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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문법] 북한 문법의 형성과 발전
    Ⅰ. 북한의 규범 문법우리는 1945년 광복 직후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래 오늘날까지도 서로간에 뚜렷한 학문적 교류 없이 반세기 이상을 지내오면서, 각자의 문법 연구와 이에 따른 규범 문법을 발전시켜 왔다. 그 결과 남한에서는 학문 문법과 함께 학교 문법으로서의 규범 문법을 연구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거듭하여 왔고, 북한에서는 학문 문법의 형성은 비교적 미약한 채 규범 문법의 연구를 지속해 왔다. 사실 ‘규범문법’이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말이다. 왜냐하면 규범문법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한에서는 특별히 규범문법이라 규정할 만한 것이 없어 각급 학교에서 국어 문법을 가르치는 전범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 문법’이 규범 문법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규범 문법’은 일정한 언어 사회에서 관습이나 규약 또는 법률에 의하여 옳다고 인정된 것이나, 옳은 것으로 정해져 있는 언어 현상이나 규칙, 및 규칙의 체계를 서술하는 문법을 가리킨다. 나아가, 규범 문법에는 언어 현상을 설명하는 표준적인 방식이 채택되고 그러한 설명에 사용되는 용어들을 한정하게 된다. 규범 문법은 언어의 실제적인 사용에 대하여 그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처방 문법으로, 일상 언어 생활을 규범화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과 학교에서의 문법 교육의 통일이라는 교육적인 목적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따라서 규범 문법이 대상으로 하는 언어는 자연히 표준어 및 표준적인 언어에 한정되고, 일반이 널리 사용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므로, ‘통제문법’의 성격도 강하게 지니게 된다. 북한의 규범 문법도 이러한 성격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북한은 일찍부터 이러한 규범 문법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하였고 지난 반세기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규범 문법서를 출판하였다. ‘규범 문법’과 대립적인 위치에 서는 것이 우리에게는 ‘기술 문법’이나 ‘학문 문법’으로 불리는데, 북한에서는 그것이 때로 ‘서술 문법’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리론 문법’으로 불리고 있3)을 지칭함을 미리 밝혀둔다.Ⅱ. 북한 문법의 형성과 발전북한의 초기 문법은 김두봉, 이극로, 정렬모, 김수경, 홍기문 등에 의하여 성립되었다. 김두봉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방 후 남한에서 월북한 학자들로, 이들이 대거 참여한 ‘조선어문연구회’는 북한 문법의 초기 연구를 주도한 단체이다. 이 연구회에서 1949년에 펴낸 은 북한 최초의 과학적 문법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1) 조선어문연구회(1949), : 어음구성, 형태론, 문장론이 책은 어음론, 형태론, 문장론이 비교적 균형 잡힌 3부 체계를 지키고 있으며, 형태론이 단어, 단어조성, 문법범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품사 목록으로는 전통적으로 꼽아 왔던 ‘관형사’를 제외하고 ‘명사, 수사, 대명사, 형용사, 동사, 부사, 조사, 감동사’를 들어 8품사 체계를 채택하였다. 이것은 제 Ⅱ유형의 문법 모형으로, 북한 문법의 전통으로 자리를 잡은 제 Ⅲ유형의 문법 모형은 이 책에서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2) a. 과학원 언어문학연구소(1960), : 어음론?형태론b. 과학원 언어문학연구소(1963), : 문장론본격적인 문법서는 1960년대에 들어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과 는 광복 이전까지의 문법론에 소련의 언어학 이론을 도입하여 완성한 학문적이고 이론적 경향의 문법서로, 북한 문법의 기초를 이룬 책이라 할 수 있다. 이전의 문법과 비교할 때, 문장론 부분이 대폭 확충된 것이 특징이며, 이후의 문법과 비교할 때는 ‘토’부분이 따로 분리되어 기술되지 않았다는 특징을 가진다. 품사 목록으로는 ‘조사’를 빼고 ‘관형사’를 넣은 8품사 체계를 설정하였는데, 이같은 제 Ⅲ유형의 문법 체계는 이후 북한 문법의 전통으로 자리를 잡았다.(3) a. (초고)(1972),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b. (1976),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1964년과 1966년 김일성 교시 이후 북한의 문법 연구는 주체 사상에 따른 언어학 이론을 바탕으로 문화어 문법 일색이 되었다. 1970년대에 나온 대부분의 문법서들은 문화어를 지향하는 철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에서 나온 을 따라 ‘토’를 따로 분리하여 기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은 1976년 초판에 이어 1984년에 제 2판이 출간되었는데, 이 문법서는 오늘날 북한 규범 문법서의 대표로 통용되고 있다.(4) a. 리근영(1985), b. 김용구(1986), c. 고신숙(1987), d. 김동황(1985), e. 김용구(1989), 문화어 문법은 1980년대를 넘어서면서 점차 이론적인 학문문법으로 발전해 나갔다. 위에서 열거하지는 않았지만 1980년 렴종률의 은 ‘상징사’를 보태어 9품사를 설정하기도 하였으며, 1983년 김영황의 은 어순에 대하여 깊이 있는 연구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 중반의 는 주체이론에 근거하여 국어의 민족적 특성을 각 부분별로 탐구한다는 목적하에 문법의 세부적인 하위 분야를 심도있게 고찰한 개인 문법서의 형태를 띤다. 특히 형태론에서 ‘토’와 같은 문법형태만을 다루고 품사와 조어론을 제외하여 따로 품사론과 단어조성론을 독립시킨 것이 특징으로 보인다. 김용구의 은 이전에 나온 규범 문법과 리론 문법을 종합한 것으로 ‘문법’에서 ‘어음론’을 빼고 ‘품사론, 형태론, 문장론, 단어조성론’만을 한정하여, 남한의 문법론과 유사성을 보인다.Ⅲ. 북한 규범 문법의 3부 체제문법이란 말은 넓은 의미로는 음운, 형태, 통사뿐만 아니라, 의미 현상까지도 포괄하는 용어이지만, 좁은 의미로 쓸 때에는 형태론과 통사론만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와는 다른 차원으로 문법에서 음성, 음운, 형태, 통사에 관한 현상을 다루는 전통적인 문법 기술을 이른바 3부 체제라 하는데, 북한의 문법은 최근의 전문 분야별 논의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 3부 체제 즉 어음론, 형태론, 문장론의 분류를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1) 어음론어음론은 남한의 음운론에 해당한다. 