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친구랑 영화관 같다가 볼 것이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봤었던 영환데 나름대로 참 재미있게 봤었다. 영화를 봤을 때 중학교 때 읽었던 이집트 세티의 왕과 그의 아들과 이집트에 대한 소설 람세스에서 나왔던 부분들이 간간히 있어서 알고 있다는 자부심에 꽤 흥미롭게 봤었던 건데 이렇게 영화 감상문을 써 낼 줄 알았으면 그때 좀 더 신경써서 볼걸 그랬다. 지금도 다시 보고 정리해서 쓰고 싶지만 자취생인 나로서는 조금은 힘든일이라서 전에 봤던걸 기억해 내고 있다. 에는 뭔가 특별한 것,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이 있다. 이는 다른 애니메이션 영화(주로 디즈니사에서 만든 작품들)나 같은 내용을 다룬 이전의 실사영화와의 차별화를 시도해 새로운 것이 없는 세상에서 새롭지 않은 것, 아니 아주 오래되고 잘 알려진 것을 가지고 항상 새로운 것을 보고싶어하는 우리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영화이다. 영화의 시작부분 자막으로 알려주듯이 미국 '드림웍스'사에서 제작하고, 모세가 핍박받던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구약성서 '출애굽기'를 소재로 이 영화의 제목인 '이집트 왕자'는 히브리인들을 탈출시킨 예언자 모세를 가리 킨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모세에게 있었던 '람세스' 왕이라는 이집트인형과 원수가 되어 쫓고 쫓기는 적이 돼버린 형제의 갈등과 우애가 이 만화 영화에서 내내 긴장감을 자아내고, 주인공 모세를 고민 많은 평범한 인간으로, 람세스도 악인이 아닌 공감할만한 인물로 설정하여, 이 두 주인공의 갈등과 고통을 아주 심도 있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전체적인 내용은 히브리 인이 모두 이집트의 노예로 소유되었던 시대를 배경으로 히브리 인의 반란과 예언자의 출현을 두려워한 이집트 왕 세티는 히브리 신생 남아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아기 모세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아기를 광주리에 담아 강물에 띄워보내고 왕비에게 발견된 모세는 람세스와 함께 건장한 이집트 왕자로 성장한다. 어느날 밤 모세는 파티에서 선물받은 미디안 처녀 실비라가 도망치는 뒤를 밟다가 자신의 친형제 미리암, 아론과 마주친다. 미리암으로부터 자신의 출생과 성장의 비밀을 들은 모세는 아버지로 믿어왔던 세티에게서 이 사실을 확인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던 어느날 모세는 히브리 노예가 학대받는 것을 보고 실수로 건설 감독을 떼밀어 죽인다. 자신의 성장배경과 예기치 않은 살인으로 충격받은 모세는 왕궁을 떠나 사막을 배회하다가 미디안 처녀 실비라가 속한 유랑민을 만난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아름다운 실비라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던 모세는 우연히 양을 찾으러 나갔다가 불붙은 나무를 보고 이집트인의 박해로부터 히브리인을 구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듣는다. 왕궁으로 돌아온 모세를 보고 람세스는 뛸 듯이 반가워 하지만 영화에서는 모세가 히브리인의 해방을 요구하자 저주를 내리겠다고 협박한다. 전에 읽었던 “람세스” 라는 책에서는 협박하진 않았던거 같은데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거라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람세스와 모세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모세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하느님의 계시에 따라 이집트 왕자 자리를 버리고 해방을 갈구하는 히브리인들의 지도자가 되어 이집트의 왕 람세스와 맞서며 이집트 일가에 재앙을 내리게 되고, 이집트인의 왕자를 죽이는 열 번째 재앙에 람세스의 아들이 목숨을 잃자 마침내 람세스는 모세로 하여금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떠나도록 허락한다. 그러나 화가 난 람세스와 이집트 군사가 추적해오는데 히브리인들이 홍해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 가지 못하자, 모세는 바닷물에 지팡이를 꽂고 물을 두 갈래로 갈라 길을 내는 기적을 일으키는데 바로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최대 감동을 느낀, 섬세한 특수 효과로 연출한 바다 물살이 수직으로 수천 미터나 솟구치며 갈라지는 화면은 너무나도 힘이 넘치고 사실적이어서 관객들을 빨려들게 만든다. 물론 이 같은 내용은 모두 성서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학과 : 스페인어문학과성명 :이유림학번 : 0106062과목명 :대인 관계와 커뮤니케이션1.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끌림이 있다. - 첫 만남(Starting Relationship)- 첫인상, 관리하기 나름이다.처음 입력된 정보가 전체적인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닻 내리기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초기 정보가 후기 정보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초두효과(Primary Effect)'에 의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첫인상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첫인상은 4초 정도에 결정된다고 한다. 부정적인 정보가 긍정적인 정보보다 인상 형성에 강력하게 작용하는 ‘부정성 효과(Negativity Effect)' 때문에 첫인상은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좋은 인상을 주려면 첫인상이 아무리 좋았더라도 부정적인 정보를 접하면 쉽게 나쁜 쪽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열 번 잘하다가도 한번 잘못하면 나쁜 이미지로 낙인찍히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아하면 판단할 필요가 없다.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흡연이 얼마나 해로운지 판단하는 것은 이성이지만 담배를 피우게 만드는 것은 감정이다. 담배가 해롭다는 사실을 알고도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모든 선택은 이성이 아닌 감정이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끌리는 사람을 선택하고 끌리지 않은 사람은 내친다. 