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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개혁신앙과 교회
    제 1장 개혁신앙을 위한 교회조직신학자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I. 서 론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필요한 시기이며, 이후로 그의 신학과 사상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활발한 논의가 있어져야 하겠다.II. 본 론1.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배경박형룡 박사의 신학은 구 프린스톤 신학(Old Princeton Theology)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박형룡 박사는 삼일운동이 있는 그 이듬해 1920년에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에 있는 금릉대학에 입학하여 1923년 이 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9월부터 1926년 5월까지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에 유학하여 신학사(Th. B.)와 신학석사(Th. M.)학위를 받았다. 다시 1926년부터 이듬해 1927년 동안 미국 켄터키주 남침례교 신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에 돌아와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전도사, 동사 목사로 봉사하며, 1930년 평양신학교 임시교수가 되고, 이듬해 평양신학교 정교수가 되었으며, 1939년에는 그동안 준비한 논문으로, 남침례교 신학교에서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에 배경은 그가 신학사, 신학석사를 마친 1923년에서 1926년 사이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구체적으로 비롯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프린스톤 신학교가 설립된 1812년부터, 프린스톤 신학교의 이사회의 재편성으로 말미암아 동 신학교가 신학교 설립 이래로 표방해온 역사적 개혁주의, 정통 칼빈주의 신학을 포기하고, 그 시대의 사상적 흐름이었던 종교다원주의를 신학교의 나아갈 방향으로 정한 1929년까지 동신학교에서 주장되고 교수된 신학을, 1929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교수 되어온 신학과 대조하여 구 프린스톤 신학(Old Princeton Theology)이라고 부른다.박형룡 박사가 프린스톤 신학교에 유학한 1923년은, 미합중국 장로교회가 소위 근본주의 대 근대주의 논쟁에 휘말려있던 시기로, 1910년에 채택된 『근본교리 5개조』가 1916년과 1923년본 이름은 “신 학리사상 비판”)은 임마누엘 칸트(1724-1804)에 대한 새로운 비판의 계기를 이루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도이빌드의 기독교철학이 학리사상의 자율성에 도전해서 모든 학리사상이 어떤 전 학리적 전제(a pre-theoretical presupposition)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파헤치고 있으며, 동시에 학리사상의 자율성에 근거한 도그마를 파괴하는 일에 앞장섰다고 하는 점이다. 또한 도이빌드의 기독교철학은 그 출발이 우주법 개념의 신본주의에 근거하고,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이 우주법 아래 전 피조계를 두셨다고 하는 계시적 진리에서 출발하여, 우주법체계는 15개의 법칙으로 이루어지는데, 피조계는 신이 제정한 이 15개의 법칙을 따라 15계의 법계로 구분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신본주의적 우주관을 제시하고 있다.도이빌드의 기독교철학은 이상과 같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그 “결정적인 과오”를 범함으로써 ‘좌경적 사상성’이 농후한 철학사상으로 되고 말았다고 박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박 교수는 제 가지 점에서 도이빌드의 기독교 철학이 갖는 약점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첫째로 도이빌드가 ‘이분설적 인간론’을 거부하고 영혼의 실재에 대해서 회를 표명한 것과, 둘째로, 도이빌드가 기독교철학을 기독교신학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기독교철학이 기독교신학의 원리와 기능을 결정짓는 것처럼 말하여, 하나님의 계시진리보다도 철학우위의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 점과, 셋째로 도이빌드는 그의 종교론에서 종교의 영역을 교리연구나 예배행위에 국한시키지 않고, 인생의 전 영역에서 인간이 신을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여, 역사적 기독교의 계시주의 입장을 벗어나고 있는 점을 들었다.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박 교수는 도이빌드의 기독교철학이 갖는 많은 의의와 공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독교철학을 ‘좌경적 사상성’이 짙은 기독교철학으로 부르고 있으며, 그를 “좌경하는 기독교 철학의 기수”또는 급속히 좌경하는 기독교철학의 기수“로 부르고 있다.박 교수는 외국의 대표적 변증신베자, 스트라스부르크, 옥스퍼드, 추리히에서 활동한 피터 베르미글리, 그리고 아만두스 폴란두스, 프란시스 투레틴(1623-1687) 등이 개혁신학의 거장들이다.이후, 19세기 미국에서 활동한 찰스 하지, A. A. 하지 등이 있고, 미국의 B. B. 워필드, 화란에서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등은 19세기와 20세기를 이어가는 개혁신학자들이었다. 20세기 개혁신학자들로는 미국에서 구프린스톤 신학의 마지막 주자 메이천(1881-1937)을 위시하여 존 머리, 코넬리우스 반틸 등이 있고, 구프린스톤 신학전통을 물려받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왔다. 