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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관 제조공정의 이해
    ▣ 강관 제조 공정의 이해1. 슬리팅=> 코일을 생산할 강관의 외경에 맞게 폭을 설정하여 절단하는 공정.2. 입측설비1) Uncoiler : 코일을 공정에 사용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설비.2) Leveller : 코일을 교정하여 성형기에 공급해주는 설비.3) Shear Welder : 연속작업이 용이하도록 코일끼리 연결해주는 용접기.=> 국내 중경기는 용접하지 않음.4) Looper : 코일간 용접시 작업을 중단하지 않기 위하여 미리 코일을저장하여 연속작업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설비.5) Edge Conditioner : 소판의 양측 단면에 마무리 가공을 통하여 제품품질 향상을 도모하는 설비.3. 성형=> 슬리팅 된 Skelp를 조관공정의 Roll에 의해 연속적으로 관의 형태로성형시켜, 용접 공정으로 이송하는 공정.4. 용접=> 관의 형태로 성형된 Skelp를 용접하여 강관을 제조하는 공정.1) ERW : 전기저항용접 방식으로 생산성이 높다.2) SAW : 아크 용접으로 Spiral 및 R/B에 사용.5. 비드제거=> 용접시 생성된 내외면의 비드를 비드기를 통하여 제거하는 공정.6. 비파괴검사(On-Line NDT)=> LINE이 연속작업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태에서 비파괴검사를 시행하는 공정.(냉접 등 품질불량을 사전발견하여 조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7. 용접부 열처리(Post Seam Annealing)=> 용접부에 열을가하여 용접부의 조직을 세밀하게 만듬으로써 용접부의품질을 향상시켜 주는 공정.8. 공냉대=> 용접부 열처리로 열이 가해진 제품을 상온에서 식혀주는 공정.9. 정형=> 성형 및 용접을 통하여 나온 강관을 규정된 외경으로 맞추어 주는 공정.10. 절단=> 수요가가 원하는 길이로 강관을 절단.Press Cutter : 급속절단이 가능하나 절단부 품질 저하(소구경)Bite Cutter : 절단부 품질이 양호하나 절단시간이 길다.11. 교정=> 용접 및 열처리 등에 의해 휘어진 강관을 교정롤을 통과시킴으로써 직진성을 향상시키는 공정으로 진직도를 높힘.진직도는 통상 2/1000이내이지만 관리는 1.5/1000으로 한다.12. 면취=> Field에서 강관끼리 용접 연결 사용하는 경우 용접성을 향상시키기 위하여관단에 베벨을 치는 공정. (일반적으로 베벨각은 30도가 사용됨)13. 수압시험=> 강관속에 고압의 수압을 가함으로써 용접부의 기밀성을 검사하는 공정.규격에 따라 필수 또는 선택사항이다.14. 비파괴 검사(NDT)1) 침투탐상시험(PT) : 침투액이 결함내부로 침투할 수 있는 표면개구 결함검출에 적용.2) 자분탐상시험법(MT) : 자기현상을 이용한 탐상법으로 철강 등의 강자성재료의 표면 개구결함이나 표면 근처의 결함 검출에 유효.3) 누설자속탐상시험법(MFLT) : 자분을 사용하는 대신 적당한 자계감응센서를이용하여 누설자속밀도의 분포와 강도를 계측하고 이것을 전기신호로 변화시켜 결함을 평가하는 시험.4) 와류탐상시험(ECT) : 강관내부에 유도전류(와전류)를 흘리어 표면 및 표면근방의 결함을 검출하는데 사용.(내부결함의 검출은 어려움)5) 초음파 탐상시험(UT) : 초음파가 갖고 있는 물리적 성질을 이용하여 강관에존재하는 결함을 검출하는 시험.15. 육안검사=> 비파괴검사를 통하여 나온 강관을 다시한번 육안으로 검사하는 공정.16. 후처리1) 도금 : 용융아연도금을 통하여 강관의 방식성을 높혀준다.전처리 -> 플럭스처리 -> 건조, 예열 -> 도금 -> 내외면 브로잉 -> 냉각 -> 검사2) 나사 : 강관간의 연결을 용이하기 위하여 관단끝에 나사를 설치하는 공정.(전선관)3) 마킹 : 강관의 외면에 제품 규격 및 조관사의 이름을 마킹. (특정한 경우 노마킹)4) 코팅 : 강관의 내식성을 높이기 위하여 외면에 특수액을 사용하여 코팅하는 공정.=> Varnishing, 유성Oiling 등5) 열처리 : 강관에 열을 가하여 용도에 필요한 성질을 부여함으로써 경도를 증대시키거나 조직을 연화시킴는 공정.- 소둔(Annealing) : 강내 성분의 편재를 균일화하고 결정조직을 조정하며 가스를제거하고 또한 내부응력을 제거하는 목적으로 가열하여 서냉하는 열처리.- 소준(Normalizing) : 강을 고온으로 가열하여 오스테나이트화 시킨후, 공냉함으로써 결정립 미세화에 따른 재질을 개선함.- 소입(Quenching) : 강을 오스테나이트 온도에서 급냉시켜 조직을 마르텐사이트화함으로써 강관을 경화시킴.6) 포장 : 모든 공정을 거친 강관을 규격 및 수요가의 요구에 맞게 번들화 시키는 공정.
