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茶馬古道)를 보고 느낀점은 이런 신세계에 아직도 저런 세계가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차마고도란 실크로드보다 200여 년 앞서 만들어진 인류 최고의 교역로로, 중국 서남부에서 윈난성·쓰촨성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인도까지 이어지는 육상 무역로이다. 윈난성·쓰촨성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했다고 하여 차마고도라는 이름이 붙었다.1부 마지막 마방편에서는 일단 처음 장면을 보고서는 경치가 너무 멋있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꽉 막힌 현대사회에서 저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고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저곳이라면 아무런 방해 없이 현대 사회의 부정·부패를 보지 않고 신경 안쓰고 조용히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1부에서는 차마고도를 이용해 무역을 하는 마방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지금 현대 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옛날 시대에서나 존재 했던 무역방법을 보여 주고 있다. 말에다가 짐을 싫고 3개월을 횡단산맥의 위험하고 험난한 길을 걸어가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얘기를 보여 주고 있다. 발이라도 삐끗했다가는 바로 목숨을 잃어버릴 수 있는 구불구불하고 좁은 낭떠러지 길과 물살이 예사롭지 않은 강을 건넌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들은 목숨을 걸고 차마고도를 건너는 것이다. 중간에 나오는 티베트 차와룽 꺼부촌에서는 봄·가을로 옥수수를 재배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자급자족하기가 힘들어 밖으로 일을 하러 나간다. 일을 하러도 4일이나 걸리는 첩첩산중에 산다. 이 마을에는 특이한 전통이 있는데 형제공처라는 두 명의 형제가 한명의 아내를 맞아 산다는 전통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마을이여서 그렇게 해야지 집안의 살림이 나아지기 때문이다. 형은 마방 일을 나가고, 동생은 집안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집안 일을 신경쓰면서 산다고 했다. 먹고 살기 위해 생긴 전통이라고 생각하니 놀고 즐기기 위해 원나잇 스탠드을 하는 지금 사회와는 대조적인 삶을 보여 주고 있다. 마방 길에 오르기 전에 마을 사람들은 다녀오는 길에 아무런 사고 없이 조심히 다녀오라는 기도를 해준다. 물론 마을을 떠나도 기도는 계속한다. 마방 길에 오르는 사람들도 중간에 있는 카와거보 신산에서 잘 다녀올 수 있게 신들에게 기도를 한다. 그렇게 해서 큰 마을에 도착해 물건을 판다. 물건을 판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서 그들은 행복하게 마을로 돌아간다. 1부에서 마지막 장면은 폭탄을 이용해 산을 깎아 길을 만드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이 이제 마방들이 없어지고, 좀 더 편안하게 무역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그런 메시지를 전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말은 자연이 파괴되고 시골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를 받아 들일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순수한 사람들이 사회의 안 좋은 것들에 물이 들까봐서이다.2부 순례의 길에서는 자신들의 다음 생을 위해서 지금 자기 자신들이 지은 죄를 씻어 내기 위해 고행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수행자들은 항상 출발하기 전에 활불을 찾아간다. 그래서 수행을 하면서의 주의사항과 활불이 말하는 모든 것을 따라야 한다. 도착지점까지는 2100km가 걸리는데 걸어가기도 힘든 거리를 오체투지라는 두 손, 두 발을 땅에 붙이는 힘든 절을 하면서 간다. 절을 하면서 가는 이들은 온 몸이 망신창이가 되어가지만 이들은 깨달음과 자신들이 지었던 죄를 씻어 내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 고행을 하면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거에 대해서 감사하고 즐겁다고 얘기한다. 지금과 같이 첨단 사회에서 종교를 믿고 이 고행을 하면 정말 죄를 씻을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말 그대로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이 곳의 사람들은 아직 순수라는 깨끗한 마음들이 남아 있어서 자신들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 같아서 부러웠다. 