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바트화의 폭락*해석1980년대에서 1990년대 동안 태국은 아시아의 가장 유력한 경제 강국 중 하나로 출연했다. 1985년부터 1995년까지 태국은 인플레이션율은 단지 5%로 유지하면서 연평균 8.4%의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이는 미국이 이 기간동안 3.2%의 인플레이션율에 1.3%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과 비교되는 수치이다. 태국 경제성장의 대부분은 수출에 힘입은 것이다. 예를 들면,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수출액은 각 년도를 합해 총 16%까지 성장했다. 수출성장이 이끈 부는 상업용, 주거용 부동산과 산업자산, 그리고 인프라에서의 투자붐을 자극했다.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방콕에서의 상업용, 주거용 부동산의 가격은 급등했다. 이것은 태국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건설붐을 조장했다. 사무실과 아파트의 건설은 도시전역에 걸쳐 일어나고 있었다. 은행으로부터의 대규모자금의 대출은 이들 건설의 대부분에 자금을 공급했다. 그리고 부동산에 대한 가치가 계속 오르는 한 은행은 부동산회사(건설회사)들에 대출을 해줄 수 있어 좋았다.그러나 1997년 초까지, 부동산붐은 상업용, 주거용 주택의 과도한 수용력을 초래했다. 1996년 후반에 방콕에서 추정된 3십6만5천 아파트는 거주자가 없는 것이었다. 1997년에 완공될 계획이 있는 또 다른 10만 아파트를 가진 태국 부동산 시장에 과도한 수요의 시기는 초과된 공급으로 대체되었다. 한 추정에 의하면 1997년까지의 방콕의 건설붐은 상업용, 주거용 건물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선 최소 5년의 기간이 걸릴 충분히 과도한 장소를 만들어 냈다. 동시에 태국의 인프라와 산업생산능력, 상업적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외국으로부터 전에 없던 비율로 수입하고 있었다. 인프라와 공장, 사무실 건설을 위해, 태국은 미국, 유럽, 일본으로부터 자본기술과 원료를 사들이고 있었다. 그 결과 1990년 중반 동안에 무역수지(지불잔여현금계정)는 적자로 강하게 변했다. 강한 수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빠르게 증가했다. 1995년까지ne이 미국달러에서 낮은 이자율로 빌려와 태국 바트에서 높은 이자율로 빌려주는 것)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업무는 이치에 맞는 것이었다. 이 재정전략의 문제는 1996년과 1997년에 태국 부동산시장이 해결되기 시작했을 때 그 개발업자들이 그들이 Finance One으로부터 빌려온 돈을 더 이상 갚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Finance One가 그들의 채권자에게 돈을 갚기 어렵게 한 것이다. 1996년 과다한 건축의 효과가 분명히 나타나는 상황에서 Finance One의 갚지 못한 부채는 2배가되었다. 그 후 1997년 1사분기에 또다시 2배가되었다.1997년 2월 태국 정부가 태국 중앙은행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소규모의 태국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얻어 어려움을 겪고있는 회사들에 대해 해결을 노력하는 동안 Finance One의 거래는 일시중지 되었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5월, Finance One주식에서 거래가 다시 시작되었을 때 하루만에 70%가 폭락했다. 이때까지 태국 부동산시장에서의 불량부채는 매일 늘어나면서 3백억 달러를 넘게 되었다. 결국, Finance One은 파산했다. 그리고 다른 재정협회들 또한 파산할까 두려웠다.이 시점에서 화폐거래자들은 태국통화에 대해 합의된 공격을 시행하였다. 이전 13년 동안 태국 바트화는 미국달러에 대해 $1=Bt25로 안정되었다. 그러나 이 페그를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태국의 현금계정적자와 달러이름의 부채가 증가하는 것을 지켜보던 화폐거래자들은 태국에서 바트화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는 반면 달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판단했다.(사업, 재정협회는 그들의 부채지급과 수입을 위해 바트화를 달러로 교환할 것이다) 1996년 후반과 1997년 초반에 바트화의 평가절하를 위한 몇몇 시도가 있었다. 