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한국의 재벌구조와 산업한국의 재벌구조와 산업Ⅰ. 서 론재벌 체제는 우리나라 경제구조에서만 독특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우리나라 경제구조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재벌 체제의 이해 없이는 우리나라의 경제 산업 구조를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재벌 체제의 특성을 모르고서는 현 경제상황의 인식은 불가능하다 하겠다. 재벌체제는 항상 여러 가지 비판을 받아왔다. 일반집중의 문제, 정경유착, 특혜, 부동산투기, 폐쇄적?집단적 소유, 문어발식 확장 등 우리 경제발전과 관련하여 부수된 제 문제들이 모두 재벌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재벌의 성장과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적지 않은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수출증진, 산업구조의 고도화, 첨단산업의 발전 등 재벌이 우리 산업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는 시각 또한 적지 않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재벌문제를 한 단면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과거의 특혜, 정경유착 등이 오늘날의 재벌이 성립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그 성립의 충분조건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또한 지난 40여 년 간의 비약적 경제성장이 또한 모두 재벌의 공로였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5대 재벌의 현황을 중심으로 본다면 재벌은 뚜렷한 전환의 시기에 와 있다. 김우중씨가 이끌던 재벌 그룹으로서의 대우는 더 이상 그룹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주영 회장 사후 순조로운 가족 분할과 함께 2세로 넘어가던 현대 그룹은 정몽헌씨의 자살과 함께 과거 현대의 규모에 비하면 그룹이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보잘 것 없이 왜소해졌다. 삼성은 1996년 삼성에버랜드의 경영권을 이건희씨로부터 이재용씨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편법을 쓴 것을 두고 경실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부터 비난을 받아왔으며 현재 국감의 이슈로 떠올랐다.다. 이제는 어느 재벌도 과거의 재벌의 그룹의 대물림 방식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이다. 신화 속에서 영원할 것 같았던 재벌들이 그것도 하고 나타난 결과이다. 이렇게 재벌은 상위 30대 가운데에서 4-5대 재벌로의 집중도가 심하고, 결국 한국 경제 전체로도 이 상위 5대-10대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이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 제조업과 통신업에서의 30대 기업집단 집중도 증가추세, 특히 5대 기업집단으로의 집중현상은 기술개발과 이들 시장 특성상 새로운 기업의 진입비용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집중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됨□ 특히 30대 기업집단 중 ?빅3? (삼성, LG, SK)의 자산과 매출비중이 각각 43%, 50.1%까지 급증하였으며 이들 3대 그룹과 여타 그룹간의 격차가 확대됨- 30대 그룹의 자산은 최근 4년간 11.8% 감소하였으나, 3대 그룹은 12.2% 증가하여 그 비중이 2001년에는 43%까지 증가- 매출액 역시 3대 그룹은 39% 증가한 반면 30대 그룹은 6% 증가에 그쳐 그 비중이 2001년에 절반을 넘어섬- 특히 구조조정에 따라 30대 그룹에 속한 기업 수는 4년간 191개 감소하였으나, 3대 그룹은 14개 감소에 그쳐 그 비중이 25.8%에 달하는 등 3대 그룹으로의 집중현상이 확연히 드러남30대 기업집단의 자산과 매출액구 분1997199819992000200197년 대비2001년 증감자산(조원)30대 그룹426.3463.6412.9419.9376.0 (558.1)1)-11.8%3대그룹)144.0140.2150.5158.7161.512.2%33.8%30.2%36.4%37.8%43.0% (28.9%)9.2%p매출액(조원)30대 그406.5435.2403.7457.0431.0 (533.7)1)6.0%3대 그룹2)155.5172.2180.6217.6216.139.0%비중3)38.3%39.6%44.7%47.6%50.1% (40.5%)11.8%p소속회사수(각년도4월기준)30대 그룹*************24-1953대 그룹2)17*************-14비중3)21.4%19.7%20.1%23.3%25.8%4.4%p주1) ( ) 안은 공기업 포함 30대 기업집단2) 간 재산(적산)을 취득하는 것이었다. 