한편, 화란에서는 개혁적 사고를 철학에 적용하여 포괄적인 기독교 세계관, 기독교 인간관 수립을 위해 힘쓴 헤르만 도예베르트와 조직신학 분야에 일가를 이룬 베르카워 등이 있으나, 특히 베르카워의 경우, 그의 후기 신학에 있어서 로마 카톨릭에 대한 긍정적 입장과 칼 바프트 신학에 대한 경도로 말미암아 화란의 자유대학 뿐만 아니라, 캄펜 신학교, 나아가서는 하란 개혁교회의 전체적인 신학사상을 신정통 신학으로 물들게 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조지 말스든에 따르면, 미국에는 적어도 세 개의 중요한 “개혁주의”가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지적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에 의해 이미 제시된 것으로, 니콜라스는 이 세 가지 타입의 개혁주의를 각각 교리주의자, 문화주의자, 경건주의자로 명명하였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이 세 가지 개혁주의 전통은 각각 두드러진 특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개혁주의 교단들 사이에서, 또는 동일 교단 내에서도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연결되어 서로 나뉠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개혁주의 전통 속에서 이상의 세 가지 형태는 각각 지배적인 하나의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는 점에서 우리의 논의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Ⅰ. 미국 개혁주의의 세 가지 유형1. 고백주의 전통미국의 개혁주의 전통에서 첫 번째 두드러진 으니, 곧 예외조항이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조항에 위반되느냐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목사나 목사후보생이 자기 예외조항을 표명하고 또한 노회나 대회가 이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실지로 당시 출석한 19명의 목사들 중 18명이 신도게요와 대소요리문답을 자신들의 신앙고백으로 만장일치로 채택했다.1729년 채택안에 따르면, 미식민지 장로교회(미합중국 장로교회)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목사나 목사후보생은 반드시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와 대소요리문답을 채택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 밖에 아직 불명확하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신도게요 제20장과 23장에 있는 국가적 위정자와 관련한 구절에 대해서만큼은 “거리낌”을 표명할 수 있었다. 또한 이밖에 무슨 교리상의 “거리낌”을 가지고 있다고 표명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조항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거리낌은 수용할 만하다고 하는 여부를 자기가 속한 노회나 대회로 하여금 결정하게 하는 일이다. 존 톰슨이 제출하여 결국 1729년 채택안으로 채택된, 1727년 헌의안에서도 동일한 생각이 이미 발견된다.다섯째, 우리 지역내 어떤 목사가 동 조항들 중 어느 것에 반대되는 어떤 것을 가르치거나 설교하는 경우에, 먼저 논의를 위해 노회나 대회에 상기 요점을 제출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는 이러이러하게 책벌을 받게될 것이다.어떤 거리낌을 표명하는데 대한 이러한 절차는 신도게요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필요로 하게될 뿐만 아니라, 또한 목사나 목사후보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다른 점에 대하여 “공개적”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하여, 엄격한 서약론자들과 비서약론자들이 교회 안에서 교제를 즐길 수 있게 되며, 또한 만약 필요하다고 하면, 훗날 헴필과 같은 자연신론자를 권징하는 데 함께 협력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1729년 채택안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신도게요 서약에 관한 찰스 하지의 입장과 비교해 볼 때 더 확실시 될 것이다.찰스 하지는 1831년에 발간된 “콕스 박사의 서신에 대한 답변”이라고 하의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기도 하다.Ⅱ. 미국의 개혁주의 신학자들미국의 개혁주의 신학전통 속에 활동해 왔거나 활동하고 있는 몇 명의 신학자들을 통해 이들의 신학을 간결하게 조명해 보고자 한다. 지면관계상 필자가 속한 조직신학 분야에 기여한 개혁주의 신학자중 몇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1. 존 머리(John Murray)머리 교수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글라스고우 대학을 졸업하고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계속 공부하던 중,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캐스퍼 하지로부터 조수로 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마침 1929년 프린스톤 신학교의 이사회의 재편성으로 인한 신학적 좌경화에 대항하여 새로 설립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메이천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1930년부터 1966년 은퇴할 때까지 일생동안 후진들을 양성하고 조직신학 분야뿐만 아니라, 기독교 윤리학 부문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었다. 머리 교수의 글은 「존 머리 저작전집」(Collected Writings of John Murray) 전 4권에 담겨 있다. 우리 글로 소개된 「존 머레이 선집」은 원래 조직신학의 전 분야를 염두에 두고 차례대로 써 모은 글이 아니고, 머리 교수 사후에 그의 글들을 조직신학의 주제에 따라 모은 글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머리 교수가 조직신학의 주제들을 얼마만큼 포괄적으로 취급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보다는, 머리 교수가 조직신학의 여러 주제들을 다룰 때 사용했던 방법론에 대한 것이다. 머리 교수는 그의 스승이었던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로부터 성경신학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리고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은 각각 논리적인 접근법과 역사적인 접근법을 사용함에 있어서 구별되지만, 두 학과목은 확실히 양립할 수 있으며, 특히 성경 신학이 조직신학에 필수 불가결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머리 교수의 조직신학의 여러 주제들에 대한 성경신학적 접근방법은 현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조직신학 과장으로 있는 개핀 교수(Richard B. Ga였다.