이런 투기적인 행위는 전형적으로 달러에 대한 바트화의 가치가 미래에 폭락할 것으로부터 낮은 이익으로 바트화를 파는 거래자들을 수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기매매는 재정협회로부터 바트화를 빌려와 즉란케 만들었다. 현실은 태국이 달러페그를 유지하기 위해 남은 외환보유고가 겨우 11억4천만 달러라는 것이다. 페그를 유지하는 것이 이제는 불가능하였다.1997년 7월 2일, 태국정부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무릎 꿇고 달러에 대해 바트화를 자유변동환율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바트화는 18%하락했고 1998년 1월까지 $1=Bt55로 하락했다. 바트화가 폭락하는 상황에서 태국의 부채는 크게 늘어났다. 달러에 대한 바트화의 가치, 50%감소는 태국의 재정협회들과 회사들로부터 생긴 달러이름의 부채를 갚기 위해 필요한 바트화를 2배로 만들었다. 이것은 더 많은 파산을 이끌었고 나아가 충격받은 태국 주식시장을 끌어내렸다. Thailand Set 주식시장지수는 1997년 1월 787에서 12월 337아래로 떨어졌고 이것은 1996년의 45%가 감소한 것이었다.*토의문제1: 1997년 태국 바트화의 폭락을 이끈 주요인들은 무엇인가?=>강력한 수출신장에 의한 부의 축적으로 이를 통해 상업용, 주거용을 비롯한 부동산의 투자가 붐을 이뤘는데 이러한 수요의 증가로 부동산 가치가 급등하고 따라서 건설에 대한 투자가 몰려 결국 부동산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국내 과잉 투자(인프라, 부동산 건설)를 위한 자본기술과 원료 등 자본재 수입 급증으로 무역수지적자 상황이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태국의 건설기업들은 은행으로부터 부동산 투자를 위해 달러로 대출 받은 자금에 대한 이자조차 갚지 못하게 될 상황이 되어 채무불이행에 들어갔다.(주가 역시 폭락하게 되었다) 이렇게 기업들이 은행(재정협회)으로부터 빌린 부채를 갚지 못하게 되자, 외국으로부터 달러를 빌려와 기업들에게 빌려주었던 Finance One등 재정협회들도 부채를 갚을 능력을 잃게되었다. 따라서 Finance One의 주가는 폭락해 결국 파산하게 되었고, 바트화에 대한 투기적 거래자들이 몰려왔다. 태국정부는 바트화를 안정시키기 위해(페그제 유지를 위해) 외환보유고를 풀었지만 이는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정부는 바트화를 변 외환제도- 페그환율 시스템에 의해 미국달러-태국바트는 비교적 안정되었으나 95,96년 중 미국달러-일본엔이 상승하면서 수출경쟁력이 약화됨.2: PPP(구매력평가)이론이 갑작스런 태국 바트화의 폭락을 설명할 수 있는가?=>PPP환율(구매력 평가이론)은 `환율은 각 국 물가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에 근거해 산출하는 것, 즉 양국의 물가변동 비율이 환율변동 비율을 결정한다는 것으로 이론적인 장기 균형환율 성격을 띤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1달러에 살 수 있는 상품, 서비스(빅맥:햄버거)를 우리나라에서 1300원에 구매할 수 있을 경우 PPP환율은 1달러당 1300원이 된다.3: 투기가들이 태국 바트화의 폭락에 어떤 역할을 하였나? 그들이 이 폭락을 유발하였 나?=>태국의 현금계정적자와 달러이름의 부채가 증가하는 것을 지켜보던 화폐거래자들은 태국에서 바트화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는 반면 달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투기적 거래자들을 유발하였는데 이들은 현재와 미래의 낮아진 바트화 가치 차이를 이용해 달러수입을 얻고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들의 이런 투기적 행위는 태국 내에 있는 달러양을 더 적게 만들었고 따라서 태국정부가 페그제를 이용해 바트화를 고평가시키기가 더 어려워져 결국 변동환율제 채택으로 달러에 대한 바트의 가치가 추락하는 결과를 낳았다.신용하락(무디스사의 단기채무등급 하향조정 96. 9월)=>헷지펀드의 공격=>태국 중앙 은행의 역습(바트화 가치를 고수하기 위한 태국 중앙은행의 강력한 개입,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중앙은행들의 개입 및 지원)=>말뿐인 승리와 신용상실(태국기업들의 자금조달 어려움, 외환보유고 급감, 태국에 수년간 투자해온 해외펀드들 외면)=>해외자본 유출 현상 심화=>태국 중앙 은행의 페그시스템 포기 선언 97. 7. 2(변동환율제 도입)=>바트화 폭락4: 태국정부가 1997년 국가를 강타한 재정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어떤 절차를 밟을 수 있었을까?=>태국은 투입량의 극대화를 통한 성장을 추진해왔는데 이는 생산야하며 외채관리, 외화예산의 환차손 발생 및 사업차질에 대한 대책마련으로 앞으로 다시 있을지 모르는 환율의 불안정성을 대비해야 한다. 