적산의 가격은 실제 가치보다 30-90% 낮게 매겨졌었고, 이자 없이 10-15년 간 지불이 이루어졌으며, 1945년 이후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평가절하 된 것을 고려한다면 차지하기만 한다면 거의 무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더욱이 적산을 매입하면 낮은 이자율의 은행대부, 원자재 수입면허 배당과 비현실적으로 낮은 이자율 외환을 배당 받는 것과 같은 많은 특혜조건이 따라왔다. 이것이 우리의 재벌이 형성된 계기라고 하겠다. 나아가 견실한 적산회사의 취득은 이후 시장에서 독점과 과점을 보장하였다. 1961년 상위 10대 재벌들 중 7개 재벌은 이전에 적산을 불하 받았었다하지만 오늘날의 재벌들에게서 적산취득의 효과는 의문스럽다. 예컨대, 삼성 재벌은 신세계 백화점, 즉 구 삼월 백화점이었던 구 동화 백화점을 인수하였다. 하지만 신세계 백화점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삼월백화점으로부터 어떤 물건도 경영방식도 인수받지 못하였다. 이후로도 삼성그룹의 확장 과정에서 신세계 백화점은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또 다른 예로 정주영씨는 1946년 미군정으로부터 소규모의 적산토지를 얻어 현대자동차회사를 설립하여 자동차 수리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불하 받은 약간의 토지가 향후 현대 그룹의 사업을 위한 기초로서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지는 의심스럽다. 사실 미군정과 이승만 행정부로부터 중요한 적산을 불하 받아 1960년대 중반까지 생존한 기업을 따져보면 거의 없기 때문이다.2.3. 박정희 행정부, 1961-1971: 수출진흥산업화5.16 군사쿠데타 세력에게 한국경제 성장은 부족한 정통성을 메우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 때문에 차후로 정부의 재벌 육성 정책은 시작되었고, 박정희 군사정부와 재벌은 헤어지기 힘든 파트너가 되었다. 군사정부는 자본가와 자본, 기술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본가의 활동을 고무해야만 했었고, 자본가는 정부가 소유하고 통제하기 시작한 은행의 자금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편 재벌은 정부가 자신들의 기업 활동을 활발히 펼칠 수 가지고 진출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경영의 측면에서 본다면, 재벌들은 자회사들로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동일 시장 내에서의 다른 회사에 비해 보다 큰 분배의 효율성과 비교우위를 얻고자 하였다. 즉 회사간의 이전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기회를 줄기차게 모색해왔다고 하겠다.3. 재벌의 경제.사회사적 문제점3.1 경제력 집중(소유집중)자본주의는 시장을 전제로 성립되는 경제체제이다. 서로 대립되는 모든 이해관계가 시장에서 조정되어 균형을 형성해 나가는 경제제도가 바로 자본주의인데, 우리는 이를 시장경제라고도 한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장활동이 자유롭고 공정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데 시장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큰손 이 존재한다면 시장을 통한 이해관계의 조정은 공정해질 수 없다. 만약 어떤 시장에 규모가 크고 자금력이 우수한 기업이 존재하면서 이 기업이 시장을 주도해 간다면 시장을 통한 이해관계의 조정은 일방적으로 그 기업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시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경제활동 전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힘있는 세력이 경제전반을 지배하면 경제정책을 포함한 경제운영 자체가 이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 재벌들은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자기가 참여하고 있는 개별시장에서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제활동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국가경제내에서 차지하는 재벌의 비중은 매우 높다. 따라서 재벌들은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경제활동의 전 분야에 걸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이러한 영향력이 바로 경제지배력이며, 이러한 영향력이 소수의 재벌에게 집중되어 있는 현상을 경제력집중이라고 한다. 경제력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한 경제주체가 자신이 소유, 지배하는 경제적 자원이나 수단을 바탕으로 다른 경제주체의 자유의사에 따른 경제적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제력 집중은 이러한 경제력이 소수의 경제주체에게 편재됨으로써 그것을 갖지 못하거나대의를 기준으로 행사되지 않고 사기업의 이익 증대를 위하여 행사되게 만든다. 