    인문/어학| 2005.03.22| 33페이지| 3,000원| 조회(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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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관계와 심리학
    인간관계의심리학적 이해학지사, 인간관계의 심리학, 권석만- 제 6 장 대인 기술 -대인기술 - 사람을 사귀는 기술을 뜻한다. 그러나 한번 형성된 인상도 변할 수 있다.- 부정적 첫인상을 변화시켜 인간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대인기술이다.- 인간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사교적 능력으로 정의.- 사회적 기술 : 자신의 대인 목표 달성을 위해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전달하는 행동적 기술이다.- 자신의 권리, 요구, 만족 또는 의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며 동시에 타인의 유사 한 권리 요구, 만족, 의무를 손상시킴이 없이 타인과 자유스럽고 개방적인 교환 관계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권리 등을 생산적으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타인과 의 사 소통할 수 있는 능력대인기술의 특징 - 첫째, 대인기술은 기본적으로 학습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다.- 둘째, 대인기술은 언어적 행동과 비언어적 행동으로 구성된다.- 셋째, 대인기술의 적절성과 효과는 행위자, 상대방 그리고 상황의 특성 에 의해 결정된다- 넷째, 대인기술은 타인으로부터의 사회적 보상을 극대화한다.대인기술의 유형 - 비언어적 대인기술은 몸의 움직임, 신체적 접촉, 외모의 치장, 환경적 요 인, 부언어의 사용 등으로 다양. 언어적 소통내용을 대체하거나 보완하 고 시각적인 정보 등을 추가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언어적 소통의 강조사 항이나 정서적 내용을 풍부하게 전달하게하며 화자와 청자간의 의사소통 의 흐름을 조절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언어적 소통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미묘한 태도나 감정을 전달.- 언어적 의사소통은 내용과 질에 의해 크게 영향 받게 되며 경청하기, 질 문하기, 반영하기와 공감하기, 설명하기, 강화주기, 자기공개하기, 자기주 장하기, 농담하기 등이 있다.대인기술의 문제 - 대인기술 미숙형은 성장과정에서 적절한 대인기술을 습득하지 못하여 언어적 비언어적 기술이 부족한 유형.- 대인기술 억제형은 대인기술을 갖추고는 있으나 특정한 상황에서 심리 적 요인에 의해 기술이 억제되어 적절한 대인행동을 못하는 유형.경청하기 - 대화의 첫 규칙은 듣는 것이다. 말하는 표현기술이 아무리 훌륭해도 듣는 이해 기술이 부족하거나 무뚝뚝한 표정으로 있으면 말하는 사람은 거북해질 것이다. 상대가 하는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적극적으로 경청해야 한다.질문하기 -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주용한 대인기술이다. 추가적인 정보를 요청하고 상대방의 태도, 감정, 의견을 확인하는 행동이다.반영하기 - 상대방의 표현 내용에 대한 사실적 또는 정서적 이해를 말한다.상대방은 자신의 소통 내용이 관심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충분히 이해받고 있 다는 느낌을 갖게 됨으로써 대화와 인간관계에 대한 참여의 정도가 높아진다.공감하기 - 상대방의 표현 내용에 대한 사실적인 이해를 넘어서 상대방의 주관적인 기분과 입장에 대한 정서적인 이해를 말한다.상대방이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며 수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설명하기 -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정보를 상대방에게 제공하고 공유하기 위한 중요한 의사 소통 기술.강화주기 - 타인에 대한 인정, 긍정, 칭찬, 격려, 지지를 전달하는 언어적 표현.상대방이 자신이 따뜻하게 이해받고 수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상대방의 자존감과 자존심을 높여 주게 되어 대인관계가 즐겁고 보상적인 것으 로 느껴지게 한다.자기 공개하기 - 대인 관계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자신의 개 인적인 정보를 상대방에게 의도적으로 노출시키는 행위.상대방으로 하여금 경계심과 두려움을 완화하고 신뢰감을 증진하며 자기 공개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자기 주장하기 - 자신의 개인적인 권리를 옹호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 는 동시에 자신의 사고, 감정, 신념을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행동.유머, 농담하기 - 유쾌한 익살 해악 농담으로서 인간관계를 맛나게 하는 양념과 같은 것으 로 인간관계의 긴장을 해소하여 타인을 편안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유 머를 통해 함께 웃음으로써 인간관계를 유쾌하게 만드는 대인기술이다.대인기술 미숙형 - 성장과정에서 적절한 대인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사람들로 대인기술이 부족하여 대상과 상황에 적절하게 행동하지 못하여 상대방에게 호감을 일으키지 못하고 오히려 불쾌감을 주는 경우.