기업도 재무, 인력, 생산, 개발 등 기업경영 전반에 걸쳐 체질을 강화해야한다.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 확대를 꾀하면서 재무구조 건전화를 도모하고 비가격경쟁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바트화의 절하를 수출증대의 호기로 활용해야한다. 또한 자국제품에 대한 인식제고와 해외시장의 기회선점 및 미개척분야 도전의 계기로 삼아야한다. 국민들 또한 경제에 대한 신뢰를 갖고 외화절약 등으로 국가정책을 지원하고 실생활에서도 해외여행을 자제하는 등 소비전반을 합리적으로 개혁한다.5: 태국 바트화의 붕괴는 태국에서의 사업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까? 특히, 해외로부터 투입물(원료, 중간재)을 구매하거나 완제품을 수출하는 사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수입자본재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부담의 증대로 기업의 투자가 위축된다. 급격한 환율절하시 초기 시점에서는 설비투자 감소가 불가피하다. 국내 화폐가치하락으로 태국기업들의 해외투자가 감소하고 반면 외국기업들의 태국기업에 대한 M&A는 증가한다. 환율의 급격한 평가절하 시 외화차입이 많거나 수입원자재를 많이 사용하는 업종은 큰 타격을 입게된다. 수입품의 가격상승->생필품 및 공산품 가격상승->서비스가격상승->전반적인 물가불안의 우려. 반면 수출산업에서는 바트화의 절하로 인해 수출위주의 산업에서는 다소 경쟁력과 채산성이 회복되는 이점이 발생한다. 수출품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원자재나 중간재의 수입비용이 작을수록 수출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경쟁력이 높아야 바트화 가치가 폭락해도 수출가격을 높게 유지할 수 있다.6: 1997년 태국 바트화의 폭락과 한국 원화의 폭락의 유사점을 아는가? 그것은 무엇인 가? 이 두사건이 어떻게 관련되었는가?=>아시아에서 한나라의 위기는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친다. 투기자본의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대외 의존도가 높고, 경제 펀더멘털이 취약한 국가를 중심으로 위기가 전염될 가능성이.
WTO 4차 각료회의1. 4차 각료회의의 의의* 2001년 11월 9일부터 14일까지 카타르의 도하에서 개최된 WTO 4차 각료회의는 뉴라운드의 출범을 공식 선언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음.- 그이전 세계무역일각에서는 미국과 EU간의 농업 및 환경이슈등을 둘러싼 의견차이가 컸으며, 개도국이 새로운 다자협상이 출범되기 이전에 특별지원을 강력하게 요구함에 따라 4차(도하)각료회의에서 뉴라운드가 출범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적인 견해가 있었음.* 본 도하회의는 지난번 3차(시애틀)각료회의의 실패를 교훈 삼아 WTO회원국들이 성공적인 뉴라운드 출범을 지지하였으며, 당초 일정보다 하루를 연장하면서 첨예한 의견대립이 있는 분야에 대해 신축적인 협상자세를 보임에 따라 성공적으로 마무리됨.- 주요국들은 당시의 세계경제의 침체 및 세계무역의 위축을 추가적인 무역자유화로 극복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회의에 임했으므로 뉴라운드 출범에 크게 기여함.* 협상의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EU등의 선진국과 개도국간에 논란이 있었으나, 도하회의는 뉴라운드에서 농업, 공산품, 서비스시장 개방 뿐만 아니라 규범개정, 싱가폴이슈(경쟁, 투자, 정부조달의 투명성, 무역원활화)등 광범위한 의제를 다루기로 합의함.- 각 나라의 경제발전단계에 따라 협상의제에 대한 선호정도가 다르고 이해득실에 있어서 서로 엇갈리겠지만, 전체적으로 무역자유화의 혜택이 회원국간에 균형있게 배분될 수 있도록 의제의 범위를 확대한 것으로 봄.* 세계무역의 중심축을 자임하는 WTO로서는 통상마찰의 심화와 지역주의의 확산이라는 문제에 대하여 신뢰성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음.- 또한, 지난 9.11 테러사태 이후에 크게 높아진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자유무역체제가 세계경제의 유일한 대안임을 재확인함.* 특히 본 도하각료회의에서는 중국과 대만이 가입함으로써 WTO회원국은 144개국이 되어 WTO는 명실상부한 세계무역체제의 중심축으로 자리잡게 되었음.- 도하회의 이후의 가입국들과 앞으로 가입준비중인 국가들을 고려한다면상안을 타결(2005. 1. 