셋째, 정경유착은 대부분의 재벌이 성실한 노력과 기업주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비호와 특혜로 성장한 소수 기업으로 인하여 국민의 의식 속에서 재벌 일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넷째, 정부 권력의 재벌노예화 우려가 있다. 전체국민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사되어야 할 정부의 권력이 재벌이 제공하는 정치자금에 매수되어 대기업주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사된다면 일반 대중의 눈에는 기업주 계층의 착취적 지배도루고 정부가 전락한 것으로 비추어지게 되며, 이에 따라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고 사회에는 반체제 의식이 팽배해진다. 특히 재벌의 정치자금 공여는 집권여당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 반동성은 더욱 부각된다. 더욱이 집권여당이 반민주적인 전제정부인 경우 집권여당에 집중적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한 재벌도 공범자로 인정되어 국민들의 비난의 대상이 된다.재벌이 구체적인 이익을 위해 권력자와 유착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치자금과 뇌물을 통한 접근이다. 특히 과거 권위주의정권시절에는 정권유지를 위해 막대한 규모의 정치자금이 필요했는데 그 조달원은 대개 재벌이었다. 따라서 재벌은 권위주의정권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막대한 특혜와 재벌중심의 성장정책을 얻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재벌들에게 천문학적규모의 뇌물을 받아쓰고, 재벌들도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그간의 거대한 정격유착의 빙산의 일각이 확인된 것에 불과하다 . 다른 하나는 사람을 고리로 하는 유착이다. 정경유착이란 말이 있지만 재벌과의 혼맥이야말로 가장 자신있게 제시할 수 있는 정경합체의 정상을 누리고 있는 집안들이 거미줄처럼 서로 얽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벌가의 혼맥망을 그려나가면 하나하나의 가지에 최고재벌에서부터 대기업까지의 모든 재력가, 대통령에서부터 총리, 부총리, 장?차관 등 행정부 상층인맥, 입법?사법부 요원, 군장.
(1) WCO의 의의WCO (WORLD CUSTOMS ORGANIZATION)는 세계관세기구로서 각국의 관세행정제도를 고도로 통일화하고 조화시켜 제반의 관세법규를 개선함으로써 국제무역의 확대를 이룩하고자 설립한 정부간 기구이다. 현재 관세제도, 관세평가 및 품목분류등 여러 분야에서 필수적인 국제기구로 활동하고 있다.세계경제를 발전시키고 각국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제무역의 확대가 불가결의 요건인바 국제무역 제1선의 세관수속이 너무 복잡하거나 나라마다 크게 다르면 원활한 국제무역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20세기 초 이후 각국의 세관수속을 간소화하고 표준화하는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 1923년에 국제연맹에서 작성된 세관수속의 간소화에 관한 국제조약은 그 최초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WCO는 현재 관세에 관한 범세계적 국제조직으로서 각 회원국에 관세절차에 관한 정보 및 기술적 지원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바, 특히 WTO의 발족으로 WTO협정의 관세관련 기술적 문제는 모두 WCO에서 주관하게 됨에 따라 1995년 1월 1일 이후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있다.(2) WCO의 성립배경세관수속의 간소화,표준화에 대한 노력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특히 구주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즉, OEEC(구주경제협력기구, 현재의 OECD의 전신으로 1948년 4월`에 발족) 의 전신인 구주경제협력위원회의 구성국 16개국 중 13개국이 1947년 9월 12일 구주관세동맹의 설립을 검토하는 뜻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브뤼셀에 구주관세동맹 연구단을 설립하였다.이 연구단이 오늘의 WCO의 모체가 되었다.이듬해 1948년에 이 연구단은 관세동맹에 관한 경제문제를 연구하는 경제위원회와 관세제도에 관한 국제적인 표준화를 위한 기술적인 문제를 연구하는 관세위원회를 설치하였는데, 전자는 OEEC의 발족에 따라 활동분야가 OEEC와 중복하게 되었기 때문에 동작업을 중지하였다.이 때문에 연구단은 관세위원회를 중심으로 각국에 공통으로 적용하게 될 관세상의 품목분류표 작성, 관세평 관련사항국제관세기구(WCO; World Customs Organization)는 1999년 새로운 {세관절차의 간소화 및 조화에 관한 국제협약(Kyoto Convention)}을 마련하였다. 개정 교토협약은 통관절차의 편의를 증진을 통한 무역원활화를 위해 세관에서 반드시 조치를 취해야할 몇 가지 핵심원칙을 가지고 있다. 