    공학/기술| 2010.06.13| 3페이지| 1,500원| 조회(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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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일국사를 넘어선 동아시아 읽기)
    ◆ 서론한국, 중국, 일본 삼국은 먼 옛날인 古代부터 역사를 함께 해왔다. 서로 문물을 전파시켜주고 물자를 교류하였으며 때로는 서로를 침략하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도 일어나는 등 끊임없이 서로간의 접촉이 있었고 이것은 비단 옛날만의 일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아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항상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삼국 이었던 것만큼 삼국간의 큰 사건이 발생하면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였고, 지금도 지정학적으로 보나, 경제력으로 보나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지역이 바로 삼국이 위치한 동아시아 지역이다.특히, 동아시아 근대사를 보면 삼국 중에서도 조선과, 중국의 明 ? 淸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가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조선과 명나라는 임진왜란을 통하여 함께 세계를 떠들썩하게 뒤흔들어 놓은 큰 전쟁을 치루었고, 조선과 청나라는 때로는 적대적으로 때로는 함께 고난을 나누며 근대사를 버티어왔다.이러한 동아시아 근대는 또한, 현재 우리가 전통이라고 여기는 관념이 성립되었던 시기였고, 이러한 한국과 중국의 전통은 각각 독자적으로 발생시키고 성장시켜온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하여 수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문화는 아주 오래전인 고대부터 이어져 온 것이 아니다. 불과 2, 300년 전의 친족제도, 가족, 생활 습관 등을 우리가 전통문화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조선은 주로 명나라부터 새로운 문물들을 수용하였고, 이를 일본으로 전파해주었다. 또한,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같은 굵직굵직한 전쟁은 서로간의 문화가 교환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근대는 현대의 동아시아를 만들어 놓은 근본적인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 (일국사를 넘어선 동아시아 읽기)』는 바로 이러한 동아시아 근대사의 양축을 이루고 있었던 조선과 명 ? 청 시대의 역사와 사회 ?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 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은 일본 중앙공론사가 기획한 30권짜리 시리즈인 「세계의 역사」중의 한 권으로써,목을 수강하는 과정에서 이 교수가 집필한 『양반』이라는 책을 통하여 이미 한 번 만나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본 책이 보다 낯설지 않았고, 나에게 있어서는 약간 친숙하면서도 더욱 기대감을 갖도록 다가오게 되었다.이 책은 기존의 역사책과 같이 정치 분야 위주로 치우치는 것을 지양하고 당시의 사회나 문화에 보다 큰 관심을 보이며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전공하지 않는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고 읽을 수 있도록 전문서적과 흥미위주의 일반서적의 중간정도의 수준으로 집필을 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아시아 근대사를 접할 수 있도록 하였다.본 책은 조선과 명 ? 청의 역사를 개별적이고 분산적인 것이 아닌 일본을 포함한 주변의 다른 국가들과의 유기적인 상호관계 속에서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양국의 역사와 사회, 문화 뿐만이 아닌 주변 다른 국가들의 정보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유익하다. 또한, 집필을 맡은 두 사람은 각각 조선과 중국의 사회경제사 전문가로서 조선과 명 ? 청 시대를 「소농 사회의 형성」이라는 공통적인 인식하에서 양국의 당시 사회상을 분석하려 하였다.◆ 본론첫 장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통하여 조선, 중국, 일본이 한 장의 지도에 그려져 있고 주변국들의 위치를 보여주며 조선과 중국의 근대가 각자 독자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주변국들과의 유기적인 상호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10세기에서 14세기까지는 동아시아 각국 간의 교역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대로써 특히, 몽골제국을 통하여 동 ? 서 간의 교류가 이루어졌고, 동아시아로 서아시아에서 발달한 금융, 상업, 교역의 노하우가 들어옴으로써 동아시아의 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하지만 이시기에 새로운 문물의 흡입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14세기에는 조선이나 중국 모두 왕조의 교체라는 큰 변화가 이루어졌다. 한반도에서는 고려 왕조가 막을 내리고 새롭게 이성계의 조선이 탄생하였고, 중국에서는 명나라가 새롭게 대륙의 패권을 차? 북 방면으로의 확장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영락제 통치시기에는 내정(內政)에 치우쳤던 홍무제와는 달리 외정(外征)을 중시하였다. 영락제는 북으로는 몽골을 지배하고, 그 유명한 “정화의 원정”을 통하여 남방 까지의 지배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1410년 50만 대군을 직접 이끌고 시행한 몽골 정복이 실패로 돌아갔고, 홍희제가 1449년 오이라트와의 전투에서 포로가 된 대사건인 “토목의 변”을 통하여 이러한 명나라의 야망은 실패로 돌아갔고, 영토 확장 정책 역시 끝나고 만다. 영락제 역시 원나라와 같이 북경을 중심으로 하는 광역지배국가의 야욕을 꿈꾸었으나 실패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칭기스칸과 쿠빌라이와 같은 몽골의 황제들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명나라가 옛 몽골과 같은 세계제국 건설에 실패한 것은 비단 그들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한 번 몽골을 통해 정복을 당했던 나라들이 민족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보다 방어력을 강화시켰고, 타국의 침략을 대비할 준비를 보다 강화했을것이기 때문에 명나라의 원정은 몽골 시대보다 어려워졌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명나라가 영토를 확장하고 있을 때 조선 역시 “양반사회” 의 정착으로 안정된 내정과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다. 16세기 조선은 과거를 통해 관리를 선발하고 이러한 문화가 정착되면서 신흥양반 계층이 새롭게 한 세력을 담당하기 시작한 양반사회이다. 