1)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협상국면에 돌입하게 되었음.- 우리경제로서는 농업, 서비스 등 기설정의제(BIA)뿐만 아니라 공산품 시장 개방과 반덤핑을 포함한 무역규범의 개정 등을 통해 협상에서의 trade-off를 할 수 있도록 면밀한 협상전략을 수립하고, 국내산업의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하는 과제를 안게됨.=> 그러나 현재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의견대립으로 최종협상안의 타결이 예정인 3년보다 늦어질 전망.2. 뉴라운드 출범의 경위 및 평가* 뉴라운드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는 1998. 5월 제네바에서 개최된 2차 각료회의에서 폭넓은 분야에서의 무역자유화를 위한 뉴라운드 협상을 준비하기로 합의 함으로써 시작됨.- 뉴라운드 논의의 시작은 2000년부터 추가적인 자유화협상의 개시를 합의한 기설정의제 뿐만 아니라 공산품분야와 여타분야 등에서도 아직 상당한 무역 장벽과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인식에 기인하였음.* 1999. 12월 시애틀에서 개최된 3차 각료회의에서는 협상의제에 대한 합의도출 실패와 개도국들의 반대에 따라 뉴라운드 출범이 무산됨.- 모든 것이 타결되기 전에는 아무 것도 타결된 것이 아니다(Nothing is final until everything is final)'라는 GATT이래의 전통에 따라 시애틀 각료회의는 여러 분야에서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결국 뉴라운드 출범에는 실패하였음.* 시애틀에서의 실패이후 세계 각국은 뉴라운드출범에 관한 주요국간의 다자간협의를 활발하게 벌이고, 뉴라운드 출범을 지지하는 공동발표문을 속속 채택함으로써 뉴라운드 출범의분위기 잡혀감.- 그동안 협상범위를 둘러싸고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여 왔던 미국과 EU 양국이 공동의 전략적 목표(Common strategic objective)를 추구하기로 합의.3.각료선언문의 주요내용* 각료선언문은 서문에서 뉴라운드의 혜택을 개도국과 최빈국이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무역자유화에 있어 지역무역협정보다는 세계무역규범형성 및 자유화를 위한 유일한 포럼으로서의 WTO조치를 보호주의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함.- 아울러, 선언문은 뉴라운드협상이 다음과 같이 폭넓고 균형적인(broad and balanced)작업계획을 포괄하도록 하였음.* 농업, 서비스 등 기설정의제는 현재 WTO에서 각국의 제안서를 바탕으로 1단계작업을 마무리하고 2단계작업을 추진하고 있는바, 향후 협상의 원칙과 양허안 제출시한을 명시하였음. 비농산품(공산품) 시장접근에 있어서는 향후 협상의 원칙과 방향을 명시하였음.* 농업협상의 장기적 목표로는 시장접근의 실질적 개선, 수출보조의 단계적 폐지를 목표로한 감축, 국내보조의 실질적 감축 등 3대 협상목표를 명시하고, 세부원칙의 수립시한은 2003. 3. 31일, 양허안 제출시한은 5차 각료회의 이전으로 정하였지만, 협상종결은 뉴라운드협상의 종결과 합치하도록 하였음.- 우리나라와 EU, 일본 등이 그동안 주장해온 비교역적 관심사항(NTC:Non-Trade Concerns)은 협상의 고려사항임을 확인하였고, 3대 목표가 협상결과를 예단치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됨.* 서비스협상의 경우 2000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서비스협상의 진전에 만족을 표명하고 1단계협상에서 마련된 서비스협상 가이드라인이 향후 협상의 기초가 됨을 재확인하며, 서비스개방요구사항은 2002. 6. 30일, 양허안은 2003. 3. 31일까지 제출하도록 하였음.* 비농산품(공산품)시장접근과 관련하여, 고관세 및 경사관세문제를 포함한 관세 및 비관세장벽의 삭감 또는 철폐를 위한 협상을 개시하도록 하고, 협상대상 상품범위는 포괄적이며, 선험적인 제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천명하였음.* WTO규범의 개정과 관련하여 반덤핑, 보조금협정의 규율을 명확히 하고 개선하는 협상을 벌이되 협정의 기본개념, 원칙, 유효성, 목적 등은 유지한다는 원칙을 명시함. 또한, 수산물 보조금관련규정을 명료하게 하는 작업이 향후 뉴라운드협상에서 다루어지고, 지역무역협정과 관련한 WTO조항을 명확하게 하는 협상도 개시토록 하였음.* 한편, 1996년 싱가폴각료회의에서 5차 각료회의에서 결정되는 협상방식에 따라 5차 각료회의 이후 협상을 개시하도록 하였음.