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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 초기 한성시대에 관한 논의
    백제초기 한성시대에 관한 논의< 목 차 >Ⅰ. 서 론Ⅱ. 본 론ⅰ) 백제의 건국 신화ⅱ) 한성백제의 위치ⅲ) 서울ㆍ경기도지역의 한성시대 백제 유적 및 유물ⅳ) 초기 백제를 보는 세 가지 관점ⅴ) 풍납토성과 한국 고대사 연구Ⅲ. 결 론Ⅰ. 서 론백제(기원전 18년~서기 660년)의 역사는 한성시대(기원전 18년~서기 475년), 공주시대(서기 475~538년)와 부여시대(서기 538~660년)의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그에 따라 각 시대의 문화 차이가 뚜렷이 나타나며 도성의 변천에도 영향을 미친다. 바꾸어 말해 백제시대는 일반적으로 도읍의 변천 과정에 근거하여 한성시대, 웅진시대, 사비시대의 세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도읍이란 결국 왕이 거주하는 왕성, 또는 왕성을 포함한 보다 넓은 의미의 도성이 소재한 곳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백제시대는 크게 도성의 위치가 달라진 시점을 기준으로 시기를 구분한 것이라 이해되며, 그러한 차원에서 백제 한성시대라는 의미는 곧, 한성을 도성으로 한 백제시대로 볼 수 있겠다.)최근 고고학의 활발한 성과로 인해 백제시대의 도성의 변천을 추정해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분야의 연구가 가시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사료 제시 및 다양한 논의와 검증과정 절차를 필요로 한다.)본고에서는 백제의 건국 신화를 바탕으로 한성시대 백제 도성의 변천을 살펴보고, 이 시대 백제의 주요유적이라 할 수 있는 사적 제11호 풍납동토성과 사적 제297호 몽촌토성, 사적 제243호 석촌동 고분군, 사적 제270호 방이동 고분군 등을 중심으로 백제 초기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와 관련하여 초기 백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풍납토성의 축조시기가 한국 고대사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본 후, 이에 따른 올바른 역사관 정립이란 무엇인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Ⅱ. 본 론ⅰ) 백제의 건국 신화문헌 기록에 따르면 백제는 부여 또는 고구려로부터 이주한 정권으로 주위의 마한[마한왕(馬韓王) 또는 서한왕(西韓王)이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백제의 왕실은 고구령 왕실에 대한 열등감을 해소하고 왕실의 정통성을 고양하려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용이 왕을 상징하는 왕권의 탄생설화가 등장하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ⅱ) 한성백제의 위치한성백제는 하북위례성, 하남위례성, 한산 그리고 한성으로의 세 번에 걸친 천도가 있었다. 즉 기원전 18년 시조 온조왕의 건국 이후 제21대 개로왕대에 고구려 제20대 장수왕에 의해 수도가 함락된 서기 475년까지 백제는 세 차례에 걸쳐 도읍을 옮겼다. 하북위례성은 기원전 18~5년(온조왕 14년, 중랑천 일대로 추정), 하남위례성은 기원전 5년~서기 371년(제13대 근초고왕 26년, 풍납동토성으로 추정), 한산은 서기 371~391년(제16대 진사왕 7년, 사적 제422호롤 지정되어 있는 하남시 이성산성으로 추정) 그리고 한성은 서기 391~475년(문주왕 1년, 하남시 춘궁동 일대로 추정)까지 한성백제의 도성으로 사용되었다.)특히 하남위례성은 종래 몽촌토성[고원성(高垣成) 또는 이리성(二里成)으로 불려짐]으로 추정되어 왔으나 최근의 고고학적 성과를 고려할 때 풍납동토성(사성 또는 평고성)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풍납동토성에서는 백제시대의 특징적인 주거 형태인 육각형 수혈주거지를 비롯해 제사 터, 궁궐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개와와 전 그리고 ‘대부[大夫, 춘추전국시대에는 천자(天子), 제후(諸侯), 대부(大夫) 또는 공(公), 경(卿), 대부(大夫), 사(士)라는 벼슬이 있었으며 이도 이에 따른 것으로 여겨짐]’ 등의 문자가 새겨진 명문토기(銘文土器)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한성시대 백제왕과 상류층의 분묘로는 고구려 양식으로 축조된 석촌동 백제 초기 적석총과 그 이후 백제의 분묘로 알려져 있는 방이동 석실분 등이 확인되었다. 풍납동토성과 몽촌토성 그리고 석촌동 적석총 등 초기 백제시대의 유적들이 모두 직경 10㎞ 이내에 소재하는 것을 고려할 때 한성시대 백제의 중심지는 오늘날의 송파구와 하남시 일대라고 할 수엽에서 4세기경으로 알려져 있다. 4호분은 한 변이 23~24m에 이르는 정방형 분묘로 축조연대는 3호분과 비슷한 것으로 보이나, 토광묘는 판축기법이 가미되는 등 순수한 고구려식과는 차이를 보인다.한편 1987년에 조사된 1호분은 왕릉급(王陵級)의 대형 쌍분(雙墳)이다. 