이 사람들이 절을 하면서 가는 모습을 보고는 과연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반문이 계속 생겨왔다. 하지만 나는 그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 하였다. 누군가 시킨게 아닌 그들의 자의로 하는 고행. 이 사람들을 본 받아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삶의 의미와 순수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3부 생명의 차에서는 티벳 사람들에게 차가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고 있다. 차마고도, 여기서 이 다큐멘터리와 본질적인 뜻에 맞게 나온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이번 회이다. 중국 윈난성 푸얼에서는 좋은 차를 재배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차는 살아 있는 골동품, 마실 수 있는 유물이라고 불린다.이 차에는 비타민이 포함되어 있다. 티벳의 사람들은 유목민들이 많아 비타민이 절대로 부족하다. 이들은 주로 야크 고기들을 먹으면서 영양분을 채우는데 비타민은 못 채워 너무 힘들어 하고 있다. 그래서 차를 마셔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넓은 평야 지대이기만 한 티벳에서는 차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마방들이 가지고 온 차들을 샀다. 마방들은 긴 여정이고 너무나 힘들지만 티벳으로 간다. 왜냐하면 차를 팔면 큰돈을 벌수 있기 때문이다. 티벳의 사람들은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도 차를 사셔 마셔야 한다. 그래야지 자신들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개념은 틀리지만 정말 전통과 습관이 무섭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티벳의 사람들도 비싼걸 알면서 마시면 안될텐데라는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옛 조상들로부터 내려왔다. 또 그렇게 해야지 자신들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워 왔을 것이다. 그리고 뒤에 부분에서 노래가 나오는데 이 노래의 내용은 어쩔 수 없이 마방일을 떠나야 한다는 그런 내용들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결혼하는데 빚을 들여 결혼을 해서 빚을 갚을려면 당신을 떠나 마방 일을 가야한다는 그런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 노래를 듣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결혼을 하고도 3개월이나 떨어져 있고 혹시나 잘못하면 생이별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위험한 길이기 때문이다. 3부를 보면서 이런 결론을 내리면 웃길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에는 정말로 의식주가 중요한 것을 이번 회를 다시 보고 느낄 수가 있었다.4부 천년 염정에서는 강 기슭에서 힘들게 염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이다. 티벳 망캉현 옌징에서는 계단식 논으로 보이는 밭들이 있다. 난 처음에 저것이 무엇인지 되게 궁금했다. 하지만 곧이어 내 의문점은 풀렸다. 염전인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바다도 아닌 강 기슭 중간에서 소금이 나올 수 있는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느낀 점은 사람의 살려는 의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그런 대단한 의지라고 다시 생각했다. 그래서 잘 살펴보니 소금물이 솟아나는 우물이 있었다. 이 우물 근처를 탑처럼 쌓아 올려서 범람한 강물을 막기 위해서 만들었다. 우물의 수위가 낮아지면 여인들은 깊고 좁은길 10여미터를 내려가서 물을 떠서 올라온다. 통에 가득 채운 물의 무게는 35kg이다. 잘못 발을 디디기라도 하면 바로 목숨을 잃을 것 같았다. 그렇게 떠온 물은 바로 염전으로 가지 않고 마을 개인 사람들의 저수지로 옮긴다. 거기서 3~4일은 불순물을 가라 앉히고, 농도를 높인다. 그래서 다시 거기에 있는 물을 햇빛이 드는 염전으로 옮긴다. 물을 많이 부어줘야 좋은 소금이 나온다고 한다. 어떤날은 물을 한 번 부었는데 세 번이나 소금을 걷은적도 있다고 얘기한다. 이렇게 힘들게 수확한 소금들은 곡식과 바꾸게 된다. 그 중에서도 꺼라촌 유목민들과 거래를 많이 하는데, 그 이유는 옌징의 홍염이 야크와 염소에게 좋기 때문에 꺼라촌 유목민들은 힘들지만 기꺼이 옌징까지 와서 소금을 사간다. 그리고 이건 전통인데 거래가 성사되면 남자들은 소금을 안 옮긴다고 한다. 여자들이 옮기는데 그 이유는 여자들이 힘들게 소금을 수확해서 라고 말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걷은 소금을 자신이 팔면 그 보다 더 보람찬 일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의 소금 걷는 일은 여자들만 하는데 남자들은 일을 못하게한다. 