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례 》Ⅰ. 고구려에 대한 재인식 왜 다시 고구려인가?............1 PageⅡ. 중국의 우리 역사 비틀기 그들의 동북공정............1 PageⅢ. 고구려의 시대정신............2 PageⅣ. 고구려의 고조선 이어받기............3 PageⅤ. 동아지중해의 패권을 잡아라............4 PageⅥ. 광개토대왕의 세계질서전략............6 PageⅦ. 광개토대왕의 군사작전............7 PageⅧ. 다시 살아나는 고구려............8 PageⅨ. 동아지중해의 영원한 맹주 고구려 그 21세기적 의미............9 PageⅩ. 우리는 누구인가...키고, 한반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시키려는 역사적인 정당성과 명분을 획득하는 데에 동북공정의 목적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신의주 경제특구 설치의 실패는 동북공정과 중국의 의도를 잘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세계질서의 재편 과정을 볼 때 가까운 미래에 동아시아에는 공동체가 수립될 것이고, 그때 중국을 우위로 하는 불평등한 관계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지금 현재 상황과 유사한 과거 고구려를 살펴봄으로써 미래의 방향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역사의 현재적 의미와 미래적 가치를 통해 역사학의 현재적 역할을 중시하는 역사의 본질을 제대로 추구하는 것이다.Ⅲ. 고구려의 시대정신고구려의 정복활동과 영토의 팽창은 집단의 성취감과 자존심을 고양하는 관념적 측면의 이점이 있다. 그리고 이질적인 자연, 지리적인 환경에 의거한 새로운 생활권을 흡수할 경우 경제양식, 문화형태 등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북위의 사신인 이고가 장수왕 시대에 평양에 왔다가 돌아가서 보고한 기록이 『위서』고구려전에 있다. 당시 중국 측의 사신이 보고한 내용이기 때문에 고구려의 영토가 축소되었을 가능성은 있으나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삼국사기나 북한과 일본의 자료를 통합하면 고구려는 북으로 남만주 일대에서 이남으로 한반도 중부이북의 지방을 영토화 했고 실제로 간접지배방식이 가능한 유목지역의 특성상 그 영향권은 더 확대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해양활동을 통해서 일본영토로 진출했을 가능성과 황해중부 이북, 동해중부 이북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그 주변 지역도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영토 내에 다양한 종족들을 고구려의 구성원으로 만들고 그들의 문화도 수용한 고구려의 시대정신은, 환태평양을 중심으로 분포한 우리민족과 농촌총각의 국제결혼에 따른 문제들에 시사점을 준다.초기의 고구려 영토는 농경에 적합한 지역이었으나 농경의 지속적 확대는 이후 고구려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유목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다. 농경민과 유목민의 속도에 대한 감각이나 자연을 대하지향하고, 패권지향적이지 않으면서 다른 종족의 생존권을 부인하지 않음으로써 문화국가로서의 성장과 내치와 외교에 비중을 둔 국가정책에서 중국적 화이관과 다르며, 고구려는 지정학적 위치를 분명히 자각하고 정치외교적으로는 국제질서 속에서의 조정역할을, 경제적으로는 중계교역의 거점역할을, 문화적으로는 이질적인 충동을 방지하고 새로운 공통의 문화를 창조하는 도가니의 역할을 하였다.이러한 세계적 보편성을 확립하는 바탕에는 철저한 자아의식이 있었다. 강한 정체성의 확인을 바탕으로 국제질서에서 능동적으로 자기역할을 다하고, 문화적으로 다양성을 존중하여 주변세계와 조화를 추구하는 그들은 정체성의 확인과 공존을 모색하는 조화로움의 추구,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자유의지로 요약할 수 있다.Ⅳ. 고구려의 고조선 이어받기국가의 계승성은 정체성과 정당성의 핵심요소로 현대에도 이는 매우 중요하다. 남북이 각각 국명을 달리 설정한 일이나, 건국의 정통성과 계승을 달리 구하고 있는 사실에서 계승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다. 이러한 계승의식은 과거 역사를 해석하는 일에서도 나타나는데 남한은 삼국사기의 의식과 마찬가지로 삼국통일의 의미를 강조하고, 신라 정통론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조선민족 단일혈통론을 주장하고, ‘대동강문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계승성 여부를 가지고 당사국뿐만 아니라 주변국들도 직접 간접으로 참여하여 평가를 내린다.고구려가 동족의 나라 고조선의 옛 땅을 되찾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이끌어간 나라였다는 점은 역사적인 계승성을 의미하고, 당시에 전개된 일반적인 역사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고구려는 그 지역의 선행국가인 고조선을 계승하였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당(唐) 시대의 금석문인 『泉男産墓地銘』의 기록을 비롯한 여러 기록과 고구려와 고조선의 무덤, 출토된 무기와 토기, 건국신화, 천손사상, 3의 논리 등에서 고구려가 고조선을 계승했을 개연성이 가장 높다.특히 단군신화와 주몽신화는 구조적 측면이나 내적 논리, 세계관 등에서 의미하는 바가 유사하다. 군대와 군수물자의 운반, 상륙작전에 의한 후반기습 등 다양한 전선개념이 도입되는 대규모 전쟁이었다.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이 고구려의 승리로 끝난 요인 중 중요한 것은 황해를 건너 평양성을 직접 공격한 수의 해양상륙작전을 방어하는데 성공한 점에 있다. 이 전쟁은 동아시아의 전면적 질서재편을 목적으로 거의 모든 국가와 종족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국제대전의 성격을 갖는다. 이 전쟁으로 동아시아의 역학관계가 복잡해졌고, 각국들은 해양을 더욱 중요하게 인식하게 된다.수나라에 이어 등장한 당나라는 동아시아 질서재편의 조정자로서 주변국가에 강한 영향력을 구사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가 화목할 것을 권유한다. 이에 대하여 고구려도 국제질서 추이를 염두에 두면서 당과의 직접충동을 가능한 피하고 해양을 통한 공격가능성에 대비하는 등 정책을 추진한다. 그러나 점점 당과의 전쟁이 현실화되면서 당의 총체적인 전력을 분산시키는 외교·군사전략을 추진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신라는 진흥왕 이래 한강하류 지역을 장악하여 당과 직접 교섭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유리한 위치였기 때문에 한반도 내부의 전선을 안정시켜야 하는 고구려의 외교 전략은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나라의 1차 공격을 안사성에서 막아낸다. 