쌍분 축조의 전통(傳統)은 압록강 유역의 환인현(桓仁懸) 고력묘자(高力墓子) 고분군에 보이는 접합식 적석총과 연결되어 백제의 지배세력이 고구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고분군은 대체로 서기 3세기 중후반경부터 5세기 말에 이르는 약 200여 년 동안 조성되었으며, 특히 서기 300~400년의 약 100년 동안에는 백제 지배세력에 의해 적석총 위주의 고분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공주로 천도할 때까지 백제 지배세력은 적석총 대신 석실분을 방이동과 가락동 등지에 축조하였으며, 석촌동 일대에는 토광묘와 옹관묘 등의 소형 고분들이 축조되었다.? 방이동 고분군(사적 제270호)방이동에는 구릉 상에 석실분이 축조되어 있는데 잠실지구 유적발굴조사(1976~1977년)에서 확인된 6기의 고분 중 3기가 발굴되었다. 발굴된 고분들은 연도(무덤길)가 있는 석실분과 소형 석곽이 딸린 횡혈식(橫穴式) 석실분이었다. 5호분은 대략 4-5세기경에 축조되었고, 4호분과 6호분이 그보다 늦게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고분의 정확한 축조시기는 아직 학계의 논쟁으로 남아 있다.? 가락동 고분군가락동 유적에서는 1969년 2기의 토광묘(1호분과 2호분)가 확인되었다. 1호분의 분구는 이미 상당히 파괴되어 있었는데, 남아 있는 분구의 규모는 장변 14m, 높이 1.89m에 이른다. 지표면을 얕게 파서 토광을 만든 후에 목관을 안치한 간단한 구조로 밝혀졌다. 방형 봉분을 지닌 2호분의 각 변의 길이는 12~15m(기저부 기준)에 이른다. 2호분은 3기의 토광묘와 1기의 옹관묘가 하나의 봉분 내에 안치된 매우 특이한 구조를 보이며, 옹관 내부에서는 4세기경으로 편년되는 흑도(黑陶)가 사유지로 남아 있다. 현재 성 내부에는 현대아산병원을 비롯하여 중학교와 초등학교 등 크고 작은 건물들로 꽉 들어차 있다. 현재 뚜렷하게 남아 있는 토성의 성벽은 동벽 1,500m, 남벽 200m, 서북벽 250m 등 모두 약 2,250m 정도에 이른다. 성의 전체 규모는 남북 2㎞, 동서 1㎞ 등 그 둘레가 4㎞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이병도 박사는 이 성을 기록에 보이는 백제시대의 사성으로 추정한 바 있으나, 방동인(方東仁)은 평고성으로 보는 등 학자들 사이에 상당한 이견이 있어 왔다.풍납동토성은 1925년 을축년(乙丑年) 대홍수 때 서벽이 무너지면서 청동초두 2점이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1964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시굴조사에서 풍납리식 무문토기가 확인되어 유적의 연대가 백제 건국 초기(기원전 18년)까지 올라갈 수 있음이 시사된 바 있다. 1997년 1월 현대아파트 건립에 따른 기초공사 중 백제토기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는 신고가 접수됨에 따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97년 1월부터 4월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성벽 내부에 대한 긴급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발굴조사에서 적어도 4개의 문화층을 확인하여, 한성시대(온조왕 원년, 기원전 18년~제22대 문주왕 원년, 서기 475년) 백제의 문화상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또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1999년 동벽 발굴에서는 높이 9m, 폭 40m에 이르는 거대한 성벽의 축조과정이 밝혀졌다. 성벽 내부에서 토성 축조 이전 시기의 주민들이 사용했던 심발형 토기와 경질무문토기가 출토되었는데 이들은 기원전 1세기 무렵(성벽축조는 서기 23년), 즉 풍납동토성 축조를 전후로 하는 시기의 문화상을 설명해 주는 자료들이며, 성벽에서 나온 시료를 통해 얻은 방사성 탄소연대도 이를 지지해준다. 성의 구조와 축조방법은 앞으로 자세히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의 밝혀진 발굴조사 성과 역시 초기 백제문화의 연구에 귀중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한편 1999년부터 2000년에 걸로 나눌 수 있다.첫째, 『삼국사기』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여 백제가 이미 서기 200년 전에 강력한 국가를 이룩했다고 보는 이른바 『삼국사기』초기 기록 긍정론자가 있고, 둘째, 아예 이런 『삼국사기』기록 자체를 조작이나 가짜라 보고 백제 건국은 빨라야 기원후 300년 즈음을 올라가지 못한다고 보는 『삼국사기』초기 기록 부정론자가 있다. 또 이들 두 부류와는 달리 『삼국사기』의 백제 건국 연대와 왕위 계승표는 대체로 받아들이되, 온조왕 이후 기원후 300년 즈음까지 ‘백제본기’에 기록된 사실은 어느 정도 역사성을 갖고 있지만 그 연대를 믿을 수 없다는 이른바 『삼국사기』초기 기록 수정론자들이 다른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긍정론자의 대표 학자로는 문헌사학자인 서강대 이종욱과 고고학자들인 서울대 최몽룡, 풍납토성 규명과 보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문대 이형구를 비롯하여 고고학자 김원룡, 언론인 출신인 천관우 등을 들수 있으나 긍정론자는 수적을 절대 소수이다. 최근 들어 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긍정론자가 늘어나는 추세에 있기는 하다.