이 장은 저자의 다른 책인 『양반』에서 이미 서술한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양반의 정의와 양반을 중심으로 하는 당시 조선의 향토사회에 대하여 서술해 놓았다. 양반은 중앙 관리를 마치고 자신의 고향인 향토사회로 다시 돌아와서도 여전히 그 사회에서의 중심을 차지하였고, 이러한 양반을 중심으로 향토사회의 균형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당시 문화 역시 양반을 중심으로 창출이 되었는데 당시 성행하였던 주자학과, 시조, 시가와 같은 학문과 문화들은 양반의 정체성을 이루게 해주었고, 양반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족할 수 밖에 없었고, 권력다툼이 치열해 지면서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민중들의 폭동 역시 빈번하게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16세기 당시의 중국 시민의 모습은 17 ~ 18세기 서구의 시민사회의 모습과 비슷하게 나타난다. 당시 까지는 아직 중국이 유럽에 비하여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서구보다 빠른 성숙한 시민적인 모습이 나타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당시에는 「양명학」의 융성과 여론의 형성이라는 사회, 문화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지만 명나라의 혼란은 겉잡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 명 ? 청 교체가 이루어지게 된다.하지만 명 ? 청 교체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이러한 왕조의 교체에 결정적인 요인을 제공한 것은 조선과 일본이었다. 5장은 1674년 ‘하야시 슌사이’의 『화이변태(華夷變態)』를 통하여 동아시아의 변화가 중국과 조선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서술하고 있다. 16세기 일본에 출몰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세력들은 일본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서구의 문물을 수용한 일본은 이러한 서구 문물을 통하여 군사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통일을 이룩하면서 대륙 침략의 야욕을 갖게 되었다. 대륙 침략의 첫 걸음으로 조선침략을 시도하면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일어나게 되었고, 비록 일본의 침략을 막아냈다는 의의가 있었으나 조선은 전국토가 황폐화 되었고, 명나라는 국력이 크게 쇠약해져서 청나라에게 대륙을 빼앗기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명나라는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면서 재정 악화를 가져왔고, 또, 대군이 조선으로 가면서 만주에서 여진족이 세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임진왜란 시기를 듣거나 공부할 때마다 항상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만 포르투갈의 함대가 일본이 아닌 조선으로 먼저 들어왔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하였을까 생각한다. ‘나비효과’와 같이 아주 작은 사건이 엄청난 사건으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역사는 언제나 매력적인 존재이고 상상의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회, 문화적으로도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특히, 양반 사회는 ‘문중’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양반들의 활력이 점차 상실되는 가운데 생존전략의 일환으로써 ‘부계 혈연집단’의 강화가 꾀어졌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서술하고 있다. 농지의 황폐화와 노비들의 유망으로 경제적으로 약화된 양반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의 상업은 이웃의 일본과 청나라에 비하면 매우 빈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것은 조선사회가 정체해있었기 때문이 아니라고 필자는 말하고 있다. 또한, 다른 자료들을 인용하며 조선이 화폐경제가 미발달했어도 농업은 당대 최고였다는 이야기도 보이며 조선 역시 항상 발전하고 있었던 국가임을 강조하고 있다.17 ~ 18세기는 청나라가 안정되고 크게 발전한 시기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청나라의 상황을 ‘강희제’와 ‘옹정제’라는 두 황제의 치세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강희제는 중원의 지배자인 황제로서의 모습과 북방의 지배자인 한(Khan)이라는 모습의 양면을 모두 겸비한 황제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그는 만주인의 전통인 사냥과 무예에도 능하였고, 중국의 전통인 유학 그리고 서양의 과학에도 관심을 갖고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었다고 한다. 이러한 황제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 리더쉽으로 내외적으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18세기 초는 ‘옹정제’가 지배한 시기이다. 옹정제는 평화적인 인물이었지만 역사상 보기드문 철저한 독재 군주였다고 한다. 옹정제는 엘리트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우월의식을 지니고 있는 관료에 대한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고, 전통적인 학문을 갖고 실제 정치와는 거리가 있는 정론을 내세우는 관료보다는 분골쇄신(粉骨碎身)하고 성실하게 실무를 처리하는 관료를 높이 평가했다. 옹정제는 어떻게 보면 현대사회에서 원하는 혁신적인 CEO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데 형식보다는 실력과 실리를 중시하는 합리주의적인 군주였던 것 같다. 하지만 황제일원주의라는 철저한 독재 정치가 준다.
