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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론] 이육사론
    육사의 시들이 보여 주는 바는 앞의 시기를 이어 뒤의 시기가 발전적 전개 내지 변모를 획득하는 진행이기보다 공통된 주제를 중심으로 좌절과 긴장이 교차하여 變奏되는 밀고 당김의 과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육사 시 세계의 의미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우리는 시기적 선후관계에 골몰하기보다 차라리 작품이 지닌 태도와 지향의 내적 관련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외관상의 불연속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육사의 시의 내부에 작용한 근본 동력을 확인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그것들이 불연속성을 띠고 표출된 이유와 의미까지도 새로이 이해할 수 있을 터이다.1. 消耗된 外部어느 누구의 경우에도 그러하겠지만 사람의 삶은 특정의 개인적·사회적 상황을 수용하고 대결하면서 이루어지는 실천의 과정이다. 따라서 그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외부세계와 그것에 대한 인식태도는 향후의 삶이 추구할 바를 인도하고 제약하는 근본 동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당대의 현실상을 직접적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들을 육사의 시 세계 이해를 위한 출발점으로 잡을 수 있다. 「春愁三題」,「失題」,「초가」,「남한산성」,「서울」「 」등이 그것이다. 이 작품들에서 육사가 관찰하는 외부적 현실은 소모되고 부패한, 생명력 없는 세계 로 요약된다. 그 핵심 되는 의미가 식민지적 현장성임은 물론이다.육사가 번역·소개한 바 있는 노신의 단편 「고향」과 「초가」의 정서적 친근성 및 공통의 정신적 바탕을 생각해 보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고향」전체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감미로운 체험과 안온함을 주었던 고향이 이제 부서지고 말았다는 것, 격류처럼 밀어 가는 시대적 시련이 회복할 수 있는 어떤 과거적 유대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 등의 확인이다. 그들에게 고향이란 유소년의 기억이 어린 곳이면서 상처받고 소모된 시계, 침략과 정치적·사회적 혼란에 의해 이제는 돌아가 안식할 수 없게 되어버린 삭막한 현실인 것이다「편복」에 이르러 우리는 육사가 괴로워했던, 소모되고 부패한 세계 - 그 식민지적 암흑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다.2. 어두운 漂浪육사의 경우 늘 독립투사, 지사 등의 칭호로 정신적 표랑의 가능성은 지금껏 경시되거나 무시되어 왔다. 그러나 어떠한 영웅도 인간적 방황과 고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육사의 楚剛한 풍모 뒤에는 그에 상응하는 정신적 표랑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육사의 활동에서 유의할 것은 육사의 활동이 조국 해방에의 헌신인 동시에, 소모되고 定向을 잃은 세계 속의 자아가 혼돈과 의미상실을 극복하려는 자기구제의 행동이 아니었던가 하는 점이다.대부분이 극히 자전적인 육사의 시편들 중 어두운 세계 속에서의 번민과 표랑을 보여 주는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위의 추론을 입증할 수 있다. 따라서 강인한 의지와 어두운 세계 속에서의 번민은 상호 모순 또는 상반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정신이 밟아 나간 자기 확립의 노력 속에 긴밀하게 연결된 것으로 생각된다.「路程記」를 지배하는 모티프는 지나온 삶의 無償性과 근거없음 그리고 어두움이다. 그러나 단지 그 현실적 고난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번민하는 육사의 분신인 화자에게 고통을 주는 보다 중요한 원인은 그의 고난이 이루어지는 지점, 남십자성이 비처주도 않는 그 어두움에 있다. 그곳 은 지리적으로 실재하는 바다 위의 어느 자리인 동시에, 빛이 없는 정신적 어둠의 자리이다. 이러한 의미를 전제할 때 비로소 「노정기」에 기록된 삶의 고뇌가 드러난다. 작품의 전과정은 마지막연 부분에서 집약·완성되는데, 그것은 지나온 삶의 무상성과 근거 없음, 그리고 어두움에 대한 의식이다.육사의 행동성과 정신적 표랑 내지 어둠이 서로 모순된다거나, 후자를 극복·제거한 뒤에 전자가 왔다고 보는 것은 오해일 것 같다. 이 둘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행동적 결단과 강인함은 내부의 어둠을 이기려는 노력이고 내부의 어둠은 또 그 행동성의 사이에 배후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육사의 半面이다.끊임없는 밀항과 잠입, 그리고 방랑 속에서 그에게 가장 확실한 현실적 유대는 고향이다. 그러나 그가 발견하는 고향은 또 하나의 소모된 세계일 따름이다. 그의 향수는 고향에 돌아와서도 충족되지 않는다. 노랑나비도 오잖은 무덤우에 이끼만 푸른 채 소모된 실재의 고향이 향수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귀속시킬 최종의 현실적 가능성이 부정된 상황에서 그는 역설적으로 바람, 눈보래 를 삶의 필연적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즉 표랑의 불가피함을 승인하는 것이다.또 하나 주목할 것은 육사의 작품에서 예외적인 것처럼 보이는 「아편」이다. 