반면 부정론자 그룹에는 일제 강점 시기 한국 고대사 연구를 주도했던 이른바 식민사학자들이 거의가 예외 없이 속하고 해방 이후 국내 학자로는 이병도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병도와 일제 식민사학자들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초기 기록을 무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제 시대에 한국사를 배우며 『삼국사기』부정론을 계승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병도와 김철준, 이기백 등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직ㆍ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현재 한국 고대사학계 주류로 평가되는 수정론자들이 대부분 이들 트로이카 슬하에서 배출되고 있다.즉, 마지막으로 문제가 되는 그룹이 수정론자들이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한국 고대사학자 대부분은 여기에 속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한국 고대사학계가 왜 아직도 식민사관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느냐 하는 끈질긴 비판이 여기에서 말미암는다. 하지만 수정론자 중에서도 삼국의 건국 연대나 발전 과정에 관한 『.
    인문/어학| 2009.05.19| 8페이지| 1,500원| 조회(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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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큐정전` 감상문
    아Q정전“가령 쇠로 된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거기에는 창문도 없고 또 절대로 부숴버릴 수도 없는 그런 방이야. 그 속에는 많은 사람이 깊이 잠들어 있지. 그러니 머지않아 모두 죽을 판이야. 하지만 혼수상태에 빠져 곧장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고 치세. 그런데 자네가 마구 소리쳐 아직도 약간 의식이 맑아 있던 몇 사람을 놀라 깨우게 함으로써 불행한 그 몇몇 사람들에게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임종의 고통을 맛보게 한다면 과연 자네가 그들에게 잘한 것이라고 여길 수 있겠나?”)아Q정전을 다루기에 앞서 나오는 자서의 한 부분이다. 이는 아Q정전의 줄거리를 관통하는 맥(脈)이다. 아Q정전은 비교적 짧은 중편소설로써 일상적 언어와 소소한 대화를 통해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간소한 글이라 하여 이 소설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메시지는 저자의 생애와 역사적 배경과 결부되었을 때 그 의미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저자의 생애루쉰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며 갖게 된 중국 한의술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책에서 배운 얕은 지식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가 서양의학을 공부하였다. 하지만 수업 중에 본 한편의 영화로 인해 그는 의학도의 길을 접는다. 그것은 러시아군의 첩자 노릇을 한 중국인을 일본군이 공개 처형하는 것이었는데, 주위에 있던 군중은 아무 생각 없이 구경만 하고 있었다. 건장한 체격을 갖추었지만 우매한 모습을 지닌 중국 군중을 지켜본 후, 그는 의학을 포기하고, 문학을 통한 자강을 꾀한다.) 즉, 육체적 질병보다 정신적 무지함을 밝히고, 깨우는 치기 위한 일환으로써 문예진흥운동에 앞장 선 것이다. 문학혁명을 시작으로 중국인의 고질적인 속성을 분석하였으며, 반봉건ㆍ반제국주의의 기치 아래 5·4운동을 이끌었다.) 루쉰은 그렇게 일생 동안 중국의 오랜 역사만큼 낡은 관습과 봉건적 속성을 극복하고,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다.그 당시 시대 상황소설 속에서도 등장하는 것처럼 1911년 중국에서는 신해혁명이 일어났다. 서양의 문물과 과학을 받아들여 스스로의 힘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은 아편전쟁(1840~1860) 이후 계속 되어 왔다. 이러한 기류는 1900년대 초, 신식교육을 받은 지식인들, 특히 해외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혁명 세력으로 점점 조직화 되어 갔다. 쑨원을 중심으로 한 혁명파는 청조(淸朝)의 타도와 공화제의 수립을 주장하였다. 청조로부터 독립하여 임시 공화국 정부를 세운 혁명파는 쑨원을 대총통으로 하며 공화 정치의 실현에 한걸음 다가간다. 쑨원은 청나라의 전권을 이양 받은 위안스카이에게 자신의 대총통직 사직을 조건으로 난징을 임시정부의 수도로 정해달라는 요구를 하며 협상을 제안한다. 위안스카이는 이를 받아들여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자신이 임시대총통으로 취임한다. 하지만 쑨원의 난징수도요구는 베이징 등지에서 일어난 군사반란 등을 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결국 난징에서 그를 견제하려던 혁명파의 시도는 무산되었다. 