따라서 성공적인 설득을 하고 싶다면 우선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사고(에토스), 감정에 호소한 다음(파토스), 필요성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고(로고스), 마지막으로 상대방이 마음을 바꾸지 않도록 다시 에토스를 이용하는 순환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신은 마음을, 사람은 겉모습을 먼저 본다.한 설문조사에서 입사 면접에서 외모나 옷차림이 당락에 영향을 준다는 답변이 66.7%에 달했다. 옷차림은 그 사람의 자세와 매너뿐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첫인상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는데 공교롭게도 첫인상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 태도나 취향의 사람들은 서로의 행동을 쉽게 예측할 수 있으며, 누군가와 비슷하다는 건 내가 ‘옳다’라는 증거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성립한다. 반대로 사람은 자신과 공통점이 없는 것에 대해 반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반감 가설(repulsion)이라고 한다.- 자주 보면 정이 들고 만나다 보면 좋아 진다.에펠탑이 세워질 때 모파상을 비롯한 파리 시민들은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건설을 반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파리에 에펠탑이 없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파리 시민들은 정이 들 듯 자주 보는 것만으로 에펠탑에 대한 호감이 높아졌다. 이를 단순노출의 효과(mere exposure effect)혹은 에펠탑 효과라 한다. 호감을 높이는 요소는 노출 빈도와 거리이다. 가까운 거리에 있을수록 친밀감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근접성의 효과(proximity effect) -이다. 따라서 아쉬울 때만 찾는 사람이 아닌 지속적으로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이 끌림에 효과적이다.- 칭찬 방법을 바꾸면 관계가 달라진다.좋은 말도 자주 듣다 보면 식상하듯이 칭찬도 반복되면 그 효과가 급격히 줄어든다. 즉 신빙성이 떨어져 그 사람의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부정적인 말을 했다면 반드시 칭찬이나 격려의 말로 마무리를 짓자. 언제나 시작보다는 끝이 중요하다. 칭찬은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또한 면전에서 칭찬하는 것보다 제3자에게 칭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칭찬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자랑하고 싶은 욕구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칭찬을 전해 듣게 되면 두 명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셈이 되기 때문에 면전의 칭찬보다 몇 배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웃는 사람 주위에 사람이 모이는 이유윌리엄 프라이 박사에 의하면 6세 정도의 유치원생들은 하루 300번 정도 웃는다고 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그 5%인 15번 정도로 줄어든다. 커가면서 함부로 웃는 것을 금기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웃는 표정으로.-보디랭귀지를 놓치면 사람을 잃는다.심리학자 앨버트 메러비언은 전체 의사소통 중에서 대화의 내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7%에 불과하고 나머지 93%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의해 이루어짐을 확인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는 기술의 핵심은 그 사람의 음조, 몸짓, 표정 등 신체 언어를 정확하게 해독하는 능력이다. 화자뿐만 아니라 청자에게도 비언어적 의사소통은 중요하다. 바로 ‘눈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눈치가 빠르면 절간에 가서도 젓갈을 얻어먹는다.”2.끌림을 유지하는 1%의 차이 - 관계의 발전(Developing Relationship)- 나는 왜 나를 사랑해야 하는가.사람들이 자신을 비하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관심과 동정을 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낮은 기대 수준을 요구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격려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자기 비하는 지속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보상 감소 이론(reward reduction theory) -같이 있으면 불쾌해 지기 때문에 기피하게 된다. 다른 사람과 잘 지내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자기애가 깊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과장해서 과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교만하지 않으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당당함으로 주변사람들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다.-다름을 인정하면 공감이 쉬워진다.대부분의 갈등은 차이를 ‘나쁜 것’으로 보는데서 시작된다. 하지만 세계에서 자신과 똑같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생김새가 다르듯 생각 또한 모두 다른 것이다. 인간관계의 갈등을 줄이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머릿속에서 ‘다른 것=나쁜 것’이라는 공식의 삭제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옳은 말을 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간단한 법칙 1:2:3관계의 문제는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듣지 못해서, 대화도중 말을 끊어서 생기는 경우가 훨 나타낸다. 너무 완벽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만든다. 