그렇지만 그 후 고구려가 백제나 왜와 긴밀하게 연합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공동대응의 비효율성으로 패배한다. 이처럼 국제적인 성격의 전쟁이 강화되면서 해양활동의 비중이 높아진다. 지금까지 살펴본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과정을 볼 때 한반도 경기만 쟁탈전에서 국제전의 발발을 잉태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고·당을 중심으로 한 동아질서재편 전쟁과 삼국이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벌이는 한반도 질서재편 전쟁은 상호관련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고·당 전쟁에 이어 일어난 삼국전쟁은 고등학교 국사에서 보다 자세하게 설명되어 공부하는데, 그 내용은 신라가 당의 세력을 유도하여 통일을 이룩한 전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 전쟁은 598년 고구려가 수나라를 선공하면서 시작되어 660개토대왕의 세계질서전략동아시아의 국제대전은 대체로 6세기경에서 7세기까지 걸쳐있다. 그렇다면 그 이전시기인 고구려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는 어떠했을까? 고구려의 융성기라고 볼 수 있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기 고구려의 대외정책을 중심으로 동아질서의 전체적 측면에서 파악해보자.먼저 광개토대왕 이전 시기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고구려는 해양과 남진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초기부터 바다로의 진출을 꾸준히 모색하였다. 중국세력과 인접한 고구려의 지정학적 위치상 요동연안이나 근해항로의 해상권 장악을 외교적·군사적 목표로 하였다. 3세기 말부터 중국세력이 요동지방을 중심으로 행정권을 상실할 정도가 되자 미천왕은 요동과 남진정책을 동시에 취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로써 요동반도 이남과 낙랑, 대방이 가졌던 교역상 이익은 흡수했으나 백제의 성장과 북진으로 고구려의 남진은 일대 격전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평양성 패배 이후 고구려의 남진정책은 실패한다.이러한 상황에서 광개토대왕이 19대 왕으로 등극하여 22년의 재위기간 동안 남과 북으로 국력과 영토를 팽창시켰으며, 동아시아 질서재편 과정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고구려의 국제적 위치를 크게 향상시켰다. 이는 4세기 말부터 동아시아 국가 간에 변화하던 역학관계를 고구려가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하였기 때문이다.광개토대왕의 북방정책을 살펴보자. 북방의 경우 군사적 우위성을 활용하여 정복활동을 지속하면서 북방의 세력들과 다양한 외교관계를 맺는다. 명멸하는 북방국가들을 대상으로 다양하게 화전양면 정책을 구사한 것은 연 또는 중국과의 외교가 비자주적인 외교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탄력성을 가진 외교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새로운 지배방식과 다양한 문화의 수용 등은 고구려 사회의 질적 변화와 함께 동아시아 국제질서 재편과정에서 고구려의 전략적 위치를 유리하게 하였다. 따라서 광개토대왕의 북방정책은 단순한 영토팽창, 주변 종족의 복속이라기보다는 좀더 복합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추진된 것으로써 동아질서의 개편을 위한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즉 있다.
Ⅰ. 인구이동의 개념{) 이재중(2003),‘수도권 인구이동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 경기대 대학원 석사학위네이버 백과사전 ‘인구이동의 정의’인구이동은 사람들의‘지역사이의 움직임(공간적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Plane과 Rogerson은 1 집과 직장사이의 이동 2 취업자, 학생, 일시 거주자 등과 같이 계절적 혹은 일시적 이동 3 일자리의 변화 없이 같은 도시 내 이동 4 일자리 등의 변화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 5 국외이동으로 구분하여 정의하고 있다. 인구이동은 전출(Out-Migration)과 전입(In-Migration)을 포함한 국내 인구이동과 이주(Emigration, Immigration)를 포함하는 국제 인구이동으로 구별된다.UN은 인구이동의 요인으로, 1 경제적 요인, 2 인구학적 요인, 3 문화적 요인, 4 지리적 요인을 들고 있으나, 그 중 하나로써 이동요인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많은 경험적인 연구가 나타내는 것과 같이 인구이동에 관한 법칙이라는 것이 확립되어 있지 않는 것은 인구이동이 그만큼 복잡하며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많은 요인이 복합된 것'이기 때문이다.Ⅱ. 국제이동의 형태와 규모1. 19세기 후반의 국제이동우리나라의 첫 국제이동은 1860년대 흉작으로 어려움을 겪던 함경도 주민의 만주(또는 간도)와 연해주로의 월경 이주에서 시작된다. 당시 육진 지방에 발생했던 약 10년간에 걸친 흉작의 결과 먹을 것이 없던 농민들은 사람이 살지 않고 토지가 비옥한 간도 지방으로 이주한 것이다. 1860년대에 간도지방에 이주하여 거주한 한인의 총 숫자는 약 7,700명으로 알려져 있다.{) 崔昌來 外 延邊人口與計劃生育論 1989: 771이후 간도로의 월경 이동자는 계속 늘어 1910년에는 200,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1860년까지 만주에 속해 있다가 러시아의 영토로 편입된 연해주에는 1882년 조선인이 10,137명에 이르렀고, 1902년에는 32,410명, 1908년에는 4주족의 고향으로 여겨져 봉금지역으로 지정되었던 간도지방에 대한 이주가 청나라의 퇴조와 함께 완화되어 조선인의 이주가 쉬웠던 것이다.2. 식민지 시대의 국제이동20세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의 국제적 인구이동은 가속화되고 다양해진다. 20세기의 국제이동의 1903~1905년 사이 미국 하와이와 멕시코로의 노동이주를 그 출발로 한다. 그 수는 미국 7,394명과 멕시코 1,031명으로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와이로의 이주도 그곳 일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본의 압력으로 1903년 이후 중단되었다. 결과적으로 바다를 건넌 이주는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합병된 다음 일본으로의 이주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1910년대 후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즉, 1910년대까지는 기존의 만주와 연해주로의 이주가 주류를 이루었다.