음운은 남한에서는 ‘말소리’에 해당하나 북한에서는 음성을 ‘낱소리’, 음운을 ‘뜻소리’로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북한 규범 문법의 ‘어음론’에서는 ‘말소리, 단어의 소리구성음운 현상을 꾸준히 연구하여 그 결과를 화술이나 언어 예절 등에서 많이 응용해 왔는데 이같은 성과가 규범 문법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2) 형태론북한의 규범 문법은 시대에 따라 형태론이라는 명칭이 적용되는 영역을 달리하여 왔다. 하지만 대게는 형태론이란 이름 아래 ‘단어 조성’(조어(造語))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품사를 나누어 기술하고, ‘토’라는 이름 아래, 우리의 ‘조사, 어미, 선어말 어미, 피동 사동의 접미사’ 등 여러 가지 문법적 형태들을 뭉뚱그려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주체이론에 따라 국어의 교착성을 조선어의 제일 가는 특성으로 부각시키려는 결과 굴곡론에 해당하는 토의 문법이 형태론에서 지나치게 독립화되고 비대해지는 경향을 띠기도 한다.(3) 문장론문장론은 전통 문법에 뿌리를 두고 ‘문장이란 무엇인가’하는 정의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통적으로 문장은 ‘완전한 생각’의 표현으로 정의되어 왔는데, 북한의 문법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문장을 정의하고 있다. 문장론에서는 이러한 기본 정의를 바탕으로 문장의 성분을 이루는 재료로서의 단어 결합을 논하고, 문장 성분의 성격과 종류를 다룬 뒤에, 성분은 어떻게 확대될 수 있는가, 하나의 성분은 다른 성분과 어떻게 어울리는가 하는 호응의 문제를 다루고, 문장의 종류와 문장의 확대 그리고 옮김법(인용법)의 문제를 다룬다.Ⅳ. 남북한 문법의 비교)(1) 형태론1) 형태소의 인식단어를 구성하는 최소의 단위인 ‘형태소’를 북한에서는 ‘형태부’라 부른다. ‘형태소-형태부’와 ‘단어’에 대한 인식은 남과 북이 거의 같다. 남한은 단어를 ‘자립할 수 있는 말이나, 자립 형태소에 붙어서 쉽게 분리될 수 있는 말’이라 하였고, 북한은 ‘어떠한 뜻을 가진 말소리의 덩어리로서 문장 구조 속에서 어휘적으로나 문법적으로 일정하게 구획되는 언어의 기본 단위’라고 정의하였다. 여기서 어휘적이라 함은 주로 복합어의 구성 요소를 가리키고 문법적이라 함은 ‘토’로 대표되는 조사와 어미를 가리킨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사의 분류남한은 자립성이 있는 말에 보편적으로 붙는 체언접사를 단어로 인정하는 데 반해 북한은 체언접사를 용언접사와 똑같은 문법 형태로 간주하여 ‘토’라는 더 큰 테두리 안에 담아 둔다. 따라서 남한은 ‘조사’를 하나의 품사로 인정한 9품사 체계를 따르고 있으나 북한에서는 ‘조사’를 제외한 8품사 체계를 따르고 있다. 이를 대조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남한 : 명사, 대명사, 수사, 동사, 형용사, 관형사, 부사, 조사, 감탄사?북한 : 명사, 수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 관형사, 부사, 감동사순서와 이름을 제외하고는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남한과 달리 수사가 대명사에 앞서 있으며, 남한의 감탄사를 ‘감동사’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다른 문법 범주에 비하면 품사 이름에 관한 한 남과 북이 모두 한자 용어를 선호한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품사 분류 기준은 남한에서는 ‘기능, 형태, 의미’를 드는데 반해 북한에서는 여기에 ‘단어 만들기에의 특성’을 더하여 4가지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3) 굴절론굴절론은 남한과 북한이 가장 큰 문법적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굴절론은 체언의 어미굴곡과 용언의 어미 활용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데 남한에서는 체언의 굴곡 어미를 ‘조사’라는 단어로 보기 때문에 용언의 활용 어미에 관해서만 논의된다. 용언은 어간과 어미로 나뉘고, 어미는 놓이는 위치에 따라 선어말 어미와 어말 어미로 나뉘며 어말 어미는 문법적 기능에 따라 종결 어미, 연결 어미, 전성 어미로 나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북한에서는 체언과 용언이 굴절하는 ‘토’를 갖는다고 본다. ‘토’는 조사와 어미 종류는 물론, 사동, 피동, 시간, 높임의 선어말어미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남한의 용어와 대당시키기가 매우 어려운 문법 범주이다. 남한에서는 문법성이 분명하거나 그런 특성이 파악되는 사동, 피동, 시제, 높임의 접사를 형태론이 아닌 통사론에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이 모든 것을 형태론에서 다루고 있다.북한에서는 토가 대상성을 나타내는가 서술성을 나타내/다가
    인문/어학| 2004.08.08| 7페이지| 1,000원| 조회(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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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감상]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1. 서론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는 20세기 중반 유럽을 풍미하였던 '모더니즘 영화'를 표방한 젊은 감독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유럽의 모더니즘 영화는 1950년대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에서 촉발되어 프랑스의 누벨바그에서 정점에 올랐다가 파스빈더가 이끌었던 1970년대 뉴 저먼 씨네마를 끝으로 막을 내린 하나의 영화 사조로 보는 것이 일반이지만, ‘모더니즘’이라는 개념 자체가 다양한 예술적 경향과 사조들을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모더니즘 영화' 또한 넓게는 1920년대부터 나타난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시도하였던 다양한 종류의 영화들을 일컫는 광의의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영화들이 할리우드 장르 체제를 부정한다는 점, 개인주의를 근거로 한다는 점, 반(反)리얼리즘의 경향을 지닌다는 점, 이미지의 독립을 꾀한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형식적 실험을 바탕으로 전후 유럽 사회의 현실과 역사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도하였다는 점 등을 공통분모로 갖는 것만은 분명하다.파스빈더의 영화, 은 이러한 모더니즘적 시각에서 그려진 독일 현대사에 대한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마리아라는 한 여성의 개인사를 통해 당시 독일 사회가 안고 있던 뿌리 깊은 문제들에 대해 깊이 있게 천착해 들어간다. 여기서는 모더니즘적 시각을 중심으로 이 영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당대의 현실을 그리고, 독일의 현대사를 그려내고 있는 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2. 본론모더니즘 영화가 역사를 드러내는 방식은 ‘직설화법에 의한 보여주기’가 아닌 ‘간접화법에 의한 접근하기’라 명명할 수 있다. 반(反)리얼리즘 경향이라는 성격에서 알 수 있듯이, 모더니즘 감독들은 기존의 할리우드 장르 체계에 기대어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영화에 회의적 시각을 보였다. 