    인문/어학| 2006.10.12| 3페이지| 3,000원| 조회(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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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치료
    미술교육의 미술교수법적관점의 발달과 의의학지사(2003), 미술치료의 이해(이론과 실제), 정여주미술교육 - 미술교수법적 관점의 발달과 의의* 미술을 매개로 한 교육적, 치료적 작업은 역사적으로 볼 때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까지 거 슬러 올라간다.* 페스탈로치(1746-1827) : 교육적 미술치료의 선구자- 교육에서 아동들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힘을 개발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졌다.- 교육과정에 미술 시간이 의무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시도.- 미술수업의 방법을 자연에서 찾았다. 아동들은 감각적 관찰을 통하여 기하의 기본 형태 와 선, 직각, 곡선, 평행선 등을 연습하여,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 을 때, 미적인 아름다움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여 자연을 보고 소묘 하는 것이 주된 미 술 수업이었다.- 교육대상은 소외된 어린이, 중증 정신지체 아동도 포함.* 헤르바르트(1776-1841)- 조형 활동이 아동의 관찰방식, 행동, 생활에 작용을 하여, 아동의 정서를 고양시키고 미 적 감각력을 높이며 도덕적 판단 및 정서적 취향을 발전시킨다고 강조하였다. 아동의 감각을 통한 실제적 경험을 중요시하여 미술을 교육과 치료수단으로 적용.- 19세기 미술교육과 미술교수법이 자연묘사력, 외적인 아름다움과 균형을 중시.- 20세기 미술 교육가들은 표현주의 화풍과 프로이트의 심층심리학에 영향을 받아 미술 교육에 그러한 관점을 적용.- 성인만의 미술이 아니라 원시미술, 아동미술, 성인과 아동미술의 비교 등 관심대상.- 아동은 어린이다운 표현을 통제하고 주어진 과제에만 충실해야 하는 전시대의 미술 교 수법을 비판.- ‘아동의 내면적인 눈’에 더 관심을 가졌다. 아동의 본성에서부터 표현될 수 있는 미술 교육 방법들을 모색하였다.* 치첵(1865-1946) : 개혁적 관점의 대표적인 미술교유가- 아동그림의 형식과 기법은 무엇보다 아동들이 외적인 영향에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들 의 욕구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된다고 강조하였다.* 이텐(1888-1967)- 바우하우스 창립의 중요한 인물.- 감각경험을 조형 활동의 성취를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본다. 이에 따라 그는 조형 수업을 할 때 먼저 체조 연습부터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학생들이 무질서한 신체동작을 발산해버리고, 활발하고 균형 있게 움직이는 몸전체를 느끼고 체험하기 위한 것이다.- 저서 “색채의 예술”에서는 색채의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 원리를 화가들의 경험과 직관 에 바탕을 두고 연구하여, 미술교육과 미술치료의 이론적 바탕에도 영향을 미쳤다.* 칸딘스키(1866-1944)- 저서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관찰과 감정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술은 내적 요소와 외적 요소의 조화로운 결합이며, 예술가의 내적인 힘이 예술작품의 형식을 결정한다.- 색채와 형태는 심리적, 정신적, 육체적 영향을 준다는 것을 합리적이고 분석적으로 제시 한다.- 미술은 다른 감각과도 긴밀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음악, 시, 무용, 연극 등 의 매체를 통하여 알 수 있다고 하며, 예술가들의 통합적 상상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미술치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논거가 됨.* 20세기에 들어와서 미술교육은 조형 활동을 통한 심리적, 치료적 방향의 모색을 적극적으 로 시도하였다.* 교육적 관점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아동이 표현력을 높이며 자신감을 갖도록 장 려하는 방법을 중요하게 여겼다.* 미술교육자들은 아동과 청소년들의 미술표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창의력에도 관심이 많 아졌다.* 리드와 로웬펠드 : 20년대 듀이의 사상에 영향을 받음.- 예술을 보고 생각하고 느끼며 창의적 인간본질을 발전시키는 수단으로 보았다.- “아동중심” 활동구상이 이루어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조형의 과정을 중시하는 경향이 새로이 전개.완성된 작품의 미적 가치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자체를 더 중요시하였다. 액션 페인팅 의 화가인 폴록의 물감을 떨어뜨리는 기법이 대표적 예.* 코헨과 게이너- 미술교육에서 미술활동과정을 통한 아동들의 표현과 사고와 정서 및 감정을 중요시 함.- 미술교육과 교수법에 있어서 미술의 치료적 관점을 제시 함.