이 작품은 일단 관능적 삶에의 유혹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혹을 노래하는 신선한 이미지에 주목할 때 우리는 그것이 우연의 소산이 아니라 비록 순간적일망정 육사의 의식이 부딪쳤던 한국면이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물론 그 유혹에 대한 육사의 자세는 단순하지 않다. 죄와 겉드려도 삶즉한 누리 라는 구절이나 아편 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관능의 삶에 대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참담한 고난의 삶에 대조되는 이 세계 또한 삶즉한 누리 라는 유혹의 끈끈함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 또한 그의 어두운 표랑의 일부이다.「少年에게」에서 너조차 미친들 어떠랴 라는 절망적 진술은 이 광기의 시대 앞에서 육사의 의식이 취하는 역설적 자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설적 언어가 떨쳐버릴 수 없었던 절망의 배후와 어둠에 주목할 때, 우리는 그가 겪었던 내적 갈등의 또 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그것은 신비화된 영웅의 상으로는 해명하지 못할 위기의 시대를 살아간 개인의 정신적 어둠과 고통에 상응하는 것이다.이상과 같은 점을 전제하면 위에 논의된 작품을 포함한 상당수의 육사 시에 보편적인 고독감을 정당하게 이해하게 된다.3. 悲劇的 自己確認육사의 현실인식과 번민이 치열한 갈등을 통해 획득한 자리 - 그곳에 「절정」과 「교목」이 선다.「절정」은 전통적 구성법, 기·승·전·결에 충실한 이 작품은 내부의 극기 정신에 못지 않게 그 언어에 있어서도 고도의 절제와 압축을 보여준다. 작품 전체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될 수 있다. 앞의 두 연은 상황설정이고, 다음 둘은 그 속에서의 의식에 초점이 두어져 있다. 지금까지는 「절정」의 극한상황이 일제하의 민족적 현실 이라는 각도에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 극한상황은 달리 해석되어야 한다. 그것은 조국상실과 민족수난이라는 역사적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한 사람의 투사가 자신의 삶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최종적 의의를 부여하는 결단의 자리라고 본다. 이 극점은 물론 고통스러운 자리이다. 구체적으로는 일제의 폭압과 추적에 의해 모든 자유로운 생명적 존속이 부정된 상황이며, 내면으로는 의존할 아무런 현실적 유대도 없이 홀로 서서 어두운 표랑과 자기 방기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위태롭고 고독한 긴장의 지점인 것이다. 여기에 던져지는 마지막 연은 위의 극한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 절대적 긴장의 자리에서 울부짖지 않고 오히려 번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정신의 경지를 획득한다.「교목」은 보다 투박한 구조와 단호한 어조로 비슷한 주제를 노래한다. 교목 은 인간화된 의미체이다. 그것이 서 있는 자리는 「절정」에서의 겨울 과 흡사한 생명부정적 상황이다. 다른 점은 「절정」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극한에서 자기 구제를 획득하는데 비해, 이 작품은 생명의 자연적 질서나 최소한의 존속마저 포기한 단호한 결의 속에서 역설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단호함의 의미는 무엇인가? 앞에 지적한 바 자신의 삶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최종적 의의를 부여하는 결단 으로 대답할 수 있다. 「교목」에 투영된 정신은 암흑의 상황에서 구차히 존명하기를 거부한 자리에 부동의 자기 확인을 정립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순된 선택이나 그 모순의 승인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들이 행한 비극적 자기 확인이다.비극적 의지가 극한의 결의에 수반하는 무거운 긴장감조차도 떨쳐 버리고 넉넉한 관후함과 의연한 자세를 갖춘 경지에 「청포도」, 「광야」, 그리고 「꽃」이 서 있다. 육사로 하여금 비극적 자기확인의 절박한 자리에서조차 정신의 너그러움과 굳셈을 지니게 한, 그리하여 이들 작품에 놀라운 여유를 확보하게 한 요인은 한 마디로 지적한다면 기다림 이다. 이들 작품에서 기다림이라는 의식 속에 선취된 미래는 진퇴불가능한 극점에 선 비극적 결단의 단호함을 보존하면서, 그 속에 내재한 고통스런 무게를 초월적 비전으로 해소한다. 이를 깨달을 때 육사의 시 정신이 식민지 시대의 좌절에 맞서 획득한 자기확인이 참답게 밝혀진다.「광야」는 웅장한 목소리와 비전으로 때묻지 않은 역사의 신성한 미래를 노래한다. 주목되는 것은 시간적으로는 장구한 과거의 천고와 미래 사이, 공간적으로는 만물이 눈덮인 광야 위에 홀로선 자기의 인식이다. 이 고절의 자리에서 육사에게 행동의 의미를 부여하는, 그리하여 그를 구제하는 것이 장엄한 미래에의 기대이다. 이 때문에 극한적 상황의 압박에서 정신의 의연함이 획득될 수 있다. 육사가 「광야」에서 기도했던 것은 타인에게 향한 발언이라기보다 자기 스스로에게의 다짐이라고 여겨진다. 즉 歷史的·文化的 혼돈의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삶에 절대한 사명을 부여함으로써 세계내적 존재의미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결의는 번민의 음울함도 절망적 침통함도 넘어섰지만, 「꽃」과 공통되는 기다림 의 의미 때문에 여전히 비극적인 자기확인이다.