* 또한, 환경과 관련하여, (1)WTO기존규범과 MEA 무역관련 의무와의 관계, (2)MEA 사무국들과 WTO위원회간 정기적 정보교환 및 옵저버 자격절차, (3)환경관련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관세 및 비관세장벽의감축 또는 철폐 등에 대한 협상을 개시토록 하였음.- 이와 별도로 CTE(환경무역위원회) 및 일반이사회에서 지금까지 진행한 모든 작업은 계속하여 5차 각료회의에 협상필요성을 포함한 권고를 제출하도록 하였음.* 지적재산권(TRIPS)과 관련하여 포도주와 증류수의 지리적 표시에 대한 통보 및 등록과 관련한 다자체제 설립을 위한 협상을 마무리하고 지리적 표시를 확대하는 문제를 TRIPS이사회에서 검토하도록 하였음.- 아울러, 공공보건 및 AIDS, 말라리아, 홍역, 결핵 등 전염병을 치유하기 위한 개도국의 의약품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기 위한 특별선언을 채택하였음.* UR협상이후 초래된 개도국의 불만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이행문제, 기술이전, 기술협력 및 능력배양, 최빈 개도국 특별대우 등에 있어 개도국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조치를 취하도록 하였음- 이를 위해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은 본 도하각료회의에서 결정을 채택하여 실시하고 나머지 이행문제는 작업계획에 따라 처리하도록 하였음. 또한, 소규모경제국이 다자무역체제에 효과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는 작업계획을 수립하고, 개도국의 기술이전을 촉진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였음.4. 평가 및 향후전망* 도하개발아젠다 에 대한 합의는 4차 각료회의의 최대 성과- WTO체제 수립 후 최초의 다자간 무역협상으로 시애틀 각료회의 실패 이후 실추된 WTO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고, 전반적인 침체상황에 있는 세계경제의 활성화 및 미국테러사태 이후 위축된 국제사회 분위기의 회복에 기여.* 세계경제에서 WTO권한과 역할이 확대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중국과 대만의 가입은 WTO가 진정한 세계무역기구로 발전하기 규범의 적용을 크게 확대함.* 개도국의 이해를 크게 반영하는 계기가 됨- 개도국의 발언권 강화에 따라 협상 의제 및 분야별 협상 목표에 개도국 입장을 폭 넓게 반영하였으며, 뉴라운드 라는 명칭에 대한 개도국의 저항을 감안하여 도하개발아젠다 라는 명칭을 사용함.* 향후 도하개발아젠다 협상은 어렵고 복잡한 협상이 될 것으로 예상됨.- 우선, 각료선언문의 문항 대부분이 향후 협상의 원칙에 대한 합의사항만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각국의 이해득실이 엇갈리는 세부협상에서 첨예한 의견대립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 폭넓은 협상의제에 비해 3년이라는 단기간의 협상기간을 설정, 신속한 협상진행이 불가피하며 타협안 도출 과정에서 필요한 결정을 제5차 각료회의로 연기하거나 농업, 반덤핑, 환경 등 중요 쟁점분야에서의 이견대립을 봉합, 향후 협상과정에서 논란이 재현될 것으로 예상.* 협상의제별로 살펴보면, 서비스협상의 경우 1단계협상에 대한 만족감이 표명된 반면, 농업 및 공산품협상의 경우에는 협상의 기본원칙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이기 때문에 세부양허협상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임.- 반덤핑협정은 기본적으로 협정의 기본개념과 원칙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규정을 명확화하는 협상이 이루어지며, TRIPS는 지리적 표시의 통보 및 등록을 위한 다자체제의 설립에 협상이 국한되기 때문에 협상대상이 넓지 않고 협정문의 기술적인 수정에 초점을 맡출 것으로 보임.- 투자, 경쟁, 정부조달의 투명성, 무역원활화 이슈는 5차각료회의에서 결정되는 협상방식에 따라 협상을 개시하거나 작업결과를 보고한다는 일종의 타협안이 채택되었으나, 이는 논란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봉합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개도국에 대한 기술이전, 협력 및 이행문제의 진전상황과 연계하여 향후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음.* 한편, 무역과 환경 이슈는 EU의 강경한 입장에 따라 최종 초안단계에서 오히려 환경관련 문안이 강화되어 WTO기존규범과 MEA무역관련의무와의 관계 등 3개의 사항은 협상을 개시하고 CTE에서 논의해온 작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