즉, ① 전산시스템의 최대한 활용, ② 위험관리 및 선별기법의 활용, ③ 자금의 전자적 이체, ④ 다른 정부기관과의 협력강화, ⑤ 관련법령 및 규정의 홍보 및 안내방식 개선, ⑥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의 증대, ⑦ 산업 협력 프로그램의 수립 등을 들 수 있다.이러한 현대적인 원칙 하에 개정된 교토협약은 세관절차의 국제적인 통일과 간소화를 지향하고 있어 향후 발효되면, 국제무역에 있어 예측가능성과 효율성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보기술의 이용, 표준화?간소화된 세관절차 등으로 국제 관세행정에 있어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 교토협약의 개정의정서에 대한 수락의사를 표시한 국가는 현재 알제리, 호주, 뉴질랜드, 일본, 중국, 캐나다, 레소토, 모로코, 체코, 라트비아, 우간다 등 11개국이다. 미국은 2003년 중 수락하겠다는 의사만 밝힌 상태이고 EU는 회원국간의 합의문제로 지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교부의 심의를 거쳐 금년말까지 가입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개정 교토협약에 가입할 경우 우리나라에서 아직 시행되고 있지 않는 규범은 향후 3년 내지 5년에 걸쳐 국내법에 수용하면 된다. 우선 개정 교토협약 일반부속서 표준(standard)은 가입 후 3년, 과도기 표준은 가입 후 5년 이내에 국내법에 반영하여 실행할 의무가 있다. 개정 교토협약은 가입국에 대해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협약내용을 이미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가입에 따른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다.개정 교토협약을 이해함에 있어 유의해야 할 사항은 협약의 내용 중에 EU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가 상당부분, 특히 중요한 표준내용으로 협약에 을 하여 WCO를 중심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만 할 것임.(5) WCO에 관한기구WCO기구는 최고의사결정기관인 이사회 및 동 이사회를 보좌하는 기관으로서 정책 위원회, 상임기술위원회, 품목분류위원회, 평가위원회, 재정위원회 및 사무국 등으로 구성되고 있다. 각 기관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1. 이사회(Council)이사회는 WCO의 총회이며 최고의사결정기관인데, 원칙적으로 매년 1회 이사회의 본부가 위치하는 브륏셀 또는 이사회가 결정하는 기타 장소에서 개최되고 각 보좌기관의 제안사항에 관한 의결을 한다.구성멤버는 설립협약의 체결정부(체약국) 대표인 관세국장 또는 장관인데, 비가맹국인 정부 또는 국제기관의 대표자에 대해서도 이사회에 업서버로 참가할 것을 인정하고 있다.이사회의 결정은 원칙적으로 투표권을 갖는 구성원의 과반수 출석하에 3분의 2다수에 의한 의결로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또한 이사회는 13명의 재정위원과 1979년 설립된 17개국의 정책위 회원국의 보좌를 받는다.2. 정책위원회(POLICY Committee)정책위원회는 1979년 5월 제 53/54차 CCC총회(호주 캔버라)시 이사회 결정에 의거 설립되었다, 회의 개최는 1979년 11월 제 1차 정책위원회 개최 이후 매년 2회씩(83년은 3회) 개최하고 있으며, 그의 중요한 기능은 다음과 같다.① WCO활동과 관련한 광범위한 정책문제 총괄② 이사회에 대하여 실질적인 운영위원회 역할③ 이사회의 정책?실무?절차 등을 검토하여 WCO활동의 종합적인 목표달성을 위해 이사회 지원④ 동 임무수행을 위해 이사회?정책심의회 구성회원과 사무총장이 제기한 문제를 검토⑤ 위원회 결정사항을 이사회에 대하여(긴급시에는 사무총장에게) 권고, 구성은 12인(지역대표국 6개국, 적극공헌국 6개국) 등 총 17인으로 되어있다.정책위원회는 이사회의 주요 정책문제를 자문하는 등 이사회 내의 가장 활동력있고 중추적인 임무를 담담하고 있는 실질적인 최고결정기관이다.3. 상임기술위원회(Permanent Technical Committ 물품의 품목분류를 토의하는 회의인데, 우리나라는 CCCN을 탈퇴하고, 신품목분류협약에 가입하고 있어 참가하지 않고 있고, 연 2회 개최된다.9. 재정위원회(Finance Committee)WTO 예산조달?지출?회계감사 등 예산?회계에 관한 실질적인 결정기관으로, 여기서 결정된 사항은 총회에 상정하는데 분담금 기여도가 높은 주요국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 1회 개최된다. 재정위원회는 총회에서 선출된 13개국으로 구성된다.10. 사무국WCO의 사무국은 사무국장 밑에 총무국?기술국?평가국?품목분류국 및 Technical Team이 있고, 각각 해당 각 위원회의 사무를 담담하고 있다.(6) WCO의 협약1. 품목분류협약CCC의 가장 큰 업적은 복잡한 각국의 관세율표를 공통의 분류방식으로 변경하게 한 BTN(Brussels Tariffs Nomenclature)제도의 편성이다. BTN은 관세부과의 목적으로 상품을 가공도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을 말한다.BTN은 당초 CCC의 사무국이 위치한 브뤼셀에서 제정되었기 때문에 BTN이라고 명명하였으나 전세계적인 BTN이 되었으므로 1976년부터는 그 명칭을 바꾸어 CCCN(Customs Cooperation Council Nomenclature)이라고 명하였다.