그래도 여자들은 불만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남자들이 더 위험하고 힘든 일을 많이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우기가 시작되면 염전에 강물이 넘치고 피해를 입는데 그 모습은 우리나라에 장마기간에 농민들이 입는 피해와 비슷한 모습을 연상 시켰다. 이번 회에서는 정말 치열하게 산다는게 무엇인지 잘 깨닫게 해준 회인 것 같다.5부 히말라야 카라반에서는 소금호수로 소금을 캐러가는 유목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티벳 서부 창탕고원에는 봄이 되는 4월이면 야크들을 이끌고 온 유목민들이 모인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향나무 가지로 연기를 피우고, 불경을 적힌 천을 건다. 멀고 긴 여정동안 자신들의 안녕을 신에게 빌기 위해서이다. 긴 여정동안에 고원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 많다. 그래서 야크들은 많이 힘들어 한다. 혹 아픈 야크가 나오면 억지로 라도 달리게 해서 치료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차마고도를 보면서 이런 동물이 아파서 치료를 제대로 못해주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리고 유목민들은 가는 길 중간 중간마다 모여 불경을 읊는다. 불경을 읊는 것 역시 자신들이 가는 길에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램에서다. 그들이 가는 최종 목적지는 짜부예차카라는 소금호수이다. 그곳의 소금을 캐서 팔아서 다른 물건과 교환해서 살아가는게 티벳의 유목민들이 살아가는 수단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소금을 캐기 전에 신께 기도를 다시 한 번 올린다. 그리고 소금을 캐러갈때는 여자와 관계를 하면 안되고, 여자들을 데리고 가거나 가까이 해서도 안된다고 한다. 부정이 타서 소금호수의 신이 분노할꺼라고 생각하고 있다. 소금을 다 캔 유목민들은 아침에 일어나 신께 소금을 잘 가져가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예를 올린다. 그리고는 소금을 싫어서 티벳 모굼 으로 떠난다. 그곳은 네팔과 티벳의 국경지역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가지고 온 소금을 팔고 다른 것들을 사서 돌아간다. 여기서 팔린 소금은 티벳 전 지역으로 팔리고 여러 사람들에게 물물교환의 수단이 된다. 여기서 계속 강조 되는 이야기지만 소금이 없으면 여기의 사람들은 생활이 힘들고 불편한 것 같다.
행복을 찾아서를 보고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의 최신작으로 2006년에 개봉한 작품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감독은이탈리아 로마 출신이고, 센트로 스페리맨탈레 디 시네마토그라피아(Centro Sperimentale di Cinematographia)에서 감독 과정을 이수한 후 몇 편의 단편과 다큐멘터리를 연출했고, 첫 장편 영화 로 토리노 영화제에서 최고 감독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그는 이후 다수의 유럽영화제에서 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를 완성했고, 국내에서도 소개된 를 연출했다. 는 2002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작품으로, 그는 이탈리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다비드 드 도나텔로 영화상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비롯한 5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후 모니카 벨루치를 기용해 만든 는 이탈리아 영화기자조합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제작, 각본상,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그가 연출 했던 영화는 이렇다.1.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yness) 감독2006 | 미국 | 드라마 | 117분2. 리멤버 미(Ricordati Di Me:Remember Me) 각본2003 |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 125분3. 라스트 키스(L'Ultimo Bacio:The Last Kiss) 감독2001 | 이탈리아 | 멜로/애정/로맨스, 드라마, 코미디 | 118분4. 나에게 유일한(Come Te Nessuno Mai:But Forever In My Mind) 감독1999 | 이탈리아 | 코미디 | 88분이렇게 감독의 기본소개는 여기까지만 하고, 행복을 찾아서라는 영화에 대해서 얘기하려 한다. 헐리웃 진출작 는 무치노의 통산 다섯 번째 장편영화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희망과 용기, 부성애의 감동을 가슴 따뜻하게 전달시켜준다.