    교육학| 2004.07.02| 4페이지| 1,000원| 조회(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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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론] 조지훈론
    1. 머리말芝薰 趙東卓(1921∼1968)은 현대시의 정신사적 맥락에서 볼 때 만해, 육사 등과 더불어 비중을 두고 거론해야 할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와 평가는 만족할 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필자는 지훈의 시세계를 지금까지 대개 행해져 온 시기적 구분을 벗어나 詩精神別로 분류하여 고찰함으로써 지훈에 대한 본질적 인식에 접근하고자 한다.2. 習作期의 多樣한 實驗지훈은 그의 타고난 기질과 日警의 來訪 등에서 오는 두려움, 집안 환경 등으로 슬픔의 정조를 지니게 되었고, 시도 어딘가 슬픔이 깃들어야 좋은 시인 줄 아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여러 유파와 시인을 섭렵하였다.「浮屍」가 쓰여진 1937년이란 지훈이 17세 되던 해이며 서울로 올라온 이듬해이다. 보들레르와 와일드에 한창 탐닉해 있을 때이다. 실제 이 시의 제목 자체가 보들레르를 연상시킨다. 시를 지배하는 시적 분위기는 암울과 비애이다. 이 시를 놓고 우리가 분명히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사항일 것이다. 하나는 센티멘탈한 감정으로서의 偏向性이요, 다른 하나는 표현기법의 외래적 영향이다.「鍾소리」의 경우 시적 대상의 急變,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감각어의 무분별한 나열 등이 초현실주의의 수법을 연상시켜 준다. 그러나 붉은 欲情이 겨룬다. 검은 殺戮이 찌른다. 노오란 運命이 덮는다 에서 보듯 에피세트로서의 색채어의 걸맞지 않은 사용은 그의 이 시가 실험시 이상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지훈은 다다풍의 시도 실험적으로 써 보았다. 1939년 『白紙』8호에 발표된 「計算表」란 시도 바로 그에 속하는 것이다. 지훈은 이 시에 대해 스스로 다분히 지적인 바탕을 역설이나 풍자와 환상으로 처리하려는 방법 추구에서 나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실험의 차원에서 끝난 것 같다.지훈의 이러한 실험적 기법은 그의 「華戀記」대신 「古風衣裳」이 芝溶으로부터 추천을 받고 월정사 시기 이후 技巧主義가 無技巧主義로 흐르면서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습작기 시의 또 하나의 다른 특징으로 特記할 것은 지훈이 백석류의 향토적 敍事體의 시를 썼다는 사실이다. 1939년 『白紙』10호에 발표된 「鄕語」나 1940년 쓰여진 「嶺」이란 작품들이 이에 속한다. 지훈이 이 같은 시를 습작기의 실험적인 시로 써 본 원인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직접적인 백석의 영향이다. 둘째는 지훈이 의식하고 있던 세계와의 단절감, 소외감이다.향토적 서사체의 시들은 지훈의 초기작 중 우수한 것에 속한다. 정돈된 호흡과 무리 없는 시상의 전개가 이 유형의 시를 佳作으로 보게끔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 역시 쉬르나 다다풍의 시들이 점차 그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듯이 월정사 이후 선적 경향의 시를 표방하고 나서부터는 잘 쓰지 않았던 것 같다.3. 自然觀照的인 詩지훈의 시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여 읊은 시들이다. 『靑鹿集』과 『풀잎斷章』두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들이 여기에 속하여 『餘韻』의 시들도 많은 작품들이 이에 속한다. 여기서 자연이라 함은 외적 자연 - 산, 나무, 강, 꽃, 새와 같은 자연계의 사물들 - 을 가리킨다.그가 자연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우선적으로 그의 성격에 기인된다. 그는 센티멘탈한 감정을 지니게 되었고 그로 하여금 자연에 관심을 갖게끔 했던 것 같다. 더욱이 오대산 월정사에 1년 가까이 머무르면서 그는 자연에 심취되고 자연을 관조하는 경향을 지니게 되었다.지용 스스로 「古寺1」은 禪思想에서 피어난 것 이라고 한 탓인지 몰라도 이 시에 대한 평가는 주로 선과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지훈의 시 전체를 통해서 볼 때 이같은 선적 경향을 지닌 시는 엄격히 따져 몇 편 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훈의 시세계를 얘기할 때 불교적 선의 세계라고 흔히 규정짓고 있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古寺1」과 더불어 지훈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것이 「僧舞」이다. 「僧舞」는 「古寺1」과는 대조적인 작품이다. 「古寺1」이 간결하고 압축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는 반면에 「僧舞」는 悠長하면서 敷衍的이다. 부연된 언어로 이루어진 시는 선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선에는 불립문자가 전제이고 설사 언어로 표현된다 할지라도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언어가 아니면 안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지훈이 「僧舞」를 쓰게 된 동기는 여승의 춤추는 모습이라든가 춤사위에서 오는 미의식에서 發露된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지훈이 생래적으로 미를 중히 여기는 여성적 심리경향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자연관조적 경향을 지닌 대표적인 작품으로 또 「落花」를 들 수 있다. 이 시는 첫 연의 전개에서 이미 유교의 理氣哲學과 接脈이 되어 있다. 7·8연에 이르러 묻혀서 사는 이의/고운 마음을/아는 이 있을까/지허하노니 라고 안분을 읊음으로써 더욱 구체화된다. 자연의 規範性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안분이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 이르러 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어라 고 무상감과 고독감에서 오는 悲哀美를 吐露한다.4. 現實參與的 傾向의 詩지훈이 현실에 관심을 두고 시를 쓴 것은 해방 이후이다. 사회적 활동이 왕성했던 시기의 시는 대부분 시적 형상화를 이루지 못했다. 그의 격정과 흥분을 直情的 吐露로 일관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방 이후의 그의 시가 모두 이 같은 부류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多富院에서」,「桃李院에서」같은 작품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을 담고 있으면서도 차분한 톤으로 시적 전개를 해 나간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을 통해 보이는 시적 역량은 그 이후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대부분 격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直情的 吐露를 했던 것이다. 그 스스로도 1963년경에 이르러 省察과 回顧의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지훈 자신으로 돌이켜 보면 이것이 詩心을 가다듬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러한 回顧와 反省을 통해 시적 깊이를 더하면서 예전의 그의 시세계로 회귀한 것이다.