    독후감/창작| 2009.01.11| 5페이지| 1,000원| 조회(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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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가 결정의 주요 요인
    油價 決定 主要 要因目 次1. 油價 動向 2. 過去의 油價 決定 要因 3. 現在의 油價 決定 要因 4. 向後 油價 展望최근 유가 변동 추이2005年$49.372006年$61.611. 油價 動向1월 들어 Dubai유 $50 초반 유지 1월 31일 현재 배럴 당 $50.811/27국가 별 매장량 및 산유량 비교723러시아800베네수엘라922UAE1,150쿠웨이트1,325이란2,600사우디 아라비아매장량 (억 배럴)3,627중국3,759멕시코4,049이란6,830미국9,551러시아11,000사우디 아라비아산유량 (천 배럴)BP Statistical Review 20052/271. 油價 動向국가 별 소비량 및 수입량 비교2,280한 국72,555인 도62,574러시아52,625독 일45,288일 본36,684중 국220,527미 국1소비량(1000b/d)1,484중 국71,767이탈리아61,895프랑스52,729한 국42,980독 일33,978일 본210,311미 국1수입량(1000b/d)BP Statistical Review 2004BP Statistical Review 20053/271. 油價 動向1) 石油 메이저의 市場 支配2차 대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Seven Sisters*가 고시가격 설정  시장 지배교통 · 통신 발달로 소규모 석유회사들의 경쟁력 강화  유가 하락* 엑슨, 모빌, 텍사코, 스탠다드 캘리포니아, 걸프, BP, 로얄더치쉘4/272. 過去의 油價 決定 要因2) OPEC의 市場 主導1973년 1차 오일쇼크 계기로 OPEC이 주도권 장악 페르시아만 6개국이 석유 고시가격 결정 유가 배럴 당 $11.65로 4배 폭등1次 오일 쇼크1978년 이란 혁명으로 OPEC 유가 배럴 당 $34로 인상  세계경제 극심한 침체에 빠져듬2次 오일 쇼크5/272. 過去의 油價 決定 要因3) 소비국의 주도권 장악세계 경제 침체로 수요 감소비OPEC 산유국 공급 증가1986년 이후 저유가 시대 지속2. 過去의 油價 決定 要因6/277/27- 생산이 소비 증가량을 따라오지 못함 - 원유 생산량 80년대 중반부터 연평균 2.2%씩 감소 - 석유 대외의존도 급상승  2005년 66%까지 증가 중동지역에 대한 의존도 증가수급 불균형 심각1) 需要側面 - 美國 -8/273. 現在의 油價 決定 要因70666147對外依存度(%)'15'05'00'90美國의 石油 對外依存度 推移자료 : DOE/EIA, 05/15년 전망치는 한국석유공사※ 고유가에도 불구, 전략 비축유 물량 확대  2005년 8월 현재 최대저장 한도인 7억 배럴까지 확충  2027년까지 15억 배럴로 확대 방침, 2007. 1석유 안보전략 강화1) 需要側面- 美國 -9/273. 現在의 油價 決定 要因안정적인 석유 확보 위한 전방위 에너지 외교 추진중동 지역에 민주정부 구축 유도카스피해 연안 국가와의 협력 강화자원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는 중국 견제중국 해양석유총공사의 유노컬 인수 무산시킴1) 需要側面 - 美國 -10/273. 現在의 油價 決定 要因석유 안보전략 강화※ 199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석유 소비 증가  산업구조가 경공업에서 중화학, 첨단산업으로 이동 ※ 마이카 시대 도래  자동차 보유대수 : 2,000만 대(2000)  1억 4,000만 대(2020) ※ 낮은 에너지 효율  GDP 100만 달러 당 석유 소비량이 일본의 3.6배, 미국의 2.3배석유 소비량 폭증1) 需要側面 - 中國 -11/273. 現在의 油價 決定 要因국가별 석유 소비량 비교2.72,010프랑스82.82,070印 度73.02,200韓 國63.32,475러시아53.72,760獨 逸46.54,840中 國37.55,525日 本22518,745美 國110073,905世 界占有率(%)消費量(1000b/d)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2005. 62.51,975프랑스82.82,280韓 國73.22,555印 度63.22,574러시아53.32,625獨 逸46.45,288日 本38.26,684中 國224.920,527美 國110080,757世 界占有率(%)消費量(1000b/d)2000 年2005年12/273. 現在의 油價 決定 要因※ 석유소비량이 연평균 6% 증가하는 반면 국내 공급 증가는 1.7% 수준  1997년 이후 330만b/d 수준에서 정체되어 공급부족 심각 ※ 2007년 석유 대외의존도 50%에 달할 것으로 예측수급 불균형 심각1) 需要側面 - 中國 -13/273. 現在의 油價 決定 要因※ 국내 유전 노후화와 서부 지역 개발의 어려움  서부 내륙지역 중국 전체 매장량의 23% 매장 ※ 해외 석유 확보 위한 적극적인 외교정책  '페트로카자흐스탄' 42억 달러에 인수(2005年 8월)  대 중동, 아프리카 외교 강화 ※ 석유비축량 확대 계획  현 1000만 배럴에서 2년 안에 1억 배럴 수준까지 (2006. 12) ※ 시베리아 송유관 건설 일본과 경쟁석유 확보 정책1) 需要側面 - 中國 -14/273. 現在의 油價 決定 要因15/27※ 중국의 석유 확보 확장 정책은 미국의 석유 안보전략과 마찰을 일으킬 위험 요소가 큼 ※ 이란, 미얀마, 앙골라 등 미국 정부의 비난을 받는 일부 국가들과 협력 확대  앙골라 대 중국 원유 공급 2위국 (2006) ※ 시장 가격을 상회하는 가격으로 유전 확보 경쟁에 참여함으로써 유가 상승을 발생시킨다는 비난에너지 확보 전쟁국제 정세 불안정과 유가 상승 요인 제공1) 需要側面 - 中國 -16/273. 現在의 油價 決定 要因※ 앙골라 신규 가입  선진국 OPEC 의존도 54% 이상 (미국 52%에 달함) (Financial Times, 2007)  수단(2007, 3), 에콰도르, 볼리비아 等 가입 추진 중 ※ 감산정책을 통한 지속적인 고유가 유지 의사 표명  2006년 10월 긴급 감산 결정 (2004년 이후 처음) ※ 비 OPEC 국가 생산량 2010년 정점으로 감소 전망 (IEA, '2006 세계에너지展望')OPEC 勢力 强化OPEC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의존도가 계속적으로 증가함으로써 OPEC 세력 계속 강화될 듯2) 供給側面 - OPEC -17/273. 現在의 油價 決定 要因※ 원유 생산 시설 및 정유 시설 부족  고유가는 원유 생산량 부족 아니라 정유 시설 부족 탓, OPEC  과거 저유가 시대, 시설 투자 부진 미, 1976년 루이지 애나州 정유소 건설 이후 신설 무  신규 시설 건설하는데 많은 시간 필요시설 부족2) 供給側面 - 施設 -18/273. 現在의 油價 決定 要因산유국 정세 불안이라크 문제 미해결과 미국의 이란 핵 문제 나이지리아 무장단체 석유시설 공격 잇따라資源 民族主義 擴散베네수엘라 중심으로 중남미 산유국들 자원 국유화 확산 러시아의 資源民族主義 움직임투기세력, 기후 변화, 세계 경제 활성화 정도 등3) 非經濟的 要因19/273. 