그들은 이러한 리얼리티 영화는 당대 현실을 정확하게 재현하고 있지 않고 그럴듯하게 보이는 사실 효과reality effect만을 창출할 뿐이며, 오히려 무지한 대중들에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진정에 대한 구체적 시도로써 영화에 느슨한 서사구조를 대입하고,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가 하면, 파편화되고 추상화된 상징적 이미지들을 작품 곳곳에 배치하는 등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계속하였다. 파스빈더의 역시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 있었던 영화이다. 이 작품은 모더니즘 영화의 특성을 잘 드러내면서 동시에 이와는 다른 또 다른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1) 멜로 드라마의 차용파스빈더는 할리우드 장르 영화인 멜로드라마의 예찬자였다. 이것은 당대의 다른 모더니즘 감독들과는 상당히 다른 독특한 취향이었다. 당시의 감독들은 자신들의 영화가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하여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과의 차이점을 강조하고 영화제로부터 인정을 받아 국제적인 경쟁력을 쌓아야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대중 영화와는 구별되는 예술영화의 제작에만 몰두하였고 그로 인해 상당수의 대중들로부터는 외면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파스빈더는 영화는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대중의 정서나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일이 감독이 해야할 첫 번째 과제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실천으로, 대중들이 쉽게 영화에 접근할 수 있도록 멜로드라마라는 양식을 자신의 영화에 자주 차용하였다. 이 영화, 역시 예외는 아니다. 멜로드라마가 기본적으로 남녀의 사랑을 통속적으로 그리고 있는 장르라면, 마리아와 빌, 오스발트 그리고 헤르만 사이에 얽혀있는 연애담을 기본 내러티브로 취하고 있는 이 영화는 분명 멜로드라마의 외형을 취하고 있다.그러나 이 영화는 맘 편히 의자에 앉아 그네들의 연애담을 관음할 수 있는 그런 뻔한 종류의 멜로 드라마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는 사회 비판적 성격의 드라마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감독은 멜로 드라마의 외형을 취하면서도 영화 곳곳에 다양한 형식 요소를 배치하고 복합적인 코드화 작업을 감행함으로써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낭만적 로망스나 체루성 멜로물을 기대하고 극장을 최소한 영화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와 구성적 프레임을 제공하였다. 따라서 그의 영화에서 멜로 드라마라는 형식적 틀은 장르의 차용이라기보다는 장르의 패러디라는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이다. 이러한 파스빈더식 멜로 드라마는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에 관찰자적 시각을 취하게 만들며, 강요된 즉흥적 반응이 아닌 능동적이며 분석적 시선을 이끌어 내게 된다.2) 개인사를 통해 드러낸 당대 사회의 문제모더니즘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감독 개인의 자의식이 자기 반영적 형태로 영화 속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실체인 영화가 자신의 리얼리티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런 자의식적 경향은 감독 개인의 주관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영화 속에 나타났다. 즉, 개인적인 경험이나 고백이 영화 곳곳에 삽입되면서 이에 대한 실존적 고민과 형이상학적 주제들, 혹은 정치적 소견이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로 영화 안에서 드러났던 것이다. 에서 마리아가 어머니와 어머니의 애인, 동생, 그리고 그녀의 남편, 할아버지와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은 그가 뮌헨에서 집 잃은 외가 쪽 친척 및 이웃들과 함께 살았던 힘겨운 공동 생활의 거억에서 기인한 것이다. 또한 마리아가 미군 술집에 취직하기 위해 잘 알고 지내던 의사를 찾아가는 장면은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해 의사인 그의 아버지를 찾아 왔던 창녀들과의 만남에서 기인한 것이다. 파스빈더는 이러한 개인적 경험들을 바탕으로 마리아라는 허구의 인물을 창조해내 그녀의 개인사를 침착하게 따라가면서 당대 독일 사회가 갖고 있었던 사회적, 역사적 병폐를 끄집어내는 방법을 사용한다.사실 내러티브에만 주목한다면 이 영화는 외관상 마리아 브라운이라는 한 개인의 성공과 몰락을 다룬 지극히 사적인 영화로 간주될 수 있다. 이 영화는 주류 영화가 흔히 다루는 역사 속에 존재하는 위대한 사람에 대한 기록도 아니며, 비주류 영화에서 종종 발견되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 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져 가는 한 개인의 비참한 모습을 담고 있정에서도 어떠한 역사적 특수성은 발견되지 않는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와 2003년에 이 영화를 다시 만든다 하여도 비슷한 설정과 배경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러티브적 전개를 영화 속에서 표현된 다양한 기호 체계와의 연관 관계 속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이 실제로는 마리아의 개인사를 통해 독일의 현대사, 곧 20세기라는 거대 역사와 조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이 영화에서 역사적 시간의 추이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은 히틀러와 역대 독일 수상의 모습이 몽타주된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 그리고 영화의 중간 중간에 청각적으로 몽타주된 아데나워의 연설과 54년 독일 월드컵에서 서독의 우승을 알리는 라디오 중계방송뿐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보여지는 히틀러의 초상화는 이 영화의 역사적 출발점이 나치 시대임을 상징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보여지는 역대 독일 수상의 음화 사진이 헬무트 슈미트에서 음화에서 양화로 바뀌는 것은 영화의 현재가 독일의 번영기에 이르렀음을 상징한다. 나치 시대는 곧 파시즘의 시대였으며 독일인들에게는 전체주의에 휩싸여 이성을 잃고 야만적 살인을 서슴지 않던 때이다. 이러한 시대를 대표하는 히틀러의 초상화와 전후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상당한 경제적 부을 이루었던 시기의 슈미트의 사진이 동일한 방식으로 몽타주된 것은 독일이 나치 시대의 역사와 파시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이러한 짐작을 가능케 하는 것은 마리아의 성을 매개로 이루어진 오스발트와 헤르만 사이의 계약이 밝혀지는 부분에서이다.