    교육학| 2004.07.02| 3페이지| 1,000원| 조회(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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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유치환론
    1청마의 작품만큼 질량으로 그 누구보다 우리를 매료하고 흐뭇한 무게를 우리에게 안겨주는 시인도 드물다. 무엇보다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시편들의 질량 못지않게 삶의 현실에 의연히 맞서는 그의 고압적 어조와 인간적 비중이다. 청마에 대한 평가의 거개가 시작품 그 자체보다 시인 자신이 표방한 허무의 의지 니 선 이니 생명 이니 하는 주장과 견해를 중심으로 긍정과 부정의 시각이 교차하면서 회전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시작품을 작품 외적 현상으로 검토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 청마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는 살아가는 것과 시 쓰는 일을 동일시하였다. 말하자면 시와 시인을 함께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시의 이해는 시인의 생애나 전기적 사실과 같은 작품 외적 현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의 이해는 우선 시작품 그 자체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시는 시인이 아니라 시작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본고는 청마 시의 핵을 이루는 상상력의 기본구조가 무엇이며 그것이 언제 어떠한 방향으로 변모를 거쳤는가를 식민지시대와 북만주생활에서 씌어진 시작품을 중심으로 검토하고자 한다.2초기시, 특히 『靑馬詩抄』『生命의 書』를 특징지운 현실안은 熱愛와 愛憐 , 삶과 죽음 동경과 환멸 이상과 현실 등의 모순·대립의 양식으로 파악된다. 인간의 현실적인 한계와 그것을 초월하려는 인간의 바램 사이에 존재하는 해소할 수 없는 갈등을 조정하기 위하여 오히려 현실적인 것을 시의 주제로 삼았던 모순, 그 모순 속에서 청마의 시는 서정적 긴장이 싹트게 된다. 그에게 있어 서정은 바램과 현실의 대립과 갈등이 현실에 의해 바램이 좌절되는 상황에서 비롯한다.청마의 시는 한결같이 허무의 의지 를 그 본질적 구심으로 해서 그 의지가 그 후 그의 모든 시작품에 원심적으로 사무쳐있다. 허무의 의지란 스스로 밝힌 것처럼 일체의 인간적 감정을 초극하고 냉혹하고 비정한 인간이 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그러한 서정적 자아의 비생명 의지는 한낱 바램일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결국 글자 그대로 허무한 의지, 생명의지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청마 시의 방법이자 한계이다.허무의 의지는 그의 시에서 이렇듯 비정의 세계 못지 않게 그리움의 시계, 애련의 정서가 처음부터 그 밑바닥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가 사랑과 증오 열애와 애련 은혜와 복수 등 모순·대립의 양식으로 파악된다고 진술한 것은 이 때문이다.3첫 시집 『靑馬詩抄』를 내면서 첫머리에 실은 시는「박쥐」다. 박쥐 의 생리에 자신을 투사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에 투사된 나 를 보고 있었다. 박쥐 의 비극성은 곧 시인 자신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지상 적일 수밖에 없는 기는 즘생 의 대지적 한계를 너머 춤을 추려는 천상적 지향이 결국 호올로 서러울 수밖에 없는 모순 속에서 청마는 중간자로서의 인간 존재의 비극성을 전체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박쥐」속에 그의 시, 전 시력과정이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전 시력과정을 통하여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바람 과 날개 그리고 춤 의 정서가 가장 함축성 있게 이 시 한편에 걸려있는 것이다.현실과 꿈 기는 즘생과 날개 등으로 짝 지어진 애련과 의지의 두 상반된 정서는 청마 시의 기본적인 골격인 것이다. 그러므로서「깃발」에서 깃발 의 의지가 희망으로 수용되지 않고,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 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고, 바위 에서 비정하고 허무적인 자아를 선택한 것은 이 때문이다.「깃발」에서 푯대 가 지니는 수직적 공간 상승지향이 海原 이 지니는 수평적 거리로 바뀔 때 푯대 는 맑고 곧 지만 슬프고도 애닯을 수밖에 없다. 깃발 이 아우성 에서 손수건 으로, 손수건 에서 다시 순정 으로, 애수 로 바뀌면서 깃발 의 강렬한 이념의 정서가 환멸과 비애로 약화되었다. 그것은 정처없는 영원한 설레임이자 애처러운 방황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설레임과 방황을 거부하기 위하여 몸을 야위는 (「박쥐」) 고통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4제2시집인 『生命의 書』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징표는 더욱 적나라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드디어 알리라」「首」「해바라기 밭을 가려오」「생명의 서」등의 시에서 보듯이 도피와 위안, 그리고 죽음에의 충동이 바로 그것이다. 애련과 그리움 의 세계에서 비정과 반생명 의 세계로 바뀐 것이다.특히 시 「生命의 書, 一章」은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자신의 공간을 미련도 없이 박차고 떠나, 아라비아 사막 으로 탈출코자 한다. 그는 생명을 부대끼 게 하는 세계의 실체와 대결하지 못하고, 도피하려고 하지만 도피 또한 무위로 끝나버리고 만다. 북만주조차 그에겐 鐵壁같은 絶望의 曠野 였다. 그래서 그는 비정과 자학의 세계로 그의 의식은 지향한다. 시인 자신의 고백 그대로 일제 앞에서 아유 구용 하느냐, 신명을 조국에 던지느냐 하는 절박한 상황 앞에서 전자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悔恨,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절대의지와 생명에의 열애 - 그만큼 만주체험 은 자기학대와 자기모순으로 얼룩져 있었다. 시집『生命의 書』는 그의 만주체험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만주 라는 체험 공간은 청마에게 있어 죽음의 계절 이 시작하는 적막한 곳이다. 그리하여 광야 에서 청마는 힘도 못 써보고 패배한 黑馬타고 오는 죽음의 사자 흙빛 병정 이었다.