現在의 油價 決定 要因수급 불균형아시아의 경제 발전으로 석유 수요 늘어남 미국의 석유 대외의존도 증가불확실성 증가정세가 불안한 중동에 대한 석유 의존도 높아짐 기후 변화, 투기 세력 등고유가 시대 도래20/273. 現在의 油價 決定 要因기준유가미 석유재고감소전망 비OPEC 공급증대 지연예상70.5066.00골드만삭스 (06. 10)기준유가세계 석유수요 150만 b/d 증가 비OPEC 공급 130만 b/d 증가 타이트한 OPEC 잉여생산능력 지속60.1761.26EIA (06. 11)低油價경제성장 둔화로 수요증가세 완화 공급 차질 없이 진행됨41.0058.53高油價이란 핵문제 악화로 공급차질 발생74.7562.72기준유가세계 석유수요와 비OPEC 공급 모두 160만 b/d씩 증가55.5060.50CERA (06.10)비고전제조건2007年2006年機關해외 주요기관의 국제유가 전망내역(Dubai油 基準, 單位 $/B)22/274. 向後 油價 展望※ 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 지속 - 이란의 핵개발과 미국과의 갈등 - 이슬람계 테러 급증과 과격화 - 이스라엘 문제 ※ 자원 민족주의와 반미 확산 - 중남미 산유국 자원민족주의 확산 - 베네수엘라 중심으로 중남미 국가들 반미세력 형성  마찰 가능성 - 이란과 남미 국가들 관계 강화  아흐마디네자드 1월 남미 순방 - 중동 , 러시아, 아프리카까지 자원민족주의 전세계로 확산유가 인상 요인23/274. 向後 油價 展望※ 고질적인 수급 문제 - 친디아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이므로 석유 수요는 계속 늘어날 전망 ※ 이상 기후 - 온난화, 이상 한파, 폭설, 쓰나미 등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 증가 ※ 투기 세력24/274. 向後 油價 展望유가 인상 요인※ 대체에너지 개발 - 탈 석유화를 위한 세계적인 움직임 가속화  미 2017년까지 석유 소비 20% 감소 의지, 스웨덴 2020년까지 석유 의존도 0% 계획 - 에탄올, 바이오디젤 등 바이오 연료 개발 활성화 - 태양전지, 액화석탄 등 기타 대체에너지 개발 지속유가 하락 요인360억ℓ225억ℓ175억ℓ바이오 에탄올35억ℓ17억ℓ10억ℓ바이오 디젤2005년2003년2000년25/274. 向後 油價 展望※ 오일샌드 개발 - 고유가 지속으로 오일샌드의 경제성 향상  배럴당 $20 ~ $25 의 높은 생산비용 감당 가능 캐나다의 높은 매장량은 국제시장 안정에 기여  캐나다 2015년까지 오일 샌드 생산량 3배 확대 현 110만 b/d  300만 b/d26/274. 向後 油價 展望유가 하락 요인수급 불균형 지속국제 정세 불안세계 경제 침체탈 석유화 정책 가속배럴 당 $50 ~$60대의 고유가 지속될 듯4. 向後 油價 展望예상 못한 변수가 생길 가능성은 존재하므로 항상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27/27參考 資料◈ SERI 전망 2007 삼성경제연구소, 2007 ◈ 석유시장 Big Player 동향과 유가전망 삼성경제연구소, 2004 ◈ 대한석유협회 (http://www.petroleum.or.kr) ◈ 기타 인터넷 자료감 사 합 니 다.{nameOfApplication=Show}
    경영/경제| 2007.02.03| 30페이지| 1,500원| 조회(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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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크로드의 악마들
    “실크로드의 악마들” 을 읽고...지난 겨울 방학 동안, 이런저런 책들을 보다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광활한 영토를 지배한 정복자로서의 칭기스 칸이라는 이름은 참 친숙하게 알고 있었고, 몇몇 책들과, 교과서, PC 게임 등을 통해서 많이 접해보았었다. 그러나 정작 칭기스 칸이 정복한 나라들은 중국 대륙과, 러시아까지 진출했다는 것만 많이 들었지, 그가 정복한 중요한 지역인 중앙 유라시아의 오아시스 국가들에 대해서는 겨울 방학 읽은 책을 통해서 처음 자세히 알게 되었고, 이 쪽 지방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칭기스 칸을 통해 접하게 된, 오아시스 국가들과 유목 국가들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기 시작했던 터라 망설임 없이 바로 수강을 하게 되었고, 여태까지 내가 갖고 있던 역사관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갖고 있던 역사관은 중국, 로마제국, 게르만족, 이슬람 등의 큼직한 문명을 중심으로 역사가 발전해 왔고, 역사책에 자주 등장하는 흉노나 돌궐, 위구르 같은 유목민들은 오랑캐로써 이러한 제국들의 변방을 습격하고 약탈하는 민족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유목 문명과 정주 문명 간의 끊임 없는 투쟁을 통해서 발전을 하였고, 상당히 많은 시간 동안 군사적인 힘에 있어서 내가 친숙하게 알고 있던 중국이나 로마제국, 이슬람 제국들보다 유목민들이 강하였고, 상당한 양의 조공을 받았다는 사실에 인간의 역사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세계 문명의 발전에 있어서도 유목민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었고, 현재는 정치 ? 경제적으로 상당히 뒤떨어졌으나 중앙 유라시아 민족들의 저력으로 이들이 언제 다시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일어설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많은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배우고, 머릿속에 새로운 세계관을 그려나가며 본 과목을 수강하던 중 중간고사 과제를 위해서 읽게 된, 『실크로드의 악마들』이라는 책 또한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이 책은, 19세기 말에서 중국이 문을 걸어 잠그게 된 20세기 초반 까지 스벤 하딘, 오렐 스타인, 폰 르콕 등 각국의 학자들이 모래 밑에 묻혀 버린 실크로드의 유적지들을 발굴 하는 이야기와 그와 관련된 당시의 국제적 상황, 그리고 그들이 발굴한 유물들을 자국으로 반출해 간 일들이 문화재 보호인가, 약탈인가 하는 정당성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생각해보게 된 점은 바로 유물들을 가져간 행위가 약탈인가,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가 하는 문제이지만 책의 스토리를 이끌어가고 본 책을 읽는 독자들의 