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라 생각하였고, 결혼과 사랑 또한 주체적으로 선택하였다고 믿어왔던 마리아가 돈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진 계약의 한갓 매개물이었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추악한 근성과 남성의 권력이라는 또 다른 파시즘에 유린당한 여성의 혹은 한 개인의 삶을 통해 바라본 독일 사회 전체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파스빈더는 마리아라는 지극히 개인적 인물의 역사를 통해 당대 독일 사회가 벗어나고 있지 때 마리아와 그의 가족들은 일상의 대화만을 주고받으며 지극히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감독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면 이 장면은 아데나워의 연설에 동조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고, 당시 사회적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독일 국민이 보여주었던 역사적 무관심과 치욕적 역사에 대한 책임 회피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두 번째 청각적 몽타주가 삽입되는 부분은 마리아가 오스발트의 죽음을 전해 듣고 슬퍼하던 부분인데 이 때에 흘러나오는 아데나워의 연설은 독일의 재무장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슬픔을 달래기 위해 폭식을 하였던 마리아는 비틀거리며 식탁에서 걸어 나와 심한 구토를 하는데 이러한 감독의 연출은 아데나워의 연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비판적이며 반항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청각적 몽타주가 사용된 부분은 마리아가 자신을 매개로 이루어진 계약의 존재를 깨닫고 의도적이었는지 알 수 없는 가스 폭발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장면인데, 이 때에는 54년 독일 올림픽에서의 우승이 서독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청신호로 기록될 것이라는 내용의 라디오 방송이 나온다. 54년에는 아데나워의 독일 재무장에 대한 연설도 있었음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중계방송이 나오는 상황에서 가스 폭발이 의미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독일 사회의 붕괴를 뜻하는 것이며 파시즘에 대해 역사적 종말을 고해야 한다는 감독의 뜻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파스빈더는 마리아라는 인물의 개인사를 통해 독일 현대 사회가 앉고 있는 파시즘의 광기에 대해 독특한 형식적 방법으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3) 낯설게 하기브레이트의 존재는 모더니즘 영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지만, 파스빈더의 영화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브레이트의 영향은 대상을 낯설게 만드는 방식에서이다. 흔히 생소화 기법이라 불리는 이 방식은 관객이 영화 속의 현실에 동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장센, 편집, 사건 진행, 그리고 연기 등에서 의도적으로 낯선 상황을 연출하는 방법다.
    인문/어학| 2004.08.08| 6페이지| 1,000원| 조회(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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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고전소설] 최치원전 연구 평가C아쉬워요
    Ⅰ. 서론寃死한 두 여귀와의 만남을 다룬 최치원의 명혼담은 중국과 국내의 문헌에 나란히 수록되어 있었던 관계로 일찍부터 그 존재가 알려져 왔다. 이 작품이 본격적으로 학계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된 것은 1940년 이인영에 의해 『태평통재』 권68에 실린 「최치원」이 발굴 ? 소개되면서부터이다. 전기적 성격이 강한 「금오신화」와의 유사성으로 인해 이 작품은 이인영의 논의 이후 항상 우리 고소설사의 출발을 어느 시대로 잡을 지에 대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한국 문학사에서 소설의 발생 기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대립되는 두 견해가 있어왔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에서부터라는 견해와 나말 여초의 傳奇에서부터라는 견해가 그것이다.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최초의 소설로 보는 견해는 소설에서의 대립 갈등적 요소를 중시하고 이를 사회 ? 사상사적 흐름과 관련짓는 태도로 1970년대 이전의 모든 논의가 이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나말 여초의 전기를 소설의 시초로 보는 견해는 우리 소설사의 흐름을 동아시아 한문 문화권의 공통 서사장르인 傳奇가 지니고 있는 장르관습과 관련짓는 태도로 1970년대 이후 주목을 받고 있는 논의이다. 후자의 논의에 불을 집힌 것이 바로 「최치원」의 발견이라 할 수 있다.따라서 「최치원」에 대한 논의는 작품이 지니고 있는 소설적 성격을 중심으로 작품의 작자와 창작 시기를 밝히는 연구 위주로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연구 사료의 부족 등으로 그 결과는 아직까지도 뚜렷한 학설로 정해지지 못한 채 다양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상태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최치원」을 둘러싼 쟁점적 사안들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축척된 연구 성과를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해 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최치원」의 수록 문헌「최치원」은 조선 성종 때 성임(1417-1484)이 엮은 『태평통재』에 「최치원」이란 제목으로 그 본문이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태평통재』는 중국 송대의 『태평광기』를 본떠 조선 고금의 異聞奇設을 모아 수록한 책이다. 이 작품의 말었던 것이 『태평통재』에 완문으로 실리게 되고, 이를 다시 『대동운부군옥』으로 옮기면서 그 내용이 많이 축약된 것으로 볼 수 있다.「최치원」은 또한 중국 남송 시기 편찬된 『육조사적편류』의 「쌍녀묘」조에도 동일한 이야기가 요약 ?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 출전을 「쌍녀분기」로 밝히고 있다. 「쌍녀분기」는 누구에 의해 언제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치원」 혹은 민간에 전승되던 쌍녀분 이야기를 소재로 취해서 지어진 것으로 김건곤은 보고 있다.) 「쌍녀분기」는 작품의 구비전승 과정 중 와전되어 二女의 출신지만 바뀌어 있을 뿐 「최치원」과 기본 줄거리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2. 