    교육학| 2004.07.02| 3페이지| 1,000원| 조회(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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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에 대해 평가B괜찮아요
    〈6.25전쟁〉1. 전쟁의 발발 원인6·25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의 재편과 38도선 분단으로 인하여 발발하였으며, 그 기원은 일본의 한반도 강제점령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연합국은 2차 세계대전 말기 전후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독립정부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은 채 '적당한 시기에'한국을 독립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이것은 결국 해방정국에 찬물을 끼얹고 새로운 민족의 비극을 잉태하였다. 결국 한민족의 독립문제는 유엔감시 하의 총선거를 통해 독립정부를 수립하도록 결정되었다. 그러나 소련이 이를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1948년 대한민국과 공산정권의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고 말았다. 이로써 민족의 분단은 고착화되었고, 이것이 냉전구조와 연관되어 전쟁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하였다.남·북한에 두 체제의 정부가 수립됨을 계기로 김일성과 스탈린은 한반도 공산화 정책을 수립하였고, 모택동이 이에 가세하였다. 김일성은 군사력 증강을 추진하는 동시에 소련군 군사 고문단장 등과 협의하여 전쟁 계획을 수립하였다. 첫 번째 계획은 남한이 도발을 하면 이를 되받아 치는 형식으로 남진한다는 반격작전이었으나, 두 번째 확정된 계획은 반격의 기회를 잡지 못하면 먼저 남침한다는 선제공격작전이었다.김일성은 2차 모스크바 회담에서 스탈린에게 "1949년 10월 중공에 공산정권이 수립되었으므로 이제는 한반도의 공산화 차례인데, 남한이 도발을 하지 않아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없으므로 선제공격계획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여 승인을 받았다.스탈린은 계획을 최종 승인하면서 이를 북한과 중공의 공동 과업이라고 규정하고 모택동의 동의를 전제로 하였다. 김일성은 스탈린과의 비밀회담에서 전쟁계획을 확정한 후 이를 북경측에 보고하여 동의를 받았다.1차 모스크바 회담(1949) 결과는 북한군 정치국장 김일이 모택동을 방문하여 설명하였으나, 2차 모스크바 회담(1950) 결과는 김일성 자신이 직접 북경을 방문하여 동의를 얻었다. 이와 같이 북한의 남침계획은 '김일성·스탈린·모택동'의 모의로 확정되었다. 스탈린의 승인을 받고 모택동의 동의를 얻어 확정된 북한의 남침계획은 3단계 즉, 군사력 증강, 위장 평화제의, 전투 개시로 구성되었다. 한편, 북한이 전쟁준비를 완료할 무렵 한국군은 4개 사단이 38도선 방어를 위해 배치되어 있었고 나머지 4개 사단은 서울, 전, 대구, 광주를 중심으로 후방지역 경계에 임하고 있었다. 당시 국군의 전략은 북한이 남침을 하면 전방사단이 38도선을 방어하고 후방사단을 서울 북방에 투입하여 전방 사단과 함께 이를 격멸한다는 순수한 방어 중심이었다.2. 6.25의 의의북한 김일성은 1946년부터 소위 '민주기지론'을 주장하여 북한을 공산체제로 만들고, 소련의 계획과 지원하에 북한의 모든 역량을 전쟁준비에 동원하였다. 1945년과 1950년 초에 소련을 방문한 김일성은 남침계획을 설명하고 전차 및 야포 등의 지원을 스탈린으로부터 받아냈고, 중공군에 편성된 한인 약 4개 사단의 병력을 북한군에 편입시킨데 성공하였다. 따라서 북한군은 6 25전쟁 발발 당시 소련제 전차 등 최신예 장비로 중무장되었고, 중국내전을 통해 전투경험이 축적된 막강한 전투인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6 25전쟁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발발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치밀한 사전 준비에 의한 계획된 전쟁이었다. 이에 비해 남한의 군사력은 상대적 열세에 있었다. 1949년 6월 주한미군이 철수한 이후 국군은 제 2차 세계대전시 미군이 사용하던 노후화된 경장비 위주로 무장되어 있었고, 전차나 대전차 화기가 전무한 상태에서 공비토벌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체계적인 전술훈련도 실시하지 못한 형편이었다. 또한, 북한과의 힘의 균형에서 열세라고 판단한 한국정부는 전차, 항공기 등의 무기지원을 미국에 강력히 요청하였으나,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며, 주일미군의 해 공군력으로 북한의 침략을 억지 할 수 있다는 미국의 판단으로 인해 거절당했다. 따라서 한국군은 겨우 국경을 경비하고 내부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치안군 수준의 장비로 경무장되어 있었고, 한반도에서의 힘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남북한의 군사력 불균형은 전쟁 발발 초기에 여실히 드러났다. 서울은 북한의 기습남침 3일만에 함락되었고, 국군은 북한의 전차를 대전차 무기 하나 없이 맨주먹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침략자를 응징한다는 유엔 결의에 따라 미군선발대가 1950년 7월 3일 오산에 투입되었다. 세계 최강의 미군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찬 이들 또한, 북한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하여 대전차 무기도 재대로 갖추지 않은 채 전투에 투입되어 막대한 손실을 당하였다. 