〈표2〉중국과 일본의 조선인 거주 상황(1910~1944){) 한상복·권태환 중국 연변의 조선족 1933: 27; 서울대학교 출판부이문응 세계의 한민족 일본 1996: 53~54; 통일원(단위: 명, %){연도중국일본총수연 성장률총수연 성장률1910220,0007901915282.0703.363,98926.991920459,4279.7630,17540.471925531,9732.93133,17029.691930607,1172.64298,09116.121935826,5706.17628,67814.9219401,450,38411.241,190,44412.7719441,658,5723.351,936,8619.73한일 합방은 조선인에게 새로운 이주의 조건을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독립운동으로 지도층의 만주로의 이동과 일제의 조직적 농업착취로 인한 농민의 경제적 어려움 가중이 그것이다.〈표2〉에서 볼 때, 1910~1920년 사이에 만주 조선인 인구의 수는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리고 이주지역도 간도를 벗어나 다른 만주지역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이주자 가운데 귀환자도 30% 가까이 이르러 한일 합방 이후 조선과 만주 사이의 왕래가 매우 쉬워졌음을 알 수 있다39년부터 노동동원이 이루어지면서 일본으로의 이주자 수는 급격히 늘어난다. 일본으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의 총수는 1939~1944년의 6년간 692,000명에 이르렀고, 약 30%에서 시작한 전체 이동자 중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높아져 전쟁 말기에는 다른 이동자를 찾기 어렵게 된다. 전쟁과정에서 일본 조선인의 지위가 불안해지고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다시 조선으로 귀국하는 사람의 수도 급격히 늘어났다{) 1941~1944년 순 이주자수가 739,244명인데 반해, 당시 조선인 총 이주자수는 984,506명이었다. 이는 단기간내 귀국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Kwon,1977:180,185)..한편 연해주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로의 이주자들의 수는 1923년 100,000명, 1936년 200.000명 정도로 기록되어 있다. 비공식 추정은 1920년대 말 250,000명에 달하고, 1930년대 후반기 러시아 정부가 고려인(조선인)을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조선인 유입이 끊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송무, 소련의 한인들 1990: 13,28~29; 이론과 실천. 이와 같이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조선인의 외국으로의 이주자는 1945년 해방 당시 약 400만 명에 달하였다. 그 가운데 95%에 이르는 380만 명이 1910~1940년 사이에 발생한 것이다. 이는 국내외를 막론한 총 조선인 인구의 약 13%에 해당하는 수치였다.3. 해방시기 국제이동제2차 세계대전의 일본 패망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해방은 일본과 중국 조선인들의 대규모 귀환을 초래하였다. 귀환이동은 이동 역사가 짧고 강제 징집이 주를 이루었던 일본에서 컸다. 이어서 남북한의 분단은 각각 새로운 형태의 이동을 발생시켰다. 북한에 대한 자료의 제한성과 이동의 통제성 때문에 북한과 관련한 국제이동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고, 해방이후 국제인구이동은 남한을 위주로 고찰한다.〈표3〉해방 이후 남한 지역으로의 귀환자 및이민이었다. 미국 센서스 자료에 의하면 1940년 8,568명, 1970년 65,150명에 불과하던 한인 수는 2000년에 1,076,872명으로 집계되었다.〈표4〉해외 거주 한인의 수,2000 {) 주: 자료의 기준시점이 1월 1일자로 되어 있어 통상 인구학의 관례에 따라 전년도 연말 인구로 가정함(단위: 명,%){지역/국가총거주자시민권자영주권자b+c(d/a)*100a의 %분포abcdef아태 지역2,670,7231,756,825582,5302,339,35587.647.2일본640,234551,942551,94286.211.3중국1,887,5581,738,2001,6961,739,89692.233.4대양주65,56518,38327,09945,48269.41.0기타77,3662421,7932,0352.61.4북미지역2,264,063710,2001,179,5261,889,72683.540.1미국2,123,167638,8731,125,1981,764,07183.137.6캐나다140,89671,32754,328123,65589.22.5중남미 지역110,46010,71776,99787,71479.42.0유럽 지역595,073517,36318,911536,27490.110.5독립국연합521,694508,0764,110512,18698.29.2독일30,4926,7477,91814,66548.10.5기타42,8872,5406,8839,42322.00.8중동지역7,208373263635.00.1아프리카5,*************.30.1총계5,652,7832,995,2331,859,1074,854,34085.9100.0자료: 외교통상부(2002)표에서 보는 것처럼 2000년 말 미국 영주 한인은 176만 명에 달하고, 일시 거주자까지 합치면 210만 명이 넘는다. 이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국가가 된 셈이다. 다음은 중국, 일본, 독립국가연합의 순서로 되어있다. 이들 국가의 한인 거주인구는 각각 50만 명을 넘고, 이들 4개국에 해외 한인거민의 주 고려 사항으로 정하였다. 이러한 이민법의 변화로 미국에서 1969년부터 한국인 이민은 급증하였다. 즉 1964년까지 2,000명 정도였던 미국 이민자 수는 새 이민법이 실시되기 시작한 1968년에는 3,800명, 1970년에는 9,300명으로, 1976년에는 31,000명으로 늘었다{) 구해근·유의영, 한국인의 미국이민 1983: 435; 서울대 사회학연구회편한국사회의 전통과 변화 범문사. 한편 미국 센서스에 의한 한국인 수는 1970년에 70,000명, 1990년에는 800,000명으로 1970~1990년의 20년 동안 11배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었다.Ⅲ. 해외 한인 사회의 성격한국 외교통상부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 이래 해외 한인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가령 1970년 당시 수교가 없었던 중국과 소련을 제외한 세계 여러 나라에 거주한 한인은 703,000명 정도로 집계되었다{) 외교통상부(2002), 해외 거주 한인의 추세, 1970~2000. 그 숫자는 1989년 2,322,000명으로 19년 사이에 3배 이상의 증가를 기록하였다. 한편 중국과 독립국연합을 포함한 해외 한인의 수는 1990년 4,832,000명에서 2000년 5,654,000명으로 늘었다. 이러한 지속적인 증가의 1차 원인은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미주로의 대량 이주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해외 거주 한인 가운데 일시체류자의 급속한 증가도 중요한 몫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시 체류자는 최근에 올수록 빠르게 증가하여 1994년 일시 거주자가 총 해외거주자의 5.6%인 290,000명에 불과하였으나 2000년에는 14.1%인 798,000명으로 늘었다. 이러한 일시 거주자의 증가현상은 세계화로 인한 한국의 국제적 진출이 활발해짐에 따라 지속될 전망이다.1. 중국 조선족 사회중국 조선족은 우리에게 만주로 알려진 동북 3성, 즉 길림성, 흑룡강성 및 요녕성에 집중되어있다. 중국 조선족 가운데 이들 3성의 거주자 비율은 1990년 현재 97%를 넘고 있다{)었다.