「최치원」의 작자 문제「최치원」의 작자와 창작 시기에 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이에 관한 연구는 아직까지도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최치원 원작설, 나말 여초 문인설, 조선조 문인 재창작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것은 「최치원」이 최초로 실려 있는 『신라수이전』의 작자 및 저작과정, 그리고 배경 등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고려 고종 때의 『해동고승전』에는 “若按朴寅亮殊異傳云..”이라 하여 『수이전』의 저자를 박인량으로 명기하였고, 조선 명종 때의 『대동운부군옥』에는 “新羅殊異傳 崔致遠”이라 하여 『신라수이전』의 저자를 최치원이라 명기하여 생긴 혼란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찍이 지준모, 조동일은 원작 최치원, 보완 박일량, 개작 김척명으로 하는 절충안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각각의 논의를 대표하는 학자의 견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1) 조선조 문인 재창작설조선조 문인 재창작설은 기본적으로 소설의 발생이 조선 초기에 와서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시각에 기초한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학자는 박일용으로, 그는 작품에 드러나는 비판적 지식인층의 소외의식과 비판의식 등을 고려하여 「최치원」이 기존의 최치원 전설을 바탕으로 조선 초기 어느 문인의 손에 의해 재창작된 전기계 소설이라고 추정하고 있다.)그러나 「수이전』의 저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을 바탕으로 박인량 원작설을 제기한 바 있다. 이 견해의 주된 논거는 작품의 출전인 『수이전』의 저자가 박인량이 유력하다는 것, 작품의 회고적 성격상 최치원이 자신의 이야기를 썼을 가능성이 적다는 것, 그리고 작품 말미에 “최치원이 심은 모란이 아직도 있다”라는 표현이 있다는 것 등이다. 박희병 또한 이 구절을 처음 주목한 이동환의 견해를 수용하고 논의를 더욱 확대 시켜, 「최치원」의 작자에 대해 “「최치원」의 작자는 최치원과 대동소이한 처지에 있었거나 적어도 최치원의 처지에 공감할 만한 처지에 있던 지식인 내지는 문인이 아니었을까 한다 …… 조금 더 추정해 보는 것이 허용된다면, 「최치원」은 최치원 사후(死後)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어느 문인이 창작했으리라 짐작된다.”)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는 김종철과는 달리 박인량을 저자로 보고 있지는 않으며, 나말에 당 유학을 한 육두품 출신의 인물로서 나려 교체기의 혼란스런 사회 현실 속에서 초세적 태도를 취한 인물로 저자를 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견해는 정확한 근거 없이 추정에만 머무르고 있어 정설로 인정하기엔 곤란한 점이 많다.3) 최치원 원작설최치원 원작설은 김건곤의 논의로 대표된다.) 그는 『신라수이전』의 작자가 최치원임을 먼저 밝히고, 따라서 『신라수이전』으로 출처를 밝히고 있는 「최치원」 또한 최치원의 작품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해동고승전』, 『삼국유사』, 『태평통재』, 『삼국사절요』, 『대동운부군옥』등에 기록된 『수이전』에 관한 명칭을 정리하여, “최치원의 『신라수이전』과 박인량의 『수이전』 양종이 있는 듯한데, 그것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후자가 전자의 증보인지, 어느 한 작가가 잘못 표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 문헌에 나타나는 기록으로 미루어 통상 『수이전』이라고 하면 『신라수이전』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라고 주장하고, 권문해의 기록에 따라 『신라수이전』을 최치원 것으로 『수계기로 쌍녀와 만나 酬酌하다가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에 닭이 울자 쌍녀가 헤어져 스스로 위로하며 詩를 읊는 데서 끝이 난다고 한다. 그 뒤에 있는 주인공의 만년 생애는 이 작품의 중심 줄거리와 어떤 상관성이나 긴밀성을 가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문헌 예컨대 『삼국사기』의 「최치원열전」 같은 데에도 비슷한 내용이 보이고 있어 후인이 가필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논의를 강화하기 위해 작품에 삽입된 시를 풍격, 韻字, 辭語 면에서 검토하여 최치원의 시와 부합됨을 증명하고 있다.덧붙여 그는 최치원이 언제, 어디서 왜, 「최치원」과 『신라수이전』을 지었는가에 대해서도 해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신라수이전』은 최치원이 唐에 있을 때 高騈에게 自薦하는 과정에서, 高騈이 신선과 기이한 것을 좋아했으므로 자신의 文才를 과시하는 한편 그의 환심을 사서 관직을 얻고자 지은 것이며, 책 제목의 ‘신라’라는 국명도 高騈과의 관계 즉 韓 ? 中 관계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은 『신라수이전』의 저자, 저작 배경, 「최치원」의 문헌성격을 중심으로 한 최치원 원작설은 상당한 타당성을 지니고 있어 오늘날 학자들에 의해 많이 수용되고 있는 논의라 할 수 있다.3. 「최치원」의 전기 소설적 면모「최치원」이 지니는 전기 소설적 성격에 대해서는 자못 정연한 이론적 토대를 이루며 상당한 연구 성과를 축척하여 왔다. 근래의 대표적인 연구 성과로는 이헌홍)과 박희병)의 논의를 들 수 있다. 이헌홍은 먼저 「최치원」을 서사 진행상의 단절이 생기지 않는 최소 단계까지 단락으로 나누고, 분석된 단락들을 자료로 하여 그 전기 소설적 특성을 살펴보았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최치원전」은 플롯의 전개과정상 서두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의 다섯 단계의 단층으로 나눌 수 있다. 이와 같은 각각의 단층들은 그 연관관계가 단순한 시간적 계기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필연성을 위해 상호 유기적 인과관계로 맺어지고 있다.2) 이를 통해 볼 때, 「최치원」은 史 개입되며 또 그것이 분위기를 위한 단순한 서정적 장식물로서의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사 진행에 직접 관여한다는 점, ⑤사건이나 행동이 生의 一斷面을 다루고 있다는 점, ⑥사실 보고적 이야기가 아닌 장면적 이야기라는 점, ⑦성격묘사 및 대화가 중요시 된다는 점에서 전기소설로서의 제반 특성과 부합되는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4) 「최치원」의 공간구조 분석을 통해 볼 때, ①史傳的 요소와 傳奇的요소가 時空의 이동에 따라 상관관계를 맺고 전개된다는 점, ②작품의 時空的 구조와 액자소설적구조가 이리한다는 점, ③時空의 이동과 최치원의 의식의 변모가 인과관계로 맺어지고 있다는 점, ④時空의 이동에 따른 이러한 변모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조적 특성은 이 작품이 설화가 아닌 전기소설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이헌홍은 후에 才子佳人의 짙은 사랑 이야기라는 점, 인물의 개성이 강조되고 사실보다 묘사에 치주하다는 점 및 상업활동에 의해 축적된 富를 중시하는 부모의 결혼관 등을 들어, 이 작품이 전기소설의 제반 특징 및 사회배경적 요인 등과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논의는 「최치원」이 설화와는 달리 작가의 작의적 허구적 의도에 의해 형상화된 소설 작품이며, 이는 당나라 시대의 傳奇 일반이 지닌 성격과도 대체로 부합되면서 동시에 「금오신화」가 보여주는 소설적 성격과도 일맥상통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박희병은 먼저 설화와 전기소설의 차이를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최치원」이 가진 전기 소설적 성격을 밝힌다. 