그러나 신해혁명은 이천 년간 계속되었던 황제의 통치를 끝내고, 새로운 정치 체제인 공화정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아Q에 대해 바르게 전하기(阿Q正傳)아Q정전은 이러한 격동의 과도기를 거치며 탄생된 작품이다. 청조(淸朝) 말기, 정체된 봉건 사회 속에서 날품팔이꾼인 '아Q'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이름과 성이 불확실했을 뿐만 아니라 행적에 관해서도 결코 알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처지에 비해 자존심이 매우 센 편이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웨이쫭 마을의 사람들은 거들떠도 안 보았다. 하지만 그는 그 마을의 지주인 짜오타이예와 치엔家의 큰 아들 가짜 양놈, 또 자기보다 힘이 센 동네 건달들과 마주하게 됐을 때엔 꼼짝도 못할 뿐만 아니라 때론 비굴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보다 힘이 약해 보이는 왕털보나 여승, 샤오D에게는 먼저 시비를 걸며 다른 사람들한테 당한 수모를 갚거나 자신의 힘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사는 마을에 낯선 배 한 척이 들어옴으로 인해 마을은 술렁거린다. 혁명당에 관한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이다. 웨이쫭 사람들뿐만 아니라 짜오家와 성안의 거인 나으리마저 벌벌 떤다고 생각한 아Q는 그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은 생각에 어떠한 사명감도 없이 ‘혁명’을 외치며 돌아다녔다. 어느 날 밤, 아Q는 혁명 당원으로 보이는 흰 투구에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짜오家에서 여러 상자와 가구들을 훔치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후, 아Q는 갑자기 체포되었다. 짜오家를 아Q가 털었다는 것이다. 아Q는 쉽게 체념하고 대머리 영감쟁이의 질문에 공상에 빠져있던 자신의 생각을 두서없이 내뱉으며 답한다. 결국 아Q는 뚜껑 없는 수레에 실려 수많은 군중 사이를 지나치며 사형대로 들어선다. 웨이쫭 사람들은 아Q가 왜 총살을 당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였고, 오히려 참수형에 비해 싱겁게 끝나버린 총살형에 대해 형편없는 사형수법이라며 푸념을 늘어놓는다.아Q정전 속에 나타난 비근대성아Q의 죽음은 그저 어리석은 자의 불쌍한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Q는 자신보다 약해보이는 상대는 멸시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강자에겐 무능하고 비굴한 노예근성을 보이며 이질적인 성격이 혼재하였다. 그는 이 두 성격의 긍정적 발화를 위해 ‘정신 승리법’을 사용하였다. 아Q에게 있어 실패는 보임직 하였어도 그는 이를 받아들이길 거부하였고, 오히려 허구적 정신의 세계로 달아나 그 속에서 위안과 만족을 얻었다. 이러한 아Q정신이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중국인의 도태된 민족성과 비교되며 신해혁명의 실패를 이끌었다고 하는 것이다. 신해혁명을 전후로 하여 봉건사회가 몰락하고, 사회적 혼란기 속에서 중국인들은 아Q가 보여준 공허한 영웅주의와 불쌍한 패배주의의 민족적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루쉰은 이러한 위기상황 속에서 오랜 시간 계속 되어왔던 중화중의 및 대국의식을 비판하며 중국민중들에게 각성할 것을 호소하였다.또한 아Q의 죽음에 의문을 품지 않고, 단지 구경거리로 밖에 보지 않았던 군중들의 우매함은 아Q를 불쌍히 여기게 함과 동시에 그들을 질책하게 만든다.) 이렇듯 풍자와 반어적 서술을 통해 국민의식의 결여를 비판하고 슬픔을 담아낸 이 작품 속에는 민족결의를 촉구하는 문학과 사상이 혼재하였다.사상과 문학, 사실과 해석루쉰은 문학작품을 통해서 민족의식 및 근대사상을 고취시키려 하였다. 그는 ‘아Q정전’ 작품 속에서 신해혁명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였고, 또한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아Q’라는 인물과 그들의 모습이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탁월하게 묘사하였다. 아Q의 행동과 죽음, 그리고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 작가의 의도는 그 누구보다 중국인 스스로들에게 좀 더 가깝게, 직접적으로 와 닿았을 것이다. ‘아Q정전’이 평범한 작품인 듯 보이면서도, 많은 사랑과 높은 평가를 얻은 데에는 당시 중국인들의 시대적 반성과 함께 그들이 나아갈 방향성을 자연스럽게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늘날 아Q정전의 작품성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의 변화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루쉰이 그의 사상을 문학에 잘 접목시켰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관찰과 문학으로써의 생동감 넘치는 풀이는 ‘사실과 해석’에 대해 다시금 되뇌게 한다.