Ⅰ. 서 론발전기획이란 개발도상국들이 국가주도의 기획을 통해 오랜기간에 걸쳐 이룩한 서구선진국가의 발전의 정도를 단기간에 따라잡기 위한 급속한 발전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우리나라 역시 1960년대 이후 이룩한 고도의 빠른 경제의 발전은 강력한 정부의 통제 아래 발전기획의 적절한 사용으로 인해 이룰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빠른 변화의 물결 속에 있기 때문에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변수의 통제가 어렵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과거의 발전기획으로는 문제점을 발생시킬 수 있고 또 시대의 변화로 인해 과거처럼 강력한 통제에 의한 기획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이에 맞는 변화된 기획의 모습이 요구되었다. 때문에 일반적인 과거의 발전기획과 이런 일반적인 장기계획이나 종합계획과 같은 과거의 발전기획과 급변하는 환경, 전략적 상황 속에서 유용성의 측면에서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 전략적 기획에 대해 알아보고 이 과정에서 사용되고 있는 여러 가지 기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Ⅱ. 발전기획의 과정과 기법1. 발전계획의 개념발전계획의 개념을 알아보기에 앞서 발전과 계획의 개념에 대해 살펴보면 우선 발전이란 양적인 면에서 성장과 질적인 면에서 변동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가치지향적 측면이 내재하고 있으며 경제발전·정치발전 및 사회발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경제발전은 경제성장과 경제구조의 변동이 일어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경제성장이란 일반적으로 국민총생산(GDP)의 실질규모의 성장이나 1인당 국민소득의 증대를 의미하며 경제구조의 변동이란 산업구조의 변동을 의미한다. 정치발전이란 성장과 변동의 개념으로 분석가능한 개념으로 성장이란 정부의 행정기능 내지는 통치권의 신장 등을 정치발전으로 보는 입장이며, 변동은 정치구조의 변동을 의미하는 바, 이는 정치권력, 정치역할 또는 정치기능의 분화와 통합을 정치발전으로 보는 입장이다. 가치문제에 대해 언급하자면 정치에 있어서 가치의 문제는 국가마다 그 판단기준이 획일적이지 않으며, 복잡한 요인들로 고려되어야 할 문제로 중요하다.을 보강하여 전체적인 효율을 높이도록 하기 위해서 환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4 사회적 평가사회전체에서 볼 때 이 계획이 바람직한 계획이었던가, 진행결과가 만족할만한 것인가를 평가하는 작업으로서, 이는 문제제기와 긴밀한 관계를 이루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적 평가와 계획의 초기단계를 비교해보면 다른 현황이 전개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새로운 기대상황이 마련되면 그것이 바로 새로운 문제의 인지로 인식된다. 이처럼 계획단계의 첫단계와 마지막단계가 연결되어 하나의 순환이 이루어지게 하는 작업이 사회적 평가이다.6. 발전기획에서 사용되는 주요한 기법{) 정책학원론1 시뮬레이션1) 의의이것은 이론적으로 가정할 필요성이 있을 때 사용되는 것으로 정책결정을 하기 전 대안의 결과를 실제로 관찰하거나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현재의 상황처럼 급변하는 행정환경하에서 이 방법을 사용하면 주민 요구의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정책결정의 효율성을 제고시킬 수 있다. 또 한번 모형화해 두면 계속적인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를 기존 모형에 대입시켜 결과를 알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은 적정의 모형이 아니고 대안에 따른 결과만을 보여 주기 때문에 어떤 대안이 최선인지는 알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2) 몬테카를로 기법과 심시티(Simcity)기법공공 부문에서 시뮬레이션이 쓰이는 것은 주로 위험성하에 있을 경우인데 이는 문제를 구성하는 요소의 행태가 알려져 있지 않을 경우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 통계학의 무작위 변수의 개념을 도입해 시뮬레이션에 적용시키는데 이 무작위변수의 확률분포를 이용해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을 몬테카를로 기법이라 한다. 다음으로 심시티 기법은 이것과는 다소 성격이 다른 것으로 넓은 의미에서 행정에 적용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으로 2001년 한국행정학회 춘계 워크숍에서 연세대 배득종 교수의 진행으로 일부 회원들에게 실시되었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일종의 행정 시뮬레이션으로 구체적인 수치를 구해 최적화 결정에 도움을 높은 것부터 차례로 선택·가능조합 중 순편익의 합계가 가장 큰 것 선택·가능조합 중 B/C비가 가장 큰 것 선택피셔에 의하면 편익/비용분석이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대안을 탐색하고 각각 소요비용과 이로써 얻어지는 편익을 비교·평가함으로써 바람직한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분석방법이며, 비용·효과분석이란 일정한 경비를 지출함으로써 대안이 각각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느냐를 분석·비교하는 방법을 의미한다.비용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이지만 특히 후버위원회 전문기동대의 보고서를 보면 가격을 고려함이 없이 장비·물자를 구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용문제를 도의시하고서는 량의 문제를 생각할 수 없다고 하면서 비용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다만 비용·편익분석에 있어서 특히 곤란한 것은 편익(수익)측정의 문제이다. 