또 사람들은 결점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에 대해 위선적이고 인간미가 없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유리는 그 안에 빈틈이 없기 때문에 물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스펀지는 그 안에 공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을 빨아들일 수 있다. 누군가가 다가오게 하려면 우리는 우리 안에 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빈틈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라.흔히 체면 때문에 사람들은 몰라도 ‘아는 척’ 하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모르는 것에 대한 배움의 기회를 날려 버리게 된다. 또한 솔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자책감에 시달리게 하고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서로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잃는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와달라고 말하자. 주도적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기꺼이 ‘모른다’ 고 말하면 솔직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겸손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당당함까지 유지할 수 있다.- 뒷담화, 만족은 짧고 후회는 길다.뒷담화는 심리적으로 ‘정서적 환기 효과(emotional ventilation effect)' 때문에 일어난다. 불쾌한 감정을 누군가에게 털어 놓으면 속이 후련해지는 것이다.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고 분노를 해소할 수 있다. 이 때 일시적으로 자긍심이 생기기 때문에 뒷담화는 은근한 매력이 있다. 그러나 뒷담화의 긍정적인 효과는 대부분 일시적이다. 뒷담화를 하고 난 뒤 우리의 마음은 부정적인 생각들로 채워진다. 검지하나로 손가락질을 하면 나머지 세 개의 손가락은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뒷담화는 돌고 돌며 나에게 그 화살이 향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당신이 좋아요”미움을 받지 않고 호감을 사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내가 먼저 상대방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면 겉으로는 아니더 유쾌한 감정이 함께 먹는 사람과 그 사람의 제안에까지 파급되기 때문이다. 즉, 긍정적인 감정이 유발되고 이 감정이 연합되어 느껴지는 것이다.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하라.3.끌리는 사람은 이렇게 관계를 유지한다. - 지속되는 만남(Staying Relationship)- 관계를 알리고 싶은 사람이 되라.사람들이 매력적인 사람이나 강한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실패자들로부터는 최대한 거리를 두어 자신의 이미지를 보호하려고 하는데 자신이 전자의 주인공이 될지 후자의 주인공이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하겠다.- 콤플렉스를 건드리면 돌부처도 돌아선다.사람이라면 누구나 절대 자극받고 싶지 않은 민감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바로 핵심 콤플렉스(core complex)다. 차마 해서는 안 될 말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과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그 질이 다르다. 좋은 의도라도 자신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청자가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살펴야 한다. 핵심 콤플렉스를 건드리면 그 상처는 오래간다. 웬만하면 모른 척 넘어가자. 다른 사람이 콤플렉스를 털어 놓으면 그리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자.-위대한 사람에겐 그를 믿어준 사람이 있다.바보온달, 프로이트, 레오나르도 다빈치, 맹인가수 스티비 원더, 앙드레 김의 공통점은 옆에서 끝까지 믿어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능성을 믿어주면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가 일어나는 것을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한다.- 뜻밖의 작은 배려가 친밀감을 더해준다.우리는 평소 알고 지내는 어떤 사람에게 나름의 기대치를 가지고 있다. 상대의 행동이 기대치를 긍정적으로 위반하면 호감이 증가하고 부정적으로 위반하면 호감이 줄어든다.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거창한 일이 필요 없다. 가끔 주변의 사람들에게 평소와는 좀 다른 뭔가를 해주자. 뜻밖의 작은 친절을 베풀자. 기대치를 긍정적으로 위반하는 일이면 족하다. 하지만
우리와 아주 흡사한 외모를 지닌 남미인들. 하지만 멀고도 먼 나라. 1492년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없었다면 찬란하고도 화려한 문명을 꽃 피웠을 그 대륙에 콜롬버스 다음으로 영향을 끼친 인물을 꼽으라면 누가 있을까? 아마도 자유와 정의를 위해 평생을 바쳐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그리고 볼리비아 등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독립으로 이끈 장군,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 1783 ~ 1830) 가 아닐까? 그가 활약했던 역사 무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작년 천안 단국대에서 있었던 서문인의 축제 「Don Quijote」)에 참가했을 때 그가 한 연설을 일부를 우연히 듣고 나서부터 이다. “나는 내 조국과 내 민족의 행복을 위해 나가야 할 길을 영광으로 가득 채울 것입니다. 나는 내 민족이 원한다면 목숨까지 바칠 것입니다.”) 아메리카 인의 자유와 통일을 실현시키려 노력했던 시몬 볼리바르. 그 중에서도 아직까지 그의 노선을 따르고 있는 남미의 작은 나라, 전 세계 얼마 안되는 석유 산유국중의 하나 이면서도 미국의 발 밑에 서있는 베네수엘라)및 라틴 아메리카에 볼리바르의 투쟁과 삶, 사상이 미친 영향을 그의 5개의 선언을 통해 알아보도록 한다.베네수엘라는 1498년 콜럼버스의 제 3차 원정시에 발견되었다. 