그리고 CCC에서는 이후에 세계무역량이 급증함에 따라 국제무역의 원활화를 도모하고자 당시까지 국가 및 산업부문별로 다양하게 되어 있던 상품분류체계, 즉 SITC, CCCN, TSUSA(Tariff Schedule of the United States Annotated : 미국 관세율표) 등을 국제적으로 통일?적용하기 위하여 CCCN을 골격으로 하여 관세율 뿐만 아니라 통계?무역?운송과 관련된 모든 상품의 분류를 가능하게 하도록 하는 다목적 품목분류표인 통일상품명 및 부호체계에 관한 국제협약(HS : The Harmonized Commodity Description and Coding System)을 체결하였다.2. 브뤼셀평가협약제2차 대전 후 유럽의 단일 경제권을 만들기7월30일부터 발효하였다.ATA란 일시수입을 의미하는 불어의 Admission Temporaire 와 영어의 Temporary Admisson 의 두문자를 조합한 것이다. 이 [ATA카르네협약] 은 다른 모든 일시면세 수입에 관한 협약을 통합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세운송에까지 ATA Carnet를 이용하고 있다. ATA Carnet 란 각국의 상이한 통관서류에 대체되어 가맹국이 공통으로 사용되는 일시수입통관증서로서, 이는 국제보증조직에 가입하고세관의 승인을 받은 보증기관에 담보를 제공하고 그로부터 발급받는 일종의 납세보증서인 것이다.⑤ 선원의 후생용 물품에 관한 관세협약 - 이것은 국제항해하는 선원의 문화용, 교육용, 종교용, 스포츠용품의 이용과 이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일시 수입되는 물품의 면세수입을 허용하고 통관을 간소화하자는 것으로서 1965년에 발효되었다.⑥ 과학장비의 일시수입에 관한 관세협약 - 이 협약은 과학연구 또는 교육용 기기등이 국가의 승인 하에 특정단체에 의거 비영리목적으로 일시 수입하였을 때 재수출 부조건으로 면세수입을 허용하고 통관을 간소화하자는 것으로 1969년에 발효되었다.⑦ 교육용 기자재의 일시수입에 관한 관세협약 - 이 협약은 교육훈련용 자재의 일시면세수입을 허용하는 것으로 1971 발효되었다.⑧ 화물의 국제통과에 의한 관세협약 - 이것은 컨테이너, 도로차량, 철도차량등에 의하여 국제운송되는 화물의 통과국의 세관수속을 간소화하려는 것으로 1971년에 체결되었다.⑨ 세관절차의 조화 및 간소화에 관한 국제협약 - 이것은 관세제도 전반에 걸쳐 각국에 지켜야 할 기준을 정한 것으로 그 부속서로 세관창고, 환급제도 등 30-40개의 개별규정이 있다.⑩ 상품견본을 휘한 까르네에 관한 관세협약 - 이 협약은 까르네(수첩)을 이용하여 상품견본의 일시수출익에 관한 수속을 간소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1957년에 발효되었으나 ATA Carnet에 흡수되었다.4. 교토협약(Kyoto Convention)1973년 5월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1. 서론- 현대의 공간사정공간은 돈이다공간은 힘이다공간은 혼잡하다2. 공간에 있어서의 이미지확장장소간격, 위치, 관계그것만으로 존재할까3. 공간의 성질균질이며 일정한가3차원적인가외적인 것인가4. 행동과 공간지각과 감각사고와 행동정위와 방향5. 사실공간과 의미 공간생활 속의 사실과 의미공간표현과 문맥형태와 색6. 공간의 인간화자리, 사이, 집공간의 정서성자연, 풍토, 경관7. 미와 신앙과 유희의 공간예술의 공간성스러운 공간유희와 공간8. 문명과 공간과 시간공간의 극복새로운 공간의 구축공간과 시간공간이라고 하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뭐 그리 새롭다고 느끼는 감정에는 변하는 것은 없었을 지라도 다시 한번 정확한 눈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능력이 생겼다고 할까요..뭐 그런 것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공간감을 느끼고 있으면서 이것이 좋은 공간이고 풍부한 공간임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난 이렇게 생각을 했다.왜 우리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에 둔감한가에 대한 이야기 였다.그리고 너무도 많은 것들에 풍족함을 느껴서 그런 것도 아닌 것을 우리는 알게 되고 그리고 너무도 어리석음을 알게 된 것이다.난 그래서 공간이라는 것을 정의하고 그리고 그것을 풀어 가는 방법에 제의를 하고 싶었다.계획을 하여 그 공간을 만들어 내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그리하여 미적인 영역과 문학적인 그리고 이성 외적인 것에도 손을 내미는 것을 보고 그래서 분석 또한 그런 영역에 다시 한번 거론하기도 하는 모습을 본다.누가 이야기하건 데 그 공간을 가면 어떤 생각을 가지게 하고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하게 되더라는 것은 행위론적 입장에의 발혀라고 생각한다고 한다면..공간 자체를 발생기적인 기질로 인식하고 그리고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산물로 인식하는 일대일 적인 사고로 그 공간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했다.의지와 제반 조건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단순하지도 그렇다고 결과론 적인 입장은 아닐 것이다. 