사적재는 시장 메카니즘을 통하여 가격이 결정되지만 공공재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도로안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생각할 때, 이에 관한 어떤 대안을 채택하여 일정수준의 교통안전시설을 갖춤으로써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수가 100명이던 것이 50명으로 감축되었다고 하자. 이러한 경우 이 정한 비용을 지출함으로써 얻는 편익은 가격으로 측정할 수가 없다.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금액으로 환산할 것인가. 도한 국방·초등교육·외교·대기오염대책 등도 누가 이익을 받는 자인지 일반적으로 확인할 수 없으므로 이를 금액으로 평가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편익을 금액으로 환산할 것이 아니라 지출을 인수 등 금액 이외의 단위로 표시하여 분석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용·편익분석과 함께 비용·효과분석을 구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이 분석방법은 먼저 여러 대안을 탐색하고 그것을 모델에 맞추어 비용·편익 또는 비용·효과를 도출한 다음 몇 개의 평가기준에 의하여 대안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므로 그것은 체제분석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체제분석은 복잡한 문제를 합리적·합목적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한 체제적 분석방법으로 간주되고 젝트를 요소작업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네트워크로 표시하고, 네트워크상의 각 경로에 대하여 누적작업시간을 구함으로써 최장경로와 각 요소작업의 여유시간을 찾아내어 최경로를 중점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좀더 싸고 빠르게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일정관리기법이다. PERT와 CPM의 네트워크는 단계와 요소작업으로 구성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가공작업을 도입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단계는 어떤 요소작업의 착수점과 종료점을 표시한 것으로서 원으로 나타내고, 요소작업은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하여 해야 할 개개의 작업으로 시간과 자원이 소요되는 작업활동을 뜻하며, 이것은 실선의 화살표로 나타낸다. 그리고 시간과 자원의 소요는 없으나 요소작업간의 선후관계를 조작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가공작업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것은 점선 화살표로 나타낸다.{{{{{{{{2 7일 4{{1일 3일{{1 4일 6{{3일 2일{3 3일 5이와 같은 방법으로 어떤 프로젝트의 일정을 계획하고 관리하면 처음에는 절차상 약간 복잡할는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1) 프로젝트의 내용이 명확해지며, 일목요연하게 프로젝트를 파악할 수 있다. PERT와 CPM은 요소작업간의 상호관계를 규명해서 그 선후관계를 명확하게 맺어놓기 때문이다.(2)프로젝트의 진행관리가 용이하고, 임기응변의 대책을 강구하기 쉽다. 즉, 네트워크상의 여유가 있는 작업과 여유가 없는 작업을 미리 알기 때문에 혹시 돌발적인 사고나 자원의 부족 등에 대처할 수 있고, 이에 관계없이 프로젝트를 계획된 기일 내에 완료할 수 있게 된다.(3)네트워크상의 최장 경로를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완료예정일을 단축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시간과 비용의 교역분석에 의하여 완성일을 단축할 수 있으며, 인원 및 자재 등 자원제한이 있는 경우 프로젝트의 완성일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원할당, 자원평준화를 실시할 수 있다.Ⅲ. 전략기획의 과정과 기법(최근의 발전기획)1. 전략기획의 정의전략기획이란 말은 전략과 기획의 합성용비전에 따라 행동하도록 임파워먼트 추진- 변화에 대한 장애물을 제거한다.- 비전에 악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이나 구조를 변경한다.- 위험감수 행동, 틀에서 벗어난 아이디어, 활동, 행동 등을 격려한다.7) 7단계: 단기적 성과를 위한 계획수립 및 실현- 가시적인 성과향상을 위한 계획을 수립한다.- 성과향상을 실현한다.- 성과향상에 참여한 종업원들을 인정하고 보상한다.8) 8단계: 달성된 성과 향상의 통합과 후속 변화의 창출- 증진된 신뢰를 이용하여 비전에 맞지 않는 시스템, 구조, 정책을 변경한다.- 비전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을 고용, 승진, 개발한다.- 새로운 프로젝트, 주제, 변화의 동인을 이용, 변화 프로세스를 재활성화한다.9) 9단계: 새로운 접근방법의 제도화- 기업의 성공과 새로운 행동간의 연광성을 명문화한다.- 리더십의 개발과 그 계승을 확실히 하는 수단을 개발한다.2 Kemp의 전략기획 7단계{) Roger L. Kemp : A Casebook, Chicago, 19921) 제 1단계: 전략기획의 설계전략기획의 계획은 지자체장 또는 지방의회와 같은 지자체 리더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로 인해 공식적으로 전략기획 추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받게 된다.2) 제 2단계: 조직의 환경요인분석 및 전략방향의 결정전략기획에 대한 설계가 끝나면, 전략기획과정이 바로 시작되는데 제일 먼저 조직의 미래와 관련된 환경요인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3) 제 3단계: 조직평가 및 조직역량 결정조직의 역량을 재검토하는 단계로 조직이 전 단계에서 파악한 전략적 쟁점들과 관련된 조직의 강점과 약점을 인지한다.4) 제 4단계: 임무기술서, 전체목표와 세부목표, 활동계획서 작성임무기술서는 전략계획에서 파악된 문제들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원하는 전략적 방향을 설정해준다.5) 제 5단계: 전략계획의 실행전략기획의 주요소는 목표지향적이라기 보다는 결과지향적으로 중요초점은 전략적 쟁점에 대하여 희소자원을 배분할 수 있느냐에 있다.6) 제 6단계: 감독과 평가전략기획이 성공하려면 전략계획안 충족