    인문/어학| 2006.10.12| 3페이지| 3,000원| 조회(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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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천신학]목사와 설교 평가A좋아요
    목사와 설교 - D. M. 로이드 죤즈제 1장 설교의 우위성제 2장 대치할 수 없는 말씀 증거제 3장 설교내용과 전달행위제 4장 설교의 형식제 5장 설교 행위제 6장 설교자제 7장 회중제 8장 메시지의 성격제 9장 설교자의 준비제10장 설교 준비제11장 설교의 조직제12장 예화, 웅변, 유우머제13장 금기사항제14장 결심의 요청제15장 함정과 낭만제16장 영력있는 증거목사와 설교를 읽고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설교자로서의 귀감이 되는 마틴 로이드 죤즈 목사가 그가 그토록 기준을 높게 설정하며, 연구하며 노력하며 애썼던 설교라는 것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강의한 것을 모은 이 책은 설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가장 탁월한 책이다.이 책은 설교자는 말할 것도 없고, 평신도에게도 너무나 큰 유익을 줄 수 있는 귀한 책이다. 이 책은 정말로 유대인들의 말처럼 옷을 팔아서라도 사야 할 그런 책이다.이 책은 설교라는 것에 대하여 다룬 것이 아니라, 설교 자체를 다루었다. 이 책의 저자인 로이드 죤즈의 설교 자체가 이 책에 대한 보증이 된다. 이 책에는 왜 반드시 교회에서는 설교라야 하는 지에 대한 이유가 나와 있다. 설교가 경시받고, 참된 설교를 듣기 힘든 요즘 실정에서 너무도 필요한 책이 아닐 수 없다.또한 이 책에는 설교의 영광과 설교자의 준비에 대하여 제시되어 있다. 설교를 준비하기 이전에 반드시 설교자는 자신을 준비해야 하는 존재임을 이 책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독자는 이 책을 손에 들고 벅찬 감격과 흥분과 설교의 낭만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로이드 죤즈는 설교란 배울 것은 많지만 가르쳐 줄 것은 별로 없는 학문이라고 하였다. 국내에 소개된 많은 강해 설교자들에 비해 로이드 죤즈는 매우 특별한 인물에 속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설교론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설교집 때문에 유명해 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설교론을 논할 때 이론적인 측면 보다는 실제적인 측면이 강조될 수 밖에 없었다.로이드 죤즈 목사는 이 책에서 설교는 한다. 왜냐하면 이 청중 분석이 그들에게 어떵게 설교해야 하는가를 부분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청중의 상태에 따라서 성경의 모든 메시지를 세가지 특별한 유형에 담아서 전해야 한다. 로이드 죤즈는 이 청중분석이야말로 모든 좋은 가르침의 기초적인 부분이요, 제일 첫째가는 원리라고 생각한다.로이드 죤즈는 먼저 청중들의 상태를 영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한다. 설교자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너무 쉽게 그들을 신자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영적상태에 관한한 오직 두 가지 가능성만 있을 뿐이다. 그들이 육신에 속했든지, 아니면 영에 속했든지 이다. 설교자는 이것을 올바로 분별해야 한다.다음으로는 청중들의 상황과 현실에 민감해야 한다. 그들의 문화적 정신적 상태와 지적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 그는 특정한 상황에 있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무엇이 적절한 것인지 알아야 하며 또한 진리의 특정한 측면이 특정한 경우에 적합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마지막으로 로이드 죤즈는 설교자는 자신의 진전 단계나 청중의 성숙도에 따라서 전달하는 방식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설교의 목적은 결국 사람들을 돕는 것이고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것이며 우리의 거룩한 신앙 안에 그들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 적응 하도록 항상 준비하라고 강조한다.그는 그의 이론과 실제를 바탕으로 세 가지 유형의 설교를 추천하고 있다. 불신자에게 하는 설교, 신자에게 경험적으로 하는 설교, 신자에게 순수하게 교훈적인설교이다.1) 불신자에게 하는 설교 - 로이드 죤즈는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추정하거나 신자들의 가정에서 세례를 받은 아이들이라고 해서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는 경향에 대해서 개탄하고 있다. 명목상의 기독교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성경적인 의미의 전도설교를 하라고 권하고 있다. 그는 이것을 절대적인 법칙으로 삼고 있다. 전도 설교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도록 하고 회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성경적인 근 주의로서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소위 케직 메시지의 일반적인 경향도 불완전한 거룩 교리로 간주한다.이러한 가르침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칭의와 성화 사이에는 아무런 간격이 없다고 설교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제2의 경험, 제2의 축복을 강력하게 부인한다. 거룩은 느낌이나 경험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매일의 삶 가운데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4장 에서는 설교란 언제나 신학적이어야 하며 신학적인 토대를 보편적인 명제로 해야 함을 말한다. 설교자는 메시지의 통일성을 위하여 조직신학을 잘 알아야 하며 또 조직신학의 기초가 되는 성경신학에 정통해야 한다. 