누가 누구의 속하게 되는 제반 어떤 일도 난 이런 모습에서 너무도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 자체도 어리석다고 생각한다.내가 이번에 한 설계과제와 더불어 설명을 해보고자 한다.어떤 설계과제였는지 간략히 설명하자고 한다면. 첫째과제는 판과 볼륨을 가지고 한 과제였다. 그리고 마지막 과제는 시립대안에 환조과 관련 싸이트에 인포매이션 센타를 설계하느 것이었다.첫째과제에는 헬스장을 주제로하여 설계를 하였는데 그 핼스장은 두게의 동선을 중심으로 헬스장인 판으로 이동하는 건물이었다. 두게의 기존 건물을 중심으로 양쪽에 레벨이 다른 길을 면하고 있다. 여기에다 1층에는 자연 정원을 중심으로 홀과 서비스 시설을 배치하였고 거기에다 많이 돌아가는 동선과 직선으로 올라가는 동선 계단을 설치 하였다.더 말할 것은 이곳에 다른 어떤 부제를 가지는 것이었다. 긴 계은 철골조의 직선 부제에 의한 공간을 주었고 직선 수직 동선에는 철골조와 트러스의 메스적인 느낌을 가지는 부제를 가지는 것이었다. 이런 두게의 동선의 계단실을 통해 올라가는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하려고 하였다.헬스장이라고 하는 곳을 올라가서는 사방을 볼 수 있는 띠 유리창을 두었다 이는 도시를 자연 정원을 중심으로 흐르는 동선에서 우리가 보와 온 도시적인 눈을 정화하고 거기다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자는 것이었다. 이런 의도에는 자연적인 요소가 가지는 공간감과 도시가 가지는 공간감에는 아주 다른 색다른 어떠한 것이 존제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하였다.또한 마지막 설계에는 환조과 실습장이 있는 아주 오래된 시립대 부지 녹지가 있었다. 그러한 부지에 인포메이션 센타가 지어져야 한다는 것이 었는데 오래된 추억을 가진 장소와 그곳에 노여진 새로운 건물에 대한 조화가 적절해야 한단는 것에서 시작하였다.단지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지 상상을 하게 되면서 난 자연요소를 많이 회손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성큰이라는 요소를 최대한 활용하도록하였다.그래서 적층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땅이라는 판을 띄우는 것에 착안을 하고 성큰의 지붕을 주변 경농관과 같은 사선을 이용한 지붕을 땅과 연결을 하고 거기에다 전시관과 자료실을 조금씩 파내려가는 식의 설계가 들어가 되었다계획이라고 한다면 그 동선은 아주 추억적이고 우리가 추구하는 옛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전제하에 점점 지하로 접근하면서 옛것의 것을 알아가는 것이 었고, 자료실의 자료라는 것이 옛것의 보관적인 측면에서 그러한 자료실이 최종 목표 공간이 되었다.거기다 사무실과 화장실 같은 서비스 시설들은 아주 객관적인 공간으로 지형의 선과 실의 천장이 딱 맞아 떨허지게 지붕과 땅이 만나는 사선의 선과 맞게 배치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홀에서 이동이 쉬운 곳에 공간을 배치 하였다.그리고 전시장은 계단이라는 이동수단을 오브제적인 효과를 최대한 살려 중심에 배치하고 힌 벽이라는 무균질적인 공간을 만들어 단지 전시실의 요소를 극대화 하려고 노력하였다.
진정서안녕 하십니까저는 부천시 소사구 소사본동 XXX-X호 에 사는 ‘홍길동’ 이라고 합니다.다름이 아니오라 제가 2000년 9월 18일 ‘XX생명 보험회사’ 에 (보험명 ‘XXXXXX’ ) 피보험자인 아버지 ‘김갑돌’ 로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3년이 다된 금년 8월 3일경 아버지 ‘김갑돌’씨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왼쪽 상하지의 무력감과 좌안면마비감, 어지러움, 어둔 등의 증상이 발하여 2003년 8월 3일부터 2003년 8월 14일까지 ‘대전 광역시 중구 대흥동 XX-X번지’ XX대학교 부속 한방 병원( 담당 한의사: XXX)에서 치료를 받았기에병원 측으로부터 뇌경색[163]이라는 병명의 진단서를 발급받아2000년 9월 18일 삼성생명과 채결한 보험금 청구를 신청하였던바보험회사 측에서 아버지 김갑돌씨의 병명이 ‘뇌경색(163)’이 아니고 ‘뇌경색 후유증(169)’이라는 진단이 나왔으므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통보가 있어 병원 측에 알아본즉 피보험자에 요청에 의한 최초 진단서에는 ‘뇌경색(163)’으로 진단서를 발급 하였고 차 후 보험회사 측 요청에 의한 진단서는 ‘뇌경색 후유증(169)’으로 재발급하여 주었던바보험회사에서는 이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못하겠다고 합니다.2000년 9월 18일날 보험계약을 채결할 당시 보험회사에서 지정하는 대전 중앙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아 보험계약이 체결되었으며,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3년 8월 3일 이전에 뇌경색 증상으로 어떠한 병원에서도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으며최초 진단명이 뇌경색이라는 진단결과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보험회사 측에서는 최초 진단을 무시한 채 병원 측에 제진단서를 받아 이를 근거로 