    독후감/창작| 2009.05.19| 3페이지| 1,500원| 조회(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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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정책방향
    문화정책의 방향1. 들어가며2. 문화정책 개념3. 문화정책 필요성4. 문화정책의 목표와 수단5. 문화정책의 경제이론6. 나오며1. 들어가며문화정책은 대체로 19세기 이후 문화현상 전반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 소위 문화선진국을 중심으로 문화의 발굴ㆍ보호ㆍ육성ㆍ전승을 위하여, 또 한편으로는 식민지 국가의 효율적 경영을 위한 수단으로 수립ㆍ집행되어 왔다.문화정책의 이념과 방향은 문화의 의미가 세계적ㆍ일상적 개념으로 자리 매김 되면서 점차 규제에서 지원으로, 중앙정부 중심에서 지방정부 중심으로, 문화소비 중심에서 문화자원 중심으로, 문화생산자 중심에서 문화수용자 중심의 문화복지 개념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오늘날 문화정책은 이 시대의 주요한 화두가 되고 있으며, 21세기에는 20세기를 지배해온 이데올로기나 정치ㆍ경제 분야보다 문화가 국가와 민족의 운명과 미래를 결정짓게 될 것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인류사회 성격의 변화 속에서 문화정책의 개념의 생성과 다양한 의미를 파악하고, 문화정책의 필요성을 토대로 목표를 설정하며, 경제적 이론을 통한 문화 및 문화정책의 특성을 살펴보고, 미래 문화정책 방향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2-1 문화정책영역의 문화에 대한 개념정책영역으로서의 문화의 개념은 아직 합의된 것이 없으며 학자와 나라 및 시대에 따라서 다양하다. 그동안 정책대상으로서의 문화의 개념에 대해서는 크게 생활양식의 총체로 이해하는 인류학적 의미와 예술적 지적활동의 산물인 음악, 드라마, 무용, 그림, 조각, 문학, 영화, 그리고 상징적 의미체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나라에 따라서 그 구체적인 정책영역은 매우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문화정책이 문화와 관계있는 공공정책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문화’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문화정책의 정책목표와 정책수단은 결정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듯이 문화의 개념은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며, 문화 개념이 포괄하는 영역 역시 문화에 대한 정의에 따산물로서 한정하지 않고, 생활문화 및 대중문화를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확대하고 있는 추세이다. 문화정책은 예술 뿐 아니라 전체로서의 문화영역에 대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에는 영화, 출판, 음반 등 문화산업과 공연예술, 문학, 박물관, 문화유산 등이 모두 포함된다.)2-2 문화정책 개념문화정책은 문화와 정책을 합친 말로, 문화라는 목적을 정책이라는 수단으로 엮어내는 공공활동을 일컫는다. 그 가운데서도 정책주체가 문화의 가치를 획득ㆍ유지하고 부가ㆍ증대시키기 위하여 의도하는 종합적인 생각ㆍ행동대안ㆍ방침ㆍ계획이 바로 문화정책인 것이다.)‘문화정책’이라는 개념은 정부 등 공공부문에서 문화예술 부문에 대해 지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두되었다. 그러나 문화정책의 개념에 대해서는 이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학자나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어 왔다. 나라마다 예술과 문화의 개념이 다르며,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의 역할과 개입범위도 다르기 때문이다.문화정책에 대한 공식적인 개념규정은 1967년 UNESCO 주최로 모나코에서 열린 「문화정책에 관한 원탁회의 보고서」에서 최초로 확인해볼 수 있다. 여기서는 문화정책을 ‘주어진 시간 내에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모든 육체적 내지 인적자원의 효율화를 통해 어떤 특정한 문화적 필요성에 부응할 수 있도록 지각 있고 사려 깊은 통찰력과 한 사회 내에서의 행위 또는 그러한 행위를 하도록 결정짓는 요인에 대한 총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문화 활동과 관련된 체계 속에 결합돼있는 장기적인 최종목표와 중ㆍ단기적이고 물량화가 가능한 중간목표 및 하위목표, 그리고 인적ㆍ재정적ㆍ법률 제도적 수단의 총체’라고 정의하고 있다.)Golberman(1987)은 “문화정책”을 “정부가 공공재원을 활용하여 예술을 지원하는데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문화정책의 범위에 정부가 예술활동을 지원하고 규제하는 일련의 활동을 모두 포함시켰다. 유럽의회(Council of Europe, 1997)는 문화 된 또 다른 이유는 문화에 대한 이론적 연구가 실천적 연구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의 문화철학자 van Peursen은 문화개념의 도구화를 통해 문화의 목적론적 연구가 아닌 미래 실천적 정책수립이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인간 생활양식 모두를 문화라고 한다면 문화정책은 정부의 모든 정책을 포함한다. 이러한 문화는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것이므로 정책적으로 적극 실천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전 세계적으로 문화는 사회ㆍ경제적인 이유로, 또한 문화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로, 문화의 사활이 민족 정체성ㆍ국가 정체성과 직접 연관되는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이 시대의 중요한 주제어(key word)가 되고 있다. 정책적 측면에서도 문화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인식의 변화에 따른 정부 차원에서의 문화정책 수립, 문화정책이 지향해야 할 이념과 방향의 설정 등에 대한 필요성과 이에 따른 구체적 방안들이 제기되고 있다.문화정책은 전통적으로 순수 문화예술과 소수 문화생산자를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법과 제도, 조직, 인력, 재정, 시설 등 문화행정 제도의 정비와 기반 시설의 확충이 근간을 이루어 왔다. 