미군과의 초기 전투에서 자신감을 얻은 북한군은 기세가 높아져 더욱 공세를 강화하였으나, 전투력을 재정비한 국군과 미군은 지연전을 전개하여 낙동강을 연하는 최후의 방어선인 부산 교두보를 확보하였다.북한군은 피난민으로 가장, 아군의 후방으로 침투하여 막대한 손실을 입혔고, 특히 미군은 피난민과 북한군을 구별하지 못함으로써 피난민에 대한 공포심을 가질 정도로 피난민을 기피하는 현상을 초래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낙동강 방어선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적의 총공격을 결사적으로 방어하는 한편, 재정비를 통해 반격을 위한 준비를 갖추었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적의 후방을 차단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승기를 잡은 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하고, 한반도에 통일된 독립국가를 수립한다는 유엔 결의안에 따라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100여만 명의 중공군 개입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철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서울이 다시 피탈되고 탈환되는 과정을 겪었고, 6 25전쟁이 발발된 지 1년이 경과된 1951년 6월에는 다시 38도선을 중심으로 전 전선이 소강상태를 이루는 상황에서 치열한 국지전이 전개되었다.북한과 중국은 막대한 인력 및 국력의 손실로 전쟁 수행능력이 고갈된 상태에 있었고, 미국도 공산침략자를 응징하였다는 명분과 더 이상의 확전은 세계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최초의 휴전회담이 개막되었다. 휴전협상의 최대 걸림돌인 전쟁포로 문제에서 난항을 거듭하자, 한국정부는 일방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을 북한에 보낼 수 없다는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였고,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과 지원을 약속 받음으로써 전후 한국 안보에 대한 보장을 확보하였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전쟁이 끝이 났으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지 못하고 민족의 분단을 고착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하였다.3. 전쟁의 결과와 성격첫째, 6·25전쟁은 분명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구조하에서 치러진 내전과 국제전의 양면성을 지녔으며, 무기 체계면에서는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은 재래식 전쟁이었고, 지역적으로는 한반도에 국한된 국지전이었다. 또한 내전 관점에서는 총력전이었고 국제전 관점에서는 제한전쟁이었다. 이 전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3년간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38도선이 휴전선으로 바뀌어 약간 변형된 전쟁 직전의 상황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둘째, 6·25전쟁은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싸움이었다. 공산주의와 자유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자유 민주주의가 승리하였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하여 싸웠으며 인민봉기는 일어나지 않았고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도 한국을 지원하였다. 결과적으로, 유엔군과 한국군은 공산주의 침략을 격퇴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셋째, 6·25전쟁은 역사상 유래가 없는 국가와 민족의 파괴와 시련의 과정이었다. 유엔군과 한국군은 약 50여만명의 피해를 입었으며 공산군의 사상자는 150∼200만명에 이르렀다. 전쟁기간 중 남한에서만도 약 250만명에 달하는 피난민이 발생하였고, 수백만의 북한 동포들이 공산주의 치하에서의 삶을 거부하고 죽음을 무릅쓴 탈출을 하여 천만 이산가족이 발생하였다.마지막으로, 6·25전쟁은 종전이 아닌 휴전으로 마무리되었으며 그 상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쌍방은 정전회담에서 일단 교전행위를 중단하는 휴전을 하고 3개월 이내에 정치회담을 개최하여 휴전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하기로 하였으나, 지금까지도 그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교육학| 2004.07.02| 4페이지| 1,000원| 조회(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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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론] 서정주 작가론