조직신학의 바른 사용은 다루고 있는 본문 가운데서 특정교리를 발견할 때 그 교리를 중대하고 진수가 되는 전체 성경 교리에 비추어 보고 그것에 들어맞는 가를 확인해 봄으로서 그 교리를 통제하고 조정하는 것이다.1) 설교는 수필이 아니다 - 수필은 읽도록 쓰여 진 것이고 설교는 맨 먼저 말로 전해질 것과 들을 것을 의도한 것이다. 수필에는 문학적 격조와 독특한 형식이 있지만 설교에 있는 제일 되는 절실한 요구가 하나도 없다. 수필은 반복이 금물이다. 그러나 설교는 반복하는 것이 좋다. 반복은 가르침과 설교의 진수가 된다. 반복은 요점을 강화하고 뚜렷이 해 준다. 설교자의 위험은 한 가지 사상만을 얻기 위해서만 본문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얻으려고 하는 사상을 얻고 난 다음에는 성경 본문이나 문맥을 떠나서 그 절이나 구절을 읽으므로 떠오른 생각에 대한 하나의 수필을 써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전혀 설교가 아니다.2)설교하는 것이 강의하는 것과 혼동되지 않아야한다 - 강의는 한 가지 주제를 시작하여 이 특정한 주제에 관련된 지식과 정보를 주게 된다. 설교의 호소는 전부 마음에 하는 것이다. 강의의 목적은 교훈을 주고 어떤 사실을 진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의는 도전의 요소, 즉 청중에게 무엇을 해 주는 설교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결핍하고 있다.3) 설교는 항상 해석적(강해적)이어야한다 - 그러나 이것은 일련의 주해를 덧붙이거루고자 한다.한 편의 설교는 한 개의 완전체여야 한다. 모든 설교는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야 하고 반드시 어떤 형태로 모양 지워져야 한다. 형식에 맞추는 일이 설교 작업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5장에서는 설교행위에 대해 말하고 있다.1) 설교자의 전인적 품격(whole personality)이 반드시 수반되어야한다 - 설교는 설교자의 품격을 통해서 존재하는 진리이다.2)권위로서 청중을 압도하고 진행해 나가는 지각력이다 - 설교자는 강단에서 확실한 일을 선언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사명을 띠고 권위로 서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회중에게 압도당하지 말고 설교자가 회중에게 도전하고 압도해야 한다.3)설교자는 자유로 와야 한다 - 그 자유로움은 순간적인 영감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자유로움이다. 설교하는 일이란 성령의 감화와 능력을 뒷받침하는 행위이고 설교 준비란 설교 내용의 준비를 끝마쳤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교는 언제나 성령의 능력과 지배 아래서 행해져야 한다. 설교자는 무엇이 일어날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항상 자유로 와야 한다.4)설교자는 반드시 진지한 자세로 전해야 한다 - 설교하는 것이 가볍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5)설교자는 열정적으로 설교해야 한다 - 자신이 그 진리에 붙잡혀 있다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 설교자는 냉담해서는 안 된다.6)설교자는 긴박감을 가지고 전해야 한다.7)설교는 언제나 설득력으로 특징 지워 진다 - 설교 행위의 전체 목적은 청중들을 설득시키는 것이다.8)설교자는 반드시 빛과 뜨거움을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 - 뜨거움이 없는 빛은 어떤 사람도 감동시키지 못한다. 빛이 없는 뜨거움은 영구한 가치가 없다. 설교한다는 것은 불붙는 논리, 감동적인 이지가 되어야 한다.6장에서는 설교자에 대해 말하고 있다.1)어느 정도의 삶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 만약에 설교자가 삶에 대한 경험이 너무 없으면 설교에서 너무 지적이이 되어야 한다. 설교자에게 있어서 제일 되고 가장 중요한 일은 그의 설교가 아니라 자신을 준비하는 일이다. 이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원칙은 무엇인가?첫째, 아침을 보전하라.둘째, 자신이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연구를 계속하라 - 이 말은 이 훈련의 문제가 그 사람 자신에게 돌려야 할 문제라는 뜻이다. 아무도 그 사람이 어떻게 할 것을 말할 수 없다. 그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려 하거나 하나님의 영광과 건덕과 영혼구원을 위해 목회하고 싶은 영적인 참된 설교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2)기도 - 기도하고 싶은 모든 충격에 대해 언제나 반응을 보이라.3)성경공부첫째, 읽기(통독) - 맥체인의 성경읽기표에 의해 최소한 구약 1번 신약2번 시편2번.둘째, 연구 - 성경의 어느 한 책을 놓고 참고서적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연구.이때 주의할 사항은,- 설교본문을 찾으려고 성경을 읽지 말라. 자신의 선과 덕성함양을 위해 읽으라.- 만일 한 구절이 유별나게 부딪혀오면 거기서 멈춰서 그 구절에 귀를 기울이라. 설교의 뼈대를 완성할 때까지 본문과 대화하라. 그리고 그것을 종이에 기록하여 철을 해 두어야 한다. 우리의 심령이 힘을 낼 때에는 이런 자료가 많이 쌓이게 된다. 이것이 쌓이게 될때 우리 영혼이 메마르고 무기력해지고 클클할 시기에 의지할 무엇을 가지게 될 것이다. - 우리의 생애에 다양성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4) 독서 - 독서를 위한 시간이 마련되어야 한다.첫째, 청교도에게 배우라 - 대표적 인물인 죤 오웬, 리챠드 백스터, 죠나단 에드워드둘째, 신학서적 - 특별히 성경신학셋째, 교회사 - 설교자에게 큰 가치가 있다.넷째, 변증학 - 신학의 조류를 알기 위해서다섯째, 정기간행물과 잡지- 독서의 균형을 유지하라. 지나치게 지적인 독서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라. 이 모든 독서의 목적은 설교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 아니다. - 목회자의 직업병.- 우리가 독서를 하는 목적은 정보를 얻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독서가 우리 마음에 가.