{목 차{I. 서 론 ------------------------------------1II. 한국정부의 행정개혁 -------------------------11. 제 1 공화국 -------------------------------------12. 제 2 공화국 -------------------------------------23. 제 3 공화국 -------------------------------------34. 제 4 공화국 -------------------------------------35. 제 5 공화국 -------------------------------------46. 제 6 공화국 -------------------------------------47. 문민정부(YS정부) --------------------------------58. 국민의 정부 (DJ정부) -----------------------------6III. 역대 정부의 행정개혁 비교평가 -----------------81. 부처수의 증가 -----------------------------------82. 예산 및 인력 비중의 변화 --------------------------9IV. 행정개혁의 과제와 방향 ----------------------141. 고객중심의 행정 ---------------------------------142. 작고 강한 정부의 구축 ----------------------------143. 공무원의 사기앙양과 새로운 유인책 모색 --------------144. 지방자치 능력 강화와 국제화의 대응 ------------------15V. 한국행정 개혁의 미래 - 전자정부를 중심으로------161. 전자정부의 등장 배경과 개념 ------------------------162. 전자정부의 추진과정 및 문제점 ----------------------173. 전자정부의 발전방향 ------------------------------19VI다.둘째,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불균형적인 경제개발에의 집중에만 치우쳐 이것에서 파생되는 빈부의 격차, 기대상승, 주택난, 신구가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강구되지 못하였다.마지막으로 조직구조 및 관리 기술상에 있어서 고도의 집권화 현상으로 인한 하부조직의 경직성, 일방적인 상의하달 명령방식 및 형식주의 등 역기능적인 인간 행태를 조장하였다.4. 제 4 공화국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10월 17일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대통령 특별선언을 통하여 국회해산, 정당 및 정치활동 중지 등 헌법 조항의 효력을 일부 중지하고 정지된 기능은 비상국무회의가 대신하여 새로운 헌법질서를 확립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혁명적 조치의 단행으로 동년 12월 국민투표를 거쳐 제 4공화국 헌법이 공포되었다. 이른바 유신헌법이라 불리는 것이다.제 4공화국에서도 경제발전을 위한 행정기구 및 기능의 분화·전문화 내지 다원화가 이루어졌다. 산림청이 내무부로 이관된 것, 항만에 대해 교통부가 담당한 것, 조달청이 경제기획원으로 이관된 점을 들 수 있다.제 4공화국은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였는데 이 운동은 정부의 적극적인 시책으로 소득증대운동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경제적 성장을 중시한 나머지 정신적인 운동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지는 못하였다. 제 4공화국은 기구 및 제도개혁에 있어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지향,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 국정운영에 있어서 능률성의 극대화 등의 유신체제하의 시대적 요청이 반영되었다. 또한 비교적 안정된 정권 하에서 성장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대체로 개혁은 급격한 변동에 의해서 보다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으나 국가 전체의 전반적인 평가가 미흡하였기에 방만하게 국기기구, 국가공무원, 국가재정이 늘어났다.1970년대부터는 민원행정업무의 개선작업도 중요한 국가 정책적 관심사로서 부각되었다. 새마을 사업 및 지역개발의 효과적 추진과 방위산업의 고도화를 위하여 내무부에 지방행정차관보, 국방부에 방위산업 차관보가 각각 신설된 것도 이 시기였다. 어려움을 드러내게 되었다.김영삼 정부는 외양적으로 두드러진 행정개혁을 시도하였지만 주로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정치상징적 개편의 단면을 수시로 되풀이하곤 하였다. 긍정적으로 보면 이와 같은 상징적 조처는 정부조직이 사회제도의 일부로서 사회환경이 요구하는 바대로 순응하였다는 순기능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관료사회에 대한 권위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직자사정 위주의 부패척결이나 임기응변식 개혁 프로그램으로 오히려 공무원의 복지부동과 소극적 저항마저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이는 곧 외양적인 행정개혁에도 불구하고 내실을 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되었다. 정권후반기로 갈수록 개혁주도세력의 응집력이 와해되면서 정치권의 혼란과 경제의 불안 등으로 개혁의 의지가 실종되는 현상을 초래하기도 하였다.8. 국민의 정부 (DJ 정부)국민의 정부는 지금껏 세 번의 개편을 거쳤는데 1차 개편은 1998년 2월에 있었고 2차개편은 1999년 5월, 3차개편은 2001년 1월에 있었다. 각 개편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차 개편의 특징은 단순한 하드웨어적 측면뿐만이 아니라 조직운영과 관련된 소프트웨어적 측면도 동시에 감안함으로써 조직개편이 중앙정부운영의 효율성제고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시기는 IMF사태로 인한 경제적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것이 가장 큰 관심이었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발전을 국정의 상위목표로 내걸고, 3대 하위국정목표로서 작은 정부, 봉사하는 정부, 위기관리 정부를 제시하여 개혁을 실시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진행된 장관급 처 의 축소 등을 통한 정부기구 인력의 감축뿐만 아니라, 각 부처에 예산 및 인사의 자율성을 일정하게 부여함으로써 조직운영의 신축성, 자율성을 도모하도록 하였다. 구체적 내용을 보면 2원 5처 14부 15청 1외국에서 17부 2처 16청 1외국으로 변경되었다.아래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총리제의 폐지, 행정개혁처의 설치 등 국무총리의 기획, 평가국가관리기 능5,885명(9%)6,841명(10%)22,338명(15%)28,911명(16%)34,969명(21%)44,285명(24%)37,710명(21%)-산업경제기 능60,108명(88%)61,865명(87%)11,7626명(76%)15,346명(8%)106,626명(66%)118,874명(63%)117,198명(66%)114,382명사회복지기 능1,856명(3%)2,005명(3%)13,820명(9%)15,346명(8%)20,278명(13%)24,061명(13%)22,419명(13%)213,35명총 계67,849명(100%)70,711명(100%)153,784명(100%)181,926명(100%)161,873명(100%)187,220명(100%)177,327명(100%)- 배정인력의 정권간 변화추이* 자료 : 총무처(1987), 대한민국정부조직변천사-행정자치부(1997), 대한민국정부조직변천사-한국행정연구원(1997), KIPA AB-97 - 통계청(1998), 한국통계연감-박한준(1999) 참조한편 사회복지기능은 인력 및 예산의 배정면에서 점진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인력면에서 보면 제 4공화국까지 10%를 밑돌던 배정비율이 제 5·6공화국과 김영삼 정부에서 13%로 상승하였다. 