구체적으로는 문화재, 제작권, 국어, 종무, 국제문화교류, 문화지원 등에 대한 정책이 주종을 이루었다. 특히 문화행정 체계의 정비,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소수 문화 생산자 지원 및 일반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 중앙과 지방간의 문화격차와 지방문화의 보호ㆍ육성 등에 정책의 역점을 두어왔다.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정보화와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지배문화에 의한 문화의 획일화(또는 보편화), 피 지배(혹은 지역)문화의 보호ㆍ육성(특수화), 경제논리에 우선한 문화의 대중화와 산업화, 문화 수용자 중심의 문화복지 향상 등의 문제가 정책적으로 부각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요컨대, 오늘날 문화와 문화정책은 범세계적으로, 국가적ㆍ사회적으로 주요한 의제(agenda)가 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의가 이미 일상화되고 있고 그 영향도 심대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국민의ㆍ신장하는 내용의 정책목표를 찾는 것이다. 한편, 문화정책은 단순한 접근성을 제고하는 것 못지않게 대중들이 폭 넓게 참여할 기회를 넓히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대중들이 단지 문화예술 소비뿐만 아니라 창조와 관련된 기술과 경향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관심을 갖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문화활동에 참여시킴으로써 개인들이 문화예술을 느끼거나, 상상력을 표출하게 하여 개인의 표현능력을 배양시키려는 것이다.)둘째, 일반적으로 문화예술의 우수성을 확보하는 것이 좁은 의미에서 문화예술정책의 지고지순한 목표이다. 하지만 개인 활동이 아닌 공공정책 목표의 하나로 문화예술의 우수성을 제고시키는 것은 우수한 작품에 대해서만 지원한다는 뜻으로 매우 추상적인 목표가 아닐 수 없다. 우수성을 정책목표로 삼는 데 대하여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우수한 작품만을 정책목표로 삼고 지원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예술정책’과 ‘예술가를 위한 정책’사이의 균형을 깨뜨린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물론 균형 있는 지원을 통해 이 둘 사이의 공진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본다. 창작활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예술가들로 대표되는 ‘공급’과 보다 많은 참여와 만족을 요구하는 소비자들로 대표되는 ‘수요’가 모두 필요하고 이들이 공진해야 한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볼 때 우수성이라고 하는 목표는 특정 형태의 표현물과 특별한 종류의 창작자들만을 옹호할 것이 아니라 평등원칙에 따라서 모든 문화활동과 수요에 책임을 지는 전략적 접근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셋째, 훌륭한 작품은 우리에게 기쁨이나 영감을 주고, 충격과 놀라움을 불러일으켜 ‘문화의 전달자’역할을 한다. 예술의 진보라는 것은 예술역사에서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에 비례한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정책은 과거의 위대한 작품을 보존하고 지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정책목표를 둔다. 대부분의 예술 형태는 끊임없는 혁신을 거쳐 내려오고 혁신적인 예술은 발전 가능성과 이름을 남길 기회를 낳는다. 문화정책은 이러한 질적 혁신을 위해 노력해야 하기 때 공공경제학의 일부로서 정부와 비영리조직 그리고 사부문의 기업과 개인의 지원에 따른 재원의 조달과 배분을 다루었으며, 최근에는 문화산업 또는 문화상품에 관한 연구로 발전하였다.2) 문화의 금전적 가치문화경제학은 예술문화 작품의 시장을 일반시장과는 다른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Picasso의 그림은 소장자가 작품의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 생명력의 충만함을 만끽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림을 산 자산가는 그림 감상의 예술적 목적이 아닌 재산 보전의 수단으로 이용한 것일 수 있으며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그림 매입은 주식투자와 같은 투기의 목적일 뿐이다.또 하나의 문제는 그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극소수인 점이다. 소유자가 그 그림을 응접실에 걸어둔다면 이는 세계적 명화가 고작 몇 사람에게만 공개 되는 것이다.결국 예술작품은 투기의 목적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감상하고 이를 통해 인간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소유자가 그림을 박물관에 기증하거나 최소한 공개는 해야 할 것이다. 그림뿐만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와 역사적 유물 그리고 고풍의 건물 등 모두는 많은 사람들에게 편익을 제공하는 공공재적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3) 문화의 경제적 특성문화경제학은 문화가 시장에서 어떻게 생성, 확산, 향유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문화를 상품으로 가정했을 때 시장에 나타나는 경제적 특성에 대해 알아보자.우선 문화상품의 가치는 기술발전보다 인간의 창의력에 의해 좌우된다. 창의력은 오랜 경험과 축적된 노하우에 의해 발휘되므로 문화상품의 생성에는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즉 시장에 문화상품이 등장하기까지는 오랜 시일 소요되고, 인적자본의 투자에 대한 회수 기간이 길다는 것이다.) 투자성공의 불투명성과 일반적인 투자보다 낮은 수익률 때문에 문화상품의 생성에 있어서 시장 및 개인이 투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제도적 지원이나 정부의 지원 없이 문화상품이 시장에서 생성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또한 문화상품이 시장에서 제대로 확산되지 않는 것은 문화상품이다.