    인문/어학| 2006.08.04| 13페이지| 3,000원| 조회(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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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개혁주의 변증학
    개혁주의 변증학 - 로버트 L. 레이몬드 저, 이승구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신앙을 전달하는 방법론, 그리고 그 신앙을 그 신앙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변증하는 방법론은 모두가 이 시대가 절실히 요청하는 것이다.본서는 전달로서의 케리그마와 변증으로서의 변증학을 별로 구별하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개혁신앙이 바르게 전달되었을 때, 그것은 같은 과정에 의해서 바르게 변증될 것이고, 그것이 바르게 변증되면, 그것은 같은 과정에 의해서 바르게 전달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개혁신앙은 그 선포에서나 변증에서나 자증하시는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간의 성품에 관하여 선언하는 모든 것을 신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자연인으로서 그가 그의 죄와 범과 중에서 죽어서 그의 힘으로 복음의 부름에 응답할 수가 없어서, 그의 마음 안에서의 성령의 은혜로우신 사역에 앞서서 복음을 믿을 수는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에게 그가 믿기 이전에 성경의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줌으로써 마치 그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듯한 인상을 줄 권한이 없다. 자연인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이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들은 성령의 사람에 의해서만 바르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바울은 선언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전도 (preaching)의 미련한 것을 통해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구하고 선포해야 한다.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인정받은 자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연구하고 선포해야 한다.또한 본서는 성경의 가르침을 최종적인 권위로 생각하고 이에 귀 기울이려고 했으며, 여러 사상가의 사상을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의 빛에서 평가하려고 했다. 그리고 객관성과 진리를 위해 독자들에게 자신이 인용하고 있는 많은 성경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기 전에 자신의 글을 범주화하거나 거부하지 와 깊은 문제들에 관심할 것이고, 기독교 신앙만이 그에 대한 합리적 대답을 제공할 수 있음을 밝히려 할 것이다.3. 비기독교적 사상 체계에 도전하는 것 - 인간 밖에서(ab extra)사람에게 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근거로 하기를 거부하는 사상체계는 그 어떤 것이든지 내부적인 부적절성과 인식론적인 허무주의를 가지고 있었음을 드러냄으로써 젊은이들을 도전하는 것이다.4. 진리에로 설득하는 것 - 기독교 변증학은 바른 인식론적 이론에만 관심할 뿐만 아니라, 그 근저에 있어서 복음전도적(evangelistic)이고 선포적(kerygmatic)이기도 하다.기독교 변증학이 당면한 주된 문제기독교 변증학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방법론(methodology)의 문제이다. 즉, 변증가는 신앙을 변호하고, 불신자들에게 기독교 진리주장을 권면하는 그의 노력에서 특별게시로부터 추론해야 하는가, 아니면 특별계시에로 추론해 가야하는가?몇 가지 중요한 변증 체계들1. 전제주의(presuppositionalism) 또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Credo ut ittelligam) - 이는 특별계시가 전 신학작업의 근거를 제공한다고 특별계시의 우위성을 전제하는 체제이다. 그 특징은 1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이해에 선행한다. 2체계를 명확히 하는 것은 신앙에 따라 나타난다. 3종교적 경험은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해야만 한다. 4인간의 부패성은 자율적인 이성이 그 진리주장을 객관적으로 확실한 어떤 것에 근거하도록 할 수 없게 한다. 5 성령의 중생케 하시는 특별사역은 기독교 신앙과 교훈에 있어서 불가피하다.2, 증거주의 (혹, 험증주의, Evidentialism) 또는 나는 이해하고, 믿는다 (Intelligo et credo) - 이는 어떤 형태의 자연신학이 변증학의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체계이다. 그 특성은 1종교적 지식을 찾음에 있어서 인간 이성의 능력과 신뢰성에 대한 깊은 신뢰, 2신앙을 실증적이고 역사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실들목적상 필수적인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무엇보다도 성경 종교이다. 즉, 성경 기자들의 영감된 가르침에 근거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에 관심을 가진 신앙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관심하는 역사는 성경에 의해서 이해되고 해석된 역사이다. 만일 우리가 기독교인이 고백하는 모든 것에 대한 기독교 신앙ㅇ의 내용을 알기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신, 구약 성경에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내용1. 신론 -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은 무한하고 영원하신 신으로서, 그의 존재, 지혜, 능력, 거룩하심, 공의, 선하심, 그리소 참되심에 있어서 불변하시는 분이시다 이 하나님은 인격적이시고, 삼위일체이시다.성부 하나님은 창조의 원천(orginator)이시고(고전 8:6, 엡 3:9, 히 1:2), 성자 하나님과 성신 하나님은 이 창조를 실현하는 주체(agents)이셨다(요 1:3, 엡 3:9, 히 1:2, 창 1:2, 시 104:30, 욥 26:13).