초기의 정복 활동은 동부와 북부 해안 지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17세기 들어 오리노코 - 아푸레 - 메타 강을 연결하는 대평원이 개척되었고 카라카스를 중심으로 정착하여 정복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카리브해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총독이 통치하였다. 본토에서 나폴레옹이 추방되고 페르난도 7세가 복귀할 때쯤 스페인에게 계속 충성을 맹세하면서 한 지방의 자치구역으로 남아 있느냐 아니면 스페인으로부터 결정적으로 분리 독립하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이러한 급진적인 문제 의식과 사건들은 신경질적이고 마음이 급했던 베네수엘라의 한 청년 귀족 - 시몬 볼리바르 -에게 다. 볼리바르의 선조는 16세기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에서 베네수엘라로 왔다. 그가 17세 되던1799년 그의 할아버지가 죽자 볼리바르는 까를로스 4세의 통치하에 있는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부유한 볼리바르는 까를로스 4세의 스페인귀족 사회에서도 금방 포용할 수 있었다. 그는 우스타리스의 조카딸인 마리아 테레사를 알게 되어 1802년 19세의 나이로 결혼하였으나 카라카스로 함께 귀국한그의 아내는 결혼 8개월만에 갑작스럽게 죽고 만다. 볼리바 르는 아내의 죽음 이후 죽을 때까지 다시는 결혼하지 않았 다. 오로지 독립과 혁명만이 그의 영원한 신부였다. 볼리바 르의 관심은 나폴레옹 치하의 유럽세계가 아니라 그의 고국 남아메리카가 처한 구체적 상황에 있었다. 프랑스 혁명에 어떤 모순이 있든지, 또는 한 인간으로서 혹은 황제로서 나 폴레옹에 무슨 영광과 결점이 있었든지 간에 볼리바르는 혁 명의 대해로 출항하기 위하여 이런 모순들을 긍정적인 방향 으로 무시했다. 1805년 로드리게스와 함께 로마를 여행하며 볼리바르는 ‘나 자신의 명예와 내 선조의 하나님의 이름으 로, 그리고 내 조국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나의 마음과 나의팔뚝은 스페인의 권력이 우리를 속박한 그 사슬을 깨뜨릴 때 까지 한시도 쉬지 않을 것이다.’1812년 제 1공화국 붕괴 이후 볼리바르는 자유 공화 정부를 돕기 위해 베네수엘라에서 돌아온다. 그는 《카르타헤나 선언》에서 1811년 제 1공화정의 실패원인을 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포용정책에 있었다고 생각하고 누에바 그라나다(현 콜롬비아)의 지도자들이 그의 군 통솔력을 인정하였으며, 베네수엘라 독립을 위해 군대를 파견하도록 설득한다. 이 선언으로 독립 원칙이 세워진다. 즉 누에바 그라나다의 안전을 위해서도 베네수엘라의 독립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 글은 철저하게 자기 비판적인 글이다. 자신이 고국에서 경험한 바를 솔직하게 분석하여 이웃과 동포들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호소하며, 이 같은 이름의 선언으로 삼부작이 완성되었는데 그서 패했기 때문이다.그런 후 볼리바르는 누에바 그라나다로부터 승리의 행진을 계속 하던 중 에스파냐 사령관 몬테베르데의 지휘 하에 벌어진 잔혹 행위에 대해 알게되고 진실을 세계 만방에 알리기로 결심해 1813년 9월 《세계 만방에 고함》 이라는 편지를 쿠라사오 총독에게 보낸다. 이 글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쟁의 참상을 전 인류에게 알린 글이고 국제 연합의 전신인 숙제 연맹이 결성되기 100년 전의 일이다. 이 글에서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로의 이민을 요청하기도 한다. 볼리바르는 몬테베르데를 고발하면서 두 가지 견고한 원칙을 세우게 되는데 이 원칙은 오늘날에도 사람들과 국가들의 국제정치에 있어서 행동을 규제하는 것이다. 그 하나는 ‘세계만방’ 이라는 이름으로 전 인류를 하나로 묶어 그들에게 양측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 상황에서 민간인의 기본 권리를 유린한 전범들을 합당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이는 최근 헤이그 국제 재판소에서 독재자들을 재판, 처벌하는 것과 같다. 볼리바르는 최후의 승리를 통해 독립 전쟁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인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또한 이 글에서 볼리바르는 세계인을 공개적으로 초대한다. 즉 ‘우리 땅에서 보금자리를 찾기 원하시는 분, 기술과 지식으로 우리를 돕기 원하시는 분, 어느 곳에 있어도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는 분’ 모두를 초대하고 있다.1815년 제 2공화국 붕괴 이후 독립 운동이 심각한 위기에 바지고 남아메리카 독립 전쟁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끌게되자 볼리바르는 대영 제국에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자메이카를 경유하여 런던으로 가던 중 그 곳에서 범 미주 통합과 공화주의 사상을 담은 유명한 글을 남긴다. 《자메이카의 편지》 라 불리는 이 글은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 경제적 통합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 중요성이 다시 크게 부각되고 있는데 ‘신대륙 전체를 각 지역 간에 밀접히 연결되는 하나의 고리를 가진 한 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웅대한 구상임에 틀림없다. 우리 모두는 공동의 께 다시 한번 돌이켜 볼 만하다.1816년 초 볼리바르는 아이티의 페티온(Petion, Alexandre Sanes) 대통령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다시 독립 운동을 전재하기 시작해 1817년 기아나 평원과 대평원의 동부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스페인군을 평정하였다. 그리고 결국 1819년 6월에 보야카 전투에서 승리하여 누에바 그라나다를 해방시키고, 1819년 12월 17일 안고스투라) 의회에서 그란 콜롬비아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이 해 선거에 의해 구성된 공화국 국회 개회식에서 행한 《안고스투라 연설》은 국민에게 권리를 되돌려주고 의회의 결정 사항을 존중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새로운 헌정 국가가 짊어져야 할 의무가 강조되었다. 그는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심하라고 호소한다.‘우리는 유럽인도 아니고 북미인도 아니다. 우리는 유럽이 만들어 낸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혼혈일 뿐이다.’ 이 연설에서 중요한 점은 볼리바르가 몽테스키외)의 전통적인 삼권에 제 4의 권력을 추가했다는 것이다. 