이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실화 그리고 한 사람의 성공을 그린 크리스 가드너라는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이다.영화는 의료기기를 팔러다니는 크리스의 어려운 상황으로 시작된다. 보기에도 우리나라 전자렌지를 연상시킨 정도의 무거워 보이는 골밀도검사 기구를 팔러다니는 크리스는 고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학력에 흑인으로 아내 린다의 공장 일에도 불구하고 아들 크리스토퍼의 놀이방 비용과 집세를 내는데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창고에서 인심난다는 옛말처럼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가운데 아내 린다와의 사이는 늘 삐걱거리는데다 아침에 들고 나간 의료기구를 저녁에 도로 들고오는 크리스의 모습은 아내 린다에겐 매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능력없는 남자의 전형일 뿐이다.하지만, 크리스는 희망을 잃지 않고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무언가 희망적인 미래를 열기 위해 세상을 두리번거린다. 전 재산을 투자해서 산 의료기구는 비싼 가격과 힘겨운 영업환경으로 인해서 애물단지로 변해 집안 곳곳에 쌓여있지만 그것만 다 팔고 나면 무언가 인생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끈질김으로 크리스는 이 병원 저 병원을 기웃거리지만 늘 절망만을 안고 집에 돌아온다.감독이 제시하는 의료기기는 크리스에겐 하루하루 생활을 지탱해야 하는 생계 수단이자 원대한 꿈을 꾸지 못하게 가로막는 현실 세계의 수많은 다른 형태의 삶의 상징인 것이다. 처자식이 있는 가장으로서 당장에 해결해야할 경제적인 필요를 쫓다보면 누구도 더 큰 꿈을 꿀 엄두를 낼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불만족스럽지만 현실에 허덕이며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억지스런 자족을 해야하는 것이다. 반대로 더 나은 삶을 위한 꿈을 꾸기 위해서는 현실의 문제를 치워버려야 한다. 이 것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딜레마다. 영화는 미래를 위한 상담을 하다가 결국 짚시여인을 쫓아가는 크리스의 모습이라는 어찌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 이 영화의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1. Story적 측면.소설과 영화의 Story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아무래도 2차원의 세계를 3차원의 세계로 변화를 줌에 따라 관객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작가 이문열씨가 표현하고자 한 인간의 휴머니즘과, 영화감독 박종원 감독이 영상미에 담아내고자 휴머니즘에 정치?사회적인 요소(현실개입) 에 영화의 상업성을 위한 흥미요소를 집어넣기까지 포함시키고자 한 측면에서 Story전개 자체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우선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시대적 배경, 그 시간적 배경으로 간략히 언급되고 있을 뿐인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까지의 사회상황이 영화에서는 이야기의 전개와 세심하게 맞물려간다. 가령, 한병태가 급우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극장을 찾았을 때 ‘대한 뉘우스’에 출연한 이승만의 의기양양한 모습, 6학년에 진급한 뒤 3.15 부정선거에의 저항을 암시하는 ‘자유와 진실’이라는 제목의 새 담임선생님의 첫 수업. 그리고, 4.19혁명의 시위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같은 시기의 엄석대의 흥망과 거의 일치한다. 박종원 감독은 원작소설의 내용에 정치?사회적 요소를 영화의 많은 부분에 포함시키려고 하는 노력의 부분이 많이 보인다.소설의 결말은 기차역에서 석대가 형사들에게 붙잡히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영화에는 최선생(5학년 담임) 죽음에 조화를 보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는 엄석대가 사회적인 성공을 암시함으로써 현실의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2. 인물적 측면.한병태의 경우, 서울에서 아버지를 따라 시골로 전학을 간 소년.엄석대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서 나 홀로 대항하나, 결국 그에게 굴복하고 만다.합리적이고 민주적이지만, 이를 용기 있게 지켜나가지 못하다는 점에서 소시민의 정형이다. 