    인문/어학| 2009.05.19| 8페이지| 1,500원| 조회(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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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범죄와 비행` 감상문
    도덕적 회의로부터의 해방(‘범죄와 비행’ 감상문)영화의 제목 ‘범죄와 비행’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소한 비행이라든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아무래도 행위에 대한 ‘자발성의 강도’의 차이라 하겠다. 영화는 매우 명망 있는 의사인 유다 로젠덜과 다큐멘터리 연출가인 클리프 스턴, 이 둘의 행동을 통하여 메시지를 전달한다. 물론 이 둘 이외에도 그들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도덕을 둘러싼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된다. 살인교사와 같은 중대한 범죄와 새로운 결혼을 꿈꾸는 비행 중 우리는 어느 편에 더 많은 죄의 무게를 실어야 하는지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달리 범죄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전과 다를 바 없이 풍족한 명성과 부를 누리며 사는 로젠덜의 모습과 그에 비해 덜 도덕적이지 못한 비행의 실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상실하였던 클리프의 모습은 우리에게 도대체 도덕은 왜 필요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우리는 도덕이 가져다주는 회의감을 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영화에서 문제가 되는 공통적인 발단에는 두 주인공이 바람을 피우는 행위라 할 수 있겠다. ‘바람’과 ‘새로운 사랑’이란 용어의 차이는 별개의 문제로 두더라도, 이 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상이한 도덕적 행동을 선택하였다.먼저 로젠덜의 경우를 살펴보자. 안과의사로서 그는 사람들의 눈을 치료한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관통력을 가지며, 강력한 눈을 지닌 신이 항상 저희를 보고 있다”는 자신의 아버지 말씀을 인용하며 자신 또한 그러한 생각을 지닌 것처럼 거짓 연설을 한다. 이러한 그가 바람피운 여자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고, 대화를 한 인물들은 잭과 벤으로서 이 둘은 전혀 다른 행동양식을 지녔다. 잭은 현실을 보면서 고상할 여유가 없다고 할 정도로 세상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었으며, 벤은 유다 랍비로써 진정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이 신앙을 근간으로 로젠덜에게 부인이 용서할 기회를 주기를 권유한다. 적절한 신앙과 위선을 지닌 그에게 상이한 두 인물에의 접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로젠덜과 바람을 피운 돌러리스 펠리는 그와 영원한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의 진짜 사랑을 로젠덜의 부인에게 고백함으로써 이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로젠덜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까지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누린 로젠덜은 본인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의 행복한 질서에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다. 로젠덜은 잭과 벤, 두 사람의 견해 가운데서 고민한다. 잭은 그에게 도덕적 행위를 배제한 살인을 제안하고(아니 오히려 로젠덜의 입을 통해 차마 말하지 못한 부분을, 로젠덜의 생각을 잭이 대신한 경우이다.) 벤은 현실적 의미와 용서를 가진 도덕적 구조, 일종의 보다 높은 어떤 힘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 삶의 기반은 없는 것이며 삶이 지속될 수 없다고 말하며,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부인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그것이 진짜 사랑이든 실수이든, 용서를 통한 보다 성숙한 삶을 살 것을 제시한다.이기적이고 욕정에 사로 잡힌 자신의 본심을 알았던 로젠덜은 이제 선택하게 된다. 그의 불륜 사실과 재정문제가 폭로됨으로써 자신의 인생이 망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그는 잭의 의견을 따른다. 현실적 결과가 두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사치였던 것이다.이에 비해 클리프는 어떠한가? 그는 어린 조카와 영화를 보는 취미 생활을 하면서 우습고, 사소한 농담을 하며 도덕적인 행동에 조소를 보낸다. 사실 영화에서 클리프의 내용 부분은 과장된 대화 속에서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었다. 그는 가난하였으며, 반대로 유명하고, 부유한 삶을 누리는 자신의 부인 남동생인 래스터를 싫어하였다. 클리프는 래스터와의 작업을 통해 포장된 현실을 직시하며, 카메라 앵글에 보이지 않았던 부패한 삶을 재조명하고, 비판한다. 이러한 그에게도 핼리 리드라는 조감독과의 사랑이 찾아온다. 그러나 자신의 진정한 동반자를 찾았다는 기쁨과 생기에서 시작된 클리프의 사랑은 사소한 비행에 그치고 만다. 