기본적으로 전기소설은 설화와 ①작가의 창작성 및 문식의 가미, ②사회현실의 보다 풍부한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설화와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것으로 연구되어 왔다. 박희병은 여기에 더 논의를 보태어 ①인물과 환경의 구체적 묘사, ②성장, 변화, 형성으로 표상되는 ‘시간의 본질’ ③섬세하고 내면적이며 고독한 인간상, ④창작의 뚜렷한 목적의식, ⑤ 감각적이고 화려한 문어체의 한문 있다.
    인문/어학| 2004.08.08| 7페이지| 1,000원| 조회(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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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감상문] 핑크플로이드의 <더 월> 평가B괜찮아요
    핑크 플로이드의 마치 누군가의 심연의 의식 세계로 들어가듯 어두운 복도 끝을 향해 느린 걸음으로 다가가던 카메라는 굳게 닫혀진 문 앞에 서게 된다. 자물쇠로 잠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쇠사슬로 칭칭 감겨져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문 안의 세상과 문 밖의 세상은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다. 그리고 방 안에는 한 남자가 있다. 갇혀진 공간 안에서 그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TV뿐이다. 그러나 TV에서는 연신 흑백화면의 오래된 영상만이 흘러나오고 이를 바라보아야 할 남자의 시선은 허공을 향해 흩어져 있다. 정말 지독한 단절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은 이러한 단절이 깨어지면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아닌 타자에 의해 문이 열리는 순간 이 남자는 광기에 휩싸인 파시스트로 변해 있으며 그를 이런 광기로 몰아넣은 과거의 상처가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처음 보는 영화였고, 제목 또한 들어 본 적이 없는 작품이었지만 눈에 익은 장면이 몇몇 있었다. 특히 기괴한 가면을 쓰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학생들이 소시지로 변해 나오는 장면은 획일화된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마다 자주 소개되는 장면인 듯 하였다. 그러나 이 날 함께 본 장 비고의 1933년 작품인 와는 그 고발의 방식과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에는 감옥과도 같은 학교 생활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그리고 권위적이고 타락한 교사들을 멋지게 골탕 먹이고자 하는 악동들이 등장한다. 이 악동들은 억압적인 학교 교육에 순응하기엔 너무나 자유분방한 열정의 소유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현실을 파괴하기 위해 자그마한 혁명(소란)을 일으킨다. 는 이렇게 교육의 소비자라 할 수 있는 학생들이 소비의 권리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고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인 핑크는 이러한 현실에 대항할 만한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소년시절 그가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삼았던 시작 행위가 교사에 의해 제지당한 뒤에 그가 취한 행동이란 마음의 문을 닫고 감정을 숨기는 일이었다. 은 나약하기만 한 한 인간이 학교 교육에 순응하며 성장할 때의 말로를 비극적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억압적인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고발한다고 할 수 있다. 에서의 악동들의 소란이 유쾌하게 그려져 웃음을 자아낸다면 에서의 핑크의 모습은 안쓰러워 슬픔을 자아낸다.핑크가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것은 비단 학교 교육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근본적 이유는 아버지의 부재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인간 광기의 소산인 전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억압적이고 획일화된 교육, 폭력적 전쟁, 인간 소외와 고독감, 무절제한 쾌락 추구, 광적인 대중심리 등 여러 소재를 다루고 있고 이를 모두 우리가 깨뜨려야할 벽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두를 꿰뚫고 하나의 끈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전쟁이다. 전쟁은 그가 또 우리가 무너뜨려야 할 최우선의 목표가 된다. 핑크는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이러한 아버지의 부재는 부성애 결핍증과 콤플렉스로 그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소외의 감정을 야기시켰다. 또한 그로 인한 어머니의 과잉 보호는 그의 성생활에도 영향을 끼쳐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소년시절을 힘들게 보낸 핑크에게 한 여인의 등장은 분명 그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여인과의 헤어짐이 가져다 준 고통은 그가 겪는 고독과 소외를 가중시키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 그런데 이 여인이 핑크를 떠나게 되는 이유가 그녀가 반전운동에 참여하면서 만나게 된 동료와의 사랑 때문이라는 설정이 참으로 흥미롭다. 전쟁으로 인한 파장이 다시 한번 핑크에게 고통을 가져다 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듯한 파시스트적 정치 운동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비록 환영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의 인종차별적이고 호전적인 행위는 반전운동이 가져다준 좌절감에 대한 공격이었으며 넓게는 그를 구속한 모든 제약들에 대한 공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계속되는 환영 속에서 그는 거의 인간 본성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냈다는 죄목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의 죄는 유죄로 판결이 나고 그 형벌로써 벽을 부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그를 사회로부터 또 현실로부터 지독히도 단절시켜 왔던 제약들을 모두 부수라는 명령은 형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해방의 의미에 가깝다. 