보험금을 지불하지 않고 있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로 너무나 억울하여 이렇게 호소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더욱더 억울한 것은보험계약당시 선택특약 중 3대질환의 하나인 뇌경색 진단이 나왔는데이를 수정까지 한 진단서를 발급받아 보험금을 지불하지 않으려 하고보험 계약당시 뇌경색은 되고 뇌경색 후유증은보험금 지급을 할 수 없다는 어떠한 고지도 없었을 뿐 아니라보험회사에서 지정한 병원에서 신체검사까지 마치고 보험에 가입한지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뇌경색 후유증은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이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대기업이 그들의 수익에 눈이 멀어 계약당시
1.산 업 혁 명 .....18세기 후반, 프랑스대혁명이 인류사회에 미친 영향보다 더욱 큰 영향을 미친 새로운 변화가 유럽의 경제와 사회에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변화란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한 농업생산의 증대와 제조업 분야에서 기계의 발명과 새로운 동력(석탄)의 사용으로 대량생산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생산분야에서 나타난 이러한 변화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놀라운 일이어서 사람들은 이러한 새로운 변화에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본래 '산업혁명'이란 집에서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생산방식(가내수공업)으로부터 도시지역의 공장에서 기계에 의한 생산방식(공장제 기계공업)으로 변화한 것을 뜻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생산방식의 변화에 의한 전 산업의 급격한 발달과 그에 따른 교통.통신 분야의 발달로 인해 인류의 생활양식과 사회구조 자체가 변화한 것을 말한다. 즉 인류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총체적이고 급격한 변화를 일컫는다.이러한 기술적인 변화는 인류의 무한한 진보에 대해 희망을 가지게 하고 가난과 육체적 고역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을 높이긴 했지만, 급격한 산업화의 진행은 또한 국가와 개인들에게 전혀 예상치 않았던 심각한 문제들도 안겨주었다.영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산업화는 곧 유럽대륙과 미국, 러시아, 일본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각 나라는 그 나라가 처한 역사적 상황과 자연조건 등에 맞게 산업화를 진행시켰지만, 기본틀은 영국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혁명의 배경과 진행과정, 그 결과와 문제점 등을 살펴보겠다.우리가 산업혁명에 대해서 자세히 배우는 이유는 오늘날의 현대사회는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2.산업혁명의 배경1인구의 증가산업혁명기에 영국에서 일어난 가장 근본적인 변화중의 하나가 급격한 인구의 증가이다. 1750년에서 1900년 사이에 영국의 인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증가하여 1750년에 약 천만정도였었는데 1900년에는 4천만으로 증가하였다. 동시에 늘어난 인구는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이동하였다. 예를 들면 1750년에서 1800년 사이에 맨체스터의 인구는 18,000명에서 90,000명으로 늘어났다.인구증가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의학이 발달하여 질병이 감소하고, 사람들의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면역력이 좋아지고 여성의 출산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한편, 출산율의 증가는 곧 새로운 산업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이 생겨났음을 의미하였다. 또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농촌사람들처럼 그들 자신의 식량과 의복을 만들어내지 못했으므로 인구의 도시이동은 식량과 공산품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게 되었다. 결국 인구 증가와 인구의 도시 이동은 사회에 연쇄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자료 1] 영국의 인구 증가년도 인구수1701 9,250,0001751 10,700,0001801 15,900,0001851 27,400,0001871 31,500,0001901 41,500,0002생산량의 증가영국의 농업은 1650년에서 1850년 사이에 점점 더 효율적으로 바뀌어 갔다. 이것은 농부들이 같은 넓이의 땅에서 더욱더 많은 량을 수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옥수수의 총생산량은 1700년의 80톤에서 1800년에는 120톤으로, 1820년에는 155톤으로 증가하였다. 