영화에서는 소설에서 볼 수 없는 나레이션의 부분을 병태가 읽음으로서 좀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엄석대의 경우를 보면,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반장으로 등장하며 절대권력으로 지니려고 하며 반 아이들의 이기적 속성을 교묘히 이용할 줄 아는 인물로 영화에서 갑작스런 ‘변화’에 대한 분노의 표출로 학교에 불을 지르고 사라져 버리는 점과, 결말부분에서 소설에서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는 힘없는 보통사람으로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5학년 담임(최선생)의 죽음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으나 큰 조화를 보냄으로써 사회적으로 성공했음을 드러내고 있다.6학년 담임은, 잘못된 체제를 바로 잡는 개혁적 의지를 바로 잡는 인물로 민주적 절차와 방법을 존중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학급의 혁신과 이후 국회의원으로 등장한 그의 모습에서 4.19세대의 변절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5학년 담임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독재가 오히려 효율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타협주의자로 영화에서 특히, 무의식적인 굴종에서의 적응하는 모습을 “지내다 보면, 얼마나 편한지 아실 것” 이라는 대목에서 단적으로 인물의 성격이 드러난다.학급의 아이들은, 엄석대의 독재에 순응하는 인물 유형으로 이들의 비굴함과 나약함이 결국 엄석대의 독재를 가능하게 해준다. 영화에선 아이러니 하게 모두가 우습게 여기던 5학년 2반 아이들 중 자신을 잃지 않은 아이는 영팔이 뿐이었다. 그것은 가장 순수하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순수한 자들은 필연적으로 정의를 선택하기 때문에.그리고, 등장인물과 현실과의 대응관계를 살펴보면, 먼저 배경이 되었던 작은읍의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은 현실사회의 축소판으로서, 4.19시대를 조그마한 교실 속으로 압축시켜 놓은 것이며 엄석대의 경우 당시 지도자 이기붕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며, 한병태는 공정한 민주주의를 부르짖다 좌절당한 지성인의 모습을, 5학년 담임은 이승만 대통령을, 6학년 담임은 혁명을 일으키는 시대적 상황을, 학급의 아이들의 경우엔 권력 앞에서 너무도 무력한 국민들을, 30대 중반의 병태의 모습에선 부정과 비리가 판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실패자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3. 구성적 측면회고 형식의 역순행적 구성으로 영화에서는 병태의 나레이션이 영화를 전개 할 때 너무 구체적으로 누구나 보면 아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약간은 못 마땅했지만, 병태의 소외와 절망을 다룰 때 창문을 중심으로 한, 타인과의 분리와 어둠을 이용한 상징들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들로 여겨진다.발단부분에서 ‘나’는 아버지의 좌천으로 시골 학교로 전학가게 되고, 절대 권력을지닌 반장 엄석대를 만나게 된다. 전개부분에서는 ‘나’는 엄석대 체제에 저항하다가 질시와 배척을 받게되고 소외당한다. 위기에서 ‘나’는 절대 권력의 체제에 더 이상 저항할 의사가 없음을 보이고 순응하고 동조한다. 절정에서는 새로운 담임에 의해 엄석대 체제의 허구성이 드러나며, 민주적 환경에 새 질서를 회복한다. 마지막 결말부분은, 사회인으로 성장한 후 또다른 현실의 부조리함을 느끼며 살던 중, 잡혀가는 ‘엄석대’를 보게된다.4. 주제적 측면소설에서는 폭력과 독재에 의해 일그러진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부정한 권력과 독재에 맞서는 민주적 주인의식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지만, 영화에서는 여기에다가 1960년대 4.19혁명이 단순한 미국적 민주주의의 갈망이었음을 우리는 병태가 지니고 있던 자유의 여신상이 그려져 있고 자유라고 쓰여진 미국 동전에서 볼 수 있다. 그러한 잘못된 동경의 실패는 결국은 또 다른 5학년 2반을 이 사회 속에서 만들고 있다고 감독은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5학년 2반 아이들과 여러 선생님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무의식적인 복종에의 적응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편안함을 위해 무엇이 옳은가를 잊고 사는 것이 현실이다. 아니 오히려 복종에 적응된 자는 마치 마약에 중독된 듯이 잘못됨을 묵인하고 그 속에 복종하는 삶의 태도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5. 결론소설과 영화는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각각 다른 모습을 많이 보여주게 된다. 소설에서 학교를 떠난 엄석대가 아이들을 괴롭히다가 끝내 그 마을을 떠나지만 영화에서는 엄석대가 교실에 불을 지르고 떠나는 것으로 처리된다. 이런 차이를 보이는 영화가 관객들을 이해를 돕기 위해 불이라는 것을 통해 엄석대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