그가 뛰어 넘을 수 없었던 벽이 부서지기만 한다면 그는 그 벽 너머에 있을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아니러니하게도 벽을 부수어 버린 뒤 그가 가장 처음으로 보게 되는 세상은 무너진 벽을 다시 쌓고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다. 벽을 부수어 버린 뒤 또 다른 벽을 쌓는 것, 벽을 부수어 버려도 또 다른 벽이 존재하는 것만큼이나 가혹한 형벌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결국 벽 안에서 안주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생기는 벽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제약으로 다가오는 사회적 가치를 언제든 부수어 버릴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그 노력과 시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독후감/창작| 2003.07.19| 2페이지| 1,000원| 조회(1,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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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서 론은 국내외적으로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18세기 초엽에 형성된 이래, 시대를 달리하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도를 반영하듯 에 대한 연구는 1922년 『朝鮮』에 麻生璣次가 「춘향전」이란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어 그간 김동욱을 비롯한 170여명의 논자에 의해 320편을 상회하는 논문이 발표되면서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 왔다.) 물론 연구 논문의 편수만으로 그 성과를 높이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단일 작품군에 대한 연구로써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결과이므로, 이것은 그만큼 이 우리 고전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여타의 다른 작품보다 지대하다는 것은 반증하는 자료가 될 것이다. 의 이본의 수나 대중적 인기도, 문학사적 위치 등에서 살펴본다면 이는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그간의 연구는 의 성립배경과 형성문제와 같은 기초적 단계에서부터 주제, 서사구조와 같이 보다 심화된 단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어 왔다. 여기서는 이를 바탕으로 춘향전의 성립배경 및 근원설화, 이본의 현황과 계통, 그리고 문학사적 위치의 측면에서 춘향전을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Ⅱ. 본 론1. 의 성립배경 및 근원설화1) 근원설화)이제까지 알려진 의 근원설화는 열녀설화, 암행어사설화, 伸寃설화, 염정설화로 분류될 수 있다. 열녀설화는 여자가 정절을 지켰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설화이다. 의 전반부에는 춘향이 이도령과 백년가약을 맺은 후에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라는 이유에서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하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열녀설화에서 주로 다루어지던 내용이었다. 따라서 춘향의 신분이 비록 천한 기생이기는 하나 여염 규수의 이념적 행실로 여겨지던 열녀를 지향하고 실현한다는 점에서 은 열녀설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 설화로써는 『고려사』에 전하는 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등이 있다.암행어사설화는 암행어사가 권력자나 부자의 횡포를 징치하고 약자의 한을 풀어주었다는 내 데에도 중요한 의의를 가져왔다.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 설화로써는 , , 등이 있다.마지막으로 염정설화는 연모하여 그리워하는 내용의 설화를 가리킨다. 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도령과 성춘향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염정설화에서도 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 설화로써는 , 등이 있다.김태준을 비롯한 초기 연구자들은 대개 이런 다양한 설화가 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김동욱은 이전에 논의되어 오던 여러 설화들을 형성에 소재가 되는 것은 근원설화로, 의 발생에 관한 것은 발생설화로 구분하고 근원설화를 4가지로 분류하여 그 하위에 개별적 설화들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이런 다양한 설화에서 의 기원을 찾기 보다는 단일한 설화로 그 범위를 좁혀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설성경은 의 전반부는 염정설화나 신원설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리고 후반부는 암행어사설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두 가지 설화의 합성을 통해 이 나왔다고 보았다. 또한 그보다 더 후기 학자인 김종철은 작품의 구조에 치중한 연구를 통해 의 핵심구조에 대응하는 근원설화는 오직 염정설화 뿐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하였다.2) 의 성립배경과 작자의 문제의 발생과 기원에 대한 연구는 巫樂起源發生說, 梁進士창작설, 元曲 飜案說, 문장체소설 선생설, 한문소설 부연설, 판소리 발생설, 설화근원설 등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되어 왔다. 이들 중 정설로 인정되거나 유력한 학설로 평가받고 있는 것을 종합해 보면 은 ‘근원설화→판소리→판소리 소설’의 방법으로, 그리고 ‘무굿→광대창극(판소리)→소설’의 방법으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소설 이 판소리 에서 양식 변형을 거쳐 이루어졌다는 학설은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대한 논의를 확고히 한 사람은 김동욱이다. 그는 김태준이 『조선소설사』에서 “春香傳의 古本은 옛날이야기책 모양으로 傳해 오던 것을 광대들의 입으로 옮기기 시작하여 … 歌劇으로 완성된 모양이니” 참여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고증한 다음 근원설화가 유랑광대에 의해 판소리로 이행하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광대를 작자로 본 그의 견해는 의 적층문학적, 민중문학적 성격에도 부합되는 것이므로 이후 많은 학자들에게 수용되어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다.