오히려 자신이 비판한 래스터와 연인 관계로 발전되어 돌아온 그녀를 보며 그는 진정한 현실을 밝히려 한 자신의 의지와 상반된 허무를 경험하여야 했다.클리프와 핼리 리드가 시간을 같이 보내며 보았던 레비 교수의 영상은 로젠덜의 내용에서 보여주었던 엄숙함과 철학적 질문을 대신해주었다. 영상 속에서 교수는 두 가지 모순된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다. 하나는 신이 우리를 지켜주는 동시에 도덕적 행동을 하기를 요구한다는 데에서 찾았다. 하지만 신이 가장 먼저 요구하는게 무엇일까? 초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지켜주는 신을 마음에 품었지만 그 존재가 아들을 바치라고 요구함으로써 사랑스런 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실패했다. 즉 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건 우리 능력 밖의 일인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사랑의 모순점이다. 그 모순은 우리가 사랑에 빠지면 마치 어린애 같이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 대하여 재발견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 형제로부터 영향을 받은 모든 잘못된 것들을 가장 소중한 사람을 통해서 바로 잡으려 한다. 여기에서 사랑은 모순점을 지닌다. 과거로 돌아가려는 시도, 과거를 원래 상태로 돌려놓으려는 시도를 통해서 말이다.
    독후감/창작| 2009.05.19| 2페이지| 1,000원| 조회(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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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변화에 대한 재인식 및 대응방안
    기후변화에 대한 재인식 및 대응방안환경문제는 그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아직도 경각심이 적다. 환경이 우리의 삶에 필요한 요소들을 무조건적으로 제공한 것은 인간의 끝없는 이기와 욕심에 부딪혀 이상 현상을 낳게 하였다. 이와 관련 21세기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기후변화이다.오늘날 관측되는 지구 평균 기온과 해수온도의 상승, 널리 일어나는 눈과 얼음의 융해, 지구 평균 해수면의 상승 등은 지구의 온난화를 확실히 보여주었다.20세기 중반 이후 지구 평균 온난화의 가장 큰 원인은 인위적 온실가스의 증가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산업화 이후 1970년부터 2004년 사이에 에너지 공급, 교통, 산업 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이 가장 높았으며, 주거용 및 상업용 건물, 산림(산림제거 포함), 농업 부문에서는 낮은 속도였지만 꾸준히 증가하였다. 이와 같이 인위적 온실 가스의 증가로 인한 지난 30년 동안의 인위적 온난화는 지구의 물리계와 생물계에 뚜렷한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각 대륙(남극대륙은 예외)에서 인위적 온난화가 평균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최근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빠르게 녹으면서 부산-유럽을 오가는 북극 항로가 이르면 2020년께 열릴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운송거리와 기간의 단축이라는 장점과 더불어 지정학적인 거점으로 인해 북극 항로가 뚫리면 부산항이 싱가포르 등을 제치고 아시아 중심항만으로 올라서게 될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해 북극 이권을 둘러싸고 인근 국가들의 치열한 경쟁 또한 예상된다. 왜냐하면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해에 인접한 미국과 러시아,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등이 새로운 천연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되어 본격적으로 영해 확장에 나섰기 때문이다.하지만 부산의 북극 항로 상업화 가능성과 북극해 인근 국가들의 부 축척 기회가 전 지구적 차원에선 좋은 소식이 아니다. 이러한 기후 변화는 북극곰을 비롯한 동물과 각종 식물들의 멸종 위기를 불러오며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 중국의 황사의 경우 그 나라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들에게 각종 건강피해와 여러 산업적인 측면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선 전 지구적 차원의 대응을 확립하고, 글로벌 인식, 일련의 국가 정책과 제도적 장치를 추가 수립해 나가야겠다.우리는 반세기동안 환경에 있어 착취에 가까운 파괴를 범해왔다. 현재 수준에 머무르는 기후변화 완화 정책과 환경보호에 대한 사람들의 유아적 인식에 변화가 오지 않는다면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은 다음 몇 십 년 동안에도 계속 증가할 것이며 미래의 육지는 주변 해양보다 더 많이 온난화되고, 북반구 고위도일수록 또한 더 많이 온난화될 것이다.
    인문/어학| 2009.05.19| 1페이지| 1,000원| 조회(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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