    1서정주는 한국 현대시에서 괴기하고 큰 존재이다. 그는 단순한 분석 비평 이상의 조명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 조명 속에 나타나는 것은 어떤 평면적인 장면들이 아니라 하나의 드라마이다.한 시인의 첫 시집이 그 시인 이해에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서정주의 『화사집』(1938)의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화사집』은 당대의 다른 뛰어난 시집들과 달리 이다.서정주, 특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그의 중기시들과 오래 같이 살아온 우리는 서정주 시의 궤적 첫머리에 유럽의 모더니즘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국화옆에서」「上里果園」「善德女王의 말씀」「因緣說話調」「冬天」에 익숙해진 우리는 『花蛇集』의 관능과 어지러움을 그가 문학 청년기에 성공적으로 겪은 열병쯤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木花」나 「국화옆에서」로 볼 때, 과 을 서정주의 본질로 삼게 되는 그런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정주는 그 무엇보다도 젊음과 봄의 시인이다. 그의 시는 봄과 생명의 이미지와 리듬으로 가득 차 있다.김영랑, 유치환, 청록파 시인들의 초기시보다 서정주의 초기시가 더 으로 보인다면, 그들과는 달리 서정주가 유럽 모더니즘의 충격에서 많은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정주의 모더니즘은 이상, 김기림의 모더니즘과는 달리 토속적인 삶을 정신의 밑바닥에 가지고 있었다. 『화사집』은 토속적인 삶과 모더니즘의 도취적인 요소가 정열적으로 만난 장소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유럽의 한 정신과 토속적인 삶의 융합을 잘 보여주는 작품은 「自畵像」이다. 이 시는 자전적이고, 상상력에 의한 자전의 변용이며, 식민지 상황에 대한 분노나 저항 의식보다는 보들레르 이후 특히 몇몇 모더니스트들이 즐겨 자신의 혼으로 삼았던 의 의식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자화상」에는 그리스 신화의 육체성과 니체의 영겁 회귀사상, 그리고 보들레르의 정신과 희랍신화의 정신이 드러난다. 즉,「화사집」의 정신은 서구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화사집」의 정신은 서구적으로 드러나지만 토속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토속적 배경으로서 우리 순네 를 들수 있고, 서구 유럽쪽 배경으로는 클레오파트라 를 들 수 있다. 결국 우리는「화사집」에서 토속적인 삶과 모더니즘의 도취적인 요소가 정열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또한 우리는 「자화상」을 『화사집』의 얼굴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화사집』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자화상」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시집의 가장 처음에 나오는 작품은 가장 자신있는 작품이거나, 그 시집의 이야기를 집약하고 있는 시이다. 우리는 윤동주의「서시」와 정지용의「바다2」가 시집 가장 처음에 나옴과 같이 『화사집』에 「자화상」이 가장 먼저 실려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문둥이」도 「자화상」과 같이 아름다움과 저주받은 시인 정신의 결합으로 볼 수 있는데 『화사집』의 대부분의 시가 서구 모더니즘의 격렬함과 한편에서는 화자의 토속적인 삶의 결합의 양상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2『화사집』은 토속적인 삶과 모더니즘이 만나는 장소 이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탈수법이 본격적으로 쓰이는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시에 나오는 화자 와 시인 자신 사이의 현격한 간격이 탈이론의 근거가 된다. 화자가 시인의 단순한 분신이 아니라 과감히 탈을 쓰고 그 탈에 맞는 역을 수행한다. 탈을 사용하면 모든 서정시는 의 성격을 띠게 된다.『화사집』의 화자들과 서정주 사이의 거리는 잔뜩 벌어져서 질적인 차이를 느끼게 한다. 탈은 계속해서 「견우의 노래」「추천사」「善德女王의 말씀」등등 독백 형태의 시들을 낳는다. 아마도 서정주처럼 여러 목소리들을 성공적으로 작품 속에 가지고 있는 시인을 우리나라에서 달리 찾기는 힘들 것이다. 탈은, 다시 말해서 화자와 시인과의 질적인 거리는, 시인에게 자유를 주는 대신 시인 자신의 삶이 지니는 넓은 의미의 윤리 문제에 소홀함을 주기 쉽다. 왜냐하면 시인은 하나를 창조하고 그 원리에 따라 지배하게 된다. 그 이야기는 자신과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여기서 윤리는 어느 한 면에 한정된 문제는 되는 경우에 속한다는 사실만은 미리 지적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시인이 탈을 쓴다는 것은 객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김재홍은 『화사집』을 동물적 상상력이 시적 상상력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주목한다. 「자화상」,「대낮」의 시에서 공통되는 것은 동물 이미저리와 피의 이미지, 그리고 육감적인 동작의 이미저리 등이다. 이러한 이미저리들의 결합은 대체로「화사」의 관심이 인간의 대지성적인 문제들, 즉 육체성, 본능성, 구속성, 운명성 등의 문제들과 관련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수많은 생의 문제들과 부딪치면서 그 원죄적 카오스의 실연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동물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여 끈질기게 펼쳐진 데서『화사』의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다.3『화사집』에는 「문둥이」「화사」「정오의 언덕에서」와는 계열이 다른 작품들이 한몫으로 들어있다. 「水帶洞詩」에서 우리는 이 아닌 그리움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瓦家의 傳說」「가시내」「부활」로 이어지는 시들은 언뜻 보기에 향수의 시로 보인다. 