예산지출의 면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 지 4공화국까지 20%이하이다가 제 5?6공화국에서 24~26%로 배정비율이 상승한 것이다. 이는 곧 50년대와 60년대 초의 국민형성기, 60-70년대의 개발기에 간과되었던 국민 복지 분야가 삶의 질 향상이라는 80-90년대 통치정향과 부합되어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특히 제 5·6공화국 당시 향상된 경제여력을 바탕으로 정권엘리트들은 장기적인 권위통치로 인한 국민들의 좌절감을 복지영역의 기능강화로 극복하고자 하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각 정권마다 내세운 작은 정부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의 인력과 예산은 지속적으로 팽창되어 왔다. 박정희 정권이 산업경제기능을 인력, 예산면에서 강화해 나갔다면 전두환, 노태우 정부는 팽창된 경제기능을 다 원리에서 볼 때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행정체제는 국민 편의위주 또는 고객중심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운영에 있어서는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고객중심의 행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고객중심으로 생각하고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며 모든 것을 행정편의 시각에서 탈피하여 고객을 위해 준비하고 고객의 감동을 위해 고심하고 집행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고객위주의 정부는 서비스제공자의 책임성을 증대시키고, 비 정치화시키며, 수혜자의 선택 폭을 넓히는 동시에 친근감을 높이며, 행정의 투명성, 다양성, 형평성 및 창의성을 증진시킨다.2. 작고 강한 정부의 구축세계 각국이 추진하고 있는 행정개혁의 전략은 국민의 자율과 창의성을 억제하는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고 대신 시대에 필요한 정부부분의 역할을 강화시키는 방안이다. 작고 강한 정부란 양적 개념보다 질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작은 정부란 기본적으로 꼭 정부가 해야 할 일에만 관여하는 정부이고, 강한 정부란 문제해결 역량이 높은 정부를 칭한다. 이러한 정부가 되기 위하여 시대와 상황에 따른 일정한 기준과 원칙이 필요하다. 그러한 요구에 충족할 수 있는 기준과 원칙이란 1 공정거래 등의 경제질서 정책은 강화하고 인허가 등의 경제과정 정책은 축소 2 경제개발정책기능은 축소하고, 환경, 노동, 사회보장, 지역 간 균형개발 등 사회개발 분야에서의 정부기능은 대폭 확대 3 정부 부처간 조정 기능의 강화 4 정부의 기능 중 유사 중복기능의 통폐합 5 중앙정부의 기능 축소와 지방정부의 권한 등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3. 공무원의 사기앙양과 새로운 유인책의 모색행정개혁에는 공무원 사기앙양 책과 유인책의 모색이 병행되어야 한다. 기업형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사기를 높여야 하고 그들에게 업적평가 등을 실시하여 대우함으로서 동기부여를 할 수 있게 한다. 동시에 실적주의에 의한 승진과 보수 등을 연계시켜 능력 있는 사람이 우대를 받는 공직 풍토조성이 필요하다. 즉 1 공무원들의 처우개선과 승진을 주축으로 하는 동 한다.
Ⅰ. 책을 읽으면서....디지털 경제를 배우자 에서는 열 두 개의테마로 나뉘어져 있다. 그럼 여기서는 12개의 테마에 대해서 하나씩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첫 번째 테마는 지식이다. 신경제는 지식경제이다. 정보기술은 지식을 기반으로 한 경제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다른 지식기술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지식은 인간 즉, 지식노동자와 지식소비자에 의해서 창출된다. "평준화된 지능과 주된 촉진재인 서비스 기술은 서비스 산업뿐만 아니라 미국의 제조업, 국가의 성장양태, 국가 및 지방의 직업구조, 세계정치에서의 미국의 위치 및 국제 경쟁력등을 바꿔놓고 있다."고 다트머스턱 대학교수인 제임스 브라이언 퀸은 [인텔리젠트 엔터프라이즈]지에서 주장했다.우선, 소비자의 아이디어와 정보 및 기술이 제품에 적용되면서 제품과 서비스의 정보내역이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발생시키는 최첨단 제품의 새로운 시대를 보면, 첨단카드는 운전면허, 약물반응과 장기기증 정보를 포함하는 개인 건강정보, 선물할 때를 대비한 배우자의 신체사이즈가 한 장의 플라스틱 카드안에 내장된 칩에 의해 전부관리되는 시대가 오고있다. 보안과 프라이버스의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또 하나의 예로서 첨단도로는 도로의 운송수단을 목적지까지 운반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것이다. 도로는 교통과 기후조건들을 감시할 것이며,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태를 경고할 것이다. 그 밖에 첨단 자동차, 첨단 전화 등 수없이 많은 지식의 결정체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즉, 미래기업의 성공요건은 물리적인 것에서 인간적인 것으로 이동한다.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기계나 자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일을 하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두 번째 테마는 디지털화다. 신경제는 디지털 경제다. 신경제의 정보는 디지털 방식이다. 디지털화 된 정보가 디지털 네크워크를 통해 전달되면서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이 펼쳐진다. 방대한 양의 정보가 압축되어 광속으로 전달되고, 정보의 질은 아날로그 전송에 의존하던 것 보다 훨씬 좋아졌다. 예를 들면 멀티미디어 문서를 만드는 것처럼 정보의 다양한 형태들은 조합될 수 있다. 정보는 전 세계로부터 즉시 구입되어 저장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인간문명에 의해 기록된 많은 양의 정보를 즉각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준다. 