제 4의 권력은 바로 ‘도덕의 힘(Poder Moral)'으로 현재 베네수엘라 헌법 (1999년 공포)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1821년 카라보보 전투, 1823년 마라카이보 해전으로 베네수엘라를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에 돌입하고 이 결과로 제 3공화국의 민주 헌정이 수립된다.그리고 볼리바르는 1822년 끼토(현 에콰도르)를 해방시키고, 이를 콜롬비아 공화국으로 통합시켰다. 그런 후 페루를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계속 했고, 또 다른 남미 해방의 영웅 산 마르틴)을 에콰도르 과야킬 항에서 만난다. 두 사람은 단독 회담을 했고, 회담 결과 산 마르틴이 페루 해방을 볼리바르에게 양보하고 돌아갔다. 회담 내용에 대해서는 두 사람 이외에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어쨌든 두 사람은 라틴 아메리카 해방을 위해 공적이나 권력을 놓고 다투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두 영웅은 아무런 유혈 사태 없이 충실에서 아르헨티나를 해방시킨 호세 데 산 마르틴과 회동 국경 문제를 매듭짓고, 1827년 고국 베네수엘라를 마지막으로 방문한다. 이 시점부터 볼리바르가 구상했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모든 상황이 부정적으로 돌아갔다. 볼리비아 헌정은 철폐되었고 과야킬에서는 폭동이 일어났고 페루에서 싸웠던 콜롬비아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로 인하여 그란 콜롬비아는 오늘날과 같이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로 분열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그는 《오카냐 국민회의에 보내는 메시지》 로 국민회의에 호소하게 된다. 이 글은 《안고스투라 연설》 내용과 정반대의 것으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동기가 사라진 다음 전반적인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에스파냐 군대의 위협이 사라지고 시기, 파벌주의, 권력욕이 횡행하면서부터 국민적 합의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 메시지에는 실망과 자기 반성이 진하게 배어 있으며, ‘안고스투라 연설’에서 제안했던 내용이 얼마나 현명한 것이었는지를 증명해준다. 제안은 완전히 무시되었고 국민회의는 쓸Ep없는 말씨름으로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했다. 그 결과 볼리바르는 생애 마지막 순간 독재라로 몰리게 되었다. 그러면 오카냐에서 어느 누구도 볼리바르의 호소에 귀를 기울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전진, 승리, 통일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시대에 적합했던 볼리바르의 계획과 사랑이 개인주의적인 소규모 분리주의를 주장하던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상충하였기 때문이다.1828년 신생 독립 국가들의 통합을 꿈꾸던 시몬 볼리바르는 오히려 그를 죽이려는 음모에 맞닥뜨리게 되고 1830년 공화국 내 반란 세력들을 제어하는데 지치고 좌절하게 된다. 볼리바르는 더 이상의 권력을 포기하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독립 투쟁에 몸을 던진 이래 20년 간 한편으로는 전쟁터를 떠돌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라틴 아메리카의 헌법을 기초했다. ‘우리들은 혁명을 위해서 몸바치는 동안 배울 시간이 없었다.’ 20년간 라틴 아메리카 해방을 위해 몸바쳤던 시본 볼.
1995년 12월 29일 국회에서 통과된『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0년 10월 28일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내국인출입 카지노가 개장되었다. 개장 초부터 강원랜드 카지노에는 입장객으로 초만원을 이루어 기대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즉, 지난 1개월간 카지노 운영실적을 살펴보면, 입장객수는 총 10만 5천명으로 하루 평균 3,650명이 방문한 셈이며, 카지노수입은 약 350억원으로 하루 평균 11억7천만원을 벌어들인 셈이다(중앙일보. 2000. 11. 27). 카지노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도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카지노이용객에 비하여 카지노호텔의 객실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고한·사북 그리고 태백시의 숙박업소와 주변의 일부 식당들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당초 예상했던 도박중독증이나 재산탕진과 같은 사회적 부작용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음이 매스컴을 통하여 보도되고 있어 그대로 방치할 경우 향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일확천금을 기대하면서 장시간 체류하거나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하여 며칠동안 체류하면서 게임하는 카지노매니아(Casino Mania)들이 증가하고 있어 재산탕진과 도박중독자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현재 게임한도액과 카지노매니아들의 게임시간을 살펴보면 오락수준을 넘어서고 있으며, 이는 일확천금이나 한탕주의를 노리고 카지노를 방문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건전한 게임문화가 정착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도박중독증에 걸리면 항상 강박관념과 우울증에 빠지고 직장을 멀리하게 되며, 그 가족은 신체적, 정신적, 재정적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또한 도박빚을 갚기 위해 가족이나 친구/친척으로부터 돈을 빌리게되고, 심지어는 사기나 회사의 공금을 횡령하는 등 범죄행각까지 일으킨다. 도박중독증이 심해지면 재산을 탕진하고 잦은 가정불화로 가정파탄에 이르며, 결국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도박중독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경우 실직급여,박빈도가 갈수록 늘어나고 금액은 갈수록 증가하여 개인이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 개인은 물론 가족과 직장생활에까지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미국 정신병리학회에서는 중독성 갬블링을 일종의 정신질환인 '충동조절질환'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하라(Harrah) 카지노에서는 중독성 갬블링을 "중독성 증세가 있고 개인의 사업이나 종업원의 성과를 교란시키는 행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어떠한 개념이든 간에 도박중독증은 개인의 성격과 가족관계 및 직장생활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가정파탄과 이혼율의 급격한 증가 및 아동학대등 사회적 기반인 가정의 몰락을 가져온다. 