흥미를 가장 자극시켜 책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여러 학자들이 사막에서 옛 실크로드의 유적지들을 발굴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바다 속에 잠들어 있다는 고대 아틀란티스 문명과, 화산 폭발과 함께 매장되어 버린 도시 폼베이 이야기를 통해서 문명이 한순간에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린 이야기들을 접해보았고 이러한 것들은 옛날 이야기를 듣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슬프고도 매력적인 이야기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역할들을 하는 여러 학자들이 사막을 항해하게 된 원인은 바로 옛 오아시스 도시들이 아틀란티스 문명이나 폼베이와 같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고, 끔찍하게도 이들은 사막의 모래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니 정말 흥미롭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탐험가들의 모험들이 마치 옛 대항해시대에 미지의 땅을 찾아서 대양을 항해하던 탐험가들과 같이 이들의 모험은 새로운 유적지들을 찾아서 사막을 항해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수업 시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학기를 통해서 처음 접하는 중앙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공부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지명들이 참 낯설다는 점이었다. 본 책의 중심무대가 되는 타클라마칸 사막 지대의 오아시스 도시들의 지명들 역시 낯설지 않을 수 없었다. 천불동 사원과 벽화들로 유명한 돈황과 수업시간에 자주 들어서 익숙한 누란, 호탄 등도 이름만 알았지 자세한 위치는 잘 몰랐으나 친절하게도 책에 타클라마칸 사막 지대의 지도와 함께 중요한 오아시스 도시들과 유적지들의 위치가 나와 있어서 책을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었고, 남은 수업 시간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여러 탐험가들의 탐험 루트들을 지도를 통해 보며 접하니 책에 몰입되어 있을 때에는 마치 내가 함께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타클라마칸 사막의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찬란한 오아시스 문명을 남기고 또,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 이 지역 민족들의 끈질긴 생존력에 경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파미르고원과 곤륜 ? 천산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산맥으로 삼면이 둘려 쌓여 있고, 단 한군데 동쪽으로 트여있는 곳마저 끔찍한 롭사막으로 막혀 있는 최악의 조건에 그 사이에 있는 곳의 자연 환경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타클라마칸 사막이라니 이보다 더 척박한 환경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간간히 위치한 오아시스에 ‘카레즈’라는 수로를 만들어서 문명을 꽃피운 모습에 인간의 능력이란 정말 끝이 없다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닷새를 버틴 스벤 하딘의 모습 역시 인간의 끝없는 생존력을 잘 보여주었고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당시 중앙아시아를 연구하던 학자들에게 있어서 아주 오래전 당(唐) 때, 실크로드를 여행한 현장 법사는 전설적이고 영웅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다. 현장을 수호성인으로 하는 오렐 스타인을 포함하여 타클라마칸 지역을 발굴하러 다녔던 여러 탐험가들의 이야기에는 현장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였고, 현장의 발자취를 좇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위대한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게 된 계기가 어릴 적 읽었던 “호메로스”의 유명한 서사시 『일리아드』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고 늘 트로이 문명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말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현장의 기록들은 사실이지만 요괴이야기나 신화적인 이야기들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타인을 비롯한 학자들 역시 자신들의 우상으로 여긴 현장에 대한 존경과 발굴에 대한 열정을 식히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 점에서 젊은이들이 꿈을 갖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졸업을 1년 앞둔 지금 인생의 중요한 한 분기점이 될 수 있는 나의 현 상황에서 아직 만족할 만한 꿈은 갖지 못하였지만 더 큰 꿈을 품고 그것을 향해 노력해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이 책이 『오아시스의 악마들』이라는 제목을 갖게 된 것은 저자인 “피터 홈커크”가 탐험가들이 발굴한 유물들을 문화재 보호라는 이유에서 자신의 나라들로 가져간 점을 약탈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을 중요한 문제로 인식한 까닭인 것 같다. 저자는 서문과 글의 마무리에서도 이 점을 중요하게 부각시켰고, 본문이 전개되어 나가는 중에도 계속에서 이 문제를 등장시켰다. 사막에 묻힌 고대 오아시스 도시들을 처음 발굴하기 시작한 스벤 하딘을 비롯하여 많은 업적을 이루어 낸 오렐 스타인, 폰 르콕, 폴 펠리오 등의 성과는 중앙 유라시아의 학문과 지리학적으로 큰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이 유물들을 파내어서 본국으로 반출하고 심지어 벽화들 조차 벽에서 뜯어 내서 가져간 것들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독후감/창작| 2007.01.14| 4페이지| 1,000원| 조회(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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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외의 성공한 기업가와 실패한 기업가 평가A+최고예요