새로운 디지털 장치들은 당신의 호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로 만들 수도 있고, 산업과 개인 생활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세 번째 테마는 가상화이다. 신경제는 가상의 경제이다. 신경제는 정보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동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것에서 가상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경제의 순환 기관들의 형태와 관계, 경제활동 자체의 본질이 변화된다. 신경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새로운 명사들이 생겨났다. 가상 외국인, 가상 사업장, 가상 주식시장 등이 있다.네 번째 테마는 분자화이다. 신경제는 분자경제이다. 경제활동의 기초를 이루는 본제와 개개의 구성원들이 모여 이루어진 집단들과 역학적 분자들에 의해 이전의 회사들이 대체되면서, 구경제가 새롭게 재 창출 되고 있다. 조직이 꼭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변화하면 충분하다. 경제와 사회적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 대규모의 분자화가 진행되고 있다.다섯 번째 테마는 통합-인터넷(Internet)이다. 신경제는 네트워크 경제이다.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수많은 분자들은 부를 창출하기 위해 다른 요소 및 집합체를 통합시킨다. 부의 창출에 있어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컴퓨터 네트워크가 아날로그방식에서 디지털방식으로, 과거의 동위적인 방식의 웹에 기반을 두었던 인터넷 모델이 호스트 컴퓨터에서 네트워킹 형식으로 달라지면서 가능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네트워크들은 대역폭이 늘어나 완전한 멀티미디어를 이루며, 새로운 제도적인 구조로 성장하고 있다.여섯 번째 테마는 중간기능의 축소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중재하는 기능은 디지털 네트워크로 인해 감소되고 있다. 중간사업, 중간기능, 중간 매개자들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체인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기능이 축소되면서 어려움이 직면하게 될 것이다. 중간기능의 축소는 신호형태를 바꾸어 놓고 있다. 뮤지션들과 그들의 제작진들이 음악을 인터넷의 데이터 베이스에 등록하면 소매상, 방송국, 레코드회사가 불필요하게 된다.일곱 번째 테마는 집중이다. 신경제에서 지배적인 경제분야는 모든 부문에서 부를 창출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주어지는 3대 집중 산업에 의해서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구 경제에서는 자동차 산업이 핵심영역에 속했다. 신경제에서의 지배적인 영역은 새로운 매체이다. 왜냐하면 이는 컴퓨팅, 통신 컨텐츠 산업에 집중된 결과로 나타난 산물이기 때문이다. 예전의 컨텐츠 기업(영화 제작사, 방송 네트워크, 출판사)의 대부분은 사라져가고 있는 이전 패러다임의 벽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다. 속속 등장하고 있는 성공한 기업들은 소프트웨어, 서비스, 컴퓨터 기반의 컨텐츠, 디지털 원격통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여덟 번째 테마는 혁신이다. 신경제는 혁신을 기반으로 한 경제이다. 혁신 경제에서 인간의 상상력은 가치를 창출하는 중요한 근원이 된다. 디지털 경제에서 기업의 주된 과제는 혁신이 상을 받고, 대가를 지불받고, 격려받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다. 모든 나라는 혁신적인 작업공간과 창조력을 길러주는 조직을 필요로 한다. 혁신적인 경제에서의 성장은 대형 기업이나 정부보다는 중소형 사업에서 보다 활성화된다.아홉 번째 테마는 대전제이다. 신경제에서는 소비자와 생산자간의 차이가 거의 없어진다. 신경제에는 소비자들이 실제 생산공정에 참여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그들은 새로운 자동차 전시실에 들어가서 컴퓨터 스크린에 있는 자동차 중에서 선택해 조합할 수 있다. 크라이슬러는 이미 16일만에 특별 주문된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열번째 테마는 동시성이다. 비트를 기반으로 한 신경제에서는 동시성이 경제적 활동과 사업 성공의 핵심요소와 변수가 되어가고 있다.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은 사라지고 있다. 1990년대에 자동차는 개념을 설정하고 생산하는데 6년이 걸렸다. 현재는 2년이 걸린다. 휴렛팩커드사의 컴퓨터 시스템 조직의 책임자인 윔 뢰렌츠는 오늘날 휴렛팩커드 매출액의 대부분이 1년 전에는 없었던 제품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예전의 경제에서 발명은 10년동안의 매출 흐름을 보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전자제품은 2개월이라는 전형적인 제품 주기를 갖게 되었다. 향후에 출연하게 될 새로운 기업성격은 실시간 기업이다. 이는 지속적이고 즉각적으로 정보의 동시성을 통한 사업의 조건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말한다.열한번째 테마는 세계화이다. 신경제는 글로벌 경제이다. 세계경제가 계속적으로 국제화 됨에 따라 기회선점의 경영요구가 매우 절실해지고 있다. 일시적인 제휴, 전략적 협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보기술 등은 미래에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공동연구는 예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사업에서의 공동연구는 더 이상 전통적인 합작 벤처나 마케팅 연합처럼 두 회사간의 협력으로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업 그룹들이 공동목표를 위하여 함께 연계하는 것을 보게된다.열두번째 테마는 불일치이다. 유례없는 사회적이슈가 제기되고 있다. 이것은 잠재적으로 거대한 충격과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디지털 경제에서 노동의 본질과 노동력의 요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노동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농경사회에서 노동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세기가 바뀌면서 줄어들고, 상품생산에 참여하는 많은 노동자들도 지난 20여년 동안 감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