예로 미시건 대학의 의대교수인 Dielman 박사에 따르면, 도박활동의 수준과 이혼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충기·고택운, 1999). 또한 Gulfport의 William L. Stewart 판사는 New York Times와의 대담에서 미시시피州에 카지노가 도입 된지 1년 반도 채 안되어 도박으로 인하여 20여명이 이혼한 사실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Rapid City 저널은 비디오게임이 도입된 이래 인구가 좀처럼 증가하지 않는 사우스다코타州에서 연간 200건 이상의 이혼율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Harrison County의 경우 카지노가 개장된 후 650명이 이혼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Stewart 재판관에 따르면 이혼건수의 ⅓은 도박이 주원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자녀학대는 카지노가 도입된 지역에서 급증하고 있다. 콜로라도 Central City는 카지노가 개장된 이듬해에 어린이보호 요청건수가 6배나 증가하였으며, 사우스다코타州의 데드우드의 경우는 어린이 학대건수가 50%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Biloxi의 경우 가정폭력은 1992년 167건에서 1996년에는 328%가 증가한 715건으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도박으로 인해 엄청난 돈을 잃게 되어 나타나는 자살 또한 사회에 큰 문제가 된다.Dr. David Phillips 사회학자에 따르면, 라스베가스가 지으로 하향 조종되었으나, 이 액수도 여전히 오락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테이블게임의 소액화 수준이 어느 정도가 적합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소액화수준과 재산탕진 등 부작용과의 상관관계, 소액화수준과 매출액과의 상관관계 등을 면밀히 분석한 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며칠동안 체류하면서 게임하는 카지노매니아들에게는 게임한도액의 소액화가 재산탕진이나 도박중증을 예방하는데 별 효과가 없을 수도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카지노출입을 제한적으로 통제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강원랜드에서도 카지노장내 도박중독자 또는 재산탕진 가능자를 확인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하고, 직원들을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위의 같은 사람이 확인된 경우 강원랜드는 상담을 통하여 출입자제를 권유하고, 심각한 도박중독자에 대해서는 카지노출입을 금지시키며, 도박중독증 치유센터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강원랜드는 도박중독증에 관한 정규적인 리서치를 관련 전문가에 의뢰하여 그 결과를 도박중독증 치유프로그램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도박중독증 판별법을 개발하거나 기존의 연구결과를 한국실정에 맞게 수정 및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도박 중독증 치료 센터가 하루 빨리 체계적으로 설립 되어야 한다. 도박중독증이나 재산탕진 등 사회적 부작용을 예방하고 건전한 게임문화를 정착시키 위해서는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한데 첫째는 카지노의 리조트화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게임이 주가 되어서는 안되며, 다양한 레크레이션 활동을 즐기면서 그 중의 일부로 게임을 즐겨야 한다. 둘째는 국민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카지노를 통해서 일확천금을 벌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카지노를 오락차원에서 즐길 때만이 건전한 게임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 것이다. 건전 게임문화 정착을 위한 국민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일확천금이나 한탕주의를 예방할 수 있도록 게임한도액을 소액화 하는 방안과 함께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 즉, "카지노게임은 확률게임일 뿐 극히 일부 사람에게차:79.5%)을 비교하여 카지노 외화수입의 수출가치를 평가해 볼 때, 카지노 외래객 1명의 유치는 반도체 56개 또는 컬러TV 3대를 수출한 것과 동일하며, 카지노 외래객 15명을 유치하면 승용차 1대를 수출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 넷째, 카지노산업은 외래관광객 1인당 소비액을 늘리고 체류기간을 연장시킨다. 카지노는 관광객에게 Night-life 활동을 제공함으로써 관광상품을 다양화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소비액을 증가시키고 체류기간을 늘려준다. 이러한 카지노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는 기법으로 산업연관(Input-Output)모델이 이용되고 있다. 이 모델은 산업간의 상호연관관계를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카지노산업이 전체 산업에 파급시킨 경제적 효과를 측정할 수 있다. 카지노 이용객의 소비자지출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카지노산업자체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연관산업에도 경제적 파급효과를 발생시킨다. 카지노 이용객이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소비한 돈은 카지노의 자체 수입이 되며, 이를 '직접효과' 또는 '1차효과'라고 한다. 또한 카지노수입의 일부는 다른 산업으로부터 식자재나 공산품 등을 구입하는데 지출하게 되며, 이러한 지출로 인하여 타 산업에 파급되는 효과를 '간접효과'라고 한다. 한편, 카지노수입 중의 일부는 직원들의 급료로 지출되고, 직원들은 그 급료의 일부를 생필품, 전자제품, 자동차, 문화서비스 등을 구입하기 위하여 타 산업에 지출할 것이다. 