그러나 향수의 시보다는 오히려 고향의 재발견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다음 시집 『歸蜀途』(1946) 전체를 물들이는 중요한 이미지는 죽은 까지 현장에 불러들이는 부활의 이미지이다. 부활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삶의 현장이면 어디에서고 고향의 재발견이 가능한 것이다.서정주는 『화사집』시기에 모더니즘의 강렬한 충동에 대한 시를 많이 썼다. 그러다가 그 다음 시집인 『귀촉도』에서는 전통적인 것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시를 썼다. 이는 서정주 자서전에 나와있는데 그 이유는 서정주가 학질에 걸려서 앓는 동안에 느낀 것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자신의 피, 감정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후 전통적인 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고 『귀촉도』의 세계로 나아간다.원래 「귀촉도」는 1935년에 쓰여졌는데 서정주가 『화사집』의 세계와 「귀촉도」의 세계가 맞지 않다고 여기고 뺐다가 나중에 전통의 아름다움을 다시 깨닫고 『귀촉도』연은 이 시가 님과의 영원한 이별, 즉 죽음에 모티브를 두고 있음을 말해 준다. 비통한 죽음의 이별은 탐미적인 아름다움의 이미저리로 채색됨으로써 비극적 황홀을 성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연에는 과 로서 님 상실의 비탄과 그 애환을 드러내게 된다. 머리털을 베어서 떠나가 버린 님의 신발을 삼아 주겠다는 시적 진술 속에는 실상 생명을 넘어선 영원한 사랑의 하소연이 잠재해 있는 것이다. 셋째 연에는 떠나간 님의 대리 자아이자 한의 객관적인 상관물에 해당한다는 점에 놓여진다. 귀촉도는 님의 표상이며, 동시에 님과 나를 연결해 주는 사랑의 촉매이자 한의 상징인 것이다.사는 일에 대한 사랑은 세 번째 시집이라 할 수 있는 정음사판 『徐廷柱詩選』(1955)에 새로 수록된 시들에서 극치를 이룬다. 이 시집에는 서정주의 가장 다운 시들, 「무등을 보며」「국화옆에서」「 韆詞」「나의 시」「광화문」등과 그리고 「上里果園」이 실려있다. 그리고 이 시집을 총괄하는 하나의 탈이 있으며 그 탈의 일관성으로 해서 시집 전체가 하나의 연작시로 보이게까지 한다.그 탈의 특징은 무엇인가? 우선 그 탈은 이 시집의 시들이 씌어진 기간에 시인이 1964년에서 1955년까지의 좌우익 싸움과 6·25전쟁을 겪었는데도 일체 거기에 대한 언급이 없을 만큼 사회 현상에 관심이 없거나 초연하다. 그 탈은 세상이 수틀 같지 않음을 알고 있는 것이며, 다만 사회 현상이 생의 전부 혹은 본질이 될 수는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탈은 현실상황 대신에 자연을 제시한다. 그 자연을 인간은 모방해야 한다. 그는 자연을 그냥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는 것이다.시의 탈을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자연 찬미자와 구별시켜 주는 것은, 추상화되고 유형화된 자연과 만나지 않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자연과 사랑의 방법을 제정해 가며 만난다는 사실이다. 관조하지 않고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그 참여 때문에 인간이 자연의 여름과 겨울에 참여하듯이 이승과 저승을 왕래하는 데도 별로 저항가운데 하나인 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논리로가 아니라 만개하는 과수원 전체의 형상 속에서 새들과 벌들과 인간이 참여하는 자연의 잔치 속에서, 그 황홀 속에서 한의 극복이 이룩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이다.김재홍은 『서정주시선』의 이미지는 솟아오름과 수직 상상력의 이미지라고 보았다. 와, 그리고 과 의 이미저리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국화옆에서」는 꽃의 이미지를 통한 생의 성숙 또는 정신화해 가는 삶의 모습을 제시되어 있다. 전자는 과거의 젊은 날과, 후자는 현재시점과 연관된다. 젊은 날은 살 냄새와 피 냄새가 섞여 있는 무겁고 어두운 모습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뒤의 두 행은 성숙한 정신의 가벼움을 드러내게 된다. 젊은 날의 온갖 인간 조건들이 강요하는 삶의 무게를 하나하나 극복하여 마침내 이 상징하는 靜觀과 명상의 가벼움을 획득한 모습으로 누님이 묘사된 것이다. 여기에서 누님은 관능과 육감으로 뒤채이는 , 즉 동물적 이미지가 아니라 정신적 성숙과 투명화를 어느 정도 성취한 , 즉 식물적 이미지로 고양되어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이것은 대지와의 수평적 자세로부터 하늘로 향한 일어섬의, 수직적 상상력의 발현을 의미한다.4삶에 대한 사랑을 일관성 있게 노래하는 탈을 완성한 시인은 그 삶의 뿌리를 찾으려 모색하게 된다. 그의 끈질긴 신라 탐구는 가장 중요한 결과의 하나이다. 「善德女王의 말씀」으로 시작되는 다음 시집 『新羅抄』(1960)는 우리 고대 정신의 열린 부분을 통해서 우리 삶의 삶다움을 찾아 노래하고 있다. 「善德女王의 말씀」에서는 한 인간의 피 때문에 자연이 움직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新羅抄』의 화자는 인간의 일에 다른 생물들은 말할 것 없고 자연이 참여하는 그런 삶을 노래하는 것이다.자연의 일에 인간이 참여하느냐 인간의 일에 자연이 참여하느냐의 면에서 볼 때 『국화옆에서』와 『新羅抄』는 서로 완전한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서정주의 중기로 볼 수 있는 이 두 시집의 화자가 쓴 탈은 인간과 자연을 뚜렷이 나누지 않는 정신을 보여주기있다.
    교육학| 2004.06.27| 5페이지| 1,000원| 조회(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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