    성공한 기업가와 실패한 기업가- 차 례 -■ 서론■ 본론(1) 국내의 성공한 기업가(2) 국내의 실패한 기업가(3) 외국의 성공한 기업가(4) 외국의 실패한 기업가■ 결론■ 참고문헌■ 서론현재 우리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기업은 이제 더 이상 이윤만을 추구하는 집단에서 머물지 않고 한 국가의 경제 발전 뿐만아니라 사회적 역할에 대한 책임까지 지니게 되었다. 또, 글로벌 기업의 증대는 기업의 역할이 한 국가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고 그만큼 책임감도 더 커지게 되었다. 실제로 세계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에 일부 국가들의 경제가 들썩이는 일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가의 역할과 책임은 더욱 증대되고 중요시 되어가고 있다. 오직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하던 사회에서 사회적 책임까지 중요시 되는 현재의 기업가와 기업가정신을 판단하는 기준은 더욱 다양화 되고 있다. 기업의 성공적인 확장을 이루어 놓았더라도 사회적 비난을 받을만한 행동을 한 기업가들은 절대로 사회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기업에서도 그러한 점에서 문제를 삼아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현재 사회이다. 반대로 사회적 기여를 염두에 둔 경영을 하였더라도 기업 재정을 악화시킨다면 그 또한 좋은 기업가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기업가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기준은 예전에 비해 더욱 주관적이 되지 않았나 싶다.이러한 나의 입장에서는 국내외의 성공한 기업가와 실패한 기업가를 선정하는 데에 있어서 신중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성공한 기업가를 선정하는 데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으나 경영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 있어서 실패한 기업가를 선정하는 것은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승자의 기록에 비해서 패자의 기록은 많이 남겨져 있지 않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경영 비전공자로서의 지식 부족이 부가되었기 때문이다. 성공한 기업가로 꼽은 ‘유일한 박사’와 나이키의 회장인 ‘필 나이트’ 는 기업 경영의 성공과 더불어 사회적 시절 미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동양인들을 위하여 숙주나물 통조림을 개발하여 판매를 함으로써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금도 미국 슈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초이’라는 상표가 바로 그가 시작한 회사의 이름이었고, 이 사업으로 번 백만 달러를 갖고 귀국하여 일제시대인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하여 한국의 유수한 제약회사로 발전시켰다. 1971년 세상을 떠난 후, 유한양행은 한국 최초의 전문경영체제로 바뀌었고, 그와 그의 딸 유재라 여사의 재산이 거의 모두 사회에 환원 되었다.성공비결 : 설립이념에 대한 신념과 도전 정신미국 유학 시절 숙주나물 통조림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한국인은 누구도 창업을 섣불리 엄두도 못 내던 일제치하의 서울에서 유한양행을 설립한 도전 정신은 유일한의 커다란 경영 전략이었다. 하지만 유일한의 가장 큰 기업가 정신은 바로 ‘국민을 위한, 사회를 위한 기업’ 이었다. 유일한이 일제시대에 제약회사를 설립한 것도 일제하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질병에 시달리던 민족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일제치하의 어려운 시절 “항상 좋은 약을 개발하여 국민건강을 향상시킴으로써 건강한 민족을 만들어 나라를 찾고, 나라를 지키며, 나라를 번영시키겠다.” 고 약속을 하며 유한양행을 설립하였고,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유일한은 1971년 세상을 떠나면서도 모든 재산을 한국 사회 및 교육신탁기금에 보내 교육사업과 사회사업에 쓰라는 유언을 남기었고, 손녀에게 남긴 학비 1만 달러와 딸에게 남긴 5,000평의 땅이 유일한 유산이었다. 이러한 유일한의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져 유한양행에는 공익사업을 하는 유한재단과 교육 사업을 하는 유한학원이 있고, 유한공업고등학교와 유한대학을 통한 교육 사업을 비롯하여, 각종 장학사업, 교육 지원 사업, 사회복지사업, 각종재해 구호사업, 사회봉사자 시상사업 등을 시행해오고 있다.유일한의 사회를 위한 기업가 정신은 그의 깨끗한 경영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박정희는 기업들을 길들일 목적으로 유한양행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행하였으나 털어서 품이 등장하였다. ‘저온살균 우유’ 라는 꼬리표를 달고 파스퇴르 우유가 새로이 시장에 등장한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로 기억하고 있는데 보통의 종이곽 용기에 들어있던 우유와는 다르게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었고 가격도 일반 우유에 비해서 비쌌던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시 파스퇴르 우유를 마시던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기억도 있었다. 또, 중학교를 다닐 당시 파스퇴르 유업에서 ‘민족 사관학교’ 라는 특수목적 고등학교를 설립한다고 하여서 이슈가 되었던 기억도 난다. 어린 시절 기억이 사회 생활에 있어서 중요하듯이 어린 시절 파스퇴르 유업에 대한 나의 기억은 고급적이면서도 기존의 것과는 확연히 틀리 다는 이미지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언제인지부터 모르겠지만 파스퇴르에 대한 나의 기억은 잊혀져 갔다. 