즉, 직원들의 소득의 증가로 인해 소비가 증가되고, 이러한 소비의 증가는 다시 건설, 제조업 등 타 산업의 생산활동을 촉진시키게 되는데, 이를 '유발효과'라고 한다. 여기서 간접효과와 유발효과를 합쳐서 '2차효과'라고도 한다. 위에서 설명한 산업연관모델을 이용하여 스몰 카지노의 개장으로 인하여 예상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평가해 보면 다음과 같다.카지노의 수입이 지역경제 전반에 걸쳐 파급시킬 직·간접 및 유발 생산효과는 연간 약 1,572억원으로 예상된다. 또한 카지노수입이 지역주민에게 창출시킬품화이다. 태백의 석탄박물관은 폐광지역의 과거 역사를 흥미있게 보여줄 수 있는 차별화된 관광매력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은 정적인 측면이 강하나 석탄박물관의 경우는 체험공간까지 마련되어 생동감있는 연출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 겨울에는 태백산 눈축제와 연결시키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 향후 카지노와 이들 상품을 연계시킨다면 민박촌과 식당 등 상가들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그 결과 지역주민의 고용 창출과 소득증대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카지노와 생태관광지와의 연계 상품화이다. UN은 2002년을 '세계 생태관광의 해'로 지정하여 지구 환경의 보전적 측면에서 생태관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생태관광객의 특성을 살펴보면, 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으며, 1인당 소비액이 비교적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태백산,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 한강 발원지인 검용소, 미인폭포와 통리계곡, 구문소와 화석군락지, 삼척의 환선굴(연간 100만명 방문) 등을 생태관광지로 개발하여 카지노와 연계시킨다면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동강에 얽혀진 사연을 해설프로그램으로 엮어서 래프팅(Rafting)과 연결시킨다면 카지노 이용객 중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며, 동강을 중심으로 한 지역주민에게도 소득증대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셋째, 카지노와 축제를 연계 상품화한다) 강원도, 강원의 비전 21C 시행계획, 1996,. 축제는 대안관광(Alternative Tourism)으로 부족한 관광상품을 대체하거나 관광상품을 다양화할 수 있으며, 최근 문화관광부에서도 지역축제를 적극 육성하고 있는 추세이다. 현재 '5일장 꼬마관광열차'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볼 때, 정선의 5일장이 축제자원으로서 잠재력이 매우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정선아리랑은 전국에 이미 다 알려질 정도로 인지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축제상품으로의 잠재력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현재 아리랑의 발상했다.
스페인 건축스페인의 건축양식은 외부로부터 영향 (북아프리카의 무어양식, 프랑스로 부터의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 이태리의 르네상스양식 등)의 영향을 받아 스페인의 독특한 양식으로 만들어졌다.1. ROMANESQUE AND EARLIER ( 8 ? 13 세기 ) : 로마네스크 양식로마네스크 교회에서 나타나는 양식으로 주로 카탈로니아지역에 나타나며, 그의 특징은 둥근 아치형, 거대한 벽과 적은 창문들로 나타난다.2. MOORISH ( 8-15 세기 ) : 무어양식건물 내부의 가장 풍부한 장식에서 보여지며, 기하학에 근거한 정교한 디자인은 타일이나 STUCCO에 나타나는 필체에서 볼수 있다. 그들은 비시고도(Bisigoths)에서 전래된 광대한 말굽형 아치를 만들었다. 대표적 무어 양식의 작품들은 남부 스페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3. GOTHIC ( 12- 16 세기 ) : 고딕양식고딕양식은 12세기후반에 프랑스에서 들어온 것으로 뾰족한 창문, 장미 문양의 창문, Tracery, Flying Buttress등 에서 볼 수있다. 그 후 무어양식은 크리스챤의 이베리아 반도의 재탈환으로 크리스챤 양식과 무어 양식이 섞여진 무데하르(Mudejar)양식이 만들어진다.4. RENAISSANCE ( 16 세기 ) : 르네상스 양식약 1500년경 이태리의 예술가와 이태리에서 공부한 스페인 예술가들에 의해 전해졌다. 르네상스양식은 고대 로마양식의 부활로 대칭감, 둥근 아치, 도리아(Doric)식, 이오닉(Ionic)과 코리티안(Corinthian) 기둥의 이용에서 보여진다.5. BAROQUE ( 17 ?18 세기 ) : 바로크 양식바로크는 드라마와 움직임의 열망에서 나온 것으로, 장식은 과장되며, 풍부한 조각과 꼬여진 기둥 들에서 볼 수 있다.6. 현대 ( 19세기 후반 이후 )Modernisme(모더니즘)은 새로운 예술에 대한 카탈루니아적 해석으로 바르셀로나에서 주로 볼 수 있다. 대표적 인물로 가우디를 볼 수 있다.* 안토니오 가우디 꼬르넷(Antonio Gaudi Cornet)와 어머니 안토니아 꼬르넷 벨트란(AntoniaCornet Beltran) 사이에서 태어났다. 바르셀로나 대학 이공학부에 진학한 후 건축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여 바르셀로나 시립건축 학교에 입학한다. 이 시기에 가우디는 호세 폰세레 메스뜨레스(Jose Fontsere Mestres, 1829-1897)라는 건축가 밑에서제도사로 일하면서 폰세레의 작업에 참여하였다. 건축학교 재학중 문학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 과정을 수료하여 일련의 기술적·공예적·과학적 지식 외에 예술에 관한 경험을 쌓았다. 이후 건축가로서 차분히 명성을 쌓아오던 가우디는 1883년 그 유명한 성 가족 성당(Sagrada Familia) 공사의 총감독에 취임하게 된다. 1913년 가우디는 오직 성 가족 성당의 공사에만 전력하게 된다. 작업에 몰두한 그는 광장 근처를 지나던 때 전차에 받혀 74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가우디의 유해는 로마 교황청의 배려로 성 가족 성당의 크리프타(납골당)에 매장되었다.스페인 (SPAIN) : 36건1. 브르고스 대성당 ( Burgos Cathedral : 문화, 1984)가13C∼15C간 건설된 고딕양식의 대성당2. 코르도바 역사지구 ( Historic Centre of Cordoba : 문화, 1984/1994)가8C경부터 번영을 구가했던 도시가300여개의 모스크와 수많은 궁전, 공회당이 현존3. 