판소리의 발생에 대한 논의로는 鄭魯湜이 제시해 李惠求, 徐大錫 등에게 이어지는 巫樂起源發生說이 학계에서 가장 유력할 학설로 평가받고 있다. 정노식은 판소리를 주제로 한 『조선창극사』(1939)에서 판소리 광대들의 口述을 바탕으로 하여 名唱들의 略傳과 逸話를 기술하면서 ‘무굿 → 광대창극 → 소설’로의 전이방법을 제시 하였다. 그리고 춘향가가 ‘남원지방의 설화→살풀이굿→문호의 첨삭 ? 세련→광대의 부연과 윤색’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의 논의는 이후의 학자들에게 부분적으로 수용되기도 했는데 특히 설성경은 이를 참조하여 이 ‘춘향굿 단계→춘향소리굿 단계→춘향소리 단계’를 거쳐 형성 발전한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다양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으나 춘향전이 巫樂이나 살풀이굿에 기원을 두고 판소리로 형성되어 판소리 소설로 나아간 것임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2. 異本의 현황과 계통1) 異本 현황과 善本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진 의 異本은 100여종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最古本은 유진한(1711-1791)의 문집인 에 전하는 ‘歌詞 춘향가 二伯句’로 작자가 판소리 춘향가를 듣고 이를 漢詩化한 작품이다. 다음으로 나타나는 것은 판소리를 한역한 漢文本인데 回章體小說로 된 와 장편악부형식으로 된 그리고 과 등이 여기에 속한다. 목판본으로는 완판 33장본 , 완판 30장본 , 경판 35장본 ? 30장본 등이 있다. 그리고 필사본으로는 이명성 소장의 古寫本 , 고대 도서관 소장본 , 도남본 , 비장본 , 一?本 , 비장본 , 김동욱본 , 백정재 藏本의 寫本 등이 있다.이와 같은 이본들 중에서 1864-1869년으로 연대가 추정되는 와 뛰어난 문장을 자랑하는 완판 84장본 , 한글본 중 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하는 著者의 意圖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성현경 또한 “우리는 이 본이 과연 의 결정판 최고 걸작본이 되기에 손색이 없는 대본임을 확인할 수 있다.”)라고 하며 를 의 善本으로 인정하고 있다. 김동욱은 비록 “庶民的 肉談을 풍부히 가지고” 있다고만 하였으나 에는 이 뿐만 아니라 양반들의 한시문도 수다하며 잡가, 민요, 시조, 가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삽입가요도 있어서, 밑바닥 천민층으로부터 저 위 귀족층에 이르기까지 당대 모든 계층들의 문화와 생활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국민문학적 성격까지 덧붙여 생각해 볼 때에 가 의 善本으로 자리하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듯 하다.2) 異本의 계통연구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100여종에 달하는 이본들을 남겼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이본의 계통 설정이 불가피하였다. 일찍이 김동욱은 춘향의 신분이 기생이야, 아니냐를 기분으로 의 이본들을 기생계와 비기생계로 나눈 적이 있다. 기생계는 춘향의 애초 신분이 기생으로 설정되어 있는 계통으로, 현전 최고본에 해당하는 만화본 을 비롯하여, 경판 16장본 ? 30장본 ? 35장본, 안성판 20장본, 완판 30장본, 33장본, 고대본, 이고본, 등 대다수의 이본들이 여기에 속한다. 비기생계는 춘향의 신분이 양반 서녀로 설정되어 있는 계통으로, 신재효본 완판 84장본, 등 극히 소수의 이본들만이 여기에 속한다. 예외적인 것이 없지는 않지만 이본군의 대략적인 변이양상은 춘향의 신분이 후대로 갈수록 상승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대원군 집정기와 고종 연간에 이르러 판소리가 양반적 취향에 의해 俗化되는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구미에 맞게 내용이 개작, 윤색되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이본의 계통을 구분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춘향과 이도령이 만나서 인연을 맺을 때 춘향이 몸을 허락한 후에 춘향측의 요구나 이도령의 자청에 의하여 도령이 사랑의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는 사적인 문서인 不忘記를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불망기계와 비불망기계계에 속하는 이본들로는 파리 동양어학교본 를 비롯한 일본의 동양문고본 , 동경대학본 등의 세책용 필사본과 최남선의 이 있고, 경판 35장본, 30장본, 23장본, 17장본 16장본, 안성판 20장본의 목판본이 있다. 옥중화계에 속하는 이본들은 이해조의 를 비롯한 20세기 초에 활자본으로 인쇄된 대부분의 것들이다.설성경이 구분한 세 가지 계통본들은 각각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사회, 경제, 문학사의 시대적 변모에 따라 다양한 변이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먼저 신분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후대로 갈수록 춘향의 사회적 계층이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경제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남원고사 계열에서부터 ‘돈이 등장’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정치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춘향을 지지하는 민중세력이 후대로 갈수록 확대되어 가고 이와 함께 풍자와 골계도 확대되어 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20세기 옥중화계에 오면 개화의 문제가 부분적으로 가시화되어 작품에 나타나기도 한다.3. 문학사적 위치은 이미 3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愛讀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문학사적 위치가 지대함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여기서는 크게 양식적 측면과 주제적 측면에 집중해 이 우리 문학사에서 가지는 위상을 살펴보도록 하겠다.소설 은 조선후기 발달하기 시작한 판소리계 소설의 최선봉에 위치해 있는 작품이다. 과 같은 판소리계 소설의 작품들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 원류를 판소리에 두고 있다. 판소리는 우리 민족이 창조한 독창적인 체계를 갖춘 종합예술형의 소리극으로, 18세기부터 불리어지기 시작해 기층민의 의식과 정감을 바탕으로 민중 문학을 대표하는 예술 양식으로 자리잡아 왔다. 이러한 판소리에서 그 문학적 요소인 사설이 분화되어 소설 양식으로 옮아온 것이 바로 이다. 즉, 이미 문학 영역에서 가장 대중적인 기반이 튼튼하던 소설 양식에다 판소리극의 문학적 측면인 사설을 차용하여 기록하는 소설화 작업을 통해 판소리계 소설 이 탄생한 것이다. 판소리의 사설이 지닌 극적인 전환에 있다.
    인문/어학| 2003.07.08| 7페이지| 1,000원| 조회(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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