성경에 의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셨는 바, 일반적으로는 그의 창조와(시 19:1, 롬 1:20), 섭리적 돌보심을 통하여 계시하셨으며, 특별하게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제 2위와 그의 말씀, 심지어 성경을 통하여 하셨다(히 1:1-3, 벧전 1:1). 더 나아가, 이 자기계시를 떠나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2. 인간론(1) 창조와 언약 -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과 대표적 언약관계에 들어가셔서, 아담에게 일정한 시험기간동안 인격적이고, 완전하며, 영속적인 순종을 요구하시고, 그 순종에 대해 생명을 요구하시고, 그 순종에 대해 생명을 약속하시고, 불순종에 대해서는 죽음의 위험을 두시었다(창 2:16-17, 호 6:7, 롬 5:12-19). 이 언약에서 아담은 인류의 언약적 대표이었고, 따라서 그가 이 언약에서 하나님께 반응하는 바가 그로부터 보통 생육법에 의해 출생하는 모든 자들을 규정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2) 타락 - 창세기 3장은 죄의 본성과 타락한 인간의 상태에 대한 참된 성타남(증거)과 능력으로 하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되는 apt시지를 통하여서만 사람이 어두움의 나라로부터 빛의 나라로 옮기워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전 2:4-5)5. 교회와 종말 - 택자들 모두로 구성된 보이지 아니하는 보편의 교회는 하나로 있어 왔고, 하나로 모이게 될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그 머리로 하는 그의 신부요, 몸이고, 만물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케 하는 그의 충만이다(엡 1:10, 22, 5:23, 27, 32, 골 1:18).하나님은 사람들의 불신자에 의해서 좌절되거나, 위협을 당하거나, 무엇을 고지받으시지 않으신다. 모근 것은 그의 세우신 스케쥴에 의해 되어간다( 합 2:3, 14, 20).선택된 자들은 새하늘과 새땅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충만히 즐기게 될 것이다. 이에 반해서 불신자들은 지옥에서 영원한 저주의 고통을 받게 될 것인데, 이것 역시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공의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 때에 구속된 자들은 함께 놀라운 구속의 절정을 합창하여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i Deo Gloria)을 부르게 될 것이다.6. 기독교 존재론(A Christian Theory of Being)과 인식론 - 창조주와 피조계의 구별은 기독교 실재관에서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존재론적 상호상대성(the ontological correlativity)을 그리스도인들은 부인한다. 즉, 우리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존재가 궁극적이다. 이에 반해서, 피조된 존재는 그것의 본성상 파생적인 것이다. 궁극적인고 절대적인 하나님과 파생적이고 의존적인 피조물이라는 존재의 두 수준이 있는 것과 같이, 인식의 주체도 둘이 있다. 그 지식이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하나님과 그 지식이 파생적이고 의존적인 사람이 있는 것이다.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 실존의 모든 영역 - 그것이 인식론적인 것이든, 형이상학적인 것이든, 가치론적인 것인든지를 막론하고 - 에서의 최종적, 궁극적, 근거 (the final and altimate c은 증거로서의 가치 외에도 선포적 가치를 가진다. 증거들이 의식적으로 기독교 전제주의적 틀(a Christan presuppositionalist framework) 안에서 제시 될 때만, 우리는 단지 개연성 있는 자료 위에다 메시지를 수립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만, 변증가는 참으로 불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불신앙을 포기하게끔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의 신앙은 맹목적 비약의 산물이 아니라, 성령의 중생케 하시는 주권적 사역에 대한 불가피한 반응이다. 그는 기독교적 범주 안에서, 그 범주로부터 사유한다.비록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를 걸림돌로, 또 어떤 이들은 어리석음으로 여기지만, 유효한 소명을 받은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됨을 확신한다. 즉, 개혁파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신의 증언이 의미없지 않음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불신자들에게 접근할 때 할 수 있는 한 사랑하는 마음과 학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된 자들은 우리의 연약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께로 올 것이며, 우리의 연약한 노력 때문에 주께서 어떤 자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증언할 수 있다.제 4장신자와 불신자가 성경진리에 대한 의견이 다를 때, 그 의견의 불일치는 단순히 개별적 사실들에 대한 것이 아니다. 어떤 이가 사실적 이라고 여기는 것은 필연적으로 더 근본적인 사실관 (실재관, philosophy of fact), 즉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결정하는 가치통제적, 종교적 전제들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전제주의 변증학은 기독교 신앙의 확언과 변증의 기저에 다음과 같은 인식론적 첫 원칙을 세웠다. 살아계신 한분의 하나님이 기독교 성경에서 자신임을 자증적으로 계시하셨다.기독교 신앙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피조물이라고 확언한다. 그런 존재로서, 사람의 모든 감각이 신적 기원을 가진 것이고, 성경 가운데서는 지식획득에 나간다.
    인문/어학| 2006.08.01| 10페이지| 3,000원| 조회(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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