그리고 이번 보고서를 통해서 다시 기억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서울 상대를 중퇴하고 상업은행에서 일 하다가 택시 운전과 다방 경영, 중동에서의 운수사업 등 산전수전을 다 겪은 최명재는 1987년 파스퇴르 유업을 설립하였다. 그는 우유 시장에 ‘저온살균 우유’ 라는 새로운 제품을 도입하여 ‘진짜 우유’ 논쟁을 일으키며 유제품 시장에 등장하였다. ‘최씨 고집’ 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역시 고집 있는 기업가였고 항상 문제에 봉착하면 정면 승부로 맞서는 기업가였다. 그는 ‘진짜 우유’ 논쟁에 있어서도 언론, 소비자단체, 정부기관에 정면으로 맞섰고 그 결과, 파스퇴르 유업을 87년 설립 당시 한해 매출 5억 원에 불과한 소기업에서 다음 해부터 월 5억 원, 그 다음해에는 월 1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우유업계 빅5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도전은 교육 사업으로 이어졌고 1996년 언론과 교육계의 비난 속에서 ‘민족 사관 고등학교’를 개교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주위의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승부 기질이 낳은 결과이다. 하지만 그의 경영과 교육에 대한 열정도 IMF의 외환위기를 피해가지 못하였다. 유제품 시장의 업계 5위로 도약했던 파스퇴르 유업이 시기인 90년대 중반에 파스퇴르 식품을 설립하고, 성남에 주스 공장을 지었다. 이러한 투자에 약 2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었다. 무리한 투자를 했더라도 그만큼 거두어들이면 되는 것이 일반적인 논리이지만 운이 않따라 주었던 것인지 앞을 내다보지 못했던 것인지 1997년 IMF 사태가 터지고 소비의 급감으로 회사는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결국 1998년 부도를 맞게 된 것이다. 최명재의 뜻은 교육 사업에 대한 투자로 사회에 공헌하려고 했던 것이나 결과는 야쿠르트로의 인수로 이어졌으니 그의 경영은 실패한 것이 되었다. 무리한 투자와 IMF 라는 최악의 경제 상황이 그의 교육에 대한 열정을 누른 결과이다.(3) 외국의 성공한 기업가‘꿈’ 을 만들어 판 남자 ‘필 나이트’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중 'Nike'라는 상표를 모르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 것 이다. 나도 중 · 고등학교 시절 ‘에어 조던’을 비롯한 여러 나이키 신발들에 열렬히 환호를 했었고, 지금도 주위에는 나이키 매니아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를 창업한 사람은 ‘필 나이트(Phil Knight)’라는 평범한 남자였다.오레곤 대학 시절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 중거리 육상 선수였던 필 나이트는 대학 졸업 후, 회계사무소에서 일하던 중 대학 시절부터 관심을 보이던 신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육상 선수들을 위한 뛰어난 조깅화의 개발을 위해 항상 신발사업에 관심이 있던 대학시절의 은사였던 ‘빌 보워먼’이라는 뛰어난 동반자와 함께 출발한 나이트는 사업에 뛰어든지 15년 만에, 최고의 경쟁자였던 아디다스를 제치고 1980년 미국 내에서 신발 판매 1위를 차지하였고, 30년이 채 못 되어 1993년 1억 켤레 판매를 돌파하였다. 이러한 나이키의 성공 전략을 분석하면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세 가지 성공비결 : 스포츠 선수를 위한 상품, 충성심, ‘꿈’의 부가가치화첫 번째, 스포츠 선수를 위한 상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이트와 보워먼은 육상 선수였던 과거 경력을 뒷받침해반대로 일본적인 풍토의 충성심을 기반으로 한 기업 문화를 만들어 냈다. 오리곤 주에 위치한 나이키 본사 ‘나이키 월드 캠퍼스’에 들어서면 ‘마이클 조던 빌딩’, ‘보우 잭슨 체육센터’, ‘보워먼 도로’와 같은 기업에 공헌한 사원들의 이름들을 딴 건물이나 도로들이 들어서 있다. 또, 회사 안에는 보육원이 있고, 사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이러한 회사 분위기는 사원들로 하여금 회사를 위해 무엇인가 공헌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사원들의 충성도를 높여 준다. 기업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사원 없이 기업의 성공은 있을 수 없다는 기본적인 경영 마인드를 나이트가 보여준 것이다.세 번째, ‘꿈’ 을 부가가치화 시켰다는 것이다. 내가 중 ·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나 자신은 물론 주위 친구들 대부분이 나이키에서 나오는 ‘에어 조던’ 광고에 환호하였고 항상 다음 편을 기대하게 되었다. 박찬호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그 기량을 한껏 선보일 때도 나이키의 한국 광고에는 박찬호 선수가 매번 등장하였다. 나이키는 소비자들에게 단지 고품질의 상품을 판 것이 아니라 ‘꿈’이 담긴 상품을 팔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야구, 농구, 축구, 골프 선수들이 나이키 광고에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많은 청소년들은 물론 스포츠를 좋아하는 어른들까지 이러한 마케팅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스포츠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들에게 ‘꿈과 도전’ 을 가져다주는 것인데, 나이키는 이러한 ‘꿈과 도전’을 상품에 담아서 판매하고 있다. 이것은 마케팅 전략일 뿐만 아니라 스포츠에 대한 나이트 자신의 꿈과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스포츠에 대한 순수한 꿈과 사랑이 소비자들을 자극시키고 있는 것이다.스포츠 선수를 위한 스포츠 용품을 만드는 나이키. 이러한 나이키를 이끌고 있는 ‘필 나이트’의 기업가 정신은 스포츠에 대한 사랑으로 기술 개발에 소홀함이 없었고, 끈끈한 기업 문화 형성으로 조직원의 충성심을 이끌어 낸 것이다. 그리고 스
    경영/경제| 2007.01.14| 9페이지| 1,500원| 조회(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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