생한다. 대류 구름의 밑면의 고도는 보통은 1 내지 2km 고도에 나타나는 대신에 11km이며 구름은 11km에서부터 확장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는 보통 하층 구름 대신에 대단히 높은 구름들이 덮히게 될 것이다. 더욱이 구름의 하층 한랭 지역은 얼음 결정으로 형성되고 온난한 상층 대기 내에서는 액체수(liquid water)로 형성된다. 강수 형태는 우박, 진눈깨비, 그리고 눈으로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지표면에서부터 11km까지는 한랭공기가 존재하고 그 위 상층 공기는 온난 공기이기 때문이다.8 바람예상되는 바람 변화의 계산 또한 이루어졌다. 대규모 핵 교환은 북위 30°에서부터 남위 30°까지 확장되어 있는 강한 서풍 바람대를 가진 상층 대기를 더욱 더 강화시키게 된다. 자오면 순환(meridional circulation) 또한 변하게 될 것이고 이는 기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열적도상의 상승 공기를 가지는 적도 부근의 대류 활동은 일반적으로 북반구와 남반구를 분리시킨다. 북반구 내에서의 가공할 만한 연직 운동과 가열은 순환에 따라 북반구 내에서 적도 상공 위로 상승하는 공기를 가지고 남위 0°에서부터 30°까지 하강하는 세포 순환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것은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에 상당한 혼합을 일으키도록 한다. 그러므로 비록 효과는 적다고 하더라도 남반구 또한 북반구의 핵교환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9 기타 효과핵 교환 후 복사 안개(radiation fog)는 지표근처 공기의 냉각에 의한 대단히 한랭한 지면 때문에 보통 나타난다. 안개는 지표면에서 한랭 온도가 유지되는 시간만큼 지속된다.구름량(cloudiness)과 강수 형태는 대류권 내의 억압된 대류에 의해서 많이 변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반향을 가지게 된다. 대류권이 대부분의 수분을 계속적으로 함유하기는 하나 전체 대류권이 대단히 안정화되기 때문에 적은 강수를 유도하게 될 것이다. 핵 교환 후 지구 상의 모든 상층 구름의 효과들을 추정하는 것은 어것이다.
    인문/어학| 2001.12.05| 14페이지| 1,000원| 조회(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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