구엘공원 및 성곽 ( Parque Guell, Palacio and Casa Mila in Barcelona : 문화, 1984)가바르셀로나에 있는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의 작품가건축스타일 뿐 아니라 정원, 조각, 등 장식미술분야의 새 스타일을 개척4. 마드리드의 에스큐리알 수도원 유적 ( Monastery and Site of Escurial, Madrid : 문화, 1984)가16C에 성 로렌스의 순교를 기념하여 건립된 수도원가이 수도원의 엄격한 건축 스타일은 스페인 건축에 큰 영향을 미침5. 알함브라, 알바이진, 그라나다( Alhambra, Gener3C∼14C의 에미르족의 통치지역으로 장엄한 정원 풍경이 뛰어나며가알바이진은 무어 건축의 보고로 전통적인 조화가 뛰어 나다6.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구 시가지 ( Old Town of Santiago de Compostela : 문화, 1985)가스페인 북서부의 유명한 순례 유적지가이슬람교에 대한 스페인 그리스도교의 항전의 상징임가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건물이 혼재해 있는 건축물의 寶庫7. 알타미라 동굴 ( Altamira Cave : 문화, 1985)가산탠더 지방의 선사시대 동굴유적으로 동굴벽화로 유명하며 그림을 통해 구석기인들의가생활상을 엿볼 수 있음8. 오비에도 및 아스투리아스 왕국 기념물군( Monument of Oviedo and the Kingdoms of the Asturias : 문화, 1985)가9C에 건설된 아스투리아의 그리스도 왕국 교회가선-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으로 이베리아 반도내 중세 건축발달에 큰 영향을 끼침9. 세고비아 구 시가지와 수로 ( Old Town of Segovia and its aqueduct : 문화, 1985)가A.D50년경에 건설된 세고비아의 로마시대 수도관, 16C 대 사원 등 유명10. 아빌라 구 시가지 ( Old Town of Avilla with its Extra-muros Churches : 문화, 1985)가무어인(8C 에 스페인 정복)으로부터 스페인 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11C에 건설 된 도시로가성 테레사의 출생지이며 위대한 재판관 토궤매다의 묘지가 있다11. 테루엘의 무데야르 건축 ( Mudejar Architecture of Teruel : 문화, 1986)가12C∼15C간의 그리스도인, 유태인, 이슬람 인들이 살았던 지방의 4개 타워 유적12. 톨레도 구 시가지 ( Historic City of Toledo : 문화, 1986)가로마시대부터 16C에 이르기까지 스페인 토호국 왕국의 수도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가이에 따라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주요 종교적 색채가 깃든 문명이 혼재리스도교인들의 전투역사를 가진 도시가로마, 이슬람, 북고딕, 르네상스식 건축양식이 다채롭게 혼재 되어 있다14. 가라호네이 국립공원 ( Garajonay National Park : 자연, 1986)가카나리아 군도의 라고메라 섬 중앙에 위치한 공원가70%가 삼림으로 되어 있으며 기후변화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제 3기 지질 시대 식물군이가서식하고 있다15. 세빌라 지역 대성당, 성채( Cathedral, Alcazar and Archivo de Indias in Sevilla : 문화, 1987)가대성당과 성채는 1248년∼16C까지 무어인의 영향을 받은 크리스챤 안달루시아와 알모하데스가문명의 흔적들을 나타내주는 유력한 증거물16. 살라만카 구도시 ( Old City of Salamanca : 문화, 1984)가마드리드의 북서쪽에 있는 고대 대학 타운가로마네스크, 고딕, 무어식, 르네상스, 바로크 건물 기념물들이 즐비함17. 포블렛트 수도원 ( Poblet Monastery : 문화, 1991)가12C경 세워진 시토수도회 사원으로 당시 요새화 된 왕의 주거지이기도하여 엄숙한 분위기를가자아내며 내부에는 카탈로니아와 아라곤 왕국 왕들의 영묘가 있어 인상적18. 메리다 고고유적군 ( Archaeological Ensemble of Merida : 문화, 1993)가BC25년경 도시로 루지타니아의 수도가현재 구 도시 유적이 산재, 보존상태 양호가특히, 가다아나 다리, 원형극장, 원형 경기장과 광장, 뛰어난 물 공급 시스템 등의 유적이가현존하여 로마제국 주요지방도시로서의 탁월한 모범을 예시해주고 있다19.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 ( Route of Santiago de Compoatela : 문화, 1993)가프랑스 -스페인 접경지대에 있으며 일찍이 EC에 의해 유럽의 첫 번째 문화 수도로 선포된가바 있음가이 루트는 콤포스텔라의 산디아고로 가는 순례자 길이며 길가에는 1,800여개의 건축물이가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종교적 또는 세속적으로도 매우 역사적 가치가 높은역할을 수행하였으며가전 유럽의 모든 사회적 계급 계층사람들에게 기독교적 신앙의 강대함을 나타내 주는가증거이기도 하다20. 산타마리아 과달루페의 왕립 수도원( Royal Monastery of Santa Maria de Guadalupe : 문화, 1993)가400년 동안 스페인 종교 건축의 뛰어난 모범사례이며 1492년의 중요한 두가지 사건-가캐톨릭 왕들의 이베리아 반도 정복과 크리스토퍼 콜롬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착-을가상징화 한 것이다가수도원내에는 유명한 성모마리아상이 신대륙의 그리스도화의 강력한 상징으로 세워져 있다21. 도나 국립공원 ( Donana National Park : 자연, 1994)가대서양과 연한 과달퀴버 강변의 우측에 자리잡고 있다가석호, 습지, 모래언덕, 관목숲, 마퀴스(지중해연안의 관목지대)등의 생물다양성 으로 유명가지중해연안에서 가장 큰 왜가리떼 보금자리이며, 매년 50만마리 이상의 물새들이 겨울을가보내는 곳이다22. 쿠엔카 구 성곽 도시 ( Historic Walled Town of Cuenca : 문화,1996)가12C∼18C의 종교적, 역사적 건축물들이 원형대로 남아있는 오리지날 도시전경이 잘가보존되어 있는 유럽 중세 요새 타운가성곽이 주위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기능을 향상시킨 특징을 가지고 있다23. 라 론야 데 라 세다 데 발렌시아 ( La Lonja de la Seda de Valencia : 문화, 1996)가15C∼16C 지중해 지역 중상주의 시대 상업도시로서의 부와 힘을 예시해 주는 고딕 말기의가건축물 사례24. 라스 메둘라스 ( Las Medulas : 문화, 1997)가A.D1세기경 로마제국에 의해 개발된 금광 지역가당시 과학기술의 총체인 수압장치를 비롯 고대 과학기술문명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가있다25. 산 밀란 유소-수소 사원 ( San Millan Yuso and Suso Monasteries : 문화, 1997)가6C 중반 수도원 사회를 이끈 성 Millan을 기리기 위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가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