목양의 수도 1688년의 1100만 마리에서 1820년에는 2600만 마리로 늘어났다.3농업 생산량의 증가농부들은 어떻게 하여 옛날보다 많은 수확을 거둘수 있었을까? 여기에 대해 사람들이 오랜동안 연구를 하였는데 연구결과를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엔클로저'의 영향 # 돌려짓기 # 가축의 품종개량 # 새로운 농기계의 발명엔클로저 운동이후 거칠게 버려진 땅들이 개간되고 그 땅에서 수확을 함으로써 생산량이 증가되었다.중세에는 농부들이 땅을 3-4년에 한번씩 아무것도 심지 않고 놀렸다. 그러나 18세기에는 많은 농부들이 땅을 놀리는 대신 매년 다른 작물을 돌아가며 심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더 많은 땅이 경작되어지고 가축을 위한 먹이도 마련할 수 있었다.한편 농부들은 가축의 품종 개량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로버트 베이크웰이란 사람은 양털이 길고 고기도 훨씬 많은 새로운 품종의 양을 교배해 내었다. 1700년과 1800년 사이에 농장 가축들의 무게는 예전보다 2배이상 나가게 되었다.--베이크웰의 양18세기 전반기에 툴이란 사람이 한 번 동작으로 일렬로 똑바르게 씨를 뿌려서 흙을 덮는 씨뿌리는 기계를 발명하였다. 예전에는 손으로 땅표면에 씨를 흩뿌렸었다. 툴의 방법은 어떤 좋은 점이 있었을까?19세기에는 쟁기의 성능이 꾸준히 향상되었고 1790년대에는 옥수수를 수확하는 기계가 나오게 되었다. 처음에 이런 기계들은 사람 손이나 말의 힘으로 움직였었는데 19세기에는 증기가 대부분의 농장용 기계들의 동력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니 생산량이 더욱 늘어났겠죠?--툴의 씨뿌리는 기계이렇게 농촌에서는 생산방식의 발전으로 옛날보다 더 적은 노동력만 필요하게 되었고, 생산량의 증가로 인해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도시 사람들에게도 식량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꼭 농촌에서 살 필요도, 살 수도 없게 되었겠죠?3.증기와 함께 기계 시대가 시작되다1증기 기관의 탄생1766년에 공학자이던 제임스 와트라는 사람이 원래는 탄광에서 물을 퍼내는데 쓰던 증기기관을 개량하였다. 그래서 이제는 흐르는 물의 힘(수력)을 이용하지 않고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어 거기서 나오는 힘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증기기관은 곧바로 방직산업에 이용되었고, 이제 사람이나 물의 힘을 대신해서 증기로 쉬지 않고 기계를 돌릴 수 있게 되었으므로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그야말로 대량생산의 시대가 온 것이다.2와트의 증기기관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복동식 피스톤에 크랭크를 설치하여 회전력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작용을 끝낸 증기를 실린더 밖으로 끌어내 다시 응축시킴으로서 열효율을 4배나 향상시켰으며, 피스톤의 양쪽에 교대로 증기를 보내어 출력 행정이 일정하고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게 하였다.3석탄의 시대또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에너지원이 필요했는데 사람들은 처음에는 나무를 사용했다. 하지만 나무는 사용하기 전에 먼저 키워 놓아야 했기 때문에 소비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석탄을 사용하게 되었다. 증기기관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기계들을 돌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석탄이 필요하였다.4철의 사용철은 수천년 동안 사용되어 왔지만, 18세기에 와서 새로운 제련술이 발명되면서 기계나 기차 선로를 만들수 있는 단단한 철이 나오게 되었다. 이제 철은 모든 산업의 기본이 되었고 강철의 사용으로 철도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4.산업혁명의 결과수공업의 종말 -- 대량생산의 시대로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수공업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생산방식이 기계를 이용하여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제 기계 공업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대량생산은 자본가들에게 많은 부를 축적하게 해주었으며,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무한히 진보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게 하였다. 이러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1851년에 영국에서 일어난 '대박람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